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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 ‘총재직 이양’ 손익계산에 분주

    ◎국민회의­여권분열 조기수습땐 득될것 없다/자민련­청와대 이 대표 총력지원의사 표현 김영삼 대통령의 총재직 조기이양 선언에 대해 야권의 손익계산이 분주하다.여권의 무게 중심이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로 옮겨갈 경우 대선정국에 미칠 파장을 점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회의는 ‘양날의 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이대표 체제강화 및 여권분열의 조기수습이라는 ‘마이너스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반면 후견인없는 이대표가 정치력 한계를 드러내 이인제 지사의 대선출마를 부추기는 ‘플러스 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김대통령이 당에서 발을 빼기위한 ‘이중포석’이라고 강조,대통령의 탈당과 대선 중립을 촉구할 태세다. 임채정 정세분석실장은 “김대통령이 이대표 당선에 전력투구하는 모양새를 갖춰 여권의 분열을 수습하려는 계산”이라고 했고 박지원 특보는 “레임덕 현상을 늦추기 위해 총재직을 버린후 다양한 카드로 자구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민련은 이대표의 ‘마지막 기회’를 강조하면서도 이대표 체제강화라는 단선적 분석을 거부했다.여권 분열이 지속돼야 JP의 보수대연합 구상이 힘을 발휘한다는 기대감이 섞여있는 듯했다.강창희 총장은 “대통령으로서 해줄 것은 다 해준다는 총력 지원의사의 표현”이라고 했고 지대섭 의원은 “김대통령은 이대표와 이지사를 놓고 힘의 향방을 저울질하며 탈당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지사의 출마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3김 청산’의 공동표밭을 이지사가 잠식할 것을 우려했다.
  • 4자회담과 한반도문제(3당후보 정책대결:14)

    ◎여야 4자회담 성급한 추진 불원/신한국당­한반도 평화 위해 초당적 지원 주장/국민회의­주체는 남북한… 미·중 후견인 역할을/자민련­한국참여 배제 노리는 북 속셈 경계 대북정책에 있어 여야 정당의 색채는 뚜렷한 구별이 어렵다.자민련은 원래 보수색채를 강조해왔고,국민회의도 김대중 총재를 둘러싼 ‘색깔론’불식을 위해 보수쪽으로 돌고 있다.여야 3당은 정부가 4자회담을 조급하게 추진하지말라는데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한국당◁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다음달 15일 이후 4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으로 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여야가 당파를 초월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특히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려워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불가피하고,경수로 건설 사업도 계속돼야 하는 상황에서는 4자회담이 결렬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실무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우려한다. 신한국당은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4자회담에 임해온 과정이 그다지 미덥지는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북한측의 의도가 김영삼대통령 임기중에는 4자회담을 성사시키기 보다는 식량을 얻기 위해 대화를 가장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특히 북한이 최근들어 남한에 대한 비방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4자회담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국회 통일외무위원회의 신한국당측 간사인 이신범 의원은 “미국도 비공식적이지만 4자회담을 서두를 필요없다는 입장인만큼 우리도 회담이 충실한 내용을 갖고 진전되지 않으면 서두를 필요없다”고 말했다. 북한측이 의제 채택을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4자회담에서 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논의하면서 남북한의 군사력 감축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가 가능하지만 별도의 의제로는 채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4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거듭 강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중국과도 협조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부측에 강조하고 있다. ▷국민회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전쟁과 무력을 수단으로 하는 통일을 포기하고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공존·교류의 정신에 바탕을 둬야 한다.이런 기조에서 북한을 점진적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하는 적극적 관리정책으로 전환이 시급하다.당면한 북한 경제·식량난에 대해선 인도적·안보적 민족화해 차원의 지원이 신속히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한은 기본합의서 정신에 입각,제반 신뢰조성 조치를 취하고 방송·체육·학술·문화 등 쉬운 분야부터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여 신뢰를 쌓고 상호이익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주한미군의 경우 통일후에도 일정기간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통일후 예상되는 동북아에서의 군비경쟁을 예방하고 이 지역에서의 힘의 조정자 역할을 위해 일정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4자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현 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한이 중심이 돼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입각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미국과 중국이 보장하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그러나 4자회담은 개최의 정치적 효과때문에 조급하게 서두를 경우 북한의 과다한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자민련◁ 정전협정이 체결된지 44년만에 열린 이번 4자회담 예비회담에서 북한의 대남전략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즉 북한은 그동안 ‘4자회담의 테두리’밖에서 거론하던 한국의 참여를 배제하고 미국­북한 쌍무협상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고집스런 시대착오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예비회담 결과도 벼랑끝 전술과 기만,그리고 특유의 연장술로 응해 온 북한의 자세로 미뤄 이미 예견돼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핵 협상에 있어서도 북한은 우리측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안건을 내놓고 갖가지 위협적인 공갈협박 전술을 구사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식량확보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고 그 다음 미국과의 관계개선및 경제제재 해제에 있음이 명백하다고 자민련은판단한다.때문에 그들의 위장지연전술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민련은 북한이 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본회담 개최는 여전히 밝지 않다고 보고 있다.
  • 김 대통령 하버드대 인터내셔널 리뷰지 기고

    ◎“군개혁 문민정부 최대성과”/이제부턴 한국민주주의 잘 높여나가야/공직자 재산공개 등으로 부패구조 척결 김영삼 대통령은 1일 “한국의 민주주의는 되돌릴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전제하고 “이제는 규범과 절차의 제도화를 완성,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발간된 미하버드대의 국제관계 계간지인 하버드 인터내셔널 리뷰지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결실」이란 제목의 특별기고를 통해 이같이 지적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근거로 ▲경제적 번영으로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 마련 ▲국민의 민주적 권리행사를 보장할 능력을 가진 정부 ▲높은 교육수준의 시민사회 등을 제시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한국의 민주화 경험은 민주주의가 보편적 가치이자 역사의 조류임을 실증하고 있다”고 말하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한국의 성공사례는 이와 유사한 길을 걷고자 하는 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문민정부의성과에 대해 “군개혁을 통해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한 것”을 지적하고 “이는 많은 신생 민주국가에서 군부가 후견인으로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민정부의 최대업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또 김대통령은 “문민정부 이후 공정한 선거경쟁이 제도화됨에 따라 선거결과에 대해서 더이상 시비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이같은 공정경쟁의 기틀은 한국의 고질적 부패구조를 척결하기 위한 공직자 재산공개,정치자금법,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쟁의 원칙은 민주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대학,기업,노동계 등 사회 모든 분야로 확산됐다”고 지적한 김대통령은 “이같은 시민자율의 토대는 풀뿌리 민주주의 학교인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에서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버드 인터내셔널 리뷰지는 국제법,민주주의,정부와 기업관계 등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들을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기고문을 통해 조망해오고 있으며 최근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앨 고어 부통령,독일의슈미트 콜 총리 등이 기고한바 있다.리뷰지는 김대통령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주도했기 때문에 기고문을 요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 경선기탁금 준비 ‘4강3약’

