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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박좌장, ‘검은돈’ 의혹 하루만에 “탈당”… 또 ‘꼬리자르기’?

    친박좌장, ‘검은돈’ 의혹 하루만에 “탈당”… 또 ‘꼬리자르기’?

    18일 홍사덕(69) 전 의원이 전격적으로 새누리당을 자진 탈당했지만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홍 전 의원은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인 데다 두 차례에 걸쳐 경선 캠프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박근혜 대선 후보의 정치적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홍 전 의원은 탈당을 통해 더 이상의 사태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스스로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홍 전 의원은 “큰일을 앞둔 당과 후보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자진 탈당한다.”고 밝혔다. 사실과 관계없이 혐의만으로도 박 후보와 당에 미치는 타격이 큰 데다 야당의 집중 공세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도 홍 전 의원의 ‘개인 비리 의혹’으로 몰아가면서 박 후보에게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에 따른 당의 조치도 홍 전 의원에게 빠른 판단을 내리게 했다는 분석이다. ‘억울하다’고 자진 탈당을 미뤘다가 떠밀리듯이 출당을 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홍 전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해 깔끔하게 정리하겠다는 뜻을 알려 왔다.”면서 “박 후보와 이 문제를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로 박 후보의 정치쇄신 개혁 이미지와 대통합 행보도 상당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전격 영입해 측근 비리 근절 의지를 내보였지만 측근들의 연이은 ‘검은 돈’ 유착 의혹으로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그동안 측근 비리 근절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박 후보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 역시 홍 전 의원의 돌발 악재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친박계 인사는 “홍 전 의원이 탈당한 상황에서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홍 전 의원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6선의 홍 전 의원은 그동안 돈 문제에 관해서 매우 담백했다.”면서 “선관위가 검찰에 비공개로 수사 의뢰를 하지 않고 사실상 혐의 사실을 공표한 것은 다른 속내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캠프 관계자는 “당사자 간 말이 너무 엇갈리는데 선관위가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진 직후 홍 전 의원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한 인사는 “(홍 전 의원이) ‘내가 그렇게 안 살았는데’라며 헛웃음을 짓더라.”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 고발에 앞서 관련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언주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박 후보가 또다시 꼬리 자르기, 유체이탈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총선 시기에 문대성, 김형태 의원 탈당부터 현 의원과 현 전 의원, 정준길 전 공보위원까지 꼬리 자르고, 함구하고, 도망가기에 바쁘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박 후보는 본인 주변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비리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경두·장세훈·황비웅기자 golders@seoul.co.kr
  • 그녀의 살인은 처절한 모성애?

    영국인 사업가 살해 혐의로 기소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재판이 지난 9일 단 7시간여 만에 초스피드로 끝났지만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는 등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례적으로 중국 관영언론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개하고 있는 사건 전말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확인되지 않은 뒷소문까지 무성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구카이라이 재판 종료 다음 날인 지난 10일 밤 재판 당시 구카이라이의 진술과 검찰의 기소 내용을 토대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살해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통신이 구카이라이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건의 핵심은 광기어린 닐 헤이우드의 협박과 헤이우드로부터 아들 보과과(薄瓜瓜)를 지켜내기 위한 모성애로 압축된다. 사건의 발단은 의외로 단순했다. 구카이라이는 중국의 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아들의 후견인이었던 헤이우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소개해 줬는데 공교롭게 사업이 불발되면서 이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헤이우드는 사업이 무산되자 당초 약속된 수익의 10%인 1300만 파운드(약 230억원)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돈을 받지 못한 헤이우드는 급기야 보과과에게 신변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에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재판에서는 헤이우드와 보과과가 이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주고받은 이메일이 관련 증거로 제시됐다. 헤이우드의 마지막 이메일 협박 일은 2011년 11월 10일이다. 구카이라이는 법정에서 “내가 보기에 그것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헤이우드의 광기를 죽기 살기로 막아야만 했다.”고 호소했다. 또 지난 2005년쯤 이메일로 보과과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헤이우드가 먼저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알게 됐다며 헤이우드가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마지막 이메일을 받은 직후인 지난해 11월 12일 구카이라이는 집사 장샤오쥔(張曉軍)을 시켜 베이징에 있던 헤이우드를 충칭으로 데려왔다. 이튿날 두 사람은 헤이우드가 묵고 있던 충칭의 난산리징(南山麗晶)홀리데이 호텔 1605실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헤이우드가 만취해 쓰러지자 구카이라이는 장샤오쥔을 시켜 헤이우드를 침대에 눕힌 뒤 청산가리를 탄 물을 그의 입에 들이부었다. 헤이우드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11월 15일. 사건을 보고받은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은 오른팔 격인 궈웨이궈(郭衛國) 공안부국장 등에게 수사를 맡겼고, 이들은 구카이라이의 연루 가능성을 파악하고도 사건을 덮기로 했다. 사건은 과도한 음주에 따른 급사로 종결됐다. 시신은 부검 없이 화장됐다. 궈 부국장 등은 공판에서 이 같은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한편 영국 텔레그래프는 구카이라이의 변호사가 재판에서 제3의 인물이 헤이우드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혈액 샘플에서 나온 청산가리는 치사량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범행 직후 제3자가 호텔방에 침입, 헤이우드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로 인해 헤이우드가 오래전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12일 헤이우드 보디가드의 말을 인용,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와 영국 본머스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던 시절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 3명으로부터 암살당할 뻔했다고 보도했다. 2005년 처음 만났다는 중국 당국의 발표와 달리 이들이 2001년 이전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런 사실이 들통나 중국 측 요원들로부터 살해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세습·체제 비판 말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후견인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에게 체제 비판을 자제하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장 부위원장이 2개월 전 일시 귀국한 김정남에게 외국 매체에 세습 비판 등의 발언을 삼가도록 충고했다고 전했다. 장 부위원장은 김정남에게 특히 권력 세습과 조선인민군 등 체제의 근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발언하지 말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소식통은 장 부위원장이 김정남에게 이런 충고를 한 것은 김정남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뒤 행방이 묘연했던 김정남은 지난 4월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한국의 한 사업가에 의해 포착됐지만 주로 마카오에서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 본토에 체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민주, 朴 출정식 맞춰 정수장학회 파상공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10일 민주통합당은 박 전 위원장이 이사장을 지낸 정수장학회를 집중 파고들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민초넷’이 주최한 ‘박근혜 의원과 정수장학회’ 주제 강연에 참석해 “정수장학회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설립자에게서 강압으로 빼앗아 만든 장학회다. 박 의원은 사회 환원으로 명확히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특강에는 박지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 100여명이 총출동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강연에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유신 시절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린 딸을 보호하기 위해 후견인 격으로 붙여놓은 자”라고 주장했다. 부산일보 기자 출신 배재정 의원, MBC 기자 출신 신경민 의원 등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이 고(故) 김지태 사장으로부터 MBC, 부산일보 주식을 강제 헌납받았다.”면서 “박 전 위원장은 10년 동안 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앉히고는 소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수장학회의 강제헌납 판결,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국가권력을 동원해 이뤄진 인권과 재산권 침해 등에 대한 박 전 위원장의 답변을 촉구한 뒤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민주당은 이날 ‘부일장학회 강탈의 역사’ 관련 사진 20여점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 전시하려 했지만 국회 사무처가 정치적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이례적인 불허 방침을 내려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성호 대변인은 박 전 위원장의 출마선언문과 관련, “반성·개혁·소통·비전이 없는 공허한 허무주의 추대 리허설이다. 슬로건인 ‘내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박근혜 대통령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평일 오전 출정식을 한 데 대해 “방학 중에도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 뛰고, 학원에 가 있는 현실을 ‘유신공주’는 모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씨줄날줄] 부모 역할/주병철 논설위원

