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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놀고먹는 국가의 큰 좀벌레

    18세기 후기 조선의 실학사상가 박제가(朴齊家)는 특이한 인물이다.당시 학자로는 드물게 상업과 유통을 중시하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을 체계화하면서 국정개혁의 요체로서 놀고 먹는 유생(儒生)을 도태시키고 기술자를우대하라고 제의했다.수레를 개발하고 농업을 진작시켜야 나라의 기력이 살아난다고 했다. 그는 국가를 경영할 만한 그릇인 데도 말직이나 유배 또는 칩거로 신산한삶을 살았지만 결코 ‘불우’한 사람은 아니었다.사회개혁론의 경세철학과함께 당파와 신분의 벽을 허물면서 조선조 선비의 꿋꿋한 자존으로 자신을지켰다. 한 평자는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참신한 시를 쓴 뛰어난 시인이고,조선 후기 소품문(小品文)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산문가였으며,고고한 문기(文氣)가 넘치는 그림을 그린 화가에다 속기(俗氣) 한 점 보이지 않은 절묘한글씨를 쓴 서예가”(안대희, ‘궁핍한 날의 벗’)이라고 썼다. 자신의 철학을 현실정치에 반영할 수가 없었던 서얼 출신의 하급 관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꿈을 접은 비운의 학자가 되었을망정 결코 ‘불우’하지는 않았다는 분석이다. 박제가의 자필 시고(詩稿)를 본 다산 정약용이 아름다운 시와 글씨에 넋을잃고 그것을 “빼앗고 싶은 도심(盜心)이 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국정개혁을 논하는 ‘북학의(北學議)’를 쓴 경세가이면서 ‘시의 맛’과 ‘그림을 읽는 법’ 등의 품격높은 평론은 그의 학문 세계의 범위와 수준을살피게 한다. 강고한 유교 질서가 400년 이상 유지되면서 조선사회가 서서히 몰락의 징후를 나타낼 때 실천적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박제가도 사회개혁론을 제기했다. 무엇보다 갈수록 숫자가 늘고 있는 비생산적인 사대부의 유생을 줄이도록 과거제 혁파의 개혁론을 펴고 이로 인해 두만강 기슭의 오지에서 5년의 유배를 살았다.유배가 풀린 뒤에도 ‘동류(同類)’ 사대부들의 경원과 배척은 풀리지 않았다. 명군이라는 정조시대인데도 이랬다. 기껏 후세에 경세의 철학으로 불리는‘북학의’를 지어 정조에게 올린 것이 국정 참여의 수단일 뿐이었다.때문에 자서인 ‘소전(小傳)’에서 “백세대 이전 인물에게나 흉금을 터놓고 만리 밖 먼 땅에나 가서 활개치고 다닌다”라고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제가는 이런 속에서도 조선의 현실을 다방면으로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했다.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 학자들을 만나고 와서 ‘비록 오랑케의 것’이라도 필요한 것은 편견 없이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틈만 나면 농업을 개혁하고 놀고 먹는 자를 줄이고 수레를 이용하는 방안을제시했지만 경직된 사회는 선각의 선견지명에 귀를 막았다.그래서 당시의 식자들을 향해 “오늘날 사람들은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속된 각막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떼어낼 도리가 없다”라면서 ”학문에는 학문의 각막이,문장에는 문장의 각막이 단단하게 붙여져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평범하고 일상에 안주하며 틀에 짜맞추어진 규격품 같은 사고를 하는사람을 혐오했다.“벽(癖)이 변벽된 병을 의미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자는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자신도 ‘벽을 지닌’사람이었다.‘다섯 이인의 전기(五異人傳)’에서 “벽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흠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진실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박제가는 당시 심화되는 붕당에 대해 “얼음과 숯, 향초(香草)와 악초(惡草)를 한데 섞어서 동등한 세력임을 내보인다”면서 정해진 관직을 ‘사냥’을 해서 빼앗고 이마저 부족하면 아무짓이나 저지르는 유생들의 관직 쟁탈현상을 우려했다. 놀고 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이니 이를 도태시키라고 요구한 선각자의 진언은 배척되고 조선조는 ‘큰 좀벌레’들로 인해 망했다. 병원 문을 닫고 폐업에 나선 의사들,현대가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데도해외로만 빙빙 돌고 있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묻는다.그리고 산적한국사를 외면한 선량들과 개각으로 유임되거나 새로 입각한 각료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들 중에 놀고 먹고자 하는 큰 좀벌레는 없는가. 김삼웅 주필.
  • 유상철 4게임 연속골 J리그 득점 공동2위

    [도쿄 연합] 일본 프로축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상철(29·요코하마 마리노스)이 4게임 연속 골을 터뜨리며 득점 공동 2위로 올라섰다. 김현석(베르디 가와사키),하석주(빗셀 고베)도 오랜만에 골맛을 봤다. 유상철은 29일 나고야에서 열린 일본프로축구(J-리그) 후기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경기에서 시작 2분만에 선취골을 터뜨렸다.유상철은 이로써 리그 14번째 골을 기록,득점 랭킹 공동 3위에서 공동 2위로 한계단 올라갔다.1위인 모리시마(세레소 오사카)와는 1골차.그러나 요코하마는 2-3으로 역전패했다.
  • [사설] 탈세 과소비 근절해야

    국세청이 탈세 혐의가 짙은 호화사치 생활자 242명에게 특별세무조사라는‘칼’을 빼어든 것은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반가운 일이다.국세청이 호화사치 생활자 특별조사 방침을 밝히고 부문별 조사대상 기준과 대상자 수를 명확히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동안 음성 탈루소득자 조사에 포함시켰던 호화사치 계층 추적에 별도로 2,000여명의 조사인력을 동원한 것도 이례적이다.그만큼 탈법적인 호화사치를 뿌리뽑겠다는 당국의 의지가어느 때보다 단호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경기회복에 따른 소비회복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건전한 소비가 있어야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그러나 작금의 일부 과소비풍조는 정도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이번에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 대상이 된 A씨의 경우를 보자.지난해 신고한 개인소득은 8,300만원인데도 7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하면서 사용한 신용카드 대금이 무려 1억2,000만원이나 된다니 말문이 막힐따름이다.B씨는 서울 종로에 10층짜리 건물과 강남에 다가구주택을 갖고 있는 재력가이지만 임대소득을 해외로 빼돌리고 세금으로 낸 돈은봉급생활자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나라가 온통 금융권 구조조정이다,기업개혁이다 하며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기반이 무너진 서민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모두 힘을 모으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이 호화사치 생활자들에게는 아직도 노숙자 수가 4,500명이나 되고,결식아동이 2만2,000명을 웃돌고 있는 우리 현실이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밖에 들리지 않은 것인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세금을 포탈하며 호화사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사회통합과 경제발전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렇다.이들은 “내돈 내가 쓰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할 자격조차 없다.탈세는 엄연한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이들의 일그러진 호화사치 행태는 사회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의 일할 의욕까지 앗아가는 사회악에 다름아니다. 국세청은 이번 특별세무조사를 일과성으로 끝내지 말고 조사범위를 확대해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이와 더불어 각종 과세자료를 자동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할 수 있는 ‘과세 인프라’를 하루빨리 구축해 탈세를 통한 호화사치 풍조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 기고

