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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치민시 대중교통망 사업, 한국 중소벤처기업 ‘데이탐’ 참여

    호치민시 대중교통망 사업, 한국 중소벤처기업 ‘데이탐’ 참여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치민시 대중 교통망 개선 사업을 한국 중소 벤처기업이 주도한다. 베트남 과학기술부 레 토앙 탄 기술센터장과 한국 데이탐 이영철 사장은 지난 7일 호치민시 렉스호텔에서 열린 ‘전기버스 전용차로 도입을 위한 기술 이전 및 투자 협정식’에서 호치민 시 버스전용차로 개설과 전용차로 운행용 전기버스 공급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과학기술부와 천연자원환경부, 교통국 등 베트남 중앙정부 고위관계자들과 한국의 스마트휴먼테크 협회, 한국도시정책 학회 부회장 전하진 전 국회의원, 한국녹색기술센터(GTC), 한국무역협회(KOTRA) 그리고 참여 기업인 데이탐과 ALG 시스템즈 등 양국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날 합의된 내용 중 호치민시는 시내에 버스전용차로 30㎞를 시범 지정하고 데이탐은 여기 운행될 전기버스 2만대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 전기버스는 도로 점유율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폭 1.5m의 17인승 중형 버스로 하고 배차시간을 1분 간격으로 밀착시켜 승객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할 예정이다. 신설될 버스전용차로에는 BRT(Bus Rapid Transit, 간선급행버스체계) 시스템을 도입해 출발과 도착 안내 등 버스 왕복 관련 스마트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또 한국의 에이엘지시스템즈의 시공으로 스마트 LED가로등과 WIFI AP(공유기)를 설치해 버스 승객 및 주변 주민들에게 무료 네트웍을 제공한다. 특히 전용차로에 설치될 IP카메라는 돌발상황을 확인하고 불법 도로 이용자들을 적발하는 등 중앙통제센터에서 도로 위 모든 정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첨단시스템이 도입된다. 데이탐은 또 운행버스에 자체 특허 장치인 탄소배출 모니터링 시스템을 부착해 운행 횟수와 거리, 이용 승객 수에 따른 탄소감축량을 호치민시에 숫자로 제공한다. 이 데이타는 UN이 지정한 탄소감축량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되며 탄소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는 근거로도 제공된다. 버스전용차로가 준공되면 호치민 시는 연간 탄소 가스 배출량의 20%에 달하는 약 100만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고 1억 달러의 에너지 사용료를 해마다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상 소요 자금 5억5000만 달러(한화 약 6000억원)는 데이탐 주도로 UN 산하 GCF(녹색기후기금)의 환경개선 지원 자금과 글로벌 펀드사 들의 자금 참여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베트남 과학기술부 팜홍궛 국장은 “베트남에서는 해마다 교통난으로 13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전제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호치민시의 스마트 교통 체계 개설과 대기 오염 개선 작업이 동시에 이뤄짐으로써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이영철 데이탐 사장은 동영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호치민시가 UN의 탄소감축 정책에 부합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대중교통체계의 개선과 에너지 절감, 배출가스 감축 등의 실질적 효과 외에도 동남아의 선도 국가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호치민시 버스전용차로 건설 사업은 지난 2017년 11월 호찌민 시의 인민위원회가 의결한 제 6179호 결정서 ‘스마트시티를 위한 전기버스 도입 계획’에 근거해 2025년까지 환경오염 감축과 첨단 도시 시스템 정비를 위한 베트남 정부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의 하나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1일에는 베트남 트린 딘 둥 부총리와 천연자원환경부 트란 홍 하 장관 등 베트남 중앙 정부 각료 들이 참가한 가운데 ‘베트남 에너지 및 온실 가스 감축 프로젝트 회의’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도 이영철 데이탐 사장이 초청돼 주제 발표를 하고 베트남 청정 지역 만들기에 적극 협력하기로 협약식을 가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기생충’ 개봉 7일째 450만명 돌파…독보적인 흥행 1위

    ‘기생충’ 개봉 7일째 450만명 돌파…독보적인 흥행 1위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관객수 450만을 돌파했다. 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기생충’은 개봉 7일째인 5일 42만 5796명의 관객을 동원, 이날 역시 1위를 차지했다. 누적 관객수는 452만 3799명이다. ‘기생충’은 개봉 5일 만에 손익분기점 370만명을 뛰어넘었으며, 6일 째에는 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칸영화제 수상작들이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점을 볼 때 ‘기생충’의 기세는 독보적이다.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올드보이’(2004·박찬욱)가 327만명,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2007·이창동)은 171만명,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쥐’(2009·박찬욱)는 224만명, 2010년 각본상을 받은 ‘시’(이창동)는 22만명이 관람했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잘 짜인 각본과 빈틈없는 연기, 연출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이다.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을 불편하지만 위트있고 날카롭게 다뤘다는 평이다. 코미디와 스릴러, 공포를 넘나드는 장르에 영화 속 다양한 은유를 이유로 여러 번 관람했다는 후기도 눈에 띈다. 봉준호, 송강호 두 사람이 함께한 ‘살인의 추억’(2003)은 525만명을 동원했고, ‘괴물’(2006)은 1300만명, ‘설국열차’(2013)는 935만명을 기록했다. 두 사람이 ‘기생충’으로 또 다시 쓰게 될 흥행성적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네 일상(日常)이 역사가 되다 - 국립 민속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우리네 일상(日常)이 역사가 되다 - 국립 민속박물관

