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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부터 호주서 한국학회의/국제교류재단 호 BHP사 등 재정지원

    ◎17개국 한국학 학자 2백여명 참석 환태평양 지역국가들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학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한국학 국제회의」가 1일부터 4일까지 호주 시드니대학교에서 열린다. 92년 호놀룰루,94년 도쿄에 이어 3회째로 「PACKS 96,Sydney」로 이름붙여진 이번 회의에서는 17개국에서 2백여명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참가,정치·경제·역사·과학·문학·미술 등 14개 분야의 한국학 관련 논문 1백31편을 발표하며 각종 문화행사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특히 현재 9개 대학에 한국학 강좌가 개설돼 있으며 대학입시과목에 한국어가 정식 선택과목으로 채택돼 있는 호주 내에서의 한국학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회의에 처음 참가하는 인도·말레이시아·홍콩 등에서의 한국학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회의에서는 서대숙 하와이대 교수의 「북한의 새로운 정치지도자」,루이스 랭카스터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고려판 불경:새로운 연구자료」,이기문 서울대교수의 「현대한국어의 변화경향」,케네스 웰스 호주국립대 교수의 「한국 현대사 기술에 있어서의 국가개념」,누트 잠후리 말레이시아대 교수의 「마하티르 수상의 한국경제정책 본받기 열망」등 18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이번 회의를 준비해온 시드니대의 이상억 교수와 박덕수 교수는 『이번 회의의 주목적은 호주에서의 한국학 제값받기』라고 밝히고 『이 기회에 한국학이 중국학이나 일본학과 동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인 중요성을 인정받도록 관련자료나 기자재 등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회의는 한국학술진흥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한국정신문화원,호주 최대의 철강회사인 BHP사 등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김재순 기자〉
  • 「이」 “민간시설도 공격”초강경/「이」레바논 남부 공습 이모저모

    ◎주민 수십만명 일시에 몰려 차·인파 장사진/헤즈볼라 자폭대원 3백명 「항전결의」 집결 ○…이스라엘 전폭기들은 14일 베이루트 남부지역등 레바논내 회교 무장단체 헤즈볼라 거점에 공습을 감행하면서 베이루트 인근의 발전소와 시리아 접경지역에 있는 헤즈볼라 라디오 방송국 안테나 안테나까지 공격. 이스라엘군이 특히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인근까지 공격의 손길을 뻗친 것은 이곳에 헤즈볼라 게릴라의 사령탑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헤즈볼라 거점 44개 마을에 대해 하오 6시를 기해 공격을 펼치겠다던 당초의 예고보다도 1시간 30분 일찍 공격을 개시한데서 한발 더 나아가 레바논내 민간시설에 대한 공격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초강경 자세로 일관. 민간시설 공격 경고와 관련,이스라엘은 그것이 헤즈볼라 게릴라들이 이스라엘 목표물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 ○…레바논 보안 소식통들은 「순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3백명의 자살공격대원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13일 동부 베카계곡을 떠나 남부 레바논으로 향했으며 이미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 한편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와 이슬람 무장단체인 지하드도 이스라엘에 치명적인 자살폭탄 테러를 재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 ○…이스라엘군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는 레바논 남부 항구도시 티레 인근의 시돈과 베이루트로 통하는 도로는 이날 13만 주민이 일거에 이동을 시작하면서 차량과 사람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12명의 가족과 함께 피난 대열에 낀 80세의 농부인 밀헴 후세인씨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아이들이 사흘 동안이나 굶었다고 하소연. ○…시리아는 14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과 관련,미국이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일관으로써 중동지역에 대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경고. 시라아의 국영 라디오는 이와 함께 미국이 중동분쟁의 정직한 중재자가 될 것을 촉구. 한편 이라크의 알 줌후리야지는 모든 아랍및 회교국들은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에 대한 계속적인 공격에 다 함께 대항할 것을 호소. ◎“안보리오늘 소집 예정” 【베이루트 로이터 연합 특약】 남부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잇따른 공격 문제를 다루기 위해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될 예정이라고 레바논 외무부의 한 관리가 14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안보리는 레바논의 항의를 안건으로 다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랍 3개국 정상회담 추진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공격으로 중동지역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는 사태 진정책을 논의할 미니 정상회담을 준비중이라고 정통한 아랍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소식통은 3개국 정상회담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수일내 회담이 열려 아랍권의 중재안을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원주택 마련 손쉬워졌다/농지전용 간소화·업체들 가격파괴

    ◎농지법 개정… 집 준공 안돼도 땅 등기 가능/대지 1백23평·건평 31평 주택 1억원선 울창한 숲속의 별장같은 집.앞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 혼탁한 주변 환경과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한번 쯤 살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도시근교의 전원주택이다.아직은 분양가나 매매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도 낼 형편이 못되지만 전원주택은 도시인들에게 늘 마음의 고향집 같은 곳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농지법시행령이 개정되고 전원주택 업체들의 가격파괴 바람으로 큰 돈을 들이거나 까다로운 법적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원주택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따라서 경제적으로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아름다운 내집」을 노려볼만 하다. 우선 올해 1월 1일부터는 개정된 농지법의 시행으로 농지전용 허가(농지를 경작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으면 농지소유권의 이전이 수월해 졌다. 그 전에는 땅을 매입해 농지전용허가를 받았더라도 대지에 집을 지은 뒤 준공검사를 마쳐야소유권의 이전등기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전원주택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땅을 사서 집을 짓거나 분양을 받을 때 자기 이름으로 확실히 등기를 할 수 있게 됐다.또 분양업체가 미심쩍을 경우에도 주택 완공 이전에 납부한 분양대금 만큼의 땅에 대해 소유권 이전도 가능하다. 자신이 땅을 직접 사서 전원주택을 짓는 경우도 등기부상 땅주인의 사용승낙서를 받아 농지전용허가를 받으면 집을 완공하기 전이라도 명의를 바꿀 수 있다. 전문업체들의 가격파괴 추세도 전원주택 소유를 한결 쉽게 해주고 있다.택지개발과 동시에 집을 지어야 준공허가를 내 주는 제도적 규제 때문에 분양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이 자금난 타개책으로 이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 가격파괴로 분양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전원주택 전문업체는 명가주택(02­265­1800)이다.이 회사는 지난해 말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전원주택 17가구를 지어 가구당 9천만원 내외에 분양,두달만에 모두 팔았다. 명가주택은 이에 힘입어 현재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식금리에 12가구,양평군서종면 서후리 1·2단지에 44가구,남양주시 화도읍차산리(덕소)에 33가구 등 서울 근교 8곳에서 1백55가구를 분양중이다.분양가는 용인군 식금리의 경우 대지 1백23평,건평 31평 규모를 기준으로 약 1억1천만∼1억2천만원 수준이다. 특히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에 짓고 있는 대지 1백20평,건평 26평짜리 15가구는 분양가를 약 8천만원대로 잡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구입을 시도해 볼만 하다.
  •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사위일가 몰살 지시”/이집트 신문

