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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택한 김연경... “후배들을 위해 연봉 앙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택한 김연경... “후배들을 위해 연봉 앙보”

    ‘배구여제’ 김연경이 11년만에 국내 복귀를 확정했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을 10분의 1 이상으로 줄인 김연경의 선택은 범인(凡人)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단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중시하는 그의 삶의 가치관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흥국생명은 6일 오후 3시 “그동안 열심히 뛰어준 후배들을 위해 연봉을 양보하고 싶다는 선수의 결심에 따라 1년 3억 5000만원에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어 흥국생명은 “김연경 선수가 국내 선수들을 배려한 마음이자 한국 복귀에 대한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팬들은 “올해 가장 거짓말 같은 뉴스”라고 입을 모았다. 세계 배구 리그가 코로나19로 올스톱돼 있고 내년 시즌 정상 재개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당초 김연경의 한국 복귀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행 샐러리캡 제도 아래에서 김연경의 연봉을 감당할 수 있는 국내 구단은 없었고, 한국배구연맹(KOVO)도 지난 3일 김연경의 복귀설이 나돌자 “샐러리캡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연경은 현행 제도 아래서 자신이 받을 수 있었던 최대 연봉 6억 5000만원 가운데 3억원을 포기하면서까지 후배들을 위해 이타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김연경이 터키프로배구 엑자시바시 비트라에서 받은 연봉은 세후 기준 18억원 수준으로, 최고 소득세율이 35%인 터키 사정을 고려하면 약 30억원으로 알려졌다. 현재 32살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김연경의 나이를 고려하면, 해외 복수의 팀이 그에게 제시한 계약 조건은 기존 소속팀인 에서 받은 연봉을 상회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을 무려 10분의 1 이상으로 줄여 성사된 것이다. 김연경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해 단숨에 팀을 통합우승시키며 리그 최하위였던 팀을 리그 최강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해 신인상과 동시에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 결정전 MVP로,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했는데 신인이 신인상 뿐만 아니라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MVP를 받은 건 지금까지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흥국생명에서 네 시즌을 뛰며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 통합우승 2연패를 하는 등 국내 무대를 평정한 김연경은 해외 진출을 타진하며 2009년 일본 프로배구 JT 마블러스로 이적했다. 당시 흥국생명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지 못한 김연경을 ‘임의 탈퇴’로 묶고, 일본 진출을 허락했다. 2011년 여자프로배구 빅리그 가운데 하나인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한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와 재계약할 때 에이전트 인정 여부, 계약 기간,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 등을 이유로 흥국생명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후 김연경은 7년간 유럽 무대 역시 제패하며 명실상부 ‘배구 여제’로 인정받았다. 2017년 중국프로배구 상하이 광밍 유베이로 이적해 팀을 17년만에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또다시 터키 엑자시바시로 간 뒤 주장으로 뛰며 우승컵 3개와 메달 2개를 선사했다. 지난 5월 엑자시바시와의 계약이 끝나 FA 자격을 얻은 뒤 복수의 해외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연경의 한국 복귀 소식은 한국 배구 대표팀 입장에서도 희소식이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그는 지난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복근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해외리그에서 뛸 때와 달리 한국 대표팀 소집 시 이동 부담이 사라져 체력 부담을 덜고 몸 관리에 유리해진다. 팬들은 벌써부터 그가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라 밝힌 도쿄올림픽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김연경 선수의 복귀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오랜 해외 생활에 지친 선수와 1년 남짓 남은 올림픽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경은 “‘무엇보다 한국 팬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다. 많이 응원해준 팬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은 “다음주 화요일이나 수요일쯤 김연경의 국내 복귀 결정과 입단 소감 등을 밝히는 기자 회견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배구여제’ 김연경 흥국생명과 이번 주말 만나 도장 찍을까

    ‘배구여제’ 김연경 흥국생명과 이번 주말 만나 도장 찍을까

    한국 스포츠계 최대 화두인 ‘배구여제’ 김연경(32)의 국내 복귀 논의가 이번 주말에 이뤄진다. 김연경이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구단에 사실상 연봉을 백지위임하면서 논의는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KBS는 배구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를 통해 “김연경이 국내 복귀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김연경이 지난 3일 흥국생명과 첫 협상 이후 가족들과 논의 끝에 복귀를 결심했고 조만간 계약이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이어 “코로나 19로 해외 리그 일정이 유동적인 데다 김연경이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 한국에 머물고 싶어 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안다”며 “연봉과 관련해서는 후배들을 배려해 많이 양보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까지 보도가 나왔는데 다음주까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주말 안에는 만나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만약 이대로 양측 협상이 순항하면 한국 배구 팬들은 김연경과 함께 슈퍼쌍둥이 이재영·다영이 한 코트에서 뛰는 진풍경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김연경은 SNS 계정에 ‘모든 일에는 자기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일들만 일어난다고 한다’는 내용의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삼성의 입’ 이인용, 준법위 전격 사임…배경에 쏠린 눈

