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후진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대주주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육군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효성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거북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95
  • 김정일 15개월간 네 차례 中 방문 목적은 김정은 안착

    17일 갑작스레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말년에 왜 중국 방문에 매달렸을까. 김 위원장은 2010년 5월 이후 올해 8월까지 네 차례나 병든 몸을 이끌고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특히 올해 5월 중국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6000여㎞를, 8월에는 러시아·중국 방문에서 1만여㎞를 강행군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쫓기는 듯한 방중 행보는 생전에 후계자 김정은에게 보다 공고화된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서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내년 ‘강성대국’ 진입을 앞두고 당장 경제난을 해결하고, 중국 경제개발 현장 시찰을 통해 경제 회복을 부축함으로써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의 현상 유지에 고심하는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정일의 사망으로 중국이 오랫동안 지속해 온 북한 지원 정책을 변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북한에는 시장경제 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외교는 지금까지 아홉 차례 비밀리에 이뤄졌다. 이 중 1983년 6월 이뤄진 첫 방문은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경제발전 현장 시찰과 경제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마지막 중국 방문은 지난 8월 25~26일 진행됐다.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 길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대신해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과 회담하고 동북지구를 둘러봤다. 헤이룽장성 치치하얼(齊齊哈爾) 제2선반공장과 다칭(大慶) 도시계획전시관을 시찰했다. 3개월 앞서 5월 20~26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하고 헤이룽장과 지린(吉林), 장쑤(江蘇)성 등을 시찰했다. 헤이룽장성 우단장 하이린(海林)농장, 지린성 창춘(長春) 이치(一汽)자동차공장, 장쑤성 양저우(揚州) 화룬수이궈(華潤水果)슈퍼마켓, 난징(南京) 슝마오(熊猫) 전자그룹 등을 둘러봤다. 2010년 8월 26~30일 이뤄진 방문에서는 장춘까지 날아온 후 주석과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뒤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일대를 참관했다. 지린성 창춘과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기계 제조 및 화학공업, 농업 부문을 시찰했다. 같은 해 5월 3~7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한 후 베이징 보아오(博奧) 생물유한공사를 돌아봤다. 이어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쉐룽(雪龍) 산업그룹, 톈진(天津) 경제개발구를 둘러봤다. 동북아 지역 정세 논의라는 명분을 내걸고 진행된 2006년 1월 10~18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한 뒤 베이징 농업과학연구원을 시찰했다. 곧바로 후베이(湖北)성과 광둥(廣東)성으로 이동, 농업·공업·과학 분야의 경제개발구를 참관했다. 후 주석이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뒤 처음으로 이뤄진 2004년 4월 19~21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하고 톈진 경제개발구를 시찰했다. 2001년 1월 15~20일 방문에서는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회담하고 상하이의 발전상에 대해 “천지개벽했다.”고 극찬했다. 2000년 5월 29~31일 최고 지도자로서 첫 방문에서는 장 주석과 회담한 뒤 톈안먼(天安門) 성루와 IT 업체인 롄상(聯想)그룹을 둘러봤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사설] 김정일 사망 조의·민간 조문 허용 의미있다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명하고 민간 조문단의 방북도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정부 담화문’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면서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담화문의 내용을 보면 김 위원장 개인에 대한 애도보다는 북한의 새 집권층과 주민들에게 전하는 우리 정부의 메시지라는 의미가 더욱 크다. 일단 정부는 북한 측에 갈등이나 대결보다는 화해와 협력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가로놓여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김 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명한 의미를 북한 측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의 새 권력층이 내부 상황에 따라 우리 정부가 보내는 선의의 메시지를 반드시 선의로 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으로서는 한반도 정세 안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담화문을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직접 발표한 것도 나름대로 정부가 고심한 결과였을 것이다. 류 장관은 취임 이후 막혀 있는 남북관계를 뚫어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조문하고, 일본의 후미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돌연한 서거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고 발표한 데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조전을 보낸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조의 표명을 더 늦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는 또 조문단을 보내지 않기로 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대해서는 북측의 조문에 대한 답례로 방북 조문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감안한 결정이라고 본다. 정부 조문단을 파견할 상황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명분이 있는 민간 조문단의 방북을 굳이 가로막을 이유도 없었다.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김 위원장에 대한 정부의 조의 표명과 조문단 파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 왔다. 그러나 지난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당시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지 않고 조문단 파견에도 반대했을 때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남남갈등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위기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 김정일 조문한 후진타오, MB 통화요청엔 묵묵부답