    【카이로 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망명지인 요르단에서 귀국한 뒤 지난주 피살된 사위 후세인 카멜 알 마지드 일가를 몰살할 것을 지시했다고 이집트 일간지 알 곰후리야가 1일 보도했다. 신문은 이라크 반정부 소식통들을 인용,후세인 대통령이 두 사위인 카멜중장과 동생의 친척은 물론 측근들까지 모두 살해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 서희 장군 묘역 도굴 흔적 발견

    【여주=김병철 기자】 고려 성종때 서쪽 변방에 침입한 거란을 적장과의 담판으로 물리치고 강동 6주를 개척한 서희 장군 묘역이 도굴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16일 하오 3시30분쯤 여주군 산북면 후리 산53의1 서희장군 묘역에 도굴 흔적이 있는 것을 묘지 관리인 서흥모씨(66·산북면 후리 230의1)가 발견했다. 서씨는 『벌초를 위해 묘역으로 올라가보니 서희장군의 부인 무덤위에 10여개의 탐침구멍이 뚫려 있고 우측 귀퉁이에 가로 70㎝,세로 90㎝ 가량의 잔디가 파헤쳐진 뒤 다시 덮여있었다』고 말했다.
  • 멸종위기 황복 치어 방류/오늘 강화 앞바다에 4만마리/해양연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의 생물종 보존과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황복치어 방류행사가 30일 상오10시 강화도 앞바다에서 열린다. 한국해양연구소는 8·15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연구소가 인공부화시켜 사육한 황복치어 4만마리를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앞바다에 방류하는 행사를 갖는다. 황복은 산란기에 강으로 올라와 산란하고 바다로 내려가는 회유성 어종.임진강에서 산란하고 서해안에서 자라는 서해안산이 인기가 높은데 환경오염및 남획에 의해 멸종추세에 있다. 해양연구소측은 『농수산부로부터 의뢰받은 「황복종묘 대량생산및 증·양식기술 개발연구」를 수행중 환경보전운동과 토종보호사업,지역어민의 소득증대사업 차원에서 이번 행사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방류되는 치어는 지난 5월 경기도 파주군 장파리및 금파리지역에서 인공산란유도에 의해 알을 채집,해양연구소에서 부화시켜 사육한 새끼 황복으로 크기는 4∼5㎝ 정도다.이 치어는 강화도 앞바다 배위에서 방류돼 우리나라 해역뿐만 아니라 북한해역으로까지 유입돼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30일 정년퇴임하는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

    ◎“한국교회 베푸는 교회로 거듭나야”/“정신박약아들 돌보며 여생 보낼터”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아 우리교회도 앞으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이들이 사는데 불편이 없도록 도와주고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1년간의 신부생활을 통해 성공회 초대 관구장,서울교구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성공회를 이끌어온 김성수 주교(65)는 오는 30일 교구장 퇴임을 앞두고 한국교회의 역할을 이렇게 말했다. 김주교는 이런 소신으로 『퇴직후에는 서울 오류동에 있는 정신박약아 학교인 성베드로 학교에서 3백60여명의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퇴직후의 계획을 밝혔다.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나 교동국민학교와 배재고를 졸업한 김주교는 20대에 폐결핵에 걸려 10년간 요양하면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성공회 신학원에 입학,64년 청주교회 보좌사제로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김주교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은 누가복음 22장 27절의 『나는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이곳에 와있다』는 구절로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심부름하는 자세로 기도하고 헌신하는 목회를 이끌어 교세를 확장했다. 71년 서울 대성당사제가 된 김주교는 성당에서의 목회을 하면서 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가,빈민·장애인·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끊임없는 보살핌으로 당국으로부터는 「진보 사제」말을 듣으며 감시를 받기도 했다. 84년부터 서울교구장을 맡으면서 항상 바쁘게 살아온 탓으로 자녀들로부터는 『우리집이 여관이냐』라는 핀잔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주교는 그동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성서공회 이사장,바른언론을 위한 시민연합 공동대표,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종교적인 사회 운동을 펼쳤다. 그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도운 것은 『좋은 신부,좋은 목사들을 만나 의로운 일을 하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그가 빈민과 장애인 등에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간의 폐결핵투병 생활을 한 경험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주교는 그동안 ▲성공회대학을 정식 대학으로 만든 것 ▲대한성공회를 관구로 격상시킨 것 ▲선교 1백주년 기념 선교행사를 무사히 마친 것 ▲서울 교회를 확장 증축한 것 등을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주교는 당초에 결혼을 하지않는 수사생활을 하려고 했으나 39살의 노총각때 일본을 방문하면서 당시 일본에 선교사로 와있던 영국인 부인 후리다 여사(63)를 만나 만혼,1남 1녀를 두었다. 김주교는 『다시 신부가 된다면 광산이나 어촌·농촌으로 들어가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주교는 성당에서 퇴직금은 받지만 액수는 아주 적어 『묻지 말아달라』 며 『아내 후리다 여사가 장애인 들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으니 생활에는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성직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회개를 거듭하는 경건한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애,더위로 12명 사망

    【카이로 AFP 연합】 이집트에서는 기온이 섭씨 44도로까지 올라가는 살인 열파로 16일까지 12명이 사망하고 60여채의 가옥에 화재가 발생했다. 관영 알 곰후리야지는 이날 이집트 남부 소하그주에서 무더위로 전기가 누전되면서 소녀 6명이 잠자던 중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카이로에서도 22세 남자가 더위를 피해 나일강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했으며,카이로 정신병원에서는 환자 5명이 무더위로 숨졌다.
  • 남성용 화장품시장 뜨겁다

