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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공정 중심에 조선족 전시관 ‘활짝’

    동북공정 중심에 조선족 전시관 ‘활짝’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박물관(이하 옌볜박물관)에 조선족민속실이 31일 문을 연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7월 옌볜박물관과 문화교류협정을 맺은 뒤 그동안 조선족민속실의 기획 및 설계에 참여하고 비용을 지원했다. 옌볜박물관은 중국 정부가 선정한 100개 중점박물관의 하나로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문화와 역사를 다루는 핵심 박물관의 지위를 갖고 있다. ●6개 테마로 이주와 개척의 역사 조명 로비와 제1민속실, 제2민속실로 이루어진 1286㎡넓이의 조선족민속실에는 조선족의 삶을 보여주는 500점 남짓한 문화유산이 전시된다. 민속박물관은 조선족민속실의 개관을 앞두고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이 자신들의 문화 정체성과 역사를 확인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속학계는 조선족민속실의 설치가 국가기관끼리의 사업인 만큼 언급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 정체성을 민속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조선족민속실은 조선족 이주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기획의도 아래 모두 6개 주제로 이루어졌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에선 역경을 딛고 새로운 땅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이주와 개척의 역사를 사진을 중심으로 담았다.‘삶을 일구다’에선 쌀농사에 성공하여 벼의 북방한계선을 새롭게 그은 조선족의 모습을 각종 농기구 등으로 살펴본다.1930년대 번영을 구가했던 용정시장에서 사고팔린 다양한 물품으로 활력이 넘쳤던 조선족 사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삶을 즐기다’에선 새로운 터전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생활의 여유를 잃지 않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서화와 공예, 다양한 악기와 놀이도구로 보여준다.‘삶을 담다’에선 특히 8칸짜리 기와집을 재현하는데, 구석구석에 전시된 생활용구에서 조선족의 삶의 체취가 고스란히 풍겨온다. ‘삶을 살다’에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나는 다양한 의례를 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조상에 대한 기억, 후손에 대한 자애와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어 조선족이 역동적인 삶을 일구어 내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해 준다. 마지막 코너인 ‘지속 가능한 삶’은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선족 사회의 모습으로 건설적인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꾸몄다. ●“조선족 민족적 자긍심 고취에 도움될 것” 신광섭 민속박물관장은 “조선족은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민속문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면서 “옌볜박물관의 조선족민속실이 조선족들에게 차츰 희미해져 가는 고향의 풍습을 되살리는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김종대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으로 우리 문화를 흡수동화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반면 옌볜을 떠나는 조선족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조선족민속실은 조선족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기자 dcsuh@seoul.co.kr
  • 개신교계 또 ‘지구 나이’ 논쟁

    진보신학자와 과학·철학자들의 ‘창조과학론’을 둘러싼 개신교계의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지구 연대 1만년을 기준으로 한 이른바 ‘오래된 지구론’과 ‘젊은 지구론’의 격돌이다. 다음달 11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제3회 ‘창조론 오픈 포럼’이 개신교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자리. 지구의 나이가 1만년 미만이라는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는 한국창조과학회와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일부 창조과학계 학자들이 맞붙어 신학계를 또 한 차례 뒤집어 놓을 전망이다. 창조과학론이란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에 바탕을 두지만 과학을 통해 성서속 창조의 사실을 증명하려는 이론. 우주만물은 창조주에 의해 설계된 피조물임을 인정하면서도 ‘성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인 것’이라는 성경축자설, 혹은 축자영감설을 멀리한다.‘성경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경에 대한 절대 신뢰를 벗어나려는 운동이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이중에서도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와 아담 이후 그 후손들의 연대를 역산해 지구의 나이를 1만년 미만(6000년)으로 보는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 과학적 이론에 성서적 해석을 더한 연대추정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포럼은 이같은 한국창조과학회 주장을 뒤집고 지구의 나이가 1만년보다 훨신 오래됐음을 밝히는 자리. 특히 한국창조과학회 창설을 주도했던 양승훈(캐나다 밴쿠버세계관 대학원장)·조덕영(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적극 관여해 마련된 자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양승훈 교수는 포럼과 관련, 최근 창조과학계 학자들에게 서신을 보내 “젊은 우주의 증거는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우주의 증거에 비해 숫자가 적고 데이터의 신뢰도가 낮아 ‘젊은 우주론’은 과학적으로는 물론 성경적으로도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게 됐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개신교계에 따르면 이영욱 연세대 교수도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우리 은하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구상 성단은 대략 130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계산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를 최소한 130억년 이하로 잡는 것은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창조학회는 포럼에 앞서 지난 14일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우주 나이가 6000년”임을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창조학회는 지난해 8월과 지난 1월 열렸던 두 차례의 ‘창조론 오픈 포럼’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대응한 바 있어 포럼 이후 논란이 번질 전망이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첨단 과학으로 들춰 본 미라의 비밀

    지난 1991년 알프스 산맥 부근에서 5300년 전의 석기시대 인간이 미라로 발견됐다. 이 미라는 발견된 계곡의 지명을 따 ‘외치(Oetzi)’로 명명됐는데, 그의 소지품과 시신 상태 등이 석기시대 인간들의 생활모습을 알려줘 크게 주목받았다. 이처럼 미라는 과거를 증언해주는 타임캡슐과 같다.EBS ‘다큐프라임-원더풀 사이언스’는 21세기 첨단과학으로 미라의 비밀을 파헤쳐 보는 ‘과학, 미라에 말 걸다’편을 31일 오후 11시10분에 방영한다. 고대 이집트 18왕조 12대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은 미라로 남아 여전히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미라가 된 투탕카멘은 3000여년이 지난 뒤 후손들에 의해 얼굴이 복원됐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미라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에는 400년 전에 죽은 해평 윤씨 소년 미라가 발견됐다.치아분석 결과 나이는 5.5세로 추정됐다. 그는 어머니의 장옷을 깔고 아버지의 중치막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상태였다.2002년과 2006년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소년 미라의 비밀들을 알아본다. 또 2002년에는 세계 첫 모자(母子) 미라인 파평 윤씨 모자 미라도 발견됐는데,CT촬영 결과 태아가 엄마의 자궁을 거의 빠져나온 순간에 함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부검으로 확인한 사인은 자궁파열. 이들의 잇따른 발견으로 시작된 한국 미라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이집트 미라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면, 한국 미라는 독특한 장례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측면이 크다. 주로 회격묘라는 특별한 양식의 조선시대묘에서 발견되는데, 이 묘는 바람과 습기가 통하지 않게 진공상태로 만들어져 시체를 수백년이 지나도록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보존시킨다. 또 한국 미라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쓰던 옷과 물건을 함께 묻는 장례문화로 미라의 사망연대와 생활모습까지 추정할 수 있게 한다. 미라의 나이 추정에는 주로 과학수사에서 쓰이는 치아분석이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동원된다. 또 미라의 건강상태나 사인은 진단영상매체를 통한 정밀연구로 알아보게 된다.CT촬영을 하면 미라가 죽기 직전에 섭취한 음식물까지 확인할 수 있다. 미라 연구를 통해 얻은 정보는 우리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구의회 의장 릴레이 인터뷰] 우길웅 동작구의회 의장

