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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첫 어린이 환경소송 승소 比변호사 오파사

    “생태계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앞으로 태어날 자손을 포함한 우리들 다음 세대이지요.따라서 미래세대의 환경소송은 형식적 법률 판단을 넘어 자연법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어린이 환경소송 ‘세계 1호’를 승리로 이끌었던 필리핀 변호사 안토니오 오파사(45)는 25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녹색연합 회의실에서기자회견을 갖고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누누이 강조했다. 지난 5월 새만금 갯벌 간척사업 중단을 위해 어린이 250명을 원고단으로 미래세대 환경소송을 제기한 녹색연합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지난 90년 필리핀 정부의 마구잡이 벌목 허가로 390만㏊나 되던 천연림이 나날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어린이 43명을 원고로 한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어린이들은 산림정책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2차례 기각당한 끝에 3년만인 93년 말 최고법원으로부터승소 판결을 받아냈다.그 뒤 필리핀 정부는 92개였던 벌목회사를 현재 12개로 줄이는 등 녹화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상징적 의미로 제시한 원시림 80만㏊영구 보전요청이 받아들여졌고 그 공로로97년 5월 유엔환경계획(UNEP)의 ‘글로벌 500인상’도 받았다. 미국 허버드법대 출신인 그는 처음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렸을 때“환경정책이 이대로 간다면 지금 3세인 내 아들은 10년 뒤 민둥산만바라보며 자라날 것이라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회고했다. 마지막 상소 때 그는 법정에서 “이 땅의 주인은 미래세대이며,자연파괴는 후손들에 대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라며 절규에가까운 호소를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6) 孫貞道목사 활동지 吉林

    중국 길림성의 성도(省都) 장춘(長春)에서 ‘장길(長吉)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분쯤 달리면 길림(吉林)에 도착한다.길림은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주국 시절일본인들은 길림을 일본의 고도 경도(京都)에 빗대 ‘소경도(小京都)’라고 불렀다.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 도심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송화강(松花江)은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다.이는 근처에풍만(豊滿)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겨울철 송화강에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찬공기와 어우러져 강 주변의 나무에 은백색의 얼음꽃을 피우는데 이는 길림의 대표적인 겨울 풍물로 꼽힌다. 길림은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투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기도 하다.특히 정의부 계통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참의부나 신민부의 거두들도 이곳에서 활약했다.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 운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당시 길림은 북만주 일대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땅을 떠나 만주행에 오른 동포들은 대개 길림선을 통해 만주오지로 들어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림에 주저앉았다. 또 하나는 길림이 심양,장춘,연길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남만주철도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부의 영향이 덜미치는,소위 ‘소왕국’과 같은 곳이었다.길림이 한 때‘비적(匪賊)의 소굴’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게다가 이 지역의 중국 군벌들은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천혜의 요지’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24년 11월 만주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정의부의 간부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길림에서 활동하였다.집행위원회 위원장 현익철(일명 현묵관)을 비롯해 지방부 위원장 김리대,군사부 위원장 이웅,그리고 별동대 대장 이동훈,경무과장 김구(金球)등이 모두 길림에서활동하였다. 길림은 또 1919년 11월 창립된 의열단(단장 金元鳳)의 창립지이자고려혁명당 역시 1926년 4월 이곳 길림에서 창립됐다.의열단의 창립지인 길림성 파호문(把虎門)밖 중국인 농부 반(潘)씨집은 이미 헐린상태며,고려혁명당 창립지인 길림성성(城) 영남반점은 현재 길림시북경로 179번지 길림시건축설계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김이삼(金利三) 기자가 피살된 동아여관은 현재 정춘집단공사 길림시 분공사(分公司,길림시 회덕가 90호 소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길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해석 손정도(孫貞道·1872∼1931) 목사를 들 수 있다.평남 강서출신인손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선교사로 만주에파견된 이후 1931년 길림에서 병사할 때까지 일생을 오점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자다.1912년 선교활동을 벌이던 하얼빈에서 일제가조작한 ‘가쓰라(桂太郞)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거주제한 1년’의 유배형을 산 손 목사는 1919년 3·1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그 해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자 이동녕 초대 의장에 이어 의장에 선출되었으며,21년에는 임시정부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임시정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치열해지자 이듬해 임정을 박차고 나와 북만주 길림으로 향하였다. 길림시내 우마항(牛馬巷) 서광(曙光)골목에 예배당을 건립한 손 목사는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업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당시 손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예배당·자택은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취재팀이 손 목사의 집터와 예배당을 찾았을 때 이들은 모두 헐린 뒤였으며, 일대는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예배당은 인근에 새로 건립돼 있음)현재의주소로는 길림시 선영구(船營區) 청도가(靑島街) 춘광호동(春光胡洞)일대로 동네이름마저 서광호동에서 춘광호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주민에 따르면,“2년전 서광호동 골목이 헐리면서 동네이름도바뀌었다”고 했다. 손 목사의 길림 시절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 주석이다.당시 손 목사는 ‘소년김성주’의 후견인이자 그를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1926년평양의 창덕학교(소학교)를 졸업한 김성주 소년은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가 화전(樺甸)에서 설립한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당시 숙장(塾長)은 천도교도이자 항일운동가인 최동오(崔東旿)선생이었는데 최 선생은 86년 월북한 최덕신(崔德新) 전외무장관의 부친이다.(금년 8·15 이산가족 상봉때 북측 단장을맡은 류미영씨는 최 전장관의 부인이다.)그러나 그해 6월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이듬해 길림으로 건너와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부친의 친구인 손 목사의지도와 후원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성향의 독서회를 이끌던 그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자손 목사는 감옥으로 사식과 침구를 제공하는 한편 군벌에게 뇌물을주면서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그 덕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지 7개월만인 30년 5월초에 출감했다.김 주석은 생전에 남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첫머리의 ‘손정도 목사’편에서 “손 목사의 도움으로 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10년쯤 감옥생활을 더 했을 것”이라며 “손 목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회고했다. 길림시내 송화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는 그가 다닌 옛 육문중학의 구지(舊址)가 신관 뒷편에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길림시는 92년 이곳을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관리하고 있다.350평 규모의 ‘구지’에는 당시의 교사(校舍)·온실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92년에 건립한 김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동상 뒷편에 위치한 교사에는 당시 김 주석이 공부하던 교실이 ‘김일성동지독서기념실’로 꾸며져 있다.‘구지’ 관리자인 왕쑹린(王松林·52)주임은 “김일성 동지는 1927∼3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당시 키가 작았던 탓인지 자리가 제일 앞줄이었다”고 말했다.왕 주임은 취재팀에게 “중국에 파견나온 북한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는 예는 있지만 남한 국적자가 방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 목사의 후손들은 해방후 김 주석과는 ‘서로 다른 길’을걸었다.장남 원일씨(元一·작고)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3녀인실씨(仁實·작고)는 YWCA 회장,통일원 고문,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길림시절 김 주석과 형제처럼 지낸 차남 원태씨(元泰·86)는 의대 교수출신으로 현재 미국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 거주하고 있는데,그는 지난 91년 방북해 김 주석과 6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바 있다. 길림(중국)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제2광복 ‘통일시대’

