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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김고은 열애설 부인, 세부 데이트 포착? “자격증 따러 간 것”

    김동욱 김고은 열애설 부인, 세부 데이트 포착? “자격증 따러 간 것”

    배우 김동욱(32)과 김고은(24)이 열애설에 휩싸인 가운데 양측이 이를 즉각 부인했다. 6일 스포츠월드는 김고은 김동욱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함께 두 사람이 “소속사 선후배로 시작해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열애설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고은 김동욱은 지난 5일 필리핀 세부의 한 리조트에서 함께 포착됐다. 목격자에 의하면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등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데이트를 즐겼다. 김고은 김동욱은 최근까지 장인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김동욱은 2005년 창립부터 10여년간 함께해오다 지난 1월 소속사를 옮겼으며 김고은은 2012년 데뷔작 영화 ‘은교’부터 함께해 오고 있다. 그러나 장인엔터테인먼트 측은 “김고은 김동욱은 친한 선후배 사이일 뿐, 열애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어 필리핀 동반 여행 보도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함께 스킨 스쿠버 동호회 회원이다. 동호회 멤버들과 함께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필리핀에 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동욱은 2004년 주연작 영화 ‘순흔’을 통해 데뷔, 2007년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후 영화 ‘국가대표’, ‘후궁: 제왕의 첩’, ‘쓰리 썸머 나잇’, JTBC ‘하녀들’, 뮤지컬 ‘온에어’, ‘형제는 용감했다’ 등에 출연했다. 김고은은 2012년 파격적인 스토리로 화제가 된 영화 ‘은교’로 데뷔했으며 영화 ‘몬스터’,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홍설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더팩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DJ가 영입한 운동권 ‘젊은피’… 친노·친문과 친한 범주류

    DJ가 영입한 운동권 ‘젊은피’… 친노·친문과 친한 범주류

    원내외 대변인만 8번 맡은 고수 김종인과는 ‘민생 우선’ 공감대 金 “호흡 안 맞겠냐” 협력 의지 4일 더불어민주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우상호 의원은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대표주자로 분류된다. 우 의원은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다. ‘6월 항쟁’ 시위 과정에서 숨진 대학 후배 이한열씨를 위한 서울시청 앞 대규모 장례식의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 의원과 함께 ‘젊은 피’로 영입하면서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서대문갑에 출마했으나 연세대 81학번 동문인 당시 한나라당 이성헌 전 의원에게 패했다. 이를 포함해 20대 총선까지 이 전 의원과 다섯 번 승부를 겨뤄 5판 3승을 거뒀다. 우 의원은 원내외에서 총 8번 대변인을 역임한 경력도 갖고 있어 ‘당의 입’으로 불린다. 우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의 관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단 김 대표와 우 의원이 지난해 ‘문재인·이종걸’ 투톱의 갈등을 재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두 사람이 수권 정당을 목표로 ‘민생 이슈’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우 의원은 원내대표 수락연설에서 “민생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도 경제비상대책기구 인선을 서두르며 경제민주화를 앞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 의원이 86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에서 김 대표와 충돌할 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동안 김 대표는 낡은 운동권 정당 개혁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날 ‘우 의원과 호흡이 잘 맞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호흡이 안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협력 의사를 밝혔다. 우 의원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직계는 아니지만 범주류로 분류되며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탈당 국면에서 당내 수도권 및 중진 의원들 주도로 만들어진 중재안을 당시 대표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직접 전달하며 소통 채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이양수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이양수

    “정치요? 선거 때 표 얻으러 다니는 마음으로 할 겁니다.” 이양수(강원 속초·고성·양양) 새누리당 당선자는 4일 ‘초심’을 거듭 강조했다. 이제 갓 보좌관 딱지를 뗀 초선 의원에 불과하다며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공천 대결에서 현역 재선 의원을 꺾은 그의 내공은 예사롭지 않았다. Q. 왜 정치를 선택했나. A.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아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지 20년이 됐다. 우연한 기회에 후배 소개로 국회로 들어왔다. 현역 의원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장을 내게 됐다. Q. 내 정치의 원동력은. A. 조직력. 정치권에서 ‘조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자부한다. 2012년 대선 때 조직총괄본부 기획실장을 맡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인 선진연대와 친박(친박근혜) 팬클럽을 공조직화했다. 또 각 지역에서 국회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야당 지지자는 아닌 이들을 조직으로 흡수했다. 이런 조직화 작업으로 대선에 기여했고 내년 대선에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분명 대통령 당선인과 친해져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Q.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A. 싸우지 않는 정치. 국회는 늘 여야 공방 일변도다.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서로 좋은 얘기를 많이 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해보고 싶다. Q. 정치적 관심사는. A. 지역 균형발전+권력구조 개편. 지역구인 강원 속초·고성·양양이 워낙 낙후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20대 국회에서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대통령 임기 초 50%를 넘는 지지율이 임기 말 10~20%로 추락하는 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Q. 정치적 이념 성향은. A. 중도. 스펙트럼이 1부터 10까지 있다면 5 정도 된다. 새누리당 정책이 실용주의, 중도 보수를 표방하기 때문에 잘 맞을 것 같다. 당 내 극우 보수 색채를 띠는 사람과는 잘 맞지 않다. Q. 정치는 언제까지. A. 쫓겨날 때까지. 정치인은 욕먹으면서도 헌신하는 사람이다. 중간에 그만두면 진정한 정치인이 아니다. Q. 중점 추진 정책은. A. 유통구조 개선. 농업·어업을 잘 사는 직종으로 만들려면 유통 구조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개선해야 한다. Q. 지지하는 대선 후보는. A. 국제관계에 많은 지식을 가진 분. 우선 정·부통령제가 되든, 의원내각제가 되든, 권력 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남북관계, 국제관계에 정통한 분이 되는 게 좋지 않겠나. 누군지 특정하진 않겠다. Q. 1호 법안은. A. 통일경제특구법. 접경 지역들이 상당히 낙후돼 있고 차별을 많이 받아 왔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수십년 동안 규제받으며 소외받고 살아 온 것에 대한 직간접적인 보상을 받도록 하는 내용인 통일경제특구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글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프로필 ▲1967년 강원 속초 출생 ▲속초고·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국회의원 보좌관 ▲경민대 연구교수 ▲제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 조직총괄본부 기획실장
  • 58% “후배 잘못 책임지는 리더 최고” 37% “시키는 대로 하라는 상사 최악”

    직장인들은 ‘막무가내식 업무지시’를 하는 상사를 가장 어렵게 느끼고, 어려운 상황에서 후배의 잘못을 책임지는 상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모비스가 지난 2주간 임직원 8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원들은 ‘상사가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지시할 때’(37%) 가장 상사를 대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어 우유부단하게 조직을 이끌 때(26%),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책할 때(15%), 본인 일을 후배들에게 다 떠넘길 때(13%) 상사가 어렵다고 답했다. 인간적인 빈틈조차 보이지 않을 때(7%)라는 답도 있었다. 반면 ‘이럴 때 리더를 챙겨주고 싶다’는 질문에는 ‘리더가 후배의 잘못을 짊어지고 상사에게 질책당할 때’라는 답이 58%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후배에게 힘든 점을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20%), 상사가 업무하느라 밥도 잘 못 챙겨 먹을 때(10%), 프로젝트 성과가 아쉬울 때(9%)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내게 필요한 부하직원’을 묻는 문항에는 ‘팀워크가 좋은 직원’(41%)이라는 답변이 ‘일 잘하는 유능한 직원’(20%)보다 두 배 많아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도 ‘후배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는 질문에는 후배 직원들을 존중하며 칭찬할 때 확실히 칭찬해준다는 답변이 32%로 가장 많았다. 이어 ‘후배직원들의 업무능력과 전문성 높이기’라는 답변이 22%였다. ‘리더의 어깨는 무겁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설문 조사는 2일 발간된 현대모비스 5월호 사보에 실렸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국토부 기획관리실장 손병석 토지수용위 상임위원

    국토부 기획관리실장 손병석 토지수용위 상임위원

     국토교통부는 기획관리실장에 손병석(사진·54) 중앙토지수용위원회상임위원을 임명했다고 2일 밝혔다. 손 실장은 기술고시 22회 출신으로 1987년 공직에 입문해 국토부 국토정책국장, 수자원국장, 철도국장 등을 거쳤다. 정병윤 전 기획실장은 후배들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명퇴를 신청한 상태였다. 류찬희 기자 chani@seoul.co.kr
  • [포토 다큐] ‘태후’ 총격신처럼 쏴! 쌓인 스트레스가 싹!

