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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伊 “모나리자 실제 모델 찾으려 무덤 파헤친다”

    伊 “모나리자 실제 모델 찾으려 무덤 파헤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 작품인 ‘모나리자’의 진짜 모델을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 학자들이 오래된 무덤의 유해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인물은 리자 게라르디니. 그녀는 리펜체의 부유한 실크 거래업자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게라르디니는 1479년에 태어나 1542년 7월에 사망했고, 피렌체의 한 수녀원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당시 남편인 조콘도 가문이 이 수녀원에 큰 액수의 기부금을 냈으며, 남편의 유언에 따라 게라르디니가 이 수녀원에 안장됐다는 증명서 등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제까지는 모나리자가 한 모델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다빈치의 오랜 동반자 또는 제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연구팀은 이번 유해 발굴을 통해 게라르디니의 얼굴이 모나리자와 일치하는지 판단할 수 있으며, 실제 모나리자의 모델이었는지의 여부를 확정지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먼저 레이더를 이용해 수녀원 지하에 숨겨진 묘를 찾고, 게라르디니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굴해내 신원을 추정하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후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 및 게라르디니 후손과의 DNA분석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한 뒤, 두개골을 토대로 얼굴을 재현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건전한 국민적 방사선 상식이 필요하다/이레나 이화여대 방사선종양학 교수

    [열린세상] 건전한 국민적 방사선 상식이 필요하다/이레나 이화여대 방사선종양학 교수

    최근 일본 열도에서 발생한 강진과 쓰나미 공포,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한 방사선 오염의 위험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연일 신문 및 TV뉴스의 주요 기사로 다루어지고 있다. 급기야 어제 뉴스는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고농도의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물이 인근 바다로 직접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렇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는 일본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접국인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한편 일본 원전 폭발에 따른 방사선 오염 물질이 어느 정도 누출되고 있는지를 것을 속보로 알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방사선 오염을 왜 공포라는 단어를 써가며 두려워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와 대처 방안을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원전 사고로 인해 방출된 무시무시한 방사선이 병원에서 폐렴 여부를 판명하기 위해 찍는 X선(엑스레이) 사진에서 나오는 방사선 및 흡연 중 담배에서 나오는 방사선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방사성물질 및 방사선은 원전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방사선은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서 나온다. 내 몸에서도, 집안의 벽과 가구, 길을 걸을 때 땅,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야채 또는 물, 골절이 되었을 때 촬영하는 엑스레이 사진 등등. 우리는 매일 방사선에 노출돼 있다. 모두가 매일 방사선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사성물질을 두려워하는 이유에는 크게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아주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 즉 방사선에 심각하게 오염된 물질에 드러났을 경우 본인뿐 아니라 후손에게까지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방사성물질 또는 방사선이 유령과 같이 볼 수도 없고 쉽게 느낄 수도 없는 탓에 오염 여파를 가늠하기 힘들고 피해의 영향력을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방사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해서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사선은 오로지 공포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몸에 좋은 보약도 적절한 양 이상으로 복용하면 독이 되는 것과 같이 방사선도 마찬가지다. 방사선을 적절히 우리 몸에 사용하게 되면 질병을 검진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이로움이 있다. 그러나 허용치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방사선을 조금 많이 받게 되면 피곤함, 구토, 설사, 가벼운 화상과 같은 증상이 온다. 핵 실험 여파나 원전 사고 등에 의해 많은 양의 방사선을 받으면 그 받은 부위를 절단해야 하거나 더욱 심하면 바로 사망하기도 한다. 또한 사망하지 않고 살아 있을 경우에도 본인이 암에 걸릴 수도 있고 자손에게까지 이어져 정신박약아, 불구자 등의 자손을 볼 수도 있다.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령과 같은 방사선에 대한 국민적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원전사고, 핵실험 등과 같은 사고로 인해 방출되는 방사선의 양을 정부차원에서 정확히 측정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신뢰성 있는 대책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 실험 때, 그리고 일본 원전 폭발로 발생된 방사성물질이 국내에서 발견되었는지를 알리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방사성물질이 국내에 들어왔고 어떤 위험이 있으며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국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책을 알려 주는 것이 급선무다. 방사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방사선에 덜 노출되기 위해 3단계 법칙을 준수하고 있다. 우선 방사성물질로부터 가능하면 멀리 떨어져 있고,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동안 접촉하고, 보호막을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방사선 오염에 대한 대처 원리를 마련하고, 어느 정도의 방사선이 국민의 건강에 어떻게 위협이 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 방사선에 대해 국민적 상식을 만들어야 한다. 반면 우리 국민들도 덮어놓고 방사선이라면 무조건 공포의 존재라고 호들갑을 떨지 말고 정부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뢰하여야 한다.
  • [사설] 독도 지키겠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

