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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농촌에 ‘깨진 유리창’ 두면 안돼… 삶의 질 높이는 공간정비 할 것”

    [단독] “농촌에 ‘깨진 유리창’ 두면 안돼… 삶의 질 높이는 공간정비 할 것”

    난개발에 마을 곳곳 축사·공장·빈집 방치주민 삶의 질 위협·인구유입 방해 유해 요소 이전 후 공간 재생 정비2021년 시작… 5월 말까지 추가 선정“쾌적한 공간 정비로 농촌 소멸 막을 것”주민협약 조성… 농촌공간재구조화법 통과 “공간정비는 종합예술…전문가 지원사격” “인구가 소멸 중인 농촌을 축사·빈집 등이 방치된 ‘깨진 유리창’ 상태로 둬서는 안 됩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 정비로 사람이 모여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겁니다.” 강형석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을 설명한 뒤 “농촌도 정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외부에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자동차나 상가의 깨진 유리창과 같이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나중에 더 큰 범죄나 무질서가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환경 중시’ 유럽, 농촌 난립 엄격히 규제체계적 공간 정비, 주민 만족·청년 유입↑ 강 실장은 “앞으로는 농촌 소멸을 막기 위해 체계적인 공간 관리로 집단화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스위스, 프랑스와 같이 환경 가치를 우선해 농촌 난립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단기 경제 성장이 우위에 있다보니 사람이 살아가야 할 공간을 생각지 않고 산중턱에 전원주택을 허가해주고 얼마 못 가 폐가가 되는 등 난개발 문제로 환경과 사회적 비용이 수배가 드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도시처럼 체계적인 공간 계획 정비가 돼 있지 않다보니 마을 주거지 인근에 축사와 공장 등으로 인한 악취·소음·화학 물질 등 각종 유해 물질들이 주민들의 위생과 삶의 질을 위협하고 새로운 인구 유입도 방해한다고 강 실장은 분석했다. 유해시설에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시설과 빈집, 장기 방치 건물들도 포함된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말부터 농촌 마을의 난개발과 유해 요소를 정비하고 정비 구역을 활용한 재생사업 지원을 통해 농촌의 정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다음달 말까지 2차 농촌공간정비사업 공모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20개 지구를 1차로 선정한 데 이어 2차로 20개 지구(총 40개)를 추가 선정한다. 2021년 4개 시범지구를 선정해 5개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농촌공간정비사업은 2025년 첫 결실을 맺는다.“정비사업으로 사람 모이고 수요처 늘면교통 생기고 황리단길처럼 청년 모일 것” 강 실장은 “당시 선정된 경남 김해시 주촌면의 원지지구는 주거지 인근에 돈사가 집중돼 있어 악취 배출기준이 최대 29배를 초과하는 등 악취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면서 “이제 사업 계획을 마무리하고 올 하반기부터 돈사 철거 작업을 시작한다. 철거 뒤에는 해당 공간을 마을공동시설, 먹거리활성화센터 등으로 조성할 예정”이라며 사업 효과를 기대했다. 주거지는 주거지대로 모아 돌봄, 교육 등 사회서비스와 연계한 커뮤니티를 조성해주고, 공장은 공장대로 인프라가 좋은 곳으로 묶어주며, 축사는 축사대로 집적시켜 농촌 공간을 보다 효율적이고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라고 강 실장은 설명했다. 지난 2월 ‘농촌공간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환 법률’이 국회를 통과되면서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법은 내년 3월 본격 시행된다. 강 실장은 “현재 농촌은 인프라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 네트워크가 잘 이뤄지지 않는데, 정비 사업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수요처가 형성되면 중심지가 만들어져 교통이 들어서고 경주 황리단길처럼 청년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청년들이 농촌에 와서 정착하고 싶어도 인근에 악취 뿜는 축사나 소음을 유발 시설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공기질, 위생 등 관련 정비가 이뤄지면 쾌적한 자연 환경을 누리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적 강제력이 없어 유해시설 이전의 실효성 논란을 묻자 “이 사업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제법’이 아닌 ‘조성법’으로 주민 협약에 따라 주민이 자율적으로 자립 기반을 만들어 지구를 정하기 때문에 협의와 설득 작업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객관성 지표로 유해성이 인정된 유해시설의 철거·이전에는 개소당 최대 180억원, 생활권역별로는 최대 250억원을 국가와 지방이 50%씩 분담해 지원한다.“내년 농촌재생법 시행되면 더욱 확대”“공무원·농촌공간 전문가·주민 함께해야”“30년 이상 보고 농촌 지속가능성 높여야” 강 실장은 “공간정비사업은 토목·건축·환경을 포함한 종합 예술으로 지자체 공무원 혼자서 해내기 어려운 작업인 만큼 전문가와 주민들이 함께 나서서 협의하고 도와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법에 명시한대로 농촌공간학회 등 공간계획 전문가를 중심으로 전문 지원기관을 만들어 연구조사와 자문을 해주는 지원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년 3월 법이 시행되면 규모는 더 커지고 전문 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더 다양한 사업들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실장은 “30년 이상 멀리 내다보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환경의 수준을 높여 농촌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송전탑은 지중화하는 등 주민들이 기본권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게 국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공간 정비사업을 통해 사람과 기업이 살만한 곳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새로운 인구 유입도 늘리는 효과도 커 투입 대비 경제적 가치가 상당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강 실장은 “사업 대상이 되는 마을은 새로 도입되는 농촌마을보호지구로 지정해 종합적인 재생·관리 지원을 해나갈 계획”이라면서 “한두 곳이 안 된다고 해서 무용하다고 볼 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 환경을 보호하고 기존 마을을 공간·지구 중심으로 확장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면 농촌 인구소멸도 막고 투자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포토多이슈]100년만에 고국품에 안긴 ‘미스터 션샤인’황기환 지사 유해

