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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리대첩 기념탑 제막 현지 르포

    “나가 나가,싸우려 나가!…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려 나아가세!” 지난 31일 1920년 청산리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청산리항일대첩 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된 중국 지린성(吉林城)허룽쓰(和龍市) 룽청?x(龍城面) 칭산춘(靑山村)에는 당시독립군들의 노래가 다시 메아리치는 듯 했다. 제막식에 참석한 김유길(金柔吉·82)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투사들과 유족들,지린성의 중국 동포 등 400여명은 기념탑과 주변의 격전지를 둘러보며 “선열들의 함성과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북로군정서 여단장으로 참전했던 최해(崔海·48년 작고)선생의 아들인 기룡(騎龍·73)씨는 “기념탑 부조 속의 독립군 가운데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탑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았다. 청산리 대첩 81년만에 세워진 기념탑은 청산리 바로 뒤 야산에 28m 높이의 158개 하얀색 화강암 계단 위에 옆이 둥글게 파인 사다리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다.탑의 높이만 17.6m에 이른다.광복회의 모금 운동에 중국 동포들이 힘을 보태지??해 4월 착공한 지 16개월만에 위용을 드러냈다. 1920년을 기념하기 위해 19.20m 높이로 쌓으려 했으나 중국 정부와 협의가 잘 되지 않아 높이를 낮췄다.탑 아래 부분에는 소총과 기관총 등을 쏘며 일본군을 격퇴하는 독립군의 모습을 담은 가로 4.8m,세로 2.5m 크기의 하얀색 화강암부조가 있어 당시의 격전을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청산리는 천지에서 북동쪽으로 180㎞ 가량 떨어진 백두산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산마을.당시 독립군들은 이름만큼이나 푸른 청산리 골짜기에서 일제·마적단·굶주림과 싸우면서도 총을 놓지 않았다. 김좌진(金佐鎭)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 2,000여명은 대포와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일본군 5,000명 가운데 2,000여명을 사살,항일 무장투쟁 가운데 가장 큰 전과를 올렸다. 윤병석(尹炳奭·71) 인하대 명예교수는 “청산리대첩은 1919년 3·1 만세운동이 20·30년대의 격렬한 무장투쟁으로 이어지는 전기를 마련한 큰 승리”라면서 “동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끌어낸 승리?? 더욱 값지다”고 설명했다. 제막식에는 청산리에 사는 동포 여성들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자부심과 애정을 보여줬다.청산촌장 최경렬(崔京烈·52)씨는 “이제 후손들에게 선열들의 자랑스런 항일투쟁을 마음껏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념탑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라며 상기된 모습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광복회(회장 尹慶彬)는 오는 10월에는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斷指同盟碑)’를,우스리스크에는 고종의 헤이그 밀사로 러시아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을주도한 이상설 선생의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 청산리 전영우기자 anselmus@
  • 포커스/ 韓·日 합작극 ‘히바카리-400년의 초상’

    극단 미추가 31일부터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서 선보이는 ‘히바카리-400년의 초상’(시나가와 요시마사 작)은한·일 합작 연극. 미추 대표 손진책이 연출했고 김지일과 무라다 간시가 각각 대본·연출을 도왔다.출연진도 극단 미추와 일본 극단 스바루가 각각 11명씩 할당했고 미술(윤정섭)음악(박범훈)안무(국수호)와 음악(야마기타 시로)도 양측에서 분담했다. 히바카리는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도공들이 천신만고 끝에만들어낸 첫 도자기 그릇이란 뜻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陶工)들의 삶과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후손들의 갈등이 극의 큰 얼개다.실존하는 한·일 양국의 도공이 모델이다. 가업 전승을 놓고 고민하는 일본인 청년과 지금은 사라진 전통 막사발을 배우려는 한국인 여성이 만나 과거사 때문에 겪는 고뇌와 갈등,그리고 화해가 사실적으로 풀어진다.31일 오후7시30분 9월1일 오후4시30분·7시30분 9월2일 오후3시,(02)747-5161김성호기자 kimus@
  • [매체비평] 존경받는 언론社主의 길

    얼마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작고했을 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진심어린 애도의 뜻을 표했다.그 애도의 뜻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 신문의 사주에 대하여 의례적으로 표하는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운을 걸고 진실보도를 추구했던그녀의 용기와 결단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국내의 신문들은 너도나도 크게 다루었다.일부 신문에서는 그녀의 삶이 마치 신문사주 일반의 삶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그녀의 삶과 같은 삶을 살지않은 국내의 신문사주들과 그녀를 동일시하는 것은 아전인수요,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그레이엄이 훌륭한 것이지,모든 신문사주가 훌륭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1970년대초 정부와의 갈등을 무릅쓰고 기자들과 일체가 되어 월남전쟁 발발과정의 진실을 밝혀준 국방부 기밀문서 공개 사건에서 선봉에 섰다.이 사건은 언론의자유, 국익과 언론, 그리고 언론과 정부의 관계 등에 관한이정표를 세워준 세계사적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이후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사건에 관한 보도에서도 그녀는 언론의 정도를 걷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레이엄 여사는 세계인의 존경을얻고,워싱턴포스트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권위와 영향력이 있는 신문으로 발돋움했다. 19세기말 미국에서 퓰리처와 함께 치열한 황색저널리즘경쟁을 벌임으로써 언론의 저질화에 앞장섰던 허스트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신문사를 소유하되 신문사 경영에는 손을대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쟁자인 퓰리처도 퓰리처상을 제정하여 훌륭한 언론활동을 수행한 언론인들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아마도 이들은 자기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위하여 벌였던 무한 경쟁과 그로 인한 언론의 타락현상에대하여 깊이 반성한 끝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싶다. 권위지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의 르몽드에도 훌륭한 사주가 있었다.1940년대 르몽드의 사주였던 앙리 부브뫼리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기자집단에게 신문사 운영권을 양도함으로써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문편집의 기틀을 닦았다.그 이후 르몽드는 세계적 권위지로성장했다.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는 소유주가 편집에 관여할 수 없도록 아예 주식을 재단법인에넘겼다. 한국의 신문사주들은 어떠한가.불행하게도 한국 언론의역사 초기부터 신문사주는 권력과 유착하여 권력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대신 권력이 던져준 ‘미끼’를 능동적으로 챙겨 왔다.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하여 사운을걸고 기자들과 함께 사주가 몸을 던져 싸워 본 적이 없다. 언론의 지나친 권력화 현상이나 무차별적 탈세가 그 표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존경받는 신문사주가 나올 수 있다.역사에 기록될 훌륭한 신문사주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주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신문사주는 신문사의 주인이아니다.신문이라는 사회적 중요성이 있는 공공영역을 관리하는 책임자이다.사주는 비록 언론인은 아니지만 언론인과같은 의식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언론인들에 대한 지배자가 아니라 언론인들과 원활한 정신적 교통을 하는 친구로서 그들의 양식있는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바로 이러한 자세를 가진 신문사주는 자기가 소유한 신문을 키우고 스스로 명예와 사랑과 존경을 쌓아나갈 수 있다.의도적으로 조작된 존경이나 돈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축적된 인간 자체에 대한 존경을 얻는 신문사주가 나올 때는 언제인가. ◇류한호 광주대 교수·언론학
  • 여야 화해무드에 또 ‘파열음’