    ‘삼성의 입’ 이인용, 준법위 전격 사임…배경에 쏠린 눈

    ‘삼성의 입’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서 사임했다. 삼성의 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위에서 유일한 사측 내부 위원으로 선임돼 활동한지 4개월 만에 위원회에서 전격 물러나면서 배경과 후임 위원 인선에 관심이 쏠린다. 5일 준법위에 따르면 이 사장은 전날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에서 열린 준법위 제6차 정기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위원들에게 사퇴 의사를 전했다. 준법위는 “최근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회사와 사회 각계와 소통을 확대하면서 이 위원이 삼성의 대외협력(CR) 담당으로 회사와 위원회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임했다”며 “조만간 사장급으로 후임 내부 위원이 선임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이 사장은 정부 각 부처나 정치권, 지방자치단체 등 대외 행사가 많아지면서 바쁜 행보를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경제 살리기가 화두가 되면서 대외협력 업무 담당인 이 사장이 참석해야 할 외부 행사가 많아졌다”며 “또 준법위의 권고에 따라 시민단체와의 소통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행사 참석도 다 이 사장이 직접 해야 하는 것이라 사실상 시간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준법위가 지난 3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7개 계열사에 경영권 승계 문제, 노동·노조 문제, 시민단체와의 소통 문제 등 삼성의 과거 준법 위반 행적들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안을 만들라고 권고를 낸 데 대해 이 사장이 부담과 한계를 느껴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 입장에서는 민감하고 불편한 문제 제기인 만큼 유일한 삼성 내부 위원으로 이 사장이 목소리를 내면서 외부 위원들과 마찰이 있었다는 관측이다. MBC 앵커 출신인 이 사장은 지난 2005년 6월 삼성전자 홍보팀장(전무)으로 옮긴 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을 맡는 등 줄곧 ‘삼성의 대변인’ 역할을 해 왔다. 이재용 부회장과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후배 사이로 이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임 사측 위원은 삼성 측 추천을 받아 김지형 준법위 위원장이 선임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임시 주장 박동원 “후배들 고민 상담은 어려워요”

    임시 주장 박동원 “후배들 고민 상담은 어려워요”

    주장 김상수의 2군행으로 임시 주장을 맡게 된 박동원이 후배들의 고민 상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동원은 4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한화전을 앞두고 ‘후배들이 고민 상담하러 오면 좋지 않느냐’는 질문에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 올 건데 어떤 대답을 해줘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야구밖에 한 게 없어서 다른 부분은 잘 모르는 게 많다. 필요한 포인트를 찾아줘야하는데 어떨 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며칠 뒤에 다시 얘기하자고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동원은 “선수 생활 하면서 주장은 처음이라 솔직히 뭘 해줘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선수들이 알아서 잘해주다보니 더 그렇다”고 했다. 박동원은 “후배들이 찾아오면 잘 들어주려고 노력한다”며 나름의 비결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시즌 0.337의 타율로 물오른 타격감을 자랑하는 박동원은 규정 타석을 채운 포수 중 타율 1위에 올라있고, 0.639의 장타율은 국내 선수 중 1위(전체 4위)다. 박동원 뿐만 아니라 이지영도 0.361의 고감도 타율을 자랑하며 키움은 그야말로 ‘포수왕국’이 됐다. 박동원은 “멘탈이 안 흔들리게 준비한 게 유효한 것 같다”면서 “운도 잘 따라주고 있다. 계속 잘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 박동원은 “다들 개인 성적이 좋다보니 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있다”면서 이번 시즌에도 상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집안의 팀 분위기를 전했다. 대전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LPGA 10년 선후배 동갑내기 최나연-이정은5의 달콤쌉싸레한 하루

