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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 소설」 활짝 피다/올 문단의 「보이지않는」 큰 수확

    ◎복잡 다면성의 삶속 여성의 문제 접근 활발/「염소를 모는…」·「블루 버터플라이」 등 주목받아 96년 문단의 보이지않는 수확의 하나로 뭐니뭐니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페미니즘 소설의 약진이다.90년대 들어 하나둘 나타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여성주의 문학이 올들어 폭죽터지듯 만개했다. 여성의 시각으로 억압의 체험을 들춰내는 이같은 소설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여성문제에 한층 다채롭게 접근,심화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예전의 작품들이 변두리로 밀린 여성문제를 끌어내기 위해 자의식 강한 여성의 극단적 얘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삶의 복잡한 다면성을 인정하고 여성문제도 그 속에서 풀어내려는 현실적 접근이 부쩍 늘었다. 올 하반기엔 전경린씨의 주목받은 창작집 「염소를 모는 여자」,차현숙씨의 첫 장편 「블루 버터플라이」와 소설은 아니지만 공지영씨의 산문집 「상처없는 영혼」 등이 여성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며 주목받았다.최근 1∼2주동안만도 이청해씨의 신작소설집 「숭어」,김민숙씨의 장편 「시간이 마술을 걸어온다면」,이경자씨의 「황홀한 반란」 등이 페미니즘 성황을 이뤘다.얼마전엔 남성작가 김원우씨도 가부장제하에서 일부일처제의 허위의식을 벗긴 「모노가미의 새얼굴」이라는 장편을 내놓아 여성억압이 더이상 여성소설가들만의 고유소재가 아님을 보여줬다. 이처럼 양이 축적되면서 페미니즘 소설들도 개성의 편차를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다.무엇보다 날선 공격성과 턱없는 피해의식이 수그러들고 여성문제를 삶의 무한히 복잡한 갈등의 하나로 접근하려는 다원주의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블루 버터플라이」는 부부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은 남녀 두쌍을 정신분석 상담실로 끌어들여 남성위주의 왜곡된 성통념에 다치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라는 사실을 무의식 층위에서 파헤친 점이 독특했다.「염소를 모는 여자」의 경우 까만 우산을 받치고 염소를 몰며 아파트를 뛰쳐나오는 기혼녀라는 한국문학사상 드물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낳았다.이청해의 신작 작품집 「숭어」에 실린 단편들은 배운 여자들의 예각적 자의식이기일쑤였던 여성문제가 소시민의 삶으로까지 내려와 부대끼는 모습을 푼푼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페미니즘 소설의 「공세」수위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자 역으로 경계어린 반작용도 커지고 있다.작가 이문열씨는 「세계의 문학」 가을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신작장편 「선택」에서 조선후기 한 양반집 아낙을 내세워 「여성해방론자」들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고 작가 유순하씨도 산문집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장」을 펴내 페미니즘에 대한 훈계를 보탰다.성격은 좀 다르지만 아버지가 가정에서 죽은 이름이 돼버렸다며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자는 소설들이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것에도 이같은 경계심리는 깔려있을 법하다. 아무튼 안팎에서의 이러저런 도전앞에서 페미니즘 소설은 더 깊은 문학성과 정치한 방법론으로 인간보편의 문제를 끌어안는 주류문학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전환기에 놓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한국인의 소비행태와 건전소비문화…」토론회 박승 교수 기조연설

    ◎“경제난은 천민적 과소비 탓”/개방 부작용 향락·소비문화 무분별 모방 한국개발연구원(KDI)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와 한국시민단체협의회는 27일 하오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 「한국인의 소비행태와 건전소비문화 정착 방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가졌다.기조연설을 한 중앙대 박승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경제난의 진원은 과지출이다.인력부족 단계에 들어서면 온 식구가 나서서 벌고 생활향상 욕구는 자제해야 한다.그러나 우리는 가장의 수입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사회구조를 고수하고 있다.그러면서도 높은 지출구조를 고집하니 임금은 오를수 밖에 없다. 과지출 유발요인은 첫째 고욕구의 만성화를 들수 있다.경제발전은 대중적 실업에서 완전고용에 도달하기까지의 초기단계와 완전고용하에서 생산성을 높여가는 후기단계로 구분된다.우리는 후기단계에 진입해 있으면서도 초기 고속성장시대의 고욕구가 만성화돼 있다.가계는 높은 생활욕구,재산증식 욕구,기업은 팽창욕구,소유세습의 욕구,정부는 두자리수의 재정팽창 욕구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다.따라서 욕구를 다스리는 「성숙사회의 균형감각」을 길러야 한다. 둘째는 세대위기와 천민적 소비문화이다.우리는 영국이 200년 동안 이룩한 경제발전을 40년으로 단축했다.창업세대와 승계세대인 자녀들은 나이 차이는 한 세대에 불과하지만 역사적 경험의 차이는 수세기에 이른다.가난과 무지의 한을 갖고 있는 창업세대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과실을 자녀들을 통해 풀고 싶어한다.그 결과 젊은 세대들은 낳으면서부터 분에 넘치는 재산·환경 등 과소비의 잠재적 환경을 타고 난다.그러나 이들의 소득과 재산은 땀흘린 대가가 아니어서 비용개념은 희박하다.그래서 이들의 소비는 과소비로 흘러간다. 창업세대들도 근검절약이 몸에 뱄지만 성숙단계에 진입하면 달라진다.자녀부양제도의 붕괴,노년의 나이 등으로 이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과 공허감에 빠져 근검절약에서 과소비로 생각이 바뀐다.생전에 여행도 가고 쓰자는 것이다.이렇게 되니 창업세대와 승계세대가 다같이 과소비로 간다. 셋째는 개방의 부작용이다.세계화와 개방의 물결은 근면과생산을 촉진하기 보다는 향락과 소비를 모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막스 베버는 산업화에 따른 부를 누리면서도 의식구조 등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천민자본주의라고 했다.바로 우리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성숙된 모습으로의 자기혁신이 필요함을 말한다.
  • 인트라넷…·회사인간…·백마리째 원숭이가…/눈길끄는 경영서 3권