    # 한국인의 생활이 기록되다. 16만 여점이 넘는 귀한 자료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中에서. 2007> 뜬금없지만, 속담 하나를 던진다. 등잔 밑이 어둡다. 혹은 이번에는 빗나간 속담도 하나 건넨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 경복궁 옆 국립민속박물관을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일 수도 있다. 이 곳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외면하였고, 너무 유명해서 건너뛰었던 공간이다.사실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 국가대표 생활사 박물관으로 지방자치단체나 혹은 개인, 단체들이 운영하는 생활사 전시관과는 격(格)자체가 애당초 다르다. 한 마디로 국보급 생활사 자료들만 모여 있는 귀한 공간이 되시겠다. 한국인의 밥벌이에 관한 일상의 역사가 기록된 곳, 제대로 가 보자. 기본기가 튼튼한 국립민속박물관이다. 한국인의 민속(民俗)은 무얼까? 김훈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민족이 누리는 공동의 삶의 터전 가운데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는, 공동 운명을 지닌 민족의 생활 양식 전부를 말한다. 한 마디로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죽는 과정 가운데 겪게 되는 일련의 생활과 행동 양식이다.따라서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는 이러한 이유로 소장품의 대부분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을 전시 보관하고 있다. 강원도 산촌 민속 조사에서 수집한 나무 김칫독, 새색시가 시집 올 때 곱게 입고 온 치마 저고리, 이장을 하다가 출토된 조선시대 출토복식, 힘든 농사일의 동반자였던 농기구, 개인 간의 토지거래 기록인 토지매매 고문서 등과 같이 우리의 인생과 일상, 생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물들을 소중히 보존하고 있다. # 야외 전시실과 어린이 박물관은 꼭 들러야, 삼청동 길 옆국립민속박물관의 개관 역사는 이러하다. 1946년 4월, 서울 남산 기슭에 ‘국립민족박물관’을 개관한 뒤 1966년 10월에 경북궁 내 수정전에 현재 박물관 형태와 비슷한 ‘한국민속관’을 연다. 이후 몇 번의 이전을 거쳐 1993년 2월 17일, 현재의 경복궁 내 건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규모면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하였는데 1975년에는 불과 7백 평 규모에 9개 실과 관장을 포함 6명의 연구관이 전부였던 민속박물관은 지금은 16만여 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하고 매년 2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표 생활사박물관이 되었다.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은 상설전시실 3군데와 야외 전시실, 어린이 박물관 등으로 구성된다. 우선 실내 상설전시실 중 1전시실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조선 후기 이후 한국인의 하루 일상을, 2전시실은 조선시대(1392~1910) 사람들의 생활상을, 마지막으로 3전시실은 조선시대(1392~1910) 양반 사대부 집안의 개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한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야외전시실은 좀 더 다채롭다. 어린이 박물관 옆, 그러니까 박물관 동편에 1,150㎡의 면적 규모에 1960~70년대 여러 상점 건물을 설치하여 당시 일상의 생활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추억의 거리'에는 근대화연쇄점, 다방, 식당, 만화방, 레코드점, 이발소, 의상실, 사진관 등 다양한 근현대 거리 모습이 있으며 ‘근대화 연쇄점’, ‘이발소’, ‘다방’, ‘장미 의상실’, ‘만화방’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비롯하여 어린 아이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당연하다. 경복궁을 방문한다면 필수 코스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해외에서 온 지인들과 함께, 초등학생 자녀들. 3. 가는 방법은? -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 - 무조건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이 주변은 집회 및 행사가 많아 자동차로 이동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4. 감탄하는 점은? - 국가 대표 민속 박물관 다운 소장품. 조선 시대의 일상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외국인들에 비하여 한국인들은 관심이 없다. 삼청동 길을 걷기 전 필수 코스. 6. 꼭 봐야할 소장품은? - 정약용 필적 하피첩(霞?帖), 상여, 장영직 유품, 정원용 유품, 야외 전시실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 경복궁과 국립고궁박물관까지 들리면 반나절은 걸린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nfm.go.kr/home/index.do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운현궁, 청와대, 조계사, 삼청동 거리, 인사동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국립민속박물관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소장품들의 수준이 훌륭하다. 거대한 역사의 담론이 아니라 우리네 조상들이 직접 쓰고 다루었던 일상의 유물들을 보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귀한 공간이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꼭 방문하자.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인천 가좌동에서 서울 교남동의 옛 모습을 만나다

    [김시덕의 대서울 이야기] 인천 가좌동에서 서울 교남동의 옛 모습을 만나다

    지난주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자리한 코스모40이라는 건물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 ‘재개발’에 다녀왔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교수를 하다가 학문의 자유를 위해 독립 학자가 된 로버트 파우저라는 한국어 교육 연구자가 찍은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는 2013~15년 사이에 서울 서대문구 교남동의 옛 마을이 재개발 대상이 돼 철거되는 모습을 찍었다. 교남동은 서울시 종로구 지역의 이름으로, 서울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의 북쪽이다. 조선시대에서 식민지시대에 걸쳐 번성한 지역들이 다 그렇듯이 이 일대에도 교남동, 평동, 홍파동, 무악동, 행촌동, 신문로2가 등 작은 동(洞)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서울 교남동의 재개발 모습을 인천 가좌동의 건물에서 전시하고 있는 걸까? 코스모40은 이 지역에서 운영되던 코스모화학의 공장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시설이다. 조선시대 후기인 300여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이곳 가좌동의 남쪽 바닷가를 현대 한국 들어서 매립한 결과 이곳에는 길고 가느다란 공업단지가 만들어졌고 코스모화학 공장단지도 들어섰다. 지금도 코스모40의 4층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공장들이 끝 간데없이 펼쳐져 있다.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공장은 혐오시설로 치부된다. 공장을 대도시의 변두리나 농촌 지역으로 옮기고 공장 부지를 오피스텔이나 고층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것이 유행이다. 단일용도로 설정된 네모난 공장 부지는 큰 건물을 짓기에 편리하기 때문에 예전에 큰 공장이 많았던 서울시의 서남쪽 영등포구·구로구·금천구나 동북쪽 노원구·도봉구 등에는 오늘날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이렇게 공장 부지를 아파트나 오피스텔 건설을 계획하는 회사에 매각하면 공장 소유주 측으로서도 큰 이익을 보겠지만, 최근 이 코스모40처럼 옛 공장의 내외부 모습을 그대로 남기면서 복합문화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얼마 전 논란이 일었던 목포시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부지와 같은 특이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공장 주변 시민들은 이런 방식의 활용을 환영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저 ‘재개발’ 사진전을 보러 코스모40이라는 건물에 간 것뿐이었지만, 코스모화학의 공장 건물을 복합문화시설로 훌륭하게 개조한 모습을 보고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부천의 옛 쓰레기 소각장 건물을 ‘부천아트벙커B39’로 개조한 사례와 함께, 21세기 들어 한국 시민들이 자신들의 현대사에 대해 조금은 더 애정을 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우저 선생이 찍은 사진 속 교남동 옛 마을이 모두 헐리고 고층아파트단지로 바뀌었음을 알기 때문에, 코스모화학 공장 건물에서 코스모40으로의 변화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서울시에서 일어난 재개발에 대한 기억을 전시하도록 허락한 인천 지역의 뜻 있는 분들께도 경의의 마음이 들었다. 파우저 선생은 교남동과 무악동 옥바라지골목의 재개발 당시 모습을 찍은 몇몇 분과 단체 사진전도 계획하는데, 서울에서 열렸으면 좋겠다.
  • 내 사진이 쇼핑몰 광고로…법원 “저작물 해당 안 돼”

    내 사진이 쇼핑몰 광고로…법원 “저작물 해당 안 돼”

    #원고 vs 피고: 쇼핑몰 구매고객 A씨 vs 쇼핑몰 운영업체 B사 A씨는 2017년 10월 B사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패딩점퍼를 구입한 뒤 패딩을 입고 찍은 사진을 얼굴 부분은 가린 뒤 고객 후기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사흘 뒤 B사는 회사 페이스북 계정에 “3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리얼후기 160개…인기 많은 자체 제작 패딩”이라는 문구와 함께 A씨의 사진을 포함한 16장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A씨는 자신의 사진이 무단으로 도용됐다며 B사에 3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A씨는 쇼핑몰 약관에 ‘약정에 따라 이용자에게 귀속된 저작권을 사용하는 경우 이용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사진을 사용해 저작권과 초상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A씨의 주장은 1, 2심 법원에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A씨가 찍은 사진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데요. 2심인 의정부지법 민사항소1부(부장 조규설)는 지난 4월 판결에서 “원고의 사진은 구매 후기 게시판의 특성상 상품인 옷을 구매한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촬영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구체적 촬영 방법인 카메라의 각도나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촬영 시점의 포착 등에 있어 원고의 개성이나 창조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초상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초상권으로 보호되기 위해서는 공표된 신체적 특징으로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원고 사진 속에 드러난 신체만으로 통상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속에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도 없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판결은 지난달 30일 확정됐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본다’에서 ‘보인다’로