    우리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부모는 자식이 못나도 끊임없이 사랑하지만, 자식은 그러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치사랑이 없는 건 아니다. 어느 노()배우가 종교 방송에 나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낼 때 정말 냄새가 구수했다.”며 울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어머니가 저를 낳아 대소변을 받아낼 때 너무 구수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잘하는 걸까. 한도 끝도 없는 얘기지만 1962년 미국 심리학자 토머스 고든이 개발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7명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부모를 위한 훈련프로그램인 ‘효과적인 부모 역할 훈련’이 해답의 출구가 될지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은 책으로도 나왔는데, 고든은 ‘부모 역할 대화법’이라는 주제를 통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하나가 되기보다 ‘함께’하라. 적극적인 듣기로 말문을 열어라.” 등을 제시했다. 옛 성현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황은 ‘퇴계집’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개 집안의 자식은 부모가 미리 가르치고 억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방자하게 되고, 이어 끝없이 방자하다가 혹 어미를 꾸짖는 데까지 이르나, 이것은 자식도 물론 자식의 도리를 못한 것이지만 자식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부모 또한 잘못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철학’에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주로 그것이 다른 어떤 애정보다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한테 부모가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불행한 때이다. 이를테면 병에 걸렸 때 같은. 만일 올바른 부모라면 자식이 죄에 빠졌을 때도 그러하다.” 얼마 전 정부가 지적 능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퇴직교사, 사회복지사, 법무사, 변호사 등을 이들의 성년후견인으로 위촉해 ‘부모 역할’을 대신해 주는 제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발달장애 성인을 대상으로 국가가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전국적으로 18만 3000명가량인데, 10명 중 9명은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후견인들이 정말 친(親)부모처럼 역할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 정부는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이들의 자립에 필요한 대책 등을 더 챙기고, 후견인제 악용 사례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겠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변호사 등이 후견인 맡아 ‘부모 역할’

