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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구 국가대표출신 박사1호 탄생

    방열 경원대교수(57)가 농구 국가대표선수 출신 ‘1호 박사’가 됐다. 방교수는 새달 18일 한국체대 후기 졸업식에서 ‘농구지도자의 지도관과 코칭행동에 대한 체계적 관찰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농구인 출신 박사로는 이종희 대학농구연맹회장(경희대 교수)에 이어 두번째이며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방교수는 논문에서 농구지도자의 지도관과코칭방법이 선수들에 미치는 영향 및 반응을 분석,효율적인 지도 방법을 찾는 단초를 제시했다.현역감독 시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도방법이선수들에게 반드시 통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연구를 시작한 동기였다고 밝힌방교수는 “바람직한 지도자는 기능적(코칭)인 것 뿐만 아니라 교육적(티칭)인 자질도 지녀야 한다”며 “농구 선진국의 최신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여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방교수는 경복고와 연세대를 졸업했으며 지난 62년부터 7년동안 국가대표로활약한 뒤 남녀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현재 경원대 사회체육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오병남기자 obnbkt@
  • 내가 가진 고미술품 의심나면 중앙박물관 찾아라

    뛰어난 예술품엔 가짜가 따르기 마련이다. 검찰이 국보급 고서화를 대량 위조한 일당을 적발함으로써 고미술품 위·모작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미술품 모작은 이번 사건에서 재연된 천경자화백의 미인도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진위(眞僞)시비에 휘말릴 정도로 뿌리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짜 그림이 대규모로 유통되는 까닭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에 비하면 사실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문화재는 별로 없는 편이다.전쟁과 마구잡이 개발의 결과다.여기에 미술품을 투기 대상으로 삼는 사회심리도 가짜 미술품을 양산하는 데 공범 구실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가짜 그림이 단원 김홍도,청전 이상범 등 조선 후기 및 근현대의 인기화가들에서 주로 나오는 것도 수요·공급의 엄청난 불균형에 따른 높은 환금성 때문이다.반면 도자기류는 지하 또는 해저에서 종종 발굴돼 상대적으로 위작·모작이 적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은 어떻게 진위를 확인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국립중앙박물관 등 박물관이나 미술관,관련 분야의 학자나 연구소 등을 찾아 문의할 것을 권하고 있다.중앙박물관은 소장가의 요청이 있으면 시가감정은 해주지는 않지만 문화재적 가치나 진위여부 등에 대해서는 답해주고 있다.동양화나 현대 회화는 시공사의 한국미술연구소 등을 찾으면 된다.또 문화재청을 통해 관련 분야의 문화재위원을 소개받아 자문을 구할수있다. 제도적으로는 학자 등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공식 감정기구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현재 고미술협회를 비롯한 민간차원의 감정기구가 있지만,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비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민간기구라도 학계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참여시켜 공정성을 회복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경매제도를 활성화해 미술품 거래를 공개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관장은 “겸재 정선의 그림에는 그 시대의 지질,안료등을 썼을 것”이라며 “정부 산하의 문화재연구소 등에서 고미술품의 재질을 조사,자료화하면 위조나 모조품은 발을 들여 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아랑후에스 협주곡’ 작곡 로드리고 사망

    ‘아랑후에스 협주곡’으로 유명한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가 6일오후 마드리드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향년 97세. 1901년 스페인 발렌시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3세때 디프테리아에 감염,실명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음악적 영감을 개안시켜 20세기 남유럽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대성케 했다. 8세때 발렌시아 음악원에 입학,바이올린,피아노 등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한그는 16세때 작곡에 입문했다.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39년 작곡됐고 스페인내전 종전후인 40년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돼 그에게 전세계적 명성을 안겨준곡.로드리고의 작품은 초기 라벨,스트라빈스키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영향을 보여주다가 후기로 갈수록 스페인적인 낙천성과 독창성을 획득했다는 평을받고 있다.그는 이밖에 ‘안달루시아 협주곡’‘세비야 환상곡’ 등 협주곡과 ‘스페인 소품’ 등 기타곡,다수의 합창곡을 남겼다. 아랑후에스시는 6일 로드리고의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 조문객을 받는다고밝혔다.그는 2년전 사별한 부인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유족으로는 딸 세실리아와 바이올리니스트인 사위 아구스토 아라가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대한시론] 신지식인과 국가발전

