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후손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변동성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한의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취해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 친절
    2026-08-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356
  • 日 장묘문화는 어떤가

    서울시의 추모공원 건립문제를 계기로 님비논쟁이 격화되면서 우리에게도 화장과 납골로 대표되는 선진국형 장묘문화의 정착이 가능한지에 대해 낙관론과 회의론이 교차하고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와는 지리·문화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장묘문화에 관한한 다른 의식과 규범을 보여주는 일본의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 장제(葬制)의 변천] 불과 50년 전만 해도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매장 풍토가 일부 남아 있었다. 이 주류를 이뤘다.원래 화장은 일부 사찰에서만 행해졌었다.역사적으로는 700년경 도쇼(道昭)라는 승려의 화장을 시작으로 화장이불교의 장제로 전래됐으나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세기 후반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화장 금지법령이 발효되기도 했다. 그랬다가 50년대 초 ‘묘지와 매장에 관한 법’이 제정되면서 오늘날의 선진화된 장제를 시행하는 근거가 마련됐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국가적으로 화장을 장려하고 국가 특별지방채인 연·기금 융자제도를 도입,각 지역별 화장장과납골시설의 신축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게 됐다.일반국민들사이에서도 묘지난에 대한 공감과 위생상의 문제로 화장이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다. 이후 화장과 납골이 혐오시설이 아니라 필수적인 사회복지시설이나 도시기반시설로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과정을 거쳤다. [현황과 실태] 도쿄(東京) 도심에서 화장장과 납골당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도쿄도에만 현재 23개소의 제장(齊場·화장장)이 설치돼 있다. 도심부에도 8개소나 된다. 일본 전역에 설치된 화장장은 무려 1,921개소.대부분 도심에 자리잡고 있다.후생성의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일본의화장률은 98.9%에 이르고 있으며 도쿄의 경우는 100%다. 화장의 보편화에 맞춰 납골시설도 충분하게 갖춰졌다.도심어디에나 사설 납골시설이 즐비하다. 유명한 요요기체육관인근의 캐나다대사관 부근에도 납골묘지가 조성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도쿄도 후주시 다마쵸에 조성된 공영 납골묘지인 다마영원(多磨靈園).1923년에 개장한 연면적128만㎡의 대규모 공원묘원이다. 인근에 지하철역 2곳이 설치될 만큼 교통여건이 좋으며 독일의 삼림묘지를 모델로 한녹지 위주의 공원화사업으로 참배객은 물론 인근주민들의산책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곳 중심인 미타마당(堂)엔 5,800위까지 모실수 있는 납골로커가 설치돼 있다.현재 안치율은 97%.외곽에는 구형 납골시설인 일반 매장시설과 1구획의 면적이 4㎡로 6위까지납골 가능한 잔디형 및 최신형인 벽면형까지 다양한 매장시설이 갖춰져 있다. 관리책임자 엔사카 요시유키(遠坂佳之·58)씨는 “참배객은 물론 인근 주민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으며 납골공간도아직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일본 장묘문화의 특징·장점] 우선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든 죽으면 ‘화장’과 ‘납골’ 절차를 거친다는 점이다.죽음을 ‘역할을 다한 사람이 후손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것’이라고 여길 만큼 일본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며 이런 사생관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화장제가 정착되는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의지도 크게작용했다.이들은 장묘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지역주민들이엄청난 부담을 지도록 제도를 이끌었다.요코하마(橫浜) 남부(南部)제장의 경우 이용료가 시민은 6,000엔이지만 타지주민은 무려 8배가 넘는 5만엔을 받고 있다.일본의 지자체가 화장 및 납골시설을 갖추지 못할 경우 단체장에게 ‘행정적으로 무능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화장장과 납골시설이 한결같이 성소(聖所)나 공원으로 단장돼 주민들에게 혐오감 대신 친밀감을 주고 있다는점이다. 물론 일본도 화장장과 납골시설 설치를 둘러싸고 주민들과마찰이 없지는 않았다. 일본인들도 초기에는 ‘원칙적으로찬성하나 우리 지역 설치에는 반대한다’는 지역이기적 행태가 주류를 이뤘다.84년부터 조성사업을 시작한 요코하마남부제장의 경우 5년동안 주민들을 설득한 끝에 성사시킨전례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내 지역에는 안된다’가 아니라 ‘설치하되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를 둘러싼 협상과 설득이주된 의제였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비교가 된다. 사후 시설관리 측면에서 사고나 잡음이 없었던 점도 오늘날의 선진 장묘문화를 가능하게 한 주요인으로 꼽힌다. 도쿄심재억기자 jeshim@. *스기야마 겐 제장장 “”5년간 주민반대 대화로 해결””. [요코하마 심재억기자] “건립 당시 지역민들이 격렬한 반대운동을 폈습니다.그러나 5년여에 걸친 대화로 결국 문제가 해결됐지요” 일본 요코하마 남부제장의 스기야먀 겐(杉山元) 제장장은“어느 나라에서든 화장장과 납골시설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며 “문제는 얼마나 진지하고 성의있게대화하느냐”라고 소개했다. ▲주민들이 왜 반대했나 당시만 해도 제장은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이 있었던데다 교통난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제장이 들어선 곳은당시나 지금이나 요코하마에서 손꼽히는 주거지다. ▲얼마나 대화를 했으며 개장후 대기오염 등이 문제된 적은 84년 계획수립과 동시에 대화를 시작했다. 초기엔 반대가심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5년여를 주민자치회와 대화,결국 89년 마무리했다.지금까지 오염이 문제된 적은 없다. ▲운영은 어떻게 하나. 관리는 시가 하고 내부시설은 위탁운영하고 있다.나리타처럼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경영과 인력수급에 참여하는 곳도있다.운영문제는 지자체와 주민들이 합의하기 나름이다. ▲지역별로 이용료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당연하다.타지 주민에게는 비싸게 받는다.다른 자치단체도마찬가지다.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나라위한 헌신의 역사 바라알기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있다.하나는 자기와 가족 중심의 평범한 삶이요,다른 하나는 범위를 넓혀 타인이나 국가와 민족 등 사회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의로운 삶이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적 경험과 전통을 오랫동안 공유해왔다.그 결과 어느 나라보다도 민족적 정체성이 강하다.민족적 정체성은 국가위기 때나 달성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설정되었을 때 놀라운 응집력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발현된다.일제치하 국권상실기나 6·25전쟁과 같은 국난시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많은 것도이에 연유한다. 국가보훈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과 그 유가족에 대한정신적·물질적 예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타인과 공익을위한 삶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가를 인식케 하는 성스러운영역이다. 2주 전 국가보훈처장에 부임하면서 개인적 영예에 앞서 국민통합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하는 보훈업무의 중책을 맡게된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필자는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예우시책을 펴나가면서 나라 위한 희생이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우리 사회에 보훈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조직의 모든 역량을 투입할 생각이다. 토인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는 숱한 시련과 반성,그리고 성찰의 교훈이 누적되면서 발전한다.우리 민족은 외세의 침략 등과 같은 수많은 도전과 위기에 맞서 강인하게성장해 왔으며,한민족공동체의 맥을 반만년 동안 이어낸 자랑스러운 응전과 진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82돌을 맞는 날이다.20세기초 식민지배하에 있던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우리 민족처럼 임시정부를 수립해 27년 동안이나 체계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헌법은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한민국이 계승한다고 명시,단절된 민족사가 아닌 정통성을 이어지게 한 존재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을 평가하고 있다. 요즘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아시아국가들 사이에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비난여론이 비등하다.이러한 때일수록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선열들의 위국헌신의 정신을 기림으로써 이러한 정신이 단순히 잊혀져 가는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되살아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있는 기본가치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수많은 국난을 극복해냈던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도리이고, 우리의 역사와 정신적 자산을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주는 길이 될 것이다.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 우리 ‘땅의 족보’ 그린 사람들