    정부가 확정한 ‘발달장애인 지원계획’은 발달장애인의 장애 특성에 맞췄다. 발달장애인은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장애인의 91.5%는 혼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68.4%에 불과하다. 세수·머리빗기·양치질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은 74.1%, 자폐성장애인은 54.1% 정도다. ●후견인 양성 교육과정도 개발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은 학대나 성폭력, 인신매매 등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발달장애인의 47.3%, 자폐성 장애의 65.9%가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상황이다. 정부가 내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성년후견인제는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한 조치다. 법적 후견인을 두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한 부모는 “성년후견인제가 제대로 운영되면 부모가 없어도 아이가 소외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성년후견인제의 정착 여부는 재원에 달렸다. 발달장애인의 54%는 장애인연금이나 장애수당을 받는 등 형편이 열악하다. 성년후견인제가 생겨도 비용 탓에 활용할 장애인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정부는 취약 계층에 대해 성년후견인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성년후견인의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실비 수준의 비용을 줄 방침이다. 성년후견인인 퇴직교사, 사회복지사, 법무사, 변호사 등이 위촉될 가능성이 크다. 발달장애인들의 실종을 예방하기 위해 관리 대상을 기존 아동 중심에서 성인까지 확대한다. 발달장애인의 신체적 특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다 무연고 발달장애인 보호센터도 늘리기로 했다. 현재 17곳뿐인 전국의 장애인 일시보호센터를 내년까지 시도별로 2곳 이상 확보할 계획이다. 경찰청, 해양경찰청, 복지부가 함께 1년에 두 차례 이상 정기적으로 도서·염전·선박 등을 수색·점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약취 및 인신매매를 근절하기로 했다. ●의심 영유아에 진단비 지원 검토 발달장애에 대한 정부의 ‘조기 개입’도 강화된다. 영유아의 발달장애를 판정할 정밀 진단도구를 개발하기로 했다. 발달장애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경우 언어능력이나 문제행동 등이 크게 완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조기에 발달장애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립서울병원이 발달장애 관련 연구를 담당하도록 하고 치료실을 설치토록 했다. 장기적으로는 인천·부산·강원·광주·대전·제주 등 6곳의 권역별 재활병원을 발달장애아동 재활치료 거점병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중증 장애아동 돌봄 서비스와 관련, 본인 부담금을 차등화하는 한편 현재 일일 2시간, 월 최대 62시간인 돌봄 서비스 시간을 성인 수준인 월 최대 103시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의 자립에 필수적인 취업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반쪽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선안은 고용 유지를 위해 현재 3~7주인 직무지도원을 3개월까지 배치, 보충적인 소득보장을 위한 연금 및 신탁상품 출시 유인, 보호고용 확대 등 포괄적인 내용만 적시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발달장애인 지원’ 정부 팔 걷는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돌봄 및 진료, 권리 보호를 위한 지원이 한층 강화된다. 또 내년 7월부터 ‘성년후견인제’를 도입, 발달장애인의 금전관리·의료행위·거주지 결정 등 중요한 사안을 돕도록 했다.<서울신문 7월 7일 자 1·8·9면 참조> 보건복지부는 8일 ‘발달장애인 지원종합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발달장애는 지적인 능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장애로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일컫는다. 현재 등록된 발달장애인은 지난해 말 현재 18만 3000명이다. 복지부 측은 “전체 장애인을 위한 고용촉진, 특수교육, 차별 금지 및 장애인연금, 활동지원제도 도입 등의 정책을 제도화한 데 이어 발달장애 유형별로 맞춤형 지원체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호체계나 지원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성년후견인제는 말 그대로 성인 발달장애인 법적 돌보미다. 정부는 성년후견인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양성교육과정을 마련하는 한편 활동비도 지원할 방침이다. 또 발달장애 발견 및 치료를 위한 진료체계도 갖추기로 했다. 현재 전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유아건강검진(K-ASQ) 결과, 발달장애 의심 대상에 대해 정밀진단도구를 개발하고, 진단비 지원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전국 가구평균소득 100% 이하(4인 가구 월 438만 7000원)인 가구에게만 지원하는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의 대상도 단계적으로 넓힐 계획이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장애인활동 지원서비스도 확충하기로 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는 1급 장애인만 신청가능하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와 관련, “발달장애인은 가장 취약한 처지의 사람들로 국가가 특별히 보살피고 지원해야 할 대상”이라면서 “종합계획이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각 부처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아동학대 범죄자 10년간 취업제한 추진

    정부와 새누리당은 4일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관련법들을 제정하고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아동학대 방지 및 권리보장 특별위원회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당정간담회를 갖고 아동기본법과 아동학대 사건처리 특례법 등을 제정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동학대에 더욱 실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아동기본법에서 아동의 권리 보호 및 학대를 예방하는 원칙을 명시하고, 아동학대 사건처리 특례법 등을 통해 사법적 절차 등 사후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날 대응책을 제시한 각 정부부처에서는 아동보호시설 아동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한목소리로 내놨다. 법무부는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아동보호시설 종사자일 경우 가중처벌하고 곧바로 피해아동과 분리, 후견인 변경 등의 보호처분을 병행할 것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도 아동학대범죄로 형 또는 보호처분 선고를 받은 사람은 10년 동안 아동관련 기관 운영이나 취업 등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 밖에도 학대 피해아동에 대한 비밀 전학조치, 출석인정 근거 마련을 통해 가해자의 접근이 차단되도록 하고 학대피해로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할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을 우선 지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 부모교육 참여를 위한 근거도 마련할 전망이다. 아동특위는 오는 18일 정책토론회를 거친 뒤 다음 달 22일 법률안 검토 회의를 갖는 등 본격적인 입법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안홍준 위원장은 “그동안 학교 폭력에 사회적 관심이 맞춰졌지만 아동학대도 심각한 수준으로 시급한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면서 “각 부처 간 논의를 통해 아동기본법과 특례법 제정을 통해 실질적인 아동 보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5년간 숲에 살았다. 난 누구?” 도움 청한 미스터리 소년