    역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사회가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또는 국가가 지향해야할 목표를 상실했을 때 우리는 역사로부터 산 교훈과 경험을 배울 수 있다.환란으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국민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다.그러나 IMF 이후에 세워야할 나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IMF 이전 모습으로의 환원을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세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지금 세계는 지식과 정보가 중심이 된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d society)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따라서 IMF후에 세워야 할 나라의 중심개념은 지식기반국가가 되어야 한다. 지식기반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선 정부도 지식정부로 거듭나야 하고,산업구조도 지식기반 산업위주로 재편되어야 하며,기업경영도 지식경영을 도입해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현장에서 지금까지의 의식과 관행에서 벗어나 일하는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농사꾼이건,가정주부이건,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개인의 생산성이 올라가야 국가의 경쟁력도올라갈 수 있다. 필자가 만난 신지식인의 예를 들어보자.몇년전 국내 대기업 연수원에서 강의요청을 받고 가는 길이었다.흔히 대기업에서는 초청강사들이 연수원에 오고가는 길에 렌터카를 보내 이용하게 한다.그런데 그 기사는 다른 기사와 다른 데가 있었다.보통 기사들은 연수원에 도착하면 강사가 강의를 마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내게 강의장에 들어가도 괜찮은지를 묻고 강의실 맨 끝에 앉아 열심히 강의내용을 듣고 메모했다.돌아가는 길엔 차안에서 오늘 강의내용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확인했다.지금 그 기사는 연수원의 일류강사가 되었다.학력은 초등학교 4년 중퇴에 불과하지만 일류 대학교수와 나란히대기업 연수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러한 행동특성을 갖는 신지식인을 무수히 만나볼 수있다.신지식인들의 활동이 왕성할때 우리 역사는 항상 전성기에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있다.어떤 의미에서 한국역사의 전환기를 이끌었던 주체들은 대부분이 신지식인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들은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새로운 지식을 수용,정체에 빠진 사회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삼국시대에 불교수용에 앞장섰던 지식인 승려,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하여 신라재건의 꿈을 꾸다 좌절을 겪고 고려건국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던 육두품 지식인들,고려후기에 성리학을 도입하여 부패한 고려왕조를 비판하며 조선건국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대부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상 집합적인 수준에서 ‘신지식인의 인간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집단을 들자면 역시 조선후기의 실학파 지성인들일 것이다.실학은 17세기이후 조선사회의 사회적 모순과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실생활에 기반을 둔 새로운 학풍을 가리킨다.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으로 실용지학(實用之學)을 연구하여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영·정조시대는 문화부흥,국가재건의 분위기가 팽배했고 당대의 발명품들이 모두 이때 나왔다.영조와 정조는 낙후된 조선을지식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군주로 평가된다.특히 정조는 규장각을만들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식을 관리하고 정약용,박제가 같은 실학파 지식인들을 직접 이끌었다.그 결과 많은 신지식인들이 출현하게 됐고 이들이 조선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론 국가위기 극복의 명제를 안고 있다.이런 세기적 전환기에는 신지식인과 같은 철학과 행동양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훗날 역사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면 신지식인운동으로 국난을 극복했던 시기로 역사에 기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金 孝 錫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 과기부 석·박사 인턴연구원 600명 모집

    과학기술부는 올해 후기 석·박사 학위취득자를 대상으로 인턴연구원 600명을 추가 모집키로 했다고 2일 밝혔다. 과기부가 실시하고 있는 인턴연구원 지원사업은 국내 경제사정으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급 과학두뇌를 기업,출연연구기관 및 대학 등에서 수행하는 연구사업의 보조인력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석사의 경우월 80만원,박사의 경우 월 100만원의 연구수당이 지급된다. 이번에 추가로모집되는 인턴연구원은 이달 말까지 신청서를 접수,8월말까지 심의과정을 거쳐 9월부터 현장에 파견된다. 한편 인턴연구원을 활용하고자 하는 기관도 이달 12일부터 8월14일까지 한국과학재단(042-869-6411∼6)이나 과학기술부(500-3215)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함혜리기자 lotus@
  • ‘고전소설사의 구도와 시각’/국문학자 정출헌교수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들은 규방 여성들 사이에 널리 읽히던 국문 장편가문소설을 즐겨 읽었다.그러나 국문소설의 지리번쇄(支離煩쇄)한 점이 늘 불만이었다.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의도대로 소설을 손수 창작,규방 여성들로하여금 읽게 했다.김만중의 ‘사씨남정기’ 같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다” 소장 국문학자인 정출헌교수(41·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가 최근 펴낸 ‘고전소설사의 구도와 시각’(소명출판)은 17세기 조선 사대부 남성과 규방소설의 관련 양상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사씨남정기’는 서포 김만중이 17세기 후반 국문으로 지은 뒤,그의 종손(從孫) 김춘택이 1709년 제주도 유배 때 한역한 고대소설.김춘택이 한문으로옮긴 ‘언번남정기(諺번南征記)’는 다시 국문으로 번역돼 여러 국문본이 전해진다.필사본과 방각본(경판본),구활자본 등을 포함,이본(異本)이 74종에이른다.문제는 판본에 상관없이 ‘사씨남정기’ 전편에 여성을 가문 안에 긴박하려 했던 남성중심적 사회관이 짙게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사씨남정기’에서 볼 수 있듯이,사대부 남성들이 규방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여성적인정감과 여성적 글쓰기 방식은 남성적인 정치의식과 남성적 글쓰기 방식으로바뀌었다.정교수는 이것을 남성주의적 글쓰기의 폭력,나아가 문화적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이 책의 문제제기는 다분히 논쟁적인 성격을 띤다.또한 판소리계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형상을 폭넓게 살피고 있어 주목된다,판소리계 소설은 야담계단편소설·우화소설과 함께 조선후기 고전소설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힌다. 특히 판소리계 소설은 봉건사회 해체기에 우리 고전소설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판소리 열두 마당 중 적잖은 작품에서 여성은 주인공 또는 그에 버금가는 몫을 담당한다.‘배비장타령’의 애랑,‘강릉매화타령’의 매화,‘춘향전’의 춘향을 비롯,‘변강쇠가’의 옹녀,‘장끼전’의까투리,‘게우사(무숙이타령)’의 의양과 무숙이 본처,‘옹고집전’의 옹고집 처,‘흥부전’의 흥부 처 등이 그런 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층신분의 여성,곧 중세 봉건사회에서의 신분적 질곡과성적차별이라는 중층적(重層的)인 모순의 담지자라는 점.이들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됐는가를 살피는 것은 판소리가 조선 후기 서민들의 동향에초점을 맞춰 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 만큼이나 흥미로운 논제다. 정교수는 판소리계 소설에서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형상 대신 건강하고강인한 여성 형상이 부각된 것은 중세사회가 기울고 근대사회가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설화·지괴(志怪)·전기 등 나말여초 서사문학의 보고인 최치원의‘수이전’에서부터 17세기 후반 고전소설의 최고 걸작인 ‘구운몽’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한문소설들을 다룬다.고전소설사의 주류를 이루는 한문소설이 국문소설과 어떻게 교섭·길항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풍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17세기 이후 다채롭게 분화·발전된 고전소설의 주요 작품들을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읽어내려는 당대적 시각과 그것을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려는 현재적 시각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평가할 만한 대목.그런 점에서이 책의 고전소설 독법(讀法)은 고전을 살아있는 고전으로 되살리려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만하다. 김종면기자 jmkim@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3)-남정현의 분지②

