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후손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성실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특보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오송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계좌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351
  • [서울포토] 2ㆍ28 민주운동 주역 후손과 함께 묵념하는 문 대통령

    [서울포토] 2ㆍ28 민주운동 주역 후손과 함께 묵념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ㆍ28 민주운동 첫 기념식 참석에 앞서 대구 달서구 2·28 민주운동기념탑 광장을 찾아 2·28운동, 3·15의거, 4·19혁명, 5·18운동 관계자 및 당시 참여했던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묵념하고 있다. 오른쪽은 2ㆍ28 민주운동 주역 후손 수성여고 여승윤 양. 2018. 02. 28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2·28 민주운동기념탑 광장서 묵념하는 문 대통령

    [서울포토] 2·28 민주운동기념탑 광장서 묵념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ㆍ28 민주운동 첫 기념식 참석에 앞서 대구 달서구 2·28 민주운동기념탑 광장을 찾아 2·28운동, 3·15의거, 4·19혁명, 5·18운동 관계자 및 당시 참여했던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묵념하고 있다. 오른쪽은 2ㆍ28 민주운동 주역 후손 수성여고 여승윤 양. 2018. 02. 28 청와대사진기자단
  • 대림산업, 관계사와 협업해 ‘5대 나눔’ 전사적으로

    대림산업, 관계사와 협업해 ‘5대 나눔’ 전사적으로

    대림은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창출한다’라는 한숲정신(창업 철학)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들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문화나눔, 행복나눔, 사랑나눔, 맑음나눔, 소망나눔 등 5대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대림의 사회공헌 활동은 그룹 관계사의 역량을 활용, 본사를 포함한 전국의 현장에서 지역사회와 밀착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펼쳐진다.● 문화나눔 대림은 현대 미술과 디자인을 전시하고 있으며 국내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02년에 개관한 대림미술관은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출발해 현재는 사진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소개하며 서촌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대림미술관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란 비전으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2015년에는 용산구 한남동에 ‘디뮤지엄’(D MUSEUM)을 개관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젊은 크리에이터들을 소개하는 공간인 ‘구슬모아 당구장’을 2012년 개관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대림은 대림미술관과 함께 문화적으로 소외된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 및 체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매년 10회 이상 400여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시 관람과 창작 활동 등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행복나눔 대림은 임직원들이 소외 계층의 주거 시설을 개선해주는 ‘행복나눔’을 2005년부터 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국 사랑의 집짓기 연합회 서울지회와 손잡고 서울·수도권 노후주택 밀집 지역과 복지단체 시설을 개선하는 ‘사랑의 집고치기’ 봉사활동을 했다. 이 활동은 그룹 내에서 건설업을 영위하고 있는 고려개발, 삼호, 대림코퍼레이션도 함께 했다. 대림의 집 고치기 활동은 건설업체 직원들의 재능을 살려 벽지·장판 교체뿐만 아니라 단열작업과 LED 조명 교체 등 에너지 효율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복지단체 시설에는 휠체어를 타고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 내부를 무장애 공간으로 조성해주고 있다. ●사랑나눔 ‘사랑나눔’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찾아 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는 활동으로 대림산업은 전국 곳곳의 보육원, 요양원, 복지회 등과 연계해 소외계층에 도움을 주고 있다. 본사에서는 소외 계층을 위한 빵 만들기, 동남아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을 위한 티셔츠·신발 제작, 유기견 돌보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 건설현장에서는 현장직원들로 구성된 한숲봉사대원들이 지역사회의 복지단체를 찾아 도움을 주고 있다. ●맑음나눔 대림은 맑고 깨끗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맑음나눔’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본사 및 전국의 현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맑은나눔 봉사대’를 창단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10개 권역에서 관할 지자체와 연계해 ‘1산, 1천, 1거리 가꾸기’를 진행 중이다. 2005년부터는 본사 임직원들과 가족들이 동참해 분기별로 남산 가꾸기 환경정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활동에는 협력사와 그룹 관계사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소망나눔 대림산업은 자활이 필요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물품·성금을 기탁하고, 장학재단을 통해 대학생과 교수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소망나눔’을 하고 있다. 대림은 지난 2004년부터 사내의 중고 PC를 자활후견기관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기증해왔다. 기증한 PC는 국내 장애인과 자활근로자들에게 지원되고 있으며 일부는 해외 저개발국의 정보화 교육 지원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창립 50주년인 지난 1989년에는 장학·학술지원을 위한 비영리 공익재단인 대림수암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해 대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생채기 난 가리왕산 복원… ‘환경올림픽‘ 금빛 마무리를