    김정일 조문한 후진타오, MB 통화요청엔 묵묵부답

    중국 최고지도부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정국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 만인 20일 오전 북한대사관을 찾아 직접 조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 주석 조문에는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동행했다. 최고지도부 9명 가운데 4명이 김 위원장을 조문했다. 후 주석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함께 북한대사관에서 조문한 바 있어 김일성 주석 부자 모두를 조문하는 ‘범상치 않은 인연’을 갖게 된 셈이다. 후 주석은 이 자리에서 북한대사관의 박명호 대리대사에게 “북한이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 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과 평화를 위해 전진할 것으로 믿는다.”며 ‘김정은 영도’를 직접 언급했다. 후 주석은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에 여전히 묵묵부답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외교결례’라는 지적과 함께 ‘상중’(喪中)의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행보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의 발 빠른 추모 행보에 근거해, 북한의 외국조문단 사절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조문단을 파견할지 주목된다. 현재로서는 조문단을 보내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북한의 지재룡 주중대사가 이날 평양에서 급거 베이징으로 돌아간 점도 중국의 조문단 파견 가능성을 낮춰 주는 대목이다. 지 대사가 베이징 내 공관에서 중국 측 조문인사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북·중 간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류웨이민(劉爲民)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조선(북한)은 외국의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해 조문단 파견을 검토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최근 2년간 4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3차례씩이나 후 주석을 비롯한 최고지도부를 만나는 등 북·중 관계가 어느 때보다 돈독했던 데다 북한으로서도 중국 측 조문단을 맞이하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1994년에 원자바오 당시 서기처 서기를 비롯한 3명이 비밀리에 조문단으로 파견됐었다는 소문도 있다. 한편 김 위원장 빈소를 직접 조문한 후 주석이 이 대통령이 요청한 전화통화 요청에 이날 오후까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아 대비된다. 한·중 간에는 외교부 장관 간 전화통화만 이뤄졌을 뿐이다. 중차대한 외교사안이 발생한 상황에서 관련국 정상의 통화 요청에 하루가 지나도록 응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 해도 외교적 결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전날 버락 오바바 미국 대통령,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갖고 한반도 안정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김성수기자 stinger@seoul.co.kr
  • 美 “北의 평화·안정적 권력 이행 원한다”

    美 “北의 평화·안정적 권력 이행 원한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문하면서 ‘김정은 영도’를 직접 거론했다. 미국 정부도 조의를 표명했다. 미·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4강이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의 조속한 안정을 희망하는 양상이다. 후 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에 마련된 김 위원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우리는 조선(북한) 인민이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 단결해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한반도의 장기적인 평화안정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전날 공산당 중앙위원회 등 당·정·군 최고권력기관 명의의 조전을 통해 처음으로 김정은 체제를 인정한 데 이어 후 주석이 이를 직접 재확인한 것은 북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중국이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착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한 행보로 풀이된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들이 조전과 후 주석 조문내용 등 김정은 관련 보도를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 주석의 조문에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3명 등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동행했다. 중국의 류훙차이(劉洪才) 주북 대사도 이날 오전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김일성동상에 헌화하면서 김 위원장을 조문했다. 미국 정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 주민의 안녕을 깊이 우려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겪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성명은 김 위원장을 직접 애도하는 표현 대신 북한 주민들을 위로하는 형식을 통해 미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어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권력 이행(transition)을 원한다.”면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의사도 분명히 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의 애도기간을 존중할 것”이라면서 “적절한 시점에 분명 다시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무부는 대북 식량지원과 제3차 북·미 고위급 대화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고 부인해 이번 주중 열릴 전망이던 북·미 대화가 무기한 중단됐음을 시사했다.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에도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직접 “북한 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전한다.”는 조의 성명을 발표하고 제네바에서 북한과 핵 협상을 벌이던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를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에 보내 조문하도록 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워싱턴 김상연특파원 stinger@seoul.co.kr [용어 클릭] ●transition 일반적으로 전환, 이행 등으로 해석되며,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발언의 경우 김정일 체제에서 장례기간을 거쳐 안정적으로 다음 단계로의 권력 이행 의미가 강하다.
  • 특성화고 출신 재직자 전형 15개大 22일부터 원서접수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출신 직장인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특성화고 재직자 특별전형’이 22일부터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학년도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실업계고) 재직자 특별전형 정시모집 계획’을 18일 발표했다. 재직자 특별전형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뒤 3년 이상 산업체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을 수능 없이 정원 외로 입학시키는 제도다. 재직자 특별전형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선취업, 후진학’ 체제 구축을 위해 2010학년도부터 시행됐다. 올 재직자 특별전형 정시모집은 대학별 모집요강에 따라 22일부터 원서접수가 시작되며, 면접과 구술평가 등을 거쳐 내년 1월과 2월 중 최종 합격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정시모집에서 재직자 특별전형을 하는 대학은 공주대·충남대·충북대 등 국립대 3곳과 가천대·건국대·고신대·광주대·국민대·동덕여대·명지대·용인대·중앙대·호서대·영남이공대·김천과학대 등 사립대 12곳이다. 앞서 경북대 등 16개 대학은 재직자 특별전형을 이번 수시모집에서 진행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우려스러운 차기 지도부 ‘유소작위’ 외교

    중국은 내년 말이면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물러나고 시진핑(習近平) 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이들의 자리를 물려받아 ‘5세대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다. 집단지도 체제를 이루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시 부주석과 리 부총리를 제외한 7명이 바뀐다.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은 대부분 혁명 원로들의 자제들이거나 사상이 투철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다. 시 부주석과 리 부총리가 각각 주석과 총리를 물려받아 2022년까지 10년간 ‘거대 중국’을 이끈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큰 우려를 안겨 주고 있다. 이들을 대표로 하는 중국의 ‘5세대 지도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국력에 걸맞게 목소리를 한층 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들의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 외교’, ‘돌돌핍인(??逼人·기세가 등등하다) 외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내년 말 이후 중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외사영도소조를 이끌게 되는 시 부주석은 10년간의 ‘후계수업’ 기간에 철저하게 입을 닫았던 후 주석과 달리 지난 4년간 거침없는 목청으로 자신의 위상을 각인시켜 왔다. 2009년 초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그는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외국인들이 중국의 일에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며 간섭하고 있다.”고 서방을 겨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식 때는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선언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공산당 간부 교육기관인 중앙당교 교장을 겸임하고 있는 시 부주석은 틈날 때마다 ‘공산당 역사교육 강화’를 주문해 왔다. 더 걱정되는 것은 강경파 군부의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앙군사위원회 입성이 예상되는 인물 가운데 장하이양(張海陽·상장) 제2포병 정치위원과 마샤오톈(馬曉天·상장) 부총참모장 등 ‘홍군’ 원로 자제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이들이 최고지도부를 상대로 ‘힘의 과시’를 주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정명훈, 연봉 7억 깎고도 받아가는 돈 무려…