    “5년간 숲에 살았다. 난 누구?” 도움 청한 미스터리 소년

    자신이 어디에 살던 누군지 모르지만 지난 5년간 숲 속에 살았다고 주장하며 9개월 전 독일 베를린 시청에 도움을 청한 소년의 사진을 시 경찰 당국이 12일 공개하며 신원 확인에 대한 협력을 호소하고 있다. 현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진 속 소년은 금발에 티셔츠를 입고 알파벳 ‘디(D)’라고 새겨진 펜던트가 달린 금목걸이를 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연령은 16~20세 사이로 추정되며 푸른눈을 가진 백인 소년으로, 몸가짐은 단정하고 스포츠 선수처럼 좋은 체격을 갖고 있다. 이 소년은 지난해 9월 5일 베를린 시청에 나타나 자신의 이름은 “레이(Ray)이며 1994년 6월 20일 출생이라는 것밖에 모른다.”고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다. 소년은 영어를 사용하며 독일어는 거의 알지 못한다고 알려졌다. 당시 소년은 텐트와 침낭, 그리고 새것과 다름없는 배낭을 갖고 있었으며 깨끗한 의복 차림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소년은 젊은이를 위한 긴급 시설에 보내져 모험같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기억 상실인지 아니면 말하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는 불분명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성과 출생지 등의 신상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소년은 지난해 8월 아버지가 급사했으며 그때까지 두 사람이 약 5년간 함께 숲에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숲속에서 바위 밑을 파 구멍을 만들었다.”면서 “스스로 아버지를 매장한 뒤 5일간 북쪽을 향해 걸어왔다.”고 말하며 베를린에 도착하게 된 사연을 밝혔다. 그는 아버지의 사인과 시신을 매장한 장소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해 경찰이 수색하고 있지만 해당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 ‘도린(Doreen)’이란 이름으로 자신이 12살때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이 사고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보고 이 사고로 입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를린 경찰은 독일어와 영어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광범위한 조사와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지만 보호 기관과 경찰 측도 ‘레이’라고 자칭하는 소년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사진을 보고 신원을 아는 사람은 연락을 달라며 제보를 당부했다. 한편 소년은 베를린 소년 보호시설에 잠시 머문 뒤 생활 보호시설로 옮겨져 법정 후견인이 지명되는 절차를 밟고 있지만 보호 기관이나 베를린 경찰 측도 소년의 이야기에 큰 의심을 품고 있으며 이번 사진을 공개해 널리 지원을 요청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베를린 경찰 배포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문화마당] 학생들의 학교/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학생들의 학교/주원규 소설가

    이 칼럼의 제목은 상식적이다. 너무 당연해서 싱거운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마땅히 학교는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학생이란 구성원이 없다면 학교의 존재 이유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행정관계자들, 학교 재단 등등. 그 모든 구성원들 역시 학생이란 구성원을 배제하고선 존립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당연히 학교는 학생들의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에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없다 보니 선생님의 존재감도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다. 이 무슨 말인가. 베이비 붐 세대가 지나고 핵가족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를 말하는 건가. 그게 아니다. 여전히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사 한 명 대비 학생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인구의 급감 때문에 학교에 학생이 없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학생이 없다는 필자의 주장은 유효할뿐더러 심각하기까지 하다. 학교에 학생이 없다는 것, 이 말은 학생다운 학생이 부재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은 공부를 하고자 학교에 간다. 그런데 오늘, 이들의 공부가 수상하다. 자고로 공부란 사회와 공동체 일원으로 편입되는 데 필요한 도덕적, 가치발전적 덕목을 배양하는 데 본래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학교에선 본래의 공부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먼 나라 이야기처럼 데면데면 받아들이고 있다. 그 대신 현실이 지배하는 학교 공부는 초등학교에선 선행학습, 중·고등학교는 내신과 입시, 대학교에선 스펙쌓기로 집약된다. 이 집약된 핵심가치의 위세 아래 공부의 본래 목적은 들러리로 전락하고 만다. 학교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치 구현에 교육의 모든 가치를 쏟아붓는다. 교사의 가치와 학생의 인성 기준까지 죄다 이 핵심 가치의 잣대로 평가하는 걸 학교의 성공 여부로 판단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학교의 존재 이유인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극심한 소외를 경험한다. 어째서 소외인가. 학교, 교육 현실, 학부모, 교사가 더는 학생을 학생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피부로 느끼는 서러운 실감이기에 점점 표류한다. 학생으로서의 본분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또 하나의 소외가 덧씌워진다. 바로 학생들로 하여금 소외의 정서를 조장한 기성세대의 인식, 소위 학교문제에 대한 대증적 접근이 그것이다. 최근 불거진 대표적 학교문제인 왕따, 학교폭력, 성과위주의 교육, 그로 인한 자포자기와 자살 등등. 입에 담기도 힘겨운 문제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은 그야말로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해도 정신력이 부족하다느니,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식으로 문제의 원인을 학생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그도 아니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거나. 그런데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낸 구성원이 누군가. 학생들인가. 아니다. 오늘의 기성세대, 학생들의 후견인임을 자임하는 우리 모두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학교에 학생들이 돌아오게 하는 것, 그 해결의 열쇠를 학생들에게서만 찾으려 하면 안 된다. 경쟁과 폭력의 논리가 학교 안에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는 오늘의 학교, 이 비정상적 틀을 해체해야 하는 건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누군가 먼저 나서서 경쟁과 줄세우기의 가치를 학교로부터 몰아내는 해체의 집념이 필요하다. 그것이 학생들의 학교를 만드는 유일한 회복의 길이라고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최근 제도권 교육에 벽을 느낀 학생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학교를 만든 일이 생겨났다. 그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다. 혹자들은 그들이 제도권 교육을 전면 부정하는 급진적 생각을 하고 있다며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학생이길 원하는 질문 하나만큼은 잃지 않았다고 본다. 진짜 학생이길 원하는 그들은 진짜 선생님과 진짜 학부모를 찾고 있다. 그들인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진짜 학생, 선생, 그리고 부모인가. 이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이다.
  • [옴부즈맨 칼럼] 옴부즈맨 제도가 활성화되려면…/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국민대 겸임교수

    [옴부즈맨 칼럼] 옴부즈맨 제도가 활성화되려면…/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국민대 겸임교수