    [포토 다큐] ‘태후’ 총격신처럼 쏴! 쌓인 스트레스가 싹!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성공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탄탄한 근육질의 멋진 배우들이 벌이는 총격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총격신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지게 총 한 번 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들도 적지 않을 터. 총기 규제가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국내에서도 실제 총기로 실탄 사격을 즐길 수 있는 사격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 10곳의 클레이 사격장과 14곳의 권총사격장 등 24곳의 실탄 사격장이 분포해 있다.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데 최근 이색 레포츠와 이색 데이트를 즐기려는 이들이 실탄 사격장을 많이 찾고 있다. 경험자들은 실탄 사격의 매력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꼽는다. 사격을 할 때 귓전을 울리는 시원한 총소리와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반동이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린다.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실탄 사격의 종류로는 크게 권총 사격과 클레이 사격 두 가지가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종합운동장에 위치한 목동사격장 내 권총실탄사격장. 20대 여성들이 각각 9㎜ 반자동 권총과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십여m 떨어진 거리에 고정된 표적지를 겨냥하고 있다. 소총에 비해서 크기가 작은 권총은 여성들도 다루기 어렵지 않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구에서 불꽃이 일자 ‘탕! 탕!’ 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귓속 깊이 파고든다. 방음 귀마개로 양쪽 귀를 단단히 막았지만 사방이 막힌 실내에서 울리는 총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 사격을 마친 후 점수가 매겨진 표적지를 든 두 여성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대학 동창이자 같은 직장 동료라는 김정아(25·수원), 서미선(25·서울)씨는 “총을 쏘고 나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린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직장 후배와 함께 온 정민구(33·서울)씨도 “군대에서도 소총만 쏴 봤지 권총은 처음이어서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권총실탄사격장은 대부분 서울, 부산, 제주, 경주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관광지역에 집중돼 있다. 실내사격장 형태로 도심에 위치해 있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찾아가기 쉬운 편이다. 반면 날아가는 클레이피전(둥근 진흙 접시 형태의 표적)을 산탄총으로 쏴서 맞히는 클레이 사격장은 모두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과거 유럽의 들판에서 비둘기를 날린 후 이를 쏴 맞히던 것에서 시작돼 지금도 사격장은 넓은 야외 공간에 마련돼 있다. 충북 단양, 경기 화성, 경북 문경 등 대부분 지방 도시 외곽에 있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대신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탁 트인 야외 공간이 주는 개방감은 사격하는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클레이 사격은 300~350개의 작은 탄알이 든 산탄을 위아래로 두 발 장전할 수 있는 엽총을 사용한다. 초보자는 지름 11㎝의 클레이피전이 시속 50㎞의 속도로 각도 없이 앞으로 날아가는 아메리칸 트랩에서 사격을 한다. 고정 표적을 맞히는 권총 사격에 비해 이동 표적을 쏴 맞히는 클레이 사격은 난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초보자들의 경우 클레이 사격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적중률이 높다고 한다. 이는 남자들의 경우 군생활을 거치며 고정 표적을 쏘는 데 몸이 익숙해진 탓이다. 전문 사격코치의 지도를 받으면 처음 쏘는 이들도 20~30% 정도 명중시킬 수 있다. 맞히기 어려운 만큼 표적에 적중했을 때의 쾌감은 더욱 짜릿하다. 탄알에 맞은 클레이피전이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 통쾌하기 그지없다. 엽총은 권총에 비해 소리와 반동이 훨씬 크고 세다. 주로 팔에 반동이 전해지는 권총과 달리 어깨에 견착해 쏘는 엽총의 반동은 온몸에 전해진다. 단양에 위치한 단양클레이사격장을 찾은 이우리(32·서울)씨는 “반동이 커서 놀랐지만 ‘쾅’ 하고 울리는 총소리에 스트레스가 풀리고 쾌감을 느꼈다”며 신나 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실탄 사격에 도전해 보자. 탄환에 산산이 부서진 표적처럼 스트레스도 시원하게 타파될 것이다. 글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치열하게 쓴다, 망치질 하듯이… 소설가로 산다, 35년차 하루키

    치열하게 쓴다, 망치질 하듯이… 소설가로 산다, 35년차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현대문학/336쪽/1만 4000원 당신은 ‘하루키스트’인가 아닌가. 그렇든 아니든 상관없다. 어떤 일에 간절히 몰두하는 상태이든 뭘 할지 헤매는 상태이든 상관없다. 생활인이자 직업인으로서 우리는 삶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정하고 입을 열었다. 35년간 소설이라는 링에서 분투해 온 ‘직업인’으로서. 일본에서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내가 어떻게 소설을 써 왔는가”를 말한다. 작가 지망생이나 작가들에게 유용한 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쓴다’는 행위를 키워드로 한 12개의 장을 하나씩 통과하다 보면, 이것은 결국 ‘산다’는 행위에 대한 조언임이 드러난다. 스스로의 의지와 신체를 단단히 가꾸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설파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종합적인 힌트와 격려를 건네주는 책”(시바타 모토유키 전 도쿄대 영문학과 교수), “양질의 문학론인 동시에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젊은 세대에게 묻는 소설”(홋카이도 신문)이라는 서평이 나온 이유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삼십오년을 이렇게 직업적인 소설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그 놀람에 대한 것이고, 그 놀람을 최대한 순수하게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에 대한 것”이라며 “나의 삼십오년 동안의 인생은 결국 그 놀람을 지속시키기 위한 간절한 업(業)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말대로 ‘쿨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글에서 드러난다. 하루키가 정의하는 소설가란 따분하고 끔찍하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리는” 사람이거나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특유의 자신 있는 어투로 기존의 작가나 문청들을 좌절시킬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한 번도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다”거나 “소설이 안 써져 고생한 경험도 없다”는 얘기들이다. 그의 글쓰기 동력에는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 그리고 잘 단련된 신체가 있었다. 매일 한 시간씩 뛰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장편을 쓸 때도 장거리 주자처럼 끈질기고 성실한 호흡으로 내달린다. 매일 하루 200자 원고지 20매를 꼭 채운다는 것. 음악 같은 ‘하루키 문체’의 비밀도 드러낸다. 일본어로 쓴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뒤 그걸 다시 일본어로 옮긴다고. 그러면 문장은 짧아지고 군더더기는 사라진다. 그 빈자리에 간결한 문장과 ‘심플한’ 단어, 음악적 리듬이 태어난다. 이를 두고 작가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문체와 언어를 개발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쓴 글을 집요하게 ‘망치질’하라는 가르침도 잊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에게 제정신인 인간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면서. 일본 문단에서 혹평을 한 몸에 받았던 그는 섭섭함, 불쾌함,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솔직하게 내보인다. “지금 돌아보면 동시대 일본 문학 관계자들(작가, 비평가, 편집자 등)이 느꼈던 욕구불만의 발산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주류파 순문학이 그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가는 것에 대한 ‘문학계’ 내부의 불만, 울결(鬱結)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커버스토리] 유치원쌤… 수간호사…브라 기획자… 이건, 남자의 길