    생채기 난 가리왕산 복원… ‘환경올림픽‘ 금빛 마무리를

    강원도 산골마을 평창·강릉·정선을 뜨겁게 달궜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역대 최대 규모로 흥행 최고, 문화·정보통신기술(ICT)의 새로운 지평, 남북 단일팀으로 평화올림픽 실현 등 성공 올림픽으로 박수를 받으며 지난 25일 폐막됐다. 다음달 9~18일 동계패럴림픽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대회 이후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 볼 때다. 특히 올림픽의 5대(문화, 환경, 경제, 평화, ICT) 목표 가운데 우선했던 환경올림픽의 사후 관리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탄소 제로(0)를 목표로 실행한 환경올림픽 정책들은 어느 정도 정착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정선 가리왕산 자연자원의 훼손과 복원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최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국민들은 훼손된 환경의 사후관리와 복원이 어떻게 이뤄질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환경의 복원과 관리는 올림픽 성공 이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찍이 환경을 스포츠, 문화와 함께 올림픽의 3대 정신으로 선언했다. 2000년부터는 아예 올림픽 개최 희망 도시에 환경 관련 계획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1994년 노르웨이 동계릴레함메르대회 때부터 환경 올림픽이 적용되면서 환영받았고 2010년 캐나다 밴쿠버동계올림픽 때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을 버려진 폐목재로 지어 모범이 됐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동계올림픽 때 주택지역 가까이와 희귀 습지에 경기장을 지어 최악의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행사라는 비난을 받으며 올림픽에서 환경이 주요 실천 덕목이 됐다.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25.4% 감축 27일 강원도와 평창조직위원회 등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환경은 우선됐다. 평창조직위는 역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탄소 배출 제로를 실천했다고 자부한다. 올림픽을 계기로 청정 강원도가 녹색성장을 선도할 산업인프라도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자연환경 훼손이 아니라 지역의 자연환경을 더 친환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환경올림픽을 위해 저탄소 올림픽을 실천했다. 건설·교통·숙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159만t은 자체 노력으로 감축하거나 외부로부터 배출권을 기부받아 상쇄시켜 제로화했다. 자체 감축은 경기장 건설에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전체 배출량의 25.4%인 40만 5000t을 줄였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와 강릉 아이스아레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 신설된 6개의 경기장은 태양광과 지열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축물로 지어졌다. 경기장들은 설계부터 시공, 유지관리 등 전체 공정에서 자체 에너지 소모량의 12%를 감축하며 친환경 건축물 인증까지 받았다. 탄소배출권은 거래가 가능한 국내외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 등을 통해 배출권을 기부받아 상쇄시키며 탄소 배출 제로화를 추진했다. 서울 상암 지역과 같이 1990년대까지 강릉 지역 비위생매립지로 사용되며 버려지다시피 한 터는 아이스아레나 등 주요 빙상경기장들이 들어선 올림픽파크로 변신했다. 환경올림픽의 취지에 꼭 맞아떨어지며 올림픽파크는 환경올림픽의 상징이 됐다. 가까이 경포호수와 경포대, 녹색도시체험 시설까지 있어 상징성은 배가됐다. 해발 1561m의 가리왕산 환경 훼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선 알파인스키장은 남녀 코스를 별도로 건설하려던 당초 계획을 접고 하나로 통합했고, 스타트 지점도 당초 중봉(해발 1420m)에서 하봉(1370m)으로 정하면서 산림 훼손을 33㏊에서 23㏊로 30% 줄이는 효과도 얻었다.●훼손된 가리왕산 산림 55% 복원 계획 우수한 식생과 동식물 서식처가 최대한 보전될 수 있도록 주목 등 주요 식생 군락지 7곳을 우회하며 건설했다. 훼손된 산림 면적의 2배 이상을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대체 지정(584㏊)하고 백두대간 훼손지역 대체림 조성과 경기장 진입도로 주변에는 경관림(500㏊)도 조성했다. 대회 이후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산림의 55%는 다시 복원한다는 계획까지 약속했다. 서울~강릉 간 KTX 경강선과 평창 알펜시아 인터컨티넨탈호텔은 환경성적표지인 탄소발자국 인증을 마쳐 환경올림픽에 일조했다. 탄소발자국은 제품 및 서비스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하는 제도다. KTX 경강선의 탄소 배출량은 승용차를 이용할 때보다 87%가 적고 알펜시아호텔도 일반 호텔보다 6%를 감축했다. KTX 경강선은 자가용 등 차량을 이용할 때와 비교해 6500t의 탄소 배출량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회 기간 한전에서 무상 지원받은 전기차 152대를 투입해 환경올림픽을 실천했다. 이를 위해 올림픽 개최도시인 평창, 강릉, 정선 지역에는 27대의 전기자동차 충전기가 설치됐고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곳곳에는 환경부 주관으로 급속 전기차 충전기가 다른 고속도로보다 우선해 마련됐다. 맑은 물 공급을 위해 식수 전용 저수지(194만t)를 만들고 취수장과 정수장을 하루 4000t에서 1만t 용량으로 증설했다. 강릉 아이스아레나 등 2개 빙상경기장에는 빗물 재활용 시설과 절수형 수도꼭지를 설치했다. 생태계 회복을 위해 2012년부터 멸종 위기 1급인 장수하늘소, 산양, 멸종 위기 2급인 열목어, 구렁이 등 동물 4종에 대한 증식, 복원에 나섰다. 황기협 조직위 환경기획팀장은 “교통, 건설, 숙박 등 모든 곳에서 환경올림픽이 실천되는 데 최선을 다했다”며 “훼손된 산림 등의 복원에도 앞장서는 등 당초 환경올림픽 선언에 걸맞게 사후 관리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주목´ 등 수만 그루의 천연림 사라져 하지만 우려와 반론도 만만찮다. 천혜의 원시림으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보호받던 가리왕산이 동계올림픽 6일간, 패럴림픽 2일간의 알파인스키 올림픽 경기를 위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는 게 환경단체 등의 주장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연유산에 축구장 66배에 달하는 넓이의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는 것이다. 알파인스키 경기가 펼쳐진 하봉부터 도착지점까지 폭 55m, 길이 2850m로 건설된 스키 슬로프는 2m 깊이로 흙의 맨살이 파이고 얼음으로 다져지며 만들어졌다. 수백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수만 그루의 천연림이 사라졌다. 주목 자생지 훼손뿐 아니라 사스레나무와 거제수가 자연스레 교배된 아름드리 왕사스레나무가 베어지고, 자생종으로 희귀종에 속하는 개벚지나무와 사시나무의 남한 최대 군락지도 크게 훼손됐다. 그나마 현지에 자생하는 주목과 신갈나무, 사스레나무 등 200여 그루는 이식 대상 수목으로 정해 옮겨놨다. 하지만 이마저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대부분 고사해 복원을 약속한 정부의 생태 복원에 대한 의지에 회의를 갖게 한다. ●“가리왕산 복원 약속만이라도 지켜야” 스키장이 건설되기 전에 이미 구체적인 복원계획이 마련됐어야 하지만 올림픽 성공 개최에만 집중한 중앙정부와 강원도는 복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고, 건설 비용에 맞먹는 막대한 규모의 복원 예산에 대해서는 지금도 중앙정부와 강원도 모두 ‘나 몰라라’ 손사래를 치고 있다. 급기야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과 함께 “2018년 평창은 현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가장 반환경적인 올림픽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가리왕산 복원 약속만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며 성명서까지 냈다. 정규석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대회를 열었던 일본은 대회를 위해 스키 슬로프를 건설하며 자연을 크게 훼손한 뒤 생태복원센터까지 만들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원작업에 나서고 있다”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가리왕산 등 자연자원의 복원과 함께 정부와 강원도가 펼쳐 온 각종 환경올림픽 정책들이 일회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때”라고 말했다. 강릉·평창·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함께 읽는’ 독립선언서… 3ㆍ1절 기념식 틀 깬다