    [법인의 활발발] ‘본다’에서 ‘보인다’로

    암자의 일상이 시들하고 무료해지면 나는 이웃 마을로 나들이를 간다. 아무리 좋은 곳도 오래 살다 보면 시들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건너편 풍경으로 몸과 시선을 이동해야 한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과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가끔 찾는다. 김남주 시인이 살았던 집의 마루에 앉아 질박한 촉감을 느끼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상념에 젖는다. 또 고정희 시인의 서재에서 묵은 책들의 묵향을 맡기도 한다. 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대흥사와 10여분 거리에 있다. 터를 바꾸니 마음도 새롭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말소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다.근자에는 강진 월출산 아래의 백운동 원림을 찾는다. 자연친화적인 정원이 있는 별서를 원림이라고 한다. 백운동 원림은 최근 명승지로 지정됐다. 벽에 새겨진 불화가 많은 무위사와 수려한 산 아래 펼쳐진 차밭이 원림과 닿아 있다. 이 원림은 조선 후기 문인 이담로(1627~1701)가 월출산 옥판봉 아래 조성한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은둔의 원림은 1812년 월출산 소풍을 마치고 이곳에서 하룻밤 머문 다산 정약용 선생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산은 연하의 선승이자 한국 차의 중흥조인 일지암 초의 선사에게 주변 풍경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백운동 12경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 원림은 정선대라고 이름 지은 정자에서 바라본 옥판봉과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만든 유상곡수가 일품이다. 검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은 이 별서정원은 은근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기품이 있다. 답사하는 사람들도 이런 풍경과 분위기에 끌린다고 소감을 말한다. 모란이 활짝 핀 날 원림이 명승으로 지정된 기념식을 마치고 여러 사람과 차담을 나누었다. 모두들 원림의 풍경에 감탄하고 칭송하면서 이후 몇 가지 걱정과 바람을 말했다. 혹여 관광의 바람에 휩쓸려 원림을 만든 본래 의미가 퇴색하고 탈색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내비쳤다. 한 해 이곳을 방문하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자칫 서비스 차원에서 주변에 여러 건물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옆의 사람들도 그렇게 신신당부했다. 선비정신이 깃든 처소의 아름다움은 생략과 절제에 있다. 오래 가는 아름다움은 노골적이지 않고 숨기는 멋과 맛에 있다. 여유와 소요의 가풍이 깃든 곳일수록 최소한의 모습만을 드러내야 한다. 다행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백운동 원림을 지키고 있는 후손 이승현 선생은 생각이 깊으신 분인데, 본인 스스로 원림의 정신과 기품을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마침 그분과 통화할 일이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점차 유명해지고 있는 원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저는 여느 관광지처럼 훌쩍 점찍고 가는 곳으로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넉넉한 시간 속에서 원림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고 갔으면 합니다.” 넉넉한 시간 동안 머물렀으면 한다는 생각에 믿음이 듬뿍 갔다. 내가 사는 일지암도 초의 선사와 차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일지암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의를 하면 나는 몇 가지 규칙을 말한다. 먼저 최소 30분 이상 머물고, 오자마자 촬영부터 하지 않으며, 스마트폰 검색을 하지 않고, 빠르게 감탄하지 마시라. 그리고 눈과 귀를 무심의 경지에서 고요히 열어 놓으시라. 그리하면 늘 보던 하늘과 나무와 물소리가 새삼스럽게 보이고 들릴 것이다. 최근에 둘레길이 유행하고 문화 답사가 흥행하는 일은 매우 좋은 조짐이다. 그러나 먼저 번잡한 세속의 습관을 내려놓고, 쫓기는 발걸음을 멈출 때 비로소 보고 들었던 것들이 새삼스러워질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 한 구절이 문화 답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짧은 시간 허둥지둥 스치듯 사진을 찍으며, 그저 ‘보는’ 풍경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피사체일 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조선 시대 어느 문인의 말뜻을 새긴다면 풍경은 마침내 ‘보일 것’이다. ‘보는’ 풍경은 그저 똑같은 사진으로 남을 것이고, ‘보이는’ 풍경은 저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다를 것이다.
  • ‘기생충’ 작품성에 대중성도 잡았다…하루에 112만명 관람

    ‘기생충’ 작품성에 대중성도 잡았다…하루에 112만명 관람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하루에만 112만명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기생충’은 토요일인 전날 112만 7152명을 불러들이며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매출액 점유율은 68.8%, 누적 관객은 237만 2317명으로 늘었다. ‘기생충’은 개봉 첫날 56만 8000명, 이틀째 66만 7792명, 사흘째 110만명을 동원했다. 손익분기점은 약 370만명으로 2일 중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칸영화제 수상작들이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점을 볼 때 ‘기생충’의 기세는 독보적이다.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올드보이’(2004·박찬욱)가 327만명,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2007·이창동)은 171만명,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쥐’(2009·박찬욱)는 224만명, 2010년 각본상을 받은 ‘시’(이창동)는 22만명이 관람했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잘 짜인 각본과 빈틈없는 연기, 연출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이다.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을 불편하지만 위트있고 날카롭게 다뤘다는 평이다. 코미디와 스릴러, 공포를 넘나드는 장르에 영화 속 다양한 은유를 이유로 여러 번 관람했다는 후기도 눈에 띈다. 봉준호, 송강호 두 사람이 함께한 ‘살인의 추억’(2003)은 525만명을 동원했고, ‘괴물’(2006)은 1300만명, ‘설국열차’(2013)는 935만명을 기록했다. 두 사람이 ‘기생충’으로 또 다시 쓰게 될 흥행성적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전라감사 서유구의 ‘완영일록’ 출간