    막 싹이 트려던 화합정국이 다시 얼어붙을 위기를 맞고 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의에 한나라당측이화답해 어렵사리 성사된 대화국면이 민주당 안동선 의원의돌출발언과 야당의 장외집회로 다시 난기류에 휩싸였다. ◆ 민주당. 여권은 안동선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지도부가 나서 신속하게 유감을 표명하고,이날 개최할 예정이던 대야 규탄장외집회도 취소하는 등 영수회담을 의식한 ‘유화책’을계속 시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야당이 이날 장외집회를 강행한 것을비난하고 나서 현 정국이 얼마나 ‘살얼음판’인가를 실감케했다.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는 아침 당4역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이날 서울에서 열기로 한 대여 규탄 장외집회에 대해“국민들이 이제 그런 것 싫어하지 않나.서로 욕하고 비난하고 헐뜯고…”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국민 정서가 이제는 건전한 정치를 희망하고,여야가 서로 협력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을 바라고 있다”며“우리가 오늘 서울 국정홍보대회를 취소한 만큼, 한나라당도 마땅히 장외집회를 중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상규(朴尙奎)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이 대규모 집회를하더라도 우리는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시급한 민생현안을위해 일노일소(一怒一笑)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인내’를 강조했다. 전용학(田溶鶴)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장외집회를 굳이강행한다면, 영수회담 분위기에 저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남궁진(南宮鎭)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야가 공방을 하면문제가 해결이 안된다”고 정쟁중단을 강조한 뒤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총재 비서실장과 영수회담 실무접촉을위해 만나자고 전화했는 데,안동선 최고위원 발언을 이유로뭐라 대답하지 않더라”며 실망의 뜻을 내비쳤다. 김상연기자 carlos@. ◆ 한나라. 한나라당은 17일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이회창(李會昌) 총재와 주요 당직자와,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강연회를갖고 언론사주 구속 문제 등 정국현안을 소재로 여권을 강력히 성토했다. 특히 여야 영수회담 추진중 민주당 안동선(安東善) 최고위원이 이 총재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사실을 적시하며 거칠게역공을 폈다. 이 총재는 “시정잡배만도 못한 저질스러운 비방과 인신공격을 일삼는 한심스런 여당의 행태를 보면서 영수회담 제의에 어느 정도 진실성이 담겨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이어 경제문제,대북 정책,언론사 세무조사 등 국정전반의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대통령은 작금의 상황을 총체적 국가위기로 겸허하게 받아들여 정권연장에 집착하지말고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전력을 다하고,국정쇄신 의지를행동으로 보이라”고 촉구했다. 이 총재는 또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햇볕정책은 포용정책이 아니라 조공(朝貢)정책”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김정일(金正日)에 대해 항의 한번 못하면서 서울답방만 애걸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손학규(孫鶴圭) 의원은 “김대중 정부는 개혁이란 미명하에 사회의 기본을 뒤흔들고 국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고 가세했고,비주류인 김덕룡(金德龍)의원도 “김대통령은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비판하며,대통령의 당적이탈,범국민내각구성을 요구했다. 이날 대회는 지난달 20일 의정부를 시작으로 계속된 전국순회 강연회를 마무리하는 장외집회로 120여명의 소속 의원과 수도권 지역 당원 등 1만5,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이지운기자 jj@. ◆안동선최고 돌출발언 파장. 민주당 안동선(安東善)최고위원의 ‘돌출 발언’으로 대화정치 복원에 제동이 걸렸다.한나라당은 17일 배포된 당보에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흠집내기 위한 ‘사진’등을 게재,안 위원의 이회창(李會昌) 총재 비난 발언에 맞불을 놓으면서 파문을 확산시켰다. 한나라당은 이날 이총재까지 직접 나서 안의원 발언을 지적하는 등 격앙된 모습이었다.이총재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야당총재에 대해 시정 잡배만도 못한저질스러운 허위 비방과 인신공격”이라는 표현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당직자들도 나서 안의원의 발언을 앞다퉈 성토했다.이어 대통령의 사과와 안 최고위원의 징계를 거듭 요구했다. 특히 안 위원을 비롯,민주당 박상규(朴尙奎)사무총장,김희선(金希宣)의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고발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당보에 김대통령의 목포상고 시절 일본군복을 입은 김 대통령의 사진을 공개하고,김 대통령이 방일 당시 일본인 스승과의 전화통화에서 일본식 이름을 사용한 것 등을 원색 비난했다.이총재 부친에 대한 ‘친일의혹’을 실은 민주당보에 대한 보복인 셈이다.이경재(李敬在)홍보위원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앞으로도 당보를통해 김 대통령을 계속 공격할 것”라고 밝히는 등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에 민주당은 김 대통령의 목포상업학교 재학시절 일본군복을 입은 사진을 당보에 게재한 것과 관련,자서전과 관련자료를 제시하면서 “전시체제하에서 학생들이 강요에 의해입었던 복장”이라고 해명했다.김 대통령도 안위원이 중요한 때에 적절하지 않은 발언을 했다고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논란의 불씨를 던진 민주당 안동선(安東善) 최고위원은 이날 유감을 표시하긴 했으나 “원래는 더 심하게 말하려 했다”며 발언을 전면 철회하지는 않았다.다음은 안 위원의일문일답.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 총재가 야당총재로서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행태를 개탄한것이다.친일파의 후손이란 의혹이 있는 그가 제 발이 저리니까 기념식에 못나온 것 아닌가. ■한나라당측에서 사과를 요구하는데. 당내 행사에서 당원들을 상대로 한 말인데 왜 사과를 하나.한나라당은 그동안우리를 빨갱이라고 모함하지 않았나.단,연설 과정에서 나도모르게 ‘놈’이란 말이 튀어나온 것 같은데,그것은 언론을통해 사과한다. 강동형 김상연 홍원상기자 yunbin@.
  • [대한칼럼] 광복 56주년과 남북관계

    올해도 우리 민족이 그토록 갈망하는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채 광복 56주년을 보냈다.2차 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들이 모두 통일을 이뤘는데 우리 민족만이 지구상에 마지막남은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이러한 민족사에서 볼 때 통일을 조속히 실현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7천만 성원 모두의 한결같은 염원이며 역사적 책무다.따라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생각이나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시급히 성취해야 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분단으로 인해 민족 전체가 겪고 있는 고통과 비극,희생과 속박 속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창조해 나가려는 데 있다.분단 때문에 치러야 했던 우리민족의 희생과고통은 6·25 동족상잔의 참화는 제쳐놓더라도 자유와 인권의 제약,민족자존의 손상,민족사의 굴절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그리고 헤어진 혈육과 친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맺힌 삶을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반도의 불안정한 안보체제에서 보면 통일은 더욱 시급한 과제다.통일이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절실한 까닭은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항구적인 생존과 번영을 보장해 주는 첩경이기 때문이다.통일이 이렇듯 민족의 절실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장기간에 걸친 첨예한 사상적 대립과 심화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채 반목을 계속하고 있는안타까운 현실이다. 엄밀하게 볼 때 지난해 분단이후 처음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를 통해 통일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6·15공동선언의 이행이 지연되면서 남북관계가 정체 상태를 맞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햇볕정책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북한에대해 6·15 남북공동선언의 준수를 촉구한 것도 남북관계진전을 위한 국민적 염원으로 이해된다. 지난해 8·15광복절은 민족화해주간으로 설정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축하행사를 치렀고 이산가족의 교환 상봉 등 남북화해·협력 분위기가 충만했던 것을 생각할 때 1년만에다시 행사가 중단되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오늘날 국제 상황은 과거에 비해 통일에 다소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며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민족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분단에서 오는 유형무형의 고통과 불행을 제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또 오랫동안 단절된 상황에서 만들어진 민족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문제다. 그리고 남북분단은 사실상 외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만조국의 통일만은 민족의 자주적 역량과 주체적 노력에 의해 반드시 성취돼야 한다.일부에서는 갈라진 채 반세기 이상을 살아왔는데 앞으로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분단상태가 보다 오래 계속되면 남북이 다 함께 더 심한 고통을 받게될 것이며 민족적 손상은영원히 치유·회복할 길이 없게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북이 힘을 합쳐 조속히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통일은 우리 세대에 기필코 실현시켜 다시는 우리 후손들이 오늘과 같은 민족적 비극의 전철을 밟게 해선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서명한 6·15공동선언을 성실하게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조속히 실현되어 남북관계 진전과 화해협력을 넓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보다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장 청 수 객원 논설위원 csj@
  • [사설] 광복절, 남북한 그리고 일본

