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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임 감사위원에 文과 함께 책 쓴 김인회 교수 제청

    신임 감사위원에 文과 함께 책 쓴 김인회 교수 제청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검찰 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책을 쓴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감사원 감사위원에 제청됐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3일 신임 감사위원으로 김 교수를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김진국 전 위원의 후임으로, 약 9개월만에 공석이 채워지는 셈이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최종 심의하는 감사위원은 감사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김 교수는 1964년생으로, 동래고등학교와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했다. 또 1996~2005년 변호사로 활동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통일협회 감사,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 등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1비서관과 시민사회비서관을 역임했다. 또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의 공저자로,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창업자 경영 마침표” 트위터 CEO도 사임… 저커버그만 남았다

    “창업자 경영 마침표” 트위터 CEO도 사임… 저커버그만 남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인 잭 도시(46)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떠나면서 15년여간의 ‘창업자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다. ●잭 도시, 트위터 떠나 암호화폐 주력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잭 도시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성명을 통해 “트위터가 창업자들의 시대로부터 옮겨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의 구체적인 사임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는 성명을 통해 창업자 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궁극적으로 그것은 심각하게 (회사를) 제약하고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리는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2006년 비즈 스톤, 에번 윌리엄스, 노아 글래스와 함께 트위터를 창업한 그는 2008년까지 CEO로 회사를 이끌다 사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뒤 2010년 디지털 결제 시스템 신생기업인 ‘스퀘어’를 설립했다. 이후 2015년 다시 CEO로 복귀해 존폐 기로에 놓였던 트위터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암호화폐)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 온 그는 스퀘어를 통해 암호화폐 관련 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후임 CEO 겸 이사로는 퍼라그 아그라왈 현 트위터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임명됐으며, 잭 도시는 내년 5월 열리는 주주총회까지 이사회 멤버로 회사에 남아 있을 계획이다. ●페북서 사명 바꾼 메타만 창업자 경영 뉴욕타임스는 그의 사임에 대해 “페이스북이 ‘메타’로 사명을 바꾼 데 이어 주요 SNS 기업의 의미 있는 조직 개편”이라고 평가했다. 트위터를 비롯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등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 창업자 경영이 막을 내리고 있는 가운데 창업자가 CEO를 겸하고 있는 기업은 사실상 메타가 유일하다.
  • 日 제1야당 대표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결정 비판한 이즈미 정조회장

    日 제1야당 대표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결정 비판한 이즈미 정조회장

    30일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대표에 40대인 이즈미 겐타(47) 당 정무조사회장이 선출됐다. 입헌민주당은 이날 도쿄의 한 호텔에서 임시 전당대회를 열고 중의원 총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에다노 유키오 전 대표의 후임으로 이즈미 신임 대표를 선출했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는 이즈미 외에 오사카 세이지 전 총리 보좌관, 니시무라 지나미 중의원 의원, 오가와 준야 전 총무정무관 등이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이 나오지 않아 상위 득표 2명인 이즈미와 오사카 전 총리 보좌관이 결선투표를 치렀고 이즈미가 당선됐다. 이즈미 신임 대표가 위기에 빠진 제1야당을 구원할 수 있을지 일본 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입헌민주당은 과거 야당 합당 전 전신인 민주당이 동일본 대지진 대처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2012년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뺏긴 뒤로 좀처럼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헌민주당은 지난 10월 31일 중의원 총선거에서 기존 110석보다 줄어든 96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8선의 이즈미 대표는 리쓰메이칸대 법학부를 졸업해 후쿠야마 데쓰로 민주당 참의원 비서를 거친 뒤 2003년 중의원 총선에서 당선돼 중앙 정치에 진출했다. 그는 정견 발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항상 현장에 있다. 그 작은 목소리에 다가가면서 세금과 사회보장, 격차 문제 시정을 목표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서 이즈미 대표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출 결정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오염수 저장 공간에 약간의 여유가 있고 인접한 자치단체 지역도 포함해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LS그룹, 구자은 회장 체제로 재편…세대교체 통한 변화 모색

    LS그룹, 구자은 회장 체제로 재편…세대교체 통한 변화 모색

    LS그룹 정기 임원인사 단행 LS그룹이 구자은 회장 체제를 새로이 맞이하게 됐다. 그룹 전통에 따라 9년 만에 이뤄진 총수 교체다.26일 재계에 따르면 LS그룹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주요 9개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등 2022년도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LS그룹은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이후 9년씩 경영한 후 10년째 되는 해에 사촌형제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그룹 전통을 정했다. 이에 따라 초대 구자홍 회장(현 LS니꼬동제련 회장)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2대 구자열 회장(현 LS그룹 회장)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회장을 맡았고, 이번에 구자은 신임 회장이 회장에 오르게 됐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1964년생인 구 신임 회장은 미국 베네딕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LG그룹 전통에 따라 1990년 LG정유(현 GS칼텍스)에 일반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LS전선, LG전자, LG상사, LS니코동제련 등 계열사에서 20년 이상 현장 경험을 쌓았다. LS전선 근무 당시엔 중국 지역 담당을 맡았고, 2015년부턴 LS엠트론의 부문 회장직을 수행했다. 2019년엔 지주사 내 미래혁신단을 맡아 LS그룹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이끌었으며 계열사별로 추진 중인 디지털 전환 과제를 촉진하고, 애자일 경영기법을 전파했다. 특히 구 신임 회장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친환경 흐름에 따른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주력 사업인 전력 인프라와 종합 에너지 솔루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던 만큼 향후 제2의 도약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LS그룹은 디지털 혁신과 에너지 솔루션 전환에 방점을 두고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룹 최고경영진도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명노현 LS전선 사장은 그룹 지주사인 ㈜LS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고, 구본규 LS엠트론 부사장이 LS전선 CEO로 자리를 옮겼다. 신재호 LS엠트론 부사장은 CEO로 선임됐다. 외부인사 영입도 있었다. LS일렉트릭은 김종우 사장을 글로벌·SE 사내 독립기업(CIC) 조직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했다. 현재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열 회장은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주사인 ㈜LS 이사회 의장으로서 후임 구자은 회장을 측면 지원하고 경영 멘토로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LS 측은 “큰 폭의 경영진 변화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외부 환경 리스크에 대응하는 조직 역량을 강화한다”며 “미래 성장을 위해 발탁 인사를 실시하는 등 차세대 경영자 육성에 힘을 실었다”고 설명했다. 임원 승진 인사는 부사장 2명, 전무 6명, 상무 15명, 신규 이사 24명 등 총 47명 규모로 실시됐다. CEO 선임·이동 12명과 외부 영입 1명까지 더해 역대 최대 규모의 승진 인사다.
  • 카카오, 안정적 성장·테크 기반 혁신 ‘두 토끼 사냥’

