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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1·끝) 풍속화를 읽어보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1·끝) 풍속화를 읽어보자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어떤 방향의 선분이냐에 따라 그 점의 의미도 달라지는 법이다.즉 보는 시각에 따라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예컨대 갑과 을의 재산이 각각 5억이라 해도,갑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어서 지금 5억이 되었고,을은 무일푼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노력을 재산을 계속 불려 지금 5억이 되었다면,그 5억의 의미는 판연히 다를 것이다.즉 외면적으로 동일하게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그 현상을 어떤 컨텍스트에 놓고 읽느냐에 따라 그 현상의 의미는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선분을 긋느냐에 따라,즉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으레 전문적인 회화사 연구자들이 하는 것처럼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그림의 구성과 색채,테크닉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이제까지 알려진 정통적인 감상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풍속화 감상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그림을 읽는 선분은 여럿이라고 했다.곧,풍속화는 풍속을 그린 그림이니만큼 ‘풍속’이란 선분 위에 그림을 놓고 그 의미를 읽어내고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 ‘입맞춤´에 나오는 사내의 정체는? 현재가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리면,과거가 된다.과거는 다시 복원할 수 없다.요즘이야 사진과 영화,TV 등의 이미지 자료가 흘러넘치지만 지난 세기만 해도 우리는 20세기 전반기의 한국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하물며 조선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아무리 좋은 문헌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해도 결국은 한 장의 그림만 못한 법이다.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조선후기 결혼식에 대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말을 타고 처가로 가는 신랑의 행렬을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그림 1, 신행·新行)를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풍속화를 읽는 데는 특별히 좋은 방법이란 없다.말을 달리며 산을 보는 것처럼 그냥 대충 훑어 지나가지 말고 그림 속 인물과 사물,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예컨대 신윤복의 ‘입맞춤’(그림 2)을 보자.이 그림은 어떤 사내가 젊은 여자를 바싹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물론 입이 닿지 않았으니 입맞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아무래도 곧 입을 맞닿으려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한밤중에 여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는 사내의 정체다.어떤 연구자는 이 사내를 양반이라 하지만 딱히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내가 들고 있는 고리가 달린 막대기다.이것은 포도청의 포교가 휴대하는 쇠도리깨다.따라서 이 사내가 포도청 포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포도청 포교가 어떤 여인을 만나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그런데 포도청 포교는 기방을 지배하는 기부(妓夫)가 될 수 있었으니,그림 위쪽에 서 있는 장옷을 걸친 여성이 기생이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물론 이 다음부터의 그림 해석은 각각 달라질 수 있고,개인의 상상력에 매인 것이지만,그 해석과 상상력이 출발하는 지점이 포교와 기방,기부,기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풍속화 읽기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범상히 지나치지 말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부터 궁금증을 갖고 차근차근 연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참고삼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보자. “예를 들면 ‘사기’의 자객열전(刺客列傳)을 읽다가 ‘조도제(祖道祭)를 지낸 뒤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는 부분을 만나면 ‘조(祖)란 어떤 것인지요?’하고 물어보아라.선생이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라고 하면,다시 ‘하필 조(祖)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하고 물어보고 선생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집에 돌아와 사전을 꺼내 ‘조’ 자의 본뜻을 살펴보고,그것을 토대로 삼아 다른 책에서 널리 ‘조’ 자의 풀이를 조사해서,그 근본을 캐고 지엽적인 사실까지 모두 알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뒤 ‘통전’,‘통지’,‘통고’ 등의 책에서 조도제를 지내는 예(禮)까지 조사해 모아서 책으로 엮으면 영원히 전해질 책이 될 것이다.이렇게 하면 전에 한 가지 일도 모르던 네가 그때부터 조도제의 내력을 환히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어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큰 학자라 해도 조도제에 관한 한 가지 일만은 너와 다툴 수가 없을 것이니,어찌 크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약용이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사소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궁금증이 나면,자신이 완벽하게 이해가 될 때까지 조사해 보라는 것이다.그렇게 하여 흡족할 정도의 조사와 연구가 끝나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는 풍속화 그림도 마찬가지다.사소하고 시시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같은 부류를 모아보고,다른 것과 비교해 보고,그 유래를 따져보고,또 관련되는 문헌을 찾아보면 어느덧 자신 나름의 주장을 세울 수 있게 된다.또 뜻밖의 수확도 있다.예컨대 나는 한때 조선시대에 개를 그린 그림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대개 개는 그림의 부차적인 제재로 등장하고 있었다.등장하는 개가 어떤 종인지를 따져보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김준근의 개장수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쇠사슬을 잡고 버티는 개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환호작약하였다.문헌을 통해서 나는 ‘개장수’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그 실제 모습을 본 것은 바로 김준근의 그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전해지는 옛그림에 등장하는 물고기만 모아서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그것을 조사하면 한국인이 좋아했던,혹은 즐겨 먹었던 물고기의 종류를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옷차림이다.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모두 모아서 그들의 옷차림과 장신구,모자,머리 모양을 비교해 보면,당시의 복색과 유행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물론 복식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하지만 더 개척할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누구나 도전해 보면 된다.이처럼 풍속화는 시작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식견 쌓아 주체적 감상자 될 수 있어 ‘전문가주의’라는 말이 있다.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전문가는 물론 한 분야에서 오랜 수련을 쌓아 보통 사람보다 깊은 지식과 식견을 쌓은 사람이다.하지만 전문가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또 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뜻밖에도 전문가는 자신의 영역에 갇힌 나머지 시야가 좁아져서 쉬운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멀쩡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전문가라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정보가 흘러넘치는 세상이다.그림이라 해서 어찌 꼭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식견을 쌓아 스스로 주체적인 감상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 ‘조선사람들,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란 책을 쓴 이래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글을 한 번 써 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 왔다.우연하게도 서울신문과 인연이 닿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다.처음에는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보다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하지만 한 회의 원고 매수가 정해져 있고,그림을 반드시 2장을 넣어야 하는 탓에 구애가 적지 않았다.또 풍속화 자체가 한정이 있어,전에 했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이리저리 보완하고자 했지만,능력이 모자라 흡족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연재하는 동안 옛 그림을 보면서 늘 즐거웠다.나의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들에게까지 전해졌으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이겠다. 1년 동안 즐겨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구석기박물관 세워 문화자존심 지켜야”

    “구석기박물관 세워 문화자존심 지켜야”