    ◎신세대 수요 급증… 올 1천8백억규모 예상/자외선 차단·마사지 팩등 수십업종 각축 남성용 화장품 시장이 뜨겁다. 지난 5월 한달동안 LG화학이 20∼25세를 겨냥한 신세대 남성화장품 「이오세대」,유니코스가 스킨과 로션이 복합된 기능의 「프로포제 옴므 스킨후리」,쥬리아가 수세미 추출물이 함유된 「타게트 수세미」를 각각 출시한데 이어 김정문알로에가 7일 한방성분을 주원료로 한 남성용 화장품 「조벤」을 선보임에따라 기존의 제품까지 포함,수십여종의 남성용 화장품이 춘추전국 시대를 맞고 있다. 화장품업계가 밝힌 지난해 국내 남성용 화장품 시장의 규모는 1천4백억원 정도.그러나 매연과 흡연 등으로 피부가 거칠어지는것을 염려하는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그 수요가 날로 증가함에따라 올해는 시장규모가 지난해보다 20%이상 성장,1천8백억원에 달할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남성화장품들은 기존의 남성화장품들과 비교,기능이 강화되고 제품이 고급화 된것이 특징. 따라서 가격도 보통 1만∼1만2천원 내외에서 1만5천∼2만원 안팎으로 크게 올랐다. 또 외모를 중시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제품의 종류가 다양화 돼 남성전용 마사지 팩까지 선을 보였는가 하면 여름철을 맞아 피부에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하고 피부를 하얗게 지켜주는 UV 남성용 화장품도 다양하다. 이밖에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돼 있던 머리영양제인 헤어크림과 헤어젤·스프레이 등도 남성전용이 잇따라 등장,남성용 화장품시장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 미,“대이란 교역 전면중단”/원유 포함… 투자도 금지

    ◎클린턴/“핵개발·테러 지원 응징”/이란,군사대결 불가피 경고 【뉴욕 로이터 A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지난 30일 이란이 테러를 조장,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란 원유수출물량의 20%을 넘고 있는 원유구매를 비롯해 미국회사의 대이란 교역및 투자를 전면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또 러시아에 대해 이란에 원자로를 판매하기로 한 계획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뉴욕에서 열린 세계유태인회의 만찬연설을 통해 『오늘 본인은 대이란 교역및 투자를 전면중단하고 양국간 다른 경제활동도 거의 모두 중지시키기로 결정했음을 알린다』고 말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란이 계속해서 핵무기를 추구하는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이란은 중동과 그밖의 분쟁지역에서 불안을 조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러시아와 중국과의 거래로 더 한층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과의 교역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이란이 파괴력 있는 무기를 구입하고 테러행위를 지원하는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며 이번주중 이와 관련한 대통령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회사들은 이란산원유를 구매하는 최대고객사들로 1년에 42억5천만달러상당의 원유를 이란으로부터 사들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테헤란 AFP 로이터 연합】 이란과 미국과의 군사대결은 불가피하며 이란 군대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라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모센 레자이 사령관이 1일 경고했다. 레자이 사령관은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대이란에 대한 교역 및 투자의 전면 금지를 발표한 데 대해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에게 『모든 증거로 미루어 미국은 이란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일간 좀후리 이슬라미지는 보도했다. 레자이 사령관은 『미국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므로 모든 군병력과 바시지스(의용군)는 전투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 언기국의 고성 사십리성(서역 문화기행:11)

