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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대표부 “주석사망” 소식에 울음바다/「미북회담 중단」제네바 표정

    ◎북측 분향소 설치… 조문객 받을 채비 미·북 3단계고위급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제네바에서는 회담이 잠정중단된 가운데 북한대표부 직원들은 47년간 영웅시되면서 집권해온 그들의 「지도자」를 잃은데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온통 침울한 표정 ○…북한대표부는 이날 상오 인공기를 약간 내려 반기를 게양해 애도의 뜻을 나타냈으며 직원들은 모두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는등 온통 침통한 표정. 북한측은 월요일인 11일에 대표부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을 받을 계획. 대표부의 직원들은 이날 상오6시까지만해도 김일성주석의 사망사실을 몰라 부드러운 반응이었으나 그들이 김주석의 사망을 확인한 뒤부터는 격앙된 목소리로 응답을 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대표부의 한 외교관은 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강석주외교부부부장등이 뭐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금 그런데 신경쓸 때가 아닙니다』고 말해 어수선한 대표부분위기를 반영. ○연락받고 사실 확인 ○…북한대표부는 이날 상오5시20분(한국시간 낮12시20분)까지만 해도 김주석의 사망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기자들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야 사실을 확인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 최일1등서기관은 『평양에 사실확인을 위해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고 거듭 인사. 대표부의 한 여직원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서 『회담이 어떻게 될 것같으냐』는 질문에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냐』며 『조선사람이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비통을 감추지 못하기도. ○비상근무체제 돌입 ○…한국대표부는 이날 상오6시 허승대사와 김삼훈대사를 비롯한 전직원이 대표부에 나와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하고 대책마련에 부심. 직원들은 CNN방송에서 김주석의 사망뉴스를 시청하면서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허대사는 『고위급회담이 이번에는 잘될 것같았는데…』라고 아쉬움을 표시했으며 북한이 분향소를 설치할 경우 조문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아직 본부로부터 지침이 없다』고 답변. ◎북,평화공약 준수를/카터,애도 표명 【도쿄 연합】 북한의 김일성주석과 지난달 회담을 갖고 대화의 물꼬를 튼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9일 김주석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고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주석의 평화공약을 준수해줄 것을 당부했다. 7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카터 전대통령은 주일 미국대사관을 통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나와 아내 로절린은 김주석의 예기치않은 사망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있다』며 『김주석의 가족과 북한 국민에 대해 충심으로 슬픔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터 전대통령은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일비서등 새 지도부가 2주전에 김주석이 결단을 내린 평화공약을 준수함으로써 김주석의 업적을 빛내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83년 이후 「서열 2위」… 당·정·군 장악

    ◎73년 김영주축출… 공적활동 전면등장/반대세력 반발불구 통치권확보 성공/성격 독선적·일부선 “통 크다”… 영화·연극에 큰 관심,직접 제작도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한 장례위원 가운데 서열 1위로 발표됨으로써 차기 권력승계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공산정권의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숨진 최고지도자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예외 없이 차기 통치권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그에 대해 북한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혁명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끈질기게 권력승계 작업을 해온 결과 지난 83년 공식서열 2위에 오른 뒤부터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위치를 굳혀왔다.군최고 사령관,원수,국방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앙군사위원등 그의 맡아온 직책이 이를 입증한다.이복동생 김평일과의 불화설등 반대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지만 통치권 장악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92년부터 승계완료그는 당·정·군등 북한내 3대 기본권력구조 가운데 형식적인 통수권은 국방위원장직으로 군에 대해서만 갖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국가주석으로 정을,당 총비서로 당을 이끌어 오면서 형식적인 통수권자였지만 김정일은 사실상 이들 기관도 통치해 왔다는 것이 북한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이들 전문가들은 이미 권력승계작업은 지난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부터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남외교부장은 같은해 9월 제4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렀다가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통치자라고 밝혔었다.앞서 같은해 4월1일 김일성생일행사의 하나로 개최됐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이 「당·국가·군대의 수위」로 지칭되고,김부자의 생일을 전후해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종옥부주석,연형묵정무원총리등 당시의 당·정·군 간부들이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이때부터 김일성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김정일은 지난 92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8명의 차솔진급자에게 계급장을 달아 줘 군통수권에 대한 첫 공식행사를 가짐으로써 이를 대내외에 천명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으며 3개월뒤 장성 99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혁명1세대를 퇴진시킴으로써 군을 완전 장악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된 것은 지난 73년.사상·기술·문화 3대혁명소조운동과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의 실무지도자로 공적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같은해 9월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조직·사상담당 비서로,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추대됐다.그는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대회에서 후계자로 결정됐으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중앙」으로 모호하게 불려졌다.그러나 80년대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83년 4월이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당서열 제2위로 부상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굳혔다. 85년 4월에는 「당·국가수위」로 지칭됐다.85년 7월 북한언론으로부터 「김정일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91년에는 인민경제대학총장 김국훈이 김정일을 「미래의 위대한 수령」으로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했다.이어 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뒤 92년 4월20일 원수칭호,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군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등장했다. ○원래 이름은 「정일」 김정일은 김일성과 그의 첫부인인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41년 2월16일생이고,원래 이름도 정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뒤늦게 그를 우상화하는 편법으로 정일로 바꿨고 2년뒤 그의 출생연도도 1년 낮췄다는 설도 있다.82년은 이른바 「조선의 어머니」인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출생 90돌이자 김일성의 70돌이며,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50돌이었는데 그의 이름도 이에 맞춰 변조했다는 것이다.그의 이복동생 평일,성일에서 보듯 원래 항렬이 일자였다는 것이다. 어릴때 이름이 「슈라」인 것으로 미루어 출생지는 옛 소련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지명은 사마르칸트,오케얀 스카야,하바로프스크등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백두미령」에서 출생해 『혁명의 준엄한 시련을 체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미화됐다.북한은 이를 위해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정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흔적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백두산의 「정일봉」,김정일의 탄생을 칭송하는 이른바 「구호나무」등이 그 흔적이다. ○3세대 평양 들어와 김정일은 세살때 광복과 함께 부모를 따라 소련함정을 타고 평양에 처음 들어왔다.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 「유라」(소련명)가 있었으나 2년뒤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죽었다.7살때인 49년 9월 생모 김정숙이 출산중 사망하면서 여동생 김경희(46년생)와 함께 김일성의 외6촌동생 강연실에 의해 키워졌다.그의 성격은 생모와 사별후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성격은 괄괄하고 과격하며 독선적이나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앞에서도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아버지가 너무 바빠 홀로 어린시절을 보내온 것을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66년 홍일천과 연애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69년 이혼한 뒤 73년 김혜숙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평양의 남산유치원을 나와 49년 간부 자녀들이 다니던 남산 제 4인민학교를 다녔으며 57년 8월 평양제1중학교,60년 8월 평양 제1고급중학교,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각각 졸업한뒤 노동당에 입당했다.70년 당 문화예술부장,71년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진출하면서 영화촬영및 연극공연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전해진다.「피바다」「한 자위대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등 주요 영화와 가극을 직접 제작하는등 일년에 1백50∼2백편의 영화를 만들어 올만큼 북한영화계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이같은 영화에 대한 애정때문에 신상옥씨 부부를 납치한 것이 깊숙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체가 상세히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표◁ △1941.2.16 소련 사마르칸트 출생(북한측,백두산 출생주장) △1953.2 만경대혁명학원(인민반)수학 △19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1964.3 김일성대학교 졸업(정치경제학과) △1964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1971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73.11 노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4.2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74.2 「후계자」로 결정(노동당 제5기 8차전원회의) △1980.10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6차 당대회) △1980.10 노동당 비서국 비서 △1980.10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12.24 인민군 최고사령관(노동당 제6기 19차 전원 회의) △1992.4.20 원솔 칭호 △1993.4 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인민회의 9기 5차회의)
  • 평양/“집단충격·히스테리 상태”/김일성 사망발표 이후의 북녘표정