    경기 파주 교하읍은 한반도 중부의 대표적인 하천인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곳에 있다.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완만한 구릉지가 대부분으로 넓은 평야가 가까이 있다.지리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통일 이후 이곳을 수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만큼 지리적 요충지이다.교하신도시 조성공사는 대한주택공사와 파주시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사업이다.1,2.3지구를 모두 합치면 1647만㎥로 분당신도시보다 크다. 현재 발굴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운정1지구는 면적이 489만㎡로 지표조사 단계에서부터 47곳에서 각종 유물이 발견되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운정1지구에서 출토되고 있는 구석기는 10만년 전 안팎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곳에서는 현재 주먹도끼를 비롯해 다양한 구석기가 나오고 있지만, 후기 구석기의 대표적 제조법인 돌날떼기수법의 존재를 보여주는 돌날 유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후기 이전의 구석기로 볼 수 있다고 발굴 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융조 원장은 설명했다. ●운정1지구 47곳서 유물 출토 운정1지구에서는 2004년 말 이후 시굴 빛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특히 구석기 분야에서 상당한 발굴성과를 거두었다.그럼에도 언론의 주목을 크게 끌지 못한 것은 운정1지구 거의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발굴조사 결과가 한 데 모아지는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에서는 22일 지도위원회를 가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을 비롯하여 경기문화재연구원,중앙문화재연구원,고려문화재연구원 등이 시굴 및 발굴 조사를 벌였거나,지금도 벌이고 있다.하지만 발굴 결과는 개별 조사기관의 산발적인 발표에 그쳤을 뿐 종합적으로 공표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는 놀랄 만한 발굴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했고,따라서 일부 중요 유적의 보존이나 유물 보존을 위한 박물관 및 유물전시관의 필요성도 한 두 사람의 학자에 의해서만 제기됐을 뿐이었다. 따라서 사업주체인 주택공사와 파주시도 유적 보존 및 유물 보존 및 전시 시설 건립의 필요성을 그다지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융조 원장은 “교하신도시에 박물관이나 유물전시관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출토된 중요유물은 국립박물관에 귀속되고,나머지 유물은 발굴에 참여한 조사기관들이 보관하게 되는 등 뿔뿔이 흩어져 시간이 흐르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조차 없게 된다.”면서 “뿐만 아니라 교하신도시에 입주하는 주민들이 누려야 할 커다란 문화적 자산과 자부심을 빼앗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파주시·주공,보존 마인드 부족 이에 따라 고고학계 일각에서는 개발 사업 시행자인 파주시와 주택공사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하면서도,적어도 같은 개발지역 안에서 문화재 발굴조사에 참여하는 조사기관끼리는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희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과거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파리시장 시절 시내에서 신석기유적이 발견됐을 때 현장을 방문하여 공사를 중단시키고 박물관을 짓도록 했던 프랑스의 사례가 이 땅에서도 재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몇 해 전 우연히 TV 사극을 보는데,이상한 장면이 나왔다.사극의 배경은 임진왜란 훨씬 이전,곧 조선 전기였다.광통교 부근에 기방이 있었고,그 기방에 고관대작 몇이 모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쓴 웃음을 지었다.과문한 탓인지 나는 조선 전기의 서울 시정에 기방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앞에서 누차 언급했듯 기방은 기생이 손님에게 가무(歌舞)와 술,그리고 성(性)을 판매하는 공간이다.그리고 기방과 기생은 기부(妓夫)가 지배한다.이런 형태의 기방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 서울 시정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물론 기방의 성립 과정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이런 이유로 해서 임진왜란 이전 시대에 고관대작들이 기방에 드나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박정희 시대 때의 요정 정치를 조선시대 속에서 애써 찾다 보니,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기방은 역관·의관·서리 등 중간층이 주로 찾아 조선 후기에 기방이 시정에 출현한 뒤에도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하지 않는다.기방은 주로 역관이나 의관 등의 중인,각 관청의 하급관리인 서리,시전상인,군교(軍校),별감,승정원 사령,의금부 나장 등 중간층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게다가 전에 소개했듯 기방에는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어서 어길 경우,시비가 벌어지고 때로는 주먹질이 난무하였다.이런 까닭에 양반들은 기방 출입을 꺼렸고,만약 기방 출입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뒷날 벼슬을 하는데 적지 않은 흠이 되었던 것이다.한데 양반 중 문반만 그렇다는 것이고,무반은 꼭 그렇지도 않다.무과에 합격하여 무반관직을 지내려면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기에 한량으로 무예를 익힐 때부터 기방에 드나드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이다.이런 무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꼭 기방에 들어가려면 어느 집 ‘청지기’라고 말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양반이 기생과 즐기고 싶다면,기생을 불러와야만 하였다.관청에서 부르는 경우도 있고,때로는 개인이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개인이 부를 경우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이제 그 광경을 신윤복의 ‘연못가의 가야금’(그림 1)에서 확인해 보자.이 그림의 화제(畵題)를 보자.“자리에는 늘 손님이 가득하고,술단지는 비어본 적이 없으니,나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座上客常滿, 尊中酒不空, 吾無憂矣).이 그림에는 술단지가 보이지 않지만,벗이 있고 음악이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으니 흥겹지 않겠는가. 그림에는 남자 셋,기생 셋이 등장한다.기생 셋을 부른 것이다.남자들은 모두 지체 높은 양반들이다.두 사람은 갓을 쓴,말하자면 의관을 제대로 갖춘 정장 차림이고 맨 왼쪽의 양반은 갓이 없다.이 남자는 원래 갓을 썼던 것이 아니고 정자관을 쓰고 있다가 옆에 벗어 놓고 있다.서 있는 남자와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도포의 빛깔이 다른데 중국에서 수입한 고급 비단으로 지은 것이 분명하다.갓끈 역시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서 있는 사람의 갓끈은 밀화(蜜花),곧 호박으로 만든 것으로 당상관 이상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사내의 벼슬은 적어도 정3품 당상관인 것이다.이런 것으로 보아 연못가에 모인 사내들은 모두 고급 관료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금기(琴妓)이고 누가 가기(歌妓)일까 이 그림의 공간은 어디인가? 먼저 오른쪽을 보자.소나무 아래에 기와담장이 보인다.그리고 그림 상단부에는 돌로 축대를 이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었다.그 너머에 다시 돌각담이 보인다.아래로 오면 단정하게 다듬은 돌로 마무리를 한 연못이 있다.이곳을 관청의 정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18세기 이후 서울의 거대한 양반가문이나,역관이나 상인으로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의 저택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맨 왼쪽의 정자관을 벗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아마 자신의 집이기 때문에 관을 벗고 풀어진 자세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연히 기생이다.담뱃대를 쥐고 있는 여자가 쓰고 있는 것은 가리마다.가리마는 기생들이 큰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오른쪽의 악기는 거문고가 아닌 가야금이다.거문고는 현을 뜯는 짤막한 대나무 막대기,곧 술대가 있어야 하지만,이 그림에는 그것이 없고,직접 손가락으로 현을 뜯고 있다.가야금인 것이다.가야금을 특기로 삼는 기생을 금기(琴妓)라 하고,노래를 특기로 삼는 기생을 가기(歌妓)라고 한다.세 기생 중 어떤 기생은 가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에 등장한 3남 3녀 중 가장 웃기는 사람은 맨 왼쪽의 남자다.왼쪽 발을 보건대 남자는 두 다리를 둥글게 벌리고 자신의 몸 위에 기생의 둔부가 올라오도록 앉힌 것이다.그리고 오른손은 기생의 아랫도리에 가 있다.이 양반은 눈동자가 약간 풀린 채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그 일이 정말 어떤 일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이제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검무(劍舞)’(그림 2)를 보자.기생 둘이 공작 깃털을 단 벙거지를 쓰고 붉고 푸른 화려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옷자락을 날리면서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구경꾼들의 면면을 보자.그림의 왼쪽 중간에 있는,왼손에 부채를 쥐고 갓끈을 단정하게 묶고 있는 사람이 이 연회의 주최자일 것이다.아니면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왜냐고? 이 사람이 앉아 있는 돗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럽고,죽부인에 기대어 앉아 있는 품이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다.이 사람 바로 위의 무릎을 세우고 손깍지를 끼고 있는 사람 역시 양반이다.다시 그 위의 갓을 쓰고 있는 앳된 얼굴은,장가를 간지 얼마 안 되는 이 집안의 자제인가 보다.이 햇병아리의 옆에 기생 둘이 있고,다시 그 오른쪽에 초립을 쓴 장가를 가지 않은 젊은이가 앉아 있다.그림 오른쪽의 담뱃대를 들고 오는 아이는 상노다.담뱃대가 없는 기생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아니면 갓을 젖혀 쓴 양반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 ●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춤 춤을 감상하는 양반 관객들은 모두 그림의 상단에 있는데,유독 하단의 악공들이 앉는 줄에 양반 한 사람이 끼어 있다.하단 맨 왼쪽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사내다.이 사내는 왜 구차하게 악공들과 같은 줄에 앉아 있는 것인가? 이 양반이 왼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실마리를 제공한다.이 물건은 사선(紗扇) 또는 차면(遮面)이라는 물건으로 남녀가 내외를 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다.상주가 외출할 때 관원이 길을 나설 때 결혼식을 할 때 남성이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무언가 자기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할 사정이 있는 것인데,춤 구경에 그 사정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아래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사선을 쥐고 있는 양반을 제외하면 모두 악공이다.맨 왼쪽은 해금을 연주하고 있고,그 오른쪽 두 사람은 자세를 보아 아마도 피리를 불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그 다음은 젓대,그 다음은 장고,그 다음은 북이다. 조선후기에는 장악원의 악공과 기생들이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을 받아 영업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이름이 알려진 팀도 있다.예컨대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했던 가기(歌妓) 추월(秋月)과 역시 가곡창(歌曲唱)의 달인이었던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거문고의 명인 금객(琴客) 김철석(哲石),그리고 또 다른 기생인 매월(梅月) 계섬(桂蟾) 등으로 구성된 팀이 가장 유명하였다. 기생 둘이 추는 검무는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더욱이 두 기생의 복색은 색채가 선명하게 대조된다.왼쪽은 청색 벙거지,녹색 저고리,붉은 치마인데,오른쪽은 흑색 전모,청색 저고리,푸른 치마이다.지금 검무는 진주 검무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가 있는 춤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검무는 칼이 작고 또 칼날과 자루가 분리되어 움직이지만,18세기의 검무는 보다시피 그냥 칼이다.어떤 사정이 있어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박제가(1750-1805)는 ‘검무기(劍舞記)’란 글을 써서 검무의 동작을 세밀히 묘사하고,또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이가 당시 검무의 제일인자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혹 아는가,위 검무를 추는 두 기생 중 하나가 운심인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2008 문화이변] 음반·영화 불황→ ‘뮤지컬 호황’, 왜?

    [2008 문화이변] 음반·영화 불황→ ‘뮤지컬 호황’, 왜?

