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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치·사극 명해설 성우 김종성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치·사극 명해설 성우 김종성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다. 억압된 영혼이 자유로워져 순간적인 쾌감을 준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이른바 ‘천(天)의 목소리’라고 한다. 정확한 발음과 깔끔하고 박력있는 목소리로 오감을 자극해 카타르시스를 팍팍 선사한다. 또한 ‘제1공화국’에서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생생하게 전달, 정치극을 한 차원 높이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도 ‘격동 50년’(MBC라디오)을 18년째 진행해오면서 청취자들의 귀를 역사의 현장으로 쏘옥 빠뜨린다. ●‘천의 목소리´로 안방극장에 생생한 해설 전달 어디 이뿐이랴. 얼마전 끝난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비롯, 요즘 주말에 상영되는 ‘연개소문’(SBS-TV) 등의 대하사극과 오락 프로그램 ‘스펀지’(KBS-2TV)에서 감칠맛나는 해설로 우리의 오감을 흥미진진하게 건드린다. 특히 딱딱할 것 같은 웬만한 다큐멘터리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끌어당긴다. 성우 김종성(63)씨. 주말 저녁이면 목소리로 늘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아저씨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얼굴 없는 배우’ 가운데 소위 ‘가장 잘 나가는’ 성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64년에 데뷔, 올해로 42년째이자 나이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원로이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활약으로 ‘성우계의 살아 있는 역사’로 통한다. 지난 16일 오후, 가을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듯 쓸쓸하게 낙엽이 흩날리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김씨를 만났다. 처음에는 “해줄 말도 없는데다 얼굴 없는 배우가 얼굴을 내밀어선 무엇하느냐.”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김씨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동안(童顔)이었다. 소설가 조정래씨와 시인 박제천씨가 동국대 국문과 동기이고 탤런트 김무생씨와는 동갑이라는 점에서도 얼른 비교가 된다. 젊어진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욕심도 없고 술, 담배도 안 한다.”며 빙그레 웃을 뿐이다. 나이보다 젊어 황당했던 일도 당연히 있을 터. 주차장에서 50대 경비 아저씨한테 “젊은 사람이 왜 그래?”하는 식의 야단을 자주 듣는가 하면 한 살 아래인 부인과 동행할 때 누나 동생 사이로 오해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너무 젊게 보여 수염을 길렀더니 오히려 ‘젊음의 끼’로 여겨 낭패(?)를 당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어려서는 노숙했고 나이들어서는 젊게 보인다고 하니 얼마나 복받은 삶일까 부러워진다. 김씨의 본명은 김기호, 아명(兒名)이 ‘종성’이다. 성우로 데뷔할 때 ‘금(金)종소리’라는 뜻에서 ‘鍾聲’으로 쓴 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김종성(金鍾聲)으로 쓰고 있다.‘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로 유명한 라디오 스타 김기덕씨가 친동생이다. “원래 성우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대학 다닐 때 방송대본을 쓰게 되면서 엉뚱하게 성우의 세계로 빠진 셈이지요.” ●동아방송 사태로 실직 아픔… 복덕방 운영도 가난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가문에 대한 강박관념과 살림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대학 3학년때 입주 아르바이트 등 여러가지를 했지만 신통치 않아 방송국을 노크했다. 당시 MBC 라디오 제작2부장이었던 김범석씨를 만나 방송대본을 건네자 “성우가 낫지 않겠느냐.”며 성우학원 등록을 권유받았다. 이때가 1963년 6월. 그래서 서울 종로5가에 있는 한국예술학원에 두달 동안 다녔다. 그해 10월 동아방송 성우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 적잖은 고민을 했고, 결국 이듬해 4월 TBC가 개국하면서 성우시험 공채 1기에 합격했다. 이와 관련, 김범석씨는 “당시 한국예술원에서 성우강의를 했는데 김종성씨는 성우에 자질을 크게 보였다.”면서 “지금도 방송해설 분야에서 나름대로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고 또한 그 분야를 순수하게 잘 이끌어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우의 길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초창기 TBC 시절, 구조조정 등으로 노사분규가 발생했고 함께 입사한 동료 15명 중 7명이 퇴사하는 아픔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난다. 부인은 당진 출신으로 TBC에서 2년,MBC에서 3년 성우생활을 하다가 1970년 결혼하면서 성우활동을 그만두었다. “동아방송 사태가 나자 실직했지요.1976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 잠실에서 3년동안 가나안 복덕방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돈 되는 걸 도무지 맞추질 못하는 거예요. 오죽했으면 주위에서 ‘반대로만 하면 된다.’고 할 정도였지요.” 이때 MBC에서 ‘그림자’ 방송을 담당하는 PD한테 연락을 받고 다시 복귀했다. 아울러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동아방송에서 ‘정계야화’라는 정치드라마를 맡으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성우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신군부에 의해 방송국이 통합되면서 또 한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KBS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현재 극단 산울림대표의 임영웅씨가 만든 ‘인물 한국사’의 해설을 맡으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가 지금의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을 하게 된 것은 지난 1988년 4월1일에 시작된 ‘격동 30년’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해 김씨는 “배우 사정이나 시국 분위기 등으로 처음에는 두달만 하자고 한 것이 벌써 18년이나 됐다.”면서 ‘전설따라 삼천리’보다 더 오래 장수한 유일한 라디오 드라마가 됐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소리나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요. 사전대로 하면 안 맞습니다. 대중들이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언어와 억양을 구사해야 친숙해집니다. 물론 잘못된 대중언어는 골라내지요. 그게 제가 40년 넘게 성우생활을 해온 고집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형식미가 아니라 자연미여야” 가끔 후배들을 만나면 “성우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자유롭게 리얼하게 표현하면 된다.”고 당부한다. 또 작품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올바른 배역과 해설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씨 자신도 드라마든 다큐프로이든 항상 대본부터 꼼꼼히 읽는 습관을 가졌다. 목소리가 원래 좋았느냐고 묻자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옥루몽’이며 ‘삼국지’를 읽는 모습을 자주 봤다.”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누나들이 갖다 준 ‘무정’ 등의 소설책을 많이 읽었다고 대답했다. 또 성우생활을 하면서 AFKN방송의 해설을 눈여겨보면서 미래의 호흡과 템포를 익혔다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언젠가는’ 할 때 대부분 한꺼번에 읽지만 ‘우리는/언젠가는’식으로 호흡의 길이를 나름대로 정했다.“말이란 형식미가 아니라 자연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술, 담배 안한 것도 맑은 소리를 제대로 서비스하기 위해 결단했던 것.”이라며 웃는다. “물러나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짧게는 2년 후 그만두려고 합니다. 후배들이 한 600여명이 있지만 영상매체의 발달로 성우라는 직업이 사양길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새로운 무대를 개척해야지요. 지금까지 방송의 배려로 살았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매년 몇백대1로 성우 지망생은 늘고 있거든요.” 김씨는 이에 대비해 몇년 전부터 ‘오디오북’을 준비해오고 있다. 이미 ‘백범일지’‘고전12마당’‘단편문학50권’ 등을 녹음했다. 앞으로는 후배들과 함께 특수효과를 넣은 오디오북 1000권 제작을 목표로 이에 전념할 계획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나 후배 성우들도 품위있게 은퇴를 하려면 이러한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김씨는 ‘불멸의 이순신’을 끝내면서 시청자들이 주는 상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카페를 만들어 김씨의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후계자는 없나요.” 등의 많은 애정과 안타까움을 표시한다.“글쎄요. 제가 하라는 대로 하면 후배들이 돈을 벌 수 없다며 기피한다.”며 멋쩍게 웃는다. km@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팔레스타인 총리 내정자 샤비르