    LPGA 10년 선후배 동갑내기 최나연-이정은5의 달콤쌉싸레한 하루

    “정말 버디가 안떨어 지더라구요 ㅠㅠㅠ”(최나연), “그래서 기도 좀 하자고 했죠, ㅎㅎㅎ~”(이정은5).최나연은 박인비, 신지애 등과 함께 박세리의 뒤를 이은 한국 여자골프의 ‘천재 세대’ 88년 용띠의 한 멤버다. 2008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해 2015년 6월 아칸소 챔피언십까지 통산 9개의 우승컵을 수집했다. ‘절친’ 이정은5(이하 이정은)는 LPGA 데뷔가 최나연보다 10년이나 늦다. 게다가 ‘삼수생’이다. 2015년 두 번째 노크한 퀄리파잉스쿨에서 반의 반쪽짜리 조건부 시드를 받은 그는 이듬해인 2016년 세 번째 도전 만에 풀시드(전 경기 출전권)를 받아냈다. 28세 때였다. ‘결’은 다르지만 둘의 우정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4일 제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칸타타 여자오픈에 이정은은 최나연의 캐디로 출전했다.해외 투어 선수들의 이 대회 출전 조건은 세계랭킹 30위 이내다. 그렇지 않으면 KLGPA 투어 영구시드가 있어야 한다. 최나연과 이정은에겐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회 초청장은 최나연에게만 날아왔다. 최나연은 “내 백 메줄래?”라고 물었고 이정은은 두 말 없이 승낙했다. LPGA 투어 데뷔 4년째를 맞은 이정은은 처음부터 지금꺼지 ‘나홀로 투어’ 중이다. 3년 동안 투어를 뛰었지만 번 상금은 100만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잘 버는 동료들이 흔하게 장만하는 미국집‘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이정은에게 최나연은 친구 이상의 존재다. 이정은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나연이게 받은 가장 큰 도움은 집이었다”면서 “그 덕에 대회 때마다 호텔을 전전하는 일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혼자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나연이한테 물어봤다. 투어 생활에서 얘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권”이라고 설명했다. 석 달전 미국의 코로나19를 피해 한국으로 돌아와 올해 첫 대회에 나선 둘의 이날 성적은 기대에 크게 못미친 건 물론 낙담하기에 충분했다. 보기 1개를 건졌지만 보기 4개와 더블보기 1개를 쏟아내 5오버파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최나연이 제주 대회에서 뛰어본 건 손으로 꼽을 정도다. 반면 최나연이 LPGA에서 뛸 때 국내 코스를 섭렵했던 이정은은 “우승만 빼놓고 꼴찌에서 2등까지 다해봤다”고 할 정도로 제주 그린이라면 주름을 헤아릴 정도로 빠삭하다.최나연은 “당초 출전 계획이 없다가 충분한 준비 없이 대회에 나선 게 화근이었다“면서 ”티샷 실수가 곧바로 타수로 이어졌다“고 이날 부진의 원인을 짚었다. 그는 ”평소에도 캐디한테 라인을 묻지 않는 내가 정은이한테 매홀 퍼트라인을 물어봤다. 그런데도 1~3m 안팎의 버디가 그렇게도 인떨어지더라”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늘상 하던대로 웃으면서 괜찮다고 다독거리는 정은이가 고맙기만 하더라”고 했다. 이정은은 “최대한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가장 많이 한 말은 ’잘했다‘, ’괜찮다‘였는데, ’그러면 기도 좀 하자‘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했다. 둘은 컷오프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내일이요? 내일은 더 신나게 쳐야죠”라고 깔깔 웃으며 클럽하우스로 사라졌다. 글·사진 서귀포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임효진의 입덕일지] 톱모델 한혜진의 이유 있는 인기

    [임효진의 입덕일지] 톱모델 한혜진의 이유 있는 인기

    한혜진이 모델 중에서도 ‘톱모델’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국내 각종 잡지 표지모델을 섭렵한 것은 물론 세계 4대 패션쇼에 모두 선 한국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2006년 밀라노 컬렉션 구찌쇼 최초의 한국인 모델, 2007년 FW 뉴욕 컬렉션 안나수이쇼 최초의 한국인 피날레 모델이 된 한혜진. 한국인 모델에 대한 수요와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이러한 타이틀을 얻었기에 한혜진은 가히 ‘이 분야의 개척자’라고도 불린다. 후배들을 생각하는 한혜진의 마음 또한 톱모델급이다. 그는 ‘군기 센’ 모델계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한혜진은 자신이 겪었던 모델 세계에 대해 “매일 혼나는 게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한혜진은 후배 모델들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모델 이현이는 선배 한혜진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혼자 미움을 받더라도 총대를 메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델 이혜정 또한 모델계 군기를 없앤 모델로 장윤주, 송경아와 함께 한혜진을 꼽았다. 지난해 모델 데뷔 20주년을 맞은 한혜진은 “선배들이 현역에서 잘 버텨 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지금처럼 느낄 때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이를 보여 주듯 한혜진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패션계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디지털 런웨이’로 약 40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옷 100벌을 입고 혼자 패션쇼를 선보인 것이다. 모델로서 한 패션쇼에서 최다 30벌을 입어 봤다고 말한 한혜진에게 100벌을 입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공개된 디지털 런웨이 현장 속 한혜진은 정신적ㆍ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모델만이 할 수 있는 일로 타인을 도울 수 있음을 되새기며 프로답게 디지털 런웨이를 마무리했다. 그의 특별한 재능기부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혜진은 평소 자신이 모델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한혜진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성금 1000만원을 기탁했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고성군, 속초시 등 강원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2016년에는 기부를 위해 플리마켓을 여는 모습이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한혜진은 그 누구보다 모델로서 베풀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혜진은 모델에 대해 “불꽃 같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신체와 비율로 최고의 정점에서 활활 타올랐다가 산화되는 느낌을 준다”며 불꽃에 비유했다. 데뷔 21년차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혜진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모델이다. 3a5a7a6a@seoul.co.kr
  • 히딩크의 어퍼컷이 왜 없나… 독수리 ‘끼리끼리 문화’에 꽂히는