    *고려가 우리의 첫 통일민족국가. 우리나라의 통일민족국가는 언제 출현하였나? 이 물음은 그 동안 많은 논란을 빚어왔다.우리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병립하던 때를 삼국시대라고 부른다.남쪽의 후미진 땅에서 웅크리고 있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병탄하여 이른바 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런데 이 통일은 역사적으로 볼 적에 많은 결함을 지녔다.첫째는 통일과업을 준비하면서 당나라라는 외세의 힘을 빌렸다.둘째는 대동강 북쪽 고구려의 영역을 포기하였음을 들수 있다. 첫째 결함을 따져보자.신라는 일단 고구려를 병탄한 뒤에 강고한 투쟁을 벌여 당나라 세력을 축출하였다.비록 삼국이 혈연 언어 문화 풍습 등 민족적동질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고대국가에서는 근대적 민족개념으로 재단할 수없는 한계를 지닌다.따라서 고대국가가 보편적으로 벌인 정복활동의 본질에비추어 보면 적국을 병탄하였다는 단순한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다.동맹관계의 국가와 연합해 수행한 정복활동에 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결함을 따져보자.신라인들은 반도적사고에 머물러 대동강 이북,곧 광활한 만주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적어도 그들이 고구려를 계승하였다는 적극적 사고를 지녔더라면 그 영역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고 의식이 작용하였을텐데 이런 기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반도를 토막내서 안주하는 데 만족하였다.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천연적 경계조차 관심밖에 두었다. 고구려 영역에서는 대조영이 당에 맞서 발해를 건국하였는데 그 정통을 고구려에 두었다.이 시대를 남쪽의 민족사학자들은 남북국(南北國)시대,북쪽에서는 남북조(南北朝)시대라 부른다.또 이 시기의 신라를 후기 신라라 부른다.이는 한 민족이 두 국가를 세워 병립하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9세기 초반 신라는 혼란기를 겪으며 후고구려(뒤에 태봉)와 후백제 등으로분열하였다.분명히 궁예는 고구려의 계승,진훤(종래 견훤으로 표기해왔음)은 백제의 계승을 표방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한다고 선언하였다.그리하여 후고구려는 고구려의 영역,후백제는 백제의 영역에서 나라를 세우고 도읍지를 정하였다.왕건은 무혈쿠데타로 집권한뒤에 신라를 외세의 힘도 빌리지 않고 무력도 사용치 않은채 접수하였다.왕건은 고려의 정통성을 후기 신라에 두지 않고 고구려와 발해에 맞추었다.이 명분을 축적하려 발해의 유민을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왕건은 북방민족으로 중국 북쪽을 차지한 요(遼)와 남쪽 한족이 세운 국가들에,고려는 고구려와 발해를 계승한 나라라고 끊임없이 강조하였으며 요동일대에 진출하면서 고구려의 옛 영역을 회복한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명명하면서 압록강일대를 국경선으로 확보하였다.고려의 후예들은 이런 창업(創業)정신에 따라 두만강일대의 여진인을 몰아냈다. 필자의 역사관으로는,신라는 통일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두 국가를 병탄한불완전한 통합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단지 안정적 기반 위에서 민족문화를꽃피운 고대국가였음을 부정치 않는다.따라서 고려가 최초의 민족통일국가를 이룩하여 중국 또는 북방의 나라들과 충돌하거나 교류하면서 고난의 역사를 이끌어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민족의식은 고려의 지도자들이단군과 동명왕을 옛 국조(國祖)로 받든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따라서 한국사에서 9세기 전반기에 완전한 통일국가가 출현하였다고 본다.이 시점이 신라의 삼국통합보다 300년쯤 뒤졌다고 해서 퇴영의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
  • 고려대 조선後期史연구팀 6박7일 답사

    ‘사행’은 ‘사신행차’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조선 후기 청나라의 수도인연경(북경)으로 가는 사행을 특히 연행이라고 부른다.정조 때 학자 서호수가쓴 ‘연행기’에 따르면 1780년 연행은 5월27일 서울을 출발하여 7월15일에야 북경에 닿았다.10월22일에야 귀환했다니,한차례 연행에 반년 가까이나 걸렸던 셈이다. 고려대 ‘BK(두뇌한국)21 사업단’의 조선후기사연구팀(팀장 조광 한국사학과교수) 답사단이 6월27일부터 지난 3일까지 압록강에서 북경에 이르는 사행길을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밟았다.병자호란 직후 청이 심양에 도읍할 당시 사행로를 찾아보고,북경으로 천도한 이후의 연행길도 둘러보았다. 조선시대 중국으로의 사행은 서울을 출발하여 고양·파주·임진강·장단·송도·곡산·평양·정주를 거쳐 의주로 이어졌다.압록강을 건넌 다음엔 책문·봉황성·구련성을 거쳐 천도 전에는 심양으로,이후엔 봉황성에서 금주산성·송산보·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들어갔다. 답사단은 그러나 빠듯한 일정 때문에 압록강에서 심양에 이르는 호란 당시사행길은 역순으로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서울에서 항공편으로 처음닿은 곳이 심양이었기 때문이다. 책문은 지금의 단동지역이다.책문후시(後市)라고 불리울 만큼 밀무역이 성행한 곳이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다만 ‘연행록’에 ‘책문에는 버드나무가많다’고 기록한 대로 강변에 버드나무가 밀집해있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변경에 있는 외국과의 통로를 뜻하는 ‘변문(邊門)’이라는 지명도 이 곳을 책문으로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구련성은 조선 사신이 중국 땅에서 처음 밤을 보내는 숙소였다.그러나 ‘구련성지(址)’라는 비석만 남아있을 뿐 성벽으로 추정되는 곳은 밭이 되어있었다.봉황성지는 사신들이 청나라 관료들과 처음으로 접촉하는 곳이다.역시‘봉황성지’라는 비석만 남아있을 뿐 중국의 군사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심양에는 조선관이 있었다.병자호란 당시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머물던 곳이다.그러나 조선관 터는 지금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 세워져있다.포로가 된 조선사람들을 사고팔던 노예시장과 조선인들을 목베던 삼학사 형장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금주산성에는 지금도 조선사람의 후예들이 조선의 풍습을 지니고 살고 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면서 차출된 조선사람들이 눌러앉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들은 “금주산성에서 조선이 중국을 크게 물리쳤다”는 내용의구전설화를 들려주었으나,금주산성을 고구려시대의 안시성과 혼동하고 있는듯 했다는 것이다. 북경의 옥하관은 조선 사신이 머물던 숙소이다.현재 옥하관의 흔적은 찾을수 없다. 일대는 현재도 외교관 거리가 되어 있다고 한다.청나라 시대의 외교거리가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옥하관 자리는 현재 북한대사관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팀은 사행을 통한 한중교섭의 윤곽을 처음으로 살펴보았다는 것을 이번답사의 가장 큰 성과로 보고,곧 한중관계사 연구를 위한 공동연구팀을 발족시키는 한편 사행길의 보다 정밀한 답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답사에 참여한 이욱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사행길을 돌아보며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에 가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면서 “최근의 국제관계에 걸맞는 역사연구를 하려면 교류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권인하 4년반만에 새앨범