    ‘총장님이 잘해낼 수 있을까?’ 극단적인 반목을 거듭해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파타당이 차기 총리로 모하메드 샤비르(60) 전 이슬람 대학 총장을 추대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13일. 그는 가자시티에서 작은 차를 손수 운전하고 있었다. 1993년부터 이슬람 대학 총장으로 일하다 지난해 은퇴한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총장님’으로 통한다. 이스마일 하니야 현 총리 등 숱한 제자들이 현재 하마스의 간부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좀더 온건하고, 중도적인 파타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생전의 야세르 아라파트를 그는 자주 찾았고 후계자인 마무드 아바스 대통령과도 대화를 나누는 등 어느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관리들은 아바스가 그를 천거했다고 전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수락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샤비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와 관련, 한번도 공언한 적이 없지만 주위에선 매우 실용적인 인물이라고 평한다.AP통신은 그가 테크노크라트 위주의 내각을 통솔해 내정에 힘쓰는 한편, 아바스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샤비르는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와 인터뷰에서 “공식 임명된 다음에야 이스라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실주의자답게 행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약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샤비르는 미국에 상당히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등장은 지난 4월 하마스 집권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재정 지원을 차단한 서구와의 관계 개선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샤비르는 이전에도 내각장관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뿌리친 바 있으며, 대학 총장 시절 경호원과 운전사를 사양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부인은 현재 여성부 차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15일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이 이스라엘의 시데롯에 떨어져 중상을 입은 민간인 2명 가운데 한 여인이 사망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하마스 대변인이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어떤 세력과도 공동정부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그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세계청소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이용대, 배드민턴 혼복 결승에

    ‘박주봉의 후계자’ 이용대(18·화순실고3)의 강력한 파워에 또 한번 만리장성이 허물어졌다. 이용대는 1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배드민턴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준결승에서 유현영(성지여고2)과 짝을 이뤄 중국의 류샤오룽-랴오징메이조를 27분 만에 2-0으로 셧아웃시켰다. 단체전 결승에 이어 중국의 혼복 에이스 조를 거푸 격파한 이-유조는 11일 결승서 역시 중국의 리티안-마진조와 맞붙는다. 혼복의 생명은 남녀 선수의 궁합, 즉 함께 땀흘린 시간에 성패가 달려 있다. 시속 300㎞가 넘는 강력한 스매싱이 내리꽂히는 전쟁터에서 조금만 미루거나 엉켜도 상대에 포인트를 헌납하게 된다. 이용대가 주로 국가대표팀에서 ‘누나’들과 손발을 맞췄기 때문에 파트너 유현영과 짝을 이룬 것은 지난 7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이 유일하다. 그만큼 파트너와 맞춘 시간은 짧았지만 성인무대를 쥐락펴락하는 이용대의 신들린 셔틀콕을 중국 선수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 한권의 책] 거대그룹 쪼개 권력을 분산시켜라

    지난 2002년 일리노이대 문헌정보대학원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목표를 지향하며 자유언론 (Free Press.www.freepress.net) 운동을 시작했다. 비영리 및 비상업적 미디어 설립, 진정한 공영방송제 실시, 상업방송에 대한 규제 강화, 독점 금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그동안 상업화된 미디어가 수익성을 갖게 된 이유는 정부의 잘못된 지원과 정책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방송은 광고수입이나 기업·민간단체의 지원금에 의존하지 말아야 하며, 전파는 공공자산인 만큼 소수의 방송사업자들이 일정한 책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거대 미디어 기업을 쪼개서 시장 경쟁력을 키우고 나아가 일부 미디어 통제권이 소비자인 시민으로 넘어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맥체스니 교수가 직접 설립했고 현재까지 회장으로 있는 이 운동은 미디어 개혁을 위한 미국 좌파들의 실천운동의 장이다.‘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한국언론재단 펴냄)는 맥체스니 교수의 이같은 언론운동이 지향하는 핵심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 및 이에 기반한 시장, 세계화에 반대하는 전 세계 민주좌파 정당들은 미디어 개혁운동을 펼쳐 왔다. 이들이 전개한 자유언론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통한 설득작업이라는 방식을 택해 자신의 논리를 펴 나간다. 저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디어와 민주주의와의 관계. 미디어 이용시간은 늘어나고 미디어의 집중화 현상에 따른 상업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반면 탈정치화 추세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미디어가 반민주적인 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수의 지배’라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미국에는 현재 없다고 단정한다. 거대 미디어기업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제1부 가운데 ‘21세기 미국 미디어 상황’,‘글로벌화 하는 미디어 시스템’,‘인터넷이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킬 것인가’에서 이같은 논지를 일목요연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그의 두 번째 관심사는 미국 내 미디어 이데올로기는 거짓이거나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허구라는 것.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기업과 광고주들이 공공의 간섭을 받지 않고 미국 미디어를 지배하고 관리하도록 인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책의 2부에서 저자는 1928년부터 35년까지 벌어진 미국 방송들의 쟁탈전을 소개하며 이같은 주장을 입증해 나간다. 또 ‘공영방송’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앞으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대안들을 제시한다. 이 책으로 미국 내에서 저명한 상을 휩쓴 이후에도 저자는 언론운동에 관한 다양한 저서들을 냈다.‘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들의 미디어’(2002),‘미디어의 문제점’(2004),‘미국과 세계 커뮤니케이션’(2006) 등 모두 언론운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들이다. 언론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 촘스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저자.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가 우리나라에서 이제야 번역, 출간된 것은 뒤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김춘옥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 [씨줄날줄] 上王/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 집을 방문, 점심을 함께한 뒤로 정치권에서 ‘상왕(上王)’논란이 한창이다. 상왕이란 어떤 존재이고, 그 역할은 무엇인가. 왕조시대에는 왕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을 수 없지만 예외는 있다. 바로 상왕과 태상왕(太上王)이다. 상왕은 살아 있으면서 왕위를 물려준 사람이고, 태상왕은 그에 앞서 상왕에게 자리를 넘긴, 말하자면 전전 임금이다. 우리 역사에서 상왕과 태상왕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는 시기는 조선조 3대 태종 때이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 개국에 결정적인 몫을 한다. 그러나 태조는 그를 후계자로 삼지 않고 그 이복동생 방석을 세자에 앉힌다. 이에 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 형제를 참살하고 실권을 장악한다. 태조는 왕위를 방원의 형인 방과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으나 방과는 즉위 이듬해 방원에게 왕위를 넘긴다. 방과(정종)는 상왕이 되고, 태조는 태상왕이 된다. 방원은 즉위 후 강력한 통치를 하지만 그 자신도 막판에는 셋째아들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그 아들이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다. 태종이 양위하면서 남긴 말이 “18년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그만하면 이미 충분하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왕으로 있은 5년 동안 실권을 놓지 않는다. 세종이 어리다는 이유로 군 통수권을 계속 장악하는 한편 국사를 논의하는 의정부 회의에 직접 참석한다. 세종의 치적으로 꼽히는 대마도 정벌은 사실 태종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 태종이 양위한 까닭은, 힘이 있을 때 왕위를 넘겨 개국 초기의 왕권을 확고하게 자리잡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태종 시대의 예에서 보듯 상왕의 위상은 극단적으로 양분된다. 정종처럼 허수아비에 불과해 연명하기에 바쁠 수도 있고, 태종처럼 수렴청정의 수단으로도 이용한다. 어느 경우이건 상왕이라는 존재는 비정상적이다. 하물며 21세기 민주사회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의 힘에 기대려는 모습도, 그를 기화로 전직 대통령이 세를 과시하려는 듯한 행태도 지금 세상에선 다만 소극(笑劇)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부고] 50년대 주먹계 풍미 ‘낙화유수’ 김태련씨

