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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플러스] 로봇청소기 룸바 황사 이벤트

    로봇청소기 룸바를 판매하는 코스모양행은 다음달 12일까지 룸바몰(www.roombamall.com)에 ‘나만의 황사를 이기는 비법’을 공개한 고객 100명에게 청소 3종 세트를 준다.‘룸바청소기 사용후기’를 올리는 고객 중 20명을 뽑아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표를 준다.
  • 문화·역사 숨쉬는 21세기형 도시로

    문화·역사 숨쉬는 21세기형 도시로

    “마곡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역사문화 관광벨트 추진, 가양·염창 준공업지구 이전 등이 시작됩니다.30년 넘게 가꿔온 ‘꿈’이 우리 앞에 실현될 시기가 다가온 것이죠.” ‘미래는 꿈꾸는 사람의 것’이라는 지론을 펴는 김재현 강서구청장은 26일 오는 9월 토지보상을 시작해 10월에는 실시계획 인가를 끝내는 마곡지구개발의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고 밝혔다. ●내년 ‘마곡스테이지 빅뱅´ 개최 서울에 남은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라는 평가를 받는 마곡지구는 2005년 12월 ‘마곡 R&D시티 조성계획’이 발표된 이후 소문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김 구청장은 “우리 구의 운명이 걸린 마곡지구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다.”면서 “단순한 첨단산업단지가 아니라 문화·관광이 어우러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내년에 아시아권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티스트들이 참가하는 ‘마곡 스테이지 빅뱅’이 열린다.30만명이 넘는 음악마니아들이 마곡지구에 모여 함께 어울리는 대규모 야외음악축제다. 보상이 완료된 넓은 토지가 개발시점까지 유휴지로 방치된다는 점에 착안해 축제를 기획했다. 또 인천공항 등 교통접근성이 좋아 아시아권의 음악마니아들까지 참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한몫했다. 음반, 기획, 공연 등을 지원하고 육성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제도를 마련해 ‘음악산업의 메카’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도 포함시켰다. 우리 역사에도 눈을 돌렸다. 겸재미술관이 12월 문을 연다. 진경 산수화풍의 절정기인 1740년, 현재 강서구 가양동 현령으로 머물며 경교명승첩, 양천팔경 등을 그렸던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또 서울에서 하나뿐인 양천향교와 정선이 즐겨 찾았다는 소악루 등이 있는 궁산, 허준박물관 등 역사의 흔적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관광자원화할 방침이다. 김 구청장은 “워터프론트로 개발될 마곡에 문화와 역사라는 새로운 옷을 덧입힐 계획”이라며 “살기 좋고 볼거리가 가득할 뿐 아니라 역사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21세기형 새로운 도시로 태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항고도 완화 市와 협의 주거공간 개선, 준공업지구 이전, 공항고도제한 완화 등 다양한 지역의 현안이 실타래가 풀리듯 하나 둘씩 풀리고 있다. 먼저 주거공간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화곡동 일대의 낡은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교수, 변호사, 시민단체와 함께 화곡뉴타운 지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도시개발예측시스템을 활용해 개발가능 시기 및 건축허가제한 등 사전준비에 들어갔다. 과거 30년간 지역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공항고도 제한은 타당성을 검토해 필요없는 지역은 완화를 할 수 있게 시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의하고 있다. 염창동·가양동 일대의 대다수 준공업 시설들은 마곡지구로 이전해 밝고 깨끗한 거리를 만들 계획도 세웠다. 김 구청장은 “올해와 내년은 도시의 이미지가 변하는 터닝포인트”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8)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8)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신윤복의 그림 ‘밀회’다. 때는 초승달이 뜬 밤. 서정주는 ‘동천’에서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라고 하였다. 초승달은 우리님의 고운 눈썹이다. 해서 초승달은 ‘우리님’의 사랑을 떠올린다. 이 그림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그림의 왼쪽에는 기와집이 꼭 반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기와집에 이어서 담이 있는데, 흙담이 아니고 제대로 깎아서 만든 돌담이다. 그리고 그림의 중앙에서 돌담은 꺾이고 있으니, 아마도 도시의 골목길일 터이다. 또 도시의 골목이라면, 필시 서울의 골목일 것이다. 그림의 위쪽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를 그려 담을 슬쩍 지우고 있다. 어쨌거나 초승달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남녀가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이 두 남녀다. 먼저 여자를 보자. 여자는 쓰개치마를 쓰고 있지만, 얼굴은 다 보인다. 쓰개치마는 여성이 내외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옷이다. 내외를 위해 여성이 뒤집어쓰는 옷은 다양하지만 장옷이 으뜸이고, 장옷보다 간단한 것이 쓰개치마다(장옷은 신윤복의 또다른 그림 ‘장옷 입은 여인’에도 여실히 묘사돼 있다). 한데 여자는 저고리 깃과 소맷부리에 자주색 회장을 대고 있으니, 삼회장으로 제대로 갖추어 입은 차림이다. 그리고 신발을 보라. 맵시 있는 가죽신이다. 여성은 필시 지체 있는, 부유하게 사는 집안의 여성이다. 오른쪽의 남자를 보자. 넓은 갓을 쓰고 중치막을 입었다. 이 남자는 수염도 나지 않았고 또 얼굴이 앳되며, 갓끈이 아무 장식 없는 헝겊으로 만든 것을 보아, 아직 벼슬하지 않은 양반가의 젊은이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젊은이 역시 체모를 차리는, 산다 하는 양반가의 자제가 분명하다. 한데 초승달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에 이 두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자가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물건을 여자에게 건네기 위해 여자를 불러낸 것인가. 아니면 여자를 불러내어 둘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그림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어딜 가고 있는가. 그림 왼편에 있는 화제를 보자.“달빛 어둑어둑한 밤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月沈沈夜三更,兩人心事兩人知) 화제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삼경이랬다. 삼경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통금이 있어서, 초경(밤 8시)에 인경종을 33번 치면 성문이 닫히고 시내의 통행이 금지된다. 인적은 완전히 끊기고 도성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5경(새벽 4시)이 되면, 다시 33번 울리는 인경종에 성문이 열리고 통행이 시작된다. 이 그림의 시각은 3경이니, 통행금지 시간에 해당한다. 통행금지 시간에 사방등을 들고 젊은 두 남녀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어디를 가고 있는가. 두 사람은 부부인가. 부부라면 무엇이 아쉬워서 통행금지 시간에 길거리에서 만나겠는가. 이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닌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위에 인용한 시에 바로 이 그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다. 화제는 이 시기에 유행한 시조에서 따 왔다. 창외(窓外) 삼경 세우시(細雨時)에 양인심사양인지라 신정(新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장차 밝아온다 다시곰 나삼을 부여잡고 훗기약을 묻더라 삼경이라 한밤중이다. 창 밖에는 가랑비가 소리도 없이 내린다. 남자와 여자는 빗소리를 듣는다. 위 시조의 중장에 등장하는 신정(新情)이란 말은 새로 사귄 정이란 뜻이니,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단계다. 둘은 만나서 하룻밤 내내 사랑을 나누었다. 이내 날이 밝을 것이다. 남자는 떠나려 하니, 여자가 옷깃을 잡고 뒤에 만날 날을 묻는다. 시조는 원래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는 워낙 인기가 있었다. 조선후기의 웬만한 시조집에는 모두 실려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보다시피 남녀 간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토로하고 있기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 지낸 김명원의 일화 한데 이 시조의 사랑은 어떤 금지된 바를 범하고 있다. 삼경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밤은 밤이지만, 사람들의 활동이 완전히 멈추는 그런 시간은 아니다. 한데 남자는 날이 밝아올 것을 의식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다. 둘이 부부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금지된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조는 원래 한시를 다시 풀어 쓴 것이다. 한시는 다음과 같다. 삼경 깊은 밤 창 밖에 가는 비 내리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환정(歡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오니 다시금 나삼 잡고 뒷날 기약을 묻는다 窓外三更細雨時,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更把羅衫問後期 어떤가. 시조는 한시를 온전히 풀어서 다시 쓴 것이다. 시조로 풀어 쓴 사람은 알 길이 없지만, 한시를 쓴 사람은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를 지낸 김명원(1534∼1602)의 작품이다. 이 시를 쓴 김명원의 젊은 시절이 이 시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김명원은 젊은 시절 어떤 어여쁜 기생을 좋아했다. 이 기생이 권세가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생은 관청에 매인 계집종이기 때문에, 권력을 쥔 자가 예쁜 기생을 차지하고 다른 여자를 계집종으로 대신 넣는 일이 허다하였다. 김명원은 기생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해서 그 권세가의 집 담을 넘어 기생과 만나 통정을 하던 중, 발각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법은, 자신의 아내나 첩이 다른 남자와 통정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았을 경우 즉시 타살해도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죽일 요량으로 묶어 놓고 한참 분풀이를 하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김명원의 형 김경원이 달려와 자기 아우의 인물을 보라고 말한다. 요컨대 장차 나라에 크게 쓰일 인물이 아닌가, 제발 젊은이의 앞날을 위해 살려만 달라고. 김경원의 호소가 주효했던지, 주인은 망설이다가 포박을 풀고 술대접까지 해서 보낸다. 김명원은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로 공을 세우고 좌의정까지 지냈으니, 과연 형의 말과 같았다. 김명원의 일화가 이 한시와 관계가 있는지는 미상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담장을 넘고, 남편이 오기 전에 떠나야 하는 처지는 위의 한시와 여합부절로 들어맞는다. ●조선시대 남녀도 금지된 사랑을 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화제를 볼 때 이 그림의 여자와 남자는 역시 사회적으로 공인된 그런 사이는 아니다.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수줍어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남자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무슨 말을 건네고 있다. 남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관계, 금지된 사랑을 이 두 남녀는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은 합법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합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합법적인 것이라면 처녀 총각이 만나는 것이겠지만, 신윤복이 살던 시대에 양반가의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한밤중에 몰래 만나는 것은, 유가의 도덕이 금지하는 것이었다.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야말로 두 사람 다 결혼한 상태이거나, 한 쪽만 결혼한 상태일 것이다. 어느 쪽도 모두 비윤리적인 것이다. 불법적이건 비윤리적이건 사랑은 사랑이고, 연애는 연애다. 자유연애가 금기시되어 있었을 뿐 조선시대 남녀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인간이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의 방식이 지역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리 나타날 뿐, 사랑하는 감정과 남녀의 만남 자체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금기를 넘는 사랑의 행위는 얼마든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추관지’ 등의 사료에는 금지된 사랑, 곧 간통의 행위가 허다하게 실려 있다. 혜원은 그 금지된 사랑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절묘하게 잡아냈을 뿐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육군 헬기 추락] 추락 원인은 기상악화? 기체 결함?