    히딩크의 어퍼컷이 왜 없나… 독수리 ‘끼리끼리 문화’에 꽂히는

    능력보다 친분 우선… 공정 경쟁 어려워 외국인 감독도 전권 없으면 실패 우려 한화가 10여년 동안 하위권을 맴도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자 팬들은 아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단순히 국내 감독을 앉혀서는 ‘이상한 구단 문화’를 타파할 수 없는 만큼 선진 야구 시스템을 경험한 메이저리그 출신에게 팀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구각(舊殼)을 깨는 파격적 리더십으로 4강 신화를 이룬 축구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같은 리더십을 염원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재 한화의 지도부는 선수 시절부터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은 레전드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카르텔’을 깨는 게 개혁의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친한 선후배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문화’가 팀 내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저해하면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현재 한화 단장인 정민철, 1군 수석코치 장종훈, 2군 육성코치 송진우는 모두 대전·충청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한 팀에서 영구결번된 3명의 레전드가 동시에 그 팀 지휘부에서 일하는 것은 3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여기에 한용덕 감독은 영구 결번 지정자는 아니지만 한화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해 명투수로 은퇴한 레전드로, 두산 코치로 가기 전까지 한화 감독대행을 맡는 등 구단에서 오랫동안 코칭스태프로 몸담았다. 이 때문에 이들이 철저한 선후배 관계로 강고한 상층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민주적 의사소통과 과감한 혁신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선수를 능력이 아닌 친소관계 위주로 기용해 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심도 곁들여진다. 올 시즌 1위를 구가하고 있는 NC와 상위권의 키움이 주전과 후보 선수 간 경쟁이 치열한 반면 한화는 몇몇 고참 선수들에게 과도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야구에서 외국인 감독 영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리더십, 자기관리,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2008년 롯데 야구 부흥을 이끌었다. 한미일 야구를 두루 경험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감독까지 지낸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올해 부임해 강력한 카리스마로 KIA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야구계의 한 인사는 3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더라도 전권을 주지 않는다면 실패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꼴찌 한화의 이상한 문화 : 경쟁 없는 순혈주의

    꼴찌 한화의 이상한 문화 : 경쟁 없는 순혈주의

    프로는 결과를 증명하는 자리다. 하지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 10여년 동안 하위권을 맴도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팬들은 아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단순히 국내 감독을 앉혀서는 한화의 ‘이상한 문화’를 타파할 수 없는 만큼 선진 야구 시스템을 경험한 메이저리그 출신에게 팀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구각(舊殼)을 깨는 파격적 리더십으로 4강 신화를 이룬 축구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같은 리더십을 염원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재 한화의 지도부는 선수 시절부터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은 레전드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카르텔’을 깨는 게 개혁의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온다. 친한 선후배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문화’가 팀 내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저해하면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현재 한화 단장인 정민철, 1군 수석코치 장종훈, 2군 육성코치 송진우는 모두 대전·충청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한 팀에서 영구결번된 3명의 레전드가 동시에 그 팀 지휘부에서 일하는 것은 3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여기에 한용덕 감독은 영구 결번 지정자는 아니지만 한화에서 연습생으로 시작해 명투수로 은퇴한 레전드로, 두산 코치로 가기 전까지 한화 감독대행을 맡는 등 구단에서 오랫동안 코칭스태프로 몸담았다.이 때문에 이들이 철저한 선후배 관계로 강고한 상층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민주적 의사소통과 과감한 혁신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선수를 능력이 아닌 친소관계 위주로 기용해 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심도 곁들여진다. 올 시즌 1위를 구가하고 있는 NC와 상위권의 키움이 주전과 후보 선수 간 경쟁이 치열한 반면 한화는 몇몇 고참 선수들에게 과도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야구에서 외국인 감독 영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소통을 중시하는 수평적 리더십, 자기관리,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2008년 롯데 야구 부흥을 이끌었다. 한미일 야구를 두루 경험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하고 감독 경험까지 있는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KIA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야구계의 한 인사는 3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더라도 전권을 주지 않는다면 실패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후배 지켜보는 ‘원클럽맨’ 메시

    후배 지켜보는 ‘원클럽맨’ 메시

    리오넬 메시(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1월 6일 스페인 바로셀로나 호안 감퍼 스포츠 시티에서 진행된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FC 바르셀로나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메시는 2일 전날까지 기한이었던 계약 해지 옵션을 쓰지 않고 내년 6월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뛰기로 했다. 이로써 2004년 바르셀로나 1군 무대에 데뷔한 메시는 17년째 동행을 이어가게 됐다. 바르셀로나 EPA 연합뉴스
  • 후배 지켜보는 ‘원클럽맨’ 메시

    후배 지켜보는 ‘원클럽맨’ 메시

    리오넬 메시(오른쪽 두번째)가 지난 1월 6일 스페인 바로셀로나 호안 감퍼 스포츠 시티에서 진행된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FC 바르셀로나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메시는 2일 전날까지 기한이었던 계약 해지 옵션을 쓰지 않고 내년 6월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뛰기로 했다. 이로써 2004년 바르셀로나 1군 무대에 데뷔한 메시는 17년째 동행을 이어가게 됐다. 바르셀로나 EPA 연합뉴스
  • 백석예술대, 2020 BKccm 열린음악예배 개최

