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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회의 지도부 과제/黨 추스르고 野아우르기 첫 관문

    국민회의 金令培총재권한대행 체제가 9일 공식 출범했다.긴급 소집된 당무위원회의 인준을 받았기 때문이다.12일 의원총회에서 韓和甲전총무의 후임을 선출하면 일단 8월 전당대회까지 지도부의 라인업은 갖춰진다. 새로운 국민회의 지도부 앞에 놓인 과제는 정치개혁이다.金대행은 취임 일성(一聲)으로 “당면 정치과제인 정치개혁을 처리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국민회의 安東善지도위의장과 자민련 金宗鎬부총재를 각각 대표로 하는 8인정치개혁특위 위원들은 10일 첫 모임을 갖는 등 정치개혁에 대한 발걸음도빨라질 것 같다.공식적인 8인정치특위와는 별도로 ‘찰떡궁합’이라는 국민회의 韓光玉부총재와 자민련 金龍煥수석부총재 라인도 가동될 것 같다. 金대행은 “공동여당의 상호관계도 과거보다 더 철저하고 공고한 협조관계로 성숙돼야 한다”고 말했다.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후유증을 수습하려는 의지와 공조 강화를 역설한 것이다.조직 장악문제도 새로운지도부의 과제다.金대행은 과거 통일민주당과 평민당의 사무총장 출신이라조직장악력은 정평이 나 있지만 여권은 어느 때보다 조직 장악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제 2의 ‘4·7파동’을 막기 위해서다. 鄭均桓총장이 “조직 장악이 됐으면 徐의원 체포동의안이 일사분란하게 처리됐을 것”이라며 “앞으로 조직 장악과 양당 공조에 신경쓰겠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그동안 무기력했다는 말까지 들었던 지도부의 ‘말발’이 더 세질 것은 확실하다.金대행과 趙世衡전총재권한대행의 스타일 차이도 그렇지만 ‘4·7파동’변수까지 합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타협보다는 대립적인 관계로 비춰졌던 여야 관계를 제대로 복원하는 일도 시급하다.金대행은 “개혁과 경제회복의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하려면정치안정이 있어야 한다”며 “여야 관계가 대립보다는 상호협력 관계로 전환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게 이런 이유에서다.일단 분위기는 괜찮은 것같다.정치개혁의 성패도 여야 관계에 달려 있다. 金대행의 수명이 8월 전당대회까지의 ‘시한부’로 끝날지 내년 16대 총선때까지 장수를 누릴지는 대행기간의 성과에 달려 있다.
  • 공정위상임위원 趙彙甲씨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최근 사임한 申茂成 상임위원 후임에 趙彙甲 사무처장을 내정하고 사무처장에 金炳日 정책국장(2급)을 승진,내정했다.
  • 국민회의 총재대행 金令培씨

    국민회의총재인 金大中대통령은 8일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국회본회의 부결 이후 공동정권의 결속과 당내 안정을 위해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韓和甲원내총무의 사의를 수리하고 趙대행 후임에 金令培부총재를 지명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朴대변인은 “신임 총재권한대행은 당무회의 인준을 받은 뒤 임명 절차를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원내총무는 당헌 당규에 따라 경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내총무에는 4선인 趙舜衡의원이 확실시되고 있다. 金대통령은 그러나 趙대행과 함께 사의를 표명한 鄭均桓사무총장과 張永喆정책위의장의 사의는 반려했다.金대통령은 특히 부결파동을 조기 매듭짓고공동정권에 대한 국민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9일 오전 金鍾泌국무총리와 단독회동을 갖고 공동정권 결속강화와 향후 정국운영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金대통령은 회동이 끝난 뒤 金총리와 자민련 朴泰俊총재,국민회의 金총재권한대행지명자 등 공동정권 지도부와 조찬을 함께한다.
  • 증권거래소이사장 朴昌培씨 내정