    56년 전 오늘은 우리 민족이 36년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된 날이다.옷깃을 여미고 마음 속에도 태극기를달고 ‘국가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날이다.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독립·희생정신을 기리고 굳건한 국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아울러 생존 애국지사들이아직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 분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 민족정기가 계승되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웃국가들뿐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침략전쟁의 전범들을 기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다.‘어설픈 사무라이’ 흉내를 낸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가.고이즈미 총리는 패전일 이틀전인 지난 13일 전격적으로 신사를 참배했으며“앞으로는 한국,중국과 무릎을 맞대고 아시아 태평양의미래와 평화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부당성에대해서는 이미 셀 수도 없이 밝힌 터이라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다만 분명한 것은 고이즈미 총리가 평화와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으며 전격 참배라는 ‘꼼수’에 가까운 연기에 말려들 우리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침략전쟁의 역사왜곡에 이어이들 전쟁원흉들을 기리는 신사참배는 신군국주의를 꿈꾸는 일본의 세계평화에 대한 ‘선전포고’라 해도 과언이아니다.일본 전체국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우경집단들의 의도만큼은 분명히 알았다는 것이오히려 다행한 일일는지도 모른다.한국민의 일본에 대한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며,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이웃국가로서 최소한의 교류 이상은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미래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돌이켜 보면 광복의환희에 얼싸안고 춤추던로 열기도 잠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마침내 동족간의 처참한 내전을 겪었다. 남북은 20세기 후반을 이념의 질곡 속에 냉전의 대결로 다보낸 뒤 뉴밀레니엄과 함께 겨우 민족화해의 장을 열기 시작했다.작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그 시발점이었다. 다시는 분단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결의이기도 했다. 당국간 대화나 교류협력 등 남북관계는 거의 반년째 중단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일본의 신군국주의는 음습한 곳에서 다시 똬리를 틀고 있는데 혹독한 일제 식민통치를 받아온 한민족은 분단 극복은커녕,반세기가 지난 이산의 한조차도 마음대로 풀 수 없단 말인가.남북한은 깨어나야 한다.한반도 주변에 감돌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동북아의 신 냉전기류에 적극적인 대응 태세를 갖춰 나가야 한다. 국내 정치상황은 또 어떤가.정치권의 여야는 지금의 남북관계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여야 지도부는 오로지 염불(민생)엔 관심없고 잿밥(대권 쟁탈)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듯하다.여야 색깔논쟁 등 정쟁 속에 한국사회는 더욱 분열되고,사회 구성원간에도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정치가 사회통합을 촉진하고,국민 저마다 ‘더불어 살아가는 한민족공동사회’를 건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새로운 세기에 맞는 광복절은 남북화해로 분단의 질곡을 끊고,일본의 신군국주의 부활에 적극 대응하면서 남북이 신뢰속에 한민족공동체를 이뤄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광복의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 김대통령 8·15경축사 방향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김 대통령은 휴일인 12일에도 관저에서 문안 작성을 계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경쟁력 강화 및 경제 회복= ‘경제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관측이다.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회복이 관건이기때문이다.김 대통령이 청남대 휴가 중 ‘선택과 집중’이라는 화두(話頭) 아래 수출진작 및 투자확대 방안을 고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통령은 “국내외적인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온 국민이 합심 협력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며,모든 경제주체들이 힘을 합해 노력하자”고 거듭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아울러 기업의 투명성을 확대하고,4대 개혁을 꾸준히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할 것도 다짐할 것으로 알려졌다.법과 질서가 확립된사회를 만들고 민주주의에는 과정과 절차도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는 계획이다. ●남북관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오는 9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 등 국내외 상황을 미뤄볼 때 획기적인 구상이 포함되기는 어려울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남북관계는 미북관계와 병행 발전해 가야 한다”면서“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김 대통령의 평소 지론을 펼칠 것 같다. 이와 관련,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남북관계 및 대외관계에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김 대통령이 남북화해협력 필요성에 따라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고,현재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있지만 민족의 미래를 열고 후손들을 위해 기초를 꾸준히 다져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국 해법= 당정개편 등 인적쇄신 구상이 경축사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국정쇄신을 통해 정국 운영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견해가 여권 일각에서 강력히 대두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민주당의한 핵심 당직자는 “총리,당 대표,청와대 비서실장 등 이른바 ‘빅3’엔 변화가 없더라도 정부경제팀과 핵심당직 일부는 개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일부 당직자는 이미 사의를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영수회담 개최론이 제기되고 있어 김 대통령이이를 언급할 지도 관심사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1)김동환 가족사