    ◎탈조직 인간이 돼라·무분별 감원은 곤란·정보고유의 흐름타라/인트라넷 경영­「플랫조직」이 돼도 중간관리직은 필요/회사인간의 흥망되자­샐러리맨은 스스로 「시장성」을 높여야/백 마리째 원숭이가 되자­「양심경영」이 현대사회의 대세로 부각 『정보화시대엔 조직에 충실한 사람보다 탈 조직인간이 세력을 얻는다』『무분별한 감량경영보다는 책임감있는 진정한 「회사인간(Company Man)」을 키워라』 『「인트라넷 경영」으로 정보공유의 흐름을 만들어가자』 새로운 정보경제시대,기업 경영환경의 혁신을 주장하는 다양한 경영관련서들이 서점가를 장식하고 있다.주목할만한 것은 「인트라넷 경영」(다사카 히로시 지음,이강호 옮김,삼호미디어),「회사인간의 흥망」(앤소니 샘슨,이재규 옮김,한국경제신문사),「백 마리째 원숭이가 되자」(후나이 유키오 지음,김장일 옮김,사계절) 등. 「인트라넷 경영」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정보망인 인트라넷을 통한 기업혁신을 강조한 책.인트라넷은 인트라(Intra)와 인터넷의 합성어로 인터넷의 웹(Web)기술을 이용해 기업이나 특정 단체의 내부 정보시스템을 구축,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게 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말한다.단순한 정보체계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기업경영론과 기업문화론까지 연관지어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지은이는 특히 인트라넷이 도입되면 「플랫 조직」(Flat Organization,기업의 계층조직에서 중간계층이 없어진 평면조직)이 실현돼 중간관리직이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통념」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회사인간의 흥망」은 20세기 사회의 특징적인 단면인 회사인간을 역사적·사회적 관점에서 조망한 책.초기 자본주의시대부터 후기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회사인간의 속성과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추적한다.지은이는 또 『초기산업사회와 달리 오늘날 지식사회에서는 계층과 지시,감독의 개념보다는 자율과 창의,그리고 책임이 중요시되고 있다』며 『21세기 회사인간이 살아나갈 방법은 스스로의 시장성을 높이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회사인간…」은 최근 명예퇴직과 고용감축의 한파가 밀어닥치면서불투명한 미래를 염려하는 회사인간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 마리째 원숭이가 되자」는 미국의 과학자 라이언 왓슨이 무인도의 원숭이들에 대한 관찰 결과 『진리는 기억하기 쉽고 학습하기 쉬우며 확산되기 쉽다』는 사실을 확인한데서 나온 「백 마리째 원숭이현상」을 원용,「양심경영」의 이념을 밝힌 책.『세상에는 흐름과 기세가 있다.좋은 흐름은 빨리 타야하고 기세가 좋으면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양심경영」은 이제 그러한 흐름과 기세가 되고 있다』는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다.
  • 영미문학비평 「한국식」 재조명/연대 이상섭 교수 「영미비평사」

    ◎16C∼현재 대표적 논저 해부… 30년 연구 집대성/당대 비평가·문인들의 육성 되살리는데 초점 영문학자 이상섭 교수(59·연세대)가 30여년에 걸친 영미문학비평사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영미비평사」(민음사)를 펴냈다.「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비평」「낭만주의에서 심미주의까지」「뉴 크리티시즘:복합성의 시학」 등 모두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식」 영미문학 비평사를 목표로 하고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인츠베리·애킨스·웰렉·윔서트·브룩스 등 서구의 비평사 권위자들이 옛 문인들의 글의 흔적을 없애버리고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자신들의 말로 비평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반면 이교수는 당대 비평가나 문인의 생생한 「육성」을 되살려 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비평은 특정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동시대 사람들끼리 벌이는 토론』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때문에 이 책에서는 뛰어난 소수 비평가의 역사적 의의나 사상을 요약하는 대신 시의 효용과 보편적 본성,창작기술 등 주요 토픽을 중심으로 당시의 「토론」에 기여한 모든 문학가들을 논의대상으로 삼는다. 첫째권 「르네상스와…」는 2부로 나눠 1부「르네상스 비평」에서는 영국의 문학비평사가 시작되는 1530년대부터 르네상스 전성기(1550∼1600년)를 거쳐 비평적 토론이 비교적 저조했던 르네상스 후기(1600∼1650년)의 비평을 다루며,2부「신고전주의 비평」에서는 프랑스 신고전주의비평의 도입기(1650∼1700년)부터 영국적 발전기(1700∼1750년)를 거쳐 1750년 이후 신고전주의가 변모·와해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이같은 서술방식은 『대략 50년을 주기로 영문학 토론의 주역과 내용이 바뀌었다』는 이교수 특유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둘째권 「낭만주의에서…」는 크게 낭만주의 비평,빅토리아시대 비평,심미주의 비평 등 3부문으로 이뤄졌다.영국 낭만주의는 19세기초 블레이크·워즈워드·콜리지·셸리 등 진보적인 시인들이 합리주의 전통에 맞서 일으킨 문학사조.중엽에는 칼라일·러스킨·밀·아놀드 등 사회사상가들이 공리주의에 대항하는 정신으로 다분히 보수적인 문학관을 내세웠다.하지만 문학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이 두 세대가 일치한다.또 세기말에 이르러서는 포우·페이터·스윈번·와일드 등 문인들이 등장,문학과 도덕의 완전분리를 주장하는 심미주의가 모습을 드러낸다.이 책은 낭만주의에서부터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 전성기를 지나 그 시대의 마지막 중요 사조인 심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영미비평사를 후대 유명학자의 비평사적 해설에 기대지 않고 당대 비평문헌을 직접 인용해 정리하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마지막권 「뉴 크리티시즘…」은 1930∼1950년대 미국에서 성행한,작품자체의 객관적 분석에 무게를 둔 문학비평방법인 뉴 크리티시즘에 대한 해설서다.엘리엇·리처즈 등 선구자에서부터 랜섬,테이트·워렌·브룩스·윈섬 등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뉴 크리틱에 이르는 비평가들의 논저를 면밀히 검토한다.특히 뉴 크리티시즘이 중시하는 패러독스나 아이러니를 비롯,뜻겹침(Ambiguity)·의도론 및 영향론의 오류문제 등을 쟁점별로 상세히 다뤄 뉴 크리티시즘에 관한 구체적인 윤곽을잡을 수 있게 한다. 이 교수는 『비평문장의 아름다움과 즐거움,힘과 지혜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평사 기술방법』이라고 결론짓는다.이런 맥락에서 그는 『처녀는 잃은 사랑을 노래할 수 있으나 수전노는 잃은 돈을 노래할 수 없다』라는 러스킨의 말을 비평사에서 금과옥조로 여길만한 훌륭한 문장으로 꼽는다.
  • 전남 선암사 산신도(한국인의 얼굴:84)

