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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륙의 종친회’ …황씨(黃氏) 3만2000명 참석

    ‘대륙의 종친회’ …황씨(黃氏) 3만2000명 참석

    중국 광동성(广东省) 선전시(深圳市)의 한 아파트단지 앞에 3만2000명 규모의 종친회 제사상이 차려졌다. 지난 13일 ‘세계 황씨(黄氏) 종친총회’ 제12회 3차 친목회가 선전시 푸텐(福田)구 시아샤(下沙)문화광장에서 열렸다고 중국언론은 전했다. 현장 종친회에 참석한 한 회원은 “이번 따펀차이(大盆菜) 연회에는 총 3200개 테이블에 3만2000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 황씨 종친회는 전세계 28개국 또는 중국지역의 황씨종친이 한 자리에 모여 ‘따펀차이 제사’ 음식을 즐긴다. 따펀차이엔(大盆菜宴)은 선전만(深圳湾) 일대 특유의 음식풍속으로 커다란 그릇에 무, 오징어, 굴, 오리고기 등 15종의 주재료와 생굴, 마늘 등의 부재료로 만든다. 황씨는 중국의 10대 성씨(姓氏)로 황씨 성을 지닌 중국인들은 전세계 곳곳에 분포해 있다. 이번 종친회는 성씨 문화를 바탕으로 유대를 강화하고, 국내외 후손들에게 조상의 뿌리를 찾아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이번 종친회를 위해 유럽, 미주, 동남아, 홍콩, 타이완, 마카오 등의 황씨 종친대표 1000여 명과 중국 10여 개 성시(省市)의 황씨 대표들이 참석했다. 사진=동방IC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펜스, 티파티 소속 강경파… 성품 온화해 인기

    펜스, 티파티 소속 강경파… 성품 온화해 인기

    부통령에 당선된 마이크 펜스(57) 인디애나 주지사는 당내 강경파인 티파티 소속이지만 동료 의원들 사이 온화한 성품으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2008년과 2012년 당시 대선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보수 진영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하원의원 시절인 2006년 하원의장에 도전했다가 같은 당 존 베이너 의원에게 패해 고배를 마셨다. 2003년 동성결혼 금지법을 공동 발의하고 2006~2009년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했으며, 2007년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에 반대한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다. 주지사 시절에는 업주들이 성소수자 고객을 거부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1순위는 종교적 신념, 2순위는 정부관(보수주의), 3순위는 내 정치(공화당)”라고 했을 만큼 열성적인 복음주의 개신교도다.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인 펜스 부통령 당선자는 1959년 미 북동부의 러스트 벨트(제조업 쇠락 지역)에 속하는 인디애나주 콜럼버스에서 나고 자란 인디애나 토박이다. 하노버대 칼리지와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1994년부터 ‘마이크 펜스 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덕분에 대중적인 인지도도 꽤 높다. 2001~2013년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뒤 2009∼2011년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을 역임했다. 2012년 중간선거 때 인디애나 주지사에 당선됐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대선 전 “내가 펜스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라며 “트럼프가 보수 운동의 좋은 인물을 부통령 후보로 뽑기를 바라며, 마이크는 바로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의견 조율과 이념노선 정리 등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와 펜스 부통령 당선자 간의 ‘불편한 동거’를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트럼프와 펜스 주지사가 대선을 통해 알게 된 사이일 뿐 사전에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전직 교사 출신 아내 캐런과 31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온 펜스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가을볕 속 항일·친일 굴곡진 역사의 발자취 더듬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가을볕 속 항일·친일 굴곡진 역사의 발자취 더듬다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12일 답사는 ‘연극과 문화의 산실 대학로’를 주제로 한선영·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진행한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중 윤극영 가옥처럼 역사·문화적 보존가치가 있는 공간을 활용해 살아 있는 교육·관광자원을 만들고 있다.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윤극영 가옥은 1970년에 지어져 윤 선생이 1977년부터 1988년 11월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고 이후 유족들이 살았다. 서울시는 건축물 원형 보존 상태와 내외부 안전도가 양호하다고 판단하고, 약 6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3년 유족들로부터 집을 사들인 뒤 역사 교육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윤 선생은 일제강점기 창작동요 선구자다. 서울시는 강북구근현대사기념관과 연계해 어린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는 또 윤극영 가옥 이외에 구의 취수장을 이용한 거리예술창작센터, 함석헌 기념관, 강북구근현대사기념관 등을 활용하는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열네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있었던 지난달 22일, 청와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폭발력을 예견했던 것 같다. 청와대 인근 김상헌 시비가 있는 ‘무궁화동산’으로 가려니, 효자동주민센터 앞부터 엄청난 경찰 병력이 진을 치고 청와대 쪽으로 들어오는 시민들을 검문검색했다. 답사 때면 늘 카메라, 플래카드, 손수건 30장씩을 챙기고 다니다 보니 가방이 무게가 제법 나가고 불룩하다. 경호요원의 상징인 검은 선글라스에 검정 양복을 입은 남자가 소속도 밝히지 않은 채 가방을 열어보란다. 불법 불심검문이다. 새빨간 손수건 뭉치가 나오자 선글라스 안경알 넘어 동공이 확대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게다가 플래카드까지 나오니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아무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이러려고 서울미래유산 답사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번 답사는 배건욱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준비한 웃대 마실이다. 웃대는 현재 서촌으로 더 잘 알려진 인왕산 동쪽 아랫마을을 일컫는다. 주제를 편하게 웃대 마실로 잡았지만, 사실 이번 답사는 항일과 친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배 해설사는 웃대 일대에 자리한 서울미래유산들까지 함께 들춰봄으로써 근현대사와 미래유산을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냈다. 웃대에서는 항일운동가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집터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을 기리는 우당기념관 등 항일 인사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또 윤덕영(1873~1940), 이완용(1858~1926)과 같은 친일파의 집터와 별장 흔적을 통해 그들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부를 축적한 그리 오래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무궁화동산에 시비병자호란 척화파 청음 김상헌 집터 웃대는 항일 이전에 항몽(抗蒙) 역사가 먼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경복고등학교 정문 앞에는 병자호란 당시 대표적 척화파였던 청음 김상헌(1570~1652)의 집터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다. 그가 청나라로 압송돼 가면서 남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로 시작되는 시조는 아직도 널리 회자된다. 배 해설사는 “김상헌은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출병을 요구했을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미운털이 박힌 채 소현세자와 함께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경복고에서 조금 더 내려오니 무궁화동산에 후손들이 세운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시비가 서 있다. 이곳은 김상헌 생가터가 있던 곳으로 이후 안동 김씨의 세거지(일종의 집성촌)가 됐다. 무궁화동산은 옛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전가옥 터에 지어진 공원이다. 과거에는 청와대 경내로,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앞길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됐다. 공원 중앙에는 궁정동을 상징하는 우물 정(井)자 분수대가 놓여 있다. 이회영 선생 형제들 우국충정 기려민족 지사 우당 기념관 국립서울농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27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수화 모양 석조물이 서 있다. 학교 안에는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를 위한 사당인 선희궁(서울시유형문화재 제32호)이 잘 보존돼 있다. 학교를 빠져나와서 인왕산 방향으로 조금만 오르면 우당기념관이 나온다. 종로구 신교동 6-22 빌라촌 하단부에 둥지를 튼 우당기념관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과 그 형제들의 우국충정을 소박하게 기리고 있었다. 입구 정면에는 이회영의 흉상과 사진, 연보를 비롯해 여섯 형제가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 직전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소장돼 있다. 이회영은 여섯 형제 중 넷째이고 대한민국 초대 부총리를 지낸 이시영이 막내다. 배 해설사는 “이회영 선생의 업적은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것이고, 거액의 자금은 모두 그의 집안에서 조달했다”며 “이곳에 오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서글픈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회영은 1924년 베이징에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는 등 아나키스트로 변신하면서 독립운동 노선에 변화를 준다. 1932년 일본에 의해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윤동주가 머물렀던 하숙집도 서울미래유산이 돼 항일의 길에 당당하게 서 있다. 매국으로 부 축적… ‘돌문 안 뾰족한 집’으로 불려친일파 윤덕영 별장 벽수산장 기둥 흔적 웃대 항일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친일의 길이 시작됐다. 웃대에서는 아직도 항일과 친일의 정신이 소리 없이 싸우고 있는 듯했다. 윤덕영의 별장인 벽수산장 터에는 호화롭던 건물은 자취가 없고 기둥 몇 개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최근에 지어진 집 앞에 오래되고 거대한 기둥이 뻘쭘하게 서 있는가 하면, 근처에는 비슷한 기둥 상단부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사전 지식 없이 지나가면 도무지 뭔지 모를 돌덩어리들이다. 초호화판 벽수산장의 흔적치고는 초라했다. 배 해설사가 옛 벽수산장의 사진을 보여주자 답사객들이 규모와 화려함에 놀랐다. 59년째 이 동네에 거주하고 있다는 주민 이병문(78)씨는 “벽수산장이 1966년 큰불이 나서 방치돼 있다가 1973년 철거한 후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주민 대부분이 3~4대 정도 살아왔기 때문에 옛일을 소상히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벽수산장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송석원으로 불렸다. 당시에는 인왕산 계곡 깊은 곳이었기 때문에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이었다. 조선 중기에는 중인들의 여항문학이 싹튼 곳이기도 하다. 윤덕영은 순종 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큰아버지다. 친일과 매국으로 부를 축적해 ‘돌문 안 뾰족집’으로 불렸던 벽수산장을 3년에 걸쳐 지었다. 공사 대금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은사금으로 충당했다. 설계도는 프랑스 공사로 갔던 민영찬이 사뒀던 것을 이용했다. 윤덕영은 벽수산장 가까이 그의 딸을 위한 집도 지었다. 지금은 박노수 미술관(서울시문화재자료 제1호)으로 단장해 종로구청이 관리하고 있다. 옥인파출소와 종로구 보건소 일대는 이완용의 집터로 알려졌다. 웃대에는 아직 친일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다. 웃대 일대는 서울미래유산도 상당히 많이 분포돼 있다. 경복궁역 3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만날 수 있는 김봉수작명소는 1958년에 즈음하여 길 건너 금천교시장에서 문을 열었다. 1977년 현재 위치로 이사해 2대 김성윤씨가 운영하고 있다. 정·재계 인사들이 단골로 많이 온다고 한다. 1950년대 조성된 통인시장은 도시락 카페 등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다른 재래시장과의 차별화를 통해 하루 평균 1500명이 넘는 이용객이 방문한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시장 안에는 원조 할머니 기름떡볶이집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956년 맹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고, 1986년 김임옥 할머니에게 전수했다. 지금은 김 할머니의 두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나와서 일을 할 정도로 주말 북새통을 이룬다. 근처에 원조 떡볶이집이 또 있는 데 대해 큰아들 오정환씨는 “잘 아시겠지만 원조는 우리다”며 원조 논란을 한마디로 잠재웠다. 배 해설사가 공사장 가림막 앞에서 멈춰 서더니 망연자실해했다. 노천명 가옥이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한 뼘도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배 해설사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이렇게 사라지다니 허탈하다”고 아쉬워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본부 문화정책과의 이지나 미래유산팀 주무관은 “노천명 가옥은 철거된 게 아니고 전면 수리에 들어간다고 한옥조성과에 접수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 20년간 살았던 집…시인의 자취 찾을 수 없어시인 이상의 집 웃대 초입에 있는 이상의 집은 시인 이상이 큰아버지집 양자로 들어가 1912년부터 20년간 살았던 곳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부지를 매입해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운영·관리를 맡고 있다. 부인과 딸 등 가족과 함께 나온 오승건씨는 “밖에선 이상의 흔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관리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며 “서울미래유산 현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촌 한옥 지역 일대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이곳 외에 한옥 밀집 지역인 돈화문로 주변, 북촌, 동소문 2가동, 제기동, 인사동, 명륜동, 보문동 일대가 모두 서울미래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아빠와 함께 나온 김경민(7)양은 “언덕이 있어서 힘들었지만 선생님 설명을 들으면서 가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앞으로 계속 나오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과학자의 다이어트