    새천년 원년에 맞은 제55주년 광복절은 벅찬 기쁨과 무한한 감격을느끼게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이었지만 지난날과는 다르게 올해 광복절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위대한 역사를 열어 나가는 역사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선열들께서는 일제에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 통일조국을 이룩하기 위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먼 이국 땅에서까지 풍찬노숙하며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을 민족의 제단에 바치셨다. 나라가 어려울 때 보여주었던 그분들의 희생적인 발자취를 알고 드높은 기개와 독립정신을 배우는 게 오늘을 사는 우리 후손들의 몫이요,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열들의 음덕과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55년 동안 분단의 긴 터널을 지내오다 비로소 지난 6월 성공적인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냉전의 잔재를 떨쳐버리고 민족사의 물줄기를 신뢰와 화합으로 돌려놓는 새로은 이정표를 열고 있다. 훈풍의 새 역사를 창조하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있다.8월을 기점으로 해서 민족의 화합과 협력기반 구축을 위한 많은 행사들이 줄을 서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절에는 15년간 중단됐던 남북이산가족 방문단이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밟고 헤어졌던 가족과 재회의 감격을 누렸다.이번 방문단은비록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한 시범적 차원이지만 머지않아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희망적인 회담도진행 중이다. 6·25 전쟁때 끊어진 경의선을 다시 연결하는 것처럼 반세기 동안단절됐던 문화·예술·체육 등 사회 각 분야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평화통일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통일이 온 것처럼 환상에 빠지거나 감성적으로만 치우쳐서는 안될 것이다.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북한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된 시각을 견지하는 게 필요하다. 앞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동·서독 정상이 만난 후2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통일이 됐다. 독일의 경우 동족간의 극한적 대립도 없었음에도 오랜 세월이 걸렸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더불어 굳건한 안보와 주변국가와의 공조가 평화통일을 이루어내기위한 필수적 전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0년 전 우리는 냉전의 회오리 속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겪었다.이같은 불행의 재발을 막고 남북이 평화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튼튼한 국가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통일의 첫걸음은 민족정기의 발양에서 시작돼야 한다.우리는 세계사를 통해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민족의 정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훈을 보아 왔다.물질문명이 중요시되고 정보화가 급속화되면서 우리는부끄럽게도 국가의 기틀인 정신문화를 소홀히 했고 선열들의 애국심을 제대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대아를 위한 희생보다는 이기주의에,국민통합보다는 분열과갈등에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먼 훗날 우리 후손들도 지금의 시대에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야겠다. 위국충정의 선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런 평화·안정·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순국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독립정신을 되새겨보고그분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공헌과 희생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남북의 화해와 공존공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하나된 조국 ‘제2의 광복’을 기필코 성취해 21세기 세계로 웅비하는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열어 나가자. 양동영 서울지방보훈청장
  • 전통行刑 한눈에 본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죄인들에게 어떤 벌을 주고 옥살이는 어떻게 했을까. 조선시대 행형(行刑)장면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색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15일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전통행형 풍속화 특별전’이 그것.내년 8월14일까지 1년동안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후기 김윤보·김준근 선생 등 대가들이 남긴 희귀한 행형 풍속화 7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사형집행 모습은 물론,유형(流刑)과 곤장형(棍杖刑) 집행 장면,죄인 체포 및 호송 장면,옥사 면회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또 형을 가하는 관원과 죄수의 표정까지 생생히 표현돼 있어 보는 이들의 흥미를 더한다.이와 함께 죄인이 체포돼 형을 집행할 때까지 순서대로 상세한 해설과 함께 작품을 배열,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서대문구(구청장 李政奎)가 조선시대 행형의 역사를살펴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이미 전시돼 있던 일제시대 행형제도와 비교함으로써 후손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기획했다. 전시작품은 형사정책연구원에 근무하는 임재표 사무관(45)이 20여년간 개인적으로 틈틈히 수집한 것들. 임 사무관은 “사진이 없던 시대의 전통 교정 풍속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며 “특히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민본주의정신이 깃든 우리 행형제도를 알리고 싶어 소장품을 선뜻 내놓았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金대통령 CNN 문답 “통일 절대 서두르지 않을 것”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8일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이산가족 상봉이 사고없이 끝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며,북한도 이를 평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또 “남북 이산가족의 개별 상봉은 처음있는 일로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다음은 회견내용. ●이산가족 상봉을 평가해달라. 아무런 사고없이 진행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있어 기쁘다. ●제일 먼저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한 이유는.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 유례가 없는 것이다.1,000만 가까운 이산가족이 50년 동안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살아왔다.무엇보다 이산가족 1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있어 그 한을 풀려면 시간이 급했다. ●통일을 서두를 생각인가. 남북정상회담에서 중요한 합의는 서로 전쟁을 하지말고 평화적으로 지내자는 것이다,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은 안된다. 욕심 때문에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절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생전에 통일이 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완전통일은 30년 이상 걸릴 것이다.내 생애에 완전 통일은 어렵다. ●향후 남북관계 전망은.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조치들을 중심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군사직통전화,국방장관급회담,군사위원회설치 등도 논의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신뢰정도는. 한번 만나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그렇게 여기고 있다.우리와 다른 체제의 지도자이나 김 위원장은 대화가 가능하고,말을 잘 알아들으며,총명하다.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하나. 장관회담을 통하거나,필요하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측의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는. 김 위원장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있다는 인상을 받았다.한반도에 주한미군 문제가 나왔을 때 미군을 비난하거나 욕을한 적이 없다.나도 김위원장에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도록 얘기했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중재할 용의는.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간 직접 풀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테러국가 해제 문제도 우리가 간섭할 영역이기 보다는 서로가 풀면 된다. ●미사일 개발문제를 놓고 김위원장이 농담을 했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다. 양승현기자 yangbak@. *CNN 다노나카 앵커 실향민 후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18일 특별 인터뷰를 가진 미국 CNN 방송의달튼 다노나카(46) 앵커는 실향민 후손이다. 그는 부친이 일본계 미국인이지만 어머니는 한국계.하와이 태생인다노나카 앵커는 어릴 때 ‘아리랑’을 7절까지 외웠으며 곧잘 한국인 손님들 앞에서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77년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하고 하와이로 돌아오자 외할머니 김순내씨는 그에게 “어머니(다노나카의 외증조모)가 돌아가실 때 뼈를 평양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며 “나도 고향에돌아가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외증조모는 1904년 다섯살 난 딸(외조모)을 데리고 하와이행이민선을 탄 뒤 1940년 세상을 떠났고,어머니의 유해를 모시고 고향땅을 밟고 싶어했던 외조모도 83년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CNN 아시아 본부의 앵커로 홍콩에서 근무중인 그는 이번에 김 대통령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 오면서 흙이 담긴 유리병 두 개를가지고왔다. 하와이에 있는 외증조모와 외조모의 무덤에서 퍼온 흙이다.그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 흙이라도 그들이 태어난 고향에 뿌려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 양승현의 취재수첩/ 金대통령의 소회와 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과거 야당총재 시절,정치보복을 우려하는일부의 시각에 곧잘 ‘한국의 한(恨)’으로 대응했다.