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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용후손 땅환수/저지준비모임 결성

    구천서·박명환 김호일(민자) 김원웅·제정구·홍기훈(민주)원광호(국민)의원등 3당의원 7명은 9일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이완용후손 토지환수저지 준비모임」(간사 김원웅의원)을 결성했다. 이들은 이날 모임에서 이완용의 재산을 증손자인 이윤형씨(60)가 물려받지 못하도록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하는 한편 ▲공청회개최 ▲국회내 특위구성 ▲국민운동전개등의 활동을 펴나가기로 했다. 또 해방직후 구성됐던 「반민특위」의 활동을 분석하고 이완용등 반민족행위자의 자료수집에 나서기로했다. 이 준비모임에는 성무용·오장섭(민자)장기욱·신계륜(민주)정주일(국민)송영진의원(무소속)및 노무현전의원(민주)등도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김원웅의원측이 밝혔다.
  • 부천역사 연구소/향토사 발굴·홍보 크게 기여

    ◎지역 사학가 최현수씨 사재털어 설립… 문화발전에 큰몫/의병장 기념비 세우고 「지역사」도 편찬/매달 주민들에 특강,역사적 인물 소개/각지역 고유이름·인물사 각종 정보지에 발표도 한 향토사학자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민간학술연구단체가 잊혀진 지역의 역사를 발굴하고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데 앞장서는등 향토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남구 심곡1동 595「부천역사연구소」사무실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부천사 연구」책자 발간을 앞두고 요즘 한창 바삐 돌아간다. 최현수소장(37)황성진간사(23·여·인하대 사학과 4년)를 비롯,15명의 연구위원·자료조사위원들은 3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자료를 검토,토의하느라 시간을 잊고 있다. 최소장이 부천역사연구소 문을 연 것은 지난 91년 12월. 비록 연륜은 짧지만 이 연구소는 그동안 실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대표적인 것이 설립이래 매달 셋째주 목요일에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부천역사 특강」이다. 이 강좌에서는 부천과 관계된 역사적 인물을 선정,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해 주민들에게 지역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1년 12월23일 첫 강좌에는 부천에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한 정지용시인을 소개해 부천에「정지용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와함께 부천문화원이 발행하는「복사골 문화」와 각종 지역생활정보지에 각 지역의 이름유래·인물사를 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중에서도 연구소측이 가장 보람있게 여기는 사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박진의 업적을 발굴해 그의 기념비를 세운 일이다. 최소장은 지난해 「죽산 박씨 대동보」를 살펴보다 박진이 임진왜란이 나던 해인 15 92년 둘대산(지금의 춘덕산)에서 2백여명의 의병을 조직,유격전술로 왜군의 주력부대를 격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박의병장의 묘소가 부천시 남구 역곡1동 춘덕산 능골에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음을 알고 기념비추진위원회를 구성,후손및 주민들로부터 2천4백여만원을 모아 지난해 11월9일 묘소 주변에 3m 높이의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러한 사업을 이루는 데는 최소장과 황간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앞섰지만 민충환부천전문대 교수(54),김희태독립기념관전시과장(49)등 이 지역 출신 연구·자료조사위원들의 도움이 컸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인하대와 동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 최소장은 『지난 85년 부천시사편찬상임위원(별정직 5급)을 맡으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게 됐다』면서『자기 고장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완용 땅 소송파문 확산/증손 이윤형씨,17건 제소… 6건 승소

    ◎대다수 국민,“매국대가 재산 몰수해야”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겼던 이완용의 후손이 벌이는 재산찾기작업이 법논리와 국민감정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완용의 증손자로 법적상속인인 이윤형씨(59·서울 도봉구 쌍문동)는 지난88년부터 17건의 이완용이 소유했던 토지관련 소유권 소송을 제기,이중 6건을 승소해 2천1백70평(시가 60억원)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이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당시 받은 15만원과 총리대신퇴직금 1천4백여원으로 매입한 전국에 걸친 수백만평의 부동산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윤형씨는 이에따라 법률자문을 맡고있는 박성귀·유선호변호사 및 전문토지브로커들의 도움을 받아 재산복원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이 언론에 보도돼 사회적 우려와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자 정치권에서도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민주당의 김원웅·제정구의원은 지난달 26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고 사법부가 법제정때까지 이와관련된 소송의 판결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의원은 『이윤형씨가 스스로 형성한 재산이라면 법률로서 보호돼야 하지만 그 증조부인 이완용이 매국의 대가로 형성한 재산은 결코 법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의원이외에도 민자당의 성무용·구천서·박명환의원과 국민당의 원광호의원등이 이같은 취지에 동참,입법준비를 위한 실무회의를 갖는 한편 법원등에서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나 별다른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법조계 및 정치권에서는 이완용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특별법의 제정은 좀더 신중히 검토해야될 문제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별법이 소급입법이 될 수 밖에 없는데다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는 지적도 나타날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주당내에서는 이씨의 행위가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법률문제를 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입법과 사법부의 법적용은좀더 두고봐야겠으나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물려받겠다는 일은 도저히 용인할수 없는 것이 국민의 전반적인 감정인 것으로 나타나고있다. 민주당의 박우섭부대변인은 이와관련, 『이윤형씨가 지금이라도 소송을 포기하는 것이 「대를 이어 반민주행위를 한다」는 지탄을 조금이나마 면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 구소한인에의 관심과 외교적 해결책(사설)

    중앙아시아의 32만 한인들에게 또다시 어려운 세월이 닥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1년이상 내전에 시달려온 타지크공화국의 1만3천여 한인들은 절반이 인근국가로 피란을 했고 남은 사람들은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중앙아시아의 독립국가중 가장 많은한인이 살고있는 우즈베크공화국 18만한인들은 93년안에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밖에도 카자흐 키르기스 투르크멘등 중앙아시아의 회교권 독립국가들에서 언제 한인배척운동이 일어날지 모를 형편이다.이들 나라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성하고 있고 또 공통적으로 한인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으며 한결같이 한인들은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한인들은 스탈린시대에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애초부터 한인들이 원해서 이주했거나 정착해서 산것이 아니다.그러므로 그곳에 뿌리내리며 50수년을 살아오기 위해 그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수가 없다.그런 그들이 이번에는 회교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러시아인이 배척당하는 일환으로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다.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잃은 시대의 희생으로 그 많은 세월을 떠돌던 우리의 혈육들이 간신히 정착한 땅에서 또다시 핍박받고 뿌리뽑힌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을 위해 고국이 해줄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그들은 우선 러시아를 「내나라 조국」으로 부르는 타국민이다.내전속의 동포에게 난민구호차원의 손길은 펼수 있지만 직접 해결력을 발휘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다만 러시아정부가 하루속히 한인 강제이주및 탄압의 책임을 인정하고 한인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촉구하는 일은 정부가 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다른 CIS여러나라에 외교루트를 통해 화해와 경제협력의 장을 마련하여 현지 한인들이 그 중요한 역할을 맡게 하는 길을 여는 일 따위는 가능할 것이다.우즈베크공화국 동방대학에는 한국경제과가 독립되어 있고 한국대학과 자매관계도 맺고 있다.그만큼 한국과의 경제적 동반관계를 원하는 것이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의 공통된 관심이다.이런 현실을 효과적으로 살리는 일도 실리 있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러시아 최고회의는 오는 27일 「재러시아 한인 명예회복에 관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여 최종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강제이주당한 한인들의 원래의 정착지로의 귀환이 허용되고 농경지 소유및 납세 특전 등의 생계대책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이 점에 관한 정부의 외교적 막후 노력이 요망된다.
  • 폐기물처리 1급기사 합격 이경운양(파수꾼)