    “다케시마(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다. 우리 영토가 공격당한 것으로 보고 대응하겠다.” 마쓰모토 다케아키 일본 외상이 독도가 다른 나라의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자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국회에서 한 말이다. 귀를 의심케 하는 망언이다. 일본의 독도 망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5세손이라는 그의 발언이 주는 충격과 분노는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의 전방위적인 도발이 최악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를 통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노골화했다. 외교정책의 원칙을 담은 2011년 외교청서를 통해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일본의 독도 도발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극우 성향의 출판사나 우익단체들이 주도한 독도 도발·역사왜곡 작업을 이제 일본 정부가 대놓고 나서서 맡고 있다. 우리의 대응 또한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독도에 일본 방사능감지기를 설치하고 엊그제 공개했다. 내년에는 독도해양과학기지를 준공해 지진 연구 등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의례적인 항의나 메아리 없는 성명발표 등 ‘말’에 의존한 독도정책이 ‘행동’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실효적 지배는 어떤 주장이나 선전보다 우선하는 국제관계 규범이다. 정부가 ‘조용한 외교’에서 ‘냉정하고 단호한 외교’로의 전환을 천명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국제분쟁지역화를 노리는 일본의 의도를 경계해야 하지만 무작정 타협과 양보로 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영토 문제에 관한 한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국민적 합의다. 일본은 이제라도 스스로 고립화의 길을 자초하는 독도 야욕을 거두기 바란다.
  •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내가 개성공단에서 북한과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우리 회사는 지금 18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2005년 당시 국내 인건비가 많이 올라 중국에 해외공장을 설립하려 했었다. 사업자등록증도 다 받아놓은 상태에서 개성공단 시범단지 분양소식을 접했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북한에서 사업한 사람 가운데 99.9%가 실패했다는 자료가 있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망하더라도 북한에서 망하면 기계, 설비는 북한에 놓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북한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지난 7년간 사업을 접을까 말까를 수백번도 더 생각했다. 합작 일본 법인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합작을 취소했고, 북한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거래를 끊은 외국 바이어도 있었다. 개성에 공장을 열었을 때야 남북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처럼 3통(통행·통신·통관)문제가 해결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누구도 남북 간 정치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기업 122개 가운데 어느 한곳도 철수하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60%가 봉제업이다. 한국에서는 봉제업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개성공단의 인건비는 중국과 비교해서 3분의1 정도, 최대 10분의1까지도 차이가 난다. 단지 인건비만 비교할 것은 아니다. 물류가 당일 가능한 것도 장점이고 관세가 없다. 말도 잘 통하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나 중국 근로자보다 숙련 속도도 훨씬 빠르다. 초창기엔 북측 사람들과 신경전도 있었다. 업무 지시를 내리면 “내가 당신 도우러 왔는 줄 아느냐. 나는 당에서 보내서 왔다.”면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음식 문화도 상당히 달라서 미역국에 고기 대신 식용유를 넣고 끓여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도 잘하는 편이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경제인으로서의 역할을 말하고 싶다. 남과 북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문화나 사상, 경제적 격차를 최대한 좁힌 다음에 통일을 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본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알려줘야 한다. 말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보면서 자연히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7년간 개성공단을 드나들면서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북측 근로자와는 만나서 일과 관련한 회의만 하고 정치적인 얘기는 절대 안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남한 사람들이 먹을 게 없고 가난하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고 있다. 야간 수당이 나오는 심야근무도 서로 하려고 하는 걸 보면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2, 3의 개성공단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개성공단 1세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게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세대에서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후대에서 통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내가 개성공단에서 기업을 일군 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정치문제를 다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만큼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통행을 자유롭게 했으면 한다. 정치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 자르듯이 “폐쇄하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개성공단의 가치는 매우 크다. 통일이 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모른다. 개성공단이 홍콩이나 선전처럼 경제특구가 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공단이 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국민이 1억명은 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남북한이 합쳐 7000만명이 되면 얼마나 힘 있는 나라가 될까 상상해 본다. 정부도 통일세 대신 차라리 북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주면 어떨까. 7000만 민족이 뭉쳐서 경제를 발전시키면 주변의 어떤 강대국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배해동 회장 ▲53세 ▲1992년 ㈜태성산업 설립 ▲2005년 태성하타 개성공장 준공 ▲2006년 ㈜토니모리 설립 ▲2008년 산업포장 수상(남북관계 발전 기여) ▲2010년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 친일인사 재산 몰수 합헌

    친일 인사로 규정된 이들의 후손 재산을 국가가 몰수토록 한 법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31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 대 2(일부한정위헌) 대 2(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특별법 조항은 소급입법이긴 하나 친일 재산의 취득 경위에 담긴 민족배반적 성격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선언한 헌법 전문 등에 비춰 보면, 친일 재산 환수 문제는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공동체적 과업”이라며 “소급입법을 인정하더라도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특별법 조항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과거사 청산의 정당성과 진정한 사회통합의 가치 등을 고려할 때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이동흡·목영준 재판관은 “친일반민족 행위와 무관하게 취득한 토지라도 친일재산으로 추정돼 박탈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한정위헌 의견을 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을 받은 민영휘 등의 후손 40여명은 특별법에 따라 소유 부동산의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지자, 이 법률이 소급입법 및 연좌제 금지 등을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며 총 7건의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김범일 대구시장 “영남권 지자체 뭉쳐 다시 도전”

    ●김범일 대구시장 “백지화 결정과 그 결정 과정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고 밝혔다. 김범일 시장은 “밀양 신공항 유치를 위해 앞장서 온 시민들과 시민단체, 학계, 언론계 등에 감사를 드리며 유치를 관철시키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에 좌절하지 않고 경남, 경북, 울산 등 영남권 3개 지자체와 함께 후손들에게 물려줄 신공항 건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김 시장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영남권 신공항을 국가적 과제로 부각시켰고 밀양이 가덕도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것이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기업 유치, 대형 국책 사업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외곽산림·학교숲 연결 끊어진 녹색지대 복원”

    “외곽산림·학교숲 연결 끊어진 녹색지대 복원”

    “도시숲은 산이 아닌 도시에 나무를 심는 제2의 녹화운동입니다.” 이돈구 산림청장은 ‘도시숲’을 단순 경관조성 목적이 아닌 미래 후손에 물려줄 자산이자, 사람을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도시숲의 필요성에 대해 “여름철 도심은 복사열로 한밤까지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열섬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면서 “숲은 기후조절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해 도시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 간 괴리도 존재한다. 비싼 땅값이 걸림돌이다. 이 청장은 “도로나 폐선부지 등을 활용한 시범 조성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도시계획 및 도심 재생산시 정비계획 단계에서 대규모 녹지나 공원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숲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2004년 조성 당시 생명의 숲 공동대표로 사업에 참여, 대규모 도시숲 조성의 가능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서울숲은 서울시의 결단과 ‘시민의 힘’이 더해져 전례가 없는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했다. 이 청장은 “당시 이곳에 아파트를 지으면 4조원이 남는 것으로 추산됐다.”면서 “서울 동북지역의 거점녹지로 연간 700만명이 찾는 서울숲의 나무 3그루 중 1그루는 시민들이 심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국 6개 대도시에 최소한 50㏊의 도시숲을 조성할 계획”이라며 “탄소 상쇄프로그램 등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기업 참여 등을 통해 도시숲 조성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녹색 네트워크’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외곽 산림과 도시내 거점인 도시숲을 학교숲과 가로수로 연결, 단절된 녹색지대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4대강사업은 물관리 종합대책”