    [구의회 의장 릴레이 인터뷰] 우길웅 동작구의회 의장

    우길웅(66) 동작구의회 의장은 의장 취임 이후 2년간 술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에게 술은 ‘30년 지기(知己)’라고 했다.‘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30대에 배운 술이 그랬다. 한때는 1년 365일 가운데 364일간 ‘말 술’을 먹었다고 했다. 안 먹은 하루는 등창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술을 끊은 이유로 솔선수범을 들었다. 리더십은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였다. 술로 빚어지는 만약의 실수도 없애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우 의장은 28일 “사교육비 절감과 어린이 성폭력 근절만큼은 반드시 진전을 이뤄내겠다.”며 이를 사무국 주요 의제로 올렸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담장 허물기 등도 좋지만 그 예산을 면학 분위기 조성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이롭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학부모들과 더 많은 논의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어린이 성폭력은 확실히 뿌리뽑겠다고 강조했다.“학교와 경찰의 유기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라는 우 의장은 “지속적인 단속과 관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또 ‘국립현충원 교육 프로그램’을 의정 아이디어로 제안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애국선열에게 후손들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문 프로그램’이 나왔으면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의장단협의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다뤄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립현충원 외곽지역 근린공원 조성과 관련해 우 의장은 “시가 지원하는 예산으로는 사업이 언제 시작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의회가 앞장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의정 활성화를 위해 동별 직능단체장의 의견도 듣겠다고 했다. 공통점을 찾아 의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우 의장은 “동료 의원들의 힘을 모아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40만 구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 나의 역할”이라고 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독도 의용수비대장 미망인 박영희 여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독도 의용수비대장 미망인 박영희 여사