    ‘낙화유수’(落花流水)라는 별칭으로 50년대 주먹계를 풍미한 옛 동대문사단의 돌격대장 김태련옹이 2일 별세했다.77세. 이정재의 사돈이자 후계자인 유지광 계보의 좌장이었던 김옹은 175㎝의 당시로서는 큰 키에다 서울대 상대 졸업의 학력, 귀공자 풍의 외모로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고인의 별칭인 ‘낙화유수’는 ‘남녀가 그리워하는 정’이라는 뜻으로 그의 이 같은 풍모가 반영된 것이다. 김옹은 정의사회실천모임의 고문으로 경호회사를 운영하다 이날 오후 12시30분쯤 뇌출혈로 운명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부자(72) 여사와 1남2녀가 있으며 장남인 김홍우(44)씨는 미국에서 제약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빈소에는 김두한씨 후계자 조일환씨, 시라소니 아들 윤회씨 등 왕년에 주먹계를 주름잡던 이들이 모여 유가족을 위로했다. 발인 4일 오전 9시30분 (02)2262-4800.연합뉴스
  • 이재용 상무 ‘승진 꽃다발’ 받을까

    이재용 상무 ‘승진 꽃다발’ 받을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시작으로 연말연시 재계 인사의 막이 올랐다. 올해도 실적이 인사의 주요 평가 잣대지만 외부 환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빅5’의 인사 관전 포인트와 2세들의 승진 여부를 들여다본다. ●그룹별 관전 포인트 내년 초에 있을 삼성그룹의 인사 폭에 우선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X파일’ 사태로 조직의 안정과 유지를 선택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올해는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재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경영 성적표로 보면 전자 계열사보다 삼성의 독립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심적으로 편안하다.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 제일모직 제진훈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정연주 사장 등은 올해 뛰어난 성과를 올려 ‘인사 칼날’에선 비켜선 듯 보인다. 전자 계열사에선 삼성테크윈 이중구 사장과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 최지성 사장 등 몇몇 CEO만이 ‘안정권에 있다’는 평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아직 인사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 예년처럼 연말연시로 예상된다. 최대 변수는 ‘비자금 사건’에 따른 후속인사. 정몽구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체제 정비 및 문책 성격의 인사를 이미 큰 폭으로 단행해 이번 여진(餘震)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연말 조직 개편은 없다.”고 밝혀 조직 안정에 비중을 뒀다.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충격요법을 썼던 LG그룹은 ‘교체 장수’들의 성공적인 착근을 위해 이번엔 큰 폭의 문책성 인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LG필립스LCD를 비롯한 전자 계열사의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 이에 따른 ‘신상필벌’은 어느 정도 예상된다. SK그룹은 재계 ‘빅4’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는 점에서 계열사별 대규모 승진 인사가 점쳐진다.SK건설과 SK케미칼 대주주인 최창원 부사장은 SK 오너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이사를 맡지 않아 승진 가능성이 커보인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이 ‘인사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선 그동안 이인원 백화점부문 대표와 이철우 마트부문 대표의 문책성 인사를 점치고 있다. 롯데는 지난 2월 롯데쇼핑을 상장하면서 3조 4000억원대의 거금을 확보했지만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했다. 신동빈 부회장이 롯데쇼핑을 상장시키면서 경영을 직접 챙기는 듯했지만 ‘측근’들 때문에 ‘2% 부족했다’는 평가다. ●재계 2세들의 승진 기상도 ‘현대차 사태’로 보는 눈들이 많아 오너가(家) 2세들의 과감한 승진 인사나 발탁 인사는 예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재계에서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곳은 삼성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승진 연차가 됐음에도 주변 여건 때문에 올 초 승진인사에서 제외됐지만 내년 인사에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승진이 예상된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도 아직은 세간의 시선이 집중돼 있어 무리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신세계가(家)의 외아들 정용진 부사장도 6년째 부사장 자리를 지켜 부회장 승진 시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기철 안미현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영원한 박치기왕’ 故김일씨 일생과 빈소표정

    ‘영원한 박치기왕’ 故김일씨 일생과 빈소표정

    김일씨의 을지병원 빈소에는 아들 수안(56)씨와 첫째 딸 애자(61), 둘째 딸 순희(59)씨 등 친인척,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지인 30여명이 모여 김씨의 임종을 지켰다. 박재호 국민체육공단 이사장이 노웅래 국회의원, 이대표 등과 함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닛칸 겐다이’ 등 일본 언론들도 이 곳을 찾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씨는 1960∼70년대 안방극장의 슈퍼스타였다. 당시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한 흑백TV의 힘을 빌려 프로레슬링은 당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면 사람들이 빼곡히 몰려 들어 ‘링위의 결투’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코너에 몰리다 통쾌한 박치기 한방으로 외국선수들을 넘어뜨리는 김일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찌든 가난을 잠시 잊었다. 김씨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5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프로레슬링 최고의 스타 역도산(본명 김신락)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오키 긴타로(大木 金太郞)란 이름으로 일본 프로무대에 데뷔했다.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으로 등극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2년 뒤 자신의 신원보증인이기도 한 스승 역도산이 사망하자 곧바로 귀국, 이때부터 각종 국내외 타이틀 매치를 벌이며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70년대 중반 김씨는 자신과 함께 역도산의 3대 수제자였던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신지) 등 일본에서 활동하던 프로레슬러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김씨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박정희 정권’의 지원이 깔려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재건을 위해 스포츠영웅을 필요로 했던 당시, 정권이 김일을 적임자로 선택했다는 얘기다. 어쨌든 ‘김일’이라는 든든한 스타를 가진 프로레슬링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레슬링의 폭발적인 인기도 사회변화에 따라 서서히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80년 들어 야구를 시작으로 축구, 씨름 등이 프로화의 길을 걸었고, 그 사이 김씨를 이을 걸출한 후계자를 만들어내지 못한 프로레슬링은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은퇴한 김일은 1984년 노구를 이끌고 ‘제2의 중흥’을 위해 링에 다시 올랐지만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후 사업가로의 변신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후 급격히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김씨는 1991년 30여년에 걸친 무수한 박치기의 후유증과 고혈압 등 합병증으로 병상에 누웠다. 서울 상계동 을지병원의 도움으로 입원,199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투병생활을 해 왔다. 을지병원 측은 아예 고정 병실을 내줬고, 김씨는 재혼한 부인 이인순(60)씨와 5평 남짓한 병실에서 신혼같은 살림을 꾸려 왔다. 13년의 병원 신세였지만 최근 김씨의 행보는 건강한 사람 못지 않았다. 고향 후배인 류화석(54) 전 현대건설 배구팀 감독과의 인연으로 배구팬이 된 김일은 지난해 2월 프로배구 원년 개막전에 참석, 수 년만의 바깥 나들이를 시작했다. 또 올 초에는 국내 한 방송사의 일본 일주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당시 예선을 치르고 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만나 선동열 삼성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지난 9월10일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WWA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기 위해 링을 찾았고, 직후 바로 옆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SK-LG전에 시구를 자청, 휠체어를 타고 공을 던지는 등 스포츠에 대한 식지 않은 애정과 노익장을 과시했다. 김씨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1995년 4월 도쿄돔에서 6만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한 은퇴식을 가졌다. 이후 국내 은퇴식이 추진됐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뤄지다 2000년 3월 지인들의 힘을 빌려 장충체육관에서 조촐히 거행됐다. 김일은 이날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아 어려운 시절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준 공로를 조금이나마 인정받았다. 최병규 박준석기자 cbk91065@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9) 볼음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9) 볼음도