    가요계·영화계의 불황은 곧 ‘뮤지컬의 호황’을 불러왔다. 연말 공연계가 이례적인 성황을 누리고 있다. 매해 콘서트 및 영화관으로 몰렸던 관객들의 발길이 뮤지컬 공연으로 돌아서고 있다. 소극장이 즐비한 대학로는 물론 대형 뮤지컬홀까지 발 디딜 틈 조차 없다. 도대체 올 하반기 뮤지컬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 가수·배우의 ‘뮤지컬’ 진출, ‘익숙함’의 묘미 가수, 배우들이 줄줄이 뮤지컬 무대로 나서고 있다. 음반계와 충무로의 몰아닥친 ‘찬바람’이 현실적 요인였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들의 외도’는 칭찬할만 했다. “그 뮤지컬, 누가 나온대?” 요즘 공연가에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누가’란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익숙한’ 가수와 배우의 출연 여부를 묻는 것이다. ‘친근한’ 스타들의 ‘뮤지컬 행’은 ‘뮤지컬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TV나 상영관 속 ‘익숙한 얼굴’의 등장으로 일단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일전의 뮤지컬에 대한 편견 따윈 날린 채 배우와 함께 웃고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입소문’만큼 빠른 홍보효과가 있을까. “‘누가’ 나오는 ‘그 뮤지컬’ 재미있더라.”라는 식의 관람 후기는 급속히 번져나가 국내 뮤지컬 사상 전례없던 ‘전석 매진’이라는 진기록을 안기기도 했다. ◆ ’아이돌·왕년 가수’의 재발견 “나도 뮤지컬스타!” 가요계를 떠나 뮤지컬 무대를 향한 가수들을 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이돌 vs 왕년 가수로 뚜렷히 양분된다는 점이다. 올 하반기 뮤지컬 무대를 누빈 아이돌 가수로는 빅뱅의 승리(‘소나기’), SS501의 박정민 (‘그리스’), 파란의 라이언 (‘즐거운 인생’)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을 통한 왕년 스타의 재부활도 눈여겨 볼만 하다. 90년대 전성기를 누린 가수 김원준(’라디오 스타’), 넥스트의 신해철(’마리아 마리아’), SES의 바다 (’미녀는 괴로워’) 등이 뮤지컬을 통해 재조명 받았다. 이들이 뮤지컬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는 ‘뮤지컬’ 장르가 지니고 있는 장르적 특성과 맞물린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음악과 연기, 무대 및 음향 시설 등 여러 예술분야가 접목된 까닭에 ‘종합 예술’이란 단어로 설명된다. 즉, 연기만 잘한다고 혹은 노래만 잘한다고 해서 ‘진정한 뮤지컬 배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울러 ‘뮤지컬 배우’로서의 성공은 ‘종합 예술인’으로서의 재능 및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왠지 부족해 보이는’ 아이돌 가수와 ‘왠지 녹슨듯한’ 왕년 가수들이 뮤지컬을 선호하게 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돌 가수의 경우 뮤지컬을 통해 자신에게 잠재된 개발 가능성을 어필해 보일 수 있으며 왕년 가수는 신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로 무대를 제압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영화를 먹어버린 뮤지컬, ‘무비컬’의 성행 일명 ‘무비컬’은 무비(Movie)와 뮤지컬(Musical)이 조합된 신조어. 스크린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을 극적 구성을 더해 재해석한 작품을 일컫는다. 하지만 무비컬의 원초적 과제는 앞에서 언급한 ‘익숙함을 탈피’하는 데서 시작된다. 즉, 이미 관객에게 익숙해져 있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을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조리해 맛깔스럽게 연출해 내는가에 그 흥행 여부가 결정된다. 영화의 친숙함과 뮤지컬의 현장감이 잘 버무려진 ‘무비컬’은 올 하반기 뮤지컬계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 김아중이 열연했던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최근 바다가 무비컬로 재탄생시켰다. 오드리 헵번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마이페어레이디’는 이형철 주연으로 지난 8월 뮤지컬 막을 올렸다. 2002년 작 ‘색즉시공’도 오는 23일 뮤지컬로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속 바보 ‘달수 역’을 열연했던 임창정 몫에는 UN 출신 최정원이 도전하게 된다. 최근 개봉작들도 줄지어 ‘무비컬’의 옷을 입을 채비를 마쳤다. 손예진·김주혁 주연의 ‘아내가 결혼했다’, 차태현·박보영 주연의 ‘과속스캔들’, 윤계상·하정우 주연의 ‘비스티 보이즈’, 김민선 주연의 ‘미인도’등이 내년에도 무비컬의 호황을 이끌어 갈 전망이다. 뮤지컬 공연장에서 만난 한 대중문화 평론가 K씨는 “경제 불황 속 문화 침체기로 들어설 수 있는 올 연말 ‘하반기 뮤지컬’의 성황은 눈여겨 볼만 하다.”며 “가요계 및 영화계의 상대적 약세가 뮤지컬계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요, 영화, 공연계가 균형적 발전을 이뤄가는 것이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당국이 진실 숨길수록 파헤치고 싶었다”

    “당국이 진실 숨길수록 파헤치고 싶었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그들(중국 당국)이 진실을 숨기길 원할수록 나는 진실을 더 파헤치고 싶었다.” 1958~62년 대기근의 원인과 실상을 파헤친 문제작 ‘묘비(墓碑)’를 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전직 기자 양지성(楊繼繩·68)이 후기를 털어놓았다.그는 19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 책을 쓰는 데 큰 정치적 위험이 있었다.”면서 “이 책 때문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나는 내 이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며 이는 나의 묘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에서 발간한 저서 서문에 “1 959년 굶주림으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비롯한 3600만 중국인의 묘비이자 중국을 대기근으로 이끈 (중국 정치) 체제의 묘비”라고 책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진보적 역사잡지 옌황춘추(炎黃春秋)의 부발행인인 그는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내는 정말 두려워했지만 나를 말릴 수는 없었다.”고 웃음을 지었다.이어 “대기근을 비롯해 문화대혁명,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 과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자신이 눈으로 집적 목격한 것들을 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양지성은 앞서 2004년에는 톈안먼(天安門)사태 당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리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중국 개혁시대의 정치 투쟁’이라는 제목의 책을 낸 바 있다.당시 중국 당국은 그를 여러 차례 소환해 발간을 취소할 것을 지시했으나 이에 불복, 홍콩에서 책을 발간했다. jj@seoul.co.kr
  • 30년 만에 창극으로 돌아온 ‘변강쇠뎐’

    30년 만에 창극으로 돌아온 ‘변강쇠뎐’

    평안도 월경촌에 계집 하나 있으되…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에 죽고,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에 튀고,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난다.…이때에 변강쇠라 하는 놈이 천하의 잡놈으로 삼남에서 빌어먹다 양서로 가는 길에 년놈이 오다가다 청석골 좁은 길에서 둘이 서로 만나거든….변강쇠와 ‘서방마다 작살내는’ 옹녀가 엮어내는 이야기,‘변강쇠가’의 한 대목이다.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이지만 판소리보다는 영화 ‘가루지기’,연극 ‘옹녀 이야기’ 등으로 대중에게 더 익숙한 변강쇠전이 30년 만에 창극으로 부활했다.세종문화회관이 28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올리는 ‘남산골 변강쇠뎐’은 변강쇠와 옹녀가 남산골 장승으로 서 있게 된 사연을 풀어낸다. 연출을 맡은 김석만(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서울시극단장은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은 생명력있는 뜨거운 사랑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면서 전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명창 “데뷔작이라 더 애착가”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안숙선 명창의 출연이다. “1979년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입단한 뒤 처음 맡은 역할이 변강쇠전에서 꽹과리를 치는 것이었어요.세살짜리 딸을 막 뒤에 앉혀놓고 무대에 나왔는데 아이도 덩달아 뛰어나와 졸지에 같이 데뷔를 하기도 했죠.” 그에게 변강쇠전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첫 무대로 끈끈한 애정이 싹튼 만큼 사이사이 변강쇠전을 무대에 올리려고 했지만 ‘속되고 야한 줄거리’라는 이유로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우수한 기획공연을 선보이자.”는 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과 김 단장이 만나면서 실현됐다. 더구나 얼떨결에 데뷔한 안 명창의 세살짜리 딸은 이번에 무대 한 편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며 흥을 돋울 예정이니 더욱 뜻깊을 수밖에…. 안 명창은 당시의 낡은 대본을 꺼내 김 단장과 머리를 맞대고 각색에 들어갔다.조선 후기 우리 가락의 대가 신재효가 정리한 사설을 바탕으로,박동진 명창이 남긴 변강쇠전 완창본을 참고했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대적 감각을 담고 연극적인 요소를 강화했다.변강쇠와 옹녀의 다소 낯뜨거운 사랑은 그림자극으로 표현하고,관객의 흥을 돋우고 얘기를 이어주는 도창,강쇠·옹녀·봉사·뎁득이 등 다양한 인물,고수·해금·아쟁·거문고·대금 등의 연주가 어우러진다. ●낯뜨거운 사랑 장면 그림자로 표현 안 명창은 도창으로 나서는 유수정 명창과 무대에서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한바탕 소리를 하는 소리꾼들에게 “느그들 오늘 소리 잘헌다.큰 명창 되겄어.차나 한 잔 하면서 목 좀 축이세.”하며 사랑방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안 명창은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 만병을 얻은 장면에서는 병명과 처방약들의 옛 이름이 나오고,문제를 해결하러 장님을 찾아가거나 요즘의 ‘완벽남’같은 뎁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등 변강쇠전에는 옛 사람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한다.우리 것을 발견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변강쇠 역은 임현빈,옹녀 역은 김지숙이 맡는다.광주비엔날레 국악계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을 받은 윤충일이 봉사·가객·엿장수 등으로 변신한다.백현호가 북,신현석이 해금,신현식이 아쟁,최영훈이 거문고,이현주가 대금을 잡는다.1만∼2만원.(02)2261-0513∼5.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페미니즘, 여성만의 것이라고?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처럼 기존 페미니즘의 출발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성인 섹스(sex)와 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인 젠더(gender)를 구분하는 데서 비롯됐다.이를 토대로 여성을 정치적 주체로 집단화하고,권리 향상을 위한 연대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남성이 되고,남성이 여성이 되는 세상에서 페미니즘이 반드시 ‘여성’이라는 집단적 범주를 가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의 대표 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이미 20여년 전 이같은 모순을 지적하고 ‘여성 없는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젠더 트러블’(조현준 옮김,문학동네 펴냄)은 1990년 출간 당시 섹스와 젠더의 이분법을 허물면서 기존 페미니즘의 정치학 패러다임을 단숨에 뒤집는 도발적 문제의식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버틀러는 섹스(몸),젠더(정체성),섹슈얼리티(욕망)의 구분이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된 것이며,그 기저에는 이성애자만이 주체라는 가부장적 이성애 중심주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버틀러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여성의 권리향상 차원을 넘어 남성까지 포함한 소수자의 섹슈얼리티 문제로 확장시킨다.그 자신 레즈비언인 버틀러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불확실성을 토대로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제도 담론의 강제성에 의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 책은 지난 20년 동안 페미니즘 이론의 중심에 자리하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버틀러 특유의 어려운 문체로 읽기가 쉽지 않다.출간 당시 미국 학술지가 ‘최악의 저자’로 뽑았을 만큼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 높다.국내에서 처음 발간된 번역본에는 지은이의 핵심 개념을 앞부분에 따로 정리했고, 옮긴이의 해제를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배려했다.2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토정 이지함은 조선중기 대표 경제학자”

    “토정 이지함은 조선중기 대표 경제학자”