    ◎“심각한 쓰레기문제 해결에 한 몫”/후손에 물려줄 자연 깨끗이 보존해야/정부도 장기적 환경정책 추진 바람직 「폐기물처리기사와 여성」­언뜻 보면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이 국내에서는 처음 실시한 폐기물처리 1급기사시험에서 총합격자 3백52명가운데 여자가 87명이나 합격해 남자위주의 폐기물처리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시험에 통과해 명실상부한 폐기물처리 전문인력으로 인정을 받게된 이경운양(사진·22·시립대 환경공학과 4년)의 포부와 계획은 풍기는 인상처럼 야무지고 당차다. 『가장 관심있는 부문은 쓰레기 소각처리입니다.환경공해중에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이 쓰레기이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하면 소각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있습니다』 폐기물처리쪽을 택한것은 이같은 이유에서지만 환경기술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아직 체계가 잡히지않은 미개척분야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했다. 『물론 1급기사자격을 땄다고 하지만 학부에서 배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그래서 폐기물분야에 대해서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할 생각입니다.스스로 판단할때 기본적인 실력도 갖추지 못하고서 단지 자격증만 있다고 취직을 한다면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라고도 볼수있습니다』 이양은 이를위해 시립대학원 환경공학과를 지원,합격해 오는 3월에 입학한다.전공은 외기대기전공.소각처리에 따른 대기의 영향을 공부하기위해서다.소각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분해가 힘든 폐기물에 대한 공부도 함께할 생각이다. 『이같은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어떤면에서는 다소 중압감도 느낍니다.환경이라는 것은 후손에게 전해지는 것인만큼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한사람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교수님들로부터 환경분야는 다른분야보다 책임의식이 강해야하고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제는 스스로도 과연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때 정부에서도 환경정책을 보다 신중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과감한 투자는물론이고 환경보전이 젊은세대들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조기환경교육에도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양이 요즘 열심히 하고있는 부문은 기초과학공부다.환경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며 우리의 자연환경을 지키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수있는 폐기물처리전문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 미­러시아/「스미르노프 보드카」 전쟁(특파원코너)

    ◎원래 러제국 황실에 진상됐던 명주/공산혁명뒤 미서 생산·보급 “상표권 싸움”/이달 모스크바시판… 본토산과 “맛 대결” 세계 최고의 보드카로 통하는 「스미르노프」의 판매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 두 양조회사간의 첨예한 한판대결이 곧 모스크바에서 벌어지게 됐다. 표트르 스미르노프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시절 황실에 보드카를 만들어 공급하던 거상으로 그의 이름을 딴 보드카가 곧 러시아보드카의 대명사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나 볼셰비키혁명뒤 제조중지된 이래 러시아땅에서 이 보드카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뒤 미국의 양조회사인 퓨틀레인사가 그의 이름을 붙인 보드카를 생산,전세계 최고의 보드카로 성장시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스미르노프의 후손들이 모여 러시아에서 「진짜 스미르노프」보드카를 생산키로 함으로써 비롯됐다.이들은 최근 「표트르 스미르노프와 후손들」이란 양조회사를 설립,이달중 스미르노프 보드카 6천병을 최초로 시판할 예정이다. 이들은 시판에 앞서 미국산 스미르노프의 상표권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러시아특허청에 제출했으나 지난해 12월 이것이 기각됨으로써 어느 것이 진짜냐의 판정은 술꾼들에게 넘어가게 됐다. 러시아산 스미르노프가 과연 확고한 명성을 굳힌 미국산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이들의 의욕은 대단하다.이 회사의 블라디미르 니콜라예프 판매담당 매니저는 러시아특허청의 조치에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이런 상표권 시비가 새술의 판매에 상당한 선전효과를 올렸다』며 새술이 혁명전 스미르노프가의 전통적인 양조비법을 재현해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산 보드카는 곧 설땅을 잃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가격면에서는 새로 탄생한 보드카가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현재 모스크바 시내 가판대,달러숍등에서 팔리는 미국제 스미르노프 1ℓ들이 한병에 4천5백루블(약10달러)정도인데 비해 새 스미르노프는 0.61ℓ들이 한병에 1천5백루블로 예정돼 있어 훨씬 싸다.그외 일반 러시아산 보드카로 스틀리츠나야,프세니츠나야,모스콥스카야,루스카야 등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0.5ℓ들이 한병에 3백50루블 수준이다. 「스미르노프와 그의 후손들」이 만든 새 보드카는 미국산과 다르다.우선 술맛이 미국산과는 판이하고 러시아제 일반 보드카에 훨씬 가깝다.병모양도 옛날 스미르노프 보드카병과 흡사하게 만들고 내용물 표기도 보드카라고 쓰지 않고 당시 쓰던대로 「식탁용 와인」이라고 표기했다.앞으로는 과거 스미르노프가에서 제조하던 3백여종의 합성 보드카를 모두 만들어 시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표트르 스미르노프의 증손녀인 타치아나 포미나여사는 이미지제고를 위해 최근 조부가 하던 스미로느프가의 자선사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을 발표했다.수익금의 1%를 이 자선기금으로 적립하는 외에 이미 어린이재단에 일정금액을 기부했다는 사실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은 않지만 러시아 스미르노프 보드카측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러시아술꾼들의 애국심」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 증산도 첫 통일경전 「도전」 발간

    ◎20여년간 자료수집,철저한 고증거쳐/“대중포교활동에 새 전환점 마련” 평가 증산도 1백22년 역사에 최초의 통일경전인 「도전」이 발간됐다.20년간의 문헌자료수집과 현장답사를 통하여 채집한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서 펴낸 이 경전은 증산도의 대중포교에 전환점을 마련해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총11편,1천4백64장,1만1천3백13절로 구성된 이 경전은 「대순경전」「성화진경」「용화전경」「천지개벽경」등 기존경전들의 오류를 교정하고 누락부분을 보충,증산 상제의 탄생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고 일제시대 교단을 창립하여 이끌어온 2대 도주 태모 고수부의 일생과 언행에 이르기까지를 수록하고 있다. 도전에는 상제의 9년동안의 천지공사에 직접 참여한 김호연성도의 생생한 육성증언을 최초로 수록하였고 당시 성도및 후손들과의 면담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추가,전체내용의 3분의1에 해당하는 3백여쪽의 성구를 증보했다.또한 그동안 남성위주의 사고로 기존의 경전에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수많은 여성 성도들의 훌륭한행적을 추가했다. 도전은 또 증산 상제의 말씀을 나타낸 언어를 미화하거나 조작하지 않고 당시 민중들에게 알기쉽도록 육두문자등을 사용해 진리를 설법하던 그대로를 가감없이 수록,증산 상제의 인간적인 진면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도전은 성언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편찬위원장인 안경전 종정의 강해와 충분한 각주및 사진·도표등을 싣고 있으며 증산도측은 현재 진행중인 영어 번역 외에 점차 세계 주요 언어들로도 번역,세계인류의 경전으로 자리매김할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인제대교수 권태완의 성남(명사의 고향:49)