    1964년 12월에 넘겨진 소설 ‘분지’는 이듬해인 1965년 3월호 ‘현대문학’지(2월 중순께 발간)에 게재되었는데,당시의 한국문단 풍토에서는 충격적인 풍자였지만 의외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그런데 그로부터 근 석달이 지난 5월 어느날 작가 남정현은 충일기업사란 곳으로 연행돼 상상할 수 없었던 심문을 당하기 시작했다.으리으리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식 건물로연행된 그에게 던진 점잖은 첫 질문은 “이 소설은 당신이 쓴 게 아니라 북괴의 어떤 인사가 써서 당신에게 건내 주어 발표시킨 것이 틀림없으니 그 경위를 밝히라”는 것이었다.언제,어디서 누구로부터 전달받았느냐는 것만 털어 놓으면 당장 풀어주겠다는 신사적인 위협은 점점 닥달로 바뀌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고성과 육체적인 학대를 겸한,말하자면 음악적인 효과와 체육적인기능을 겸한 고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학대를 받았을까.그 고통의 상처는 너무도 혹독하여 심한 고문을 당한 사람들 누구나처럼 그 역시 지금도 쉬 공개를 꺼린다.기발하고 기상천외한심리적 육체적인 학대 속에서 남정현은 완전히 정지된 시간에 박제된 채 매달린 한 객체로만 존재했다.그는 가끔씩은 집에 가기도 했으나 오라면 가야했고,대개는 아예 그 기업사에서 자며 봄과 초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심문 기간이 길어지면서 ‘분지’가 북한의 ‘통일전선’(1965.5.8)과,‘조국통일’(7.8)에 전재된 것이 발단이었다는 낌새를 챘지만,1965년이란 해는5·16군부 세력에게는 워낙 넘기기 어려운 때이기도 했다.지식인과 문학인들이 앞장 서서 전개했던 한일협정과 국군 파월을 둘러싼 비판의 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었다. 특히 1965년 7월 9일자로 발표된 재경 문학인 82명 연서로 된 ‘한일 조약의 즉각 파기와 국회 비준 거부를 요구하는 성명서’는 분단 이후 문인들이처음으로 집단적인 사회비판 운동에 나선 사건이었다.“일본측 일방에만 유리하도록 되어 있으며 민족적 자존과 현실적 이해,미래의 전망에 한결같이모욕과 재침 그리고 실질적인 예속을 초래하도록 되어있다”고 지적한 이 성명서는 전체 문학인이 더 이상 관망적인 자세를 버리고 “주권과 권익의 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대열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투지를 밝히면서,“한일협정 반대 데모로 구속된 애국 학생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서명명단에는 박종화 김광섭 모윤숙 곽종원 안수길 조지훈황순원 등 원로급과,조병화 김남조 김수영 홍윤숙 신동엽 유경환 성춘복 등시인,박경리 선우휘 최일남 한말숙 등 작가에다 전숙희 등 수필가들이 대거참여한 범문단적 면모를 띠었다는 점이다.문단의 유명인으로 이 명단에서 빠진 인사로는 서정주 조연현을 비롯한 소수였다(총 명단은 임헌영 ‘민족의상황과 문학사상’ 393쪽). 바로 이 성명서가 발표된 7월 9일에 작가 남정현은 중앙정보부에서 정식 구속돼 서대문 구치소로 이송,그 닷새 뒤인 14일 검찰로 송치(김태현 서울지검 공안부장)되었다.김부장 검사의 제자였던 시인 박재삼이 ‘대한일보’에 근무하면서 틈을 내어 검찰청으로 찾아가 “선생님,남정현은 착한 사람입니다. 당장 풀어주셔야 합니다”고 강변했던 일화는 60년대 문단의 한 삽화이다.그는 계속 ‘분지’ 공판에다녔는데 구형이 있던 날 법정에서 오랫동안 서 있다가 나가던 길에 쓰러져 그 뒤 일생을 고생하다가 작고했다.이 무렵에 또다른 어떤 일이 있었을까.‘현대문학’ 8월호(7월 중순 발매)가 광복 20주년 기념으로 ‘광복 후의 문예지 문학단체’ 특집을 냈는데,이 경하할 해방 기념 특집호의 ‘편집 후기’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본지 지난 3월호에 발표된 남정현씨의 소설 ‘분지’는 본지의 부주의로인하여 게재된 것으로서 이로 인하여 사회의 물의를 일으킨데 대하여 정중히사과하는 바이다” 이후 ‘남정현’이란 이름이 ‘현대문학’에 다시 등장하는데는 무려 33년이 걸렸다.‘현대문학’은 1998년 10월호에서 ‘현대문학의 문제작 재조명’이란 기획을 마련하여 ‘분지’를 재게재했는데,‘편집 후기’에다 이렇게쓰고 있다. “…최초로 문학작품을 반공법으로 문제 삼았던 남정현 선생의 ‘분지’를싣는다.외세로 인한 당대의 전도된 가치관과 민족의 정체성 부재의 문제를한 가정의 비극을 퉁하여 통렬한 풍자로 비판한 작품이다.강진호씨의냉철한 작품론에서 언급되었듯이 작가의 시대의식에 대한 인식의 깊이로써 전후문학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던 이 작품은 33년이 지난 오늘날,극도로 혼란해진 사회적 현실을 숙고하게 만든다”[任軒永 문학평론가]
  • 인천도시가스회장…조선후기 천문도’천상열차분야지도’기증