    [육군 헬기 추락] 추락 원인은 기상악화? 기체 결함?

    육군은 이날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서 발생한 UH-1H 추락사고에 대해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인해 조종사가 산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힌 것 같다.”면서 기상악화에 따른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고 헬기가 40년이 넘은 노후기종이라는 점에서 기관 고장에 의한 추락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응급환자를 이송한 뒤 왜 사고헬기가 기상악화를 무릅쓰고 야간 비행을 강행했는지도 풀어야 할 의문점으로 떠올랐다. ●짙은 안개가 원인? 육군은 사고 당시 추락현장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고 밝혔다. 육군 관계자는 “사고 지역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흘러 평소에도 안개가 많은 지역”이라면서 “갑작스럽게 낀 안개로 인해 용문산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부딪쳤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사고현장이 헬기가 오전 1시9분 마지막으로 레이더상에 나타난 광탄비행장에서 불과 4∼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조종사가 용문산을 육안으로 식별하지 못하고 부딪혀 급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조종사인 신기용 준위와 부조종사인 황갑주 준위는 야간에는 물론 안개 속에서도 전방을 내다볼 수 있는 야시(夜視)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육군의 이같은 추정은 정비 불량에 따른 사고 가능성을 애써 축소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낳고 있다. 특히 신 준위는 조종사 가운데 최고 등급인 표준교관 조종사로,UH-1H기 비행기록만 2184시간에 이르는 베테랑인 점을 감안하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미군이 24년 쓴 것 들여와 이날 사고가 난 UH-1H기종은 1990년 이후에만 10번의 추락사고를 낸 군 인명사고의 주역이다.1968년 미국으로부터 처음 도입된 뒤 현재 육군에서만 12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 그동안 장비 노후 등 더이상 운용이 어렵다고 판단한 21대는 도태시킨 상태다. 사고 헬기는 미군이 1966년부터 사용하던 것을 1990년에 구매한 것이다.42년이 넘은 낡은 기종으로, 헬기의 수명을 30년으로 볼 때 이미 오래 전에 수명을 다한 셈이다. 육군은 기체 노후나 장비 불량에 대해 “2월1일부터 11일까지 통상적인 정비에서 이상이 없었고,2007년 10월 새 엔진으로 교체한 뒤 65.5시간을 비행했다.”고 맑혔다. 엔진의 평균 수명은 2400시간이다. 또 기상상태가 좋지 않은 한밤중에 헬기가 바로 부대로 돌아간 부분도 아쉬움이 남는다. 육군 관계자는 “조종사의 운행계획에 따라 이동한 것이며 임무를 마치면 부대로 복귀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로스쿨로 가는 길] 경희대학교-글로벌 통상·지적재산권 특화

    특성화 분야는 ‘글로벌 기업법무’로, 상법·민사법·국제법·비교법 등에 분산된 법 영역을 한 테두리 안에 통합시켰다. 국제통상 및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이나 로펌과 기업 내의 전문변호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다. 교육과정은 글로벌 기업법무를 4개의 트랙으로 나눠 운영한다. 즉, 글로벌 기업법무의 카테고리를 트랙별로 글로벌 통상법무, 글로벌 금융법무, 글로벌 기업조세법무, 글로벌 IT&IP법무로 세분화했다. 특성화별 특징을 살펴보면, 국제법무 특성화는 경희대 국제법무학의 전통과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의료법무 특성화는 경희대 한의대,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과 연계가 가능하다. 생명공학법무 특성화는 의료법과 지적재산권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영역 확대가 가능하다. 기업법무 특성화는 해외(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볼 때 가장 성공적이라는 점에서 전망이 밝다. 입학전형에서는 일반전형을 전·후기 2차례 실시하는 게 특징적이다. 두 가지 전형의 선발 요소나 기준을 달리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고, 특성화 목표를 더욱 적극적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제1단계에서는 법학적성시험(LEET), 영어능력(P/F),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객관식 영어시험, 학부 전학년 성적으로 모집인원의 400%를 선발한다. 후기 일반전형 제1단계에서는 그밖에도 제2외국어(불어, 독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공인성적 제출을 추가적인 지원자격으로 제시함으로써 특성화분야인 ‘글로벌 기업법무’에서 활동할 인재를 선발한다. 제2단계에서는 1단계 전형의 성적, 논술시험 성적, 자기소개서 및 기타 증명서를 통해 입증된 사회활동 및 봉사활동 경력, 학업계획서, 면접성적을 반영할 계획이다. 등록학생 가운데 등록금 전액장학금 수혜학생 비율을 최소 25% 이상으로 유지하고, 장학금총액의 80% 이상, 등록금수입총액의 16% 이상을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장학금으로 지급하도록 장학규정에 명시했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7) 일 하다 먹는 ‘들밥’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7) 일 하다 먹는 ‘들밥’