    조선 후기 전라감사를 지낸 풍석(楓石) 서유구 선생(1764∼1845)의 공문서 일기인 ‘완영일록(完營日錄)’이 한글로 번역돼 발간됐다. 전북 전주시는 1833년 4월부터 21개월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한 서유구 선생이 재임 기간 필사한 공문서 기록 약 33만 2000자(字)를 번역한 ‘완영일록’을 출간했다고 31일 밝혔다. 한문으로 된 2권의 책을 한글로 풀어 4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185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완영일록에는 전라도 56개 지역에서 있었던 송사·환곡 ·농정 ·향시 ·효자 열녀의 장려·망궐례·기우제·진상품·부임 과정·각 지역 수령의 인사고과 등의 내용이 기록돼있다. 수록 방식은 먼저 날짜를 쓰고 공문의 요지를 두어줄 쓴 다음에 공문의 성격을 분류한 뒤 그 내용을 적었다. 전라감영이 설치된 전주성은 당시 한양, 평양과 더불어 3대 도시의 하나로 제주를 포함해 전남·북을 관리한 호남의 심장부였다. 특히 완영일록은 관찰사가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고 오로지 행정, 사법, 군정 등 감사의 직무 전반에 걸친 공문서만을 기록해 남긴 일기다. 현재 유일하게 전해지는 일기로 감사의 직무와 감영 문화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서유구는 조선판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11번째 지(志)인 ‘상택지’(相宅志)에서 황산촌(黃山村·익산시 여산면), 서지포(西枝浦·군산시 나포면) 등 전국 233곳의 명당 정보를 담기도 했다. 풍석문화재단 전북도지부는 완역작업을 기념, 이날 전주향교 문화관에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가치를 조망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180여 년 전 전라도 감영의 공문서를 공개하다’는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세미나에서는 ‘완영일록과 전라감사 기록을 통한 관찰사 근무평가 분석’ 등을 주제로 다뤘다. 황권주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완영일록은 관찰사의 근무지인 감영에서 벌어진 일상을 우리말로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음은 물론 당시 지방의 사정과 행정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좋은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길섶에서] 시선의 이동, 관점의 변화/박록삼 논설위원

    시선이 움직인다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짐을 뜻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파천황(破天荒)의 경험이었다. 당시 관행이었던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구도를 깨뜨렸다. 국보 제217호 ‘금강전도’를 보면 금강산 비로봉, 만폭동 등 금강산 봉우리들을, 요즘 말로 하면 ‘드론 샷’처럼 담아냈다. 시선을 이동시키며 그림에 대한 관점을 바꾼 것이다. 정선이 직접 발로 누비며, 장엄하지만 한편으로는 포근한 금강산의 내밀함을 고스란히 사생한 결정체였다. 금강산은 1998년 가을 남측에 감춰둔 비의를 공개했다. 많은 이들이 금강산을 찾아 감탄했고,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체험이 2008년 중단된 뒤 11년째다. 북미 대화는 쉬 재개되지 않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더디다. 금강산 관광이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백 번 말해도 실효가 없다. 금강산을 직접 못가 보니 중국 화가 종병(375~443)이 “젊어서 산천을 돌아보고 늙어서는 이를 그려 벽에 걸어 누워서 즐긴다”고 말하며 와유(臥遊)를 권했듯 금강산 그림이나 찾아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서울 양천구 겸재정선미술관의 금강산 특별전이 한창이다. 평화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관점의 변화가 중요하다. youngtan@seoul.co.kr
  • 수없이 칠했어도 비워진 화폭…그는 예술가인가, 구도자인가

    수없이 칠했어도 비워진 화폭…그는 예술가인가, 구도자인가

    “여러분들이 들은 여러 가지 풍문에는 내가 뿔이 난 도깨비 같은 사람으로 묘사가 돼 있을 겁니다. 근데 아침에 뿔은 다 밀어내고 왔습니다. 하하.” 노(老)작가는 민머리를 연신 만지며 말했다. 오는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여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88) 작가다. 지난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뇌경색 투병의 여파로 휠체어에 앉아서도 30여분 넘게 자신의 예술 철학을 강변했다. ‘도깨비’란 미술계에서 교육자이자 행정가, 평론가로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며 ‘홍익대 사단’을 공고히 한 패권주의자라는 평을 의식한 언급 같았다.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는 설명이 붙은 전시에서는 그의 70여년 화업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195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새로 내놓는 신작까지 160여점의 작품을 다섯 시기로 구분해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시기별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 번째는 ‘원형질’ 시기다. 1956년 김충선, 문우식 등과 함께 도전과 창조정신을 촉구하는 ‘반국전 선언’을 발표한 작가는 1957년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 ‘회화 No.1’을 선보인다. 앵포르멜이란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운동으로 서정적 측면을 강조해 색채에 중점을 둔 표현주의적 추상예술이다.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회화 No.1’에서 그는 대량 학살과 집단 폭력으로 인한 희생, 부조리 등 당대의 불안과 고독을 분출했다. 작가는 1960년대 후반 옵아트(기하학적 형태나 색채의 장력을 이용해 시각적 착각을 다룬 추상미술), 팝아트를 수용한 ‘유전질’ 연작을, 1969년 인간의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그린다.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묘법’ 시리즈가 이어진다.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었다. 중기로 가면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해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면서 한지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인 ‘지그재그 묘법’이 나타난다. 다섯 번째는 ‘후기 묘법’ 시기다. 1990년대 중반, 작가는 손의 흔적 대신 막대기나 자 등을 활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을 만드는 일에 골몰했다. ‘색채 묘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업에서는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됐다. 전시장 입구에 내걸린 대형 작품 2점은 작가가 올해 완성한 신작이다. 대표작 ‘묘법’ 시리즈가 각각 핑크색, 하늘색 바탕에 얹혔다. “그림에 내 생각을 담아내는 게 아니라 나라는 걸 비워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와서 쉬어갈 수도 있다. 그림은 수신을 향한, 수행을 위한 도구 아닌가.” 멍하니 바라보노라면 70여년 쉬지 않고 현재 진행형인 작가의 분투가 느껴진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예술인가, 구도인가, 둘 다인가. 작가는 그 답을 알 것 같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라스’ 함소원 “♥ 진화, ‘프로듀스’ 나갈 뻔” 연습생 포기한 이유는?

    ‘라스’ 함소원 “♥ 진화, ‘프로듀스’ 나갈 뻔” 연습생 포기한 이유는?

    ‘라스’ 함소원이 생생한 제왕절개 출산 후기를 공개하며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와 함께 딸 사랑을 한껏 방출하며 ‘딸 바보’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물론, 엄마가 된 후 ‘이것’에 집착하는 이유를 밝히며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오는 29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는 함소원, 송가인, 자이언트핑크, 몬스타엑스 셔누가 출연하는 ‘뜨거운 녀석들’ 특집으로 꾸며진다. 제작진에 따르면 함소원은 제왕절개 출산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며 기대를 모은다. 앞서 그녀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출산 과정을 공개했던 바. 그녀는 “남편 손에 손톱자국이..”라며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예정이라고. 또한 엄마가 된 후 ‘이것’에 집착하는 이유를 밝히며 웃음을 자아냈다는 후문. 그런가 하면 함소원은 놀라운 씀씀이로 모두를 감탄케 한다. 그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씀씀이로 반전 매력을 보인 것. 주변 사람들까지 기겁한다는 그녀의 반전 씀씀이는 어떨지 궁금증이 높아져만 간다. 더불어 함소원-진화 부부는 한국에 이어 중국-일본에서도 ‘뜨거운 커플’임을 입증한다. 뜻밖의 ‘해외 토픽’으로 실검을 장악했다고. 이어 그녀는 남편 진화가 ‘프로듀스’에 나갈 뻔했다고 밝히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한국 기획사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는 그가 두 달 만에 한국 연습생 생활을 포기한 ‘웃픈’ 이유는 무엇인지 방송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함소원은 ‘손에 물을 안 묻힌다’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진실을 밝힌다. “저희 남편이 요리를 좋아해요”라며 말문을 연 그녀는 남편 자랑에 이어 시아버지 자랑을 한껏 쏟아내며 부러움을 자아냈다고. 이어 “집에서 뭐 해요?”라는 MC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며 모두를 웃음 짓게 했다는 후문. 이외에도 함소원은 스페셜 MC 안영미에게 유럽으로 갈 것을 강력 추천하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뒤이어 토크를 이어가던 중 안영미가 제작진에게 버럭 화를 내며 모두를 폭소케 했다는 후문. 한편, MBC ‘라디오스타’는 29일 오후 11시 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손잡은 경북·고령·한국해양대, 대가야 뱃길 재현