    [포토多이슈]100년만에 고국품에 안긴 ‘미스터 션샤인’황기환 지사 유해

    [포토多이슈] 사진으로 다양한 이슈를 짚어보는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 연재물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관으로서 유럽과 미국에서 국권 회복 활동을 펼치다가 미국 땅에 묻힌 황기환 지사의 유해가 순국 10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뉴욕에서 출발해 10일 오전 9시 대한항공 KE 086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 박민식 보훈처장 등의 영접을 받았다.영접 현장에는 이회영 선생 후손인 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김구 선생 후손인 김미 백범김구재단 이사장, 윤봉길 의사 후손인 윤주경 국회의원, 안중근 의사 가문 후손인 안기영 선생, 임시의정원 의장 손정도 목사의 후손인 손명원 선생, 독립유공자 윌리엄 린튼의 후손인 인요한 보훈정책자문위원장, 김좌진 장군 후손인 김을동 전 국회의원 등도 참석했다.1886년 4월 4일 평남 순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세가 되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18일 미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했다.종전 후 유럽에 남은 선생은 1919년 6월 파리로 이동해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개최되는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에 온 김규식을 도와 대표단 사무를 협조하고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 선전활동을 벌였다.유해는 분향과 건국훈장 헌정 등 영접 행사 후 대전현충원으로 봉송됩니다. 이어 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박 처장과 각계 대표, 광복회원,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이 거행됩니다.
  • 황기환 지사 유해 100년 만에 오늘 고국으로

    황기환 지사 유해 100년 만에 오늘 고국으로

    이역만리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다가 미국 땅에 묻힌 황기환 지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황 지사 유해가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10일 오전 9시 인천국제공항으로 봉환된다고 9일 밝혔다. 뉴욕에서 숨을 거둔 지 100년 만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이 인천공항 계류장에서 황 지사의 유해를 직접 영접한다. 유해는 분향과 건국훈장 헌정 등 영접 행사 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봉송된다. 이어 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박 처장과 각계 대표, 광복회원,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이 거행된다. 보훈처는 후손이 없어 무적(無籍)으로 남아 있던 황 지사의 가족관계 등록을 창설했으며, 봉환식에서 박 처장이 이를 헌정한다. 유해는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된다.
  • 死는 곧 生의 기술… 성찰하고 돌아보니, 비로소 죽음도 ‘축제’[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死는 곧 生의 기술… 성찰하고 돌아보니, 비로소 죽음도 ‘축제’[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한식을 맞아 많은 사람이 조상의 산소를 찾았다. 성묘는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죽음과 삶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묵상했다. 동아시아에도 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만시(輓詩)가 있는데 이는 영구를 앞에서 끌고 인도하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라는 의미다. 반면에 자만시(自輓詩), 자만사(自輓詞)는 자기 죽음을 미리 가정하고 생전의 삶을 되돌아보는 애도 문학의 일종이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죽음을 성찰하면서 ‘내 죽음’을 대상으로 삼은 글이다. ●피할 수 없는, 내 죽음에 대한 성찰 내 죽음을 성찰한다니 왠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대상이고 더욱이 현대사회는 죽음을 터부시하고 부정(不淨)한 것으로 인식한다. 죽음은 근대 의학이 승승장구하면서 더욱 주변부로 쫓겨났고, 그 결과 환자의 죽음은 의술의 실패로 받아들여지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죽음을 말하는 것은 금기로 돼 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았던 진시황제도 결국 죽음을 맞았고,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 같은 영웅들도 죽음의 순간에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실 개인의 죽음이 있었기에 인류 공동체는 지금까지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을 잃는 것은 공동체로 보면 분명한 슬픔이자 손실이다. 이때 사람은 죽음을 제례화해 남녀노소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을 의식에 참여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응집력을 다시 높이는 한편 죽음에 따른 공동체의 약화를 심리적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죽음의 의식화와 공개성은 야생마처럼 날뛰며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죽음에 대항하는 인간의 보편적 전략이었던 셈이다. 죽은 사람은 주연이 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조연이 돼 재현하는 이 장엄한 장면이 선사하는 감동 속에서 죽음은 그 난폭함을 잃고 얌전하게 길들여졌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삶 속에서도 죽음을 인식하게 돼 죽음을 준비하고 막상 죽음이 닥치면 이를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삶의 일부가 된 ‘죽음의 기술’ 옛날 사람들에게 죽음은 ‘내’ 문제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의 관심사였다. 서양 사회에는 흔히 공동묘지가 주거 공간과 어우러져 있다. 프랑스 파리의 도심에 있는 페르 라셰즈 묘지는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성당의 성인 곁에 매장되기를 원했고 이렇게 해서 교회는 살아 있는 자들을 맞이하는 동시에 죽은 자들로 둘러싸였다. 교회는 묘지이자 산 자와 죽은 자가 교류하는 장소로 변했다. 중세 서양의 한 위대한 기사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윌리엄은 병석에 누워 살아오는 동안 저지른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면서 자신을 수행했던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당시에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하나의 축제처럼 여겼고, 죽음을 맞이하는 의식은 결혼식만큼이나 공개적이고 떠들썩했다.” 죽음의 역사를 연구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에 따르면 근대 의학이 등장하기 전에 살았던 중세인들은 죽음을 혼연한 태도로 맞았고 이렇게 해서 ‘죽음의 기술’을 터득하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죽음이 다가올 것을 예감했고 자연스럽게 죽음은 삶의 일부가 됐다. 그래서 중세 시대에 죽음을 맞이하는 의식은 공개적이었고 남녀노소가 모여 임종을 함께했다고 한다. 이는 삶의 문제(how to live) 못지않게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how to die)인지 고민한 결과였다. 죽음의 기술은 곧 삶의 기술이다. 옛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바로 죽음의 특정한 방식이었다. 그들은 모르스 레펜티나(mors repentina), 즉 갑작스러운 죽음은 회개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끔찍하고 비열한 죽음이라고 일컬었다. 그래서 신에게 자신이 죽는 시간을 알게 해 달라고 빌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죽기 위해 기도한 것이다.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1957년에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 낸 ‘제7의 봉인’을 제작한다. 영화는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사에게 어느 날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사는 사자에게 체스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고 체스가 진행되는 동안 자기 죽음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한다. 죽음의 사자가 제안을 받아들였고, 죽음을 지연시키는 동안에 기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신이 존재하는지,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죽음의 사자와의 체스를 끝낸 기사가 언덕 비탈 위에서 죽음의 사자와 손을 잡고 죽음의 춤을 추면서 영화는 끝난다. 죽음의 실재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이러한 죽음관은 점차 잊혀 갔다. 현대인은 더는 죽음을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은 삶 전체가 죽음의 준비”라고 했다. 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집필하면서 주인공의 죽음으로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자답했다. 삶은 유한해서 언젠가는 끝난다. 첨단 의료기술은 생명의 연장 수단이지 죽음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선한 일만 행하더라도 다하지 못하고 끝나고 마는 것이 우리의 짧은 인생임을 명심하자. 유한한 시간을 나누면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며 살기에는 인간의 생명은 참으로 고귀하고 가치가 있다. 죽음을 외면하고 망각하는 것은 이반 일리치가 삶의 유한성을 잊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삶을 살았던 것과 같다.●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필요할 때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도 우리는 죽음이라는 자연현상을 솔직하게 함께 이야기하기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첨단 의료 기계만 바라보다가 낯선 밀실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 가족도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사람답게 살도록 보살피기보다는 중환자실로 몰아넣느라 바빠 보인다. 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보살펴 주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의 정착이 이제는 필요하다. 우리는 죽음에서 도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문명화된 인간 사회는 위생이라는 이유로 죽어 가는 자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이를 두고 죽음에 대한 문명사적 고찰을 한 독일의 사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죽어 가는 자의 고독’이라고 했다. 죽음을 특정한 영역에 가둬 놓고 숨기려는 경향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과학의 발전으로 질병에 무조건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 대상으로 이해하기 시작함으로써 죽음 또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오히려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더 크게 확산하고 있다. 죽음을 망각한 채 삶에만 집착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음을 은폐하지 말고 삶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죽음과 삶의 변증법을 망각했는지 되돌아볼 때다. 죽음의 역사에 대한 묵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삶의 교훈을 준다. 이어령 교수는 생전에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가 있다”고 했다.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삶이 더 농밀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1980년대 ‘평화의 전도사’, ‘동유럽 민주화의 구심점’으로 불렸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임종 직전에 인류 평화나 문명 간 화해가 아니라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평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깊은 성찰과 고민을 했던 그가 죽음 앞에서 행복을 선언한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자는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답을 주었다. 삶의 문제를 이해하면 죽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즉 죽음을 통해 삶을 반성하라는 말이다. 역사학은 죽은 자의 기억을 성찰하는 학문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의 부활. 이것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성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앙대 교수·작가
  • 이재명 “선친묘소 훼손 유감…악의 없는 부분은 선처해주길”