    ‘함께 읽는’ 독립선언서… 3ㆍ1절 기념식 틀 깬다

    제99주년 3·1절 기념식이 다음달 1일 처음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다. 독립유공자 50명도 이번에 정부 포상을 받는다.행정안전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3·1절 기념식을 상징성과 현장성을 높이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하겠다고 26일 밝혔다. 이날 기념식엔 독립유공자, 주한 외교단, 시민 등 1300여명이 참석한다. 이를 위해 정형화된 식순에서 벗어나 독립유공자 후손과 전문낭송인 등이 참여하는 ‘독립선언서 함께 읽기’ 등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참석자·시민이 함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독립문 앞까지 3·1만세운동을 재연하며 행진도 한다. 이번 기념식과 연계해 판결문, 피살자명부, 독립선언서 등 50여점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 특별전시를 다음달 1일부터 한 달 동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연다. 이번에 정부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총 50명이다. 1919년 3월 14일 황해 해주군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조양원 지사, 신간회 길주지회 서무부 상무로 1927년 1월 길주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이용국 지사 등이다. 이들 등 5명의 후손이 직접 기념식에 참석해 훈장·포장·대통령표창 등을 받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체 기념식이 이어진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천공항에서 서울과 평창을 거쳐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대관령국도에 의존하던 강릉과 영서(嶺西)의 교통은 앞서 1975년 왕복 2차로의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이후 대관령고개를 넘는 대신 여러 개의 터널로 이은 4차로 확장공사가 2001년 마무리되면서 영동고속도로는 훨씬 편안해졌다.이제 서울역에서 KTX 열차에 올라 1시간 40분이면 강릉이다. 하지만 지하터널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경강선을 타면 결정적인 여행의 재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대관령 고개 너머에 펼쳐진 강릉시내와 동해바다의 장관이 그것이다. 대관령에서 강릉을 바라보면 산과 바다가 제법 멀리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동지방에서는 드물게 토지는 넓고 비옥하다. 강릉 도심의 서쪽은 태백산맥의 준령이 가로막고 북쪽은 야트막한 산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겨울바람을 차단한다. 그 남쪽으로는 남대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조선시대 강릉도호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굴조사에서는 심곡리와 홍제동, 옥계면 현내리와 주수리 등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초당동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은 헤아리기 어렵다.강릉은 예(濊)의 옛 땅이었다. 이때부터 하슬라((河瑟羅)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곳에서 빈번히 맞부딪친다. 고구려에는 남쪽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이었고, 신라에도 북방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일 수밖에 없었다. 하슬라가 신라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진흥왕(재위 540~576) 시대라고 한다. 이후 하서소경(河西小京)과 명주(溟州)로 잇따라 이름과 지위가 바뀐다. 하서는 하슬라의 한자식 표기다. 고려시대에는 1263년(원종 4년) 강릉도,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 1389년(공양왕 1) 강릉대도호부로 변화를 겪는다. 오늘날에도 흔히 쓰이는 임영(臨瀛)은 공양왕이 붙인 강릉의 별호(別號)다. 대도호부 체제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강릉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해변 휴양도시로 완전히 거듭나고 있다. 강릉은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경포호만으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여기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역사가 남겨 놓은 다양한 전통문화, 이 도시의 새롭고도 특별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 문화’는 여행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강릉이 가진 흥미로운 역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김유정과 김주원 부자(父子)다. 태종무열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모두 생몰 연대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신라가 하대로 접어드는 8세기 중·후반을 살았다. 김유정이라면 낯설어도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얽힌 설화라면 익숙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남대천 월화정 설화’를 가장 자세히 적어 놓은 글은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고산 허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라고 한다. 김무월랑은 강릉에 머무는 동안 연화부인과 사귀었다. 그런데 무월랑은 경주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연화부인은 편지를 써서 연못에 던졌는데 잉어가 물고 갔다고 한다. 어느 날 경주의 무월랑 집에서는 잉어를 시장에서 사 왔는데 배 속에 연화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려사’ 악지(樂誌)에 나오는 ‘명주가’(溟州歌)의 배경설화이기도 하다. 강릉 남대천 남쪽의 바위 언덕 위에는 월화정(月花亭)이 있다. 무월랑과 연화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정자다. 1933년 강릉대도호부의 객사인 임영관의 부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 때 남대천이 범람해 휩쓸려 간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이다. 연화부인의 집이 이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연화정은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강릉중앙시장과 마주 보고 있다. 중앙시장은 이제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옛 동해북부선 다리는 최근 인도교로, 철로를 걷어낸 시장 골목은 ‘월화거리’로 새 단장했다. 김유정과 연화부인의 혼인은 중앙귀족과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방호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아들이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해 통일신라를 다룬 각종 사서(史書)에는 그의 이름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 선덕왕이 785년 후사(後嗣) 없이 죽자 군신(群臣)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김주원이 때마침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해 건너지 못하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며 상대등 김경신을 추대했으니 곧 원성왕이다.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은 명주로 낙향했는데, 원성왕은 786년 그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했다. 식읍(食邑)은 강릉은 물론 오늘날의 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에 이르렀다고 한다.강릉 성산면 보광리 대관령 중턱에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무덤이 있다. 다만 당초의 무덤인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덤은 조선 명종 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후손 김첨경이 복원한 것이다. 이름처럼 왕릉을 방불케 한다. 군왕이라는 호칭은 좀 낯설다. 원성왕은 당나라로부터 선덕왕의 ‘검교태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 신라왕’(檢校太尉 鷄林州刺史 寧海軍使 新羅王)의 작위를 물려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를 두고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원성왕이 스스로 황제국의 제후라는 것을 내보여 대외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특정 지역 세력을 군왕에 봉하는 일종의 봉작제(封爵制)로 황제적 지위를 행사하려 했다는 학계의 시각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종기는 김주원의 아들인데 작위를 물려받아 왕이 됐다. 김정여는 김종기의 아들인데 처음 조정에 벼슬해 상대등에 이르렀고, 명원공에 책봉됐다. 김양은 정여의 아들인데 김명의 난(亂) 때 신문왕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고 명원군왕에 추봉됐다’는 대목이 보인다. 김주원 말고도 아들 김종기와 증손 김양이 군왕에 오른 것이다. 김주원 집안이 신라왕의 책봉을 받는 군왕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국가를 추구했다는 연구도 있다. 김주원은 당나라의 수도를 모방해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의 수도를 정했는데, 오늘날 남대천 북쪽의 장안동이 그 흔적이라는 것이다. 당나라의 장안은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천자(天子)의 국도(國都)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김주원의 꿈은 원성왕의 그것보다도 컸다. 명주군왕묘는 강릉시가 제작한 관광지도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무덤 입구의 숭의재(崇義齋)는 김주원을 기리는 사당이다. 정문에는 삼왕문(三王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세 사람의 군왕, 곧 김주원, 김종기, 김양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겠다. 무덤 일대를 돌아본 전체적 인상은 이렇다. 강릉 김씨 종중의 기념물이라는 시각을 덜어내고 객관적 역사를 부각시키면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야생마는 멸종됐다…몽고야생말, 가축말 후손으로 밝혀져