    요즘 아이들은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80년대를 지나온 이들은 권인하 하면 김현식의 블루스와 전인권의 록이 얽혀있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제 어느덧 마흔 둘이란,무시못할 세월의 강을 건넌 권인하가 5집을 냈다. 지난 95년 냈던 5집에 ‘표절기미’가 있다며 라디오에 나가 사과하고 레코드점에서 앨범을 거둬들인 뒤 4년 반이 지난 뒤. “처음엔 앨범의 보완·수정에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작업을하다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서요.”그 욕심은 화려한 세션으로 이어진다.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 최구희를 비롯,최이철 함춘호 샘리 이근형 등이 기타를 맡았고 배수연이 드럼을,신현권이 베이스를,이주환이 트럼펫을,대니 정이 색소폰을 맡는 등 대한민국에서 이름 석자가 빠져서는 큰일날 인물들이 힘을 보탰다. 그가 만들고 녹음한 노래만 50여곡에 이른다.멀티테이프 9개에 달하는 양. 전체 13곡 가운데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타이틀곡을 제쳐두고오랜 친구 강인원이 만든 열번째 트랙 ‘무조건 사랑’부터 들어보자.그특유의 갈라지고 새어나오고 흩어지는 절규를 그대로 녹음했다.매끈한 요즘 록가수들의 그것과는 거리를 둔 것이다.이상하다 싶었는데 사연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녹음실에서 그냥 불러본 것을 믹싱했어요.”그런 거칠음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레이션만으로 정갈한 세미클래식 느낌을 풍기는 ‘날 위하고 싶다면’과 타이틀곡 ‘너에게’에서 빼어난 솜씨로 갈무리된다.특히 스스로 표절을 의심했던 ‘너에게’를 이번에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가다듬었다. 과연,그의 폭넓은 음악 소화력과 해석력이 일정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솔 발라드 블루스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마음껏 열어제쳤다.보컬은 기름지고찰져 쫀득쫀득하다. 그의 80년대식 보컬에 향수를 간직한 이들이라면 ‘안녕’을 들으면 똑떨어진다. 후기에 그는 ‘궈니나’라 적었다.아버지에게 증명을 하기 위해 음악을 잘해야 했던 그는 이제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는 말한다.“다음 앨범을 만들 때까지 얼마가 걸릴 지 모른다.하지만 난끊임없이 도전한다.”[임병선기자]
  • 영혼의 깊이 더해가는 ‘백남준 예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68)의 예술세계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기획전이 21일부터 10월29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세계’전의 서울판이다.지난해 미국 ‘아트뉴스’지에 의해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 25명에 선정된 백남준은 아시아작가로선 처음으로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관 초대전을 개최,구겐하임 개관이래 최대인 25만여명의 관람객을동원하며 화제를 뿌렸다. 삼성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주최하는 서울전에는 레이저·비디오작품 40점과 자료 60점 등 모두 100점이 출품된다.주최측은 그의 작품을 비디오 전사(前史)와 비디오 시기,후기 비디오 시기(레이저 작품)로 나눠 전시하되 레이저 작품은 로댕갤러리에서,비디오 작품은 호암갤러리에서 전시키로했다. 채광 유리 건축물로 잘 알려진 로댕갤러리의 글래스 파빌리온(원형전시장)을 암실로 만들어 레이저 설치작업을 보여줄 예정이다. 서울전의 하이라이트는 새천년 신작으로 호평을받은 ‘야곱의 사다리’.물과 거울을 이용해 8m 높이의 지그재그형으로 꾸민 레이저 설치작품이다.빛의반사를 이용해 힘겹게 사다리를 오르는 듯한 모습이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지상의 인간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이 마련한 구원의 상징물을 연상하게 한다.50대의 TV모니터와 함께 천장 스크린에 레이저 그래픽이 전시되는 ‘감미로움과 숭고함’도 주목할 만하다.끊임없이 변화하는 소용돌이 패턴 사이에 괘를 그려 넣은 이 작품은 세계가 우주의 움직임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을 암시한다.‘야곱의 사다리’,TV모니터,‘감미로움과 숭고함’ 이 세가지가 한데 어울려 ‘동시변조’라는 환상적인 전체 작품을 이룬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이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첫 개인전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에 출품한 ‘조정된 피아노’도 소개된다.가시철사와 인형,사진,장난감,브래지어,깨진 달걀 등 각종 잡동사니를 피아노에 부착한 것으로,백남준의 초기 행위예술이 오브제 형태로 드러난작품이다.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며’도 공개된다.20세기 테크놀로지의 대표적 성과물인 자동차에 폐기처분된 TV모니터를 싣고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연주하도록 한 작품.20세기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겼다.이밖에 테크놀로지와 자연이 결합된 ‘TV정원’,인터액티브 아트인 ‘참여TV’,자전적 성격의 ‘보이스 프로젝션’,‘몽고의 텐트’‘임의적 접근’‘비디오 물고기’‘TV시계’‘촛불 TV’‘TV왕관’‘달은 가장 오래된 TV’‘로봇 가족’ 등 걸작들이 줄줄이 전시장에나온다.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1980년대 초반 국내에 소개된 이후 환경조형물과 비디오 조각을 중심으로 편중돼 소개돼왔다.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실물감상의기회가 없었던 초기 플럭서스(전통을 파기하고 예술과 삶의 접목을 시도한급진적 미술운동)시대의 귀중한 자료들을 전시,백남준 예술 사상의 근원을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백남준은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몸이 마비된 데 이어 왼쪽눈 백내장수술까지 받아 고통을 겪고 있다.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비디오이후의프로젝트’라 불리는 레이저아트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초인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이번 서울전에는 건강상 참석하지 못한다. 입장료는 일반 8,000원, 초·중·고생 5,000원.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며,매일 40명의 도슨트(docent,안내원)가 교대로 갤러리에서 전시설명을 곁들인다.(02)771-2381. 김종면기자 jmkim@
  • [외언내언] 제2차 도메인 전쟁

    봉이 김선달은 조선시대 후기 인물로 평안도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살았던것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이름이나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그러나 그는 탐관오리와 불효자를 응징하는 정의의 사나이이자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해학의 인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런 봉이 김선달은 비단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정보화시대의 디지털공간을 무대삼아 활동하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도 존재한다.이른바‘스쿼터(Squatter)’라고 불리는 인터넷 도메인 사냥꾼들이다.이들은 자신의 업종과 관련 없는 인터넷 도메인을 수백개씩 사들여 이를 도메인 경매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긴다. 도메인은 말 그대로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의 전화번호와 같은 것이다.따라서먼저 등록해두지 않으면 반드시 남에게 빼앗기게 된다. 지난 1월 아메리카온라인(AOL)과 타임워너가 사상 최대의 합병을 했을 때 양사 관계자는 만사를제쳐두고 새로 출범할 거대 기업의 도메인부터 확보했다.‘봉이 김선달’의선제공격을 막기 위해서였다.이들은 합병 발표 하루 전에 ‘AmericaOnLineTimeWarner.com’에서 ‘AOLTW.com’에 이르기까지 두 회사의 이름으로 만들수 있는 도메인 21개를 등록했다. 스쿼터들의 ‘도메인 싹쓸이’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김대중 대통령(kimdaejung.org//net)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leehoichang.com//net) 등 유명 정치인의 도메인을 몽땅 등록한 사람도있다.그런가 하면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일성닷컴’ ‘김정일닷컴’ ‘모란봉닷컴’에서 ‘아바이닷컴’ ‘에미나이닷컴’까지 생겨났다.나라 밖에서도 마찬가지다.지난 5월 현직 영국총리로는 150년만에 아기의 아버지가 된 토니 블레어 총리는 며칠만에 아기 이름의 도메인을 스쿼터에게 싹쓸이당하기도 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닷컴’ 도메인이 고갈위기를 맞고있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지난달 말 현재 ‘닷컴’ 도메인은 전 세계적으로 950만개가 등록되어 있으며 웹스터 사전에 수록된 명사의 97%가 이미등록됐다고 한다. ‘닷컴’ 도메인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인터넷도메인관리기구(ICANN)회의가 1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막이 올랐다.새 도메인후보로는 ‘닷숍(.shop)’과 ‘닷펌(.firm)’,‘닷웹(.web) 등이 유력하다고 외신은 전한다.‘닷컴’을 둘러싼 1차 도메인 전쟁에 이어 새 도메인을대상으로 한 2라운드 ‘금맥찾기’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朴建昇 논설위원 ksp@
  • 서울대생 40% ‘지각졸업’