    장정이 7명, 젖먹이 어린애가 한 명, 더벅머리 꼬마가 한 명, 그리고 젖을 먹이는 아낙이 한 명이다. 뙤약볕에서 일을 했는지 장정 다섯은 웃저고리를 벗고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큼지막한 밥사발을 들거나 앞에 놓고 먹고 있는데, 가난한 살림이라는 것은 절로 짐작이 간다. 김홍도 그림 ‘들밥’의 왼쪽을 보면 두 사내가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반찬 그릇은 오직 하나다. 그림 중앙의 사내는 아예 반찬 그릇조차 없다. 모든 밥은 아낙네의 앞에 놓인 보자기를 덮은 방구리에서 나온 것이다. 장정 일곱의 밥이 방구리 하나에서 나오다니, 좀 쓸쓸하다. 방구리는 한쪽이 열려 있는데, 조심스럽게 보면 그릇을 담은 것이 아니라, 단일한 품목의 물건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내 눈에는 보리밥으로 보인다. 아닌가. 하기야 들밥에 무슨 음식의 종류가 있을까. 보리밥에 풋고추와 된장이면 족할 것이다. 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가 아닌가. 그래서 새참은 동시에 ‘술참’이 된다. ●김 매는 노동뒤에 배불리 먹는 포만감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편안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깔끔한 복장으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고 월급을 받는 것과, 저 땅 속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석탄을 캐는 노동으로 대가를 받는 것이 선택사항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양반들은 언필칭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곧 농민이 가장 고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식량은 인간의 필수적 생존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것일 뿐, 뙤약볕에 몸을 내맡기고 허리가 끊어져라 김을 매는 노동은 사실상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농사일은 엄청난 중노동이다.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농사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손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노동의 강도는 대단히 높고, 칼로리의 소모도 엄청난 것이다. 그 소모되는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이 들밥이고 새참이 것이다. 강희맹이란 분이 있는데, 한국한문학사에 꽤나 이름이 높은 분이다. 그 분의 저술에 ‘금양잡록(衿陽雜錄)’이란 책이 있는데, 농사일에 관한 책이다. 금양은 지금의 과천인데, 그는 한때 과천에서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고 나무를 심는 등 직접 농사일을 하여, 농사 제반에 대해 제법 알게 되었다. 강희맹은 먹물이었으니, 그는 또 먹물답게 거기서 얻은 지식을 ‘금양잡록’이란 책으로 엮는다. 책의 내용은 곡식의 종류, 농사짓는 법, 농민과의 대화 등등이지만, 뜻밖의 것도 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때 노래를 부르는데 듣고 보니, 괜찮다. 그래서 한시로 옮긴다. 이것이 ‘농구(農謳)’ 14편이다. 말이 길었지만, 여기에 ‘들밥을 기다리며’란 시가 있는 것이다.(‘농구’는 모두 14수다. 그 중 여덟 번째 작품이 ‘들밥을 기다리며’이다). 작품을 읽어보자. 큰 며느리 절구질 서둘러 작은 며느리 부엌으로 들어가자 푸른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고 주린 창자에선 우레 소리 울린다 들밥 기다릴 때는 호미 들 힘조차 안 남았네 남자들이 들에 나가서 김을 매고 있을 때 집안에서 부녀들은 들밥 준비에 바쁘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오로지 들밥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끼 밥을 즐겁게 먹기 위해 오전의 노동을 견디고, 한 끼 저녁밥을 즐겁게 먹기 위해 오후의 노동을 감내한다. 농사일은 강도 높은 노동이다. 새벽에 나와서 허리를 꼬부리고 계속 일을 하다가 정오 때가 되면 뱃속에서는 우레 소리가 울리고 호미 들 힘조차 남지 않는다. 드디어 들밥이 오고, 배불리 먹는다. 그 다음은 ‘배를 두드리며’란 작품이 이어진다. 광주리 향기로운 보리밥 아욱국 달디 달아 숟갈에 매끄럽게 흐르네. 어른 젊은이 차례로 둘러앉아 왁자지껄 밥 먹는 소리 요란하다. 달게 포식하매 속이 든든하니 배를 북처럼 두드리고 그저 흡족할 뿐 어떤가, 힘든 노동 끝에 배불리 먹고 흡족해 하는 농민의 심정을 느낄 수 있으신지. 전근대 사회는 농업사회이니 당연히 농사에 관한 한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런 한시 중에서 들밥을 내 가는 여성은 단골로 등장하는 제재다. 성종 때 관료로서 시인으로서 대제학 벼슬까지 했던 서거정의 ‘전가(田家)’란 시를 보자. 고사리나물을 반찬삼아 밥을 먹고 농담을 하며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봄비도 넉넉히 내렸다. 굳이 두레박으로 논물을 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여유 있는 풍경이다. 한데 들밥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고려 말 시인인 안축이 삼척 죽서루를 읊은 8수의 한시 중 ‘밭이랑에 들밥을 내어가는 아낙네’란 시를 보자. 아낙은 들밥 차리느라 자기 밥도 아니 먹고 새벽부터 마음이 논밭에 가 있네 점심나절 밭이랑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남편을 배불리 먹인 뒤 신이 나서 돌아오네. 남편은 꼭두새벽에 들로 나갔다. 한여름의 농사일은 너무나 고되다. 아내는 그 남편이 너무나 안쓰럽다. 그것을 생각하고 서둘러 밥을 지으며 정작 자신의 식사는 잊어버린다. 정오가 되어 서둘러 들로 나가 남편이 배 불리 먹는 것을 보고는 그제서야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앞서 들었던 서거정의 시보다는 현실에 훨씬 더 가깝다. 김홍도의 그림도 그렇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성의 표정을 보라. 자식에 대한 따스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먹이는 것은 인간의 생명의지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편 배불리면 굶어도 흐뭇한 아낙 그런데 이 시에 꼭 맞는 그림이 남아 있다. 역시 김홍도가 그린 ‘들밥 내가는 아낙네’라는 그림이다. 논에서 농부들이 김을 매고 있고, 그 아래에 아낙네가 머리에 밥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있다. 그 앞의 사내는 지게를 지고 있는데, 역시 먹을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조선후기 가사체 농서인 ‘농가월령가’를 보자.‘농가월령가’는 월령이란 말대로 달마다 농사꾼이 해야 할 일을 열거한다.6월령의 점심 먹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채운 뒤에 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구나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아마 이 부분은 김홍도의 그림과 흡사할 것이다. 점심밥의 내용물은 무엇인가.5월령을 보면,“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라고 했으니, 보리밥에 찬국에 고추장과 상추쌈이었던가 보다. 논문 실적이 개인 능력에 대한 야박한 평가가 된 요즘, 원고를 내놓으라는 독촉에 시달리며, 뜬금없이 다시 태어나면 들밥을 먹으며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근골을 움직여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정도로만 수확을 얻는다면, 나머지 시간은 그냥 놀다가 늙어지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욕심이 너무 과한가. 한국의 농업이 무너지고, 수천㎞ 바다를 건너온 식량에 목을 매고 사는 이 시대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 더욱 간절하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세잔 ‘붉은 조끼를’ 등 명작 무더기 도난