    ◎만수대 수만명 몰려 오열… 중심가 경계강화/조곡대신 김정일찬양가요만 되풀이 방송 9일 정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에 접한 평양시민들은 슬픔과 비탄속에 오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외신들과 내외통신은 전하고 있다.이에 따르면 엄청난 충격으로 넋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의 시민들 가운데 일부시민들은 충격과 오열속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관측되기도 하는 등 충격속에 도시전체가 한꺼번에 마비되는 상태를 보이기도 했다.애도를 표하는 수많은 시민 가운데 극소수 시민들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듯한 모습.시민들은 TV와 라디오앞에 모여 울먹이는 목소리의 북한당국 발표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걱정하기도 했다. ○…북한방송들은 이날 정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는 첫 방송을 내보낸 뒤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음악만 내보내고 있다.그러나 음악은 「조곡」이 아니라 「혁명가요」와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등 온통 김정일찬양가요 일색. 방송은 또 『김일성동지의 뜻하지 않은 서거는 우리 당과 혁명의 최대의 손실이며 온민족의 가장 큰 슬픔』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김주석이 비록 사망했지만 오늘 혁명의 진두에는 김정일이 서 있다』는 말로 김주석이 마련한 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강조하기도. ○…북한방송은 『김주석의 영구를 금수산의사당에 안치한다』고 밝히고 『7월8일부터 17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11일부터 16일까지 조문객을 맞이하며 17일 평양에서 추도대회를 갖는다』고 말했다.북한방송은 또 애도기간중에는 일체의 가무·유희·오락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 평양시민들은 오열에 오열을 거듭하고 있다고 평양시내동정을 전화로 취재한 폴란드통신 PAP의 크리스즈토프 다레비츠 북경특파원이 말했다. 평양특파원을 겸임하고 있는 다레비츠기자는 김주석의 사망발표로 현재 평양시내는 경악에 휩싸여 있으며 거리와 상점의 시민들은 미친듯이 오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레비츠기자는 『평양주재 폴란드대사관의 북한인 정원사와 통역원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울기만 한다.가게를 가도 점원들이 아무 일도 않고 울고만 있어 물건을 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접촉한 평양소식통들은 김주석의 유해가 만수대에 안치돼 있다고 말했으나 김주석의 아들이자 지명후계자인 김정일의 동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들 소식통의 말을 인용,『평양은 현재 집단충격과 히스테리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카터 전미대통령의 북한방문때 동행한 미CNN­TV의 마이크 치노이기자는 『평양의 소식통들과 접촉해본 결과 큰 동요는 없으나 중앙역부근등에 경계가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치노이기자는 또 김주석의 돌연한 사망은 고령에 따른 자연사일 가능성이 높으나 일각에서는 쿠데타가 있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주재 인도대사 키프겐은 전화회견에서 『주민들은 분명히 뉴스에 충격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오열하고 있다』고 말하고 『학교에서 귀가하는 학생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점들도 모두 문을 열었으며 통신이 두절된 적도 없다』면서 『그들은 모든 게 비교적 평온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사실이 발표된 뒤 평양시내 만수대의 김일성동상 앞에는 수만명의 북한인들이 운집,김의 사망을 슬퍼하고 있다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9일 북경발로 보도. 교도통신은 동구의 외교소식통들이 평양 외교공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사실이라고 밝히고 동상앞에 시민들이 운집하기 시작한 것은 하오3시경으로 꽃다발을 들고와 울면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고 전언. 하오7시가 넘어서면서 2만명으로 늘었으며 시내 각지에서 동상으로 향하는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평양교외에서도 버스나 트럭을 타고 평양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 김일성 사망/북 공식발표/8일 상오2시 심근경색으로… 17일 장례

    ◎김 대통령,“남북평화공존 불변”/긴급각의/평양정상회담 사실상 무산/49년 독재 마감… 김정일 승계 할듯 북한주석 김일성이 8일 상오 2시 사망했다.김주석은 1912년 4월15일생으로 올해 82세.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위대한수령 김일성동지가 8일 상오 2시 급병으로 서거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고 발표했다.북한 방송들은 『김주석이 심근경색에 심장쇼크가 겹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한반도 분단의 주역으로 49년간 북한의 절대독재자로 군림 해 온 김주석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 등을 북녘 주민들에게 유산으로 남겨놓은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김주석의 승계문제와 관련,평양방송은 『오늘 우리혁명의 진두에는 위대한 지도자이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동지가 서 계신다』고 밝혀 아들인 김정일이 권력을 이어받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지난 72년 공식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은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장에 추대되는등 당·정·군에걸쳐2인자 자리를 굳혀 왔다. 김일성의 장례에 대해 북한 방송들은금주석의 영구를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 안치하고 장례를 17일 평양에서 치른다고 밝혔다.이와함께 김정일,인민무력부장오진우,정무원총리강성산,부주석리종옥,박성철,김영주,외교부장금영남 등 노동당 정치국위원겸 후보위원들이 모두 포함된 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외국조문객 사절” 또 9일부터 장례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해 북한 전역에서 추도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추도기간중 외국조문객들을 받지않겠다고 발표했다. ◎“사태 만전대비” 정부는 9일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비,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날하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긴급국가안전보장회의와 국무회의를 잇따아 열어 김주석사망과 관련한 북한움직임과 이에 따른 대책을 논의,점검했다.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군은 바로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이날 안전보장회의에서 『어떤 사태에도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하면서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고 확고한 자신감과 냉철한 자세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우리의 기존정책에는 추호의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혀 평화와 공존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대북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김대통령은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7천만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거듭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통일원장관,외무·국방장관,안기부장이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다각적이고 구체적인 보고를 했으며 진지한 토의가 있었다고 주돈식대변인이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에서 이영덕국무총리,정재석경제·이홍구통일부총리,한승주외무·최형우내무·홍재형재무·이병대국방·서청원정무1·오린환공보처장관,김덕안기부장,천용택비상기획위원장이,청와대에서는 박관용비서실장,박재윤경제·정종욱외교안보·주공보수석이 참석했으며 이양호합참의장이 배석했다. 김대통령은 안보회의에 이어 열린임시국무회의에서 관계장관들에게 『상황을 계속 면밀히 파악하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사태해 대비한 신속하고 의연한 대응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어떤 사태 아래에서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고 국민의 안녕을 보호할 대책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달라』면서 북한과의 모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추구한다는 정부의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다고 정부대변인인 오린환공보처장관이 전했다. ◎“북한군 경계태세 돌입”/일 통신보도 【도쿄 연합】 북한 인민군은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뒤 경계태세에 돌입했다고 러시아 국방부당국자가 밝힌 것으로 일 교도(공동)통신이 9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 해외석학에 들어본 「김 사후의 북체제」

    ◎“급격 붕괴”나 “집단지도체 등장” 예상/다양한 세력 정일에 반기… 경제난에 파국/군부·테크노크라트 손잡고 「후계체제」 전복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후 그의 후계자인 김정일체제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붕괴될 것인가.그리고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이같은 문제에 대해 그동안 국내외에서 수많은 추측과 가설이 나왔지만 이 가운데 미국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인 허드슨연구소의 윌리엄 E 오덤 국가안보연구담당국장과 A 스칼라피노교수(캘리포니아대)의 전망을 들어본다. ◇윌리엄 E 오덤국장=진정한 변화는 김이 더이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때,즉 김이 사망했을 때 일어날 것이다.김정일은 아버지가 누린 정치적 카리스마도 정치수완도 그리고 군,정부,당조직내의 인맥도 갖지 못하고 있다.김일성의 아들이자 그의 후계자란 것이 유일한 자산일 뿐이다.공산국가에서는 아버지의 이점이 아들에게 승계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더구나 김정일의 후계체제는 김일성 반대세력은 물론 지지세력 사이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자아냈던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하는 조짐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지난 74년 조선 노동당 제5차 중앙위원회에서 김일성은 김정일을 공식 후계자로 지명 발표했음에도 80년까지 아들을 당 고위직에 임명하지 않았다.이 6년의 공백은 반대세력을 무마하는 데 쓰여졌을 것이다. 다양한 세력들이 김정일에 반기를 들고있는 증거들도 전해지고 있다.특히 군부와 동구나 러시아에서 교육받은 테크노크라트및 당내부에 반대세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심지어 가족 내부에도 갈등이 있는 것 같다.북한정권은 91년 2월7일 김정일에 반대하는 『반혁명분자들의 음모를 분쇄했다』고 발표했다.이는 반대세력이 뿌리뽑히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김정일체제가 안정을 누릴 것 같지는 않다.그의 입지가 아버지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경제난국에 직면할 수도 있다.때문에 그가 집권하자 마자 실권하거나 실권없는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가정이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다.어쩌면 그는 중국의 「4인방」같이 체포되거나 화국봉처럼 정치적 굴욕을당할 수도 있다. 김정일은 집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대남공격 같은 군사적 모험을 할 위험도 있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김정일체제가 전복되는 것이다.군부,러시아에서 훈련된 테크노크라트,그리고 당내 불만세력으로 형성되는 연합세력이 대체정부로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이것이 실현된다면 한국측의 통일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이 대체정권은 급격한 개혁과 한국,일본,미국과의 개방관계도 모색할 것이다.그러나 이 체제는 과격한 개혁과정을 거치면서 안정기반을 상실,결국에는 남한정부에 흡수될 수도 있다. 김일성의 후계팀은 개혁을 해야하고 그렇게 못한다면 5년안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해체될 수 밖에 없다.또 개혁을 한다 하더라도 개혁에 수반되는 구체제의 해체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곧 김일성사후 10년안에 남한정부에 흡수될 운명을 맞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로버트 A 스칼라피노교수=김일성주석이 사망한 뒤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기존체제의 급속한 붕괴 ▲군부와 테크노크라트와의 연합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조지들이 최근 북한사회에서 점차 나타나고 있다. 북한체제가 갑자기 붕괴되는 것보다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한국이나 미국에 유리할 것이다(지난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의 연설에서).
  • 김일성 일가의 가계도/후계 김정일 누구인가