    [커버스토리] 유치원쌤… 수간호사…브라 기획자… 이건, 남자의 길

    남성보다 뛰어난 ‘알파걸’이 속속 등장하는 반면 여성 중심의 직업에 뛰어든 ‘알파맨’들도 늘고 있다. 기존의 성 역할을 넘어선 이들은 직업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세간의 편견쯤은 충분히 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치원 교사, 간호사, 여성 속옷회사 직원 등 전통적으로 ‘금남의 구역’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남성 3명을 만났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3년차 유치원 교사 이택민 “남자 선생님 꺼린다고 15번 퇴짜, 겨우 합격했더니 엄마들 항의도, 이젠 서로 아이 맡아 달라 하세요 ” “16차례나 지원해서 유치원 교사가 됐죠. 지금은 저랑 결혼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생길 정도로 인기 만점이에요.” ●전국 남자 유치원 교사 853명… 전체의 1.8%에 불과 지난 20일 경기 성남의 유치원에서 만난 이택민(28)씨는 이곳에 온 지 3년 만에 동네 유명인사가 됐다. 처음에는 남자 교사여서 일부 부모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기우였다는 걸 다들 깨달았다고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유치원 교사 5만 998명 중 남자는 853명(1.8%)에 불과하다. 이씨는 2007년 가천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했다. 59명의 신입생 중 유일한 남성이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정한 길인데 여자들의 틈바구니에 있으니까 쉽게 소외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학생회장을 자청했고 잘 버텨냈죠. 그런데 진짜 난관은 취업이었어요.” ●첫해 학부모 2명 “여교사 반으로 아이 옮겨 달라” 요구 이씨는 유치원 15곳에 원서를 넣었다가 다 떨어졌다. 7곳은 서류에서 탈락했고, 8곳은 면접에서 퇴짜를 맞았다. “부모들이 남자 교사는 꺼린다”고 대놓고 탈락시킨 이유를 말하는 원장도 있었다. 결국 16번째 지원을 해 지금의 유치원에 들어왔다. 하지만, 첫해에 학부모 중 2명이 “내 아이는 여교사 반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남자 교사들이 여자 교사보다 섬세하게 신경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은 건 아직은 어쩔 수 없죠. 여자아이를 둔 부모 중에는 성희롱 등 극단적인 상황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결국 시간을 두고 직접 보여드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죠.” ●매일 전화상담하고 화장실 지도는 여교사에게 부탁… 이젠 아빠들 육아 멘토 이씨는 매일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알려주고, 수시로 상담을 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화장실 지도는 여성인 부담임 교사에게 맡겼다. 3년차가 된 올해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한 엄마가 “우리 아이를 이 선생님 반으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프렌대디’(프렌드+대디·친구 같은 아버지)가 주목받는 사회 분위기에 그를 찾는 아빠들도 늘고 있다. “한번은 아빠와 함께 가는 소풍을 기획했더니 아빠들이 아이 교육법에 대해 열성적으로 묻더라구요. 남자 교사라서 좀더 편하게 물어본다고 하시는데, 엄마 양육에서 부모 양육으로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남자 유치원 교사라고 해서 억지로 여성스러움을 연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전 중3 때까지 철인3종 경기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동했어요. 여성이 주류인 직업이니 세밀함 등 여성의 장점을 배우려 하지만 억지로 여성스러워지면 아이들이 먼저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결국 유치원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수간호사 김장언 “친근한 남자 간호사 더 반기는 세상, 중요한 건 성별 아닌 삶에 대한 태도. 병실서 일할 후배 많아지길 바라죠 ” “예전엔 남자 간호사를 보면 다들 의사로 잘못 알았죠. 하지만 지금은 간호대학 교수 중에도 남자들이 있는걸요.” ●올 간호사 합격자 10%가 남자… 10년 새 10배 늘어 지난 22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김장언(57) 수간호사는 “중년 이상의 환자들은 일부러 남자 간호사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남자여서 농담하기도 편하고 이래저래 친근하게들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4년만 해도 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자 중 남성은 100명에 1명꼴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는 합격자 10명 중 1명이 남성이다. 10여년 사이에 비중이 얼추 10배가 된 셈이다. 지난 2월에는 전국의 남자 간호사가 1만명을 넘어섰다. 2013년에는 대한남자간호사회도 창립됐다. 이 모임의 초대 회장이 김 수간호사다. ●남자 간호사는 이미 병원 시스템에 정착… 새 영역 개척할 때 “후배들에게 아직 우리 분야는 개척할 부분이 많으니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해 줍니다. 이제는 남자 간호사가 병원 시스템에 정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일하는 어린이병원에 남자가 간호사로 일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하지만 여전히 남자 간호사들은 중환자실이나 수술실에 주로 배치된다. 환자나 보호자와 소통하는 병실 근무는 아직 여자 간호사가 더 능숙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한 탓이다. 그는 남녀가 서로 다른 방식의 섬세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별과 관계없이 간호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돕는 직업”이라며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초보 간호사 시절 12세 소년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어요.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2~3년이라도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죠. 한동안 방황했어요. 결국 삶과 죽음은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지요. 그래서 순간마다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병역이 남자 간호사 발목… 군의관처럼 전공 살리는 군 보직 생기기를 김 수간호사는 남자 간호사에게 가장 힘든 것은 병역 문제라고 했다. “간호학과는 의대와 마찬가지로 학기마다 시간표가 짜여 있어 연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군의관과 같이 전공을 살리는 군 보직이 없어서 일반 병사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졸업 후에 군대에 가면 취업 전 공백이 생겨서 더 부담이 됩니다.” 그는 이 부분이 후배 남자 간호사들을 위해 가장 해결해 주고 싶은 숙제라고 했다. “제가 처음 간호사를 시작할 때 멘토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죠. 그래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남자들이 더 많이, 더 활발히 간호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남영비비안 상품기획부 차장 최세훈 “란제리 패션쇼서 얼굴 못 들던 초보, 브래지어 사이즈 척척 꿰는 전문가로, 변태 오해도… 하지만 다 패션입니다”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 그리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체육교육과를 나와 20년 가까이 여성 속옷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성 속옷을 만들다 보면 당황스러운 일도 있지만, 어차피 다 같은 패션 아닌가요.” ●여성 몸매 보정해 주는 기능성 속옷 담당… 직원 10명 중 3명은 남자 최세훈(42) 남영비비안 상품기획부 차장은 브래지어, 팬티, 슬립 등 여성의 몸매를 보정하는 기능성 속옷을 담당하고 있다. 디자인실과 조율해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한 뒤 매장에서 판매하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게 그의 업무다. 1998년부터 무역회사에서 여성 속옷을 수입하는 일을 하다가 2009년 이곳으로 옮겼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본사 쇼룸에서 만난 최 차장은 “1998년 첫 출장으로 프랑스 파리 란제리쇼에 갔을 때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여성 모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지금은 남자 직원의 저변이 넓어져 10명 중 3명은 됩니다.” ●처음엔 매장도 못 들어가고 쇼윈도 너머로 훔쳐봐 자기 의지에 따라 업무 분야를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어서 주변에서는 그가 여성 속옷을 기획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2000년에 홈쇼핑 방송의 여성 란제리 홍보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그걸 본 친구가 ‘야, 지금 TV에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와서 속옷을 판다’고 연락을 했더군요. 사실 처음에는 시장조사를 다닐 때 부끄러워서 속옷 매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쇼윈도 너머로 흘끔흘끔 훔쳐보며 조사를 했죠.” 2013년 10명 남짓한 해외시장 조사단의 막내로 일본 출장을 다녀오다가 세관 심사를 받을 때는 ‘변태 성욕자’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커다란 백팩에 한가득 여성 속옷 샘플을 넣었거든요. 인천공항 검색대에서 제 가방을 열어본 세관 직원이 여자 속옷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속옷 디자인 여전히 금남지대 … 남녀 합작하면 최고의 작품 나올 것 지금은 여성들에게 속옷 제대로 입는 법,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고르는 법 등을 조언해 주는 전문가로 대접받는다. 착용감 등 여성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은 가족, 여성 친구, 고객에게 직접 물어본다. “저는 남자니까 자연히 고객에게 조언을 구하는 태도로 접근하죠. 그런데 그런 점이 오히려 고객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획이나 마케팅 등이 아닌 속옷 디자인 부서에는 아직 남자가 진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 속옷 디자인에도 남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여직원들은 속옷의 작은 부분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만, 남자들은 전체적인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양쪽이 합쳐졌을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 술 안 마셨다더니… 이창명 만취 운전