    [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과학자의 다이어트

    다이어트는 자기 계발이라는 21세기 신흥 종교의 핵심 교리다. 이 교리의 특징은 외모라는 일상의 권력 기준에서 동력을 얻지만 건강이라는 또 다른 진리의 절대적 지지를 동시에 받는다는 점이다. 시대에 따라 선호되는 체형이 변한 것처럼 변화의 여지는 있을지라도 값싼 풍요가 만든 비만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교리의 위세는 약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이어트의 가장 손쉬운 기준은 한 인간의 물적량을 숫자 하나로 환원시킨 몸무게라는 값이다. 키라는 또 다른 인간의 특징을 제곱해 몸무게를 이 결과로 나눔으로써 우리는 키에 관계없이 비만을 판단할 수 있는 체질량지수(BMI)를 얻는다. 성인의 경우 키는 크게 변하지 않으므로 다이어트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체중 변화를 수시로 측정해 실천의 동기로 삼는다. 이렇게 자신의 체중을 재는 방법은 실제로 효용이 증명된 매우 드문 다이어트 방법 중 하나다. 체중의 변화를 지배하는 첫 번째 원칙은 질량 보존의 법칙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간단히 말해 어떤 대상이 물리적·화학적 변화를 겪더라도 변화 전후로 그 질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우유팩 하나를 들고 체중계 위에 올라선 당신이 우유를 다 마시는 동안 체중계의 수치는 변하지 않는다. 우유팩 하나는 200㎖이고, 액체의 비중은 1에 가까우므로 우유가 팩 안에서 당신의 위로 옮겨 오는 동안 당신의 체중은 200g이 늘게 된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간단한 몇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체중을 증가시키고 몸에서 나오는 것은 체중을 감소시킨다. 평소 체중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만큼의 무언가가 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밥 한 공기는 100g 정도이고 한 사람의 식사량은 수백g 안팎으로, 보통 하루에 물과 음료를 포함한 2~3㎏ 정도가 한 사람의 몸으로 들어간다. 몸에서 나오는 것은 고체와 액체의 두 가지 형태를 가진다. 고체는 크기에 따라 한 번에 100~300g 정도이며 액체는 하루에 1~2㎏에 이른다. 나머지는 피부 표면을 통해 증발하는 체액으로 매 시간 수십g이 빠져나간다. 밤사이 줄어든 체중은 이 때문이다. 어쨌든 질량 보존의 법칙은 매우 단순한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체중은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에너지는 곧 열이며, 다이어트의 세계에서는 열의 단위인 칼로리가 쓰인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이는 음식을 통해 섭취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질량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몸에 들어온 에너지에서 우리가 사용한 에너지를 빼고 나면 남은 만큼이 우리 몸에 축적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은 체온 유지로 전체 소비의 절반 이상이 여기에 쓰인다. 물론 외부 기온, 활동량, 땀을 통한 체온 조절 등 다양한 변수가 있다. 그리고 뇌신경의 전기적 활동, 근육의 육체적 활동, 소화를 위한 내장기관의 활동에도 에너지는 소모된다. 운동은 건강한 삶의 유지에 꼭 필요하지만, 다이어트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들이 최근 발표되고 있다. 결국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적게 먹어야 한다. 다이어트가 필요해진 이유는 현대의 인간이 먹을 것이 부족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먹어 두는 것이 유리했던 시대에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그들이 또한 우리에게 물려준 이성을 사용해 적절한 시점에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짜장면이 나오면 아이들은 중국집에 가자고 말하고, 치킨이 나오면 치킨을 주문하자고 말한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얘들아, 저런 걸 간접광고(PPL)라고 한단다.” 네오펙트 최고알고리즘책임자(CAO)
  • [열린세상] 한국의 우주개발과 한·미 우주협정 발효/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의 우주개발과 한·미 우주협정 발효/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미 우주협정이 발효됐다. 한국의 우주개발이 한걸음 더 진척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달탐사 계획에 미국은 달에 가본 적이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구궤도를 벗어나 달까지 가는 동안 필수불가결한 기술인 심우주 통신과 항법의 기술, 그리고 달 궤도 진입과 달 탐사선 착륙에 관한 기술 협력을 해 줄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궤도선에 미국의 우주탐사 장비를 싣게 돼 있어 한국도 미국에 협력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과 우주협정을 맺는 것은 한국의 우주개발에 대한 국가 의지가 확고하고 그에 상응한 국가 예산도 염출할 수 있는 나라가 됐기에 미국이 동의한 것이다. 한국에 우주개발 장비의 판매라든가 한국이 예산을 내고 공동 연구도 기대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을 매력적인 우주협력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고흥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로켓을 만들기 위한 엔진 실험을 계속하고 있고 2020년대 초에 약 1.5t의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다. 인공위성 제작 기술도 점점 고도화될 것으로 판단한 미국은 한국을 우주개발의 협력 국가로 지목한 것이다. 미국과 우주협력을 하면 한국이 몰랐던 우주개발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이 우주개발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첫째, 한국 주변 국가들 즉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모두 우주 강국이다. 심지어는 북한마저도 궁핍한 처지에서 우주개발에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러시아는 군사용 목적의 로켓 개발 즉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지금은 지구를 넘나들 수 있는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지구 고도 400㎞근처의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들어 놓고 운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일본도 참여해 한국어로는 ‘황새’라는 뜻을 지닌 화물기를 보내 우주비행사들의 식품과 실험장비를 수송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인 북두(GPS)를 운용할 정도로 우주기술이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수준이 되었고 북한도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해 은하로켓 개발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북한에마저 뒤처지는 국가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우주개발은 날씨 정보와 같은 평화적 목표 때문만이 아니고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가 TV를 통해 날씨 정보를 접할 때 “한반도 위의 구름 사진을 보시겠습니다”라는 화면을 보게 되는데 그 화면도 일본에서 빌려다가 날씨 예보를 한 것이지 한국의 인공위성이 촬영한 한반도 주변 구름 사진을 화면에 띄어 놓고 기상 뉴스를 전한 지가 몇 년 되지 않았다. 인공위성은 구름 사진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북한 핵시설 주변의 차량 이동이 어떠한가, 미사일 발사 움직임은 있는가, 북한의 잠수정이 신포 앞바다에서 사라졌는가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 쓰인다. 우주개발은 태풍 예보와 함께 북한과 주변국들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셋째, 우주개발은 첨단기술의 집합체이기에 미래의 동력산업이다. 우주개발 기술을 통해 우리는 전혀 모르는 길도 내비게이션 정보로 찾아갈 수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하면 즉각적으로 터지는 에어백 기술도 순간적으로 점화되는 고체연료 로켓 기술에서 배태됐다. 얇디얇은 캔에 맥주나 콜라를 넣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것도 두께가 얇은 로켓 연료통을 만들면서 첨단기술이 민간 부문에 응용된 것이다. 비디오 카메라와 같은 광학위성 2기와 전자파로 지구를 들여다보는 레이더위성 2기 등 총 4기의 인공위성을 운용하면 지구상의 목표 지점을 적어도 1회 이상은 들여다볼 수 있다. 지구 저 뒤편에서 화산이 폭발했는지, 큰 산불이 났는지를 인공위성을 통해 탐지하는 이른바 우주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미 우주협정의 발효는 한국이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우리의 후손들이 어깨를 쭉 펴고 살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 [자치광장] 용봉정, 서울의 매쿼리 포인트로/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