    ◎거대한 정치족벌… 친·처가 권력독식/재혼으로 5남2년… 손자·손녀 8명/처 김성애·동생 김영주 최근 다시 등장 김일성의 친인척 관계는 한마디로 거대한 족벌 정치권력의 덩어리다. 장남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과 동시에 정권을 승계하는 당 서열 2위인 당비서자리에 있는 것을 비롯,처 김성애는 여성동맹 중앙위원장,3촌 김형록의 사위 박성철은 국가부주석 겸 당 정치국원등으로 포진해 있다.공통적인 사실은 김정일과의 권력역학관계에 의해 권력서열상의 부침이 반복돼 왔다는 점. 조국평화통일 위원회 위원장 겸 최고 인민위원회 외교위원장이었던 허담(91년 5월사망)의 부인 김정숙(민주조선 책임주필)은 김일성의 4촌누이다.또 최고 인민회의 의장인 양형섭은 고종 4촌 김신숙의 남편.북한의 주체사상을 실제로 발전시키고 있는 당 비서국 사상담당 비서 황장엽은 김일성의 조카이다. 김형직과 강반석을 부모로 둔 김일성에게는 김영주와 김철주 두형제가 있다.70년 초까지 권력서열 2위이던 김영주는 자신의 조카 김정일의 등장(75년)으로 핵심에서 물러나 있다 18년만에 부주석으로 복귀했다. 이밖에 종제(백부 김형록의 아들)인 김창주(부총리),김봉주 (전직총위원장)등이 김일성과 같은 항렬의 친인척. 김일성은 정식으로 두번 결혼,모두 3남4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전처인 김정숙과 사이에서는 후계자 김정일과 김영숙 김경희등 1남2녀를 두었고 후처 김성애와는 장녀 김경진(52년생)과 김평일(54년생) 김영일(55년생),김금순(56년생)등 2남2녀를 두고 있다.김경진의 남편 김광섭은 현재 주 오스트리아 대사. 이들 외에 김일성이 김성애와 결혼하기전 애인사이에서 김성일이라는 아이 하나 더 있었다는 설이 있으며 지난해 애인 김송죽과 사이에 김백연(87년생)이란 딸이 있다는 외신이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 63년 결혼한 김성애는 71년 여성동맹위원장으로 기용돼 권력일선에 나섰다가 73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상함에 따라 권력핵심에서 멀어졌다가 90년이후 최근 외부에 나서고 있다. 김일성의 맏사위 장성택(46년생)은당중앙위 위원으로 당 경공업 부장으로 있는 장녀 경희의 남편.김정일의 두터운신임으로 막강한 실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의 손자 손녀는 현재 9명으로 알려졌다.
  • 「김일성 사망」 예언한 육관도사 손석우씨

    ◎김정일 가을에 실각… 99년쯤 통일/김사망은 시조묘 정기 끝났기때문/자열사 아닌 김정일 음모로 죽은듯 김일성주석이 올해 사망할 것이라고 말한 한 풍수지리가의 예언이 맞아 떨어져 화제가 되고있다. 전국종친회연합회 회장과 한국족보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육관도사로 불리는 손석우씨(65)는 지난해 7월 펴낸 풍수지리서 「터」에서 『김일성의 운명은 이미 시조인 김대서의 묘에 의해 정해져 있다.김일성은 이 묘역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는데 묘자리가 천문을 열고 지축을 깬다는 미좌축향으로 만49년동안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되어있다.따라서 1945년부터 시작된 김일성의 통치기간은 49년이 되는 94년 음력 9월14일 인시(새벽 3∼5시)에 묘의 정기가 사라진다』고 예언했었다. 손씨의 예언은 1백일가량 틀리기는 했으나 약간의 오차를 예상한듯 『김대서의 묘가 고려 고종 44년에 들어서 너무나 오랜 발복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었다. 손씨는 김일성말고도 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운명을 상징하는박대통령 할아버지의 묘의 지기가 79년 10월 24일 밤에 끝난다고 예언해 실제 사망일인 26일과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않아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9일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들은 손씨는 『김일성은 자연사가 아닌 위해에 의해 사망했을 것이며 김정일의 음모일 것같다는 육감을 받는다』면서 김정일은 아버지의 덕으로 올가을까지만 집권하고 그이후는 군부에서 후계자가 나오며 그 후계자는 화해주의자로 민주주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또 『내년부터는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99년쯤 통일될 것』이라고 말했다.손씨는 이 논리의 근거로 풍수지리사상에서의 천통일원 원리를 들고 『2001년에는 남북한 통일 대통령이 나오는데 그는 현재 나이가 51세쯤 된 부드럽고 복을 타고난 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평양권력변화 파장(김일성 사후:1)

    ◎누가 북 대권 잡든 긴장 완화된다/김정일의 내부장악력 약화 필연적/벌써 공존희망 피력 “평화정착 호재” 김일성의 사망은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정통성 있는 남한 정부,완벽한 권위와 이를 통한 통제를 무기로 한 김일성정권은 적당한 긴장상태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권위와 통제의 상징이던 김이 사망함으로써 이균형은 깨어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깨어진 균형은 한반도의 장래에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작용을 할 것인가.아니면 현재보다 긴장을 고조시키게 될 것인가. 정부 당국자들은 단기적으로는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김의 생존때 보다 한결 완화된 긴장상태에서 공존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북한의 권력투쟁에 따른 내부장악력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해 루마니아나 동독식의 붕괴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 경우는 한반도와 그 주변에 상당한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북한은 김의 사망 34시간만에 이를 발표하면서 그의 아들을장의위원회 서열1위로 공표,일단 김정일체제가 출범했음을 알렸다.북한방송이 김정일이 혁명의 선두에 섰다고 알리고 있는 것이나,남한이 북한의 권력승계자와 예정대로 남북한 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외신보도는 김정일체제가 큰 저항 없이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동시에 이같은 북한의 입장표명은 북한의 새체제가 「공존」을 희망함을 남한에 알리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평화를 지키기위한 정부의 기본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선언 했다.우리측이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며 공존을 희망하는 기존의 북한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현재 양측은 모두 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려 놓고 있는 상태이긴하다.그러나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의사를 상호간에 주고받고 있다. 문제는 장의위원회 서열에서 드러난 현재의 권력체제가 김일성정권하의 권력서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데 있다.김정일체제가 워낙 잘 준비돼 구체제를 정리할 필요없이 권력을 승계했다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그러나 권력투쟁을 예고하는 임시체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사후에 대비해 군의 장악에 많은 힘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김일성과 같은 세대인 오진우무력부장이나 최광총참모장등은 김정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김정일이 임명한 젊은 사단장급인사들이 실세가 돼 김정일체제가 순항할지,아니면 군의 원로들인 오진우나 최광등에 의해 권력이 다시 재편될지는 상당기간 지켜봐야만 알수 있을 것이다.북한인구의 7%에 가까운 1백15만명이 군복을 입고 있다.어떤 형태로든 군이 권력의 핵이 되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당분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은 이같은 권력투쟁의 가능성과 군부의 영향력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되더라도 새권력의 내부장악력은 김일성­김정일체제 때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어떤 체제,어떤 인물도 북한을 건국한 김일성이 누렸던 권위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장악력의 완화는 필연적으로 의사결정의 다양화를 가져오게 마련이다.설령 군이권력의 핵심에 머물더라도 장기적으로 북한의 정책결정은 민주적 형태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그러한 진전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만약 다음번 행사에서 김일성세대가 대거 퇴장하고 젊은 테크노크라트들이 중용되는 것으로 권력서열이 재편된다면 그러한 흐름은 가속화 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상회담으로까지 발전했던 남북대화는 예상보다 빨리 정상화될 가능성이 크다.새로운 권력체제도 현재의 경제위기를 해소하고 국제적인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이런 점에서 김일성이 추진했던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나 남북정상회담도 자신들의 체제가 안정되는대로 다시 추진하게 될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김의 사망이 김일성의 유화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강경세력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주돈식청와대대변인 일문일답/“정상회담,권력승계 지켜봐야”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은 9일 하오 청와대에서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과 관련,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안보태세를 논의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끝난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회의는 얼마동안 진행됐는가. ▲1시간 30분동안 진행됐다.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가. ▲회의에 참석한 이홍구통일부총리·한승주외무부장관·이병대국방부장관·김덕안기부장이 무엇을 보고했을 것인지는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 시점에서 보고와 토의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사망원인에 대한 얘기도 논의됐는가. ▲여러가지 분석적인 얘기가 있었다. ­사전에 김일성사망과 관련한 징후가 파악된 것은 있는지. ▲여기서는 얘기하지 않겠다. ­김일성사망을 단정할만한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가. ▲오늘 안보회의에서 김덕안기부장으로부터 김주석의 사망이 확실한 것이라는보고가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상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김주석의 후계자와 일정을 조정해서 할 수 있는 것인지. ▲현재 권력승계 자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뭐라 공식 언급할 수 없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장례위원장이 후계자 유력/공산국가 권력승계 사례