    ◎청계산돌아 십리길 타박타박 걸어 등하교/초가집·등잔불이 정겹던 소박한 촌락/다리네고개 공동묘지 지날땐 “으시시”/서울시 지척인 내고향서 콩이나 심고 가꾸며 여생보내는게 꿈 내 고향은 수평선이 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바닷가도 아니요,기암괴석과 함께 산수가 수려한 멋진 곳도 아니다.말하자면 별로 특색이 없는 조용한 벽촌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듯이 서울 발치에 있으면서도 문명의 혜택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토박한 농촌에서 나는 태어났다. 지금은 눈앞에 경부고속도로가 달리고 등잔불은 전등으로 바뀌었으며 어디에나 전화를 걸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 버스까지 들어오고 있다. 이젠 도시의 문명이 부러울 것이 없다 할 만큼 그동안 크게 변화한 것이다.물론 초가집은 사라졌으나 집다운 집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데에서 아직도 이 동네의 어설픈 생활 수준을 살필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외부인의 비닐하우스가 일부 덮였을 뿐 농촌이면서도 농토를 놀리고 농사를 팽개친 현실이 그저 가슴 아프기만 하다. 이제 내 고향은농촌이 아니요,외부인이 잠자러 들락거리는 그러면서도 또 한 차례의 큰 변화를 기다리는 엉거주춤한 촌락이 되고 만 것이다.행정구역으로 볼 때에는 도시에 속해 있으나 그 모습은 여전히 시골이요,분당을 눈 앞에 두고서도 개발 제한 구역에 묶여 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그 예측을 불허하는 정중동(정중동)의 고요함이 감싸고 있을 따름이다. ○농촌모습 곳곳에 내 고향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3통이다.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자면 첫 고개를 넘게 된다.다리네 고개라고 하는 이 고개를 넘어서면 왼쪽에 도로공사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검푸른 청계산으로 끌고 가는 포장 길이 눈에 들어 온다.이 마을 길이 어린 시절에 내가 학교에 다니던 길이요,지금도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로서 마을 버스가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이 길을 따라 비닐하우스 숲 사이로 들어가서 구버러진 모퉁이를 한번 돌면 내 고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여기가 경기도 성남시로 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원래 이곳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금토리 내동이었다.옛날 어른들은 둔투리 안말이라 하셨고 (안동)권씨 양촌자손 안양공파 후손들이 대대로 살 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이 마을로 시집을 오시니까 양식을 넣어 놓을 만한 그릇조차 변변히 없었다고 한다.그래서 할아버지 잠방이의 다리를 잡아 매어 놓고 거기다가 보리쌀을 넣어 놓고 잡수셨다는 이야기다.그때야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가난하였다고 하거니와 우리 집에는 특별히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던 것 같다.할아버지께서 5대 독자이셨고 양자로 이어 온 집안인지라 그때는 농사를 짓고 사는 데 생산력이될 일손이 늘 부족하다 보니 무엇이고 축적될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남달리 부지런히 일하신 덕분에 나는 그래도 배고프지 않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던 것이다.일찍이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배웠고 서당에 가서 명심보감을 배우다가 국민학교에 다니느라고 판교까지 10리 길을 매일 왕래하였던 것이다.지금의 도로공사 자리가 그때는 공동묘지였는지라 하학길에 혼자서 그 앞을 지나갈 양이면 무서워서 힐끗 힐끗뒤돌아 보면서 뛰어 갔던 생각이 지금도 난다. 또,아버지는 12남내 중에 늦게 태어나시고 유일하게 살아남으셨으니,6대째로 독자가 되셨던 것이며 이렇게 우리 집안은 그야말로 자손이 늦고 귀해서 번창하지 못한 것이다.그러니 자연히 항렬이 높아져서 나는 같이 자라던 일가 아이들에겐 증조(증조)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같은 나이 또래에 종조할아버지가 되다 보니 그 아이들은 나를 꽹가리 할아버지라고 놀려대었고 어린 나에겐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가 싫었던 것이다. ○손이 귀햇떤 집안 지금은 나이도 들고해서 고향에 가면 일가들이 반기면서 대부(대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도 않을뿐더러 당연시되고 말았으니 어느덧 나는 동네 대부가 되고만 것이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때 고향을 떠나왔으며 다시 고향에 잠시 머무르게된 것은 6·25때였다.고향을 피란처로 삼았으며,이집 저집에 가서 얻어먹기도 하였다.의용군에 끌려 가지않은 것도 고향 덕분이며,고향의 인심이 나를 그렇게 숨겨준 것이다. 그러길래 나는 고향과끊임없이 숨쉬고 있으며,틈만 있으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나무도 심고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객지 생활을 하셨지만 말년에는 고향에 자주 드나드셨다.여러가지 묘목을 심으시면서 아버지의 이상향(이상향)을 가꾸시던 어느날,그 꿈을 채 이루지도 못한신채,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20년이 지난 오늘날,그 묘목은 제법 자라서 아버지의 산소는 물론,할아버지의 산소와 동네까지도 푸르게 하고있다.그때만해도 나는 아버지께서 나무를 심으시는 이치를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경제성이 없다고 만류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할아버지와 할머니,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산소를 모신 내 고향에 나는 지금 나무와 꽃을 심으면서 가신님과 속삭이고 있다. ○부친의 뜻 깨달아 언젠가 이헌조사장(금성사)이 김호길박사(포항공대)와 다녀갔는데,그는 한시 한수속에 내고향을 이렇게 그려냈다. 방권태완박사고리 지호금토격매연 일사귀래반무전 과우취미위수장 천운홍조범화선 금조종두하심작타일유민원계연 시문인생궁극의 청계산하송여년 금년에 소위 회갑을 맞이 했다.그동안에 쓴 글들이 모아져서 수상집이 되었고,가족과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조촐하게 저녁을 같이했다.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비닐하우스가 임시로 세워졌고,고향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가운데 술잔이 오가고 노래 소리가 울려나왔던 것이다.이 잔치에 초대된 손님은 바로 판교에 같이 다니던 낙생 국민학교 17회 동창생들이었다.어제의 코흘리개들이 모두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와 준것이 고마웠다.이렇게 내고향이 가까이 있는것이 나의 기쁨이요,자랑이기도 하다.이제 나는 내가 하고있는 봉사가 끝나는대로 고향에 가서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공덕비 건립 감사 성천 유달영선생께서 청계산 밑에서 태어났다해서 그 이름에서 「계」자를 따시고 「인」자를 붙여서 「인계」라고 호를 지어 주셨다.이에 부끄러움없이 그야말로 인계답게 여생을 살았으면 하는 것도 내 작은 소망중의 하나.그리고 동네 새마을회관 앞에는 「권태완 박사 공덕비」라고 새겨진 비가 서 있으니,내 어찌 고향 사람들의 따사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빚진 마음에서 헤어날 수 있으랴! 「고향!」이 얼마나 포근하고 편안함인가! 동양을 빼놓고도 독일말에는 옛고향(AltHeimat)이라는 멋진 말이 있다.그런데 영어에는 그런 말이 없으니 어찌 된 셈인지 나는 모른다.고향이 없는 영어권의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의 한구석이 비어 있으리라. □약력 ▲1932년 12월16일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출생 ▲서울대 화학과 졸업 ▲미 플로리다주립대 박사 ▲미 아이오와주립대 조교수 ▲KIST 책임연구원 한국식품개발연구원장 ▲인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대한화학회 한국식품과학회 회원 ▲저서 「한국식품 연구문헌총람」외
  • 공주 중호마을 반촌 탐방(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3)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기개가 첫 덕목” 3백년 이어온 선비정신/효종때 거유 이유태선생 후손 모여살아/“학문·덕 갖춘뒤도 때아니면 불출사” 일관/12대 종손 등 일제때도 한학공부… “학교교육보다 도리·예절이 중요” ○노인들은 상투 틀고 계룡산 산자락이 북으로 금강에 치달아 곰나루를 향해 넉넉하면서도 온화하게 팔을 벌린곳에 자리잡은 충남 공주시 상왕동 중호마을의 용문서원.등용의 옛마을로 계룡의 서기를 이어받은 우리의 선비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 당대의 거유로 명성을 높였던 초려 이유태(1607∼1684년)의 후손들이 오순도순 마을을 이룬지 3백년.반촌의 긍지를 이어온 경주 이씨 집성촌으로 20여가구가 모여 산다.공주시내가 지척이지만 아직도 노인들은 대부분 상투를 틀고 있으며 철저하게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선비의 기개를 가정교육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초려정신의 핵심은 선비로서 불출사의 기개를 강조하는데 있다.선비는 우선 학문과 덕식을 갖추고 그 다음일단 나가면 때를 좌지우지 할수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향에 돌아와 은거해야 한다는 정신이다.이를테면 진퇴를 분명히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몸소 실천,인효현소종 4대왕에 걸쳐 능참봉부터 사조참판·대사헌까지 모두 39가지의 벼슬이 주어졌지만 실제로 관직생활을 한것은 28세때 5개월과 30세때 6개월이 고작이었다. 그같이 짧은 관직생활에도 불구,그는 학문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당시 정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경세가로서 당대 호서산림 오현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았다.그는 금산 노동 태생으로 18세에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가 장년이 된후에는 사계의 아들 집과 교류하며 그들 부자로부터 예학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치국경세에 있어서는 율곡이이를 숭상했다.그에 학문세계를 율사연원으로 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초려는 병자호란후에는 덕유산중에 은거,모든 벼슬을 사양하였다.그후 효종이 북벌의 큰뜻을 품고 산림학자들을 불러모으자 결연히 상경하였다.그러나 조정은 시배들의 반목과 질시속에 온갖 주의주장만분분할뿐이었고 또한 청나라 사신의 위세는 극에 달해 있었다.그같은 분위기에서 친청파의 척결을 알리는 그의 논소는 조정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마침내 그는 다시 낙향했다. ○대사헌벼슬 물리쳐 그후 효종이 말년에 다시 밀지로 초려를 부르니 그는 북벌을 위한 구체적 국정개혁안으로 2만여언의 장문상소인 「만언봉사를 거의 완성해 가고 있을 때였다.그러나 그해(1960년) 효종은 승하하고 뒤이어 즉위한 현종은 왕명으로 만언공사를 제출케 했다.그 내용은 위민정치를 근간으로한 군사및 내정개혁사상을 삼고있다.그후에도 현종은 초려의 경륜을 사기 위해 벼슬을 높여 불렀으며 숙종때는 대사헌에 제수됐지만 불출사의 뜻은 완강했다.『나의 뜻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벼슬길 보다는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의 공직관이었던 것이다. 초려의 강직한 정신은 오늘날 후손들에까지 그대로 전수돼왔다.노인들은 상투등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가운데 후손들에게는 현대식 학교교육도 애써 가르치고 있다.단지 일제때 일본식교육은시키지 않는다는 고집으로 종손인 12대손 정우씨(52)와 그 또래의 집안 사람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그는 『우리 형제 다섯중 위로 셋은 학교를 가지 못했고 비슷한 나이의 사촌이나 육촌형제 가운데도 학교를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대신 그는 15세때 대학을 떼는등 한학을 공부했으며 초려의 책을 비롯,집에 보관중인 3천여권의 서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자식들에게는 초려가 남긴 유일한 친필족자글씨인 「징분항선 복례」(분한 생각을 경계하고,나쁜것은 고쳐 착하게 하고,예를 따라 좇으라)를 가훈으로 가르치며 학교공부를 시켰다.학교공부중에도 사서는 반드시 익히도록 했는데 이같은 집안 분위기에서 큰아들 상익씨(30)는 철학교수로,둘째아들 상욱씨(28)는 한문교사로 후학을 가르치는 교단에서게 됐다. 공주향교의 전교를 지낸 정우씨의 당숙 종언씨(70)도 이웃에 산다.그가 해석하는 오늘날 선비정신의 의미는 이러했다. 『선비가 박력이 약하고 경제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고하고 고집불통으로 비쳐지는 것은 잘못입니다.현대식 교육을 받기는 받되 인간의 도리를 먼저 알아야 하고 잘살아야 하되 나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그것은 이웃과 국가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행동철학을 먼저 배우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도 있습니다.부모나 국가지도자는 이신교자지종(몸으로 행해 가르치는 사람을 따른다)으로 자식과 백성을 가르쳐야 하고 숭조사상의 강조도 교육의 한 방편입니다.선비는 부자가 돼도 부자티를 안내고 빈궁해도 빈궁한 티를 안내야 하는 것이지요』 용문서원은 이같은 초려의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도장으로 오늘날 활용되고 있다.제사가 올려지는 사우인 명덕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돼있다.강당인 중화당(17평)과 재실인 존성재(〃)는 초려학연구를 위해 강의실과 침실로 제공된다.연구활동을 돕기위해 현대식 입식 부엌도 설치돼 있고 이동식 화장실,난방도 완비됐다. ○내사책 등 유품 전시 또 유물전시관인 징원당(16평)에는 초려의 저서와 함께 임금이 내린 내사책,이씨 가문의 재산분금록,9대손 성암철영의 항일옥중일기등과 초려의 상아호패와 제사날을 기록해 놓는 기일첩,과거문제 요약집인 강경첨통등 많은 유품들도 전시,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용문서원 건립및 유지 보수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이초로 기념사업회의 이종철회장(73·전공주교대회장)은 올해의 역점사업으로 장서각 건립을 꼽고 있다.현재 3천건에 달하는 책들이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기 때문에 이의 분류,정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이를 위한 1억원의 충남도예산중 4천만원의 삭감으로 나머지 재원마련이 가장 큰 현안이기도 하다.국역작업등 서둘러야할 과제는 많지만 현재 1백66명의 회원들이 연회비 5천원씩 내는것으로 충당하는 기념사업회의 예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회장은 『많은 학자들이 초려사상에 대해 자발적인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그러면서 『지난 연말 부산대에서 다섯명의 교수·학생들이 와서 나흘동안 목록작업을 하고 갔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도 기념사업회측은 연구를 위해 오는 학생들에게 시설을 무료료 사용케하고 있다.3년째 겨울이면4,5일씩 초려학 연구를 위해 이 서원을 찾고 있는 20여명의 한남대 대학원생들이 이달 중순 올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 중화당과 존성재는 벌써 깨끗이 치워 놓았다.형편이 넉넉하다면 그들이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식사까지 제공했으면 좋겠지만 형편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장손 정우씨의 마음을 늘 안타깝게 하고 있다. ◎「만언대사」 상소한 당대경세가/후손들이 서원열어 초려정신 대이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조선시대 최대의 국란,병자호란을 만난 것이 1636년(인조14년) 초려 이유태가 29세 되던 해였다.임진왜적이 물러나 대위국교가 재개된지 겨우 30년,또 다시 북쪽의 외적이 몰려와서 나라 안이 쑥밭이 되고 국왕이 삼전도에 나아가 수모를 당하는 그런 역사를 만나게 되었다.국론은 크게 양분되고 당쟁의 고질병이 온 몸을 덮치는 그러한 시대이기도 하였다.치국경세가 그 어느때보다도 시급한 때에 초려는 평소 품었던 뜻을 만언소라는 글로서 국왕에게 구민·구국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이 상소문에서먼저 농촌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농촌을 떠난 농민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 황폐화된 토지를 일구게 하여야 오늘의 정치혼란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제의하고 고른 세제의 확립과 면세특권층의 일소를 역석하였다.또 농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향약을 실시하여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오가작통으로 범죄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육제도의 일대쇄신을 주장하여 양반의 자제들만 교육하는 제도를 고쳐서 모든 양인의 자제를 학문기관에 보내게 하여 그 능력에 따라 직업과 신분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획기적인 제언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고루한 지도층은 자신의 권익만을 생각하고 그의 개혁안을 묵살하였다.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탄핵하여 유배하고 말았다.이 유태는 그 뒤 스스로 초가집(초려)이라는 자신의 호와 같이 모든 관직(이조참판·요즘의 내무차관직)을 마다하고 향리에 웅거하여 나가지 않았다.그 유명한 초려의 불출사 선비정신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가 남긴 「초려집」 26권은 이유태의 선비정신을 담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오늘에 되살려야할 국민정신문화이다.다행히 최근 충남 공주 향리에 그 후손들이 용문서원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외래문화에 질식할 것도 같은 오늘의 세대에 이보다 더 참신한 청량제는 없다 할것이다.
  • “핵공포 해소의 역사적 거보”/미­러 「핵감축협정」 각국 반응