심청의 한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으로,춘향의 한은 이도령을 만나는 것으로 풀리는 것이라고 했다.다시 말하면 숱한 죽을 고비와 핍박,망명,사형선고로 이어지는 정치역정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한의 승화로 전이(轉移)된다는 얘기다.정치보복을 우려할 필요도,역대정권들이 만들어낸 ‘진보적 색채’도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임초,IMF 위기를 건널 때도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과 신명을 강조했다.우리 민족만의 에너지로 위기의 터널을 지혜롭게 지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김대통령은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TV를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눈물을 흘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또 “우리민족이 이토록 많은 사연을 안고 여기까지 왔다”며 못내 가슴아파했다고 한다.무엇보다 남쪽에서는 월북한 가족으로,북쪽에서는 월남한 친지로 인해 그동안 가슴 조이며 살아온 사람들이 이번에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 정상회담때보다 세계 유수언론이 더 관심을 갖고,취재경쟁에열을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지구상 어느 민족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한의 문화’가 그들에겐 생소하고 낯선 취재거리였을지 모른다. 무려 55년 동안 사랑하는 아내를,아들과 딸을,그리고 형제를 만나지못하고도 그저 위정자들의 처분만을 바라고 살아온 한겨레,한민족이다. 김대통령은 구한말,시아버지(대원군)와 며느리(명성황후)의 권력투쟁으로 세계의 변화와 근대화를 간과한 탓에 100여년 동안 그 후손들이 분단,전쟁,반목의 세월로 또다른 한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지난 ‘눈물 주간(週間)’을 통해 ‘한많은’ 서민들이 어떤경고와 바람을 표출하고 있는지 우리네 위정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양승현 정치팀 차장 yangbak@
  • 남북이산상봉/ 시민들 반응

    전쟁의 상처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반세기만에 헤어진 혈육이 다시 만나는 눈물겨운 모습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어른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빌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이민영(李旻英·24·서강대 정외과 4학년)씨는 “이산가족의 비극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없었다”며 “다른 이산 가족들도 상봉의 기쁨을 누릴수 있도록 남북한 당국이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원 김성해(金星海·20·적십자간호대 3학년)양은 “5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한이 얼마나 컸을까를 실감했다”며 “가족,사회,통일 등 잊고 지내던 여러가지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하나(金荷那·23·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양은 “자취를 하는 처지라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새삼 가족이란세월이 흘러도 따뜻한 것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고교생 이길호군(16·경기도 안산시 안산동)은 “가족과 주위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느꼈다”고 말했다. 주부 전유희(全裕喜·40·경기도 평택시 통봉동)씨도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해야 할 행복을 지난 50년 동안 포기하고 살아온 분들이라고 느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빈다”고 말했다. PC통신 천리안이용자 ‘SE96’은 “가슴이 미어져 내내 울었다.전쟁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고개를 숙인다”고 말했다. ‘BBONY’도 “부모,부자,모자,형제,자매,남매가 나에게 무엇인가를정말 오랫동안 생각했다.보고싶은 가족을 그리며 50년을 외롭게 지내온 분들을 생각하면 숙연해 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기호(柳基浩·72·서울 강남구 신사동)씨는 “젊은 사람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참 다행”이라며 “후손에게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최영환(崔榮煥·69·강서구 방화동)씨도 “어서 남북을 오가며 헤어진 가족들 모두 만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단
  • 전남, 제시대 면장6명 ‘면장 족보’서 제외

    전남 강진군 옴천면(면장 金廣石)은 17일 일제 강점기에 면장을 지낸 6명을 역대 ‘면장 족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민수 1,100여명의 옴천면은 마을 이장과 면 개발자문위원,생존하고 있는 역대 면장,인터넷 등 각계의 여론을 수렴,이같이 결정했으며해당 면장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할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1930년 5월6일 옴천면이 출범한 뒤 45년 8월15일 광복 때까지 면장직을 맡았던 6명은 이날자로 면장 대수(代數)에서 제외됐다.이 결과 광복 이후 취임한 면장이 초대로 바뀌었고 현재의 김광석 면장은 22대에서 16대로 앞당겨졌다. 김 면장은 “일제치하 면장들의 공과를 재평가하기보다는 부끄러운역사를 바로잡아 후손들에게 선대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자는데 참 뜻이 있다”고 말했다. 강진 남기창기자 kcnam@
  • 새천년 첫 광복절 김대통령 경축사/ 연설 全文-1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광복 55주년이 되는 날이자 새천년 21세기에 처음 맞는 8·15 경축일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먼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유가족 여러분에게도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또한 생존해 계시는 독립유공자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려 마지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이산가족의 남북간 동시 상호방문이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입니다.어찌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55년전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다시 없는 기쁨이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엄청난 비극과 시련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국토의 분단,동족상잔의 전쟁,그리고 경제의 황폐화가 이어졌습니다.반세기 동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적대와반목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확고한 안보태세 아래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왔습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나 경제를 일으켰습니다.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독재체제의 삼엄한 탄압과 횡포 아래서도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1997년 마침내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에 의해 여야간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대업을 이루는데성공했습니다.참으로 자랑스러운 국민의 힘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시련은 그치지 않았습니다.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우리는 IMF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경제위기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또다시 일어섰습니다.‘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된바와 같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가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았습니다.그리고 우리는 해냈습니다.전세계는 또 한번 우리 국민의 놀라운 저력과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저는이 자리를 빌려 위대한 우리 국민에 대하여 한없는 자랑스러움과 감사의 뜻을 밝히고자 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55주년 광복절을 맞아우리는 조상들과 선열들의 얼이 깃들어있는 이 독립기념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떳떳한 심정으로 그분들의영전에 보고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대업을 우리가 지금 이룩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달전 우리는 분단 55년만에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7천만 민족과 세계 앞에 선포했습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6·15남북공동선언이야말로 오늘의 광복절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남과 북은 지금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장관급 회담 등 후속조치들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습니다.이러한 진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도 이제 2년반이되었습니다.정부는 국민과 하나가 되어 짧은 기간동안 많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언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있습니다.시위·집회·결사의 자유도 보장되고 있습니다.모든 노동운동이 합법화되었고 노동자의정치참여가 허용되었습니다.최루탄이 사라졌습니다. 여성차별 금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이 제정되는 등 여성의 권리도 대폭 향상되었습니다.시민단체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어 국정과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인권국가의 반열에 서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분야에서도 우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우리는 급박했던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38억달러에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이제 90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금리·환율·물가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무역수지와 경제성장도 견실한 기조를유지하고 있습니다.