    ◎비바람에 크게 훼손… 한·수 유물 출토/당대부터 관개시설 발달… 보리·배·사과 등 풍성/인근엔 거대한 담수호… 연간 4백여t 고기잡아 서역에 오직 하나뿐인 지방철도 남강선은 우루무치에서 동남쪽으로 천산산맥의 북록을 넘어 쿨라까지 4백70㎞.쿨라는 그 남강선의 종점이며,서역의 몸통격인 타림(탑리목)분지의 동북단에 위치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곳은 서한때 서역에 열립했던 36국중의 하나인 거리의 도읍이었지만 동한때엔 언기나라에 합병되었던 곳이다.한·당의 서역도호부였던 오루(오뢰)·윤대·쿠차 등이 모두 쿨라의 남쪽에 위치했다. 언기는 쿨라의 서북 50㎞밖에 있었다.오늘은 비록 쿨라가 이 지역 몽골자치주의 도읍으로 그 정치적인 위상이 높지만 청나라 이전까지만도 언기의 지위가 높았다.따라서 한나라때는 「언기」,위진때는 「오이」,당나라때는 「아기니(아기니)」,송원대에는 몽골사람과 위구르족이 정착하면서 「카라사알(객라사이)」로 불리었던 언기에는 역사의 유적도 많았다.그것은 한나라때 언기국의 세가 거리국의 그것보다 우월했음을 말해주었다.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에는 언기를 국방에 유리한 요새지요,관개가 발달하여 보리 기장 대추 포도 배 사과가 풍성한 농산지요,가람이 10여곳에 승려가 삼천을 넘는 불교의 본산이라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언기읍은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의 취락일뿐 아무런 역사 유적이 없었다.가장 상징적인 유적은 언기현에서 중국 최대의 내륙 담수호인 보스텅(박사등)호로 가는 길옆의 「사십리성」이었다. ○개원통보가 당대확인 그것은 필자가 서역에서 보았던 많은 고성중에선 가장 규모가 작고 풍화와 손괴의 정도가 심한 데다 출토된 유물조차 적어서 그 연대를 단정하기에 어렵게 했다.필자는 정문을 통해 고성에서 불룩한 언덕으로 올랐다.둘레의 길이가 3㎞ 남짓한 정방형의 고성,성안에는 비록 그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부서졌지만 판축된 토벽의 두께와 높이로 보아 장대한 요새는 아닐지언정 어느 관아의 건축이나 창고등의 용처로 보였다. 19 63년,「사십리성」의 탐사 발굴때 출토되었던 도기 동경 철검 동전 등으로 이 땅이 한대로부터 북조를 거쳐 수당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와 생활이 묻혔던 현장임을 믿게 되었다.특히 그속에는 당대의 주전인 「개원통보」가 그러한 확신을 주기도 했었다. 청대 서송이 쓴 「서역수도기」는 이곳을 한대에 존립했던 언기국의 도읍지인 「원거」성으로 추정한 바 있었다. 그 「원거」는 둥근 도랑이란 뜻,지금 황막한 사막속에 당치도 않은 말로 보이지만 지금도 사십리성의 둘레를 살피면 지형이 움푹한 데다 멀지 않은 곳에 관개의 수로가 출렁거려 어쩌면 당시의 호성하였을지도 모른다.더구나 여기서 불과 20리밖 남쪽엔 58㎞의 길이에 28㎞ 너비의 호수,그래서 「서해」로 불리는 보스텅호가 있었다. 보스텅호 선착장.우거진 갈대숲에 서서 함박눈처럼 분분한 갈매기를 보면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쯤 서 있노라는 착각을 오래 오래 씻을 수 없었다. 연간 4백여t의 어획고를 자랑하는 선창.거기엔 갈대의 늪을 이어주는 판교도 여러 군데 있었다. 옳지! 여기서 정동으로 4백㎞를 훌쩍 날면 거기엔 또 하나의 담수호 로프·노오르(나포박)늪이 있다.거기는 비록 중국이 첨단무기를 시험하는 척박한 땅이지만 그 언저리엔 지금부터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 330년까지 4백년동안 선선의 왕조가 떵떵거리고 영화를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몰아닥친 풍사에 덮인 채 춘몽처럼 사라진 누란의 땅이 아닌가? 필자가 연민하는 그 누란의 유적지,그 길은 너무 험했다.다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서방기선 통천하 기록 보스텅호에서 쿨라로 돌아가는 황혼,다시 언기현을 관통,언기산을 굽어 돌 때 휘몰아치는 가을 바람에 뽀얗게 모래가 일면서 시야가 흐렸다.이 때 10세기 말 송나라 시인이었던 심료의 시 「언기행」이 생각났다.세월은 천번이나 바뀌었어도 이 계절 이 고장을 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언기산두모연자. 오량성단행인지. 평사풍급권한봉, 천사궁로월여수」(후략) (언기산 산마루엔 자줏빛 저녁연기, 소·염소 움막 들고 인기척도 끊겼네. 사막에 모진 바람,쑥풀을 날리고, 하늘은 천막이요 달빛은 물이네) 언기산 너머로 서울의 안양천만한 강이 흘렀다.이름하여「개도하」.비록 천리를 굽이치는 장강은 아닐지라도 수십m의 강폭에 훤칠한 다리.그것은 공작강(공작하)에 합류되어 로프·노오르로 유입하는 강줄기였다.이를 두고 사람들은 「서유기」에 나오는 「통천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명작을 남긴 현장으로 「철문관」만한 곳이 없다.당대의 변새시인 참삼(음참·714 ∼ 770)은 여기서 「철문관누각에 쓰노라(제철문관루)」와 「철문관 서관에 자면서(숙철문관서관)」등 두편의 명시를 남겼다. ○3층누각 철문관 우뚝 철문관이란 언기현과 쿨라를 연결 짓는 협곡인 바,공작강 상류에 있으면서 망망 수천리의 타림분지로 들어가는 목이다.그래서 「철관곡」으로 불리는 험관이다.무엇보다 참삼의 「철문관누각에 쓰노라」가 12 00년전의 당시를 생생하게 투시해서 철문관 시로는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한다. 「철관천서애,극목소행객. 관문일소이,종일대석벽. 교과천인위,노반양애착. 시등서루망,일망두욕백」 (철관 서쪽으로 아득한 하늘/눈을 휘둥거려도 사람 그림자 뜸하네. 관문에 문지기,해 지도록돌벼랑 마주보네. 천길 낭떠러지에 놓인 다리와 두 벼랑 사이에 가물거리는 길. 어렵사리 그 서루에 올라,휘­둘러보면 머리조차 희겠네) 철문관은 쿨라시 북쪽 10㎞지점.쿨라시의 오아시스를 벗어나자 키질천불동이나 자오후리사원유적을 찾았을 때나 마찬가지의 숨막히는 적갈색 암벽의 산들.협곡을 돌고 돌아 차가 멈춘 곳엔 웬걸 즐비한 청사들,한눈에 무슨 관아의 건물 같았다.공작강 수력발전소요 공작강 댐의 관리 사무소였다.거기서 왼쪽으로 냇물이 흐르고 그 냇물위쪽으로 3층 누각이 보였다.그게 「철문관」이란다. 철문관뒤로 정말 천길 낭떠러지가 공작강을 중심으로 양쪽에 깎아세운듯 했다.그 동쪽이 쿠루크산(고로극산),서쪽은 허라산(하랍산).지금은 그 협곡을 잇는 다리와 낭떠러지에 가물거리는 길은 물론 온 종일 석벽을 마주 보던 문지기를 만날 까닭은 더구나 없었다. 필자는 중국문학에 출현하는 관문중 최서단의 철관문과 거리의 도읍이었던 쿨라를 떠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인양 아쉬웠다.그것은 쿨라나 언기가 누란의 인근이었고,필자에게도 당나라의 유명한 변새시인 왕창령(692∼757)이 그의 「종군행」에서 「누란을 공략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으리(불파루란종불환)」하면서 비장하게 그 개선을 맹세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말이다.
  • 불교거점도시 쿠차(서역 문화기행:9)

