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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명의 생존자와 후손, 70년 후 ‘아우슈비츠’를 걷다

    300명의 생존자와 후손, 70년 후 ‘아우슈비츠’를 걷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모여 을씨년스럽게 흐르는 조명 아래, 눈 덮힌 길을 마치 순례하듯 걸었다. 정확히 70년 전인 지난 1945년 1월 27일 '이곳'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 300여 명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와 그들의 후손들이다. 무려 70년의 세월이 흘러 생존자 대다수가 90세가 넘는 고령이 됐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 홀로코스트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듯 생생하다. 생존자 로만 켄트(85)는 "우리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면서 "세계인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잔악한 행위와 자유를 위한 전쟁을 기억해달라" 며 눈물을 흘렸다.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4명의 오빠와 동생을 잃은 로즈 쉰들러(85) 역시 눈물을 흘리며 "과거 아우슈비츠에 오자마자 가족들과 헤어져 이별의 시간도 갖지 못했다" 면서 "가족들의 무덤조차 없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유일한 추모 방법" 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 후손들의 뼈저린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이날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독일인의 도덕적 의무" 라고 강조했으며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나치의 만행을 잊지않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이라며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편 기념행사가 열린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 학살수용소로 악명을 떨쳤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학살됐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순천에 故손양원 목사 두 아들 순교 표지판 제막

    순천에 故손양원 목사 두 아들 순교 표지판 제막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고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동신 형제의 순교를 기리기 위한 표지판이 전남 순천시 황금로 패션상가 거리에 세워졌다. 동인(당시 24세)·동신(19세) 형제가 총살당한 자리다. 30일 순천시 등에 따르면 이들 형제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기독학생 활동을 하다 같은 또래의 좌익 학생들에게 체포돼 고문을 받던 중 친미주의자로 오해받아 그해 10월 21일 총살당했다. 폭 60㎝, 높이 120㎝의 표지판에는 두 형제가 독립운동 후손으로 좌익에 반대했던 국가관, 총살당한 배경 등 당시의 좌우익 대립으로 인한 피해 등이 기록돼 있다. 그동안 손 목사의 순교 신앙은 기독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와 오페라,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소개됐지만 두 아들의 순교에 대해 조명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헌신적 사랑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고 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세상에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950년 9월 여수시 둔덕동에서 자신이 공산당원에 의해 총살당하고 순교했다. 순천시 기독교 선교역사박물관은 동인·동신 형제의 순교와 여순사건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지역의 역사성을 정립하기 위해 순교지 표지판을 제막하게 됐다. 순천 중앙교회 임화식 목사는 “이번 제막식은 67년 동안 묻혀 있던 청년 순교자들의 귀한 믿음의 유산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손 목사님의 원수를 용서한 사랑과 동인·동신의 희생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일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300명의 ‘아우슈비츠 생존자’ 70년 후 ‘지옥’을 걷다

    300명의 ‘아우슈비츠 생존자’ 70년 후 ‘지옥’을 걷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모여 을씨년스럽게 흐르는 조명 아래, 눈 덮힌 길을 마치 순례하듯 걸었다. 정확히 70년 전인 지난 1945년 1월 27일 '이곳'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 300여 명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와 그들의 후손들이다. 무려 70년의 세월이 흘러 생존자 대다수가 90세가 넘는 고령이 됐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 홀로코스트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듯 생생하다. 생존자 로만 켄트(85)는 "우리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면서 "세계인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잔악한 행위와 자유를 위한 전쟁을 기억해달라" 며 눈물을 흘렸다.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4명의 오빠와 동생을 잃은 로즈 쉰들러(85) 역시 눈물을 흘리며 "과거 아우슈비츠에 오자마자 가족들과 헤어져 이별의 시간도 갖지 못했다" 면서 "가족들의 무덤조차 없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유일한 추모 방법" 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 후손들의 뼈저린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이날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독일인의 도덕적 의무" 라고 강조했으며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나치의 만행을 잊지않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이라며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편 기념행사가 열린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 학살수용소로 악명을 떨쳤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학살됐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남해군수가 명나라 장군 참배한 까닭은

    남해군수가 명나라 장군 참배한 까닭은

    경남 남해군 박영일 군수가 410여년 전 노량해전에 조명연합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중국 장군의 고향 도시를 찾아 감사를 전하고 교류를 합의했다. 남해군은 26일 박 군수를 비롯한 교류추진단이 지난 20~24일 펑청시를 방문해 임진왜란 당시 조선원병 수군 부총병으로 참전했다가 노량해전에서 숨진 명나라 등자룡(鄧子龍) 장군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박 군수 등의 방문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역사적 인연을 매개로 등 장군의 고향 펑청시와 우호 교류를 하기 위한 것이다. 박 군수는 등 장군이 숨진 남해군 고현면 소재 남해 관음포에서 직접 채수한 성수를 장군의 무덤 앞에 올렸다. 등 장군의 후손들과 만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려고 400여년 전 등자룡 장군이 원정 온 그 길을 거슬러 남해군민의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인사말을 했다. 박 군수는 “등 장군이 목숨을 바쳐 지킨 신의를 교훈 삼아 두 지역이 화합하고 교류해 번영을 이루자”고 말했다. 등 장군 후손들은 “선조께서 돌아가신 지 416년 만에 조상님의 은덕을 잊지 않고 찾아준 박 군수에게 감사드린다. 남해군에서 가져온 성수는 등씨 가문의 가보로 영원히 보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군수는 특히 “관음포만 일대에 조성 중인 이 충무공 순국공원 조성사업 현장에 등 장군의 활약을 소개하는 기념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남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4) 재일동포 사회의 변화