    ◎이회창·이한동·김덕룡·최병렬­후원회 있어 든든/이수성·박찬종·이인제­후견인·주변에 손 벌릴판 신한국당 경선에 기탁금제가 새로 선보였다.각 대선주자들은 2일까지 대의원추천 명부와 함께 1억원을 내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다.선거공영제 실시에 맞춰 선거홍보물 발송 등의 경비를 마련하는 한편 후보난립을 막자는 취지다. 1억원은 보기에 따라 적지 않은 액수다.한보사태 여파로 업계의 ‘보험금’이 크게 줄은데다 경선판도가 혼전양상을 띄면서 자금마련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더구나 결선투표에 오른 2명을 빼고는 이를 돌려받지도 못한다.결선에 올라도 당의 경선비용을 제하게 돼 별로 남을게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 때문에 각 주자들은 짐짓 태연해 하면서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직접 모금에 나서는 등 기탁금 마련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원내주자인 이회창 대표와 이한동 고문,김덕룡·최병렬 의원은 그나마 ‘후원금’이 있어 사정이 낫다.이대표측은 “후원금에다 사재를 더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최의원도 “연초에 모금한 3억원의 후원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에 비해 후원금 모금이 불가능한 원외의 이수성·박찬종 고문,이인제 경기지사는 주변의 ‘돈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박고문측은 “몇몇 후견인과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갹출한 돈으로 충당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교사가 소녀가장 후원금 착복/2천3백만원 횡령혐의 구속

    서귀포 경찰서는 20일 소녀가장 후원금 2천3백여만원을 가로챈 서귀포시 중문중학교 교사 오봉근씨(48)를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남제주군 대정중 교사로 재직하던 91년부터 소녀가장인 이 학교 1학년 고모양(당시 13세)의 후견인으로 지정돼 고양의 예금통장을 관리하면서 94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각계에서 송금해 온 후원금 2천4백46만원중 2천3백68만원을 33차례에 걸쳐 착복한 혐의다. 경찰 수사결과 오씨는 고양이 고등학교 3학년때인 지난해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후원금을 학자금으로 쓰겠다고 하자 『여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진학을 포기토록 종용했으며 고교 졸업후 예금통장을 돌려달라는 요구도 거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현철씨 수사 「광맥」 찾았다”/검찰 비리의혹 캐기 막바지 단계

    ◎고교 동문기업인들 후견인역할 확인/비자금창구 이성호씨와의 고리 추적 김현철씨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 단계에 이르면서 현철씨 비리의 전모가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심재륜 대검 중수부장은 『완성된 「작품」을 내보이겠다』고 말하는 등 의욕을 보여 수사가 끝내기 수순으로 접어들었음을 내비쳤다.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에서 현철씨 비리가 주로 학맥을 중심으로 전개돼 온 사실을 확인했다.대호건설 이성호 전 사장,두양그룹 김덕영 회장,우성그룹 최승진 부회장 등 현철씨의 고등학교 동문 기업인들이 이권을 노리고 수억∼수십억원을 건네는 등 현철씨의 후견인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검찰의 관계자는 이를 두고 『K2(경복고)가 그야말로 똘똘 뭉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특히 대호건설 이씨가 현철씨 비자금 관리의 창구역할을 해 온 단서를 일부 포착,현철씨 비리의혹 수사의 「광맥」을 찾았다는 분위기다.그동안 경복고 출신 기업인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이씨가 현철씨의 활동자금을 거두고 다녔다』거나 『현철씨를 만나보려면 이씨를 통해야 한다』는 등의 진술도 확보했다. 검찰은 크게 2가지 의혹 사안에 대한 조사를 통해 현철씨 비리와 이씨와의 연결고리를 추적중이다.우선 94년 11월 이씨가 대리인을 통해 자본금 10억원으로 설립한 (주)동보스테인레스다.이 회사는 95년 막대한 이권이 달린 대전 이남지역의 포항제철 철강판매권을 따내 재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검찰은 이 과정에 현철씨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이 회사의 운영수익금 가운데 일부가 현철씨에게 건너갔다는 단서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 관계자는 『동보가 현철씨 비자금의 「젖줄」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검찰은 지난 2일 이 회사의 부산본사 등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실제 돈 흐름을 면밀히 추적중이다. 이씨가 95년부터 서울과 지방의 유선방송국 7개를 매입하는데 쓴 6백87억원의 자금출처 규명도 관건이다.이씨측은 95년 서울 서초동 대호빌딩을 팔기로 계약하고 H전자로부터 받은 8백억원의 중도금으로 방송국을 샀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H전자는 소유권 확보를 위한 등기설정 등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이씨측은 이 빌딩을 담보로 제2금융권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대출을 받은데 이어 지난해 S그룹과도 매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빌딩매매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검찰은 『대호빌딩 매각과정은 관심밖의 사안』이라면서 현철씨가 이에 개입한 흔적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김정일 과도기적 체제 구축 가속/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 칼럼)

    ◎세대교체 급피치… 붉은기­군중시사상 강조 황장엽 비서가 북경을 떠나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멀지않아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이 망명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두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즉,황비서에 대한 냉담한 견해와 동정적인 견해이다. ○냉담·동정 견해 엇갈려 냉담한 견해에 따르면 황비서는 김일성시대에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및 노동당 이데올로기 담당비서를 역임한 순수한 이론가로 관제 이데올로기를 창조한 「어용학자」인 셈이다.그 공적으로 최고인민회의의 의장을 경험하고 당서열 26위까지 올랐다.이 어용학자가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의 형성으로부터 배제돼 숙청을 두려워해 한국에의 망명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한편 동정적인 해석에 의하면 황비서는 지조가 굳은 조선의 전통적 지식인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체계화한 주체사상이 독재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따라서 그는 민족적인 사명감을 갖고 국외로 탈출했다.주체사상을 바르게 전하는 것,전쟁의 참화로부터 민족을 구해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황장엽의 망명에는 이들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고 생각된다.그같은 관점에서 말하면 김정일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새로운 지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며,또 그가 북한의 식량위기의 심각함을 지적하고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는 무엇일까.7월 이후 신체제 발족을 앞에 두고 윤곽을 드러낸데 불과하지만 이런 의미에서는 2월15일에 거행된 김정일 비서의 55세 생일 경축행사를 주목하는 것이 좋다.왜냐하면 그 경축행사에서는 선전·선동담당비서이며 황비서의 라이벌인 김기남이 중요한 보고를 담당했으며 부총리겸 외상이며 김정일의 후견인으로 주목되는 김영남이 축하문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흥미를 끄는 것은 두 사람의 보고와 축하문 속에 붉은기 사상과 군중시사상이라는 두가지 사상이 김정일 비서의 독창적 이데올로기로서 공식화된 점이다.그 상세한 내용은 불명확하지만 붉은기 사상이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과 수령의 결사옹호 정신이다.군중시 사상이란 「군이 바로 당이며 국가이며 인민」이라고 하는 「위대한 혼연일체」인 듯하다.「붉은기 사상」이란 용어가 북한 미디어에 처음 나타난 것이 지난해 1월1일 노동신문 등 3개지 공동사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과 황씨의 망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쟁 위험성 경고 주목 다음으로 새로운 지도체제이지만 2월22일에 사망한 최광 인민무력부장의 장의위원회 서열에 그것을 알기 위한 힌트가 있다.그 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제6위의 강성산,12위의 서윤석,20위의 최영림,22위의 연형묵,28위의 서관희등 유력한 지도자들의 이름이 탈락돼 있어 이것이 이러저러한 억측을 부르고 있다. 사실,일본과 한국의 일부 주간지와 월간지 가운데는 최광에 이은 김광진 인민무력부제1부부장의 사인에 의문을 품거나 마치 북한 지도부내에 김정일파와 반김정일파 사이의 격렬한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있는 듯이 전하는 기사도 있다.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인민무력부의 수뇌가 살해됐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엄령이 포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또 이러한 수뇌가 반김정일파라면 배반자를 위해 국장이 거행된 셈이 된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격렬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김정일의 새로운 지도체제 형성이다.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신구세대교체,군대중시 경향,직무상의 실패에 따른 좌천등의 요소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황씨의 망명과 최광의 사망은 7월 이후를 향해 이미 진전되고 있던 신지도체제의 형성을 가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식량원조 획득이 관건 한편 황씨 망명후의 진술서와 그 이전의 서한 가운데 북한의 위기적인 상황이 식량사정 및 경제적 곤란을 들어 설명돼 있는 것도 주목되지 않으면 안된다.스스로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황씨는 북한의 내부붕괴 가능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되풀이해서 경고하고 있다.농민폭동이 불가능하며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단결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식량위기가 이대로 심각해지면 내부붕괴보다는 전쟁 시나리오가 나서게 된다는 주장에는 명확한 논리적 일관성이 존재한다. 만일김정일이 망명사건에의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파를 억제하지 목하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기술자 파견도 4자회담에 관한 공동설명회도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며,남북한간의 격렬한 소모전으로 김정일 비서의 최고지도자에의 취임마저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이야말로 전쟁시나리오의 서곡이었다.이런 의미에서 북한 지도부가 감정적 반발을 억제해 외교의 유연성과 기동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특별히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사태를 전망하는 최대의 가늠자는 앞으로 한 두달 안에 북한이 식량원조를 획득하는데 성공해 7월이후 김정일이 정말로 국가주석과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부이다.북한의 연착륙이 가능한지 아닌지 여부와 같은 논의는 5년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차세대 기술관료들(등 이후 중국대륙:5)