    “4대강사업은 물관리 종합대책”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은혜와 존재가치를 일일이 무게를 재어 봐야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23일 ‘물’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물은 우리 삶의 으뜸가는 보물이자 평생 길동무로, 겨레와 후손을 위해 이제 모두 그 가치를 되새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여년간 공직생활을 해 온 그는 요즘 물 관리 전문기관이요, 공기업인 수자원공사의 수장으로서 경인아라뱃길과 4대강 살리기 등 다양한 국책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수자원종합계획에 따르면 5년 뒤인 2016년 우리나라가 물 부족 현상을 겪는다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간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물 이용량도 6.6배나 증가했다. 그런데 물 부족은 이용량 증가보다는 가뭄시 가용 수자원 부족이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의 평상시 가용 수자원량은 평년 779억㎥이나 가뭄이 극대화되면 416억㎥까지 줄어든다. 물 수요량인 358억㎥를 조금 웃돈다. 이런 가용 수자원량도 57%가량이 홍수기에 집중돼 상당량이 바로 바다로 유실된다. 다목적댐 등 저류시설이 중요한 이유다. →시민단체 등 환경론자들은 “정부의 물 부족 전망이 사실관계를 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동안의 가뭄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데이터가 정부의 물 부족 전망이 호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난해 강원 태백지역의 물부족 사태와 같은 극심한 가뭄피해가 과거 13~14년 주기에서 최근 7년으로 단축됐다.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물 부족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부터 권역별 급수체계를 조정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종합적인 물관리 대책으로 시급한 것이다. →4대강 사업 중 보 건설의 근거를 제시한다면. -2006년 수립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선 낙동강에서 2016년 기준 1억 4000만t의 물 부족이 발생한다고 전망한다. 전체적으로 10억t의 물부족이 예상되는데 물그릇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보설치로 8억t, 댐 건설과 기존 댐 연결로 2억 5000만t 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건설된 보는 댐과 함께 정보기술(IT)을 적용한 통합시스템에 따라 실시간 수위와 유량이 측정·관리된다. →화학업체 다우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드루 리버리스는 물을 ‘21세기의 석유’로 묘사했다. 수자원공사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은. -수력발전소 30곳 등에서 1018㎿ 규모의 청정에너지를 생산, 공급 중이다. 2008년 안동, 장흥 및 성남 소수력 발전을 통해 얻은 탄소배출권을 국내 최초로 네덜란드 ABN암로 은행과 거래해 1억 800 0만원가량의 수익도 거뒀다. 지난해에도 소수력 발전시설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전문업체에 판매, 2억원의 수익을 냈다. →해외 수자원사업에서도 성과를 냈는데. -40여년간 축적한 물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1994년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수자원, 수력, 상·하수도 등 물 산업 전반에 걸쳐 18개국 27개 사업을 마무리했다. 현재 7개국 10개 사업을 시행 중이다. 최근에는 투자사업 진출로 다변화하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방위산업부터 중화학공업까지 경제계획을 입안, 집행했던 오원철(83) 전 청와대 경제2수석은 1977년 발행된 미국 뉴스위크지를 보 관하고 있다. ‘한국인이 몰려온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의 수출·중화학공업 위주의 성장을 다뤘다. 이 잡지는 지난해 9월에는 ‘한국은 진정한 기술강국이 됐다’는 특집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기술을 해외에 전수해 먹고살 수 있는 나라. 오 전 수석이 팔십평생 꿈꾸던 나라가 실현된 셈이다. 10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오 전 수석은 그래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정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대신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대담 박선화 경제에디터·정리 홍희경기자 →지난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그러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이라는 열매를 맺었는데. -원전 수출은 사실상 40년 전에 기획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동족을 죽이는 병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원자폭탄꽃 대신 산업성장의 기반이 되는 값싼 전기 생산과 원전 수출이라는 ‘무궁화 꽃’을 마침내 피워냈다. 당시 우리는 일본처럼 필요할 때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10·26 이전에 박 전 대통령에게 우라늄농축용 분말인 ‘옐로 케이크’를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가 들어선 뒤 국내 원자력 기술개발은 사실상 중단됐다. →수출 위주 중화학공업 정책은 이제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 교과서처럼 되었다. 핵심분야 가운데 가장 애착이 남는 부분은. -철강·석유화학·기계·조선 등 6대 분야 가운데 하나라도 빠졌다면 중화학공업 성장 역사는 없었다. 여기에 기초과학을 연구할 대덕연구단지까지 모두 7개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오로지 국토의 균형발전과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제대로 입지를 잡아 성공적으로 육성했다고 자부한다. 산업정책을 펴는 데 있어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따르면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과학벨트 유치 경쟁이 한창인데. -지금 정부에는 전문 기술관료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학벨트 논쟁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은 소외됐다. 만일 1960~70년대 이렇게 했다면,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업을 육성하려면 수심이 깊은 바다라는 입지를 찾아야지, 정치적인 표심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과학벨트 선정은 과학기술자 집단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설령 그들이 싸우더라도 그 속에서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결정은 정치인인 대통령의 몫이 아닌가. -지휘관과 참모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육성자금으로 100억달러를 빌려야 한다고 하자 재무부 쪽이 난색을 표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내가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설득해 정책을 강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도 따라줬는데, 후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에 돈을 핑계로 주저하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지휘관은 전체를 파악해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 물론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시 박 대통령 집무실에는 대형 한반도 지도에 북한군과 우리군의 전력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불러 “적기가 뜬 뒤에는 이미 늦으니, 단추 하나로 적을 제압할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일 개발을 할 수 있었다. 만일 이 기술이 계속 유지발전됐다면,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지휘관이 방향을 제시하면, 참모인 기술관료는 계획서를 만들고 집행을 하며 지휘관의 머리와 손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힘이 실린다. 지휘관도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야한다. →테크노크라트가 역량을 발휘할 방법은. -정부에 테크노크라트가 들어가 국가계획을 세울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과학기술부도 없고, 청와대에도 과학기술자를 대변할 인물이 없는 같다. 새롭게 생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는 정책을 집행할 권한이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동타격대처럼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 같은 조직이 필요한데, 오히려 그런 팀이 너무 많고 컨트롤타워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흔히 한국의 성장방식을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일본 학자가 개발한 용어를 국내 정치권에서 사용했다. 그런데 ‘압축’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리는 산업혁명을 이뤄냈다. 영국이 수공업인 방직공장에서 시작해 증기 동력을 통해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듯이, 우리도 수출을 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된 뒤부터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다. 1963년까지만 해도 생선·김·돼지털·인모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수출했다. 그러다가 교육도 못 받고 형편도 어려워 3~4명씩 좁은 방에 합숙하며 살던 여공들이 수출산업의 주역이 됐다. 다음에는 남성 기능사가 나섰다. 월남전 이후 미군 하청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인력이 생기며, 중동 건설현장이라는 시장에 투입됐다. 당시 영어로 된 도면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을 키우려고 공고 3학년생 2000명을 교육시켰다. 이들을 소년병이라고 불렀다. 용접은 어른들이 해도, 도면을 읽고 지시하는 일은 소년병이 했다. 이들이 점차 성장해 경제발전의 역군이 됐다. →최근 공학한림원에서 받은 대상 상금을 기탁했는데. -여공들과 남성 기능사·기술자는 그야말로 한국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다. 관료들도 열심히 했지만, 현장의 공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상금을 전부 기탁했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한국 사람은 끈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러일전쟁 때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연구에 매진했다는 과학자의 일화가 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집적회로(IC)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한국 연구진에게 맡겼더니, 안 되는 이유만 설명하고 연구비를 더 달라고 요구했단다. 타이완 연구자에게 다시 일을 맡기자 근성 있게 매진하더니 6개월 만에 만들어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 세대는 끈기와 창의력이 뛰어난 것 같다. 최근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과 비보이를 보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성공하려는 끈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기능사·과학기술자들은 국익을 위한 사명감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saloo@seoul.co.kr ■ 그는…박 前대통령이 국보라 부른 사나이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저녁 서울 프라자호텔.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공단 순시를 마친 뒤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을 가리키며 “임자는 국보야, 국보.”라고 불렀다. 일순 오 수석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김정렴 비서실장 등 주변에는 침묵이 흘렀다. 오 수석은 우리나라 중화학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전문 기술관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공군 소령을 거쳐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와 국산자동차의 공장장을 지낸다. 이듬해인 1961년 5·16이 일어나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을 맡은 이래 상공부 화학과장, 공업1국장을 맡으며 1차 5개년 개발계획과 수출제일주의 정책을 실행했다. 1970년에 차관보로 승진해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고, 1971~79년 10·26이 날 때까지 청와대 경제2수석으로 일했다. 이때 조선, 원자력, 대덕단지 등 7개 중화학공업 정책을 주도하고 방위산업 육성을 총괄했다. 율곡사업 진행 시 깐깐한 결재 때문에 12·12 이후 신군부에 미운털이 박혀 13년간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요즘도 백선엽 장군 등 지인들과 어울리며 과학기술 강국을 강조한다고. 팔순을 비켜가듯 젊은이를 혼내며 박장대소하는 게 건강 유지의 비결이란다.
  • 한·일외교, 이토 히로부미 후손에…