    서울신문은 ‘옴부즈맨 칼럼’을 운영해 오고 있다. 각 신문이 한때 유행처럼 유사 칼럼난을 마련했다가 슬며시 없앤 것과 달리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비판자의 시각에서 서울신문을 분석·평가하고 좋은 신문을 만들고자” 십분 활용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의견 개진의 멍석은 깔아놓았지만, 효과 측면에선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옴부즈맨(ombudsman)의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자. 옴부즈맨은 스웨덴어로 ‘대리자·후견인·대표자’를 뜻하고,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민정관(民情官)·호민관(護民官)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옴부즈맨 제도는 행정부에선 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행정 감찰관제도였다. 행정기관에 의해 침해받는 각종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신속·공정하게 조사·처리해 주는 보충적 국민권리 구제제도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는 독자와 시청자의 불평불만을 조사하고 오보 여부를 밝혀내는 것으로 운영된다. 거슬러 올라가 올 상반기에 옴부즈맨 칼럼에서 지적되었던 몇 가지 주요 제안에 대해 살펴보자. ‘생활 이슈를 찾아내는 눈’(5월 16일 자)에선 “일반인의 처지에서 신문의 효용성은 거창한 정책 비판이나 복잡한 이슈 탐사와 같이 부담이 느껴지는 ‘감시’나 ‘고발’보다는 내 생활 속 문제들을 다시 한번 살펴봐 주고 해법을 찾아 주는 생활형 기사들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라며 생활형 옴부즈맨 스타일 기사의 확대 바람을 표한 바 있다. ‘중국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5월 9일 자)에선 ‘뉴스프레임 효과’는 사건의 특정 측면을 강조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재현되는 현실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고 호의적으로 보이거나 비호의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후, 중국 관련 기사의 편향적 시각 탈피를 주문하고 있다. ‘언론사 파업을 바라보는 신문의 시선’(3월 28일 자)에선 “신문은 방송언론의 파업사태에 대해 심층적인 보도로 파업의 의미를 제대로 알릴 것”을 주문하고, “국내 주요 언론사들이 무슨 이유로 파업하고 있으며, 이들이 방송스튜디오가 아닌 거리에서 마이크가 아닌 깃발을 들고 무엇을 부르짖고 있는지 신문이 바라보는 시각을 표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좋은 제안과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처럼 ‘넘치는 제안’들이 얼마나 지면에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이런 지적이 있은 후에 생활기사가 지면에서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 같지 않다. 사상초유의 장기파업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방송사 파업 원인과 영향에 대한 심층기사를 보지 못했다. 또한, 중국의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시각의 분석과 조망 기사가 더 늘어나지도 않았다. 신문사 외부 필진인 옴부즈맨들의 ‘이상주의적 시각’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제안과 바람’에 대한 견해, 지면에 반영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한 피드백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직 커뮤니케이션에서 필요한 것은 소통의 멍석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피드백이다. 의견 개진만 있고, 반응과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의욕과 참여도는 떨어진다. 메아리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올해 나온 이야기와 작년에 나온 이야기의 중복건수는 혁신지수와 반비례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년 제안건수가 재탕 삼탕된다는 것은 그만큼 변화는 없이 오로지 ‘NATO’(No Action Talk Only)만 되풀이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옴부즈맨 칼럼의 제안이 얼마나 반영되는지 한번 검증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생각된다. 옴부즈맨 칼럼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려면 적어도 분기 내지는 6개월 단위로라도 본란에서 지적된 여러 가지 사안을 정리하고, 지면 반영 의지와 변화를 알려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 이유를 지면에 밝히는 것도 방법이다. 변화가 어려운 것은 아이디어나 제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행력이 부족해서다.
  • 부산시 “사업성 낮은 재개발 43곳 해제”

    부산지역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가운데 사업성이 떨어지는 43곳에 대해 구역지정 해제가 추진된다. 부산시는 재개발구역 가운데 용역결과 사업성이 떨어지는 서구 서대신4 구역 등 43곳에 대해 내년까지 모두 정비구역을 해제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대신 지역 여건에 맞는 휴먼주택 또는 소규모 단위의 가로주택정비 등 재생사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시는 이와 함께 최근 재개발·재건축 사업시행 인가 후 장기간 답보상태에 있는 51곳 사업장 가운데 37곳에 대한 사업시행자인 20개 건설회사에 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협조공문을 보냈다. 시는 또 사업추진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없애기 위해 정비구역별 맞춤형 현장자문단 구성 및 사업장별 간부공무원 후견인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시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예정지로 지정된 271곳 가운데 공사를 마친 구역은 19곳, 착공된 구역은 15곳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미추진 상태로 방치된 구역도 84곳에 달한다. 이처럼 사업추진이 부진한 것은 계속된 부동산경기 침체 등이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부분의 재개발 사업이 표류하면서 재산권행사 제한이나 도심 노후화와 슬럼화로 빈집과 폐가가 속출하는 등 주민 불편과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정비구역 해제를 위해서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용역비 부담을 비롯해 이미 투입된 비용의 정산 문제 등이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의 한 재개발지구 주민은 “재개발 추진위 해체를 원하지만, 각 시공사가 이미 투입한 차입금과 각종 비용 정산 문제 등으로 구역해제나 조합 해산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사업 자체가 민간주도 형식으로 진행돼 계획적이고 일사불란한 추진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해 주민갈등을 최소화하고 원활한 정비사업이 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쏟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파이시티 로비 파문] 또 들어맞은 ‘權不五年’