    무엇이 연약한 여인의 마음을 이토록 ‘단디’ 묶었을까. 지난 55년 동안 오로지 ‘독도’라는 두 단어로 다부지게 살아왔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모든 정신과 생각, 추억이 여전히 ‘독도’로 모아진다. 박영희(74) 여사. 학창시절 ‘선생님’이 꿈이었던 그는 열아홉 나이에 당시 울릉도에 사는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을 만나 결혼하면서 독도지킴이로 나섰다. 할아버지(홍재현)-아버지(종욱)-손자(순칠) 등으로 이어지는 3대째 독도지킴이 집안에 시집을 왔으니 그야말로 ‘독도는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1953년 4월 남편이 동료 33명 등과 함께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자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담당하는 후방 병참대원을 맡았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애국심이 투철한 ‘여전사’로 변했다. 뿐만 아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고(故) 홍 전 대장의 조카와 딸 등이 독도연구원과 독도지킴이로 활동하고 있으니 4대째 그 집안내력을 잇고 있다. 독도에 대한 박 여사의 내조와 정신무장이 어떠한지 새삼 짐작이 간다. 지난주 경북 울릉군청으로 전화를 걸었다.“아, 예 홍 대장의 미망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박 여사의 연락처를 아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울러 홍 전 대장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료들 10여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도 전해들었다. 경기도 구리시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박 여사를 만났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까지 우렁찼다. 소파 뒤쪽 벽에 걸린 ‘독도사랑 대한의 얼’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폈더니 ‘고 홍순칠 선생님의 독도사랑을 기리며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뜻에 따라 이천육년봄 아무개 삼가씀’이라는 작은 글씨도 보였다. 그는 “2년 전 손 지사가 직접 들고 왔다.”고 귀띔했다. 독도 사진도 바로 옆에 있었다. 남편이 생전에 쓴 육필원고와 독도의용수비대 사진집을 펼친다.20여년 전 남편을 여의고 비록 혼자 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50년 전부터 우리가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던 내용들을 이제 와서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거 아닙니까.”하면서 볼멘소리를 높인다.1969년 당시 청와대에 건의했던 독도개발계획서를 직접 보여준다.‘어민 20가구 거주, 동도∼서도 매립, 어항구축, 냉동 및 제빙시설 등을 갖추게 해달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러면서 “시할아버지는 평소 ‘천지신명이시여, 이 섬은 하늘이 주신 우리의 땅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 동포의 생활의 터전이기에 우리 동포가 아끼고, 또 지켜나갑니다. 오늘도 30여명의 우리 동포는 돌섬의 수호신으로 이 섬을 지키고자 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대를 이어 독도지킴이로 평생을 살게 했던 철학으로 가슴에 새겼다. ▶가족들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제가 딸 셋,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딸 연숙이는 사이버 독도해양청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독도가족협의회를 발족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카는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독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제 고향은 대구입니다. 학교선생이 되려고 안동사범학교에 다닐 때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열아홉살이었지요.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독도에 들어가는 바람에 과부 아닌 과부가 됐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운명이려니 하고 남편일을 열심히 도와야지요.” 결혼할 때 4살 연상인 남편과 독도에 일생을 바치자는 언약도 했단다. 이후 남편은 독도수비대장으로 대원을 이끌면서 일본 순시선과 전투에 가담했고 박 여사는 한달에 한번씩 어선을 통해 옷과 식량보급 등을 담당하느라 달콤한 신혼사랑을 나눌 겨를이 없었다. 실제로 일본 순시선과 전투를 치렀느냐는 질문에 1954년부터 독도에 본격적으로 상주하면서 50여차례 조우를 했다고 대답했다. 또한 1954년 11월에는 일본 함정 3척을 물리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독도대첩’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독도수비대는 어떻게 해서 조직하게 됐습니까. -“제가 결혼해서 울릉도에 갔더니 대원들 일부가 모여들고 있었어요. 아마 그때 일본 순시선이 독도에 들러 죽도(竹島·다케시마)라는 간판을 세웠나봐요. 울릉도에 사는 한 어부가 그걸 들고와 울릉군청 앞마당에 내동댕이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독도수비대를 조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요.” ▶자금이 필요했을 텐데요. -“할아버지가 울릉도를 개척하면서 소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걸 베어서 독도에 막사를 짓고 일부는 팔아 군자금을 마련했지요. 기관총 등 무기는 주로 부산에서 구했습니다.” 당시 할아버지가 모은 재산 가운데 2000만원을 털었으며 처음에는 기후나 물공급 등을 파악하기 위해 전마선 2척을 만들어 여러 차례 독도에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독도의용수비대는 국가가 시키기 전에 무보수로 민간인 스스로가 독도를 지켰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며 바로 한민족의 정기가 아니냐.”고 강조했다.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던 적도 있다던데. -“한·일협상 무렵 방송에 나가 독도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우물을 파고 나무도 심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또 북한방송에서 홍 아무개가 독도를 지키는 훌륭한 일을 했다고 떠들어대곤 했으니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혔지요. 고문도 당하고 그후 몸이 많이 허약해졌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뒤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뭐, 식당운영도 했고…. 남편이 몸이 안좋게 되자 울릉도에서 서울로 나와 병원엘 다녔지요. 그때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인 1985년도인가 그래요. 처음에 송파쪽에 살았는데 1997년 구리에 우연히 들렀다가 지금까지 살게 됐습니다. 생활비는 자식들한테 얻어 쓰고 그럭저럭….” ▶그동안 나라에서 받은 혜택 같은 것은 없었나요. -“박정희 정권 때 여러 차례 건의를 했더니 대원 11명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주더군요.1996년 딸이 대통령에게 청원을 해서 33명 전원이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국가유공자가 됐지요. 남편은 대원과 가족에게 죄책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고생만 잔뜩 시키고…. 돌아가시면서 대원들이 꼭 국가 유공자가 돼야 한다고 유언했지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팔순 다 된 나이에 뭘 하겠느냐.”며 남편이 남긴 것 중 책 한권 분량의 독도 관련 원고가 있어 이를 출간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의 지시도 없이 스스로 독도를 지키고자 했던 독도수비대원들의 활동을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4년 대구 출생 ▲51년 안동사범학교 강서과 1년 수료(준교사 자격증) ▲52년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과 결혼, 울릉도 거주 ▲53년 독도의용수비대 후방지원대 역할을 맡아 56년 12월까지 병참지원 활동 ▲61년 울릉도 사동초등학교 교사 ▲68년 울릉도에서 음식점경영 ▲69년 독도개발계획 등을 정부에 여러차례 건의 ▲85년 서울로 이사 ▲86년 남편 홍순칠 대장 작고 ▲97년∼현재 경기도 구리 거주 # 특이사항 할아버지(홍재현)-아버지(종욱)-손자(순칠)-조카와 딸 등으로 이어지는 4대째 독도지킴이 활동에 앞장
  • 있는 그대로의 김구선생 읽기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오늘까지 ‘대가리 싸움’, 곧 헤게모니 싸움으로 말썽이 많았다.…해방 후 우리나라에서도 머리싸움이 벌어져서 서로 머리가 되려고 머리가 부서져라 싸움만 하고 누구 하나 발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1949년 1월,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이 한국독립당 당원들에게 전한 신년연설사의 일부다.6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요지부동 세태 앞에서 백범의 큰 발자국 소리는 변함없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백범일지는 그동안 여러 자료들을 저본으로 출간됐다. 백범이 1929년과 1942년에 탈고한 친필본이 1990년대 들어 뒤늦게 공개됐고, 이를 바탕으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97년(돌베개)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번역본들은 필사본을 바탕으로 씌어진 셈이다.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김구 지음, 배경식 해설·엮음, 너머북스 펴냄)는 필사본에 기초한 번역본들의 오류를 두루 바로잡았다는 데에 출간 의의가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백범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백범 모습을 풀어쓰고자 했다.”고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전에 나온 백범일지들에서 미처 언급되지 못한 백범의 삶을 새롭게 소개하는가 하면, 그가 잘못 기억한 내용까지 교정해준다. 예컨대 백범이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안(集安)일대를 여행하고서도 고구려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를 밝힌다.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광개토대왕비의 발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 번역본들이 나오면서 알게 모르게 원전의 텍스트적 가치를 훼손한 사례들도 적시한다. 대부분의 출간본들이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로 시작되는 이유는 1947년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해방 후 국사원 출간본)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책은 원전대로 “우리 선조는 안동 김씨로 김자점씨의 방계 후손이다.”로 시작돼야 옳다고 주장한다. 기존 번역본들의 번역 오류도 바로잡는다. 백범의 유년시절, 어머니 곽낙원 여사, 안중근 집안과의 각별한 인연 등 백범사상을 여물린 주변이야기들도 연대기순으로 상세히 실려 있다.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유명인은 죽어 신체를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유명인은 죽어서 신체 일부를 남긴다?” 미국 폭스뉴스는 20일(현지시간) 유명인 10명이 남긴 신체 일부분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생전에 각종 역경을 통과했던 유명인들은 죽어서도 우여곡절에 시달렸다. 나폴레옹 1세의 성기는 1821년 부검 도중 비그날리 신부라는 성직자가 빼돌렸다. 이후 1977년 미국 비뇨기과 의사 존 킹슬리 래티머가 사들였다. 당시 돈으로 2900달러. 현재 가치로 1만달러 정도를 들였다. 현재 래티머의 후손들은 이 유물을 판매할 계획이다.10만달러 이상은 받을 걸로 기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눈도 부검 도중 사라졌다. 안구 보관자는 미국 뉴저지주의 안과의사 헨리 에이브럼스 박사다. 현재 지역 은행 개인금고에 안구를 보관 중이다.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은 미국 텍사스주 한 서점에 전시돼 있다. 한 CIA 요원이 잘라낸 이 머리카락은 지난해 10월 경매에서 10만달러에 팔려나갔다. 베토벤의 머리뼈 일부분도 부검 도중 분실됐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대학이 머리뼈 조각들을 구입해 보관 중이다. 갈릴레오의 손가락은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과학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무덤 발굴 도중 사라졌었다. 링컨의 머리뼈 조각은 암살범이 사용한 총탄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국립 보건의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에디슨의 마지막 ‘날숨’은 미시간주 헨리 포드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밖에 올리버 크롬웰의 머리, 미국 24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종양 덩어리,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심장 등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안용복 장군이 하늘서 눈물 흘릴 일”

    “안용복 장군이 하늘서 눈물 흘릴 일”

