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후배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연설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주류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임대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951
  • 보험사기 잡은 차량 사고기록장치…2011년 이후 장착

    차량에 부착된 사고기록장치(EDR)가 보험사기 사건을 해결했다. 대전지방경찰청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타낸 이모(39)씨 등 4명을 사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중고차 매매업자인 이씨 등은 지난 4월 13일 오후 10시쯤 충북 옥천의 한 시골길에서 에쿠스 리무진 승용차를 도랑에 빠트린 뒤 보험금 명목으로 4500여만원가량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후진하다가 승용차가 도랑으로 빠졌다고 주장하며 보험사를 속였다. 하지만 보험사기가 의심된다는 보험사의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사고 차량에 부착된 EDR을 차량기술법인에 분석 의뢰해 이들의 사기 행각을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차량이 추락된 것으로 분석됐다”며 “이를 근거로 추궁해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 사기로 이어진 고의 교통사고를 이 같은 기법으로 확인한 건 전국적으로 흔치 않은 사례”라고 덧붙였다. EDR은 자동차 사고 전후 일정 시간 자동차 운행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2011년 이후 생산된 우리나라 승용 차량에는 EDR이 장착돼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 등은 사들인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팔리지 않자 같은 중고차 매매업 후배와 공모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t
  • [In&Out]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과 ‘시조’는 없다/조대현 동화작가·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고문

    [In&Out]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과 ‘시조’는 없다/조대현 동화작가·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고문