    ◎호요방­당 서열 7위… 4세대 선두주자/왕조국­자유주의 세력 희망/증경홍­상해방·태자당 핵심/온가보­조자양 계열 온건파/오방국­유력한 차기 총리감 중국 지도자들을 분류할때 모택동과 주은래,등소평 등 혁명원로들을 제1세대,호요방 조자양 등을 제2세대,현재 권력 핵심인 강택민 이붕 등을 제3세대라 부른다.제3세대인 주자들이 대부분 70대 초반의 고령인 점에 비추어 중국공산당 16차대회가 열릴 2002년에는 현 핵심지도세력보다 연배가 10수년이나 아래인 제4세대 인물들이 정권의 전면에 배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40년이후 출생해 강택민,이붕보다 한세대 이상 아래인 이들 제4세대핵심들은 당과 정부,군 요직에서 착실히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이들은 개혁개방후 지방 각 지역과 중앙의 주요 직책들을 거친 기술관료들이다. 개인별로 볼때 우선 제4세대중 선두주자는 호금도임에 이견이 없다.강택민이후 가장 유력한 후계자다.56세로 중국정치의 핵인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당서열 7위다.명문 청화대를 나와 9년간 빈곤지역인 감숙성에서 기술관료로 활약했다.85년엔 극빈지역 귀주성의 최연소 당서기로 능력을 인정받았다.88년엔 민족분규로 유혈사태가 악화되던 티베트 당 서기로 부임,사태를 진정시켰다.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왕조국은 중국정치에선 호금도에 앞선 대권주자였다.87년 호요방의 실각,사망으로 보수파의 공격목표가 돼 복건성 성장,서기로 밀렸다가 92년 중앙에 복귀했다.호보다 2단계 아래인 중앙위원이며 통일전선부장(장관)이지만 그의 미래는 자유주의 세력의 입지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있다.호요방 총서기 시절 비서실장격인 당 중앙관공청 주임과 당의 일상활동을 조정,관리하는 중앙서기처 서기등을 역임했다. 증경홍은 강택민의 오른팔로 현재 비서실장격인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다.중앙위후보위원에도 들지못하는 등 당내 서열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실세중 실세로 꼽힌다.강택민,오방국,황국과 함께 80년대중반 상해시당 부서기를 지낸 상해방의 핵심이다.중국공산당의 원로인 증산의 아들로 태자당의 핵심이며 당원로의 지지를 받고 있다.올후반 15대 전당대회에서 고속성장이예견되며 그의 정치국 진입여부는 강택민의 힘을 재는 바로미터란점에서 주목된다. 정치국 후보위원인 온가보도 온건지도자로서 주목받는다.조자양 총서기밑에서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신임을 받았다.89년 6·4사태때 교석,전기운처럼 시위 무력진압에 대해 미온적이었지만 정치무대에서 살아남을수 있었다.그의 진로도 당내 온건파의 입지를 재는 척도중 하나다. 부총리 오방국도 상해방 출신의 공업전문가인 기술관료로 유력한 차기 총리감이다.명문 청화대졸업후 상해 전자관공장 기술자로 출발,전자분야 국영기업의 부사장을 거쳐 강택민과 주용기의 신임을 받아 상해시 당서기를 거쳐 정치국원이 됐다.강택민,증경홍 등과 마찬가지로 상해파의 대부 왕도함,진국동이 후견인이다.85년중반부터 강택민,황국 등과 함께 상해시 부서기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중국은 78년 당회의를 통해 차세대 양성을 공식화했다.65세면 장관직을 물러나야하는 것이나 40대의 국장및 40대의 핵심 차관을 선발하는 불문률의 관례도 이 때문에 세워졌다.이들 50대 지도자들이정권을 쥘때는 중국이 보다 개방되고 서구화 방향으로 나갈 것이 분명하다.
  • 정치개혁 가능할까(등 이후 중국대륙:2)