    야생마는 멸종됐다…몽고야생말, 가축말 후손으로 밝혀져

    세상의 모든 야생말은 이미 멸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22일자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지구에 현존하는 최후의 야생마로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프셰발스키(Przewalski)말은 실제로 가축 말의 후손으로 밝혀졌다. 프셰발스키말은 이전까지 몽고 야생말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연구에 공동저자로 참여한 미국 캔자스대학 생물다양성연구소의 샌드라 올슨 박사는 “이는 충격이었다”며 “이번 결과는 살아있는 야생말이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카자흐스탄 북부에 있는 보타이와 크라스니 야르라는 두 곳에서 진행된 고고학 조사에 근거한다. 연구팀은 이들 유적에서 지금부터 5000년 이상 앞선 가장 오래된 말의 가축화 증거를 발견했다. 그 뿌리를 더욱 깊게 빠헤치기 위해 연구팀은 유적에서 발굴된 치아와 뼈에 근거한 보타이 말 20마리와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말 22마리의 게놈(모든 유전정보)을 분석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이번에 분석한 고대 말의 게놈과 이미 공개된 고매 말 18마리, 그리고 현생 말 28마리의 게놈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프셰발스키말은 약 5500년 전 카자흐스탄 북부 보타이인들이 기르던 말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가축 말의 후손으로 밝혀졌다. 이는 그동안 야생종으로 여겨졌던 프셰발스키말이 사실 야생화 되어진 말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가축화에서 벗어난 것이지, 처음부터 야생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프셰발스키말은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종’(Endangered)으로 분류된다. 이 말은 복부가 둥글고 다리가 짧으며 모색이 적갈색 또는 베이지색인 게 특징이다. 선사시대에는 중앙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중국 등에 널리 서식했다. 1960년대 한 차례 야생 개체가 멸종했다고 판단했지만, 번식과 자연방사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개체 수 회복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번 연구는 오늘날 가축 말의 진정한 기원을 밝히기 위한 새로운 탐구를 촉구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루도빅 올랜도 연구원은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가축화된 모든 말이 현재의 카자흐스탄 북부 보타이에서 길들여진 말의 자손임을 시사하지만, 이번 게놈 분석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보타이 말이 현생 가축 말의 조상이 아님을 보여준다”면서 “현생 가축 말의 기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AFP 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2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해남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2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해남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물가의 외로운 솔 홀로 어이 씩씩한고 / 배 매어라 배 매어라 / 머흔 구름 한치 마라 세상을 가리운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중략) ”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중 일부> 한 겨울 갓 지나왔지만, 아직은 눈을 이고 있는 고산 윤선도 종택 뒤 비자 숲의 풍광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봄 아지랑이 같은 늦겨울 골안개가 수런거리면서 올라오는 모양은 고산의 시조 그대로의 모습이다. 뜻하지 않게 등장한 녹우당(綠雨堂: 윤선도의 종택) 주변 경치는 여행의 진미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조선시대 양반의 품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4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귀에 익은 시조인 ‘어부사시사’의 작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의 삶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하였다. 우리에게는 단지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의 대표 시조 시인으로만 알려진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시인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표적인 동인 가계였으며, 그 중 윤선도는 동인 내에서 다시 갈라졌던 북인과 남인 중 남인을 대표하는 문신이었다. 그러다보니 서인으로 있던 송시열(宋時烈, 1607~ 1689)과는 예송논쟁을 비롯하여 각종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는 없었다. 이런 연유로 서인이 집권한 시기에는 그는 항상 함경도 경원(慶源)이나 경상도 기장(機張)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효종의 스승이었지만, 서인이 득세한 세상에서는 윤선도의 정치적인 야망은 항상 좌절될 수밖에는 없었다. 이런 마음은 오우가(五友歌)나 어부사시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단순한 강호한정(江湖閑情)을 넘어선 정치적 낙향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의 작품에는 잘 드러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고산 윤선도의 삶의 모양과 궤적을 잘 보존한 곳이 바로 전라남도 해남에 자리잡은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이다. 이곳에는 호남의 대표적인 명문 종가이자 오랜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해남 윤씨 가문의 고택, 녹우당을 비롯하여 4600여점에 달하는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소장 전시되고 있다. 이 중에서 고산의 대표적인 작품인 산중신곡(山中新曲), 어부사시사 등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인 공재 윤두서의 국보급 작품들, 해남 윤씨 가문 내에서 전통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생활 물품 등도 접할 수 있다. 또한 효종이 고산에게 하사한 수원의 집을, 고산이 82세 되던 1669년에 뱃길로 옮겨와 다시 이 곳 해남에서 복원하여 지은 녹우당(綠雨堂)의 이야기는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고산 윤선도의 시조를 안다면, 조선 중기 사림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2. 누구와 함께? -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0 / 530-5548(061) 4. 감탄하는 점은? - 녹우당 뒤 덕음산의 산세, 윤두서의 자화상과 해남 윤씨 가문의 유품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명성에 비해 내실이 튼튼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녹우당, 고산사당, 고산의 여러 작품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떡갈비 ‘천일식당’, 김치찌개 ‘소망식당’, 토종닭 ‘원조장수통닭’, 한정식 ‘거빈’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gosan.haenam.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두륜산 대흥사, 다산초당, 해남우항리공룡화석지, 땅끝마을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고산 윤선도는 대표적인 남인 계열의 문인으로, 호남 양반가의 적통을 잇고 있다. 조선 중기 역사적인 지식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뜻깊은 여행이 될 수 있다. 윤선도는 다산 정약용의 외5대 조부이기도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4·3 ‘70주년’ 2018 제주 방문의 해] 70년 만에 이제사 말햄수다 “어멍ㆍ아방 눈물 꼭 닦아줍서”