    ◎절대권력자 죽음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도자간 권력안해 합의뒤 “사망” 발표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공산국가중에서도 유례없는 세습체제를 도입한 나라인데다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반발도 꽤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더욱이 옛 소련의 붕괴로 절대독재권력을 휘두르던 공산국가들이 사실상 사라진 지금 북한은 유일하게 「철의 장막」이 걷히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경우는 과거 소련이나 중국·베트남 등 공산국가들과는 여러 분야에서 다른 측면들이 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이들 국가의 권력승계 과정이 북한 내부사정을 추측하는데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공산독재국가의 경우 절대권력자의 죽음은 우선 비밀에 부쳐지는 것이 일반적인 예였다.지도자의 죽음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철저한 비밀 속에 몇몇 지도자들이 모여 후계자 문제 등에 관한 사후 권력안배에 대한 합의를 마친 뒤에야 사망 사실이 발표됐던 것이다. 이같은 예는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부터 흐루시초프나 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 등으로 이어지는 옛 소련의 지도자들의 죽음에서 두드러진다. 스탈린은 1953년3월5일 뇌출혈로 사망했다.스탈린의 후계자리를 놓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던 베리야,말렌코프,몰로토프는 아무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 3명이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했다.그러나 이들 3자간에 3두체제가 합의될 때까지 스탈린의 사망소식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어야만 했다.베리야가 3개월만에 스탈린 개인숭배와 관련,체포·처형됨으로써 집단지도체제가 막을 내리게 됐다. 브레즈네프가 죽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브레즈네프는 82년11월10일 사망했는데 그의 후계자리를 놓고 막후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권력다툼에서 소련비밀경찰(KGB)의 막강한 힘을 등에 업은 안드로포프가 국장위원장에 선임돼 후계자의 위치를 사실상 확정한 11일에야 사망소식이 발표됐다.김일성주석의 경우와 같이 사망 하룻만에 발표된 것이다. 중국 모택동의 경우도 사망발표까지 걸린 시간이 조금 짧다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모는 76년9월9일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 발표는 사후 16시간만에 이뤄졌다.중국은 모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장례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화국봉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모택동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화국봉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는 발표와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끝내는 모택동의 뒤를 잇는 중국의 지도자로 선정됐다.이는 브레즈네프의 장례위원장직을 맡았던 안드로포프가 체르넨코를 밀어내고 소련의 실권을 잡게된 것과 마찬가지다. 화국봉이나 안드로포프의 경우에서 공통되는 점은 이들 국가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후임으로 장례위원장을 맡는자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는 것이다.이같은 점은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과거 소련이나 중국에서와 같은 권력승계 과정이 북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가정한다면 김일성주석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김주석의 장례위원장직을 그의 아들 김정일이 맡는다는 북한당국의 발표는 앞으로 북한의 진로를 추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주석이 생전에 그토록 다져오려고 노력한 후계세습을 북한지도부가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또 김정일이 김일성주석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는데 있어 북한내부의 반발을 이미 극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 자체로서는 너무도 큰 충격일 수 밖에 없는 김일성주석이 사망한지 불과 하룻만에 북한내부에서 김정일체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김일성 사후체제에 대한 북한내부의 준비가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소식은 이같은 북한의 준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권력승계 절차/국가 주석 최고인민회의서 선출/총비서는 당중앙위 전체회의서/장례끝난뒤 소집… 공식 추대할듯 북한 김일성의 사망에 따라 김정일의 권력승계 절차가 관심이 되고 있다. 권력승계가 확실시 되는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생전에 물려받지 못한 직책은 노동당 총비서 및 국가주석이다.이같은 2개 직책중 당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그리고 국가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토록 규정하고 있다.당규약 제24조에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시기에 당이 직면한 중요문제 등을 토의,결정하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을 선거한다.또 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비서를 선거하고 당중앙위원회의 비서국과 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고 명시돼 있다.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6개월에 1회이상 소집토록 되어 있고 가장 가깝게는 지난해 12월 6기 21차 전원회의가 열렸다.그리고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을 명시한 사회주의 헌법 제91조5항을 보면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을 선거 또는 소환한다」고 규정 돼 있다.따라서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절차가 끝난 직후 당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소집, 김정일을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으로 추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다만 이번의 경우는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에 따라 이같은 절차에 관계없이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한을 사실상 대행할 것으로 관측 되고 있다.
  • 북한 군부·핵심세력 움직임에 촉각/김일성 사망 각국 반응