    손잡은 경북·고령·한국해양대, 대가야 뱃길 재현

    경북도와 고령군, 한국해양대가 손잡고 1500여년 전 대가야의 고대 뱃길 재현에 나선다. 이들 3개 기관은 27일 부산 영도구 한국해양대에서 ‘대가야 해양 교류사 재조명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3개 기관은 ▲대가야~왜(倭)와의 해양 교류사 재조명 사업의 공동 기획·운영 추진 ▲공동 학술대회 개최 및 연구도서 발간 ▲환동해시대 해양도시 간 경제·문화 교류 네트워크 구축 등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우선 고령군은 다음달 초 곽용환 고령군수를 단장으로 일본 오키나와를 사전 답사해 고령~오키나와 고대 뱃길 재현과 국제 학술포럼, 문화교류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 이어 10월에는 고령~오키나와 고대 뱃길 재현 행사와 함께 ‘대가야 해양문화 및 국제교류 도시와의 인문관광 자원화 학술포럼’을 고령군에서 개최하고 서적을 발간할 계획이다. 대가야와 오키나와의 전통악기인 가야금과 산신 앙상블 공연도 추진한다. 경북도는 대가야의 해양 진출 통로였던 낙동강, 섬진강 일대에 대한 포구, 조선소 등과 관련한 용역을 실시한다. 후기 가야의 맹주였던 대가야는 신라, 백제, 고구려는 물론 일본의 고대국가 왜, 오키나와의 고대국가 류큐왕국과도 교류했다. 곽 군수는 “이번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의 하나로 기획됐다”면서 “경북 환동해 시대의 중심 역할은 물론 대가야의 정체성과 체계적인 고대사 정립,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국정과제를 선도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남일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은 “대중국 외교도 활발히 펼쳤던 대가야의 도읍지였던 고령이 21세기 국제문화도시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삶과 죽음 교차했던 서소문역사공원 다음달 8년만에 전면 개방

    삶과 죽음 교차했던 서소문역사공원 다음달 8년만에 전면 개방

    조선 시대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었던 서울 서소문근린공원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8년 만에 시민들에게 활짝 품을 내준다. 서울시는 오는 6월 1일부터 중구 칠패로 서소문역사공원을 전면 개방한다고 24일 밝혔다.지하 4층~지상 1층, 연면적 4만 6000㎡ 규모의 공원은 지상엔 역사공원과 다양한 시민 편의 시설, 지하엔 역사박물관, 하늘광장, 주차장 등을 갖췄다. 공원 일대는 조선 시대엔 서소문 밖 저자거리로 국가 형장으로 쓰였다. 조선 후기 때 여러 종교인, 개혁 사상가들이 이 곳에서 희생됐다. 17세기에는 한양의 주요 시장인 칠패시장이 자리하며 상업 중심지로도 활기를 띠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수산청과시장이 자리했다. 근린공원으로 변신한 건 1973년이었다. 김태명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서소문근린공원은 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역사적 의미가 큰 공간이었으나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한 채 단순한 공원으로 머물러 왔다. 이후 서울시가 일대를 역사유적지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공원 조성 작업에 나서며 8년만에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원의 지상에 들어서면 탁 트인 광장을 중심으로 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과 편의시설이 자리해 있다. 인근 주민, 직장인,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수목 45종 7000여주와 화초류 33종 9만 5000본을 심어 수려한 녹지 공간을 꾸몄다.지하에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전당(하늘광장)을 비롯해 서소문 관련 전시물을 모은 역사박물관, 편의시설, 교육 및 사무공간,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 지상 공원은 중구청이 관리하고, 그 외 시설 운영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이 맡는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지난해 교황청이 선포한 ‘천주교 서울 순례길’ 코스 가운데 하나다. 박원순 시장은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품은 장소임에도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이번에 재탄생된 서소문역사공원은 정동·덕수궁·숭례문·남대문시장·서울로7017 등 인근의 역사문화자원과 함께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는 25일 오전 10시 열릴 개관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문희상 국회의장,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양호 중구청장, 염수정 추기경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공원과 박물관 시설을 둘러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금요칼럼] 성리학 근본주의의 폐단/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금요칼럼] 성리학 근본주의의 폐단/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조선 사회는 성리학 근본주의에 푹 빠졌다. 주희의 학설을 신성시했고, 조금이라도 거기에서 어긋한 것은 처벌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마치 신학과도 같았다. 교조주의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러한 풍조가 초래한 사회적 폐단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이가 누구였을까. 창강 김택영이었다. 그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학자요, 문인이었다. 그는 이건창, 황현과 더불어 문명을 떨쳤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돼 국가의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김택영은 중국으로 망명했다. 자나깨나 국권회복을 소망하던 그는, 1918년 중국 퉁저우에서 ‘한사경’(韓史?)이라는 조선 역사책을 간행했다. 총 여섯 권이나 되는 방대한 조선통사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난 500년 동안 조선왕조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통렬히 비판했다. 시대순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의 여섯 가지 폐단이 가장 비중 있게 다뤄졌다. 첫째 태종이 도입했다는 서얼차대법, 둘째 성종의 개가금지법, 셋째 세조의 단종 폐출, 넷째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 다섯째 순조 때부터 극성을 부린 세도정치, 끝으로 당쟁의 폐단이었다. 김택영은 유학의 전통인 사론(史論)의 형식을 빌려 조선 역사의 잘못을 가차없이 파헤쳤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배신하고 국왕까지 시해했다는 왕위 찬탈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이 책을 읽은 고국의 유림들은 크게 반발했다. 선비들은 그를 “사적”(史賊)이라며 격렬히 비난했다. 김택영의 사관을 비판하는 책도 나왔다. ‘한사경변’(韓史?辨)이 두 종씩이나 출간됐던 것이다. 두 책 모두 1924년에 간행됐다. 그중 하나는 맹보순이 편찬한 것이다. 한흥교 외 101명이 총 162조항에 걸쳐 ‘한사경’의 주요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들의 글은 1923년 9월에 어느 일간지를 통해 일반에 이미 공개된 것이었다. 또 한 권의 책은 이병선이 편찬을 주도했다. 정확히 1907년 송병화가 창설한 유교계열의 신종교 단체인 태극교본부에서 만든 책이었다. 거기에 총 213조항의 반박문이 실렸다. 뿐만 아니라 김택영을 향한 통고문, 성토문, 서울 및 지방의 유생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반박문도 첨부됐다. 이것은 물론 구한말 유림의 총의를 모은 집단창작이었다. 유림의 집단적, 조직적 반발이 실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나는 김택영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에는 아닌 게 아니라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신지식인들도 성리학 망국론을 제기했다. 불과 20년쯤 전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와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성리학이 가부장적이고 여성 차별적인 사상이라는 비판은 오늘날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그러나 성리학의 폐단에 대한 일반 시민들과 지식층의 날카로운 비판이 꼭 합당한 것은 아니다. 가령 성리학 사회라서 정도전이나 세종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었다. 이황, 이이와 같은 큰 스승도 연달아서 나왔다. 더구나 500년 동안 과거제도가 실시돼 모두가 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신분과 성별을 초월해 많은 사람이 지식을 쌓기에 이르렀다. 서민문화가 크게 발전한 것도 성리학 사회라서 가능했다. 또 인간의 존엄을 극도로 강조한 동학의 훌륭한 가르침도 성리학에서 수용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성리학의 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엄연한 사실이다. 성리학 근본주의의 공과는 앞으로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해투4’ 허영지 언니 허송연, 전현무와 열애설에 “가짜뉴스”[공식]