    카카오, 안정적 성장·테크 기반 혁신 ‘두 토끼 사냥’

    카카오가 25일 이사회를 열고 여민수(오른쪽·52) 카카오 대표이사와 류영준(왼쪽·44) 카카오페이 대표를 공동대표로 내정했다. 류 대표는 2011년 카카오에 개발자로 입사해 보이스톡 개발을 주도했고, 국내 최초 간편 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를 안착시켰다. 2017년 1월부터 독립법인 카카오페이의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최근 카카오페이 기업공개(IPO)도 이끌었다. 여 대표는 2018년부터 조수용(47) 대표와 공동대표로 호흡을 맞췄으나, 조 대표가 내년 임기 만료 이후 연임 의사가 없어 류 대표를 새로운 사령탑을 세웠다. 여 대표는 재신임됐다. 카카오는 류 대표가 카카오 초기에 입사해 카카오의 기업 문화와 카카오톡, 커머스, 테크핀 등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는 80년대생의 젊은 리더인 최수연 책임리더를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파격적으로 내세운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에서 10여년 성장해 온 정통 개발자 출신 대표를 선임해 안정적인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카카오페이처럼 테크 기반 혁신을 이끌어 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들은 내년 3월로 예정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공식 대표로 선임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는 신원근 현 카카오페이 전략총괄부사장(CSO)을 류 대표 후임으로 내정했다.
  • 네이버 이어 카카오도 사령탑 교체…여민수·류영준 공동 체제

    네이버 이어 카카오도 사령탑 교체…여민수·류영준 공동 체제

    카카오, 여민수-류영준 공동대표 체제 전환류영준, 카카오페이 개발 이끌어온 개발자 카카오가 25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여민수(52) 카카오 대표이사와 류영준(44) 카카오페이 대표를 공동대표로 내정했다. 카카오페이의 시작부터 기업공개(IPO)까지 이끈 개발자 출신 대표이사를 통해 카카오의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카카오에 따르면 류 내정자는 2011년 카카오에 개발자로 입사해 보이스톡 개발을 주도했고, 국내 최초 간편 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를 안착시켰다. 2017년 1월부터 독립법인 카카오페이의 대표이사로서 활약하며 온오프라인 결제, 송금, 멤버십, 청구서, 인증, 대출, 투자, 보험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지갑 없는 사회’의 실현을 가시화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최근엔 카카오페이의 IPO도 이끌었다. 여 대표는 2018년부터 조수용(47) 대표와 공동대표로 호흡을 맞췄으나, 조 대표가 내년 임기 만료 이후 연임 의사가 없어 류 내정자를 새로운 사령탑을 세웠다. 여 대표는 재신임 됐다. 카카오는 류 내정자가 카카오 초기에 입사해 카카오의 기업 문화와 카카오톡, 커머스, 테크핀 등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는 80년대생의 젊은 리더인 최수연 책임리더를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파격적으로 내세운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에서 10여년 성장해온 정통 개발자 출신 대표를 선임해 안정적인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카카오페이처럼 테크 기반 혁신을 이끌어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류 내정자는 “사회적 책임 성장이라는 과제를 안고 카카오의 ‘넥스트 10년’을 그리고 있는 중요한 시점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도 있다”며 “기술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비전을 지키며 ‘도전’이라는 카카오의 핵심 DNA를 바탕으로 회사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여 대표는 “올 한해 카카오가 사회와 했던 약속들을 책임감 있게 잘 수행하라는 의미로 알고 카카오가 혁신기업으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정에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두 대표 내정자는 내년 3월로 예정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공식 대표로 선임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는 신원근 현 카카오페이 전략총괄부사장(CSO)을 류 내정자의 후임으로 내정했다.
  • 펑솨이-IOC 통화에 베이징올림픽 유치·준비 관여한 장가오리 그림자