    이재명 “선친묘소 훼손 유감…악의 없는 부분은 선처해주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모 묘소 훼손 사건이 일부 문중 인사가 이 대표를 돕는다는 취지로 벌인 일로 드러난 가운데 이 대표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라면서도 수사 당국에 선처를 요청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부모님의 묘소를 훼손하는 행위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라면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돌아가신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죄송하고 가슴 아프다”면서 “더 이상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복수난수라 했으니 악의없이 벌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수사당국의 선처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부모 묘소가 훼손된 사진을 공개하며 “일종의 흑주술로 무덤 사방 혈자리에 구멍을 파고 흉물 등을 묻는 의식, 무덤의 혈을 막고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라고 참담함을 토로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고, 경북경찰청은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벌였다.한편 전남 강진군에서 고려청자요를 운영하는 이모(85)씨는 이날 연합뉴스를 통해 “이재명 대표와 같은 경주이씨 종친 등과 함께 경북 봉화군의 이 대표 부모 묘소를 찾아 기 보충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6월 1일 지방선거 사흘 전인 5월 29일 이 대표 부모 봉분에 ‘생명기(生明氣)’라고 쓴 돌 5~6개를 묻었다”고 했다. 이 돌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강진산 돌로 이씨가 검정 페인트로 직접 ‘날생(生)’, ‘밝을명(明)’, ‘기운기(氣)’ 한자를 새겼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장흥에 사는 문중 지인으로부터 이 대표가 고전하고 있으니 우리가 도와주자. 이 대표의 부모 산소에서 기가 나오지 않으니 기를 보충해 주자는 요구를 받았다”면서 “현지 문중 인사들의 안내로 이 대표 선산에 도착해 생명기라고 쓴 돌을 봉분에 묻었다. 문중 인사들의 요청으로 좋은 취지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2004년 전남도로부터 청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도공을 양성하고 있으며, 풍수지리 전문가로도 활동하는 지관이다. 경북 안동경찰서는 이씨가 이 대표 부모 묘소에 기를 보충하는 작업을 했다고 시인 함에 따라 수사반을 강진으로 보내 조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명 대표 선친 묘소 훼손…문중 인사 “‘기(氣)’를 보충 차원에서”

    이재명 대표 선친 묘소 훼손…문중 인사 “‘기(氣)’를 보충 차원에서”

    아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모 묘소 훼손 사건은 일부 문중 인사가 이 대표를 돕는다는 취지로 ‘기(氣)’를 보충하는 뜻에서 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남 강진군에서 고려청자요를 운영하는 이모(85)씨는 6일 “이재명 대표와 같은 경주이씨 종친 등과 함께 경북 봉화군의 이 대표 부모 묘소를 찾아 기 보충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6월 1일 지방선거 사흘 전인 5월 29일 이 대표 부모 봉분에 ‘생명기(生明氣)’라고 쓴 돌 5∼6개를 묻었다”고 말했다. 이 돌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강진산 돌로 이씨가 검정 페인트로 직접 ‘날생(生)’, ‘밝을명(明)’, ‘기운기(氣)’ 한자를 새겼다. 그는 “지난해 5월 장흥에 사는 문중 지인으로부터 이 대표가 고전하고 있으니 우리가 도와주자.이 대표의 부모 산소에서 기가 나오지 않으니 기를 보충해 주자는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씨는 “현지 문중 인사들의 안내로 이 대표 선산에 도착해 생명기라고 쓴 돌을 봉분에 묻었다”며 “문중 인사들의 요청으로 좋은 취지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2004년 전남도로부터 청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도공을 양성하고 있으며,풍수지리 전문가로도 활동하는 지관이다. 이씨는 “생명기는 신명스러운 밝음, 밝은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며 “10년 전 특허청에 생명기 상표등록까지 마쳤다”며 “지인들의 요청으로 다른 곳에서도 기 보충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경북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이씨가 이 대표 부모 묘소에 기를 보충하는 작업을 했다고 시인 함에 따라 팀원을 강진으로 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경북청 강력범죄수사대 등 5개팀 30명이 동원된 전담수사팀에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사건에 ‘분묘 발굴죄’ 등을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분묘 발굴죄의 경우 반의사 불벌죄나 친고죄가 아니며 의도와 상관없이 행위 자체로 처벌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부모 묘소가 훼손된 사진을 공개하며 “일종의 흑주술로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라고 참담함을 토로했고, 민주당은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 “흑주술 아닌 기 보충”…이재명 대표 선친 묘에 돌 묻은 풍수전문가 등장