    술 안 마셨다더니… 이창명 만취 운전

    심야에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했던 개그맨 이창명(47)씨가 결국 음주운전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20일 오후 11시 18분쯤 음주운전을 하다 영등포구의 한 교차로 보행 신호기를 들이받은 뒤 차를 방치한 채 도주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 등)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지인 5명과 함께 사고 당일 오후 6시 30분부터 11시까지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알코올 41도짜리 술을 6병 마셨다. 경찰은 “6명이 술을 1병씩 나눠 마셨다고 가정하고, 위드마크 공식으로 계산한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16%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위드마크 공식은 사람의 시간당 알코올 분해도가 0.008~0.030%라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과거 특정 시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역계산하는 방식이다. 이씨는 사고 30여분 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차 안의 교통범칙금 고지서를 보고 전화를 걸어 운전을 직접 했는지 확인하자 “나는 모르는 차”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15분 후 다시 전화를 걸자 이때는 “후배가 운전을 한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씨는 전 매니저에게 전화해 사고 수습을 요청한 뒤 전화기를 끄고 잠적했다. 그러나 이씨는 음주운전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서도 ‘저녁 모임을 끝낸 뒤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어 추가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씨가 계속 술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할 경우 진실 공방이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위드마크 공식의 유죄 증거 인정 여부는 그때그때 다르다”며 “대법원 판례도 개별 사안에 따라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목소리 연금술사… 성우 양지운