    ◎시원1백여채는 흙담만 남아/3세기 서역정치의 중심… 7백년간 영화/쿠차강 벼랑에 석굴 여러개 산재… 베제크리크 천불동 흡사 카슈가르에서 쿠차까지 사막 7백50㎞.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장장 15시간을 덜커덩거려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천산남로가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사막이란 장관들을 좌우에 놓고 그를 줄곧 볼 수 있는 데다 서역 역사의 중심을 이제사 찾아가는 길이어서 였다. 쿠차의 옛 이름으로 구자 굴지 고차등이 있지만 모두 쿠차라는 위구르말을 다르게 표기했을 뿐이다.서한때만해도 겨우 36국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는데 동한때 반초(반초·33∼103)가 서역을 확장하던 기원 91년엔 「서역도호부」를 두어 서역정치의 중심으로 부상,당나라때 「안서도호부」로 지속되었다. 쿠차는 기원3세기부터 11세기까지 서역에서 불교의 거점으로 가장 그 꽃을 피웠던 곳으로 스바시(소파십)에 두군데의 자오후리사원외에도 키질(극자이)석굴을 비롯하여 쿠무토라(고목토랍),키질가하등 세군데의 천불동이 있다.무엇보다 당나라의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할 때 여기서 두달을 머물면서 쿠차의 융성한 불교와 음악을 그의 「대당서역기」에 대서특필한 바 있었다. ○혜초,한달 걸려 통과 필자가 쿠차를 특별히 동경했던 연유는 따로 있었다.신라의 혜초가 인도로부터 장안으로 돌아갈 때,바로 카슈가르에서 쿠차로 뚫린 이 코스를 장장 한달이나 걸어서 당시 정치·군사의 중심지였던 쿠차를 그의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하였고,고구려 출신의 명장인 고선지(?∼755)는 당 천보(742∼755)연간에 서역방위 총사령격인 「안서도호」를 지내며 천하를 호령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서역의 악기,특히 쿠차를 대표하는 갈고는 꼭 우리나라의 장구를 닮았기에 똑같은 흥을 느꼈고,또 최근 필자는 돈황의 막고굴보다 한세기 앞서 착굴되었던 키질천불동의 벽화를 정리하여 일련번호를 엮었던(1946∼47)최초의 키질 전문가가 우리의 재중동포 한낙연(?∼1947)씨임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쿠차의 가을은 상쾌했었다.길에는 온통 코스모스였고 호마와 노새가 끄는 마차가 한가로웠다.멀리 해발 2천m가넘을 법한 뻘건 암벽의 촐타크(확이달격)산,그리고 보다 멀리 만년설의 하얀 천산산맥이 둘렀건만 시가는 넓고 사람들도 훤칠했다. 옛날 「양서」의 「제이전」에 쿠차의 외성은 장안성에 견줄만하고 가옥은 장려하다고 기록되었다.그 외성을 찾으려 필자는 맨 처음 쿠차의 옛 성곽을 찾았다. 쿠차의 간선도로 서쪽에는 인민공원,그 건너편 7m 높이에 5m 폭의 토성,그 허무러진 폐허가 보였다.그 밑으로 작은 개울,개울옆으로 쿠차 고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그 토성은 40m 간격으로 넓은 장벽을 세운 채 옛날의 궁궐을 휘감았는데 자그마치 7∼8㎞에 달한다고 했다.그 안에서 출토된 기와나 벽돌의 무늬와 크기는 장안 대명궁에서 발굴된 그것들과 비슷했다는 르포를 본 일이 있었다. ○40m간격으로 토성 이곳이 한때 쿠차국 국왕의 궁궐임은 물론 당나라때 「안서도호부」의 주둔지였으니 1천2백50년전 우리 고선지장군이 호령하던 곳에 필자가 서 있는 셈이었다. 「산 깊숙한 곳에,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2개의 가람이 있었다.둘 모두 자오후리라 이름했지만 위치에 따라 동·서로 불렸다.…서문밖 좌우에는 높이 90여자의 불상이 서 있고,절은 백여채요 승려가 5천여명…사람들은 공덕을 다투어 쌓고,…불상의 장엄은 사람의 공력을 뛰어넘었네라.…」 위의 글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 자오후리사원에 관한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비록 자오후리의 확실한 명칭과 위치를 밝힌 바 없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오늘의 스바시(소파십)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지칭함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필자는 쿠차 고성에서 북쪽으로 23㎞ 지점에 있는 자오후리를 찾았다.쿠차 시가를 벗어나 일로 정북을 향하여 지프를 몰았다.쿠차강의 긴 다리를 건너자 촐타크산이 화염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화염산의 머리가 타원형으로 다소곳한데 비해서 촐타크산은 들쭉날쭉한 적갈색 바위.위구르말로 「촐」이 「황량」을 뜻한다는 데 실상은 더 했다.더구나 촐타크의 아래로 뿌연 산등성이와 모랫벌,그 가운데로 쿠차강,강바닥의 하상조차 뿌옇게 말라 비틀어진 채 였으나 붉은 산등성이는 몹시 환상적이었다. 현장의 기록대로 「산깊숙한 곳」이요,「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가람이 있었 지만」,높이 90여자의 불상은 물론 백여채의 사원 건물들은 모두 풍화중인 흙담들로 침묵만 흘렀다. 필자는 서쪽 언덕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산기슭을 오르다가 문득 건너 동쪽 사원의 최북단에 절반쯤 무너진 탑신을 보았다.그쪽으로 건너가기까지 족히 반시간은 걸렸다. 그 탑의 중턱에 올라 동서 양쪽의 자오후리사원을 굽어보는 감격은 무너질듯한 그것이었다.자오후리 사원의 강역이 7천㎦.그러니까 투루판에서 보았던 교하 고성이나 고창 고성보다 넓었다.교하나 고창이 다목적용 성곽이었음에 비추어 자오후리의 성곽은 오직 사원용이었으며 그 범위은 서역 최대의 것이었다. 비록 그 연대를 확정할 순 없지만 1978년5월에 출토된 위진·남북조와 당대의 철·동·도기와 벽화·전폐·간찰등으로 미루어 멀리는 위진시대요,늦게는 당말연대까지 적어도 7백년의 영화를 누렸던 불교 사원도시였음이 틀림 없다. 서역의 역사가 위대한 것은 인류가 황량하고 척박한 자연과 고투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잃어버린 흙과 모래를 빚어 인류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석양이었다.그 사양속에 자오후리 사원 유적지는 자욱한 언덕들.동쪽 사원은 산의 비탈따라 전개되었고 서쪽 사원은 사원의 본당이나 강원·승방등이 밀집된 모양이다.그래도 높이 10m의 담들은 동서에 널려 있다.서쪽의 본당으로 보이는 입구쪽 토담은 봉화대에 상당할만큼 중후했고,그 둘레도 어림잡아 3백m는 넘을만했다. ○흙·모래로 문화창조 안내자가 필자를 서쪽 사원 북단으로 인도했다.거기서 놀란 것은 쿠차강을 굽어보는 벼랑에 여러개의 석굴이 뚫렸는데 그 위치나 구조가 투루판의 베제크리크천불등을 방불케한 때문이었다.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었다.석굴에서 내려오는데 길 바닥에 방사선 모양의 파란 덩굴에 수박잎모양의 큼직한 잎새들이 싱싱하게 자라서 적어도 한평쯤의 땅을 휘덮고 있었다.들수박이라했다.서역의 사막만을 방황하는 나그네에겐 또 한가지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쿠차로 돌아오는 도중,필자는 「키질가하토탑」을 굳이 찾기로 했다.쿠차 북쪽 12㎞지점에 있는 이곳을 찾기위해 쿠차에서 자오후리사원 중간쯤 도로에서 서쪽으로 돌아 작은 구릉을 한참동안 달렸다.그 왼쪽엔 염수계곡으로 수만년전 지구의 조륙운동으로 말미암아 벽해가 상전된 지질 변화로 만들어 진 곳이다. 염수계곡위로 우뚝 솟은 15m의 토탑.사막에서 자라는 풀인 소소초같은 것을 배합한 판축법으로 세운 흙탑인데 적어도 2천년을 견딘 이 탑의 툭불거져나온 위치와 상단의 망루적인 구조로 보아 봉화대로 단정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키질가하토탑에서 동쪽을 조망하면 불과 2㎞ 전방에 송송 구멍이 뚫린 벌집처럼 또 하나의 천불동이 보였다.이름하여 「키질가하천불동」.거기도 46개나 되는 석굴이 모여 촌락을 이루었는데 대체로 당대에 개착된 것으로 키질천불동보다 늦은 연대라했다. 서쪽으로 40㎞ 지점엔 또 하나의 천불동이 있다.이름하여「쿠무토라천불동」으로 그 휘하에 72개의 석굴을 거느리고 있다한다.필자는 키질가하토탑아래 우두커니 서서 성큼 다가오는 황혼에 쫓겨 지프에올랐다.어디를 보아도 천불동,누가 버린 땅이라하랴! 『선생! 제가 어릴적만해도 쿠차의 왕자가 어디쯤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위구르족 기사의 말이었다.정녕 그들 나름의 왕국이 청말까지도 실재했을지 모른다.
  • 이스라엘서 핵시설 공격땐/이란,“보복” 경고