    ◎호랑이가 분장한 「하얀 산신령」/펑퍼짐한 어깨 부드러운 인상 불교탱화에는 불교신앙과 곧바로 연결될 수 없는 그림이 있다.우리 고유의 산신신앙을 불교가 받아들인 산신탱화가 그 것이다.이 그림은 바깥에서 들어온 외래종교 불교가 우리민족 마음 밑바닥에 깔린 기층심성을 파고든데서 비롯되었다.불교 토착화현상의 하나인 것이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가 소장한 산신도는 명품의 탱화다.조선시대 후기 작품인 이 탱화에는 신선과 세 동자,호랑이가 배치되었다.그림속에 나오는 신선은 호랑이가 모습을 달리 한 변화신이다.신선은 큼직하게 그렸다.신선의 등받이가 되어뒤쪽에 길게 앉은 호랑이가 신선 무릎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맨 앞쪽 어린 두 동자는 얌전한 자세인데 뒤쪽에 선 동자 하나는 딴전을 부리고 있다. 그림 전체가 부드럽다.펑퍼짐하게 앉은 신선 어깨와 신선을 뒷전에서 감싼 호랑이 몸둥이가 함께 둥글게 돌아간 탓이리라.그리고 호랑이 꼬리도 유연한 곡선으로 S자를 그렸다.호랑이 꼬리 끝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에 닿았고,왼쪽 노송 한 그루는 가지를 한껏 옆으로 펼쳤다.그러나 솔 가지는 호랑이 꼬리에 닿을듯 말듯 멈추었다.과연 신선이 머물러도 좋을 선경이다.산신은 풍골이 준수했다.백발이 성성하여 노인은 분명하나 혈색은 아직 홍안인지라 얼굴이 불그레했다.신선은 왼쪽 다리를 무릎 고여 세우고 그 위에 손을 걸쳤다.그리고 호랑이 몸에 편히 기대었으니 잘 생긴 얼굴이 평온할 수밖에 없다.신선이라고해서 위엄스러운 구석도 없고 그저 자비롭다.어딘가 먼 허공을 응시한 눈매에 자비가 어렸는데 백발이 수염에 가린 입술이 짐짓 웃음을 지을 모양이다. 눈썹도 희게 시었다.남색 두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칼도 희고,구레나룻이며 윗 입술과 턱을 뒤덮은 긴 수염도 희다.그 소담한 백발의 수염을 심산유곡에 부는 미풍이 가닥가닥 흔들어놓았다.「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속의 산신이 바로 선암사 산신도 안에 들어앉았다.할머니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옛 이야기 민담에 등장하는 「하얀 산신령」인 것이다. 탱화는 재주 많은 스님들이 주로 그렸다.그림 그리는 화승을 가리켜 금어라 했다.선암사 산신도에는 당시 금어 도순이 함풍팔년에 그렸다는 사실을 밝힌 화기가 들어있다.1858년에 그린 것이다.본래는 송광사 청진암것인데 후대에 선암사로 옮겨왔다.
  • “인터넷과 수능시험이 만난다”/답안 내면 채점… 합격권 자동안내

    □누가 ·두산 인터피아 13일 홈페이지 개설 ·인터넷 전문잡지 「웹 인터넷」 제작 □무엇을 ·정답 동영상 해설 ·버튼 누르면 채점 ·지원가능 대학·학과 입시요강도 안내 □기타 ·주문형 비디오 구현 ·다른 시험 수험생에 예상문제·정보 제공 ·문제은행 확장 꿈 대입 수험생들이 오는 13일로 다가온 수학능력시험의 문제풀이를 인터넷을 통해 시험 당일 곧바로 동영상 등으로 실시간 제공받는 것은 물론이고 점수별 합격가능 대학까지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두산정보통신 인터피아는 오는 13일 「인터넷 수능 홈페이지」(http://www.interpia.net)를 개설한다고 7일 밝혔다.홈페이지 제작은 인터넷 전문잡지 「웹인터넷」이 맡는다. 이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수능시험문제의 실시간 공개및 자동채점서비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험이 끝난 뒤 종이형태로 문제와 해답을 얻을 수 있던 것을 인터넷을 통해 문제 및 정답은 물론이고 한 두시간의 시차를 두고 동영상 해설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더구나 객관식문제의 경우 인터넷 상에서 답안지가 제공돼 수험생이 문제를 풀어가며 답안지에 표시한 뒤 채점버튼을 누르면 자동채점돼 바로 총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서비스는 수험생이 자신의 점수를 입력하면 즉석에서 지원가능한 대학과 학과에 대한 리스트를 보여주는 「사정페이지 서비스」.사정페이지에는 입시전문학원인 대성학원에서 제공한 사정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자료들이 수험생들이나 일선 담임교사,학부모들에게 좋은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서비스는 합격가능한 대학 리스트,지망대학및 학과의 예상 합격선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검색방법을 채택했다.또 인터넷상에 있는 80여개 대학 홈페이지와 링크시켜 각 대학의 입시요강이 소개되며 후기및 전문대학 지원이 끝날 때까지 자료를 업데이트 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수능시험 해설 실시간 동영상서비스는 24시간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분야만 선택해 볼수 있는 주문형 비디오(VOD)를 구현해 수험생들의 문제에 대한 이해와 폭을 넓혀줄 것으로보인다. 인터피아는 이 서비스가 수능시험이 끝난 뒤에도 대학 수학능력시험 뿐만 아니라 각종 시험에 대비한 수험생들에게 예상문제와 각종 시험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거대한 문제은행으로 확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피아의 한 관계자는 『수능 홈페이지는 기존의 종이로 인쇄돼 전달되는 수험 해답지와 TV해설방송을 결합시킨 새로운 차원의 인터넷 서비스』라며 『방대한 정보량에 비해 실제로 활용할 만한 정보가 없다는 인터넷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내용을 개발하는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 87개대 특차 6만3,543명 선발/올보다 72% 늘어

    ◎수능반영 평균 47.3%… 당락 좌우/145개대 97학년도 입시요강 발표 내년도 대학입시에서 87개 대학이 특차모집으로 6만3천543명을 선발한다.69개대에서 3만6천763명을 뽑은 올해보다 18개대 2만6천780명(72.8%) 더 늘어난 것이다. 정시모집에서는 27개대가 논술고사를 치르고 전체적으로 수학능력시험의 반영비율이 높아져 수능 성적이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그러나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은 한 곳도 없다. 한국 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민하 중앙대총장)는 4일 이같은 내용의 전국 145개 4년제 대학(교육대 포함) 입시요강을 확정,발표했다.총 모집인원은 올해의 27만6천47명보다 8.1% 늘어난 29만8천328명이다. 요강에 따르면 특차모집과 네차례로 나눠진 정시모집,수시모집 등 최소한 6회 이상의 복수지원 기회가 보장돼 수험생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 정시모집의 경우 「가」군 49개대 6만8천317명,「나」군 44개대 8만3천830명,「다」군 47개대 6만2천350명,「라」군 11개대 1만5천812명이며 수시모집에서는 77개대가 4천476명을 뽑는다.정시모집은 모두 23만4천785명으로 올해의 전·후기모집 23만9천284명보다 1.9% 줄었다. 이에 따라 정시 모집의 평균 경쟁률은 수능지원자 82만4천여명의 62.5%인 51만여명이 지원한다고 추정할 때 올해(1.9대 1)보다 다소 낮은 1.7대 1 수준이나 복수지원을 감안하면 시험기간군별 실질 경쟁률은 4∼6대 1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차에서는 고려대 등 29개대가 수능성적만으로 선발하고 서강대 등 58개대는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면접 성적 등을 합산해 뽑는다. 정시모집의 수능 반영비율은 평균 47.3%로 올해보다 7.7% 포인트 높아졌으며 모든 대학이 수능을 40% 이상 반영한다.처음 적용되는 학생부의 외형 반영비율은 평균 41%로 올해 내신성적의 반영비율에 비해 0.5% 포인트 줄었고 실질 반영비율도 1.3% 포인트 낮은 평균 8.9%로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높지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학생부 반영방법의 경우 서울대 등 65개대는 전 교과성적을,동국대 등 97개대는 대학지정 또는 수험생 선택과목 성적을 반영하고 충남대 등 86개대는 학업성취도를,부산대 등 73개대는 석차를기준해 반영한다. 또 129개대가 농어촌학생 특별전형으로 7천827명을 뽑고 60개대가 선·효행자,소년·소녀가장,독립유공자 손자녀 등 대학 별로 독자적인 특별전형을 통해 1천837명을 처음으로 모집한다.
  • 멕시코 멕시코시티(세계 문화유산 순례:14)