    “흑주술 아닌 기 보충”…이재명 대표 선친 묘에 돌 묻은 풍수전문가 등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모 묘소 훼손 사건과 관련해 당시 묘소에선 이 대표와 같은 경주이씨 문중 인사들이 이 대표를 도우려는 취지로 흑주술이 아닌 ‘기(氣)’를 보충하는 의식이 행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전남 강진군에서 고려청자요를 운영하는 이모(85)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 대표와 같은 경주이씨 종친 등과 함께 경북 봉화군의 이 대표 부모 묘소를 찾아 기 보충 작업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2004년 전남도로부터 청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도공을 양성하고 있으며, 풍수지리 전문가로도 활동하는 지관이다. 그는 이 대표 부모 묘에 돌을 묻게 된 것이 경주이씨 문중의 좋은 취지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장흥에 사는 문중 지인으로부터 이 대표가 고전하고 있으니 우리가 도와주자. 이 대표의 부모 산소에서 기가 나오지 않으니 기를 보충해 주자는 요구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씨는 “이 대표 선대 묘는 기가 많았으나, 이 대표 부모 묘소는 방향이 잘못돼 기가 약하다고 진단했다”라며 “강진 고려청자가 생산됐던 강진군 대구면에서 돌덩이 여섯 개를 가져다가 ‘날 생(生)’, ‘밝을 명(明)’, ‘기운 기(氣)’ 한자를 쓰고 지난해 6·1 지방선거 사흘 전인 5월 29일 봉분 가장자리에 묻었다”라고 주장했다.그러면서 돌에 새겨진 “생명기는 신명스러운 밝음, 밝은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라며 “10년 전 특허청에 생명기 상표등록까지 마쳤고 지인들의 요청으로 다른 곳에서도 기 보충 의식을 했다”라고 덧붙였다. 경북 안동경찰서는 이씨가 이 대표 부모 묘소에 기를 보충하는 작업을 했다고 시인함에 따라 수사반을 강진으로 보내 조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난달 12일 페이스북에 부모 묘소가 훼손된 사진을 공개하며 “일종의 흑주술로 무덤 사방 혈자리에 구멍을 파고 흉물 등을 묻는 의식, 무덤의 혈을 막고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라고 참담함을 토로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 손수익 전 산림청장 ‘숲의 명예전당’ 헌정…제78회 식목일

    손수익 전 산림청장 ‘숲의 명예전당’ 헌정…제78회 식목일

    지난 1973년 제1차 국토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한 고 손수익 산림청장이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됐다. 산림청은 5일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제78회 식목일 기념행사 및 헌정식을 개최했다. 올해는 1973년 제1차 국토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한 지 50년째 되는 해로, 전날까지 전국적으로 산불이 빈발하면서 기념행사 개최가 불투명했다. 이날 행사는 산림 100년 비전 선포에 이어 숲의 명예전당 헌정식, 기념식수 및 나무심기로 이어졌다. 앞서 지난달 ‘숲의 명예전당’ 선정위원회는 국토녹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손 전 청장과 평생 산림을 가꾼 고 진재량 독림가를 헌정자로 선정했다. 손 전 청장은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 주도로 국토녹화를 주도했다. 이를 통해 전국 3만 4000개 마을, 전 국민이 참여해 100만㏊에 약 21억 4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진재량 독림가는 전남 무등산 일대 임야 667㏊에서 나무심기와 숲 가꾸기, 임도, 휴양림 조성에 이르기까지 산림을 가꿔온 국토녹화의 숨은 공로자로 인정받는다. 복합산림경영을 실천하고 무등산 편백숲을 휴양림으로 가꿔 후손들에게 ‘쉼’의 공간을 남겼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지난 50년간 민둥산이 푸른 산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며 “두 분에 대한 헌정은 국토녹화를 위해 이 땅에 나무를 심은 전 국민에 대한 헌정”이라고 밝혔다.
  • ‘임시정부 의회 의장’ 독립운동가 이강 헌사집 최초 공개...“김구 자필도 담겨”

    ‘임시정부 의회 의장’ 독립운동가 이강 헌사집 최초 공개...“김구 자필도 담겨”

    오늘날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던 오산 이강(1878∼1964) 선생이 제자들과 동료 독립운동가들로부터 받은 헌사와 글을 엮은 서책 ‘설니홍조’(雪泥鴻爪)가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높은 뜻을 살필 수 있을뿐 아니라 백범 김구·성재 이시영 선생이 친필로 쓴 글도 담겨 있어 가치를 더한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이 선생 후손으로부터 입수한 ‘설니홍조’를 임시정부수립기념일(11일)을 앞두고 7일까지 사흘간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전시한다고 5일 밝혔다. 설니홍조는 ‘눈 녹은 진흙 위에 찍힌 기러기 발자국’이란 뜻으로, 시간이 지나면 흔적이 사라지는 인생의 자취를 비유한 표현이다.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이 선생은 미국과 연해주에서 항일 언론활동과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1930년대 이후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에 정착해 중국인 제자를 양성했으며, 1941년부터는 한국광복군 모병활동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제자와 지인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념책을 만들었다고 배경을 설명한 뒤 1권에는 선생과 제자 73명이 쓴 글을 담았다. 2권은 그가 김구 선생 등 6명에게 요청해 받은 글귀가 담겼다. 김 선생은 중국 송나라 문장가 범준의 문집에 실린 글을 옮겨 적었고, 이시영 선생은 “군자는 덕으로써 사람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남을 속이지 않는다”라고 썼다. 또 2권 마지막에는 그가 쓴 국한문과 영문 이력서도 실려 있다. 임시정부기념관은 “제자들의 헌사와 지인의 글 모두 작성자들의 자필로 담겨있다”며 “연구자료와 소장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 석농화원 ‘묵매도’ ‘동파입극도’…조선 회화의 전설이 돌아왔다