    한·일외교, 이토 히로부미 후손에…

    재일 한국인 장옥분(72)씨로부터 정치 헌금 20만엔을 받아 물러난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상의 후임에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무 부대신이 9일 취임했다. 마쓰모토 신임 외무상은 4선의 중의원 의원으로 이토 히로부미 전 조선통감의 외고손자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을사조약을 강요하고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되지만,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행위에 대한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쓰모토 외무상의 등장은 한·일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외교에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실제로 한·일 관계는 민주당 출범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지만 여전히 난제가 쌓여 있다. 이달 말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할 예정이어서 양국 관계에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조선왕실의궤 등 일본이 강탈한 한국문화재 반환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될 조짐이 있다. 양국이 외교적 갈등을 겪게 되면 마쓰모토 외무상은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한국 내에서 더욱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마쓰모토 외무상은 9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일 양자 간 대화도 거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마에하라 전 외상의 외교 노선을 이어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북한 핵, 미사일, 납치 문제 해결과 관련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성의 있게 대응한다면, 마찬가지로 (성의 있게) 대응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마쓰모토 외무상은 외고조 할아버지와 안중근 의사 간에 역사적인 화해를 이끌 기회를 맞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안 의사의 묘를 찾기 위해 일본 정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각종 공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국회도서관 관할은 당시 중의원 운영위원장이던 마쓰모토 외무상이 책임을 맡고 있었다. 나가시마 아키히사 방위성 정무관은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안 의사 유골과 매장 장소 등 관련 정보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마쓰모토 의원이 관련 자료를 찾으면 전부 공개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쓰모토 외무상은 당시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가시마 정무관의 발언은 과장됐으며 한국과 일본 정부의 공식 요청에 의해 조사를 벌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들은 일본 정계와 외교가를 주름잡는 명문의 맥을 잇고 있다. 이토의 사위 니시 겐지로와 손녀의 남편인 후지이 게이노스케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증손자이자 마쓰모토 외상의 아버지인 마쓰모토 주로는 방위청 장관과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마쓰모토 외상의 이종사촌형인 후지사키 이치로는 현재 주미 일본대사다. 마쓰모토 외무상은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뒤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타이타닉 침몰한 날 태어난 어르신 찾습니다”

    “타이타닉 침몰한 날 태어난 어르신 찾습니다”

    ”타이타닉 침몰한 날 태어난 어르신을 찾습니다.” 타이타닉 침몰사고 100년을 맞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100세 노인들이 특별 초청된다. 타이타닉 재단이 사고 100년을 앞두고 기념일에 맞춰 정확히 100세가 되는 노인들을 전 세계에서 수소문하고 있다고 외신이 2일 보도했다. 나이가 확인된 사람들은 타이타닉 승객과 승무원 직계후손 등과 함께 행사에 초청된다. 대서양 횡단을 목적으로 만든 선박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던 타이타닉이 사고로 침몰한 건 1912년 4월 15일. 재단이 현재까지 생일을 확인한 1912년 4월 15일생 100세 예정자(?)는 남자 4명과 여자 8명 등 모두 12명이다. 재단 관계자는 “생일이 확인된 사람들에게 문의한 결과 대다수가 (초청해 준다면) 기념행사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100주년 기념행사는 기념 만찬 등이 열리게 된다. 특히 만찬은 침몰사고 직전인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 1등실 승객들에게 제공됐던 만찬이 그대로 재연될 예정이라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배가 제공한 동일한 음식이 동일하게 제작된 식기에 담겨 서빙되는 특별행사다. 만찬장 생음악도 동일한 곡이 연주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우리 이름은 마헬리 羅·스밀라 金”

    “우리 이름은 마헬리 羅·스밀라 金”