    사람마다 호적이 있듯이,모든 땅에는 땅의 족보에 해당하는 지적(地籍)이 있다.우리사회에서 대표적 음지분야 가운데 하나인 바로 이 지적분야에서 30여년을 근무한 지적인리진호(李鎭昊·69)씨가 한국지적사에 기록할만한 업적을남긴 선배 지적인들의 행장을 묶어 ‘지적인(地籍人)열전’(도서출판 우물)을 펴냈다. 유명 정치인·기업인·학자들을 상대로 쓴 찬양 일색의 평전류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음지분야의 역사를 기록한 것도 그렇지만 대상자 40여명의 옛 문헌자료를 찾고,또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등 ‘발품’을 팔아서 쓴 책이다. 이씨가 지적인들의 인물탐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84년 잡지 ‘지적(地籍)’에 지적교육의 선구자인 김교인(金敎仁)선생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부터다.이번에 나온 책은 이 잡지에 쓴 글을 바탕으로 엮은 것으로,40명이 넘는 지적인들의 면모가 담겨 있다.대표적인 인물 몇을 들자면 광복후 최초의 한국 지적책(責)으로 구 지적법 제정의 주역인 최종태(崔鍾台),지적을 학문으로 정립시킨 원영희(元永喜),최초의 지적 교사 이경철(李慶澈),측량술의 달인이라 불리웠던 강대성(姜大成),일제때 ‘불경죄’로 옥고를 치른 홍성철(洪性哲),6·25때 지적 원도를 무사히 피난시킨 사무관 정동현(鄭東鉉) 등등. 또 구한말 한국에 와서 지적기술을 전수해 준 외국인이나일제 당시 지적분야에 책임자로 근무했던 일본인들의 신상자료도 망라돼 있다.구한말 최초의 측량 선생을 지낸 미국인 측량기사 크럼,조선지적협회 초대회장 출신으로 한국 재정학의 권위자인 미즈타 나오마사(水田直昌),측량기술자 양성에 공헌한 일본 육지측량사 도요다 시로(豊田四郞) 등등. 저자 이씨의 노력이 없었다면 모두 역사에 묻힐 뻔 했던 사람들이다.이씨는 “‘열전’을 쓰면서 선배 지적인의 주소를 몰라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관계당국에 있던 이력서도 폐기되었고,그 이름조차 잊혀진 상태였다”며 “후손들 역시 선친의 이력서,사진 한 장 제대로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고 밝혔다.말미에 부록으로 덧붙인 ‘지적인 명부사(史)’는 1906년 당시 탁지부 특량기수 56명을 시작으로 최근 지적직 공무원들의 명단을 망라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그가 처음으로 정리한 것이다. 1957년 서울대 농대 임학과 졸업후 지적직 공무원으로 출발한 이씨는 1983년 지적기술연구원 부교수로 전근한 이후 지적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86년 ‘한국지적교육 구십년사’(논문)를 발표한 이후 대학 출강과 함께 ‘대한제국 지적및 측량사’‘한국지적사’ 등의 단행본을 출간했다.평소 지적 분야를 비롯해 100년사,향토사,교회사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이씨는 99년 10월 충주에서 폐교된 한 초등학교를 개조해 ‘지적박물관’을 개관했다.그는 “내 인생의 종착점은 박물관장”이라고 말했다. 지적관련 서적이 대중성이 없다는 이유로 책을 출간해 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자 그는 이번에 아예 자신이 출판사를등록하고 이번 책도 자비로 출간했다.발행부수 700부는 국내 지적인 전체숫자의 1할에 해당한다.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교과서 왜곡과 한일교류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와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에서 비롯된 한·일 양국의 우호적 분위기는 두 나라사이를 가로막던 지난 역사의 어두운 장막을 걷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혹 이러한 표현이 지나친 감상이라면월드컵 공동개최와 대중문화 개방을 통해 한·일 두 나라가 ‘매우 뜻깊은 진전’을 이루어냈다는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이는 화해와 우호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면 누구나동감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조마조마하고 마음을 졸여온 불안이 현실로 나타났다.그것은 다름아닌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다. 모처럼 맞이한 화해 분위기를 초석삼아 21세기 한·일 관계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 나아가고자 열의를 품은 사람들에게 ‘교과서 왜곡’은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아닐 수없다.특히 필자처럼 민간교류에 몸담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다. 국제관계는 모름지기 서로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물론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다만 상대방과의 역사적 관계,현재 상황,미래 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선린외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유아독존 식의 외교관계를 성립할 수 있는 나라는 과거에 없었고,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전면에 나서기 전부터,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대중문화개방으로 비롯된 해빙무드가 시작되기 전부터 한·일 양국에는 미묘한 흐름이 일어왔다.독도 영유권 분쟁,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군대위안부 등의 과거사 문제….그럼에도 그것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비단 해묵은 문제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모처럼 조성된 화해무드를 흐리지 말자는 양국사이 무언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필자는 바로 이런 부분이 현명한 정치요,외교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번 ‘역사교과서 문제’는 경우가 다르다.교과서란 말 그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침이요,그 나라의 정체성과도 연관된매우 중요한 사안이다.교과서,그것도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들의 교과서에 주변국과의 선린외교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분명 잘못된 일이다.일본 국내에서 아무리 객관적 평가를 한다 해도 주변국들이 반발한다면거기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시콜콜 교과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겠다.다만‘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단체와 그들을 후원하는 일부 정치가·학자·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자학에 빠진 일본 교과서를 바로잡는 것”을 반대하는 많은일본인들은 그렇다면 누구인가? 일선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본 교직원조합,야당인 민주당과 자유당 정치지도자들,또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400년 전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들의 비극적 삶과 그 후손들이 겪은 갈등을 엮은 연극이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한·일 합작으로,그것도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운 이때공연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걸 쓴 이가 일본이 자랑하는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에서 극우가 전부는 아니다.우리는 양식 있고 선린관계를 원하는 일본인들과 교류를 계속해야 한다. 강 성 재 한일문화교류센터 대표
  • 정진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부활절 메시지