    정명훈, 연봉 7억 깎고도 받아가는 돈 무려…

    ‘20억원대 고액연봉 논란’을 빚었던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 감독에게 제공되던 부대경비는 줄거나 항목이 폐지되었고, 대신에 연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휘료는 오히려 증액됐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16일 정 감독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임기 3년의 재계약 조정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정 감독은 연 10회 이상 직접 지휘를 하는 조건으로 기본급 2억 4200만원을 받기로 했다. 다만 섭외활동비, 유럽주재보좌역 인건비, 국내 판공비, 가족 항공료 등 타당성 논란이 일었던 부대경비 등은 받지 않기로 했다. 또 공연당 지휘료의 절반 수준만 받던 ‘찾아가는 음악회’는 무료지휘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까지 4244만원이던 회당 지휘료는 5% 증액돼 4400여만원 수준이 된다. 이렇게 되면 정 감독이 올해와 비슷한 횟수로 지휘 활동을 할 경우 각종 경비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보수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 감독은 올해 총 38회 지휘를 하고 총 20억 4200만원을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대경비를 지급한다는 사실 자체가 논란이 됐던 것이지, 전체 보수에서 그 경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편이 아니었다.”면서 “보수 총액은 지휘 횟수에 따라 달라져 확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계약 체결은 실무자 협의를 통해 세부계약서를 작성하고 서울시향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27일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 감독은 2005년 이명박 전 시장 때부터 시향을 이끌고 있다. 한편 박 시장은 정 감독에게 “포스트 정명훈을 대비해 후진양성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 감독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음악 발전과 후진양성 등 시향의 발전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답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노다 총리 中 방문 진통끝에 25일 확정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오는 25~26일 이틀간 중국을 방문한다. 26일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회담할 예정이며, 원자바오 총리와도 만날 계획이다. 노다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후진타오 주석 등과 동중국해에서의 해상 연락체제 구축, 가스전 공동개발, 내년 수교 40주년 공동사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는 당초 이달 12∼13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중국 측의 요청으로 연기됐다. 이를 두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12월 13일이 난징대학살 기념일이어서 중국이 일정 변경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교롭게 해당 일에 중·일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중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노다 총리의 방중 연기가 최근 외교정세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과 일본이 미국측 태도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형국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정상회담 의제 논의 과정에서 양국 간 견해차가 뚜렷해 일정이 미뤄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후에도 양국 정부는 노다 총리의 방중 일정을 잡는 데 적잖은 신경전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은 노다 총리가 이달 28∼29일 방문해 주길 희망했으나 노다 총리의 인도 방문이 27일로 잡혀 있어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중국은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인도 방문에 앞서 중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해 일본 정부가 이를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G2의 2012년 경제 정책 발표] 中 성장보다 안정

    중국이 14일 폐막한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적극적 재정정책과 신중한 통화정책’을 축으로 하는 기존의 거시경제정책을 내년에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기조의 ‘키워드’는 ‘안정속 진전’(穩中求進)으로 정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내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와 중국의 성장률 급락 우려에 따라 ‘성장유지’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 것으로 예상했으나 중국은 ‘안정’을 택했다. 경제의 안정적이고 비교적 빠른 성장을 지속하며 물가와 부동산을 안정시키고, 사회안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구조조정 및 성장방식 전환 등을 진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회의에서는 거시경제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위해 내년에도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신중한 통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구조적 감세정책을 실시하고 민생 영역에 대한 재정 투입을 확대해 내수확대를 이끌어 내겠다는 뜻이다. 신중한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상황에 근거해 적시에 적절하게 ‘선제적 미세조정’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에서는 일단 돈줄을 거머쥐면서도 물가상황 등을 적기에 포착한 통화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목표가 엿보인다. 이와 관련, 중국 지도부는 “세계경제 성장이 침체하고 국제무역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한편 국제금융 시장의 혼란이 커지면서 내년 세계경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경제성장 방식 전환을 위한 내수확대를 내년 경제 전략의 기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주택 가격이 합리적 수준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억제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위기 의식도 드러냈다. 경제사회발전 중에 드러나는 모순과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 해결하고, 경제정책 운용 중의 잠재적 위험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거시경제 조정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는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과 중앙과 지방의 당·정 책임자, 국무원 각 부서 책임자 등이 참석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태자당’ 보시라이- ‘퇀파이’ 왕양 中 차기실세들 암투속 악수 왜?

    ‘태자당’ 보시라이- ‘퇀파이’ 왕양 中 차기실세들 암투속 악수 왜?