    토정 이지함(그림·1517~1578)은 새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토정비결’로 유명하지만 정작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한산 이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유랑생활로 보낸 그는 주역,점술,관상비기(觀象秘記)에 능한 기인으로만 각인돼 있을 뿐 행적이나 사상이 제대로 조명된 적은 거의 없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이지함 평전’(글항아리)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지닌 특이한 인물’로 박제됐던 이지함을 조선 중기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실천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화담학파의 적자이자 이후 북학파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이며,상업과 수공업,해양자원의 적극적인 개발과 국제무역을 주장한 선구적 경제학자라고 주장한다. 신 교수는 이지함 재조명의 첫 작업으로 먼저 그가 ‘토정비결’의 저자라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토정비결’이 이지함 사후에 유행하지 않고 19세기에 널리 퍼졌고▲이지함 사후 100년 뒤 고손자 이정익이 간행한 ‘토정유고’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경도잡지’ 등에도 토정비결이 빠져있는 점 등을 근거로 ‘토정비결’의 그가 저자일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주장한다.신 교수는 “점술이나 관상비기에 능했던 이지함의 행적이 민중들에게 널리 전파되자 후대에 비결류의 책을 만들면서 그의 이름을 가탁해 ‘토정비결’이란 책이 탄생했다.”고 결론내린다.하지만 ‘토정비결’이 이지함의 저술인가 여부와 관계없이 ‘주역’을 모태로 한 변혁 의지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기인의 풍모에 가려졌던 이지함의 진면목은 민간의 실상을 직접 목격한 것을 바탕으로 사상을 구축했다는 사실이다.이지함은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의 중요성을 전파했다.무인도에 들어가 박을 심어 수만 개를 수확해 바가지를 만들어 곡물 수천 석과 교환해 빈민을 구제하기도 했다.또 일찍부터 상업과 유통경제를 중시했다.이는 그가 거처했던 마포의 토정이 팔도의 배가 모이는 곳이었으며,배를 타는 데 익숙해 해상을 두루 돌아다닌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지함의 독자적인 학풍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 점도 흥미롭다.이지함은 사화의 여파로 은거의 삶을 선택한 여타 처사형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천문,지리,의약,산수 등에 능했고,도가의 양생법에도 정통했다.하지만 경(敬)이념을 특히 중시한 이지함의 유교적 사상은 16세기 사림파의 기본 사상과 거의 같았으며,이는 그가 기인이 아닌 16세기 사상사의 흐름속에 존재하는 학자임을 입증하는 증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이지함의 폭넓은 교유관계도 눈길을 끈다.스승 서경덕을 비롯해 조식,이익 등과 친분을 나눴으며 서로 대립적인 관계였던 서인과 북인 학자들도 고루 사귀었다. 신 교수는 “이지함은 16세기의 개방적이고 다양한 학문 경향을 보여주는 핵심적 인물이며,특히 적극적인 국부(國富)증진책을 제시한 그의 사상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공연정보 클릭 한번이면 OK

    ‘우리 구 공연 정보,클릭 한번이면 OK.’영등포구는 구가 주관하는 모든 문화행사에 대한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인터넷 포털 네이버(cafe.naver.com/mania4art.cafe)와 다음(cafe.daum.net/mania4art)에 각각 인터넷 카페를 개설,구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이 카페들은 문화행사에 관심 있는 구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구에서 실시하는 각종 문화 공연과 행사에 대한 상세 정보와 함께 지난 공연의 후기도 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꾸며졌다.이와 함께 구가 운영하고 있는 문화동아리 ‘문화마니아’의 무료 회원으로 가입하면,각종 공연·행사 정보를 문자서비스와 이메일로도 받아볼 수 있다.구에서 주최·기획하는 공연에 대해 50% 이상 할인 혜택도 받는다.특히 내년 2월 문화예술 전문 공연장 ‘영등포 아트홀’ 개관과 함께 오케스트라 공연을 비롯해 발레,재즈콘서트,오페라 등 수준 높은 전문 공연이 잇따라 열릴 계획이어서 문화마니아 회원들의 수혜 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문화마니아 회원은 구청 홈페이지에서 메인화면 오른쪽→문화마니아 코너를 통해 가입할 수 있으며,동아리 및 인터넷 카페 가입 문의는 구청 문화체육과(2670-3125)로 하면 된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춤을 지나치게 좋아한다거나 그래서 ‘춤바람’이 났다면,무언가 온당치 않은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다.그 이유는 아마도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한 가부장제에 있을 것이다.추측건대 ‘춤바람’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20세기 후반 사교춤이 유행하고 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춤을 즐기는 것은 원래 한국인의 오랜 전통이었다.아니 이 세상 모든 나라의 모든 민족은 모두 춤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각설하고,신윤복의 ‘춤’(그림 1)을 보자.그림의 윗부분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고,아래쪽 넓은 공간에 춤을 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다.그림 오른쪽에 네 명의 악공이 있는데,장구를 치는 사람이 하나,피리를 부는 사람이 둘,해금을 켜는 사람이 하나다.춤을 추는 여성은 아마도 이 악공과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기생일 것이다.조선 후기에는 악공과 기생이 한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다.여기서 이 악공과 기생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터인데,당연히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양반과 그 왼쪽의 두 사내다.짙은 나무 잎사귀로 보아,계절은 여름이 틀림없다.어느 여름날 시원한 산그늘을 찾아가 풍악을 잡히고 기생과 춤을 추면서 보내는 한때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양반들이 잔치에서 춤추는 건 흔한 일 그런데 그림 왼쪽에 있는 두 사내의 포즈가 가관이다.한 사내는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 있고,아래쪽 사내는 비스듬히 누워 있다.둘 다 검은 갓끈을 하고 있고,또 아주 젊은 얼굴로 보아 벼슬하지 않은 젊은이다.근엄한 양반들이 어찌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는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남녀 한 쌍의 춤을 감상하고 또 직접 춤을 출 수 있다는 말인가.조선시대 양반에 대해 지금 사람들은 오해가 많다.즉 양반이면 모두가 예를 지키고 법도를 따라 근엄한 표정으로 행동을 삼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옛날 양반이 지금 사람들보다는 유가가 요구하는 윤리와 도덕,그리고 예를 더 지킨 것은 사실이겠지만,그것이 모든 양반들에게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조광조나 율곡이나 퇴계,남명 선생 정도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이 그림에서처럼 더우면 갓끈을 풀고 비스듬히 기대기도 하고 기생과 어울려 춤도 추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찾아보면 춤에 관한 기록은 결코 드물지 않다.예컨대 ‘실록’에는 그런 자료가 적지 않게 나온다.여기서는 조선 후기의 ‘실록’을 몇 구절 읽어보도록 하자.‘사변록’이란 책에다 주자와 다른 경전 해석을 써서,정적들에게 사문난적으로 찍혀 곤욕을 치렀던 박세당은 1703년 귀양살이가 결정되지만,제자 이인엽이 숙종에게 입이 닳도록 간청하여 겨우 유배를 면하고 곧 세상을 뜬다.그날조 ‘숙종실록’의 사신은 박세당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박세당은 젊은 시절 국구(國舅) 김우명(金佑明)의 집안 잔치에 참석했을 때 일어나 춤을 추기까지 하였으므로,사론(士論)이 비루하게 여겨 그를 전랑(銓郞)에 추천하는 것을 막았다.”박세당이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양반들이 잔치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음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氏世傳書畵帖)’에 실린 ‘해영연로도(海營宴老圖)’(그림 2·작자 미상)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1529년 김양진이란 분이 황해도 감사가 되어 감영에서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었을 때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전문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라서 그림은 미숙하지만,기생 두 명의 춤과 노인들이 일어나서 일제히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실록’ 49년 8월 9일 기로소 의정부 중추부 주원(廚院)에서 진찬(進饌)하였을 때다.잔치가 무르익자 영조는 영의정 한익모 부자,판서 조영진 부자,조창규 김사목에게 대무(對舞)하라고 명한다.그들은 왕명에 당연히 일어나 춤을 추었다.왕과 신하가 참석한 잔치에서 신하가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물론 깐깐한 사신은 한마디 한다.“한익모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소매를 들고 너울너울 악공들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또 아버지와 아들은 짝을 지어 춤을 출 수 없는 법인데도 경솔하게 일어나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비웃었다.”한익모가 영의정이라서 비난을 받은 것이지 춤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자는 소매 떨치고 여자는 손 뒤집어 사정이 이러니 조선조의 양반들 역시 당연히 춤을 즐기고,또 여성과도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다.‘영조실록’ 18년 9월 3일조를 보면,대간(臺諫)은 함안군수 이휘진이 악기를 쥐고 악공들과 어울려 연주를 하고,기생과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고 하여,대간 후보에 오른 것을 빼 버리라고 요청하고 있다.여성,특히 기생과 춤을 추는 것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또 영조가 대간의 청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기생과 춤을 추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춤을 어떻게 추었던가.유득공의 ‘경도잡지’는 남녀의 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춤은 반드시 대무(對舞)인데,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대무를 춘다는 것은,춤을 추면 으레 남자와 여자가 같이 춘다는 것을 의미한다.‘경도잡지’는 서울의 풍속에 대해 쓴 책이니, 유득공이 살던 시대,즉 18세기 서울에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그림(1)이 풍습의 증거가 된다.‘경도잡지’의 “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는 구절의 원문은 ‘男拂袖,女?手’인데,무엇이 소매를 떨치고 손을 뒤집는 것인지,또 이 춤이 어떤 춤인지는 견문이 짧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그림(1)을 보면,남자의 옷소매는 손을 감출 정도로 길고,여성은 손을 드러내고 있으니,‘경도잡지’가 말한 바의 춤인 것이다. ●조선전기 여진족의 춤 ‘목후무´ 유행 조선 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만난 여성과 춤을 춘 경우도 발견된다.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이른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인데,그는 1485년 친구들과 개성 일대를 유람하고 ‘송경록(松京錄)’이란 기행문을 남긴다.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양절 날 동서남의 여러 산 곳곳마다 남자 여자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여 자못 태평한 기상이 있었다.…첨성대로 갔다가 우연히 야제(野祭)를 지내는 남녀를 건덕전 터에서 만났다.남녀가 다투어 우리를 맞이했는데,백원(百源·李摠)을 윗자리에 앉히고 우리들은 그 다음 줄에 앉았다.자용(子容)이 맨 처음이었고,정중(正中·李貞恩)이 그 다음,회녕(會寧·宋會寧)이 그 다음,석을산(石乙山)이 그 다음,숙형(叔亨)이 그 다음,내가 그 다음이었다.…백원이 정중을 돌아보며 비파나 금을 타라고 하였다.회녕은 피리를 불고,석을산은 노래를 불렀으며,자용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비파와 노래와 피리가 각기 그 오묘함에 이르자,자용이 남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와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춤이 끝나자 목후무(沐?舞)를 추었는데,모든 동작이 음악에 맞았다.그것을 보고 주인 남녀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목후무란 여진족의 춤이다.성종 당시 공경대부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어쨌거나 좋다.남효온 일행은 개성의 첨성대를 찾아갔다가 굿을 하는 한 무리의 남녀를 만났던 것이고,그 자리에 끼어서 같이 춤을 추며 놀았던 것이다.특히 자용이란 사람은 가장 젊은 여자를 파트너로 하여 춤을 추었고,그 춤에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하니,모르는 여자와 춤을 추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춤을 추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었다.공원에서 얼후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대한민국에는 그런 풍경이 없다.생활에 여유가 없어서인가? 춤은 모두 어두운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으로 퇴각해 버린 것인가.가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이 난 한국인이 어찌 이리되었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런치모임’ 가족도 지갑도 방긋