    지난 4월 초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기 구청 문화관광과인데요. 이번에 새로 설립되는 국립한국문학관을 우리 구 관내로 유치하기 위해서 선생님을 유치추진위원으로 모시고자 전화드렸습니다.” 문단 생활 50년에 이런 전화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 어정쩡하게 반승낙을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문인 사회의 숙원인 한국문학관을 국가가 세워 준다는 것도 뜻밖이고, 평소 호적 관리나 각종 인허가 등 행정업무나 보는 줄 알았던 구청에서 문학에까지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이 놀랍다 못해 신기했다. 그래서 유치위원회 발대식에도 자진해 출석하고 문학관 유치를 위한 지지 서명 운동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그러던 중 내 전문 분야인 아동문학인들 모임에 나갔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문학관 설립의 근거가 되는 문학진흥법에 성인문학 장르는 들어 있는데 아동문학은 빠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성토하는 젊은 후배들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문학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벌써 4개월여가 지났는데 나 자신도 아직 법조문을 읽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급히 인터넷을 뒤져 보니 정말 문학진흥법 제2조 ‘문학용어의 정의’ 1항에 시·소설·희곡·수필·평론은 명문화돼 있는데 아동문학과 시조는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새로 짓는 국립문학관에 아동문학과 시조 관련 자료는 들어갈 자격이 없단 말인가. 이건 모욕도 보통 모욕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해 볼 수는 있다. 아동문학에도 동시·동요·동화·아동소설·동극·아동문학평론 등 여러 갈래가 있으니까 이것을 시(서정)문학·서사문학·극문학·비평문학으로 분류하면 앞의 다섯 가지 장르에 모두 포함된다. 그러면 시조도 시문학에 들어가니까 별 문제가 없다. 그렇더라도 엄연히 독립된 장르로, 각종 문학지에서도 타 장르와 구분 편집하는 아동문학과 시조를 우리 문학 사상 최초의 기념비가 될 문학진흥법에 명기하지 않은 것은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 대표 발의자인 도종환 의원께서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입장을 밝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문학진흥법에 굳이 5개 장르만 못박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면 아동문학과 시조는 문학진흥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없으면 모처럼의 문단 경사가 공연한 논란으로 시끄러워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문학관 건립에 더욱 관심이 생겨 그동안 나온 신문 기사를 살펴보니 전국 지자체 사이에 유치 경쟁이 여간 치열한 게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문학관을 앞으로 어떤 성격의 기관으로 키울 것이냐 하는 발전 방향 설정이 그것이다. 문인, 출판인 등 전문가 집단과 문화 관련 기관이 서로 연계망을 형성하고 있고, 전국 어디서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우선 건립 후보지로 고려돼야 할 것이다. 문학관의 발전 방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학관이 단순히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전시 공간에 그쳐서는 안 되고, 이곳을 찾는 전문가들이 축적된 자료를 활용해 새로운 문학 콘텐츠를 개발하는 연구 위주의 기관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기능을 가장 잘 발현할 지역이 어디일지, 관계 당국은 곧 있을 적지 선정에 최대한 공정성과 투명성을 살려 주기 바란다.
  • 남상태 로비설부터 MB정부 연루설까지… 檢, 어디까지 찌르나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지난 8일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경영·분식회계 의혹 수사에 착수하며 검찰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 경영진들에 그치지 않고 정·관계 의혹에까지 손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번 수사 대상 중 한 명인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 경영상 의혹과 함께 정·관계 유착 및 로비 의혹도 받고 있다. 그동안 남 전 사장의 뒤를 봐준 인물로 매제인 김회선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이름이 줄곧 거론됐다. 김 전 차장은 남 전 사장과 관련된 소송, 연임 등을 위해 정권 실세에게 로비를 하며 힘을 썼다는 의심을 정치권 안팎에서 받아 왔다. 특히 한 기업의 소송에서는 김앤장 고문 변호사로 거액의 성공 보수를 약속받고 관련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남 전 사장은 김 전 차장과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 이민희 변호사를 사외이사에 영입하려다 불발되기도 했다. 이날 김 전 차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나와 관계없는 내용이며 지어낸 얘기들”이라고 부인했다. 김 전 차장은 “(남 전 사장과) 형님 매부 간이니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그간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른다”면서 “남 전 사장 연임 건도, 김앤장에서 대우조선 사건을 맡는지도 몰랐다. 당시 김앤장에서 받던 수임료도 1억원이 안 됐다”고 해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싼 의혹은 청와대로까지 번져 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와 안종범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의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해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석연치 않은 상태다. 그러나 검찰은 청와대로까지 수사를 확대하진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 관계자는 “신속히 수사를 해야 하고 범위도 무한정 확대할 수 없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9년(남상태·고재호 전 사장 재임 기간)간의 문제점들을 위주로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대우조선 연루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인물 중 검찰 고위 관계자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자기 집에 칼을 대긴 어려운 법”이라고 청와대 조준이 쉽지 않을 것임을 에둘러 설명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나이를 무색하게 했던 10년 전의 ‘혈기방장’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팔순에 접어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손님을 맞을지 그려보며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유, 많이 덥지? 어서 와, 어서 와.” 문을 여는 그의 말투와 표정. 10년 전의 그가 다시 보였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2002~2006년) 어떤 전임자들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박승(80) 전 총재는 여전히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봐 학생, 기껏 어려운 시험 봐서 합격해 놓고 왜 포기하려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4년 2월 어느 날, 해군 제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입교 절차를 밟지 않자 ‘등록을 서두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더니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전북 김제의 깡촌까지 직접 사람이 달려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리공고 수석 졸업 예정자를 반드시 데려와 입교시키라는 해사 교장의 ‘특명’을 받은 그 군인은 나의 고집에 아주 난처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끝내 임무 완수를 못 하고 돌아간 그날은 나의 힘겨운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36년, 호남 벽촌 마을에서 어느 집이라고 여유가 있었겠냐마는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아버지는 원래 한의사였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고, 나를 보셨던 44세 때의 아버지는 가족의 기초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치료하던 환자가 급사한 뒤 의술의 길을 포기했던 아버지는 그 후 평생을 한글 초서체 연구에 바치셨다. -194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7㎞ 떨어진 이리공업중·고에 진학했는데,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때는 모심고 김매느라고, 어떤 때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갔다. 어머니 혼자 새벽엔 보리방아 찧고 낮에는 논일하고 저녁엔 길쌈해서 생계를 꾸리시다 보니 중·고교 6년 동안 수업료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불시에 수업료 납부 영수증 검사를 해서 영수증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을 못 내서 공부를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와 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한글 서체와 씨름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깨, 콩, 닭, 토끼를 이고 지고 5㎞ 떨어진 읍내에 가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중3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학생단체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학생들 중 6명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던 고2, 고3 형들이었다. 얼마 후 유엔군이 들어와 인민군이 퇴각했는데, 그 형들은 천생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당할 판이었다. 결국 다들 산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빨치산이 돼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결국엔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몇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했겠구나.’ 좌우 이념 대결의 허망하고 참혹한 결과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 집 아들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어야 되겠네.” 동네 아낙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만 고3 졸업반인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 아니면 예순 넘긴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2남 4녀 중 형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은 출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군 사관학교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해사에 시험을 쳤다. -해사 입교를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했던 그해, 가을 수확을 하니 먹고살 것 빼고 딱 쌀 다섯 가마가 남았다. ‘이 정도면 일단 대학에 등록할 수준의 돈은 되겠다.’ 이듬해 초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시험을 봤다.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 5개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 주변의 살풍경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머리에 또렷하다. 곰탕집 간판을 보고는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 간판을 보고는 ‘떡 파는 곳’으로 오해했던 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55학번으로 서울대 합격을 했는데, 입학 때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그래서 고등교육받는 게 가당치도 않은 시골 출신의 고학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고향집의 농사가 문제였다. 수시로 서울과 김제를 농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중·고교 6년 동안 그랬듯 학비와의 전쟁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입학 때 가졌던 경제학 교수에 대한 바람은 더 절실해져 갔다. 그러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은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였다. -1961년 한국은행 배지를 달았다. 만 25세였다. 양복 한 벌을 18개월 할부로 사 입으니 세상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얼마 후 5·16 정변이 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동국대 옆에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에서 사무관 이상 공무원과 교사, 교수, 기업인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입행 첫해의 내가 여기에 강사로 위촉됐다. 매주 3~5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교의 교장 선생님과 대학 총장, 학장도 나의 강의를 듣는 상황이 됐다. 대학 은사 박희범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란 건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후에야 알았다. 경제기획론과 경제발전론을 가르치셨던 박 교수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의 학자이셨는데, 혁명정부에서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으셨다. 교수님은 나중에 교육부 차관과 충남대 총장을 지내셨다. -운명을 바꾼 미국 유학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나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취조당했다. 일인즉슨 이랬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적자가 대단히 심했는데 한국은행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뛴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서봉균 재무장관을 초청해 환율 인상 정책을 펴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원고 작성과 발표를 대리급 조사역에 불과했던 내가 담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에 당장이라도 정부가 환율을 대폭 올리는 듯한 기사가 났다.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왔다. 얼마 후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행원부터 부총재보까지 담당자들을 모조리 연행해 갔다.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줬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는데, 작성자인 내가 우선적으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후배 행원이 신문기자 친구에게 발설한 사실이 드러나 나의 혐의점은 벗겨졌지만, 어쨌든 나는 후배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게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겼다. “자네 혼자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확실히 보상해 줄게.” -보상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1년 한국은행 최초로 국외에 유학생 2명을 파견하게 됐다.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봤는데 나는 통계학에서 과락이 나와 탈락했다. 그런데 재시험 공고가 떴다. “어떻게든 박승 대리는 합격시키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72년 1월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캠퍼스)로 유학을 떠났고 2년여가 흐른 1974년 4월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아 왔다. 유학을 마친 뒤 은행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지나 두 군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하게 되는 이경식 당시 경제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이 수석은 한국은행 재직 때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또 하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통해 타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자문단’의 단장 역할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게 됐지만 경제 개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경제 개발을 도와줄 자문단 파견을 한국에 요청했다. 나의 선택은 사우디였다. -사우디에서 1년 만에 돌아와 1976년 9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갔다. 교수 부임 직후에 쓴 ‘경제발전론’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1977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경제 관련 사설을 썼다. 한 편 작성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와 함께 김학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 관련 사설을 서울신문에 썼다.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학교 안에서는 정경대학장과 대학원장을, 학교 밖에서는 국제경제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는데 1988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박 교수,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봅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해 2월 취임을 앞두고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만 52세였다. 노 대통령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양한 언론 기고와 강연 활동 등으로 몇몇 경제단체에서 나를 천거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첫 번째 과제는 ‘200만호 주택 건설’ 공약의 실현이었다. 말이 200만호이지 엄청난 물량이었는데 막상 아파트를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에는 땅이 없었고, 서울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밖으로 나가자.” 지도를 펴놓고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측량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5㎞를 컴퍼스로 동그랗게 돌려 봤다. 25㎞ 이내로 한 것은 ‘지하철 1시간 이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지역이 경기 분당, 산본, 평촌, 인천 중동 등 4곳이었다. 4대 신도시 추진이 확정되자 1988년 12월 노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불렀다. “박 수석, 이제는 건설부 장관으로 고생 좀 해야겠습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행까지 맡아 주셔야지요.” -건설부 장관이 되고 나서 이듬해 서울 북쪽의 일산이 추가돼 5대 신도시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심각한 마찰에 부딪치게 됐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평균 130만원대였는데 건축비는 170만원, 시장 가격은 25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분양 당첨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이 남는 구조였고, 건설회사는 낮은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날림 공사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분양가를 올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실의 반대가 심했다. 분양가를 올리면 집값이 더 뛴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지만 “그 얘기는 이미 경제수석한테 들었다”고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 그게 1989년 7월이었고 이듬해 3월 신학기부터 다시 강단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 정년퇴임을 하고 이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숱한 공직을 거쳤지만 2006년 3월 퇴임할 때까지의 한국은행 총재 4년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의 3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5남매를 결혼시키면서 4명을 청첩장 없이 보냈다. 첫째와 둘째 아이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치렀더니 친구들이 “축의금 낼 기회를 좀 달라”고 해서 셋째 때는 200장을 찍었다. 그런데 역시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다시 넷째, 다섯째의 결혼은 순수 가족 행사로 치렀다. -내가 모은 재산은 언젠가는 전부 사회에 내놓고 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부터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써 왔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오래전에 장기 기증 서약도 마친 상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된 데는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박승 前 총재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또 대학 강단(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경제계의 원로다. 한국은행 총재 때 소신 있고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김제 백석초, 이리공업중·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 경제학 석사·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주택공사·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차관급 인사 3명 프로필] 김형석 통일부 차관