    석농화원 ‘묵매도’ ‘동파입극도’…조선 회화의 전설이 돌아왔다

    조선 후기 의관이자 수집가인 석농 김광국(1727~1797)은 10대 후반부터 모은 그림을 50세가 넘어 화첩으로 제작한다. 1784년 원첩 4권을 만들고 1796년 마지막으로 부록을 만든 ‘석농화원’은 김광국이 죽기 전까지 평생 수집한 그림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고려와 조선, 중국 등의 총 100여명에 달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포함됐고, 당대 유명 서예가들이 써 준 화평(畵評)까지 있어 기록적 가치가 남다르다. 석농화원은 조선시대 최대 서화 컬렉션이지만 석농 사후 흩어져 지금은 120여점 정도가 실물로 전해진다. 한국 회화사 연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 화첩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 그림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국립광주박물관은 4일 “석농화원 기록을 사실로 확인시켜 주는 작품을 비롯한 조선 후기 미공개 회화 4건을 지난 3월 28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작품들은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게일 허가 시아버지 허민수(1897~1972)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허씨는 전남 진도 출신의 은행가이자 호남화단의 거장 소치 허련(1808~1893) 가문의 후손이다.이번 환수는 지난해 5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게일 허가 작고한 남편이 시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허련의 그림을 기부할 의사를 밝히면서 이뤄지게 됐다. 그가 이웃인 기획재정부 고광희 국장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후 연락을 받은 재단에서 소장자의 집을 방문해 조사하다가 김진규(1658∼1716)의 ‘묵매도’와 신명연(1808~?)의 ‘동파입극도’까지 확인하면서 극적으로 존재가 드러났다. 두 작품은 18~19세기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미공개 작품들로 평가된다. 특히 ‘묵매도’는 2013년 새롭게 알려진 석농화원 필사본 권1에 제목과 그림의 평만 전해오던 것으로 실제 작품이 발견돼 큰 의미를 지닌다. 동파입극도는 중국 송대 문인 동파 소식(1037~1101)이 귀양 시절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비를 피하는 처연한 모습을 그렸다. 화사한 화훼도로 유명한 신명연의 희귀한 인물화다. 이와 함께 허련의 작품으로 힘차게 뻗은 소나무를 그린 ‘송도 대련’, 8폭으로 된 ‘천강산수도병풍’까지 기증받았다. 게일 허는 “소중한 작품들이 가장 잘 향유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한국 회화사의 공백을 채워 줄 작품”이라고 했다. 그림은 보존 처리 작업을 마친 후 하반기에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다.
  •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韓 5년 만에 공동제안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韓 5년 만에 공동제안

    韓 드라마 등 배격법 규탄 추가北 “정치적 음모… 단호히 거부” 유엔 인권이사회는 4일 한국 정부가 5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해 초안 협의에 적극 참여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우리 정부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은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미국 뉴욕의 유엔총회에 제출된 북한인권결의안에도 4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4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인권이사회는 이날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제52차 회기 56번째 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합의로 채택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에서 처음 채택된 뒤 올해까지 21년 연속으로 채택됐다. 결의안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와 반인권 범죄를 규탄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의 드라마, 노래 등을 금지하는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관련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한국을 비롯한 외부에서 제작된 콘텐츠 일체를 반동사상문화로 규정해 엄격히 금지한다는 내용으로 2020년 제정됐다. 결의안에는 또 국군 포로와 후손이 겪는 인권침해 주장을 지적하는 기존 조항에 “건강이나 억류 상태에 대한 정보 없이 북한에 억류된 다른 나라 국민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문구도 새로 들어갔다. 아울러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2019년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할 만한 내용이 포함됐다. 외국인에 대한 고문, 즉결 처형, 자의적 구금, 납치 등을 우려하는 기존 조항에 “유족들과 관계 기관에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를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는 북한인권결의안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진정한 인권 증진과 무관하게 정치적 음모를 담은 문건”이라면서 단호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 황기환 지사 유해 10일 국내로 돌아온다...보훈처 영접 봉환 안장식

    황기환 지사 유해 10일 국내로 돌아온다...보훈처 영접 봉환 안장식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이역만리에서 외롭게 숨을 거뒀던 황기환 지사 유해가 오는 10일 순국 100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유진 초이’ 캐릭터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황 지사의 유해를 10일 국내로 봉환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안장한다고 4일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유해를 직접 영접해 영정을 봉송하며 운구에 나선다. 보훈처는 5일 유해봉환반을 미국 뉴욕에 파견해 황 지사가 생전에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출석했던 뉴욕한인교회에서 7일(현지시간) 현지 추모식을 연 뒤 9일 유해를 모시고 뉴욕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2008년 황 지사 묘소를 처음 발견해 알린 장철우 뉴욕한인교회 전 담임목사가 정부 초청을 받아 동행한다. 황 지사는 1886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미 하와이 호놀룰루로 건너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미군에 자원입대해 유럽전선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프랑스에 남아 임시정부 파리위원회 서기장을 맡는 등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황 지사 유해 봉환은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보훈처는 2019년과 2022년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후손을 확인할 공적자료가 없어 파묘를 승인받지 못했다. 이에 보훈처와 뉴욕총영사관은 끈질긴 설득 끝에 그가 묻힌 뉴욕 마운트올리벳묘지 관계자들과 파묘 합의를 이끌어냈다.
  • 윤석열 대통령 “순천은 제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곳”

    윤석열 대통령 “순천은 제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곳”