    ◎콜·메이저 “이행 협조”… 우크라선 “준수 유보”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3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고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인류는 핵무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됐다』며 크게 만족감을 표시. 옐친 러시아대통령도 2단계전략무기감축협정을 「희망의 조약」이라고 명명하면서 『후손들에게 보다 안전한 세계를 물려줄 수 있게됐다』고 평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이번 협정체결을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정작 자국이 이 협정을 준수할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협정내용을 준수하겠다는 지금까지의 약속과는 달리 구소련과 러시아가 체결한 핵감축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표명을 하지않고 있다.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외교고문인 안톤 보우테이코는 새협정의 체결이 자국의 핵무기에 대한 입장변화를 가져오지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이번 협정에 참여한 러시아측 협상대표들이 우크라이나를 대변할수 없다고 강조. 레오니드 크라프츠크대통령도 앞서 자국이 서명한 1단계전략무기 감축협정에 대해서는 여건이 성숙하면 의회가 비준절차를 마칠 것이나 이번 2단계협정은 우크라이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강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만프레트 뵈르너사무총장은 이번 협정에 대해 『핵무기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적인 지전』이라고 평가하며 이를 크게 환영.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부시 미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 서명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2일 양국 대통령 앞으로 발송. 메이저 총리는 이 메시지에서 양국의 이번 협정 체결이 『위대한 성취』이자 『핵전쟁의 위협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찬양. 메이저 총리는 이 메시지에서 양국의 이번 협정 체결이 『위대한 성취』이자 『핵전쟁의 위협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찬양. 메이저 총리는 이 협정이 『전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전세계가 양국 대통령에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미­러시아간의 역사적인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 조인에 대해 『세계를 보다 안전한 길로 이끌 새롭고 중요한 진전』이라며 환영. 콜총리는 또 『미국과 러시아는 이번의 광범위한 협정으로 옛 동­서 갈등의 나머지를 제거하고 협력을 기초로 새롭고 더욱 안정적인 세계 질서를 위해 일한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고 평가. 콜총리는 핵무기를 보유한 구소련의 다른 공화국들에 대해서도 핵확산금지협정에 따라 1,2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정 이행을 보장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촉구. ○…지난해까지 무기감축협상의 선구자역할을 했던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은 이번 조인과정에서 완전히 잊혀진 인물로 전락. 부시대통령은 고르바초프와 함께 2단계 협정 기반 마련을 위해 일했음에도 불구,협정 서명후 고르바초프는 제쳐놓은채 옐친 및 다른 러시아관리들의 역할에 대해서만 찬사.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아나톨리 체르냐예프는 『이는 놀라움과 함께 유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며 『부시는 특히 더이상 잃을 것도 고르바초프의역할을 언급하는 것으로 외교적인 논란을 일으킬 우려도 없기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고수하리라 기대했다』며 섭섭함을 표시. ○…일본정부는 4일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가 전략핵을 3분의1로 감축키로 하는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한데 대해 「세계의 핵군축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로 국제적인 안전보장에 기여하는 합의」라며 높이 평가. 일정부는 특히 2단계 협정의 경우 1단계협정 시행을 토대로 하고있기 때문에 이번 합의가 실효성을 갖기위해서는 1단계 협정을 비준하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의 비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외교 경로를 통해 이들 국가들로 하여금 국내절차를 밟도록 거듭 호소할 방침. 일 정부는 또 핵무기 해체를 위해서는 거액의 비용이 필요한데다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라늄등 핵폐기물의 처리도 문제시 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협력을 표명할 방침이다.
  • 우리는 누구인가(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1)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우애·애타심은 백의민족의 「제1덕목」/반일·시샘벗고 「인정의 사회」 복원할때 「민족성」이나 그 민족의 정신,또는 「국민의 의식구조」는 고정불변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생활의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다.일단 형성된 민족성과 정신도 생활조건의 변천을 따라서 변화하기는 하나,그 변화의 속도는 대체로 느리다. 우리 한국인의 성격은 가족이 삶의 단위를 이룬 농경사회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었다.우리 조상들은 혈연과 지연을 유대로 삼고 소규모의 집단 생활을 했으며,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자급자족의 경제생활을 영위하였다.그들은 조손 대대같은 고장을 지키고 살았으며,먼곳의 사람들과 만나서 이해관계의 갈등을 일으킬 일은 거의 없었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 끼리 또는 통성명만 하면 서로 알만한 사람들 끼리 부락을 이루고 오순도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사회는 정의 사회였다. ○역사·생활통해 형성 농촌이 본래 상부상조하는 소규모의 사회이므로 그들 사이에서는 인정이 발달하게 마련이었고,자급자족에 가까운 경제생활을 영위했던 까닭에 계산하고 따지는 기능으로서의 합리적 정신의 발달은 뒤떨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가족주의적 농경사회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던 우리조상들의 의식구조 안에서 이지에 대한 감정의 우세가 현저한 특색으로서 뿌리를 내렸다.그리고 이 특색은 산업사회 또는 정보사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후손들의 의식구조에 있어서도 여전히 그 기조를 이루고 남아있다.바꾸어 말하면,오늘의 후손인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감정이 우세한 기질이 남아있다. 감정이 우세한 우리 민족의 기질은 옛날 농경시대에 있어서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유리한 조건의 구실을 하였다.농경사회는 인구의 밀도가 적고 대체로 평화로웠던 까닭에,그곳에서 발달한 감정은 우애와 동정 또는 친근감 따위의 인간 상호간의 융화를 조장하는 부류의 정서였다.다시 말하면,농경사회에서는 감정이 우세한 기질은 인간의 친화를 돕는 따뜻한 정서로서 나타날 경우가 많았다. ○이성보다 감성 우세 옛날의 전통사회에서도 감정 또는이해의 대립에서 오는 갈등의 문제는 있었다.그러나 전통사회가 경험한 갈등의 문제는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사이에서 일어난 비교적 단순한 성질의 것이었다.따라서 냉정한 분석으로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평소에 쌓인 혈연의 정 또는 지연의 정에 호소함으로써 갈등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부정적 사고 추방을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경우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지금 우리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고 있으며,감정이 우세한 우리들의 기질은 친화의 정서의 모체가 되기보다는 도리어 시샘과 미움 또는 공포와 분노 등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은 격정의 근원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현대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그 규모가 크고 내용이 복잡한 까닭에,혈연의 정 또는 지연의 정에 호소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 한국은 지금 갖가지 어려운 문제와 당면하고 있다.이 어려운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내일이 결정될 것이다.우리는 우리들의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고,현명한 대처를 위해서는 몇가지 정지작업이 앞서야 한다.그 정지작업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우리들의 의식구조의 약점을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기본적 약점으로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①정열에 비해서 이지의 힘이 약하다는 사실과 ②근래에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부정적 정서의 발달이 현저하다는 사실이다.정열도 일종의 힘인 까닭에 그것이 강하다는 사실은 어떤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여 그 자체로서는 바람직한 일이다.다만 정열은 어느 방향으로도 달려갈 수 있는 불길한 까닭에,그 기운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줄 이지의 힘의 도움이 필요하다.그런데 오늘의 우리 한국인의 경우는 정열의 불길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한 이지의 힘이 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열과의 균형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강한 이지의 힘을 길러야 한다.이지의 힘을 기른다 함은 사리에 맞는 판단력을 함양함을 의미하며,사회에 맞는 판단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깊게 그리고 넓게 생각하는 습성을길러야 한다.우리 한국인은 충동 또는 직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에,행동에 앞서서 깊고 넓게 생각하는 신중성에는 부족함이 있다. 비록 생각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자신만의 이익 또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서 생각할 경우에는 사리에 맞는 판단에 이르기는 어렵다.사리에 맞는 판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타인의 권익과 공동체의 번영까지도 고려하는 공정한 시각과 원대한 안목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그릇된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생각을 많이 할때,그것을 우리는 이지적 사고라고 부르지 않는다.이지적 사고를 위해서는 바르게 살고자 하는 도덕적 의지가 앞서야 한다. ○공동체 번영이 중요 유교사상이 사람들의 의식구조 속에 깊이 침투해있던 옛날의 우리 조상들에게는 바르게 살고자 하는 도덕적 의지는 대체로 강한 편이었다.그러나 근래에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들에게는 저 도적적 의지가 매우 약화되어 있다.바르게 살고자 하는 도덕적 의지를 되살리는 일은 우리가 앞으로 밝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역점을 두어야할 과제이다. 바르게 살고자 하는 도덕적 의지는 타인을 사랑하는 친화의 정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타인에 대한 사랑이 적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고,이기적인 사람은 도덕적 의지가 약하게 마련이다.그러므로 우리 민족성의 바탕을 이루는 감정 우세의 기질이 미움·시새움·분노 등 부정적 정서로 발전하지 않고,동정·친근감·우애 등 긍정적 정서의 함양으로 이어지도록 여러가지 노력이 이루어져야한다. 이 어려가지 노력 가운데서는 평화로운 사회 분위기의 조성을 위한 노력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온화한 정서를 심어주는 교육적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 정치인의 도덕성,지조와 채임(사설)