    내년 권력교체에서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내부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녀 그룹)과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 그룹)의 대표주자들이 일단 손을 맞잡았다. 지나친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한 현 지도부와 원로들의 ‘조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2일 광저우(廣州)일보 등에 따르면 보시라이(薄熙來·왼쪽·62) 충칭시 당서기와 왕양(汪洋·오른쪽·56) 광둥성 당서기가 전날 베이징에서 ‘충칭-광둥 전략적 협력구조 협약’에 서명하고, 좌담회를 가졌다.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정치국회의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등을 제외하고는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이다.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인 보 서기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과 함께 태자당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상무부장을 지낸 뒤 2007년부터 충칭시 서기를 맡고 있는 그는 ‘범죄와의 전쟁’으로 전국적 지명도를 얻은 뒤 지난해부터는 이른바 혁명정신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충칭시를 ‘붉은 빛깔’로 물들이고 있다. 왕 서기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총애를 받고 있는 공청단 핵심 브레인 출신이다. 보 서기에 앞서 충칭시 서기를 지낸 뒤 광둥성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내륙 대표도시(충칭)와 동부연안 산업벨트(광둥)로 확연히 갈리는 지역 특성처럼 특유의 논리를 제시하며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 왔다. 보 서기는 “덩샤오핑의 균부론을 적용할 때가 됐다.”며 파이를 균등하게 나누는 ‘공동부유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성장론자인 왕 서기를 겨냥한 정치공세로 공산당 원로와 좌파들이 그를 지지한다. 왕 서기는 “파이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며 지속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경계감도 내비친다. 두 논리의 격돌은 좌·우파 논쟁으로 비화됐고,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나서서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잘 나눠야 한다.”며 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언론들은 보 서기와 왕 서기가 이번 좌담회에서 악수를 하며 “두 지역의 협력은 매우 기쁜 일”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고 전했지만 태자당과 퇀파이의 경쟁은 내년 제18차 당대표대회가 임박할수록 더 거세질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설] 승객 항의한다고 지하철 역주행해서야…

    그제 오후 서울 지하철 7호선 전동차가 하계역을 떠난 뒤 역주행해 되돌아간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는 ‘떼법’에 약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45분쯤 지하철 7호선의 7186번 전동차가 하계역을 출발해 중계역으로 향하던 도중에 60~70대로 추정되는 남자 승객이 차량 내의 비상 통화장치를 이용해 기관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 승객은 “하계역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 내리지 못했다.”면서 욕설을 내뱉고 손해배상 청구를 운운하며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열차는 하계역에서 분명히 문을 열어 승객이 승하차한 뒤 출발했다. 두번째는 전동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의 근무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당시 기관사는 도시철도공사 종합관제센터와의 교신에서 하계역에서 전동차의 문을 열었는지 잠시 헷갈렸다고 한다. 역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것은 지하철 운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경력이 5년이나 된 기관사가 방금 떠난 역에서 문을 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사 측은 당시 승객의 폭언과 폭설 때문에 기관사가 당황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종합관제센터가 너무 쉽게 열차를 되돌리도록 지시한 것도 지나쳤다고 본다. 공사 측은 안전 매뉴얼에 따라 이번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뒤따라 오던 열차도 전역인 공릉역에서 정차하도록 했기 때문에 안전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뉴얼에도 전동차의 후진은 안전이나 정확한 정차를 위해서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할 뿐이다. 비상도 아닌 상황에서 170m나 역주행을 하면서 지하철에 탄 700여명의 승객에게 불편과 불안을 안겨준 셈이다. 도시철도공사 측은 철저한 조사로 진상을 파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확실히 세워야 할 것이다.
  • 中 “내년도 적극적 재정정책” 경제 성장 저하 방지에 초점

    중국의 내년 경제정책 운용 방침이 사실상 결정됐다. 내년에도 적극적 재정정책과 신중한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미세 조정을 하겠다는 개략적인 방침을 정했다. 내년도 경제정책 기조를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가 12일부터 사흘간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국 공산당은 후진타오 총서기 겸 국가주석 주재로 지난 9일 중앙정치국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방침을 결정했다. 중앙정치국 회의는 서열 25위 이내의 공산당 최고위급 간부만 참석하며 각종 연구와 분석을 통해 국정 방침을 정한다. ●“구조조정·인플레 억제 노력 병행”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회의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내년에도 안정적이고 비교적 빠른 경제성장 노력을 지속하면서 경제구조 조정과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동산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부동산시장 규제 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하고 성장 방식 전환과 내수 확대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당외 인사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내년 경제정책 운용 방향에 대한 조언을 들은 후 주석은 “내년은 12·5규획(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의 중간에 들어서는 중요한 해이자 경제업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해가될 것”이라면서 “안정적 성장과 구조조정, 민생보장 등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 유동성 증대 추가 조치 전망도 중앙정치국의 이번 결정에 대해 시장의 해석은 엇갈린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신중한 통화정책에 무게가 실렸다는 분석과 함께 시장 유동성을 늘려주는 추가적인 조치를 암시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여러 차례 ‘안정적이고도 비교적 빠른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점에서 내년의 성장률 급락 추세를 감안해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국제 시장 예측 기관은 내년 중국 경제 성장률이 7%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루정웨이(政委) 싱예(興業)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갑작스럽고 공격적인 통화 완화정책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보인다.”면서 “경제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중국 정부는 점진적인 통화 완화책을 펼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바다로… 우주로… 中, 美에 맞서 세력확장