실업률이 OECD국가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일부에서 몇차례씩 제기했던 경제대란설의 우려도 모두 극복해 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바꾸기 위해 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관계의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4대 개혁과 병행해서 지식정보화 혁명을 추진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정보 인프라 스트럭처의 구축과 전 국민을대상으로 한 정보화 교육의 확대,벤처기업의 육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정보화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저소득층이 생계에 어려움을겪게 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왔습니다.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정부는 획기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새로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4인 가족 기준으로 월92만원까지 생계비가 보장됩니다.이제 돈이 없어서 밥을 굶거나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시행과정에서 일부 진통도 있었지만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의료보험 등 4대 보험을 모두 실시함으로써 선진 복지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분업도 국민에게 일시적인고통과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만,국민 여러분과 후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시행해 나가야 할 정책인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안보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우리 국군은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을 신뢰하는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위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한·미간의 안보협력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국민 여러분이 국정에 대해 많이 염려하고 계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국민의 정부는 부단한 노력을 다했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4대 개혁의 미완성,도덕적 해이,개혁피로 증후군과 집단이기주의,그리고 정치의 불안정 등 나라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제 개각의 단행과 더불어 국정 제2기로 접어들었습니다.앞으로 더욱 굳은 개혁의지와 투명하고 일관되며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통해 시장과 국민을 안심시키고 신뢰와 희망을갖도록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이미 설정한 민주주의,시장경제,생산적복지의 3대 국정철학 아래 앞으로의 임기동안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5대 목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권국가,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를만드는데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권법’을 시행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의공감대 위에 ‘국가보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고자 합니다.약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부패방지법’을 빠른 시일 안에입법하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인권이 살아 숨쉬는 나라,부정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야 말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확고한 법질서의 토대 위에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해치는 집단이기주의와 불법·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 나가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 새천년 첫 광복절 김대통령 경축사/ 연설 전문-2

    둘째는 4대 개혁과 지식정보화를 통해서 세계 일류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관계의 4대 개혁을 흔들림없이 완성시킬 것입니다.이제는 외적 구조조정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적 체질개선을 더욱 철저히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취임 직후에 1년반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고 국민 여러분께 약속했었습니다.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졌습니다.이제 다시 여러분께 약속드리겠습니다.내년 2월이면 취임3년이 됩니다.저는 그 취임 3년이 되는 날까지 4대 개혁을 마무리지어 새천년 우리 경제의 탄탄한 발전의 터전을 닦아 놓겠습니다. ‘정부혁신추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설치해 가동함으로써 공공부문이 다른 분야의 개혁에 모범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우리 당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후손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당장의 고통을피하려고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개혁이야말로 국민과 시대가 국민의 정부에게 부여한 역사적 소임이라고 믿고,저는 개혁의 고삐를 결코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4대 개혁에 성공하려면 지식정보화를 촉진시키고 접목시켜야 합니다.이를 위하여 우수한 인적자원을 육성하고 발굴하는데 국가차원의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교육입국을 통하여 지식정보강국을 이룩했을 때 한국은 세계 일류국가 대열에 당당히 등장할 수있을 것입니다. 초고속 통신망 등 정보 인프라를 조기에 건설하고 돈이 있건 없건정보화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평생학습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수 벤처기업에 대해 제도적 개선을 포함한 모든 지원을 확대해서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이 쌍두마차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도록 하겠습니다.기존산업은 물론 정보통신기술산업과 생명산업을 포함해 국가산업 전체의 세계적 경쟁력을 강화시켜 세계 일류의 경제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셋째로 생산적 복지의 정착입니다.생산적 복지는 국민 각자의 능력을 개발하여 저소득층도 중산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획기적인 정책인 것입니다.우선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기초생활은 이미 말한대로 국가가 보장하겠습니다.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보화 교육 등 자기개발의 기회를 제공해서 자력으로 고소득과 안정된 생활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학생과 농어민,주부,군인,장애인과 노인,그리고교도소의 재소자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데 주력해 나갈 것입니다.문화·관광·스포츠·레저의 확충과 환경의 개선과 보존에 힘쓰겠습니다. 넷째는 국민의 대화합을 실현하는 일입니다.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남북의 화해협력을 이루어가고 있는 우리입니다.하물며 우리 내부에서 국민화합을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국민화합을 위해 무엇보다 여야간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현재의 상태는 국민을 실망과 분노로 이끌고 있습니다.실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현실입니다. 여야간의 진지한 대화와 협력이 있어야겠습니다. 저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각 정당의 대표와 만나 국사를 논의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그러나 정치는 국회 안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국회법에 따라 운영해나가되 여야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 정치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몰아내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해서 민족 상생의 시대를 반드시 이룩하고자합니다.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 7천만 겨레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남북연합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는 상당한 공통성이 있습니다.우리는 이를토대로 평화공존,평화교류를 확립하는 통일의 제1단계를 실현시켜 나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장관급 회담을 통하여 군사,경제,사회·문화의 3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아울러 남북간의 군사직통전화의 설치,국방장관급 회담 등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를 추진하겠습니다.경제적으로는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안전하고 효율적인 협력의 길을마련하겠습니다. 남북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안정을 이룩하는 데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대단히 긴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일·중·러 등 주변 4대국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습니다.또한 미국·일본과의 긴밀한 공조관계도 흔들림 없이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에도 매우 긴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동유럽에서 공산위협이 사라진 이후에도 유럽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NATO와 미군이 존속하고 있듯이 한반도와 일본에서의 미군의 존속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마지막으로 저는 21세기의 벽두에서 우리 민족이 지켜야 할 역사적소명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그 소명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5대 과제 중에서 두 가지를 특별히 들 수 있습니다.첫째는 지식정보강국을 건설해 세계 일류국가를 만드는것입니다.그 둘째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장차에는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100년전인 19세기말,우리 민족은 세계사의 큰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망국의 한을 초래했습니다. 