    [격동의 한·일 70년] (4) 재일동포 사회의 변화

    자이니치 코리안(재일동포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 일제강점기에 건너간 자이니치 1세대 이후 지난 70년간 재일동포 사회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변화해 왔다. 최근 국적을 일본으로 바꾸는 자이니치 3~4세가 늘어나며 구심력이 약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조선학교나 한국학교와는 다른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해 재일동포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겠다는 야심을 가진 오사카 이바라키시의 ‘코리아국제학원’이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그곳을 찾아 재일동포 사회의 생생한 변화상을 취재했다. 시끌벅적한 오사카 시내에서 차로 30분 남짓 달렸을까, 어느새 풍경은 한적한 논밭과 주택가로 바뀌었다. 전형적인 일본의 교외 마을 안에 한국어로 문패를 단 아담한 학교가 보인다. 2008년 4월 문을 연 코리아국제학원(중·고교)이다. “‘총련계 학교’와 ‘민단계 학교’가 모두 줄어드는 지금 새 세대의 민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이나 남북의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립 멤버 중 한 명인 홍경의 코리아국제학원 전무이사가 설명하는 학교의 시발점이다. ‘민족 정신에 바탕을 둔 국제인 양성’을 위해 뜻 있는 재일동포들이 2005년 3월부터 힘을 모았다. 일본 최초의 한국 국적 변호사로 재일동포 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 온 고(故) 김경득 변호사의 제안으로 문홍선(일본 여자축구 고베 아이낙 구단주) 아스코홀딩스 회장, 정갑수 원코리아 페스티벌 대표 등 7명이 모여 3년간 준비했다. 이들이 사재를 털고 생업을 제쳐두며 학교 건립에 매달린 이유는 그만큼 재일동포에게 교육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족교육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동포 사회를 결속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운영하는 조선학교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운영하는 한국학교로 나뉘어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해 온 기존의 구도에 염증을 느끼는 동포들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일본 학교에 다니고 일본식 이름을 쓰는 젊은 세대가 생겨났다. 새로운 시대에 맞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자이니치 1세는 차별과 빈곤 속에서도 민족 단체를 세우는 등 역사를 만들어 왔고, 2세는 그것을 지켜 왔다. 나 같은 3세는 위 세대의 사회적 유산을 갖고 자라온 세대다. 그것을 4~5세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을 갖고 있다”고 홍 이사는 말한다. 재일동포라고 해도 올드커머(일제강점기에 옮겨온 1세대와 그 후손)와 뉴커머(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정착한 사람), 한국 국적과 조선적 보유자 등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재일동포를 아우르는 한편 기존의 민족교육을 뛰어넘기 위해 코리아국제학원이 선택한 것은 일본과 한국, 북한의 국경과 내셔널리즘에 구애받지 않는 ‘월경인’(越境人) 육성이다. 이런 신념 때문에 이곳의 교육은 조금 독특하다. 일반적인 국제학교의 교육 과정에 더해 한국어와 일본어, 한국사를 가르치는데, 한국어는 ‘국어’나 ‘조선어’가 아닌 ‘코리아어’로 부른다. 남북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교과 외수업으로 자이니치사(史), 다문화공생론 등도 가르친다. 일본군 위안부, 독도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식 수업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한다. 올봄 졸업 예정인 자이니치 3세 변광렬(19)군은 “‘현대 사회’라는 과목을 배울 때 독도 문제에 대해 선생님들이 각각 한국과 일본 입장에서 발표를 하셨다. 그걸 전교생이 보고 토론을 했다. 팩트 위주가 아니라 인식의 폭을 넓혀 주는 수업을 받는 것이 우리 학교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수준 높은 교육 방식이 입소문이 나면서 개교 첫해 중·고교 합쳐 27명이던 학생 수는 88명으로 늘어났다. 졸업생들은 서울대, 와세다대, 런던예술대 등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외국의 유수 대학에 속속 진학하고 있다. 문제는 재정상의 어려움이다. 개교 7년째인 현재도 연간 6500만엔(약 6억원)의 적자를 학교 이사회와 후원회에서 충당하고 있다. 고민 끝에 한국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으려고 2011년 11월 한국 교육부에 재외 한국학교 승인을 신청했지만 4년째 인가가 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아국제학원은 국제적 인재를 기르겠다는 원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김용만 교장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은 학교로 만들면 재정난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 바칼로레아’(세계 유력 대학의 공통입학자격시험) 수업 가능 인가를 신청해 후보 학교로 선정되는 등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교 10주년인 2018년까지 학생 수를 두 배 수준인 160명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바라키(오사카) 글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와우! 과학] ‘공룡 아빠’도 육아에 동참했을까?

    [와우! 과학] ‘공룡 아빠’도 육아에 동참했을까?