    서울대생 중 8학기(등록기준) 안에 조기 또는 정상 졸업하는 학생은 전체졸업생의 61.3%에 불과,10명중 4명 가까이가 9학기 이상 학교를 다니는 등‘지각졸업’ 현상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시준비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법대는 8학기 이내에 졸업하는 학생이 10명 중 3명도 안돼 ‘고시 열풍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7일 서울대에 따르면 올 2월 졸업한 1999학년도 전기와 지난해 8월 졸업한1998학년도 후기 졸업생 4,358명 중 정상적으로 8학기 안에 졸업한 학생은전체의 61.3%인 2,670명에 그쳤다. 반면 9학기 졸업자는 983명(22.6%),10학기 518명(11.9%),11학기 이상 187명(4.3%) 등이었다. 성별로는 여학생은 전체 1,154명의 75.3%인 869명이 8학기 안에 졸업했으나 남학생은 56.2%만 제대로 졸업,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학교를 더 오래 다니는 것으로 조사됐다.단과대별로는 법대가 전체 졸업생 243명의 23.9%인 58명만이 8학기 안에 졸업,가장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97학년도까지는 등록기준 12학기 안에 졸업을 못하면 자동 제적했으나 98년부터는 등록가능기간을 16학기 이내로 고쳐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이같은 현상은 기업들이 신규사원을 뽑을 때 학점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학생들이 성적이 나쁜 과목을 재수강하거나 복수전공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전영우기자 ywchun@
  • B. B. 킹·에릭 클랩튼, 두 천재 기타리스트 첫 앨범협연

    거장의 만남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기타의 신이라 불리우는 에릭 클랩튼이 평소 입버릇처럼 “내 기타실력은 그의 발밑에도 못 미친다”고 되뇌이곤 했던 B.B.킹과 함께 앨범을 내놓았다. 앨범 타이틀은 ‘라이딩 위드 더 킹’.발매 즉시 빌보드 앨범차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왜 킹인가 클랩튼이 블루스를 바탕으로 록과 팝,레게,컨트리 등을 교접해항상 새로운 실험과 즉흥성 짙은 연주,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꾸준히 예술성과 대중성을 조화시켜온 쪽이라면 ‘블루스 보이’의 약자인 B.B를 애칭으로 써온 킹은 정통노선을 고수해온 셈. 이번 앨범은 클랩튼의 오랜 세월에 걸친 끈질긴 구애 끝에 빛을 보게 된 것. 달리는 캐딜락의 뒷좌석에 오른 킹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기타를 튕기고 클랩튼 역시 가벼운 미소를 날리며 핸들을 잡고 있는 앨범 사진은 모든것을 함축한다. 다른 컷을 보면 분명 클랩튼 옆에도 기타는 놓여있다.그러니 굳이 클랩튼이앞의 컷을 커버로 사용한 존경의 염이 손에 잡히지 않는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67년 뉴욕의 한 카페 무대에서.97년 킹의 골든 앨범 ‘듀시즈 와일드(Deuces Wild)’에서 클랩튼이 ‘락 미 베이비’를 함께연주한 적이 있지만 협연앨범은 이번이 처음. 후기에서 킹은 클랩튼이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었다”고 했고 클랩튼은 “킹은 나의 영웅이며 평생동안 꿈꾸어온 일이 실현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화의 묘미 이번 앨범은 거장의 만남답게 파워풀한 면을 내세우거나 날카로운 기량을 선보이려 노력하지 않고 둘의 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클랩튼의 킹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데 수록곡 12곡을 3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블루스 넘버들로 채우고 그중 상당수를 킹의 작품으로 선곡한 것이 그것이다. 타이틀곡 ‘라이딩 위드 더 킹’은 컨트리록 싱어송라이터 존 하이어트의 작품으로 튀지 않으며 서로를 부추기는 자제력이 엿보이고 킹의 작품 ‘텐 롱이어스’에선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이 깃든 킹의 보컬과 클랩튼이이를 묵묵히 받쳐주는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키 투 하이웨이’에선 주고받는 말처럼 다정다감한 선율의 교환이 돋보인다.뮤지컬 작곡가 자니 머서와 해롤드 알렌의 ‘컴 레인 오아 컴 샤인’에서역시 둘의 화음이 뛰어나다.클랩튼이야 그렇다치고 올해 75세인 킹의 여전한블루스 감각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새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재즈·블루스 계열의 세션 참여자 면면도 화제다.드러머 스티브 갓과 재즈그룹 ‘크루세이더스’의 일원이었던 조 샘플의 명성은 말할 것도 없고 요절한 천재 블루스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의동생인 지미 본이 기타 연주로 참여하고 도일 브램홀 2세가 기타·백 보컬·작곡에 나서는 등 젊은 유망주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브램홀 2세의 현대적인 리듬감 넘치는 ‘매리 유’를 킹이 은근슬쩍,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모습에는 찬탄을 넘어서 탄식마저 흘러 나온다. 이는 98년 드럼과 베이스 프로그래밍을 시도,충격적인 테크노 음악 ‘겟 로스트’를 발표하는 등 항상 새로운 음악적 경향과의 접목을 선도해온 ‘음악적 모험가’(킹의 표현)인 클랩튼이 왜 킹을 선택했는가를 증명한다.모든 것은 자명해진다.그가 킹과의 작업을 왜 21세기 신새벽에 이루어냈는가.블루스는 현대 대중음악을 읽어내는 바코드 역할을 한다는 선언이 아닐까. 임병선기자 bsnim@
  • 신간 맛보기

    ■특별한 한국인(박영규 지음·웅진닷컴)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메시지.한국의 외환위기가 ‘졸부의 예견된 몰락’이었다는 평가에 대해,중국에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행태가 바로 졸부식이라고 반박한다.당쟁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등의 자기 비하적인 속설을 조목조목 뒤집는다.벤처와 핸드폰 열기의 뿌리 등 우리 역사와 문화를 통해 드러난 자부할만한 품성을 제시한다.한글 등을 통해 문화대국 가능성을 지적하고 대통령에게 한복 착용을 권한다.자신이 꿈꾸는 학교설립 계획도 소개.7,000원. ■해피 섹스(김이윤 지음·이프) 가명이지만 성직자(목사)가 쓴 섹스 이야기.남성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향유할 수 있으나,여성은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금기시된 성은 이제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인간의 성을억압하는 사회·종교적 분위기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없으며,더 쾌락적인 섹스를 찾아 방종하기보다는 파트너에게서 소유욕을 버려 몸과 정신이 고루 해방된 남녀가 함께 나누는 성이 진정한 해피 섹스라고 주장한다. 롯의 근친상간 등 성서에 나오는 사례를 제시하며 하느님도 섹스를 억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8,000원. ■카뮈(올리비에 토드 지음·책세상) 부조리와 반항정신의 소유자 알베르 카뮈의 전기다.저자는 ’난폭한 1954년 4월-사이공 함락’ 등의 책을 낸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카뮈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카뮈의 여성문제를 상세히 다뤄 눈길을 끈다. 카뮈의 아내 시몬 이에와 프랑신 포르를 비롯해 마리아 카사레스,패트리샤블레이크,카트린 셀러즈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전기문학의 일대기적인 진술방식에서 탈피,알제리사태·한국전쟁 등 세계사적인 사건도 함께 다뤘다. 김진식 옮김.1권 2,1000원,2권 2,6000원. ■지식과 사회의 상(데이비드 블루어 지음·한길사) 과학지식의 사회적 성격을 분석한 최초의 저작 가운데 하나다.영국의 과학사회학자인 저자를 비롯,반스·셰이핀·매켄지 등으로 대표되는 에딘버러학파는 토마스 쿤을 필두로한 경험주의 과학철학과 뒤르켕의 지식사회학,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 등을 토대로 새로운 과학사회학 이론을 만들어냈다.이른바 ‘과학사회학의 스트롱 프로그램’이 그것이다.전통적인 지식사회학이 과학지식을 연구대상에서제외한 것은 잘못으로,과학지식도 사회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게 그 요지다.김경만 옮김 1만8,000원.
  • 차범석의 방북 인상기(하)손님 접대 극진 가슴을 연 ‘한민족’