    ◎경제제일주의… 탈이데올로기 확산/경제 자율권 확대로 통제여지 줄어/급성장한 중산층 민주화요구 커져/대체할 조직 미비… 당분간은 현체제 지속 등소평이후의 중국지도층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형태의 질서를 떠맡게 됐다.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문에서는 자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중국의 이러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의 경제는 지난78년 개혁개방이후 해마다 9.3%의 고속성장을 거듭했으며 무역총량이 3천억달러에 육박해가고 있다.일반국민들도 이러한 경제성과의 수혜자가 됐으며 개혁개방정책의 지지세력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한편에서는 사회구조 및 의식의 다양화와 공산주의 이념의 퇴색이 촉진됐다.경제부문의 자율권 확대는 정부의 통제와 계획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으며 사회주의 특색인 계획경제의 여지를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다.경제적 성장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외개방이 도리어 공산당의 집권과 안정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사회의 통합을 이뤄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산당 조직이 효율과 경제제일주의,탈이념의 분위기속에서 상당히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상업주의,배금주의의 거대한 물결속에서 이데올로기와 공동체의식은 빛바랜 유산이 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 선망과 출세의 지름길이던 공산당 입당과 당에 대한 헌신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공업발달로 인한 도시화는 1억명이상의 농촌잉여노동인구를 도시로 빨아들였다.도시에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유랑인구층의 확대는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도시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 공산당조직의 해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개혁개방이후 성장한 중산층과 서구 사상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계층의 민주화요구는 정부의 압력속에서도 커가고 있다.기존 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에 대한 정통성 약화와 불신이라고 요약되는 이러한 현상은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난78년 개혁개방이래 등소평의 노선에서도 변하지 않는 4가지 전제조건이 있다.그것은 ▲사회주의 노선 ▲무산계급의 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 레닌주의및 모택동사상의 견지였다.경제는 시장경제로 나가지만 정치는 공산당의 1당 지배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지난93년 8차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개정한 헌법에서도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견지해야 한다는 조항은 여전히 살아있다. 공산당 독재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분야에서의 현 정책기조는 등 사후도 변치 않을 전망이다.지난1월25일 중앙기율위원회에서 위건항위원장은 「자산계급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하겠다」며 정치적 다원화와 민주화 요구에 경고를 보냈다. 강택민 주석 역시 공산당의 우위체제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며 다원적인 정치개혁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은 외부적으로도 아직 공산당을 대체할 조직과 역량이 미비하고 시민사회의 형성이 더디어 중국 지도부가안에서 분열하지 않는한 정치적 개혁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적 토대가 바뀌면 그 위에 세워지는 정치·사회·문화적 체제도 바뀌어가기 마련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체의 주장이 맞는다면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토대가 바뀐이상 장기적으로 정치체제도 바뀔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언론의 보도/LA타임스­누군가 강택민에 도전할수도/르몽드­천안문사태 풀어야 할 과제로/알게마이너­일관된 개방정책 추진 미지수 세계언론들은 20일 등소평 사망 뉴스를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사설·해설 등을 통해 군과의 관계,점차 거세질 민주화 욕구 등의 이유로 강택민 체제의 앞날이 순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았다. ▲뉴욕타임스(미국)=「등소평의 유산」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등이 생존 당시 권력을 이양하지 못한 점과 그의 사후 닥쳐올 불안한 후계자문제 등은 그러한 개혁들이 여전히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 ▲워싱턴 포스트(미국)=등의 사망을 계기로 강택민국가주석은 이제 후견인없이 중국을 이끌어가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강주석은 군을 모두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으며,과거 주은래와 호요방의 사망후와 같이 대규모 시위에 시달릴 가능성도 안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미국)=누군가가 강에게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지난 76년 민주화운동에 대해 훗날 공산당이 공식적인 비난을 철회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등이 「반혁명 소요」로 공식 비난한 천안문사태에 관한 재심요구로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도.윈스턴 로드 전 동아시아태평양담당 국무차관보가 『천안문 문제가 등 생전에 재론될 가능성은 없었으나 앞으로 두세달은 지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 신문은 보도. ▲르 몽드(프랑스)=천안문사태가 앞으로 강체제가 풀어야할 최대과제라고 지적.이 문제에 논의는 그동안 금기시돼왔으나 등의 사망으로 피할수없는 난제가 됐다고 보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독일)=등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사라진 지금 그의 후계자들이과연 등처럼 일관되게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나갈수있을지 매우 의문시된다고 지적.반면 게네랄 안차이거지는 『강주석·이붕 총리 등이 등의 개혁노선을 지속시킬 경우 중국이 21세기에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
  • 등소평 사망­중 이끌 5인의 실력자