    한 여인이,생신을 보름 남짓 앞둔 91세의 한 여인이 1993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났다.‘백구 신원혜지묘(白鷗 申元惠之墓)’라는 묘비명만으로는 이 여인의 죽음이 한국 문학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아리송할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이름위에 있는 ‘파인 김동환(巴人 金東煥)’이란 각자(刻字)를 보노라면 ‘아,파인의 본처가 그때까지 생존했더란 말인가’라는 자못 회고조의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1903년 원산에서 태어난 신원혜가 서울 정신여고를 졸업,블라디보스토크,간도,원산 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서사시 ‘국경의밤’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두 살 연상의 시인 김동환과 결혼한 건 1926년 3월 14일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아내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3남 1녀를얻은 그녀는 1942년 작가 최정희(崔貞熙)와 남편의 관계가알려지자 시인의 “우유부단한 처신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기어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고 그 극심한 어머니의 분노를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는 끝내 여관으로 잠시의 거처를 정하였다”고 셋째 아들 김영식(金英植·68)은 회상한다.“그 후 어머니는 교회 일과 모교인 정신여고 동창회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아픈 상처를 홀로 달래고” 지냈는데,나중 동네 아낙들에게 “아무리 남편이 속을 썩이더라도 집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김영식,‘아버지 파인 김동환-그의 생애와 문학’). 조혼이 아닌 어엿한 신여성과 연애를 거쳐 사랑이 그득한결혼을 했던 파인의 예기치 못했던 탈선이 문단에서는 가십이었으나 그의 고향을 비롯한 애독자들로부터는 마침 휘몰아친 친일문학과 함께 따가운 매도의 대상이었다.어쩌면 이 두가지 탈선은 오히려 동시에 수행되면서 인간과 민족의존재론적 본질을 벗어나 원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준 도피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파인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애정을 받은 것은 정작 남편이 버린 여인 신원혜였다.아니,파인 조차도 그녀를 버릴 수 있었을까.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한 직후인 1950년 7월 초 파인은 홀연히 귀가했다.피신 차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은 비록 짧았으나 단란했는데,이내 최정희의 자수 권유를 받고 나간(7.23) 뒤 그대로 납북,생사도 모르게 분단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앓은 게 이 일가족이었다.가족이랬자 두 아들은 일찍세상을 떠나버려,셋째 영식과 딸 영주(英珠·63)뿐이었다. 영식은 서울 경복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대통령 비서실,주불 한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았고,영주는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와 시인으로 등단,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다. 이 한많은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마련해 둔 유품 속에는파인의 사진과 애증이 교차하는 몇몇 증빙 서류들,그리고자신이 묻힐 묘소와 묘비명이 포함되어 있었다.살아서 쫓아냈던 지아비를 죽어서야 한 문패 안으로 맞은 것이다.보따리 속에 파인이 보낸 편지도 한 묶음 있었다.파인은 맨몸으로 집을 나갔으니 여러 유품들은 저절로 신원혜가 간직했을 터여서 여간 소중한 자료가 아니리라는 기대에 부푼다.신원혜는 파인에게 보냈던 기라성같은 문인들의 편지를 그 격변의 역사를 헤치면서 고이 간직해 왔었다.신혼초 서울의정동,다동을 거쳐 종로구 돈의동 74번지로 호적을 옮긴 뒤,적선동(1927.5),인사동(1930.7),견지동(1933.12),필운동(1935.10),옥인동(1936.11),통인동(1938.1),효자동(1940.2)을전전하다가 1941년 6월 12일 적선동 183번지의 목조 기와집으로 이사,거기서 해방을 맞았다. 만주로부터 돌아온 피난민의 딱한 사정 때문에 방세도 안받고 그대로 살게 했던 이창규씨가 어느날 정전(停電)이 되자 성냥불을 켜들고 초를 찾다가 넘어져 석유난로에 점화,순식간에 집이 불타 버렸다.바로 1946년 12월 12일 오후 7시쯤,파인의 유품이,그리고 그가 ‘낭자 신원혜’에게 보냈던 달콤한 연애편지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순간이다.일가는창성동 자교(紫橋)교회 목사 사저에서 신세를 지다가 청운동(1948.5∼1953.2)으로 옮겨 6·25와 1·4후퇴를 겪으면서도 행여나 남편이 돌아오려나 싶어 몇 년간 이사도 하지 않았다.이제 파인과 신원혜는 갔고,사랑의 편지도 불타버렸다.그러나 1947년부터 납북당했을 때까지의 격랑을 헤치며 파인이 한 지아비와 육친의 정으로 아내 신원혜와 자녀에게보냈던 32통의 편지는 문단 비사의 차원을 넘어 가난했던글쟁이의 인생론적인 비애를 느끼게 한다. 중학생 아들(영식)과 초등생 딸(영주)을 아내에게 맡긴 빈털터리 시인 김동환은 이 무렵 최정희로부터 지원(1942년생),채원(1946년생) 두 딸을 가진,허리가 휘청거리는 아버지였다.최정희와의 보금자리였던 덕소에서 8·15를 맞은 파인의 심경은 실로 착잡했을 것이다.그의 뇌리에는 선비적 지조의 상징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후손으로서 민족운동에투신했던 화려한 투쟁 경력들-민요 전설시의 거봉,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중앙위원,침략주의에 항거했던민완 기자,잡지 ‘삼천리(三千里)’의 폭발적인 성공과 민족의식이 강한 각종 출판물 간행,신간회 집행위원 등등이스쳤을 것이다.이런 경력 때문에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보였던 친일행위의 오점들은 그로 하여금 발빠른 자성과 회오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진흙 속에 빼앗긴 두 발 겨우 뽑고/오래 가뒀던 옛 날개 와락 펴 멀리 쳐다보니”(‘돌아온 날개’),“새나라 백성들은 이래서는 안된다/우리는소생하지 않으면 안된다”(‘소생’)는 참회와 함께 “올해엔콩팥을 맘대로 심어/천리객은 몰라도 십리의 벗 맞아들여/소찬에 약주라도 싫도록 대접할꺼나”(‘起耕’)라는 은인자중의 자세를 보여줬다.반민특위 때 그가 자수(1949.2.28)할 수 있었던 심리적인 배경도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이승만 정권이나 한민당 추종이 아닌,조선민주당 대변인격으로 정당활동에 몸담았던 것(1946.2)은 나름대로의민족관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혼란 속에서 숙원이었던 잡지 ‘삼천리’ 복간에 온 정력을 쏟았는데,민족 독립노선이나,문인으로 발 빠르게 자아비판한 채만식을 부각시킨 걸로 봐서 다분히 참회적인 자세를 취했다.을지로5가 여관에서 업무를 시작한 파인은 틈틈이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납득시키려고 난필의 쪽지를 보냈다.우편 배달이 아닌 사환이나 인편을 통해 직배시킨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라 겉봉에는 ‘영식 모(英植 母)’ 혹은 아예 ‘영식 전(展)’이라 쓰고는 원고지나 적당한 백지에 절박한 용건만적어 보냈다.서른 두 통의 편지중 가장 빈도수가 많은 내용은 잡지 일로 인쇄소에 붙어 있어야 한다든가,당장 돈이없으니 우선 얼마만 보내고 며칠 뒤 더 보내겠다는 등등이다.신원혜의 이성적인 결벽과는 달리 어린 남매들이 아버지에게 귀가와 생활비를 독촉하는 전화를 했던 데 대한 회답으로 보인다. 이 역마살의 시인을 신원혜와 함께 묻고 딸 영주는 “기다리면 다시 올 사람인가/시를 만드시던/파인,내 아버지//하늘 밑을 파고/그를 묻었다.//그가 다니던 길도/함께 넣었다.//눈물도 못 내고/기어 가/나도 묻힌다.//아 아,내 아버지 파인”(‘아름다운 작별’)이라고 마음을 추스렸다.이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시인으로서의 김영주와는 달리,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던 딸로서의 김영주는 무척 신랄했다.“친일행동과 여자 문제로 부끄러운 아버지 책을 써서 알리는 것은 정말 내가 부끄러워요”라며,“아버지는 실패한 인간입니다.자신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을 이루어 살라고 주신 한 가정의 책임을 저버리므로 해서,어머니와 우리 자녀는 가장아픈 불행을 체험했으며,어머니의 고통과 수치와 배반에 대한 증오와 세상이 보내는 그 부끄러운 수근거림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놀라울 뿐입니다”(김영식,위와 같은 책)라고 통매했다. 그러나 파인의 애틋한 조각편지들은 실패한 인간의 자료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멍에를 헤어날 길 없었던 인정미 넘치는 나약한 한 서정시인이 치러야만 했던 가정과 사랑과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일 것이다. “몸 무고히 학교에 잘 다니느냐.마음에 어느 날 잊은 적이 없었다”거나,“추위가 심하니,남대문 야미(暗)시장에 가서,영식이나 영주의 외투 한 벌 사서,한 아이라도 입히오”,“한방의 침술 운운하지만 큰 아이들 때(장남 영사는 16세로 1942년에,차남 영창은 17세로 1947년에 사망)에 보아도도무지 믿을 사람들이 못 되니 더 보이지 말고,내가 정초에 영식이를 데리고 전문 신의(新醫)들에게 보여 충분히 치료할 터이니,아이에게 겁나는 말을 일체 말고,내가 가기를 기다려 주오”라는 등등의 구절에 이르면 이 시인이 얼마나가슴으로 울었던가를 알법도 할 것이다.“내일 산소에 가는 일은 중지하고,5월 단오에나 가기로 하오”란 구절은 바로 두 아들이 묻혔던 미아리 공동묘지로,거길 가면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묘소에 절하라’고 말한 후 묵념을 했고,어머니는 쌍봉 무덤 앞에 엎드려 흐트러진 모습으로” 울부짖었다고 김영식은 회고한다.살뜰한 지아비와 부정(父情)이 넘치는 글이기에 오히려 다른 서간문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 글들을 쓴 주인공이 어째서 가정을 버릴 수 있었을까. 임 헌 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기고] 에너지 위기와 대체에너지