    ◎“급사에 충격”… 김정일 권력승계 관측/미국/한·미·중과 긴밀연락 정보수집 부산/일본/외교부 비상소집령… 등소평등 조전/중국/옐친 “남·북한 관계개선 이루어질것”/러시아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세계각국은 「큰 충격」을 표시하면서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 등 김주석의 사망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또한 북한의 핵개발 사태 해결및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게 될 것인지 등과 관련,김주석의 사망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 CNN 텔레비전은 뉴스속보를 통해 공산세계지도자 가운데 가장 오래 집권한 김일성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하고 장례준비위원장을 김정일이 맡음으로써 일단 김정일의 권력승계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앞서 CNN방송을 비롯한 주요 미국의 방송들은 8일 밤 11시께부터(미국시간) 긴급뉴스로 김일성이 병사했다는 소식을 보도할 때는 사망원인에 대한 의문을 조심스레 보였으며 후계문제등에 관해서도 막연한 추측들만 했었다. 최근 평양을 갔다 온 CNN의 조던 부사장은 김일성이 82세의 나이에 비해 매우 정정해 보였는데 돌연한 사망은 『충격적』이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누가 후계자가 되든 김일성처럼 국민들의 존경을 확보할지 의심스럽다는 견해. CNN방송에 나온 한 한국문제 전문가는 김일성이 자연사했다면 아들 김정일이 승계할 가능성이 있으나 미확인소식처럼 쿠데타가 일어났다면 북한의 장래 상황은 전망할 수 없다고 진단. 그 사망 시기가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다 미국·북한 3단계회담 진행중이라 한·미 양측이 서로 상대방에 사망 보도의 정확성 여부를 묻는 상황을 보이기도 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더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기 위해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미국 정부도 아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CNN이 8일밤(현지시간) 선진7개국(G­7) 정상회담 참석차 나폴리에 가 있는 클린턴 미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보도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의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없다고 밝히고 미정부는 한국정부를 비롯한 각국의 외교채널을 통해 김주석이 사망했다는 방송보도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또 평양의 소식통들과 전화접촉한 결과 평양시민들이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중앙역 부근에는 경계가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CNN은 이어 김영삼대통령의 긴급 안보대책회의 소집및 한국군의 경계강화 소식과 함께 서울 시민의 표정을 속보로 전했다. ▷도쿄◁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은 일본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협의 했으며 김주석의 사망원인 및 북한 내부 움직임에 대한 정보수집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의 NHK등 TV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별방송을 보내는가 하면 신문들은 모두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 매스컴과 일반 시민들도 충격속에 큰 관심을 표명. 특히 조총련은『믿을 수 없다』며 심한 충격속에 잠겨있는 모습. 일본정부는 김의 사망으로 북한내부와 한반도에 심각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특히 군부의 움직임과 김정일서기로의 권력계승이 잘 이루어질지 중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정부는 전반적인 북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0일 정보분석회의를 개최할 예정. 일본은 또 25일부터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도 당분간 열릴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군부및 권력 핵심세력의 움직임등에 관한 정보수집을 위해 한국·미국·중국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고노 요헤이(하로양평) 외상등이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을 위해 나폴리에 있기 때문에 나폴리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 관방장관은 9일 정부성명을 발표,김주석죽음에 애도를 표시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노 외상도 이날 나폴리에서 같은 내용의 코멘트를 발표. 일본의 최대관심은 군부의 움직임과 권력계승문제.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단 김정일에로의권력계승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시즈오카현립대의 이즈미 하지메 부교수는 권력계승발표가 빠른시일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며 조심스런 전망. 도쿄대의 이시이 아키라 교수는 김정일서기는 후계자로서 김주석의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그는 『김서기는 한미와의 관계개선과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등 김주석이 추진해온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김서기는 후계자로서 김주석의 노선을 바꿀 수 없다』고 전망. 게이오대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도 『북한은 대외정책을 크게 바꾸지않고 미·북한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HK방송은 현단계에서는 김서기로의 권력계승 가능성이 높지만 그는 북한의 카리스마적 존재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김주석만큼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같으며 어느 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보도.이방송은 김서기가 장례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그의 후계자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조문객을 받지않겠다고밝힌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전언. 조총련은 긴급회의를 갖고 앞으로의 대응책등을 논의.조총련본부에 모인 간부들은 모두 눈물를 흘리며 김주석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날 반기를 게양. 재일동포단체인 민단의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는 등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었으나 김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하게 됐다』고 말했다.▷북경◁ 중국 지도부는 9일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북한 제일의 우방국가답게 전에없이 신속하게 북한측에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시·은퇴한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이 조전에서 『김의 일생은 조선민족의 해방과 조선인민의 행복을 위해 공헌안 일생이며,중·조친선을 맺고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한 일생이었다』고 치켜세운뒤 『김의 서거는 조선인민에겐 위대한 수령을 잃은 것이며 나에게는 친밀한 전우와 동지를 잃은 것이다』며 애도를 표했다.이어 강택민당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이붕총리,교석 전인대(의회)상무위원장 등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고 신화통신과 중앙TV방송 등이 일제히 보도. 중앙TV는 이날 하오7시 전국에 중계된 30분간의 종합뉴스에서 머리기사로 약 4분동안 김의 사망소식과 함께 중국지도자들이 조전을 보낸 사실을 자세히 보도한데 이어 뉴스보도 중간에 또다시 약5분간에 걸쳐 북한 노동당 정무원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김의 사망에 관한 부고내용과 장의행사 내용을 자세히 보도. 이날 중국에서는 마침 격주로 실시되는 휴무일이어서 외교부직원들도 출근을 않고 있었으나 이날 점심때 비상소집령이 하달돼 남북한을 담당하는 조선처직원들을 비롯,몇몇 관련부처 담당자들이 부랴부랴 사무실에 나와 조전칠 준비를 비롯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갖가지 준비로 부산을 피웠다. 한 조선처 직원은 점심식사중 갑자기 불려나왔다면서 우선은 상황파악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사실이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상황을 묻기도 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김의 사망발표가 있은 지 1시간만에 비상소집령을 내려 전직원이사무실에 나와 CNN방송과 중국의 CCTV등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의 정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일부 직원들은 얼마전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김주석이 갑작스레 사망한 데 대한 원인을 궁금해하면서 북한측 발표대로 사인이 심장마비라면 그동안 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정상회담과 미·북한 고위급회담등을 너무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피로가 누적된게 아닌가고 나름대로 추정해보는가 하면 몇몇 직원들은 김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연변등 동북 3성지역 조선족 동포들로부터 사실확인을 위해 빗발치듯 걸려오는 전화문의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모스크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9일 하오3시(모스크바 시간)G7정상회담에 참석키 위해 출국직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북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피력.그는 이어 『김주석의 죽음이 남북한을 보다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나는 김일성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으며 그의 사망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옐친 대통령은 『나는 남북한이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이는 결국 아·태지역 전체의 평화로 이어질것』이라고 강조. 이에앞서 옐친대통령은 김주석의 사망에 대해 공식성명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한간의 관계증진을 위한 적절한 노력이 곧 있기를 희망한다』고 발표. 북한대사관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조기를 게양했으며 월요일인 11일부터 공식 조문객을 받기로 결정. 모스크바시내 모스필름가 72에 위치한 북한대사관은 이날 상오 외부와의 연락을 두절한 채 정적에 싸여 있었고 상오8시쯤 기자의 전화를 받은 북한대사관의 당직근무자는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대해 『소식을 들은 바 없다』면서 신경질적인 반응. 북한대사관 정문쪽에는 미 ABC TV를 비롯한 10여명의 외국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어 취재를 하고 있으나 대사관내부로의 출입이 금지돼 있고 대사관을 출입하는 북한인들 대부분이 이들의 물음에 대꾸를 하지 않아 애를먹는 모습들. 상오10시쯤부터 시내에 사는 북한인들이 대사관으로 들어가고 있으나 이들은 하나 같이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 그러나 대사관을 빠져나오는 북한인들은 대부분이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어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손성필 주러 북한대사는 낮12시 현재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외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한편 모스크바 언론들은 서울의 언론보도와 외신등을 인용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신속히 보도.그러나 러시아 외무부측은 토요일 휴무인 관계로 일체의 공식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주러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한 추가정보등을 얻기 위해 러시아 외무부측과 연락을 취하려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이 주말을 쉬기 위해 다차(교외별장)등으로 떠난 상태여서 전화접촉도 안된다고 하소연. ◎세계 주요통신 “긴급뉴스” 일제 타전/일 교도통신,12시3분 북방송 인용 첫 보도/AFP·로이터 1∼2분 간격으로 속보경쟁/“김주석 사망” 숨가쁜 외신 김일성북한주석의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 세계주요통신들은 김주석의 사망사실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일본의 교도(공동)통신.교도통신은 이날 낮 12시 3분 외국통신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북한관영 중앙방송을 인용,『북한 김일성주석이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짤막한 제1신을 긴급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또 40분쯤 지나 김주석의 사망이 자연사로 보기 힘들며 내부항쟁에 의한 사망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속보를 미국의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서방의 통신으로는 AP통신이 1분쯤뒤인 낮 12시 4분 『북한의 관영방송이 이날 상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짤막하게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AP통신은 이어 35분쯤뒤 북한의 권력형성 과정과 함께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이것이 앞으로의 한반도 상황과 북­미 고위급회담등에 미칠 영향등에 대해 신속하게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AP통신은 또 정확하게 1시간 13분뒤인 하오 1시 17분 김주석이 심근경색에의한 급거가 확실하다고 전하고 장례절차등 북한방송의 발표내용을 서울발로 보도했다. AP통신에 뒤이어 낮 12시 10분을 전후해 AFP와 로이터통신이 거의 동시에 최긴급뉴스로 김주석 사망사실을 보도한뒤 1∼2분 간격으로 평양라디오방송을 비롯한 북한의 매체를 이용,속보를 계속 내보냈다. 세계 주요 역사적인 사건현장의 「단골손님」인 CNN은 이날 전미국시민들의 관심사인 미식축구영웅 O.J.심슨 살인사건을 연일 톱으로 내보내다 AP타전 직후 긴급뉴스를 통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보도했다. CNN방송은 이어 이날 평양에 주재중인 키프긴 인도대사,아쉬루 나이지리아대사와의 전화접촉을 통해 평양시민들이 김일성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직장일을 그만둔 채 집으로 돌아가 추모하고 있다는 내용의 평양거리표정을 처음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CNN은 이 보도에서 길거리에서 울고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으며 주민들대부분이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오열과는 달리 전체적으로는 평온한 상태에 있다는 이들 대사의 말을 인용해 속보로 처리했다. 로이터통신은 하오 2시 15분쯤 외국특파원으로는 유일하게 평양특파원을 겸하고 있는 폴란드의 PAP통신 북경주재 특파원 크르지스토프 다레비츠의 전화취재 내용을 인용,북한주민들이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 미친듯이 오열하고 있으며 김주석의 유해가 만수대 극장에 안치돼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UPI통신은 위의 3개 통신보다는 약간 늦은 낮 12시 19분쯤 도쿄에서 수신된 평양방송을 인용,김주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도쿄발로 보도했다. 중국의 반응은 서방매체들보다는 훨씬 늦게 나왔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낮 12시 35분이 약간 지나 북한관영 매체의 발표를 인용해 평양발로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논평없이 보도했다.
  • 김정일 나타날까/후계구도·서울회담 관련 관심 증폭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공식 후계자 김정일의 행보가 짙은 안개속에 휩싸여 있다. 북한의 각종 선전매체를 통한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하지만 올들어 핵문제 등 외교와 대남관계를 김일성주석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나섬으로써 그의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요컨대 선전적 차원에서는 김정일 후계체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으나 실제 권력은 더 이상 이양하지 않고 있는 기묘한 형국이다.그는 전반적 무력을 장악하는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 및 당사업을 총괄하는 비서 등을 맡고 있으나 아직 당총서기와 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은 물려받지 못하고 있다. 후계체제의 완성을 위한 김정일 찬양작업은 올들어 줄곧 에스컬레이트되어 최근 절정에 이른 인상이다. 연초 북측 보도매체들이 그에 대해 김일성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는 「어버이」,「수령」이라는 호칭을 심심찮게 사용했다.뿐만 아니라 휴전선 일대의 대남확성기 방송에선 「주석」이라는 호칭까지 등장한 사실이 우리측에 포착됐다. 최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김정일이 7·4공동성명 초안을 작성하는 데 깊이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 등도 그의 업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후계체제의 완성을 위한 호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아니냐하는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란한 선전과는 달리 김정일이 무대에 등장하는 횟수는 지난해 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연초의 그레이엄목사 방북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물론 최근 평양을 방문,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한번 보자」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는 김정일이 그동안 「곁가지」로 백안시해 온 것으로 알려진 계모 김성애가 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전면에 복귀한 것과는 퍽 대조적인 양상이다. 그가 제2선으로 후퇴한 인상을 주는 것은 김주석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데 따른 반작용이다.하지만 그 배경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다만 그의 이같은 「고개숙인」 모습이 반드시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대체적 시각이다. 그 보다는 현상황에서 김정일의 지도력에 더 이상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김주석의 고육지책이 아니냐하는 관측이 보다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핵문제와 경제난에 따른 인한 총체적 난국에서 어느 정도 헤어날 때까지의 잠정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이번 정상회담 기간중 북측이 김정일을 김영삼대통령과 대면시킬지의 여부도 안정적 후계구도 정착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데 따라 결론 지어질 것이다. 북측이 김대통령의 흡수통일 불원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북한체제의 상징격인 김정일과의 만남을 연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특히 북측이 굳이 정상회담을 「최고위급회담」이라고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2차 서울 정상회담은 김정일과 하자는 「비정상적」 제안을 해올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북한이 기본적으로 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폐쇄회로」사회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정상회담을 전후한 어느 시기에 어떠한 위상을 갖고 나타날 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 바그다드·암만/“신의 도시” 바빌론(아랍서 지중해까지:5)