    ◎3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거대한 「도시 박물관」/「소칼로」 대성당앞 광장에는 화려한 의상의 원주민들이 날마다 향냄새나는 껌질 태우며 멕시카제국의 영광 되찾아 줄 신을 부르는 의식을 올린다 멕시코는 전역에 걸친 유적지가 자그만치 4만여곳에 이르는 것을 보면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인 셈이다.이 가운데 멕시코시티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유적지다.올메카,테오티와칸,마야 등 고대문명의 흔적들은 물론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문화까지를 포함한 3천여년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 있다.멕시코 문명의 실상을 조감하자면 반드시 들러야 했다.1964년에 개관됐다.멕시코 전역에 흩어진 유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놓은 10개 전시실을 갖춘 1층에서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2층 민속학박물관으로 연결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맨 먼저 맞는 유물은 「올메카의 머리상」이다.멕시코만 인근 타바스코주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올메카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석상이기도 했다.입술이 두껍고 코가 낮았다.눈까지 작아 영락없는 동양인 모습을 한 이같은 큰 머리 석상은 멕시코에 많이 남아있다.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질감이 풍부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모태문명의 원시성이 짙게 우러났다. 올메카 문명은 발생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렸다.그 한줄기가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 문명(AD 200년경∼AD 650년경)·톨테카 문명(AD 700∼AD 1100년)·멕시카 문명(14세기∼16세기)이다.이와 더불어 멕시코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에서는 전·후기 마야문명(AD 200년경∼∼AD 1521년)이 발전을 거듭했다. 멕시코에 와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멕시코 문명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즈테카(Azteca)문명이 그것인데,이를 멕시카(Mexica)라는 용어로 쓴다는 점이었다.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전설과 연관시켰다. 전설은 1150년경까지 아지틀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즈텍족이 새로운 땅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던중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신을 만나는데서 시작됐다.이때 신이 하늘을 날고있던 독수리를 가리키며 『너희에게 번영과 안정을 줄테니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아즈텍족이 독수리를 쫓아 가보니 과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시티의 한 부분인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얘기다.그리고 신은 또 『너희는 아지틀란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적관람을 위한 동선은 박물관에서 과달루페 성당으로 이어졌다.중심가인 레 포르마 거리 북쪽끝에 위치한 이 성당은 멕시코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있는 성소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동안 전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성당은 1531년 12월12일 테페약 언덕을 지나던 한 농부앞에 발현한 성녀 과달루페의 계시에 따라 축성됐다고 한다.발현 당시 과달루페는 한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도있다.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3문화광장」이 있다.고대 문명·식민지 문명·현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상거래 지역으로 짐작되는 멕시카족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와 17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그리고 현 멕시코 외무부 건물이 모여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테노치티틀란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었던 틀라텔롤코는 당시 멕시코 계곡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3문화광장」에서 다시 20여분가량 시내로 차를 몰아 「소칼로 광장」에 닿았다.「소칼로 광장」은 본래 테노치티틀란이었다.그런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사방이 각각 240m나 되는 이 광장은 북쪽에 대성당,동쪽에 국립궁전,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었다. 「소칼로 광장」의 대성당은 2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대성당 자리는 본래 멕시카인들이 인신공양한 해골들을 모아두던 곳이었다.본 건물은 1548년 완공됐으나 17세기 들어 남쪽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북쪽부분이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확장돼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하모니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예수상은 유명한 성물이다.식민정복지에서 원주민을 끌어 안으려 노력한 선교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였다. 성당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흥미로운 의식이 벌어졌다.새의 깃털을 단 화려한 머리장식에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들이 향냄새 나는 코팔나무 껍질을 모닥불처럼 태웠다.그리고 원무(원무)를 추며 흥겹게 돌아갔다.또 하나같이 프라일레라는 나무껍질을 말려 엮은 장식을 발목에 달아 춤을 추며 돌아갈 때마다 「딱,딱」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코팔타는 냄새와 프라일레 소리로 지난날 멕시카제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신을 날마다 불러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원주민 무리속에서 다수의 백인들이 발견됐다.백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그렇다고원주민쪽에도 끼지 못하는 멕시코의 에트랑제들,이들을 「패스포트 퀘스천」(Passport Question)이라고 불렀다.멕시카 후예들에게 동화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역사의 아이러니 바로 그것이었다.
  • 하이텔 「서바이벌」(동아리를 찾아서)

    ◎“전쟁으로 스트레스 풀어요”/매주 야외게임… 여성회원 급증 「가을 낙엽이 덮인 산속을 헤치며 서바이벌 게임을」. 현대인의 레저로 각광받고 있는 서바이벌 게임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년 새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PC통신동호회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통신망마다 이름을 걸어놓고 있는 이 게임 동호회 가운데 하이텔 「서바이벌동호회」(go sga)는 규모나 관록이 으뜸이다. 이 동호회가 생긴 것은 서바이벌 게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인 91년.현재 회원수는 4천여명이나 된다. 시솝 안용희씨(23·한솔전자 고객지원실 근무)는 『전국에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10만명쯤 된다』면서 『PC통신이 아니었으면 불과 몇년 새 이토록 빠르게 확산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의 특성상 게임용 총기 등의 장비구입및 사용요령이 어렵고 특히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소마련이 힘들어 PC통신이 아니었으면 자칫 소수 애호가의 전유물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화기정보」·「장비정보」·「화기연구」·「군사정보」·「참전후기」·「병무청」….마치 군사전략문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동호회방 코너 제목들이다. 이 코너들은 야외게임을 위한 실제적인 정보교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총기·군복을 비롯,액세서리까지 게임에 필요한 각종 장비의 소개와 구입요령에 관한 정보(화기정보·장비정보)가 가득하다.총기의 사용요령과 개조및 수리방법(화기연구)도 담고 있다. 병무청은 신입회원 가입신청을 받는 코너이며 참전후기는 게임을 끝낸 소감을 회원이 자유롭게 올린 글을 모아놓았다. 초보자를 위해 전면전·위생병전·깃발전 등 다양한 게임요령을 싣고 있다. 전국 80여개 팀으로 나누어져 있는 동호회는 매주 일요일 지역별로 동호회원이 「개척」한 게임장에 모여 스트레스를 푼다.매년 한두번씩 전국대회도 치른다. 시솝 안씨는 『만 19세이상으로 가입자격을 제한,초기엔 2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갈수록 중년층과 여성회원이 늘고 있다』면서 『보기보다 위험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푸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환용 기자〉
  • 운현궁 복원(외언내언)