    신임 증권거래소 이사장에 朴昌培 코스닥증권 사장(60)이 내정됐다. 증권사 사장단은 7일 오후 2시 거래소 19층 회의실에서 총회를 열고 임기만료된 洪寅基 증권거래소 이사장 후임에 朴사장을 선출할 예정이다.거래소 이사장은 재정경제부장관 승인을 거쳐 확정된다. 朴사장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증권거래소 전무와증권금융 상임고문,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냈다.98년 6월부터 코스닥증권 사장으로 일해왔다.
  • 정책기획委長 金泰東씨 내정

    金大中대통령은 崔章集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 후임에 金泰東 전청와대정책기획수석을 내정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4일 밝혔다.朴대변인은“이번 교체는 정책기획위원회의 기능을 경제개혁과 실업대책 등 경제현안에 대한 자문 위주로 재조정한 데 따라 경제전문가를 기용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金위원장이 내정된 것은 개혁적이고 학문적일 뿐 아니라 국민의 정부에서 개혁을 수행한 경험도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梁承賢
  • WTO, 새 사무총장 선출 실패

    ?망┳瑠? AFP 연합 ?? 세계무역기구(WTO)는 31일 회원국간 이견으로 레나토루지에로 초대총장의 후임자를 선출하지 못했다. WTO는 2대 총장 선출시한인 이날 일반이사회(각료회의 휴회기간중 최고 의결기능 수행) 회의를 열어 후임 총장 경합에서 끝까지 남은 수파차이 파닛팍(53) 태국 부총리와 마이크 무어(50) 전 뉴질랜드 총리 가운데 한명을 회원국 합의로 뽑으려고 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약 20분만에 산회했다. 알리 음추모 이사회 의장(탄자니아 대사)은 “지지 세력간의 견해차가 너무커 두 후보 중 누구도 회원국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었다”며 이사회가부활절 휴일을 끝내고 재소집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자민련 ‘시련의 4월’ 맞을듯

    자민련이 ‘잔인한 4월’을 맞을 것 같다.주류와 비주류간 힘겨루기가 치열할 전망이다.벌써부터 물밑 신경전이 뜨겁다.30일 재·보선 때문에 약간 조심할 뿐이다.선거를 치르고 나면 내홍(內訌)으로 다시 번질 조짐이다. 주류는 金龍煥수석부총재가 선두에 있다.내각제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비주류는 朴泰俊총재가 중심에 섰다.당직개편이 활용할 카드다. 朴총재 주변에서는 친정체제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다.핵심자리를 ‘총재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는 주장이다.朴俊炳사무총장과 具天書원내총무가 개편대상으로 압축된다.朴총장은 원외(院外)신분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具총무는 朴총재 노선에 반기를 들어온 게 동기다. 후임총장에는 李肯珪의원과 金顯煜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둘 다 충청권의원이지만 金수석부총재와는 거리감을 느낀다.朴총재와는 원만한 관계라는얘기다. 성사되면 朴총재로서는 첫 독자적인 주요 당직 개편이다.사실상 지금까지는 마음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다.그러나 반발이 만만치 않다.지난해 의원총회에서 임기 2년으로 선출된具총무부터 그랬다.朴총재에게 직접 항의했다는후문이다.朴총재는 “당분간 바꿀 생각 없다”고 겨우 달랜 것으로 전해졌다. JP직계의 주류측은 내각제 ‘매파’로 진용을 새로 짜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결국 양측이 샅바싸움만 하다가 6월 전당대회까지 흘러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金수석부총재는 ‘내각제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31일 제주대 특강을 시작으로 내각제 전도에 다시 나선다.각 시·도지부와 지구당에도 내각제추진위를 발족시킬 계획이다.朴총재와 또 한차례 신경전이 예상된다.
  • [오늘의 눈] ‘몽니’부리는 신임 해양장관