    【테헤란 AFP 연합】 이란은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할 경우 보복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이란 관영 IRNA 통신이 7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란이 앞으로 5년안에 핵무기를 보유할지 모르며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개발계획을 중단하지않을 경우 이란의 원자로를 공습하는 문제를 검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언급,이같이 밝혔다. 이 통신은 유엔주재 이란 대표부 성명을 인용,『이스라엘이 보복에 대한 우려없이 공격 위협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잘못된 판단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 회교 강경세력을 대변하는 신문인 줌후리 이슬라미도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공격 위협을 실행에 옮길 경우,이스라엘 파멸이 초읽기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의 핵개발계획에 관한 뉴욕 타임스보도는 이란이 러시아및 중국과 핵시설 건설 계약을 체결한데 뒤이어 나왔다.
  • 이라크/유엔 군수업 감시단 입국불허 강력 경고

    ◎“제재 해제돼야 협력”/언론보도 【바그다드 로이터 연합】 이라크는 서방의 제재조치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유엔이 파견하는 군수산업감시단의 입국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바그다드의 영향력 있는 일간지 바벨이 1일 밝혔다. 사담 후세인대통령의 장남 우다이가 발행하는 이 신문은 이라크가 유엔의 군수산업감시단을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제재조치가 해제되지 않으면 향후 감시활동은 물론 유엔과의 협력도 이뤄지지 않을 것』라고 주장했다. 정부기관지인 알 줌후리야도 사설을 통해 이라크는 서방의 제재조치가 풀리기를 기대하며 장거리미사일과 여러가지 생물·화학전장비를 포기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이라크 언론들이 유엔과 미국을 겨냥해 이같은 강경한 논조를 취하고 있는 것은 최근 사담 후세인대통령이 유엔의 제재가 계속되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연설을 한데 뒤이은 것이다.
  • 대한민국 국악제 28일 “팡파르”/30일까지 부산·대구·서울서

    ◎「신토불이」 주제 화려한 가·무·악 종합무대/580여명 출연… 각 지방 전통민속예술 펼쳐 「94 국악의 해」를 결산하는 「대한민국 국악제」가 28일부터 30일까지 부산·대구·서울에서 각각 하루씩 열린다. 한국국악협회가 주최해 14번째를 맞는 「대한민국 국악제」는 우리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최대의 잔치.이번 국악제는 「신토불이」를 주제로 특히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름에도 볼만한 공연이 적었던 영남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져 이 지역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국악제는 화려한 가·무·낙의 종합무대로 펼쳐질 예정.승무의 이매방,판소리 명창 성창순,선소리산타령의 황용주 등 인간문화재와 이생강·신영희(부산),김일구·남해성·김혜란(대구),서용석·조통달·김영자(서울) 등 준인간문화재를 비롯한 5백80여명의 호화 출연진이 우리가락과 소리·춤을 다채롭게 선사한다. 부산 공연은 야외공연과 본공연으로 나뉘어 28일 문예회관에서 열린다.야외공연은 하오 1시부터 중앙강당 앞 에서 벌어질 예정.「다대포 후리소리」를 시작으로 「수영농청놀이」「동래학춤」「부산농악」 등 이 지방의 전통민속예술을 1백60분 동안 신명나게 펼친다. 본공연은 하오 7시 대강당에서 부산시립 국악관현악단의 「신모듬」연주로 막을 열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부산지역 민요들과 「살풀이」「강백천류 대금산조」「한량무」「오고무」 가야금병창이 이어진다.또 준인간문화재 이생강 등이 「시나위」를,역시 준인간문화재인 신영희 등이 흥겨운 남도민요를 부르면 출연자 모두가 무대에 나서 남도민요를 부르며 작별을 고한다. 대구공연은 29일 하오 7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시나위」로 시작되어 인간문화재 황용주의 「선소리 타령」과 김운선무용단의 「살풀이」,준인간문화재 남해성과 김혜란이 남도민요와 경기민요로 뒤를 잇는다.또 가야금병창과 창극,준인간문화재 김일구의 판소리,진유림무용단의 「허튼춤」 「우도농악」으로 신바람을 내면 역시 출연진 전원의 합창으로 끝을 맺는다. 국악제의 하이라이트인 서울공연은 30일 하오 7시 KBS홀에서 열린다.최종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사회로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이 장중한 「수제천」으로 막을 열어 시조창과 인간문화재 이매방의 「승무」,원장현 등의 「시나위」,양길순무용단의 「살풀이」가 이어진다.또 준인간문화재 조통달의 판소리 「흥부가」중 「박타령」,임이조의 「허튼춤」이 끝나면 판소리 명창 성창순의 무대.또 준인간문화재 서용석의 대금 연주에 이어 창극 「춘향 상봉막」,준인간문화재 김영자 등의 「남도풍년가」「성주풀이」,정예진 등의 가야금병창 「방아타령」,이호연 등의 「경기방아타령」「한강수타령」이 흥을 돋운다.국악제는 김덕수패 사물놀이로 분위기를 휘어잡은뒤 출연진 전원이 나서 청중들과 「강강술래」「뱃노래」를 함께 부르며 막을 내린다.744­8052.
  • “안동에 핵폐기장 유치/영구 생계대책 마련 조건”/안동댐수몰대책위

    【안동=한찬규기자】 경북 안동댐 수몰피해대책위원회(회장 이보영)는 11일 지난 76년 건설된 안동댐으로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제하고 댐건설에 따른 피해보상과 항구적인 생계대책만 보장해준다면 핵폐기물처리장을 안동에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대책위원회는 13일 안동군 도산면 서후리에서 핵폐기물처리장유치대회를 갖고 주민 1천5백명이 서명한 건의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하기로 했다.
  • 장터:상/조선왕조 천도후 종로에 시전 설치(서울 6백년 만상:7)