    구한말 흥선대원군은 격변의 소용돌이속에서 영광과 패배를 부침한 풍운의 정객이었다.고종황제의 아버지로서 국태공이 되기 이전까지 이하응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안의 건달로 주정뱅이 생활로 세월을 보냈다.둘째아들이 12살에 왕이 되자 대원군은 10년동안 정권을 잡고 조선천지를 뒤흔들었다.그러나 며느리인 민비와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청나라에 강제호송되는 수모를 겪었기도 했다. 창덕궁 맞은편에 있는 운현궁은 바로 대원군의 사저.고종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치렀던 곳이고 대원군이 서릿발 같은 개혁정치를 단행했던 곳이다.고종이 즉위하자 본래있던 운형궁의 대대적 증축공사가 이루어져 주위 담장길이가 수리나 되었다.대원군의 명성만큼이나 운현궁은 커졌다.그러나 그뒤 일제시대와 6·25를 겪으면서 운현궁은 쇠퇴하고 많은 건물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어 겨우 본채5동과 회랑만 남게 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4년동안 퇴락한 운현궁 본체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복원작업을 끝내고 26일 일반에게 공개키로 했다.개관과 더불어 고종과 민비의 가례식을 당시 그자리에서 재현하기로 했다.꼭 130년만에 재현되는 국혼의례인 셈이다.운현궁의 회랑에는 대원군의 유품을 전시할 것이라고 한다.뛰어난 지략가인 대원군은 서화에 비범한 솜시를 보여 그의 난초그림은 「석파란」이라하여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다. 운현궁은 19세기 조선후기 사대부의 집으로 으뜸가는 고건축물로 꼽힌다.지금 그 원형이 모두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본채의 모습은 조선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해준다.얼마전 복원된 창덕군 낙선재와 더불어 새로운 볼거리가 생긴 것이다.600년된 고도에서 5대궁을 빼고는 옛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게 서울이다.운현궁의 복원은 그래서 더 값지다.〈반영환 논설고문〉
  • 조선시대 교육내용 “한눈에”/서울대 30일부터 규장각 자료전시회

    『요즘에는 인재를 뽑을때 성적만을 중시하고 도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학식이 높고 행실이 올바르다 해도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그 도를 시험할 방법이 없다』­이이의 독서론. 『천·지를 배웠으면 일월 성신 산천 구릉 등도 배워야 하는데 천자문은 이같은 응용력을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태워 없애야 한다』­박지원의 담총외기. 서울대 규장각이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마련한 「규장각 자료로 보는 조선시대의 교육전」에 전시된 내용들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후기의 실학자 유형원은 반계수록의 학교사목에서 국가개혁에는 반드시 교육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며 각 읍에 1차 학교를 설립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에도 뜨거웠던 교육열 못지 않게 교육개혁이 국가적인 과제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후기 국왕들의 학습내용을 수록한 열성조계강책자차제에 따르면 교육을 가장 중시했던 영조는 세자시절 소학·대학 등을 수학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44권의 경전을 아침·점심·저녁 하루 3차례 신하들과 학습했다. 또 윤최식의 일용지결에 따르면 당시 선비들은 계명이라고 일컬은 새벽 2∼4시부터 하루 16∼18시간을 자기수양과 독서에 몰두했다.
  • 20세기 최고의 SF작가 아시모프/미소개 초기·유고 단편작 나와

    SF소설의 대명사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선집 「골드」가 한뜻출판사에서 최근 나왔다.(김민식·김선형 옮김) 아시모프는 장편 「로봇」 「파운데이션」 등 소설은 물론,자서전·자연과학론까지 골고루 번역됐을만큼 국내에서도 인기작가가 됐지만 이번 책은 소개 안된 초기작과 유고집에 실린 단편을 한데 묶어 작품세계의 변천을 보여주는게 특징.테크놀로지가 고도화한 미래사회를 배경삼은 것은 공통적이지만 1부에 실린 초기작들이 흥미로운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최대로 보여준다면 2부로 묶인 후기작들엔 예술과 글쓰기의 조건을 탐색하는 목소리가 보태져 있다. 1부 작품의 하나인 「교정보는 로봇」은 인간의 단순노동을 완벽하게 대행하는 로봇을 설정,노동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로봇에게 뺏기게 될 때 인간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를 문제제기하고 있다.그 유명한 「로봇 3원칙」을 단서로 한 투명한 논리전개가 돋보인다.한편 말년에 쓴 「골드」는 무한발달한 테크놀로지를 손에 쥔 시대에도 예술혼이 유효할지,이는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를 고민하는 「예술가」아시모프의 초상으로 읽힌다.
  • 도서출판 열린책들 「프로이트전집」 내

    ◎‘작가’로서의 프로이트는 누군가/죽음에 대한 충동·여성동성애·문학비평/“그는 딱딱·고집” 편견과 오해 바로잡아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정신분석」이란 용어를 처음 쓴 것은 1896년.그로부터 꼭 100년이 흐른 지금,그가 창안한 정신분석학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자 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하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의 심리를 연구대상으로 하고있는 만큼 접근하기 어렵고,여러 형태로 왜곡되기 쉬운 속성을 지닌다.때문에 프로이트는 『에로스의 해방을 주장한 학자』라든가 『이성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에만 몰두한 반이성주의자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적 대부』라는 식으로 종종 각색되기도 한다. 최근 「새로운 정신분석강의」「늑대인간」「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등 1차분 3권이 나온 「프로이트전집」(도서출판 열린책들)은 프로이트에 대한 이같은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아 줄 의미있는 기획이다.특히 이 책들은 딱딱하고 고집스런 관념론자로서의프로이트가 아니라 문학적 역량을 지닌 작가로서의 프로이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주목된다. 1932년에 나온 「새로운 정신분석강의」(임홍빈·홍혜경 옮김)는 프로이트의 후기사상을 집약한 강의록.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특히 인격성의 구조나 불안,죽음에 관한 충동 등의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소개하는데 힘을 쏟는다.프로이트의 사상은 그의 저서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1920)를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인간의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의 두 개념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 전기의 입장이라면 후기사상은 자아와 초자아,그리고 발생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이드(Id)의 삼각관계속에서 인간정신을 파악하려 했던 점이 두드러진다.또 후기에 들어서는 초기의 일원적인 에로스 충동론에서 벗어나 죽음에 대한 충동을 「반복강박」과 관련지어 해석한다.『억압이 불안을 낳는다』는 주장을 거둬들이고 『불안이 억압을 낳는다』는 새로운 명제로 나아간 것도 그의 후기사상의 한 특징.이 책에는 「꿈이론의 수정」「꿈과 심령학」「심리적 인격의 해부」「불안과 본능적 삶」등 7편의 글이 실렸다. 「늑대인간」(김명희 옮김)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방법을 통해 치료한 환자들의 증상을 예로 들어 여자 동성애,강박증,유아기 노이로제,편집증 등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밝힌 책.여기서 「늑대인간」이란 유아기 노이로제에 걸린 늑대 공포증 환자를 일컫는 별명이다.여성의 병에 대해서는 히스테리 문제에만 관심을 쏟던 프로이트가 양성간의 해부학적 차이에 따른 문제나 여성 동성애에 관심을 보인 것은 드문 일.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여성동성애가 되는 심리를 『누군가를 위해 세상의 모든 이성을 양보하고 돌아서 버리는 것』으로 설명한다.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정장진 옮김)은 문학가로서 프로이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문학비평서로 「세 상자의 모티프」 「두려운 낯설음」 「빌헬름 옌젠의 『그라디바』에 나타난 망상과 꿈」 등 9편의 논문이 실려있다.「세 상자…」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구혼자들이 세 개의 작은 상자를 앞에 놓고 선택을 하는 장면,「리어왕」에서 세 딸 가운데 선택되었어야할 마지막 딸의 문제,그림형제의 동화 「여섯 마리의 백조」나 「열두 형제」에 막내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죽음의 사신 등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시도한다.또 「두려운 낯설음」은 문학작품속에 드러난 이상하고 두려운 감정들을 미학적으로 탐구한 논문으로,「빌헬름…」은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문학작품을 분석한 글로 관심을 끈다.「프로이트전집」은 내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모두 2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김종면 기자〉
  • 파키스탄 탁실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10)