    요즘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내용의 방송 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이제는 아빠의 육아 역시 엄마의 육아만큼이나 중요해진 시대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아빠는 육아에 무책임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새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양육하는 전략을 지닌 동물 가운데서, 암컷 혼자서만 육아를 감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반대의 경우도 많다. 암컷 혼자서 새끼를 키우기 벅차다면 아빠가 양육에 뛰어드는 것이 자손을 퍼트리는 데도 유리하다. 이런 양육 전략은 특히 교대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조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류와 연관성이 깊다고 생각하는 공룡은 어떠했을까? 과거 과학자들은 공룡이 새끼를 키운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최초의 오비랍토르(Oviraptor, 알 도둑이란 뜻) 화석이 발견되었을 때, 고생물학자들은 '알 도둑'이라는 꽤 수치스런 명칭을 부여했다. 왜냐하면, 이 공룡이 다른 공룡의 알로 생각되는 화석 옆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오비랍토르가 사실은 알 도둑이 아니라 자신의 새끼를 키운 공룡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공룡은 그냥 자신의 알과 함께 죽었을 뿐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순식간에 알 도둑은 자상한 모성애의 주인공이 되었다. 공룡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현생 조류와 닮았는데, 일부 공룡이 깃털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현생 조류들처럼 새끼를 품었다는 분명한 증거들이 존재한다. 오비랍토르가 명칭과는 달리 자상한 부모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과학자들은 또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암컷 혼자서 알을 품었을까, 아니면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었을까? 일부 오비랍토르는 알을 품은 자세로 화석이 되었다. 문제는 알 위에 앉아있는 화석만으로 아빠인지 엄마인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공룡의 암수를 구별하는 일은 사실 현재로써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오비랍토르 과에 속하는 일부 공룡이 암수 교대로 알을 품고 돌봤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200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오비랍토르를 비롯한 일부 수각류 공룡들이 암수 교대로 알을 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주장했다. 공룡 아빠가 육아에도 참여했다는 주장인데,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알의 크기였다. 일부 종의 경우 발견된 알의 크기에 비해 어미 공룡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이다. 분명 일부 공룡들은 출산 후 기진맥진한 암컷 혼자 품기는 분명 어려웠을 만큼 큰 알들을 많이 낳았다. 알이 크고 많을수록 오랫동안 품어줘야 하는데 엄마 혼자 다하려면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빠가 육아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2013년에는 링컨 대학의 찰스 디밍(Charles Deeming) 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현생 조류를 분석, 반드시 알이 많거나 크다고 해서 수컷이 육아에 참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알의 크기와 수만으로 공룡 아빠가 육아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타임머신이라도 개발되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상 확실히 알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공룡에게도 육아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세상에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는 아빠도 육아에 참여했을 것 같은데, 아직 확증은 없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간에 고생물학자들이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S그룹] 정·재·관·학계 등 사돈지간… 3代 걸친 ‘가문 대 가문’ 혼사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S그룹] 정·재·관·학계 등 사돈지간… 3代 걸친 ‘가문 대 가문’ 혼사

    LS그룹의 혼맥은 그야말로 정계, 재계, 관계, 학계 등 얽히지 않은 곳이 없는 화려한 재벌가 ‘거미줄’ 혼맥의 전형을 보여 준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재계에서 권력과 명망 있는 인사의 집안과 사돈을 맺고 사업적 필요에 따라 동고동락하는 가문 대 가문의 혼사는 할아버지 때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고 구인회 범LG가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구태회(92) LS전선 명예회장은 부인 고 최무 여사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인 근희(72)씨는 이계순 전 농림부 장관의 아들 이준범(74)씨와 결혼해 정계와 첫 혼맥을 맺었다. 이준범 회장은 합성수지업체 화인 회장으로 근희씨와의 사이에 미영(48), 지현(43), 재우(41) 등 3남매를 뒀다. 장남인 구자홍(69) LS미래원 회장은 가문에서 드물게 지순혜(70)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1남 1녀를 뒀는데 딸 구진희(38) 채원컨설팅 대표는 평범한 혼사를 한 반면 LS가 장손인 구본웅(36)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 대표는 유호민 전 대통령 경제수석의 딸 현영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구 대표는 2012년 미국에서 포메이션8을 창립해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위 25위권의 기업으로 성장시켜 재벌 3세로서 새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차녀 구혜정(67)씨는 이인정(70) 태인 회장과 결혼해 대현(41), 상현(38) 두 아들을 뒀다. 현재 부친과 함께 태인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상현씨는 재벌가 후손답지 않게 2003년 한양대 총학생회장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돼 화제가 됐었다. 구자엽(65) LS전선 회장은 2012년 세상을 떠난 부인 김태향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장녀 은희(39)씨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이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손주인 정일선(48) BNG스틸 사장과 결혼해 현대가와 사돈이 됐다. 장남 구본규(36) LS산전 상무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평범한 집안과 혼사를 치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3남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차녀 조미연(63) 경희학원 이사와 혼인해 학계로도 혼맥이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본혁(38), 윤희(33) 남매가 있다. 구본혁 LS-니꼬동제련 전무는 2003년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있으며 윤희씨는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의 외아들이자 후계자인 정대현 삼표 전무와 결혼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4남인 구자철(60) 예스코 회장은 홍정원 서미앤투스갤러리 상무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딸 원희(35)씨는 구 회장과 경기고 선후배인 박용만 두산 그룹 회장의 자제와 2005년 결혼했으나 5년 만에 이혼했다.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문흥린 금릉원예조합 이사장의 딸 문남(85) 여사와 혼인해 3남 1녀를 뒀다. 서울대를 졸업해 락희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나선 지 1년 만에 한 결혼이다. 장남 구자열(62) LS그룹 회장은 청와대 경호실 차장, 성업공사 사장을 지낸 육군 중장 고 이재전 장군의 딸 현주(58)씨와 연을 맺어 은아(34), 동휘(33), 은성(28)씨 3남매를 뒀다. 장녀 구은아씨는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의 장남인 이우성 이테크건설 전무와 혼인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사내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 화학기업인 OCI그룹 이수영 회장과 형제지간이다. 구자열 회장과 서울고, 고려대 동문인 차남 구자용(60) E1 회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의 딸인 이현주(56)씨와 결혼해 두 딸 희나(31), 희연(26)씨를 뒀다. 장녀 구희나씨는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33) BGF리테일 상무와 결혼했다. 지난해 11월 등기이사로 선임된 홍 상무는 서울대 경제학과,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부친 홍 회장 누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로 구 회장은 범삼성가와도 연이 닿는다. 2010년 11월 삼성가와 LS가의 혼사인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부부,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부부 등이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3남 구자균(58) LS산전 회장은 평범한 가정의 독고진(56)씨와 결혼해 두 딸을 뒀다. 장녀 구소연(30)씨는 지난해 한양대 원제무 교수의 아들인 국제변호사 원홍식(34)씨와 혼사를 치렀다. 차녀 구소희(29)씨는 영화배우 배용준씨와 혼담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줬다. 이미 예비장인인 구 회장에게 배씨가 인사까지 한 것으로 전해져 두 사람이 진짜 혼인을 하게 되면 LS그룹은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까지 혼맥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소희씨는 2012년 학자 집안의 아들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고 구평회 명예회장의 딸 구혜원(56) 푸른그룹 회장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고 주진규 전 푸른상호신용금고 회장과 결혼해 신홍(32), 은진(29), 은혜(27) 3남매를 뒀다. 장남 주신홍씨는 푸른저축은행 과장이다.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은 유한선 여사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구은정(5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인 김중민(58) 스텝뱅크 회장과 결혼해 정계와 연을 맺었다. 외아들 구자은(51) LS엠트론 부회장은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딸인 인영(47)씨와 결혼해 두 딸 원경(22), 민기(9)를 두고 있다. 장 회장은 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의 아들로 LS그룹은 철강계까지 사돈지간이 됐다. 막내딸 재희(4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인 동범(47)씨와 결혼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슈&이슈] 재개발 방식 둘러싸고 전주시-전북도 갈등