    스위스 취리히 한 개인 박물관에 10일(이하 현지시간)3인조 무장강도가 침입해 총 1억6500만달러 상당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훔쳐 달아났다. 영국 BBC 방송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의 에밀 뷔를르 콜렉션에 10일 무장강도들이 침입해 폴 세잔, 에드가 드가,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의 작품 등 1억 8000스위스프랑(CHF.1억6500만달러,1559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훔쳐 달아났다. 도난당한 미술품에는 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드가의 ‘레픽 백작과 그의 딸들’ 고흐의 ‘활짝 핀 밤나무’ 모네의 ‘베튈의 양귀비 들판’ 등 불후의 명작들이 포함돼 있다. 이 사건은 지난 20년동안 발생했던 세계 미술품 도난사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BBC는 덧붙였다. 취리히 칸톤(州) 경찰은 11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박물관측은 범인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경우 10만 스위스프랑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취리히 제8지구에 위치한 에밀 뷔를르 콜렉션는 취리히의 한 기업가가 만든 개인 박물관으로 수 많은 인상주의 작품들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박물관의 웹사이트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가 소장된 작품들의 핵심을 이룬다.”고 적혀 있다. 앞서 며칠 전에 스위스 동부의 한 문화센터에서 450만 달러 상당의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두 점이 도난을 당한 바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추재기이/조수삼 지음

    ‘‘내 나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 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했다.…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고본(古本) 경서(經書)였다.’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층의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고 존대하지 못하고,“내 나무!”라고 하대함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기이한 언행으로 장안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인물 71명을 소개한 ‘저잣거리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은 화가로 유명한 조희룡이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실은 ‘조수삼전’에서 그의 복 열두 가지를 들면서, 여덟 번째 복으로 담론을 들었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내 나무’에서 보듯 ‘추재기이’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돈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의 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전기(傳奇)를 읽어주는 늙은이를 그린 ‘전기수(傳奇)’의 주인공은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을 외워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초하루는 (청계천의)첫째 다리, 초이틀에는 둘째다리에 앉고,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청계천 4가 배오개다리 일대), 초나흘에는 교동 어귀, 초닷새에는 대사동 어귀,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는 식이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를 구경시켜 빌어먹는 거지와 거리에 앉아 소리를 하여 먹고 사는 장님 악사, 팔뚝만 한 검은돌을 맨주먹으로 깨는 차력사, 안경알을 가는 절름발이 노인 등 조선 후기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95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단독] 언제든 어디서든 석사의 길로

    [단독] 언제든 어디서든 석사의 길로

    중소기업 사장 A(42)씨는 외국으로 출장갈 때마다 꼭 노트북을 챙긴다. 인터넷에 접속해 MBA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이제 전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든지 대학원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따로 학교에 나갈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에겐 안성맞춤이다. 지방이나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도 온라인 대학원 강의의 인기는 뜨겁다. 정식 석사학위를 딸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아직까지는 경영대학원 온라인 강좌가 대부분이다. 성균관대 iMBA(www.imba.ac.kr)는 100% 온라인 강의로 진행된다.2주마다 담당 교수와 화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시험은 오프라인으로 치른다.5학기제로 운영되며, 학기당 6학점씩 졸업전 30학점을 따면 졸업할 수 있다. 전기(11월중)와 후기(5월중)에 각각 신입생을 뽑고, 모집인원은 200명이다.iMBA 김종욱 학과장은 “일주일에 2∼3일 학교에 나와 수업을 듣는 것이 힘든 직장인의 지원이 늘고 있어 최근엔 경쟁률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www.ajoumba.ac.kr) 온라인 프로그램은 최소 4학기 동안 48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정식 학위를 준다. 입학정원은 400명이다.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에게는 수업료의 20%(수석은 50%)를 장학금으로 주는 등 다양한 장학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의 한계점인 사이버상의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전담운영자를 배치, 일주일 단위로 학생의 학습현황을 1대 1로 관리해준다. 숙명여대 원격대학원(egrad.sookmyung.ac.kr)은 향장미용(화장품), 원격교육공학, 영·유아 교육정보, 실버산업, 아동문화 콘텐츠 등 5개 전공을 두고 있다. 입학정원은 200명이다. 역시 정규석사 과정으로 5학기 과정이며,4학기만에 조기졸업을 신청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진학이 가능하며, 주임교수와 사전에 약속한 뒤 전화면접을 통해 입학이 결정된다. 대학원 과정이라 남자도 입학할 수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종로 청소년구정평가단 운영

    종로구는 청소년들이 구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3회 청소년 구정평가단’을 뽑는다. 21일 구에 따르면 이들은 ▲학교 주변 환경 개선사항 ▲교통안전 분야 ▲공원, 체육시설 등 청소년이 자주 이용하는 각종 시설물 관리 분야 ▲각종 광고물, 쓰레기 처리 등 도시미관 저해 요인 ▲주변 여론 청취 ▲직원의 대민 친절도 등 구정활동에 대한 모니터링뿐 아니라 학교 주변의 유해한 환경, 일상생활과 관련된 주변 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게 된다. 구는 청소년들의 지적사항을 적극적으로 구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구정평가단은 매년 겨울방학에 합동토론회를 열어 활동 내용과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 결과를 설명하고 우수사례와 체험 후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평가단 활동 학생에게는 참여 정도에 따라 1건당 1시간씩 자원봉사활동시간도 인정 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연경, 담배의 모든것/안대회 옮김

    ‘서울 사는 귀족집 자제들은 그저 담배를 피울 줄만 알지, 담배씨를 심고 잎을 거두며 뿌리를 북돋고 키우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전혀 모른다. 그러고서야 옥같이 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곡식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옥(李鈺·1760∼1815)은 ‘연경(烟經)’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옥은 18세기 조선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주도하여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는 불우한 생애를 보냈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시경’도,‘서경’도 아닌 ‘연경’이라니…. 담배 이야기를 경전으로 떠받들어 놓은 이옥의 문학적 상상력이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조선시대 담배에 관한 최고의 저작으로 꼽히는 이옥의 ‘연경’을 중심으로 담배에 관한 글을 한데 모은 18세기 조선의 흡연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연경’은 영남대도서관에 필사본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가 몇 해 전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전면적 분석을 가해 자신이 관여하는 한국학 잡지 ‘문헌과 해석’에 원문을 영인해 소개했다. 그러자 KT&G가 재빨리 나서 ‘연경’의 전체 번역을 사보에 연재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금연운동으로 담배의 입지가 축소되어 가는 마당에 ‘연경’이 펼친 담배 예찬론은 담배 제조 회사로서는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내친김에 안 교수는 조선 후기 담배와 관련되는 각종 문헌자료를 뒤지다 보니 아예 한 편의 조선후기 담배 문화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연경’의 가치는 한 편의 재미있는 저작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안 교수는 설명한다. 안 교수는 “이옥은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면서 “‘연경’은 당시 우리 학술계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1만 4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오는 겨울, 어머니에게 조끼를