    정진석(鄭鎭奭)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 부활절(15일)을 앞두고 6일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겨레를 사랑하는마음을 갖자는 내용의 부활절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대교구장은 메시지에서 “우리 사회에는 죄악과 어둠의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면서 “우리는 모두가 힘을 합쳐 사랑과 생명이 충만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대교구장은 특히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은 먼저 솔선수범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하며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있는 우리 민족이 통일의 길로 들어서려면 지속적인 만남과 사랑의 나눔이 더욱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사설] 지하수 관리 철저하게

    우리나라 지하수에서도 라돈과 우라늄 등 방사성 물질이검출됐다.국립환경연구원이 전국 145곳의 지하수를 표본조사한 결과 45곳에서 미국의 기준치를 넘는 라돈이 나왔고 2곳에서 캐나다의 기준치를 넘는 우라늄이 검출됐다고 3일밝혔다.지하수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정도 짐작했던일이나 정작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이는 지하수에서 이같은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우리나라는 지하 수질 보존을 위해 일반 오염물질 5종과특정 유해물질 7종에 대해 허용 기준치를 정하고 수은 등 3종은 불검출 물질로 규정해 놓고 있으나 폐암을 유발할 수있다는 라돈과 백혈병 유발 가능성이 있다는 우라늄은 허용기준치조차 없다.우리나라 지하수에서는 이 유해물질들의검출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기 때문이다.그런데 허용 기준치조차 마련해 놓지 않은 유해물질이 검출 빈도가 높은 외국의 허용 기준치를 넘어 검출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있다.이는 그동안 지하수 안전관리가 얼마나 안이했는지를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하수 오염은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그러나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의 특성 때문에 오염 파악이 어렵고 원상회복도 기술적으로 복잡할 뿐 아니라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는 난점이 있다.따라서 지하수 오염 문제는 사후대책보다는 오염물질의 하강침투와 이동을 차단하는 예방조치에 더 치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하수의 오염 경로는 방치된 폐공,주유소,화학약품 저장소,공단,하수도관,농약과 화학비료에 오염된 농업용수,산성비 등 다양하다.그럼에도 오는 11월에 발효될 ‘정화명령제’등 개정된 지하수법은 관리대상이 특수 시설에 한정돼 있고 사후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어 걱정스럽다.물전쟁이 예상될 만큼 물이 중요 자원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다.오늘의 국민건강뿐만 아니라 후손을 위해서라도 사후약방문격이 아닌 지하수 오염방지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할 것이다.
  • 인천공항 최고령 자원봉사자 73세 조진호씨