    아는 사람만 몰래 찾아가는 가깝고도 먼 섬. 새들의 낙원. 넓은 농토보다 더 넓은 갯벌을 간직하고 분단의 혜택(?)까지 누리는 ‘볼음도’는 하늘·땅·바다가 맑은 천혜의 섬이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갈매기의 마중을 뒤로하고 뱃길로 1시간 남짓을 달리면 서해바다의 평화로운 섬이 맞이한다. 마을까지 들어가는 길가엔 아담한 황토집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갯벌을 향한 논둑에는 메뚜기들이 후두둑 날아가고 길모퉁이에서는 이름 모를 작은뱀이 자기 덩치보다 큰 개구리를 휘감고 낑낑거리고 있다. 갯벌의 유일한 이동수단인 경운기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영뜰갯벌을 가로지르면 개흙에 말뚝을 박아 그물을 걸어놓은 수백미터의 건간망(建干網)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그물망에는 기름값도 안 나올 정도의 망둥어와 복어 몇 마리뿐이다. 몇 마리의 물고기지만 어부는 그래도 열심히 그물을 손질한다. 섬 면적의 4∼5배나 되는 갯벌에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도요새·노랑부리백로 등 온갖 텃새와 철새들이 자태를 뽐내듯 날아다니며 경운기 길을 열어준다. 광활한 갯벌에 띄엄띄엄 상합을 캐는 사람들이 한낮의 햇살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다. 섬의 북단에는 바닷물에 떠내려 온 것을 심었다는 수령 800년의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다. 예전에는 매년 1월30일이면 풍어제를 지냈지만 6·25 이후 출어가 금지되어 사라졌단다. 은행나무 옆 볼음저수지는 60여만평의 논에 청정농수를 공급하고 날씨가 좋은 날은 5.5㎞ 떨어진 북한 황해도 연백염전까지 보인다고 한다. 농업과 함께 부업으로 그물을 매기도 하지만 볼음도 주민의 주업은 농업이다. 가구당 평균 경작면적이 1만 5000평이나 되는 대표적인 ‘농사짓는 섬’이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낙향한 오형단(48)씨는 4H활동을 하는 농민후계자로서 누구보다 볼음도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쌀시장 개방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친환경농법으로 좋은 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것”이라며 청정지역인 볼음도에서 쌀이야말로 시장경쟁력이 있다고 자신있어 한다. 오씨는 현재 ‘친환경쌀작목반’을 이끌면서 6만평의 논에 우렁이농법을 사용하여 공동작업으로 쌀을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섬 전체의 벼농사는 무농약 재배를 하였다. 전현원(63)씨는 객지생활 40여년 만에 병든 몸으로 지난 9월초에 섬에 돌아왔다.“고혈압과 심장병으로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300m 거리를 몇 번을 쉬어서 갔지만 지금은 식사량도 늘고 활동도 왕성해서 일거리를 찾는다.”며 밝은 표정으로 섬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때 학생수가 모자라 휴교하였다가 다시 문을 연 ‘서도중학교 볼음분교’에 근무하는 강정숙(57)씨.“섬주민들의 의식이 높고 학생들도 도덕교과서처럼 반듯해서 애착이 더 가요.” 외지로 진학하는 학생들 또한 우수해서 교육에 더욱 보람을 느낀단다. 올곧은 마음으로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새들을 보물처럼 보듬는 갯벌과 하늘과 바다가 맑은 볼음도. 청정지역이며 천혜의 고장을 떠나는 이에게는 아쉽기만 한 섬으로 다시 와 닿는다. 글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책꽂이]

    ●일본론(다이지타오 지음, 박종현 옮김, 소화 펴냄) 일본의 봉건시대에 모든 토지는 번주에게 귀속됐고, 농민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없었으며 성을 갖지 못하고 칼을 차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3000년전 중국의 제도와 흡사한 것으로, 천황·구교·번주·무사로 구성되는 통치계급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완전한 인격이 인정되지 않았다. 중국 ‘천택보’ 기자를 지낸 저자는 이처럼 비교론적 관점에서 일본과 일본인의 특성을 살핀다.‘신권적 미신과 일본의 국체’‘존왕양이와 개국진취’‘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의 글이 실렸다.7200원. ●백색국가 건설사(박진빈 지음, 앨피 펴냄) 어느 시대건 화두는 개혁이다.19세기말∼20세기초 ‘젊은 제국’으로 세계사의 무대에 급부상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혁신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 미국의 개혁정책 속엔 향후 미국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다.‘백색국가’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당시 주요 행사장 중 하나였던 ‘백색도시’에서 가져온 말. 미 제국이 지향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표상한다. 미국 혁신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다룬 역사교양서.1만 3800원.●멸망하는 국가(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열대림 펴냄) 일본 닛케이BP사의 웹사이트에 연재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미디어 소시오폴리틱스’ 중에서 의미있는 글들을 골라 묶었다.‘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저자는 “정치가에게 야스쿠니 문제는 단지 ‘마음의 문제’인가?”라며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외교를 강하게 비판한다.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호리에 다카후미의 라이브도어 사건, 천황 후계자를 둘러싼 여성 천황·모계 천황 용인 문제, 고이즈미의 아베 신조에 대한 총애의 역사 등을 다뤘다.1만 8000원.●삼라만상을 열치다(김풍기 지음, 푸르메 펴냄) 한시와 에세이의 접목을 시도한 책.24절기 자연의 운행을 담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시 작품들을 골라 엮었다. 도연명, 구양수, 두보 등 중국의 시인들과 이달, 유방선, 이규보, 정약용 등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편 80여 편이 실렸다. 책의 제목은 조선시대 문인 김구의 ‘문에 붙일 입춘 글귀를 쓰다(題立春帖戶)’의 한 구절을 번역한 것이다.1만 1000원.●매천야록(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 구한말 3대 문장가 가운데 한 명인 매천 황현이 1864년(고종1년)부터 1910년(순종4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 그는 임금이건 충신이건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비판해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 즉 매천의 붓 아래서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낳았다.1910년 56세때 일제에 의해 끝내 나라가 강탈당하자 그는 자신이 국록을 먹은 적은 없지만 지식인으로서의 도덕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절명시 네 수와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1만 4500원.
  • [씨줄날줄] 선물통치/육철수 논설위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사들의 증언을 모아 보면, 그의 통 큰 선심은 통치의 핵심 수단이라는 게 거듭 확인된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란 배경을 이용해 친구나 주변 인물에게 수시로 선물공세를 폈다고 한다.1974년 후계자 확정 이후 주요 인사에게 외제승용차를 선물하고 연회를 자주 베풀어 “나라를 거덜낸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민의 생일상 환갑상을 제대로 차려주지 않으면 김 위원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니, 인민이 ‘지도자 동지’에게 갖는 충성심은 짐작하고도 남을 법하다. 군부 실세 오진우를 충복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은 김정일 ‘선물통치’의 백미다. 김 위원장은 1980년부터 오진우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오진우에게 건넨 선물은 포드승용차와 벤츠 450형, 사냥용 차량 등 6대. 여기에다 공병부대를 풀어 호화주택까지 지어줬단다. 하지만 오진우를 ‘뻑 가게’ 만든 결정타는 1987년 일어난 오진우(당시 인민무력부장)의 음주교통사고. 외제차로 김 위원장 주최 비밀파티에 다녀오던 오진우가 평양 전승기념관 앞 대로의 가로등을 들이받아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 김 위원장은 그를 모스크바까지 보내 살려냈다고 한다. 오진우의 사고는 권력 핵심부의 비밀이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1986년 군부 핵심 측근 6명에게 소형 벤츠를 한 대씩 선물했다. 이 차는 선물받은 본인이 직접 몰아야 하며, 김 위원장이 부를 때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늘그막의 오진우가 직접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차량번호가 특이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모두 ‘216-5555’로 똑같단다. ‘216’은 김 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뜻한다. 핵실험으로 유엔의 제재를 받게 된 북한은 이제 외제승용차와 시계, 양주, 외국산 고급음식 등 사치품의 반입이 어려워졌다. 김 위원장의 ‘선물통치’에 타격을 주어 권력기반을 흔들어 보려는 미국의 전략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앞으로 고급선물을 받지 못하게 된 북한 권력층은 김 위원장과 미국 중 과연 누구한테 반감을 품을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최강 브라질축구 이끈 ‘R’의 몰락