    ‘해투4’ 허영지 언니 허송연, 전현무와 열애설에 “가짜뉴스”[공식]

    ‘해투4’에서 허송연이 ‘전현무와의 열애설’ 가짜 뉴스에 울분을 토로한다. 유쾌하고 찰진 토크로 목요일 밤을 책임지고 있는 KBS 2TV ‘해피투게더4’(이하 ‘해투4’)의 23일 방송은 ‘센 언니가 돌아왔다’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서는 화끈한 센 언니 군단 정영주-김정화-이주빈-허송연-AOA 혜정이 출연해 속 시원한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는 아나운서 허송연이 출연해 전현무와 황당하게 얽혔던 사건을 공개했다. 근래 전현무와 허송연이 열애중이라는 가짜 뉴스가 퍼졌던 것. 당시 전현무는 공개 열애 중이었기에 파문은 더 컸다. 그러나 허송연은 “전현무와는 동생 허영지를 포함한 지인 모임에서 친해졌다”고 밝힌 뒤 “처음에는 ‘누가 이런 헛소문을 믿겠어’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이탈리아, 독일에 사는 지인들까지도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이어 허송연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오늘 ‘해투’에 출연한 것도 ‘전현무가 꽂아준 것이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에 전현무는 “내 자리도 지키기 힘들다. 나야말로 당황스럽다”고 맞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이날 전현무는 “평소 허영지와 허송연에게 방송에 나온 맛집 정보를 알려줬다. 가짜 뉴스 이후로는 오해를 살까 봐 일절 연락을 못했다”고 밝히기도. 이에 허송연 또한 “헛소문 때문에 미래의 신랑감이 다가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라며 조바심을 드러내 폭소를 유발했다. 뿐만 아니라 허송연은 “내 이상형은 조성진 피아니스트다”며 전현무와 180도 다른 비주얼의 이상형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허송연은 “최애돌은 최강창민이다. 식당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고 실물 영접 후기를 남기는가 하면 성덕 인증까지 해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날 허송연은 찰진 입담을 과시하며 전현무를 비롯한 MC들을 쥐락펴락하는가 하면 성악 전공자의 위엄을 뿜어냈다는 전언이다. 이에 허송연의 전천후 활약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하는 마법 같은 목요일 밤 KBS 2TV ‘해투4’는 오늘(23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담배의 미래는/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담배의 미래는/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담배를 처음 입에 댔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대입 예비고사를 2주 남짓 남겨 둔 1980년 초겨울, 집 근처 독서실 사물함에 넣어 두었던 영어 참고서가 몽땅 사라졌다. 작심하고 열면 찾고자 하는 단어가 눈앞에 떡하니 펼쳐질 정도로 길이 잘 들었던 사전까지. 울분과 억울함, 상실감에다 ‘일탈’의 기회를 잡았다는 묘한 감정까지 뒤범벅돼 아래층 구멍가게에서 인생 첫 담배를 샀다. 끊은 기억은 날짜, 시간까지 더욱 명료하다. 2009년 6월 15일 낮. 머리 속에 이상이 생겨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들어갈 때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30년 가까이 지낸 담배를 스스로의 의지로 내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10년 전 그날 이후 담배를 멀리한 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한 일 가운데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마침 눈에 쏙 들어오는 기사 하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담배회사 케이티앤지가 담배가 아닌 부동산 사업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선 후기인 1883년 국영 연초제조소 ‘순화국’으로 출발해 전매청, 한국전매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름을 바꾼 뒤 2002년 민영화된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부동산 영업이익은 약 277억원. 지난해(약 49억원)에 견줘 5배 이상 늘었다. 사실 최근의 담배 관련 리스크를 헤쳐 나가기 위해 이 회사는 2010년대 초반부터 펀드, 복합쇼핑몰 및 주차장 운영 등 부동산 영역으로 사업의 범위를 넓혀 왔다. 매년 1조원 안팎의 이익을 내면서 생긴 재투자 여력을 담배가 아니라 부동산에 쏟겠다는 다각화 전략이 성공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자산 규모는 2015년 7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 3259억원으로 89.4%나 증가했다. 매년 뜨거워지는 혐연 열기와 지난 2016년 452억 개비에서 2017년 435억 개비로, 지난해에는 404억 개비로 매년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린 담배 판매량을 감안하면 케이티앤지의 자구적 몸부림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 같은 담배회사의 ‘외도’뿐 아니라 담배는 에일리언처럼 모습을 바꿔 어떻게든 생존하고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1일 확정 발표한 ‘금연종합대책’은 기존의 규제 강화 외에 특히 유사 혹은 신종 담배 규제가 골자다. 우리나라 흡연율이 2017년 성인 남성 기준 38.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도 청소년의 경우 2018년 6.7%로 최근 2년간 상승한 것은 유튜브 등 매체를 마케팅에 활용한 궐련형 전자담배 등 신종 담배의 ‘진화’ 때문인 것으로 복지부는 보고 있다. 담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 원주민들에게 선물받은 담배잎 ‘타바코’가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 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인디언 소녀가 자신의 추한 외모를 비관해 “다음 세상엔 세상의 모든 남자와 입을 맞추고 싶다”며 목숨을 버린 자리에서 피어난 게 담배꽃이라던가. 우리에게는 광해군 때인 1600년대 초반 전해졌으니 40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셈이다. 또 다른 400년 뒤 담배는 어떤 모습일까. 만약 남아 있다면 사람 몸에 해 하나 없이 편안함만 주는 존재일 수는 없을까. 그래도 30년을 함께 지냈던 친구의 바람이다. cbk91065@seoul.co.kr
  •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삼각산과 쌍문동’ 편이 지난 18일 쌍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 3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남정현 가옥에서 ‘분지’의 작가 남정현(87)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참가자들이 미래유산의 현장이자 작가의 집필 모습을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집안까지 개방했다. 2016년 방영 당시 20%대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 쌍문시장과 감포면옥을 기웃거리면서 식지 않는 드라마의 여운을 느꼈다. 함석헌기념관에서 반독재 민주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곱새겼다. 기념관은 선생이 만년에 6년간 살던 집을 개조한 서울미래유산이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을 증명하는 둘리뮤지엄을 거쳐 덕성여대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덕성여대 캠퍼스에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자연과학대, 예술대, 중앙도서관이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삼각산을 품은 3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부셨다. 서울도시문화지도사 김은선 해설사가 쌍문동의 어제와 오늘을 열정적으로 들려줬다.