    ‘런치모임’ 가족도 지갑도 방긋

    연말 송년회의 키워드는 ‘축소지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CJ제일제당의 통합 브랜드 사이트 CJONmart가 최근 회원 8870명을 대상으로 송년회 계획을 조사한 결과 ‘생략할 생각’이라는 응답이 2049명(23%),‘집에서 하겠다.’가 3589명(40%)으로 나왔다.‘외식으로 송년회를 해결하겠다.’는 답은 2282명(26%)이다.경기침체로 기업과 가계가 모두 소비를 줄이면서 생긴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래도 모든 송년회를 생략할 수는 없는 노릇.점심에 약식으로 하는 ‘점심 송년회’와 마음에 맞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소규모 송년회’ 등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기업들이 부서 송년회를 생략하고 봉사활동이나 새해 비전선포식 등으로 갈음하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외식업체들이 점심 이벤트와 색다른 맛과 분위기를 선보이며 알뜰 송년회 고객 잡기를 시도했다. 고깃집들이 먼저 변신에 나섰다.한식 페밀리 레스토랑 불고기브라더스는 하향식배기로스터로 고기 냄새를 최소화하고,오후 5시까지 에피타이저와 식사,불고기,후식으로 연결되는 점심세트를 내놓았다. 에피타이저로 제공되는 감자떡과 옥수수,고구마는 무한 리필될 뿐 아니라 공짜로 집에 싸갈 수도 있어 점심 송년회를 즐기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설명이다. 삼겹살 전문 돈데이 후레쉬도 샐러드바를 설치하는 등 여심잡기에 나섰다.대표적인 회식 메뉴인 삼겹살을 아이와 함께 가족이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돈데이 후레쉬 7개 직영점에서는 30대 이상 주부 10명 이상이 송년회를 하면,1만원 할인 혜택을 준다.돈데이 카페에 송년회 후기를 남기면,추첨을 통해 5만 5000원어치의 돈데이 삼겹살 선물세트를 증정할 계획이다. 아워홈이 운영하는 아일리시 펍 벅멀리건스는 70명 이상 단체에 맥주를 50% 할인해주고,런치 타임 뷔페 이용 고객에게 7만원짜리 와인 1병을 무료로 제공한다. 씨즐러는 소믈리에 수강권과 스노보드 데크 등 1020만원어치의 경품을 내놓았다.시푸드 레스토랑 씨푸드오션은 해산물 레스토랑 씨푸드오션도 핫토이 러브세트를 주문한 고객을 대상으로 식사권과 영화 예매권 등을 증정한다. 베니건스와 빕스는 ‘1000원 메뉴’를 선보였다.빕스의 ‘평일 런치 1,2,3 페스티벌’은 평일 런치 샐러드바(1만 8580원) 가격에 1000원을 더 내면 ‘비프 햄버거 스테이크’,2000원을 추가하면 ‘스위트 살사 치킨 스테이크’,3000원을 내면 ‘빕스 폭립 1/2’을 맛볼 수 있게 했다.제휴카드를 통해 최대 20%까지 싸게 먹을 수 있다. 빕스는 30여개 매장에 설치했던 수유실을 리뉴얼해 벽지와 모빌,쿠션 등으로 아늑함을 더했다. 베니건스는 1만 8000원짜리 컨추리 치킨 샐러드를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대형마트와 극장,은행 등에서 배포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장외룡 감독,J리그 오미야 사령탑에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를 이끈 장외룡(49) 감독이 일본프로축구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다. 안종복 인천 사장은 9일 “장외룡 감독이 1년 계약이 남아 있지만 엔고 현상 등으로 일본 쪽 제안을 받아들인 것 같다.”면서 오미야 사령탑 수락 사실을 확인했다.지난 2003년 인천 수석코치에서 베르너 로란트 전 감독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이듬해 9월부터 감독대행으로,2005년부터는 정식 사령탑을 맡아 3년 동안의 계약 기간을 수행하던 장 감독은 이로써 인천과 결별하게 됐다. 장 감독은 2005년 인천을 전기 2위,후기 5위로 통합순위 1위에 올려놓은 데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2006년 시즌에도 전기 10위,후기 6위로 통합 9위와 FA컵 4강의 성적표를 받아냈다.그러나 지난해 돌연 잉글랜드 축구 연수를 다녀왔던 장 감독은 올해 정규리그 막판 전북에 덜미를 잡혀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뒤 홈팬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장 감독은 10일 오전 11시30분 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에 나설 예정. 장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될 오미야는 2005년 1부 리그로 승격한 뒤 4년 연속 잔류에 성공한 중하위권 팀으로 이번 시즌 12위(승점 46점)에 올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박지성 인터뷰] 단독취재 후기 ‘박지성을 만나고 나니’

    [박지성 인터뷰] 단독취재 후기 ‘박지성을 만나고 나니’

    박지성과 인터뷰는 8일 오후 9시(한국시간·현지시간 8일 정오) 맨체스터 외곽에 위치한 캐링턴 훈련구장에서 이뤄졌다. 캐링턴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박지성을 기다리다 일찌감치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프리카 앙골라 출신의 마누초와 마주쳤다. 마누초랑 나란히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맨체스터의 날씨가 지독하지 않냐고 물었다. 마누초는 웃음과 동시에 약간의 욕설을 섞으며 “끔찍하다. 얼어붙을 정도로 춥고. 비도 오고 아주 죽겠다”고 너스레를 떤 뒤 빗속을 헤쳐 나갔다. 캐링턴의 궂은 날씨가 이날 박지성과 인터뷰 전쟁(?)을 예고한 것인지도 몰랐다. 막 훈련을 끝낸 박지성이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캐주얼 차림으로 로비로 걸어 나왔다. 가죽 쟈켓에 최소 명품 손가방 하나쯤은 들고 훈련장을 나서는 다른 맨유 선수들과는 비교했을때 너무나 수수한 모습이어서 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매주 인터뷰장에서 만나는 진지한 박지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날 현장 분위기도 인터뷰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모든 인터뷰룸이 맨유TV 방송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인 통에 박지성과 인터뷰는 본관 로비 바로 위에 위치한 2층 발코니의 휴게실에서 이뤄졌다. 발코니라는 오픈된 공간이다 보니. 훈련 중이던 긱스가 민소매 차림으로 불쑥 뒷문에서 나오기도 하고. 막 훈련을 끝낸 캐릭이 훈련 중 자신이 입었던 유니폼을 들고 나와 구단 직원에게 유니폼을 소포로 보내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더군다나 매주 월요일이면 찾는다는 대규모 관광객들이 1층 에서 맨유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스페인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한껏 들뜬 그들의 스페인어 대화 소리에 인터뷰 내용이 제대로 녹음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30분. 인터뷰 시간으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허락 받은 터라. 박지성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헤쳐 보겠다는 의욕에 불탔다. 하지만 박지성은 교묘하다 싶을 정도로 노련했다. 필자가 ‘기사감으로 좋겠다’고 생각한 질문은 박지성의 입장에선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였다. 거의 모든 질문을 “글쎄요”로 시작하는 것에서 ‘논란이 될만한 멘트’나 평소 경기장 인터뷰에서 쉽게 들려주지 않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날 박지성은 스포츠서울 외에 한국의 다른 언론사들과도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다. 다른 언론사 취재 기자는 사전에 인터뷰 질문들을 체크 받았다고 했다. 필자에게 그러한 사전 요청은 없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고 세번째 질문에서 박지성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있어서 빼기로 한 내용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꺼리는 것으로 소문난 박지성. 너무 평범해 숫기마저 없어 보이는 복장을 보고 약간은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이후 필자는 매 질문을 앞두고 ‘이 질문은 조금 민감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게 됐다. ‘인터뷰어(Interviewer)’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였다. 이날 인터뷰가 예정된 언론사 중 가장 먼저 인터뷰를 마치고 1층 로비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박지성의 에이전트와 마주쳤다. 역시 쉽지 않았다는 넋두리를 늘어놓자. 박지성 본인도 클럽월드컵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언론사들과 너무나 많은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어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맨유는 그 동안의 방침과는 달리 단독 인터뷰를 요청한 거의 모든 언론사에 인터뷰를 허락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크게 기사화되는 박지성인지라. 심한 부담감 속에서도 그렇게 많은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사정을 들으니 동정심이 생겨졌다. 덕분에 인터뷰 내내 굳은 표정의 박지성에게서 느꼈던 약간의 야속함(?)을 완전히 지울 수 있었다. 박지성은 다음 언론사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나 입을 굳게 다문 표정이었다. 이틀 전 선덜랜드와 홈경기를 마친 직후 맨유TV에 나와 자신감 넘치는 영어실력을 뽐내며 환한 미소로 현장 인터뷰를 했던 박지성의 또 다른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Local] 영남대,문화재 화산서당 복원