    중국을 현대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등없는 중국의 미래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은 등과 같은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강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며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등이후의 정치역학 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실력자들을 알아본다. ◎강택민/개방정책 지휘한 등의 적자/상해·기술관료 출신… 추진·포용력 돋보여/대중적 카리스마 부족… 군부기반도 취약 「강철 미소」.북경외교가에서 강택민을 평하는 말이다.부드럽고 여유있게 보이는 이면에 치밀하고 끈질긴 추진력을 평하는 말이다.각 부문을 통괄하고 무리없이 이끄는 포용력은 등소평도 크게 평가했다고 한다.문제를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지도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현재와 같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강과 같은 적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다른 지도자들의 입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지도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강은 명문대(상해 교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래트)다.지난 95년 한국방문때 삼성전자 등을 둘러볼때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다.그러나 특유의 인화력과 포용력으로 조정과 막후 교섭등 정치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때 상해서기로서 유혈사태를 피하면서도 시위대를 적절히 제압하는 「성과」를 거두어 등소평의 점수를 얻었다.그는 강소성의 비교적 넉넉한 학자집안의 자제다.그가 영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예와 그림,중국전통악기 및 피아노 다루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것은 그같은 집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붕에 비길수 없지만 그의 양아버지인 숙부가 공산당원간부로서 이선념·장애평·진의 등 신4군 수뇌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이같은 출신배경도 그의 능력과 함께 출세의 밑천이 됐다.인민해방군의 거목인 이선념은 생전 그를 적극 지원했었다.강택민은 상해시 당위원회 부서기·서기·시장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인정을 받았다.상해가 권력의 기반일뿐 아니라 출세의 발판이고 그의 고향도 넓게 범상해권에 속하는 강소성이다.상해의 식품공장과 비누공장에서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기계공업부와 전자공업부 부장 등으로 기술관료로서도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그의 뒤에는 상해파벌의 대부격인 왕도극이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오방국·황국·서광적 등이 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소위 「상해방」이다.그는 증경홍 당중앙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등 계속 상해출신의 진용을 강화하고 있다.94년 14기4중던회 때 상해시장 황국과 당시 당서기 오방국을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는 등 주위를 두텁게 하고 있다.등소평에 의해 뽑혀 올려왔지만 지난 8년동안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 강화해 모택동에 의해 선택된 화국봉처럼 쉽사리 뽑혀나갈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구체적인 치적이 없고 취약한 군부의 지지기반 등이 그의 아픈 곳이다. ◎이붕/보수파 대변 태자당의 리더/거미줄처럼 깔려있는 관료인맥이 강점/천안문사태 강경진압 지휘… 대중반감 커 이붕 국무원총리는 지난 8년여동안 강택민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이미 79년 국무원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중앙에 진출한뒤 국무원 부총리(83년),중앙위원 겸 정치국위원 등을 거친 기술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도 강택민보다 먼저 올랐다.제3세대 기술관료들의 본산인 소련유학파의 수장격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료인맥의 대부격이다. 87년이후 10년 가까운 총리직을 통해 각 지방에 자신의 인맥을 상당히 확보해왔다.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원 판공실주임 라간 등도 그의 수하다.최근 그는 지난 95년 북경시의 진희동·왕보삼사건 등으로 곤경에 몰리는 등 강택민의 상해파에게 밀리는 듯 위축된 모습이다.그러나 그의 경력과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권력투쟁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 제1세대의 적자로 비유되는 소위 로열패밀리의 성원이다.아버니 이석훈은 장개석 국민당군에게 처형된 「혁명열사」고 어머니 조군도도 열렬한 핵심당원이었다.그의 외가는 혁명1세대의 핵심성원이다.고아가 된 그는 혁명1세대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로 키워졌고 특히 주은래와 등영초의 양자로 성장했다.진운은 사망했지만 당원로 팽진·등력군 등은 그의 배경이 되고 있다.또 중국 정·관·군의 주류로 건재한 로열패밀리출신의 「태자당」들의 구심점이란게 무엇보다 그의 강점이다.이같은 배경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 이붕은 그러나 지난 89년 천안문사건때의 강경진압 주도자라는 부담을 지게하고 있다.진압의 총지휘자인 등소평이 사라진 마당에 천안문의 부담은 더할 것만은 분명하다.이붕은 연임제한규정에 묶여 오는 98년초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한다.아직 그에게 마땅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강택민·오방국·황국 등을 주축으로한 상해파가 계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입지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시장개방정책과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체제개혁이 심화돼 부작용이 높아질수록 그의 발언권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방대한 관료체계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층부 인사들과의 인적관계,총리 등 당·정 지도자로서의 엘리트코스 등은 그가 1인자는 될 수 없어도 영원한 2인자,견제세력으로의 위치를 지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교석/온건·합리… 서열3위 중도파/개혁·보수파 조정역… 전면 나서진 않을듯 올해 74세의 교석은 당 공식서열 3위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다.절강성 출신으로 대학시절(상해 동제대) 상해학생운동의 총지도자였다.당조직부와 정법부문에서 오래 근무해왔다.공안부 및 검찰·감찰업무를 총괄하는 정법위원회 서기 임건신,부정부패처벌 등을 총괄하는 기술검사위원회 서기 위건항 등이 모두 그의 직계로 꼽힌다. 천안문사건 당시 강경진압에 기권의사를 표시하는 등 온건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전인대 상무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전기운부위원장의 지지 아래 전인대의 정부에 대한 감독·비판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또 법률정비 및 법치제도 완비추세 속에 각종 법률제정 등을 주도하며 보이지 않게 중국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강택민 서기의 선배격이며 당조직 부부장 때는 현재 중국지도부의 거의 대부분을 발탁,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이 넓다.빠른 판단력에 기분과 의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격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결정적인 순간 그의 동의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위사람의 이야기다.사실상 실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란 것이다.한때 「강락석출(강택민은 떨어지고 교석이 등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반의 인정을 받고 있다.「불편불기,심장불로」로 요약되는 그의 조심성과 균형 있는 처신은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힘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중앙대의연락부 부장,중앙당교 교장 등 당·정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넓은 인맥도 강점이다.또 최근 해외나들이 등 국회외교를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실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경제개혁·개방에 이어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주도할지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개방의 전도사… 대중적 인기/천안문사태로 실각… 세력잃어 재기 의문 소년 홍군병사 출신으로 총서기에 올랐다가 「급진」자유주의적 견해 때문에 권좌에서 추락한 올 79세의 조자양은 개인적인 권력기반보다는 중국 자유주의사조의 부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변화의 귀추가 주목된다.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학생과 얼굴을 맞대며 설득을 시도하던 그의 실각도 8년여가 되지만 개혁·개방정책의 주도자로서의 그의 명성과 성취는 기존지도자들을 위축되게 한다.경제성장,개혁·개방의 전도사란 말은 늘 그의 성공을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지금도 요주의인물의 하나로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이야기다.이미 정치의 꿈은 버렸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의 복귀가 현정권 자체에 위협시되고 있는 것이다.그는 성장시절 빈곤에 찌든 사천성에 빈곤추방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곡식 먹고 싶거든 조자양에게로 가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그의 경제개혁은 성공을 거두었다.그는 중앙무대에서도 혁명세대와 혁명후 전문기술관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입지를 다져왔었다.그는 1932년 13살의 나이에 중국혁명에 참가한 소년병 출신이다.양상곤의 다음세대인 2.5세대로 평가된다.80년대 개혁·보수의 힘겨루기 속에 급진적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다가 천안문사태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며 정치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는 지방의 자율성과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을 강조,지금까지도 지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특히 80년대 호요방에 의해 형성된 기술관료층이 현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현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세력기반이 뿔뿔이 흩어져 재기는 의문시된다. ◎양상곤/군부 영향력… 킹 메이커 노려/「천안문」 강경진압 주역… 나이도 너무 많아 양상곤이야 말로 등소평없는 중국에서 당·정·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다.그는 인민해방군의 창설자의 한명이자 중국공산당의 원로며 전임 국가주석겸 권력의 핵인 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20년가까이나 맡았다.실권은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즉 중국국내의권력투쟁이나 분쟁이 가열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질 경우 그의 발언권과 선택이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의 향배는 앞으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91살이지만 쉬지않는 지방시찰 등으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그는 95년 광동성,96년 동북3성을 순회한데 이어 올해초에도 주해와 심천 등을 시찰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국건립 당시 팽덕회가 지휘하던 제3군의 정치위원이었다.양상곤은 지난 93년10월 정치 연소화란 구실로 권좌에서 밀려났다.실은 그와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의 군에 대한 장악력등은 강택민정권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 된다고 판단한 등소평의 기습으로 군의 실세였던 양백빙과 함께 실권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이붕처럼 89년 천안문사건때 「손에 피를 묻힌」강경진압자중 대표인물이다.부담을 벗어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천안문사건의 강경진압주장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지지자로 평가된다.나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만 유사시 「킹메이커」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문화혁명때 주자파로 몰려 66년부터 13년동안 소련간첩 혐의를 뒤집어쓴채 감옥생활을 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등소평과는 고향도 갖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소년·소녀가장/후견인제 도입/복지부

    ◎종교인 등 지정… 양육비 지원도 보건복지부는 29일 소년소녀 가장들에 대한 후견인제도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소년소녀 가장·가구 지원사업 개선방안」을 마련,시행키로 했다. 주로 경제적 지원에만 치우치고 사회·정서적 보호를 등한시해 일어나고 있는 소녀가장 집단성폭행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복지부는 친·인척이 없거나,할머니 등 고령의 보호자와 같이 사는 소년소녀 가장에게는 지역내 종교인·여성지도자·아동위원 등을 후견인으로 지정해 어려움을 의논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친·인척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소년소녀 가장은 이들과 함께 살도록 유도키로 했다.친·인척 동거인에게는 현재 고아원 등 아동복지시설에 대해 주는 지원액(아동 1인당 연간 2백16만9천원)범위에서 양육비를 정부가 지급한다. 또 소년소녀 가장 가구의 아동 4∼5명이 1명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한가정을 이루어 생활하는 「그룹 홈」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 연 5∼6% 꾸준한 성장/외국기업 투자러시

    ◎반도체 등 수출 급증… 값싼 노동력 “일등공신” 60년대초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부유국으로까지 꼽혔던 필리핀이 독재체제아래서 겪어온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이제 재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낸 민중혁명이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에 이은 현 라모스대통령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93년 6%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더니 94년엔 5.1%,95년 4.8% 등을 기록한후 올해들어서는 수출호조에 힘입어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지난 1월부터 5월까지의 수출액이 77억8천9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의 65억1백만달러를 19.8%나 앞질러 수출에 탄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거의 25년만에 이같은 지속적인 성장이 이뤄짐에 따라 1인당 GNP도 지난해에 1천90달러를 기록,98년 목표였던 1천달러 목표를 3년이나 앞당겨 달성했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경제발전에서 소외됐던 필리핀의 성장을 가속시키는 주요수출품은 반도체와 전자제품.이들 품목은 현재 연 40%씩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오는 2000년에는 수출목표액2백억달러는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침체의 늪을 벗어나게한 원동력은 역시 사람.필리핀의 값싸고 숙련된 노동인력은 경제침체를 벗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투자의 한계효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정치가 안정되면서 외국의 자본들도 속속 필리핀을 찾고 있어 경제성장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모스 대통령이 집권한뒤 중장기경제개발계획(93∼98년)을 세워 획기적으로 외자유인책을 취하자 특히 전력·도로·항만·통신 등 취약한 인프라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주요 투자국은 일본(37.6%),미국(22.4%),한국(4.4%),영국(3.6%) 등으로 나타났는데 우리나라는 전력·통신·도로 및 건축 등의 분야에 참여를 확대시키고 있다.
  • 미 해외자국민 보호 어떻게/한국인 잇단 불상사 계기 알아보면