    “이번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黑點)이라도 남겨선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인척 측근 비리를 경계하며 정권의 도덕성을 강조한 발언인데, 실질적인 임기를 8개월 남겨둔 지금은 일부 ‘흑점’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 정권 전체가 흔들리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열흘 붉은 꽃 없고, ‘권불오년’(權不五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임기말 대형 게이트가 줄줄이 터졌던 전 정권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원로 개국공신인 6인회(이명박, 최시중, 이상득, 박희태, 이재오, 김덕룡) 멤버들의 잇따른 몰락이 대표적이다. ●現정권 레임덕 가속화 특히 이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6인회의 핵심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무너진 것은 이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에 마지막 결정타가 됐다. 이 대통령과 동향(경북 포항)으로, 형인 이상득 의원의 친구이기도 한 최 전 위원장은 4년 임기 내내 ‘킹 메이커’답게 종합편성채널(종편) 선정 등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결국 이번엔 대선 때 부동산개발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권력무상’을 실감하고 있다. ‘영일대군’, ‘상왕’(上王)으로 불리며,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이상득 의원은 2009년 8월엔 정치 불개입을 선언하고 자원외교에만 전념하기 위해 주로 외유에 치중했다. 이후에도 프라임저축은행 사태, SLS 정관계 로비 등에 대한 연루설이 끊이지 않던 그는 지난해 12월 최측근 보좌관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파이시티 브로커인 이동율씨의 비망록에도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최 전 위원장에 이어 이 의원까지 연루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메가톤급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상득’ 확인땐 메가톤급 파문 앞서 6선 의원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08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재오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 떨어져 미국에서 1년간 ‘외유’ 생활을 한 뒤 귀국해 특임장관을 지내며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했고 19대 총선에서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역시 비박(非朴)연대를 모색하고는 있지만 ‘비주류’로 이미 전락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일상생활 차별의 벽 여전히 높아

    A씨는 뇌병변 및 언어장애를 가진 아내 명의로 장애인 자립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이를 위해 미리 대출승인도 받아 놨고 보증인도 구해 놨다. 하지만 은행의 대출담당자는 A씨의 아내가 한정치산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후견인이 선임되지 않으면 대출을 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B씨는 여행을 가려고 여행자보험에 들려 했지만 보험사로부터 거절당했다. 보험사는 B씨를 보험에 가입시킬 수 없다고 버티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를 받고서야 가입을 허가했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인권위는 장애인차별 사례를 공개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취업은 물론 수영장 이용과 보험가입, 대출 등 일상생활에서의 차별은 여전했다. 자폐성 1급 장애를 가진 C군은 청소년수련관에서 운영하는 수영강습에 참가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C군의 가족이 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수련원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그제서야 장애인 수영강습 시설을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 직장에서의 차별도 여전했다. 지체장애 5급인 D씨는 2008년 문제직원 재교육 프로그램인 현장시정지원단에 강제로 참여해 국토도보순례와 농촌일손돕기 작업을 해야만 했다. 한 기업은 양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용한 뒤 그가 수행할 수 없는 수납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생활에서의 차별뿐 아니라 장애인시설에서 벌어지는 폭행과 구금, 갈취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 장애인시설 사무국장은 보호 중인 지적장애인을 35차례나 때렸는가 하면 또 다른 장애인시설은 매달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50만원의 지원금을 갈취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인권위는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차별 문제로 진정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 시행 전인 2001년 11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장애 관련 진정은 653건에 불과했으나 법이 시행된 2008년 5월부터 현재까지의 진정 건수는 3818건이나 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차별금지법 이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면서 “특히 일부 장애인시설에서 폭행과 갈취가 계속되고 있어 문제”라고 전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5) 이규보와 유승단