    [자치광장] 용봉정, 서울의 매쿼리 포인트로/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

    지난 6월 서울시에서 노들섬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40년간 버려졌던 외딴섬이 음악이 흐르는 복합문화기지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이다. 호주 시드니 항구에 들어서 세계적 관광지가 된 오페라하우스에 견줄 만한 명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11년 장고의 시간을 거쳐 개발 방향을 확정한 것이다. 노들섬이 한국의 오페라하우스가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서울이 호주 시드니와 닮은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로 전망 포인트다. 호주 시드니에 푸른 바다와 오페라하우스, 시내까지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매쿼리 포인트가 있다면 서울에는 한강철교 남단에 있는 용봉정 전망대가 있다. 개인적으로 머리 식힐 일이 있으면 용봉정 근린공원을 찾곤 한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의도 63빌딩에서 북악산,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노들섬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실 용봉정 일대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수원으로 행차하던 길에 잠시 머물던 쉼터다. 200년 전 왕의 쉼터였지만 지금은 거대한 도로로 둘러싸여 사람들의 걸음이 닿기 어려운 곳이 됐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압축 성장을 대표하는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동작구는 용봉정 일대를 ‘누구나 꼭 한번 방문해야 할 서울의 명소’로 만드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노들섬 개발에 발맞춰 자의든 타의든 꽁꽁 숨어 있던 보석을 이제 서울시민과 함께 가꿀 때가 된 것이다. 단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자산은 자연’이기에 인위적인 개발보다는 끊어진 길을 이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친환경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계획 단계이지만 노들섬을 용봉정 인근 노들나루공원과 보행다리로 연결하고,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은 각종 맛집과 개성 있는 카페로 채워 홍대를 넘어서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꾸미고자 한다. 전망대는 전면이 통유리로 된 내부 공간과 외부 테라스를 조성해 안팎에서 서울 야경을 시원하게 감상하는 세계적인 조망 포인트로 만들 생각이다. 그동안 한강변은 서울을 대표하는 공공재가 아닌 경관을 사유화하는 방향으로 개발됐다. 한강 조망을 위해 들어선 빽빽한 아파트들이 이를 대변한다. 서울 한강변 어디에서도 탁 트인 시야를 찾을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용봉정 전망대의 가치는 남다르다. 어쩌면 한강변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할 최후의 보루인지 모른다.
  • [자치광장] ‘왕의 쉼터’ 용봉정을 서울의 맥쿼리포인트로

    [자치광장] ‘왕의 쉼터’ 용봉정을 서울의 맥쿼리포인트로

    지난 6월 서울시에서 노들섬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40년간 버려졌던 외딴섬이 음악이 흐르는 복합문화기지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이다. 호주 시드니 항구에 들어서 세계적 관광지가 된 오페라하우스에 견줄 만한 명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11년 장고의 시간을 거쳐 개발 방향을 확정한 것이다. 노들섬이 한국의 오페라하우스가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서울이 호주 시드니와 닮은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로 전망 포인트다. 호주 시드니에 푸른 바다와 오페라하우스, 시내까지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맥쿼리 포인트가 있다면 서울에는 한강철교 남단에 있는 용봉정 전망대가 있다. 개인적으로 머리 식힐 일이 있으면 용봉정 근린공원을 찾곤 한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의도 63빌딩에서 북악산,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노들섬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실 용봉정 일대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수원으로 행차하던 길에 잠시 머물던 쉼터다. 200년 전 왕의 쉼터였지만 지금은 거대한 도로로 둘러싸여 사람들의 걸음이 닿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압축 성장을 대표하는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동작구는 용봉정 일대를 ‘누구나 꼭 한번 방문해야 할 서울의 명소’로 만드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노들섬 개발에 발맞춰 자의든 타의든 꽁꽁 숨어 있던 보석을 이제 서울시민과 함께 가꿀 때가 된 것이다. 단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자산은 자연’이기에 인위적인 개발보다는 끊어진 길을 이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친환경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계획단계이지만 노들섬을 용봉정 인근 노들나루공원과 보행다리로 연결하고,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은 각종 맛집과 개성 있는 카페로 채워 홍대를 넘어서는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꾸미고자 한다. 전망대는 전면이 통유리로 된 내부공간과 외부 테라스를 조성해 안팎에서 서울야경을 시원하게 감상하는 세계적인 조망 포인트로 만들 생각이다. 그동안 한강변은 서울을 대표하는 공공재가 아닌 경관을 사유화하는 방향으로 개발됐다. 한강 조망을 위해 들어선 빽빽한 아파트들이 이를 대변한다. 서울 한강변 어디에서도 탁 트인 시야를 찾을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용봉정 전망대의 가치는 남다르다. 어쩌면 한강변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할 최후의 보루인지 모른다.
  • “경주 토함산 천부교 시신 대규모 불법 매립은 오래전 종료된 사건”