오늘의 북서울을 이루는 도봉구와 강북구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포함된 성저십리(성 밖 십리) 지역이며, 노원구와 중랑구 일부는 경기 양주에 속했다. 도봉구 쌍문동은 경기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였다. 노해면은 일제강점기 노원과 해등촌을 합쳐 만든 의미 없는 합성 지명이다. 쌍문동이라는 지명은 효자 계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두 개의 효자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역 내 효문중·고교도 효자마을이라는 지역정체성을 강조하려고 지었다. 2007년 쌍문동이라는 지명이 촌스럽다고 하여 효문동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고 한다. 쌍문동은 서울과 강원도~함경도 동북지방을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한양과 전국을 연결하는 10개의 큰 길이 있었다. 한양~의주 간 1070리길이 의주1대로라면 한양~경흥 간 2110리길은 경흥2대로였다. 이 길을 통해 함경도의 북어와 땔감과 약재가 유입됐고, 함흥차사와 김종서의 여진정벌군이 오갔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주요 간선도로의 경유지와 거리, 경유 지역을 정리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중 정리고(程里考)에 따르면 경흥대로는 동대문에서 15리 떨어진 수유현과 32리길 누원을 지나 금화현~금성현~영흥부~함흥부~북청부~길주목~회령부~경원부~경흥을 거쳐 최북단 서수라까지 장장 2190리길이 이어졌다.동북방을 오가는 길의 한양 쪽 마지막 쉼터는 안암동 보제원이었고 다음 쉼터인 누원점(다락원)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북서울 일대에 역이나 여관은 없었다. 관원이나 상인은 보제원이나 다락원에서 서울을 들고나는 마지막 여정을 챙겼다. 북서울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물품과 봉수(熢燧)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조선 후기 누원점에는 난전 단속을 피하려는 서울상인들이 진을 친 동북방 제일 큰 시장이 열렸다. 정조6년(1782년) “어상이 왕래하는 요충지 누원점의 매점매석이 심해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재의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 도봉산역이 누원점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창포원과 평화문화진지(대전차방호벽), 다락원체육공원, 서울YMCA다락원캠프장 등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북서울 일대는 고려 남경(南京)의 후보지였다. 고려 숙종(1101년) 때 오늘의 서울지역에 남경을 설치하려고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노원, 해촌, 용산, 북촌 일대가 꼽혔다. 고려사에 “노원역, 해촌, 용산 등에 나아가서 산수를 살펴봤으나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계주공아파트가 들어선 노원은 마들평야라고 불리던 노원역 일대이고, 해촌은 창동 일대이며, 면악의 남쪽은 경복궁 뒤 청와대 지역이다. 조선의 도읍지는 고려 남경 터를 계승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북서울에는 경흥대로 노선을 흡수한 경원선 등 세 갈래의 철도궤도가 부설됐다. 1910년 착공, 1914년에 개통된 경원선은 용산역을 출발해 왕십리~청량리~창동~의정부를 거쳐 원산까지 223㎞를 달렸다. 경춘선과 금강산철도도 건설됐다. 기차역이 생긴 창동은 서울교외 관광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봄에는 우이동 벚꽃놀이, 가을에는 도봉산 망월사 단풍놀이가 유행하면서 우이동 관앵(觀櫻)열차와 망월사 하이킹열차가 각각 운행했다. 경성역에서 창동역까지 50분 거리여서 한적한 시골동네에 관광 인파가 북적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서울 너른 들에는 전재민과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한 난민수용소, 이주정착촌, 저소득층 임시거주지가 집중 조성됐다. 1970~80년대 들어 도봉지구와 창동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상계·중계·창동지구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숲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인구가 폭증하면서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한 데 이어 1988년 노원구, 1995년 강북구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은 1967년 도심개발 당시 철거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 흔적이다. 1985~1987년 세상을 놀라게 한 상계동 철거민 투쟁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무허가주택 세입자들이 재개발사업자와 건설사, 가옥주인 조합원들과 충돌한 도시빈민 투쟁사로 기록됐다. 삼각산은 서울의 뼈대를 이루는 조상산(祖上山)이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이루는 ‘세 개의 신령한 뿔’이 삼각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을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까지 멀쩡하던 지명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북한산 유적조사보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면서 지명이 변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3년 영문도 모르는 정부가 삼각산을 포함한 서울 북쪽지역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게 결정타였다.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지칭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삼각산은 산의 이름이지만, 북한산은 산의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옛 지명 한양(漢陽)은 7세기 신라 때부터 이 지역의 지명인 한산(漢山)이라는 땅의 남쪽, 한강(漢江)이라는 강의 북쪽에 있는 양지바른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풍수지리학에서는 ‘산남수북지’(山南水北地)라고 풀이한다. 북한산이란 한산의 북쪽 지역을 이르고, 남한산이란 한산의 남쪽 지역을 이른다. 산 이름 삼각산을 제쳐 두고 지역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의 영험함과 정기의 상실을 초래한다.삼각산 깊고 너른 품에 안긴 쌍문동은 효자마을이라는 정체성에,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과 ‘응답하라 1988’ 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다. 1983년 쌍문동에 살던 김수정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둘리는 쌍문동을 넘어 도봉구의 마스코트가 됐다. 지역의 대표 캐릭터답게 둘리뮤지엄, 둘리스토리공원, 둘리미니어처공원이 건립됐다. 거리와 역, 버스정류장, 담벼락엔 온통 둘리 그림과 조형물로 채워졌다. 우이천변엔 둘리가 발견된 곳 표지판도 세워졌다. 도봉구는 2011년 만화주인공 고길동씨와 둘리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2015년 11월 6일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3번째 후속작 ‘응답하라 1988’은 조용한 동네 쌍문동을 다시 화제의 전면으로 불러냈다. “너무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동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정겨운 이름 때문에 드라마 무대로 쌍문동을 캐스팅했다”고 담당PD는 말했다. 만약 2007년 효문동으로 동명을 바꿨더라면 드라마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세 개의 뿔’ 삼각산의 기운이 쌍문동의 뒤를 받치는 듯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하이엔드 홈케어 뷰티 DPC, 왕홍 薇娅viya(웨이야)팬미팅서 블링쿠션 단독 론칭