    안용복 장군의 후손이자 ‘안용복 장군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안판조(66·순흥 안씨 27대손)씨는 16일 일본이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사태를 두고 “장군이 하늘에서 눈물을 흘릴 일”이라며 분노했다. 안용복 장군 기념사업회는 장군이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유권과 어업권에 대한 서계(書啓)를 받아낸 사실을 널리 알리고, 독도수호 활동을 통해 장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독도에서 안용복 장군 진혼제를 열었다. 안씨는 “일본 정부가 자기 나라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 주려는 책동”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일본에 분명히 알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독도의 아름다운 생태계와 천연자원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안용복 장군이 일본에 건너가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다짐을 확실히 받아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일본의 도발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 정부가 냉·온탕을 오갔기 때문”이라면서 “평상시에는 독도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호들갑을 떠는 우리 정부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日 독도영유권 명기 파장 확산] “전범세력 청산 안돼 침략역사 미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되풀이되는 것은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는 전범세력이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지배세력으로 재편입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는 15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일본 역사교과서의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기억을 둘러싼 교과서 전쟁’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허 교수는 “일본에서 독일과 달리 역사 왜곡세력의 움직임이 계속되는 것은 독일에서는 전범세력이 아직도 추적·처벌되고 있지만, 전후 일본에서는 세계를 향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자행한 전범세력이 청산되지 않고 지배세력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이들(전범세력)에게 패전 이전 제국 일본에 대한 기억은 자랑스러운 ‘영광’의 역사이지 반성해야 할 역사가 아닌 것”이라면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는 침략의 과거사 기술에 불만을 품은 우익 진영의 기획에 의해 꾸준히 추동돼 왔다.”고 주장했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일본 교과서는 처음에는 독도의 위치표시만 했다가 이어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경계선을 긋고, 이후에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독도 관련 기술을 강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원은 “독도문제를 한국은 일제의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야기된 역사문제라고 보는 반면, 일본은 독도의 영토주권에 관한 문제로 보는 차이가 있다.”면서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독도기술은 한·일 양국 후손들의 갈등을 영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노원구 김석진·황인옥씨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노원구 김석진·황인옥씨

    지난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노원구청장실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노원구와 관련한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 사건을 맡고 있다.’는 강민구 부장판사가 보낸 편지였다. 내용은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어느 공무원의 소개였다. 강 부장판사는 “국가 소송을 마치 자기의 재산 소송처럼 준비하는 구청 공무원들의 지극정성에 감동했다.”면서 “소송의 승패를 떠나 널리 알려야겠다.”고 펜을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이런 직원을 아랫사람으로 둔 이노근 구청장의 인복이 부럽다고도 했다. 편지에 언급된 주인공은 건설관리과에 근무하는 김석진(34)씨와 재무과에서 일하는 황인옥(39) 주임. 이들이 지난해 3월부터 맡고 있는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은 ‘무주 부동산(주인 없는 토지)’ 3곳(397㎡)을 공고를 통해 국가 소유권으로 이전해 일반에 매각했지만 원주인의 후손이 나타나 토지를 다시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원주인의 후손은 해당 토지가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토지조사부에 증조부가 소유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2심 담당판사 구청장에게 칭찬편지 소송이 진행되면서 원고의 주장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 전쟁으로 해방 이전의 지적 관련 공부와 등기부가 소실되거나 사라져 당초 국가 소유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소송에서 지면 토지뿐 아니라 사용료 등의 관련 비용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40억원가량을 배상해야 한다. 황 주임과 김씨는 먼저 정부 부처의 기록보관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국가 소유였거나 매입했다는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른 업무도 맡고 있어 업무 틈틈이 시간을 냈다. 그동안 기록을 찾아 방문한 곳만도 국가기록원과 철도청, 국세청, 한국자산관리공사, 서울상업등기소와 각급 종합도서관 등이었다. 짧게는 한 나절, 길게는 열흘 이상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본의 아니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김씨는 “해방 이전 서류를 찾는다며 바쁜 담당자에게 수시로 전화하고, 어떤 때는 서고에서 하루종일 서류를 찾고 있으니 신경이 쓰여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두둔하기도 했다.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서울상업등기소에 보관 중이던 1942년 당시 ‘동양운모광업회사’라는 법인 등기부 등본이었다. 해당 토지가 여러 필지로 분할되기 전 이미 처분된 정황이 나타나 지난 1월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현재 2심 진행… 새 증거 찾기 발품 현재 원고가 항고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1차 변론이 있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주어진 10분 안에 담당 판사를 설득시키기 위해 추가로 찾아낸 증거를 6장의 도면에 알기 쉽게 표시해 변론했다. 김씨 등은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담당 부장판사님의 칭찬이 과분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건과 같은 토지 소송은 해방 전후의 혼란기와 한국 전쟁까지 겹쳐 있어 소유권 변동을 추적하기가 어렵다.”면서 “소유권 이전을 증명할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 땅과 연관지을 수 있는 작은 사실들을 수집해 전체적인 사실을 유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기고] 호국보훈과 진정한 촛불의 의미 / 이봉춘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호국보훈과 진정한 촛불의 의미 / 이봉춘 서울지방보훈청장

    얼마전 제2연평해전 기념식이 정부 기념행사로 격상되어 열렸다. 죽음으로 조국을 지켜낸 자식과 남편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했던 것에 섭섭했던 유가족들도 뒤늦게나마 국가가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는 것을 보았다. 평생을 한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좀더 빨리 마음을 쓸어줄 위로를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당시 행사장에는 연평해전 사진전시회가 마련되었다. 역사적 현장을 담은 사진과 그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참수리호를 보면서 가슴 한편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교전이 있던 그날은 2002년 월드컵 3,4위전이 열리던 날로, 우린 아무 걱정 없이 응원준비에 몰두하며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날 우리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승리를 염원하며 열광할 수 있었던 것은 한쪽에서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것들, 하루의 일상이라든가 계획하는 미래의 꿈 등, 이 모든 것들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간단한 세상살이의 논리를 잊고 그저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기념식이 거행되던 날, 또다른 한쪽에선 촛불집회가 진행되었다. 촛불집회는 국민의 민의를 올바로 표현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 계기가 되었고, 대통령의 독단을 막는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평화적 시작과 달리 시위하는 시민과 진압하는 경찰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인터뷰를 보며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이 다치고 또 누가 먼저 공격을 가했는지가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모든 국민들의 뜻은 광우병 걸린 쇠고기가 아니라, 품질 좋은 쇠고기를 먹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려는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일 게다. 건강한 국민, 행복한 국민이 많은 나라가 곧 잘사는 국가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최종 목적은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마한 균열이 커다란 댐을 허문다. 성곽을 둘러싼 전투에서도 한쪽 성문이 뚫리면 결국엔 전체 성이 무너지고 만다. 반대로 작은 힘이 모여 큰 것을 이룰 때도 많다. 모든 국민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일로 IMF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이 있다. 전 세계인들이 모두 놀란 일로, 국가적인 위기에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작은 힘이 모여 기적을 만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다시 한번 작은 힘의 위대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선진 일류국가 건설이 우리의 최종 목적임을 되새기며, 그 길을 위해 지금 촛불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 동안 현충일 기념행사와 각종 추모제, 참전행사를 거행하면서 새삼 조국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게 되었다. 좀더 좋은 세상을 누리지 못하고, 그저 후손에게 발전된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느끼며 새로운 각오를 해보았다. 나라가 침몰할 때 가라앉는 배를 건지기 위해 바다로 자신을 던지며 희생하신 분들이 세워놓은 이 나라를 생각해보면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지금 당장 내 것을 앞세우는 마음보다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들이 모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들이 모여 좀 더 큰 숲을 그리며 강한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져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봉춘 서울지방보훈청장
  • 친일재산 환수 2년간 908억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9일 지난 4월부터 이날까지 4차례에 걸쳐 국가귀속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내역을 발표했다. 4차례 전원위원회를 통해 국가귀속 결정된 재산은 17명이 보유하고 있던 75필지 총 113만 9525㎡의 땅으로 공시지가 81억 7797만 7200원에 이른다. 이로써 지난 2년간 위원회가 국가귀속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은 모두 45명의 토지 474만 1584㎡, 공시지가 425억원(시가 908억원) 상당으로 늘어났다.이 중 후손들로부터 국가귀속 결정 취소소송이 제기됐으나 제소기간이 만료돼 국가소유로 최종 확정된 재산은 259필지 35만 4123㎡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씨줄날줄] 40년만의 화해/임태순 논설위원