당시의 우리 민족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은 무엇이었습니까?안으로는 국민이 단합하고 밖으로는 근대화를 추진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그러한 소명을 도외시한 채 우리는 내부분열로 국력을 소진했고,쇄국주의를 고집하며 근대화를 거부하다 시대에 뒤처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이로 인해 해방이 되어서도 민족의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과 총칼에 의한 반세기 동안의 대치가 이어졌습니다.한때의 잘못이 100년간의 앙화를 후손에게 남겨주게 된 것입니다.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의 역사의 소명을 충실히 받들어야합니다. 하나는 지식정보화의 혁명입니다.21세기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격변기입니다.그 격변의 중심에는 지식정보화의 대혁명을 이루라는 역사의요구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산업화의 지난 세기에는 자본과 토지,인간의 노동력과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요소가 경제를 이끌어 갔습니다.그러나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문화 창조력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창의적인 두뇌가 경쟁력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우리는 세계 그 어느 민족,어느 국민보다도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지적기반,그리고 탁월한 문화창조의 전통과 자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의가 있습니다.우리 국민 가운데 인터넷 이용자 수가 금년 말이면 2,000만명에 이르고,2002년이면 3,000만명이 될 것입니다.세계에 유례가 없는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장점을 살려 세계 일류의 지식정보강국을 건설해 낼 자신이 있다고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남북간의 화해협력이 또 하나의 시대적 소명입니다.그것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는데절대 필요한 전제조건입니다.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전쟁과 파멸을 가져올 것입니다.평화공존,평화교류 속에 남북이 손잡고 민족의 앞날을 열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 남한의 기술과 자본,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원이 합쳐진다면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대도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는 지금껏 남한만의 무대에서 살아왔습니다.그러나 남북이 손을 잡으면 한반도 전체로 무대가 확대될 것입니다.그뿐 아닙니다.아시아와 유럽,그리고 태평양으로 우리의 활동영역이 뻗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남북은 이미 경의선 철도를 다시 잇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경원선도 연결될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두 길을 통해 유럽에 이를 수 있습니다.두 줄의 ‘철의 실크로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고,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가 될 것입니다.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주변국가가 이제 당당히 세계의 한 중심국가가 되는 것입니다.바야흐로 한반도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닙니다.우리가 능히 이룰 수 있는 내일의 모습인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 앞에 역사가 제시하는 길이 분명하게 열려 있습니다.평화와 도약을 통한 자랑스러운 한반도 시대를 이룩하는데 총력을 다합시다.오늘 우리의 행복은 물론 내일의 후손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역사의 소명을 충실히 받들고 나아갑시다. 국민 여러분! 한강의 기적,외환위기의 극복에 이어 다시 한번 세번째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일어섭시다.저는 국민과 역사에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의의무를 다할 것입니다.여러분의 성원을 부탁해 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새 내각에 듣는다/ 李漢東총리 일문일답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비율이 선진국의 5배나 되는 등 심각한 실정입니다.의약분업은 약의 오·남용을 막고 의약품의 적정사용에 따른약제비를 절감하는 등 우리 국민과 후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는 13일 대한매일 정종석(鄭鍾錫) 정치팀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의료계의 집단 재폐업과 관련,“1년 동안의유예를 거쳤는데도 의료계가 약사법 재개정 등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없는 요구사항을 제시, 재폐업에 들어간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한 무책임한 집단행동”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국무총리 재임 3개월간 국정운영의 2인자로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있다면,민간과 국정,공직사회 등 분야별로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2개월 반은 40여년 공직생활 중에서 가장 열심히 소임을 다한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헌정사상 최초로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자아성찰의 기회도 가졌고,남북정상이 민족사를 새로 쓰는 역사의 순간을 총리로서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국회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입장에 있다가 행정부에서 일해 보니,국정운영과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민간과 정치권 등 전국민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취임 당시 경제안정과 지역·계층간 갈등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간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또 이런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복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최근 우리 경제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고,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있습니다.또한 국가정책에 대한 신뢰회복에 역점을 두고 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인사와 예산 배분에 있어 항상 공정성과 객관성이 보장 될수 있도록 유념하겠습니다. IMF 극복 과정에서 심화된 계층간 갈등은 사회안전망 구축에 최선을다하고 직업훈련 확충 등을 통해 빈곤의 세습을 차단토록 하겠습니다. 다만 개혁에 대한 반발과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을통해 개혁이 후퇴하거나 굴절되지 않도록 해나갈 것입니다. ◆지금 약사법이 개정됐는데도 의료계의 집단폐업 등 극심한 반발이계속되고 있습니다.의약분업에 따른 파동을 극복할 방안과 의료계 일부의 집단행동에 대한 대처 방안은 무엇입니까. 개정된 약사법은 의료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정부는 처방료·진찰료의 대폭 인상 등 획기적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정부는 합리적인 의료계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최대한 수용하고 의료인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정책개발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우선 이달부터 의약분업 평가단을 운영,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문제점들을 적극 해결해 나가고 국무총리실에 보건의료발전특위를 설치,보건의료 개혁과 발전방안을 중점적으로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국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공립 의료기관,보건소 등 비상진료체제를 적극 가동하는 등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의료계 설득 노력도 병행하겠지만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습니다. ◆현대사태와 금융구조조정,재벌개혁 등을 포함,경제현안을 어떻게완결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현대문제와 금융개혁은 확고한 원칙에 따라 속도감 있게 추진하되,시장규율을 명확히 확립해 시장의 힘과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지도록유도하겠습니다.대기업 정책은 외형확장에만 주력하거나 상호의존하면서 안주하는 경영이 되지 않도록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시장의 신뢰확보인 만큼정부 내부의 토론을 활성화하고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책은 일관성과투명성이 보장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치권에 있을 때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셨습니다만 현재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대북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느끼십니까.앞으로 총리로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외교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수구적 보수가 아닌 개혁적 보수를 표방해 왔으며,대북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남북정상회담이라는 획기적 전환점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화해·협력의 관계로 확실하게 진전되어 가고 있으며,실질적인 협력방안도 착실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 혹은 외교정책은 대북 포용정책에 기반을 두어일관되게 추진해 나가는 한편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4국과 국제사회의 지지·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민의 정부 2기 내각이 출범했습니다.새 내각의 임무와 과제는 무엇이며,새로 도입한 총리 산하 4개 분야별 팀제의 원활한 운영방안과총리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새 내각의 임무는 5대 국정지표를 추진력을 갖고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1기 내각은 개혁프로그램의 목표와 방향은 잘 설정했지만 추진과정에서 부처간 긴밀한 협조가 부족해 정책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2기 내각은 일사불란한 팀워크 아래 강력한 집행력을 갖는 데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분야별 팀제운영을 구상하게 된 것이며,제가 중심이 되어 분야별 주무장관이 격주로 모여 의견교환과 정책조율을 함으로써,정부의 개별정책들이 국정의 흐름에 맞고 일관성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8·7 개각’에서 대통령에게 실제로 얼마나 제청권을 행사하셨는지요. 