    [이슈&이슈] 재개발 방식 둘러싸고 전주시-전북도 갈등

    전북 전주종합경기장 재개발 방식을 둘러싸고 전북도와 전주시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전주시가 종합경기장에 컨벤션센터를 우선 건립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나선 이후 전북도와 전주시는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됐다. 전주시가 전북도와 사전 협의 없이 종합경기장 무상양여 조건을 무시하고 컨벤션센터를 우선 건립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송하진 전북지사는 종합경기장은 부지를 무상양여해 줄 당시 이행각서 내용대로 전면 개발해야 한다는 원칙을 주장한다. 반면 김승수 전주시장은 컨벤션센터를 우선 건립하고 순차적으로 리모델링을 하겠다고 맞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송 지사가 민선 5기 전주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종합경기장에 대규모 쇼핑몰과 호텔을 건립하는 밑그림을 그렸으나 민선 6기 들어 김 시장이 송 지사의 계획을 백지화하는 수순을 밟아 양 기관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전주종합경기장은 애초 전북도 소유였다. 2005년 민선 4기 당시 종합경기장 부지를 개발하는 대신 체육시설을 시 외곽으로 이전하는 조건으로 전주시에 10년간 무상양여됐다. 8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종합경기장 재개발사업은 2013년 가까스로 개발 방향을 잡는 듯했다. 당시 전주시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야구장과 육상경기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백화점, 호텔, 쇼핑센터, 컨벤션센터 등을 건립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국제 행사를 유치하고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컨벤션센터와 호텔 건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정 상태가 열악한 전주시는 호텔과 컨벤션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여러 곳과 접촉한 끝에 어렵사리 롯데쇼핑을 민간투자자로 끌어들였다. 롯데쇼핑에 종합경기장 전체 부지 12만㎡의 절반을 주는 대신 시 외곽에 야구장과 육상경기장을 건립해 기부받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1300억원을 들여 전주시 장동 5만 667㎡에 1만 2000석 규모의 야구장과 1만 463석 규모의 육상경기장을 지어 전주시에 기부채납하고 그 대가로 받은 종합경기장터에 대규모 상업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종합경기장터 6만 3786㎡에는 지하 3층~지상 8층, 연면적 23만 237㎡의 복합쇼핑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백화점은 12만 5280㎡, 쇼핑몰 7만 4308㎡, 전문관 1만 3427㎡, 영화관 1만 7223㎡ 규모다. 이 같은 개발 방식에 대해 중소상인과 시민단체들은 종합경기장 부지에 대규모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지역 상권이 초토화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는 등 골목상권 지키기에 앞장섰던 시의회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유보 상태로 머물러 있던 종합경기장 재개발 계획은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핫이슈’로 등장한 이후 새해 벽두부터 전북도와 전주시 간의 공방전으로 ‘2라운드’에 돌입했다. 2005년 전주시와 체결한 무상양여 계약 당시의 조건을 전제로 전면 개발을 주장하는 전북도와 단계적 리모델링을 추진하려는 전주시의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전북도는 종합경기장 개발 방식에 대해 양해각서 조건의 이행을 촉구했다. 송 지사는 “종합경기장 재개발은 도정의 매우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로 법적 절차에 맞게 진행돼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지성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도 “지금 시점에서 각서 조건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경기장을 재개발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종합경기장 내 육상경기장을 월드컵보조경기장으로 바꿔 새로 짓고 그 인근에 야구장을 이전하기로 한 애초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주시는 여전히 단계적 개발 방안 이외의 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비와 시비가 투입되는 컨벤션센터와 민간업체가 시행할 호텔은 함께 건립하겠지만 재래시장 및 소상공업계에 타격을 주는 쇼핑몰사업은 제외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는 2015∼2018년 공공예산(정부와 시가 절반씩 부담) 590억원을 들여 종합경기장 5만㎡에 전시장과 회의시설을 갖춘 컨벤션센터를 우선 건립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김 시장은 지난 8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주의 심장부인 종합경기장은 대기업이 아닌 미래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는 전북도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는 것으로 국비가 지원되는 컨벤션센터를 먼저 짓겠다는 전주시의 구상을 공식화하는 신호탄이다. 이에 이형규 전북도 정무부지사는 “전주시가 체육시설 대체 방안을 포함한 전체적인 종합개발 계획을 내놓는다면 굳이 쇼핑몰 건립을 주장하지 않겠다”며 대형 쇼핑몰 건립을 반대하는 중소상인들의 요구와 전주시의 입장을 감안하겠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전주시는 전북도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시장이 “전북도와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언급했지만 종합경기장 개발 방향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이에 변화가 없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전주시와 롯데쇼핑의 개발협약은 무산될 공산이 커졌다. 현재 종합경기장 재개발사업은 10년째 공전하고 있다. 더구나 올 12월이면 전북도와 전주시가 2005년에 맺은 종합경기장 무상양여 계약 기간이 만료돼 사업 추진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전주시의 사업 추진 계획은 조건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전북도와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올 연말쯤 무상양여 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계약이 해지되면 종합경기장의 소유권은 전북도로 다시 넘어가게 되고 그동안의 사업 구상은 백지화된다. 재개발사업을 하더라도 사업 주체가 전주시에서 전북도로 변경된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2005년 체결한 ‘전라북도 도유재산 양여계약서’는 도가 전주시에 전주종합경기장을 무상양여하는 대신 시는 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을 활용해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1종 육상경기장을 건립하고 5000석 규모의 야구장을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약서는 10년 내에 이 같은 행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용도를 폐지한 경우에는 이를 해지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10년의 시한 종료일은 오는 12월 20일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당신이 겪는 불평등 처음부터 조작되었다