    ‘석유 매장량은 앞으로 40년,석탄은 200년,가스는 60년이면 고갈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위협적인 의견에 일부 비판적 인사들은 “30년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하던데 아직도 40년이나 남아있느냐?”며 비아냥거린다.또는 “우리 후손들이 어련히알아서 자기들 살 궁리 안하겠어”라며 낙관한다. 그러나 지금은 에너지 위기시대다.매장된 자원은 산업혁명 후 각국의 엄청난 소비로 고갈돼 가고 있다.이보다 더 큰문제는 이러한 화석에너지의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이 급격히 진행돼 인류의 생존이 크게 위협받는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이 협상을 하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간단하지가 않다.선진국의 의무강화주장에 후진국들은 역사적 책임론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는등 선·후진국간의 갈등이 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에너지분야에서 꼭 해결해야만 하는 두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에너지절약이다.에너지 절약은 석유위기 이후 30여년간을 벌여온 국민운동이지만 아직 일상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했다.이제부터라도 단단한 각오로 절약에 임하지 않으면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특히 우리의 경우 산업이 에너지 다소비구조로 돼있어 전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고 있으면서도 절약에 둔감한 형편이다.공장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경영책임자의 인식 부재라는 벽에 번번히 부딪치는 일이 많다. 산업체의 에너지절약 성공사례 뒤에는 반드시 최고경영자의 깊은 관심이 있다.지금까지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에너지절약운동이 추진돼 왔지만 이제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중심으로 절약운동이 확산돼야 한다. 둘째는 대체 에너지의 개발·보급이다.대체에너지 개발의경우 과다한 초기투자비용이 장애요인이 되는 등 경제성이떨어져 우리 형편으로는 상당히 더딘 상황이다.그러나 선진국에서는 과감한 개발 지원과 보급확대정책을 쓰고 있다. EU(유럽연합)는 201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12%정도를 기존 화석연료에서 풍력,태양열 등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도 적극적인 개발과 보급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 전체에너지소비 중에서 대체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밖에 안되며,더구나 폐기물에너지가 대부분을차지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초기단계다.그러나 시작이 늦었다고 걱정만 할 수도 없다. 파급효과가 크고 성공가능성이 높은 기술에 대해 집중 투자하고 선진국과 비교해 현격한 기술차이가 있는 분야는 기술도입을 추진하는 등 다원적인 방법으로 대체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해 나아가야 한다.대체에너지 개발은 단기간의 경제성을 따지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부와 기업 모두 참여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정장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 조셉 바이든 美상원외교위원장 기고 요지

    미국은 동아시아의 군비확산을 촉발하지 않는 방향으로 미사일방위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셉 바이든 미국 상원외교위원장이 최근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강조했다.바이든위원장의 글을 요약한다.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군비확산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미국이 미사일 방위와 관련,잘못된 선택을 하면 동아시아는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미국은 미사일방위 구상을 추진할 때 동아시아의 군비확산을 촉발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이 북한문제를 비롯,여러가지를 고려하지 않고 미사일방위 구상을 추진하면 한반도의 안전은 크게 위협받는다.또대량파괴무기가 확산되고 중국·인도·파키스탄과 환태평양지역에 있는 미국의 우방국까지 군비확산 경쟁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일본·한국·타이완에는 탄도미사일의 위험이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그러나 대처 방법은 각국이 다를 것이다.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미국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우방국과 동맹국의 안전도 위협받지 않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다.동아시아에서 많은 미국동맹국들은 미사일방위 구상을인정하기는 하지만 조건부 지지를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축에 그다지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서울의 대부분이 북한의 포격사정거리안에 있는 절박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미국과 일본은 전역미사일방위(TMD)를 위한 공동 기술연구를 하고 있지만 일본은 TMD를 배치할 것인가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미사일방위에 대해서도 지지를 유보하고 있다. 중국은 미사일방위와 관련, 부시 정권의 의도에 불신감을갖고 있다.중국은 미국까지 도달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20기도 갖고 있지 않은데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사일방위 구상을추진하면 중국이 탄도미사일을 증강하여 동아시아와 세계의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미국의 정보기관이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미사일방위 계획이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고려한 후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첫째,북한이 군비를 증강하지 않고 장거리 미사일과 그 관련기술의제조 및 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평양측과 교섭을 서둘러야 한다.둘째,러시아의 무기확산 억제 노력을 도와주고 각국의 테러방지 프로그램 강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셋째,중국의 핵억지력을 위협하지 않는 미국의 미사일방위구축이 가능한지 중국과 진솔한 대화를 가져야 한다. 중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축 결정에 관계없이 전략적 무기의현대화를 추구할 것은 확실하다.그러나 미국이 어떻게 하든결과가 같다고는 할 수 없다.중국이 미국의 자극을 받아 핵탄두를 18개에서 180개로 증강하고 다목표탄두(MIRV)개발을위해 핵실험을 재개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을 자극하고 일본까지 핵보유를 재고하게 할 수도 있다.그런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넷째,ABM제한조약,핵확산방지조약,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등 글로벌한 군비관리 틀이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그러한 조약은 핵개발을 억제하여 동아시아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온다. 이러한 원칙들이 충실히 지켜지면 미국 국민들뿐만이 아니라 동맹국이나 우호국들도 미국의 미사일방위 구축이 집단적 안전보장을 강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英여왕 모후 입원

    [런던 AFP AP 연합] 4일 101세 생일을 맞는 엘리자베스영국 여왕의 모후가 1일 빈혈 진단을 받은 뒤 영국 런던시내의 한 병원에 입원,긴급 수혈을 받았다고 측근들이 밝혔다. 엘리자베스 여왕 모후는 이날 오전 11시쯤(현지시간) 일반 승용차편으로 런던 중심에 위치한 ‘에드워드 7세 병원’부근에 도착, 혼자서 2개의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올라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특유의 담청색 옷과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뒤따르던 기자들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평상시처럼 미소를 지으며손을 흔드는 여유도 보였다. 그녀는 원래 이날 꽃 전시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최근의 혹서로 인한 열탈진 증세를 보인 뒤 의사로부터 빈혈진단을 받고 입원한 것이다. 그러나 여왕 모후의 빈혈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스코틀랜드 왕실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녀는 조지 5세의둘째 아들인 앨버트(재위기간 1936∼52)와 1923년 결혼해엘리자베스와 마거릿 등 두 딸을 두었다. 그녀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런던 폭격에도 끝까지 런던을 떠나지 않아 국민의인기를 모았으며 공인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위령탑 세워 日강제징용 사죄”

    “피해자인 줄만 알았던 제가 가해자임을 깨달았을 때 한국인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한 일본인 부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강제 징용돼 희생된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일본 땅에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주인공은 일본 굼마현(群馬縣)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굼마 평화유족회 사무국장 나카야마 도시요(中山敏雄·58) 부부. 한국인 징용 희생자의 유족들을 찾기 위해 부인 나카야마사치오(中山幸代·52)와 함께 지난 30일 한국을 찾은 나카야마는 신사 참배와 일왕제를 거부하며 일본의 전쟁 책임론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일본의 ‘양심가’다. 그는 98년부터 3년동안 일본에서 ‘1인당 1,000엔 모금운동’을 펼쳐 500만엔을 모금했고,앞으로 300만엔을 더 모아 내년 1월쯤 위령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카야마는 91년 한국의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가 도쿄(東京) 지방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을 때 평화유족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면서 위령비 건립을다짐했다. 나카야마는 “전후 50년이 넘었는데도 일본은 아시아 ‘희생국’들에게 사죄는 커녕 교과서 왜곡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면서 “한국인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건립하고 후손을 찾아 사죄하는 것만이 일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분명히 일본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지금은사죄와 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사설] 변형 기여입학 안된다