    어민들이 울고 있다.“한일어업협정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아우성이다.피해 규모가 3조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정부의 협상부실이 단초가 돼 생긴결과다.한순간의 허술함이 이렇게 만들었다.멍에는 金善吉전해양수산부장관의 몫이 됐다.그는 후임장관에게 수습을 맡기고 물러났다.그런데 후임장관에게서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임명 과정부터 개운치가 않다.鄭相千신임장관 기용은 ‘DJP독대’에서 결정됐다.金大中대통령은 전문가를 원했다는 후문이다.정치인 출신인 金전장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다.金鍾泌총리는 鄭장관 카드를 고수했다.역시정치인 출신이다.결국 金총리 뜻대로 됐다. 자민련주변에선 25년 측근인 宋業敎정책연구실장에게 ‘금배지’를 달아주기위해서 JP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는 소문도 돌았다.宋실장은 전국구 예비후보 1번이다.전국구 의원이 한명만 사퇴하면 국회의원이 된다.하지만 누구도 내줄 리가 없다.의원직 사퇴를 전제로 전국구 의원인 鄭相千부총재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鄭장관은 그러나 장관취임 일주일이 지나도 기척이 없다.의원직 사퇴를 고사하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지도부는 눈치만 보는 형편이다.이제나 저제나 의원직을 내놓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鄭장관은 두가지 이유를 내세웠다.첫째 보좌진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해할만하다.둘째로 대(對)국회관계를 들었다.그는 “의원신분으로 국회에 가는 장관과그냥 가는 장관이 같을 수 없다”고 말했다.의원직을 갖고 있어야만 국회에서 덜 시달린다는 논리다.의원노릇을 더하겠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공(公)보다는 사(私)가 앞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물론 인선과정과 자질은 별개의 문제다.인선과정이 문제가 있다고장관직을 제대로 못한다는 법은 없다.스스로 해나가기 나름이다.서울시장을거친 풍부한 행정경험으로 잘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鄭장관은 최근 TV프로에서 해양수산장관에 기용된 이유로 “생선회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물론 농담이다.하지만 성난 어심(漁心)은 받아넘길만큼 여유가 없다.그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다. 박대출 정치팀 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 (9) 신구파 대립과 分黨(상)/비교