    백석예술대, 2020 BKccm 열린음악예배 개최

    코로나19로 교정에서 매번 함께 하던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재학생들을 위해 백석예술대학교가 온라인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 음악예배를 마련했다.백석예술대학교(총장 윤미란)는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백석아트홀에서 둘째 주 화요일과 넷째 주 목요일마다 열렸던 ‘2화4목 예배’를 올해 처음으로 개최했다. 2화4목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사이의 온전한 화목을 목표로 이어져 오고 있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등교개학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올해는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이에 학교와 음악학부, 재학생, 졸업생 등이 마음을 모아 온라인 BKccm 열린 음악예배를 기획했다. 백석예술대 한국음악 전공 선교부가 주관한 이날 열린 음악예배에는 졸업생을 주축으로 구성된 우리숨소리문화예술단 전문 연주팀 ‘바우밴드’(Bau Band)가 동참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주제로 가야금과 대금, 기타와 드럼 등 국악기와 현대악기의 아름다운 협연이 아트홀에 울려 퍼졌다. 열린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석은 대부분 비어있었지만 무대를 메운 찬양이 온라인으로 함께하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학생들은 학교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예배에 참여했다. 백석예술대 음악학부 정설주 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제자들이 지혜로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예배자로 바로 세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였다.”고 전했다. 우리숨소리문화예술단 황정민 단원은 “후배들을 위한 자리에 초청 받아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온라인으로나마 학생들도 각자 있는 곳에서도 함께 즐겨주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군 잠수함, 지구 129바퀴 거리 무사고 운항 달성

    해군 잠수함, 지구 129바퀴 거리 무사고 운항 달성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들이 모두 합해 지구 129바퀴 거리인 280만 마일(450만 6000㎞) 무사고 운항 기록을 달성했다. 해군은 1일 “해군잠수함사령부는 이날 정승균 잠수함사령관 주관으로 사령부에서 창설 3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잠수함사령부는 1990년 창설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잠수함 18척 등을 운용하며 ‘30년 280만 마일 무사고 안전항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를 통틀어 보기 드문 기록이다. 특히 1992년 독일이 인도한 해군의 첫 번째 잠수함인 1200t급 장보고함은 한국 잠수함 최초로 30만 마일 무사고 기록을 달성하며 30년 가까이 안정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장보고함은 1996년 단독으로 한반도에서 괌을 왕복하는 첫 원양 항해에 성공했다. 1997년에는 도입 5년 만에 잠항으로 하와이까지 왕복 항해에 성공해 안전 항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을 양성하기 위해 선배가 후배를 기초부터 일대일로 교육하는 ‘도제식 교육’을 하고 있다”며 “엄격한 교육훈련을 통과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승조원 교육과정으로 무사고 안전 항해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때 다른 나라에서 잠수함 교육을 받던 해군은 이제는 외국에 잠수함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한국 잠수함은 수많은 해외 연합훈련에도 고장으로 훈련을 중도 포기한 적이 없어 외국군의 인정을 받는다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해군은 “2013년부터 ‘국제잠수함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재래식 잠수함 운용국과 운용 예정국의 장교 및 부사관을 대상으로 수탁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성폭행범 2명, DNA 재감정서 덜미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성폭행범 2명, DNA 재감정서 덜미