    바다로… 우주로… 中, 美에 맞서 세력확장

    ■후진타오 “해군 전투태세 강화” 美 남중국해 봉쇄 대항 재천명 중국 군 최고수뇌부가 연이어 해군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중시정책을 ‘중국 봉쇄’로 보고, 이를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태지역의 군사력 경쟁 심화가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태 군비 경쟁 심화 우려 7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군 통수권자인 후진타오 국가 주석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전날 해군 현대화와 전투태세 강화를 힘주어 말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해군의 제11차 당대표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다. 후 주석은 “해군이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고, 현대화를 견고하게 추진해 국가안보 수호와 세계평화 유지에 큰 공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 주석의 해군 전투력 강화 발언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고, 미국이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속히 해군력을 키워 남중국해를 수호하고,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미국은 후 주석의 발언이 전해지자 “투명성을 강화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조지 리틀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이 그런 것처럼 중국 역시 군사능력을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 투명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은 중국과의 강한 군 관계를 희망하며 아울러 투명성이 더 증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美 “군사 투명성 강화하라” 실제 중국의 해군력 확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첫번째 항모 바랴크함이 순조롭게 시험운항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2020년까지 잠수함 30척을 추가 건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첫 국산항모도 2015년쯤 취역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 세이셸에는 중국의 첫 번째 해외 군사기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일부 군부 강경파 인사들 가운데는 태평양함대를 창설해 미국에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날 베이징에서는 마샤오톈(馬曉天) 중국 군 부총참모장과 미셸 플러노이 미 국방부차관이 제12차 미·중 군사회담을 열어 중국의 해군력 강화 등을 안건으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中 “위성 등 100여개 5년내 발사할 것” 중국이 5년 내에 100여개의 우주비행체를 발사하는 등 우주개발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중국이 12·5규획(12차 5개년 계획·2011~2015) 기간에 위성과 우주선, 탐사선 등 최소한 100개의 우주비행체를 발사할 계획이라고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경화시보가 중국항천과기그룹 소식통을 인용해 7일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해 15차례 창정(長征) 로켓을 쏘아올려 20개의 위성을 우주에 올려보냈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횟수다. 올해에도 이미 17차례 로켓 발사에 성공했으며 연말까지 두 차례 더 실시할 계획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평양의 비엔나 커피숍/구본영 논설위원

    1970년대 후반 대학가 다방에서 인기 있는 메뉴 중의 하나가 비엔나 커피였다. 특히 새내기들이 미팅 때에 많이 찾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진한 향의 커피에 생크림 거품을 얹어 부드럽고 달콤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 나라인 오스트리아의 수도에서 유래한 명칭이 이국정서까지 자극했다. 커피를 마시고 타임지를 읽는 게 국제화의 징표처럼 여겨지던 그 무렵. 대학가에서 유행한 지적 상품 중의 하나가 ‘종속이론’이었다. 필자도 거칠게 말해 개발도상국의 후진성이 미국이나 서유럽 강대국의 수탈에 기인한다는 이 이론에 얼마간 솔깃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등을 함께 탐독하던 학우들 중 일부는 마오쩌둥을 정말 ‘위대한 지도자’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택한 이후 마오의 문화혁명이 수천만 중국 인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폭거였음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겠지만…. 물론 이후 종속이론도 설 땅을 잃었다.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개방을 선택해 일정한 경제적 성취를 이루면서다. 수입대체산업 육성이라는 소극적 전략보다 진취적 수출주도형 경제를 택한 한국이 그런 면에서 훌륭한 역할모델이다. 어쩌면 종속이론에 심취해 대외 개방을 부정적으로만 보던 얼치기들이 레닌의 표현을 빌리면 ‘쓸모있는 바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레닌이 이끈 소련의 사회주의 자급경제가 결국엔 자멸할 것이라는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선망했다면 말이다. 평양의 중심가에 비엔나 커피 전문점이 등장했단다. 어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의 지난달 기사를 뒤늦게 인용, 보도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한 오스트리아 사업가가 투자해 올해 10월 문을 연 이 커피숍은 김일성 광장 옆 중앙역사박물관 안에 자리잡고 있다. 주 고객은 평양을 찾는 외국인들과 도보로 3분 거리인 외교부 청사의 북한 외교관들이란다. 비엔나 커피는 아직 북한 대학생들에게는 언감생심인 모양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북한이 폐쇄경제에 갇히는 통에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차원에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슨 만병통치약일 리야 없지만, 그래도 개방을 통해 경제영토를 넓혀나갈 때 우리에게 호기가 오지 않을까 싶다. 스타벅스에 문을 열어줬지만, 토종 브랜드인 카페베네 등이 선전하고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부고] ‘청소년의 아버지’ 구천규 신부 선종

    [부고] ‘청소년의 아버지’ 구천규 신부 선종

    한국 청소년의 직업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살레시오 수도회의 구천규(벨기에 이름 마르코 퀴블리에) 신부가 4일 오후 6시 지병인 심장병과 여러 합병증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73세. 고인은 1938년 벨기에 브루제 교구 굴렌겜에서 태어나 1958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으며 1965년 9월 한국으로 파견됐다. 1984년 2월부터 1996년 2월까지 12년 동안 한국 살레시오 수도회 한국 관구를 이끌었다. 고(故) 이태석 신부 등 많은 후진을 살레시오 수도회에 받아들여 수도회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돈보스코청소년센터에 재직하면서 가난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업 교육에 힘써 ‘청소년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1983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 수도회 관구관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6일 오전 8시다. (02)828-3500.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中 WTO 가입 10주년… 어떻게 달라졌나