    펑솨이-IOC 통화에 베이징올림픽 유치·준비 관여한 장가오리 그림자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36)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장가오리(75) 전 중국 부총리가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유치와 준비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1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펑솨이의 영상 통화도 장 전 부총리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의심할 수 있겠다. 펑솨이가 지난 2일 성폭행 폭로 후 실종설이 제기되자, IOC는 바흐 위원장이 펑솨이와 영상 통화를 하고 그의 안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계 여자테니스협회(WTA) 대신 왜 IOC가 나섰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됐고, 바흐 위원장이 장 전 부총리와 2016년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펑솨이와 IOC의 영상 통화에도 중국 당국의 힘이 미친 것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왔는데 WSJ 보도에 따르면 장 전 부총리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가능성마저 의심되는 것이다. WSJ는 장 전 부총리가 지금은 공산당의 은퇴한 멤버이지만, 재임 시절에는 힘 있고 숙련된 기술 관료로서 중국의 최우선 과제들을 추진했고, 그 중에는 베이징동계올림픽 유치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WSJ는 IOC 문서를 근거로 장 전 부총리가 개최지 선정에 필요한 지원을 하고 관리 감독하는 운영그룹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이 그룹에는 관련 부처 모든 수장들이 들어가 있었는데, 장 전 부총리는 바흐 위원장을 포함해 IOC 최고급 인사들을 접촉하는 역할을 했다. 또 2018년 후임자에게 그 직을 넘기기 전까지 올림픽 준비를 위해 경기장 건설부터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 지시를 내렸다고 WSJ는 덧붙였다. 이어 신화통신을 인용해 장 전 부총리가 공산당 지도부의 비밀 안가에서 바흐 위원장을 만나 “중국 정부는 2022년 동계 올림픽 준비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IOC는 이에 대해 “정부나 기업, 국제기구 등의 대표들처럼 IOC 대표들도 정기적으로 상대 대표들과 만난다. 이것은 상식”이라며 둘의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안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WSJ는 동계올림픽 운영위원회를 이끄는 것은 장 전 부총리의 업무 일부였는데 외국 관료들에게 인사하고 금융 및 산업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돕는 역할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 전 부총리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공산당의 가장 실권 있는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중 한 명이었고, 그 전에는 톈진의 공산당 서기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장 전 부총리는 지난 7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개최된 공산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이후 5개월 가까이 공개석상(매체 보도 기준)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 ‘쿠데타 동료’ 노태우와 휴전선 인근에 나란히 묻히나

    ‘쿠데타 동료’ 노태우와 휴전선 인근에 나란히 묻히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12·12쿠데타 동료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불과 28일 만이다. 60여년간 운명을 함께한 두 사람의 인연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 셈이다. 지난달 26일 노씨의 부고를 들은 전씨는 침묵 속에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당시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지 못했고 부인 이순자씨가 대신 조문했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둘은 휴전선 가까운 곳에 나란히 누울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현재 경기 파주시 검단사에 임시 안치돼 있으며, 유족이 파주 국유림을 묘역 부지로 요청한 상태다. 실과 바늘 같았던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졌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나왔고, 한 살 어린 노씨는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경북고를 졸업했다. 1952년 육사 제11기 동기생으로 만난 뒤 군부 내 전씨의 커리어를 노씨가 그대로 따랐다. 결국 대통령직까지 노씨는 전씨의 뒤를 이었다. 5공화국 기간 노씨는 2인자이자 ‘차기 권력’이었지만,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 결국 전씨는 노씨를 후계자로 낙점했고 후임 대통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노씨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권력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군부 등 현직에 남아 있던 전씨의 측근들을 숙청함으로써 상왕 노릇을 하려던 전씨에게 일격을 가했다. 또 여소야대 국면에서 전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야당에 밀려 전씨를 내쳤고, 결국 전씨는 부인 이씨와 백담사에서 769일간 ‘귀양 생활’을 했다. 하지만 노씨 퇴임 후 집권한 김영삼 정권이 둘을 사법 심판대에 세우면서 다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다. 법정에 나란히 선 둘이 손을 잡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노씨의 병세가 악화된 2014년은 두 사람이 만난 마지막 해로 기억된다. 당시 노씨의 자택을 방문한 전씨는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고, 노씨는 알아본다는 의미로 눈을 깜빡인 것으로 알려졌다.
  • 노태우 떠나고 한 달 안 돼 따라간 전두환

    노태우 떠나고 한 달 안 돼 따라간 전두환

    전두환, ‘60년 지기’ 노태우와 떠날 때까지 운명 함께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12·12쿠데타 동료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불과 28일 만이다. 60여년간 운명을 함께한 두 사람의 인연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 셈이다. 지난달 26일 노씨의 부고를 들은 전씨는 침묵 속에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당시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지 못했고 부인 이순자씨가 대신 조문했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둘은 휴전선 가까운 곳에 나란히 누울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현재 경기 파주시 검단사에 임시 안치돼 있으며, 유족이 파주 국유림을 묘역 부지로 요청한 상태다. 실과 바늘 같았던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졌다. 전씨는 대구공고를 나왔고, 한 살 어린 노씨는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경북고를 졸업했다. 1952년 육사 제11기 동기생으로 다시 만난 뒤 군부 내 전씨의 커리어를 노씨가 그대로 따랐다. 결국 대통령직까지 노씨는 전씨의 뒤를 이었다. 5공화국 기간 노씨는 2인자이자 ‘차기 권력’이었지만,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 결국 전씨는 노씨를 후계자로 낙점했고 후임 대통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노씨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권력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군부 등 현직에 남아 있던 전씨의 측근들을 숙청함으로써 상왕 노릇을 하려던 전씨에게 일격을 가했다. 또 여소야대 국면에서 전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야당에 밀려 전씨를 내쳤고, 결국 전씨는 부인 이씨와 백담사에서 769일간 ‘귀양 생활’을 했다. 하지만 노씨 퇴임 후 집권한 김영삼 정권이 둘을 사법 심판대에 세우면서 다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다. 법정에 나란히 선 둘이 손을 잡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노씨의 병세가 악화된 2014년은 두 사람이 만난 마지막 해로 기억된다. 당시 노씨의 자택을 방문한 전씨는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 했고, 노씨는 알아본다는 의미로 눈을 깜빡인 것으로 알려졌다.
  • “장제원 떠나든지 말든지”…김종인, 윤석열 향해 “새 인선 어려울 것”