    그의 평소 목소리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와 비슷할까,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와 닮았을까. 아니면 ‘체험 삶의 현장’ 같은 TV 프로그램에서의 코믹 내레이션에 더 가까울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카페에서 만난 성우 양지운의 목소리는 그가 연기했던 무수한 인물 중 누구와도 닮아 있지 않았다. 50년 가까운 성우 인생의 대부분을 주인공으로만 살아온 그가 실제 인생의 주연으로서 달려온 68년을 들어봤다. -“이봐, 손님한테 그렇게 따지듯이 말하는 웨이터가 어딨나? 그 짧은 대사 하나 제대로 못해서 어떻게 성우를 해.” 1970년 서울 서소문 TBC 사옥의 라디오 녹음실에 성난 PD의 호통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차갑게 나를 보는 선배들의 시선. 성우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대사 한마디를 얻었던 그날, 나는 얼굴이 벌게져 당장이라도 녹음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 돼 있었다. 라디오 드라마 속 내 역할은 레스토랑 웨이터. 대사는 딱 한 줄 “뭘 드시겠습니까?”였다. 주인공에게 정중히 물어야 하는데, 긴장한 탓에 “당신 뭐 먹을 거야. 빨리 말해!”라는 식으로 따지는 것처럼 딱딱한 연기가 되고 말았다. 무수한 NG 끝에 넋이 완전히 나간 상태로 녹음을 마쳤다. ‘기회만 주어지면 신성일이나 찰턴 헤스턴(영화 ‘벤허’의 주연배우) 역할이라고 못 하겠나.’ 평소 가졌던 그 생각은 얼마나 만용이었나. 어쨌든 나의 단독 대사 데뷔전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이 났다. 이후로도 녹음실의 ‘고문관’ 노릇은 상당 기간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 위안거리는 하나 있었다. “신참이 목소리 하나는 괜찮구먼”이라는 선배들의 평가였다. -나는 고등어와 고구마를 아주 싫어한다. 절대로 안 먹는다. 고등어 머리만 모아 끓인 국과 고구마를 먹으며 비린내와 복통에 잠 못 들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1948년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의 두메산골이었다. 바닷가 쪽 어촌이라면 차라리 좀 나았을까. 논도 밭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할 거라곤 고구마 농사뿐이었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부두에 나가 손질하고 버려지는 고등어 머리들을 받아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주셨다. 방안을 가득 채운 고등어 비린내는 이불에 스며 들고 옷에 배어 나를 어디든 따라다녔다. -고향이 싫었다. 분명히는 가난이 싫었던 것이지만, 나에게 고향은 곧 가난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님 세 분은 일찌감치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떴기 때문에 어릴 적 우리 집은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였다. 부모님은 무학(無學)이시기도 했지만,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상황에서 막내아들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다. 때가 됐는데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남은 나는 산으로 바닷가로 마냥 쏘다녔다. 그러기를 2년. 울며불며 아버지를 졸라 열 살에 처음 학교에 들어갔다. -내 학력은 국졸로 끝날 뻔했다. 친구들이 중학교에 등교할 때 나는 농사를 지으러 갔다. 국민학교 때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아이들이 통영중 교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속이 뒤집어졌다. “사범학교 학생들이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라는 곳이 있다던데 거기라도 가 볼래?” 마흔둘에 나은 늦둥이가 실의에 빠져 있는 걸 어머니 스스로 견디질 못하셨다. 그때 어머니의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막내 데리고 같이 올라갈게요.”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집을 탈출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서울에 살던 둘째 형님이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에서 내 표정을 보곤 ‘저 놈을 여기에 계속 두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게 또래들은 고1이던 만 16세, 1964년이었다. -손잡고 올라온 건 작은형이었는데, 어쩌다가 자리를 잡게 된 건 경기도 의정부 큰형님 댁이었다. 형과 함께 의정부중학교에 갔다. “저 통영에서 고등공민학교 1학년 다녔으니까, 여기서는 2학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고등공민학교는 정규과정이 아니니 1학년으로 입학하라고 했다. ‘안 그래도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었는데….’ 내 한숨이 너무도 깊었던지 교무주임 선생님이 그 전해에 봤던 1학년 기말고사 시험문제지를 갖고 오셨다. “여기 문제들 풀어봐. 잘 보면 2학년으로 해주마.” 다음날 나는 2학년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아니 세 살 어린 동생들을 만났다. -큰형님은 아이가 셋이었다. 가뜩이나 작은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사는데 내가 끼니까 여섯이었다.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밥만 형님 댁에서 먹고 잠은 보급소에서 잤다. 공부는 쉬웠다. 경상도 말씨 심한 시골 형이 순식간에 공부에서 자기들을 따라잡자 아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공부 좀 한다는 게 알려져 우연히 큰형님이 셋방 사는 주인집 국민학생 아이를 가르치게 됐다. 나한테 배우고 그 아이가 성적이 확 올랐는데, 그 덕에 과외 학생을 많이 소개받았다. 국민학교 5~6학년 15명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한 달에 최고 5000원도 벌었는데 대졸 직장인 월급 수준이었다. 절반 정도를 떼어 형님 생활에 보탰다. -당시 내 유일한 취미는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집안에 TV가 거의 없던 당시에 라디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였다. 저녁이면 동네 아낙들이 밥상 치우고 삼삼오오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구민, 고은정, 이창환 같은 성우들은 톱스타였다. 우리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지만, 과외 선생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의 집에 가서 듣곤 했다. -중3 때에는 유도를 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때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장은경(1996년 별세)이었다. 그런데 운동만 하기엔 학업 성적이 너무 좋았다. 은경이는 유도를 위해 인천 선인고에 갔고 나는 일반고인 의정부고에 진학했다. 의정부고는 학력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나는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대에 대한 꿈 같은 건 없었다.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면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차를 타고 와서 명동국립극장과 영화관에 살다시피 했다.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했고, 라디오 드라마 대사도 받아 적은 뒤 연습을 했다. 영화배우나 TV 탤런트도 생각해 봤지만 내 외모에 목소리만큼의 강점은 없다는 걸 알곤 빠르게 포기했다. -한양대 토목학과에 들어갔는데 얼마 다니지는 못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69년 10월 TBC에 입사(성우 공채 5기)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성우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였다. 나는 ‘경제’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갱제’로 알아들었다. ‘쌀’이라고 하는데 사람들 귀에는 ‘살’로 들렸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 유머에도 등장하는 이런 상황은 당시 나에게는 심각한 핸디캡이었다. 그때 방송사에서는 표준어만 써야 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했다. ‘서울말’, 그러니까 표준어를 외국어 배우듯이 익혔다. 퇴근을 하면 매일 서울 사람들만 만났다. 경상도 사람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서울말을 듣고 통으로 외웠다. 그야말로 사투리와의 사투였다. -그러는 중에도 나의 사투리 억양에 대한 지적은 계속됐다. 당시 TBC의 인사 평가 시스템은 매우 가혹했는데, 어느 날 불쑥 해고 통지를 하는 식이었다. “고생 고생해서 성우가 됐는데 결국 사투리 때문에 잘리는 건가.”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는데 뜻밖의 기회를 얻게됐다. 당시 ‘광복 20년’이라는 정치 드라마의 ‘이승만 시해미수 사건’ 편에 김시현이라는 분이 나왔다. PD가 경상도 말을 써야 하는 그 역할을 나에게 주었다. 방송이 나간 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성우가 누구냐”는 격려 전화가 빗발쳤다. ‘퇴출’ 후보에서 갑자기 ‘TBC의 보물’이 됐다. -그러다 1976년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역을 맡게 됐다. 입사한 지 6년을 갓 넘겼을 때였다. 원래 ‘600만불의 사나이’는 길게 방영할 게 아니었다. 단발 편성이었다. 그래서인지 PD가 주인공을 나에게 맡겼다. 공군 조종사 출신 대령이 사고로 양쪽 다리와 한쪽 팔, 한쪽 눈을 잃었지만 최첨단 기술로 다시 태어나 차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시속 100㎞로 달린다는 설정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드라마 자체도 그렇지만 주인공 목소리 성우가 너무 잘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결국 ‘600만불의 사나이’는 장기 편성으로 바뀌었고 나의 역할도 계속됐다. 선후배 기수 개념이 강한 방송국에서 고참들을 제치고 고작 입사 6년에 주인공이라니.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광고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별명이 ‘김밥맨’일 정도였다. 아침에 방송국으로 출근하면 밤 10시는 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600만불의 사나이 흉내를 내면서 사고도 많이 났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방송국으로 찾아와 ‘주인공 흉내를 내다가 크게 다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600만불의 사나이’가 인기를 모으면서 ‘두 얼굴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비슷한 장르의 미국 드라마가 속속 국내에 들어왔다. -과거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 주말 외화들이 방송사를 먹여살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더빙이 시원찮으면 “성우 때문에 영화를 망쳤다”고, 반대로 괜찮으면 “성우가 영화를 살렸다”는 편지와 전화가 방송국에 쇄도했다. 로버트 드니로, 멜 깁슨, 해리슨 포드 등의 목소리가 내 단골이었다. TBC 전속에서 풀린 뒤 방송국마다 나를 붙잡기 위해 경쟁이 벌어졌고 내 인기는 그야말로 상한가였다. “극장에서 볼 때보다 더 낫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말은 내게 없었다. -‘맥가이버’, ‘형사 가제트’를 맡았던 배한성 선배는 외부에서 필생의 라이벌로 꼽지만, 우리 둘 사이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배 선배는 나이는 두 살 위, 방송국 기수로는 3기 위(TBC 2기)다. 사실 서로 경쟁할 부분도 없었다. 배 선배는 부드러운 콧소리 음성이지만 난 쇳소리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해준다. 형사물인 ‘스타스키와 허치’도 함께 했다. 난 냉정한 독일계 형사인 허치를, 배 선배는 다혈질의 유태계 형사 스타스키를 맡았다. -나에게 목소리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목을 잘 관리하려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피곤하면 목소리부터 변한다.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 목소리는 지문처럼 타고나는 것이지만, 과음을 하거나 흡연을 하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물병을 갖고 다니며 하루에 2ℓ 이상을 마신다. -언제부턴가 ‘성우’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로 더 많이 활동한 것 같다. 큰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2000년 입대영장이 나오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군사법원에서는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그 전까지는 내 종교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들이 그렇게 되니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된 건 1987년부터다. 주변에서 “왜 하필…”이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난 그저 내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부모를 따라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청와대나 법무부 등을 쫓아다녔다. 세상이 날 싸움꾼으로 만든 셈이었다. 그 이후 광고 출연 요청 등도 완전히 끊겼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정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데 둘째도 2011년부터 감옥살이를 했고 지금 스물네 살인 셋째는 재판을 받고 있다. 요즘 많이들 물어보는 게 ‘걸그룹 며느리’(‘카라’ 출신 김성희) 얘기다. 그 아이는 나에게 막내딸과 같다. 결혼한 지 5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성우 양지운 1970년대 이후 중후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늘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의 대표 성우다. ‘600만불의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왼쪽·스티브 오스틴)를 비롯해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도망자, 스타워즈), 로버트 드니로(오른쪽·히트, 대부2,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알 파치노(애니 기븐 선데이), 리엄 니슨(테이큰, 쉰들러 리스트), 멜 깁슨(가운데·리썰 웨폰, 브레이브 하트), 케빈 코스트너(보디가드, 워터월드), 러셀 크로(글래디에이터), 숀 코너리·로저 무어(007 시리즈),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 등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시청자들을 만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1948년 경남 통영 출생 ▲경기 의정부중·고 ▲한양대 토목공학과 중퇴 ▲TBC 성우 5기 입사(1969년) ▲MBC 라디오 연기대상(1984년), KBS 최우수 외화 연기상(1999년), 한국방송대상 성우상(2010년) ▲한국성우협회 부이사장(2004년),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겸임교수(2005년)
  •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 열려…한규호 서울신문 기자 등 18명 희생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 열려…한규호 서울신문 기자 등 18명 희생