헌법의 규정과 우리 헌정의 관행대로 임용제청권을 행사했습니다.총체적으로는 부총리 격상 등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정부개편구상에 부응한 인선과 경제부처의 팀워크,분위기 쇄신,안보팀의 일관성,전문·개혁·추진력 등의 인선원칙 같은 여러 의견을 말씀드렸고구체적 인선과 관련해서도 저의 생각을 전해드렸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그동안 개혁에 매진해왔습니다만,개혁의 성과가 국민이 체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고,또 국민이 개혁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새 내각과 함께 개혁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보강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개혁에 대한 일부의 불만은,개혁방향과 프로그램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개혁과정에서 나타난 시행착오와 혼선에서 비롯된것으로 생각합니다.따라서 이해 당사자들의 협조와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고,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이 일사불란하게 일선 현장에까지 파급될 수 있도록 강력한 집행력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최근 개각후 4대부문 구조조정 가운데 공공부문 개혁이가장 미진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고,총리께서도 공직자의 도덕성 확보를 위해 뼈를 깎는 자성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정부부문 개혁과신뢰받는 공직자상 형성을 위해 어떤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보십니까. 정부혁신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면서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공기업의 민영화 등 공공부문의 개혁을 보다 강도높게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아울러 그린·옐로카드제,불친절행위 신고센터 운영,불친절행위 실비 보상제 등을 운영하는 등 공직자들의 친절서비스 수준을 더한층 높여 나가겠습니다. 또한 부패척결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사정활동을 전개하고있으며, 향후 반부패기본법이 제정되면 시행령에 공무원 행동강령을마련,시행하는 등 공직윤리 확립과 부패척결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담 정종석 정치팀장. 정리 이지운기자 jj@
  • 조선족 100년史 사진으로 본다

    ‘조선족 100년사를 사진으로 본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잊혀진 흔적Ⅱ’전은 중국 옌볜 등지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역사와 생활사를 사진으로 정리한 기획전이다.인물사진작가 류은규(40)가 직접찍거나 수집한 300여점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지리산 청학동 사람들 카메라에 담아온 류씨는 지난 93년부터는 옌볜에 거주하며 잊혀진 우리의 얼굴과역사를 찾아왔다. 시각문화기획사인 아트퍼브릭컴 코리아가 주최한 이 전시는 역사,문화,조선족 얼굴 등 세 부문으로 이뤄졌다.핵심은 역사부문.한반도 북부지역의 수재로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1860년대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새 농사법인 수전 개발에 나선 모습 등 이주 초기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이 나와 있다. 1910년 일제의 조선강점으로 조선인들의 만주지역 이주는 가속화됐다.그곳은 마침내 항일애국지사들의 무장독립운동의 거점이 됐다.옌벤지역에는 북로군정서,대한국민군,대한독립군 등 여러 단체들이 생겨났다.이번 전시에서는홍범도·김좌진 장군의 활약상과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에 편입됐던 조선족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의열단·팔로군에 뿌리를둔 조선의용군 사진도 의미가 있다.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대륙을 강타한 문화대혁명은 조선족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옌볜의 조선족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서로 비판하며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무력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양측이 돌싸움을 하는 사진은 그런 정황을 말해준다. 조선족 얼굴편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됐다.독립운동가의 후손과평범한 조선족 후예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전시는 21일까지.(02)518-3631. 김종면기자
  • [발언대] ‘태극기 달기운동’에 적극 동참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당당히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우승한황영조 선수가 마지막 남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감격해 하는 모습이 전세계로 방송될 때,우리는 무한한 감동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애국가 그리고 작은 영웅 황영조 선수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던 것이다. 해마다 경축일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행정자치부 의정관으로 부임한 이후 처음 맞이한 3·1절에도 어김없이 각기관과 전 가정에 태극기 달기를 권유했으나 호응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우리는 왜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달기를 소홀히 하는 것일까. 미국이 많은 민족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는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성조기를 중심으로 뭉친 그들의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성조기 앞에서 인종도,빈부도,언어도,피부색도 모두 녹여버리고 오직 하나된 USA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그들이 국익 앞에서 하나되고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있는 원천이며,세계 최강국 미국의 힘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5,000년 유규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국가라고 자랑하곤 한다.그러나 우리는 국가가 어려울 때 과연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일해왔는지 새천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태극기 달기를 권유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국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집단이기주의,지나친 개인주의 등 사회적 병폐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앞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되는 노력이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가 펼쳐진 새천년 광복절에는 우리 모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태극기 달기 운동’에 동참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 될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호길 행정자치부 의정관
  • 한산대첩 참전 후손 한자리에

    408년전 이충무공과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수군 무장들의 후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경남 통영시는 오는 13일부터 5일 일정으로 열리는 한산대첩축제때 이충무공과 함께 해전에 참가했던 함장급 이상의 수군 무장 후손 9명을 초청한다고8일 밝혔다. 이번에 참가하는 후손들은 한산대첩을 전후해 이충무공과 함께 해전에 참가했던 수군 무장 후손들로 나갑주(75),선호일(68),이갑환(60),원길상(67),이원상(54),이재엽(31),이종원(64),정경원(64),진종만씨(70)등 9명이다. 이들은 ‘다시쓰는 임진왜란사(학민사)’와 ‘바로잡는 임진왜란사(삶과 꿈)’의 저자인 향토사학자 조중화(趙重華)씨의 추천으로 선정됐다. 나갑주씨는 이순신에게 거북선 제작을 건의하고 직접 제작을 진두 지휘한나대용(羅大用)의 13대 후손이고 선호일씨는 이충무공의 지근거리에서 전투에 참가한 함장출신인 선거이(宣居怡)의 14대 후손이다. 또 원길상씨는 이순신과 잦은 의견차이를 보인 원균(元均)의 후손으로 화해와 한산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참석하게 된다.이밖에 이원상씨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때 전라우수사를 지낸 함장출신 이억기(李億棋)의 14대 손이며 이재엽(李載燁)씨는 이순신의 15대 손이다. 후손들의 모임을 마련한 작가 조씨는 “임진왜란 관련 문헌과 족보,종친회등을 통한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정했다”며 “이들의 초청으로 한산대첩축제는 더욱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 이정규기자 jeong@
  • [발언대] 용인 난개발 책임 건설사만의 책임인가

    최근 경기도 용인 지역의 난(亂)개발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신문지상에는 온통 이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시끄럽다.‘서로가 네 탓’이라고 우기며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는 것을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심지어 용인지역 수해 원인을 둘러싸고 난개발로 인한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환경단체의 갈등도 곧 법정으로 비화될 것같다. 시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업계가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는등 모든 난개발의 책임이 주택건설업체로 귀착되고 있다. 난개발의 모든 책임이 주택업체에 전가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이는 객관성을 잃은 처사다. 주택건설업체에서는 관련 법령 테두리 안에서 각종 복잡한 인·허가를 받아적법하게 주택사업을 벌였다는 목메인 항변을 하고 있다.한마디로 ‘법대로했는데 왜 우리가 난개발의 주범으로 몰려야 하는가’라는 얘기다. 주택업체들이 난개발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일관성없는 정책수립으로 주택업체들로 하여금 준농림지를 난개발토록 한 정부와세수확보를 위해 인·허가를 남발해 온 지방자치단체의 잘못이 더 큰 것이아닌가 싶다. 주택업체가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공익을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뒷짐지고 있었던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눈 앞의 이익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린 정책 결정이 우리 후손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난개발 책임소재의 규명도 ‘공동책임은 무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를지 모른다.그렇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검찰 수사,감사원 감사,정부 실태조사 등은 단시간에 처리돼야 하지 않을까. 최근들어 전세값이 크게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수사,감사,조사로 공백현상을 보이는 지자체의 행정을 빠른 시일 내 원상 회복시켜야한다.아울러 위기의 주택산업을 살리고,서민들의 집 장만을 쉽게 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김준우[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 [우리구 역점사업] 광진구