    움푹 파인 눈과 두꺼운 쌍꺼풀. 영락없는 마야인의 모습이었다. 그 사이로 흑단 같은 머릿결과 동그란 콧볼이 보였다.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양이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아 온 이들은 멕시코 한인 이민자 4세대인 마헬리 나(22)씨와 스밀라 김(20)씨. 106년 전 막막한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간 이민자의 후손 중 처음으로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애니깽의 후예’들이다. ●“한국 동경” 한국대학에 입학 멕시코를 떠나 조상의 나라 한국을 찾아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두사람을 28일 만났다. 나씨는 인천대 무역학과 입학이 결정돼 2일 입학식에 참석하고 꿈에 그리던 한국 대학생이 된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입학, 전공 공부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까지 거쳐 올라가야 비로소 만나는 한국인의 혈통이기에 겉모습에서 단번에 한국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했다. 그러나 떠듬떠듬 한국말을 이어가는 그녀들의 말투, 할머니의 아버지를 그리며 한국을 상상했다는 소회 속에서 그들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동족 의식과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났다. ●10년 전까지 ‘꼬레아노’ 차별 멕시코에서의 나씨와 김씨의 형편은 조금 달랐다. 한인 후손 3세인 김씨의 아버지는 2남 1녀 자녀들에게 항상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메리다에서 사탕공장을 운영하고 장사를 했던 김씨의 할머니는 1905년 당시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로 넘어온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종종 하셨다. 김씨의 증조부는 멕시코에 도착해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배를 타고 온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를 자주 접했다는 김씨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증조부와 외증조부가 한국분이셨고 집에서도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인터넷 통해 한국 문화 접해 인터넷을 통해 본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동경하면서 김씨는 스스로 “한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전해 들었던 한국을 직접 접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씨에게 한국은 생소한 나라다. 벽돌을 나르는 막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나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조상인 한국인에 대해 좀체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인 후예들을 바라보는 멕시코 현지인들의 차별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나씨의 해석이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으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멕시코인들은 한인 후예들을 ‘꼬레아노’라고 부르며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했다. 한국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800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레판 마을에 모여 살면서 차별을 피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일구려 한 결과였다. 레판 마을에서 태어난 나씨는 한인 후손들과 어울리며 살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런 나씨에게 한국을 알게 해 준 것이 1999년 레판 마을에 세워진 무지개학교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김무선(73)씨가 세운 무지개학교는 멕시코에 남겨진 애니깽의 후예에게 한글과 태권도, 아리랑 등의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다. 180여명의 한인 후예가 공부하고 있는 레판 마을 무지개학교에서 나씨는 가장 두각을 보인 학생이었다. 김무선 교장은 “마헬리 나는 전교생 중 학업 성적이 가장 뛰어났다.”면서 “이런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한 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봉사하는 것이 한인 후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해 유학을 주선했다.”고 말했다. 나씨와 김씨의 한국행이 결정된 뒤 남은 가장 큰 문제는 학비였다. 멕시코에서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어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씨와 김씨가 멕시코에서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지켜본 김 교장은 그들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애니깽의 후예 중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는 사례였기에 이번에 좌절하면 어렵사리 이어진 한인 후손과 한국의 인연이 또다시 기약 없이 끊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멕시코와 한국을 오가면서 발품을 판 결과 나씨는 기업은행으로부터, 김씨는 삼성꿈재단의 도움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두 학생의 한국행이 성사됐지만 김 교장의 근심은 끝나지 않았다. 나씨와 김씨의 한국 유학을 지켜본 뒤 한국으로 유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어서다. 그들의 꿈이 기특하지만 지원해 줄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나 도움 없이는 힘든 상황이다. 김 교장은 “한두명일 때는 일일이 장학재단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할 수 있었지만, 멕시코 무지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20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지원해 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각지에서 모여드는 한인 후예를 교육시키기 위해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제3의 무지개학교를 짓고 싶다는 계획도 당장은 버겁다. 김 교장은 “100년이 넘도록 잊혀 온 애니깽의 후예들이 한 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한국을 기억하고 돌아오려 하는 만큼 정부와 국민들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카탄 무지개학교 후원 계좌: 016-064779-01-011(기업은행 김무선)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돌아온 애니깽 후손들] 1905년 1033명 첫발… 후손들 ‘경계인 삶’

    [돌아온 애니깽 후손들] 1905년 1033명 첫발… 후손들 ‘경계인 삶’

    1905년 4월 4일, 한국인 이민자 1033명을 태운 영국 화물선 일포드호는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당시 영국·멕시코 이중 국적의 이민 브로커 마이어스는 일본 인력송출회사와 협의해 멕시코 유카탄 주 애니깽 농장주협회의 대리인 자격으로 서울·인천 등 전국에서 이민 노동자를 모집했다. 배에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가진 장정 702명과 임신부를 포함한 부녀자 135명, 아무것도 모른 채 배를 구경한다며 덥석 올라탄 아이들 196명이 함께했다. 계층도 다양했다. 200여명의 퇴역 군인과 농부·무당·거지에 양반까지 포함됐다. ‘서유견문’을 쓴 개화파 유길준의 삼촌 유진태도 이민 1세대 중 한명이었다. ‘높은 보수의 4년 계약 이민’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몰려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몇년만 고생하면 큰돈을 벌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배에 올랐다. ●농장 흩어져 노예 같은 생활 그러나 한달이 넘는 긴 항해 끝에 5월 15일 도착한 멕시코의 실상은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 딴판이었다. 유카탄 반도 프로그레소 항에 도착한 이들은 곧 주도인 메리다 외곽의 25개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노예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신산의 고통 속에 4년의 계약 기간이 끝났으나 일제에 강점된 조국은 그들이 그리던 곳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귀국을 포기한 한인들은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멕시코 전역에 흩어져 처절한 밑바닥 생활을 해야 했다. 1920년대 초에는 쿠바로 흘러들어 간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1세대들은 조국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승무학교와 한글학교를 세워 멕시코 땅에서 태어난 후손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 줬다. 그 즈음 미국에 설립된 독립단체 국민회의의 영향으로 국민회 유카탄 지부가 설립되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유카탄을 직접 찾아 1년 가까이 체류하며 흥사단을 조직해 1만여 달러나 되는 거액의 독립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이 이민 3세대까지 유지됐지만 4~5세대에 이르러서는 그마저 점차 희석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한국인인지 멕시코인인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한인 4~5세대들은 현지인들의 차별 속에서 지금도 레판 마을과 메리다 등 멕시코 전역에 흩어져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후손 대부분 사탕장사·막일 생계 1세대의 이민 이후 한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유길준의 육촌 손녀 노라 유씨가 지난 2006년 한인 후손 최초로 연방상원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극소수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탕 장사와 막일을 하거나 쥐꼬리만 한 연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의 삶 속에는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의 고통이 지워지지 않는 혈흔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친일재산 환수법 개정안 발의