    이종훈(李鍾勳)인천도시가스㈜ 회장이 조선 후기에 제작된 별자리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크기가 112.5×80㎝인 이 별자리 그림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조선왕조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1395년(태조 4년)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오차를 교정한 뒤 돌에 새겨 완성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刻石·덕수궁 소장)을 종이에 베껴 색칠한 것으로 한국 고대 천문기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태조때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 소주에 남아 있는 소주천문도(蘇州天文圖·1247년 완성)에 이어 현존하는 천문도로는 세계 두번째이지만 정확성 등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 것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돌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안에 표시된 별자리는 290좌(座),1,467개에 달한다. 임태순기자 stslim@
  • 국립박물관 소장 ‘朝鮮全圖’

    국립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전도(朝鮮全圖)가 김정호(金正浩)의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년)보다 100여년 앞선,가장 오래된 근대적 지도로 판명됐다. 국립 중앙박물관은 31일 조선전도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인 결과 조선후기실학자이자 지리학의 대가인 정상기(鄭尙驥·1678∼1752년)가 제작했다는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의 실체(1757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단천에 색칠(絹本彩色)을 한 이 지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작된 가로 139㎝ 세로 271㎝의 대축척 전도(大縮尺全圖)로,100리를 9.4㎝로 환산하는 등 (백리척·약 50만분의 1) 축척법을 사용했으며,종래의 지도가 압록강 및 두만강 유역을 수평으로 표시한 것과는 달리 북부지방의 실제 모습과 비슷한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도는 1740년(영조 16년) 정상기가 8도를 따로 그린 8도분도첩(八道分圖帖)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정상기 문중에서 보존해오다 1757년(영조 33년) 영조가 열람한 뒤 중요하게 여겨 홍문관(弘文館)과 비국(備邊司)에 전사(轉寫)해 비치토록 했었다. 임태순기자 stslim@[-]
  • 故’윤이상 실내악 페스티벌’ 금호현악 4중주단등 출연

    오페라 ‘심청’에 이어 윤이상의 음악을 조명하는 연주회가 열린다. 한겨레문화재단이 오는 31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개최하는 ‘윤이상 실내악 페스티벌’은 윤이상의 실내악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기회이다. 이번 행사는 윤이상의 음악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됐다.한국예술종합학교 정치용 교수가 지휘를 맡고 콘트라베이스의 안동혁,클라리넷의 이창희,바순의 곽정선,호른의 김만식,그리고 금호현악 4중주단과 서울현악 4중주단,실내악단 콰르텟 21 등 국내 대표적 솔리스트와 단체들이 출연한다. 윤이상의 후기 작품 가운데 하나로 고음의 바이올린과 가장 낮은 음의 콘트라베이스가 대조를 이룬 ‘투게더’와 ‘현악 4중주’ 5·6번,현악 5중주를위한 ‘융단’’ ‘팔중주’등을 들려준다.(02)706-6008. 강선임기자
  • [大學고시반을 가다](8)-부산·전남·경북대

    지난해 제40회 사법시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방대의 약진이었다.경북대 13명,부산대와 전남대가 각각 9명의 합격자를 냈고 충남대의 경우 전해에단 한명에 불과했던 합격자가 4명으로 늘었다. 이런 숫자는 중앙대(14명),외국어대(13명)등에 비하면 낮지만 지방대학의여러가지 불리한 여건을 감안한다면 ‘좋은 성적’인 셈이다.지방대학과 수험생들은 서울지역에 비해 열악한 수험정보와 학원의 부족을 딛고 일어서기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북대 사법시험과 행정·기술고시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경북대는 서울지역의 유명 교수를 초빙해 특강을 갖거나 모의고사를 실시한다.사법시험 준비반인 청운재(150명),행정고시 준비반 백학재(80명),공인회계사 준비반 함현재(40명) 등 고시반에만 270명이 있다.오전·오후 9시면 어김없이 출석점검을한다. 박진태 법과대학장은 “고시반을 운영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본질에 어긋난다”며 “국립대학의 특성상 고시반에 특별한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기껏해야 수험관련 서적과 컴퓨터를 설치하는 정도라는얘기다.대구의 영남대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많은 합격자를 냈으나 요즘에는 줄어들었다.후기에서 전기로 바뀐 탓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남대 서울 고시촌의 유명 학원과 계약을 체결해 학원 강의내용을 대형비디오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시반인 청운학사에는 사법시험 준비생 38명,행정고시 준비 32명 등이 열기를 내뿜는다. 전국 종합모의고사에 응시하지 않으면 고시반에서 들어갈 수 없다.하지만상위 10위권에 들기만 하면 5만∼10만원의 특별장학금이 제공된다.또 1차 합격자에게는 서울지역의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수강료의 40%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부산대 부산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법학관 4층의 학봉정.100여명이공부할 수 있는 부산대의 고시원인 학봉정 입구의 ‘절대정숙’이라는 팻말이 없더라도 책장 넘기는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부산대의 정보수집은활성화된 편이다.‘학봉’이라는 고시 오리엔테이션 책자도 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www.law.pusan.ac.kr)도 개설해 최신 수험정보와 모의고사 특강을전해준다.수험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화와 토론도 하고 있다.김상영(金相永) 법대교수는 “고시반 지도교수를 맡고 있지만 대학교육이 고시열풍으로 정상화되지 못한 측면은 걱정”이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청소년 노래방