    최강 브라질축구 이끈 ‘R’의 몰락

    ‘R의 시대가 막을 내리나.’ ‘삼바축구’ 브라질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식 랭킹을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약 13년 동안 1위가 아니었던 기간은 1년 7개월에 불과할 정도다. 그동안 삼바 축구의 상징은 ‘R’이었다.94년 미국월드컵 최우수선수(MVP) 호마리우(Romario)를 비롯해 히바우두(Rivaldo), 호나우두(Ronaldo), 호나우지뉴(Ronaldinho), 호베르투 카를루스(Roberto Carlos) 등이 브라질 축구를 대표했다. 하지만 그 시대도 가고 있다. 11일 브라질 현지 언론들은 삼바축구의 대명사였던 ‘R’이 몰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월드컵 8강에 그친 뒤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기 때문. 히바우두는 한·일월드컵 이후 이미 A매치 저지를 입지 못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독일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뚱뚱한 호나우두는 날카로움을 잃은 채 대표팀 발탁에서 번번이 제외되고 있다. 또 ‘세계 최고 테크니션’으로 각광받던 호나우지뉴는 제 컨디션이 아니다. 독일월드컵을 포함해 11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중립경기로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까지 최근 A매치 9경기서 득점포가 침묵했다. 앞서 아르헨티나전 등 3경기에서는 새 사령탑 둥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에콰도르전에선 충격적으로 벤치를 지키다가 후반 투입돼 팀에 2-1 승리를 안기는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 공교롭게도 역전골의 주인공은 팀 내 강력한 경쟁자인 ‘하얀 펠레’ 카카였다. 펠레의 후계자로 꼽히는 ‘신성’ 호비뉴(Robinho)만이 독일월드컵 이후 4경기에 나와 1골을 터뜨리는 등 ‘R’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브라질 언론의 평가다. 둥가 감독은 에콰도르전이 끝난 뒤 브라질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에 머물며 새로운 대표팀 멤버를 물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카스트로 말기암… 복귀 불가능”

    쿠바의 최고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말기 암에 걸려 복귀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7일 보도했다. 타임은 미국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장출혈 수술로 권력을 동생에게 임시로 물려줬던 그가 말기 암 선고를 받았으며 권력 복귀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같은 보도는 그의 최측근 펠리페 페레스 로케 쿠바 외무장관이 지난 4일 “카스트로가 계속 회복 중이며 국가평의회 의장직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나온 것이다. 앞서 지난 1일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카스트로는 지난달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미 내 시대를 살았으며 죽을 수 있다. 나는 죽는 데 있어 편안한 마음이다.”고 말하는 등 홀가분한 마음자세로 주변을 정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언론들은 차베스의 말을 인용,“카스트로가 회복세에 있지만 한때 위중했던 병세 때문에 회복 과정은 느릴 것”이며 “그가 앞으로 몇 년 더 살 것”이라고 말하는 등 그의 복귀에 회의를 보이기도 했다. 80세에 접어든 카스트로는 지난 7월 동생이자 공식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75)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임시 이양한 뒤, 병실에서 극소수 일부 인사들을 만나 것 이외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주말탐구] 한국 호랑이 3대