    기여입학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맨 먼저 ‘기부금입학제’를 시도했던 연세대학교가 이번에는 수시모집 요강에 ‘사회발전 유공자 우대’를 들고 나온 것이다.연세대는 부모의 사회적 기여를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사회발전 유공자 특별전형’을 포함한 2002학년도 2학기수시모집 요강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그런가 하면 성균관대학교도 입학전형과는 무관하지만 10억원 기부자 직계 후손에게 중·고교와 대학 교육비 일체를 지급하는 ‘후손장학금 지급 기부 프로그램’을 발표한 바 있다. 사립대학들의 이 구상은 ‘기부금 입학제’와는 다르다. 그러나 사학의 이같은 발상은 ‘기부금 입학제’를 위한분위기 조성용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사회발전 공로자’후손에 대한 우대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기여입학제’를 관철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유공자’ 속에 교육발전을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낸 사람도 자연스럽게 포함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그림이다. 일찍이 기부금 입학제에 대해서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는우리는 기부금 입학제 변형이라는 의혹을 사고있는 ‘사회발전 유공자 우대’ 역시 반대할 수밖에 없다.재외국민·외국인과 농어촌 자녀 특별전형도 교육부의 감사 결과고교졸업증명서도 제출하지 않은 수험생을 합격시키는 등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난 마당에 기준이 모호한 ‘사회발전 유공자 특별전형’ 역시 온갖 편법이 동원되는 부정의 온상이 되기 십상이다.그 공로자 속에 전·현직 총장,재단이사장,심지어 총동창회장도 포함되지 말라는 법이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라는 교육기회 균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기부금 입학’ 불가 논리가 이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누구나 열심히 공부한 결과에 따라 대학에 갈 수 있는 입시제도마저 이상한 특례 허용으로누더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 성균관대‘변형 기부제’논란

    성균관대는 24일 기부금 기탁자의 직계 후손에게 중·고교는 물론 대학 교육비 전액을 지급하는 ‘후손장학금’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의 기여입학제 논란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성균관대의 ‘후손장학금’은 변형된 기부금제도로 대학이 보험사와 같은 역할을 맡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있다. 성균관대에 따르면 오는 8월 10억원 이상을 기탁하는 기부자의 직계 후손에 대해서는 학교에 상관없이 중·고·대학교육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후손장학금’ 제도를 도입,2학기부터 실시하기로 했다.기여 입학제와는 달리 기부자 직계자손에 대한 입학 특전은 주어지지 않는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후손에게 물질적 유산보다 교육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바람직한 상속문화 정착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21세기 담론-생명을 말한다](14)생태경제학자 강원돈 박사