    제39회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도식이 27일 오전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 주관으로 경기 파주시 문산읍 봉서리 통일공원 내 종군기자 추념비 앞에서 열렸다. 이날 정 회장은 추도사에서 “한국전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숭고한 기자 정신을 되새기며 그들이 보여준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김영준 경기북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해 한영섭 6·25종군기자동우회장, 이형균 기자협회 고문 등 원로 언론인들과 국방부, 파주시 관계관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 상황을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는 모두 18명(미국 10, 영국 4, 프랑스 2, 필리핀 1, 한국 1)이었다. 한국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한규호 서울신문 기자가 순직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보이는 유서 깊은 취재 현장에 세워진 이 추념비는 1977년 전국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 지원금으로 건립됐다. 파주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수요 에세이] 직장 내 성희롱예방정책 20년 전과 지금, 그리고 20년 후/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수요 에세이] 직장 내 성희롱예방정책 20년 전과 지금, 그리고 20년 후/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지난해 말 어느 중앙부처 사내 게시판에 간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글이 올랐다. 엘리베이터 보수 공사를 했는데 최신식으로 한다고 내부를 모두 유리로 교체했다. 거울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은 반응이 있었다. 어느 여직원이 유리 엘리베이터 내에서 남성들의 쳐다보는 눈길이 불편하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다. 한 간부가 내게 묻는다. “이게 성희롱이냐, 아니냐.” 지금 인권위원회 성희롱 기준에 따르면 ‘이상한 눈빛’은 성희롱에 해당되지 않는다. 성희롱의 기준은 보통 사람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느끼는 성적인 불쾌감이나 굴욕감이다. 하지만 게시판 글로 인해 그 기관은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 게시판이면 어떠랴. 이렇게라도 직원들의 의견이 언제든 존중받고 소통할 수 있으면 건강한 조직이다. 1980년대만 해도 성희롱은 그냥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다. 말단 직원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한 대학교 선배 언니 얘기를 들어 보면 당시엔 내색도 못 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었다. 선배 언니들은 말했다. “음담패설은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들은 좋은 세상에 사는 줄 알아.” 성희롱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불과 20년 전이니 선배들의 말에도 수긍이 간다. 1995년 우리나라 법령에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처음 도입되고 19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이 제정되면서 그해 7월부터 여성가족부의 전신이었던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성희롱 사건을 접수받기 시작했다. 성희롱이 남녀 차별이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20년 전에 시작됐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다. 우리보다 먼저 여성의 사회 참여를 경험한 미국은 1980년부터 고용평등기회위원회에서 성희롱을 남녀 차별의 한 형태로 보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미시간대 캐서린 매키넌 로스쿨 교수의 ‘성희롱금지제도의 모델 이론’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녀는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법률가로 1979년에 성차별의 한 형태로 성희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 최근 모 기관에 근무하는 남자 후배를 모처럼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후배가 숨은 고충을 토로했다. “우리 상관이 여자인데 회식 자리에서 엉덩이도 툭툭 치고 성희롱 발언도 무지하게 해요.” 내가 한마디했다. “운영지원과에 고충 신청해요. 아니면 하지 말라고 본인에게 얘기하든지.”, “둘 다 못 하겠어요. 그런 일로 신고한다고 할까 봐요. 제가 참든지 피해야죠, 뭐.”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는 평소에 ‘성희롱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하면 성희롱도 여성이 다 좋아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남자답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착각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공기업 여직원들과 멘토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공기업은 직원이 1만명 정도 된다. 여성은 10%다. 직장 내 어려움에 대한 얘기들이 자연스레 나왔다. 어느 여성 부장이 최근에 놀란 경험담을 말했다. 회식 도중에 젊은 남자 직원에게 덕담을 건넸단다. “이 대리, 요즘 왜 이리 이뻐졌어?” “무슨 일 있었어요?” 그랬더니 주위에서 놀리더란다. “성희롱이야, 성희롱.” 아무 생각 없이, 특별한 의도 없이 얘기했는데 주위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나도 여성이지만 상사니까 말조심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아니 이뻐졌다는 말이 어때서?’라는 생각이 교차했지만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남자 직원을 대할 때 더 조심한다고 했다. 본인 스스로 남성화돼 가 걱정이라는 다른 여자 부장들도 좋은 교훈이라고 한마디씩 던졌다.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단순한 농담 가지고 왜 그러는지?’, ‘여성들이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여성 직원들과는 얘기도 하지 말아야지’, ‘왜 이런 제도는 쓸데없이 만들어 가지고’라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요즘은 확실히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여러 고위 정치인, 학교, 군대 내에서의 성희롱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디기는 하지만 조금씩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희롱 예방을 위한 정책과 법적 장치는 점점 견고해지고 있는 만큼 사회의 의식도 같이 따라가야 하는데 사건이 자꾸 일어나는 걸 보면 변화는 여전히 더딘 것도 같다. 불과 20년 전에는 성희롱 개념에 무지했던 우리 사회가 20년 후에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안심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꿈꿔 본다.
  • 동네변호사 조들호, 박신양 류수영 박솔미의 첫 만남은? ‘풋풋 검사 시절’ 공개

    동네변호사 조들호, 박신양 류수영 박솔미의 첫 만남은? ‘풋풋 검사 시절’ 공개

    KBS 2TV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극본 이향희/연출 이정섭, 이은진/제작 SM C&C)에서 박신양, 류수영, 박솔미의 유별난 첫 만남을 공개한다. 법조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박신양(조들호 역)이 풋풋한 신입 검사였던 류수영(신지욱 역), 박솔미(장해경 역)와 첫 만남부터 어마무시한 일을 벌인 예사롭지 않은 과거사가 펼쳐지는 것. 공개된 사진은 오늘(26일) 방송의 한 장면으로 조들호(박신양 분) 신지욱(류수영 분), 장해경(박솔미 분)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로 눈길을 끈다. 특히 신입의 패기가 느껴지는 신지욱과 장해경은 발령 첫 날부터 이단아 검사 조들호의 스파르타식 생활에 합류해 피할 수 없는 산전수전을 겪게 된다. 또한 물과 기름 같은 숙명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들호와 신지욱의 선후배 시절 역시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무엇보다 부부의 연까지 맺었던 조들호와 장해경은 거칠었던 첫 만남부터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하는 설렘의 순간까지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시청자들에게 전한다고. 한편, 어제(25일) 방송에서 조들호는 원장(김정영 분)을 구속시키기 위해 무릎까지 꿇는 특단의 조취를 취했다. 이는 원장의 진심을 밝혀내기 위한 전략으로 원장은 무릎을 꿇은 채 유도질문을 하는 그에게 걸려들어 속마음을 실토, 그 자리에서 체포돼 사건이 일단락 됐다. 박신양, 류수영, 박솔미 세 사람의 과거 이야기는 오늘(26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KBS 2TV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10회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사진=SM C&C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청원 의원 “국회의장 꿈 접어야”

    서청원 의원 “국회의장 꿈 접어야”

     20대국회에서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26일 “일부 신문에서 국회의장 (후보 관련 보도가) 나오는데, 야당이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다 접어야한다”고 의장을 포기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서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최다선 자격으로 당선자 대표 인삿말을 하던 중 “나는 대권 꿈도 없다. 이미 그런 과정을 겪었다. 원내대표 꿈도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당이 집권여당으로서 마지막 열할을 하기 위해서 의원 개인의 목표보다는 모두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나도 훌훌 털어놓겠다”는 취지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서 의원은 이 자리에서 후배 당선자들에게 “격렬하게 토론하되 당론으로 결정되면 싸우지 말고 따르는” 자세를 주문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열린세상] 인성과 톨레랑스/정영길 건양대 행정부총장

    [열린세상] 인성과 톨레랑스/정영길 건양대 행정부총장

    지난해 우리 사회를 충격 속으로 빠트린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의 직원으로 일하던 제자를 둔기로 폭행하고, 인분을 먹이거나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3년간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행위를 한 이른바 ‘인분교수’ 사건이다. 이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해 초 ‘악마 동기생’ 사건이 일어났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 취업시켜 주겠다는 것을 미끼로 동기생을 폭행하고 가학행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또다시 ‘악마 선배’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학교 후배를 3년에 걸쳐 골프채가 부러질 때까지 폭행하고, 변기물을 마시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대학생이 붙잡힌 것이다. 이 충격적인 세 개의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교수와 제자, 선배와 후배, 동기생 간 등 대학 내 핵심 구성원들 사이에서 말이다. 동료와 함께 학문을 탐구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지식 습득 및 인성 함양에 힘써야 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폭력 조직에서나 벌어질 만한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인성이라는 덕목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입을 모아 ‘능력보다 인성을 갖춘 사람을 뽑겠다’고 말하고 있고,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인성 함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초·중·고 시절부터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여야 199명 만장일치로 통과돼 올해부터 교육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필자 역시 학생을 교육하는 선생으로서 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 기관 및 기업에서 어떤 인성을 가진 학생을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던 중 사람마다, 조직마다 강조하는 인성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 안에서 중시되는 인성과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성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가족 간에는 상호 소통을 통해 상대방의 잘못을 덮어 주고 무한적인 희생과 사랑을 하라고 가르친다. 기업에서는 동료와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되 상호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하고 그 가운데 수직적인 위계질서는 반드시 존중되는 것이 덕목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직의 목표에 따라 인성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인성이라는 이름으로 위계질서에 순응하기를 강요당하거나 부조리한 관행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성이 하나의 수단이 돼 버리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내부 고발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이유로 쉬쉬하며 부조리에 눈감기를 강요하는 공동체의 요구를 거부하고 세상에 알리는 사람을 과연 인성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이 심해지면 우리는 점점 인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창의적이고 개성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나 행동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책의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움받기를 두려워하는 사회, 그것은 인성의 차원을 뛰어넘어 모든 구성원이 소모품처럼 돼 버리는 끔찍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인성은 중요하다. 인성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성향이며, 특히 짐승과 다르게 함께 어우러져 번영하며 사는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인성을 강조해야 하고 대학에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인성 함양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인성의 기준을 너무 좁게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때 프랑스어인 톨레랑스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영어로 관용을 뜻하는 톨러런스(Tolerance)와 같은 의미다. 톨레랑스란 타인과 나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성 역시 톨레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튀고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조직의 구성원이 돼 최선을 다하되 창의성을 잃지 않고 곧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 화마에 악기 잃었지만… 헌정 제안받고 다시 선 팔순의 악사