    ◎「해외시민실」 운영… 국가별 정세 체크/구금땐 부당대우 방지 압력·음식제공/기비꿔주고 병걸리면 현지치료 알선 급속한 세계화추세로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시민의 안전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특히 최근 해외에서 발생한 일련의 우리 여행객 혹은 주재원에 대한 각종 사건사고는 정부차원에서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매년 수천만명의 자국민이 해외나들이를 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국제테러와 마약 등 확산돼가는 국제범죄에서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금년초 기존의 시민비상센터(CEC)를 해외시민실(OCS)로 확대개편하고 미국민의 해외에서의 구금·사망·재정고갈·질병·실종·재난 등 위급시의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미국무부 영사국 산하기구로 돼 있는 OCS는 시민지원 및 위기관리(ACS)·아동문제(CI)·정책평가 및 연락사무소(PRI)등 3개의 부서로 조직돼 해당국의 미공관과 긴밀한 연락하에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국가별 정변 및 재난 등을 체크해 「여행경고」및 「영사정보철」을 상시발행함으로써 사전에 여행객의 안전을 위한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다.OCS의 부분별 주요업무내용을 소개한다. ▲구금=매년 2천5백여명의 미국인이 해외에서 범법자로 체포된다.이들중 30%가 마리화나·코카인 등 마약관련 범법자다. 이들에게 해당국의 법체계에 대한 정보제공 및 변호사소개,미국내 가족과의 연락,정기적 면회,구치소의 부당대우 및 열악한 환경모니터,사식제공 등을 통해 불편을 최소화시켜준다. ▲사망=매년 6천여명의 미국시민이 해외에서 사망한다.이들의 상당수는 장기체류자이며 이중 2천여 시신이 본국으로 송환된다.미국시민이 사망할 경우 우선 가족과 연락을 취해 해당국의 장례절차 및 비용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본국 송환을 원할 경우도 그 절차를 안내해준다. ▲재정고갈=여행중 돈이 떨어진 미국시민에게 국내의 친지나 후견인과 연결을 시켜주고 그들로부터 송금이 올 때까지 일정액을 대여해준다.이를 위해 연간 3백만달러의 비상기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본국에 돌아가 갚을 수 있는 직접적인 대여도 행한다. ▲질병발생=여행중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얻은 미국시민에게 우선적으로 현지의 병원에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고 미국내 친지와 연락을 취해주며 미국내 치료를 원할 경우 후송방법을 안내해준다. ▲실종 및 연락유지=연락이 두절된 여행객의 소재를 파악해 가족에게 알려주며 또한 가정내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여행객을 수소문하여 알려준다.연중 1만2천여건에 달하는 의뢰를 받고 있으며,실종확인시에는 해당국 정부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재난구조=비행기추락·하이재킹·천연재해·내란·정정불안 등의 상황시 자국민에게 안전지역으로의 대피를 권유하며 대피를 위한 교통편을 마련한다.
  • 「12·12」 「5·18」 결심공판/재판부 신문내용

    5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7차 공판에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 재판장은 검찰의 구형에 앞서 마지막으로 피고인을 직접 신문했다. 재판부는 전두환 피고인이 신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함에 따라 허화평 피고인부터 신문했다. 피고인 별 신문내용을 간추린다. ▷허화평 피고◁ ▲김 부장판사=보안사가 수집한 정보는 분석내용 및 대응책을 함께 묶어 상부에 보고하는게 상례 아닙니까.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대응책 등이 자동적으로 수반돼 보고됩니다. ▲김 부장판사=12·12 당시 신군부병력이 출동해 국방부까지 장악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허 피고인=저로선 잘 모르는 일입니다. ▲김 부장판사=노재현 국방장관의 결재는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까. ▲허 피고인=답변하기 곤란한 사안입니다만, 참고적으로 국방장관으로서는 12·12사건 자체가 합수본부장과 직접 관계된 일이고 따라서 사안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합수본부장과 접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강제로 결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 부장판사=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하는 건 이례적인 일 아닙니까. ▲허 피고인=통상에 비춰 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5·16때 전방부대가 서울로 출동했었나요. ▲허 피고인=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부장판사=10·26 이후 중앙정보부가 퇴락한 후 보안사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죠. ▲허 피고인=그렇습니다. ▲김 부장판사=전두환 피고인이 10·26 이후 12·12까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승화 총장의 눈치를 살필 정도라고 진술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허 피고인=…. ▲김 부장판사=「K­공작계획」이라는 게 그 당시 있었죠. ▲허 피고인=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김 부장판사=80년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서리가 됨에 따라 정부조직법상 국방부장관이나 계엄사령관 등 보다 서열이 높아진 것 아닌가요. ▲허 피고인=서열은 잘 모르지만 영향력은 매우 컸던 것으로 압니다. ▷이학봉 피고◁ ▲김 부장판사=육참총장이 10·26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총장의 계엄업무 수행과정에가시적으로 큰 장애요인이 된다고 간주했습니까. ▲이 피고인=업무수행에 큰 영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피고◁ ▲김영일 부장판사=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면 12·12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줄 몰랐습니까. ▲노 피고인=내란방조 혐의가 있는 정총장을 연행하는 것은 적법하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영복 피고◁ ▲김 부장판사=당시 계엄사 산하 합수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서리까지 맡게된 후 국방부장관인 증인과의 관계가 힘들게 됐죠. ▲주 피고인=중정부장서리가 된 후에는 전 보안사령관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임무수행에 곤란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희성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사태 때 광주시민에게 몇차례 선무전단을 살포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령관 이름으로 3∼4차례 살포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선무전단은 계엄사에서 만들었습니까. ▲이 피고인=계엄사 참모가 만들었는지, 다른 기관에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호용 피고◁ ▲김 부장판사=광주에서 상황보고를 받기 위해서나 지휘참고 등을 위해 특전사 여단장들을 만난 적 있습니까. ▲정 피고인=제가 정식지휘 계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보고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단장들이 저를 만나면 대충의 상황에 대해서는 얘기 했으나 지휘혼란을 막기 위해 지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그렇다면 왜 여러차례 광주에 내려갔습니까. ▲정 피고인=예하 부대가 파견돼 있는 저로서는 내려가 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서울에서 광주를 오르내린 것은 시위진압에 대한 기밀사항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까. ▲정 피고인=검찰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나, 기밀사항을 가지고 갔다면 어딘가에 전달을 했어야 하는데 검찰조사 과정에서도 그런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 부장판사=광주에 갔다 오면 계엄사령관 보다 보안사령관을 먼저 찾아갔다는데 사실입니까. ▲정 피고인=사실이 아닙니다.서울에서 광주에 오르내릴 때마다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습니다.〈박은호·김상연 기자〉 ◎검찰의 피고인별 구형 이유/전씨­최고책임자에 법정 최고형/노씨­「2인자」 고려 전씨와 차등 검찰은 5일 전두환 피고인 등 16명의 피고인에 대해 법정 최저형량 10년을 기준으로 차등해 사형까지를 구형했다고 밝혔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김원치 본부장(서울지검 1차장)은 피고인들에 대해 작량감경(범죄의 정상을 참작해 형을 낮추는 것) 없이 구형했지만 노태우 피고인은 상관살해 미수죄의 「미수」 부분을 고려해 법률에 따라 감경했다고 설명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은 검찰이 재량으로 감경했으며 형법에 따라 사안의 경중과 가담경위, 기여도, 사후 태도, 개인정황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피고인별로 차등구형 했다고 강조했다. 개인별 구형 이유를 간추린다. ◇전두환 피고인=반란 및 내란의 모든 과정에서 최고책임자로서 수괴에 해당된다. 거액의 뇌물수수를 고려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노태우 피고인=거액의 뇌물을 수수했으나 반란 및 내란과정에서 2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를 고려해 전 피고인과 달리 무기징역을 차등 구형한다. ◇황영시·정호용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과정에서 강경진압을 주도했다. 내란목적 살인죄의 최저형인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한다. 황씨는 12·12에도 관여했고, 정씨는 뇌물 3백억원을 수수한 사실도 감안했다. ◇이희성·주영복 피고인=내란과 5·18 진압에 소극적으로 간여했다. 그 가담경위와 (다른 피고인과 달리 변호인이 사퇴하지 않은) 재판태도 등을 감안, 각각 징역 15년으로 작량감경했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12·12 및 5·18사건의 주요 계획에 대한 입안과 실행을 주도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유학성·차규헌 피고인=군 선배로서 신군부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범행에 가담했다. 차 피고인의 경우 검찰 조사에서 시인한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한 사실을 참작해 각각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세창 피고인=3공수여단을 직접 동원해 특전사령부를 공격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다. 하극상을 주도한 패륜적 범죄를 저질러 대표적으로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장세동피고인=30경비단을 지휘부로 제공했으나 직접 범죄의 실행에 가담한 정도가 적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신윤희·박종규 피고인=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체포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패륜적 범죄에 속하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점을 감안해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박준병 피고인=법정태도와 범행의 가담경위, 피동적인 가담사실을 감안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박선화 기자〉
  • 악덕채무자 사회활동 제한/대법 민사집행법 추진