    경북도문화재 22호 ‘화산서당’이 영남대 캠퍼스로 이전한다.영남대는 4일 화산서당의 이전·복원을 위한 기증협약을 서당 소유주인 인동 장씨 문중과 체결했다.칠곡군 석적면에 위치한 화산서당은 조선 효종 21년(1651년) 만회당 장경우 선생이 후학 양성을 위해 설립한 것으로,고종 8년(1871년)에 내려진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리고 현재는 강당만 남아 있다.정면 5칸,측면 3칸으로 비교적 큰 건물인 강당은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 건축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영남대는 서당을 복원한 뒤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신경림의 누항 나들이] 10년 공든 탑이 허물어져서야

    [신경림의 누항 나들이] 10년 공든 탑이 허물어져서야

    “남 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등의 내용을 담은 10·4 선언을 발표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마침내 개성 관광과 남북 철도 운행이 중단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깝다.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나는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남쪽 당국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국에 이르는 길을 지혜롭게 피할 길은 정말 없었을까.하긴 새정권이 들어서면서 처음부터 좀 아슬아슬했다.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앉을 사람들 거의가 지난 10년간의 남북협력을 퍼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헛공사로 치부해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앞으로도 대화와 협력은 하되 주는 것만큼 받아내야 한다는 말은 딴은 틀린 말만은 아닐 터이다.왜 주기만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느냐는 핀잔도 터무니없는 트집은 아니다.문제는 그 뉘앙스에 있다.아무리 가난한 이웃이라도,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주제에 말하면 들을 것이지 무슨 잔말이냐는 투의 막말을 견뎌낼 인내심은 갖기 어려우리라.가진 것이 없을수록 자존심이 그 삶의 버팀목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이런 가운데서 3월달 북쪽은 남북 경협 사무소에서 남측 직원을 추방한다는 분풀이를 했고,그것이 금강산에서 비무장 관광객을 쏘아 숨지게 하는 참사로 변형되어 나타났다.물론 이 불상사만 놓고 보면 북한이 책임을 져야 하며 사과하는 것이 마땅했다.하지만 우리도 그들에게 변명할 빌미를 만들어 주면서 금강산 관광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어야 했다.이때는 당연히 지난 10년간 남북협력을 이끌어 온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남쪽은 쌀도 비료도 없는 그들이 끝내는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는 오만한 낙관 속에서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남 북 협력에서 우리는 퍼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인식부터가 문제다.정말 얻은 것이 없는가.햇볕 정책 10년 동안에 수백 만 명이 금강산을 다녀오고 평양을 방문하고 개성을 오갔다.그러면서 북한의 실상을 보았고,주체사회의 허구를 간파했다.그러고도 사회주의로의 통일을 고집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거나 멍텅구리다.남북 협력 비용의 몇 배를 들여서도 불가능한 의식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셈이다.이산가족의 만남도 작은 성과로 보아서는 안 된다.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의 경협은 꺼져가는 우리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었을 터이다. 남북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걱정이다.서로 왕래도 대화도 없는 옛날의 냉전시대로 되돌아간다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그래도 개성공단을 남겨 놓은 것은 북한이 한 가닥 소통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는 암시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우리도 이 마지막 길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우선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6·15와 10·4 선언은 양쪽 정상의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 남북 협력에서 활동한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또한 주기는 주되 준 만큼 받아낸다느니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이 우리의 목표라느니 하는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소리는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북한이 크게 신경질을 내는 전단지 살포는 당장 끝내는 것이 당연하다. ‘민족치매’란 말은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가 러일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의 후기에서,러일전쟁 후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민족을 가리켜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대서 한 말이다.남북 소통이 완전히 막히면서 드디어 다시 준냉전체제로 돌아간다면,개념은 다르지만 우리야말로 꼼짝없이 우리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민족치매’에 걸린 민족이 되고 만다. 그래도 개성공단을 남겨 놓은 것은 북한이 한 가닥 소통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는 암시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우리도 이 마지막 길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시인 신경림
  • 전·현직 금융당국자들의 엇갈린 위기처방전