    화마에 악기 잃었지만… 헌정 제안받고 다시 선 팔순의 악사

    자택 화재로 수십 년 ‘지기’ 잃어… 伊 제작사 “전폭 지원” 연락해 와 가수 열에 아홉·대통령들 반주도 “비결은 집착”… 30일 이대 공연 ‘대중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팔순의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80). 그는 최근 사반세기를 함께해 온 악기를 잃었다. 이달 초 서울 군자동 자택에 불이 나면서 악기도 잿더미가 됐다. 늘 현관 옆에 두던 거라 집어 왔으면 될 테지만 그럴 정신도 없었다. 48㎏의 왜소한 체구에 30㎏ 무게의 악기를 번쩍 들기도 어려웠다. 오랜 지기를 잃었지만 그의 얼굴은 고요했다. “내 실수로 남한테 피해 입히고 나도 거지 됐는데 그거 아깝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인명 사고라도 날까 봐 옆방 사람 깨우느라고 갖고 나올 생각도 미처 못 했어요. 그걸로 얼마나 연주했느냐. 안 해 봤다 할 사람이 없을 만큼 했지요. 너무 낡아서 녹음할 때마다 애를 먹었을 정도로요. 미련 없이 잘 떠나보낸 거예요.” 심성락의 연주 이력을 꿰어 보면 그대로 한국 대중음악사가 된다. 패티김,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등 국내 가수 열에 아홉의 음악은 그의 연주에 빚졌다. 현재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등록된 그의 연주곡만 7500여곡, 음반은 1000여개에 이른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고1 때 부산 광복동의 악기상에서 처음 본 아코디언을 저절로 연주할 만큼 재능을 타고났다. 부산 KBS 방송국에서 ‘고등학생 악사’로 활동하던 그는 고2 때 자퇴하며 연주자로 나섰다. 1970년대 초반엔 색소폰 연주자 이봉조의 소개로 김종필 전 총리의 전자오르간 교습 선생을 지냈다. 그 인연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노래 반주를 하면서 ‘대통령의 악사’로도 불렸다. 음악 정규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연습을 오래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번 들은 곡은 다 외워 연주할 수 있다. 대가는 “비결은 집착”이라고 했다. “집착이 연습만큼 중요해요.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되면 잘 들으면서 상상을 해요. 어느 손가락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연주할지 누워서 천장을 보며 피아노 건반으로 상상을 하는 거죠. 노래도 불러 봐요. 그게 아니면 몇 번이고 고치고…. 그런 상상력과 집착이 내 재주라면 재주였죠. 제대로 교육은 못 받았지만 대충대충은 못 참았어요. 누가 대충대충 연주하자 하면 아코디언을 집어던졌어요.” 그는 그렇게 애착을 품어 온 음악 인생을 2010년 스스로 끝맺으려 했다. 지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받은 상처,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이드니 건망증이 심해져 곡 순서를 다 적어 놓고도 무대에서 안 보여 애를 먹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더 피해 주기 전에 내가 그만두자 한 거죠.” 그러나 무대는, 음악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2009년에는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2011년 후배들은 그만을 위한 헌정 무대를 꾸몄다. 최근까지도 한대수 새 앨범에 참여하는 등 팔순의 나이에도 크고 작은 음악 활동을 이어 왔다. 오는 30일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리는 현대음악축제 ‘라잇 나우 뮤직 2016’ 무대에 가야금 명인 황병기,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를 비롯해 박경소, 박종화, 플럭스 쿼텟, 만트라 퍼커션 등 국내외 음악인과 나란히 선다. 악기는 불탔지만 지인이 빌려준 악기로 관객과 만나는 그에게 또 다른 희소식도 날아들었다. 그가 쓰던 5열식 아코디언을 제작한 이탈리아 파올로소프라니 본사에서 “반세기 이상 우리 악기를 써 준 연주자가 화재로 악기를 잃었으니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는 메일이 온 것이다. “수많은 무대와 사람을 거쳤지만 1950~1960년대 다방에서 매일 음악만 듣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그 시절 듣던 음악이 내가 지금까지 연주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거죠. 그때 명연주자들을 보면 악기회사에서 특별히 헌정한 악기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니 울컥 눈물부터 나데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인성·기술교육 6대4로 가르친다”

    [글로벌 인사이트] “인성·기술교육 6대4로 가르친다”

    적극·긍정적인 생활방식 심는 게 우선 호텔 견학도 어두운 빨래방부터 데려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받은 초콜릿인데 아까워서 먹을 수가 없어요.” 백년학교 원보(文博) 교장은 냉장고에 잘 보관된 산타클로스 모양의 초콜릿 과자부터 꺼내 자랑했다. 지난해 학교를 졸업해 중국 최고급 호텔인 베이징 힐튼호텔에 취업한 제자가 준 선물이다. 이 제자는 어려서 케이크를 모르고 자라다가 생일날 어머니가 사 온 작은 케이크를 처음 맛봤다. 돈이 없어 큰 케이크를 사오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제자는 베이커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백년학교에 들어와 마침내 꿈을 이뤘다. 원 교장은 “다음달에는 우리 학교에서 결혼 잔치가 열린다”며 또 다른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암에 걸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제자가 어엿한 기업의 관리자가 돼 같은 학교 출신의 여자 후배와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다. 학교는 졸업생 커플이 탄생할 때마다 결혼 잔치를 여는데,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한다. “제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게 어디 있겠느냐”고 싱글벙글 웃는 원 교장도 사실 서른두 살에 불과하다. 국유기업에 다니던 중 2006년 회사에서 개최한 백년학교 기부금 전달식에 참석했다가 이곳의 교육철학에 감동받아 이직했다. 설립자인 야오리는 주로 외부 활동을 하며 기부금을 그러모으고, 원 교장은 학생들의 교육과 생활을 책임진다. 원 교장은 “인성교육이 60%이고 기술교육이 40%”라고 강조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 방식을 심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빈곤 가정의 학생일수록 부모들이 미안한 마음에 응석받이로 키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뭐든지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원 교장은 소개했다. 백년학교 학생들을 채용한 기업으로부터 “기쁘게 일하는 자세가 좋다”는 평가를 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교육은 무척 실용적이다. 이를테면 바닥재가 교실과 복도마다 다 다른데, 다양한 재질을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호텔 견학을 가더라도 화려한 객실보다는 어두운 기계실이나 빨래방부터 데려간다. 3년 과정 중 1년 반은 기업체에 나가 실습을 하면서 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해당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원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한국 기업과 한류 문화에 특히 관심이 많다”면서 “한국의 더 많은 재능기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中 흙수저 청년들 “보통 사람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히 큰 꿈”

    [글로벌 인사이트] 中 흙수저 청년들 “보통 사람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히 큰 꿈”