    1894년 12월 전남 장흥군 석대뜰앞. 한때 기세등등하던 동학농민군들이 이 곳까지 밀려와 정부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변변한 무기도 없던 농민군은 신식총을 가진 일본군과 관군에 대항하다 전멸당했다. 농민군들은 앞서 장흥성을 점령하면서 부사와 관리, 주민 등 97명을 죽였다. 농민군이건 관군이건 후손들의 입장에선 조상들이 죽었다는 점에선 서로가 피해자였다. 후손들은 각각 ‘의(義)’와 ‘충(忠)’을 내세우며 서먹서먹하게 지내다 지난 2004년 8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서로 화해했다.110년 만이다. 특별법으로 농민군과 그 후손들의 명예가 회복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태영호 간첩단’사건에 연루됐던 전북 위도 주민들이 오늘 40년 만에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이들이 다시 손을 잡게 된 것은 ‘간첩’과 ‘밀고자’라는 누명이 벗겨졌기 때문.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어제 1968년 태영호에 승선, 강제 납북됐다 풀려난 뒤 간첩으로 몰린 선원들과, 강압에 의해 허위자백을 한 이웃 주민들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해 조작된 인권유린사건이라고 조사한 것을 근거로 했다. 이 사건 연루 주민들 역시 서로가 피해자였다. 선원들은 북으로 끌려간 것도 억울한데 ‘빨갱이’로 손가락질 받았다. 허위진술을 한 주민들도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것에 치를 떨었다고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말했다. 27년간 복역했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1994년 대통령이 된 뒤 과거의 범죄를 고백하면 처벌하지 않는 화해의 정치를 펼쳤다. 가해자였던 백인들도 인종차별정책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용서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마음의 평화만 깨질 뿐”이라며 “용서해야 평화를 찾고 행복에 이른다.”고 했다. 태영호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법정에서 “상부의 지시로 수사했으나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어두웠던 시대와 화해하기 위해선 이제 위에서 지시한 사람들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친일파 후손에게 사들인 땅 주인은?

    제3자가 친일파 후손에게 사들인 땅이 국가에 귀속되는지에 대해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려 상급심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종필)는 4일 청송심씨 효경공파종중이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산 땅의 국가 귀속은 위법하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1일 의정부지법 행정부(부장 최영룡)는 곽모(50)씨가 낸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선고했다. 소송에 휘말린 땅은 모두 친일파 민병석의 후손이 매매한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2005년 12월 시행됐다. 민병석 후손에게서 심씨 종중은 2006년 6월 경기 연천군 땅 6576㎡을 1억 5400여만원을 주고, 곽씨는 같은 해 5월 경기 고양시 설문동 땅 956㎡을 3억 6800여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이듬해 4월과 11월, 친일조사위는 민병석이 일제시대 때 취득한 재산이라며 이 땅을 국가 귀속으로 결정했다. 종중과 곽씨는 “친일재산인지 모르고 매입한 것”이라며 행정소송을 각각 냈다. 쟁점은 친일 재산이 언제 국가에 귀속됐다고 판단해야 하느냐이다. 특별법이 시행된 2005년 12월이라고 보면 땅 매매는 원칙적으로 무효라 원고들은 땅을 국가에 줘야 한다. 친일조사위가 결정한 때라고 보면 원고는 특별법이 보호하는 ‘선의의 제3자’에 해당해 땅을 유지할 수 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직지심경 대모’ 在佛 사학자 박병선박사