    ◎직권 파산선고… 공무원 임용금지 돈을 갖고도 빚을 갚지 않는 악덕 채무자는 정상적인 경제·사회활동을 하기 어렵게 된다. 대법원은 19일 소송과정에서 재산내역을 거짓으로 신고하거나 재산공개를 거부하고 자력으로 빚을 갚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채무자에 대해서는 직권으로 파산선고를 하도록 하는 내용의 가칭 「민사집행법안」을 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파산선고 즉시 본적지 시·군·구청에 파산선고자라는 사실을 통보한다.따라서 파산선고를 받은 채무자는 신원조회 과정에서 「추정 파산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국가공무원,후견인,유언집행자,변호사나 공인회계사,주식회사 이사,합명·합자회사 사원 등이 될 수 없다.〈관련기사 3면〉 대법원은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3월까지 최종안을 마련,7월 임시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대법원의 이러한 방침은 국민경제 규모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급증하는 각종 금전거래 사고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선의의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채무자가 재산을 숨긴 것으로 추정되면 법원이 해당 금융기관등에 명령,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조회토록 하고 결과를 채권자에게 알려준다.지금까지는 채권자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재산공개를 거부하거나 능력이 있는데도 1천만원 이하의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30일 이내의 구금에 처해진다. 1천만원 이하의 소액채권자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무자의 은닉재산을 찾아내면 우선적으로 채권액의 20%를 배당받도록 했다. 한편 대법원은 경매에 올려진 부동산에 전세권이 있는지 여부를 응찰인에게 미리 알려줘 안전하게 경매에 참여토록 하는 내용으로 민사소송법의 관련 조항을 대폭 개정키로 했다.〈박홍기 기자〉
  • 광진구/「일요 민원처리제」 전국 첫 실시(민선자치 1년)

    ◎12개 민원창구 통합… 전화·복사기 무료이용/「21세기 구정연구단」 발족 일등행정 견인역 광진구(구청장 정영섭·64)는 지난해 3월 성동구에서 분구한 인구 40만명의 신생 자치구다. 정청장을 비롯한 구 직원들이 「광진」이라는 새로운 자치틀 아래 지난 한해동안 가장 역점을 둔 일은 주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행정서비스제공이었다. 전국 최초로 일요일에도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행정에 직접 참여해 주민등록 등·초본 등의 민원서류를 발급하는 일요 민원처리제를 지난해 7월23일부터 실시했다.9월부터는 구청잘못으로 민원인에게 불편을 줄 경우 구청장이 직접 민원인에게 사과를 하고 소정액의 실비를 해당 민원인에게 보상해주는 민원처리 사무착오보상제를 도입했다. 또 지난해 7월12일부터는 불법주·정차단속실명제를 실시해 책임행정과 신뢰성을 높였다.9월부터는 세무민원실·주택과 등 시민생활과 밀접한 12개 부서의 민원창구를 통합 개방하고 무료전화기 4대,민원전용 무료복사기 1대도 설치,민원인의 민원처리를 돕고 있다. 이밖에 지난 1월부터는 서류가 복잡하고 처리기간이 오래 걸리는 민원을 간부공무원이 책임지고 해결해주는 민원후견인제를 실시했다.자양3동 동사무소 민원실을 주민위주로 대폭 개선한 것을 비롯,구청과 동사무소를 민원인위주로 공간을 재배치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는 동사무소에서만 발급하던 주민등록 등·초본을 구청에서도 발급하고 있다. 광진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그러나 이처럼 달라진 자치행정서비스에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고 있다. 구가 지난 5월27일부터 3일동안 1백61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직접 설문조사한 결과 주차단속과 건설공사에 대한 구 행정에 대해 57.1% 및 53.4%의 불만표시가 나오고 쓰레기처리문제도 48.5%의 불만도가 나왔다.구가 시행중인 아이디어보상제(12.4%),공사장 명예감독관제(12.4%),민원후견인제(11.8%) 등 각종 서비스제도도 주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민들은 이 때문에 바람직한 지자제정착을 위해서 행정절차를 간소화할 것을 제일 많이(37.3%)지적했다.그 다음으로 직원의 친절(31.1%),주민참여 및행정정보의 공개(28%)를 꼽아 민원처리를 보다 더 간소화하고 공무원들이 보다 더 친절할 것을 요구했다. 광진구는 지난 1월 전국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21세기 구정연구단」이라는 두뇌집단을 발족해 21세기 일등광진을 뒷받침할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민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이러한 불만을 민선구청장과 광진구 직원들이 어떻게 광진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이끌어내느냐가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성동구/쓰레기 분리·가로청소 기계화 “성공”(민선자치 1년)