    새한국당 이종찬대통령후보의 중도 사퇴와 국민당 합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심경은 착잡하다.지난 봄이래 수없이 언행을 바꾸어 신뢰성을 의심받았던 그의 이번 처신은 변신과 굴종의 절정을 보는 것 같다.이젠 실망하기에도 지쳐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한때 그를 아꼈던 사람들로부터는 분노와 폭언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도대체 정치인의 처신엔 양식도 윤리도 없단 말인가.정치인으로서 국민의 눈을 의식하는 최소한의 양식만 가졌더라도 그처럼 식언과 변신을 거듭하는 행태는 없었을 것이다.우리는 이씨에게서 고뇌를 발견하지 못한다.그의 행태는 사려가 깊지 않았다는 인상을 늘 주었다.그의 우왕좌왕한 정치행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우리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음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이씨는 유권자들을 향해 자신이 후보를 사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그러나 그의 호언은 결국 종전의 예처럼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하언과 변신을 기억하고있다.그는 민자당대통령후보경선에 출마했다가 자유경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애매한 이유로 경선을 보이콧했다.그는 민자당 탈당의사를 번복하고 당잔류를 선언하면서 김영삼지지를 다짐했다가 50여일만에 탈당했다.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정치권 진입을 저지한후 새한국당을 창당,출마했다가 재벌당이라고 배척해오던 국민당과 합당했다. 그의 출마 포기는 세확보와 지지층 확산이 여의치 않고 여론조사에서 신정당 박찬종의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이 나타나자 결심했다고 한다.자신의 실세를 호도하고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자구책이라는 것이다.국민의 눈밖에 났던 이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고전하리라는건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던 일이다.이씨가 그걸 몰랐다면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 있었거나 정치지도자로서의 통찰력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지난 총선때부터 입만 열면 재벌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며 정주영씨를 맹렬히 비난했다.스스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내세워 깨끗한 정치를 주장했던 그가 어떻게 국민당으로 들어갈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는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양금청산을 주장해온 새정치 리더의 한사람이었다.그는 이번에 정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양금청산을 외쳤다.그러나 세대교체에 대해선 침묵했다.정후보는 70대고 양금씨는 60대다.그의 세대교체론은 세대후퇴론으로 변질된 것인가,아니면 실종된 것인가.어느 섣부른 세대교체론의 침몰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 불교인의 미래지향적 삶 제시/한국불교연구원,국제불교학술포럼 개최