    술 취한 여대생 여인숙서 잇따라 성폭행경찰 수사서 무혐의…검찰이 혐의 입증 술에 취한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20대 3명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중 2명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됐지만, 검찰이 DNA 등을 재감정해 혐의를 입증했다. 의정부지검 여성·강력범죄전담부(부장 송지용)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준강간) 등의 혐의로 A(20·무직)씨와 B(23·회사원)씨, C(20·무직)씨 등 3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1일 밝혔다. 동네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지난 1월 5일 경기 의정부시 한 여인숙에서 만취해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인 대학생 D(18)양을 잇따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조사 결과 A씨는 함께 술을 마신 뒤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D양을 여인숙에 데리고 가 성폭행한 뒤 밖으로 나오면서 B·C씨에게 연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로부터 “엄청나게 취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B·C씨는 여인숙에 가 D양을 잇따라 성폭행했다.애초 A씨가 먼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D양이 술에 취해 기억이 제대로 없는 데다 A씨가 “합의해 성관계 했다”고 주장하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B·C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 무혐의로 처분됐다. 그러나 검찰은 B·C씨가 수상하다고 판단해 D양의 속옷에 대한 DNA 재감정을 의뢰, C씨의 유전자를 발견했다. C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B씨와 함께 성폭행했고 A씨가 이들에게 전화한 것을 확인했으며, 결국 3명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 검찰은 이들 3명을 모두 구속한 뒤 A씨에게는 특수준강간 교사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훈이 생각하면 너무 기가 막혀. 내 마음을 정리해서 표현할 문구를 아직까지 못 찾았어. 슬픈데 얼마나 슬픈지, 고통스러운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직도 정확히 말할 수가 없어요.” 육군 장교의 부인으로 평생 ‘꽃길’만 걸으며 살았던 ‘사모님’이 50대 중반에 돌연 ‘투사’가 됐다. 아버지를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는 아들을 말리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남편이 몸담았던 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가 22년째 군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초소에서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자살한 것으로 몰아간 것을 잘못했다는 말을 군으로부터 듣기 위해서다.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동에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77·육사 21기) 예비역 중장과 함께 만난 어머니 신선범(76)씨 눈에는 아들을 먼저 보낸 참척(慘慽)의 아픔을 풀어내는 내내 연신 눈물이 맺혔다. 19년 만에 순직 결정 직후 국가 배상 ‘다시 시작’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10월 가까스로 순직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다. 부모는 “국방부가 사망 원인을 자살로 고집하며 20년 가까이 순직 결정을 미뤘다”며 순직 처분 다음해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곧바로 항소해 지난달 20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었다가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으로 오는 25일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됐다.사망원인 여전히 외면… 1심 패소·오는 25일 항소심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은 분노의 연속이었다.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며 1심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사이에도 우리는 국방부에 ‘훈이의 사망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과거 훈이를 자살로 몰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데 대해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지난 4월 13일 국방부는 재판부에 낸 참고서면에서도 ‘재판 중인 사항에 관하여는 공식 답변이 제한된다’며 끝내 우리를 무시했다.”(김) -국가(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00년에는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훈이가 자살했다고 결론 내고 사망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에서 군의 1차 수사 과실이 최종 인정됐고, 처음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 냈다. 이후 추가 조사도 안 이뤄졌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순직 처분을 미루고, 여전히 국회 국방위원회를 비롯한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훈이를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로 몰았다. 2017년 5월 정부가 바뀐 뒤 군 의문사가 ‘적폐’로 규정된 뒤에야 그해 순직 처분이 됐다. 두 번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판단 이후 11년간의 시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김) -순직 결정으로 유족들의 요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그래서 순직 처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다. 우리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훈이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애국자로 정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니 다 끝난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군 안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약한 군인으로 기록돼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기는커녕 진실을 덮은 뒤 순직 결정을 미뤄 온 그 시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돌려놓고 싶은데 여전히 국방부는 훈이 사망 원인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김) “장군의 아들도 의문의 죽음… 우리가 멈추면 軍 안 변해” -어떤 과정들이 특히 고통스러웠나. “훈이 아빠가 3성 장군 출신으로 평생 군에 몸담았는데도 훈이가 떠난 그 순간부터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다.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공공연히 훈이가 자살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1998년 12월 특별합동조사단이 꾸려져 재수사를 할 때도 ‘형님, 형수님’ 하며 따랐던 후배 장군마저 ‘조사단 회의를 지켜보게만 해달라’던 우리를 부하들을 시켜 끌어냈다(당시 특조단이 연 법의학자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8명 가운데 가족들이 추천한 노여수 박사만 유일하게 타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특조단은 1999년 4월 다시 한번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발표했다).”(신)-김 중위의 사망으로 가족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결국 가족들이 나서야 했다. 훈이와 함께 근무했던 전역한 병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었고, 훈이 육사 동기생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확보했다. 서울역 버스정류장 앞에서 약국을 하던 친언니가 문산에서 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군인들이 볼 수 있도록 약국 벽에 훈이 사진과 제보 요청 글을 써 놓기도 했고, 진상을 밝혀 달라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평생 정갈하고 예쁘게 삶과 가정을 꾸려 왔던 나의 인생이 거친 길을 헤매고 시도 때도 없이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뒤바뀌었다.”(신) “훈이가 떠난 그날 오후 군에 남아 있던 동기로부터 ‘너희 집 무슨 일 있니? 훈이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밥을 먹은 날이 없다(김척 예비역 중장은 1997년 예편). 우리뿐 아니라 훈이 동생까지 평온하던 가정이 깨지다 못해 하루아침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 들어갔다. 훈이가 갑자기 떠난 것도 아프지만 그 죽음이 헛되게 매도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군인을 하겠다’던 아이였고 워낙 올곧은 원칙주의자여서 육사 동기생들 사이에서 별명이 ‘곰’이었다. 그런 훈이를 두고 ‘부모의 강압적인 입대 권유 등 가정 환경의 영향을 받아 우울함으로 자살했다’고 한 군을 용서할 수 없었다.”(김) -군 의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멈출 수 없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장군의 아들’도 이렇게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하고, 엘리트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그 진실을 풀기가 이토록 힘든데 다른 부모들은 오죽하겠나. 간단한 자료 하나 얻기도 어렵다. 3성 장군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군을 상대로 그렇게 싸우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많았는데, 내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더 싸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군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순수하게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이 많은데 군에서 혹시 잘못되더라도 명예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그들에게 줘야 한다.”(김) -22년째 이어 온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나. “진실을 밝히는 것과 진심의 사과를 받는 거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국방부가 공식 사과를 한다면 소송도 취하할 것이다. 오히려 재판은 국방부가 ‘당시 법령 등 근거가 명확지 않았다’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이유를 합리화할 수 있는 면피 수단이기도 하다. 소송은 돈 때문이 아니라 훈이가 정신질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다. 아버지이자 전우로서 훈이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다. 훈이 사건은 또 다른 ‘드레퓌스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군의 규정을 어긴 누군가의 큰 잘못을 덮기 위해 훈이가 죽게 된 것이라 믿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듯 언젠가 훈이 죽음의 진실도 밝혀질 것으로 믿고 그때까지 버텨 낼 것이다.”(김) “우리 훈이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뛰고 자라면서 군인을 꿈꿨다. 육사를 졸업하고도 공수부대에 자원하려고 했다.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컸다. 나 역시 군인의 아내로 살며 군을 사랑했다. 부대 병사들 간식이며 생일잔치까지 챙겨 줬고, 수색대대를 떠난 뒤에도 수색대 병사들만 보면 반가워서 남편 주려고 산 떡이나 담배를 아낌없이 쥐여 보냈다. 편안히 군 생활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내조했다.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한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그 길을 이으려던 아들이 멋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군이 이토록 잔인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다.”(신)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머리카락 비비며 “느낌 오냐”…추행 아니라던 판결 뒤집혔다