    “장제원 떠나든지 말든지”…김종인, 윤석열 향해 “새 인선 어려울 것”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합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윤석열 대선후보가 선대위 인선을 새롭게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인선안이 있을 수 있나”라면서 “이미 다 결정 났는데 새롭게 변화하겠다고 (새로운 인선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 후보의 최측근으로 여겨지는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 거취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모두 제 부덕의 소치”라며 “저는 오늘 윤 후보 곁을 떠나겠다”라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장 의원이 윤 후보를 떠나겠다고 밝혔는데 새 인선안이 오면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나’라고 묻자 “장 의원이 윤 후보 곁을 떠나는 것하고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장 의원은 경선 당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으며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하다 아들 장용준씨의 무면허운전·음주측정 거부 및 경찰관 폭행 등의 문제로 중도 사퇴했다. 최근 권성동 의원이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윤 후보의 후임 비서실장으로 장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지난 21일에는 윤 후보와 장 의원이 함께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예배에 참석해 이 같은 관측이 더욱 힘을 받았다.장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의 현직 시절부터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당 차원에서 공식 사과하자 장 의원은 “당의 분열만 조장하는 섣부른 사과”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 밖에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연대, 무소속이었던 홍준표 의원의 복당 등 여러 사안을 놓고 두 사람은 번번이 다른 의견을 보여왔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김 전 위원장의 선대위 합류에 공을 들여왔다. 결국 김 전 위원장이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표 하루 만에 김 전 위원장이 최고위 추인 절차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국민의힘 선대위 인선은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 장제원 “윤석열 곁 떠난다…尹 무대서 한낱 조연일뿐”

    장제원 “윤석열 곁 떠난다…尹 무대서 한낱 조연일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3선 장제원 의원이 “단 한 번도 윤 후보 옆에서 자리를 탐한 적 없다”며 “저는 오늘 윤 후보 곁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후보께서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로 들어가는 날, 여의도로 돌아와 중진 국회의원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며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면서 “그러나 제 거취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모두 제 부덕의 소치”라며 윤 후보 곁을 떠나겠다고 알렸다. 그는 “많이 부족한 저를 깊이 신뢰해주시고 아껴주신 마음에 보답하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면서 “이것이 진정으로 후보님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장 의원은 그러면서 “윤석열의 무대에서 윤석열 외엔 어떤 인물도 한낱 조연일 뿐”이라며 “방해가 돼서도 주목을 받으려 해서도 거래를 하려 해서도 결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그 공간을 열겠다”며 “후보님 마음껏 인재를 등용하시고 원톱이 되셔서 전권을 행사하시라”고 전했다. 장 의원은 또한 “내년 3월 9일 우리 모두가 꿈꾸고 염원하는 압도적 정권교체를 실현해달라”면서 “저는 비록 후보님 곁은 떠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뛰겠다”고 응원했다. 그러면서 “가슴이 쓰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를 만들어 주신 사상 주민 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포근함을 느낀다”면서 “열심히 뛰겠다. 언제, 어디서든 후보님의 건승을 기도하겠다”고 글을 마무리 했다. 윤 후보 최측근인 장 의원은 경선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으며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하다 아들 문제로 중도 사퇴했다. 최근 권성동 의원이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공석이 된 윤 후보 후임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지난 21일엔 윤 후보와 함께 서초구 사랑의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석하면서 이같은 관측에 더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장 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며 윤 후보의 인선 결과에 관심이 쏠려왔다.
  • 5·18 진상규명 ‘첩첩산중’...남은 가족들 반성 없어

    5·18 진상규명 ‘첩첩산중’...남은 가족들 반성 없어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을 계기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남은 가족들도 반성이나 사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와 12·12 및 5·18 사건 검찰 수사,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및 특별조사위원회 등을 거쳤지만 진상규명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가 공권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상처 치유는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다. 1980년 5월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헬기사격 책임자, 성폭력 가해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조사도 남아 있다. 전두환 신군부는 자위권 발동을 내세우며 발포명령자를 부정해왔고, 1995∼1997년 이어진 검찰수사에서도 발포 명령자를 기소하지 못했다. 전두환 등 피고인 5명은 5월 27일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인 전남도청 무력 진압 작전에 개입한 일에 대해서만 내란목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이다.우선 1980년 5월 20일 오후 10시 30분 광주역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 이튿날인 21일 오후 1시께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첫 집단 발포의 명령자가 누구였는지는 광주학살의 책임 소재를 가릴 핵심이다. 생사도 확인되지 못한 행방불명자를 재조사하고, 이들의 암매장 장소를 찾는 한편 유해 발굴과 수습에 대한 조사도 중요하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졌고,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의 성폭력 등 성범죄 폭로도 이어지면서 진상규명 범위도 넓어졌다. 1988년 국회 청문회에 대비해 군 보안사와 국방부 등 관계 기관들이 구성한 4·11 연구위원회의 진실왜곡과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도 과제다. 결국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무소속 최경환 의원 대표 발의)에 따라 구성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얼마나 진실규명의 성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5월 5·18 40주년에 맞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실무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돌입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한편, 전두환 씨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발포 명령을 정당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목소리도 높다.이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의 유족인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등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역사적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해 비난을 샀다. 부인 이씨는 지난 2017년 3월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12·12, 5·17, 5·18에 대한 편집증적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씨는 5·18에 대해서는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발포 책임을 부인했다. 12·12에 대해서는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7월 말 광주사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편에게 후임이 되어줄 것을 권유했다“며 정권 찬탈이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전씨의 5·18 관련 언급에 대해서도 ”국회 청문회 등에서 사과한 것은 5·18 당시의 정보책임자로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이씨는 전 전 대통령이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재판을 받으러 광주를 오갈 때에도 동행하면서 사과 요구 등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도 사과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전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과 관련해서도 끝까지 뻔뻔한 태도를 고수했다. 지난 2013년 검찰이 미납 추징금 관련 비자금 수사를 벌이자 장남 재국씨는 일가족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미납 추징금을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추징금 환수를 위해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기자 이에 반발, 소송전을 벌였다. 결국 대법원에서 자택 중 본채에 대해서는 공매에 넘길 수 없다는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장남 재국씨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사과하기도 했다. 차남 재용씨는 양도소득세 포탈 등의 혐의로 처벌받으면서 부과된 40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고 ’황제 노역‘을 하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강태형 경기도의원 문화체육관광국 행정 연속성 위한 시스템 개발 주문