    경북 경주 토함산 자락 임야에 시신 1040구가 불법 매립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경북 경찰은 4일 2014년 이 사건을 수사해 1명을 구속하고,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 이곳에 매장된 시신들은 부산 기장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천부교 신도들로, 사망 후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와 매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천부교 측은 공동묘지 허가를 받지 않고 시신을 무단으로 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장된 시신들과 천부교에서 작성한 묘지 묘적부와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시신 이름이나 출생일자가 없는 ‘무연고 시신’도 40여구가 있었지만 후손이 없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오래전 종료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천부교 내부 분열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부교는 박태선 장로가 1955년 만든 기독교계 신흥 종교로 기독계에서는 이단 취급을 받고 있다. 1980년 박태선이 자신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으로 선포한 이후 교단 이름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전도관)에서 천부교로 바꿨다. 교인들은 경기 부천의 ‘소사신앙촌’, 남양주시의 ‘덕소신앙촌’, 부산 기장군의 ‘기장신앙촌’ 등에서 집단생활을 해왔다. 소사와 덕소가 재개발되면서 현재는 기장신앙촌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개신교, 개혁을 외치다

    “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개신교, 개혁을 외치다

    “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나부터 변하겠습니다”. 한국 개신교계에 나부터 개혁하자는 운동이 거세다. 교단장과 단체장, 신학교 총장들이 종교개혁 500주년(2017년)을 앞두고 한국 교회의 개혁과 변화의 시작을 나로부터 찾자는 범국민 캠페인에 돌입하는가 하면 목회자들이 지도자부터 바뀔 것을 잇달아 천명하고 나섰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 이전 유럽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다는 비판과 관련해 목회자·교회의 제 역할과 지도력 회복 차원에서 분출해 눈길을 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범국민 캠페인 ‘나부터 ㅁ’ 캠페인 선포식이 열렸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신앙과 윤리적 측면에서 자신을 개혁해 나가고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을 본받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 24개 교단장과 개신교계 단체장, 신학교 총장들은 선포식을 통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만 한다’는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한국 교회에 ‘나부터’라는 구호가 확산되기를 촉구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선포식을 시작으로 각 교회와 성도들이 ‘나부터 ㅁ’ 슬로건 안에 변화와 개혁 의지를 담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이를테면 ‘나부터 기도하겠습니다’, ‘정직하겠습니다’, ‘난폭운전하지 않겠습니다’처럼 목회자와 신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향후 1년간 한국 교회와 함께 교회개혁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체육 등 사회를 향한 범국민 캠페인도 펼쳐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1970~1980년대 천주교가 ‘내 탓이오’ 캠페인을 벌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면서 “한국 교회가 개혁되기 위해선 우선 믿는 자가 나부터 개혁해야 하며 이를 기점으로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와 미래까지도 개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증경총회장 최성규 목사는 특히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 교회의 책임이 크다”며 “구원과 변화, 회개는 ‘나부터’여야 한다. 그런 다음 나눔과 행복은 ‘너부터’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는 지난달 27일 서울 중앙루터교회에서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예배를 올리고 ‘한국 교회에 드리는 제언’과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드리는 요청’을 나란히 발표했다. 목회자들은 이날 목회자이자 설교자, 전도자, 교회행정가 등 7가지 역할을 언급하며 바른 복음의 정립과 공교회 질서 확립, 섬기는 교회됨에 앞장서자고 다짐했다. 특히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향해 십자가 부활의 참된 복음 선포, 공교회성 회복,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십자가 사랑을 거듭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양무리교회 최부옥 목사는 “지금 한국 교회와 성도가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인가”라고 물으며 “구도자의 한 사람이 될 나부터 모든 변화와 개혁을 위한 일에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부총회장 최기학 목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종교개혁을 완성했던 것”이라며 “지금도 그 개혁은 나부터, 우리 교회부터, 우리 교단부터의 정신 위에서 각자가 개혁을 위해 노력할 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나치보다 더 무서운 반(反)이민 정서” 영국 유대인들 독일 시민권 신청 급증

    “나치보다 더 무서운 반(反)이민 정서” 영국 유대인들 독일 시민권 신청 급증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투표 이후 고조되고 있는 반(反)외국인 정서를 우려한 영국 내 유대인들의 독일 시민권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 유대인들의 독일 시민권 신청자 수가 평소 수준에 비해 20배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2차 대전 전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한 유대인들이 후손들인 이들 영국 내 유대인은 독일 법규에 따라 독일 시민권 신청 자격을 갖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 약 400건의 독일 시민권 신청이 독일 당국에 의해 처리 중이며 추가로 시민권 신청이 유력한 100건의 문의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숫자는 브렉시트 이전 연평균 신청 25건을 크게 넘어서는 것이다.  영국 유대인난민협회(AJR)의 마이클 뉴먼 회장은 AJR이 수백 건의 이주 신청 문의를 요청한 상태라면서 2차 대전 뒤 유대인들의 영국 귀화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AJR이 이번에는 거꾸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국적 취득을 지원하고 나선 것은 다소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선조들을 그렇게 박대했던 나라의 시민권을 다시 신청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도전이 되고 있다”면서 독일 국적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했던 과거가 상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브렉시트 투표에 따른 충격이 누대에 걸친 적대감을 해소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했으며 상당수 유대인은 브렉시트 투표 뒤 자녀들에게 독일 시민권 회복 자격이 있음을 주지시켰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 유대계 주민은 “브렉시트는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며 우리에게 독일 국적 취득은 문을 여는 것”이라면서 “앞일이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만큼 문을 열어 두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기본법 116조 2항에 따르면 나치 정권의 박해로 인해 피신한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은 독일 시민권을 회복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박해를 피해 이주한 유대인 본인만 시민권 회복 자격이 있고 후손들에게는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중국에 녹아든 단 하나의 무슬림 ‘후이족’

    중국에 녹아든 단 하나의 무슬림 ‘후이족’