    당신이 겪는 불평등 처음부터 조작되었다

    불평등의 창조/켄트 플래너리·조이스 마커스 지음/하윤숙 옮김/미지북스/1002쪽/3만 8000원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1753년 프랑스의 디종아카데미에서 내건 논문 현상 공모의 주제였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온 젊은 인습타파주의자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논문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먼 옛날 자연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 인간’ 사회에선 자기 보존을 위한 자존감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통용되고 모두가 평등했지만 사회가 커지면서 ‘자기애’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불평등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남보다 우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고 남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물질을 향한 욕망이 생기고, 부유한 집단이 가난한 집단에 사회계약을 강요하면서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비록 수상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당대에 대단한 파급력을 미쳤고, 급기야 프랑스혁명의 도덕적 근거를 제공했다.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최초로 제시한 루소의 논문이 인류학이나 고고학, 사회학이 탄생하기 한 세기 전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다. 신간 ‘불평등의 창조’는 방대한 고고학 연구 자료들과 인간 집단에 대한 인류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루소가 다뤘던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추적한다. 저명한 고고학자인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왜 불평등이 발생했는지, 어떻게 불평등이 정당화되고 제도화됐는지를 고고학과 인류학의 협업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저자들은 선사 시대 사회에 관한 고고학 자료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사회 집단을 아우르는 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불평등은 모든 인간 집단의 핵심에 있는 고유한 사회 논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결과물”임을 입증해 나간다. 기원전 1만 5000년 수렵채집사회에서 소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인류의 조상은 ‘초자연적 존재’의 지시를 수행하며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여러 개의 가계나 씨족으로 이뤄진 촌락사회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대 저들’이라는 세계관이 형성되고 불평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명망을 가진 가계나 씨족의 지위가 세습되기 시작하면서 불평등 구조가 한 단계 발전한다. 이때 세습을 위해 서열 순위가 조작되는 일이 벌어진다. 남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계가 ‘신의 후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지위를 정당화했다. 불평등은 바로 이 서열 순위를 조작해야만, 그리고 새롭게 바뀐 서열 순위를 다른 성원들이 납득해야만 탄생할 수 있었다.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지위를 후손에게 세습하려 했던 지도자들은 자기네 가계와 조상 영혼, 심지어 신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음을 다른 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키려 했다. 특권과 평등 사이에서 빚어지는 논리의 모순 때문에 초기에는 사회가 동요하고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고, 일정 시점이 되면 고위층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 결과 서아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멕시코, 페루,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전제적인 왕국과 제국이 탄생했다. 세계 각지에서 건설된 최초의 왕국은 족장 가계 간 치열한 권력 찬탈의 결과물이었다. 메소포타미아, 고대 멕시코,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사모아제도와 통가제도 등 지역과 종족을 불문하고 세습 지배층이 생기고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과정은 유사하다. 저자들은 “기원전 2500년 무렵, 지금까지 인류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불평등의 형태가 세계 어디에선가 나타나게 됐고 진정 평등한 사회는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 다른 이들은 원하지 않는 몇몇 지역에만 한정되었다”고 적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머리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 ‘2년6개월 아기 지능’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머리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 ‘2년6개월 아기 지능’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제일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 야생동물 중 가장 먼저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개는 지능도 높다. 개는 보통 두 살 아기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부 종은 더욱 똑똑해서 생후 2년 6개월 정도 아기의 지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 연구팀은 “개마다 지능에 차이가 있으며 가장 똑똑한 종자는 보더콜리이고, 가장 머리가 나쁜 종자는 아프간하운드”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보통 개들은 165가지 정도의 ‘말’을 알아들으며 아주 똑똑한 개는 그 숫자가 250가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말’에는 사람이 쓰는 단어는 물론 사람의 손짓 명령, 지시를 내리기 위한 휘파람 소리 등도 포함된다. 연구팀은 또한 개가 숫자 5까지 셀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개와 사람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해 놓고 예컨대 소시지 3개를 칸막이 뒤로 내려놓는다는 사실을 개에게 보여준 뒤 개 몰래 소시지를 하나 더 추가해 놓고 칸막이를 제거하면 개가 ‘3개 있어야 하는데 왜 4개가 있지?’라는 듯 놀란 표정으로 소시지를 오래 쳐다본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 방법은 원래 유아들이 숫자를 세는 능력을 실험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개 등 동물이 숫자를 세는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연구팀은 여러 실험과 개 훈련사들의 의견을 종합해 개 110종의 지능 순서를 매겼다. 이 순서에 따르면 가장 똑똑한 종자는 보더콜리, 푸들, 골든 리트리버, 셰퍼드, 도베르만핀셔 등이며, 가장 머리가 나쁜 순서는 끝에서부터 아프간하운드, 바센지, 불도그, 차우차우, 보르조이 등이었다. 보더콜리는 원래 ‘스카치 쉽독’이라 불리던 견종으로,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이의 노섬벌랜드에서 기원됐다. 이 견종은 바이킹족이 순록 몰이를 위해 사용한 견종의 후손으로, 영국의 목축견으로 오래 사랑받았다.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제일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 소식에 네티즌은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제일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우리 집에도 키우고 싶다“, ”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제일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그럼 쉬츠는 똑똑한 가요?“, ”,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제일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다양한 방법이 있네”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가장 머리 좋은 개 1위 보더콜리, 제일 나쁜 종자 아프간하운드-위 기사와 관련 없음) 연예팀 chkim@seoul.co.kr
  • 서울시·문화재청, 풍납토성 지역 개발 두고 ‘힘겨루기’