    李承晩독재체제에 맞선 통합야당 민주당은 1955년 9월19일 탄생한다.이날서울 태평로 시공관은 하루종일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열기로 들끓었다.전국에서 모여든 민주당 대의원 2,000여명이 오전에는 발기인대회를,오후에는 창당대회를 잇달아 열었다.오전 대회에서 鄭一亨의 경과보고에 이어 張勉의 인사말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을 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의 독재를 배격한다고 정강의 서두에 내걸었습니다.우리는 진실한 민주주의를 살려나가기 위해 공정한 선거와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후의 창당대회에서는 申翼熙가 민주당 출범의 의의를 밝히는 인사말을 했고 朴順天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민주세력의 집결 강화만이 국정쇄신의 방도임을 확신한다”고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창당대회 다음날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최고위원 선거에 들어갔다.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 申翼熙는 234표를 얻어 49표에 그친 張勉을 누르고 선출됐다.이어 연기명으로 실시한 최고위원 투표 결과 趙炳玉(282표)·張勉(278표)·郭尙勳(262표)·白南薰(111표)이 뽑혔다. 이들 가운데 제헌의회 의장을 지낸 申翼熙,내무장관을 역임한 趙炳玉,민국당 최고위원 출신인 白南薰은 구파였고 총리를 지낸 張勉,국회부의장인 郭尙勳은 신파였다.이밖에 중앙상무위 의장은 成元慶(신파)이 맡았다. 집행기구 16부 부장은 尹潽善(원내총무격인 의원부장)·柳珍山(노동부장)·鄭一亨(섭외부장)·玄錫虎(조직부장) 등으로 구성됐다.구파는 대표최고위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세 자리와 부장 7석,신파는 최고위원 두 자리에 상무위의장과 부장 9석을 차지해 신·구파는 처음부터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출발했다. 민주당 창당후 처음 맞은 큰 이슈는 다음해 치르는 제3대 정·부통령 후보를 뽑는 일이었다.당시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만한 인물은 申翼熙·趙炳玉·張勉 세 사람 정도였지만 대세는 申翼熙에게 기울어 있었다.초점은 부통령후보였다.신파는 張勉을 대통령후보로 민다고 공표했으나 내심은부통령후보를 노리고 있었다.구파는 구파대로 ‘대통령후보 申翼熙’를 기정사실로하는 한편 趙炳玉을 부통령후보로 세우려고 물밑작업을 벌였다. 이 문제는 郭尙勳이 적극 나서 해결됐다.郭尙勳은 趙炳玉을 찾아가 “이번에는 당신이 양보합시다.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해공(申翼熙)이 적격이니 그를 시켜야 할 것이 아니오? 차후에 입후보하면 내가 적극 지원하겠오”라고설득한다(郭尙勳 회고록에서). 이에 趙炳玉은 “운석(張勉)이 대통령후보 경쟁에 나서지 않도록 책임져라”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전당대회에서 申翼熙·張勉을 정·부통령 후보로 뽑은 민주당은 신·구파 구분없이 힘을 합쳐 선거운동에 매진한다. 56년 정·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李承晩정권을 누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할 절호의 기회였다.52년의 ‘발췌 개헌’과 56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어진 李承晩의 영구집권 음모와 자유당의 폭정(暴政)에 이미 많은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상태였다.게다가 申翼熙·張勉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이 내건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도 돌풍을 몰고 왔다. 56년 5월2일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유세에는 당시로서는 짐작도 못할 30만∼40만 인파가 몰려들었다.그러나 민주당의 손에 들어온 듯하던 대통령 자리는한강백사장 유세 3일 후에 그만 손아귀를 빠져나간다.호남 유세에 나선 申翼熙가 5월5일 열차칸에서 급서한 것이다. 대통령후보 부재에도 불구하고 張勉은 李起鵬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민주당은 창당 9개월 만에 수권 능력을 가진 야당으로서 당당히 자리잡는다.이같은 자리매김은 58년의 제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연결돼 민주당은 78석을 확보한다.창당 때의 33석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민주당 위상 강화와 비례해 신·구파 대립도 점차 심해져 갔다.첫 충돌은정·부통령선거 직후에 찾아왔다.56년 7월 金度演·金俊淵·蘇宣奎 등 구파중앙위원 60여명이 연명(連名)해 최고위원 불신임안을 제출한다.이에 최고위원 전원이 사표를 내고 후임자 선출을 논의하게 된다. 신파는 “국민에게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張勉부통령이 당연히 대표최고위원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파는 표대결을 요구한다.투표 결과 대표최고위원에는 趙炳玉이,최고위원에는 郭尙勳·張勉·金俊淵·金度演이 뽑힌다. 일부에서 분당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끝에 신·구 양파는 다음해부터 대표 및 최고위원을 중앙상무위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는 등 몇 가지에 타협하고 수습한다.