    [주말탐구] 한국 호랑이 3대

    내 이름은 코아예요. 한국 호랑이 1세대 서열 1위인 백두가 기력이 쇠잔, “전시 불가 판정”받고 내실로 퇴장하자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죠. 저희 족보를 보면 88올림픽때 신격호 롯데회장이 시베리아호랑이 5마리를 서울대공원에 기증하면서 시작됐다더군요. 역이민세대서 태어나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신 분이 바로 백두시죠. 저는 그때 같이 태어난 어머니 홍아와 北에선 건너온 라일이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통일둥이죠. 여동생 리아와 전 공모를 통해 이름이 지어져 매우 뜻깊죠. 지난 6월 제 새끼들이 3마리 태어났어요. 축하해 주세요. 그리고 빨리 통일이 되어 아버지 고향에도 가보고 싶은 게 꿈이에요. 29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맹수사 뒤쪽. 널따란 전시 우리와 분리된 내실에 힘없이 누워 있는 덩치 큰 수컷 호랑이의 모습이 보인다. 식사시간이 돼 닭고기가 나오자 먹이 쪽으로 다가가지만 함께 있는 암컷이 사납게 으르렁거리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조용히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컷은 암컷이 식사를 끝낸 뒤 겨우 먹이에 입을 댈 수 있었다.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통하는 맹수계에서 자기 몸집의 절반밖에 안 되는 암컷 호랑이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는 이 호랑이는 놀랍게도 바로 몇달 전까지만 해도 무리의 서열 1위였던 ‘백두’이다. 민족얼을 상징하는 한국 호랑이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1세대 한국 호랑이의 대표주자였던 백두도 자식 세대에 왕좌를 물려주고 쓸쓸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백두를 끝으로 1세대 한국 호랑이들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노환, 폐사…호돌이+호순이 낳은 한국 호랑이 1세대 퇴장 현재 서울대공원 맹수사에는 모두 19마리의 시베리아 호랑이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 서식하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바로 한국 호랑이. 북한과 중국에서 발견되는 백두산 호랑이 역시 시베리아 호랑이다. 한국 호랑이는 일제 강점기 무분별한 포획이 자행되면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88 서울올림픽’을 2년 앞둔 1986년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이 미국 동물원에 건너가 있던 시베리아 호랑이 5마리를 서울대공원에 기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 들여온 호랑이가 바로 올림픽 마스코트로 유명한 ‘호돌이’ ‘호순이’이다. 함께 들여온 수컷 한 마리에게는 ‘고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국에 돌아온 호랑이 5마리는 ‘역이민 세대’로 한국 호랑이 일가의 원조 역할을 했다. 고려와 호순이 사이에서 89년 태어난 수컷 호랑이가 바로 백두이다. 이어 호돌이와 호순이 사이에서는 홍아(♀·90년생)와 태백(♂·93년생)이 태어났다. 이 세 마리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한국 호랑이 1세대로 족보를 장식하게 된다. 백두는 무리의 우두머리로 3마리의 암컷과 짝짓기를 해 7마리의 자식을 봤다. 홍아도 2마리의 수컷과 4마리의 새끼를 낳았다.10만분의1 확률로 태어난다는 백호인 백운(♀·2000년생)도 홍아가 낳았다. 태백은 새끼 2마리를 낳은 뒤 남북 동물교류로 북한으로 건너갔다. 호랑이의 평균수명은 20살 정도. 올해 17살이던 홍아는 이달 초 노환으로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올해 18살로 국내 최장수 호랑이인 백두 역시 기력이 쇠해 석 달 전쯤 ‘전시 불가’ 판정을 받고 무리에서 떨어져 내실에서 쉬고 있다. 털갈이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해 듬성듬성한 옆구리는 백두의 시대가 끝났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백두의 퇴장으로 1세대 한국 호랑이의 시대는 이별을 고했다. ●통일둥이 ‘코아’ ‘리아’ 2세대 한국 호랑이 전면으로 대공원에 있는 19마리 가운데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2세대 한국 호랑이는 15마리다. 이중 전성기를 맞은 2000∼2002년생 호랑이와 2003∼2004년생 호랑이가 각각 5마리이다. 지난해에도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네 마리가 태어나 새 식구가 됐다. 백두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꼽히는 것은 홍아의 새끼인 코아(♂·2002년생)다. 코아와 리아(♀·2002년생)는 홍아와 북한에서 건너온 수컷 호랑이 라일(95년생)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로 새끼 때부터 남·북 호랑이 사이에서 탄생한 ‘통일둥이’로 주목을 받았다. 코아와 리아도 ‘코리아’에서 두 자씩 따온 이름으로 공모를 거쳐 선정된 것이다. 백두가 없는 무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호순이의 외손자 코아는 지난 6월 청주(♀·99년생)와 건강한 새끼 3마리를 낳았다. 무리에 합류할 날만 기다리며 인공포육실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이 새끼 호랑이들이 바로 한국 호랑이의 첫 3세대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백두의 새끼들도 그 위세가 만만치 않다. 지난해 태어난 한동(♂)이만 하더라도 또래보다 눈에 띄게 풍채가 좋다.150㎏까지 나갔던 백두의 피를 이어받은 데다 어미 품에서 자라 야생성도 두드러진다. 1세대 한국 호랑이의 빈자리를 메울 2세대 스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공원 관계자는 “역이민 세대로 시작된 한국 호랑이 일가가 3세대까지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며 혈통이 견고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한국 호랑이 대부 엄기용 사육사 “나도 백두랑 홍아 따라 퇴장해야지. 유능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서울대공원 맹수사의 호랑이 19마리의 아버지는 엄기용(53) 사육사다. 정년퇴임을 1년여 남겨둔 엄 사육사는 1986년부터 지금까지 호랑이만 돌본 ‘한국 호랑이의 대부’이다.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는 물론 다른 동물원으로 교환된 호랑이들까지 치면 엄 사육사의 손을 거친 호랑이가 30여마리는 족히 된다. 지난 2004년 남한 호랑이를 평양 중앙동물원으로 보낼 때 자식과 떨어지기라도 하듯 서럽게 울어 보는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던 반백의 사육사가 바로 엄 사육사다. 그 사나운 호랑이가 엄 사육사 옆에 가면 강아지처럼 얼굴을 비비며 좋아하니, 과연 대부라는 명성을 얻을 만하다. 엄 사육사는 “처음에는 무서운 마음부터 든 것이 사실이지만,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들에게 직접 우유를 먹이면서 키우다 보니 담뿍 정이 들었다.”며 “드러누워 낮잠을 자던 녀석들도 내 목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고 얼굴도 알아본다.”고 웃었다. 호랑이들만 엄 사육사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기엔 다 매섭게 생긴 호랑이일 뿐인데 엄 사육사는 얼굴만 슬쩍 봐도 19마리를 모두 분간해 낸다. 그는 “같은 시베리아 호랑이라도 눈매, 입매, 얼굴형, 털길이가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새끼 때부터 기른 호랑이가 건강한 새끼를 낳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는 엄 사육사. 그도 이제 뒤를 이을 젊은 후배들을 찾고 있다. “아직도 큰 호랑이 어디 갔냐고 백두를 찾는 관람객들이 있어. 기억해 주니 고마울 뿐이야. 나도 퇴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나 대신 이 녀석들을 잘 돌봐줄 부지런한 사람을 찾아야지.” 청춘을 바쳐 호랑이들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쏟아부은 엄 사육사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글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북에서 온 호랑이 어떻게… 남북 관계가 화해 모드로 접어들면서 ‘평화대사’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 바로 호랑이였다. 모두 2마리가 건너왔지만, 북한 호랑이들의 남한에서의 삶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1999년 1월 남한에 온 ‘낭림(♀)’은 새끼 때인 93년 낭림군에서 붙잡혀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지내며 백두산 호랑이로 주목을 받았다. 황우석 서울대 전 교수가 복제를 시도했던 백두산 호랑이가 바로 낭림이다. 하지만 낭림은 워낙 사납고 날카로운 성격 탓에 외롭게 지내야 했다. 발정기가 돼도 짝짓기를 위한 암컷 특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다. 백두산 호랑이인 낭림의 혈통을 이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호랑이에게 짝짓기 요령을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사육사들이 속만 태웠다. 다른 수컷들에게는 쌀쌀맞게 굴면서도 무리의 우두머리인 백두(♂·89년생)와는 사이가 좋아 기대도 해봤지만 끝내 짝짓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낭림은 백두가 석 달 전 기력이 떨어져 내실로 이동한 지 얼마 안돼 백두의 뒤를 따랐다.93년생이면 아직 중년밖에 되지 않은 나이인데 벌써 송곳니가 뭉툭해지고 털이 윤기를 잃는 등 노쇠 기미를 보인 것이다. 사육사의 배려로 바로 옆 우리에서 지내고 있는 낭림이와 백두는 아직도 철창 사이로 서로 애정을 표현하곤 한다. 다른 한 마리는 호돌이와 호순이의 딸인 홍아(♀·90년생)와 연을 맺은 ‘라일(♂·95년생)’이다.2001년에 남한에 온 라일은 처음부터 낭림과 비교될 정도로 무던한 성격을 보였다. 이듬해에는 코아와 리아 남매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라일도 2004년 4월 질병으로 폐사하고 말았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앞발 하나는 내딛지도 못하고 고생하던 터였다. 이로써 1세대 남북 호랑이 결합의 산물은 코아와 리아에서 그치게 됐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몰락한 황실 일으켜 세울 구심점 된다면…”

    “여황(女皇)이라니요.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몰락한 황실을 일으켜 세우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대한제국 황족회’는 29일 낮 서울 힐튼호텔에서 의친왕(1877∼1955)의 둘째 딸 이해원(李海瑗·88) 옹주를 제30대 황위 계승자로 추대하는 대관식을 가졌다. 황족회는 29대 이구(李玖) 황위 계승자의 타계 등을 계기로 대한제국 황손 10여명을 중심으로 결성한 가족회다. 황족회는 “대한제국 황실이 일제에 의해 강제 침탈된 지 100년, 조국이 광복된 지 61년이 됐으나 영친왕(28대·1897∼1970)의 아들 이구 저하가 후사 없이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서 의문사로 타계, 왕가의 맥이 끊김에 따라 해원 옹주를 30대 황위 계승자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해원 옹주는 여성으로서 대한제국 황실의 법통을 잇게 된다. 황위계승자는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보존 및 복원 사업권,31대 황위 계승 후계자 지명권 등을 갖게 된다. 이 옹주는 “아버지 의친왕 자녀 후손 중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대표로서 역할을 맡게 돼 영광이라면 영광이다. 뿔뿔이 흩어진 황실 가족을 다시 모아 황실을 재건하는 밀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친왕은 일제의 혼혈정책으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 황족 이방자 여사와 결혼해야 했던 영친왕과는 달리 일본인과의 결혼을 거부한 채 국내에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다 감금되기도 했다. 이 옹주는 “순종황제가 승하하신 후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이 황위를 승계했어야 하지만 아버지가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제가 반대해 고종황제의 셋째 아들인 영친왕이 황위를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옹주는 경기도 하남시의 네 평짜리 무허가 단칸 월세방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황위 승계식에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황실 친족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황족회는 옹주의 황위계승 사실을 외국 황실협회 등에 공문으로 정식 알리고 외국 황실들과의 교류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연합뉴스
  • [딸자랑] 梨大 金用濟씨 막내 따님 金東惠양