    지난달 31일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순천에 대한 애정과 지원의사를 드러낸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전남 첫 행선지로 순천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개막식 축사에서 “순천은 제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곳이다”며 “순천이 호남과 대한민국 발전의 핵심 거점이 되도록 제대로 챙기겠다”고 말해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이어 “순천에서 멋진 봄을 만끽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너무 멋진 밤입니다”라고 마무리했다. 특히 “너무 멋진 밤입니다”라는 말은 당초 축사 원고에 없었으나 즉석에서 던진 멘트여서 대통령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순천시는 고무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개막식 참석 이후 대통령실 관계자는 “순천국제정원박람회는 도시를 키운 행사로 대통령이 안 갈 수는 없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순천 방문 의미를 설명했다. 그날 이뤄진 윤 대통령과 노관규 순천시장의 환담과 가든스테이 만찬 자리에서 오간 흥미로운 대화 내용도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노 시장은 이 자리에서 순천의 생태 보존 발자취와 정원박람회 개요를 보고하고, “공식 브리핑은 끝났지만, 대통령님을 언제 또 뵙겠습니까? 순천에 대통령님이 풀어주셔야 할 현안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되겠냐”고 말문을 열었다. 흔쾌히 승낙하자 경전선 노선 우회와 동천 명품하천 사업, 애니메이션클러스터 예산 등을 건의했다.요구 사항을 경청한 윤 대통령은 “경전선 도심 통과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우회를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또 명품하천 사업에 대해서도 “지방하천을 수도권과 영남만 주고, 호남은 안 주면 균형이 맞지 않다”고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노 시장이 개회 선언에서 3만 관객과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고 성과를 깜짝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어진 만찬에서도 윤 대통령은 “개막식에 정말 감동받았다. 특히 주제공연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며 “이 정도면 지방정부를 믿고 권한을 이양해 줘도 좋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순천시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이에 노 시장이 순천 웹툰 작가가 그린 대통령 부부의 캐리커처를 전달하며 “수도권으로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원도심에 비어 있는 공간을 기업들로 채워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에는 기존 300억원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애니메이션클러스터 사업 확대를 건의했다. 그러자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께서 잊지 않도록 제가 챙기겠다”고 화답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달된 지 이틀 만인 지난 2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노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애니메이션클러스터 사업에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시는 “일이 일사천리로 풀려가는 모습에 놀랍고 감사드린다”고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과 함께 정원박람회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는 해설사의 안내로 박람회장을 둘러보고, 가든쇼 작품 작가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김 여사는 “순천은 또 오고 싶은 곳이다. 순천시민들의 행복지수가 높겠다”면서 “아름다운 순천을 잘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독립운동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 황기환 지사 외신 인터뷰 등 발굴

    “독립운동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 황기환 지사 외신 인터뷰 등 발굴

    “그는 작은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정력을 쏟아 인간의 자유와 국제적 정의라는 대의에 영웅처럼 봉사하였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의 실제 모델인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가 미국 뉴욕에서 눈을 감자 프랑스 신문 레 카이에 데 드루아 드 롬(1923년 10월 10일자)은 부고기사에 이렇게 썼다. 신문은 “한국의 프랑스 친구들은 1923년 4월 17일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했다. 그는 상냥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뉴욕헤럴드, 시카고트리뷴 인터뷰 등 황 지사의 독립운동 행적을 보여 주는 해외 언론 보도를 비롯한 미공개 자료 11점을 발굴해 3일 공개했다. 황 지사의 유해 봉환을 위해 후손을 수소문하다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은 것들이다. 보훈처는 이달 중 유해를 국내로 모실 예정이다.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황 지사는 1886년 4월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19세이던 1904년 증기선(GAELIC호)을 타고 미국 호놀룰루로 입항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미군에 자원 입대해 참전했다. 종전 후 프랑스에 남은 황 지사는 1919년 6월 베르사유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에 온 독립운동가 김규식(1881~1950) 선생을 위해 대표단 사무를 돕고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 선전활동을 벌였다. 황 지사의 진면목은 1919년 8월 25일자 뉴욕헤럴드 인터뷰에 나타난다. ‘한국에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일본 주장을 바로 받아쳤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고집하는 한 극동에서의 평화는 없으며 한국인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독립운동 절대 멈추지 않는다”...미스터선샤인 모델 황기환 지사 외신인터뷰 등 자료 발굴

    “독립운동 절대 멈추지 않는다”...미스터선샤인 모델 황기환 지사 외신인터뷰 등 자료 발굴

    “그는 자신의 작은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노력에 그의 모든 정력을 쏟아 인간의 자유와 국제적 정의라는 대의에 영웅처럼 봉사하였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유진 초이’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가 1923년 미국 뉴욕에서 눈을 감자 프랑스 신문 레 카이에 데 드루아 드 롬(1923년 10월 10일자)은 부고기사(사진)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프랑스 친구들은 1923년 4월 17일에 그가 뉴욕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애통하였다. 그는 상냥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면서 “우리의 애정 어린 존경과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뉴욕 헤럴드,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 등 황 지사의 독립운동 행적을 보여주는 해외 언론 보도를 비롯한 미공개 자료 11점을 발굴해 3일 공개했다. 보훈처는 황 지사 유해 봉환을 추진하며 후손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자료에서 이들 자료를 찾아냈다. 특히 1904년 미 하와이 호놀룰루 입항자 명부와 입항자 등록 카드, 제1차 세계대전 미군 참전자 등록 카드와 미군 소집자 명단에서 황 지사의 출생일과 하와이 입항 연도 기록을 처음 발굴했다. 새로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황 지사는 1886년 4월 4일 평남 순천에서 태어났고, 19세가 되던 1904년 증기선(GAELIC호)을 타고 호놀룰루로 입항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1918년 5월 18일 미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했다. 종전 후 프랑스에 남은 황 지사는 1919년 6월 파리로 이동해 베르사유에서 열린 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파리에 온 독립운동가 김규식을 도와 대표단 사무를 협조하고 임시정부의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독립 선전활동을 벌였다. 보훈처는 “이번에 발굴된 미국과 프랑스 언론 기사는 황 지사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첫 해외 언론 기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황 지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료는 1919년 8월 25일자 뉴욕 헤럴드 인터뷰를 꼽을 수 있다. 이 기사에서 그는 ‘한국에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일본 주장을 반박하며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며,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고집하는 한 극동에서의 평화는 없을 것”이라며 “한국인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훈처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통해 황 지사의 행적과 독립운동 활동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황 지사에 대한 연구가 더 폭넓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이달 중 황 선생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할 예정이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지도자 유누핑구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지도자 유누핑구