    가정 형편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 못 해 기술 배우는 비정규 학교 취업률 100% 中 전역 9곳·베트남·앙골라에도 설립 “미래는 희망적일 거라 믿어요. 그런데 제가 그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됩니다.”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의 ‘백년직업학교’(百年職校)에서 만난 주징(朱?)은 자신을 열아홉 살이라고 소개했지만 초등학생처럼 앳돼 보였다. 스무 살 쉬잉(徐瑩)도, 열일곱 창링(常嶺)도 마찬가지였다. 몇 마디를 나누니 이들이 어려 보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비단결처럼 곱고 긍정적이며 소중한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들이 착한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 꿈을 갖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이 친구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대견해 보였다. ‘빈곤’이라는 힘겨운 굴레에 좌절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년학교는 농민공 자녀들이 다니는 직업학교다. 의무교육 9년을 마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으로, 정규 과정의 학교는 아니지만 취업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한 기술학교다. 여성 자선사업가 야오리(姚莉)가 2005년 베이징에 처음 설립한 이후 중국 전역에 9개 학교가 생겼고, 앙골라와 베트남에도 설립됐다. 중국에서만 800여명의 청소년이 공부와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현재 베이징 학교의 재학생은 86명이다. 졸업생 2500여명이 각 분야에서 백년학교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간쑤성에서 온 주징은 “호텔리어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호텔 관리를 배우면서 틈틈이 메이크업 기술도 익히고 있다. 쓰촨성에서 온 쉬잉은 베이커리를 차리는 게 목표고, 허난성이 고향인 창링은 근사한 중국요리 전문 식당을 내고 싶다고 했다. 세 친구에겐 똑같은 꿈이 하나 더 있었다. 나중에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혼자 보내야 했고, 이제는 자신이 돈 벌 준비를 위해 멀리 떠나온 이들에게 부모님과 고향은 늘 그리운 대상이다. 이들은 대학 입학을 준비하거나 대학생이 된 또래들을 부러워할까? 창링은 “어차피 각자 갈 길이 다르지 않으냐”면서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쉬잉은 “어릴 적에는 대학에 꼭 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학교에 만족한다”며 “대학에 간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답했다. 주징은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성실과 책임, 그리고 인생을 배운다”고 말했다. 백년학교 운영의 원동력은 수많은 사람의 기부에서 나온다. 학교로 쓰이는 허름한 빌딩과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사, 통학버스도 모두 기부받은 것이다. 복도에는 기부자들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한 해 기부자가 1000여명에 이른다. 중국인은 물론 포드, 노키아, DHL 등 수많은 외국 기업 명단도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받은 기부금은 2억 2000만 위안(약 388억원)이다. 투명한 운영을 위해 베이징 시정부, 회계기업 딜로이트, 공산주의청년단 산하 중국청소년기금회로부터 3중의 회계감사를 자청해 받고 있다. 기부의 혜택을 받으며 그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학생들도 매일 1위안(약 176원) 이상 기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지금까지 학생들이 모은 기부금은 115만 위안(약 2억원)으로, 후배들을 위해 계속 적립된다. 기부의 핵심은 역시 ‘교육 기부’다. 수많은 기업이 학생들의 실습을 위해 작업장을 선뜻 빌려준다. 선생님들도 모두 재능기부자다. 11년 동안 500개의 강좌를 개설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전문가와 교사들이 재능기부에 나섰기 때문이다. 재능기부자들이 곧 선생님이어서 이 학교 선생님은 무려 1700명에 이른다. 이날은 마침 한국 기업 CJ푸드빌이 개설한 커피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CJ푸드빌 소속의 중국인 바리스타가 커피의 역사와 종류를 재미있게 풀어냈고, 학생들은 한마디도 놓칠 수 없다는 듯 꼼꼼히 필기했다. CJ푸드빌은 제빵과 요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실습을 시킨다. 이 같은 기부는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CJ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학생을 가르친 뒤 그들을 채용하면 기업 이미지뿐만 아니라 인력 수급 및 현지 시장 확대에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는 기업이 요구하는 강좌를 열고, 기업은 학생을 직접 훈련시키는 상생 모델이 백년학교의 최대 강점이다. 백년학교의 교훈(校訓)은 ‘학주보통인’(學做普通人)이다. “열심히 배워 보통 사람이 되자”는 뜻이다. 학교는 보통 사람이 되기 위해 첫째 신체가 건강해야 하고, 둘째 시비를 가릴 줄 알아야 하며, 셋째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소박해 보일지 모르나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마주한 농민공의 자녀들에겐 절박한 꿈이다. 가난 속에서도 미소와 용기를 잃지 않는 백년학교 학생들이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날 중국은 더욱 강력한 나라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사진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EN스타그램] ‘결혼계약’ 끝낸 유이, 후배 세븐틴 응원 “예쁘다 대박♡”

    [EN스타그램] ‘결혼계약’ 끝낸 유이, 후배 세븐틴 응원 “예쁘다 대박♡”

    지난 24일 종영한 MBC 드라마 ‘결혼계약’으로 연기력을 입증한 유이가 소속사 후배 챙기기에 나섰다. 25일 유이 인스타그램에는 “어쩜..뭘해도..사진을봐도..뮤비를봐도..영상을봐도..참..세븐틴은..예쁘다!!!♡(노래제목!!ㅎ)이번앨범도대박!!!ㅎ세븐틴화이팅!!!ㅎ #세븐틴#예쁘다#대박”이란 글과 함께 타이틀곡 ‘예쁘다’ 스트리밍 화면을 캡쳐한 사진이 올라왔다. 유이는 세븐틴 소속사 플레디스의 선배로, 후배의 신곡 발표를 적극 응원해 훈훈함을 자아냈다. 한편, 25일 0시 세븐틴은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정규 1집 ‘러브&레터’(LOVE&LETTER)를 공개했다.  세븐틴 멤버들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전곡의 작사, 작곡부터 랩 메이킹, 안무, 프로듀싱까지 전반적인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단독] MT 불참시 수업 결석 처리?… 한양대 예체능대 학생회 ‘갑질’ 논란

    [단독] MT 불참시 수업 결석 처리?… 한양대 예체능대 학생회 ‘갑질’ 논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예체능대학의 학생회가 MT 참석을 강요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단과대학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자주 집합시키고 단대 교수와 학생들이 모두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에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는 등 ‘군기’를 잡는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24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에리카 대나무숲’에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의 한 단대 학생회장단이 MT 참석을 강요한다는 제보가 올라왔다. 제보에 따르면 회장단은 MT 당일 수업이 없는 데도 MT에 참석하지 않으면 수업 결석처리를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단은 또한 MT 당일 아르바이트 등으로 참석이 어려울 경우 증명할 수 있는 공문을 제출하고, 만약 공문 제출이 어려우면 아르바이트를 빠지고 MT를 참석하라고 강요했다. 이밖에도 학생회는 MT 가는 버스안에서 몇 시간이든 상관하지 않고 잠을 재우지 않으며, 술도 억지로 먹여 원성을 샀다. 취재 결과 이 단대는 예체능대학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체능대에서는 평소에도 학생회장단 등 선배들이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다며 물의를 빚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학생이 지하철에서 친구들과 회장단을 욕하자, 이를 알게 된 회장단은 단대 교수와 학생들이 모두 있는 단체 카톡방에 “XX부 13(학번) 검정머리 최근에 지하철에서 회장단 욕한X 전화해라” “XX부 내 밑으로 다 족치기 전에 전화해라”라며 협박성 메시지를 잇달아 보냈다. 또한 이 단대에서는 후배가 잘못 했을 경우 선배들이 집합을 시켜 혼을 내고 1시간 이상 운동장을 뛰게 하는 AT(Animal Training)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양대 예체능대 측은 “MT 참석 강요는 처음 들어본다”며 “제보글이 올라와 논란이 있는 줄 알았으며, 학생들도 학교 측에 MT 참석을 강요해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학생회는 25일 사과문을 발표해 “엠티 준비 상에 나타난 모든 미숙한 행동에 대해 모든 학우분들에게 사과드린다”라면서 MT 계획을 전면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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