    강태형 경기도의원 문화체육관광국 행정 연속성 위한 시스템 개발 주문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태형 의원(더민주·안산6)은 16일 열린 문화체육관광국(이하 문체국) 행정사무총괄감사에서 문체국 행정의 연속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강 도의원은 “4년째 문체국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하는데 감사, 입법, 정책, 예산에 대한 일련의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체국의 국장, 담당자 등 후임 근무자들을 위한 업무정보와 처리과정 그리고 문서를 관리하는 시스템과 매뉴얼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발언하며 질의를 시작했다. 이어 강 도의원은 “경기관광공사의 사장 장기공백에 따른 관광업계의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연내에 사장을 선임하여 경기관광의 컨트롤 타워의 수장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달라” 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강 도의원은 “경기지역 스포츠 인권 침해 문제해결을 위한 전담기구인 스포츠 윤리센터는 광역단체 최초의 첫 인권보호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스포츠인권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인권센터 마련에 박차를 가해주길 바란다” 고 당부했다.
  • [단독] 장난이라며 “머리 박아”… 군가 틀렸다고 뺨 때린 선임병

    [단독] 장난이라며 “머리 박아”… 군가 틀렸다고 뺨 때린 선임병

    지난해 7월 경기 지역 해병대 부대 생활관에서 당시 A(22) 일병은 뒷짐을 쥔 채 4분여 동안 머리를 땅에 박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A씨가 박격포 제원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선임병인 이모(21)씨가 이른바 ‘머리 박아’ 동작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같은 생활관의 B(19) 일병도 이씨의 강요로 약 30초 동안 부대 샤워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보다 한 달 전엔 상륙기초훈련(IBS) 훈련장에서 C(19) 일병이 이씨의 오른 주먹에 머리를 스스로 6차례 박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씨는 “장난으로 그랬다”거나 “훈계 목적으로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구타도 있었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사격장에서 C일병이 실수했으니 A일병이 대신 맞아야 한다”며 A씨의 팔을 7차례 주먹으로 가격했다. 물을 챙기지 않았다거나 군가를 틀리게 불렀다는 이유를 들어 후임병의 뺨을 손바닥으로 여러 차례 때린 일도 있었다. 이씨의 후임병 폭행 사례는 확인된 것만 최소 36차례에 달했다. 이씨는 지난 2월 위력행사가혹행위 및 폭행 혐의로 해병대 보통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재판 시작 전 복무 기간이 끝나 이씨는 전역했다. 지난 5월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법 형사8단독 이영훈 부장판사는 15일 이씨에게 벌금 500만원에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군사법원 공판이 시작되기 전 제대했지만 민간 법원이 사건을 이송받아 처벌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반복적인 구타로 피해자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고 질책했다. 다만 이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들어 벌금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 “문 대통령이 ‘꽃미남 경호원’ 왔냐고…웃으며 말씀하셨다”

    “문 대통령이 ‘꽃미남 경호원’ 왔냐고…웃으며 말씀하셨다”

    문 대통령 경호원 출신 최영재“아랍 왕족 백지수표 제의 받기도”“전역 후 미용사 변신…미용실 운영중” 문재인 대통령 경호 당시 사진 한 장으로 유명해진 최영재. 19대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경호했던 그가 그 사진 때문에 경호원에서 해고됐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꽃미남 경호원’이라는 별명을 얻고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5일 최영재는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일화를 전했다. 최영재는 ‘대통령도 훈훈한 외모로 화제를 모았던 것을 알고 계시냐’는 진행자 박명수의 질문에 “알고 계신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 저한테 꽃미남 경호원 왔냐고, 잘 지내냐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또 최영재는 “그때 사진 찍힌 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졌다. 신기한 게 미국에서 먼저 퍼졌다”며 “미국, 영국에서 보도가 됐고 이후 우리나라 방송에도 나오면서 유명해졌다”고 전했다.최영재는 앞서 지난 8월 22일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했을 때 문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경호를 하다 ‘꽃미남’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치른 뒤 해고됐던 해프닝을 전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방송에서 “경호 대상자에게는 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그때 경호원들은 그 카메라를 든 손을 지켜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진이 찍힌 것”이라며 “그걸로 유명해지고 나니 날 쓰는 곳이 없더라. 얼굴이 알려져서 더 이상 경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최영재는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아랍 왕족의 단독 경호 연락이 왔다. 백지 수표를 제시했다. 받고 싶은 만큼 적으라고 했다. 두 달인가 한 달 일하고 1년 연봉 받는 거였다”며 “하지만 그때 방송이 많이 들어와서 거절했다. 방송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놓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뉴욕포스트 “섹시한 한국 경호원, 온라인을 달구다” 최영재가 언급한대로 당시 그는 주요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섹시한 한국 경호원이 인터넷을 달구다’라는 제목으로 최영재를 소개했다. 당시 외신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그는 ‘불행하게도’ 기혼이고 두 딸이 있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그의 팬들은 조금도 주눅 든 것 같지 않다”며 “반응이 너무 뜨거워 그는 오히려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후 며칠 만에 최영재 경호원이 큰 주목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케빈 코스트너가 휘트니 휴스턴을 사랑에 빠뜨린 이후 최영재는 가장 매력적인 경호원의 포즈로 소셜미디어를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특전사 전역 후 헤어 디자이너로 변신 “두 딸 때문에…” 용인대 경호학과 출신으로 특전사 장교로 10년간 복무한 최영재는 특전사 707부대에서 대 테러 교관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세계 특전사 30개국 최정예 파견부대원들 중에서 사격 1위를 할 만큼 최고요원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싫어서 군생활을 마치고 나오게 됐다고 전해진다.과거 대통령 경호를 마치고 최영재는 “문 대통령께서 집권하시고 매일 바쁘게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폐를 끼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그 동안 그 분이 우리의 자랑이었듯, 우리가 그분에게 자랑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이제 국민의 몸이십니다. 건강하십시오! 건강하셔야 사람이 먼저인 나라다운 나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건강 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최영재는 특전사 전역 후 헤어 디자이너가 됐다는 특이한 이력을 자랑한다. 특전사에 있을 때 미용 자격증이 없었지만 후임들의 머리를 잘라주곤 했다는 그는 전역 후 두 딸 때문에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 [취중생] 죽고 싶다고 외친 병사에게 돌아온 말 “도와줄 수 없다”