    자원봉사를 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1층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한 노인이 젊은 일본인 여행객 2명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도이레가 도코에 아리마스카?”(화장실이 어디에 있나요) “와타쿠시가 안나이이타시마스.”(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노인은 인천공항공사 공항개항협력단에서 채용한 최고령자원봉사자 조진호(73·경북 영천시 화남면)씨.조씨는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동안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외국인들을 상대로 공항시설을 안내한다. 토요일에 영천의 집으로 내려갔다가 수요일에 올라와 경기도 안양의 아들 집에 머물며 자원봉사를 한다.조씨는 “크고 좋은 공항에서 남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을 하노라면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힘든 줄 모른다”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공항청사를 돌아다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얼른 달려간다.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일본인들을보면 조씨에게 데려온다. 조씨는 지난 94년까지 영천 산동중·고교에서 교장으로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생물과 일본어를 가르쳤다.조씨는이달초 자원봉사자를 뽑는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일본어로 지원서를 작성했다.면접관이 일본어로 질문했을 때 면접관의 잘못된 일본어 발음을 고쳐주기도 했다.자원봉사하는 날에는 교통비와 점심 값 명목으로 하루 3만5,000원을받지만 경기도 안양에서 공항 리무진버스로 출퇴근하는 데교통비만 2만4,000원이 든다. 조씨는 “일 자체도 재미있지만 역사적인 시설을 후손들에게 반듯하게 물려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면서 “미력이나마 남들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그저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29일 문을 연 인천국제공항에는 조씨와 같은 자원봉사자1,000여명이 개항 초기에 이용객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각종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구석구석에서 애쓰고 있다.조씨와 같은 안내 봉사를 비롯,교통편 안내,탑승수속을 돕는여객봉사,주차관리와 차량 통제를 하는 공공봉사,노약자와장애인 등을 거드는 편의봉사 등을 한다.대학생들이 절대다수지만 공항 근무경력이 있는 50대 퇴직자,60∼70대노인들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공항개항협력단 정봉환(鄭鳳桓·51) 사무국장은 “자원봉사자 모집당시 수천여명이 몰려들었다”면서 “대학생들은외국인들을 상대로 어학연습을 하려고 지망했지만 자원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온 노인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토지공 김용채 사장 “건전한 소액 부동산 금융상품 개발”

    한국토지공사가 다음달 1일 창립 26주년을 맞는다.토공은단순 택지공급에서 벗어나 부동산 금융사업과 국토의 효율적 관리기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김용채(金鎔菜)사장을 만나 토공의 발전방향 등을 들어봤다. ●공기업 경영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종래의 틀로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토공의 경영시스템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생각입니다.이미 토공 실정에 맞는 사업성 분석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지사별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자율과 책임이 따르는 경영을 해 나갈 것입니다. ●부동산과 금융이 어우러진 상품 개발은 뭡니까새로운 상품인 리츠(부동산투자신탁)에 적극 참여할 계획입니다.건전한 소액 부동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지요. 자회사인 토지신탁과 연계하면 좋은 상품이 개발될 것입니다.또올해 기업구조조정용 토지매입 등에 1조원 규모의 ABS(자산담보부채권)를 발행할 계획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도입,용인 죽전지구의 특별설계구역에 첫 적용합니다. ●개발과 환경의 조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가 아닙니까개발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개발과 관리의 양축으로 개편할계획입니다.백년,천년이 가도 손대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안목을 갖고 개발에 나설 것입니다.모든 개발 사업에 ‘선 계획 후 개발’원칙을 적용할 방침입니다.광역 교통대책을 세우고 도시기반 시설 등을 갖춘 다음에 개발하겠습니다. ●개성공단 개발뿐아니라 해외 개발사업도 준비 중인 걸로알고있는데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실질적인 첫 사업입니다. 이른 시일안에 북한을 다시 방문해 북측과 토지 임대료, 육상 교통로확보 등을 협의할 계획입니다.토공의 토지개발 노하우를 살려 중동·중남미지역 개발도상국의 각종 개발사업에 진출하는 방안도 준비 중입니다. 류찬희기자 chani@
  • 정주영회장 사후/ 세금 얼마나 낼까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재산을 받는 유족 등은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 정 전 회장이 남긴 재산은 현대건설 지분15.77%(739억원) 등 계열사 보유지분 911억원과 서울 가회동·청운동 자택, 미지금된 건설 퇴직금 134억원 등이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의 계열사 보유지분중 자녀들이 상속할 수 있는 주식은 거의 없다. 정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건설 지분을 현대건설에 무상증여했기 때문이다. 정 전회장의 지난 21일 현재 계열사 보유지분은 현대건설15.77%와 현대중공업0.5%, 현대상선0.3%가 전부다. 현대건설 지분증여로 정 전명예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상장주식은 110억원대로 줄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중공업 지분은 15.9%, 상선은 4.6%, 현대자동차 지분율도 0.1%였으나 대부분 매각해 현대건설 회사채 매입 등에 썼다. 건설은 정 전회장으로부터 거저 얻은 건설주식에 대한 법인세 28%와 주민세(법인세의 10%) 2.8% 등 30.8%(221억여원)을 물면 된다. 나머지는 우선 유언장이 있을 경우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러나 정 전회장이 재산에 대해유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다. 첫째는 법정상속비율을 적용해 상속하는 것. 변중석여사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총괄회장 등 6남1녀가 8분의 1씩 나눠갖고 그에 따른 세금을 내면된다. 상속세율은 상속가액 1억원 미만 5%, 1억~5억원 10%, 5억~10억원 20%, 10억~30억원 30%, 30억원 이상 30~45%이다. 그러나 변 여사는 와병중이어서 재산을 상속받을 가능성이 없는데다 정 전회장의 건설지분을 가족회의를 통해 건설에 무상증여했듯이 남은 재산 역시 가족회의에서 협의를 통해 분배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합의분할이다. 가족회의에서는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청운동 자택 등을, 나머지는 개인별로 상속을 포기하거나, 특정인에게 상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30억원 이상을 상속받게 되는 후손은 누진세율이 적용돼 최고 50%까지 세금을 내게 되지만 실제 상속인들이 부담하게 될 세금은 3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 최종현 SK회장의 상속인이 낸 세금(730억원대)에 크게 못미친다. 오승호 주병철기자
  • 개관 앞둔 전시관 자료확보 ‘비상’