    ◎ADI세기 간다라미술 태동지/BC2세기 도시 「시르캅」 주인 5차례 바뀌어/실크로드서 인도가는 길목 이민족 침략 찾아/초기불교 불상대신 불탑 실내에 위치… 규모 작아/「쌍두취불탑」 기단장식 그리스­서아시아­서남아풍 오늘의 이슬람국가 파키스탄을 선점한 종교는 불교다.그러나 지금 파키스탄에는 불교가 종교로 존재하지 않았다.다만 불교의 흔적들이 거대한 유적군으로 여기저기 남아있을 뿐이다.불교미술사의 첫머리를 찬란하게 장식한 이들 유적은 인류의 보편적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 하나가 펀자브주 라발핀디지방의 탁실라(Taxila)다.수도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한 승용차가 채 한시간을 못달려 도착했다.탁실라박물관으로부터 탁실라 전역이 유네스코가 선포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설명을 듣고나서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그러니까 유네스코는 탁실라를 온통 한 덩어리로 싸잡아 대단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한 것이다. 산악이 동·서·북을 감싸고 돌아가다 남쪽을 터놓아 마치 삼태기처럼 생긴 고원지대에 자리한 탁실라.동쪽 사르다산과 북쪽 자울리안산 사이 계곡에서 발원한 개울물이 제법 깊었다.그 산자락과 계곡 어디 하나 이름붙지 않은 곳이 없다.그리고 비르마운드를 비롯,자울리안,모라모라드,시루스크,잔디알,시르캅,사르아이코라,다르마지카,기리 같은 숱한 유적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유서깊은 탁실라의 역사를 후세에 증명한 유적은 시르캅(Sirkap)이다.기원전(BC)2세기쯤에 건설되어 기원후까지 존속한 이 도시유적은 탁실라 제2의 도시였다.이보다 훨씬 앞선 도시유적 비르마운드가 있으나 고고학적으로 역사를 뒷받침하기에는 좀 미흡했다.그러나 시르캅은 영국인 고고학자였던 존 마샬경이 옛 사람들의 생활터전을 땅속에서 찾아내는 고고학 발굴조사에서 도시의 주인이 적어도 다섯 차례이상 바뀐 사실을 밝혀냈다. 시르캅은 탁실라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자두 과수원을 낀 마을길을 얼마간 달려 시르캅에 다달았다.두어 사람 어른키를 재려하는 성곽이 길을 막았다.오늘날도 출입구로 사용하는 성문은 서쪽에 나 있다.그래서 성안의 간선도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연결되었다.어림잡아 너비가 20여m나 되어 보이는 도로가 시원하게 도시유적 한복판을 지나갔다. 이 도시를 처음 세웠던 사람들은 그리스인이다.오늘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쪽의 박트리아왕국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그리스인들이 BC 2세기 전기에 건설했다.도시는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었다.지금도 계속 고고학적인 발굴이 진행되어 시르캅의 도시규모를 당장은 정확히 알 수 없다.현재 드러난 도시규모는 대략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각각 1.7㎞이나 발굴구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도시유적 한복판 간선도로 양쪽엔 네모 반듯반듯하게 돌을 쌓아올려 지었던 집터가 즐비했다.규모가 좀 작은 일반시민들의 주거용 집자리 사이로 터를 보다 넓게 잡은 차이티야당(Caitya당)자리가 보였다.초기불교에서는 수투파(불탑)는 예배의 대상이었다.그래서 예배장소에 수투파를 안치했다.그런 탓에 차이티야당은 넓을 수 밖에 없었다.도시유적안의 수투파는 다른 야외수투파처럼 크지 않았다.그저 자그마하게 만들어 앙징스러운 유적으로 남아있다. 시르캅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유적은 머리 두개의 독수리가 있는 쌍두취불탑이다.이 불탑의 기단은 중앙계단을 사이에 두고 좌우 정면에 코린트식 둥근기둥이나 네모기둥을 세워 벽 공간을 각각 세등분한 형태를 취했다.그리고 좌우 양쪽 세공간에다 그리스,서아시아,서남아시아풍 건물출입구 모양의 감을 만들어 장식해놓았다.두 머리를 가진 쌍두독수리는 서아시아풍의 출입구문위에 조각되었다. 그러고 보면 쌍두취불탑에는 그리스,서아시아,서남아시아라는 모티브가 서로 다른 문화가 혼재한 것이다.이들 세 지역의 문화가 만나 만들어낸 쌍두취불탑은 불분명했던 탁실라역사를 그런대로 해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특히 쌍두독수리는 스키타이의 일족인 샤카족의 심벌이었다.그래서 쌍두취불탑을 세운 시기는 샤카족시대 후기부터 파르티아족시대 전기로 추정되었다.대개 기원후(AD)1세기 전기로부터 중기에 이르는 시기다. AD1세기는 탁실라를 답사하는 동안 매우 주목할만한 시기였다.불교미술이 처음으로 출현한 시기는 바로 1세기였던 것이다.이전에는 수투파가예배대상이었기 때문에 불교미술,더 나아가 불상은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그것은 아마 경전에 근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장아함경」이 기록한 「이 몸이 명을 다한 뒤에는 나를 볼 수 없다」는 말은 오랜 세월을 두고 불상조성을 가로 막았을 것이다. 어떻든 불교미술이 탁실라에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이른바 간다라(Gandarah)미술이 출현하는 것이다.간다라미술은 파키스탄 북부 일대와 아프가니스탄 일부를 포함한 지역이 중심축을 이루었다.이들 지역은 실크로드에서 인도 내륙으로 통하는 길목이라서 늘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다.박트리아족과 박트리아에 살던 그리스인의 침략,샤카족 지배와 파르티아족시대,쿠산왕조시대가 번갈아 거쳐갔다. 그런데 불교미술은 헬레니즘 양식을 짙게 받아들였다.불교미술이 출현은 했지만 불상이 곧 바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부처가 없는 불교미술로 출발한 것이다.이를테면 시르캅 도시유적 출토 릴리프 「헌화공양도」는 꽃을 받을 대상이 없는 가운데 연꽃다발을 든 사람들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다 부처가 대중들과 더불어 불전도에 등장했지만 부처의 차별화는 그 다음 단계에 이루어졌다.부처의 키를 대중들보다 크게한다든가,자리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릴리프들이 시르캅유적 땅속에서 나오고 있다.
  • 「대모」 홍성덕씨 자전에세이집 내