    오는 겨울, 어머니에게 조끼를

    미국의 베스트(Vest), 영국의 웨이스트 코트(Waist Coat), 프랑스의 질레(Gilet)와 우리 한복의 배자(背子)에 있는 공통점은 뭘까요? 답은 우리가 그것을 ‘조끼’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 옷들은 모두 길이가 짧고, 몸에 맞고, 소매가 없는 윗옷입니다. 조끼는 처음에는 군인들이 군복 안에 입는 몸을 보호하는 옷이었는데 지금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평상복으로 변모를 했습니다. 조끼를 한자로 표현하면 동의(胴衣)라 합니다. 동(胴)은 ‘몸통’이란 뜻을 가지는데 동의란 몸통부분에 맞는 옷인 것입니다. 조끼는 신사복을 완성하는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성인 남자들의 보편적인 신사복을 슈트(Suit)라 하는데, 상의와 바지 그리고 조끼로 구성됩니다. 남자들이 조끼를 입은 모습도 멋이 있지만 그러나 조끼는 남자들만의 옷은 아닙니다. 조끼는 남녀가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이며 남녀가 같이 입어온 옷입니다. 그런 조끼의 성격은 우리 한복의 배자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한복에서 배자란 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추가 없는 조끼 모양의 옷을 말합니다. 마고자와 비슷하지만 소매가 없는 옷입니다. 우리의 조끼인 배자는 조선후기까지 남녀가 같이 입었는데 지금은 여자들의 겨울철 옷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물들고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저는 조끼를 입는 즐거움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을이 시작되면 서둘러 퀼트 조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옷은 입는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조끼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옷입니다. 그 때쯤 퀼트 조끼만이 주는 특유한 따듯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퀼트(Quilt)는 라틴어 Culcite, 즉 ‘속을 채운 봉투’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에서는 겉감(Top)과 솜(Batting), 안감(Backing)을 순서대로 누빈다는 뜻인데, 이것은 천을 보강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온의 효과가 있습니다. 1903년 이집트 파라오 조각상에서 옷을 누빈 자국이 엿보이는 퀼트라인이 발견됐습니다. 이는 퀼트의 역사가 6천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적 의미의 퀼트는 유럽에서 시작했으나 미국에서 발전을 했습니다. 오늘 날 전 세계 퀼트계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아메리카 퀼트’의 역사는 1620년 영국으로부터 청교도 102명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65일의 항해 끝에 매사추세츠의 프리모스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생활이 곧 삶과 죽음의 싸움이었던 신세계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자투리 천을 가능한 크게 이어 붙여 이불과 매트, 옷 등 생활필수품을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필요’가 퀼트라는 예술을 만들었습니다. 옷이 아름다운 것은 생활이면서 예술인 것입니다. 퀼트 조끼를 만들면서 옷의 완성과 동시에 예술적인 성취감을 동시에 느껴봅니다만 저는 퀼트 조끼를 만들면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퀼트가 완성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가난이 어머니의 바느질을 완성시켰습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의 옷을 두툼하게 누비던 어머니의 바느질을 기억합니다. 낮에는 고단한 논일 밭일을 하시고 밤이면 호롱불 아래 바느질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우린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누비다’라는 동사를 좋아합니다.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죽죽지게 박다’라는 뜻이며, 그 말에서 호롱불이 만드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가난을 누벼 줄이 죽죽지게 난 그 바느질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퀼트 조끼를 만드는 일은 자연스런 천의 감촉과 색의 조화,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정교한 바느질로 섬세한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어머니의 바느질을 추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평생 남루한 인생에 오직 자식사랑을 덧댄 바느질로 이젠 인생의 11월을 맞으신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 퀼트 조끼를 입혀 드리고 싶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시겠지만 어머니란 거룩한 이름 앞에서 세상 그 무엇이 화려하고 빛난다고 말하겠습니까? 곧 먼 북쪽에서는 첫눈이 내릴 것이고 서서히 추워지는 계절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가장 화려하고 따뜻한 퀼트 조끼를 입혀 드리고 싶은 시간입니다. 준비물 : 각색 쟈가드 원단(겉감용), 얇은 퀼팅솜 90cm, 안감용 원단 90cm, 리본 5m, 단추 《 만드는 법 》 ① 조끼 본을 마련한 다음 적당한 모양으로 선을 긋고 쟈가드 원단으로 오른쪽과 왼쪽 느낌을 살려서 배색한다.(사진1) ② 원단에 모양대로 재단한 다음 순서대로 바느질한다. ③ 칼라와 퀼팅솜 안감도 모두 바느질하고 옆선과 어깨를 바느질한다.(사진2) ④ 칼라 겉감과 퀼팅솜을 포개놓고 완성선 따라 시침하고 리본을 셔링 잡아 칼라에 핀 고정하고 그 위에 뒷감을 얹어서 바느질한다.(사진3) ⑤ 조끼 몸판도 칼라처럼 겉감과 퀼팅솜을 고정한 후 리본 셔링을 잡아서 완성선 따라 시침 후 바느질한다. 조끼에 리본을 마무리할 때 깔끔하게 한다.(사진4) ⑥ ⑤의 뒤판 겉감 위에 목 중심에 칼라 중심을 맞추어 핀 고정하고 완성선 따라 시침하고 바느질하여 안감 쪽 옆선으로 뒤집는다. ⑦ 뒤집어서 살짝 다림질하고 매무새를 잘 만져서 다듬는다. 뒤집은 곳을 마무리한다. ⑧ 라인을 정하고 퀼팅한다. ⑨ 앞홀 라인 따라 시침하고 바느질한다. 실은 원단 색깔과 맞춘다.(사진5) ⑩ 단추 구멍을 만들고 단추를 달아 마무리한다.(사진6) 글 최혜열 :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하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보자기와 자수를 배웠다. 1991년 퀼트에 입문해 숙명여대 퀼트최고지도자 과정을 다녔고 미국과 일본의 퀼트전시회에 참여했다. 저서로《퀼트가 있는 우리집 풍경》(공저)이 있다. 현재 한국아트퀼트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5)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5)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정확한 형성 연대를 알 순 없지만 대략 신라 흥덕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말기 승려 도선이 우연히 이인을 만나 세상사를 물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모래 위에 삼국도(三國圖)를 그려 삼국통일의 징조를 암시해 주더란다. 도선이 이에 크게 깨달아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란 뜻의 ‘사도리’란 이름을 얻었고, 일제 때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각각 상사리와 하사리로 구분해 나누었다. 지리산 노고단(1507m) 남녘 기운을 고스란히 받고 선 윗마을 상사는 구례군내는 물론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장수마을로 꼽힌다.1986년 인구통계조사 결과 국내 제1의 장수마을에 선정된 적도 있을 정도다. 상사마을 사람들의 장수비결은 ‘지리산 약초 뿌리가 녹아 있다’는 조그만 샘물 ‘당몰샘’에 있다.1980년대 중반 모 대학 예방의학팀의 수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한 마리도 검출되지 않아 최상의 물로 진즉에 판명 받았고,2004년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전국 10대 약수터 중 하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이 마을 토박이 의성 김씨 선조가 조선 후기 명당을 찾아 전라도 땅을 헤매다가 당몰샘을 발견, 물을 저울에 달아보았더니 다른 곳보다 무겁고 수량도 풍부해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는데 실제 동량의 수돗물보다 이 샘물의 무게가 더 나간다. 지난해 SBS-TV의 의뢰를 받아 전남보건환경연구원이 시행한 수질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미네랄 성분이 유독 많이 함유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100세를 넘긴 분이 계셨고 90대 분들도 여럿 되었지만 지금은 모두 작고했고 현재는 88세의 황영복 할아버지와 동갑내기 황금숙 할머니가 마을 최고령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들 오환수(65)씨와 살고 있는 황금숙 할머니는 구한말 애국지사 매천 황현의 증손녀이다. 아들 오씨는 하루 종일 담장을 손보는 일로 분주하다. 길가에서도 툇마루에 누운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담을 이어 쌓고 옆으로 새 출입로를 내는 중이다. 상사마을에 뿌리내린 지 57년된 모자의 집은 인근 오미리 시절부터 치자면 무려 300년도 넘는 고택이다. “군에서는 이 마을을 한옥문화촌으로 지정할 모양이에요. 저희 집을 포함,10여호의 한옥이 잘 보존돼 있고요.3월부터는 군 지원 하에 열두 채의 한옥이 더 지어질 예정입니다. 당몰샘 옆의 ‘쌍산재’는 5대가 함께 살았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종손만 거주 중이고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활용 중이지요.” 마산면 일대에서 가장 많은 농지를 갖고 있는 곳이 상사라지만 20여년 전부터는 논농사 외에도 녹차 재배가 한창이다. 아직까진 찻잎을 재배해 타 지역에 판매하는 게 전부인데 상사마을 이름을 건 제품이 출시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당연히 농약은 일절 살포하지 않은 무공해 찻잎이다. 상사마을엔 그 흔한 역병도 없었고,‘산손님’으로 통하던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서 시달린 일도 없었으며, 몹쓸 흉년도 없었다. 오환수씨는 그게 다 당몰샘 덕분이라고 믿는다. 돌아가신 백부로부터 그렇게 듣고 자라기도 하였다. 처음 60여호쯤 살았던 곳에 하나 둘 외지인이 들어와 최근엔 13호쯤 가구 수가 늘었으니 그것도 당몰샘의 신기한 기운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을 가득 담아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따라 당몰샘은 오늘도 전국 각지로 지리산 생명력을 고루고루 흩뿌리고 있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고,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구례에선 화엄사 방향을 따르다 청천초등학교 옆길로 우회전한다. 중간중간 쌍산재 이정표가 보인다.
  • 문근영, ‘바람의 화원’으로 5년만에 안방 컴백