    “편협한 법 해석으로 민족 정체성이 흔들려선 안 된다.”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진상규명법)과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 환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이같이 말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11월 일왕에게서 후작 작위와 함께 은사금(恩賜)을 받은 조선왕족 출신 친일파 이해승의 재산(시가 320억원 상당)에 대한 국가 귀속 결정을 취소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당시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결정을 통해 “이해승의 작위는 1910년 합병 직후 다른 왕족들처럼 왕족 지위로 받은 것이지 합방 공적이 아니어서 재산 환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힌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법원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의 재산을 환수 대상으로 삼은 법 조문의 해석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해승이 일제 관변기구의 간부직을 맡고 학도병 지원을 선동한 친일 반민족행위 등까지 고려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던 1심 판결과의 엇갈린 판단은 대법원 심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나라를 팔아먹고도 떳떳하게 기득권층으로 살 수 있다면 도대체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법 개정을 통해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라는 법 조문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조건을 삭제하고 이를 ‘일제로부터’로 대체키로 했다. ‘이해승’ 판결 때와 같이 해석에 대한 다툼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법 취지를 재확인하고 대법원이 전원 합의체 판결로 ‘나쁜’ 판례를 뜯어고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으로 친일재산 환수법의 입법 취지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대법원이 유사 소송에서 전원 합의체 판결을 내리도록 해 지난해 11월 판례을 변경시키겠다는 뜻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해당 법 조항과 관련된 소송이 현재 29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국가가 이해승의 후손을 상대로 제기한 228억원의 부당 이득 환수 소송도 포함돼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욕망의 불꽃(MBC 토요일 밤 9시 50분) 태진은 강금화에게 인기와 민재(유승호)를 결혼시키겠다고 말하고, 우연히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된 희정은 영대와 차순자에게 얘기한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영이 인기를 찾아가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묻자 인기는 태진과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민재의 결혼 소식을 듣고 한 자리에 모인 식구들 앞에서 태진은 경영권을 영대에게 맡기겠다고 하는데…. ●퀴즈 대한민국(KBS1 일요일 오전 10시) 지난주 후반전, 만점에 가까운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이경례씨. 세번의 도전은 없다. 이번에는 반드시 퀴즈 영웅에 오르겠다고 다짐하는 그녀다. 그리고 엄마의 응원을 위해 벌써 두 번이나 회사에 휴가를 냈다는 딸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반드시 해낸다. 퀴즈 영웅을 향한 그녀의 거침없는 질주를 함께한다.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승우에게서 머플러를 돌려받은 혜진은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에 그를 피하게 된다. 한편 영희는 남편 몰래 완성한 드라마 대본이 발각이 나 어쩔 줄 몰라 하고, 기창은 기어코 그 원고가 들어 있는 USB를 박살내 버린다. 그 충격으로 영희는 모든 것을 잃은 듯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다.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SBS 토요일 오후 5시 10분)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에서 염경환이 김구라에게 섭섭했던 일화를 공개한다. 동현군이 염경환 아저씨네 가족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일과 김구라 집안은 손님이 오는 걸 싫어한다는 내력을 고백하자 이경규는 ‘우리 집도 손님이 오는 걸 싫어했다며 웃음을 선사한다. ●영상앨범 산(KBS2 일요일 오전 7시 40분) 해발 1950m로 남한 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한라산. 손을 들어 은하수를 잡아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아 그 이름이 붙여졌다. 다양한 지형과 기기괴괴한 바위, 골짜기 등으로 아름다운 산세를 이루며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영상앨범 산’이 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 한라산의 비경을 찾아 떠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1990년 미국, 흔적도 없이 13점의 명화들이 사라졌다. 과연 누가 왜 열세 점의 명화를 훔쳐간 것일까. 또 오랜 세월 지속된 인디언과 백인들의 싸움. 그 속에서 인디언들의 영웅으로 활약하다 후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한 남자가 있다. 100년의 세월이 더 지나간 지금 다시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이야기도 들어본다. ●The 빅뱅쇼(SBS 일요일 밤 12시) 2년 3개월 만에 ‘빅뱅’이 가요계로 돌아온다. 이들은 4집 미니앨범의 수록곡을 들고 SBS ‘the 빅뱅쇼’를 통해 화려한 컴백무대를 가진다. 미국에서 펼쳐진 뮤직비디오 촬영 에피소드, 대성이 진한 애정연기를 펼치고 바로 잠든 이유 등 솔직하고 꾸밈 없는 모습들을 공개한다.
  • [열린세상] 분별의 마음과 복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분별의 마음과 복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생물체 중 가장 뛰어난 분별력을 갖고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진다. 분별이란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이분법적이나 다분법적 방법에 따라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 상대적인 대상들을 비교시켜 그 우선순위에 어떤 것을 놓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변별해 가는 일련의 사고(思考)를 말한다. 이 분별은 반드시 자기가 갖고 있는 마음에 의하여 최선의 결심을 하고 선택이라는 결과를 내놓게 된다. 마음의 선택이 밖으로 표출되면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심의 결정으로 남게 되면 훗날 어떤 사안이 제기될 때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살아 가면서 좋든 싫든 항상 분별의 마음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쌓여진 행로는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우리의 모습이요, 삶의 질곡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분별의 결과, 마음의 선택이 잘못되어 고통과 어려움이 반복되는 경우 마음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상실감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어 더욱 더 실패한 선택에 자기 애착을 갖게 되고 몰입하게 된다. 이것이 마음 상처의 부산물인 집착이요, 우리가 말하는 한(恨)이다. 분별과 마음 그리고 집착은 근본적으로 뿌리가 같은 곳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별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독교는 창세기를 통해 사람은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부터 눈이 밝아지면서 분별력이 생겼고 이때부터 불행이 시작됐다면서, 사람의 분별력이 후천적으로 생긴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 불교에서는 사람은 본래부터 부처이고 태어날 때부터 깨달음의 근본을 가지고 왔으나 육신의 욕심으로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의 분별력은 선천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필자는 최근 과학계에서 분별력을 갖고 있는 ‘쿼크’를 찾으려고 엄청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쿼크’는 우주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로 지금까지 밝혀진 원소를 구성하는 핵보다 더 작은 단위라고 한다. 만일 이와 같이 ‘쿼크’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사람은 처음부터 분별력을 가진 ‘쿼크’에 의하여 창조된 우주의 주관자라는 것이 사실로 다가오게 된다. 아마도 우리 모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어딜 가나 온통 복지 이야기다. 복지에 대하여 분별을 말하자면, 사람의 삶의 질을 높여 사람답게 살아 보자는 말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유상이냐, 무상이냐로 구분되지만 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자는 당연히 무상을 원한다. 무상은 전적으로 나라가 부담해야 하고 그 비용은 곧 우리들이 물어야 할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금이 늘어난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세금을 늘리지 않고 나라가 부담한다면 나라의 살림살이는 누적적으로 빚이 늘어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애덤 스미스의 조세 전가론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이 빚은 훗날 후손들에게 복지라는 잔치 빚으로 물려주게 된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신혼부부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도록 장려금도 주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비와 점심을 무료로 할 것인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안정적인 삶을 찾아 줄 것인지, 장년층들의 정년을 대폭 늘려줌으로써 미래의 황혼을 준비할 기회를 줄 것인지, 퇴직했으나 아직도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50~60대를 위하여 직업학교를 만들고 재교육시킨 다음 취업시켜 마지막 삶의 보람을 만들어 줄 것인지, 육신이 늙고 병들어 죽고 싶은데도 죽지 못하고 질긴 삶을 이어가는 버려진 사람들을 나라가 마지막까지 먹여주고 치료해 줄 것인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이다. 그러나 나라에 돈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선택해서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기가 아니요, 나라의 장래가 연계되어 있는 문제인 만큼 우리 모두의 분별이라는 마음의 결심, 즉 선택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고 한(恨)이 없는 희망찬 미래의 우리나라가 될 것이다.
  • [특파원 칼럼] 중국의 김정일 생일선물/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중국의 김정일 생일선물/박홍환 베이징특파원