    [4·3 ‘70주년’ 2018 제주 방문의 해] 70년 만에 이제사 말햄수다 “어멍ㆍ아방 눈물 꼭 닦아줍서”

    현대사 최대 비극인 ‘제주4·3사건’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제주도는 올해를 ‘제주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화해와 상생, 평화, 인권의 4·3 역사를 국민과 세계인에게 알리는 다양한 기념 사업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도민들은 올해가 4·3 완전 해결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는 제주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인명 피해가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 7년간 제주도민 11%가량이 희생되는 참극이었다. 4·3의 광풍이 그친 1956년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 자락 옛 일본군 탄약고 터. 야심한 밤 군경의 눈을 피해 유족들은 방치된 132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1950년 여름 140여명이 국군에 의해 억울하게 총살당한 지 6년 만이었다. 유족들은 수습한 시신을 한데 모아 ‘132분의 조상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도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란 묘비를 세우고 통곡했다. 4·3은 이처럼 강요된 금기 속에 반세기가량 국가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됐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국회에서 양민학살 진상 규명 조사단이 꾸려지고 학살 피해 접수가 잠시나마 이뤄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쿠데타로 강요된 침묵 속에 다시 빠졌다. 1978년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1949년 1월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 집단 학살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4·3은 마침내 다시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1989년을 기점으로는 민주화운동단체들이 연합해 4월 3일 ‘4·3 추모 및 범도민 진상규명촉구대회’가 4·3(1948년 기준) 이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다. 범도민 촉구대회에서는 4·3 관련 정부 보관자료 공개, 연좌제 폐지, 미군정의 4·3 학살 책임 인정, 국회의 4·3 진상조사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1989년 5월 문을 연 제주4·3연구소는 피해자·유족 채록집 ‘이제사 말햄수다’(이제야 말합니다)를 출간했다. 문민정부 수립 후인 1993년에는 제주도의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 피해 신고를 받는 등 4·3 문제를 공론화했다. 1999년 4·3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데 이어 2003년 10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다. 2003년 10월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 사과했다. 2014년 3월에는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추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했고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4·3 국가추념일 참석을 약속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중단된 4·3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도 10년 만에 재개된다. 피해자 국가 배상·보상을 위한 4·3 특별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오영훈(제주시 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상금 지급 등을 담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률안은 직계나 배우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명시하고, 지급 액수와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직계나 배우자가 없으면 민법이 정한 상속인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4·3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무소로 끌려간 수형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했다. 유족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4·3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오 의원은 “아직도 4·3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정신질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희생자와 유족이 많다”며 “현행 특별법으로는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가 미흡해 4·3 완전 해결과 국민 화합 차원에서 법률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김여정, 임신한 상태로 방남…남북관계 개선 의지”

    “김여정, 임신한 상태로 방남…남북관계 개선 의지”

    지난 9일 특사 자격으로 방남해 2박3일간 일정을 소화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둘째를 임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20일 세계일보에 따르면 김여정은 방남 기간 한국 측 정부 관계자에게 둘째 임신 사실을 직접 밝혔다. 김일성 직계 후손 김여정이 임신한 상태로 방남한 것은 북한이 남북 관계 개선을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김여정은 정부 관계자들과 식사하면서도 음식을 가려먹는 등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으며, 지난 10일 외투를 벗고 친서를 전달하는 모습을 두고 임신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여정의 결혼 상대자를 두고 상대가 최룡해의 차남이라는 설과 리수용 외무상 조카와 결혼했다는 설이 있이 보도된 바 있다. 둘째 임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첫째를 출산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첫째 성별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스탈린·무솔리니…세계 독재자의 후손들 근황은?

    스탈린·무솔리니…세계 독재자의 후손들 근황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잔혹한 독재자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그렇지만 그들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베니토 무솔리니, 이오시프 스탈린, 폴 포트 등 악명 높은 이들에게도 후손들이 있다. 어떤 후손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예술가의 길을 택한 이도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조용히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무자비한 독재자의 후손들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근황을 공개했다.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손녀 알레산드라 무솔리니(55)는 우파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는 이탈리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배우와 모델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옛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손자 제이컵 주가슈빌리(45)는 미국 조지아주(州)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 일간 더 글로브 앤드 메일에 따르면, 그는 과거에 자신의 혈통을 부끄러워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가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에겐 외동딸 소르 파차타가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2014년 결혼해 미국에서 쌀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만약 내세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서 아버지를 만나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고 미국 언론인 네이트 세이어는 밝혔다. 1982년 쿠데타로 과테말라를 집권한 호세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의 딸 주리 리오스(50)는 모국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에는 당시 미국 하원의원(일리노이주 선출, 공화당) 제리 웰러와 결혼했다.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아내 엘레나의 자녀 중 유일하게 생존한 발렌틴 차우셰스쿠(70)는 루마니아에서 핵물리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우간다 독재자 이디 아민의 아들 자파 아민은 물류 기업 DHL에서 11년간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현재는 카타르 항공과 한국의 가구회사 환성의 광고 등에서 내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필리핀 일간 인콰이어러에 따르면,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손자 페르난도 마틴 매노톡은 필리핀에서 모델로 활동하면서, 슈즈 브랜드 닥터 마틴 등의 현지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자녀는 없다. 하지만 이복형제의 후손으로서 5명의 친척이 현재 살아있다. 이들은 히틀러의 혈통을 스스로 끝내기 위해 아이를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평창올림픽 봉사 나선 ‘김치파이브’를 아십니까