    14일 아침 8시.초대소 식당에는 우리를 위한 아침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23명이 모두 한자리에 들어 앉을 수가 없어 1층과 2층 투숙객은 각각 다른 식당을 쓰게 되었다.간밤에 마신 술이 체내에서 독기를 내뿜고 있는지 모두의얼굴에는 아직도 홍조가 가시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진수성찬/ ‘인민문화궁전’에서 베풀어진 만찬의 덕분이리라.‘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김영남이 초대한 만찬의 상차림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그 요리의 가짓수도 그렇거니와 맛 또한 일품이었다.참고로 차림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칠면조 향구이 ②생선수정묵과 냉채 ③삼지연 청취말이쌈 ④쑥송편과 쉬울지짐 ⑤약밥 ⑥통배추김치 ⑦륙륙 날개탕 ⑧젖기름빵 ⑨소고기 굴장즙 ⑩철색송어 은지구이 ⑪잣죽 그리고 후식으로 수박,백두산 들쭉크림(아이스크림),과줄,인삼차.손님 대접에 극진하다는 한민족의 미풍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백두산 들쭉술이며 산삼술,구렁이 술등이 줄줄이 이어지니어디서 먹다가 죽은 귀신이 되살아난 것만 같았다. 이와같은 푸짐한 차림표는 만찬회뿐만아니라 아침식사때도 마찬가지니 나처럼 평소에 소식주의자로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원통하고 억울하게 사양심을강요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 김치/ 음식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솔직한 얘기가 이북음식은 냉면이나 녹두부침 아니면 만두나 아바이 순대로만 알고 있었던 나였다.그리고김치만해도 다양한 젓갈에다 넉넉한 고추가루며 갖은 양념으로 듬뿍 섞어서버물인 전라도 김치라야 제격이라고 자랑했던 나였다.그러나 이곳 김치는 물김치부터 배추김치에 이르기까지 알맞게 사근사근 익혀진게 한마디로 ‘시원한 맛’ 그것이다. 맵고 짜고 감칠맛 난다는 남쪽의 그것과는 달리 상큼하고 달보드랍고 담백한 그 맛은 모르면 몰라도 서방 사람들도 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나는한편으로는 탄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판정패를 받은 서투른 운동선수의느낌이었다. 여기서 특별한 김치 하나를 소개한다면 단연코 ‘배속김치’일게다.이 김치는 마지막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베푼 환송 오찬회 상차림에서 맛본 희한한 김치이다. 통배의 속을 긁어내고 그 속에다가 배추를 담근 김치로 이를테면 보쌈김치의 변형이다.그러나 껍데기는 통배 그대로이고 알맹이는 배추 한가지 뿐으로 상에 오른 형태는 순대로 썰어놓은 것 같았다. 젓갈을 쓰고 고추가루도 들었지만 그것은 진분홍빛 국물로 희석되어 전혀잡스러운 것이라고는 안 보이는 배속에 담긴 배추김치 그것이다.김치를 이토록 정성들여 담갔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겠지.그리고 식(食)문화는 단연 남쪽일거라고 거드름을 피웠던 나의 무식이 수박을 쪼개내듯 속을 들어낸 것이다. 문화는 넓고 다양하고 깊은 것이라 속단은 어렵다.다만 그것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내리고 유구한 시간을 거쳐나오면서 민중의 생활과 의식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라야 옳다.그래서 한나라의 문화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는 것은 경솔이요,치졸이다.나는 그런 뜻에서 식생활은 서민과 가장 친근한위치에 있는 문화의 하나이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손꼽는다. ■곰발바닥 요리/ 그런데 이름나고 희귀한 음식인데도 나를 실망시킨 음식도먹었다.곰발바닥고기다.중국요리에서 제비집 요리와 곰발바닥고기 요리는 값비싸기로도 알려져있어 우리같은 서민에게는 문자 그대로 그림의 떡이요,높은 절벽에 핀 꽃이리라.그런데도 그 음식은 한마디로 실망이었다.기름진 고기라서가 아니다.내 입맛에 안맞기 때문이다.아무리 값지고 멋진 문화의 꽃일지라도 우리 국민정서와 다른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심사와도 통할 것이다.문은 넓게 열려있지만 가려낼 줄 아는 안목과 포용력없이 진정한 문화는 기대 못할 것이다. ■문화·공연시설/ 평양시내에 극장이 몇개나 있는가 궁금해서 김승연 안내인에게 물었다.김여인은 잘은 모르겠지만 하면서 손꼽는데 열개가 넘었다.평양대극장,동평양극장,청년극장,봉화예술극장,만수대예술극장,평양연극극장,4·25문화예술관,윤이상음악당,평양체육관,인민문화궁전… 사회주의 국가가 예술 가운데서도 연극이나 무용 등 공연예술을 적극 장려·지원한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그래서 실력있는 예술가에게는인민배우니 공훈배우니 하는 칭호를 주고 우대한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사회주의국가 건설에 탁월한 공을세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국민(인민)들에게 친근하고 존경을 받는 예술가를 보다 많이 키워냄으로써 그들에게 정치적 이념을 부식시키며 정체성을 확립시키려하는 의지가 바닥에 깔려있을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존경받고 친근감을 품을수 있는 예술가는 의당 무대를 떠나서는 살 수도 없다.그러므로 되도록 많은 극장을 세웠을 그 의도를 짚을 수가있다.인구 200만의 도시 평양에 이토록 굵직한 극장말고도 수십군데의 중소극장이 있다는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인구 1,100만 서울 무대 예술계의 현실과 비교를 안할수가 없었다. ■천재소년 진혁군/ 인민문화궁전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다목적극장이라는 점에서도 특기할만하다.특히 새세대의 영재들을 엄선하여 음악·자수·서예·무용 등 각 분야에 걸쳐 미래의 예술가를 키워내는 시설은 극장이 하나의 국민교육 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면을 여실히 말하고 있다. 얼마전 서울을 다녀갔던 소년소녀예술단 공연때 서울시민의 절찬을 받았던타악기의 명수 ‘리진혁’학생도 바로 이곳에서 키워낸 천재소년이다.금성제1고등중학교에 재학중인 진혁군의 실력은 노래,북,장구,목금,드럼 등 두루악기를 잘 다루는 천재라고 6월13일자 민주조선 제4면에 크게 기사화된 것만으로도 극장의 기능을 엿볼 수가 있었다. ■북한 예술인/ 내가 한국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소개를 하면서몇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무엇보다도 해방직후에 안면이 있었던 예술가들의 소식을 물었다.바이올리니스트인 ‘이계성’,발레무용가 ‘한동인’,연극배우 ‘전두영’ 등 생각나는대로 물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근에 세상을 떴다고 했고 유일하게 여배우 ‘유경애’는 생존하고 있다고 했다.하기야 50여년 전 일인데….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게 이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럼 현재 국민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술가는 누구냐고 물었더니인민배우인 차계룡,곽원우,조청미 그리고 무용가 김해찬을 손꼽았다. 우리가 서울을 떠나올때 품었던 기대 가운데 하나는 그곳의 작가,연극인,무용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이었다.그래서 우리의 일정가운데 6월14일 오후에 짜여진 부문별 회담이 기다려진 것도 사실이다.부문별이란 우리 일행이 경제분야 인사도 많았기 때문에 경제분야와 사회문화분야는 각기 자리를 달리할 수 밖에 없었다. ■55년만의 만남/ 오후 4시30분.장소는 ‘인민문화궁전’이었다.낮에 냉면으로 이름난 ‘옥류관’에서 즐겁게 먹었던 냉면의 맛이 아직도 입안에서 느껴졌다.냉면은 뭐니뭐니해도 육수 맛이라는 말에 따라 육수를 많이 들이켰던탓인지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 웅장한 건물과 조금은 엄숙하게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냉수를 청할 자신은 없어 참을 수 밖에 없었다.때마침 접대원이 쟁반에 여러개의 음료수를 놓고 가자 나는 호박빛 나는 글라스를 들어 한모금 마셨다.꿀물이었다.나는 집에서도 갈증을 가시게 하는데는 꿀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는 터이라 단숨에 바닥을 냈다.문자 그대로 꿀맛이었다. 부문별 회담장에 나온 북한측 인사는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회장과위원,평화통일위 조직국장,천도교 대표,체육지도 부위원장등 6명이었다.따라서 나와 고은 시인이 만나고 싶었던 문학예술가의 인사는 얼굴을 보이지 않아섭섭하였지만 그쪽 사정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우리는 각계 분야의 당면문제와 미래의 계획을 자유롭게 얘기했다.그것은 모두가 언젠가는 와야할 남북통일을 하루라도 빨리 성취시키자는 일념이라 더운 열기가 느껴지는 대화였다.나는 문학 및 공연예술계가 기획하고 실지로 진행중에 있는 사안을 소개했다.한국문예진흥원이 작년부터 착수하고 있는 ‘통일문학전집’간행 계획과 진척사항을 설명했다. 그리고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북측에서 편집위원 몇분 참가하여명실공히 남북통일을 위한 문학전집을 완성시키는게 바람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연예술의 남북교류는 어느 분야보다도 시급하나 처음부터 공연을가지기 보다도 작가,연출,배우 등 각 분야의 인적 교류와 세미나,상호면담부터 시작하여 공연교류,그리고 가능하다면 합동공연까지도 기획중이라는 한국연극협회의 계획도 말했다.북층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며 호의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55년만에 처음 만나는 우리의 실정을 감안할 때 첫술부터 배부르기를 바랄 수도 없으며 우선 문학예술이 자주 만나게 되는 분위기 조성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찬동하는 지상과제였다. ■방북후기/ 생각하면 아슬하고도 캄캄한 반세기였다는 생각이 새삼스럽다.그러나 뒤늦게나마 이렇게 평양땅을 밟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힌 나는행복과 긍지를 느끼면서 평양시내에서 20Km떨어진 ‘동명왕릉’으로 가는 잘닦여진 길을 자동차로 달리고 있었다. 15일날 백화원에서 베풀어진 환송오찬회는 2박3일동안의 모든 일이 하나로녹아 마침내 두 정상을 위시하여 통일의 노래를 합창할때는 눈시울이 뜨거웠다.그 순수,그 진심,그 우호가 거짓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겠는가.아니다.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가말이다. 나는 그 오찬회때 가까이서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안 잊혀진다.그와의 악수때 내 손바닥에 가해진 두터운 손바닥의 힘과 더운 촉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미소가 감도는 작은 입모습과 그리고 맑지는 않으나 약간 톤이 높은 목소리는 소박하고 평범한 보통사람이었다는 것을.나는 두 정상사이 오고 갔을 수많은 말들이 지고 피고,지고피는 무궁화처럼 피어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차범석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극작가
  • 홍성원 6·25대하장편「남과북」전6권으로 改作