    지난달 10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허톈지구 피산현 건물 지하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현장을 수색하던 경찰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천취안궈 신장자치구 서기가 취임한 후 발생한 첫 테러 사건이어서 당국은 바짝 긴장했다. 중국 언론은 위구르인 테러리스트들이 신장의 새 공산당 지도부에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렇듯 중국에서 무슬림은 테러리스트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중국에 저항하기보다 동화를 택한 후이족(回族)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무슬림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국의 또 다른 무슬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후이족이 중국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했다. ●위구르는 ‘탄압’… 후이족은 ‘후원’ 이슬람교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예민할 정도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무슬림 여성은 얼굴에 베일을 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에게 기독교의 사순절처럼 내면적 성찰과 금욕의 시기인 라마단에 일부 공공장소에서 금식이 허용되지 않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종교적 압박에서 예외인 경우가 있으니 바로 후이족이다.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는 크게 이슬람교를 믿는 2개의 민족이 있다. 하나는 신장자치구에 있는 위구르족이고 다른 하나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이족이다. 대략 1000만명 정도로 튀니지 인구와 비슷한 규모의 후이족은 위구르족이 중국 정부의 강력한 감시를 받으며 갈등을 이어 가는 것과 달리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 때인 7세기 중동 지역인 페르시아와 아랍에서 이주한 상인의 후손이다. 이들이 후이족으로 불리게 된 것은 중국과의 무역에 종사하던 이들이 날씨가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중동으로 돌아갔다가 날씨가 풀리면 중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돌아올 회(回)’를 붙여 후이족으로 불리게 됐다. 이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중국과 서역의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 원나라 때는 서역의 천문학과 의학, 건축학, 음악 등을 중국에 전했다. ●‘중국 콜럼버스’ 명나라 환관 정화 후이족 출신 특히 후이족이 중국에서 주목받는 것은 최근 중국이 육·해상 신실크로드 경제권을 형성하고자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의 콜럼버스라며 당국이 집중 조명하고 있는 명나라 시대 환관 정화(鄭和)가 바로 후이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원래 정화의 성씨는 마(馬)씨였으나 일곱 차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넘나드는 대항해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황제가 정씨 성을 하사한 것이다. 터키계인 위구르족 대부분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모여 사는 것과 달리 후이족은 자신의 본거지인 닝샤후이족자치구에 모여 살지 않는다. 전체 후이족 중 닝샤후이족자치구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전체의 6분의1에 불과하다. 특히 중국 정부가 이들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들이 이슬람 종파 중에서도 온건 수니파에 속한다는 점도 고려됐다. 시아파가 이슬람 영토와 신념, 기구를 보호하고자 성전에 나설 수 있다는 지하드 개념이 강한 반면 수니파는 이 같은 생각이 비교적 약하다. 후이족 출신인 마퉁 북방민족대 교수는 “후이족이 믿는 종파는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전통 종교와 수니파가 합쳐진 하나피 학파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나피 학파는 튀르크족이 토착화한 이슬람으로 전통 이슬람과 이슬람 이전 중앙아시아의 전통과 관습, 특히 샤머니즘이 결합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율법을 강조하는 전통 이슬람과 달리 우애를 강조하고 성직자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생활 속에서 이슬람을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인지 중국 당국은 후이족의 정신적 고향인 퉁신(同心)을 포함해 닝샤후이족자치구에 모스크 설립을 많이 허가했다. 1958년 1900개에 불과하던 모스크는 현재 4000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마 교수는 덧붙였다. 마 교수는 “후이족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면서 “이들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전 세계에서 차별받고 피해를 당한 일반인과 달리 이슬람포비아의 희생자가 된 적이 없으며 가장 성공한 민족”이라고 말했다. ●호적 안 보면 한족과 구별 안 될 정도로 동화 하지만 후이족 다수가 온건한 종파에 속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위구르족과 다른 행동을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위구르족은 민족적으로도 터키계와 비슷해 그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고 이를 사용한다. 심지어 시간대도 다르지만 베이징 시간대에 맞춰 사용한다. 신장이라는 엄청난 크기의 고향도 있다. 이런 것이 중국의 주류 계층인 한족과 분명하게 구분되게 만든다. 이들은 주로 국영기업에서 일하더라도 고위직이 아닌 하찮은 일에 종사한다. 반면 후이족은 한족과 구분이 쉽지 않다. 후이족인지를 알려면 후커우(戶口·호적)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후이족 대부분은 페르시아나 몽골, 또는 동남아시아 상인의 후예로 수세대에 걸쳐 한족과 결혼하며 섞여 있어 중국인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위구르족과 달리 중국 전역에 퍼져 살고 있다. 후이족과 중국 사회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여러 방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이족 출신으로 유명한 정화를 비롯해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왕정웨이 전 주임도 후이족 출신이다. 국무원 산하 국가민족사무위원회는 중국의 민족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다. 이렇듯 후이족은 중국의 주류 계층인 한족과의 동화를 통해 중국 사회 곳곳에 진출했지만 항상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들은 1864~1877년 청나라의 지배에 맞서 둥간 반란을 일으켰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 마오쩌둥 사망 이후 양측은 화해했다. 드루 글래드니 포모나대 교수는 “후이족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정치 체제에서 이른바 회색 지역을 찾아내 공산당과 협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내면서 존재감을 이어 갔다. 중국 내 할랄식품 생산을 장악하는 한편 중국 국영기업과 중앙아시아, 또는 걸프 지역 기업 간의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내 최대 아랍어 학교는 후이족이 설립하고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졸업생 상당수는 통역사로 활약하고 있다. 중국 역시 후이족의 동화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이들에게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시행할 수 있도록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다. 샤리아는 코란 등에 나오는 이슬람의 기본법으로 이슬람공동체의 헌법이며 모든 삶의 정황에 적용된 법이다. 그동안 중국 법체계에서는 샤리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일부 모스크에서는 설교자이자 지도자인 이맘과 법원이 같은 중재 사무실을 이용한다. 이맘은 매주 샤리아법을 근거로 가족 간 분쟁을 조정한다. 중국 사법 체계가 개입하는 경우는 샤리아법으로 조정이 실패한 경우에 한해서다. ●시진핑 “불법집단 견제”… 다음 감시대상 될 수도 후이족이 중국 사회에 편입됐지만 이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 후이족은 자신만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고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후이족 전통 식당을 운영하거나 택시 기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마 교수는 “이슬람교가 후이족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후이족의 번성이 계속될지는 중국 정부의 결심에 달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7월 불법적인 집단의 침투에 확고한 방어막을 치겠다고 강조했다. 위구르족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강화되듯 후이족 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다음 감시 대상이 후이족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나이 벌써 182세 힘 좋지 몸값 착하지…내 이름은 전기차