    ◎불교학·사회적역할 과감히 버러야/야마오리/법신불보다 종교를 더 숭배 말도록/이기영/종교제국주의의 콤플렉스는 잘못/정병조 공산주의의 붕괴로 초래된 이데올로기시대의 종언은 종교시대의 도래를 이끌것인가.가치관이 전도되고 불의가 판을 치는 혼탁한 사회에 종교는 어떻게 그 생명력을 지켜갈 것인가.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는 시점에서 불교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이고 불교도들의 미래적 삶의 지표를 제시하기 위한 국제불교학술포럼이 한국불교연구원(이사장 이기영)에 의해 4일 타워호텔 젤코바홀에서 개최됐다. 이 포럼에서 발표된 주제는 ▲불교에서의 삼보(다카사키 지키도·도쿄대 명예교수) ▲불교의 현재와 가능성(야마오리 테츠오·국제일본문화연구소 교수) ▲귀의,사회에 있어서 불교의 역할(루 랭카스터·미캐리포니아 버클리대교수) ▲불교도,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이기영·한국불교연구원장)등.이어서 정병조·권기종·이영자(동국대)노권용·한기두(원광대)프랑코 테데스코교수(단국대)성타스님(불국사)등이 토론자로참석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날 가장 관심을 모은 주제는 야마오리교수의 발표로 그는 불교에 대한 불교도들의 「배반」과 불교를 불교학의 얽매임으로부터 또 사회적 역할로부터 해방시킬것을 주장했다.그는 불타와 마지막 여행길에 올라서 불타의 세차례 암시를 깨닫지 못하고 수명연장 건의를 외면함으로써 불타의 열반을 재촉한 제자 아난다를 예수의 존재를 세번 부정했던 베드로에 비기면서 『아난다의 후손인 우리들은 그 배반의 원점에서부터 새로 출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에는 본래 사회적인 역할과 같은것이 없었기 때문에 불교가 사회적 역할로부터의 얽매임에서 스스로 해방될것을 촉구했다.또 불교와 불교학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불교학은 「깨달은자 불타」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우리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속인 석가」의 모습인 만큼 불교학 역시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기영교수는 살아있는 부처님과 같은 완성된 각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자각의 가능성보다 맹종의 가능성이 많고 반면에 중생들과 떨어져 혼자살며 혼자 깨달았다고 자처하는 독각의 무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그는 또 불교는 타종교에 대해 대립의식이나 정복의욕을 갖는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종조를 법신불보다도 더 훌륭한 분으로 숭배하는 종파주의적 태도 역시 지양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토론에 나선 정병조교수(동국대)는 상주적으로 보여지는 모든 진리는 타파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오늘날 종교제국주의적 다종교상황 속에서 불교인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콤플렉스를 지적했다.고아원·양로원등의 숫자로 종교의 사회화를 논하는것은 무의미한데도 불구하고 불교인들이 그 수치비교에서 당혹감을 갖는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그는 경로사상과 조상숭배를 강조해온 불교의 관점에서는 그같은 별도의 사회적 구제시설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따라서 불교의 기독교화를 철저히 경계해야 하고 찬불가를 비롯한 몇몇 불교의례의 변화,민중불교에서 차용하고 있는 흑백논리와 해방신학적 발상등에 경계를 표시했다.
  • 청백리 조경선생 문집 발간

    ◎인조4년 급제,우참찬까지 지내/시가·소·일 견문기 동사록 등 수록 조선 중기 청백리의 사표로 추앙받던 용주 조경선생(1586∼1669)의 각종 시문·서한·여행기등 생전의 저술을 한데 모은 문집이 후손들에 의해 발간됐다.모두 4권으로된 「용주선생문집」은 3권까지는 선생의 글을 모았고 나머지 한권은 조선왕조실록등에 실린 선생에 대한 기록과 우리나라와 일본학자들의 논고를 모은 것이다. 선조19년 출생한 조경은 소년기에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을 겪었으며 인조4년(1624) 사마시 급제 이후 인조반정 병자호란등 격동기에 관리로 봉직하면서 그 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다.따라서 이는 당시 우리 조정의 움직임이나 중국 일본과의 국제관계등을 파악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643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보고 느낀 견문록인 동사록은 그의 대표작.이 가운데는 그가 당시 일본의 문부대신격이자 도쿠가와 막부의 실력자이던 임도춘과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며 오간 서한을 공개하고 있다.그 편지마다에는 상무보다는 문치로백성을 다스릴 것을 간곡히 권유하는 내용들이 있어 당시 일본측의 순화와 조선과의 선린관계유지에 그가 많이 기여했음을 알수 있다. 이에앞서도 그는 1636년 병자호란때 사간으로 있으면서 척화를 주장했고,이듬해에는 일본에 청병하여 청군 격파를 상소하는등 명의존 외교 탈피및 일본과 선린의 새외교론을 펴왔다.대제학·형조·예조·이조판서를 거쳐 1648년에는 우참찬의 지위에까지 올랐다.8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그는 헌종때 영의정에 추서되었고 숙종때는 청백리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원래 문집은 총23책으로 돼있었으나 6·25동란으로 4책이 행방불명 됐던 것을 한양조씨 찬성공파 10대손인 학윤씨(76)가 백방으로 수소문끝에 고려대 도서관에서 발견,현대적 장정으로 완간케 됐다.이 책에는 시가가 5백48수,왕께 올린 각종소 76건,묘지명 제문등 80편,기타 40편과 또 동사록에 1백10편등 모두8백54편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다.
  • 한그루 나무/김희수 청주대교수 문학평론가(굄돌)