    평창올림픽 봉사 나선 ‘김치파이브’를 아십니까

     “2월 23일과 24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상식과 관련해 봉사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흥남철수를 도와준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경필(68) 장승포가축병원 원장은 17일 통화에서 “평창 올림픽에서 1박 2일간 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미국과 북한도 평창에서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북한 응원단 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북한에 우리가 이제 잘 살게 된 것을 보여주고, 전쟁없이 평화롭게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난민 등 1만 4000명을 태우고 거제도 장승포항로 철수한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났다. 이 배는 영화 ‘국제시장’의 모델이다. 6800t 화물선 정원은 60명이었지만 레너드 라루 선장은 에드워드 포니 해병 대령의 협조로 흥남부두에서 미군 무기 대신 피난민을 태웠다.  원래는 부산항에 정박할 예정이었지만 부두가 붐벼 거제도로 이동하면서 크리스마스(12월 25일)에 5명의 아기가 배 안에서 태어났다. 미국 선원들은 이 5명을 ‘미라클 베이비’(miracle baby)라 부르며 각각 김치 원(one)부터 파이브(five)까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중 김치 파이브로 불리던 이 원장과 김치 원으로 불리던 손양영(68)씨가 평창 올림픽 자원 봉사에 참가한다. 손씨는 철강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3명은 생사를 알 길이 없는 상태다.  그간 이 원장은 지속적으로 당시 도움을 주었던 미국인들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2014년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함흥철수 당시 군수품을 내리고 피난민을 승선시키는 결단을 내린 에드워드 알몬드 미 육군 10군단장의 후손을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원장은 “통일이 되면 아버지 고향인 흥남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는 정·관계 인사, 스포츠 스타, 다문화 가족, 저소득층, 보훈 대상자 가족 등 39명이 참여하는 스페셜 자원 봉사자를 위촉해 운영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日 배상책임 부정’ 판결에 한국 피폭자 유족 항소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본 한국인들의 유족 측이 최근 패소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에 불복해 지난 14일 항소했다고 교도통신이 15일 전했다.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은 지난달 31일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집단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1974년 피폭자들에게 건강관리 수당 등을 지원하는 ‘피폭자 원호법’을 제정했지만 대상을 일본 국내 거주자로 제한했다. 그러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지원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니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해외 거주 피폭자의 제소가 있으면 배상금 110만엔(약 108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1975~1995년 한국에서 숨진 피폭자 31명의 후손 159명도 배상 소송을 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정권은 2016년부터 입장을 바꿔 “피해자 사후 20년이 지난 경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패소 판결을 내렸다. 유족들은 이런 판결에 불복해 이번에 항소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국가가 ‘제척(除斥) 기간’을 문제 삼지 않고 화해했던 다른 유족들과 이번 원고 간에는 현저한 불공평함이 있다”고 지적한 뒤 “다시 법원의 판단을 구한다”고 통신에 밝혔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에 날아든 사람 얼굴을 한 새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평창에 날아든 사람 얼굴을 한 새

    지난 9일 저녁 평창에서는 상원사 동종에서 시작해 달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을 소재로 창작된 미디어아트가 현란하게 펼쳐졌다. 전통과 현대를 통합한 연출력이 돋보인 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시작 부분에 무대 중앙에 등장해 춤을 춘 사람 얼굴을 한 새, 곧 인면조였다. 2시간 15분 정도 진행된 개막식에서 2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출연했는데도 큰 화제가 된 것은 이것이 뜻밖의 출연자였기 때문이다. 그 앞에 나온 청룡이나 백호, 주작이나 현무 같은 사신(四神)만 해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만 인면조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인면조가 한반도에 처음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1609년 전 평양의 남서쪽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서다. 이 무덤은 양력으로 409년 1월에 만들어져 1976년 발견되기까지 실로 오랜 시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무덤으로 들어가면 진입 통로인 연도와 전실, 전실과 후실을 연결하는 짧은 통로 그리고 후실, 관을 안치한 널방이 차례로 나온다. 북한과 중국 지안(集安) 등지에 1만 3000여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고분들 가운데 이 고분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연도와 통로의 천장을 제외한 내부 공간 전체가 벽화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덕흥리 고분의 전실에는 둥그런 궁륭식 천장을 씌웠는데 그곳에 날개 달린 물고기, 꼬리가 여러 개인 새, 몸은 하나인데 얼굴이 둘인 괴물 등 다양한 모습의 기괴한 동물 18마리를 그려 놓았다. 바로 그 천장의 서쪽 부분에 천추(千秋)와 만세(萬歲)라는 이름이 적힌 인면조 두 마리가 있다. 두 인면조는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발 모양만 다르다. 천추는 짐승의 발, 만세는 새의 발을 가졌다. 천년만년 산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아늑한 무덤에서 장구한 세월을 보내던 그 인면조를 21세기의 예술가들이 흔들어 깨워 평창으로 날아들게 한 것이다. 덕흥리 고분을 비롯해 북한의 네 지역에 모여 있는 63기의 고분이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 가운데 16기의 고분에 벽화가 남아 있다. 북한에는 ‘고구려 고분군’과 2013년에 등재된 ‘개성의 역사 기념물과 유적’, 이렇게 두 건의 세계유산이 있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이코모스(ICOMOS)는 고구려 고분군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유산이 매우 중요한 것은 고구려 왕국의 문화가 가진 중요성에서 비롯되는데, 그 중요성은 고분 천장의 구조적 해법과 벽화에 묘사된 일상생활의 증거에만 남아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얻은 소재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공연예술을 보여 준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옛것을 토대로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예술창작 방법론인데, 오늘날 그것에는 두 가지의 이점이 있다. 하나는 작품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만일 이번에 인면조를 현대 예술가가 전적으로 창작했더라면 그것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많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생뚱맞다는 비판에 시달렸으리라. 그런데 1609년 전부터 이 땅에 실재한 디자인을 근거로 하니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것의 정체성을 문제 삼기보다 그 역사, 그리고 상징과 의미를 알고 싶어 했다. 문화상품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또 하나는 극히 현실적인 이점으로, 문화유산이라는 옛 소재를 사용하면 저작권료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저작권료는 저작권자의 사후 70년까지만 보호된다. 만일 평창올림픽에 사용된 수많은 문화유산의 디자인과 아이디어에 대해 모두 저작권료를 내야 했다면 제작비가 껑충 뛰었을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감동은 송승환 총감독의 인터뷰를 보는 순간 아찔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개·폐회식 예산이 700억원 정도로, 10년 전 베이징올림픽 개·폐회식 예산 6000억원의 12%에 불과하다니…. 이렇게 문화예술에 돈을 아껴서는 덕흥리 고분 같은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그러면 우리는 조상의 유산을 활용하기만 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만들어 내지 못한 부끄러운 조상이 되고 말 것이다.
  • 고향길, 숨은 조상땅 찾아보자