    ◎시간도 멈춰선 「2천5백년전 왕국」/거대한고 장엄한 이슈타르게이트… 네자르왕의 위엄 보는듯 고고학자들은 로맨티스트들이다.바빌론 궁전의 유명한 「행진의 거리」복판에 섰을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그들은 역사의 미궁속으로 끊임없이 잠입을 시도하고 있다.마치 현대의 어린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으로 여행을 꿈꾸듯이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90㎞,차로 한시간 남짓 걸리는 이 고속도로를 달리는동안 나도 그 비슷한 공상을 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신의 도시,고대 인류가 만든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같은 수식어로 바빌론은 역사의 문외한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그 이름이 주는 매력과 신비감 때문에 나는 갑자기 엉뚱한 「증발의 유혹」에 빠졌는지 모른다.영화 「타임머신」에서 인간은 첨단기계를 이용해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최근 대전엑스포에서 시승해 본 「미래의 서울로 가는 자동차」는 이보다 한층 단순하고 솔직했다.이것은 고속으로 전개되는 대형 멀티비전 화면을 이용한 것이다.그러나 바빌론에서 시간여행을 하는데는 그런 구차스런 문명의 이기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여기에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공간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뿐 아니라 이 공간에서는 시간도 잠을 자고있다. ○외성은 흔적 없어 먼저 우리앞을 막아선 것은 청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이슈타르 게이트였다.이슈타르는 사랑의 여신이란 뜻이다.이 문은 본래 바빌론내성의 출입문인데 외성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지금 바빌론 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 구실을 하고 있었다.우리 눈에 거대하게 보이는 이 문도 복제품으로 원형의 절반 규모밖에 안된다고 한다.이슈타르 게이트의 전면에는 이상한 동물의 모양이 무늬처럼 일정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 형태는 말과 개의 중간쯤이라고 할까.이것은 상상의 동물로 바빌로니아의 수호신이었다.상상의 동물은 궁안의 여러군데 벽에서도 발견되었다. 입구를 통과하자 오른쪽에 뜻밖에 소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이 건물은 바빌론박물관으로 1899년 이도시가 처음 발굴될때 발견된 여러가지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박물관을 지나약간 오르막진 언덕으로 올라가자 눈앞에 행진의 거리와 왕궁의 웅장한 성벽들이 나타났다.행진의 거리는 철책으로 가장자리를 둘러쌌는데 그 길이가 수백m는 될것 같았다.성벽들은 행진의 거리 좌우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거리의 바닥에는 단단한 흙벽돌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행진의 거리는 「적들은 절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란 뜻이 있고 이곳에서는 매년 신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축제가 열렸었다.그러나 네부카드 네자르가 죽고(BC605∼562) 불과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승리의 거리에 페르시아의 정복자들이 말발굽소리를 울리며 행진했다는 사실(BC539)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500년전의 길바닥 위로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고 있었다.성벽으로 에워싸인 행진의 거리는 정적이 가득했다.문득 이 공간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렇다면 저 성벽들 사이로 걸어들어가서 네부카드 네자르의 병사들과 신하들을 당장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거리 복판에 서서 나는 잠시 이런 공상에 빠져들었다.그러나 이 공상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성벽을 쌓은 벽돌들마다 네부카드 네자르 대신 사담 후세인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벽돌엔 후세인 이름 사실 이 거대한 왕궁은 후세인의 지시에 의해 최근 복원된 하나의 무대세트에 불과한 것이다.후세인은 2500년전 이 도시를 수복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네부카드 네자르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수백만달러를 들여 바빌론을 복원시켰고 왕궁의 성벽을 쌓은 벽돌에는 네부카드 네자르의 이름대신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다.후세인은 자기 이름이 다시 2500년 뒤에 위대한 정복자의 이름으로 회자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9월에 열리는 바빌론축제도 옛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사담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이 축제가 열리는 주무대인 그리스 극장은 바빌론성에서 수백m 떨어진 한적한 들가운데 외롭게 버려져 있었다.일종의 야외극장인 이 무대가 그리스극장이란 이름을 갖게된 것은 BC300년경 바빌론에 수도를 정하고 이곳을 통치했던 그리스의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축되었기 때문이다.얼핏 봐서 무척 현대적으로 설계된 이 야외무대를 건립하는데 사용된 벽돌이 모두 바벨탑의 잔해에서 거둬들인 것들이란 사실이 흥미로웠다. 궁전의 성벽을 조금 벗어나 옆뜰로 나서면 넓은 공터의 복판에 커다란 사자상이 버티고 있다.높이 2m,폭2·5m의 이 용맹한 사자상은 그러나 지금은 보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이 사자상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를 상징한 것이란 얘기도 있고 적들을 제압하는 상징물이란 얘기도 있으나 어느쪽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다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자밑에는 사람이 누워있고 사자는 앞발로 인간을 찍어누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이것을 보면 침략자를 제압한다는 왕궁의 수호신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한다. 그 유명한 바벨탑의 유적은 바빌론성에서 거의 1㎞쯤 떨어진 외딴 언덕위에 있다.바벨탑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전설이 있을 뿐이다.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다.그러나 바벨탑은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었다.이 구약의 불가사의 중의 하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쨌든 의심하기 좋아하는 이방인을 잠시나마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우리는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밋밋하고 먼 언덕길을 올라갔다. 거대한 분화구가 나타났다.미사일이나 큰 폭탄이 떨어져 거대한 웅덩이를 만든 것 같았다.벽돌조각이나 건축물의 다른 잔해조차 흔적이 없었다.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대역사를 벌였다는 느낌은 쉽게 받았다.웅덩이의 넓이나 깊이로 미뤄볼 때 그 규모가 엄청났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바벨이란 말에는 「하느님의 문」이란 뜻과 「혼돈」이란 뜻이 함께 있다.거대한 웅덩이 잔해를 봤을때 한마디로 혼돈이란 말이 생각났다. 백성들은 하느님에 대한 종교적 열정,하느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열망으로 이 제단을 쌓아올라갔다.그러나 여호와께서 내려와서 보시고 이것은 백성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을뿐 아니라 자기네끼리만 뭉치면 무슨 일이든 해치울 수 있다는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탑의 건축을 중지시켰다.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에 관해 대강 이런 얘기가 나와있다.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한 백성들의 열정을 왜 배신으로 오해했을까?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뜻을 신에게 올바로 전하는 일은 그처럼 힘든 것인가? ○탑문화 크게 발달 이라크 남부에는 구약의 표적물이 유난히 많다.바벨탑을 위시해서 아브라함의 고향이라는 「우르」,쿠르나의 에덴동산 등이 그것이다.「노아의 방주」는 바빌론에 끌려온 유태인들이 수메르인들의 홍수얘기를 전해듣고 훗날 돌아가서 신화로 꾸며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분명한 것은 유프라테스 평원에는 탑이 많다는 사실이다.유프라테스 뿐아니라 나일강 유역도 마찬가지다.평원에는 산악지대와 달리 하늘로 높이 솟은 탑문화가 유독 발달되어 있다.사람들은 수직으로 솟아오른 탑에 의지해 자기의 권력의지와 신에 대한 갈망까지 모두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바벨탑의 잔해는 인간의 그 끝없는 욕망의 허망감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빌론성 외곽을 멀리 벗어난 곳에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을 만든 함무라비 대왕의 석상이 있었다.법전을 새겨놓았다는 높이 2.5m크기의 돌기둥도 있었는데 이것은 모형이었다.원형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빌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도 자연 보잘것이 없었다.귀중한 유산들이 열강의 손으로 넘어가버린 탓이다.박물관 진열대에는 고작해야 문자가 새겨진 돌조각들,작은 토기 몇점만 뒹굴고 있었다. 그곳에서 눈길을 끈것은 1899년 독일인 콜데베이에 의해 처음 발굴이 시작되기 직전의 바빌론성의 전경과 발굴이 진행되는 현장의 사진들이었다.발굴직전의 바빌론 성은 짙은 안개에 싸인 고성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신비로 가득했다.내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그런가하면 발굴현장 사진은 시장바닥처럼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아,귀중한 유물을 훔쳐가기 위해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이 신비의 고도는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되었던가,나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김성애 화려한 복권/김일성 후처,오랜만에 정치무대에