이후 구파는 부통령인 張勉에게 당의 주도권을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그를 더욱 견제하게 됐고,신파는 張勉을 중심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됐다. 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신·구파는 다시 한번 격돌한다.60년 정·부통령선거에 나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趙炳玉은 483대480 단 3표차로 張勉에게 신승한다.다음날 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는 거꾸로 張勉이 趙炳玉을 70여표차로 물리친다.최고위원에는 郭尙勳·白南薰·尹潽善·朴順天이 올랐다. 이 전당대회는 신·구파 사이에 메우기 힘든 골을 파놓았다.대회를 몇달 앞두고부터 양쪽의 경쟁은 한계를 넘어서 각종 추태가 난무했다. 趙炳玉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인신공격한 ‘결격사유 10개조’라는 괴문서가 전국 지구당에 배포되는가 하면,경남도당대회가신·구파 당원 간의난투극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신·구파의 격한 대립 속에서도 민주당은 趙炳玉대통령후보,張勉부통령후보 겸 당 대표최고위원 체제로 1960년을 맞는다.56년 申翼熙의 급서로 이루지못한 정권교체의 꿈을 이번에는 꼭 이룬다는 각오와 함께였다. 李容遠 - 신구파 내력과 특징 비교 민주당(民主黨)창당은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자유당(自由黨)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重任)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제5차 개헌안을 마련한다. 李承晩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터주려는 이 개헌안은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찬성 135,반대 60표로 부결된다.그러나 이틀뒤 자유당은 수학의 ‘사사오입’규정을 적용하면 개헌 정족수를 통과한 것이라는 궤변으로 헌법개정을공포한다. 이후 열달동안 반(反)李承晩세력은 통합야당 결성에 노력한다.한민당(韓民黨)의 후신인 민주국민당(민국당,民國黨)과 무소속 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한다.여기에는 자유당을 뛰쳐나온 ‘탈당파’의원12명도 가세한다. 당시야당으로서는 민국당이 가장 컸지만 원내의석이 15석에 불과해 다른 야당 세력을 흡수,통합하지는 못했다.따라서 민국당의 발전적 해체를 전제로 55년 12월 신당촉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신당추진 세력은 곧 의견대립에 부딪친다.민국당의 申翼熙 趙炳玉과재야의 張勉 등 ‘자유민주파’는 좌익에서 전향한 자,독재 또는 부패혐의가 짙은 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으로 혁신계인 曺奉岩과 족청계 李範奭을 배제하려고 한다.반면 張澤相 徐相日 등 ‘민주대동파’는 범야세력의총결집을 주장하며 맞선다. 결국 민주당은 ‘자유민주파’만으로 출발하는데 당시 원내 의석은 33명이었다.이에 비해 자유당은 120여명,무소속은 40여명이었다.‘통합야당’을 표방했는데도 무소속으로 남은 의원이 40여명이나 된 사실은 야당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증거이자,민주당의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당후 민주당은 다시 신·구파로 갈린다.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申翼熙 趙炳玉이 중심인물이었다.한민당을 실질적으로 이끈 金性洙가 55년 2월별세한 뒤여서 구파의 대표성은 申翼熙가 갖고 있었다. 반면 신파는 張勉을 지도자로 鄭一亨 朱耀翰 등의 흥사단계(張勉은 흥사단계로 알려졌지만 흥사단에 가입한 일이 없다),吳緯泳 金永善 李相喆 등의 원내자유당계,玄錫虎 李泰鎔의 자유당 탈당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한마디로 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구세력’이고 신파는 이를 제외한,새로 야당에 가입한 ‘신세력’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신·구파가 출신 배경,사회활동,이념적 지향에서 어느정도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구파는 대부분 지주집안 출신에 독립운동가나 지사형이었고 상당히 보수적이었다.이에 견줘 신파는 관료·법관·금융계 출신의 전문인이 주류였다.韓昇洲 고려대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구파 지도자 가운데 80%는 처음부터 정계에나섰으나 신파 지도자는 오히려 60%가 행정·관료직으로 출발했다.韓교수는또 “연령을 보아도 구파 지도층은 평균 51세,신파는 48세로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신파의 지도력이 사실상 명확히 젊었다”고 평가했다. 정치행태에서도 달라구파는 비조직적이고 점잖아 “하나하나가 모두 장성같았지만”,신파는 조직적이고 투쟁적이어서 상부의 명령에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였다.(구파 출신 閔寬植 회고록에서)민주당 신·구파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가 강한데도 ‘李承晩정권 타도’라는 공동목표아래 힘을 모았다.초기에는 그래도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59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대립이 심해졌다.4월혁명이후 정권장악이분명해지자 그때부터는 치열한 정권쟁탈전에 들어간다. 李容遠
  • 科技장관 서정욱씨-해양장관 정상천씨