    고향길, 숨은 조상땅 찾아보자

    명절에 고향을 들르면 형제자매와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면 다음에는 한번쯤 조상들이 소유했던 부동산이 있었는지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 특히 고향 어른들을 만나면 조상들이 땅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었거나 대를 거듭하면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 흩어진 부동산 소유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오래된 조상들의 부동산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바로 조상 땅 찾기 서비스다. 조상땅 찾기 서비스는 조상들이 갑자기 사망했거나 부동산 관리 소홀 등으로 후손들에게 상속되지 않아 남아 있는 부동산을 국토정보시스템 지적전산망을 이용해 상속인에게 토지소재를 알려주는 행정서비스제도이다. 2015년 6월부터 시행중인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시행은 상속권자가 읍·면사무소에 신청하면 사망자의 토지소유현황을 문자 또는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신청을 원하는 사람은 시·군·구를 방문해 본인 또는 상속인임을 증명하는 서류(돌아가신 분의 사망기록이 등재된 제적등본, 2008년 1월1일 이후 사망자는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와 함께 신청하거나 부득이한 경우 위임장과 위임자 신분증 사본을 첨부해 신청하면 된다. 서비스 신청은 본인 또는 상속인이면 된다. 조상이 1959년 12월31일 이전 사망했다면 호주승계자가 신청하고, 조상이 1960년 1월1일 이후에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 모두가 신청할 수 있다. 구비서류는 조상이 2007년 이전에 사망한 경우는 신청인 신분증과 상속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제적등본 등이 있어야 한다. 즉 재산상속은 장자상속으로 호주 상속인이 재산 상속인이 되며, 부부·형제·부자간 등 가족이라 하더라도 위임장 없이는 정보제공이 불가능하다. 2008년 이후에 사망한 경우는 신청인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를 구비해 가까운 시 또는 시·군·구 토지정보과에 신청하면 된다. 채권확보, 담보물권 확인 등 이해관계인이나 제3자에 대한 토지소유 현황 조회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제공되지 않는다. 조회를 통해 조상 땅을 찾았다면 본인이 관할 등기소에 등기부 등본, 소유자 주소지의 거주사실 등을 확인 후 상속등기 절차를 마치면 된다. 만약 조상들이 사들인 땅이라도 이미 선의의 제3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면 이 땅은 조회할 수 없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경기 화성시는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4명의 구술자료를 책으로 엮은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책에는 송산 지역 3·1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홍면옥 선생의 후손 고(故) 홍진후씨와 오산노농학원 적화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른 변기재 선생의 후손 변주현, 변순용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장안,우정지역 3·1운동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파괴와 가와바다 순사 처단에 앞장섰던 차경규 선생의 후손 차진모씨의 이야기도 실렸다. 책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진솔하게 이야기를 담았다. 시는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 책을 전국 국공립대학 도서관과 박물관과 관련 연구소, 지역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독립운동 인물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시는 이날 시청 접견실에서 채인석 시장을 비롯해 이번 자료집에 참여한 후손들과 안소헌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서훈 신청과정에서의 애로점과 서훈제도 개선 방향 등을 논의했다. 채 시장은 “여러 제한 때문에 당장은 독립유공자 서훈이 어렵지만 최소한 그분들의 정신과 노고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을 찾고 그들의 공훈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김여정이 뭐랬길래···열병식 주석단의 김정은 갑자기 뒤돌아본 이유

    김여정이 뭐랬길래···열병식 주석단의 김정은 갑자기 뒤돌아본 이유

    깁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8일 진행된 ‘건군절’ 열병식에서 주석단에 올라 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위원장의 뒤에는 9일 김일성 일가의 후손인 이른바 ‘백두혈통’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모습(빨간 원)이 보인다.이날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열병식 주석단 뒤에서 움직이거나 서 있는 모습이 북한 조선중앙TV가 녹화중계한 영상에서 여러차례 포착됐다. 김여정은 과거에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행사 안내 책자를 가져다주거나 화동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꽃다발은 넘겨받거나 하는 식의 일종의 진행요원 역할로 등장해 김정은과의 각별한 사이임을 방증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청산하며 살어리랏다/최여경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청산하며 살어리랏다/최여경 국제부 차장