    [취중생] 죽고 싶다고 외친 병사에게 돌아온 말 “도와줄 수 없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함장님께 면담을 요청합니다.” 지난 3월 16일 당시 해군 3함대 강감찬함에서 갑판병으로 일한 정모 일병이 함장에게 보낸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입니다. 같은 날 정 일병은 한 선임병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습니다. 선임병은 정 일병이 강감찬함이 입항할 때 양묘기(선박의 고정줄을 감는데 사용하는 장비)에 홋줄(배를 정박시키는 밧줄)을 제대로 감지 못했다며 욕설과 폭언을 했습니다. 이후 선임병은 정 일병의 가슴과 머리를 밀쳐 정 일병을 갑판에 넘어뜨렸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3월부터 선임병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폭행, 폭언 등의 가혹행위에 시달린 정 일병이 지난 6월 휴가기간에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 사건입니다. 군인권센터가 지난 9월 7일에 이 사건을 폭로했을 당시 군 내 가혹행위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D.P.’(군무이탈 체포조)가 큰 화제가 됐습니다. 병영 내 악습이 다시 대두되던 그때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 9월 6일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지금까지 국방부와 각 군에서는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병영 혁신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습니다.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현재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그러나 정 일병이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면 ‘군 내 가혹행위는 옛일’이라는 취지의 설명은 무색해집니다. 정 일병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함장 등 지휘부에 계속 알렸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지휘부는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한 정 일병을 가해자들과 만나게 해 화해를 주선했습니다. 또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정 일병을 책망하거나 ‘더는 도와줄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군인권센터가 지난 9일 공개한 정 일병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 중 일부를 보면 강감찬함 지휘부는 ‘살려달라’는 정 일병의 구호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피해 듣고 “책임 지고 해결하겠다”던 함장 정 일병은 지난 3월 16일 오후 8시 20분 함장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오늘 부두 입항 때 일이 서툴러 양묘기에 홋줄 감는 임무에 지장을 줬습니다. 그때 A상병이 양묘기 작업을 서툴게나마 도우려던 절 밀치며 말했습니다. ‘씨X, 니 뭐하는데? 그럴거면 가라.’ 저는 후임병의 자세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다시 밀치며 ‘꺼지라고, 씨X!’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입항이 끝나고 빠르게 뒷정리를 한 뒤 공황장애가 와서 양묘기실에 숨어 울며 숨을 쉬었습니다. 제 얼굴을 때리고, 팔을 손톱으로 긁으며, 머리를 철판에 때리면서 말입니다. (중략) 이 보고로 인해 (이 일은) 함장님과 저 이외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합니다. A상병의 전출 조치를 원합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따금 듭니다. 대면으로 함장님께 면담을 요청합니다.”앞서 A상병을 포함한 선임병들은 지난해 11월 해군에 입대해 지난 2월 강감찬함에 배속된 정 일병이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병 간호를 위해 지난 2월 25일부터 2주간 청원휴가를 다녀온 사실을 못마땅해했습니다. 선임병들은 배에 돌아온 정 일병에게 “꿀 빨고 있네”, “신의 자식이다”라는 등의 말로 정 일병을 비난했습니다. 정 일병이 승조원실에 들어오면 다른 병사들이 다 나가버리는 집단 괴롭힘도 있었습니다. 정 일병의 메시지를 확인한 함장은 자신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습니다.“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함장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조금만 진정하고 내일(지난 3월 17일) 아침 내가 출근할 때까지만이라도 참을 수 있겠니? 어려우면 내가 지금 배에 들어가마. 내일 빠른 시간 안에 나랑 같이 얘기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자. (중략)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주위에서 불편하게 하면 함장에게 곧바로 연락 바란다.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고, 함장이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해줄게.” (지난 3월 16일 오후 8시 35분 함장이 정 일병에게 보낸 메시지)함장은 다음 날 정 일병의 보직을 갑판병에서 선임부사관(CPO) 당번병으로 바꾸고 정 일병을 다른 승조원실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정 일병은 함내에서 가해자들과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 일병은 군 입대 동기에게 피해를 호소했습니다.“선임이 나보고 홋줄 맞아 뒤지면 좋겠대. 이 사람들은 내가 죽어도 괜찮은 사람들인가 보구나. (중략) 휴가도 내가 좋아서 간 게 아닌데. 아파. 아픈데, 정말 갑판 좋은데, 사람들이 날 너무 싫어해. 죽었으면 좋겠대.” (지난 3월 17일 오후 8시 10분 정 일병이 동기에게 보낸 메시지)함장의 조치로 보직이 변경됐지만 괴롭힘 피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정 일병은 구토와 과호흡, 공황발작 등에 시달렸습니다. 이후 지난 3월 27일 저녁 갑판에서 함장에게 전화해 죽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함장과 부함장은 당시 정박 중이었던 강감찬함에 즉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함장과 부함장은 정 일병에게 가해자들과 대면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정 일병을 대면한 자리에서 “일을 못하고 하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자신들의 가혹행위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들과 대면하라는 함장의) 권유에 응했다 하더라도 지휘관으로서 불안증세가 심한 피해자를 가해자와 대면하게 한 점, 피해자가 두 번에 걸쳐 피해를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피해자와) 완전히 분리시키기는커녕 화해를 주선한 점은 명백한 사건 은폐·무마 시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도움 요청에 “이제 도울 수 없다”던 함장 가해자들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목격한 정 일병은 지난 3월 28일 함장에게 다시 한 번 도움을 요청했습니다.“필승. 함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송구스럽지만 보고 체계를 무시하고 올립니다. 저번에 제가 공황발작을 일으켜 밤 늦게 출근하신 것 기억하시는지요.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중략)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상담 혹은 블루캠프(병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병사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는 프로그램)까지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강감찬함의 대원이 되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배에 있고, 그 선임들을 마주칠 때마다 더욱 증상이 심해집니다. 그래서 정신과 치료 후 육상 전출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구토, 공황발작, 과호흡 증상이 오후 6시쯤 취사업무를 수행하던 중 이유 없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3월 28일 오후 7시 58분 정 일병이 함장에게 보낸 메시지)하지만 함장의 대답에 정 일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배가, 사람이 날 망친다고 솔직히 (함장께) 보고드렸는데,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하기 싫으면 말해라. 그럼 이제 널 도와줄 수 없다’ 이러시고, 저희 침실분들 모아놓고 (저를 가리키며) ‘아프니까 잘 보듬어줘라’ 이랬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이제 일 잘하는 게 힘듭니다. 너무 지쳐서, 실망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기절도 했습니다. (중략) 침실가는 게 힘듭니다. 약도 뺏기고, 인간관계는 더 틀어졌습니다.” (지난 3월 30일 오후 8시 48분 정 일병이 병영생활상담관에게 보낸 메시지)정 일병은 함장에게 전출을 요청한 날로부터 1주일 뒤인 지난 4월 5일 국군대전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그 다음 날 민간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군의관의 소견에 따라 병가를 받아 강감찬함에서 하선할 수 있었습니다. 정 일병은 지난 4월 1일 병영생활상담관에게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 제가 배에서 폭언을 당하기 전 정상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민간병원에 입원한 정 일병은 지난 6월 8일 퇴원해 지난 7월 2일까지 휴가를 받았습니다. 유족들은 정 일병이 퇴원 당시 눈에 띄게 살이 빠져 있었고, 예전과 달리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낙오자가 됐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이후 정 일병은 지난 6월 18일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반복되는 군 사망사고, 이젠 끝내야 해군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한 가운데 병사 사망과 관련된 병영 악·폐습 전반에 대해 엄정하게 조사했다”면서 “함장 및 부함장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임태훈 소장은 “군이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참극을 빚어내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국방부 장관이 머리를 숙여 사죄를 해도, 해군참모총장 등이 쇄신이니 개혁을 외쳐도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계속 터져 나온다”면서 “군은 절대 반성없는 사과가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군기사고(군무이탈, 총기 및 폭발물을 이용한 살인·인질 난동 등, 구타 및 가혹행위, 군사기밀 불법 누설 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살 사건입니다. 국방부가 군 내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고 군 내 자살률이 일반 국민(20~29세 남자 기준)과 비교했을 때 낮다는 지표를 근거로 병영 부조리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병영 내 인권침해와 이로 인한 희생은 계속되고 있고, 반복되는 억울한 희생을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 요소수 TF 맡았던 안일환 수석 사의… 靑 “건강상 이유”