    전세계적으로 가라오케 붐은 거의 폭발적이다. 우리의 노래방은 일본에서들여온 가라오케가 70년대 이후 우리 식으로 변질, 정착되기 시작했다. 가라오케가 술을 마시면서 공개된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대신 노래방은 폐쇄된 공간에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폐쇄된 노래방 공간은 청소년 비행과 성범죄의 온상으로 곧잘 지탄받기도 했다. 노래방협회에 등록된 노래방은 서울에만 약 6,500여곳. 그러나 그 이상의 숫자로 추정되고 있다. 가정의 달,청소년의 달인 5월을 맞아 규제개혁위는 내달 9일부터 만 18세이상의 청소년들도 보호자 동행 없이 노래방을 출입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대신 청소년이 출입하는 노래방에 대해서는 투명유리를 갖춘 별도의 청소년실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규제나 억압보다 자유가 좋다는 것은 말할것도 없다. 더구나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싱싱한 구성원이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그들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마땅하다. 또한 그들만이 지닌 반짝이는 감수성과 창조성은 후기 산업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입시, 부모실직 등으로 움츠러들었던젊은 감성이 활짝 피어나는 계기가 된다면 노래방 출입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여가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방 출입을 허가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는 좋은일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배나 술을 마실수 있는 특정장소로제공되는 것이나 아닐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경찰단속은 인원의 한계가 있고 업주와의 검은 거래의 빌미가 될수도 있다. 단지 기왕 청소년식 노래방이라면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페쇄된 공간보다는드넓게 열린 노래광장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투명유리는 눈 가리고 아웅식이다. 현행 4㎡의 1실당 면적등 노래방에 대한 각종 시설 기준도 폐지된다면 노래방 면적은 더 작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좁고 구석진 곳에서 어떤일이 일어날지는 예측불허다. 적당한 제재는 때로 상대방을 보호하고 든든하게 한다. 청소년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망치지 말고 이제는 툭 트인 열린 광장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 시대에 맞는 청소년 노래문화를 새로 만들줄 알아야 한다. 노래방이 다시는 청소년 비행의 아지트로 연결되지 않도록 서로가 주의하고 경계하면서 청소년다운 기풍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베푸는 측과 자유를 누리는 쪽의 지혜와 판단이 서로 어우러져 건전한 여가문화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李世基논설위원 sgr@
  • 어사 박문수 브라운관서 만난다

    KBS에서 5월9일부터 방송되는 주간단막극 ‘어사출두’는 부패척결의 상징인 어사를 통해 사회문제를 조목조목 짚어가는 드라마이다.배경은 조선후기. 젊고 혈기에 찬 어사 박문수가 전국각지를 암행,부패세력을 뿌리뽑는다는 정통활극에 코믹을 배합한 현실 풍자극이다.일요일 밤 9시 방송. 위조 상평통보 사건,봉이 김선달 체포작전,가짜 어사 소동과 영창대군 피살사건,장길산의 눈물,왜관의 밀무역 사건,보신탕 뇌물사건,노비면천 브로커를 수배하라,창덕궁 부실공사의 비밀 등 옛날의 일이지만 오늘을 비춰볼 수 있는 소재들을 드라마화한다. “활기차게 문제를 해결하는 어사 박문수를 통해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KBS드라마국 최상식국장은 말한다.“처음으로 젊은 연출자들의 기획팀을 가동해서 만드는 드라마인만큼 재미있고 의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어사 박문수는 극중에서 무술과 지모가 뛰어나고 활쏘기와 축지법,변신술의 달인인 호쾌한 미남장부로 등장한다.그는 서민의 편에 서서 아픔을 함께 하는가 하면 신분을초월한 사랑에도 빠지는 인물이다.드라마에선 젊은 연기자 안재모가 맡는다. 어사 박문수를 맡은 안재모는 배역운이 좋은 편이다.안재모는 KBS ‘용의눈물’에서 세종대왕역을 맡았다.그는 최근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출연,적잖은 인기도 모으고 있는 단국대 연극영화과 2년생이다.박문수를 돕는 어사보인 수사관역은 ‘임꺽정’의 정흥채와 ‘카이스트’의 괴짜 박사인 안정훈이 맡는다.정흥채는 정직하고 우둔한 돌쇠형 장사로 서유기의 저팔계에 해당한다.안정훈은 임기응변에 능한 손오공에 해당하는 인물.두 사람은 티격태격하지만 좋은 팀웍을 이뤄 부정부패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 “내신 교과성적 80%반영 특목고는 학교별로 전형”