    작가 홍성원이 23년전에 완간했던 ‘남과 북’(전 6권·문학과지성사)을 개작해 다시 내놓았다. 지난 77년초까지 월간 ‘세대’에 5년2개월동안 ‘6·25’란 제목으로 장기연재됐던 이 소설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부터 휴전이 성립된 직후의 1953년 9월까지 3년 반 기간을 다룬 6·25 대하드라마다.작가는 1만 장이 넘는 원고의 보완과 개작을 위해 꼬박 1 년 간의 시간을 투자했다고 개정판 서문에서 밝힌다.묵은 문장을 손질하고 냉전 시대의 ‘사나운 표현’들을 교체하고(북괴를 북한,괴뢰군을 인민군 등으로),새로운 주인공을 등장시키고,중복된 일부 내용은 과감히 삭제했다는 것이다. 작가 말대로 ‘남과 북’은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서슬 푸르게 살아 있던 197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다.이미 77년 2월의 초판 후기를 통해 작가는북한에 대한 표현의 상한선이 ‘감상적인 민족주의 언저리거나 당국에 의해철저히 도식화된 반공 가이드라인 내’로 제한된 사실을 적시했었다.그후 20여년이 지나 “‘한국 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 전쟁의 절반을 담당한 북한 쪽 이야기를 빼버린다는 것은,표현상의 불평등 못지않게 공평하지 못한 일” 이며, “작품 ‘남과 북’이 한국 전쟁을 제대로 그리는 데 한계가있었다” 고 고백하면서 개작에 나선 것이다.작가는 북한 쪽 주인공을 작품에 새롭게 등장시킨 점을 이번 개작의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새로운 등장인물은 ‘자본주의 압제로부터 인민을 해방하여 사회주의 조국 통일을완수한다’는 북한측 전쟁 목표와 관련해 원래의 꿈을 잃지 않으려고 혼신의노력을 다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의 이같은 보완은 말 그대로 보완일 따름이다.작가가 초판부터 언급한 ‘남과 북’의 본질적인 한계가 이 보완으로 극복되는 것은아니다.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장점과 매력은 이로 해서 훼손되지 않는다.변화의 급류가 굽이친 20여년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아직도 읽고 주목할 가치가 있다.비록 제목과는 달리 남한 쪽에 꽉 붙잡혀 있긴 하지만 홍성원은 6·25의 ‘전모’를 드러내고자 한다.작가라면 누구나 가질 것같은이같은 목적의식은 그러나 20년 전에도 드물었고 지금도 흔하지 않다. 6·25는 수많은 한국의 소설가에게 심연의 대광맥이지만 그 채광의 결과물을 보면 가치 이전에 너무 개인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을 어쩌지 못한다.품위를 잃지 않아 온 최초의 전업작가라고 할 수 있는 작가 홍성원은이와 달리 요컨대 6·25를 휼륭한 이야기 소재로서 접근한다.물론 작가는 ‘남과 북’이 6·25를 졸업하기 위한 졸업 논문과 같다고 말하고 6·25는 하루속히 졸업해야 될 우리 모두의 고통스런 과제라고 덧붙이고 있다.그러나작가는 6·25를 우리의 역사적인 개별 사건으로서보다 폭력과 자기 파괴의극단적인 현장인 인간의 전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역사·이데올로기 우선시대에는 역사성이 부족하고 경박·통속적이라는 평을 면치 못해 왔지만 그런과잉시대가 지나간 지금 ‘전방위적 이야기꾼’이 하는 ‘남과 북’의 스토링텔링은 이번 개작을 맞아 다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 6·25에 대한 이 작품의 ‘총체적 조망’을 확신하는 작가는 “30여 명의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국군·미군·중공군 등 각기 다른 국적의 여러 군인들을 비롯하여,한국 기자와 미국 기자·학자·상인·지주·의사·브로커·양공주·전쟁 고아·건달 등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면서 “영웅도 없고 승자도 없이 오직 패자만을 다량으로 생산한 이 전쟁은,바로 그 패자들의 눈을 통해서만 황량한 전체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전자책(e-book) 동시출간. 김재영기자 kjykjy@
  • 무료한 수험생의 도우미