    전북지역 지자체들이 앞다퉈 각종 전시관 건립에 나서고있으나 정작 개관을 앞두고 전시물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도내 지자체가 건립중인 주요 전시관은 전북도의 동학혁명기념관을 비롯해 군산시의 채만식문학관,익산시의 보석박물관,고창군의 판소리박물관 등이다.그러나 이들 전시관은 수년간의 공사에도 불구하고 전시자료 확보 등 준비작업이 허술해 알맹이 없는 전시공간으로 전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 군산시가 98년 18억원을 들여 성산면 금강변에 착공한 채만식문학관은 지난해 말 완공됐으나 아직까지 확보된 전시물은 140여점에 불과하다. 또 익산시는 보석수집가의 보석 기증 약속을 계기로 국비등 총 200여억원을 투입,박물관 건립에 나서 다음달 말 준공 예정이지만 전시 보석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기증받은 11만여점의 보석이 대부분 전시에 적합하지 않은나석(裸石)이어서 지난해와 올해 25억여원의 예산을 들여보석 수집에 나서고 있다. 전북도가 국비 등 총사업비 300여억원을 들여 정읍시 덕천면에 짓고 있는 동학혁명기념관은 건설예산이 부족해 공기를 채우기도 힘들어 자료수집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이밖에 고창군이 35억원을 들여 다음달 완공 예정인 판소리박물관은 전시물 수집 예산이 2,000만원에 불과해 동리 신재효씨의 후손과 군민들의 기증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대부분 국비가 지원되는 전시관을 다른 지역에빼앗기지 않으려는 지자체간의 그릇된 경쟁의식에서 비롯된측면이 있다”면서 “철저한 사전 준비나 검증없이 건립되는 전시관은 결국 단체장 치적쌓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주 조승진기자 redtrain@
  • [공직자 에세이] 열린마음으로/ 3·8 세계여성의 날..올해의 의미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부의 출범과 더불어 한국여성들에게는 그 어느 때 보다 뜻깊은 바가 있다.금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윤정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에게 올해의 여성상 수여를 결정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 지식인으로서,굴절된 역사의 지층에 숨겨진 동년배 여성들의 통한(痛恨)을 온 몸으로 껴안고 집요한 열정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발굴하여 이를 사회운동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역사적 공헌을 이룩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 소식에 접하면서,윤정옥 대표에게 따뜻한 축하의 마음을 전함과 아울러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새 역사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 그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기여인가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피해자 할머니들이 아직도 미해결의 아픔을 지닌 채 역사의 뒤안길에서 한 분 또 한 분 숨져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보다 근본적 해결을 위한 단호한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21세기를 맞아 여성부 출범이라는 개가를 올린한국여성운동 앞에 오늘 새삼 제기되는 엄숙한 과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교훈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전해지고 그러한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성평등(Gender Equality)’정책과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잠재된 인적자원이 개발되어 이 땅의 여성이 남성과 더불어이 사회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대등하게 기여하는 길이 활짝 열려야 한다.그렇게 되면 반드시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의 큰 물결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확신해 마지 않는다.나는 여성부 초대장관으로서의 포부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점을 강조해왔다. 한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나아가 전 세계적인 성평등 정책과 교육의 정착이야말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와 현재에 걸친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초가 된다. 또한,21세기의 첫 3·8 세계 여성대회를 맞이한 여성부장관으로서,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여성부가 그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아보려 한다. 1908년 3월 8일 뉴욕 루트거스 광장에 운집했던 여성들의함성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나는 이렇게 음미하고 있다. 한명숙 여성부장관. ◆ ‘각료 에세이-열린 마음으로’ 필진이 7일자부터 바뀝니다. 특히 장관급에서 차관급 기관장 및 외청장까지로 필진대상을 넓히고 칼럼 명칭도 ‘공직자 에세이-열린 마음으로’로 변경했습니다. 오는 5월까지 3개월 동안 지면을 빛내줄 새 필진은 한명숙(韓明淑)여성부장관,김유배(金有培)국가보훈처장,정종환(鄭鍾煥)철도청장,김성호(金成豪)조달청장 입니다.
  • 가혹한 유산상속…두갈래의 삶