    ◎행정서비스 개선위해 구청장­동장실 개방/재개발·재건축 따른 민원해결이 최대 과제 성동구(구청장 고재득)는 서울에서 가장 모범적인 자치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재득 구청장은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구민·구 직원들은 물론,서울시의 고위 간부들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1년의 성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각 구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쓰레기분리수거 및 가로청소문제의 효율적인 해결 구는 매일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일주일에 2∼3차례 재활용품을 걷는 다른 구에 비하면 획기적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분리,아무때나 집밖에 내놓으면 된다. 매일 수거에 따른 인력문제는 가로청소를 흡진차·살수차로 기계화함으로써 해결했다. 주유소에서도 재활용품을 걷도록 하는 한편,인근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왕십리길·천호대로 등 간선도로 주변을 청소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자원봉사 청소활동도 9차례나 실시해 5백80명의 구 공무원 및 주민들이 환경미화원의 고충을 체험토록 했다. 행정서비스 개선을 위해 구청장실과 동장실을 개방했다. 구청장실은 주민들과의 대화의 장으로,동장실은 주민들의 여가 선용공간으로 이용된다. 행정실명제·민원인후견인제·시민감사청구제·진정민원주민평가제 등을 통해 행정의 투명성과 주민들의 구정참여 기회를 확대했다. 최대 숙원사업인 구청사 부지를 성동구 행당동 국방부 창고 터로 확정,서울시에 공용의 청사부지로 용도변경을 요청한 것도 책임행정의 산물이다.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줄 최첨단 도서관은 98년 완공된다. 이는 동사무소와 문화시설이 공존하는 최초의 행정·문하센터로 주목받고 있다. 구정운영 3개년 계획을 세워 7대시책아래 39개 과제,3백44개 단위사업을 분야별로 추진하고 있다. 뚝섬 체육공원에 2002년 월드컵에 대비한 축구전용 돔경기장·컨벤션센터가 세워지면 세계속의 성동으로 그 위상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1년동안 구청에 접수된 민원은 8백79건,이 가운데 86.6%인 7백87건을 해결했다. 재개발사업 등 법령상 제약이 따르는 77건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재개발구역이 많은 구의 특성상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민원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주거개선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최대 과제. 43.6%로 열악한 재정자립도 역시 자치행정의 걸림돌이다.
  • 중구/주민 행정서비스 크게 개선(민선자치 1년)

    ◎전국 최대 규모 「구민 복지회관」 98년에 완공/풍치지구 조정·남산 1·2호터널 시 이관 과제 서울의 기초자치단체는 자치구인가,행정구인가.조순서울시장은 지난 1일 엄격한 의미에서 행정구라는 견해를 밝혔다.행정편의를 위해 나뉜 자치구들이 교통·환경 등의 분야에서 서로 다른 정책을 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그러나 민선자치 이후 서울의 25개 구청은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자치구로서의 위상을 한층 높여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민선자치 출범 1주년을 맞아 구청별로 자치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해 본다.〈편집자 주〉 중구(구청장 김동일)는 상주인구 14만5천6백46명으로 서울에서 가장 적지만 유동인구는 하루 3백50만명으로 전국 최다이다.때문에 인구수를 늘리고,유동인구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구정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행정서비스의 개선에선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우선 관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행자 안내표지판.산뜻하게 세운 이 표지판은 몽골 울란바토르시 서울거리에도 등장한다.서울시는 중구의 아이디어를 본떠 표지판을 세우기로 했다.「전입을 축하합니다」라는 구 안내코너도 신설했다.주민들에게 생활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한 것으로 6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전입 주민들에게 지역현황과 각종 복지시설 이용안내 및 교통망 등 생활정보를 제공한다. 오는 11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98년 완공되는 구민복지회관은 전국에서 가장 크다.신당동 구 한전 성동지점 터에 지하3층,지상 11층,연면적 8천여㎡규모로 짓는다.장애인 전용시설과 독서실·수영장·물리치료실 등 각종 복지시설이 들어선다. 이밖의 성과로는 ▲현장행정 ▲주민들이 공무원의 친절도를 평가하는 친절봉사 주민 평가제 ▲구청장과의 대화의 날(매주 금요일 하오3시) ▲행정실명제 ▲인터넷 중구홈페이지 개설 ▲민원인 후견인제 ▲각종 오염행위를 신고하는 환경신문고 설치 ▲민원인수신용 전화 삐삐콜 설치 등이 있다.또 서소문공원 지하에 자원재활용 처리장 건설공사를 지난달 24일 착공했다.관내에서 배출되는 모든 쓰레기를 압축,부피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시설이다. 오는16일에는 「중구 장기발전 연구」에 대한 발표회를 갖는다.2005년까지 관내 인구를 20만명으로 늘리고 인간이 살 수 있는 도심공간을 만든다는 장기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행정서비스 개선성과에도 불구하고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예장동과 장충동 일대 풍치지구 재조정,남산고도제한 완화,매연차량 도심진입금지,재개발구역내 세입자 대책문제 등이 지지부진했다.오히려 자치구청의 권한에서 넘어선 것에 대해 성급하게 해결을 약속,주민들의 기대심리만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지방방범대원 운영비및 국보1호인 남대문과 남산 1·2호터널 관리를 시로 이관하는 것 또한 장기과제이다.〈강동형 기자〉
  • “행정도 국가경쟁력의 중요 요소”/노장탁(공직자의 소리)

    ◎「민원행정 세계화」에 지자체 적극 협조를 지난 3월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한국 삼성전자의 현지공장 기공식이었다.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지 텔리비전이 생중계를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시청이 토지·건물 등의 재산세를 10년간 반으로 감면해 주고 폐수처리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내용도 보도됐다.시민 1천명의 일자리를 마련해 준데 대한 배려인 셈이었지만 미국적 민원 행정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공장 하나가 들어서면 지역개발 헌금·체육성금 등 손을 내미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부러운 장면이었다. 물론 우리도 문민정부 들어서 공무원들의 친절봉사 자세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민원절차가 간소화되는 등 민원행정이 쇄신된 것이 사실이다.특히 민선자치단체 출범 이후 기관장실을 개방하고 현장방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직도 민원처리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데 불만이 많다.정부도 민원행정이 더 많이 개선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해민원행정의 근본정신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우선 민원인의 입장에서 민원을 처리할 방침이다.민원처리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첨부서류가 있을 경우 지금까지는 민원인이 일일이 찾아다니야 했지만 앞으로는 주민등록등·초본 등 지방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컴퓨터 단말기의 확인으로 대체하는 등 민원 접수기관에서 최대한 보완하게 된다.이는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라」는 수혜자 부담원칙에서 「국민(고객) 제일주의」를 지향하는 실질적인 서비스행정주의로 정부의 행정목표가 방향을 선회한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행정도 세계화가 돼야 한다.국무총리 자문기구인 세계화추진회의가 중점 추진과제로 「민원의 세계화」를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와 관련,우리 내무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각 부처에서 민원행정을 위해 협조할 「10대 민원행정 쇄신방안」을 마련했다.그 내용은 ①첨부서류의 획기적인 감축 ②시·도별 고충처리기구 설치 ③민원 후견인제도 활성화 ④팩스발급민원의 확대 ⑤민원행정 실명제확립 ⑥효율적인 민원실 운영 ⑦민원봉사 대상제 운영 ⑧기관별 민원인 평가제 실시 ⑨민원모니터제도 도입 ⑩민원행정 세계화 시범기관 운영 등이다. 행정도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지난 날의 구태를 못벗어 국가경쟁력을 상실한다면 세계화에서 낙오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내무부 주민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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