    고시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을 해오던 인터넷 고시 사이트가 이제는 정기모임 결성,원고료 제공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올해로탄생 4년째를 맞는 PC통신 고시전문 서비스인 ‘국가고시’는 남들보다 오랜기간을 고시공부에 쏟은 노장 수험생들을 위한 모임인 ‘모래시계’를 결성했다.모래시계는 71년생 이전에 출생한 수험생들의 소모임으로 이른바 ‘고시계 386세대의 모임’이다. 국가고시 시솝(하이텔 ID k2gosi)은 “모래시계는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노장 수험생들이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동료들을 만나고 그들만의 고민을 풀 수 있는 멍석의 역할”이라면서 창단의변을 밝히고 있다. 간략한 발대식 후 임원진 선출,정기모임 구성 등을 통해 모래시계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고시포털사이트인 ‘고시촌’(gosi chon.co.kr)은 개편기념 특별행사를 마련했다.첫번째 이벤트는 ‘원고료 제공’.고시촌 게시판에 올리는 글의 건수당 원고료를 준다.시험후기,수험노하우,시험 합격담 또는 실패담 등 시험에유용한 글에 대해 100원에서 500원의 원고료를 줄 예정이다. 또 지난 2월 인터넷을 정보를 주고받던 수험생들이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off-line)모임을 갖고 큰 호응을 얻었던 고시포털사이트 사시로(www.sasi-law.co.kr)도 조만간 2차 모임 등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고시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많이 찾아다닌다는 한 수험생은 “이같은 이벤트를 마련한 곳이면 한번 더 방문하게 된다”면서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무료한 고시생활을 달래주는 데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 이토 준지의 ‘공포’ 다시 엄습

    이토 준지의 공포가 다시 엄습한다.지난해 여름 ‘공포만화 컬렉션’으로 국내 만화 마니아들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이토 준지의 98년작 ‘소용돌이’가 국내 출간됐다. 저자는 후기에서 “소용돌이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소용돌이 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눈이 핑핑 돌았고 관련 문헌을 샅샅이 뒤졌다.욕조의 물을 빼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달팽이를 길러도 보고…”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소용돌이 모양이었다.아이스크림도,쿠키도,꿀꽈배기도,뱀도,도자기 만드는 과정도…한적한 어촌 쿠로우즈마을.아름다운 여고생 키리에는 중학교 동창 슈이치의아버지가 소용돌이에 심취해 몸을 나선형으로 말고 죽어버리는 사건을 목격한다.그의 화장 연기는 소용돌이 모양을 일으키며 그의 얼굴까지 드러낸다. 슈이치의 어머니 역시 소용돌이에 관한 공포로 자신의 귀에 있는 달팽이관을도려내야 한다며 칼을 들이대고 만다. 이마에 생긴 소용돌이에 자신이 먹혀버리는 소녀,사람들의 눈을 끌고 싶다는과시욕구에 소용돌이처럼 말린 머리카락을 기르다 기력이 쇠약해져 해골처럼 말라버리는 같은 반 친구,이지메를 당하다 어느 순간 달팽이처럼 변해버린 소년,드릴을 갖고 다니며 환자들의 피를 빨아 영양을 섭취하는 임산부 등온 마을이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이번 작품은 기승전결을 갖고 있다.클라이맥스는 2권 후반부부터 3권까지.완결편 3권은 다음달 나온다. 소용돌이란 도형 하나에 의존해서도 이처럼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톺아보는작가의 눈에 경탄을 자아내게 된다.섬뜩하지만 한번 손에 들면 다음 장면이기대되는 끌림,그런 것을 이토 준지의 작품은 갖고 있다. 시공사 김혜리씨는 “일본에서도 그의 마니아들은 여중고생이 많다”며 “선혈이 낭자한 장면같은 자극은 없지만 치밀한 심리묘사가 국내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2월 영화로 선보였는데 신은경이 출연했다. 임병선기자
  • ‘영산강유역 고대 실체’ 韓·日·中 격론

    삼국시대인 서기 4∼6세기 영산강 유역에 존재한 고대사회의 실체는 무엇일까.백제의 일부?아니면 마한?그도 아니면 왜의 세력?‘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새로운 조명’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역사문화학회 주최로 9∼10일 목포대에서 열렸다.최근 몇년새 역사·고고학계를 뜨겁게 달궈온 이 쟁점을 놓고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사학자·고고학자들은 한치의 양보 없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대회에서 발표한 논문과 이에 따른 토론 들을 종합해 논쟁의 초점과 그것이우리 역사 이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재구성했다. 영산강 유역에는,한반도 다른 곳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 옹관고분이 분포하며백제계 고분인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도 곳곳에서 나온다.게다가 최근에는 전형적인 일본 묘제로 알려진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속속 발견된다.고대사회의 대형고분은 최고 통치자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주요 지표이므로,이처럼 다양한 고분의 형태는 영산강 유역에서 무언가 특별한 역사가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전남 지방은 근초고왕 24년(서기369년)에 정복된뒤 쭉 백제의 영역이었다는 것이 오랜 통설이었다.이병도가 ‘일본서기’신공기 49년조 기사를 근거로 이 설을 처음 제기했으며 이후 사학계는 이를 지지·보완하는 학설을 잇따라 발표했다. 고고학계도 이를 근거로 옹관고분은,그 이전 토착세력의 묘로서 4세기 후반이면 사라지는 것으로 여겨왔다.그러나 연구성과가 축적돼 이제는 옹관고분이 5세기에서 6세기 초에 정점을 이룬 것으로 본다.근초고왕의 정벌후 1∼2세기가 더 지나서까지 옹관고분 세력은 더욱 발전했다는 뜻이다. 이같은 사실을 반영하고자 새로 제기한 주장이 ‘단계적 영역화’설이다.근초고왕의 정벌후 백제가 이 지역을 곧 지배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그쳤으며,직접지배는 5세기 후반에야 가능해졌다는 견해다. 영산강유역이 백제와 다른 별개의 고대사회였다는 학설도 함께 등장했다.곧‘마한’설이다.경기·충청·전라도를 포괄하던 마한이 한강 유역에서 흥기한 백제에게 밀려 점차 축소됐지만,영산강유역에는 ‘마한 잔여세력’이 6세기까지 남아 있었다는주장이다. 이 ‘마한 잔여세력’에의 관심은 고고학계에서 점차 확산돼 간다.또 전남지역사회의 언론·재야사학계는 ‘백제에서 벗어난 독자세력 마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추세다.그 결과 서기전3세기∼서기6세기에 존재한 ‘마한 800년사’가 상식이 되다시피했다. 이런 가설이 성립하려면 영역을 정하는 주요 지표인 옹관고분이나 그 전단계묘제가 경기·충청·전라도에서 맥을 이어가며 발견되어야 한다.하지만 경기·충청도에서는 발굴되지 않아 아직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전방후원분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영산강유역 고대사회를 왜와 관련짓는 학설이다.이는 일본이 200여년 한반도 남부지역을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되는 민감한 문제다. 처음에는 이 지역 전방후원분이 일본 것에 앞선다는,즉 이 지역에서 일본으로 묘제를 수출했다는 관점에서 보았다.그러나 오히려 일본의 전방후원분에견주어 후기 양식임이 밝혀졌다.어떤 형태로든 일본의 영향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설이 일본인 학자 아즈마(東潮)의 ‘모한(慕韓)’설이다.그 논지는 ■영산강유역에는 5세기까지 독립세력이 있었는데 이것이 모한이며■모한은 철의 공급지로서 5세기에 왜와 관계를 맺었고 ■전방후원분은 이일대에 살며 철의 교역에 종사한 왜계 집단이 조영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 주체를 왜한(倭韓)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제기돼 주목을 끈다.마한과는 별개인 왜한(한반도 토착세력으로서의 왜)이 존재했는데 이는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한전과 광개토대왕비문에 등장하는 ‘왜’다.이 왜가 광개토대왕의 공격에 타격을 입고 5세기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국가를 세웠다는학설이다.이 설은 ‘임나일본부’를,일본에 건너간 왜한이 옛땅을 회복하려고 설치한 전초기지로 해석한다. 이용원기자 ywyi@
  • 국악 태교음악을 아시나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태교에도 열심이다.똑똑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기를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그래서 임신사실을 알자마자 어떤 태교음악을 들을까고심한다. 태교음악하면 모차르트,비발디 등 서양 클래식음악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이런 통념을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예비엄마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공연이 마련된다. 15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리는 ‘국악 태교음악’ 무대. 서울시국악단이 기획한 이 공연은 국악이 태교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첫 시도다. 전통음악중 ‘정악’은 조선후기 선비들이 즐겼던 음악으로 빠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날 공연에선 ‘수룡음’‘수요남극’‘산천초목’등 대표적 정악을 소개한다.또 ‘러브스토리’등 친근한 팝송을 거문고 3중주로,세계적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유키 구라모토의 ‘메디테이션’을 가야금 2중주로 새롭게 편곡해 들려준다. 입장권은 1만원.임산부 관객에게는 20%씩 할인해준다.(02)399-1700. 허윤주기자
  • 2천만원대 조선백자 경매