    독일 나치정권은 유태인 600여만명을 학살하고 2차세계대전의 참사를 유발한 범죄집단이다.히틀러의 제1후계자 헤르만괴링,총통 대리 루돌프 헤스,히틀러의 비서 마틴 보르만,SS친위대 총대장 하인리히 힘믈러,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히틀러소년단장 발두어 폰 쉬라흐 등 1급 전범들은 뉘렌베르크전범재판에서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 처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반인륜범죄와 직접 관련이 없는,전범의 자식들은어떤 운명의 길을 걸었을까. ‘나치의 자식들’(이영희 옮김,사람과사람 펴냄)은 언론인부자가 1급전범 자녀들의 인생역정을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전한 기록이다.노베르트 레버르트가 지난 59년 당시 20∼30대였던 전범 자녀들을 최초로 인터뷰해 벨트빌트지에 연재한내용에, 그 아들인 슈테판 레베르트가 41년만에 다시 한 인터뷰를 보탠 형식이 특이하다. 보르만의 큰 아들 마틴은 신부로서 아프리카 등지에서 봉사하다 70년대초부터 종교담당교사로 일하며 유태인 희생자 자녀들과 교류한다.그는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는 사랑하는 반면,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사악한 범죄자인아버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프랑크의 둘째아들 니클라스는 잡지기자로서 80년대 중반 출간한 ‘나의 아버지,나치의 살인마’라는 책에서 “해마다아버지가 처형당한 10월16일이면 죽은 아버지의 사진 위에서수음을 한다”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했다. 아버지를 “비겁하고 부패했으며 권력에 눈이 먼 남자이자 잔혹한기회주의자”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형 노르만은 “아버지의 재산은 죄로 덮여 있으니 모두포기해야 한다”며 이 세상에서 프랑크란 이름은 사라져야한다는 뜻에서 아이를 갖지 않았다. 반면 헤스의 외아들 볼프는 아버지를 감금한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없다며 군복무를 거부했고 자신의 아들이 할아버지의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고 자랑한다.힘믈러의 외동딸 구드룬은 옛나치들을 돌보는 활동을 주도하고,괴링의 외동딸 에다는 몰수당한 아버지의 미술품을 되찾기 위해 법정투쟁마저불사하는 등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걸어잠근 삶을 영위해 대조를 이룬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당신의 아버지가 전범자였다면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침략국이었던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식민지의 설움을 겪었던한국의 친일파 청산문제는 더욱 미진하다. 친일파의 후손들중에서도 조상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망각은 은혜인 동시에 위험이다. 김주혁기자 jhkm@
  • [굄돌] 미래를 심자

    봄 캠퍼스는 온통 호기심으로 가득찬 신입생들의 해맑은 얼굴로 생기가 가득하다.새록새록 솟아오르는 봄기운과 함께구석구석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에서도 웬지모를 힘이 솟아나고 젊음의 향기가 그윽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어떻게 가르쳐야 이들에게 힘을 더 보태주고 그 향기를 더 진하게 해줄 것인가.학기 시작때마다 느끼게 되는 한결 같은 고민이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다 현실적인 고민은 지난 학기와 똑같은 교과내용을 어떻게 다르게 가르칠 것인가로 귀결된다. 백지를 펴들고 선생님을 응시하는 학생들에게 매시간 어떻게 말문을 열 것인가도 여간 신경쓰이는 대목이 아니다. 고민 끝에 이번 학기에는 ‘미래’를 화두로 강의를 시작하기로 했다.학생들에게 ‘큰 미래’를 심어주는 일이야말로어떤 학과 내용의 전달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미래는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무기력·무의욕에대한 좋은 처방이 되기도 한다.이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특권이다.노르웨이의 물리학자 에릭 뉴트는 ‘미래 속으로’라는 책에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차이 중의 하나는 미래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구가하는 사회의 발달상은 적어도 20∼30년전에 상상해오던 미래의 모습이었다.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20∼30년후의 미래를 위하여 부지런히 상상하고 준비해야 한다.바꿔말하면 지금 그 준비가 없다면 20∼30년 후의 미래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미국인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돈이 많아서도,군사력이 강해서도,학문이 발달해서도 아니다.끊임없이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그래서 늘 한발 앞서가는 것이다.정치지도자들은 정치지도자대로 기업총수는 기업총수대로 미래 예측과 준비에 가장 우선하는 모습을 보인다.지도층의 그같은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일궈낸다. 우리 국민도 미래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그것은 오늘의우리를 있게 한 조상에 대한 보은이면서 후손을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그래서 강의실에서 백지를 펴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미래의 상상력을 그리게 하고 싶은 것이다.미래의 의미를 강조해주고 싶은 것이다.새봄의 캠퍼스가 다양한 미래의 상상력으로 그득해지길 기대하면서. 라 윤 도 건양대 교수
  • [발언대] 3·1정신으로 위기 극복하자