    [선택! 역사를 갈랐다] (5) 이규보와 유승단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이(崔怡·최우의 다른 이름;?~1249)는 1232년(고종19) 6월 마침내 200년 도읍지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하기로 결정한다. 강화도는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거리지만,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세계 최강 몽골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군사·지리적인 이점에다 바닷길을 통해 개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개경으로 운반되는 지방의 조세와 공물을 바로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이점까지 갖추고 있었다. 몽골군의 세찬 공격을 완전하게 막을 수 없지만, 그런대로 버티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천도의 노림수 전쟁은 군사력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고 권력자 최이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강화도를 거점으로 몽골군의 공세를 버티면서, 이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끄는 것이 우선 필요했다. 그 사이 고려 왕조의 장기인 외교력을 발휘하여 아직 몽골에 항복하지 않은 송나라, 금나라,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력외교를 통해 반몽골 전선을 형성하여 몽골의 야욕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몽골군이 처음 침입한 것은 천도 한 해 전인 1231년 8월이다. 압록강을 건넌 몽골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석달 만인 11월에 수도 개경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된다. 고려정부는 항복을 요청하고, 몽골군은 1232년 1월 압록강에서 개경에 이르는 40여 성에 72명의 몽골인 감독관 다루가치를 설치하고 거란, 여진 등의 이민족으로 구성된 탐마치군(探馬赤軍)을 주둔시키는 조건으로 철군한다. 그러나 철군 이후가 더 고통스러웠다. 철군 직후 몽골은 고려정부에 말 1만~2만 마리의 가격에 해당하는 금·은·동 등의 물품, 100만 대군의 군복, 대마 1만 마리, 소마 1만 마리, 고위 관료의 아들과 딸 각 1000명을 요구했다. 요구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라 재정은 거덜날 것이 뻔했다. 요구를 거부할 정도로 군사력도 강하지 않았다.몽골의 거센 물자 요구와 군사공세를 회피하는 데 수도 천도야 말로 가장 적절한 카드가 아니었을까? 몽골군을 압도할 수 없는 취약한 군사력은 천도 외의 다른 수단을 선택할 여지를 그만큼 줄여 버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민심은 천도에 반대했다 몽골군이 1232년 1월 11일 철군하자, 2월 20일 고려정부는 수도 천도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이해 6월 최고 권력자 최이는 고위 관료들의 회의체인 재추회의에서 천도 논의를 공론화한다. 천도를 추인받기 위한 형식적 절차였지만, 반대론이 예상 외로 거셌다. 반대론의 선봉자는 유승단(兪升旦;?~1232)이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 섬김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로써 섬기고 믿음으로써 사귀면, 저들은 무슨 명분으로 매양 우리를 괴롭히겠습니까? 성곽을 버리고 종묘와 사직을 돌보지 않은 채 섬으로 도망하여 구차스럽게 세월을 끄는 동안, 변방의 백성과 장정들은 적의 칼날에 다 죽고 노약자들은 노예와 포로가 될 것이니, 천도는 국가의 장구한 계책이 아닙니다.“(‘고려사’ 유승단 열전) 당시의 민심도 천도에 대해 냉담했다. 당시 역사가는 그때의 민심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때 국가가 태평한 지 이미 오래되어 개경은 10만호나 되었고, 단청한 좋은 집들이 즐비하였으며, 사람들도 자신의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천도를 곤란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이를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다.”(‘고려사절요’ 권18 고종 19년 6월조) 강압적인 최씨 정권에 맞설 수 없어 반대론은 다만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에 주눅들지 않고, 유승단은 당당하게 반대론을 제기했다. 반면에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최씨 정권의 천도에 적극 찬성했다. “도읍을 옮기는 일은 하늘로 오르기만큼 어려운 일, 마치 공을 굴리듯 하루아침에 옮겨왔네. 천도 계획을 서두르지 않았으면, 우리 삼한은 이미 오랑캐의 땅이 되었을 것일세. 쇠로 만든 듯이 크고 단단한 성과 그 주위를 둘러싼 물결, 그 공력을 비교하자면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천만의 오랑캐 기마병이 새처럼 날아온다 해도, 눈앞의 푸른 물결을 건널 수 없으리.”(‘동국이상국집’ 권18) 이규보는 바다에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인 강화도로 천도하지 않았다면 삼한은 벌써 오랑캐의 땅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절친한 우정을 갈라놓은 천도 논의 이규보와 유승단은 이같이 다른 입장이었지만, 둘은 1190년(명종 20) 함께 과거에 합격한 동기생이자 당시 고려를 대표하는 최고의 문인지식인이었다. 유명한 고려가요 ‘한림별곡’에 무신정권 당시 최고의 문장가를 품평한 기사가 있는데, 고문(古文)은 유승단, 빨리 글을 짓는 주필(走筆)은 이규보가 각각 최고라 했다. 이규보는 자신이 지은 시 뭉치를 유승단에 보내 윤문을 부탁할 정도로 둘 사이는 절친한 문우(文友)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두 사람은 천도 문제를 두고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관료로서 대조적인 길을 걸어왔다. 유승단은 과거에 합격한 후 강종과 고종이 태자일 때 그들을 가르치는 직책에 임명된다. 국왕으로 모두 즉위하면서 유승단은 순탄하게 관료생활을 한다. 승진도 빨라 천도 2년 전인 1230년 재상이 된다. 비록 무신의 시대이지만, 국왕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가 현실의 권력인 무신보다 왕권을 옹호하는 정치이념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천도를 결정한 최이가 즉시 강화도로 갔으나, 고종은 한 달이 지나서야 강화도로 갈 정도로 천도에 반대했다. 그를 보좌한 문신 관료집단도 고종과 같은 생각이었다. 유승단이 천도에 반대한 것은 고종의 뜻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도는 강행되었고, 그해 8월 그는 사망한다. 천도가 단행된 직후 사망한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이규보의 관료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과거에 합격했으나, 18년 만인 1208년에야 정식 관원이 된다. 그의 나이 41세 때이다. 최씨 정권에서 과거 합격이 관료가 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았다. 천거제가 관료가 되는 첩경이었다. 이규보 역시 권력자 최이의 천거가 없었다면 관료가 될 수 없었다. 천거제는 최씨 정권에 철저하게 충성하는 자를 가려내는 통로였다. 그의 후견인 최이는 그의 글재주를 높이 평가해서 여러 차례 최고 권력자이자 아버지인 최충헌에게 그를 추천했다. 그 결과 겨우 관료가 되었다. 그는 천도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1232년 9월 후견인 최이가 권력을 장악하자, 이규보는 고속으로 승진한다. 1233년 그는 재상이 된다. 천도에 찬성한 점도 고속 승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서 몽골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직접 작성한다. 그가 작성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제후국 고려는 천자국 몽골에 사대를 하기 위해 사직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천도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무신정권의 입장을 대변한 글이지만, 그의 입장도 반영된 것이다. ●항전론과 강화(講和)론으로 발전 이규보와 유승단은 강화 천도에 다른 입장이지만, 그들이 제기한 찬반 양론은 당시 두 개의 권력 축인 무신 권력자와 그를 보좌한 무신집단, 국왕과 그를 보좌한 문신 관료집단의 입장을 각각 대변하고 있다. 무신집단은 천도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면서 장기전으로 몽골의 침입에 저항하려 했다. 국왕과 관료집단은 몽골과의 저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사대관계를 맺어 왕조를 보전하면서, 한편으로 무신정권의 붕괴와 왕권의 회복을 노렸다. 무신의 의도대로 천도는 성사되어 반대론은 힘을 상실한다. 그러나 약 30년간의 전쟁으로 한반도 전역은 몽골의 말발굽 아래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무신정권에 대해 악화된 민심은 몽골에 대한 저항의 동력을 상실할 정도였다. 그 틈새로 국왕과 관료집단의 강화론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천도를 강행한 무신권력자들은 몽골과의 항전을 끝까지 주장했다. 강화 천도를 둘러싼 찬반 양론은 한 세대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가 돼 전쟁 말기에 항전론(천도론)과 강화론(천도반대론)으로 재점화된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천도론에서 제기돼 항전론과 강화론으로 갈라진 두 개의 상반된 정치사상은 어느 것이 더 옳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무신정권의 항전론이나 강화론은 모두 13세기 세계 최강의 군사력 앞에서 굴하지 않은 고려인들의 자존심을 지탱해준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박종기(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 인기 女가수, 알고보니 김대중 前대통령 수양딸