    [런던 연합]소더비,크리스티와 함께 문화재 및 예술품의 3대 경매시장인 필립스에 2,000만원대의 조선백자가 등장한다. 필립스는 1일 모두 966점의 문화재를 6일부터 3일간 경매에 부친다고 밝히고 이 기간중 모두 7점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매물로 나온다고 소개했다. 한국 문화재 가운데 가장 가격이 비싼 것은 높이 26.7㎝의 조선시대 후기백자로 예상가격은 1만∼1만5,000파운드(1,700만∼2,500만원)이다. 나머지 경매대상 문화재로는 조선후기 백자화병(800∼1,200파운드),조선후기 불화(300∼500파운드),19세기 용무늬 백자화병(2,000∼3,000파운드),고려시대 청자연적(1,500∼2,000파운드),조선시대 청자보석함(1,500∼2,000파운드),고려시대 청자접시(1,000∼1,500파운드) 등이 출품될 것으로 알려졌다.
  • 경희궁 태령전 복원 월내마무리

    서울시는 31일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했던 태령전(泰寧殿) 복원공사가 이달말 마무리된다고 밝혔다. 태령전 복원은 사적 271호인 경희궁터의 복원계획에 따른 것으로 경희궁터는 현재 전체적으로 70% 정도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경희궁은 조선조 광해군 시절에 건축된 궁궐로 조선후기 정치활동의 주무대역할을 했던 곳. 이미 정전(正殿)인 숭정전(崇政殿)과 회랑(回廊),자정전(資政殿),우문각(右文閣) 등은 복원이 끝난 상태다. 김재순기자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 작가와의 대화

    본지에 연재될 작가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새로움을 한꺼번에 독자에게 선사할 전망이다.잊어버린 맛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주고 작가 ‘황석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하는 것이다.모두 우리의삶을 살찌우는 새 기억이고 새 모습임이 틀림없다. 충남 홍성 부근의 덕산에 신축한 집에서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는 작가를 서울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오래된 정원’의 독자사인회 상경길이었다.웬 요리 이야기냐는 등의 질문에 논리정연한 대답을 내놓았다.그만큼 이 연재물에 대한 생각과 준비가 숙성된 표시였다. 작가는 우선 요리가 “새로운 세기에도 대단히 중요한 일거리로 남을 것임”을 강조한다.사람끼리의 사적인 관계와 소통,인간적인 작업,비획일성,다양함,생산의 창조적인 과정 등이 사라지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요리는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영역으로서 한층 소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거기에 세계화에도불구하고 요리는 지역적 전통적 특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어우러지고섞여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새 세기의 인간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덧붙인다. “한 시대의 먹거리는 당대 삶의 표현입니다.이 점은 글쓰는 사람한테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옵니다.담론의 형식이 바뀐 것이 분명하다면 요리를 통해서 시대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 거죠” 시대의 실체를 밝히는 소설을 쓰듯 이번 연재물에 접근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소설이 재미있어야 하듯 ‘맛따라 추억따라’는 작가의 구수하고흥미진진한 음식 이야기가 먼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길 것이다.장떡 개떡 수제비 술찌게미 보리밥 장아찌 등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음식은 물론 베트남유럽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북한에 체류하면서 작가가 유일하게 경험한 음식 이야기가 ‘입담좋게’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나 ‘맛따라 추억따라’는 이런 구상적인 소재와 소품 일색이 아니다. 작가는 음식,요리로 인간과 삶을 꿰뚫어보고 싶은 것이다.작가가 그간 작성한 집필 메모를 읽어보면 이같은 인문학적인 시선과 각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일정한 기간 단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가 하루 중에서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가를 알게되었을 것이다.‘끼니’를 잇는 일은 생명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잠자는 시간 외에 깨어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적절히 분할해주고 매 단락을 맺어준다.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으면 하루가 엄청나게 길고 모든 것이 갑자기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매우 소중한 발견은 만남이나 헤어짐이나 대화나 목소리 얼굴의인상 따위와 같은 사람끼리의 관계가 빠져버린다는 점이다.천하가 적막하고고요할 뿐이다.남과의 소통은 당연히 끊기고 자기 자신마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잃어버렸다.맛있는 음식은 노동의 땀과,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오래 살던 땅,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그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식가나 식도락자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한다.마치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돈 쥬앙처럼 말이다” 이어 작가 황석영은 “무엇보다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작정”이라는 말로 음식에 관한 멋지고 선도적인 담론을 쓰기 위한 집필메모를 마무리하고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삽화 민홍규 화백…“우리색채로 고유의 맛 우려낼 것”. 황석영씨와 함께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새달부터 시작되는 새연재 제목처럼 황씨의 파란만장한 삶속에 녹아있는 구수한 맛의 향수를 단화(單畵)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만만치 않을 일로 본다. 맛을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응과 묘한 맛이 배어있어 때론 정반합의 역설화법이 필요하다.삽화의 획일성에서 가끔 벗어나는 일도 있어야 한다. 독자들의 일방적 ‘감상 들추기’에 폭넓은 구상,비구상 형식이 전개될 것이다. 된장찌개는 할머니의 손맛으로,장떡은 코흘리개 아이들의 가슴으로,보리개떡은 늦은 봄 야윈 어머니의 미소로 그려내고 싶다.밥상 위에 다양한 맛의반찬이 있듯 ‘우리색채’로 맛을 우려내려고 한다.아울러 고단한 우리네 삶을 녹여주는 숱한 표상을 그려내고 싶다. ■프로필 1952년 경남산청에서 출생했다.중학시절 석불문하에서 ‘옥새전각’전수생활을 했고 극장간판을 그리기도 했다.90년 옥새전각의 종합성으로새로운 미술사조인 LAP ART(선묘,문자예술) 장르를 정립했다.1991년 ‘현대서예협회’를 창립해 서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현재 옥새복원작업을 하고 있으며 해외 LAP ART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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