    호주 원주민 지도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갈라우이 유누핑구가 노던 테리토리주에서 노환으로 74세 삶을 접었다고 영국 BBC가 3일 전했다. 고인은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헌법 권리를 인정받고 토지 소유권을 위한 싸움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도 구마티 부족의 지도자이며 위대한 지도자 겸 정치인인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Note to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readers: Yunupingu‘s last name and image are used here in accordance with the wishes of his family. 앨버니지 총리는 트위터에 “유누핑구는 권위와 권능, 은총 안에서 두 세계를 거닐었고, 그것을 하나로 묶이게 일했다”면서 “이제 그는 다른 곳을 거닐게 됐지만 그가 남긴 커다란 족적 때문에 우리는 이것만 따르면 된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1960년대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 운동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퍼스트 네이션스’란 이름으로 집약되는 호주에서의 법적 투쟁에서 원주민들의 권리 옹호에 앞장섰다. 그 뒤 반세기 넘게 후속 정부들에 조언하고 가수 겸 아티스트, 원주민 문화 프로모터로 많은 기여를 했다. 노던 테리토리주의 톱 엔드(Top End) 지방에 전통적인 토지 소유권이 있는 후손들을 대변하는 ‘노던 랜드 카운슬’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고, 호주 원주민 전체를 대변하는 주요 기관 가운데 하나인 ‘요수 인디 재단’(Yothu Yindi Foundation)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1978년 호주 올해의인물에 뽑혔고, 1985년 원주민 공동체에 기여한 공로로 ‘오더 오브 오스트레일리아 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지막 몇년에는 ‘보이스 오브 팔리아먼트’를 통해 원주민의 헌법적 인정을 옹호했는데 올해 안에 헌법기관을 설치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될 참이었다. 딸 빈밀라 유누핑구는 부친의 죽음이 커다란 손실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유누핑구는 그의 토지에 전 생애를 바쳐 살았으며. 우리 사람들의 빌마(bilma, 딱따기 clapsticks)요, 이다키(yidaki, 원주민 악기 디저리두 didgeridoo)요, 마니카이(manikay, 신성한 노래)이며 드훌랑(dhulang, 신성한 디자인)이다. 그는 우리 땅에서 태어나 우리 땅에서 죽었는데 자신의 일생에 걸친 작업이 이룬 일들을 확실히 인식하면서 눈을 감았다.” 요수 인디 재단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고인을 “나라의 거인”이라고 표현하며 “그는 자신이 거느린 사람들의 첫째가며 가장 빼어난 지도자였는데 그들의 복지가 가장 걱정하고 책임을 느끼는 일이었다” 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위 이탤릭체 대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누핑구란 이름이 왠지 낯익어 해묵은 기억을 떠올렸다. 아래 동영상은 같은 성을 쓰며, 국내 월드뮤직 팬들 사이에서도 꽤 이름과 노래가 알려진 제프리 구루물 유누핑구(1971년~2017년 7월 25일)의 노래 ‘Wiyathul’(주황발무덤새) 라이브 공연 영상이다. 구루물 유누핑구 기사를 찾아보니 ‘6만년 동안 씨족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네 아이 내 아이 하는 구분 없이 공동 양육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왼손잡이였던 구루물 유누핑구는 오른손 잡이용 기타를 뒤집어 연주한,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기타리스트였다. 의료시설이 없는 원주민 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신장과 간 만성 질환에 시달렸다. 10년 가까이 세계 곳곳을 돌며 공연했지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같은 이들 앞에서도 단 두 음절 “Thank You”만 내뱉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고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사진을 쓰지 않는 부족의 금기가 있단다. 호주와 영미 언론은 그의 부고 제목에 ‘Dr.G 유누핑구’라 적었다. 2012년 시드디대학에서 받은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따 일종의 직함을 부고에 명기한 것이었다.
  • 이삼문이 박삼문으로 살아온 사연… 살아있는 자신의 위패를 만나다

    이삼문이 박삼문으로 살아온 사연… 살아있는 자신의 위패를 만나다

    제75주년 4·3추념식이 열리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는 3일 이른 아침부터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바리바리 싸 온 제사음식을 위령탑 옆 각명비 앞에 올려놓고 국화꽃을 헌화하며 절을 올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오전 10시 제주 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이 시작됐다. 1분간의 묵념의 시간이 지나고 예정된 순서대로 추념식이 거행됐다. 이날 4·3 생존희생자 및 유족, 제주도민, 정부 및 정당 관계자 등 총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3 희생자들에게 최대한 예우를 갖췄다. 특히 이날 추념식에서는 안타까운 유족사연이 소개돼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4·3 당시 부모, 할머니, 두 형, 누나를 잃고 ‘1941년생 이삼문’이 아닌 ‘1953년생 박삼문’이라는 이름으로 팔십 평생을 살아온 기구한 사연이 소개됐다. 이삼문씨는 4·3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우여곡절 끝에 전남으로 가게 됐고, 거기서 박씨 집안 호적에 올라갈 수 있게 돼 이후로 ‘박삼문’으로 살아왔다. 이날 박씨의 큰아들 박상일씨는 담담하게 준비한 사연을 낭독해 내려갔다. “4·3으로 아버지가 성이 바뀌면서 저도 이씨가 아닌 박씨로 살아왔습니다. 언젠가 저에게 진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하도 불쌍해서 저는 그날 방구석에서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박씨는 이어 “지난 2016년에 아버지는 제주를 66년 만에 찾았는데 가족들 발자취를 찾아 헤매다 4·3때 사망한 사람들 위패가 4·3평화공원에 모셔졌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며 “그날 아버지는 지금 제 뒤에 있는 위패봉안실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배근 아버지 위패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이! 삼! 문! 자신의 위패도 발견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살아있지만 사망한 사람이었습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후 희생자 취소 신청으로 다시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되었지만 아버지와 저는 이배근 희생자의 유족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며 “성도 주민번호도 달랐기 때문입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이날 낭독하는 내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행히 올해 7월부터 희생자와의 친생자 확인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면서 “오늘도 저와 저희 아버지는 이배근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이번 추념식이 ‘제주4·3, 견뎌냈으니, 75년, 딛고 섰노라’라는 슬로건인 것 처럼 75년의 슬픔을 딛고 이젠 일어서려는 유족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는 박삼문씨와 관련, 유족 인정 심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준호 서울시의원, ‘제78회 식목일 시민과 함께 나무심기’ 행사 참석