    나이 벌써 182세 힘 좋지 몸값 착하지…내 이름은 전기차

    세계 전기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 32만대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팔린 것은 1%가 채 안되는 2800대 수준. 반면 중국은 글로벌 판매량의 38%, 미국은 23%를 차지한다. 두 나라가 치열하게 전기차 육성 정책을 펼쳐 온 결과다. 우리 정부도 지난 7월 조선·해운 등 주력 품목이 휘청이는 수출을 구원할 유망 신규 수출 품목으로 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는 전기차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스코틀랜드서 가솔린보다 30년 먼저 태어나 여러분 안녕? 나는 180년 이상의 유서 깊은 ‘전기차(EV·electric vehicle) 마을’에 사는 멋쟁이 차 ‘로버트’라고 해. 1834년 우리 전기차를 처음 만든 스코틀랜드 기술자 로버트 앤더슨 할아버지의 이름을 본떠 엄마가 지어 주신 이름이야. 친환경 미래차라고 불러서 생긴 지 얼마 안된 차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저쪽 ‘가솔린차 마을’보다도 30년이나 역사가 더 깊지. 당시 전기 모터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축전기 기술 덕분이야. 1910년대에는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 ‘마담차’로 불리기도 했어. 미국에서는 당시 전기차 충전소가 생겨나서 한때 3만대가 굴러다닐 정도로 잘나갔지. 하지만 1920년대 들어 미국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면서 가격이 싸고 어디서나 구하기 쉬운 힘 좋은 가솔린차를 대량 생산한 헨리 포드 할아버지 이후로 100년 가까이 잊혀진 존재가 됐지. 요즘 이상기후와 환경오염 때문에 고생이 많지? 이미 20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육지가 사라지고 유해 배기가스를 내뿜는 휘발유, 경유차들이 크게 늘어 대기오염이 심각하다더군. 지난해 12월에는 전 세계 정상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도 봤어. 지구도, 사람도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자원이 고갈되지 않으면서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고 후손들이 대대손손 생활과 이동에 불편함 없이 계속 차를 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게 내가 다시 등장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내 심장은 배터리… 피부는 탄소섬유·합금소재 왜 내가 미래산업을 이끌 친환경차로 주목받는 줄 알아? 그건 내 몸의 구성과 움직이는 원리를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어. 내연기관 자동차들은 휘발유나 경유 같은 연료를 태워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바꿔 주는 엔진으로 움직이잖아. 우리의 구동 방식은 완전히 달라. 들어가는 부품도 비교적 단출하지. 가장 핵심은 배터리(대용량 전지)야. 외부 전력으로부터 전기를 저장하고 차에 전력을 공급하지. 용량 단위는 주로 ㎾h를 써. 시간(h)당 얼마나(㎾)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느냐는 거지. 이 숫자가 클수록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지만, 차체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마냥 키울 수도 없어. 용량은 크되 덩치는 작게 하는 게 기술이야. 배터리는 충전 성능이 떨어지면 주행거리가 짧아져 이용가치가 떨어져. 그래서 강추위와 무더위에 견딜 수 있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어도 오래 운행될 수 있도록 고효율로 개발하는 게 중요한 과제지. 내 몸이 내연기관차들보다 탄소섬유나 복합플라스틱, 알루미늄 합금 같은 경량 소재를 더 많이 쓰는 이유도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서야. 차가 출발할 때를 상상해 봐. 에너지가 ‘배터리→인버터→모터→감속기→차바퀴’의 순서로 이동하지. 먼저 차에 시동을 걸면 배터리가 전기를 발생시켜 인버터로 보내. 인버터는 고전압인 직류의 배터리 전류를 전기차 모터에 적합한 교류로 전환해 줘. 인버터는 모터 속도와 토크(차량을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힘)를 제어하는 역할도 하지. 토크가 높으면 높을수록 차의 속도는 빨라져. 인버터에는 차의 주행과 제동 정보가 다 들어와. 이 정보를 이용해 가속이나 감속을 할 때 적정하게 모터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기를 조절해 주는 거지. ●현대차 아이오닉 최대 토크는 3500cc 맞먹어 모터는 인버터에서 받은 전기에너지를 바퀴가 돌 수 있도록 운동에너지로 바꿔 줘. 이후 감속기가 토크를 높여 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거지. 배터리가 가솔린차의 연료탱크라면 모터는 엔진이라고 보면 돼. 내연기관차들은 가속페달을 밟으면 서서히 최대 토크에 도달하지만 나는 곧바로 최대 토크에 도달하기 때문에 가속력이 좋지. 1600㏄ 아반떼급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의 최대 토크(295㎚)는 3500㏄ 급에 맞먹어. 치고 나가는 힘이 좋다는 뜻이지. 동원력과 구동방식이 달라서 제원 표시 단위도 달라. 내연기관 자동차는 출력과 토크를 각각 hp, ㎏·m로 표기하지만 난 ㎾, ㎚를 사용해. 나의 비장의 무기는 감속할 때 발현되지. 무슨 얘기냐고? ‘회생제동 장치’ 얘기를 하는 거야. 달리던 차를 세우려면 속도를 줄여야 하잖아. 당연히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겠지? 차는 관성이 있어서 설 때까지 앞으로 나아갈거야. 이때 신기한 일이 벌어지지. 가속할 때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 주는 ‘전동기’ 역할을 했던 모터가 거꾸로 감속(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주는 ‘발전기’로 변신해서 차가 멈출 때까지 발생한 전기를 배터리에 다시 충전해 줘. 즉, 멈출 때 발생하는 에너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전기에너지로 바꿔 주는 셈이야. 에너지 효율이 당연히 높아지겠지? 회생제동 기능이 있는 전기차는 원래 주행거리보다 20% 더 달릴 수 있어. 이 모터를 전동기와 발전기 둘 다 가능하도록 제어해 주는 게 인버터이기도 해. ●서울~부산 왕복때 유지비 가솔린의 3분의1 다들 내가 얼마나 경제적일까에 관심이 많아. 나의 가장 큰 매력은 기름값 걱정 없고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거지. 전기차 ‘아이오닉’과 휘발유차 ‘아반떼’를 비교해 볼 게. 같은 환경에서 서울~부산(총 800㎞)을 하루 동안 왕복한다고 쳐 봐. 아이오닉을 완속(4~5시간, ㎾h당 평균단가 115.5원) 없이 급속(25분, 313원)으로 100% 전기 충전했을 때 유지비용은 2만 4549원이야. 아이오닉(연비 10.2㎞/㎾h)은 1회 완전 충전으로 191㎞를 주행할 수 있어. 반면 아반떼(연비 ℓ당 13.7㎞)는 휘발유 가격을 ℓ당 1400원으로 잡을 경우 왕복하는 데 8만 1752원이 들지. 아이오닉의 3배가 넘는 금액이지.연간 1만㎞를 동일 조건으로 뛴다면 아이오닉은 전기 충전요금으로 31만원을, 휘발유 아반떼는 102만원을, 경유 아반떼는 67만원을 기름값으로 쓰게 돼. 물론 한여름에 에어컨을 가동하는 등 변수가 생기면 전기차 비용은 더 나갈 수도 있지. 전기차는 최고속도가 시속 130~165㎞야. 한 번 완전 충전에 주행 가능한 거리는 상온일 때 132~191㎞, 저온(영하 6.7도)일 때 75.5~151㎞를 달려. 환경부 전기차 충전소 홈페이지(www.ev.or.kr)에 들어가면 원하는 차종별 유지비용을 계산할 수 있으니 참고해. ●몸값은 보조금 지원받아 가솔린보다 더 경제적 내 몸값이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얘기들이 많아. ‘쏘울’(준중형)만 봐도 휘발유차는 1600만원대면 장만할 수 있는데 전기차 값은 4000만원이 넘거든. 근데 요즘 정부에서 나를 사는 데 대한 지원을 팍팍 해 주고 있어. 실제 내는 차값을 따져 보면 왜 2~3년만 타면 본전을 뽑는다는지 알게 될 거야. 올해 출시된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예를 들어 볼 게. 차값은 4000만원대인데 정부 보조금(국비 1400만원, 지방자치단체 최대 800만원)과 세금 감면(취득세 140만원, 개별소비세 200만원, 교육세 60만원) 혜택을 모두 받으면 휘발유차보다 오히려 더 싸지지. 이해하기 쉽게, 전기차 아이오닉과 등급이 가장 비슷한 아반떼 휘발유차 가격이 1800만원이야. 아이오닉을 서울에서 사면 2100만원의 구매 보조금을 받아 1900만원이면 살 수 있어. 각종 세금이 붙는 아반떼 가격은 1900만원 이상 올라갈 수도 있지. 내년에는 1000만원 이하의 저가 초소형 전기차가 개발될 예정이야. 1인 가구 증가와 근거리 이동이 잦은 현대인을 위한 맞춤형 전기차로 가는 거겠지. 테슬라는 무선충전 기술을 개발 중이라던데. 조만간 충전시간이 더 짧아진 충전 인프라가 곳곳에 깔리고 주행거리가 훨씬 더 길어지면 우리 더 자주 만날 수 있겠지?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생태 돋보기] 효도의 진화, 세포부터 효도하라/정길상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장

    [생태 돋보기] 효도의 진화, 세포부터 효도하라/정길상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장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문득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초를 흘려보내는 동안 도리어 전화를 받게 됐다. 이 나이를 먹고도 어머니의 사랑을 더 받아야 하나 보다. 어린이의 육체적·감정적·사회적·지능적 발달에 부모의 역할은 아주 크다. 생물에서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보호에 관한 사례는 많다. 포유류는 진화적 적응을 위해 임신으로 태아를 뱃속에 간직하고 모유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끼를 먹이고 보호한다. 어린 새는 날기에 턱없이 부족한 깃털을 가져 대부분의 시간을 둥지에서 보낸다. 어린 새들을 먹이고 기르는 것은 온전히 부모 새의 몫이다. 어류는 수컷이 입속에 알을 품어 보호하는 습성이 있는 종류가 많다. 벌이나 개미와 같은 곤충은 군체 내의 애벌레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이런 것들을 보면 효도는 생물의 기본적인 생존 방식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와 반대로 후손이 부모 세대를 돌보거나 돕는, 우리의 효도와 비슷한 현상은 집단을 이뤄 사는 몇몇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벌, 개미류 외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최근 연구를 통해 공개됐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엄마들이 태아로부터 세포를 전달받는다는 것이다. 임신기에 엄마의 영양분과 세포가 탯줄을 타고 태아에게 갈 뿐만 아니라 아기의 세포가 엄마에게 옮겨간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엄마와 태아 사이에는 진화생물학적으로 모유 등의 자원을 놓고 일종의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태아는 엄마로부터 많은 자원을 기대하지만 엄마는 이후 태어날 가상의 자손에게 자원을 분배하길 원한다. 태아가 자신의 세포를 엄마에게 주는 것은 태아가 엄마로부터 받은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진화적인 차원의 시도가 아닐까. 이 세포가 산모의 체내에서 줄기세포 역할을 한다. 산모가 임신과 출산에서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 유방암과 같은 여성 질환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태아가 자신을 낳아 준 엄마에 대한 세포 수준의 효도로 볼 수 있다. 반면 엄마는 원래 자기 세포가 아니기에 중년 여성에게 자가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부작용도 가끔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세포 수준에서 엄마와 아이를 잇는 어마어마한 가교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효도에 대한 사상은 서양보다 동양에서 발달해 왔다. 국제화 시대에 살면서 시들어 가는 것 중 하나가 효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언제 더웠냐는 듯 갑자기 쌀쌀해졌다. 젊은 시절과 달리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진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그동안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덮어 보려 한다.
  • [MLB] ‘저주’는 한 팀만 풀린다