    ‘풍납토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두고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문화재청은 2조원의 보상비 부담으로 보존을 위한 개발 ‘불가’에서 ‘허용’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이에 등재 신청이 어려워진 서울시는 문화재와 주민 보호를 포기한 것이라며 문화재청의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서울시는 15일 기자설명회를 열고 문화재청이 최근 발표한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 변경의 철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특단의 재원 대책으로 풍납토성 2·3권역의 주민들에게 조기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한성백제의 왕궁터인 풍납토성을 오는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공주·부여·익산의 백제유적과 연계해 확장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풍납토성을 둘러싼 갈등은 문화재청이 지난 8일 풍납토성 내부 주민 전체를 외부로 이주케 하는 기존 정책 기조를 바꿔 건축물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등 주변 노후주택의 재건축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문화재 핵심 분포 예상 지역인 2권역의 주민만 이주하게 하고 3권역은 건축 높이 제한을 완화, 사실상 재건축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발표대로라면 서울시의 풍납토성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이에 서울시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양도성과 풍납토성의 유네스코 등재를 못마땅하게 여겨 ‘딴죽’을 걸고 있다는 게 아닌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시와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3대7 비율로 500억원을 투입해 2·3권역에 대한 토지보상을 해왔다. 시는 5년 내 조기 보상을 하려면 총 2조원이 들며 이 중 6000억원을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재정이 부족하면 3000억원까지는 지방채까지 발행하겠다며 문화재청의 협조를 당부했다. 또 문화재청의 건축 높이 제한 완화 혜택을 받는 면적은 3권역의 5%에 불과하다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이창학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본부장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고대사를 당장 예산 부족으로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주민들의 재산권과 문화유산을 동시에 보호하는 근본 대책은 조기보상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朴대통령 “노사정 대타협 이뤄 달라” 경제계 신년회 한노총위원장 첫 참석

    朴대통령 “노사정 대타협 이뤄 달라” 경제계 신년회 한노총위원장 첫 참석

    “올해 역사적인 광복 70주년을 맞았는데 지난 70년간 우리 선배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겠다는 의지로 기적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그 기적의 견인차는 기업이었고, 기적의 원동력은 기업가 정신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5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집권 이래 어떤 것보다 기업 친화적인 발언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제시장’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최근 부산의 국제시장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20~30대가 많이 찾아 상인들이 매출의 증가를 기대한다고 한다”면서 “이렇게 문화와 경제의 융합을 통해 용기와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올해가 재도약의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이행에 총력을 기울여서 대한민국 30년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면서 “무엇보다 노동, 금융, 교육, 공공기관 등 4대 핵심 분야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면서 “지난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어렵사리 개혁의 큰 틀에 합의를 이끌어낸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조금 더 양보를 해서 대타협을 이뤄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호응하듯 이날 행사에는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동안에는 노동 현안이 많아 참석하기가 어려웠지만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 등과 근로시간 단축 등 많은 논의를 해오면서 접촉면을 넓히고 현안을 얘기하다 보면 접점을 찾기가 더 수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이번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사는 지난 1일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에 이어 박 대통령의 새해 두 번째 외부행보다. 전국 대·중소·중견기업 대표, 경제 6단체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정부 인사, 노사정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주요 외교사절과 외국 기업인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맨큐 “부유세 대신 소비세 인상” vs 피케티 “불평등 해소엔 부유세”