    ◎카터와 대동강유람… 서방에 이례적 공개/“반정일파” 내리막 20년… 작년부터 재부상 김일성 북한 주석의 후처이자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가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지난 17일 서방 TV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김주석의 전처(김정숙) 소생의 공식 후계자인 김정일과의 불화로 그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인 김일성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여맹위원장이라는 대외적 직함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성애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6월 「평양시당 전원회의」때부터.이 회의에서 김성애의 존재가 후계체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본 김정일측이 그녀의 측근에 대해 월권행위와 전횡을 내사해 집중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성애는 공식활동을 자제하면서 조용히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지난해 7월 시아누크 캄보디아국왕의 방북 환영행사와연말 여맹 전원회의에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복권」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올해 4월 시아누크의 방북시에도 모습을 드러낸 사실이 북한방송에 의해 보도됐었다. 그녀의 친아들인 김평일은 김정일에 의해 「곁가지」로 몰리면서 주로 대외직책을 맡아오다 지난 3월 핀란드대사를 끝으로 평양으로 귀환해 군관계 요직을 맡았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김정일과의 후계투쟁에서 밀려나 20여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김영주가 지난해 정치무대에 복귀한 것과 함께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김일성일가의 이같은 신상변화가 기왕의 후계체제를 다지기 위한 결속차원인지,아니면 김정일 후계체제의 불안감을 느낀 김일성의 노회한 「교통정리」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중,정치국 상무위 증원/등사후대비/강총서기 권력강화 포석

    ◎전기침·이남청 물망… 9명으로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은 최고 지도자 등소평(89)의 사후에 대비,기반이 허약한 그의 후계자 강택민 총서기(67)의 권력을 강화해주기 위하여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증원키로 하고 친강인물들인 전기침(66),이남청(62) 두 부총리를 임명할 것이라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16,17일 연이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공산당이 올해 하반기 제14기 중앙위원회 제4차전체회의(14기4중전회)를 열고 당의 최고 정책 결정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정원을 현재 7명에서 9명으로 늘리는 인사변동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택민은 이들 2명이 추가되면 상무위원회에서 중대 정책결정때 가장 어려운 상대인 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과(69)과 이붕 총리(65)를 견제하는데 크게 힘을 얻을 것이라 말했다.
  • 신변이상설 김평일/북한군 요직에 기용

    【북경 연합】 북한주석 김일성의 둘째아들로 장남이자 후계자인 김정일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온 김평일이 최근 군관계의 주요직책을 맡은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 물류센터 20곳 설립… 유통구조 개혁/농어촌 발전대책 요약

    ◎비자경 농지엔 종토세·토초세 등 중과세/주택 50만채 개량… 진료 대도시 수준으로 ▷경쟁력강화◁ 전문화된 영농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농과계 3개교,임업계 및 수산계 각 1개교씩 모두 5개의 농수산 전문기술대학을 설치한다.도마다 1∼2개의 자영 농수산고교도 육성한다.이 학교 졸업생은 농어민 후계자로 우선 지정하고 병역특례도 준다. 농업회사 법인을 오는 2004년까지 2000소를 설립,1만여 농가가 참여토록 한다.농업회사 법인의 농지 규모는 최소 1백㏊로 하며 기존의 위탁 영농회사도 흡수해 운영토록 한다. 영농체계를 기계화 및 자동화하기 위해 농업진흥지역의 논은 오는 98년까지 경지정리를 모두 끝낸다.73만5천㏊ 중 아직 정리가 안 된 논은 13만6천㏊이다.20만㏊는 오는 2004년까지 필지당 3천∼9천평 규모로 다시 정리한다. 첨단기술 개발에 올해부터 2004년까지 3천억원을 투자하며,농림수산 종합정보망을 구축한다. 농사를 짓기 어려운 한계농지는 2백평 이내에서 비농민의 소유를 허용한다.그러나 농지에 대한 투기를 막기 위해 자경하지않는 농지에 대해서는 종합토지세와 토지초과 이득세,양도소득세 등을 중과세한다. 담보가 없는 농어민들을 위해 현재 1천7백50억원인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을 10년내 1조원으로 늘리고,건당 신용보증 한도도 1억∼2억원에서 2억∼5억원으로 높인다.유리온실과 축사 등의 농업용 시설도 후취담보로 인정해 준다. 농수산물 시장 및 유통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2004년까지 이 부문에 9조원을 투입한다.20개소의 대형 물류센터를 대도시에 설치하고,9백6개인 산지 가공 공장도 2천개로 늘린다.주산지별로 간이 집하장 4000개소와 대형 종합포장센터 35개소를 짓는다. 수산물 위판장의 강제 상장제는 오는 97년까지 단계적으로 임의 상장제로 바꾼다.소비자 협동조합법을 제정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직거래가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시장과 도지사가 허가하는 식품가공업을 시·군·구에 신고만 하면 할 수 있도록 하고 품목의 제조 허가제도 폐지한다.따라서 누구나 신고만으로 품목에 구애받지 않고 식품가공업을 할 수 있다. 2000년까지 연간 소 2만∼4만마리와 돼지 30만∼60만마리를 처리할 수 있는 축산물 종합처리장 10개소를 설치하되,일반 유통회사 및 식품회사의 참여를 허용한다. 시설채소 및 화훼 20개소,과실 12개소,양돈 28개소 등 경쟁력이 있는 작목을 중심으로 60개소의 수출전문 단지를 조성한다. ▷산업진흥및 생활환경개선◁ 3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하거나 50% 이상이 분양된 뒤 내주는 농공단지의 지정조건을 폐지한다.지역에 따라 10만·20만·30만평으로 차등화된 시·군별 개발제한 면적도 30만평으로 일원화한다.2004년까지 1개면에 1개소씩 도로와 상하수도,오폐수 처리시설 및 생활 편익시설 등을 갖춘 7백90개소의 현대식 집단마을을 조성한다.이와 별도로 20만채에 대해 입식부엌 및 욕실개량을,30만채는 주택개량을 추진한다. 농어촌과 지방의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지방도를 국도로 승격시켜 투자를 늘리고,군지역에의 고속버스 운영도 늘린다. ▷복지향상◁ 농어촌 고교생의 대학진학 기회를 늘리기 위해 농어촌에 전문대학의 설립을 최우선적으로 인가하며,농어촌에있는 고등학교를 공립 전문대로 개편한다.올해 3개교,내년에 1개교를 추진한다. 45%인 농어촌 국민학생의 급식비율을 97년까지 1백%로 높인다.도·농 통합형 지역에 병원을 중점 육성하는 한편 대학병원의 초고속 통신망을 이용,원격 진료시스템을 도입해 진료의 질을 대도시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 ▷농수산조직◁ 내년부터 농·수·축협의 신용사업을 경제사업과 분리,독립사업부제로 운영한다.신용업무를 하나로 통합해 별도의 은행을 설립하는 시기는 공청회 등을 거쳐 결정한다.1천3백59개인 농협의 단위조합을 2001년까지 5백여개로 통합,축소한다.한 가구에 조합원이 2명인 복수 조합원제를 도입해 협동조합 운동을 활성화 한다.
  • 중국산 한약재를 “국산” 속여/백억챙긴 4명 구속