    ▲경제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과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로 규정돼 있습니다.여기에 ‘생명’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이 ‘역전앞’처럼 중복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생명경제’란 용어를 쓰는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하나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의 생산,분배,소비’의 균형이 깨져 생명을 위한 경제의 본 뜻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또 하나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은 결국 생태계로부터 취해 다시 생태계로 돌려 주는 순환구조여야 하는데 인간의 탐욕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악순환 구조를 만들다보니 이 순환이 깨져 버렸습니다.그 결과 첫째 생태계를, 즉 생명군(生命群)을 죽이고,둘째 후손이 사용해야 할 자원을 고갈 시키며,셋째 환경을 오염시켜지구를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는 환경문제이고 생산·분배구조는 경제문제인데양자를 묶는 까닭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두 문제가 다 넓게는 인류,좁게는 자본의 탐욕에연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구조하에서 빈곤문제와 생태계 파괴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말이겠군요. 그렇습니다.제가 보기에는 1992년 ‘리우 환경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경제대국들의 성장 강박증 때문입니다.이들은 여전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구조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개인의소득이 높아지면 욕구가 높아지고 높은 욕구는 더 많은 생산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구조 말입니다.물론 포드식 대량생산 시스팀 대신 고급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신경영이도입되기는 했지만 욕망의 확대충족이라는 성장논리에서벗어나진 못했습니다.동구 멸망후 신자유주의는 이 모순구조를 더 확대 시키고있습니다.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 대안이 못된다고 보십니까?. 케인즈식 복지모델은 진작 한계가 드러났지요.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일하는 복지’인데 이것도 자본의 야수성을 그대로 둔채 복지의 방법만 손질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일하는 복지’의 핵심이 말 그대로 직업교육을 통해 재취업 시킨다는 것인데 기술의 개발속도가 워낙 빨라 한번 탈락하면 다시 따라 잡기가 어렵습니다.그러니까 열심히 교육을 받아 재취업한 사람이 예전 급료의 40% 받기가 일쑤지요.그나마 대부분 임시직이고…,지금 정부의 실업률 통계도 일시 취업을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실상은 정부의 통계보다 훨씬 심각 합니다. ▲결국 그 대안은 무엇입니까. 자본의 중립화 입니다.자본의 사유를 금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무한 욕구에 대한 제동장치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것을 강제하면 자본주의 틀을 바꾸는 것 아닌가요. 노동이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는 겁니다.그래서 자본의 이해관계로 인해 노동이 희생되지 않도록하자는 것입니다. ▲노동자 권한이 강화되면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독일의 철강산업과 석탄산업이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세계최고의 생산성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무한 욕구를 제한하면 대량생산으로 인한 생태계파괴를 막을수 있다는 말은 납득이 갑니다. 자본과 노동의견제와 균형도 그렇고…, 그런데 실업자문제는 별개인 것같습니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데 따라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문제 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1993년 독일의 폴크스바겐 자동차 회사 예가 있지요.그 때 회사는 노조에게 20% 감원 아니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양자택일을 요구 했습니다. 결국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을 받아들였지요.소위 일자리나누기 입니다. ▲임금이 깎이면 가계를 줄여야 하는데 기술이 더 발달하면 노동시간을 더 줄이고 임금을 더 삭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쇠는 거기에 있습니다.가계 지출을 줄일수는 없지요.그러면 어떻게 해결 하느냐.남는 시간을 골목이나 마을 단위의 품앗이 노동으로 채웁니다.즉 일정한 단위에서 목수에소질있는 사람,정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그밖에 자동차수리,컴퓨터 전문가,페인팅,도배,배관,가전제품 수리 등다양한 기능을 가진 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하는 겁니다.그러면 가계부 적자를 해결하면서 창조적 노동을 통해 보람을 찾을수도 있습니다.또 지역 공동체가 형성돼 삶의 질도높아지고…. ▲그것만 가지고 자본의 식욕을 억제할 수 있을까요?. 세계화 이후 자본은 이익을 찾아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습니다.말하자면 세계화 경제란 자본의 세계화인 셈입니다.그에 비해 노동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합니다.노동이 근거지를 옮기려면 새로운 언어,문화에 적응해야 하고또 혈연을 떠나 부초처럼 되기 때문에 간단치 않습니다.이렇게 한쪽은 유리한 곳을 찾아 마음대로 날아 다니고 한쪽은 고정된 위치에 있으니 자연히 불평등 계약이 성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노동의 유연성이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자유를 신장하는 것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자원,금융이 지역에서 순환되는 지역경제라야 합니다. ▲지역단위의 자급자족을 말씀하시는건가요. 가내 수공업 수준의 자급자족이 아니라 자원과 노동력,생산성을 고려한 지역경제는 여러가지 이점이 있습니다.제일급한 것이 식품인데 전국 단위의 식품의 경우 우선 원자재와 상품의 물류비용, 그 과정에서 낭비되는 자원이 얼마입니까.또 장기간 유통시키려면 필연적으로 방부제가 들어가야 합니다.지역단위 생산과 유통에서는 재고가 남지 않고물류비용이 안들고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옛말에 ‘100리 밖에서 온 것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냥생긴 말이 아닙니다. 식품 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나무의잔뿌리처럼 지역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경제가 그렇다면 정치도 자연히 따라 가는 것인데 이를 지역 자치의 생명력이라고합니다. 동양의 이상국가 단위가 닭우는 소리가들리는 범위라고 하지 않습니까. ▲유사한 모델이 있습니까.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독일이 지역경제를 바탕으로일어선 국가입니다. 일례로 독일의 은행 수신고 70%가 지방은행에서 나온다면 납득이 가겠지요?▲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겠습니다. 먼저 토지의 반(半)공개념이 도입돼야 합니다.땅이 투기대상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다음에 조세제도가 바뀌어 명실상부한 자치정부가 돼야 합니다.지금처럼 중앙정부에서 교부금을 타다 쓰는 지방자치는 허울 뿐인 자치입니다.이렇게 소단위 자치가 살아야 경제가 고루 활성화 되고생태계도 건강이회복 됩니다. 김재성 논설위원. △강원돈박사 약력. ▲1955년생▲한국신학대학,동대학원 졸업▲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신학박사(생태학적 노동개념)▲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학술부장 역임,▲현재:서울 강남구 은혜교회 목사,아시아경제윤리연구소소장,한국생명학연구원 연구지원처장,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전문위원,한신대,서울신학대학,배재대학 출강,▲저서:‘물의 신학’‘‘살림의 경제’▲역서:‘경제윤리 1,2’(A 리히) ‘하느님의 정치경제와민중운동’(U 두흐로) 외 10여권. ■생태경제학이란. 경제의 지구화가 급속히 진행되는데 각국의 금융,기업구조와 노동시장이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사회 혼란이야기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짧은 기간에우리 사회에 급속한 변모를 가져다 주었다.실업률이 더 높아졌고 빈부의 격차는 더 커졌고 자본과 노동의 세력관계에서 노동은 더욱 불리한 위치로 몰렸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좀더 인간적이고 좀더 사회적이고 좀더 생태 친화적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이들은 경제,금융정책 등이 자본의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충족시키는 상황에서 이 정책들이 사회정책과 복지정책 그리고 환경정책과 결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그리고여기에 시민들이 참여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고 그바탕 위에서 모든 정책들을 조합하는,과정이 자리잡기를바라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는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시장은 경제의 효율성을 실현시키는 한 수단이라는데 대해서도 동의 한다.그러나 이들은 시장이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는못한다고 생각 한다.따라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판단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더많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장의 규율을 제도화 해야 하는데 이과정에서 정치의 개입이 불가피 하다는 입장이다. 기독교 사회윤리를 공부한 강원돈(姜元敦)박사는 상생의순환원리 관점에서 오늘의 신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하고 그대안을 말한다. 강 박사는 “본질적으로 무한 확장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자본에 시장을 맡겨 두면 언젠가는 자본자체가 무너진다”고 말한다.이는 사자의 장애물을 없애버리면 토끼와 사슴의 멸종으로 결국 사자도 굶어 죽는 원리와 같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서구가 일찍이 경험했던 복지병처럼 자본도 노동도 공멸하는 결과를 낳는다.‘생명경제’는 이같은 모순을 극복하고 노동과 자본 뿐 아니라 생태계까지도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경제학이다.
  • [기고] 일본정신과 교과서 왜곡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문화인류학과 여교수였던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는 일본의 바탕정서와 정신문화를연구한 유명한 학자다.2차대전 중 미국 국무부의 요청으로일본을 연구하게 된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유형학에 심리학을 접목시킨 문화양식 이론으로 일본인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한 후 ‘국화와 칼’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베네딕트 교수는 보고서에서 일본인들의 의식세계와 바탕윤리를 ‘恩’(은·일본어로는 온이라고 발음)’과 ‘義理’(의리·일본어로는 기리라고 발음)라는 핵심어로 요약했다.‘온’이란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조국(일본)과 길러준부모에 대해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기초한 의식을 말한다.‘기리’란 국가와 부모에게 그러했듯 타인에게도 은혜를 입었다면 반드시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의식이다.그는 일본인들의 충과 효 그리고 ‘기리’에서 나타나는 강인함과 절제를 ‘칼’에 비유하고 친절과 공손을 ‘꽃’으로 표현했다. 일본인들은 베네딕트 교수가 주장한 충과 효,그리고 특히‘기리’에 대하여 고개를 끄덕인다.그러면서 일본인들은교과서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그들의 진짜속내는 도대체 무엇일까?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그들의 선조가 잔학무도했음을 가르치기가 부끄럽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각 제후들의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이른바 ‘정한론’을 제안했다.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럴리야없겠지만 작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이끄는 일본은전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자처하면서도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발전의 한계 그리고 개혁에 대한 보수층들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신사참배와 교과서 왜곡으로 밖에서 불을 질러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정치적 술수를 부리는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베네딕트 교수는 ‘기리’를 설명하면서 ‘일본인들은 자신이 은혜입은 것만을 보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하여도 보상하려는 의식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베네딕트 교수의 이같은 판단이옳다면 36년간이나 갖은 만행을 저질러왔던 한국에 대해 사과와 함께적절한 보상을 했어야 옳다.그러나 사과는커녕 역사적인사실마저 교과서를 통해 왜곡 기술하여 주변 피해국들을분노케 하면서도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묵묵부답이다. 베네딕트 교수는 ‘일본인들은 용감한 듯하면서도 비겁하고 예의바른 듯하면서도 불손하며 대범하면서도 무모하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듯하면서도 이상한 민족이며 문화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의 양심적인 교수들과 식자층 그리고 아사히신문도사설을 통해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시정요구하며 총리가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논조를 펴고 있다. 나는 이번 교과서 왜곡의 속내가 그들의 조상을 따라하려는 정치적 음모가 아니기를 바란다.더욱이 왜곡을 시정요구하는 피해국들의 외침에 묵묵부답인 일본 위정자들의 태도,신사참배,자위대 증강 등이 조선침략 당시의 일본정치내분상황을 연상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이용부 서울시의회 의장]
  • “김해김씨 票心 깨우자”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한나라당 김종하(金鍾河) 국회부의장 등 여야 지도부는 19일 경상남도 김해시를 방문,‘가야문화환경 정비사업’기공식에 참석했다. 특히 한나라당에서는 김혁규(金爀珪) 경남도지사를 비롯김영일(金榮馹) 국회 건교위원장,김무성(金武星) 총재비서실장,김학송(金鶴松) 의원 등 김해 김씨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여야 인사들의 이번 나들이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최대 성(姓)가운데 하나인 김해 김씨 문중의 ‘표심’(票心)을 겨냥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종필 명예총재는 이날 축사를 통해 “일본문화의 원류가 가야에서 비롯됐고,고대 한일 관계사의 열쇠가 이 땅에 묻혀 있다”면서 “(일본은)후손에게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가르치지 못한다면 그 국가의 미래는 암담하고 불행해지고만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며 왜곡된 역사교과서의시정을 촉구했다. 김해 홍원상기자 wshong@
  • 2대째 항일운동 박영창옹/ “”교과서 왜곡 日 자해행위””