    머리카락 비비며 “느낌 오냐”…추행 아니라던 판결 뒤집혔다

    과장이 신입사원에게 성적인 농담 일삼아자신의 컴퓨터로 음란물 직접 보여주기도대법원 “도덕적 비난 넘어 추행 행위 평가” 위계질서가 엄격하지 않은 직장이라 하더라도 상사가 후배의 거부를 무시하고 성적 농담을 반복했다면 추행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기소된 A(4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과장 A씨는 신입사원 B(26)씨에게 평소 성적인 농담을 자주 했다. 심지어 자신의 컴퓨터로 음란물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2016년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은 사무실에서 B씨에게 “화장 마음에 들어요. 오늘 왜 이렇게 촉촉해요”라고 말하고, B씨의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라고 묻기도 했다. B씨는 이에 대해 “하지 말아라”, “불쾌하다”고 말했지만, A씨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B씨에게 퇴근 직전 업무 지시를 해 야근을 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떠넘기기도 했다.1·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를 상대로 장난을 치기도 하는 등 직장 내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다는 점, 사무실 구조가 개방형이라는 점 등을 들어 A씨의 행동이 ‘위력에 의한 추행’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3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여기서 ‘위력’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고 추행은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의사에 명백히 반한 성희롱적 언동을 한 것은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 것이고 일반인 입장에서도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 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라고 봤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함께 연주하고 함께 기도 함께 코로나 극복 … 자가격리 마다않은 용재 오닐의 처연한 위로

    함께 연주하고 함께 기도 함께 코로나 극복 … 자가격리 마다않은 용재 오닐의 처연한 위로

    “투데이 이스 베리 ‘특별한’ 데이 투 미. 디토 체임버스에게 큰 박수 부탁드려요.” 클래식 연주회에서 연주자가 마이크를 손에 쥐는 일은 드물다. 연주자가 악기가 아닌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금기나 되는 것처럼. 두 시간 가까이 음악성 짙은 연주로 고조된 현장 분위기와 악흥을 일순간 깨버릴까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이례적으로 마이크… 후배·동료와 협주 첫 앙코르 연주를 마친 연주자는 거친 숨을 내쉬며 영어에 우리말을 뒤섞어 말을 이어 갔고, 검은 마스크를 한 탓에 목소리가 다소 갑갑하게 전달됐음에도 청중으로 가득 찬 객석에서는 연주자가 숨을 고르는 구간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속에 열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2)의 연주회는 지긋지긋한 감염병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처연한 위로였다. 오후부터 굵은 빗방울이 반복됐던 26일 저녁, 서울 마포아트센터 입구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아직 여전한 감염병의 위험과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112일 만에 문을 연 공연장을 찾았다. 마포아트센터는 지난 2월 5일 코로나19가 국내에서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정부의 위기단계 ‘심각’ 격상보다 선제적으로 휴관에 들어갔다. 이날 공연장 측은 입구에서부터 1m 간격으로 대기선 표시를 했고, 빠짐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관객들도 직원들의 안내와 통제에 적극적으로 따랐다. 마스크 착용, 스마트폰 QR코드를 통한 본인 확인 및 문진표 작성, 비접촉식 체온 확인, 손 세정 등의 단계를 거쳐야 공연장 내 착석이 가능했다. 공연은 ‘거리두기 좌석제’로 진행된 탓에 전체 723석 중 340석만 입장이 허용됐지만, 1~2층 가능한 객석은 모두 찼다.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용재 오닐은 이번 공연을 위해 이달 초 입국해 2주간 자가격리를 거쳤다. 그는 코로나19로 세계 대부분의 공연장이 문을 닫고, 올해 예정됐던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공연 또한 취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한 위로를 주고 싶다”며 한국을 찾았다. 애초 이번 공연은 용재 오닐의 독주회로 예정됐지만, ‘당신을 위한 기도’(Pray for You)로 공연명을 바꾸고 연주 프로그램과 협연자도 모두 용재 오닐이 직접 변화를 줬다. 프랑스 연주곡들로 구성됐던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마왕’, 오펜바흐 ‘재클린의 눈물’,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 등 총 11곡으로 채웠다. 무대는 평소 용재 오닐이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소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5)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코프스키(36), 용재 오닐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2시간을 꾸몄다. 앙코르 연주로 동요 ‘섬집 아기’와 2015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할 때에는 마스크 위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거리두기 좌석제… 700석 중 절반 입장 ‘섬집 아기’ 연주 후 용재 오닐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시 무대에 올라 말했다. “오늘 밤 여기 와주신 여러분은 매우 용감한 분들입니다. 지금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죠. 저는 여러분이 그리울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리뷰]검은 마스크를 쓴 비올리스트의 처연한 위로…리처드 용재 오닐 ‘기도’