    ‘환경도시 가꾸기로 광진을 푸르게 푸르게’ 서울 광진구(구청장 鄭永燮)는 ‘환경도시 가꾸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서울의 상징인 한강과 서울 동쪽의 허파인 아차산을 끼고 있어 어느 자치구못지 않게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96년 서울시 자치구로서는 처음으로 환경선언문을 제정한 광진구는 녹색광진구민실천회를 발족시키는 등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에 축조된 아차산성이 있는 아차산을 보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아차산 지킴이’를 발족했다.주민 21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주 1회 교대로 아차산 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광진구는 또 주민들을 대상으로 매월첫째와 3째주 일요일에 ‘아차산숲속여행’을 실시,아차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환경오염 방지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각 동사무소마다 폐식용유 수거통을 설치해 이를 수거,비누로 만든 다음 다시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지난 6월부터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전 가구에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를 실시하고있다.매주 월·화요일 어린이대공원 정문 등에서 자동차배출가스 무료점검활동을 벌여 올해들어서만 3,000여대를 무상점검해줬다. 청소년들에게 환경보호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관내 6개 학교를 환경보전시범학교로 지정,운영하고 있으며 학생들을 초청,광진생태기행을 실시하고 있다. 또 관내 중학교 1년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바이오 환경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구의동 정수장 빈터에 연못과 분수대 등을 만들었으며 중랑천에도 자연학습장을 설치,주민들이 자연속에서 쉴 수 있도록 했다.96년에는 구청 담장을 허물고 1,000여평의 ‘푸른 쉼터’를 조성했다. 정영섭 구청장은 “환경보전이야말로 후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책무”라면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자연이 살아 숨쉬는 환경도시를 일궈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 상봉 준비에 들뜬 하루

    오는 15일 꿈에 그리던 북한땅을 밟을 이산가족 방문단에 선정된 100명의이산가족들은 가슴졸이며 기다렸던 ‘낭보’에 밤잠을 설쳤다.일요일인 6일에는 북한에 가져갈 선물을 고르며 들뜬 하루를 보냈다. 이들이 갖고갈 선물은 손목시계,속옷,한복,족보,과자,카메라,현금 등 다양했다.하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은 100명 모두 똑같았다.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과 함께 해방 직후 서울에 들어온 박영일씨(76·서울 양천구 목동)는 6일 북한에 있는 누나 혜준씨(78)와 동생 임준씨(64)에게 줄 첫번째 선물로 족보를 챙겼다. 박씨는 “재산을 모두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대한적십자사로부터 1,000달러 이내에서 선물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비싼 선물보다는북한에 있는 후손들에게 조상을 알려주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족보를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남동생 경희(60),여동생 경수씨(66)를 만날 임경옥씨(69·경남 김해시 외동)는 “50년전 헤어진 동생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밤잠을 설쳤다”면서“경희에게는 카메라를,경수에게는 한복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강성덕씨(72·여·대구시 달서구 진천동)는 평양에 사는 큰언니 순덕씨(75)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 6명의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강씨는 “남쪽에있는 손자들처럼 북한에 있는 언니의 손자들도 초코파이를 좋아할 것 같다”면서 “초코파이와 생전의 부모님 사진,달러, 의약품 등을 갖고 갈 계획”이라며 기뻐했다. 허리 통증으로 10일 전 입원한 김금지씨(70·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병원에서 방북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오빠를 만날 기회를 겨우 잡았는데 몸이 아파불안하다”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빠를 꼭 만나겠다”고 투병 의지를 불태웠다. 김씨는 오빠 어후씨(74)에게 줄 선물로 자녀의 결혼식과 자신의 환갑때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손목시계,손자들이 부른 노래 테이프 등을 준비하라고 간병중인 며느리에게 일렀다. 장정희씨(70·여·서울 양천구 신월7동)는 쌓였던 긴장이 풀리고 궂은 날씨가 이어져서인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몸살이 났다.코트와 쌍가락지,영양제 등을 준비한 장씨는 “고향에 가기 전까지동생들에게 줄 모시적삼을 꼭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부인 이옥녀씨(72)와 딸 현실씨(51)를 만날 김사용씨(7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가난 때문에 남들처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공공근로와 행상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김씨는 “아내와 딸에게 근사한 옷을 선물하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답답하다”면서 “남은 기간 곰곰이 생각해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방북단 탈락 26명…”다음엔” 희망 안버려 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이 확정된 지난 5일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지의 생사가 확인된 126명 가운데 최종명단에 끼지 못한 실향민들은 또다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선물보따리를 도로 풀었다. 우원형(64·禹遠亨·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뜬눈으로 지샌 뒤 6일 새벽경기도 파주시 수양사를 찾았다. 이번에도 북한에 살아 있는 여동생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을달래기 위해서다.아들 병희(丙熙·32)씨는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아버지께서는 126명의명단에 든 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면서 “여동생에게 줄 한복과 의약품도 준비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평남 신천 출신 강재필씨(74·여·전남 광주시 북구 인동)는 “북한에 사는조카들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의 생전 사진이라도 건네받으려 했다”면서 “100명이라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너무 좋은 일아니냐”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북한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분들 모두 한을 풀고 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야 이번에 못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장홍진(張洪珍·59·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씨는 “북한에 계신 누님을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다음 기회를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달러,약,옷가지 등 누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는데…”라고 섭섭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나보다 20∼30살이나 많은 분들이 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위안했다”면서 “다음에 방북단을 선정할때 탈락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얘기도 들리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남·북 언론인 교류 합의

    남북한 언론과 언론인들간의 교류가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방북중인 차일석(車一錫)대한매일 사장을 비롯한 언론사 대표단은 6일 오전 평양 만수대의사장 회의실에서북한 정하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장,강능수 문화상,최칠남노동신문 책임주필 등 북측 고위언론 관계자들과 연석회의를 갖고 남북한 언론및 언론인 교류를 추진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에 따르면 양측은 2시간동안 회의를 갖고 남북 화해·민족 단합,통일에 이르기까지 남북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체류기간인 오는 12일까지 언론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문을 공동으로 작성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양측은 소위원회를 구성,실무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우리측 대표들은 이날 회의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양측 언론이 민족적 공감대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앞으로 남북언론 대표들이 자주 만나 긴밀한 협의를 해 나가자고 제의했다. 이에 북측 대표들도 “이 시점에 언론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두고우리 후손들이 역사적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양측 언론이 6 ·15선언 실천에 길잡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북단에 동행중인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이 자리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북한언론 대표들이 편리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해 주도록 초청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북측은 수락의 뜻을 밝혔다. 언론인 방북단은 이어 노동신문사와 중앙방송위원회를 방문,기자 등 신문·방송관계자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이번 방북단은 언론사 사장단 46명을 포함한 56명으로 이뤄졌고 7박8일동안북한에 체류한다. 최광숙기자 bori@