    [차관급 인사 3명 프로필] 김형석 통일부 차관

    1988년 공직 생활을 시작해 정세분석국장, 대변인,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 등을 거쳤다. 2014년 초부터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3월부터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후임으로 통일비서관을 맡아 왔다. 행정고시 32회 출신이다. 정책 추진력이 돋보이며 원만한 성품으로 선후배 동료의 신망이 두텁다는 평을 듣는다. ▲전남 순천(51) ▲순천고 ▲서울대 영문과 ▲통일부 정세분석국장, 대변인,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통일비서관
  • ‘라디오스타’ 강균성, 혼전순결 지키기 위한 ‘스킨십 가이드라인’ 공개

    ‘라디오스타’ 강균성, 혼전순결 지키기 위한 ‘스킨십 가이드라인’ 공개

    ‘라디오스타’에서 빵 뜬 강균성이 혼결순결자에서 ‘얼굴모사’ 장인에 등극했다. 그는 김국진-윤종신-김구라-규현 4MC의 가면을 쓴 듯 한 얼굴모사를 해 김구라를 무장해제 시켰다고 전해져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오는 8일 방송될 고품격 토크쇼 MBC ‘라디오스타’(기획 조서윤, 연출 황교진)는 ‘신기한 노을, 서프라이즈’ 특집으로 배우그룹 서프라이즈의 서강준-강태오와 보컬그룹 노을의 강균성-전우성이 출연한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김국진-윤종신-김구라-규현 4MC의 ‘얼굴 모사’를 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균성이 첫 얼굴 모사 상대로 삼은 이는 다름 아닌 4MC의 맏형 김국진. 강균성은 “입술부터 세팅을 하구요~”라며 눈썹 위치까지 디테일하게 각자의 포인트를 잘 살려냈고, 이를 본 김구라는 물개박수로 화답했다. 무엇보다 이어진 강균성의 윤종신 얼굴 모사에 김구라는 윤종신의 안경까지 전달했고, “너 진짜 똑바로 봤다”며 공개된 사진처럼 무장해제된 웃음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후 강균성이 시도한 자신의 얼굴 성대모사에는 어떤 모습을 보였을 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강균성은 이번엔 훈전순결을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스킨십 가이드라인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스킨십을 하면 올림픽대로에서 바로 경부고속도로로 바로 가는 것”이라며 “신호등이 있는 간선도로에서 멈춰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뽀뽀와 포옹의 허용 가능 범위를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제작진에 따르면 강균성은 서강준-강태오의 1일 개인기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후배 사랑을 몸소 실천해 모두를 흐뭇하게 만들었다는 후문. 강균성의 짐 캐리를 능가하는 얼굴 모사와 폭소를 자아내는 입담, 후배 사랑은 오는 8일 수요일 밤 11시 10분 ‘라디오스타-신기한 노을, 서프라이즈 특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라디오스타’는 김국진-윤종신-김구라-규현 4MC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게스트들을 무장해제 시켜 진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독보적 토크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MBC ‘라디오스타’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수요 에세이] 산 정상으로 가려면 때로는 지팡이가 필요하다/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수요 에세이] 산 정상으로 가려면 때로는 지팡이가 필요하다/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지난 3월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대표적 경영인인 그녀는 최근 국제여성경영재단(WCD)에서 한국지부 설립 제안을 받아 창립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자에게 한국지부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건넸다. 국제여성경영재단은 전 세계 62개 지부로 구성돼 3500여 민간기업 이사들이 모여 만든 글로벌 여성 전문경영인 단체다. 세계 각국 기업의 여성 이사들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교류하기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 조직을 만든 것이다. 또한 기업 경영에 필요한 교육훈련을 하고 전 세계 기업의 모범 사례를 습득하며 정보를 공유케 함으로써 여성 리더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주요 목적이다. 한국지부 창립을 위해 모인 여성 경영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맙시다.” “후배들이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줍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본인들도 기업 경영에 바쁘고 힘이 들 텐데, 그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열정에 감탄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조직이 이제야 만들어지는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는 여성의 경제 참여가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말해 준다. 정부는 그동안 공직·교직 등 여성 관리자 확대 목표제, 정부 위원회의 여성 참여율 확대 목표제 등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에 힘입어 공공부문 여성 참여가 양적으로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양적 확대에는 여성채용목표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행정·외무 고시에 여성이 최대 20%까지 합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7년에 세계화 10대 과제에 포함돼 시작한 이 제도는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우대 조치로 상징성이 컸을 뿐 아니라 성공 여부에 대한 관심도 상당했다. 제도 도입 전에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제도를 통해 합격한 여성의 수는 많지 않았다. 여성채용목표제 자체가 여성 합격률 증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보다는 여성의 공직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공직 참여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우수 여성 인력이 공직에 많이 지원하도록 함으로써 여성의 합격률 증가에 기여한 것이다. 2003년부터는 여성채용목표제가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전환됐다. 공무원 채용 시 남녀 어느 한쪽 성의 합격자 비율이 30% 미만일 때 하한 성적 범위에서 해당 성의 응시자를 목표 비율만큼 추가로 합격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공공기관 상임 여성임원 비율은 겨우 2.8%에 불과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여성관리자 패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관리자가 있는 248개 기업(100인 이상) 이사회의 평균 인원은 사내이사 5.9명, 사외이사 2.5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성은 각각 0.3명과 0.1명에 그쳤다. 각종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지표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이 공개한 우리나라의 성격차지수(GGI)에서 ‘정치적 권한’은 93위, ‘관리자 비율’은 113위였다.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정책 발굴과 지속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우리보다 먼저 여성의 사회 참여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여성의 대표성 확보에 성공한 나라들은 대부분 정부가 중심이 돼 기업 내 여성 고위직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 할당제’를 도입했다. 기업 이사회의 여성 이사 비율을 최소 40%로 정한 노르웨이 정부의 여성임원 할당제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영국은 100대 상장기업이 여성이사 비율을 자율적으로 25%까지 높이도록 권고한다. 그 결과 100대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2010년 10.5%에서 2012년 17.3%로 크게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도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잠재력이 높은 여성 인력에 대한 집중 투자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여성의 대표성 확대는 단순히 참여 확대를 넘어 다양성 제고를 통한 생산성 증진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국가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여성 정책은 정부와 민간단체가 협력할 때 추진력이나 완성도가 높았다. 창립을 앞둔 국제여성경영재단 한국지부도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정부와 손잡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 ‘월세살이’ 자동차 정비공 3000만원 장학금 내 놔