    ‘국민 여동생’ 문근영(21)이 ‘남장 여자’로 5년만에 안방에 컴백한다. 문근영의 소속사 나무액터스는 “문근영이 올 하반기 방송을 시작할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을 하고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 신윤복을 연기한다.”고 밝혔다.20부작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지난해 출간된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3월 중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 엿보기와 남성의 성적 시선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 엿보기와 남성의 성적 시선

    그림 두 폭이다. 먼저 성협의 그림 ‘길거리에서 기생을 엿보다’를 보자. 길을 가는 두 여인이 쓰고 있는 누런 모자는 전모다. 요사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기생이 전모를 쓰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기생이나 첩 등 신분이 천한 여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유옥교, 즉 뚜껑이 있는 가마를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전모를 썼던 것이다. 왼쪽 여자가 전모 아래 쓰고 있는 흰 방한구 역시 내력 미상이다. 아얌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폭이 너무 넓다. 오른쪽 여자가 전모 아래 쓰고 있는 것들은, 추측컨대 두꺼운 방한용 모피 위에 가리마를 쓴 것이 아닌가 한다. 가리마는 원래 의녀들이 쓰는 것이지만, 조선후기에 와서 관기들이 의녀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쓰게 된 것이다. 이 그림에 적힌 시를 보아서도 알겠지만(시는 뒤에 소개한다), 이 두 여성은 기생으로 보인다. ●점잖은 선비의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 왼쪽의 남자는 도포를 입은 점잖은 선비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차면(遮面), 혹은 사선(紗扇)이라는 것이다. 내외를 해야 할 때, 예컨대 상주가 나다닐 때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이 남자가 상중에 있었는지는 미상이지만, 꽤나 내외를 엄격히 따지는 인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데, 어떤가. 이 자는 차면 위로 눈을 내밀고 두 기생을 곁눈질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오른쪽에 서 있는 기생은 남자의 눈길에 불쾌했는지 고개를 돌리고 있다. 곁눈질하던 점잖은 남자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그림에 쓰인 시를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사람을 대하고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바삐 돌리더니, 화장 짙은 얼굴로 살짝 웃다 찌푸리네. 한밤중 강가 누각에서 춘정이 바다같아, 휘장을 내린 뒤에 스스럼없이 귀고리를 푸는구나”(對人無語轉頭忙,淺笑輕嚬滿面粧.午夜江樓春似海,低不惜解明)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보니 여자가 얼굴을 획 돌린다. 그러다가 온통 다 화장을 한 그 얼굴로 살짝 웃더니 또 살짝 찌푸린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자, 강가의 기생집에 봄이 완전히 깃들었다. 휘장을 내리고 여자가 스스럼없이 귀고리를 푼다. 말하자면 이 시는 기생과의 하룻밤을 간절히 원하는 남자의 속내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그림과 시는 보다시피 남성의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너무나 흥미로운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차면이다. 차면은 곧 도덕적 장치다. 눈길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 시선에 들어오지 않게 막는 장치다. 하지만 성적 욕망은 차면을 넘어 여성을 향하고 있다. 길 가던 남성이 여성을 계속해서 곁눈질하는 것이 큰 실례가 되는 것은 예나 오늘이나 같다. 더욱이 이 남자는 점잖은 양반이 아닌가. 또 상대방 여성은, 양반으로서는 길거리에서 눈길을 주거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여성에게 눈길을 주는 것조차 비례이거니와, 상대는 사대부들이 언필칭 더럽다고 하던 직업(기생)의 여성이 아닌가. 조선시대 기생에 대한 도덕적 눈길이 어떠했는지 적절한 사례가 있다. 율곡 선생의 친구였던 성혼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정철의 아들 정홍명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율곡, 정철, 성혼이 이희삼이란 사람의 집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당대의 명창 기생 석개를 불러 노래를 시켰더니, 성혼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고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째째하기는!). 성혼의 행동은, 성리학의 윤리도덕을 따른 것이다. 그 윤리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 외의 모든 여성과의 접촉은 금지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윤리교과서였던 ‘소학’을 보자. 저 유명한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이 되면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뜻의 남녀칠세부동석은 다름 아닌 ‘소학’에서 나온 말이다.‘소학’은 남성과 여성의 접촉 자체를 엄금한다. 몇 부분을 보자.“남자는 가정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바깥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제사나 상사가 아니면 그릇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릇을 주고받아야 할 때면, 여자는 광주리에 그릇을 받고, 광주리가 없을 경우 남자와 여자가 모두 앉은 뒤 남자가 땅에 그릇을 놓은 뒤에 여자가 가져간다.” 어떤가. 남자와 여자는 결코 물건을 직접 건네서는 안 된다. 이런 조항도 있다.“안과 밖은 우물을 같이 사용할 수 없고, 욕실을 같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우물을 사용할 수 없고, 욕실도 공동 사용불가다. 철저한 남녀 분리다. ●인간의 욕망은 바닥 없는 독 이 분리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근원적으로 성적인 관계라는 데 바탕을 둔 것이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접촉은 합법적 관계, 곧 결혼에 의한 성관계 이외의 성관계가 맺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포한다. 이 우려는 과도한 것이지만, 일면의 진실은 없지 않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욕망은 바닥이 없는 독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성욕 역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성욕은 자신의 충족됨을 위해 자신의 숙주-인간 자체까지 파멸로 몰아넣는다. 절대권력을 보유한 군주들이 성욕의 충족을 끊임없이 추구하다가 결국 자기 권력의 기반인 국가를 붕괴시켰던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욕은 감시와 억압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보통은 윤리도덕이란 이름으로 감시되거나 억압된다. 한데 이 윤리도덕은 또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윤리도덕은 모든 인간에게 초월적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적 속성을 내포한다. 즉, 윤리도덕은 그 윤리도덕을 제작하는 주체의 이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가부장제 사회였다. 가부장제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기초로 출발한다. 그것은 남성에게 여성은 성적으로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해 남성-여성의 관계에서 남성의 성적 이익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성욕은 여성에 비해 확실히 자유롭다. 다만 가부장제의 권력 이면에는 기묘하게도 그늘진 구석이 있었다. 가부장제가 진리화한 사회에서 남성은 먼저 자신을 윤리와 도덕으로 의식화해야 했다. 즉, 윤리도덕의 실천자임을 먼저 보여주어야 했던 것이다. 성혼이 기생을 초청한 것을 보고 벌떡 일어선 것은 바로 남성 스스로가 윤리도덕의 실천자임을 과시하는 행위다. 한데 그 실천은 성혼이나 조광조처럼 소수의 별스러운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인간은 도덕이 가하는 압력과 욕망의 아우성 사이에서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곧 도덕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성적 욕망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차단하려 하지만, 성적 욕망은 어느 사이에 그 차단선을 넘어 여성으로 향한다. 도덕의 감시로 욕망을 잠재우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 도덕의 감시는 욕망의 분출을 동반한다. ●남의 아내까지 엿보는 남성의 은밀한 욕망 이것을 김홍도의 그림 ‘길거리에서 남의 아내를 훔쳐보다’로 다시 확인해 보자. 한 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소를 타고 있고, 그 뒤에 복색을 보아하니 양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아이를 업고 따르고 있다. 문제는 길 건너편의 말을 타고 가는 남자다. 역시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남의 여자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성협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기생이었다. 조선시대 말로 하자면, 노류장화다. 길거리의 버들이요, 담장의 꽃이다. 누구나 보고 꺾어도 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남의 아내다. 남의 아내까지 엿보는 것이 남성의 저 내면의 욕망이다. 단원의 그림은 그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중이다. 길거리의 곁눈질이 사랑이 된 경우도 있다. 이옥의 소설 ‘심생’에서 심생은 우연히 길에서 본 젊은 처녀를 잊지 못한다. 수소문하여 처녀의 집을 찾아가 곡절을 겪은 끝에 처녀와 사랑에 빠져 잠자리를 같이 한다. 여자가 심생의 존재를 부모에게 알리자, 부모는 결혼을 허락한다. 하지만 심생의 집에서는 심생을 과거공부를 하라고 절로 올려 보낸다. 연락이 끊어진 얼마 뒤 여자는 심생에게 유서를 보내고 자살한다. 길에서 만나 이루어진 사랑이었으되, 비극적 결말의 사랑이었다. 길거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성욕의 시선이다. 그 시선의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란 거룩한 이름으로 부른다. 성협과 단원의 그림이 보여주는 남성의 엿보기는, 무언가 부도덕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절절했던 심생의 사랑의 단초일 것이다. 아니 그런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박지원 친필글 담긴 문집 ‘영대정집’ 발견