    오늘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82주년이 되는 날이다.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야욕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자 분연히 일어나 세계만방에 우리민족의자주정신과 독립의지를 천명하였으며,잠시 잃어버린 민족정신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 식민지지배에 항거하여 한반도뿐만 아니라 국외에 거주하는 한민족 전체가 거족적으로 전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이 투쟁을 계기로 민족의 주체적인 자각이 크게 고양되었으며 세계 각지에 흩어진 우리 민족을 다시 뭉치게 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동하는 밑거름이 되었고,일제 35년의 암울한 터널을 벗어나 조국광복의 감격을 안겨준 원동력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오늘 우리가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결코지난 역사의 사실을 단순히 회고하자는 데만 그 뜻이 있는것은 아니다.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고 국민 의지를결집하여 21세기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참뜻이 있다.지금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냉혹한 국제환경을 슬기롭게 개척해야 하며,민족분단 55년의 벽을 넘어 모처럼 찾아든 남북 화해·협력의 새로운 물줄기를 착실히 이어나가한민족 통일의 기반을 굳건히 세워 나가야 할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일찍이 백암 박은식(朴殷植)선생은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나라는 망해도 역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정신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우리는 올바른 국민정신의형성이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것을 세계사를 통하여 흔히 보아왔다.다행히 우리에게는 선열들이 물려주신 훌륭한 정신문화유산이 있다.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조국을 지켜오신 수많은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야말로 어떤 첨단기술로도 복제할 수 없는 귀한 유산이 아닐까? 3·1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정신이며,온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국민정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당면한 국제사회의 거센 파고를 지혜롭게 헤쳐나가 선진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일류국가를 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세기에 기필코 한민족 통일국가를 완성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자.이것이야말로 선열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자 도리일 것이다. 김 건 신 서울지방보훈청장
  • 표창장 韓紙로 만든다

    ‘표창장을 모조지 대신 한지(韓紙)로’ 경북지방경찰청은 경찰 재직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받는 영예로운 각종 표창장을 영구 보관할 수 있도록 표창장용지를 기존의 모조지 대신 전통 한지로 제작,다음달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한지로 제작하면 장기 보관이 가능해 당사자의 영예와 자긍심을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다고 경북경찰청는 밝혔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
  • 이기준 서울대총장 졸업식사 “통일국가 이끌 자세…”

    이기준(李基俊) 서울대 총장은 26일 교내 체육관에서 열린제55회 학위수여식에서 식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향한걸음이 조국과 세계의 행복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발걸음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학위수여식에서는 학사 3,217명과석·박사 2,616명이 학위를 받았다.이 총장의 식사를 간추린다. 21세기와 함께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여러분에게 우리사회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롭고 알찬정보로 무장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할 것이며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쾌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친화적 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국내적으로는 조국의 통일을이루기 위한 초석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통일된 조국을 이끌어갈 구체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변혁의 시대를 이끌 기수로서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재학시절 키워왔던 진리탐구의 열정과 창의적인 사고를 영원히 간직해야 합니다.또한 여러분이 맡은 일과 여러분이 속한 사회 속에서 늘 새로운 것을추구함으로써 급변하는시대의 선구자가 돼야 할 것입니다. 둘째,여러분에게 주어진 기득권이나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어야 할 것입니다.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주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여러분의 시야와 활동무대를 세계로 넓혀 전세계를 누벼야 할 것입니다.여러분의 선배가 “조국의 미래를 보려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했지만 이제 여러분은“세계의 미래를 보려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졸업생 여러분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를 위한 힘찬 걸음을내딛게 됩니다.여러분들의 발걸음이 서울대학 졸업생의 발걸음에서 머물지 않고,조국과 세계의 행복한 미래를 개척하기위한 발걸음이 될 것을 굳게 믿습니다.
  • 日帝 주민학살현장 더 있다

    1919년 3·1의거 당시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교회뿐만 아니라 인근 수원지방 16개 마을과 5개 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만행이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또 고종황제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는 내용의 문건을 파리강화 회의에 전달하려다 밀사였던 하란사(河蘭史) 전도사 등이체포되는 바람에 일본의 사주에 의해 독살됐으며,이 과정에서 황실의 외척인 윤덕영(尹德榮·순종황후 윤비의 큰아버지)이 깊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1892년부터 1934년까지 42년간 남편과 함께한국 선교사로 근무했던 미국 북감리교의 마티 윌콕스 노블선교사(여·1872∼1956)가 당시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육필일기와 문건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이 자료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담임목사 조영준) 역사관 김대구상임연구위원(54) 일행이 지난해 미국에서 노블 여사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최근 ‘3·1운동,그날의 기록’이란책자로 간행됐다. ‘제암리사건’과 관련,그동안 드러난 기록에는 4월15일 일본 군경이 제암리교회에 불을 지르고 23명을 살해한 데 이어고주리 마을에서 6명을 총살하는 등 모두 29명을 죽인 것으로만 돼 있다.그러나 노블 여사의 일기에 따르면,일경은 제암리교회 뿐만 아니라 4월19일을 전후해 인근 수원지방 16개마을과 5개 교회에서 추가로 주민 학살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와 있다.그는 이날자 일기에서 “그들(로이드 영국 대리공사 등)이 방문한 다섯 마을의 상황은 시체가 묻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암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그들이 알기로는 그 지역에서만 16개 마을이 전멸되다시피 했다”고밝혔다.‘수원지역 구조활동 보고서’에서는 “사강리에서 326채의 가옥이 불타고 1,6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생각되며,39명이 살해됐고,일경 한 명도 돌에 맞아죽었다”고 기록했다.이밖에 당시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조선총독이제암리사건의 파문이 확산되자 “교회 재건을 위해 교회당 500엔,그리고 불탄 집 한 채당 50엔씩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며 그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미국 선교사들에게 당부하며 사건 은폐를 시도한 사실도 밝히고 있다. 김대구 연구위원은 “3·1의거 당시 현장을 목격한 선교사들의 기록인만큼 사료가치가 우수하다”며 “노블 여사의 일기를 근거로 경기도 화성군 일대의 감리교회에서 자행된 일제의 만행에 대한 현지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조은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