    역시 중국과 북한은 ‘그날’을 거르지 않았다. 이집트의 독재자 무바라크가 시민의 힘에 굴복해 퇴진한 지 채 48시간도 지나지 않은 13일 중국은 부총리급인 멍젠주(孟建柱)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을 북한에 보내 3대 세습을 진행 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9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화면에 비친 생일선물은 영화 등이 담긴 DVD 4장과 만경봉을 닮은 수석, 서우타오(壽桃·장수를 비는 복숭아) 도자기 등 세 가지였지만 김 위원장은 헤아릴 수 없는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생일 하루 뒤인 17일 정월 대보름 밤 류훙차이(劉洪才) 중국대사 등 평양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위한 연회를 베풀어 아들인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군 최고지도자들과 함께 직접 관람했다. 정월 대보름은 중국에서도 위안샤오제(元宵節)로 가장 중요한 명절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2009년과 2010년 김 위원장의 생일을 한달여 남겨둔 시점에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보내 현안 논의와 함께 생일을 미리 축하해 왔다. 이번에는 생일 직전이었다는 점, 직급도 한 단계 상향됐다는 점 등이 다르다. 그만큼 중·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멍 부장은 김 위원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화려한 수사(修辭)까지 동원했다. 14일 김 위원장 부자와 만난 그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고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돼 조선 혁명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된 데 대해 열렬히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습 문제가 완성됐다는 점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김정은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멍 부장이 마흔살 가까이 어린 김정은과 파안대소하는 사진은 이제 중국이 김정은과의 ‘정상외교’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해 더할 수 없는 밀월을 구가했다.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양국 간 교역액은 30% 넘게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북한의 최대 후원자 역할을 맡아 두둔하기에 바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시진핑 부주석 등 중국의 최고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선배 혁명가들이 만들어 놓은 중·북 전통 우호관계를 세대를 이어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 부주석은 특히 “위대한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중국 명칭)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며 6·25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를 뒤집기까지 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북·중의 이런 밀월관계를 감안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8살에 불과한 김정은이 아버지와 나이가 같은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악수하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해석하기 힘든 북·중관계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다. 중국이 김 위원장에게 희귀한 생일선물을 보내고, 권력 세습의 완성을 축하하는 한편 김정은을 대화 파트너로 삼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6·25에 참전해 10만명 넘는 전사자를 낸 입장에서 북한과의 혈맹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마오쩌둥의 통치행위에 대한 부정일뿐더러 전사자 후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도 싶다. 하지만 중국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국민의 선거로 뽑히지 않은 권력, 그것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을 공식적으로 축하한다는 건 중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은 비록 아전인수 격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기관지를 통해 ‘민주화’가 세계적·시대적 조류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명실상부하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북한의 세습정권이 무너졌을 때 과연 오늘 김 위원장에게 건넨 ‘생일선물’의 의미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stinger@seoul.co.kr
  • ‘노인 일자리 만들기’ 아이디어 만발