    中 WTO 가입 10주년… 어떻게 달라졌나

    오는 11일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0주년을 맞는다. 중국은 1986년부터 15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2001년 12월 11일 143번째 WTO 회원국이 됐다. WTO 가입 이후 연평균 10%대 안팎의 폭발적인 경제성장률을 이룩하며 2001년 세계 6위이던 경제 규모가 2010년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도약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 경제의 ‘견습생’이라는 우려를 씻고 ‘우등생’으로 성장한 셈이다. WTO 가입 이후 중국의 변화상을 짚어본다. WTO 가입은 중국을 후진적인 농업대국에서 신흥 공업대국으로 한 단계 도약시켰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중국은 WTO 가입 이후 10년 동안 연간 400억 달러(약 45조 2200억 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며, 세계적으로도 750억 달러 실질소득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시장개방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다. 중국은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생산기지를 구축,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규모는 연평균 9.5%씩 늘어나며 2001년 세계 6위에서 2010년 세계 2위로 올라섰다. 2010년 중국의 외국인 투자유치 규모는 1088억 달러로, 2001년보다 2.32배나 증가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중국 제조업이 전 세계 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9.8%를 기록, 미국(19.4%)을 추월했다. 산업구조 역시 WTO 가입 초기 단순 임가공무역 제품에서 전기전자 및 첨단·고급 제품 생산으로 변모,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수출액은 2001년 2661억 달러에서 2010년에는 1조 5497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7.3%에서 2010년 9.6%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경제규모도 지난해엔 일본마저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대국, 이른바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섰다. 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미국채를 보유해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중국은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 국내 법률을 국제 기준에 맞게 손질해 시장의 문턱을 낮췄다. 3000여개의 법률 조항을 뜯어고쳤으며, 수입할당제 폐지·수입관리절차 간소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2001년 15.3%에서 지난해 9.8%로 떨어졌다. 인구 13억명의 거대 시장을 노린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 1위의 맥주업체인 미국의 버드와이저와 생활용품업체인 P&G가 중국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기업들은 고도성장에 따라 풍부해진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10년 중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규모는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액의 5.2%인 688억 달러로 2001년보다 무려 9.8배나 늘었다. 해외 직접투자 규모도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로 부상했다. WTO 가입의 그늘도 있다. 중국 사회에 빈부 격차가 커지며 노동자들의 항의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도시와 농촌 간 이익 분배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균형 잡힌 배분을 위한 정책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 위협론’도 재부상하고 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소련은 전성기 때 GDP가 미국의 3분의1 수준이고 인구도 미국보다 조금 더 많았을 뿐인데도 위협적이었는데, 현재 중국은 GDP가 미국을 곧 따라잡을 기세이고 인구는 4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유일 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자 인권·환율 등을 무기 삼아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를 비롯해 남중국 분쟁 당사국인 일본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中 가전·車·통신산업 ‘최대 수혜’

    중국은 WTO 가입 10년 만에 후진적인 ‘임가공 무역국’에서 전기전자·자동차 등 ‘산업대국’으로 발돋움했다. WTO 가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품목으로 가전·자동차·정보통신산업 등이 꼽힌다.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의 ‘쌍두마차’격인 가전·자동차산업의 시장가치 규모가 8064억 위안(약 143조 2000억원)으로 성장했고, 통신망 규모와 인터넷 이용자 모두 세계 1위로 올라서며 세계 경제의 높은 벽을 깨뜨렸다고 타이완의 중국시보(中國時報)가 보도했다. 중국 가전 상장기업의 경우 WTO 가입 초기 15개 업체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48개 업체로 급증했다. 이들 기업의 생산총액도 2000억 위안에서 9642억 위안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은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6.1%를 기록,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브랜드가 자리매김했다. 자동차 업체도 같은 기간 35개 업체에서 76개 업체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중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000년 200만대에서 지난해 1800만대로 폭증했다. 올해는 20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자동차의 시장판매액도 2001년 452억 위안에서 2010년 4606억 위안으로 10배 이상 증가하며 중국 대륙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 정보통신산업의 성장도 눈부시다. WTO 협상 때 26%에 그쳤던 통신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지분 한도가 가입 후 49%로 높아지는 바람에 정보통신산업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WTO 가입은 전화위복이 됐다. 이 기간 동안 통신망 규모와 이용자가 모두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지난 9월 현재 유선전화 가입자가 2억 8000만명, 휴대전화 가입자는 9억 5000만명을 넘어섰다. 통신설비업체인 화웨이(華爲)와 중싱(中興)은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할 정도로 세계적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중국軍 ‘항모 공로자’ 추모 이유는

    “류화칭(劉華淸) 동지의 위대한 뜻을 잊지말자!” 중국 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지난 1일 1면과 2면에 걸쳐 올 초 세상을 떠난 ‘중국 항공모함의 아버지’ 류화칭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기리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후진타오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에 이은 군 서열 3, 4위 인사인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 부주석 공동명의의 글이다. 1만자 분량의 추모글에서 궈 부주석과 쉬 부주석은 해군사령관을 역임한 류 전 부주석의 해군 현대화 공로와 항모 프로젝트에 대한 공헌에 찬사를 보냈다. 중국의 첫 번째 항모 바랴크함이 두 번째 시험운항에 나선 상황에서 군 최고수뇌부의 ‘류화칭 추모’는 중국 군의 독자항모 보유 욕구와 대양 해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류화칭은 1970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항모 보유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중국이 항모를 만들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며 항모 확보에 강한 집념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 1월14일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중국 언론들이 “중국 항모의 아버지가 중국 최초의 항모 진수식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 개조한 바랴크함과는 별도로 2015년쯤 독자기술로 건조한 첫 번째 국산 항모를 진수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최승희 탄생 100주년… 탈북제자 김영순 최승희무용교육원 원장