    전·현직 금융당국자들의 엇갈린 위기처방전

     지난 28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서울대 초청강연에서 금융당국을 향해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던 시간,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강당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이 전 부총리가 현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을 ‘남대문 화재’에 비유하며 비판할 때 그는 “위기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전광우 위원장을 대신해 ‘자금세탁 방지의 날’ 행사에 참석한 그는 이례적으로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청와대,여당,재야 등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책과 주문에 할 말이 참 많은 듯했다.솔직한 고충 토로 속에 조목조목 반박이 묻어났다.그의 항변은 곧 전 위원장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먼저 구조조정에 있어 이 부위원장은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이 전 부총리는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지만 이 부위원장은 “외환위기 때는 기업과 은행이 실제 부실해졌지만 지금은 어렵다고 말하는 부실징후 기업이 있을 뿐,부실기업은 아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정부가 나서 요구하지도 않는 기업을 줄 세워 (구조조정)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오히려 구조조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부위원장은 말을 이어나갔다.“건설업계 대주단(채권단)만 해도 고민을 많이 했다.주위에서는 100대 건설사 다 집어넣으라고 한다.어떤 이는 과감히 살릴 것은 살리고 죽일 것은 죽이라고 한다.(그런)유혹도 많이 느꼈다.은행 자본확충 문제도 비슷하다.무조건 다 (돈을)집어 넣었을 때 해외에서 우리나라 은행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만약 이 때문에 밖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내린다면 우리는 소탐대실하는 것이다.또 원하지도 않는 건설업체를 강제로 넣었을 때 기업들이 해외경쟁에서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인가.누가 믿고 수주를 주겠는가 말이다.”  이 전 부총리는 현 정부의 위기대응에 대해 “사회적 논란을 두려워해 시간을 끌다가 기와 몇 장이 아닌 통째로 보물을 날려버린 남대문 화재 꼴이 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부위원장은 “욕을 먹더라도 원칙을 지키자는 생각이다.정책을 취할 때는 국내 시각보다는 위기의 본질이 어디에 있고 과연 해외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글로벌 관점에서 다가가야 한다.”고 맞섰다.  그는 “밖에서 볼 때는 정부가 너무 천천히 가는 것 같고 원칙이 없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위기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하고 시장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지금은 기업도 금융기관도 훨씬 나은 상황이다.이런 시점에 정부가 오버 리액트(과잉반응)하면 더 큰 문제”라고 못박았다.이 전 부총리의 “지체없는 정부 개입”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상황 인식이 다르니 처방도 다른 셈이다.금융위 관계자는 “아니할 말로 외환위기 때는 사체(부실기업) 처리였지만 지금은 생체(부실징후기업) 처리단계인데 어떻게 처방전이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부위원장은 ‘공무원 조직 장악력 미흡’이라는 민감한 문제도 자신의 입으로 먼저 꺼냈다.“민간에서 온 사람이 위원장,부위원장을 하니까 시장을 꽉 못 쥐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10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 부위원장은 국가설명회(IR)를 위해 홍콩으로 출국하려던 계획을 30일 전격 취소하고 국내에서 현안을 챙겼다.  기대를 안고 출발한 ‘전광우-이창용’ 민간 사령탑 체제가 소신대로 이번 금융위기 진화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전 위원장은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이 부위원장은 서울대 교수 출신이다. 안미현 유영규기자 hyu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밤길’(그림 1)은 신윤복의 작품인데,신윤복 풍속화 치고는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나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논하는 자리에서,혹은 풍속화로 만든 달력이나 기념품 등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없다.하지만 이 그림은 퍽 꼼꼼히 따져볼 만한 것이다.그림 위쪽에 하현달이 떠 있는 것을 보면 밤이 분명하다.또 담뱃대를 문 기생이 팔에 털토시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겨울밤이 틀림없다.참고로 말하자면,조선시대 여자는 몸 전체를 가리는 방한의(防寒衣)가 없었으므로 단지 팔에 털토시만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여자의 털토시 말고 방한구(防寒具)는 또 있다. ●화려한 옷차림 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 등불을 들고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어린 사내종이 오른쪽 팔에 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털가죽으로 만든 이 물건은 위쪽에 끝을 죄는 줄이 있다.곧 펼친 상태에서 착용하고 끈을 죄어서 오므리는 것이다.끈이 있는 방한구로는 풍차나 만선두리 같은 것이 있지만,이 그림만으로는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어쨌거나 방한구를 착용하거나 들고 나선 추운 겨울밤인 것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별감이다.이 사람을 순라군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결코 아니다.이 사람은 앞서 ‘기방의 난투극’에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는,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이다.대전별감은 옷차림이 화려하다 했는데,이 그림의 복색을 보아도 과연 그렇다.대전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홍의(紅衣) 안에 푸른 색,분홍색,갈색 누비옷을 겹쳐 입고 있다.신발 역시 가죽신이다.또 초립 아래는 방한구인 털가죽으로 만든 ‘풍뎅이’를 쓰고 있다.과연 서울 시내 복색의 유행을 주도하는 별감답게 잔뜩 사치한 모양이다.  기생과 대전별감 사이에 있는 남자는 양태가 넓은 갓을 쓰고,중치막을 입고,가죽신을 신었다.양반이다.기생과 기부(妓夫)인 대전별감,그리고 이 양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그림 속의 인물이 말을 하지 않으니,알 수가 없다.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물들의 동작을 보자.중치막을 입은 양반은 오른손으로 갓의 양태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고,대전별감은 왼손으로 앞을 가리킨다.저 쪽으로 가라는 신호로 보인다.기생은 대전별감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양반 왼쪽에 있다.즉 기생은 대전별감과 떨어져 양반과 함께 밤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양반과 기생이 같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은,그들의 앞에 사방등을 든 어린 사내종이 길을 인도하고 있음을 보아서도 알 만하다. 자,그렇다면 어떤 장면인가.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원래 기부는 기생과 동침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그날 밤을 손님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나는 이 그림이 기부인 대전별감이 고객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이의가 없으신지? ●기녀제도 양반들의 성욕 위해 500년 유지 기생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하지만 기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조선조에 와서 기생을 없애려고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 일파의 거듭된 요청으로 일시 기생이 없어지지만,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다시 기생제도가 부활하였다. 전에 언급했듯 기생은 두 가지 목적으로 존재하였다.춤과 노래를 익혀 궁정과 양반들의 잔치에 동원되는 것,그리고 하나는 양반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조선 양반 체제는 양반-남성의 결혼이란 합법적 방식을 벗어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갑오경장 때까지 거의 500년 동안 관기제도(官妓制度)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그림(2) 역시 신윤복의 작품이다.제목은 ‘국화 옆에서’.서정주의 시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그림의 왼쪽에는 국화꽃이 피어 있고,오른쪽에는 사내와 늙은 할미가 있다.그리고 그 앞에는 댕기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처녀가 있다. 사내는 아직 앳된 기운조차 느껴지는 젊은 나이고,여자는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옆모습만 보아도 젊은 처녀임을 알 수 있다.남자가 웃통을 벗고 있는 것으로 보아,조금 전까지 남자는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이제 막 대님을 치는 것으로 보아,바지도 벗었다가 이제 다시 주워 입는 것이다.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그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자는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남자와 여자는 이미 하룻밤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 곧 이 사내는 여자의 초야권을 샀던 것이다.흔히 ‘머리 얹어준다.’는 말은,기생의 초야권(初夜權)을 사서 땋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다.동기(童妓)의 초야권을 사는 사람은 이부자리와 의복과 당일의 연회비를 담당해야만 했는데,아마도 젊은 오입쟁이는 그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조방군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늙은 할미다.얼굴이 검고 깡마르고 약간 간교하게 보이는 할미는 입을 가리고 여자에게 소곤대고 있다.내용이야 확인할 수 없지만,여자를 어르고 달래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 할미는 도대체 누구인가?어두운 성의 거래에는 반드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수호지’에서 바람둥이 서문경과 유부녀 반금련 사이에 다리를 놓아 간통을 성사시킨 것은 이웃에 사는 늙은 여자 왕파였다.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하는 여자가 과연 있었던가.19세기의 가사 ‘우부가(愚夫歌)’에 그런 여자가 나온다. ‘우부가’는 세 사람의 어리석은 사내의 행각을 그린 작품이다.개똥이·꼼생원·꾕생원 세 사내는 돈을 펑펑 써대며 온갖 놀이와 황당한 행각으로 결국 재산을 거덜내고 파멸하고 만다.그 중 꼼생원의 행각을 그린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리 모여 노름 놀기,저리 모여 투전질에/기생첩 치가(治家)하고,오입장이 친구로다/사랑에는 조방군이,안방에는 노구할미”   보다시피 꼼생원이 하는 일은 패가망신하는 일이다.맨 끝부분의 조방군과 짝을 이루고 있는 노구할미란 부분에 주목해 보자.조방군이란 기부를 말하는 것으로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자다.따라서 노구할미 역시 그런 성의 판매를 중개하는 사람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노구는 한자로 쓰면 ‘?’가 된다.문자 그대로 직역하면,‘늙은 할미’ 뜻이지만,사실은 뚜쟁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노구장이’란 말이 있는데,이것은 뚜쟁이 노릇을 하는 늙은 할미라는 뜻이며,‘노구질’이라고 하면 뚜쟁이 노릇이란 뜻이다.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上雪)’에 장안 계집을 깡그리 노구질하다 못 해서 조카딸까지 팔아먹는 것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곧 노구질이란 늙은 할미가 하는 뚜쟁이 노릇을 말하는 것이다.그림(2)의 할미의 정체는 밝히자면 이런 것이다.  물론 뭔가 찜찜한 구석은 있다.나는 그림(2)의 젊은 여성을 기생으로 보았는데,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서울의 기생과 지방의 기생의 출신 성분이 같지만,기생업의 경영 방식에 다른 점이 있다.즉 서울의 기생은 기부(妓夫),즉 남자가 기생을 지배한다.그림(1)에서 등장하는 대전별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하지만 지방의 기생은 기모(妓母),즉 기생의 어미가 지배한다. 기모의 경우는 춘향이와 월매를 떠올리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생은 모두 서울의 기생들이다.그렇다면 기부가 나오지 않고 노구할미가 난데없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인 것이다. 물론 젊은 여성이 기생이 아닐 수도 있다.여염집의 가난한 젊은 처녀 혹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돈이 필요한 여성일 수도 있다.이럴 경우 그림(2)의 할미는 돈 많은 남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추측은 가능하지만 어떤 쪽도 확언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우선 덮어둘 수밖에.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지난 9월에 코엑스에서 있었던 우리나라 최대의 ‘제7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미술시장의 침체로 작년보다 판매액과 관람객이 줄었다. 이번 미술시장은 코엑스 태평양홀과 인도양홀에서 218개 화랑(국내 116, 해외 102개)이 참가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KIAF 사무국은 ‘제7회 한국국제아트페어’의 관람객이 6만 1614명, 작품 판매액은 140억 원(추정치)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매년 열려온 KIAF의 관람객과 작품 판매액은 2002년 1만 8,000명:7억 3000만 원, 2003년 2만 3000명:18억 원, 2004년 2만 8000명:20억 원, 2005년 3만 2000명:45억 원, 2006년 5만 명:100억 원, 2007년에는 6만 4000명이 175억 원 규모의 미술품을 구입했다. 이번 판매 저조는 미국발 금융 위기와 정부의 2010년부터 점당 4,000만 원 이상 미술품 양도세 부과 방침에 따른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반영되어, 그동안 미술시장을 이끌었던 ‘블루칩’ 작가와 30~50대 인기 작가들의 작품 판매 부진으로 매출액이 30억~40억 원 정도 감소된 것이다. 10월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제14회 마니프(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10.1~13)’와 ‘제14회 SIPA(서울국제사진아트페어, 10.18~24)’, 대구 엑스코에서 ‘대구아트페어(10.29~11.2)’가 이어진다. 마니프는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제 미술품은 고가로 부자들만이 구입하는 게 아니고 ‘김과장’도 살수 있다고 대중을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다. 이 밖에 A&C 아트페어, 안산국제아트페어, 골든아이국제아트페어…, 아트페어가 전국적으로 도·시 단위로도 열리고 있다. 아트페어(art fair)는 일반적으로 몇 개 이상의 화랑이 한 장소에 모여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로, 미술시장을 뜻한다. 화랑 외에 작가 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때도 있지만, 미술품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화랑 사이의 정보교환이나 판매 촉진 또는 시장의 확대를 위해 여러 화랑이 연합해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다. 국내에는 아트페어로 1986년 출발한 ‘화랑미술제’, 2002년 출발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05년부터 ‘서울판화미술제’를 확대한 ‘서울국제판화사진미술제(SIPA)’, 2007년부터 ‘서울오픈아트페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아트페어가 화랑이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파는 것만이 아니라 마니프나 한국현대미술제(KCAF), 대한민국미술제(KPAM)처럼 부스별로 작가 스스로 작품을 판매하는 형태도 포함한다. 세계아트페어는 국제화상들이 현대미술품을 내걸고 치열한 판촉전을 벌이고 세계미술시장의 정보를 주고받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미술품 판매시장이다. 아트페어가 개최되면 컬렉터, 미술가, 딜러, 미술관계자, VIP, 언론사 등이 모여 짧은 기간 동안 붐비기 마련이다. 이제는 단순한 미술장터가 아니고 도시, 국가가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부가가치가 높은 컨벤션 산업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피악(FIAC), 스위스의 바젤, 미국의 시카고 아트페어가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데, 피악은 대중성과 축제성을 중시하는 아트페어로, 시카고 아트페어는 미국의 현역작가를 선보이는 아트페어로 유명하다. 큰 아트페어 일수록 참가하는 화랑들은 주최측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작년 스페인에서 열린 아르코 아트페어는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초대되어 ‘코레아 아오라(Corea Ahora / 한국의 현재 / Korea Now)’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아오라는 스페인어로 ‘지금’이라는 뜻이다. 이 문화행사는 아르코에 한국 15개 화랑의 출품, 특별기획 7개 전시, 퍼포먼스로 김금화와 서해안풍어제, 안은미댄스컴퍼니, 한국영화 특별전, 한국문학포럼 등이 포함된 대규모 행사로 대통령까지 참관한 바 있다. 미술품의 구입은 일반적으로 화랑이나 작가의 전시장, 옥션 등을 통해 구입하게 된다. 그러나 아트페어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열리지만 여러 작가의 최근 미술 동향을 보며 가격이 공개되어 있어 구입하기가 편리하다. 한 장소에서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과 가격대를 가지고 있어 비교하여 구매가 쉽다. 이 가을 아트페어에 가서 온 집안 식구가 공감할 작품 한 점을 구입해 생활의 풍요로움을 느끼길 권유한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 여유가 그립다. 글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관 관장 www.daljin.com <가을, 秋 유물 속 가을 이야기> 10.6~11.16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조상들이 예술 속에 담아내고자 했던 가을의 정서를 문화유산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열린 기획특별전이다. 전시는 크게 가을을 주제로 4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 ‘가을을 그리다‘는 산수화를 중심으로, 2부 ‘가을을 느끼다’는 꽃·풀벌레·새 그림의 회화·도자기를 선보인다. 이어 3부 ‘가을을 노래하다’에서는 향가와 시·시조·편지글이, 4부 ‘가을을 거두다’에서는 농가의 추수 모습의 경직도·풍속화를 전시하고, 세시기 등 문헌을 통해 한가위 풍속을 살핀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김홍도, 정선, 강세황 등 잘 알려진 작가의 유명 회화 작품을 포함하여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총 140여 점에 이르는 유물과 더불어, 옛 선인들이 즐겨 사용한 시전지(편지지)를 만들어 보는 체험공간이 마련되며, 가족참여 프로그램 <야생화와 가을 숲 여행>이 야외 정원에서 진행되는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함께한다.(www.museum.go.kr T.2077-9000)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 9.23~11.9 서울역사박물관 조선 중기 이후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한 삼국지 관련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삼국지의 체계적인 이해와 우리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이해하고자 기획된 특별전이다. 주제별로 프롤로그인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삼국지의 역사적 배경과 정사를, ‘삼국지연의의 유입과 유행’은 조선 중기 우리나라 유입과 유입 초기의 문제점 및 민간에 유행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우리 민화 속 삼국지’는 조선 후기 삼국지의 대중적인 유행을 만나볼 수 있고, ‘서울 역사문화 속 삼국지’는 서울 곳곳에 있었던 민간 무속신앙 관련 자료를 통해 삼국지의 흔적을 찾아본다. 이어 ‘대중문화 속 삼국지’에서는 1900년대 이후 출판된 신문연재·잡지연재·번역소설·만화로 삼국지를 만나보고 영상자료를 통한 <적벽가>도 들어볼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참여 가능한 ‘삼국지 읽기’, ‘다른 책 같은 이야기’ 등으로 삼국지의 재미를 함께 느껴본다. 조선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삼국지 관련자료 15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로, 서울의 역사문화 속에 삼국지가 어떤 형대로 녹아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www.museum.seoul.kr T.724-0153) <정원방문기> 10.16~12.6 코리아나미술관 코리아나 화장품 창립 20주년 기념전시로 8명의 작가가 생각하는 정원의 의미들을 방문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정원(garden)’은 ‘보호하고 막는다’의 gan, ‘즐거움’의 eden이 합성된 것이다. 바로 이 정원이 가진 모호성과 이중성, 의미의 복잡한 메트리스를 작품으로 표상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동시대 문화의 일면을 짚어내고자 한다. 더불어 기업 이념인 ‘Art Through Nature(자연을 통한 아름다움의 예술창조)’ 정신을 예술작품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에덴 : 쾌락의 정원+비밀의 정원, Promenade+借景+詩景(산책+차경+시경), Colour Graound (색채 탐구에 헌신된 장소로서 정원), Political Garden (권력의 장으로서의 정원), Healing Garden (치유로서의 정원)이라는 소제목의 전시내용을 갖고 노재운(영상), 문경원(영상), 박화영(영상설치), 안성희(사진설치), 윤애영(프랑스, 영상설치), 이윤진(사진), 이창원(평면 설치), 타카기 마사카츠(영상)가 참여한다. (www.spacec.co.kr T. 547-9177)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남녀상열지畵’ 통해 위선적 사회 조롱