    “박사님, 올해 여든하나이신데 아주 정정해 보이십니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더니)세월이 그렇게 흘렀네요.” 짧은 생머리, 나이만큼 백발이 묻어났지만 주름살은 별로 없었고, 눈썹과 입술 화장이 잘 어울려 보였다. “여전히 얼굴이 고우십니다. 젊었을 땐 참 예쁘고 미인이었겠습니다.” “어이구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어릴 때 친척들한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잘생긴 언니와 오빠, 동생들과는 비교가 안됐지요. 미인이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약간 홍조 띤 얼굴로 변한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결혼은 왜 안 하셨는지요?” 보통 같으면 증손자까지 봤을 법한 할머니에게 던진 질문 자체가 우스웠나 보다. “뭐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그것에 파고들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 가고, 어디 (연애할) 틈이나 생겨야 말이지요. 호호.” 노(老) 박사의 웃음 짓는 모습은 해맑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시는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젠 나이도 그렇고 쉬셔도 되는데 젊은이들보다도 정열이 더 뜨겁습니다.” 잠시 한숨을 쉰다.53년 동안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함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한우물을 팠다. 또한 해야 할 관련 숙제 역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인 듯하다. “더 늙기 전에, 총기가 사라지기 전에 선명하게, 뚜렷하게 규명해야 일들이 많이 있네요. 개인이 한다는 게 외롭고 어렵긴 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노 박사의 말과 표정이 경외스럽도록 다가온다. 문득 노 박사를 모델로 한 역사 추리소설(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이 생각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게스트하우스.‘직지심경(直指心經·직지심체요절)’의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직지심경의 대모로 불리는 까닭은 1967년 파리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발견해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시킨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최근 방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래서인지 박 박사는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도서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가급적 피해달라고 먼저 주문한다. 재불(在佛) 역사·서지학자인 그가 잠시 방한한 이유는 1985년 국내에서 발간했던 ‘조선조(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판을 내기 위해서다. 이번 증보판은 300쪽 중 100쪽가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점이 눈여볼 대목. 그는 평소 프랑스인들이 병인양요를 거의 모른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증보판 앞 부분에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과 ‘왜 한국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등을 프랑스어로 자세히 언급한다. 또한 의궤의 내용과 그것이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 당시 프랑스 해군의 일기와 공문서 등도 새롭게 첨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출간을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번 증보판에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행적을 어렵게 추적, 이른바 ‘작전루트’를 처음 공개할 예정이어서 중요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병인양요와 의궤 반환문제로 프랑스 국영 3TV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방송사 간부한테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때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의 도움으로 이번에 작업을 하게 된 것. 증보판은 한달 후쯤이면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흔적과 관련된 자료는 많이 있는지요. “프랑스가 1차 원정 왔을 때 일기를 보면 강화도의 문수산성과 적성산성 등을 왔다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2차 원정때의 군함, 당시 그림과 자료, 관청의 위치도 등을 종합해볼 때 황해도 연안까지 갔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행적을 찾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볼 생각입니다. 현재 이 작업만 남아 있습니다.” 그는 방한에 앞서 당시 프랑스 로즈함대장의 후손을 만나 여러 번 설득 끝에 강화도 등에서 프랑스로 압수해간 ‘압수목록표’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이번 증보판 부록에 실린다). 그는 “로즈함대장의 후손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알고 있으며 곧 ‘할아버지 전기’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프랑스인들은 병인양요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달라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요. “도대체 그걸 왜 반환해야 하느냐고 묻는 프랑스인들이 많습니다. 이때마다 ‘만약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한 유일한 문서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되묻지요. 그럼 프랑스인들은 당연히 찾아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50여년 동안 한국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대부분 스크랩해 놓을 만큼 자료 수집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등에서 3·1운동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영사관이 본국에 보낸 많은 공문서를 찾아냈다. 또 일제때 일본과 중국에 주재했던 프랑스 공관이 본국에 보낸 공문서 중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모은 자료 등을 합하면 무려 2000상자 1만 5000쪽 분량에 이른다. 이 귀중한 것들을 정리하고 책으로 펴내는 일이 그의 마지막 숙원사업. 파리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그만큼 많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어렵게 해왔습니다. “개인이 한다는 게 사실 엄두가 안 나지요. 국가에서는 (반응이)냉랭합니다. 아무튼 어렵게 자료들을 모았으니 그냥 놔둘 수도 없겠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의 자취도 추적했다. 파리 시내 서쪽 쇼토 거리에서 이들이 머물던 곳을 찾아냈고 2006년에 겨우 건물 현판 정도만 걸 수 있었다. 기념관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박 박사의 어릴 적 꿈은 유치원을 설립해 서구식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대에 진학했지만 나중에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대학 때는 손보기(사학자)·이두현(민속학자) 선생 등과 친하게 지냈다.6·25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유학을 택한 것은 평소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 출신 수녀들과 가깝게 지낸 덕분. 이후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한 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중 1979년 의궤를 찾아낸 직후 ‘비밀을 누설했다.’는 질책과 함께 파리국립도서관을 그만두었다. 이후 여러 파란곡절을 겪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문서와 귀중한 자료들 속에 파묻혀 ‘여자의 일생’을 걷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8년 서울에서 5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대 사회생활학과(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6·25 이후 민간 여성으로는 첫 프랑스 유학비자를 받고 떠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종교사를 전공(석·박사)한 뒤 1967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할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발견해 냈다. 이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무려 73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1979년에는 조선 왕조의 의식에 관련된 세세한 기록문인 외규장각 도서 279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창고에서 발견, 한국에 알렸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훈장 동백장과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특별상 등을 받았다. 특히 1919∼1920년 사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현재는 파리 근교에서 살면서 한국 관련 각종 고서연구와 프랑스에서 본 한국의 3·1운동 등에 관한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인쇄사’(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한국어)가 있고, ‘한국의 무속사’‘한국의 역사’ 등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 [교육감 선거제 심층진단(4)] 예비후보자 서울 7명·전북 2명

    전북·서울 교육감선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전북은 다음달 23일, 서울은 같은 달 30일이 투표일이다. 예비후보들을 가나다순으로 소개한다. ●서울 7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공정택 현 교육감은 다음달 1일쯤 등록할 예정이다. 김성동(66) 후보는 경일대 총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가 전국 청렴도에서 3년 연속 꼴찌를 하는 등 곪을 대로 곪았다.”면서 “부패한 교육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박장옥(56) 후보는 서울 동대부중·고 교장 등을 지냈다. 박 후보는 “공교육 정상화로 학생·학부모의 고통과 부담을 덜어주는 새로운 국운융성의 원천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서울고 교장 등을 거쳐 중앙대 겸임교수로 있는 이규석(62) 후보는 “교육자 인생 30년의 경험을 되살려 숭례문처럼 무너진 서울 교육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이영만(62) 후보는 교육부 교원정책심의관, 경기고 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부모들이 자녀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참담한 현실”이라면서 “후배와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줄 교육감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인규(49) 후보는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막고, 한편으로 전교조 같은 이익단체가 교육개혁을 가로막는 것을 차단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장희철(55) 후보는 서울 성남중학교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장희철행정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 주경복(58) 후보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을 거쳐 현재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있다. 그는 “정부와 공정택 교육감은 교육본질을 훼손하는 시장주의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교육관료들의 이권경쟁 무대로 변질된 서울의 교육자치를 혁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북 예비후보자는 2명이다. 최규호 현 교육감은 30일 출마선언할 예정이다. 원광대 법학과 교수인 송광섭(48) 후보는 익산 경실련 집행위원장·상임공동대표를 지냈다.“창의적 교육마인드를 가진 젊은 세대가 전북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교육소비자 주권시대 개척’을 선언했다. 오근량(63) 후보는 전주고, 전북과학고 교장과 고창교육청장 등을 역임했다.“초·중·고 교원경력 40여년의 전문가로서 인재양성을 위해 열정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시론] 우리의 미래,스스로 개척하자/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물리학