    [MLB] ‘저주’는 한 팀만 풀린다

    2016시즌 월드시리즈(WS)는 ‘염소의 저주’ 시카고 컵스와 ‘와후 추장의 저주’ 클리블랜드의 한풀이 끝장 대결로 펼쳐지게 됐다. 컵스는 23일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미프로야구(MLB)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7전4승제) 홈 6차전에서 LA 다저스를 5-0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컵스는 시리즈 4승 2패로 1945년 이후 71년 만에 대망의 월드시리즈(7전4승제)에 올랐다. 컵스는 오는 26일부터 적지인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아메리칸리그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WS 우승에 도전한다. 이날 컵스 선발 카일 헨드릭스는 7과3분의1이닝을 단 2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주포 앤서니 리조는 2안타 1홈런, 윌슨 콘트레라스도 솔로포로 공격의 선봉에 섰다. 챔피언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는 투타에서 활약한 존 레스터와 하비에르 바에스가 공동 선정됐다. 1988년 우승 이후 한 번도 WS에 나가지 못한 다저스는 현역 최고의 좌완 클레이턴 커쇼를 내세워 대역전을 꿈꿨으나 힘이 모자랐다. 커쇼는 5이닝 동안 홈런 두 방 등 7안타 5실점(4자책)으로 무너졌다. 2008년 빅리그에 데뷔한 그는 3차례나 사이영상을 받는 등 압도적인 구위를 과시했고 올 시즌도 부상 속에서 12승 4패, 평균자책점 1.69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가을에도 작아졌다. 역대 포스트시즌 통산 4승 6패, 평균자책점 4.39의 평범한 성적에 그쳤던 커쇼는 혼신을 다했지만 올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벌써 팬들의 시선은 ‘염소’와 ‘와후 추장’의 저주 꼬리표를 떼지 못한 컵스-클리블랜드의 한 판 승부에 쏠린다. 염소의 저주는 1945년 컵스의 열성팬인 농장주 빌리 시아니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디트로이트와의 WS 4차전이 열린 리글리필드에 ‘머피’라는 이름의 염소를 끌고와 표까지 구매했으나 관중들이 냄새가 난다고 항의해 쫓겨났다. 이때 시아니스는 “망할 컵스는 더이상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고 공교롭게도 컵스는 이후 WS조차 나서지 못했다. 그동안 구단은 시아니스의 후손과 염소를 구장에 초청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푸드 파이터’ 5명이 18㎏의 염소 고기를 먹어치우는 퍼포먼스까지 열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클리블랜드도 마찬가지다. 1948년 팀의 두 번째 우승 이후 무려 68년간 WS 정상을 밟지 못했다. 1951년 팀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의 색깔을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고 표정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WS 정복에 줄곧 실패했다. 한 팀은 저주를 풀고 다른 한 팀은 저주를 이어 간다. 과연 어느 팀이 웃을까.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순수·대중성 사이 고심한 17세기 비파 명인 송경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순수·대중성 사이 고심한 17세기 비파 명인 송경운

    조선 전기만 해도 전문 연주자가 수반되는 음악의 수요층은 왕실과 양반사대부에 한정됐다. 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부를 축적한 중인이 중요한 음악 소비자로 떠오르고, 서민들도 가세하면서 음악시장이 넓어진다. 상업화의 진전으로 예술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음악가가 줄지어 나타났다. 비파연주자 송경운도 당대 ‘스타 플레이어’의 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송경운을 다룬 문학 작품 한 편을 소개한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음률에 밝았는데, 아홉 살에 시작한 비파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경지에 이르러 열두세 살 무렵에는 벌써 이름이 경향에 널리 알려졌다. 연주 솜씨뿐 아니라 ‘키가 훤칠하게 크고, 얼굴은 풍만하면서 희며, 눈은 가늘면서도 별처럼 밝고, 수염은 아름다우며, 말도 잘했으니 참으로 호남아’라는 것도 인기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음악시장 확대로 ‘스타 플레이어’ 등장 송경운이 17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출생 연대도, 사망 연대도 알려지지 않는다. 생몰 연대는 고사하고, 도대체 실존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적 관심은 크게 불러일으킨 인물이지만 정사(正史)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쓰인 단편 ‘송경운전’의 지은이는 서귀 이기발(1602~1662)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해 벼슬을 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진격했으나, 청나라와 화약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전북 전주로 돌아가 평생을 은거한 인물이다. ‘송경운전’은 이기발의 후손들이 유고를 모아 책으로 꾸민 ‘서귀집’(西歸集)에 실렸다. 서귀는 송경운이 당대 얼마나 명성을 떨친 인물이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예술인들의 지극한 경지를 칭찬할 때 ‘어째 송경운의 비파 같네’라고 했고, 초동이나 목동의 무리가 모여 놀 때도 누가 재미있는 말을 하면 ‘어째 송경운의 비파 같네’라고 했으며, 말을 배우는 두어 살짜리 아이가 자기와 관계없는 것을 가리키며 물어도 ‘어째 송경운의 비파 같네’라고 했다. 송경운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게 대개 이러했다.’ 한마디로 ‘송경운’이란 희한하거나 지극한 것의 대명사였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귀가 서울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던 인물의 전기를 쓴 것은 송경운 또한 정묘호란 이후 전주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학계는 송경운이 피란지에 눌러앉은 것을 두고, 장악원에 예속된 신분이었음에도 복귀를 거부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서울에서 부와 인기를 누리는 노비로 살기보다 시골에서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는 것이다. 송경운은 전주 완산성 서쪽에 살았는데, 그의 집은 언제나 북적였다. 손님이 오면 송경운은 성심성의껏 연주하여 만족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신분이 높은 사람뿐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똑같이 성심껏 연주했다. 20년동안 한결같았으니 전주사람들은 감복하여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명성이 그대로 전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송경운전’이 돋보이는 것은 드물게 주인공의 음악관(音樂觀)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옛가락 추구하던 그의 음악, 당대 유행 곡조도 연주 ‘비파는 옛가락과 요즘 가락이 다른데, 지금은 대개 요즘 가락을 숭상한다. 하지만 나는 홀로 옛가락에 뜻을 두어 왔다. 무릇 소리를 낼 때 옛가락에 의거하면 요즘 가락이 끼어들지 못하고, 내 마음도 흡족하여 가히 음악답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나의 연주를 듣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인지라 이런 음악에 즐거워하지 않더라. 음악을 듣고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싶다. 이 때문에 특별히 곡조를 변화시켜 요즘 가락을 간간이 섞어서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송경운의 음악적 이상은 옛가락에 바탕한 느리고 고상한 음악이었지만, 별다른 음악적 교양이 없는 전주의 보통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송경운은 자신의 음악관만 고집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아마도 당대 유행하던 빠른 템포의 새로운 음악도 레퍼토리에 포함시켰음을 짐작게 한다.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비파 명인의 존재를 후세에 알려준 것만으로도 ‘송경운전’의 가치는 작지 않다. 나아가 조선시대 음악가들도 오늘날의 음악가들 만큼이나 순수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심했음을 알게 한다. ‘송경운전’은 음악가의 전기이지만, 동시에 한 시대의 음악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송경운도 송경운이지만 서귀가 일구어낸 예술적 성과 역시 높이 평가하고 싶다. dcsuh@seoul.co.kr
  • 곡성에서 379년 된 여성 미라 발견…머리카락 그대로 남아

    곡성에서 379년 된 여성 미라 발견…머리카락 그대로 남아

    전남 곡성에서 379년 된 여성 미라가 발견됐다. 전북 남원문화원은 지난 17일 곡성군 근촌리 야산에서 광주 이씨 문경공지파 덕열(德悅)의 부인인 청풍 김씨(淸風 金氏)의 미라가 발견됐고 21일 밝혔다. 미라는 후손들이 이장(移葬)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미라는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문중 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1637년 71살의 나이로 숨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해·제주 中불법조업 단속 강화

    서해뿐 아니라 남해와 제주 수역에서도 기승을 부리는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기 위해 남해어업관리단이 내년 4월에 신설된다. 또 동·서·남해를 아우르는 단속망을 더 촘촘히 짜기 위해 대형 국가어업지도선 4척을 새로 건조해 남해에 배치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20일 어업관리단 창단 50주년을 맞아 이런 내용의 ‘어업관리 역량 강화를 위한 미래비전’을 발표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가운데 57%는 제주·남해 수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5만 2000척에 달한다. 해수부는 실효성 있는 대응체계 구축을 위해 기존 동해어업관리단과 서해어업관리단 외에 내년 4월 남해어업관리단을 추가해 3개단 중심으로 단속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1260억원을 투입해 1500t급 지도선 4척을 2018년 8월까지 건조한다. 이렇게 되면 동·서해에 배치된 지도선 각 13척, 11척과 별개로 남해 수역에서만 지도선 10척이 배치되는 것이다. 14개로 나눴던 해역 관리구역은 18개로 확대 조정돼 공백 해역이 더 효율적으로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부터 한·중 어업협정 운영과 중국 어선의 불법 어업 관리를 위한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공동단속센터’ 운영을 강화하고 어업 감독 공무원의 특별사법경찰권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어업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어업조정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최근 수산자원 고갈과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국민 우려를 줄이고, 우리 후손들도 지속가능한 어업이 가능하도록 어업관리단 역량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문화마당] 기록과 기억/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기록과 기억/김재원 KBS 아나운서