    ‘월세살이’ 자동차 정비공 3000만원 장학금 내 놔

    월세방에서 어렵게 사는 40대 자동차 정비공이 고향 후배들을 위해 3000만원을 내놔 화제가 되고 있다. 6일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쯤 충북 괴산고등학교에 40대 남자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정비공 작업복을 입은 이 남자는 청주시 신봉동의 한 자동차정비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송한영(45)씨였다.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송씨는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5만원권으로 현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송씨의 고향은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다. 이 돈은 송씨가 수년 전 지인에게 거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포기하고 있던 것 가운데 일부를 최근 받은 것이다. 송씨는 거액을 기부하면서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학교 측에 수차례 당부했다. 송씨는 학교 측의 끈질긴 요구에 사진 한 장만 찍고 연락처도 남겨 놓지 않은 채 바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학교 측은 학교와 고향 후배들을 생각하는 송씨의 선행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최근 이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 괴산고는 송씨의 기탁금을 일단 이율이 높은 정기예금 상품에 예치할 계획이다. 이후 ‘송한영 장학회’를 설립해 운영하기로 했다. 괴산고 전원태 교장은 “송씨의 뜻에 따라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겠다”며 “송씨의 장학금이 학생들이 미래의 리더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경제 블로그] “김 마담님!” “임 프로!” 소통 꿈꾸는 호칭 파괴

    [경제 블로그] “김 마담님!” “임 프로!” 소통 꿈꾸는 호칭 파괴

    요즘 기업체들 사이에 호칭 파괴가 유행입니다. 금융권에서는 교보생명이 대표적입니다. 직급이 아닌 직무 중심으로 바꿔서 부르는데요. 마케팅 담당, 고객보호 담당, 정보보안 담당, 자산운용 담당 등 명칭만 봐도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회장님, 부사장님 대신에 ‘○○ 담당님’이 자리잡은 것이지요. 언론 홍보를 맡고 있는 김성한 전무는 경영기획 담당이자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담당이라 부르는 데만도 한참이 걸립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약칭도 생겨났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호칭이 ‘마담님’입니다. 마케팅 담당님의 줄임말이라네요. 그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뭐라고 부를까요. ‘CEO(최고경영자) 담당님’입니다. 회장, 전무 같은 딱딱한 호칭은 직급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인데 ‘계급장’을 떼고 커뮤니케이션(소통)을 수월하게 하자는 취지랍니다. 한 직원은 “신 회장이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없애자며 제안한 아이디어인데 무슨무슨 담당님이라고 하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제일기획은 더 파격적입니다. 사장부터 사원까지 모두 ‘프로’입니다. 임대기 사장은 임 프로, 박규식 신문화팀장은 박 프로입니다. 광고를 만드는 곳이다 보니 좀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이라네요. 비슷한 이유로 삼성바이오는 이름 뒤에 ‘담당’을 붙이고, SK텔레콤은 ‘매니저’를 붙입니다. 오히려 계급 차이를 두기 위해 호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대표이사가 부사장급 이상이면 사장님, 전무급 이하면 대표님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직급 구분 없이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계열사의 ‘진짜 사장님들’ 눈치가 보여서라네요. 같은 대표이사라도 ‘급’이 다르다는 얘기지요. 이는 여러 계열사가 모인 그룹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그룹 내 보험사 CEO가 전무 1년차이고, 카드사 CEO가 부사장 3년차라면 호칭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같은 CEO 간에도 조직 서열이 있고 선후배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서와 문화가 그대로인데 호칭만 바꾼다고 무슨 소용이냐고 냉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달라진 호칭만큼 자유로운 조직문화, 가까운 노사관계를 기대해 봅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40대 자동차 정비공 고향 학교에 3000만원 전달

    40대 자동차 정비공 고향 학교에 3000만원 전달

    월세 방에서 어렵게 사는 40대 자동차 정비공이 고향 후배들 위해 3000만원을 내놔 화제가 되고 있다. 6일 충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쯤 충북 괴산고등학교에 40대 남자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정비공 작업복을 입은 이 남자는 청주시 신봉동의 한 자동차정비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송한영(45)씨 였다.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송씨는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5만원권으로 현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송씨의 고향은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다. 이 돈은 송씨가 수년 전 지인에게 거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포기하고 있던 것 가운데 일부를 최근 받은 것이다. 송씨는 거액을 기부하면서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학교 측에 수차례 당부했다. 송씨는 학교 측의 끈질긴 요구에 사진 한장만 찍고 연락처도 남겨놓지 않은 채 바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학교 측은 학교와 고향 후배들을 생각하는 송씨의 선행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최근 이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 괴산고는 송씨의 기탁금을 일단 이율이 높은 정기예금 상품에 예치할 계획이다. 이후 ‘송한영 장학회’를 설립해 운영하기로 했다. 괴산고 전원태 교장은 “송씨의 뜻에 따라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겠다”며 “송씨의 장학금이 미래의 리더로 학생들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울산서 음주운전 방조 20대 둘 입건

    울산 중부경찰서는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신 여자친구의 음주운전을 묵인한 김모(24)씨를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28일 함께 술을 마신 여자친구 김모(24)씨가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해보고 싶다”는 말에 자동차 열쇠를 건네줘 300m가량 운전하면서 인근 식당 건물 벽을 들이받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김씨의 여자친구는 혈중알콜농도 0.161% 상태였다. 울산 남부경찰서도 지난달 31일 술을 마신 대학 후배에게 음주운전을 시킨 윤모(24)씨를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윤씨는 대학후배 차모(여·22)씨에게 자신의 자동차 열쇠를 건네주고 운전을 시키다 마주 오던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당시 차씨는 혈중알콜농도 0.192%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동승자가 함께 술을 마신 운전자에게 자동차 열쇠를 주면서 운전을 시킨 것은 음주운전 방조범 혐의로 처벌을 피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음주운전자뿐 아니라 이를 도운 동승자도 강력히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섬마을 ‘짐승들’… 갓 부임한 女교사 집단 성폭행

    학부형 등 3명 교사에게 접근·술 권해 데려다 준다며 초교 관사로 가 몹쓸짓 “오지 근무하는 여교사 보안 대책 필요” 도서지역 초등학교 관사에서 20대 새내기 여교사가 학부모가 포함된 동네 주민 3명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남 목포경찰서는 3일 전남의 한 섬 초등학교 관사에서 이 학교 여교사 A씨를 성폭행한 학부모 박모(49)씨와 같은 동네 주민 2명 등 3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등은 지난달 21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관사에서 여교사 A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횟집을 운영하는 박씨는 자신의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는 여교사 A씨에게 후배인 김모(38)·이모(34)씨와 함께 접근해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였다. 술에 약한 A씨는 이들이 한두 잔씩 따라주는 술을 마시다 결국 식당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후 박 모씨 등은 A씨를 바래다준다며 업어서 관사로 데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관사는 주중에 A씨를 포함해 교사 4명이 사용하지만, 이날은 토요일이라 혼자만 남았다. A씨는 지난 3월 이 섬 초등학교로 발령받아 홀로 자취하면서 평상시 이 식당을 자주 이용했고, 이날 가해자들과의 합석도 학부모와 교사로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를 통해 이들의 범행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A씨가 22일 오전 깨어나 수상한 정황을 인지한 직후 112에 직접 신고해 성폭행 관련 증거를 고스란히 확보한 덕분이다. 박씨와 이씨는 범죄 사실을 시인했고, 김씨만 강력히 부인해 경찰이 보강수사를 하고 있다. 현재 A교사는 병가를 내고 정신 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은 여교사라고 해서 낙도나 오지 근무를 피할 수는 없다. 오지 근무를 할 경우 승진·가점 등에서 각종 혜택도 있다. 전남지역에 근무하는 공립 유·초·중·고등학교 교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모두 1만 6840명으로, 이 중 1만 154명이 여교사다. 한 교사는 “외딴곳에 있는 학교 관사에 대한 당국의 적극적인 점검과 보안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은 “앞으로 폐쇄회로(CC)TV 설치 등 안전 문제를 보완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낙도·오지 학교의 관사와 여교사 주거 실태에 대해 현재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빠른 시일 내 오지에 발령받은 여교사들의 보안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학부모 낀 동네주민들 20대 여교사 성폭행…112 신고 직접 증거 확보