    金大中대통령은 23일 한·일어업협정과 관련,물의를 빚은 金善吉 해양수산부장관을 경질하고,후임에 자민련 鄭相千의원(전국구)을 임명했다. 金대통령은 또 정치적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姜昌熙 과학기술부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徐廷旭 전SK텔레콤사장을 새 장관에 임명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朴대변인은 신임 徐과기부장관 임명 배경에 대해 “徐전사장은 정보통신분야의 권위자로,민간 전문경영인이자 과학기술처차관을 지낸 경험도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신임 鄭해양부장관의 기용에 대해서는 “과거의 행정경험과 정치경력,그리고 부산출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金대통령은 이날 오후임명장을 수여한 뒤 국정의 원활한 운영과 해당 부의 개혁에 최선의 노력을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梁承賢
  • 한국바스프회장 柳鍾烈씨 내정

    한국바스프㈜는 21일 프레드 바움가르트너 회장 후임에 柳鍾烈 현 기아자동차 법정관리인 겸 회장을 내정했다.柳회장 내정자는 오는 7월 1일 취임한다. 바움가르트너 회장은 바스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업부 사장으로 승진,독일 본사에서 근무하게 된다.
  • 해양부장관 이르면 오늘 경질

    金大中대통령은 빠르면 22일중 金善吉 해양수산부장관을 경질하고 후임을임명할 예정이다.후임에는 자민련 鄭相千부총재,金東周의원 등이 거론되고있으나 해양수산 관련 전문가의 전격 기용가능성도 있다. 梁承賢
  • [오늘의 눈]신임 해양수산부장관의 조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방한 때문에 잠시 미뤄둔 金善吉해양수산부장관 교체 인사가 금명간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金장관 후임으로 자민련의 鄭相千부총재와 朴俊炳사무총장,金東周·許南薰의원 등이 거론된다.金善吉장관이 자민련 출신이니까 후임도 자민련에서 나와야 한다는 차원의 하마평이다. 그러나 지금은 해양수산부장관을 그렇게 ‘물려주기’식으로 임명할 상황이결코 아닌 것 같다. 한·일 어업협정 체결과 추가협상 과정에서 해양수산부는 처절할 정도로 ‘밑천’을 드러냈다.쌍끌이어업 자체를 누락했고,어획고를 산정하면서 덧셈과 곱셈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질타까지 받고 있다.해양수산부는 한·중 어업협정 체결에 따른 중국측과의 본격적인 실무협상을 앞두고 있다. 새 장관은 지난 5년 동안 걸음마조차 배우지 못한 해양수산부의 기틀을 잡아가면서,한편으로는 중국과의 실무협상도 이끌어가야 하는 어려운 책무를맡게 된다.그러자면 적어도 해양수산정책에 관한 체계적인 소양과 식견이 새 장관의 기본요건이 돼야 한다. 金善吉장관이 해양과 수산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적어도 金장관이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협상에 대응하는 자세를 갖췄다면 실패의 폭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미국이나 일본처럼 관료사회가 정착됐다면 정치인 장관의 임명이 대수롭지 않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런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것 같다.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어야 한다.만일 金善吉장관의 후임 인사가정치권의 제 밥그릇 찾기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정부는 참담한 실패를 겪으면서도 아무런 교훈조차 얻지 못한다는 비난까지 받게 될 것이다.그리고 중국과의 협상에서 또다른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이도운 정치팀기자
  • 해양부장관 금명 경질

    金大中대통령은 금명간 한·일어업협상 파문에 대한 책임을 물어 金善吉 해양수산부장관을 경질할 것으로 알려졌다. 金장관이 경질될 경우,후임 해양수산부장관에는 鄭相千 자민련부총재 등이거론되고 있다. 梁承賢
  • DJP “개각폭 최소화”조율