  • [새천년 우리고장 핫 이슈] 난지도 골프장 조성

    서울시가 밀레니엄공원이 들어설 난지도에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도시형 생태대중골프장을 조성하기로 해 논란이 뜨겁다. 환경단체들은 개발논리에 밀려 무참하게 망가졌다가 천신만고 끝에 회생하려는 ‘쓰레기섬 난지도’에 다시 골프장을 조성하려는 것은 반환경적 발상의 극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반 안정화에 30여년이 소요될 난지도에 9홀짜리 친환경적 대중골프장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불결’과 ‘악취’로 대변되는 ‘쓰레기섬’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가장 계획적으로 난지도를 회생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며 맞서고 있다. ■난지도,행운인가 비운인가 난지도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지란(芝蘭)이 자라는 곳이라 해서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나개발시대의 소용돌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서울권 쓰레기매립장으로 변해 78년부터 93년까지 15년동안 1억2,000만t의쓰레기가 반입돼 거대한 쓰레기산이 됐다. 그러나 올들어 서울시가 상암동에 2002년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기로 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서울시는 월드컵경기장을 정점으로 해 이 일대 200여만평에 ‘상암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신도시의 녹지대(綠地帶)인 밀레니엄공원 구상에 따라 난지도 제1매립지에는생태대중골프장,제2매립지에는 생태공원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이같은 계획이 알려지자 환경단체들은 ‘난지도의 또다른 비극’이라며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이에 대해 서울시는 ‘죽음의 땅을 되살릴 계획’이라고 맞서고 있다.환경단체의 ‘자연적 생태 복원론’과 서울시의 ‘과학적 생태 복원론’이 날카롭게 각을 세운 형국이다. ■골프장 조성계획 서울시는 이곳에 2002년 3월까지 9홀짜리 생태형 대중골프장을 조성하기로 했다.면적은 5만8,500평 규모. 일반 골프장의 절반 정도인 40m로 폭을 줄인 페어웨이에는 들잔디를 심고,러프에는 자생초지를 조성한다.그린에는 농약이 필요없는 인조잔디를 까는방안을 검토중이다.관개시설을 최소화하고 농약은 필요할 경우 유기성으로제한해 사용한다.한강 복류수를 용수로 활용하고 배출수는 전량 정화처리해방류한다. 시민·환경단체에서 제기하는 사회적 위화감을 해소하고 꿈나무들이 쉽게이용할 수 있도록 1회 1만5,000원 정도로 책정했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사업계획을 승인했다.이에 따라 골프장 위탁조성·관리를 맡을 국민체육진흥공단측은 설계와 환경·교통영향평가를 마친 뒤 오는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환경친화 골프장 가능한가 서울 환경운동연합 등 서울지역 시민단체들로구성된 ‘난지도 골프장백지화 시민연대’ 회원들은 최근 서울시청앞에서 골프장 조성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골프장에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서울시의 생태골프장 계획은 속임수”라고 주장한다.제초제 살포로 환경오염이 가속화되고 이제 갓 복원을 시작한 난지도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난지도 골프장건설 반대운동본부’도 “아무리 생태환경을 고려한다 해도우리 풍토에서는 아직 환경친화적 골프장은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1일 이용객이 200∼300명에 불과한 골프장보다는 후손들에게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이 골프장의 생태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학계에서도 ‘환경친화성은 운영자의 의지 문제’라고 말하는 만큼 공청회 등을 통해 이를 충분히 납득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 일본 도쿄 신기바 해상공원에는 92년 조성된 54㏊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있다.생활쓰레기 매립장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초창기엔 메탄가스가 분출돼 그린에서 담배를 못피우게 한 것으로 유명하며 환경측면에서성공한 골프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시카고도 90년까지 쓰레기매립장으로 활용해 온 하버사이드에 180㏊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했다.미시간호와 인접해 환경단체에서 매 4달마다수질검사를 실시,결과를 공표할 만큼 환경오염에 철저하다. 이들 골프장은 당초 쇼핑몰 등 다른 용도로 검토되다 수익성을 고려해 골프장으로 조성됐다.초기에는 지역 주민들과 갈등이 있었으나 이후 별다른 문제는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 * 崔光彬 서울시 조경과장. 쓰레기 매립지 지반이 안정화되기까지는 20∼30년이 소요되고,그 기간중 지반침하에 따른 지형굴곡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골프장을 임시로 조성해 활용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일반화된 사례다. 105만평이나 되는 난지도 일원에 여러 종류의 체육시설과 다양한 시민이용공간을 포함한 대규모의 밀레니엄공원을 조성하면서,굳이 골프 운동공간만배제한다는 것은 형평의 논리에 맞지 않다고 본다.따라서 슬러지가 매립돼상대적으로 불균형 침하가 더 심한 제1매립지에,그것도 당초 계획됐던 전체면적(10만3,000평)에서 9홀 규모의 최소면적인 5만8,000평으로 대폭 축소해밀레니엄공원의 5.6%정도 만큼 대중골프장으로 할애해 임시활용토록 하는 것은 적절한 방안이라고 본다. 골프장이 어떻게 환경친화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산을 깎아자연을 훼손하거나,농약을 많이 사용해 환경에 피해를 주는 골프장이라면 반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하지만 제1매립지에 조성하려는 대중골프장은 일반 골프장에서농약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그린지역을 인조잔디로 대체 조성토록 검토중이고,러프지역은 질병에 강한 자생초지 위주로 조성할 계획이다. 매립지 상부를 그대로 두고 생태천이를 지켜보자는 시민단체의 견해에 대해서는 지난해 4월 매립지 상부의 관리방안을 심층 검토하는 과정에서 논의됐던 것으로,이 경우 안정화공사의 일환으로 복토되는 흙위에 수년이 지나면외래초종 등이 자라 녹화피복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당장 2002년 월드컵 기간중에는 먼지 발생과 함께 경관적으로 취약할 뿐 아니라 10만여평의 대규모 토지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할 경우 자칫 우범지역화 등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兪在賢 환경정의연대 공동대표. 난지도 골프장에 관한 최근의 쟁점은 매우 간단한 문제라고 본다.즉,난지도 제1매립지 상층부를 하루 300여명의 골퍼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곳으로 용도를 제한할 것이냐,아니면 서울시민을 위한 대중적 공원으로 조성해 완전 개방할 것이냐라는 것이다. 난지도 인근에는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상암경기장이 웅장한 면모를 서서히보여주고 있다.역사적인 월드컵이 열리는 지역,영종도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서울의 관문,디지털 미디어시티 주면인 이 지역이 친환경적인 근린공원으로 조성된다는 점은 우리나라가 환경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상징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자연생태계의 동·식물이 공존하는 환경친화적으로 복원돼야 한다.아울러 이 지역은 안정화가 진행되는 기간동안 제한된 용도로만사용할 수 있으며,안정화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환경친화적인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 서울시가 추진중인 난지도 골프장의 여러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골프장이환경친화적인 시설이 아닌 점이다.즉,생태환경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자생초지로 조성한다고 해도 농약과 비료의 완전 사용금지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또한 그린을 인조잔디로 만든다고 해도 오히려 화학재료로 흙을 덮어 더욱 반환경적이다. 끝으로 난지도는 자연 스스로가 치유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따라서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
  • 월남후 재혼 李善行·李松子부부 방북길에

    “여보,나는 괜찮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북에 두고온 부인과 자식들을 만나요” “고맙구려,당신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의식이를 만날 수 있다니 잘됐구먼” 북한에 가족들을 남겨놓고 각각 월남한 이선행(李善行·80·서울 중랑구 망우2동),이송자(李松子·81)씨 부부가 이산가족 방문단에 모두 포함돼 오는 15일 나란히 방북길에 길에 오르게 됐다. 4일 대한적십자사가 확정한 방북 이산가족 인선 최우선 기준인 ‘부모,배우자,자녀가 생존해 있는 사람’에 이씨 부부가 모두 해당되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이선행씨는 지난달 27일 북에서 보내온 가족 생사확인 명단에서 아내 홍경옥씨(78)와 아들 진일(58),진걸씨(55)가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함경남도 문천이 고향인 이송자씨는 아들 박의식씨(60)의 생존을확인하고 방북단에 포함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왔다. 이선행씨는 “전쟁 당시 청천강 이북에서 중공군이 밀려온다는 소문에 모든 가족이 피란길에 나섰다가 대동강 철교가 끊기면서 생이별을 하게 됐다”면서 “당시 처는 임신중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인 이씨는 1947년 아들 형제를 북에 두고 서울에 있던 남편을 찾아 내려왔다가 38선이 막히면서 자녀들을 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남편의 아내를만나면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이송자씨는 “이번 방문에서 두 가족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 이씨는 “아내를 두고 옛 아내를 만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아내가 이해해주니 고마울 뿐”이라면서 “명절과 어버이날이 찾아오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 만큼 외롭던 우리 부부에게 갑자기 너무 많은 자식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손자,손녀는 몇이나 될까,혹시 증손자가 있을지도 몰라…아들에게는 돋보기,손자에게는 양복,증손자에게는 장남감이 어울릴까” 이선행씨는 벌써 후손들의 선물 챙기기에 바빴다. 이송자씨도 “우리 아들들도 백발이 성성하겠구려,손주들에게는 탐스럽게익은 앞 마당의 복숭아를 따다 주는게 어때요”라며 화답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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