    [김문이 만난사람] 최승희 탄생 100주년… 탈북제자 김영순 최승희무용교육원 원장

    갈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서울 여의도 공원이다. 사뿐사뿐 춤사위를 연출하던 노()제자가 잠시 의자에 앉아 편지를 꺼냈다. 만지작만지막, 이윽고 소리내어 사무치도록 읽었다. ‘선생님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춤 가작(佳作), 아름다운 나비이런가, 아니면 매력적인 여신이었던가. 참으로 지구 상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고 무대를 날던 선생님! 전 세계의 무대를 빛내시던 대한민국이 낳은 무희! 비록 일찍이 세상과 이별하셨지만 선생님이 남겨놓은 춤은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보석 같은 춤, 우리 춤의 원조이신 선생님, 우리들은 영원토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후략)’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1월, 강원 홍천(원래는 서울이었으나 최근에 홍천으로 밝혀짐)에서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태어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최승희의 마지막 제자’를 자처한 김영순(74)씨는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김씨는 현재 ‘최승희 춤 발전협회 회장’이자 ‘최승희 무용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에서 1967년 최승희가 숙청될 때까지 17년 동안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런 까닭에 누구보다도 국내에서 ‘최승희의 춤’을 가장 잘 기억하고 제대로 되새기는 특별한 제자인 셈이다. 김씨는 2003년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온 이후 ‘최승희 춤’을 전도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해 질 녘 여의도 공원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물어볼 틈도 없이 계속 열변을 토해냈다. “20세기에 마라톤 손기정 선생이 있다면 최승희 선생은 무희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빛냈습니다. 실로 위대한 춤꾼입니다. 그러한 춤을 전수받아 제2, 제3의 최승희가 나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미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최승희 선생의 춤을 접목시킨다면 한층 더 아름다운 한류 스타들이 세계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최승희 선생의 춤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우아한 모습을 스스로 창작한 우리 춤의 기본이자 아름다운 멋입니다. 관중을 사로잡는 눈빛과 동양의 신비한 매력을 가진 선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 서울 남았다면 현재 무용가들 다 제자일 것 질문을 하려 해도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따발총을 쏘듯 말을 잇는다. “최승희 선생은 이념적으로 월북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월북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붉은 사상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념적으로 월북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 무슨 사상이 있겠습니까. 순수한 참예술가로 하루속히 복권돼야 합니다. 해방 후 북으로 간 예술인들 대부분은 이념보다는 ‘예술 우대’ 선전에 속아 넘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최승희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이념의 희생자인 최승희 선생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K팝 열풍의 주인공들,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의 디지털 기술에 선생의 춤을 접목시키면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숙청됐던 최승희가 후에 어떻게 복권됐는지를 물었다. “사후 30년 만에 선생님의 유해가 평양의 열사릉에 안치됐지요.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쓴 ‘세계와 더불어’란 책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조선 무용가 동맹위원장으로 민족무용을 살리고 인민 문화적 수양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요. 이것이 계기가 돼 복권됐습니다. 선생의 탄생일인 지난 11월 24일에도 북한 정부에서 열사릉 비석에 조화를 보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남한에서도 반드시 복권돼야 하고 진정한 무희로 자리매김돼야 합니다. 아마 최승희 선생이 서울에 있었다면 현재의 무용가들은 죄다 선생의 제자였을 것입니다.” 현재 남한에는 최승희의 제자가 얼마나 있을까. 김씨는 “무용가 김백봉씨는 친척이자 제자이며 전황씨는 유일한 남자 제자”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 자신도 탈북해 남한에 있으니 대표적으로 3명이 되는 셈이라며 웃는다. 그렇다면 북한에는 제자가 어느 정도 될까. “약 50명은 됩니다. 유명한 무용가 등 그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지만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습니다. 최승희 선생이 숙청당하고 복권될 때까지 한때 최승희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습니다. 다만 편무인 상태로 조심스럽게 흘러오다가 복권되면서 다시 살아나 활발하게 전수되고 있지요.” 북한에서도 추앙받던 최승희가 왜 갑자기 숙청당했을까. 잠시 뭔가 생각하던 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57살 때, 그러니까 무대 데뷔 30년을 맞아 남자 제자 오몽희가 닭을 30마리 잡아다 드렸는데 당에서 이를 보고 ‘자본주의 뇌물’이란 말로 엄격하게 비판을 했지요. 이후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장 김창만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 중앙위로부터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그러니까 가택연금의 벌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때 무대를 떠났고 그렇게 쓸쓸하게 지내다가 2년 뒤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최승희와의 인연에 대해 묻자 그는 “평양예술대학 다닐 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며 당시를 잠시 회상했다.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춤에는 직선이 없다. 춤은 반드시 강약이 있어야 하고 굴곡과 매듭, 굴신의 호흡이 있어야 한다. 예술은 싫증이 나지 말아야 하고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선생은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그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 의상이면 의상, 조명이면 조명, 그리고 음악 등 모든 것을 안무하고 연출하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을 갖춘 타고난 분이셨습니다. 북한에 있는 제자들도 한결같이 지혜롭고 재능 있는 분이 57살에 무대를 떠난 것, 그리고 59살에 세상을 떠난 것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뒤 해방이 되자 1945년 10월 가족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살았다. 3년 뒤인 1948년 평양 제2인민학교 시절, 김구 선생과 김일성 등이 참석한 남북연석회의 때 춤 공연 출연자로 뽑히면서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됐다. 14살 때에는(6·25전쟁 발발 직전), 대동강변에 위치한 최승희 무용연구소(지금의 옥류관 자리)에서 춤추는 최승희를 담장 너머로 보면서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흠모하기 시작했다. 