    “역사는 정사(正史)가 아니면 가치가 없습니다.허위로 만든 역사는 결국 망국행위지요.그런 점에서 지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결국 일본인 자신들에게 크나큰 자해행위가 될 것입니다.” 최근 한·중·일 동양3국간에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과 관련,1개월간 일본을 항의방문한 ‘80대 청년’이 있다.올해 86세로 미국 LA에 거주하는 박영창(朴永昌·86·미주 광복회 원로회장·사진)목사가 그주인공.박목사는 지난 5월 3일부터 30일간 일본에 머물면서 다카코 외상,도이 일본의회 외무위원장,도이 전 중의원의장 등 일본 정계인사와 최상룡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해 일본 기독교 지도자,언론관계자 등 100여명을 방문,교과서 왜곡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90이 멀지않은 박목사가 노구를 이끌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항의방문’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박목사는 일제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가의후손이다..박목사는 대를 이어 항일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양에서 개업의로 활동하던 그의 부친인 박관준(朴寬俊)장로는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사참배를강요하자 당시 평안남도 지사와 조선총독을 찾아가 이의 부당성을 경고하였다.그러나 별 소용이 없자 1939년 3월 도쿄로 건너가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인 제국의회(현 중의원)회의장에 잠입,‘한국내에서 신사참배 강요를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뿌리고는 현장에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석방후에도 다시 신사참배·궁성요배 반대운동을 펴다 재차 수감된 그의 부친은 해방 5개월을 앞두고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70세로 순국했다.이른바 ‘제국의회진정서 투하사건’ 당시 25세로 일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는 부친의 ‘의거’를 돕다가 이 사건에 연루돼 1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의 ‘항일운동’은 해방후에도 계속됐다.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으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던 지난 82년 7월 그는 미국에서 한국신문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역사교과서 왜곡의 주무당국자인 일본 문부성 관계자가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제’한 증거가 없어 교과서에 ‘장려’로 기록했다”고 주장한 대목을 신문에서 보고는 그 길로 그는 일본으로 향했다. 박 목사의 손에는 일제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한국인 50명의 명단,사건관계기록,부친의 재판기록 등이 들려 있었다.그는 이 자료들을 일본 언론에 폭로,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아사히,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신문들은‘신사참배는 역시 강제’라는 제목으로 이를 대서특필했다.지난 89년 일황 히로히토 일황이 사망하자 그는 다시 단신 ‘경고사절’로 일본을 방문,일본 언론에 ‘일본이여 대답하라’는 자작시를 공개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그는 “‘전범1호’인 히로히토를 국장(國葬)으로 장례 치르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방일까지 합치면 그의 항의방문은 모두 네번째인 셈이다.그는 “한국정부가 모처럼 정면대응을 하는 것이 다행스럽다”며 “일본을 탓하기 앞서 우리역사를 후손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5월 한달간 일본을 돌아다니느라 퉁퉁부어오른 발을 두고 “일본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8·15 광복절에 다시 오겠다며 박목사는 17일 미국으로 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발언대] 종묘 옆 쓰레기적환장 이전을

    서울 종로 4가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때 나라의 안녕을 비는 신성한 장소였으며 지금은 후손이 선조와 교감하는문화공간이다. 이 곳은 199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세계인의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동양 유교문화의 제의(祭儀)를 500년간 이어온 세계유일의 공간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또 지난 4월19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과 중요무형문화재 56호인 종묘제례도 유네스코로부터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돼,종묘는 명실공히 ‘세계인의 문화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종묘의 담에 쓰레기 적환장이 있어,관계 당국의 비문화적 시각에 개탄하게 된다.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젓게 된다.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을 이렇게 소홀히 대하는 것을 외국인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우리의 다음 세대인 어린 학생들은 또 어떻게 느낄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2002년 월드컵 경기 기간 중에 종묘에서 종묘 제례악을 공연하여 우리의 우수한 음악적·문화적 전통을 세계인에알렸으면 한다.그런데 종묘앞 광장이 쓰레기와 담배꽁초들로어지럽혀져 있다면,이는 세계인들에게 우리 국민이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꼴이 될 것이다. 경기장 시설 못지 않게 솔선수범적인 준법정신과 기초질서생활이 잘 갖추어진 국민이 필요하고,손님들을 모시는 자세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월드컵 개최 시기를 전후해 많은 외국손님들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경을 넘나들며 양국의 문화수준과 국민성 등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월드컵 개최기간에 방문했던 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언젠가 또다시 찾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세심하게 주의를기울여 주변을 정비해야 할 때이다. 장영식 [서울 강서구 염창동]
  • [전통주 이야기] (7)진도 홍주

    진도 홍주는 선홍색 빛깔을 띤 전통 증류주다.진도에서자생하는 자초(紫草,진도에서는 지초로 불리움)라는 생약을 증류과정에 여과시켜 붉은 빛깔을 만들어 낸다.지초는해열·건위제로 알려져 있다. 홍주는 조선조 광해군(1575∼1641)의 형 임해군이 역모죄로 진도에 귀양가게 되면서 전래됐다고 한다.임해군은 귀양길 도중 강화도로 유배지가 바뀌었으나 이 사실을 알지못하고 미리 진도로 내려간 임해군 부인의 친정 조카인 허대(許垈·1586∼1662) 부부는 임해군이 즐기던 술을 만들기 위해 ‘고조리’(증류기구)를 가지고 내려왔다. 이들은 진도에 정착했고 그후 홍주가 농가로 퍼진 것이다. 허대의 후손 가운데는 13세손인 허화자(許花子·72·여·진도읍 쌍정리)씨가 최근까지 홍주의 전통을 지켜왔다. 진도의 아낙네들은 대부분 홍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곳은 진도홍주영농조합법인(대표洪賢珠·35) 등 2∼3곳이 있다.홍씨는 “제조기구 일부만현대화했을 뿐 옛 맛을 살리기 위해 장작불을 사용하는등나름대로 전통지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주의 맛은 잘 발효시킨 밑술에 의해 결정되고 색깔은‘지초’가 좌우한다.찐 겉보리와 물·누룩을 혼합,섭씨 25∼30도에서 1주일 숙성시킨다.밑술에 쌀로 만든 고두밥을함께 넣어 일주일 동안 발효시킨다.이처럼 만든 술 원액을 가마솥에 붓고 솥위에 소주고리(고조리)를 올려 놓은뒤 장작불을 지핀다.밑술이 끓고 증기가 오르면 고조리 아래 부분에 물방울이 맺히고 바로옆 배출구로 흘러내린다. 이 증류주는 지초가 담긴 용기를 통과하면서 자홍색의 술로 변한다.알코올 도수는 40∼45도. 250㎖(4,000원)부터 1.8ℓ(2만원)들이까지 5종류의 포장이 있다.문의(061)543-4010. 글 진도 최치봉기자 cbchoi@. ■국악인 신영희씨의 맛평가. “보리와 어우러진 특유의 지초향이 입안에 가득차는 맛입니다” 진도가 고향인 국악인 신영희(申英姬·59)씨는 “어릴적어머니가 직접 내린 술맛이 입에 배어 지금도 집에 홍주를갖다 놓고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소리를 한 뒤 목이 아플때나 속이 더부룩할 때 홍주를한 두잔 마시면 정신도 맑아지고 거북함이 모두 사라진다”는 그는 “홍주를 세계 술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주”라고 자랑했다. 그는 어릴적에 깊은 산속에 자생하는 지초 주변에는 눈이와도 눈색깔이 붉게 물든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다며 약용식물을 이용한 전통 홍주를 마셔볼 것을 권했다. 진도 최치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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