    전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발언과 정치권의 막말·무례를 비판하다가 가 닿은 것은 프랑스 영화였다. 한국에선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Les Uns et Les Autres·1981)라는 제목이 붙어 나온 이 영화를 떠올린 건 “우리는 과거사 청산 작업을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사범, 경제사범에 관대하다”는 말이 나온 뒤였다. 한 선배가 말했다. “그 영화 봐봐. 아무리 세계적인 명사라도 나치에 부역했다는 꼬리표를 떼기가 얼마나 어렵더냔 말이지.”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예술인들과 그 후손을 조명하면서 화합을 이야기한다. 그 속 한 인물, 지휘자 칼 크레머에게는 참으로 집요하게 과거의 굴레가 쫓아다닌다. 그는 독일 베를린필을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예술감독을 투영한다. 카라얀은 업적과 별개로, 독재자 히틀러에게 ‘국가지휘자’ 칭호를 얻었다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녔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현실에서도 여전하다. 아흔여섯의 오스카어 그뢰닝는 2년 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의 금품을 뺏어 나치에게 제공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여러 차례 고령을 내세워 선처를 호소했지만, 지난달 16일 헌법재판소는 형 집행을 확정했다. 지난해 말에는 극우단체 의장을 지내며 독일의 수용소와 가스실 사용을 부정한 88세 ‘나치 노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전후 나치에 조력한 혐의로 35만여명을 조사했고, 이 중 12만명 이상을 법정에 세워 4만명 가까운 부역자들을 수감하거나 처형했다. 이 역사를 전시회 ‘콜라보라시옹’으로 만들어 기억한다. 우리 역사에선 이런 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에 민족 반역을 일삼은 친일파를 단죄할 새도 없이 한국전쟁이 닥쳤다. 사회 기능 회복과 경제 재건에 집중한 사이 권력과 재력으로 무장한 친일파는 사회지도층 인사로 올라섰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이들의 목소리는 독재 공권력에 짓밟혔고, 분단 현실은 안보와 치안을 빌미로 한 권력의 방어막으로만 이용됐다. 친일부역, 민간학살, 간첩조작, 군부독재, 정경유착, 권력비리, 국정농단으로 점철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비로소 진행되고 있지만 걱정부터 늘어놓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과거사 청산을 운운하는 것은 퇴보라는 지적이다. 보수 언론에선 프랑스식 역사 청산이 국민들의 피로감을 불러 집권당의 선거 참패를 불렀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집권당 참패 원인에는 청산 작업이 정치·경제적으로 부역한 공무원, 경제인을 피해 갔다는 불만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없다.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역사와 체제 위에 올린 새로운 체제가 안정될 리도 없다. 털어버리지 못한 과거는 의혹을 낳고, 의혹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또 다른 분열을 일으킨다. 청산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정확하게 원인을 따지고 제대로 책임과 죗값을 묻는다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 뒤에 새로운 체제를 안착시켜야 한다. 70년 이상 묵은 과거사 청산 과정이 길고도 험해서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도 하차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뿐이다. 9일 ‘평화올림픽’이라 불릴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일군 찬란한 역사와 희망, 감동이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새 역사의 출발점을 만들 이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 생각해 본다. cyk@seoul.co.kr
  • [자치광장] 광복군, 역사적 가치의 재조명/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자치광장] 광복군, 역사적 가치의 재조명/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중턱에는 광복군 합동묘소가 있다. 1967년 한국광복군동지회가 조성해 올해로 51년을 맞았다. 묘소에는 광복군 17위가 잠들어 있다. 1940~1945년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이들이다. 사실상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인 정규군이지만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다. 대부분 젊은 나이에 전사해 후손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복군은 조국 독립에 온 생을 바쳤지만 잊혀진 존재로 남아 있다.강북구는 자체적으로 광복군 묘역 관리와 기념사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16년에는 서울북부보훈지청, 육군 56사단 220연대와 협약을 맺고 묘역 제초 작업을 했다. 최근 광복군의 활약상이 그려진 조형물도 묘소 뒤편에 설치해 오는 4월쯤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방문객들이 광복군의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앞으로 구는 국가보훈처에 ‘현충시설’ 지정을 요청할 예정이다. 현재 법령을 보면 단순히 묘역만으로는 현충시설이 될 수 없고, 독립운동과 연관된 기념관 혹은 조형물이 있어야 한다. 최근 강북구의 노력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현충시설이 되면 국가에서 관리자를 지정하고 예산을 준다. 지금보다 광복군 합동묘소의 지위와 격이 한층 올라간다. 구는 광복군들의 건국훈장(建國勳章) 등급 상향도 준비 중이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 공로에 따라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등급으로 나뉜다. 지금 광복군들은 대부분 하위 등급인 애국장, 애족장에 머물러 있다. 구는 이를 건국훈장 중 가장 훈격이 높은 대한민국장으로 상향 조정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16위 묘역, 국립 4·19민주묘지, 근현대사기념관 등과 연계해 애국·애족의 뜻을 기리고 민족의 얼을 일깨울 수 있는 문화·관광코스의 조성도 구상하고 있다. 광복군을 바라보는 다양한 역사적 관점과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역사 기록에 비춰 봐도 국군의 뿌리는 한국 광복군으로 봐야 한다. 이와 별개로 대한민국 독립에 헌신했던 선열들에 대한 예우의 필요성은 모든 국민이 똑같이 느낄 것이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전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함께 보다 더 구체적인 노력들을 기울이기를 소망해 본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난의 길을 헤쳐 갔던 광복군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우리 국군,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빛으로 거듭나야 한다.
  • 시간이 멈춘 체르노빌에 사는 ‘방사능 개’들의 사연

    인류가 남긴 재앙의 상처는 '가해자'인 우리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죄없는 수많은 동물 역시 재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언론 가디언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인근 출입금지 구역에 사는 개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수백 여 마리에 달하는 이 개들은 체르노빌 주위 30km에 달하는 출입금지 구역에서 여우와 무스같은 다른 야생동물들과 어울려 살고있다. 이 개들이 사람이 모두 떠나버린 방사능 지대에서 사는 이유는 있다. 지난 1986년 4월 26일 구 소련(현재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시 남방 130km 지점에서 인류 최악·최대의 원전사고가 터졌다. 바로 이제는 32년 째로 접어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다. 이 사고로 인한 피폭(被曝)과 방사능 휴유증 등으로 수십 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으나 사실상 피해 집계가 불가능할 만큼 체르노빌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체르노빌 지역에 살던 약 12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소개됐다. 문제는 애완동물로 키우던 개들의 이동은 불허됐다는 점. 이에 많은 개들이 사고 현장에 그대로 남았고 심지어 군 부대는 개 사살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체르노빌 지역에 사는 개들은 바로 당시 버려진 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개들의 후손이다. 체르노빌 지역의 관광투어를 운영 중인 솔로 이스트 트래블 측은 "이 개들은 엄혹한 추위와 방사능에 노출돼 대부분 수명이 짧다"면서 "오랜시간 사람과 떨어져 살았으나 놀랍게도 관광객이 나타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을 것을 얻기위해 다가온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에는 현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체르노빌 지역의 개들을 돕고있다. 먹을 것을 제공하고 아픈 개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주요한 활동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