    [리뷰]검은 마스크를 쓴 비올리스트의 처연한 위로…리처드 용재 오닐 ‘기도’

    “투데이 이스 베리 ‘특별한’ 데이 투 미. 디토 체임버스에게 큰 박수 부탁드려요.” 클래식 연주회에서 연주자가 마이크를 손에 쥐는 일은 드물다. 연주자가 악기가 아닌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금기나 되는 것처럼. 두 시간 가까이 음악성 짙은 연주로 고조된 현장 분위기와 악흥을 일순간 깨버릴까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첫 앙코르 연주를 마친 연주자는 거친 숨을 내쉬며 영어에 우리말을 뒤섞어 말을 이어갔고, 검은 마스크를 한 탓에 목소리가 다소 갑갑하게 전달됐음에도 청중으로 가득 찬 객석에서는 연주자가 숨을 고르는 구간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속에 열린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2)의 연주회는 지긋지긋한 감염병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처연한 위로였다. 오후부터 굵은 빗방울이 반복됐던 26일 저녁, 서울 마포아트센터 입구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아직 여전한 감염병의 위험과 궂은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112일 만에 문을 연 공연장을 찾았다. 마포아트센터는 지난 2월 5일 코로나19가 국내에서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정부의 위기단계 ‘심각’ 격상보다 선제적으로 휴관에 들어갔다. 이날 공연장 측은 입구에서부터 1m 간격으로 대기선 표시를 했고, 빠짐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관객들도 직원들의 안내와 통제에 적극적으로 따랐다. 마스크 착용, 스마트폰 QR코드를 통한 본인 확인 및 문진표 작성, 비접촉식 체온 확인, 손 세정 등의 단계를 거쳐야 공연장 내 착석이 가능했다.공연은 ‘거리두기 좌석제’로 진행된 탓에 전체 723석 중 340석만 입장이 허용됐지만, 1~2층 가능한 객석은 모두 찼다.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용재 오닐은 이번 공연을 위해 이달 초 입국해 2주간 자가격리를 거쳤다. 그는 코로나19로 세계 대부분의 공연장이 문을 닫고, 올해 예정됐던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공연 또한 취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한 위로를 주고 싶다”며 한국을 찾았다. 애초 이번 공연은 용재 오닐의 독주회로 예정됐지만, ‘당신을 위한 기도’(Pray for You)로 공연명을 바꾸고 연주 프로그램과 협연자도 모두 용재 오닐이 직접 변화를 줬다. 프랑스 연주곡들로 구성됐던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마왕’, 오펜바흐 ‘재클린의 눈물’,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 등 총 11곡으로 채웠다.무대는 평소 용재 오닐이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소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5)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36), 용재 오닐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2시간을 꾸몄다. 앙코르 연주로 동요 ‘섬집 아기’와 2015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할 때에는 마스크 위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섬집 아기’ 연주 후 용재 오닐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시 무대에 올라 말했다. “오늘 밤 여기 와주신 여러분은 매우 용감한 분들입니다. 지금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죠. 저는 여러분이 그리울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 용퇴

    차관급인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과 1급 간부 2명이 올 하반기 서울시 정기 승진·전보 인사를 앞두고 용퇴를 결정했다. 서울시는 “진 부시장과 1급인 강맹훈 도시재생실장, 강병호 복지정책실장이 다음달 단행될 하반기 인사를 앞두고 물러나기로 했다”면서 “다음달 30일까지 근무하고 퇴직할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진 부시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보람되게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드리고, 뒤를 이을 후배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서울시를 잘 이끌어 살기 좋은 ‘세계 표준 도시’를 선도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진 부시장은 2018년 8월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행정2부시장을 맡아 서울시 도시계획·개발 등을 총괄 지휘했다. 진 부시장 후임으론 지방고시 1회인 김학진 안전총괄실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기욱 도시계획국장, 김성수 용산구 부구청장, 오해영 강북구 부구청장 등 국장급 간부 3명도 정년퇴직을 앞두고 공로연수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하반기 승진·전보 정기 인사에서 3급 부이사관 승진자는 6명이 나올 전망이다. 시는 지난 25일 하반기 3급 승진 예정 대상자 139명을 대상으로 심사에 착수했다. 이들이 27일까지 업무 실적을 제출하면 고위 간부들로 구성된 승진심사위원회와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다음달 5일 승진자 명단을 확정·공개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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