    [시론] 우리의 미래,스스로 개척하자/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물리학

    사람들은 항상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한다. 내일의 날씨, 오후의 교통체증 등 사소한 일부터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해질지 등의 거시적인 문제까지 미리 알고 싶어 한다. 미래는 단순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제어할 수 없이 주어진 조건들도 있다. 자연의 변화나 과학기술과 경제의 발달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인 큰 흐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세와 준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미래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행히 미래의 변화를 주도할 큰 흐름은 대부분 드러나 있다. 석유 등 자원의 고갈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이 자명하다. 여기에 물 부족과 식량 생산력의 한계, 지구 온난화 및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른 자연재해의 빈발 등도 확실시된다. 또 세계화의 진전과 지식기반사회의 발전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문화적·종교적·인종적 충돌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노령화가 진전되면 보건·의료 서비스와 연금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될 것이며, 다문화 가정 문제도 갈수록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쉽게 찾기 힘들다.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고, 한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어려워지는 등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문제는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사회적 지혜가 같이 융합해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속성장을 해오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앞서 간 선진국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참조해 가며 우리 나름대로 응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반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문제들은 그 복잡도가 과거보다 더할 뿐 아니라, 선진국의 예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우리의 독창력을 발휘하면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의 역량은 충분하다. 훈민정음, 거북선을 발명한 창의력이나 인터넷 모바일 문화나 한류의 세계적 확산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은 분명히 다른 민족보다 훨씬 우월하다. 다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세계 시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앞으로의 문제는 에너지·자원·물 고갈과 지구 온난화처럼 지구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혼자 해결할 수도 없고, 우리만 살자고 다른 나라 사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둘째, 세계 표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관행이나 의식을 강요하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셋째, 후손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의료 보험과 연금 등은 결국 현세대와 다음 세대와의 비용 분담에 관한 문제다. 필요한 개혁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후손에게 부당한 부담을 안겨주지 않게 된다. 우리민족은 오랜 역사동안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모든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21세기의 새로운 도전도 잘 해결해 바람직한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서울신문이 최근에 연재를 시작한 ‘한국의 미래, 위기를 희망으로’ 기획이 이같은 개척의 방향키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물리학
  • 조선일보-네티즌간 ‘말바꾸기’ 논란 2라운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과정에서 네티즌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온 조선일보가 네티즌들을 향해 “각종 루머와 음해·비방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반박기사를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조선일보가 궁지에 몰리자 상황을 모면하려는 변명만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7일 오후 ‘네티즌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가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 말을 바꿨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광고주 탄압 사태로 말미암아 본사가 일부 네티즌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최근 본사를 향한 질타와 비난이 적지 않게 쏟아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이는 조선일보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 또는 악의적 왜곡에서 비롯된 부분이 대부분”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정권에 따라 조선일보의 논조가 180도 바뀌었다.’는 네티즌들의 지적에 대해 조선일보는 참여정부 시절의 광우병 관련 기사를 소개하며 ▲광우병 위험에 대해 감정적 대응보다는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미국 쇠고기=광우병 쇠고기’라는 일부 세력의 반(反)FTA 선동을 경계해야 하며 ▲세계에서 쇠고기 가격이 가장 비싼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장점이 있다는 논조를 일관되게 취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주장이든,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언론의 기본 신조를 지키려 했다.”고 밝힌 조선일보는 “각각의 논지가 논리적·과학적으로 잘못됐음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정권에 따라 논조를 바꾸었다는 비난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한편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언론들을 빗대어 “조선일보가 ‘국민의 건강을 무시하는 신문’이라는 낙인이 찍혀 무차별적인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면,이는 미국의 주저앉는 소(downer)는 거의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보도한 어느 방송사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인가.아니면 ‘오뎅국물이나 라면스프만 먹어도,감기약만 먹어도,수돗물만 마셔도,숨만 쉬어도 광우병에 걸려 다 죽는다.’는 루머가 횡행할 때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고지식하게 고집을 피운 죄인가.”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참여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가)99.99% 안전해도 정부는 나머지 0.01%의 위험관리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믿음을 못주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부 네티즌들은 조선일보가 말을 바꾼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 듯 자랑하지만 그날은 미국에서 광우병 쇠고기가 발견된 날이다.그때의 불안감과 지금의 불안감이 같은 종류인가.”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가 정권교체 후 극단적인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포털의 댓글에 충격을 받아 과거 조선일보의 사설을 찾아봤더니,이들의 주장과 달리 조선일보의 논지에 변함이 없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조선일보 독자의 칼럼을 소개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조선일보의 해명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다음 등 포털사이트 해당기사에서 “대국민 사죄하고 반성해도 부족한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벤더),“또 짜집기를 시작했다.”(yoho86),“도저히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KDS07) 등의 댓글을 달며 조선일보의 해명 기사가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기사쓴 사람과 조선일보 관계자는 부끄럽지도 않나.”(밤사냥꾼),“볼 것도 없다.무조건 폐간”(후손을 생각하며),“쓰레기 신문은 쓰레기일 뿐”(해산)이라는 등 여전히 격앙된 반응을 드러내 보였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한국의 미래 위기를 희망으로] 후손까지 생각하는 독일 물 정책