    서울시교육청은 25일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되 특수목적고는 학교별 전형을 실시토록 하는 내용의 2000학년도 고교신입생 전형계획을 발표했다. 내신성적은 교과성적 80%(2학년 40%,3학년 60%)와 전학년 출석·행동발달·특별활동성적 각 4%,봉사활동성적 8%의 비율로 반영된다. 교과별 학년석차는 2학년과 3학년의 학년말 성적을 12월8일을 기준으로,출석·행동발달·특별활동·봉사활동은 11월15일을 기준으로 석차연명부 형식으로 작성한다. 남녀 공학의 석차연명부는 남녀를 통합해 작성하며,연명부 작성이 불가능한 졸업생 및 검정고시 출신자는 학력수준이 중간정도인 1∼3개 중학교와 비교평가해 석차백분율을 부여한다. 원서접수기간은 ▲외국어고,예·체능고 11월1∼5일 ▲실업계고 12월8∼10일 ▲과학고 12월8∼13일 ▲후기 주간고 12월20∼22일 등이다.
  • ‘한길아트‘ 시리즈 1호 ‘한국미술의 자생성’ 발간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미술의 자생성과 정체성을 탐구한 ‘한국미술의 자생성’이 한길아트에서 나왔다.‘한길아트 뮤지엄’ 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이 책은 한국미의 정체성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독창적 미의식의 명작을 만들어낸 근원적 힘이었던 자생력과 한국미술의 원형을 찾아간다. 한길아트 뮤지엄 시리즈는 미술·건축·영화·연극 등 예술분야의 많은 책을 펴내고 있는 한길아트가 보다 깊이 있는 예술분야의 탐구를 위해 기획한것이다.김언호 한길아트 대표는 “기초이론에서 전문적 세계에 이르기까지국내외 예술을 탐구,학문적 체계를 세우고 예술과 문화를 한 차원 높이는데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한국근대미술사 연구’와 ‘한국의풍속화’가 시리즈의 다음 작품으로 올 상반기중에 나온다. ‘한국미술의 자생성’은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등 22명의 전문학자들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술·조각·건축·공예및 미의식과 정체성 등을 통사적으로 다룬 역작이다.이 책은 독창적 미의식의 세계를 창조했던 한국미술 특유의 자생력을 회복하고 서구 모더니즘의 언저리에서 표류했던 우리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탐구여행을 시작하며 ‘자생성’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내고 있다. 현대미술은 아직도 서구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좇아가고 있지만 서구미술 변방에 머물고 있다.현대미술의 이러한 슬픈 자화상을 지우고 새로운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되찾고 자생력을 회복해야 한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에는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을 만들어온 자생력이 있었다.자생력 있는 미술은 모든 외부적 요소를 흡수하여 자기 작품 속에 새롭게 창조해 낸다.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고구려 고분벽화다.“고구려 고분벽화는 외래문화를 수용·소화하여 재창조했다.고구려는 중국 등의 회화양식을 받아들여 고구려 고분벽화 특유의 세계로 재창조했다”고 전호태 울산대사학과 교수는 말한다. “조선 전기의 불화도 중국 송·원대 불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 특유의불화를 창조했으며 그것이 한국불화의 자생성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고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는 밝혔다.조선후기에는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인 화풍이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근대 서양문명의 도입과 식민사관,해방후 근대화과정에서 나타난 변형된 민족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은 혼란에 빠졌다. 지나치게 서구지향적이라는 반성으로부터 90년대 들어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태만 서울산업대 교수는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조선후기 실학이 추구했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에 바탕한 민족주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법고창신은 무조건적으로 과거를 숭배하거나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전통과 문화에 기초하되 바람직한 규범과 실현가능을 담보한 민족주의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도 한국미술계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민족의식이라고강조한다.“민족의식은 정체성 문제와 직결된다.정체성 수립없이는 한국미술의 미래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민족의식과 정체성은 국제적 보편성과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창순기자 cslee@
  • ‘도둑공방’ 발빼는 한나라

    한나라당이 ‘고관(高官)집 절도사건’을 둘러싼 정치 공세의 전략을 수정했다.공세의 초점을 수사기관의 축소 은폐 의혹과 진상규명쪽으로 틀었다. ‘정권의 도덕성’ 운운하며 등장했던 초기의 ‘거창한’ 수식어는 20일 당내 공식·비공식 성명이나 논평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사건 폭로 직후기세등등하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피의자 김강룡(金江龍)씨의 일부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난 마당에 ‘무리하게 확전(擴戰)을 꾀하다가 자충수를 낳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지도부가 김씨의 검증되지 않은 발언을 정치 호재(好材)로 삼는 바람에 비난 여론이 쏟아진 것도 부담이 됐다는 후문이다.이회창(李會昌)총재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이제 언론이 진실을 캐야 한다”며 한발 물러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택수(安澤秀)대변인도 특보단회의 직후 “문제의 본질은 유종근(柳鍾根)지사의 도난 현금 3,500만원과 안양서장의 도난 현금 5,000만원이 기소사실에서 누락된 것”이라며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집중 부각시켰다.안대변인은 특히 “여권의 주장과 검찰의 수사 방향이 ‘미화 12만달러가 있었는지’라는 대목에만 쏠리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려는 처사”라며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철저한 진상 규명에 무게를 뒀다. 그러면서 유지사의 ‘이총재 퇴진론’과 관련,“위기의식에 따른 강박관념에서 이총재를 물고 늘어진 것은 유지사의 인격과 정신상태가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부었다.지도부도 이총재 등을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유지사를 이날 무고혐의로 서울지검에 맞고발했다.
  • [金三雄 칼럼] 민주와 개혁은 양립되는가