    서울지검 북부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윤종남)는 3일 중국산 저질수입한약재를 국내 영농후계자들이 생산한 것처럼 속여 1백억원대의 한약을 시중에 유통시킨 동대문구 장안동 국민종합상사대표 최우식씨(55)와 전국 임·농산물직매장대표 황강하씨(39)등 무자격한약업자 4명을 약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전국농어민후계자중앙연합회 부회장 이정백씨(43)등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최씨등은 92년10월부터 2년여 영지·음양곽 등 국내 한약도매업체가 수입한 중국산 저질한약재를 이용해 동의녹용대보초·영농보혈초등을 만들어 마치 국내 농민후계자가 직접재배한 양질의 한약재인 것처럼 허위광고를 해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 농지·잠업·산림법 등 5개법 개정/농어민 불편사항 37개 개선

    각 시·도의 건의 및 현지조사를 통해 집계된 농어민의 불편사항 중 37개가 연내 개선된다.농림수산부는 1일 농지법·농어촌 정비법·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잠업법·산림법 등 5개 법을 이같은 방향으로 제정 또는 개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농지에 관상수를 재배할 때 농지관리위원회의 확인을 받아 시·군에 신고하는 절차가 없어져 자유롭게 관상수를 심을 수 있게 된다. 농업진흥 지역안의 농지에도 7천㎡(2천1백20평) 이내에서 미곡종합처리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농업생산만 하게 돼 있는 위탁 영농회사에 농산물의 가공 및 유통 업무까지 허용한다.저수지 물의 사용료 등 농지개량조합에 내는 과수 및 원예농가의 조합비도 오는 10월부터 벼 재배 농가보다 싸게 부과한다.지금은 물의 사용량과 관계없이 똑같이 낸다. 농림수산부는 농어민후계자연합회와 농 수 축협에 「농어민 불편신고센터」를 설치,농민들이 건의하는 불편사항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 헛농사 짓는 농민들(심층분석 농수산물유통)

    ◎중간상들,입도선매 등 헐값구매 농간/소매까지 여러손 거쳐 값 2∼6배 뛰어/“생산비도 못건진다” 악순환에 농민 시름/소매가 비싸져 도시서민 골탕… 유통구조 단순화 시급 전남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들녘 곳곳에선 지금 오이출하가 한창이다.10년이 넘게 이곳에서 시설 하우스 오이를 재배해온 오유방씨(46)는 10일 그동안 땀흘려 거두어들인 오이 15㎏들이 4백상자를 5t 트럭에 싣고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 도착,지정도매법인을 통해 상자당 중품기준 1만7천원에 경락받았다. ○상추값 3.5배 늘어 오씨가 이날 손에 쥔 돈은 경매수수료 40만8천원(6%),운임 25만원,상차비 20만원,하차비 20만원,포장비 30만원등 1백35만원을 제외한 5백45만원에 불과했다.생산지에서 도매시장에 이르는 유통과정에서 전체판매액 6백80만원의 20%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 9일 가락시장의 대표적 상장 경매품목인 상추를 집단재배하고 있는 경기도 하남시 선동 농민 박모씨(40)의 상추밭.박씨는 평소 거래를 해온 서모씨(49)에게 4㎏들이 상자당 생산비에 운송비를 더해평균 2천3백원에 출하했다.박씨가 출하한 상추는 이날 상자당 5천2백원에 경락됐으며 중매인들은 4백원안팎의 이윤을 붙여 시장내 직판상인들에 넘겼다.직판상인들은 다시 산매상인들에게 상자당 6천원에 넘겼으며 산매상인들은 이를 다시 1백g씩 나눠팔아 2천원정도의 이윤을 남기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산지에서 2천3백원에 출하된 상추 1상자가 소비자들에겐 3.5배의 가격으로 팔린 셈이다. 요즘 자주 찾는 참외의 집산단지인 경북 성주군 들녘.5천7백35농가가 올해 2천3백50㏊에서 7만2천3백55t의 참외를 생산,판매할 목표로 하루 7만∼10만상자(15㎏들이)가 출하되고 있다.그러나 중매인 집단반발이 있었던 지난 3일 하룻동안 참외값 폭락으로 2억여원의 피해를 입어 재배 농민 모두가 시름에 잠겨있다. 같은날 딸기주산지인 고령군과 토마토 주산지인 달성군등 3개군에서만도 하루 피해액이 7억여원에 달했다.1천여평의 논에 딸기를 재배해 가락시장과 광주 각화동 도매시장에 계통출하해 왔던 김만규씨(57·전남 담양군 보산면 와우리)는 지난 3일 딸기 1t을 서울로 싣고 갔다가 경매를 하지 못해 허둥대다 평소의 반값에 산매상에 떠넘겼다. 1천2백여평의 현대식 비닐하우스에서 고추재배를 하고 있는 경남 창원군 대산면 갈전리 평리마을 문갑상씨(47)등 이마을 94농가는 33㏊에 풋고추를 재배해 주로 농협을 통해 가락시장 한국청과에 출하해 왔다.그러나 이번 파동 때문에 부산과 인천등 규모가 작은 도매상등으로 출하처를 바꾸느라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농민들의 피해는 이같은 복잡한 유통구조에 국한되지 않는다.지금 대부분 농민들은 정부의 농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농정에 대한 신뢰성이 없어 정부를 믿고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소리가 높다. ○농안법 파동피해 심각 이번 농수산물 유통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개정도 취지와 내용은 좋았음에도 시행과정에서의 정부 대비가 소홀해 결국 농민들만 피해를 입게됐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의 재배의향조사 등에도 문제가 많다.정확하게 재배계획을 밝히지 않고 가격에 따라 재배면적을 그때 그때 정하는 농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행정당국에서 정확한 현장조사보다 탁상행정으로 숫자만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 보다 정확하고 오차가 작게 나는 조사 방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과잉생산으로 농산물값이 폭락하면 농민들은 한해 농사 잘지어 놓고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거둬봐야 남는게 없으므로 농산물을 밭에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진다.지난해 배추값 파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흉작으로 품귀가 될때는 가격은 폭등하지만 이익은 모두 중간상인들에게 돌아간다.때문에 산지에서 포기당 1백원에 불과한 배추가 소비자들은 6백원이상 주고 사먹어야하는 농산물 파동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지난 88년 고추파동때 고추주산지인 경북 영양·청송등지 농민들은 고추값이 폭락,생산비에도 크게 못미치자 고추부대에 불을 지르며 농정부재를 항의했었다. 농민들은 농산당국이 냉해등 각종 재해로 생산량이 조금만 감소하거나 상품이 좋지않아 농산물 값이 오를 기미만 보이면 많은 양의 외국농산물을 수입해오는 바람에 농민들은 더욱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유통정보 몰라 손해 지난해 9월 8백평의 밭에서 5천여㎏의 마늘을 생산한 박심대씨(42·전남 무안군 현경면 평산리)는 유통정보의 부재로 1천여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당시 ㎏당 2천원선에 거래되던 마늘이 3개월후인 연말에는 4천원으로 무려 50%가 올랐기 때문이다.박씨는 『현재 무안군 관내 7천여㏊에 마늘·양파등을 재배하는 1만6천여 농가중 60%이상이 저온저장창고를 갖추지 못해 매년 5월쯤부터 밭떼기로 넘기고 있다』며 『입도선매된 이들 양념류가 김장철등 수요가 증가할때엔 값이 폭등,결국 중간상인들만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도매시장관리공사의 최근 조사자료에 따르면 양파의 도매유통마진율이 대체로 78.5%에 이르고 있으며 배추와 무는 76%,사과는 51.5%에 달하고 있다.여기에 산매상들의 평균 마진율이 20∼30%이므로 소비자들은 보통 산지보다 2배이상의 값을 주고 사먹는 셈이다. ○「직판장」 설치가 고작 유통과정에서 중매인등이 불필요한 부분에까지 개입해 손쉽게 이익을 챙기면서 땀흘려 농사를 지은 생산자가 받는 가격과 소비자 가격사이에는 결국 엄청난 차이가 나고 이같은 농산물 유통구조상의 문제점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손해를 보고있다는 것이 농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도시에서는 농산물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인데 반해 정작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건지는 경우가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여년전부터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확대,유통단계축소,중간상인 배제등 유통구조를 대폭 개선한다고 말했었다.그러나 농민들의 피부에 와닿은 정책은 없었으며 농촌지방과 대도시 몇몇곳에 농민들이나 농어민후계자·농협 등이 자구책으로 마련한 농산물 직판장에서의 판매가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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