    [딸자랑] 梨大 金用濟씨 막내 따님 金東惠양

    이대(梨大) 법정대(法政大) 교수 김용제(金用濟)씨는 여성전유(女性專有)의 「캠퍼스」에서 뿐만 아니라 자택에서도 소녀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신사(紳士)다. 여러방면으로 서로 다른 재능을 보여 흐뭇하게 해 주는 딸만 4공주를 둔 아버지다. 모두 아버지를 숭배하지만 막내따님 동혜(東惠)양은 제일 대단한 숭배자란다. 『딸만 넷이니까 누구를 내 후계자로 삼겠다 하고 기르질 않아서인지 성격들이 같질 않고 취미나 좋아 하는 것들도 다 달라요』 막내인 동혜양은 식품영양학이 전공. 새 봄에 2학년이 되지만 아직은 「프레시맨」. 그위로 셋째따님 동윤(東允)양은 생활미술과 전공. 원래가 조소(彫塑)방면에 취미가 있는 금년 졸업의 학사. 둘째따님 동실(東實)양은 졸업한 독문학사(獨文學士). 시집가서 미국에 살고 있는 맏따님 동진(東眞)양은 가정과(家政科) 전공. 『전공도 이렇게 다른 아이들이 취미도 가지 가지예요. 동혜 이 녀석은 음악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 보여요. 「피아노」도 곧잘 치고 「기타」를 잘 탑니다. 학교에서 「채플」시간에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고…. 이 방면으로 꽤 파고 들어가 보고싶은 의욕을 느끼고 있는가봐요. 그런가 하면 무용에도 소질과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공부는 물리 화학 수학에 재미를 붙였거든요. 이공과(理工科) 계통을 전공하겠다는 막연한 결심은 그때 벌써 하고 있었어요. 졸업 임시해서 어른이 되더라도 영양(營養)사같은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면서 식품영양학과를 택하더군요』 그런데 세째는 음악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고 다른 자매(姉妹)들이 악기를 만지는 일을 부러워 하지도 않은채 손으로 만드는 것에만 몰두를 해 왔다는 것. 둘째는 서도(書道)를 하는 독문학사다. 따님들의 다채로운 재능과 취미를 소개하는 아버지를 동혜양은 정말 숭배자답게 자랑스러운 말투로 가로 막는다. 『저희들의 취미가 그렇게 다채로운 것도 아버지 덕택이에요. 아버진 굉장히 하시는게 많으세요. 승마도 하셨죠. 「펜싱」도 하셨고 권투도 하셨대요. 미술, 서도, 음악, 전부 하세요. 셋째 언니가 아마 제일 아버지 닮았나봐요. 재주가 제일 있거든요. 큰 언니들은 아버지 따라서 승마도 하고요』 무척 양순한 표정으로 언니와 아버지 자랑이 끝없다. 딸 넷 모두가 한결같이 이화가족(梨花家族) 『같은 것은 모두 이화(梨花)가족이라는 거에요. 첫째는 이대(梨大)사대부속중고등학교가 생기기 전이어서 이화여고(梨花女高)를 나왔지만 나머지는 모두 「이화부속」에 대학도 이대니까요』 『시중도 곧잘들 들어 주는데 해 주고는 꼭 손을 내밀거든요. 구두 닦았다고, 유리 닦았다고…』 여름이면 아름다운 녹지대(綠地帶)가 되는 넓은 정원을 가꾸는 어머니 李여사를 따님들은 또 열심히 돕는다. 『아버지는 여행도 좋아 하세요』 『68년에는 아버지 어머니 단 두분만의 세계1주 여행을 3개월이나 했어요』 3개월 세계일주끝에는 미국에 있는 맏이 동실씨 집에 엄마만 2개월 더묵었다. 『그동안에 이녀석들 셋이 살림하고 있었죠. 둘째는 은행에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에 셋째 넷째가 살림을 맡아 주었습니다』 『셋째 언니는 워낙 살림을 잘 해요. 전 그때 별로 한 일도 없는 걸요』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儒林속 한자이야기] (140) 禪(선)

    儒林 (674)에는 ‘禪’(선)이 나오는데,‘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坐禪(좌선)’을 말한다. ‘禪’자는 본래 ‘壇(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드린다.’는 뜻.Y자형의 나뭇가지 양쪽에 돌덩이를 단 武器(무기)의 상형인 ‘單’(단)과 신에게 희생을 바치는 臺(대)를 나타낸 ‘示’(시)가 결합되었다.用例(용례)에는 ‘禪讓’(선양:제왕이 자리를 어진 사람에게 넘겨줌),‘參禪’(참선:선사에게 나아가 선도를 배워 닦거나, 스스로 선법을 닦아 구함)등이 있다. 佛家(불가)에서 말하는 ‘禪’은 ‘禪定’(선정)의 약칭이다. 인도에서 일찍부터 一般化(일반화)된 수행법으로, 앉아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雜念(잡념)을 떨쳐내어 마음을 집중한다. 모헨조다로의 출토품 가운데 요가의 모습을 담고 있는 印章(인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淵源(연원)을 짐작할 수 있다.禪定은 요가에 포함되면서도 요가와는 다르다.禪은 인도에서 예로부터 통용된 慣習(관습)이나 思想(사상)을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정한 體系(체계)를 갖추었다. 禪은 크게 小乘(소승)의 선과 大乘(대승)의 선으로 나눌 수 있다. 대승의 선은 소승불교와 같은 번쇄한 체계화를 피하고, 단계적인 실천을 내적으로 통일하는 근거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단순한 종교 수행법의 하나인 坐禪(좌선)이 후대에 禪宗(선종)으로서 독립된 宗派(종파)를 형성하며 발전한다. 禪과 관련한 중국 고대의 의식 가운데 封禪(봉선)이 있다.封禪이란 天子(천자)가 흙으로 壇(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땅을 정결하게 하여 山川(산천)에 제사 지내던 일이다.‘封’은 옥으로 만든 판에 원문(願文)을 적어, 돌로 만든 상자에 봉하여 天神(천신)에게 비는 일이며,‘禪’은 土壇(토단)을 만들어 地神(지신)에게 비는 儀式(의식)이다. 기록에 따르면 秦始皇(진시황)은 기원전 219년 태산(泰山)과 양부(梁父)에서 봉선을 행한다. 원래는 不老長生(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식이 정치적 행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禪讓(선양)은 封禪과 일정부분 관련이 있는 政權移讓(정권이양) 행사이다.封禪을 행할 수 있는 주체는 天子에 국한된다.禪讓은 帝王(제왕) 스스로 그 자리를 有德者(유덕자)에게 넘겨주는 것이므로 ‘禪’자를 쓴 것이다.堯(요),舜(순),禹(우)로 이어지는 선양 과정에서 성공적 선양을 위해서는 엄청난 苦惱(고뇌)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堯(요) 임금은 천하를 스스로 舜(순) 임금에게 이양하는데,史記(사기) 五帝本紀(오제본기)에 의하면 순은 전욱의 6세손으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孝道(효도)를 온전히 실천한 인물이다. 요 임금은 시골 총각 순을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고, 일단 두 딸을 出嫁(출가)시켜 그 속을 지켜보았다. 순이 攝政(섭정)의 지위에 오른 것이 50세였으므로 후계구도 완성을 위해 20여 년의 長考(장고)를 거듭한 것이다. 순은 治水(치수) 失敗(실패)의 책임을 물어 곤을 斷罪(단죄)하였다.禹(우)는 바로 곤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치수사업을 總括(총괄)하면서 아버지의 失敗(실패)를 거울삼아 현장 노무자들과 13년 동안을 同苦同樂(동고동락)하여 과업을 完遂(완수)한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막오른 아베시대…‘강한 일본’ 큰소리 외교