    요소수 TF 맡았던 안일환 수석 사의… 靑 “건강상 이유”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차관급)에 박원주(57·행시 31회) 전 특허청장을 임명했다. 안일환 현 경제수석이 취임 7개월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박 신임 수석은 광주 송원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산자부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역임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박 신임 경제수석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보직을 거쳐 특허청장을 역임한 산업·경제 전문가”라면서 “뛰어난 정책기획·조정 역량과 업무 추진력을 갖추고 있어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제를 충실히 완수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제학자(홍장표)나 기획재정부(윤종원·이호승·안일환) 출신이 맡던 경제수석에 산자부 출신을 발탁한 점도 눈에 띈다. 글로벌 공급망 관련 이슈가 우리 산업·경제의 화두가 된 점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안 수석이 청와대 요소수 사태 태스크포스(TF) 팀장이었다는 점에서 초기대응 실패 논란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안 수석은 건강 상 이유로 추석 전에 사의를 밝혔지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고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됐다가 요소수 수급 불안정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며칠 더 그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서 시간이 걸렸다”면서 “3개월 정도 분량의 요소수를 확보해 TF단장으로서 급한 불을 껐기 때문에 오늘 사표 수리가 된 것”이라고 ‘경질설’에 선을 그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최재용(54·행시 38회) 인사혁신처 차장을 내정했다.
  • 2002 월드컵 4강 주역 ‘이영표’···도의회에서 질타 당한 이유는