    우리는 실패한 개혁의 역사를 안고 있다.대표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묘청과신돈,조선 건국기의 정도전,중기의 조광조·율곡·정조,후기의 전봉준·대원군·고종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한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개혁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이들 중에는 국왕을 비롯한 권력자도 있고 학자와 개혁사상가도 포함된다. 개혁의 추진에 있어서 가장 무난한 방법은 권력자가 스스로 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이 경우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두번째는 개혁사상가들의 뜻을 받아 권력자가 추진하는 옆으로부터의 개혁이다.상당한 불안과 정쟁의 요인이 따르는 방법이다.마지막은 개혁운동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혁명적 방법이다.자칫하면 내란 또는 정변으로 이어지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①은 정조와 대원군,고종의 개혁정치를 들 수 있고 ②는 신돈,정도전,조광조,율곡 ③은 묘청과 전봉준의 경우를 든다. 묘청은 서경천도·칭제건원 등 획기적인 자주국가 건설을 주창하다가,신돈은 무신란과 원(元) 간섭기를거치면서 득세한 권문세족에 맞서 개혁작업을시도하다가,정도전은 신권론(臣權論)으로 집약되는 국정쇄신을,조광조는 훈구세력의 특권과 비리를 혁파하고 합리적이고 기능 위주의 관료체제 확립과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율곡은 10만 양병설 등 국방강화와 왕도정치를,‘탕평 군주’ 정조는 정치개혁을 총론으로 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을 각론으로 하는 국정개혁을,전봉준은 척왜척양과 12개 폐정개혁,대원군은 서원철폐와 부패척결 등 갑오경장,고종은 황제권과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을 각각 추진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하거나 좌절되었다. 토인비는 문명이 발생-성장-쇠퇴-해체의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했다.왕조나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쇠퇴기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개혁이나 경장을 서둘러야 해체의 비극을 겪지 않게 된다. 고려가 신돈의 개혁정치를,조선조가 조광조와 율곡의,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봉준의 개혁요구만이라도 수용했다면 ‘해체’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0여년의 군사통치유산과 김영삼 정부가 남긴 국가부도위기 그리고 남북대결과 지역갈등구조 등 그야말로 쇠퇴 또는 해체기의 국정을 맡아 ‘제2의 건국’의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사 대부분의 개혁작업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도전에 의해 좌절되었듯이DJ개혁도 이들에 의해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기득세력은 친일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거나 정경,정언유착을 통해 수혜를 받은 계층이다.이들은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더 연연한다.때문에 개혁에 도전적이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보수 기득세력은 또 그렇다 치자.입만 열면 개혁과 통일,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언론인·지식인,노동계는 어떤가.국난극복과 개혁의 당위보다는 지역,파벌,계층,집단이기주의를 우선한다.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은 도덕성과 정당성에서 비롯된다.독재·부패정권에 협력하거나 기생해온 지식인·언론인들의 오늘의 비판자세는 어떠한가.최근 칼럼 미게재에 항의하면서 신문사를 떠난 한 언론인은 “포악한 정권에겐 비굴하고 온건한 정권 아래선 교활하다”고 토로하면서 “과거 정권 아래선 능동적으로 나쁜 짓 하던 언론이 이제는 매사를 트집잡고 비판해.집권세력을 보는잣대는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해.하고 있는 것의 ‘동기’,집권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지”라고 말했다.이런 언론인이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설 땅이 없는 것이 우리 언론풍토이고 지성계이며 개혁의 딜레마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4·19후 장면 정권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이를 말해준다.DJ정부의 개혁작업이 주춤거리는 것도 반개혁 세력의 도전과 자율에 대한 악용에서 비롯된다. ‘자율’을 존중하되 악용·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개혁이 요구된다.남한 180만 실업자,북한 300만 아사자를 둔 민족적 재앙과 문명사적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의 네트워크가 시급하다.우리에겐 실패한개혁의 역사를 되풀이할 여지가 없다. 김삼웅 주필
  • 제6회 서울고서전