    학부모 낀 동네주민들 20대 여교사 성폭행…112 신고 직접 증거 확보

    도서지역 초등학교 관사에서 20대 새내기 여교사가 학부모가 포함된 동네 주민 3명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남 목포경찰서는 3일 전남의 한 섬 초등학교 관사에서 이 학교 여교사 A씨를 성폭행한 학부모 박모(49)씨와 같은 동네 주민 2명 등 3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등은 지난달 21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관사에서 여교사 A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횟집을 운영하는 박씨는 자신의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는 여교사 A씨에게 후배인 김모(38)·이모(34)씨와 함께 접근해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였다. 술에 약한 A씨는 이들이 한두 잔씩 따라주는 술을 마시다 결국 식당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후 박 모씨 등은 A씨를 바래다준다며 업어서 관사로 데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관사는 주중에 A씨를 포함해 교사 4명이 사용하지만, 이날은 토요일이라 혼자만 남았다. A씨는 지난 3월 이 섬 초등학교로 발령받아 홀로 자취하면서 평상시 이 식당을 자주 이용했고, 이날 가해자들과의 합석도 학부모와 교사로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1일 국과수 감정결과를 통해 이들의 범행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A씨가 22일 오전 깨어나 수상한 정황을 인지한 직후 112에 직접 신고해 성폭행 관련 증거를 고스란히 확보한 덕분이다. 박씨와 이씨는 범죄 사실을 시인했고, 김씨만 강력히 부인해 경찰이 보강수사를 하고 있다. 현재 A교사는 병가를 내고 정신 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은 여교사라고 해서 낙도나 오지 근무를 피할 수는 없다. 오지 근무를 할 경우 승진·가점 등에서 각종 혜택도 있다. 전남지역에 근무하는 공립 유·초·중·고등학교 교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모두 1만 6840명으로, 이 중 1만 154명이 여교사다. 한 교사는 “외딴곳에 있는 학교 관사에 대한 당국의 적극적인 점검과 보안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은 “앞으로 폐쇄회로(CC)TV 설치 등 안전 문제를 보완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낙도·오지 학교의 관사와 여교사 주거 실태에 대한 현재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빠른 시일 내 오지에 발령받은 여교사들의 보안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사설] 특수부가 강력부 비리를 제대로 캐겠나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사건’ 핵심 당사자인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어제 새벽 구속 수감됐다. 선후배들의 신망을 받아 온 엘리트 ‘특수통’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의 몰락은 그 자신의 불행을 넘어 검찰 조직 전체에도 큰 충격을 던졌다. 특히 홍 변호사가 정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친 정황까지 드러나 현직 검사 및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검찰 내부는 뒤숭숭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전관 비리의 썩은 관행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만 한다. 전관 비리를 포함해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수사하고 있다. 연루 의혹이 제기된 현직 검사 및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도 예외는 아니다. 2014~2015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와 강력부의 미심쩍은 정 대표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수사니 어찌 보면 ‘셀프 수사’라고도 할 수 있다. 수사팀이 ‘제 식구’를 과연 한 점 의혹 없이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는 검찰 최고위급 인사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설령 이들을 조사한다 해도 과연 주눅 들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은 현재까지 부장검사 2명을 소환 조사하고, 한 명은 서면 조사를 했다고 한다. 수사 검사도 소환 조사했지만 부장검사들 윗선으로는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2015년 도박 수사를 받을 때 홍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말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박성재 서울고검장, 강력부를 관할했던 3차장은 최윤수 국가정보원 2차장이다. 홍 변호사는 2014년 수사 때도 관여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수남 검찰총장, 형사3부를 관할했던 1차장은 신유철 수원지검장이었다. 검찰은 과거 고위 간부들이 연루된 대형 사건에서 특별감찰본부 등을 구성해 외견상으로는 독립적 수사를 진행하곤 했다. 이용호 게이트와 삼성 비자금 사건이 그랬다. 일선 수사팀이 맡기엔 버겁기도 하고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획득도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건 모두 검찰 수사 이후 특검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독립적 수사를 진행한다 해도 검찰의 제 식구 수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의 ‘셀프 수사’로는 전관과 현관의 ‘짬짜미 사슬’ 비리를 제대로 캐낼 수 없다.
  • ‘한명회’ 개성 연기 배우 정진 별세

    ‘한명회’ 개성 연기 배우 정진 별세

    드라마에서 ‘한명회’ 역할로 유명한 배우 정진(본명 정수황)씨가 2일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지난해 9월부터 담낭암으로 투병해 왔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연극 무대를 거쳐 1979년 TBC 공채로 뽑힌 고인은 ‘제1공화국’ ‘임진왜란’ ‘한명회’ ‘설중매’ ‘제4공화국’ ‘태조 왕건’ ‘황진이’ ‘식객 ’ ‘천추태후’ 등에서 개성 강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한명회’에서 연기한 치밀한 지략가의 모습은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대표 작품이 됐다. 작은 체구, 독특한 마스크의 고인은 주로 성격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뿜어냈다. 1985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1988년 한국연극배우협회 우정상을 수상했다. 방송연기자노조는 “정진은 후배 배우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며 모범이 됐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4일이다. (02)3010-2000.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34회 교정대상 수상자] ‘대상’ 이윤휘 서울구치소 교위

    “현장에서 일하는 1만 6000여명의 교정공무원을 대표해 큰 상을 받은 만큼 더욱 섬기는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제34회 교정대상’에서 대상의 영광을 차지한 이윤휘(50) 서울구치소 교위는 “구속으로 곤경에 빠진 수용자들과 아픔을 나눠 온 지난 26년 동안 함께해 준 선후배에게 감사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89년 교정직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 교위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 교위가 찾은 해답은 ‘봉사’였다. 이 교위는 1991년 의사소통이 불편한 농아 수용자를 위해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농아 수용자들은 수화를 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찾아오면 짧은 면회 시간 동안 제대로 뜻을 전달하지 못했다. 이 교위는 직접 수화를 배우면 농아 수용자들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교위는 6개월간 저녁에 시간을 내 수화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후에도 틈틈이 서울 농아복지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 교위는 “절도범으로 교도소에 온 농아들이 많았는데 수감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 교위는 그해 가을 서울시 대표로 참여한 전국 수화 경연대회의 수화 노래 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그는 경연대회에서 인생의 동반자도 찾았다. 함께 공연한 파트너와 결혼한 것이다. 이 교위의 봉사활동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아내와 함께 양로원, 보육시설 등에서 목욕 봉사를 했다. 2003년부터는 지인들과 색소폰 동아리를 꾸려 1년에 80곳이 넘는 시설을 찾아 공연을 했다. 틈틈이 공부해 얻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으로 이 교위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수용자를 도울 수 있었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마약범 수용자를 상담해 삶의 의지를 북돋아 준 적이 있다”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교도소에 보낸 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어머니를 직접 찾아가 기초생활수급을 받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수용자 대부분이 불우한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나쁜 길로 빠진 사람들”이라며 “심리상담을 배운 경험을 살려 수용자들에게 더욱 따뜻하게 다가가고 싶다”고 답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자막의 마술사’ 외화 번역가 이미도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자막의 마술사’ 외화 번역가 이미도