    어린 시절 제일 힘든 숙제는 매일 쓰는 일기였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하루의 삶에서 어떤 사건을 서술하고 그 느낌이나 깨달음을 적어도 500자 정도는 풀어 써 줘야 한다는 것은 무척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일기는 하루를 성찰하고 기록을 남기는 훈련으로는 최고의 도구다. 그 시절 기록의 추억이 있기에 우리는 어른이 돼서도 필요한 것을 기록해 놓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6학년 때 쓰던 일기장을 갖고 있다. 그 기록은 기억을 돕는다. 1970년대를 돌아보면 격동의 세월이지만 동심의 구석에는 나의 어린 인생이 여전히 새록새록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일기장에는 짝과 책상에 금을 긋고 지우개가 넘어 왔네, 어쩌네 하며 토닥거리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그때 그 짝은 지금의 아내다. 그 기록이 그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기록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이다.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이다. ‘후일에 남길 목적’과 ‘의식 속에 간직한다’는 말이 마음에 닿는다. 인생에서 기록과 기억이 중요하듯 사회에서도 그 중요성은 결코 덜 하지 않다. 최근 본 영화 두 편이 기록과 기억의 필요를 되새기게 했다. 영화 ‘물숨’은 해녀들의 이야기다.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이 암 선고 후에 삶을 돌아보다 고향 아낙들의 이야기를 7년 동안 기록한 영화다. 물숨은 해녀들이 물속에서 참을 수 있는 숨의 길이다. 물숨은 타고나는 것이라 일종의 계급이 된다. 해녀들의 바다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계급이 있고, 애씀이 있고, 보상과 욕심과 중독이 있다. 작업을 하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올라가려는 해녀들에게 꼭 전복이 보인단다. 그 전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인생이다. 하늘이 내린 물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10대에 바다 삶을 시작해 80이 넘도록 바다를 넘나들다 결국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그녀들의 애잔한 인생은 우리가 기록해야 할 유산이다.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2009년 엔진 고장으로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한 비행기 기장 설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영화다. 탑승객 155명 모두 생존한 사고였지만 설리 기장은 잘못된 선택으로 승객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었다는 이유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는다. 그 과정은 재난 사고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마지막 한 사람의 탈출까지 돕는 기장의 모습은 우리의 기억을 자극해 막힌 눈물샘을 터뜨린다. 자꾸 쓰러지려는 우리의 기억을 도로 세워 놓는다. 우리는 어쩌면 기록할 것을 기록하지 못하고 산다. 기억할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기록과 기억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의무일 때도 있다. 현재진행형인 정치, 문화, 경제, 사회의 모든 일들이 100년 후쯤 근대의 역사로 기록될 텐데, 후손들이 2016년을 살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말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서라도 정치인들의 언행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란다. 기록은 분명 영원을 기약하는 일이다. 하지만 기억은 우리의 삶으로 그 한계가 주어진다. 얼마 전 생을 달리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연주도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만 우리도 결국 머지않아 그를 따라 사라질 존재가 아니던가. 그래도 기록은 우리의 역사 속에, 기억은 나의 삶 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어떤 기록과 기억은 지금도 우리의 선택과 의지를 기다리고 있다.
  • 서울시의회 이정훈의원 ‘고덕원정대 행사-고덕 어울림축제’서 주민과 소통

    서울시의회 이정훈의원 ‘고덕원정대 행사-고덕 어울림축제’서 주민과 소통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이정훈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동1)은 2016년 10월 15일 ‘서울둘레길 고덕 원정대’ 행사와 이어진 ‘2016 고덕 어울림 축제’에 참여해 고덕산과 고덕천에 둘러싸인 강동 지역의 주민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둘레길 고덕 원정대’는 서울둘레길 제3코스 고덕산 구간에서 청소년들이 전문가와 함께하는 탐사를 통해 지역의 생태, 문화, 환경에 대해 배우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되었으며 이번 원정대는 중·고등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서울 암사동 유적지에서 출발하여 서울둘레길 고덕산 코스를 답사 후 도착지인 방죽근린공원에서 원정대 인증과 함께 폐회하였으며, 이정훈 의원은 청소년들과 함께 고덕원정대 활동을 함께 했다. 이후 이어진 ‘2016 고덕 어울림 축제’는 학생,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하여 수변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강일동 고덕천 수변무대에서 개최됐다. 고덕어울림축제는 산과 한강, 시내로 둘러싸인 강동지역에서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공존한다는 의미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공연에 참여한 대부분 뮤지션들도 강동구 출신 청소년동아리와 청년동아리, 직장밴드 등 이 주류를 이루어 주민 참여형으로 변모해서 의미가 매우 깊었으며 주민들의 큰 호응속에 공연이 성황리에 끝났다. 이정훈 의원은 “서울 동부지역의 관문인 강동지역은 한강과 선사유적지가 위치해 있으며 일자산, 고덕산과 고덕천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위치한 도시이며, 우리 후손들에게 잘 보존된 상태로 물려줘야할 생태자원이다”라며, “앞으로 이 지역에서 살아가게 될 청소년들이 고덕산과 고덕천을 가꾸고 사랑할 계기로서 이런 행사는 꾸준히 개최되어야 하며, 더욱 적극적인 시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울시의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겠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와 위대한 유산

    [양진건 유배의 뒤안길] 유배와 위대한 유산

    유산이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나 앞 세대가 물려준 문화를 말한다. 대부분 유배인들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었다. 유배로 풍비박산이 되면서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판에 물려줄 재산이란 상상하기 어려웠다. 유배 중에도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던 유배인도 있었다. 명종 때 을사사화로 성주에서 유배 생활하던 이문건(李文楗)은 이전에도 서울 및 경기 등 각지에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유배 중에도 괴산 지역의 전답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경작지를 확대했다. 또한 주민들에게서 부세를 받아 대신 관에 납부하고 중간에서 차액을 남기는 방납에도 관여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노비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한 명종 때 권세를 휘둘렀던 진복창(陳復昌)은 말년에 삼수에 유배를 갔는데 유배인 신분에도 불구하고 유배지 백성들의 논밭을 빼앗고, 토호들에게 뇌물을 요구하는가 하면 직접 형틀을 설치해 백성들을 폭행까지 하면서 재산을 만들려고 광분했었다.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쓴 ‘위대한 유산’이 있다. 이 소설의 관심은 ‘위대한 유산’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상속하려 했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재산이다. 막대한 재산으로 훌륭한 신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사의 가치를 재산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배금주의에 대한 풍자였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물질적 사치로 그의 삶을 탕진하고 낭비한다. 그 낭비의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정신적 공황 상태 역시 깊어진다. 그러나 물질적 파산과 신체적 몰락의 순간에 주인공은 각성하며 변화한다. 결국 그가 받은 ‘위대한 유산’은 정신적 성장과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신뢰였다. 유배인 정약용(丁若鏞)에게는 재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자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한 글자는 검(儉)이다.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又示二子家誡)은 조선판 ‘위대한 유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 황동규 선생은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라는 시를 통해 소설가였던 부친 황순원 선생의 유산을 공개했었다. “부동산은 없고 / 아버님 유산으로 내리신 동산 상자 한 달 만에 풀어보니 / 마주앙 백포도주 5병 / 호주산 적포도주 1병 / 안동소주 400㏄ 1병 / 짐빔 반병 / 폼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 / 잿빛 양말 4켤레 /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 유산이라곤 이것이 전부였다. 많은 재벌이 경영권과 유산 등을 둘러싸고 서로 편을 갈라 다툼을 했고 이 ‘위대한 재산’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노사분규도 재산 싸움의 다른 형태다. 이 때문에 등골이 휘는 것은 나라와 젊은이들이다. 제주 유배인 김정희는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留不盡之以還朝廷),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라(留不盡之財以還百姓)”고 했다. 있기에 추해지고, 없기에 위대해짐을 유배인들은 말한다. 문제는 위대한 재산이 아니라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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