    한국고서협회(회장 沈忠植·관훈고서방 대표) 주최 제6회 서울고서전이 15일부터 20일까지 6일간 안국동 공평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회원들의 소장자료를 전시·판매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한적(漢籍),양장본도서,간찰(簡札),고(古)신문 등을 비롯해 선현들의 친필본·유묵(遺墨) 등총2만여 점이 출품된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술고당(述古堂·대표 손창규)이 출품한 자료 가운데 포함된 경남 의령 경주(慶州)이씨 집안의 문건 13점.이 문건은 이병철(李秉喆)전 삼성그룹 회장과 그 집안 선조 관련문서로이 가운데는 이 전회장의 조부 문산(文山) 이홍석(李洪錫)·11대조(祖) 이종욱(李宗郁)씨 관련자료 10여 점을 비롯해 이 전회장이 거래한 부동산매매증서 1매,삼성그룹의 전신 삼성물산공사(公司)의 ‘탁상일기’(1952년) 등도포함돼 있다. 특정분야 자료가 일괄매물로 나온 것도 눈길을 끈다.동양문고(대표 송부종)는 1800∼1900년대 중반 일본인들이 간행한 기독교 관련 양장본 136종을 매물로 내놓았으며,한국출판무역(대표 여승구)은 음악관련 서적 53종과 목판본·신소설본 등 각종 ‘춘향전’책자 59종을 일괄판매로 내놓았다.또 평소 가문(家門)자료를 집중 수집해온 정건택 화성고문서원 대표는 평산신씨 집안등 12가문의 문서 1천여 점을 처음으로 출품했다.또 문우서림(대표 김영복)은 조선조 후기 문장가 이건창(李建昌)의 친필본 등 40여 점을 출품했으며,정연(대표 오경환)은 김옥균(金玉均)·오세창(吳世昌)·량치차오(梁啓超) 등 유명인사의 친필 현판,소파 방정환(方定煥)선생이 창간한 어린이 잡지 ‘어린이’ 6권 등 40여 점을 출품하였다.이밖에도 이번 전시회에는 국내최초의신문 ‘한성주보(漢城周報)’와 일제하 대표적 항일신문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황성신문(皇城新聞)’ 등 고신문 과 ‘대한제국 관보(官報)’ 실물 수 십 점도 선보였다. 한편 당초 한 회원이 출품할 예정이었던 ‘독립의연금 영수증’ 책자 등 독립운동 자료 30여 점,도산 안창호선생 관련자료 7점은 행사 전에 판매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전시되지 않아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국의 회원 가운데 25개 고서점이 참여했다.개관시간은오전10시∼오후6시,연락처:(02)733-9512,4 정운현기자 jwh59@
  • 다시보는 이응노의 한국화

    올해는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이 프랑스 파리에서 작고한지 10주년이 되는 해.그의 서거 10주기를 기리는 추모전이 4월 2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가나아트센터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린다. 현대 동양화의 사의적(寫意的) 추상을 개척한 화가,동양정신을 유럽에 전파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거장.고암은 지난 67년 동베를린 간첩사건 등에 연루돼 결국 85년 프랑스로 귀화하고 말았지만 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식과 함께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고암의 조형기반은 수묵화에서 찾을 수 있다.그의 ‘수묵추상’연작의 전형적인 양식은 굵고 강한 선과 담채와 점묘를 통해 중첩된 산의 이미지를 드러낸다.그러나 그는 수묵화 본연의 여백의 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화면 전체를가득 채우는 전면회화의 양상을 보여준다.파리로 건너간 뒤 고암은 콜라주작업에 손대는 등 실험성을 추구했으며,후기에 들어서는 동양의 서예정신을토대로 한 기호론적인 작품경향을 보였다.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변화해온 그의 조형세계를 살피는데 초점을 맞춘다.묵죽화,산수화,수묵추상,종이콜라주,문자추상,군상 연작 등 120여점이 선보인다.이밖에 고암의 부인인 박인경 여사와 아들 이융세씨,그리고 64년 고암이 파리에 설립한 동양미술학교 제자들의 작품 30여점도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
  • [화제의 책]’실사구시의 눈으로‘ 日학자의 조선실학 연구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은 서양 콤플렉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그리하여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는 철학·과학적인 우주무한론을 18세기에 전개하고 있었다”.일본의 동아시아 사상가인 오가와 하루히사 도쿄대 교수는홍대용을 근대 이전 아시아인의 서양 콤플렉스를 극복한 학자로 평가한다.그는 “홍대용은 서양에도 통용될 수 있는 과학·논리적 사고의 철학자이자 천문학자”라고 말한다. 오가와 교수는 ‘홍대용의 발견’을 계기로 조선 실학을 연구한다.그의 연구 결과를 담은 책 ‘실사구시의 눈으로 시대를 밝힌다’가 황용성 옮김으로 나왔다.(강 9,000원).일본인의 눈으로 조선 실학을 탐구한 이 책은 오가와교수가 1986년 일본 NHK방송 한글강좌 교재 권말에 연재했던 원고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 유명한 실학자인 박지원·홍대용·정약용·박제가 등의 인물론을 통해 실학을 설명한다.그리고 부록에서 실학을 전체적으로 조명한다.실학자 외에도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며 윤동주·김구·이순신 등의 인물론도함께 싣고 있다. 오가와 교수는 천관우씨가 자유성·과학성·현실성 이라는 세가지 개념으로 18세기 실학의 특징을 설명한 것은 훌륭한 평가라고 말한다.자유성은 중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과학성은 실증주의적 실사구시(實事求是) 태도로 고증학과 서양의 과학정신을 말하고 현실성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을 뜻한다. 그는 천관우씨가 처음에는 실학을 근대의식·근대정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근대 지향 성격의 학문으로 정리했다고말한다.그는 특히 “조선 실학을 매개로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이 낳은 실학이 유교의 범주를 뛰어넘고 시대를 초월하는 일반성을 갖게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일본이 조선의 실학발전을 방해했다는 ‘참회의 주장’도 편다.“일본은 1910년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조선에 근대 실학이 싹트는 것을 저지했다. 조선은 토지·자원·사람까지도 일본 근대 실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하여 송두리째 빼앗겼다”.그의 일본 비판은 한국 문화·사상에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갖고 일본의 과오를비판해온 양심적 지식인의 참회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황용성 나고야 경제대학 촉탁교수는 독자후기에서 “현재한국의 실학 연구자 가운데 오가와 교수의 시각을 일본을 포함한 국제학계에서 피력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의심스럽다”며 학국학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李昌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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