    고운 단풍으로 물들었던 산의 나무들이 이제 흰눈으로 단장하게 된다.이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가을 단풍을 보면 생각나는 한폭의 회상이 있다.지난 일제 식민지 시대의 헐벗은 우리 산의 영상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재산 몰수 당하고 혼과 성명까지 탈취당한 그때 우리의 산은 마치 우리들의 허망했던 마음처럼 민둥산이었다.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푸르게 들어서지 못한 그 광경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들 스스로를 가여워 할 지경이었다. 마음도 산도 빈털터리였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산은 그 옛날의 헐벗은 모습을 말끔히 씻고 성장을 하고 있다.가을이면 가을 단풍으로 겨울이면 백설의 의상으로 여름이면 무성한 정열로 그리고 봄이면 파아란 눈엽으로 철철이 우리 산은 계절에 따라 찬란하게 단장을 한다.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의 표상이다. 「육림의 날」을 맞는 날 단풍으로 아름다운 산이 더욱 유심히 신기하게 보여지기도 했다.우리는 봄에 나무를 심고 그 심은 나무에 비료를 주고 잡목을 솎아내고 가지를 치고 해충구제 작업을 하고 그리고 조림목 월동관리를 하기 위해 매년 11월 첫째 토요일을 육림의 날로 정해놓고 있다. 우리는 봄의 식목일과 이 가을의 육림의 날을 연계시켜 우리들의 산야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간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 마음에 사랑과 부와 평화를 심는 일이다.더구나 요즈음 지구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현상으로 지구 종말을 예고하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 강산을 아름답게 한다는 차원 뿐 아니라 우리가 모두 우리 지구의 알뜰하고 책임있는 관리자가 되어야한다.그리하여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살기좋은 땅을 물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무는 자연의 한 상징이어서 요즈음 같은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나무와의 교감은 바로 인간이 자연의 속성을 되찾아가는 일이 된다. 오늘날 인간은 기계문명의 중압과 유물화속에 진정한 인간의 실존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정든 농촌을 버리고 농토를 버리고 정든 집 평화로운 땅을 버리고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든다.그 도시속에서 사람은 마치 기계의 한 부품처럼 살아가고 있다.이럴때 자기체내에서 자신의 진정한 본성인 자연을 체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그루 나무를 심고 그것을 소중히 가꾸어가야 되겠다. 같은 사람인데도 사람을 만나면 거북해질 때가 있다.그러나 나무는 언제 보아도 거북하거나 어렵지 않고 반갑다.나무와 나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기 때문이다.한 그루 나무도 화분 하나도 없는 현대인의 아파트 생활이 세상을 메마르게 한다.나무는 신이 만든 선하고도 미학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 재불교포 신근수씨,「안토니오 코레아전」 집필

    ◎이탈리아 「코레아상」 전기 엮는다/임란때 이정착 한인후예 삶 조명/새달 국내 출판… 4백년가계사 밝힐 계획 파리에서 물랭 호텔을 운영하는 신근수씨(46)가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전기를 쓰고 있다.가제가 「안토니오 코레아」인 이책은 오는 12월말 국내에서 출판될 예정이다.신씨는 전기의 주인공인 안토니오 코레아씨(51)와 지난달말 약정서를 작성,전기를 비롯한 그의 생애와 관련된 모든 문예창작품(소설 희곡 시나리오 방송극본등)집필의 독점적 권리를 확보해 놓았다. 안토니오 코레아는 원래 코레아라는 성씨의 시조로서 4백년전 임진왜란때 왜군에 붙잡혀 이탈리아까지 끌려가 알비에 뿌리박은 최초의 한국인으로 추정되고 있다.오늘날 세계각지에 퍼진 코레아씨중 캐나다에 살다가 시조 안토니오 코레아에 관한 모든 것을 찾아내는데 평생을 바치려고 조상의 고향인 알비에 돌아간 사람 또한 안토니오 코레아이다.이 후손이 신씨가 쓰고있는 전기의 주인공이다.신씨는 후손 안토니오의 생애와 함께 그의 핏줄을 거슬러 올라가 4백년에 걸쳐한 가족사를 전기에 담을 계획이다. 신씨는 『두 안토니오의 생애만큼 극적인 소재는 드물다.전기를 끝낸 뒤 곧 드라마도 집필하겠다』고 말했다.
  • 공식득표전… 공정대결 다짐/대선일 공고… 각당 움직임

    ◎“필승 목표달성 최선”… 지구당에 독려전화/민자/조직점검 완료… 안산·시흥서 유세에 돌입/민주/장비운영·전문연사 등 연설지원단 발대/국민 14대 대통령선거가 20일 공고됨에 따라 입후보예정자들이 후보등록과 함께 공식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각 후보들은 이날 선관위에서 후보등록을 마치자마자 일제히 유권자 상대의 득표활동에 돌입,전국이 선거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의석수로 순서 결정 ▷선관위◁ 이날 상오9시 대통령선거일 공고내용이 게재된 관보가 도착한 즉시 5층 후보자등록접수처에서 미리 와있던 김영구 민자·한광옥 민주·김효영 국민당 사무총장과 허석새한국당사무차장순으로 후보자등록신청서를 접수. 이들은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접수하자며 한때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모두 9시전에 도착했다면 의석수대로 해야한다』는 선관위측의 설명에 따라 정당추천장·후보자본인수락서·호적초본·신원증명서등본등 6종의 구비서류와 기탁금 3억원을 제출한뒤 밝은 표정으로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김민자당총장은 접수가 끝난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등록을 마쳤다』고 소감을 피력하며 『앞으로 우리당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겸허한 자세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거법을 준수,깨끗하고 당당하게 선거에 임하겠다』고 다짐. 한민주총장도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이번 대선을 공명하게 치러야한다는 국민의 뜻을 실천하겠다』고 강조. 김국민총장은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공명선거를 솔선수범해 이번선거에서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피력했고 허새한국당사무차장도 『국민들은 지금 썩은 정치판을 바꿔야한다는 열망을 갖고있다』고 역설. 신정당은 이날하오 다섯번째로 후보자등록을 접수.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이들 5개 정당 말고도 진리평화·친민·대한정의당등 3개정당이 더 있는데 선관위측은 늦어도 22일까지 후보자등록을 끝마칠 것으로 예상. 이밖에 무소속출마를 위해 선관위에서 추천서를 받아간 예상후보자는 백기완·김옥선·김동주씨등 모두 8명으로 파악. ○요원들 마무리 교육 ▷민자당◁ 김영삼총재는 이날 상오9시30분 서울여의도 당사에서 밝고 자신에 찬 표정으로 출마의 변을 밝히면서 28일간의 대선 대장정에서의 승리를 다짐. 김총재는 한국병을 치유하고 신한국을 건설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병을 고치는 의사는 깨끗해야 하고 경험이 필요하며 건강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나는 그런 의사의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피력. 정원식선대위원장도 이날 당사 종합상황실에서 전국 지구당으로 연결된 동시전송시스템(FMS)을 통해 「당원에게 드리는 글」을 전송한뒤 경기·강원·전북·울릉도등의 지구당 간부에게는 전화를 걸어 현지분위기를 보고받고 선거운동을 독려. 정위원장은 이 글에서 『이 나라의 내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우리당의 승리로 귀결될 것임을 확신하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 한편 김영구사무총장은 전국 지구당의 선거운동을 지도·감독할 「당무지도반」요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는등 마무리 점검. ○9차례 대규모 집회 ▷민주당◁ 이날 상오 서울 마포당사에서 김대중후보와이기택선거대책위원장등 주요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후보등록신청서 서명식을 갖고 김후보의 기자회견을 통해 「출마의 변」을 밝히는 한편 선거대책상임위를 열어 조직점검을 마무리하는등 발빠른 움직임. 한편 이날 선대위상임위에서는 사고지구당인 서울 마포을지구당 조직책에 전국구 김충현의원,경기 양평·가평지구당선거대책위원장에 윤호중씨를 임명,전국 2백37개 지구당 가운데 박령식의원이 탈당한 경기 부천남지구당을 제외한 2백36개 지구당의 조직책 선정을 완료. 민주당은 또 21일 부천을 시작으로 22일 청주,28일 대구,29일 마산,12월5일 대전,12월6일 부산,12월13일 서울,12월16일 수원,12월17일 인천등에서 모두 9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결정. ○경제 활성화에 역점 ▷국민당◁ 정주영후보는 이날 상오 서울 광화문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나라 경제를 활성화시켜 후손들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표를 줄것』이라며 『과반수인 1천2백만표를 얻어 승리하겠다』고 기염. 국민당은 이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어대선승리를 위한 총력경주를 결의한데 이어 이날 하오에는 서울 풍납동 중앙병원광장에서 주요 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후보자반 25명,중진반 30명,지구당반 79명등 1백34명의 전문연사와 2백50여명의 장비운영요원으로 구성된 유세지원반 발대식을 개최. ○상황실 설치 등 분주 ▷새한국당◁ 이날 당무회의를 열고 선대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선거상황실도 설치하는등 선거체제를 갖추기 시작. 이종찬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본인은 정통민족세력의 적자로서 우리의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것처럼 이제 제2의 구국운동을 펼쳐나간다는 엄숙한 사명감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 ○기탁금 어렵게 마련 ▷신정당◁ 박찬종후보는 20일 상오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선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한글교육을 받은 한글세대 1기생이 최초로 대통령으로 탄생되는 민족의 기쁨이 전세계에 전파되기를 바란다』고 역설. 박후보는 19일 밤까지도 후보등록기탁금 3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곤란을 겪다가 20일 새벽 가까스로 기탁금을 조달,하오에야 후보등록을 하게됐다고 당의 한 관계자가 설명.
  • 민자 신경제구상속의 개혁의지(사설)