    ‘노인 일자리 만들기’ 아이디어 만발

    경기 안양시 호계동 ‘잔치하는 날’은 60세 이상 노인들이 운영하는 국수전문점이다. 안양시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2500만원을 지원, 2008년 11월 문을 열었다. 33㎡(약 10평)의 작은 매장에서 노인들이 기계로 국수를 뽑고, 매일 신선한 재료와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손수 조리한다. 주방은 2명, 홀서빙은 1명이 담당한다. 노인 15명이 5개조를 짜서 교대로 근무한다. 월 500만원의 매출을 올려 노인들의 수입도 괜찮은 편이다. 안양시는 안양8동에 ‘2호점’을 열었으며 호계2동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커플데이’도 차렸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들이 노인이나 은퇴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발굴, 노인 취업의 높은 벽을 뛰어넘고 있다. 경기도는 ‘프로시니어’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만 50세 이상의 교사, 교수, 공무원, 기업체 근무 경력자를 활용해 다양한 일자리를 연결시켜 주는 사업이다. 경험과 전문 지식을 살리기 때문에 일에 큰 부담도 없다. 지난해 6월부터 2000여개 업체에서 5000여명의 일자리를 발굴했다. 경기도는 이와 함께 1955∼1963년생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은퇴설계 평생교육인 ‘행복한 인생2막 경기 55·63 새출발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5개 대학과 푸른여성연합에 위탁, 은퇴설계 프로그램과 직업전환 희망자를 위한 직업훈련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수원시는 소상공인진흥원, 중앙대와 함께 ‘1인 창조기업, 시니어 비즈플라자’를 추진한다. 퇴직한 노인층에게 교육과 컨설팅, 사무공간 무료 임대 등을 통해 재취업이나 창업을 지원한다. 화성시는 짚풀공예품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화성휴게소에 수공예점 ‘지프로’를 열어 장안7리 노인들이 만든 짚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연간 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서울 강서구는 단순한 일용직을 축소하는 대신 ‘실버 효도 발도우미’, ‘시니어 택배’, 길꽃 어린이도서관의 짚공예 강사 파견, 봉제산 노인복지센터의 생태학습 해설가 등 전문분야 일자리를 대폭 발굴했다. 올해 공공부문과 민간에서 일자리 1343개를 만들 계획이다. 충북 옥천군은 3월부터 ‘올드 파워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실시한다. 학생들의 등·하굣길 교통지도와 아동보호 및 순찰을 하는 ‘후손사랑’ 사업, 학교 배식 등을 하게 되는 ‘간식 도우미파견’ 사업, 도서관 사서 도우미, 세탁 서비스, 홀몸노인과 장애인 밑반찬 만들기 사업 등을 펼친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일본국 울릉도?’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글로벌 시대] ‘일본국 울릉도?’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도쿄에서 287㎞ 남으로 하치조지마(八丈島)라는 섬이 있다. 인구는 8300명 정도, 면적은 63㎢. 인문지리적으로 볼 때 울릉도(인구 1만명, 면적 73㎢)보다도 조금 작은 섬이다. 이 섬에는 하루 세편의 비행기가 도쿄의 하네다 공항으로부터 들어간다. 승객이 연 1만명 이하로 떨어지면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편수가 줄어들든지 항로가 폐쇄될 수 있음을 걱정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관심 있는 외부인들과 함께 항공노선을 지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독도에서 동남방으로 157㎞ 떨어진 시마네현의 오키노시마(隱崎島, 인구 2만명, 면적 240㎢)는 일종의 군도로 가장 큰 섬에는 항공노선이 복수로 펼쳐져 있다. 장사가 잘돼 항공기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낙도 주민들의 삶을 배려하는 정부와 기업에 주목하고 싶다. 울릉도의 도동항 선착장과 저동 횟집에서 들을 수 있는 농담으로,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주민투표를 해서 일본으로 가자.”는 소리가 들린다. 좀 심하긴 하지만, 뼈있는 농담이다. 농담 속에 진심이 있다는 점만큼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갖고 살아가는 낙도 사람들의 심정이다. “여기서 아프면 그 자리에서 죽어야 돼요.” 위급 환자를 위한 경찰헬기가 있다고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국민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느냐의 문제가 울릉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책결정의 자료를 제공하는 최고의 국책 연구원이 경제성을 기초로 울릉도의 비행장 건설을 반대했단다. 그 연구원에 봉직하는 사람들은 경제성으로만 살아가는가. 한심한 사람들이다. 울릉도라는 특수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의 입장은 ‘한국개발’에 해로운 것인가. 폭격 맞은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도서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는데, 서쪽에서 일어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방식이 동쪽에서 되풀이될 개연성을 감안하고 있는가. 울릉군은 엄연히 국경에 면해 있다. 관광 요충지로서 독도 관련성이 대두되어 1200m 활주로의 소형비행장 건설 가능성을 열어 놓았단다. 관광이 아니다. 국방이다. 이 사람들아. 현재까지 추진해 온 과정을 보니, 이윤 추구의 자본가와 실적 위주의 행정가가 합작하여 울릉도의 관문인 가두봉(可頭峰)을 절취할 계획을 세웠단다. 제발 가두봉만큼은 건드리지 마라. 약간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야말로 ‘가제 머리’처럼 생겼다. 동해의 중심인 울릉도가 생명 보고로 성장할 자연자본의 마지막 보루다. 일제가 러일전쟁 이후 대동아전쟁이 끝나는 반세기간에 동해에서 멸종시킨 ‘가제’(강치, 바다사자를 말함)가 울릉도의 토속지명으로 있고, 그 한글단어는 독도에도 각인되어 있다. ‘큰가제 바우’와 ‘작은가제 바우’ 두개의 여(礖)가 서도(西島) 곁으로 나란히 붙어 있다. 이 단어는 여수에서 흑산도에 이르는 전라도 해안 전역에서 통용되는 말이고, 거문도를 중심으로 한 흥양(興陽)의 어부들이 300㎞가 넘는 뱃길인 울릉도와 독도에 와서 생업을 했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역사적 과정이 토속지명으로 남아 있고, 그 지명이 국토임의 증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금수해산’(錦繡海山)이 후손을 위한 대업이라면, 언젠가 가제를 복원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가두봉 아래의 파식대와 암음이 그들의 서식지였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성에 기초한 비행장 만들기로 가두봉이 사라지면, 가제가 돌아오고 싶어도 번식할 서식지가 없게 된다. 변강(邊疆)에 대해 특별 배려를 하는 중국과 낙도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일본에 비해서 대한민국은 변방과 낙도에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가. 러시아를 포함하여 동아시아가 모두 변방과 낙도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변방과 낙도가 국경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정쟁과 표수에만 몰입하는 정치꾼들의 꼬락서니가 안쓰럽다. 국민의 삶을 생각하는 진정한 배려가 행동으로 실천될 때, ‘일본국 울릉도’라는 농담은 소멸될 수 있다.
  • [사설] 숭례문 복원만은 광화문·국새 再版 안돼야

    불에 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국보1호 숭례문 복원공사의 현장이 참화 3년 만인 엊그제 공개됐다. 장인들이 석재·목재며 부재들을 전통 방식대로 정성스레 다듬고 나르는 모습을 본 국민은 나름대로 위안을 받았을 듯싶다. 시뻘건 불기둥 속에 국보1호가 순식간에 숯더미로 변한 참화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내년 말 제 모습을 되찾을 숭례문 복원 작업은 40%의 공정을 마쳤다. 선대의 혼과 숨결을 담아 600년간 이어지다 어이없이 소실된 수도 서울의 대표 아이콘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한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문화재의 복원은 단순한 외양만의 되살림이 아닌 정신의 부활이다. 돌아보면 숭례문 소실 이후 정부·당국의 대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시민들의 반발에 아랑곳없이 서둘러 가림막을 치더니 굴착기로 현장을 파헤치고 심지어 불탄 부재들을 폐기물처럼 내다버렸다. 가리고 치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소중한 것들을 눈곱만큼도 여기지 않은 행태들이다. 조상의 혼이 담긴 문화재는 당대의 소유물에 국한하지 않는다. 잘 지키고 챙겨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중대한 자산이다. 국보1호를 지키지 못한 수치도 모자라 2차 훼손을 저지르고 방치한 죗값이 크다 할 것이다. 지난해 터진 광화문 현판 균열과 엉터리 국새 파문은 국민의 자존심을 구기고 멍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팽개친 졸속 복원과 무리한 제작이 남긴 앙금과 후유증은 막대하고 진행 중이다. 그래서 국민은 숭례문의 온전한 복원에 더 큰 정성과 기대를 쏟는 것이다. 남은 60%의 공정은 훨씬 더 세심한 공을 들여야 하는 것들이다. 복원 3개월 만에 금이 간 광화문 현판의 부끄러운 답습은 돌이킬 수 없는 원망과 망신을 살 것이다. 무리한 되살리기가 아니라 한 부분 한 부분을 완벽하게 되살린다는 마음부터 다시 다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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