    “해운대에서 이제 막 올라왔습니다.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본성을 ‘부끄럼을 타는 동물’(샤이 애니멀)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이상하게도 저는 해운대에 가야 나오거든요.” 1일 서울 광화문의 한 건물 1층 커피숍에 흰 뿔테 안경을 쓰고 캐주얼 복장을 한 ‘청년’이 들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20년 넘게 국내 최고의 외화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미도(55)씨였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었다. 번역과 자기 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도, 본인의 어두웠던 유년기를 말할 때도 초롱초롱한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출생의 비밀’ 같은 걸 갖고 태어났다. 부모가 아닌 친할머니 손에서 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되는 자리나 지면에서 나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없는 이유다. 어린 시절은 기억 속에서 싹 지워 버렸다. 고2 때 집을 뛰쳐나온 뒤 아직까지 안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을 못 지킬 수는 있지만 가족을 못 지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아마도 그 원천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아버지는 외국어가 자유롭게 되니 지금도 혈혈단신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집을 나온 뒤에는 어머님께 많이 의지했다. 젊은 시절 방황할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십수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건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통역관과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강조했다. 말하자면 내 첫 영어 선생님이었다. 억지로 영어 고전 등 독서를 시켰다. -방황하던 고교 시절 여러 스승을 만났다. 그중 한 분이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고 이런 세계가 있는 걸 왜 모르고 그저 방황만 했나 싶었다.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세계를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건 행운이었다. 당시 동경하는 마음에 선생님께 팬레터도 보냈다. 그분의 책은 모두 다 읽었다. 그러다 대학 시절 학교 강연에서 뵙게 됐다. 강연 뒤에 “어린 시절에 편지를 보냈다”고 인사드렸더니 “그때 그 학생이 너냐”며 반가워하셨다. -남들보다 1년 늦은 1981년 대학에 들어갔다. 전공으로 스웨덴어를 택한 것은 나중에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감독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영화 하면 유럽, 그중에서도 스웨덴 영화를 첫손에 꼽았다. 나중에 스웨덴에서 영화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까 싶었다. 대학 시절은 황금기였다. 오전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소설과 시를 읽고, 오후에 강의를 마친 뒤에는 선후배들과 술집을 순회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난 혼자 있을 땐 내성적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외향적이다. 축구 같은 운동도 많이 했다. 당시 별명이 ‘가미카제’였다. 한번 뜨면 누군가는 꼭 쓰러뜨린다는 뜻이었다. 종종 골대로 공이 아닌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시 인연을 맺은 선배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난다. -대학 졸업 뒤에는 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하지만 군 복무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귀국해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원래는 레이더기지에서 근무해야 했지만 운 좋게 영어 교육 담당으로 차출됐다. 입대 전 치렀던 영어 시험에서 고득점을 한 덕이었다. 당시 공군전자통신학교 영어교육대대에서 미국에 파견되는 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됐다. 교육을 하는데 교본이 구식인 데다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영화를 보여주며 교육했다. 그 과정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판권을 사서 한국 시장에 되파는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를 만났다. 영화로 영어를 가르친다고 말하니 “내 일을 도와 달라”고 했다. 영화 판권을 사서 우리나라에 소개하려면 각종 자료들을 번역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1991년 제대한 뒤 자막 번역을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당시에는 번역가를 주변에서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 자막을 입히는 회사를 찾아가 국문 대본과 영문 대본을 빌린 뒤 이 둘을 비교하면서 공부했다. 보조 번역가로 활동하다 1993년에 함께 일하던 사업가가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블루’ ‘화이트’ ‘레드’ 3부작의 판권을 사서 번역을 맡겼다. 당시 처음으로 자막 번역가 실명제를 관철시켰다. 종로에 있던 예술영화 전문관 ‘코아아트홀’에서 ‘블루’가 상영됐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뜨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훌륭한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는 자부심도 컸지만 자막 실명제를 하다 보니 당시 막 진출했던 외국 직배사들에도 이름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고, 이후 전문 번역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생업으로서의 자막 번역 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블루’의 번역료가 회사원 한달치 월급에도 못 미치는 60만원에 불과했다. 비디오용 영화 자막 번역에는 10만원, 2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열배 넘게 올랐다. 번역 실명제를 처음 정착시키고 번역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번역 작업을 한 영화가 400편 정도다. ‘굿 윌 헌팅’ ‘식스 센스’ ‘인생은 아름다워’ ‘뷰티풀 마인드’ ‘글래디에이터’ ‘시카고’ ‘진주만’ ‘반지의 제왕’ 등은 나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1997년에 자막 번역을 한 ‘굿 윌 헌팅’은 ‘스탠드 바이 미’와 더불어 나에게 운명의 영화다. 주인공인 윌 헌팅(맷 데이먼)은 고아 출신의 청소부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그를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 준다. 나는 고아가 아니지만 윌 헌팅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스탠드 바이 미’가 내 소년기를 보듬어 줬다면 ‘굿 윌 헌팅’은 청년기의 날 감싸안았다. 많은 영화들이 날 구원해 주는구나, 영화는 내 친구이자 부모구나, 이 분야에 몸담길 잘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도 80여편을 번역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내 손을 거쳤다. 애니메이션은 특정 작품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애착이 간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눈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가슴으로 느끼라는 뜻이다. 들여다보는 건 아이들이 잘한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표현한 ‘내 안에 있던 아이가 어디에 갔을까’라는 문장의 ‘아이’는 바로 아이의 호기심을 뜻한다. 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건 창의성을 계속 지키는 일이다. 나에게 애니메이션 번역은 호기심과 창의성의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자막 번역의 가장 큰 매력은 일을 하며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다룬 소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 20년 전쯤에는 ‘틴 컵’이라는 골프 영화의 자막을 번역했다. 당시엔 골프를 전혀 몰랐다. 프로 수준의 아마추어 골퍼 선배를 데려다 같이 영화와 대본을 보고 번역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비축하다, 꼼짝 못 하게 하다’라는 뜻의 ‘Lay up’은 골프에서는 ‘끊어 가기’라는 뜻이다. 영화가 개봉한 뒤 골프 전문가들로부터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영화 번역 작가들의 기본적인 원칙은 원래 대사의 의미와 표현의 맛을 가장 정확하게 살리는 것이다. 여기엔 각국의 문화적 배경이 반영돼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 ‘타짜’에 나오는 대사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미국 관객들에게 “I graduated Ewha university”라고 직역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적절한 번역은 “You know who I am?” 정도가 될 것이다. 의미를 전달하는 원칙을 고수하되 언어에 담겨 있는 문화나 정서가 반영돼야 한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 선생은 “번역은 ‘밴 아이’를 낳는 거고, 소설 쓰기는 ‘안 밴 아이’를 낳는 것이지만 번역 역시 안 밴 아이를 낳는 것에 견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안 밴 아이를 낳는다는 자세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외줄타기다. 두 개의 기둥은 직역과 의역이다. 보는 사람들은 편안하지만 외줄을 타는 광대는 첫 번째 공연이건 백 번째 공연이건 피를 말리기 마련이다. -영화 번역을 시작하고 딱 10년이 되니까 갈증이 왔다. 나만의 고유한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마침 ‘책을 한번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옳다구나 싶어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잘 아는 걸 쓰자’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와 영어가 떠올랐다. 영화의 인문학적 내용을 배경으로 영어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실제로 영화 대사에는 영어 학습에 유익한 내용이 차고 넘친다. ‘똑똑한 식스팩’(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인증 우수 과학도서)이라는 이름의 자기계발서도 냈다. 말은 자기계발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게 능력을 개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평소 내 지론을 담았다. 이 책 역시 영화와 영어, 책 등을 사례로 넣었다. -내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에 길 도(道) 자를 쓴다. 본명이다. 부친이 모친과의 사랑은 아름다웠을지라도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낳았으니 내가 아름다운 길을 걸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자막 번역과 글쓰기라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배우 이미도씨와 동명이인이다. 이미도씨가 결혼할 때 축하 문자를 많이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배우 강혜정씨가 맡은 역할의 이름 ‘미도’는 내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 제작 당시 박 감독이 “미도라는 이름을 쓰고 싶다”고 요청했고, 제작 발표회 때 무대에 함께 올라가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분들이 날 여자라고 생각한다. 기업 강연에 가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으면 임원들이 처음에는 보조요원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내 소개를 하면 뜨악한 반응을 보인다. ‘오랜만에 여자 강사가 온다’는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재미있는 삶이다. 행복의 반대는 재미없게 사는 것이다. 삶의 세 가지 틀을 재미와 가치, 기여 등으로 정의한다면 여기의 시작은 재미다. 심지어 다른 이들에 대한 봉사도 재미가 없으면 못 한다. 보람 역시 궁극적으로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것은 재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어떻게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은 소설가 한강씨의 ‘채식주의자’를 꼼꼼히 읽고 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건 한국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탄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일이다. 특히 번역에 참여한 영국 아가씨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다만 늦은 감이 있다는 게 아쉬웠다. 국내에서 도끼날을 가는 준비를 계속했다면 한씨보다 앞선 작가들도 해외 유수의 상을 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이미도씨 1993년 영화 ‘세 가지 색-블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0여편의 외화를 번역했다. 최근에는 작가로, 출판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봉된 유명 외화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쳐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공군 영어교육 장교로 복무하면서 해외 파견 요원에게 영어를 지도한 것이 번역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됐다. ▲1961년 서울 출생 ▲한국외대 스웨덴어학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광고커뮤니케이션학(중퇴) ▲‘나인’, ‘눈먼 자들의 도시’, ‘쿵푸 팬더’, ‘클로버필드’, ‘슈렉’ 시리즈, ‘반지의 제왕’ 3부작, ‘진주만’, ‘킬빌’, ‘캐리비안의 해적’, ‘뷰티풀 마인드’, ‘아메리칸 뷰티’, ‘글래디에이터’, ‘노트북’, ‘식스센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리 맥과이어’, ‘더록’, ‘피스메이커’, ‘인디펜던스 데이’ 등 번역 ▲‘이미도의 영어선물’, ‘이미도의 영어 상영관’,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 ‘이미도의 아이스크림 천재 영문법’ 등 지음.
  • 서울광장에 옮겨 놓은 佛오픈 붉은 흙코트