    막오른 아베시대…‘강한 일본’ 큰소리 외교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安倍晋三·52) 관방장관이 일본 집권 자민당의 제21대 총재로 선출됐다. 임기는 3년간이다. 이에 따라 아베 총재는 2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고 새 내각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일본 국회의 총리 지명선거는 연립여당이 과반석을 차지하고 있어 형식에 불과하다. 아베 장관은 20일 실시된 총재 선거 투표에서 전체 703표(국회의원 403표, 당원 300표) 가운데 464표를 얻어 아소 다로(66) 외상과 다니가키 사타카즈(61) 재무상을 크게 따돌리고 새 총재에 당선됐다. 아소 외상은 136표, 다니가키 재무상은 102표를 각각 얻는 데 그쳤다.1표는 무효로 처리됐다. 하지만 아베 총재의 득표율이 70%를 넘을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66%에 그친 것에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다. 자민당 한 중진의원은 “아베를 지지하지 않으면 반(反) 아베로 찍힐 것을 우려, 지지하는 척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해 자민당내 아베 지지기반이 견고하지는 않음을 시사했다. 전후세대 첫 총리로 최연소 기록도 갈아치운 아베 총재는 이날 당선뒤 기자회견을 통해 애국심을 함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 중인 교육기본법과 테러방지특별조치법의 연장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문제의 헌법과 같은 교육기본법은 논의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며 야당측의 강한 반발을 샀던 법안으로,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일본의 보수·우경화 가속화 추세와 맞물려 주변국의 경계감을 한층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재는 또 일본이 테러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는 11월 만료되는 테러방지특별조치법을 1년간 연장하는 법안도 시급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장관은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일찌감치 후계자로 발탁돼 관방 부장관, 간사장, 간사장 대리, 관방장관을 차례로 역임하며 집중적으로 ‘총리 수업’을 받아왔다. 특히 2002년 9월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장하면서 일약 ‘총리감’으로 떠올라 1993년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13년만에 총리직을 거머쥐게 됐다. ‘강한 일본´ ‘주장하는 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아베 총재는 교육기본법 개정과 함께 평화주의의 정신을 담아 교전권 등을 금지한 헌법의 전면 개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외교면에서는 미·일 동맹을 중시, 동맹을 강화하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악화된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상실의 세대’ 중국 홍위병/양필승 건국대 교수 차이나타운 추진위원장

    붉은 색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세대차를 반영한다. 붉은 색에 대한 공포와 붉은 색에 대한 환희, 결국 색깔을 느끼는 것조차 역사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유신시대를 살았던 필자에게 붉은 색은 공포와 동시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더욱 중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중국의 홍위병은 붉은 색만큼이나 신비와 공포를 함께 동반했다. 혁명의 역사, 중국 현대사를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고, 약 2년간의 노동자 생활을 접으면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첫 과목은 역사가 아닌 영어였고, 바로 그 영어 시간에 만난 홍위병 출신 중국 여학생. 곧 신비와 공포는 사라지고 너무나 귀엽고 초라한 여자아이로만 다가왔던 그녀. 홍위병에 관한 나의 집요한 질문에 대해 그녀는 늘 웃음으로 피했다. 또다른 홍위병 출신. 중국사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온 중국 장학생. 이제 중국 현대사, 특히 문화혁명(1966∼68)에 대한 이해가 보다 객관적이 됐을 무렵으로, 홍위병에 대한 질문은 한층 예리해졌다. 몇년 전의 그녀처럼, 그 역시 홍위병에 대한 질문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예의로 답하지만, 매우 시니컬했다. 반 세기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땅에서 홍위병이란 단어는 아직도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바로 올해는 홍위병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지 딱 40년이 되는 해다. 홍위병이 월드컵의 붉은 악마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뜨거운 열정을 지녔음을, 그리고 우리의 붉은 전사보다 역사와 사회에 더 진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홍위병의 등장은 마오쩌둥의 선택이다. 그는 공산혁명의 성공과 함께 늙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고, 늘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노혁명가는 권력승계자 대신 혁명후계자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백지상태의 청년들을 찾아 그들을 새로운 혁명세대로 훈련하기를 원했으며, 홍위병은 그의 작품인 셈이다. 문혁의 광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마오는 홍위병 출신 청년들을 농민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미덕을 배우도록 이른바 ‘하방’을 보냈다. 대도시의 청년들이 중국 전역의 오지로 흩어져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농촌문화의 건전성을 ‘학습’했다. 문혁기간이 1976년 종료되기 전까지 모두 1200만명이 ‘하방’에 동원됐다. 그러나 필자가 책 속에서, 그리고 실생활에서 접했던 홍위병은 대부분 스스로를 ‘잃어버린 세대’ 또는 ‘상실의 세대’라고 자조했다. 문혁 중 대학은 장기간 문을 닫았고, 한동안은 입학시험 자체가 없었기에 진학조차 불가능했다. 막상 졸업하자 불어닥친 개혁과 개방의 바람에 홍위병 출신은 무능력자로 낙인 찍혀, 경제적 궁핍의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덩샤오핑은 아예 정책적으로 홍위병 세대를 건너뛰는 이른바 ‘연경화’ 즉 세대교체를 파격적으로 단행함으로써, 홍위병은 상실의 세대로 전락했다. 덩의 결단은 홍위병 세대가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개방과 개혁을 끌어갈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는 판단으로부터 비롯됐다. 이같은 결단은 지독한 지도자의 고뇌에서 출발할 것으로, 미래의 비전과 자기 확신 없이는 불가능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나이와 경험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이 중국 공산당사에도 명백히 유지됐지만, 덩은 과감히 중국의 내일을 위해 그 같은 용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 결과 당과 정부의 간부 층에서 홍위병 세대는 무기력하게 자신들의 지위를 다음 세대에 내주는 고통을 맛보았다. 이로써 그들의 개인적 상실감은 한층 커졌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은 그만큼 성공적인 개방과 개혁의 길을 달릴 수 있었다. 결국 홍위병은 학창시절에 거리로 내몰려 지적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상실을, 다시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들의 퇴장을 강요하는 세대교체를 통해 상실을 경험했다. 이 같은 홍위병 세대의 개인적 비극을 배경으로, 중국은 21세기 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양필승 건국대 교수 차이나타운 추진위원장
  • 동아제약 ‘父子 경영권분쟁’ 재연되나

    강신호(79)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있는 동아제약이 부자(父子)간 경영권 분쟁에 다시 휩싸일 조짐이 감지된다. 동아제약은 국내 1위 제약업체다. 이 회사의 강정석 전무(영업본부장)는 11일 주식시장에서 동아제약 주식 1557주를 사들였다. 이로써 강 전무의 지분율은 0.47%에서 0.49%로 늘었다. 강 전무는 강 회장의 넷째아들이다. 그가 갑자기 주식을 사들인 데는 아버지인 강 회장의 ‘황혼 이혼’과 맞물려 경영권 방어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강 회장은 아들이 넷이다. 장남 의석씨는 건강이 좋지 않다. 둘째 문석씨는 계열사 수석무역 대표다. 셋째 우석씨는 선연 대표, 넷째 정석씨는 동아제약 전무다. 이 중 첫째와 둘째만 최근 합의 이혼한 박정재(78)씨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당초 후계자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이는 둘째 문석씨. 강 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2004년 1월 둘째아들에게 전격적으로 동아제약 사장을 맡겨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실적 부진을 이유로 곧바로 경영권을 회수했다. 이에 맞서 문석씨는 곧바로 동아제약 지분을 상당량 사들여 경영권 분쟁에 신호탄을 쐈다. 하지만 결과는 아들의 패배. 문석씨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이후 강 회장은 공사석에서 차남 문석씨를 후계 구도에서 배제할 뜻을 분명히 했다. 대신, 강 회장은 막내아들 정석씨를 중용했다. 네 아들 가운데 현재 동아제약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정석씨뿐이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강 회장이 2년여를 끌던 부인과의 이혼소송을 매듭지음에 따라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강 회장과 넷째 정석씨가)경영권 방어에 나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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