    ◎“「여성국극」은 한국판 뮤지컬이죠”/전통가락+춤사위·연기=무한한 가능성/60년대 들어 사양길… 정부·기업 지원 절실 『여성국극이 한때의 옛 이야기로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시대에 맞지않는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국극은 우리의 전통가락과 춤사위,연기가 어우러진 「한국판 뮤지컬」로 현대감각만 살리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장르인데 말이죠』 「여성국극의 대모」로 불리는 홍성덕씨(56·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가 자전에세이집 「내뜻은 청산이요」(한뜻)를 냈다. 조선후기 창악인들의 단체인 「협률사」단장이던 아버지와 판소리 명창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4세때 동편제의 달인 강도근 선생에게 수궁가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소리꾼 인생을 살게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팔랐던 예술가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지난 51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인 「동지사」가 창단되면서 여성국극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그러나 60년대초부터는 사양길에 접어들어 이제는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형편이에요.돌이켜보면 집과 패물을 팔아 공연하기 예사였고,기껏해야 가설무대가 전부였어요』 같은 전통예술인 판소리의 경우 62년 국립창극단이 생기고 64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정부의 배려로 활기를 찾고 있는데 비해 여성국극은 여전히 무관심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쇠퇴의 길을 걷게된 한 요인.『여성국극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국극인 스스로의 혁신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정부의 지원 또한 절실합니다.가까운 예로 1912년에 창단된 일본의 여성극단 다카라즈카(보총)는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속에서 세계유수의 극단으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우리 여성국극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극은 비교적 근대적인 성격의 연극양식이지만 여성국극은 고전 판소리를 모태로 한 일종의 전통극인 만큼 한층 시선을 끌만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한국 공연단체로는 처음으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여성국극 「내뜻은 청산이요」 초청공연을 가진데 이어 최근미주 9개도시 순회공연을 마친 홍성덕씨.그는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의 의무요 사명』이라고 말한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길림성 아랍저촌(송화강 5천리:4)

    ◎“조선족의 이상향” 도시화 농촌 건설/60년대 인근 11개 늪메워 거대한 농토조성/문혁시기에도 벽돌·기와·농기구공장 세워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면 송화강은 비극의 강이다.그 물굽이마다에 고구려와 발해,일제에 항거한 독입운동 등의 잔영이 어렸을지라도 모두 역사무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그러나 용기 있는 조선족이 그 강유역에다 또 다른 번영의 씨앗을 뿌렸다.거기가 길림성 연길현 납가진 아랍저촌이다.이 마을은 현성인 구전에서 75㎞,길림시에서는 35㎞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 현의 이름 납가진은 만주어로 울라가진인데,강역이라는 뜻이다.또 알라디촌으로 부르는 아납저촌에는 언덕 아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마을은 지명에 걸맞게 송화강지류 장로하 강변 언덕에 둘러싸여 있다.그런데 터를 넓게 잡았다.단층의 벽돌집과 고층아파트가 길 양편에 오순도순 자리잡은 아납저촌은 촌단위의 마을이라기보다는 자그마한 도시였다.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고 김용구씨 헌신적 노력 아랍저촌은 본래 대정촌에 사는 지주 정씨가 소유한 소택지였다.1931년 경상도 사람 고분동·정기호 등 일곱가구가 이주해와 자리잡은 데 이어 이듬해 열가구가 아랍저촌에 들어와 소작으로 농사를 지었다.지대 자체가 소택지라서 땅을 논으로 개간한 이들은 1936년 보둑을 쌓고 화수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본격적인 벼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5백78가구에 2천3백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광복 당시 83가구에 비하면 아납저촌은 크게 발전한 셈이다.문화혁명 후기인 1970년대초에 이미 국내외에 모범촌으로 소문난 이 마을은 지금도 길림성에서 첫손 꼽히는 도시화농촌이기도 했다.오늘의 아랍저촌이 있기까지는 별의별 우여곡절이 뒤따랐지만,그 뒤에는 조선족 지도자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1980년에 타계한 김용구 선생이다.1914년 경북 김천 태생인 그는 1954년 군에서 대퇴(제대)한 이후 금주향 당위원회 부서기로 있다가 잔뼈가 굵은 아랍저촌으로 돌아왔다.아납저촌 당서기를 자청하여 하급직으로 내려앉은 그는 마을 사람을 일깨워 억척으로 일했다.당시 아랍저촌은 낡은 초가집에 살면서 근근이 밥술이나 뜨는 그런 마을이었다. 1962년 송화강유역에 큰 가뭄이 들었다.그는 송화강물이 줄어든 틈을 타서 관개수로를 이용한 발전시설을 갖추었다.그리고 등잔불 대신 마을을 백열전등으로 밝혔다.그의 집념은 크고 작은 11개의 늪을 메워 논을 만드는 대역사로 이어졌다.꼬박 3년에 걸쳐 1백만㎡의 흙을 파다 늪을 메운 끝에 3백17a의 논을 새로 얻었다.그는 욕심을 더 부려 1971년 경지정리를 서둘러 착수했다.3년에 걸쳐 올망졸망한 논 6천a를 평평하게 다듬고 네모가 나게 잘랐다.기계영농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중국대륙 전역에서 파괴가 자행되던 시절,다시 말하면 문화혁명시기에도 아납저촌에서는 연생산량 5만장규모의 벽돌공장이 건설되었다.이와 더불어 연생산량 10만장규모의 기와공장·목기공장·농기구수리공장을 문화혁명시기에 세웠다.이들 공장의 수입은 아납저촌 전체수입의 40%를 점하고 있다.연변사범학교를 나와 마을에서 교편을 잡다 퇴직한 김규삼(61) 선생의 자랑은 액면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충북 충주시 이류면 태생인 그는 아납저촌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벽돌가옥 317채 지어 배당 『아랍저촌의 알곡수확은 1967년 이후 열두해 사이에 곱절이 늘어나 한 사람앞에 1천2백㎏씩 돌아간 셉입네다.나라에 바친 벼만해도 1천t이었디요.공동저축금은 10배나 늘어났으니 엄청 성장한 것 아닙네까.그래서리 1978년 길림성 당위원회에서는 「아랍저촌의 경험을 가일층 학습하고 보급하는데 대한 결정」을 내렸댔디요.길림성내 모든 농촌이 아납저촌을 본받으라는 내용이었습네다』 아랍저촌의 집체경제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촌의 당서기인 김용구 선생은 새 농촌주택 건설과 함께 유치원·병원·마을회관을 짓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농촌주택은 1968∼80년 고래등 같은 벽돌기와집으로 3백17채를 지었다.집은 물론 거저 배당하면서 열사유가족·군인가족·영예(상이)군인·노인가정에 우선순위를 주었다.당시 아랍저촌에는 3백62가구가 살았다.마을 사람이 김용구선 생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그는 막무가내였다.『나는 3백62번째 새 집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는 운명하는 날까지 초가집에서 살았다. 김용구 선생이 세상을 뜬 이후 아랍저촌은 개혁개방이라는 현실 앞에서 한동안은 휘청거렸다.토지를 개인한테 도급을 주고 공장도 전체의 80%를 개인에게 팔아넘겼다.그리고 촌 간부들도 개인 호주머니를 채우느라 열을 올렸다.이 때문에 집체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민족사회는 허물어졌다.능력있는 사람은 개인기업을 경영하거나 한국을 찾아가 돈을 벌었다.재간없고 돈없는 사람이 겨우 마을을 지켰다. ○개방진통 겪고 다시 활기 1986년 아납저촌은 다시 자각의 깃발을 들었다.「농업으로 마을의 기초를 다지고 기업을 적극 발전시키는 가운데 상업을 흥성하자」는 것이 그 깃발이었다.아납저촌정부는 개인한테 판 기업을 다시 사들였다.농공상총공사)를 세우고 산하에 농업·목축업·공업공사를 두었다.개혁개방이후 8년간을 몸부림친 끝에 1994년부터 다시 기를 폈다.그해에 4천8백만원의 총생산액을 기록한 것이다.이어 1995년에 총생산액 1억1천만원을돌파한 아납저촌은 올해 목표를 1억5천만원으로 잡아놓았다. 오늘날 아납저촌은 김석배(47)서기가 이끌고 있다.그는 김용구 선생의 아들이다.촌정부로부터 경찰로 발탁된 적이 있으나 부친의 만류로 마을을 지키다 당지부 서기가 되었다. 『지난 71년 촌에서는 저를 경찰후보로 발탁했댔습네다.그 시절 농사꾼이 월급쟁이가 된다는 것은 장원급제나 다름없었디요.그런데 부친께서 촌에 올라가 농사꾼 자식은 그저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고 반대를 했디 뭡네까.그때는 부친이 원망스러웠디만,지금 생각하면 마을에 남은 거이 다행스럽디요』 아랍저촌은 1994년에 도시화농촌건설 10개년계획을 세웠다.촌정부청사를 중심으로 서쪽에 5백가구가 입주한 아파트단지를 건설키로 하고 6층 아파트단지 하나는 이미 완공시켰다.그리고 일손이 모자라 62가구 3백여명의 외지 조선족을 받아들였다.마을 발전추세로 보아 아랍저촌의 적정인구를 1만명선으로 잡아놓았다.10개년계획기간에 교육지구 및 민속촌을 건설,민족성을 지킨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 ‘96대입 이중지원 24명에 합격 취소/교육부 전산검색