    맨큐 “부유세 대신 소비세 인상” vs 피케티 “불평등 해소엔 부유세”

    “r>g. So what?” 그레고리 맨큐(왼쪽)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3일(현지시간) 보스턴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공개한 도발적인 발표문 제목이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선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의미다. 맨큐는 이날 토론회에서 지난해 화제작이었던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오른쪽) 파리경제대 교수를 초청했다. 맨큐의 발표문은 “r>g로 인한 자본축적 때문에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피케티의 핵심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맨큐는 “피케티와 그의 책을 존중하지만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을 경우 경제는 비효율적이 되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고 포문을 열었다. 자본수익률이 크다 해도 부의 불평등이 계속 커진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부를 상속받은 이들은 재산을 소비할 것이고, 상속 과정에서 부가 많은 후손들에게 분산될 것이며, 유산 등에 막대한 세금이 부과된다”고 말했다. 부는 계속 소비되고 나눠지기 때문에 부의 집중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피케티의 예측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적어도 7% 포인트 이상 높아야 한다”고도 했다. 불가능한 얘기라는 것이다. 피케티의 부유세 대신 소비세 인상을 대안으로 제기했다. 피케티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부유층은 재산의 일부만 투자해도 부를 계속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아도 불평등이 심화된다”면서 “승수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그 차이가 1% 포인트에 불과해도 부유층이 차지하는 자산 비중이 10% 포인트나 늘어났다”고 말했다. 또 소비세 인상에 대해서도 “상속재산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릴 수 없기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부유세가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朴대통령 “통일, 꿈 아닌 현실이 되도록 준비”

    朴대통령 “통일, 꿈 아닌 현실이 되도록 준비”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올해는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과업이 민족 분단 70년의 아픔을 극복하고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통일이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와 실천에 최선을 다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2015년 신년인사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지난 70년 동안 선배 세대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오늘의 성취와 번영을 이뤘듯이 세계에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라며 “여러분께서도 평화통일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과업에 적극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가까이 앉은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천안함 폭침에 따른 대북 제재인 5·24 조치를 해제하라는 야권의 요구에 대해 “(야당이) 5·24 조치만 해제하라고 하면 (남북 간) 협상이 되겠느냐”면서 “남북문제와 관련해 (야당도 나를) 조금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우리 측이 먼저 5·24 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대북 협상력 확보 차원에서 적절치 않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편, 협상 상황에 따라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여지도 내보였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기조에 대해서는 “정부는 새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고, 4만 달러 시대를 향한 기반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미완의 친일청산 논란

    [격동의 한·일 70년] 미완의 친일청산 논란

    을미(乙未)년 새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강산이 몇 차례 바뀌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로 남아 있다. 독도와 위안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보수 행보를 이어가면서 경색된 두 나라 관계는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동북아에서 미국과의 패권 다툼이 가속화하면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친일 청산 논란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역사교육, 문화재 반환 문제 등 양국 간 남아 있는 현안들을 짚어보고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두 나라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2012년 12월 4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의 첫 대선후보 TV토론회장.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고 선언했다. 이 후보는 박 후보를 겨냥해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라며 당시 박 후보 부친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녀는 “뿌리는 속일 수 없다.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날치기 통과해서 경제주권을 팔아먹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또 “유신독재 시대의 퍼스트레이디가 청와대에 가면 여왕이 된다”면서 “여성대통령이 필요하지만 불통·오만·독선의 여왕은 대한민국에 필요없다”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후보의 발언은 진보 진영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을지는 몰라도 보수층의 결집을 도와 결과적으로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친일 청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대선 TV토론회에서조차 친일 문제를 부각시켜 표를 얻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선대가 저지른 잘못을 들춰내 후손에게 책임을 묻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은 최근 KBS이사장에 임명된 이인호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친일 발언 논란에서도 두드러졌다. 이 같은 친일행적 논란은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광복 후 설립된 ‘반민족행위자특별위원회’는 모두 688건의 친일파 인사 사건을 다뤄 599건을 특별검찰부로 송치했다. 기소는 221건에 불과했고 실제 구형은 41건이었다. 그나마 41건 역시 무죄 또는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실제로 친일파로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마녀사냥식 과거사 들추기가 과연 생산적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과거사 진실을 밝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은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식의 방법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장춘’식 해법을 설정해 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에 앞장선 매국노 우범선의 아들이다. 우장춘은 일본인 어머니의 손에서 성장한 뒤 1950년 3월 귀국해 1955년 숨을 거둘 때까지 육종학에 몰두했다. 그는 일본에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국내에서 자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우장춘에게 부친의 매국 행각을 놓고 문제 삼은 사람은 없었다. 부산 동래구가 1999년 우장춘기념관을 건립할 때도 반대 여론은 없다시피 했다. 작곡가 홍난파의 경우도 비슷한 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홍난파의 후학들은 1년 6개월간 격렬한 사실관계 논쟁을 벌여 홍난파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음악적 천재성이 훼손되지 않는 연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친일 청산 문제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정하면서도 관용을 이뤄내는지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의 과거사 문제는 다른 나라보다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며 “과거 청산의 중점은 진실 규명과 피해자 구제로 이를 위해선 후속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朴대통령 “분단 70년 마감하고 통일의 길 열 것”