    시인의 산문집 중에 더러 소설가 것보다 더 육감적인 책이있다.그렇더라도 그 산문집은 소설가보다는 시인의 눈이 더맑다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은의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마음산책)는 1960년생 여류시인의 외면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그러나 독자들은혼탁해질 수 없는 시인의 눈을 상기시키는 그의 내면으로 슬금슬금 다가가게 된다.그는 자기연민이나 회피없이 삶을 통찰하며,그런 용기를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쓸쓸해보일 수도 있는 주변을 탐스럽게 입체화한다.다음은글 ‘세 가지 이유’중의 한 부분. 사람들은 진지하게 내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이젠 왜 결혼하지 않았냐고 물을 때도 됐는데….그들이 물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조금씩 다른데,다 진실인 것 같다.제 삶을 확장하고 싶지 않아서요,자신이 없었어요,결혼해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에요,하는 나의 대답에는 거짓이 없다.나의삶을 후손을 통해 확장하지 않고 내 선에서 마무리하려 했던 것은 지금껏 살아온 내 삶에 달콤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친우인 소설가 신경숙은 발문을 통해 그의 시 구절“벼랑에서 만나자.부디 그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다오.그러면 나는 노루피를 짜서 네 입에 부어줄까 한다.”를 보고 전율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김재영기자
  • 日우익세력 다시 ‘꿈틀’

    18일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일본 중의원의 태평양 전쟁 정당화 발언으로 일본내는 물론,아시아 주변국에서 일본우익세력의 재준동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지난해 모리 총리의 ‘신의 나라’ 발언 등 잇단 망언과 방위청 장관출신들의 방위성(省) 승격 시도,최근 ‘역사 왜곡 세력’의활동 등 일본 우익의 과거사 미화 및 군국주의 부활 시도가점차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야당은 물론 노로타 의원이 속한 자민당은 즉시 비난성명을 냈고,향후 그의 발언이 외교문제로 비화되지 않을까걱정했다.간 나오토(菅直人)민주당 간사장이 주축이 된 야당지도부는 18일 중의원 예산위 이사회에서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노로타의 역사 인식은 용납될 수 없다”고 중론을 모았다. 또 민주·자유·공산·사민당 등 일본의 4야당은 19일 노로타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 또는 해임 결의안을 제출키로 해 그의 거취가 주목된다. 노로타 의원의 강연에서 문제된 부분은 ‘태평양 전쟁’을‘대동아 전쟁’으로 표현하고,이로 인해 아시아의 식민지가완전히없어졌으며 일본 덕분에 동남아시아의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 점이다. 그의 이같은 망언은 최근 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우익세력활동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최근 우익세력들은 다음달 초로 예정된 문부과학성의 새 교과서 선정 발표를 앞두고 관련인사들에게 협박·폭력전화를 일삼고 있다. 특히 지난해 왜곡사실이 알려진 이후 파문을 일으켰던 일본‘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2002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외교마찰로 번질 가능성마저 보이고있다. 우익 교과서 비판 심포지엄 등을 주도한 사람에 대한 테러위협도 끊이질 않아 우익세력의 준동은 일본내에서도 국가적·사회적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중국 신화통신은 보도가 나온 즉시 ‘침략전쟁의 미화’라며 거세게 비난하는 논평을 내보냈다.해방군보(解放軍報)도 “만약 일본이 과거를 교훈으로 삼지 않으면 일본의 후손들에게 심대한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로타 호세이는 누구? 노로타 의원은 자민당 최대 파벌인하시모토(橋本)파로 중의원 6선의 중진. 주오(中央)대 법학부를 졸업,건설성 문서과장 등 공무원 생활을 했다.83년 참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농림수산성 정무차관,방위청장 등을 거쳤으며 참의원 자민당 부간사장 등을 맡았다.지난해 ‘중의원 방위성 설치 의원 연맹’의 핵심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사설] 세사람이 남긴 시대의 아픔

    세 사람의 죽음이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무거운 과제를 던져 주었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 갔다가 이국 땅에서 한 많은 삶을마감한 ‘훈 할머니’ 그리고 미국 유학 중 유럽 여행을 갔다가 납북된 한 청년의 사망 소식에 이어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실종된 한 노동 운동가가 10년 만에 유골로 신원이 밝혀진 사실 등이 바로 아픔의 사연이다. 18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보낸 훈 할머니의 한 서린 삶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정신대 시위’가 9년째 계속되고 있다.일본에는 아직도 일제의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일본군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는 등의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가 제작되고 있다.한·일양국의 과거사는 몇푼의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일본이 역사 앞에 참회할 때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14년 전 납북됐던 이재환씨는 가족들의 송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과정에서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그 부모들의오열은 바로 이 시대 분단의 아픔이자 이데올로기 대결의 비극이기도 하다.다시는 이같은 아픔을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된다.남북 화해협력정책을 추구하는 것도분단의 아픔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992년 8월 실종된 노동 운동가 박태순씨는 실종된 것이 아니고 열차에 치어 사망한 행려병자로 처리돼 벽제묘지무연고 묘역에 묻혔다가 1998년에 화장된 사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밝혀졌다.특히 이 사건은 사망 당시 지문채취 과정에서 관계기관이 박씨임을 확인하고도 ‘신원불상자’로 처리한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의혹 투성이인 그의죽음에 대해서는 역사의 진실 규명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세 사람이 남긴 이 시대의 아픔은 바로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다시는 이같은 굴곡된역사의 희생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일 과거사 정리,남북 화해의 실현,민주·인권국가 건설 등의 과제를 하루빨리 완수해야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