    2002 월드컵 4강 주역 ‘이영표’···도의회에서 질타 당한 이유는

    강원도의회 행정사무감사 출석도의회 냉정하고 철저한 후속대책 마련 주문강등 위기로 감독이 경질되고 술자리에 동석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피고소된 선수 문제로 곤경에 처한 프로축구 K리그1 강원FC에 대한 강원도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강원도의회 사회문화위원회는 8일 문화관광체육국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에서 강원FC의 성적 부진과 비리 사건, 성폭행 사건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에게 철저한 대책을 촉구했다. 김병석(원주4) 도의원은 이날 이 대표에게 “프로구단은 기본적으로 성적이 안 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올해 초 대표 취임 이후 비리와 폭행, 성폭행 사건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는데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주대하(속초1) 도의원도 “‘강등이냐, 유지냐’라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문제는 이 대표가 안이하게 구단을 운영해 성적이 부진한 것 아니냐”고 따진 뒤 “성폭력 관련 선수 징계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이 대표는 “성폭행이 사실로 밝혀지면 규정상 영구 제명된다”며 “성폭력 사건이 알려졌을 때 해당 선수의 숙소 퇴출은 물론 경기 출전 배제 등 선제 조치했다”며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권순성(원주6) 도의원은 “감독 경질의 문제점은 없는지, 후임 감독으로 거론되는 분이 있나”라고 물은 뒤 “올해 유독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 대표는 “포항 전에서 4대 0으로 무력하게 패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충격파가 필요했다”며 “감독 경질 과정에서 규정상 문제는 없었고, 자발적 사임 의사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가 흘러 나와 해임을 발표했다”고 답변했다. 최종희(비례) 도의원은 “코치진을 포함해 100여 명이 넘는 구단인데 성폭력 관련 교육을 받지 않는가”라며 재발 방지대책을 주문했다. 이 대표는 “폭행, 비리, 성폭력 사건 등 경기에서 지는 것보다 힘든 일들이 강원FC에서 나왔다는 것이 부끄럽다”며 “다만 각각의 사건을 대처하는 자세는 올바르게 했다고 생각한다.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해 1부 리그에 남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강원FC 소속 선수 2명은 지난 9월 말 시즌 중 술자리를 하고, 동석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 후임병 2명 강제추행·상관 모욕 20대 실형

    후임병 2명 강제추행·상관 모욕 20대 실형

    후임병 2명을 강제 추행하고 상관을 모욕한 20대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전주지법 제11형사부(강동원 부장판사)는 군인 등 강제추행, 상관 모욕 혐의로 기소된 A(21)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32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A씨는 현역 군인이던 2019년 7월과 10월에 강원도 철원군 중대 생활관에서 후임병 2명을 여러 차례 강제로 추행하고 상관 2명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취침 소등 이후 시간대에 옆자리에 누워있던 후임병의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후임병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대장을 대검으로 죽이고 싶다”고 발언하거나 여군 부사관을 대화 소재로 삼아 성적 언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선임병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강제로 추행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피해자들은 수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범행을 당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저지른 상관 모욕 범행도 발언 내용, 횟수 등에 비춰보면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면서 “일부 상관과 원만히 합의한 점, 피고인에게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 [특파원 칼럼] 시진핑 3연임의 마지막 걸림돌은/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시진핑 3연임의 마지막 걸림돌은/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 간 갈등설은 베이징 특파원들의 단골 기삿거리다. 최근 이를 두고 해외 매체들이 언론 보도를 쏟아내면서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2월)과 20차 공산당 전국인민대표자회의(10월)를 앞둔 중국 정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장가오리 전 국무원 부총리가 여자 테니스 스타 펑솨이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차관)은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은 모두 ‘상하이방’ 수장인 장쩌민의 측근이다. 이미 시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장쩌민의 ‘왼팔’로 불리던 보시라이와 ‘오른팔’ 저우융캉을 제거하는 등 집권 기간 내내 상하이방을 쳐냈다. 이번에 또다시 장쩌민계에 타격이 될 뉴스가 연이어 터지면서 신구 권력 간 갈등설이 힘을 얻고 있다. 장쩌민은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가 실각하면서 갑자기 최고권력자가 됐다. 초기만 해도 불안감이 컸지만 덩샤오핑 등 당 원로들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그의 권력욕이 지나치게 강해 순순히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진타오에게 2002~2003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물려줬지만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2004년에야 내려놨다. 은퇴한 뒤에도 중국 정치의 핵심인 중난하이와 중앙군사위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후진타오를 집권 마지막 해까지 감시하듯 지켜봤다. 후진타오는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려는 장쩌민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2012년 후임자인 시진핑에게 당·정·군 모든 직위를 한꺼번에 이양해 ‘1인 집권’에 힘을 실어 줬다. 시 주석과 후진타오 간 ‘묵시적 연합’이 이때 시작됐다. 대표적 원칙론자인 시 주석의 성격상 상하이방 척결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상하이방이 이를 가만 보고만 있지는 않은 듯하다. 2012년 블룸버그통신은 당시 시진핑 부주석의 누나 치차오차오와 남편 덩자구이의 재산이 3억 7600만 달러(약 4300억원)라고 보도했다. 그가 한창 반부패운동을 벌이던 2014년에도 가족들이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숨겼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발표가 있었다. 중국에서 최고위 지도자들의 재산 정보를 알 수 있는 이들은 한정돼 있다. 중국 정치에서 부정축재에 자유로운 인물은 없다는 점에서 장쩌민이 여전히 시 주석을 겨냥한 ‘히든카드’를 쥐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전력난과 이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사태가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내 권력 투쟁이 격화돼 나타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시 주석이 헝다와 환타지아 등 장쩌민계 부동산 기업들을 공격하자 상하이방도 이에 반발해 의도적으로 ‘석탄대란’을 일으켰다는 진단이다. 다만 베이징에서 외국인이 중국 정부나 공산당의 핵심 인사를 직접 만나 사건의 실체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 외신 기자들은 중국 내 핵심 인사와 접촉한 이들을 어렵사리 만나 ‘한두 다리 건너서’ 듣게 된다. 눈 감고 코끼리 만지듯 제공되는 일부의 주장이나 분석을 정설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이라는 실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진핑과 장쩌민의 대결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시 주석이 무난히 3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만 정치라는 것이 늘 그렇듯 돌발 변수가 존재한다. 앞으로 두 세력 간 갈등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이것이 베이징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가 미래 10년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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