    경제개혁을 골자로 한 민자당 김영삼총재의 신경제구상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김총재의 신경제구상은 현재의 우리경제를 위기상황으로 진단,경제 구석구석의 단호한 개혁없이는 상황돌파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지금 우리경제는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바탕마련이 필요하며 경제를 둘러싼 각종 제도는 물론 의식개혁을 통한 경제개혁이 그 바탕이 돼야한다는 것이 신경제론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신경제가 추진할 중점 과제는 성장잠재력의 확충,국민생활의 질적향상,국제경제사회에서의 위상강화이며 경제에 자율성과 일관성 투명성 원칙의 철저한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상황과 관련,민자당의 신경제구상의 방향과 골격은 많은 공감을 받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다시 뛰려고 하는 노력의 결여,민주화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욕구분출과 집단이기주의,그로인한 성장잠재력의 침식은 그동안 많은 국민들로부터 우려를 자아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구상의 내용이 대통령선거를 앞둔 공약차원으로만 이해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김총재가 그 구상실현에는 국민의 희생이 요구된다고 밝힌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땀을 흘리지 않고는 경제를 새롭게 도약시킬 수 없다고 한 그의 발언은 국민의 고통분담을 강조한 것으로 인기에 영합한 공약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굳이 신경제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금 새롭게 뛰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선진국들은 보호주의 색채를 더욱 짙게 하고 있고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저평가했던 후발개도국들은 이미 우리를 추월했거나 바싹 뒤쫓아오고 있다.그럼에도 새로이 경제를 하려고 하는 의식도 별로 보이질 않는다.열심히 뛰어도 현재위치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결과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경제강국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고 굳건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다만 여기에는 국민 모두의 참여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민의 참여를 끌어내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그러자면 땀흘린 만큼의 공정한 배분도보장돼야 하고 우리 경제의 암적존재와 같은 불로소득 계층의 척결도 있어야겠다.이것이 바로 경제정의의 실현이다.
  • 코레아씨 내한초청 씁쓸한 뒷맛/박대출 사회2부기자(오늘의 눈)

    문화부는 지난해부터 조국을 모른채 살고 있는 해외의 우리 핏줄들을 대상으로 「한민족 뿌리찾아주기 운동」을 펴고 있다. 4백년전 임진왜란후에 이탈리아로 건너간 한국인의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는 현지 「코레아」씨들의 집성촌에 살고있는 안토니오 코레아씨(51)를 초청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당국이 짜놓은 코레아씨의 「조국나들이」일정은 뿌리찾아주기와는 동떨어지게 너무나 형식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인민속촌 아산현충사 관람과 몇차례의 만찬등 통상적인 외국인들의 관광코스 답사일정이 고작이다. 코레아씨가 입국하던날 김포공항에도 문화부관계자는 한명도 나타나지 않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만 배포,생색내기에만 급급했다. 이날 공항에 나온 우리측 관계자는 산하단체의 과장 한사람이 고작이었다. 이같이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와는 달리 코레아씨가 입국해서 들려준 첫 마디는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 살고있는 동네에 허물어진 교회터가 있는데 그 지하의납골당을 발굴,조사해 보면 한국인 시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했다.이번 기회에 인류학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한국인의 후손임을 확인받고 싶은 심정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지난 67년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감동을 느꼈다』면서 그 이유를 강인한 민족성을 지닌 한국인과 같은 핏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록 외모는 서양인지만 아직도 우리의 시골사람처럼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는 그가 이번 방문으로 그토록 애태우던 할아버지의 나라임을 확인하고 고향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을까. 어렵게 조국을 찾아도 어느 누구도 반갑게 맞는 사람없이 겉치레 관광일정으로 일관,여기가 자신의 뿌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채 조국과의 일체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해외여행 한번 다녀가는 기분으로 돌아갈게 뻔하다. 문화부의 「한민족 뿌리찾아주기 운동」은 지금부터라도 치밀한 계획과 과학적인 접근방법으로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의 핏줄을 찾아내 그들에게 뿌리의 자부심과 조국의자랑됨을 심어주는데 한치의 빈틈도 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 남도의 대표적 민요/진도 아리랑/전승·발전운동 “한창”

    ◎「보존회」,육지정서 혼합으로 원형퇴색따라 발벗고 나서/마을잔칫집 다니며 가사 7백여종 발굴/경창대회·순회교습통해 전승자 육성/타지인에 알리기위한 「아리랑 비」도 곧 건립 애절한 가락과 해학 넘치는 노랫말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대표해온 아리랑타령.그 가운데서도 진도아리랑은 남도특유의 한(한)과 섬사람들의 낭만이 서려있어 대표적인 남도민요로 손꼽히고 있다.그러나 진도연육과 함께 육지문화가 섬사람들의 정서에 혼합되면서 진도아리랑원형이 퇴색해가자 「진도아리랑타령보존회(회장 박병훈·56)」가 이의 전승·발전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보존회회원은 향토사간인 박회장을 비롯,정회원 17명과 준회원 14명등 모두 31명.이들은 요즘 진도아리랑의 유래를 찾고 가사를 발굴하는등 보존·전승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마을 잔칫집등 놀이마당이 열리는 어느곳이나 필기도구를 지참하고 찾아다니며 할머니들이 즉흥적으로 불러내는 가사를 채록하는 것도 이들의 차지다.회원들이 그동안 찾아낸 가사만도 7백여종이나 된다.이들이 보존회를 만들고 발굴·조사활동에 나서던 85년의 80여가지에 비하면 엄청난 양이다.이들은 이를 모아 「진도아리랑타령가사집」전3권으로 펴냈다. 격년제로 열리는 군민의날 행사에서 「진도아리랑 경창대회」를 열어 입상자 3명씩을 뽑아 아리랑 전승자로 육성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보존회는 또 지난 88년 서울 「모임아리랑회」주최로 열린 제1,2회 아리랑제에서 진도아리랑 발표회를 여는등 지금까지 1백50여차례에 걸쳐 서울·부산·대구·광주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공연을 갖고 진도아리랑을 전국에 알리고 보급하기로 했다. 특히 이고장 후손들에게 아리랑의 맥을 이어갈수 있도록 매년 2차례씩 관내 초·중학교를 돌며 「진도민요 순회교습」도 열고 있다. 이와함께 이고장을 찾는 관광객이나 타지인들에게 진도아리랑을 알리기 위해 추진중인 「진도 아리랑비」건립은 현안 역점사업이기도 하다. 지난 90년 제2회 전남 향토문화제에서 1백만원을 수상한 보존회는 회원들의 갹출금 1백만원등 모두 5백만원의 예산도 이미 확보,올 안에 아리랑비의 위치,문안 등의 선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건립에 들어갈 예정이다. 보존회가 현재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진도아리랑의 무형문화재 지정과 전수회관 건립. 회원 한영심씨(63·여)는 『아리랑은 그동안 잡가(잡가)로 천시,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게 사실』이라며 『일부 아리랑을 국악인들만의 전유물에서 대중적 가락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지정등 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재를 털어 진도아리랑비를 세우려는 것도 바로 이런대 큰 뜻이 있다고 박회장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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