    하이엔드 홈케어 뷰티 DPC, 왕홍 薇娅viya(웨이야)팬미팅서 블링쿠션 단독 론칭

    ㈜엠에스코(대표 서문성)의 하이엔드 홈케어 뷰티 브랜드 DPC의 신제품 핑크 아우라 블링 쿠션이 21일 중국 상해에서 진행된 薇娅viya(웨이야) 팬미팅에서 최초 공개됐다. 중국 판매 1위 왕홍 薇娅viya(웨이야)는 타오바오와 티몰 등 주요 중국 온라인 쇼핑 채널에서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체 판매 1위를 기록한 인물로 현재 타오바오 팔로워는 400만 이상에 달하며 중국 내 최고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 특히 2017년 타오바오 방송 시상식에서 최고 상업가치 BJ, 최고 인기 BJ, 가장 핫 한 BJ 등 총 6개 수상을 석권하며 당시 유일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왕홍 이기도 하다. 21일 어제 진행된 薇娅viya(웨이야) 팬미팅에서는 생방송 관람 수 1340만명이 동시 시청을 하며, 좋아요 수는 7억 8천에 달했고 팬미팅 당일 증정품 금액이 무려 350억을 기록했다. 팬미팅에는 50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기타 플랫폼 데이터 공유는 7억명 이상으로 엄청난 열기를 보여줬다. 특히 이날 DPC 브랜드뿐 아니라 생활용품, 전자브랜드에서도 함께 참여를 하였으나 유일하게 신제품 DPC 블링 쿠션 론칭 만을 소개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또 A-lin , 신(信),두하이타우(杜海涛)커여우룬(柯有伦) 등의 연예인이 초대되어 자리를 빛냈다. 薇娅viya(웨이야)는 팬미팅 현장에서 핑크 아우라 블링 쿠션을 수정용 쿠션으로 소개했다. 드디어 제품을 만났다고 그 순간을 기뻐하며 중국에서의 첫 론칭, 본인이 쓴 수정용 쿠션 중 제일 좋았다고 후기를 밝히기도 했다. 팬미팅 현장에서의 브랜드 홍보물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곳은 블링쿠션 월로 행사 담당자가 블링 쿠션을 소개하는 순간 라이브 방송 관람자수가 200만명이 급상승 되며 중국 소비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중국 사업팀 관계자는 “이번 웨이야 팬미팅 행사로 중국 진출 한지 불과 몇 개월 만에 DPC가 중국 내 화제의 브랜드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밝히며 “23일 진행되는 웨이야와의 생방송과 함께 티몰(T-mall) 입점을 공식화하며 중국 진출에 탄력 받아 많은 매출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23일에 열리는 티몰 글로벌 블링쿠션 론칭 라이브 방송도 중국 소비자들이 많이 기대해주시는 만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운영은 기간제교사, 홍보는 대기업 직원…최대 성매매 광고 ‘밤의○○’ 검거

    운영은 기간제교사, 홍보는 대기업 직원…최대 성매매 광고 ‘밤의○○’ 검거

    전국 2600여개 업소를 회원사로 두고 성매매 광고사이트를 운영한 국내 최대 온라인 성매매 조직 ‘밤의○○’ 총책 등 일당이 대거 검거됐다. 기간제 교사 출신 등이 운영한 사이트에서 성매매 업소와 여성을 품평하는 등 홍보맨 노릇을 한 이른바 ‘방장’에는 대기업 직원도 있었다.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2일 지방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밤의○○’ 게시판 관리자(방장) 21명, 대포통장모집책·현금인출책·자금전달책 10명 등 모두 36명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검거해 운영총책 권모(35)씨와 부운영자 이모(41)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필리핀에서 운영 서버와 자금을 관리한 자금관리자 A(46)씨를 인터폴을 통해 수배했다.권씨 등은 2015년 초 인터넷에 ‘밤의○○’ 사이트를 개설한 뒤 성매매 업소를 회원사로 두고 최근까지 광고비조로 모두 21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지만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본 서버를 임대해 성매매 광고사이트를 운영하는 수범을 썼다. 권씨 등은 홈페이지에 전국 2613개 성매매 업소를 오피(오피스텔), 안마, 휴게텔, 키스방 등 성매매 형태별 9개와 강남, 비강남, 경기 남·북, 인천, 충청·강원, 경상·전라·제주 등 지역별 7개 게시판으로 나눠 운영했다. 가입한 업소마다 자신의 업소와 소속 여성을 홍보하는 ‘배너 광고’에 음란 영상과 사진, 서비스별 가격표, 연락처 등을 올렸다. 이 사이트에 접속한 회원은 70만명에 이른다. 이 사이트의 후기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성매수 회원들이 성매매 업소와 여성의 서비스에 대해 올린 글이다. 경찰은 후기가 모두 21만 3898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후기를 잘 쓴 우수 회원은 ‘방장’ 자격을 주었다. 방장에게는 업소나 여성에 대해 홍보성 글을 쓰고 악성 댓글 등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권씨 등은 21명의 방장에게 월급 대신 1인당 매달 무료 성매매 쿠폰 4장을 제공했다. 방장의 글은 영업을 크게 좌우해 업소에서 ‘황제’처럼 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소들은 또 “우리 업소 후기 좀 잘 써달라”라며 권씨 등 사이트 운영 조직에 다달이 무료 쿠폰 1000여장과 2만~5만원 할인 쿠폰 1500장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회원들은 업소 여성과 성매매한 뒤 후기를 잘 쓰면 이들 쿠폰을 받을 수 있어 경쟁적으로 써 올렸다. 권씨 등은 개당 200만원씩 유령 법인 대포통장을 사들여 업소로부터 광고비를 받았다. 광고의 크기와 위치 등에 따라 매달 30만원에서 많게는 100여만원을 챙겼다. 업소들은 광고를 보고 연락 온 성매수자를 임대 오피스텔 등으로 보내 성매매 영업을 했다. 권씨는 당초 성매매 블로거로 인기를 끌자 초기 우수 회원을 운영진에 가담시켜 조직화했다. 이들이 후기 백일장, 영재발굴단 등 매달 90건 안팎의 성매매 이벤트를 열자 회원이 몰렸고, 국내 최대 성매매 광고사이트로 커졌다. 부운영자 이씨는 서울지역 고교 기간제 교사 출신이다. 이씨는 당초 방장이었지만 권씨의 신임을 얻어 부운영자가 됐다. 이후 기간제 교사를 그만 두고 성매매 업소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다. 권씨는 이씨 등 핵심 운영진에 매달 50~100만원과 선물 등을 건넸고 명절에 별도 금품을 줘 관리했다. 지난해 9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최근 한 방장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서울에 있던 총책 권씨를 붙잡아 현금 3571만원과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압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매수자들이 신분이 잘 드러나지 않고 손쉬운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를 선호해 이같은 사이트가 많이 생기고 있다”면서 “밤의○○ 2613개 업소가 위치한 전국 지방청과 공조해 전방위적인 온·오프라인 성매매 합동 단속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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