당시 최승희 무용연구소는 김일성 주석의 파격적인 배려로 설립됐다. 이런 인연으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양예술대에 진학해 최승희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직접적인 만남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김씨는 북한에서 비운의 삶을 살았다. 1970년 10월 영문도 모른 채 국가보위부 조사를 받은 뒤 시부모와 1녀 3남의 자녀 등 가족들과 함께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 김씨 자신은 겨우 견뎠지만 가족들은 모진 수감 생활을 견디지 못해 죽었고 남편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수용소로 다시 끌려가 생사조차도 모르는 상태라며 눈가를 훔친다. ●“무용단 만들어 춤 보급·복권에 여생 바칠 것” “알고 보니 제가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로 그랬더군요. 당시 보위부 조사를 받을 때 알고 있는 얘기를 전부 쓰라고 해서 자필로 ‘성혜림이 우리 집에 와서 자신이 5호댁(김정일 가족)이 된다고 했다’는 얘기 등을 다 적었지요. 그러고 나서 우리 가족이 몽땅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 잡혀갔습니다.” 해는 이미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살다가 비록 탈북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인생살이가 못내 미운 듯 하늘을 쳐다본다. 애써 웃음을 짓지만 파란만장한 여인의 삶이 참으로 기구했을 터. 그런 찰나 김씨는 다시 최승희의 가족 얘기를 꺼낸다. “선생이 숙청당할 때 남편(안막)도 같은 신세가 됐지요. 선생은 안성희라는 딸을 두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선생의 오빠 최승일의 딸과 아들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딸은 작곡가, 아들은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선생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에게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우선 대한민국에서 최승희의 복권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런 차원에서 ‘최승희 무용단’ ‘최승희 예술단’ 등을 만들어 최승희 춤 보급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최승희 작품으로 무용단을 만들어 선생의 춤이 이 땅에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접한 진정한 선생의 춤을 남한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는 춤꾼 양성에 앞장서겠습니다. 선생의 작품은 표현력이 뛰어난 전통무용인 만큼 보석 같은 춤사위를 젊은 세대들에게 접목시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다시 알려야 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정치범 몰려 9년 옥살이 후 탈북… 최승희 춤 전도 앞장 ●김영순 원장은 1937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된 1945년 가을 가족과 함께 평양에 건너와 살았다. 1948년 남북연석회의 때 평양제2인민학교 학생으로 무용 공연에 참여하면서 무용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4살 때에는 대동강변에 위치한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먼발치에서 보며 최승희를 흠모했다. 이후 평양예술종합대학에 진학했고 이때 최승희를 만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최승희와 함께 수십 차례 춤 공연에 출연하면서 최승희의 춤과 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최승희가 숙청당한 1967년까지 지근거리에서 춤을 배웠다. 최승희가 사망한 이듬해인 1970년 10월 성혜림(김정일의 첫째 부인)과 친구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 국가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가족들과 함께 정치범으로 몰려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 9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중 불운하게도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 이후 2003년 1녀 3남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1명과 함께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현재는 ‘최승희 무용교육원 원장’이자 ‘최승희 춤 발전협회 회장’을 맡아 최승희 춤 전도에 앞장서고 있다.
  • [사설] 경찰도 시위대도 美 월가시위 해산 잘 보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필라델피아의 월가 점령 시위대가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LA에서는 경찰의 해산 지시에 불응한 200여명이 체포됐지만 폭력사태나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은 자진 해산을 요구하면서 나흘간의 말미를 주었고, 그 시한을 넘기고도 이틀간은 자제하다가 강제 해산에 돌입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 격렬 항의했지만 폭력 시위로 이어가지 않았다. 필라델피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의 경찰과 시위대들이 눈뜨고 봐야 할 대목이다. 반(反)월가 시위는 73일 만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경찰과 시위대가 다치는 폭력사태도 있었고, 막바지에는 마약 사용과 절도·성추행 등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82개국 1500여 도시로 확산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시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작은 허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연행된 이들은 수갑이 채워진 채 줄을 서서 순순히 경찰 차량에 올랐다. 섬뜩한 구호를 외치고, 악다구니를 써가며 경찰차량에 강제로 태워지는 우리 시위꾼들의 모습과는 대조된다. 광화문 백주대로에서 경찰서장이 폭행당해도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위 주최 측은 물론이고 야당 의원들까지도 폭행을 유도했느니, 자작극이니 하는 등의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무질서의 자유도, 폭력의 자유도 아니다. 경찰은 전자와 후자를 제대로 가려 공권력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반월가 시위가 동력을 잃은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폭력·마약 등도 그중 하나다. 물론 미국 언론들이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측면도 없지 않으나 어쨌든 그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동참 열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폭력시위가 강경 대응을 낳고, 강경 대응이 시위대를 자극해서 또 다른 폭력 시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후진적인 시위 문화에 더 이상 눈을 감아선 안 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