    [한국의 미래 위기를 희망으로] 후손까지 생각하는 독일 물 정책

    |본(독일) 류지영특파원| “한국에서는 독일이 모든 가정에 빗물탱크를 설치해 물 재활용에 앞장서고 있는 것처럼 소개되나 보죠? 사실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수자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보다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라인강물이 늘 마실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면 아무때나 가져다 쓰면 되잖아요?” 한국의 환경부에 해당하는 독일 본 소재 환경자연보호핵안전부 수자원관리과 디히터 벨트비슈 박사에게 ‘빗물 재활용’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수자원정책을 묻자 이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독일 수자원정책의 핵심은 ‘수질관리’다.‘수량(水量)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30여년 전만 해도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줬던 라인강과 독일의 여러 하천들이 이젠 유럽에서 손꼽힐 만큼 깨끗한 물로 변해 생명의 산실이 되고 있다. 낙동강 페놀사태 이후 매년 2조원 넘게 수질개선에 투자해 왔지만 한강 이외에는 별다른 수질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로서는 독일의 사례가 좋은 교과서가 되고 있다. ●검사하고 또 검사하고…깐깐하게 정화 독일 수자원정책의 핵심은 언제 어디서든 물을 쓴 사람이 오·폐수를 완벽히 처리해 내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물 이용자에게 2~3단계에 걸쳐 폐수처리를 요구하고, 수질검사를 실시한다. 공장의 경우 폐수를 중앙하수처리장(주로 생물학적 처리 담당)에 보내기 전 반드시 자체 정화시설(생화학적 처리 담당)을 거치도록 해 오염물질의 95% 이상을 제거해야 한다. 정전이나 화재 등 비상사태 발생시 폐수가 공장 정화처리장을 거치지 않고 중앙처리장으로 곧바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주는 저류조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지난 3월 경북 김천 코오롱유화공장 사태와 같은 독극물 유출사고가 이곳에선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당국의 공장 방류수 검사도 공장 폐수 처리장 배출구와 처리장 인근 하천에서 별도로 진행된다. 공장 폐수 검사를 통과했더라도 주변 하천 수질검사에서 기준치를 넘거나 독성물질이 발견되면 평소 이 공장이 폐수를 무단 방류한 것으로 간주해 정밀조사에 착수한다. 방류수 검사는 횟수에 상관없이 불시에 이뤄진다. 독일에서는 모든 업종이 50개 직군으로 분류돼 각기 다른 배출기준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유량이 적은 지류나 소하천 주변의 공장에는 예외없이 가장 강력한 수준의 배출기준이 적용된다. 유량이 적은 곳은 미세 오염물질로도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수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가축분뇨 등이 뒤섞여 ‘죽음의 하천’이 된 남한강 지류 경안천 같은 곳들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수질 유지의 핵심은 철저한 상·하수도관 정비 “그냥 마셔도 됩니다. 별도 처리를 하지 않은 여과수거든요.” 프랑크푸르트 인근 그로스시 상수도담당 공무원 잉고 마이어가 건넨 수돗물에는 아무런 냄새도, 찌꺼기도 없다. 수돗물을 틀면 야릇한 염소 냄새와 함께 간혹 수도관 노폐물까지 섞여 나오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독일 연방 정부가 지출하는 상하수도 관련 예산 중 70%가량은 노후 상·하수도관 교체에 쓰인다. 수질개선·정화처리 등에 쓰는 비용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노후 상·하수도관을 적시에 교체하면 수돗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당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수질관리와 적극적인 상·하수도관 관리 덕분에 현재 독일 전역의 하수처리율은 95%를 넘어선 상태다. 사람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하수는 모두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그나마 가장 낫다는 한강유역 하수처리율이 60%선에 불과한 우리로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독일의 수자원정책은 녹색당이 의회에 진출한 1970년대 본격적으로 골격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환경보호가 경제성장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벨트비슈 박사는 “수질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하수처리비용이 포함된 비싼 수도요금(t당 2.5유로 정도)을 감내하는 독일 국민들의 정신자세가 지금의 수질정책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superryu@seoul.co.kr ■ 케냐 등 북아프리카 온난화로 사막화 “비 언제 왔는지 기억도 안나요” 나일강 수자원 놓고 이집트와 물분쟁 |나이로비·이시올로(케냐) 이재연특파원|‘나일강의 수원(水源)’ 빅토리아 호수와 접한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500여㎞ 떨어진 외딴 마을 이시올로. 랜드크루저를 타고 붉은 먼지를 날리며 북쪽으로 다시 달리기를 4시간여. 원주민인 삼부루족이 사는 적도 밑의 사막 마릴로 지역이 나타났다. 지평선에 맞닿은 초원은 바싹 말라 검은 빛깔이다. 곳곳의 ‘시즈널 리버(비올 때만 물이 흐르는 냇가)’엔 시뻘건 흙더미만 굽이져 있다. “1994년 큰 가뭄을 겪은 뒤로는 우기에도 비가 오지 않아요.” 마사이족 사촌이라는 삼부루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모래밭에 파놓은 깊이 2m가량의 우물가에 전통복장의 아낙들과 맨발의 아이들 80여명이 둥근 플라스틱 물통을 줄지어 세워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삼부루족과 랜딜레족이다. 겨우 발목 깊이의 물이 고여 있는 우물 주변에는 가시돋친 아카시아 울타리가 쳐져 있다. 동물들이 들이닥쳐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이다.1㎞ 주변에 이런 우물 11개가 모여 있다. 이 공동의 우물은 250㎞ 떨어진 마사비트까지 근방에서 유일한 식수원이다. 원래 이 지역 우기는 1년에 두 번.4∼6월 비가 내린 데 이어 10월부터 두 달간 작은 우기가 닥쳤다. 하지만 올들어선 4월에 닷새 정도 이슬비가 내린 게 전부. 졸졸 흐르던 도랑은 이내 모래바닥 밑으로 흔적을 감춰버렸다. 랜딜레족 펠리나(18·여)는 “제대로 된 비가 언제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서 “이 우물마저 마르면 그땐 밖에서 물을 사와야 하는데 염소, 낙타젖을 팔아 연명하는 우리로선 너무 벅차다.”고 하소연했다. 이 지역에선 원래 우물 파는 데 장정을 보탠 집들만 물을 쓰는 게 불문율. 하지만 물이 워낙 부족해 남의 집 물을 몰래 길어 가다 싸우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해 10월에는 물을 긷다 랜딜레족과 삼부루족 간에 패싸움으로 3명이 숨졌다. 현재 케냐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개간을 위한 삼림 파괴 후유증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사막화라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다. 르완다, 콩고, 탄자니아, 우간다,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수단,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 10개국을 아우르며 6690㎞를 굽이쳐 흐르는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강 유역은 한때 찬란한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였다. 지금은 극심한 물부족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 물분쟁 지역이 됐다. 케냐도 1인당 연간 담수량이 1000㎥ 미만인 대표적 물 기근 국가지만 현재로선 속수무책이다. 나일강 유역 국가들 모두 극심한 가난과 인구 증가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가 나일강에 대한 역사적 기득권을 이유로 수자원의 독점적 사용을 강요해온 탓이 더 크다. 나일강 하류국인 이집트의 경우 강 의존도가 95%나 된다. 지금까지는 나일강 상류국가(케냐, 우간다, 탄자니아)들의 강물 사용량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나라가 인구 급증으로 인해 댐 건설 등 수자원 확보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집트와의 물 분쟁이 거세지고 있다. 나일강 유역 10개국은 1999년 ‘나일강유역 구상’(NBI)을 창립했다. 나일강 수자원 분배 비율을 놓고 싸우다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이집트와 수단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만족할 만한 해법이 찾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oscal@seoul.co.kr
  • [사설] 재벌 2·3세의 주가조작 철저히 파헤쳐야

    LG그룹 3세이자 레드캡투어 대주주인 구본호씨가 엊그제 주가조작으로 거액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구씨는 2006년 9∼10월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특정인의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속이고, 외국법인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처럼 허위공시해 7000원이던 주식을 4만원대까지 끌어올려 16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남의 돈으로 떼돈을 번 것이다. 구씨는 투자하는 곳마다 대박을 터트려 업계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왔다. 그는 “운좋게 투자하는 곳마다 투자자들이 따라왔다.”고 항변하지만 일반투자자들이 갖지 못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다. 재벌 2,3세들은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기에 유리하다. 자금동원력이 있고 재벌기업의 투자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든다. 재벌가의 후광이다. 구씨는 “마음만 먹었으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했을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가조작사건은 선의의 투자자를 울리고 투자환경의 왜곡을 가져오는 등 폐해가 크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미약하다. 현행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부당이득을 취한 사람은 최고 3배까지 벌금을 물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57%에 그치고 있다. 벌금 하한선이 없어서이다.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 주가조작사범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검찰도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재벌가 후손들의 시장 교란행위를 엄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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