    박지원 친필글 담긴 문집 ‘영대정집’ 발견

    조선후기 대표문인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이 문장 유형을 남녀 사랑에 빗대어 쓴 친필글과 글이 포함된 필사본 문집이 발견됐다. 단국대 사학과 김문식 교수는 13일 “학교에 소장된 연민(淵民) 이가원 선생의 기증도서 ‘연민문고’에서 연암의 산문 23편을 선별·편집한 ‘영대정집’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영대정집이 건(乾), 곤(坤) 2책으로 연암 집안에서 소장한 것임을 보여주는 ‘연암산방’도장이 찍힌 희귀한 판본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암은 영대정집 서문에서 “남녀간 사랑에 세 가지 형식이 있듯 문장에도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절세미인과 만나 눈짓으로 나누는 사랑. 그러나 연암은 이는 군자와 숙녀의 만남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번째 사랑은 귤을 던지거나 작약꽃을 주며 남자와 장난을 치는 여인과의 사랑이나 그는 정숙한 사람은 이런 여자를 보면 토할 지경이라고 썼다. 세번째 사랑은 산골 마을에 사는 늙은 농부가 키운 처녀와 보리 열 가마를 수확하는 농부집 아들과의 사랑이다. 연암은 슬픔이나 즐거움이 극에 달하지 않는 시골사람다운 사랑이 문장의 유형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대장금 보고 희망 찾았어요” 印 수감자 방송사에 감사엽서