    정준호 서울시의원, ‘제78회 식목일 시민과 함께 나무심기’ 행사 참석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정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평4)은 지난 1일 서울 구로구 안양천 일대에서 열린 ‘제78회 식목일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나무와 봄꽃을 심으며 녹색시간을 가졌다. 이번 식목일 행사는 나무 심기를 통해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에 대응하고, 녹색 문화의 확산을 위해 서울시와 구로구가 공동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인영 국회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의회 의원, 구로구청장, 구로구의회 의원 등 다양한 분야의 주체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참석자들에게는 미래 세대에 소중한 녹지공간을 물려주기 위한 ‘내 나무 갖기 캠페인’의 목적으로 미스킴라일락, 치자나무 등을 증정했다.정 의원은 축사를 통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지금까지 그린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녹색공간이 부족한 편이다”라며 “그렇기에 오늘 친환경 녹색 생태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는 이 자리가 매우 뜻깊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 의원은 “우리가 심는 한 그루의 나무가 맑은 공기와 건강을 선물하고, 후손들에게는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적극 동참해 녹색도시 서울을 만드는 데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 70년 전 작성된 의용소방대 근무일지 주인공 가족 찾았다

    70년 전 작성된 의용소방대 근무일지 주인공 가족 찾았다

    지난 1월 70년 전 기록된 방공단(현 의용소방대) 근무일지를 발견한 경기 소방당국이 이 자료의 주인공인 고 김일남씨의 후손을 수소문 끝에 찾는 데 성공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1953년 당시 경기 화성군 남양면 방공단에서 근무한 김일남 방공단원의 장남 김영일(83) 선생에게 고인의 사직원서 영인본을 전달했다고 31일 밝혔다. 전달식에는 김일남 방공단원의 장남인 김영일 선생 부부와 조선호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장을 비롯한 본부 직원들, 엄수현 경기도 여성의용소방대연합회장 등 의용소방대원 등이 참석해 영인본 전달을 축하했다. 고 김일남 방공단원은 1911년 함경북도 성진시에서 태어나 해방 후 월남한 뒤 1962년 52세의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당시 화성군 남양면 방공단(현 의용소방대)에서 단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발전과 안녕을 위해 헌신했다. 앞서 도 소방재난본부는 70년 전인 1953년 5월부터 10월까지 작성한 의용소방대 근무일지를 지난 1월 발견했고, 근무일지 안에서 김일남 방공단원이 제출한 사직서 한 장을 추가로 발견했다. 도 소방재난본부는 방공단원 사직원서가 우리나라 의용소방대 역사의 한 시대를 증명하는 귀중한 사료라고 판단, 사직원서의 주인공을 찾아 나서는 한편 도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당부한 바 있다. 이후 화성시 한 마을 이장이 김일남 단원과 친인척 관계인 것 같다는 결정적인 제보가 접수됐고, 근무일지 발견 두 달 만에 김일남 단원의 장남인 김영일 선생과 만남에 이르게 됐다. 고인의 큰아들인 김영일 선생은 영인본을 전달받은 뒤 “제가 군에서 복무하던 22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당시 방공대장을 잘 모셔야 한다고 가르치셨고,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이웃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었다”라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중한 기억을 회상하게 해준 경기소방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선호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는 “이웃의 안녕을 보살피는데 앞장섰던 선생님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 않고 영원히 계승하고자 사직원서 원본은 개관 예정인 국립 소방박물관에 기증할 방침”이라며 “소방공무원의 정신적 자산인 소방 유물의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경기소방의 자긍심을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 소방재난본부는 이날 취약계층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업무에 기여한 베스트 의용소방대원 시상식도 함께 진행했다. 부천 여성의용소방대 신영숙 대원 등 10명의 대원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 “할아버지가 5·18 학살 주범” 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할아버지가 5·18 학살 주범” 무릎 꿇은 전두환 손자

    5·18 민주화운동 단체와 만난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는 31일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가 5·18 학살의 주범”이라며 무릎꿇고 대신 사죄한다는 뜻을 밝혔다. 전씨는 이날 오전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5·18 유족·피해자들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두환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역으로 흐르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족들에게 (5·18에 대해) 물어보면 대화의 주제를 바꾸거나 침묵하는 바람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오히려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또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서 평생 자라왔고, 저 자신도 비열한 늑대처럼 살아왔다”며 “이제는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게 됐다. 제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죄책감이 너무 커서 이런 행동(사죄)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로 군부독재에 맞서다 고통을 당한 광주 시민께 가족들을 대신해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강조했다.이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제가 느끼는 책임감을 보실 수 있도록 앞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겠다”고 밝혔다. 필요할 경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와 5·18 기념식 등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전씨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 앞에서 무릎 꿇고 큰 절을 하기도 했다. 오월 어머니들도 울먹이며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며 전씨를 꼭 안거나 손을 붙잡았다.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활약하다 숨진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는 “그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며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제부터 차분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5·18의 진실을 밝혀 화해의 길로 나갑시다”고 말했다.총상 부상자 김태수씨는 전씨에게 “생전 할아버지 전두환 씨가 발포 명령을 했다는 것을 못 들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전씨는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스스로를 민주주의 아버지이고 본인이 천국 간다고 하는 사람이다”고 답했다. 5·18 유족회원 이명자씨도 “전씨의 사죄를 계기로 숨어있는 가해자들이 이제는 양심선언을 많이 해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전씨는 이날 전두환 일가 구성원 중 처음으로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전씨는 5·18 최초 사망자인 고 김경철 열사의 묘역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4학년 희생자인 고 전재수 군,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와 이름 없는 무명열사 묘역까지 차례로 참배했다. 참배를 안내한 김범태 5·18 민주묘지관리소장이 묘지마다 사망 경위 등을 짤막하게 설명해줬고, 그는 한 곳도 빠짐없이 무릎을 꿇고 묘비와 영정 사진을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으로 닦아줬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전두환의 후손이 묘비를 닦아내는 모습에 남다른 감정을 느끼는 듯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참배를 마친 전씨는 “저 같은 죄인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이렇게 와서 (희생자를) 뵈니 저의 죄가 더 뚜렷이 보이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겉옷으로 묘비를 닦을 때의 심경을 묻자 “제가 입던 옷 따위가 아니라 더 좋은 것으로 닦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고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8일 뉴욕에서 귀국한 전씨는 인천공항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38시간 만에 석방됐다. 석방 직후 광주를 찾은 전씨는 하루 동안 호텔과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며 5·18 단체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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