    곧 단행될 개각의 폭은 최소화될 것 같다.시기는 내주 초가 유력시된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金大中대통령과 金鍾泌국무총리가 16일 오전 국무회의직후 이어진 주례보고 자리에서 개각에 관한 윤곽을 다듬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경질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된 각료는 金慕妊 보건복지부 장관과 金善吉 해양수산부 장관.金慕妊장관은 국민연금 확대실시 추진과정의 문제점에대한,金善吉장관은 엉성한 한·일 어업협상에 대한 책임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金慕妊장관은 당분간 유임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다.金총리가 이미 그런 뜻을 金대통령에게 전달,양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吳效鎭공보실장도 17일 “국민연금을 추진하는 동안 장관을 갈아서 정책이 위축되면 안된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나 金善吉장관은 교체가 예상된다.金장관 스스로도 일본으로 떠나기 앞서 사퇴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金총리로서도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한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두 金장관말고도 한두명 정도의 장관을 교체대상으로 거론한다.해당부처가 추진하는 중요정책에 전념하기보다 ‘이벤트성’ 행사에관심이 많거나,부처 장악 및 업무 추진 능력에 의구심을 주는 것으로 지적되는 장관들이다.그러나 사람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 金대통령의 인사 원칙이다.또 집권 2년차를 맞아 각종 정책이 탄력을 받는 시점이어서 가급적 인사를 삼갈 것으로 예상된다. 제2차 정부조직 개편이 개각의 또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金대통령이 ‘기능조정’을 강조함에 따라 부처간 통·폐합은 최소화될 전망이다.또 국회에서의 처리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워 당장 개각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도 각자의 입장을 반영해 개각과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국민회의에서는 이번에 소폭 개각을 한 뒤 전당대회가 끝나는 8월쯤 대폭적인 당정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내년 총선출마 각료들도 교체해줘야 한다.자민련에서는 이미 金善吉장관의 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金총리에게 후임대상자 3명을 천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 국민회의企調委長 鄭東采의원

    국민회의총재인 金大中대통령은 16일 내각제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사의를 표명한 薛勳기조위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鄭東采의원을 임명했다.또 수석부대변인에 金忠一의원을 임명했다.
  • 국민회의 금명 일부 당직개편

    국민회의 薛勳기조위원장은 최근 내각제 개헌 및 자민련과의 합당과 관련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책임을 지고 15일 오전 趙世衡총재권한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이에 따라 당은 금명간 일부 중간 당직개편을 단행할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李基文인권위원장의 의원직 상실과 薛勳기조위원장의 사의표명 등 인사요인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라며 “당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일부 당직개편을 金大中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薛勳위원장의 후임에는 鄭東泳대변인과 丁世均·鄭東采의원 등이 거론되고있다.홍보강화 차원에서 金榮煥정세분석위원장의 홍보위원장 전보설도 나온다.인권위원장의 후임에는 千正培·柳宣浩의원 등 율사출신 의원들이 거론되고 있다. 吳一萬 oilman@
  • 라퐁텐 獨재무 전격 사임

    □프랑크푸르트 南玎鎬 특파원□오스카 라퐁텐(55) 독일 재무장관이 11일(이하 현지시간) 전격사임했다. 슈뢰더 총리는 라퐁텐 장관이 녹색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집권 사민당(SPD) 당수직에서도 물러났다고 밝혔다.라퐁텐의 사임은 그동안 노선다툼을 벌여온 중도 우파노선의 승리로 해석되고 있다. 사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권은 집권 4개월만에 일단 시련에 봉착하게됐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라퐁텐 장관의 퇴진으로 슈뢰더 총리의 집권 기반은 한층강화될 전망이다.좌익 성향의 라퐁텐 대신 세금감면,금리인하 등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비중을 두는 슈뢰더 총리의 정책이 독일 및 유럽연합(EU)경제운영에 보다 강하게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관측으로 그동안 약세를 면치 못하던 유럽 단일통화 유로화는 급등세를 나타냈다. 후임 재무장관으로는 사민당 경제전문가 한스 아이헬(57) 전(前) 헤센주 지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사민당 당수는 슈뢰더 총리가 겸임하게 될 가능성이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 [전문가 기고]지자체 사업, 후임자 중도 폐기 비일비재