    ‘남녀상열지畵’ 통해 위선적 사회 조롱

    신윤복 作 ‘월하정인´  ‘신윤복(申潤福·1758~?)자 입부(笠父),호 혜원(蕙園),본관 고령(高靈),첨사 신한평의 아들.벼슬은 첨사다.풍속화를 잘 그렸다.’  한국 역대 서화를 감정하고 고증하는 데 있어 권위를 인정받는 서예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의 한 대목이다.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인 신윤복이 역사와 접점을 이뤘던,단 두 줄의 짧은 기록이다.그리고 200년 남짓 흐른 지금 신윤복을 둘러싼 광활한 여백은 후세의 숱한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TV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바람의 화원 1,2’(이정명 지음)도 베스트셀러 목록의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소설 신윤복’은 그 와중에 출간됐다.작가는 1990년대 초반 ‘십우도’,‘탄트라’ 등 불교소설을 쓰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가 한동안 뜸했던 백금남이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소설 신윤복’은 조선후기 회화사 3부작 시리즈의 2부에 해당한다.1부는 이미 출간된 ‘샤라쿠 김홍도의 비밀’(한강수 펴냄).  작가는 “마치 시류에 편승하려는 듯 비쳐지는 것 같아 당혹스럽지만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의 하나”라면서 “운보 김기창까지 이어지는 근대회화사가 3부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소설 속에는 문근영(드라마)이나 김민선(영화)과 같은 예쁘고 섹시한 신윤복은 없다.소설 속의 신윤복은 남자다.그것도 여느 남자는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의 기개와 호기로움을 자랑하는 사내다.대스승 표암 강세황(1712~1791)이나 단원 김홍도(1745~1810전후) 앞에서도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의 예술관과 속내를 뱉어낼 정도로 거침없는 성정을 갖고 있는가 하면,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기생을 곁에 두고 술을 마시거나 투전판을 전전하며 싸움질을 일삼는 비루한 밑바닥 삶을,자학하듯 즐기는 인물로 그려졌다.똑같은 인물을 다뤘지만 출발이 이렇게 다르니 영화,드라마와 ‘신윤복’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신윤복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배운다는 설정은 마찬가지다.당시 풍속화에서 금기시됐던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며 조정과 도화서 동료들의 미움을 받고 시중에 떠도는 춘화를 그린 장본인으로 지목되며 도화서에서 쫓겨나는 것도 역사와 소설,영화 등에서 동일하게 겹치는 내용이다.  소설과 영화가 엇갈리는 대목은 바로 ‘거지 화가’ 최북의 등장.신윤복의 그림 세계를 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떠돌이 최북은 술 몇 잔을 위해 어디서든 그림을 그려주지만,강압적으로 그림을 요구하는 고을 사또 앞에서는 붓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찔러댈 정도로 그림에 대한 자존심과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소설 속에서 신윤복은 김홍도의 강권에 의해 최북을 따라다니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지와 그 열정을 배우게 된다.그리고 도화서에서 쫓겨난 뒤 술집과 투전판을 옮겨다녔고,어릴 적 첫사랑인 기생 ‘송이’를 만나 불후의 작품 ‘미인도’를 그린다.영화,드라마와 달리 신윤복을 남자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과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조롱이 담긴 그의 작품 세계와 맞닥뜨릴 수 있다.  작가는 “기존의 소설,드라마,영화 등은 아무리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하더라도 ‘남장여자설’은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 관계조차 지키지 못한 심각한 오류”라고 말했다.  어차피 역사의 빈약함은 신윤복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신윤복을 말해주고,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그림뿐이다.‘소설 신윤복’은 그림에 서사를 부여해 풀어간 작품이다.‘신윤복은 남장여자’라는 설정이 실존인물을 상상의 극한으로 몰고갔다면,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상당히 충실하다는 점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보완재’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다윈의 식탁(장대익 지음,김영사 펴냄)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150년간 논쟁 속에서 진화해온 진화론을 구체적 사례로 재분석한다.일종의 픽션.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 ‘강간도 적응인가’,‘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진화는 100m경주인가 멀리뛰기인가’ 등에 대해 폭넓은 토론을 벌인다.1만 3000원. ●헤이안 일본(모로 미야 지음,노만수 옮김,일빛 펴냄) 부제 ‘일본 귀족문화의 원류’로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문화,종교,문학,일상생활들이 꼼꼼히 들어 있다.일본 귀족들은 왜 눈썹을 다 뽑고 원래 눈썹의 위치에 새로 눈썹을 그렸을까? 일본여자들은 왜 긴 머리를 늘 풀어헤치고 있나 등 소소한 궁금증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시인이 번역해 읽는 맛이 더 있다.1만 7000원. ●클루지(개리 마커스 지음,최호영 옮김,갤리온 펴냄) 저자는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로 기존의 사고틀을 벗어나는 분방한 생각의 방식을 제시한다.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진화가 최선의 선택을 담보한다는 전통적인 자연선택론에 비판을 가한다.진화론과 창조론을 모두 공격하는 도발적인 책.1만 3800원. ●부자로 바꾸는 3시간의 투자(김형환 지음,신원문화사 펴냄) 최근 3~5년간 재테크에 몰두했던 사람들이 미국 금융위기로 쪽박을 차게 생겼다.이제는 돈 버는 법보다 있는 돈을 지키는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재무설계가 필요하다.전문가의 도움 없이 3시간이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재무설계법이 소개됐다.1만 2000원. ●시장의 역사(박은숙 지음,역사비평사 펴냄) 한국에서 시장의 역사와 의미를 교양서 수준으로 다뤘다.읽기 쉽게 풀었고 시장 관련 사진이 풍부해 재밌다.시장에서 거래된 상품과 상거래 풍속이 삼국,고려,조선전기,조선후기,개항기,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5개의 장으로 나눠져서 설명된다.1만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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