    서울광장에 옮겨 놓은 佛오픈 붉은 흙코트

    “시청 앞 광장에서 공을 쳐 보기는 난생처음이네요.” 한국 남자테니스의 ‘신화’ 이형택(40)이 뻘뻘 흐르는 땀을 닦으며 웃었다. 세계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오픈을 국내에 알리고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롤랑가로스 인 더 시티’가 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막을 올렸다. 지난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를 서울 도심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이 행사는 지난해 9월 두 나라 테니스협회가 공동 주최를 약속했고 9개월 만에 성사됐다. 5일까지 계속되는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광장에 조성된 클레이코트.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흙바닥(클레이)에서 펼쳐지는 프랑스오픈의 전통 그대로 붉은색 코트를 서울광장에 옮겨 놓았다. 전 국가대표 후배 임용규(25·당진시청)와 짝을 맞춰 동호인 조를 상대로 시범 경기를 펼친 이형택은 “이 행사가 프랑스오픈은 물론 테니스 종목이 국내에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클레이코트 외에 경기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360도 VR(가상현실) 시설, 서브 스피드를 측정할 수 있는 부스 등이 마련된 행사장에는 특히 대형 전광판이 설치돼 본 대회 경기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대회 마지막 날인 5일에는 여자복식과 남자단식 결승전이 마치는 시간까지 생중계된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107년 전 한국만화 태어난 곳 ‘만화 몽마르뜨 거리’로 만든다

    107년 전 한국만화 태어난 곳 ‘만화 몽마르뜨 거리’로 만든다

    한국 만화의 생일날, 한국 만화가 태어난 곳에 기념 조형물이 세워진다. 한국만화가협회는 2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G타워 앞 옛 대한민보(수진궁 터) 자리에서 한국 만화 탄생지 기념조형물 제막식을 연다고 1일 밝혔다. 조형물은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삽화가 한국 만화의 출발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전국시사만화협회,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종로구 등이 힘을 보탰다. 가로 2.4m, 세로 2.95m 크기의 조형물은 석재 받침 위에 사각 스테인리스 틀을 올리고 청동상을 넣었다. 청동상은 이 화백의 삽화 속 등장인물을 입체화했다. 조형물 주변에는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현세의 까치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들의 만화 캐릭터가 새겨진 바닥 동판들이 설치된다. 조형물을 제작한 시사만화가 손문상 작가는 “만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살려 대중 친화적으로 만들었다”며 “스테인리스 틀은 만화의 형식적 틀인 ‘칸’을 의미하고 위에 달린 말풍선은 한국 만화의 현재적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발언과 대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기념 조형물 제작 추진위원장을 맡아온 최민 전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장은 “기념 조형물은 선배 만화가들에게는 자부심이, 현재 활동 작가들에게는 자존심이, 미래의 후배 만화가들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만화가협회 등은 장차 기념 조형물 주변을 ‘만화 몽마르뜨 거리’로 조성해 만화가들이 그린 시민들의 캐리커처를 티셔츠, 머그잔에 새겨 주는 행사와 만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아트마켓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시민들과 적극 소통할 예정이다. 이충호 만화가협회 회장은 “이번 조형물 제작을 계기로 한국 만화의 전통을 보존, 연구하는 작업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문화·산업 인프라 확충… ‘광주의 얼굴’ 옛 명성 되찾는다