    “대장금의 인물들은 나와 동료가 삶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 인내심을 갖고 심각한 상황에 맞설 수 있게 힘을 주었습니다.” 인도 교도소의 한 수감자가 MBC에 보내온 엽서의 내용이다.MBC는 9일 “나렌드라 쿠마 샤마라는 인도의 수감자가 최근 ‘대장금’ 시청 후기를 보내왔다.”며 내용을 공개했다. 이 엽서에 따르면, 나렌드라 쿠마 샤마는 삶을 비관해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해 반복적인 자살 시도 행위를 금지한 인도형법에 따라 인도 북부 암발라 교도소에서 3년째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그는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매주 ‘대장금’을 시청하게 됐고, 드라마에서 주인공 장금이가 시련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의미와 용기를 되찾았다고 전했다. 그는 “인물들이 겪는 힘든 상황과 비교하면 내 문제는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드라마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장금’은 아시아뿐만 아랍어권 및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 여성이란 성욕의 주체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 여성이란 성욕의 주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욕망은, 존재욕이다. 존재하려는 욕망, 곧 살아 있고자 하는 욕망이다. 존재욕은 다시 두 가지 욕망을 구체화된다.‘예기’는 이렇게 말한다.“음식과 남녀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음식을 먹는 것과 남녀관계, 곧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다. 아니, 그 욕망이 곧 인간이다. 인간은 식욕과 성욕의 구성물인 것이다. 식욕이 없다면, 인간 개체는 소멸한다. 성욕이 없다면 종으로서의 인간이 소멸한다. 그런 까닭에 식욕과 성욕은 인간을 성립시키는,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 욕망이다. 식욕은 음식과 인간 개체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이다. 이에 반해 성욕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이다. 그리하여 성욕은 보다 복잡한 욕망이 된다. 또 인간 개체가 소멸해도 인간이 남을 수 있는 것은 성욕 때문이다. 성욕이야말로 어떤 억압에도 사라지지 않는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것이다. 이제 그림 두 폭을 보자. 혜원 신윤복의 그림 ‘서생과 아가씨’의 왼쪽에 고운 아가씨가 기둥에 기대어 있고, 유건을 쓴 서생은 시선을 한 곳에 모으고 단정히 앉아 있다. 젊은 두 남녀는 서로 아는 사이인가? 선비가 아가씨를 불렀던가. 아닐 것이다. 선비가 아가씨를 불렀다면 저럴 수가 없다. 아가씨가 사모하던 선비를 찾아간 것이다. 또 다른 혜원의 그림 ‘영감님과 아가씨’에서는 몸을 돌린 아가씨를 안경을 쓴 초로의 남자가 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다. 여자의 인기척에 내다본 것일 게다. 둘 사이의 은밀한 사연이야 알 길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 관계라는 것은 쉬 짐작할 것이다.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조합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개인간의 합의의 결과라면, 누가 무어라 할 것인가. 어쨌건 위의 그림에는 성적인 아우라가 감돌고 있다. 때는 조선시대다. 우리는 여자가 흠모하는 남자를 직접 찾아간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과연 그럴까. 잘 알려진 어우동을 생각해 보자. 어우동은 수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로 사형을 당한다. 이것이 죽을 죄가 된다면, 왕이 여러 명의 후궁을 거느리는 것은 왜 죄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탐식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비난할 수는 있어도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우동이 미움의 대상이 된 것은, 직접 나서서 남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어우동은 욕망의 주체였던 것이다. 남성의 가부장적 욕망은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한데 조선 초기의 ‘실록’을 읽어 보면, 어우동과 마찬가지로 성적 주체로 행동한 여성이 적지 않다. 기록에 남지 않은 여성들은 더 많았을 것이다. 흔히 어우동 사건을 똑 따내어, 어우동을 성리학이 강요한 도덕의 억압에 항거한 최초의 여성으로 보지만, 그건 아니다. 어우동의 시대에 성리학의 도덕적 족쇄는 막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이다. 해서 여성은 남성을 찾아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다. 어우동은 그저 그 시대의 사랑의 문법을 따라 과감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어우동은 결코 여성해방론자가 아니다. 이 시기 여성이 사랑에 적극적일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조선은 1392년 성리학을 국가이데올로기로 삼아 건국되었지만, 건국 즉시 모든 인간이 성리학에 의식화되지는 않았다. 양반-남성은 고려의 국가권력을 찬탈하고 성리학을 국가이데올로기로 삼는 국가를 건설하고, 이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 인간과 사회를 성리학으로 길들이고자 했지만, 그 과정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여성과 남성의 위상 조정이었다. 어우동이 살던 시대의 결혼제도는 남성이 여성의 집에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처가살이혼이었다. 남성이 처가에서 살고 아이들이 외가에서 성장하는 가족제도 하에서 가부장적 권력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 있겠는가. 사회는 가부장제 사회인 것은 분명했지만, 가부장제의 관철 강도는 상당히 미약했던 것이다. 처가살이를 시집살이로 바꾸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고,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친 뒤인 17세기 중반에야 본격적으로 시집살이혼이 시작되었다. 여성이 남성의 본격적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랑의 형태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결혼 전에 자신이 바라는 남성을 만날 수 없었고, 결혼 뒤에는 남성의 집안에 유폐되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음란한 일로 치부되었다. 중종조의 인물인 조광조의 경우를 든다. 그의 옆집에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신랑이 사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과부가 된 여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홀로 지내는데 옆집의 미남 조광조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끓어오른 춘정에 여자는 담을 넘어 그 남자에게 남녀 음양의 이치를 알려달라고 애걸한다. 그 젊은 도덕군자는 절개를 지켜야 할 여자가 음란한 짓을 한다면서 종아리를 쳐서 쫓아낸다. 내쫓긴 여자는 돌아가 수치감에 목을 맨다. 자초지종을 들은 조광조의 아버지는 어찌 그리 야박한 짓을 했느냐고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지만, 무슨 소용인가. 조광조는 중종조의 사람이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자.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이행하면서 조선 후기의 가부장제는 보다 강고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의 성을 출산과 쾌락으로 분리했으며, 후자에 부도덕의 굴레를 씌웠다. 여성이 쾌락과 관련된 성욕을 추구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다. 아니, 상상하거나 말하는 것도 모두 부도덕한 일이었다. 이제 성욕의 발현 형태로서의 사랑 역시 모습을 바꾼다. 여성은 남성이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춘향을 찾은 것은 이도령이었고 춘향이 아니었다. 옥에서 낭군을 기다린 것은 춘향이고, 그 춘향을 구원하는 것은 이도령이다.‘춘향전’은 불변의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기다리는 여성과 찾아가는 남성, 고난에 빠진 가련한 여성과 그 여성을 구하는 씩씩한 남성의 이야기다. 그 사랑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적 사랑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랑도 여성의 성적 주체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었다.‘기문습유’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서울 용산에서 물건을 수레로 옮겨주는 수레꾼이 있었다. 어느 날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데, 누가 부른다. 보니 젊은 여성이 좀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들어가 수작을 해 보니, 남편은 별감인데 숙직하러 갔단다. 수레꾼이 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남편이 짬을 내어 돌아와 아내를 품으려는 것이 아닌가. 수레꾼은 놀라 숨었고, 여자는 쌀쌀 맞게 남편을 거부했다. 숙직소를 오래 비워둘 수 없는 남편이 떠나자, 여자는 다시 수레꾼을 불러내어 황음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황홀경에서 벗어난 수레꾼은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또 생각해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음란한 여자가 아닌가. 내친 김에 죽이고 말았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그 여자의 남편이 지목받아 죽게 되었다. 수레꾼은 우연히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여자의 남편을 보고, 관에 출두해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다. 관에서는 음부를 죽이고 억울한 사람을 살린 의인이라고 해서 죄를 면하고 상을 내린다. 나는 이 여성의 부도덕함을 말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끌어온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여성 역시 성욕의 주체임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성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성적 주체라고 생각한다. 한데 과연 그럴까. 무엇이든 일반화는 위험한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욕은 인간 자체이기 때문에, 성욕의 봉쇄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성리학은 여성의 자기 성욕과 사랑의 주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담론을 진리처럼 유포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도덕적 담론의 존재가 곧 리얼리티는 아니다. 그렇다 해서 도덕적 담론이 없는 리얼리티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도덕적 담론과 욕망이 맺는 그 관계에 우리가 보고자 하는 성의 리얼리티가 존재할 것이다. 성욕은 윤리와 도덕을 초월해 존재하며, 도덕의 완강한 족쇄에도 성욕은 언제나 틈을 비집고 나온다. 그 모습을 위의 두 그림이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2008 글로벌 이슈] (3) 흔들리는 테러와의 전쟁

    [2008 글로벌 이슈] (3) 흔들리는 테러와의 전쟁

    미국이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야심차게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이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 신년 메시지를 통해 새해에도 테러와의 전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을 다짐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7년째 별 소득없이 돈만 쏟아부어 이런 분석이 가능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이 7년째 접어든 지금까지 미국이 얻은 소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먼저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는커녕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빈 라덴은 은신처를 계속 옮겨가며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미국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빈 라덴이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한 테러와의 전쟁은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또 하나,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미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을 넘겨주길 거부했다는 이유로 2001년 10월8일 아프간을 침공했다. 침공 한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하미드 카르자이를 내세워 친미정권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무장세력이 완전히 부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활동하던 탈레반은 세력을 넓혀 수도 카불 부근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반면 카르자이 정권은 영향력이 수도에만 미치는 ‘반쪽 정권’으로 전락했다. ●파키스탄 정세·이라크전 후유증도 악영향 더불어 대테러전쟁의 강력한 배후기지이며 미국의 동맹국인 파키스탄의 정정도 극도로 불안해졌다. 급기야 지난해 12월27일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되면서 정국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민주주의 회복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총선도 6주나 연기됐다. 국민적 인기가 높은 부토와 친미성향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 간의 연대를 통해 파키스탄을 대테러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구촌 호령하려다 도리어 ‘테러´ 에 발목 끝으로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 2003년 침공한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친미 성향의 과도정부를 세웠지만 미국이 기대했던 체제 안정은커녕 테러가 일상화된 무법천지의 나라로 변한 지 오래다. 이미 이라크전은 실패한 전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힘의 논리를 내세워 지구촌을 호령하려던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부메랑이 돼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라스코 동굴벽화 곰팡이 논란

    라스코 동굴벽화 곰팡이 논란

    |파리 이종수특파원|대표적인 선사시대 유물인 프랑스 도르도뉴 지역 라스코 동굴 벽화의 곰팡이 제거 작업이 7년째 접어든 가운데 효용성 공방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 더 타임스는 2일 라스코 동굴 벽화의 복원 작업을 둘러싸고 그동안의 작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프랑스 당국과,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검증받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학자들의 갈등이 재연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구석기시대 후기인 1만 5000∼1만 7000년 전 그려진 암각화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 벽화는 사실적인 묘사로 ‘선사시대의 시스티나 벽화’로 불리는 걸작품이다. 현재 프랑스 당국은 진균제를 뿌리는 등 오는 8일까지 곰팡이를 제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3개월 동안 허가받은 극소수 외에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당국은 “지금은 벽화의 극히 일부에 곰팡이가 번식했으며 상태도 심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프랑스 당국이 국제적 여론을 의식해 오염 정도를 축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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