    ◎2천간 규모… 관주도 독점상권 형성/어물 등 6개조합… 육의전으로 불려/남대문밖 칠패·동대문 배오개장터 유명 예나 지금이나 장터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가장 진하게 스며있는 곳이다. 「남이 장에 가니까 씨 오쟁이 떼어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터에는 모두를 설레게 하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애환도 많고 또 풍성함의 이면에는 가난한 자의 한숨도 흐른다.한편에서는 흥정이 깨져 고성이 오가고 바로 곁에서는 또 만병통치약장수의 사탕발림 달변에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소박한 시골아낙들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후리려는 야바위꾼과 소매치기들도 설쳐대는 천태만상의 곳이 바로 장터다. 오만가지 인간군상들이 서로 얽혀 어깨를 비벼가며 사는 장터는 한마디로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으며 그래서 장터의 역사는 곧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대변한다.서울 장터의 역사는 한양천도 가까이로 거슬러 올라간다.천도를 단행한 조선왕조는 궁궐과 관아를 지어 정도의 기틀이 어느정도 잡히자 곧 상가건설에 착수,정종 원년(1399)부터 태종 14년(1414)까지 4차례에 걸쳐 2천간 안팎의 시전을 세웠다.현재 보신각이 있는 종로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로 연건동과 광화문우체국,남북으로 을지로2가와 안국동에 걸쳐 자리잡은 이들 시전의 관허상인들은 관에 임대료인 행랑세를 내는 대가로 독점판매권(금란전권)을 거머쥐었다.이때부터 종로거리는 전국 최대의 상거래지역으로 자리잡게 되고 인조 15년(1638)에 이르러서는 이들 시전상인들이 취급품목별로 입·면포·내외어물·지·저포·청포전등 6개의 조합을 만들어 육의전으로 불리면서 18세기 초까지 조선의 상권을 지배한다. 이들은 성안 사람들의 생필품을 조달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로 관의 보호를 받아가며 관수품과 중국에 보내는 진공품의 공급기능을 맡았다. 이들 종로의 시전상인들이 관주도의 상거래를 장악해가는 동안 지방에서는 닷새장제도가 생겨나고 서울에서도 성문근처를 비롯한 도성내 곳곳에 자연발생적으로 장터가 생겨났다.그 대표적인 것으로 동대문근처 배오개장(이현·현 광장시장자리),남대문밖 칠배장(현 봉래동일대)이 있다.이 두 장터의 형성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종로에 시전이 자리잡힌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은 오늘날의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의 모태를 이루면서 동시에 서민장터의 쌍벽이 되어 한국 상거래사의 한장을 이룬다. 서울의 물산시장을 가리켜 「동부채칠배어」라는 말이 있다.이는 동대문근처 배오개장에는 과일·채소가 많고 남대문밖 칠패에는 생선이 많아서 생긴 말이다.또 「왕십리 미나리장수는 목덜미가 검고 마포 생선장수는 얼굴이 새까맣다」는 말도 유행했다.왕십리 미나리장수는 아침햇살을 등지고 동대문으로 향해 목덜미만 검게 타고 마포 생선장수는 반대로 햇볕을 안고 남대문으로 향해 얼굴이 타서 나온 말이다. 처음 배오개와 칠패장의 상거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시전의 금난전권 행사로 상설점포를 갖지 못한데다 그 위세에 눌려 상품마저 마음대로 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장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장터에서는 오늘날 서울시내 거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목격되는 단속반과 노점상들의숨바꼭질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사회현상의 변화가 더뎠듯이 상업활동의 변화도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그러나 18세기에 들면서는 저자거리에도 한바탕 돌풍이 일었다.인구의 증가로 시장규모가 커진데다 금속화폐의 유통으로 상거래형태가 보다 복잡해지자 관주도 상업활동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시전상인들의 위세에 눌리면서도 꾸준히 부를 축적해온 사상들은 이 때를 맞아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에 정면으로 도전,마침내 정조 15년(1571) 신해통공조치로 시전상인들의 모든 특권을 철폐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에따라 18세기 중반부터 서울 상권의 무게중심은 종로로부터 성밖 나루터와 남대문·동대문의 양대장터로 옮겨가게 된다.바야흐로 장터의 남대문·동대문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 페루:상/후지모리 혁신에 국가역동성 회복(세계의 개혁현장:48)

    ◎“기득권 집착” 의회·사법부 작년 해산/게릴라 소탕하자 「개혁독재」 의심 사라져 남미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페루다. 집권 3년만에 일약 남미의 영웅으로 떠오른 야심찬 일본계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정치·경제·사회등 전 분야에 걸쳐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에 2천2백만 페루국민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의 늪에서 페루를 구출해 내야겠다는 열정만으로 정치일선에 뛰어든 국립농과대학장 출신의 대통령과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국민이 하나로 뭉쳐져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같다. 지난 30여년동안 보호무역주의등 폐쇄경제체제를 고수해온 페루의 독재정권이 국가경제의 파탄을 초래했고 국민들은 비탄과 절망의 수렁에서 참혹한 생활을 해야 했다. 후리모리 대통령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80년대 말 페루의 비참한 현실이 그를 대통령선거에 나서도록 했다고 밝혔다.그 무렵 농학자로서 전국을 답사하는 기회를 통해 조국의 현실을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체 국민의 10%에 불과한 백인계가 입법·사법·행정·군부등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50%에 이르는 극빈자를 포함,90%의 국민들은 최저생계비조차 벌지못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마지막 잉카의 후예를 자칭하는 MRTA와 모택동주의파인 「빛나는 길」(SENDERO LUMENOS)로 대표되는 좌익게릴라들의 무차별 테러와 살인행위가 나라전체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대학에서의 강의와 행정책임자로 일한 경험밖에 없는 후지모리교수는 대통령선거 6개월전인 지난 89년말 출마를 결심하고 「90년 개혁당」(CAMBIO 90)을 결성,90년4월 선거에 나서 당당히 당선됐다. 절대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후지모리 정부였지만 그러나 처음부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모든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도전이 끊임없이 계속됐다.개혁입법을 시도하면 의회가 거부하고 테러리스트를 잡아 넣으면 판사들이 재판과정에서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풀어 줬다.경찰과 군·국세청등은 마약조직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마약 밀매자금을 뇌물로 공공연히 받는등 어는 곳 하나 썩지 않은 데가 없었다. 후지모리는 급기야 지난해 4월5일 의회를 해산하고 좌익게릴라를 소탕하는 등의 국가비상재건조치(AUTO GOLPE)를 단행했다. 군부를 장악하고 단행한 이 조치는 「친위 쿠데타」라는 비난속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로부터도 원조중단 위협과 함께 헌정복귀를 요구한 압력을 받는등 대내외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의회는 막시모 산 로망 제1부통령을 대통령으로 뽑아 페루에는 당시 4명의 대통령이 있을만큼 극도로 혼란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국가비상재건회의를 구성,입법·사법·행정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등 초법적인 개혁조치를 하나하나 취해 나갔다. 가장 극적인 조치는 좌익게릴라들이 무법천지를 이루고 있는 「카스트로 카스트로」감옥의 진압이었다. 아비마엘 구스만을 대통령으로 뽑아 별도의 「국가조직」을 구성,정부의 통제가 전혀 안 먹히는 「카스트로 카스트로」감옥에 군병력을 투입,1백여명의 사망자와 2천여명의 중경상자를 낸 전쟁을 방불케하는 진압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다.후지모리는 진압작전후 현장에 직접 나가 TV 생중계방송으로 작전의 배경과 경위등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했다. 국민들 사이에 「개혁독재」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도 했으나 이 작전이후 후지모리를 다시 신뢰하게 됐다. 후지모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대법원 판사 13명을 비롯,수십명의 판사를 해임한데 이어 국회 사무처 직원을 3천명에서 4백명으로,상공부 직원 2천6백명을 1백70명으로 줄이고 그동안 마약·테러조직과 결탁되어 있던 군과 경찰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했다.그동안 역시 손델 엄두조차 못내던 외무부에 대한 기구축소도 단행,외교관을 포함한 직원 1백17명을 자르고 해외 공관도 여러곳 폐쇄했다. 이같은 조치후 페루국민들은 판사해임등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온상인 사법부의 개혁에 대해서는 95%,의회 개혁에는 85%가 찬성하는등 70%이상이 후지모리의 개혁정책에 지지를 보낸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국민들은 또 최근 실시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통해 후지모리의 연임과 사형제도의 도입을 허용했다. 대통령이 이끌고 2천2백만 국민들이 동참하고 있는 이 나라의 개혁은 분명 희망의 21세기를 향해 페루를 힘차게 밀어 올리고 있다.
  • 이란 원폭제조 재개/터키당국,사실 확인