    [자치단체장 25시] 문화·산업 인프라 확충… ‘광주의 얼굴’ 옛 명성 되찾는다

    김성환(55) 광주 동구청장은 정통 행정 관료출신이다. 26년 공직 생활 중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에서만 22년을 근무했다. 지난 4·13 20대 총선과 함께 치러진 동구청장 재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 구청장은 “중앙정부 근무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동구 발전의 견인차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정년 5년을 남겨두고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 국정과제 관리관(1급)을 사직했다. 당시만 해도 당선이 불투명한 가운데 선거직에 뛰어든다고 주변의 만류도 적잖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지 않아 인지도 등의 ‘핸디캡’을 극복할만한 뚜렷한 방안이 없는 탓이다. 재선거인데다 급조된 정당 후보로 나서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는 이에 대해 “공직을 시작할 때 마무리는 현장과 호흡하면서 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그 기회와 타이밍이 왔고, 나는 그것을 운명처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행정관료 출신들이 정년을 마치고 선거직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 부처 인맥을 활용해 지역발전을 꾀하려면 동료나 선후배가 현직에 있을 때 나와야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실용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구청장은 청소년기를 보낸 광주에 대한 애정도 동구청장 출마 발길을 재촉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그는 부모의 권유로 중학교 때부터 광주로 유학 왔다. 어린 시절부터 자취하며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행시 33회로 전남도에서 몇년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 줄곧 서울에서 근무했다. 아이들은 모두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보냈고, 부인도 이 지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 쪽으로 향했던 충분한 이유가 이처럼 가족과도 얽혀 있다. 그런 탓에 20년 이상을 주말부부로 살아야 했다. 취임 한 달 남짓 동안 대부분 시간을 그는 구정 현안 파악을 위한 현장 방문 등에 할애했다. 직원들과의 소통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의 구정 공백에 따른 산적한 과제도 점검했다.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도 일부러 가졌다. 도심공동화와 재개발, 문화관광 활성화 등 공약에 대한 구체적 실행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과 씨름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하루 동안 그를 동행 취재했다. 이날도 김 구청장의 중요한 일정은 현장 방문이었다. 전통시장인 산수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애로상황을 듣고 시장 활성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대기업 대형마트 등의 영향으로 대도시 전통시장이야 상황이 비슷하지만 불경기 탓에 너무 썰렁하기 때문이다. 오후 3시쯤 찾은 시장에는 즐비한 점포에 비해 오가는 사람은 뜸했다. 상인들이 좌판을 벌여 놨지만 파리만 날리는 실정이었다. 김 구청장은 상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들었다. 채소가게, 과일가게, 닭집, 마트, 정육점, 옷가게 등을 차례로 돌았다. 노령연금, 폐쇄회로(CC) TV 설치 문제 등 각종 건의사항이 쏟아졌다. 한여름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선 인사도 할 겸 상인들의 어려움을 1시간가량 열심히 들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윤정심(70·여)씨와 튀김집 주인 김성례(65·여)씨는 “간선도로와 인접한 시장 출입구 일대 주차단속이 너무 심해 손님이 안 온다”며 “단속 카메라 운영시간을 조절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구청장은 “시장 반경 100m 이내 지역은 가능한 한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다. 상인회장 이수창(65)씨는 “손님이 너무 없어 장사할 맛이 안 난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김 구청장은 “재래시장으로 특화하거나 아예 현대식 상가로 바꾸는 방안 등을 상인들 스스로 결정해 달라”며 “주민 의견이 모이면, 이를 토대로 구체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현장 방문이 많은 김 구청장은 이동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동하면서 많은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차 안에서 전화로 다급한 지시를 수시로 한다. 이날도 산수시장으로 가면서 기획홍보실장에게 전화 걸어 “일부 언론에 내남지구 도로개설 등 행정자치부에 국비 25억원 지원을 요청했는데 35억원으로 보도가 잘못 나갔으니 빨리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다. 동구의 요즘 최대 현안은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다. 김 구청장은 오전 11시쯤 간부들과 티타임을 갖고 이를 논의했다. 그는 황남진 문화경제국장에게 “한국문학관 동구 유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안전도 꼼꼼하게 챙긴다. 오후 4시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와 공동 주관해 테러 및 대형화재발생 대응 훈련을 했다. 오후 늦게 청사에 되돌아온 김 구청장은 내일 일정을 체크하고 민원인과의 저녁약속을 위해 청사를 총총히 빠져나간다. 취임 한 달 남짓 동안 이처럼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김 구청장은 동구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는 데 소홀하지 않고 있다. 자치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선 골라낸 뒤 남은 임기 2년 안에 마무리할 수 있는 현안과 중장기 과제를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동구는 충장로·금남로 등 옛 도심을 끼고 있는데다 노령층의 인구비율이 현재 19.5%로 광주 5개 구 가운데 가장 높다. 총인구는 2010년 10만 4449명에서 지난해 현재 9만 8784명으로 줄었다. 도심에 아파트단지가 재개발되면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가 완공 후 되돌아오는 등 감소와 정체가 반복되고 있다. 김 구청장은 “동구는 과거 광주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였으나 1990년대 이후 전남도청 이전과 공동화 등으로 쇠락을 길을 걸었다”며 “그러나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면서 이와 연계된 각종 문화산업과 인프라가 확충되는 등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여건을 최대한 살리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당장 올가을 예정된 충장축제 때는 아시아문화전당과 협업을 통해 ‘문화 동구’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2020년까지 245억원을 들여 광산동 구시청사거리 일대에 아시아음식문화지구를 조성한다. 지역 명소로 자리잡은 대인 야시장과 남광주시장, 예술의 거리 등 문화전당 주변 시설과 무등산 등을 연계한 관광 콘텐츠를 적극 육성할 방침이다. 도시 재생과 리모델링도 핵심 현안이다. 내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문화전당 주변 주거지와 상업지역 환경을 개선한다. 도심 권역별로 푸른마을공동체센터와 궁동예술두례마당, 충장미디어산업센터 등이 들어선다. 용산, 월남, 선교, 계림, 지원, 학동, 학운 지구 등 구도심의 재개발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든다. 상대적으로 노령인구가 많은 지역이라서 촘촘한 복지안전망 구축사업도 진행 중이다. 갑작스러운 소득원 상실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가정을 지원하는 ‘노랑호루라기 사업’, ‘어르신 효출동’, 마을공동체사업, 인권옴부즈맨 운영 등으로 복지와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김 구청장은 “동구를 광주의 얼굴이자 중추 기능을 담당하는 지속 가능한 중심구로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겠다”며 “이를 통해 문화와 관광, 일자리와 젊은이가 몰려드는 따뜻한 공동체로 발돋움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