    9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입시일이 같은 대학에 복수지원하거나 전기대에 합격한뒤 후기대 등에 이중지원한 신입생 24명의 입학이 취소됐다. 교육부는 8일 대입 지원자 1백22만여명(연인원)을 전산 검색한 결과,44개대 81명 합격자가 복수 및 이중지원 금지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을 정밀 조사,고의 또는 본인 과실로 규정을 위반한 20개대 24명을 입학 취소시켰다고 발표했다.지난해 18개대 43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들 부당 합격자의 원서작성 등 진학지도를 소홀히 한 1백5개 고교 1백11명 교사 및 학교장 등에 대해 직무수행 중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려 주의·경고 등의 징계조치를 취하도록 시·도 교육청에 지시했다. 이들 중 국립대는 4명,사립대는 20명이며 유형별로는 입시일이 같은 대학 복수지원이 7건,전기대 합격후 후기대 지원 등 이중지원이 17건이다.
  • 전대협 마지막의장 서울대 졸업(조약돌)

    ◎태재준씨 8년만에… 나환자촌 봉사 일인도 ○…서울대 95학년도 후기 졸업식에서 「전대협」 마지막 의장 태재준씨와 음성 나환자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일본인 요리타 다케시씨가 각각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아 화제. 연세대 불법시위로 해체 위기에 직면한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 6기 의장이던 태씨(28·국제경제·92년도 총학생회장)는 팩시밀리로 북한과 서신을 교환하고 건국대 등 대학내에 인공기를 게양하게 한 혐의로 지난 92년 8월 중앙대에서 열린 제3차 범민족대회 행사도중 연행돼 복역한 뒤 출소,지난해 2학기에 복학해 8년만에 학사모를 썼다. 태씨는 이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후회는 없으나 때로는 아쉬움과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졸업소감을 피력.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은 일본인 요리타 다케시씨(35)는 일본 교토(경도)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마이니치(매일)신문 기자 출신.
  • “고문서토대 국학연구 본격화”

    ◎정신문화연구원,제4기 진흥연구사업 계획 발표/「장서각」 고자료 등 단순 수집정리서 탈피/번역·주석작업 중점… 실질적 뒷받침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원장 이영덕)이 고전적 조사연구와 고문서 수집을 토대로 영인본 발간 등 국학자료의 본격적인 출판을 골격으로 한 제4기(97년 5월31일까지) 국학진흥연구사업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국학진흥사업은 정문연이 지난 93년부터 교육부의 특별지원아래 장서각자료 연구를 비롯,전국에 흩어진 고문서와 근대사자료를 수집·발굴·정리하는 정문연의 가장 핵심적인 연찬사업.이가운데 「장서각 고자료 연구사업」은 구 왕실도서관이었던 장서각의 도서가 어떻게 수집 보관돼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함께 그 장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다.지난 해까지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이재 황윤석(이재·1729∼1791년)의 초서로 된 일기를 탈초,정리한 「이재난고」 두권을 발간했으며 장서각 소장 금석문 탁본자료 정리와 함께 장서각 도서의 해제를 준비해와 「장서각의 역사와 자료적 특성」,「구결자료집」등 국학연구에 귀중한 새 자료들을 발굴 정리해 출판했다.또 「고문서 조사연구사업」은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고문서를 수집 정리해 소장자 중심으로 「고문서집성」을 발간하는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완할 수 있는 생활자료의 의미를 갖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지금까지 20여만점을 수집해 이가운데 극히 일부 자료만 영인,출판해놓고 있다. 정문연이 제4기에 추진할 사업들은 이같은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실질적으로 한국학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자료제공측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우선 「고전적 연구조사」에서는 지난해 집필된 해제원고를 정리보완해 간행하는 한편 장서각 소장 금석문 탁본자료를 영인,인쇄해 상세한 해제를 붙여 두권으로 간행한다는 계획.이와 함께 장서각 자료중 희귀본,유일본으로 지목된 「희현록」「석운일기」「예기대문언속」「낙점)」「증보 만병회춘」중 두권을 택해 영인하면서 구두와 해제를 붙여 출판하고 「이재난고」 3권을 간행,탈초한다. 「고문서 조사연구」사업으로는 충청남북도와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서원 향교 사찰및 사가에 소장된 고문서 전적류를 최대한 조사·수집·정리하며 이미 조사된 전남과 경상남북도에 대한 추가조사를 벌여 3만여점을 조사·수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또 수집자료를 평판작업과 분류·목록·문서번호 부착과정을 거쳐 마이크로필름화해 출판작업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정문연 정구복(자료조사실장)교수는 이와 관련,『지금까지의 국학진흥 사업이 주로 고문서 수집차원인 1차사업에 치중해왔으나 이같은 작업이 한국학 연구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선 본격적인 해제와 번역,주석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정부와 대학,지방 향토사학자,사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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