    지방자치단체의 일회성 내지 선심성 사업이나 공사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최근 들어 지자체의 재정상태가 극도로 악화됨에 따라지자체 사업의 일회성 문제가 다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여기에는 세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단체장이 지역경제 활성화나 주민복지 향상과는 거리가 먼 선심성 사업을 임기응변식으로 결정해 사업을 벌이는 경우다.예컨대 서울 K구는 금싸라기같은 도심의 요지에 공용주차빌딩 2개 동을 건설하기 위해 토지매입비로 80억원을 투자했다.주차빌딩 건설비로 80억원을 다시 투입했다.도합 160억원을 들여 겨우 200대분의 주차공간을 마련했다.이러다 보니 자동차 1대의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비가 소형 아파트 한채 값과 같은 8,000만원에 이르렀다.도심 주차난 해소라는 취지로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무모한 선심성 공사는 지자체 사업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경제성이 있고 주민복지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타당한 사업이라 할지라도 전임 단체장이 투자계획을 세워 사업을 추진하다 완공을 보지 못하고퇴임한 경우다.후임 단체장이 이 사업을 계속해 봐야 생색도 안나고,전임 단체장에게 공이 돌아갈 것을 우려해 사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용도폐기를한다.이런 예는 비일비재해 열거하기 조차 민망하다.전임 단체장이 장기간에 걸쳐 주민을 설득해 쓰레기 매립장을 선정한 뒤 착공 단계에서 입지선정이공정하지 못했다든가,비용이 과다하다는 등의 이유로 공사를 중단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셋째,어느 지자체가 무슨 축제나 소비성의 엑스포를 준비하면 인근 지자체도 이에 뒤질세라 거명하기조차 힘든 각종 일회성 행사를 경쟁적으로 치른다.이 때문에 막대한 예산 낭비로 지자체의 재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일은 이제 지자체의 다반사가 돼버렸다.크게는 최악의 재정상태에 빠져 있는 부산시가 2002년의 아시안게임 유치를 결정한 것이나,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인전남도가 세계적인 해양엑스포를 준비하느라 도 전체가 분주하게 뛰는 것이좋은 예다. 지자체의 이같이 방만하고 무절제한 일회·선심성 사업은 더 이상용납돼서는 안된다.앞으로는 납세자인 주민이나 건전한 시민단체,전문가그룹의 철저한 타당성 검토를 통해 일회성이나 선심성 사업이 철저하게 여과돼야 할 것이다.특히 이러한 일회·선심성 사업은 각종 선거철이 다가오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이러한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에 유권자들이 영합하는 일이 없도록 성숙된 시민의식의 눈으로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분권화를 이유로 이러한 일회·선심성 사업을 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재정지원 중단 등 실효성있는 정책을 집행하거나,사업의 경제성이나 타당성을 검증해 이러한 비경제적인 사업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조속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박응격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
  • 日나카무라 법무 중도퇴진…부당수사등 국회공전 책임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의 나카무라 쇼자부로(中村正三郞) 법무상이 8일 리조트개발과 관련한 부당한 수사지시 등 일련의 문제로 국회 공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후임에는 건설성 국장과 농수산성 정무차관 등을 지낸 진노우치 다카오(陳內孝雄.65) 자민당 참의원이 임명됐다.이로써 지난해 7월말 발족된 오부치(小淵惠三)내각에서 업무와 관련,야당의 인책요구로 중도 퇴진한 각료는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방위청장관에 이어 2명으로 늘어 났다. 나카무라 법무상은 자신이 경영하는 호텔이 경합중인 리조트 개발에 대해수사를 지시하는 외에 미국 유명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입국허가를 위해제출한 서류의 사적 보관과 헌법비판 발언 등으로 야당측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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