    박근혜 대통령은 31일 을미년 신년사에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신년 영상 메시지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 길을 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 여러분의 하나 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적 단합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국민 모두가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 냈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며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후손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우선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며 “지난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어렵게 살려 낸 경제 회복의 불꽃을 크게 살려 내고,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꿔 가면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져 가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오랫동안 쌓여 온 적폐를 해소하는 일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옛말처럼 우리가 혁신과 전진을 향한 의지와 역량을 한데 모은다면 저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새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모든 어려움을 풀어 나가게 되길 바란다”고 기원하면서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광장] 춘천 중도 유적 200년 뒤를 고민하라/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춘천 중도 유적 200년 뒤를 고민하라/서동철 논설위원

    무엇이든 초(超)스피드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한국인의 시간 관념은 무엇이든 슬로 템포인 나라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남들이 100년 걸린 것을 10년 만에 이루었다고도 하지 않는가. 문제는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 놓은 것을 벌써 비슷한 속도로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언저리에 살았던 저층 아파트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남은 수명은 짧으면 10년, 길어 봐야 20년 남짓일 것이다. 그러니 한국인이 체감하는 상대적인 시간의 빠르기는 지은 지 200~300년 된 아파트에서 느려 터지게 살아가는 나라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언제나 빠르게만 흘러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왕조가 쇠잔해 가던 19세기는 변화의 추세에 동승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너무나 느리게 세월을 흘려보낸 시대가 아닌가. 미래 또한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뒤처졌던 변화를 따라잡겠다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야 했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템포를 맞춰 살아갈 시대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조급한 성과주의는 우리 시대에서 그쳐야 한다. 한없이 느리게 살아가도 좋을 후손에게까지 악영향이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추억마저 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처럼 빠르게 살았던 시대의 산물은 빠르게 허물어도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살았던 과거의 산물만큼은 우리 손으로 훼손하지 말고 미래 느린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오늘도 땅속의 문화유산이 줄지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방식의 개발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는 재론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문화적 시각이 아닌 경제적 시각으로도 문화 파괴적인 개발은 미래 세대의 이익을 빼앗는 우리 시대의 탐욕일 뿐이다. 파리나 로마가 온 국민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관광도시가 된 것은 이런 방식의 개발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낡은 아파트 창틀 하나를 바꾸려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마당에 삽질 한 번만 해도 도굴꾼 취급을 받는 문화재보호제도 덕분이다. 그것은 이 나라 선조가 후손들에게 내린 축복이다. 우리 땅속의 문화유산이 그들 것만 못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화적 열등감은 파괴적 개발 논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될 뿐이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도성(都城)이었던 서울만 해도 옛 모습은 로마나 파리가 부럽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엄청난 파괴가 이루어졌음에도 지하에는 당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복원할 수 있을 만큼의 기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종로 양쪽에 들어섰던 조선시대 상점가 시전행랑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불행히 교보빌딩에서 종각 사거리까지 한 블록은 고층빌딩이 들어차면서 이미 흔적이 사라졌다. 지금 춘천 중도 유적이 다르지 않은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1967년 의암댐을 막으면서 생긴 중도는 신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의 보고다. 917기의 집터, 101기의 고인돌, 경작지 유적과 비파형동검과 청동도끼가 쏟아져 나왔다. 해자(垓子)와 환호(環壕) 같은 방어 시설도 확인됐으니 당시로서는 초대형 도시였다. 주거 밀집 지역을 담은 사진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세계적인 선사유적지로 이름을 알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춘천시가 이곳에 2018년까지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짓겠다고 나섰다. 최근 출범한 ‘춘천 중도 고조선유적지 보존 범국민운동본부’는 당연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하(下)중도를 철저히 보존하고 전체를 하나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라는 것이다. 레고랜드가 정말 필요하면 유적이 적은 상(上)중도나 미군이 떠난 캠프페이지도 있지 않느냐는 대안도 제시했다. 중도 유적이 당대주의(當代主義)에 밀려 사라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레고랜드를 갖고 싶어 하는 춘천시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200년 뒤 후손을 행복하게 하는 결정이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여는 기반 다져가겠다”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여는 기반 다져가겠다”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여는 기반 다져가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일 을미년 신년사에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신년 영상메시지에서 “그 길을 가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 여러분의 하나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우선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며 “지난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어렵게 살려낸 경제회복의 불꽃을 크게 살려내고,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꿔가면서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져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를 해소하는 일도 흔들림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국민 모두가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며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후손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져있다”고 말했다. 또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옛말처럼 우리가 혁신과 전진을 향한 의지와 역량을 한데 모은다면 저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박근혜 대통령은 31일 을미년 신년사에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신년 영상메시지에서 “그 길을 가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 여러분의 하나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우선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며 “지난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어렵게 살려낸 경제회복의 불꽃을 크게 살려내고,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바꿔가면서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져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를 해소하는 일도 흔들림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국민 모두가 불굴의 의지로 합심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왔다”며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후손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져있다”고 말했다. 또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옛말처럼 우리가 혁신과 전진을 향한 의지와 역량을 한데 모은다면 저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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