    【카이로 연합】 터키당국은 이란으로 밀반출하던 농축우라늄 2.5㎏을 압수,이란이 또다시 원폭제조에 착수한 사실을 확인해주었다고 이집트의 알 곰후리야지가 30일 보도했다.
  • 「평생교육」 정부지원 시급하다/김신일 서울대 교수(정경문화포럼)

    ◎교육훈련비의 공공 부담 세계적 추세/우리는 거의 자부담… 제도개선 아쉬워 지난 7월 초에 오스트리아 사회교육진흥청의 초청을 받아 이 나라의 사회교육기관들을 돌아보고 빈대학과 어깨를 겨룬다고 자부심이 대단한 그라츠대학의 사회교육학과 교수들과도 이 분야의 현황과 문제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었다.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인구 7백60만의 작은 나라이지만 빈은 물론이고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로 유명한 문화예술의 나라이다.그런가하면 관광수입이 전체 국민소득의 7%를 차지할 정도의 관광국가이기도 한데 알프스산록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를 가나 산림과 농토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가꿔져 있어서 전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산림과 농토를 비롯하여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농민들이므로 관광수입의 절반은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농민조합의 주장에 절로 수긍이 간다.정치수준도 높아서 크고 작은 국정의 결정은 물론이고 지방 소유의 행정도 주민의 참여하에 민주적으로 꾸려간다. 이문열씨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도 아늑함과 평온함을 느끼게하고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고 묘사한 그라츠에 한주일 머물면서 이 도시 안팎의 각종 사회교육기관들을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스테어마르크주의 노동자회의소가 설립한 직업훈련원은 16개의 지역센터와 1백50명의 전임직원과 1천명에 가까운 강사로 구성된 방대한 조직이다.이렇게 방대한 조직이지만 이 훈련원이 담당하는 지역은 그라츠시가 수도인 인구 95만의 스테어마르크주에 국한되어 있다.그런데 직업훈련기관은 이것만이 아니고 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것,대학이 운영하는 것 등이 있어서 교육대상자의 확보가 어렵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이다.실제로 직업훈련기관들은 훈련생의 유치를 위하여 마케팅기법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다.훈련생들은 미취업자와 실업자도 있지만 전직을 희망하는 취업자,승진이나 승급을 위하여 직무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도 많다.그러므로 훈련생들의 배경과 연령이 다양하고 훈련내용이 수백가지에 이른다. 이 직업훈련기관들은 비영리기관이지만 정부나 설립자의 직접 재정지원은 없고 대부분 훈련생이 납부하는 교육비로 운영된다.즉 교육비는 무료가 아니고 유료이다.그러므로 훈련생을 많이 유치하지 못하면 훈련원의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직업훈련기관들이 마케팅기법까지 활용하여 훈련생유치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비가 유료라고 해서 그 비용을 훈련생이 직접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훈련생들은 직업훈련비를 주정부나 연방정부로부터 받는다.노동자회의소 직업훈련원의 경우 전체 훈련생의 80%는 교육비를 정부로부터 받고,15%는 현재의 직장으로부터 받으며,5%만이 순수한 자비부담이라고 원장이 설명한다.결국 직업훈련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되 훈련기관에 직접 지원하지 않고 직업훈련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지원함으로써 훈련기관들이 훈련의 질을 높이기 의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들고 국민들에게는 선택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라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민 3천명의 작은 읍 후리드베르그는 주민들의 평생교육을 위해 주민대표와 교육자대표들로 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양한 평생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시골의 작은 읍이므로 유능한 강사의 확보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주정부의 사회교육진흥원과 교회교구교육부가 강사를 파견해주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운영한다.재정은 읍과 주정부가 지원하므로 주민들은 명목적인 적은 수강료만 내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다.스테어마르크주의 수많은 소도시와 읍들이 모두 이런식의 주민 평생교육을 운영하고 있다.즉 주민들의 평생교육을 정부부담하에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직업훈련이나 평생교육을 공공부담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비단 오스트리아만이 아니다.독일과 북유럽 제국을 비롯하여 모든 나라들에 평생교육의 공공지원이 오래전부터 정착되어 있다. 이웃 일본만해도 마찬가지이다.각종 평생교육을 통하여 국민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가고 있는 것이다.국민의 수준이 바로 국력이다.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직업훈련과 특히 평생교육은 공공지원이 미약하여 자비부담이 주축이다.공공지원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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