    인기 女가수, 알고보니 김대중 前대통령 수양딸

    중국 언론매체가 연예계 여성스타와 그들의 ‘깐띠에(干爹·양아버지)’를 다룬 기사를 게재하면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국 인기가수 손열(孫悅·쑨위에·39)의 각별한 인연을 다뤄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경제신문의 인터넷뉴스인 중국경제망(www.ce.cn)은 ‘인기 여성스타와 유명 양아버지 대해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여성 스타와 끈끈하게 맺어진 남성 명사들을 화보와 함께 소개했다. 중국경제신문은 국무원 직속 기관지다. 기사는 손열과 고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손열은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는 국제스타가 되기 위해 자주 한국에 가서 각종 프로그램을 녹화했는데, 한번은 정재계 모임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이희호 여사가 그를 매우 좋아했고 그 인연으로 내친 김에 김 대통령의 수양딸로 삼았다. 이는 중국 연예계 사상 최초다.” 하얼빈 출신의 손열은 <쭈니핑안(그대의 평안을 기원합니다)>이라는 노래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00년 한국 관광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기사는 “깐띠에는 친아버지가 아닌 또다른 아버지인 양아버지를 일컫는데,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양부모 관계를 즐겨 맺는 풍속이 있다. 중국인들은 감정을 중시하는데 혈연이 아닌 관계에서는 그 존경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양아버지나 양어머니 삼는 것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양아버지가 있으면 배경이 든든해진다는 말도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 기사에서 깐띠에는 여성 연예인을 친딸처럼 아껴주는 가까운 후견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기사는 아역배우 출신의 서교(徐嬌·쉬자오·16)는 ‘장강 7호’를 촬영하면서 만난 주성치(周星驰·저우싱츠·50)와 깐띠에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했다. 서교는 장강 7호에서 남자아이를 연기하며 깜찍한 매력으로 인기몰이를 했고 주성치와도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실제로 공식석상에서 주성치를 ‘아빠’로 부른다. 또 영화배우 홍금보(洪金宝·훙진바오·60)와 범빙빙(范冰冰·판빙빙·31), 가수 이종성(李宗盛·리종성·54)과 양정여(梁静茹·량징루·34), 영화배우 장국립(张国立·장궈리·57)과 주필창(周笔畅·저우비창·27) 등의 각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어려운 건축민원 멘토가 돕는다

    양천구는 다음 달부터 ‘건축민원 멘토(Mentor·후견인) 제도’를 운영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4월부터 전국 최초로 구에서 운영 중인 ‘건축 원스톱 콜센터’에 멘토제를 접목한 것이다. 민원인들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멘토를 통해 다양한 건축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민원인들은 건축 원스톱 콜센터에 민원을 신청할 때 멘토를 요청할 수 있다. 멘토를 통해 법률상담은 물론 설계도면 및 각종 서류 작성, 위험 시설물이나 건축물 유지관리, 민원 조정업무 등 건축 관련 맞춤형 토털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구는 멘토제 도입으로 주민이 건축에 대한 궁금증 해결이나 상담을 위해 건축사 사무소를 찾아야 했던 불편을 줄이고, 전문가가 공정하게 상담·조언함으로써 주민의 소중한 시간과 경비를 줄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용은 구 홈페이지(yangcheon.go.kr)의 건축 원스톱 콜센터에서 가능하다. 전화(2620-3545)나 팩스로 신청할 수 있다. 추재엽 구청장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현장 상황파악에 따른 결정을 중요시하는 게 바로 건축행정”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불편사항을 없애고 건축행정 만족도를 높여 주민 삶의 질 향상에 온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명박 대통령 취임 4년] MB맨들은 지금

    [이명박 대통령 취임 4년] MB맨들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주변을 지켰던 핵심 실세들은 취임 4년을 지나면서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이 대통령을 만든 원로그룹인 ‘6인회’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멤버들이 속속 전면에서 물러나며 와해 수순에 접어들었다. 이 대통령의 친형으로 ‘상왕’, ‘영일대군’,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은 보좌관 박배수씨가 구속되면서 지난해 12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후견인)로, 이상득 의원의 친구이기도 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측근의 수뢰 의혹으로 22일 눈물의 퇴임식을 가졌다. 이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돌린 의혹을 받고 이달 중순 의장직에서 사퇴한 뒤 검찰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되는 처지에 몰렸다.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특임장관을 지냈지만, 지금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당에서 아웃사이더로 전락한 상태다. 6인회 멤버 가운데서 김덕룡 전 청와대 국민통합특보는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사례도 속출했다. 대선 캠프 때부터 참여해 정권 창출에 공헌했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도 저축은행 구명 로비 대가로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지시 의혹을 받고 이달 물러나 박 의장과 함께 검찰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다. 청와대 출신들도 자리가 많이 바뀌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포퓰리즘을 비판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때문에 올해 대선 경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왕수석’이라는 말을 들으며, 임기 초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한 뒤 부지런히 표밭을 갈고 있다. ‘MB의 책사’로,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인 박형준 전 정무수석도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던 부산 수영구로 돌아가 권토중래를 외치고 있다. 김희정 전 대변인도 부산 연제에서 자신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다. 김형준 전 춘추관장(부산 사하갑)을 비롯해 이상휘(포항북), 이성권(부산진을), 정문헌(속초·고성·양양), 김연광(인천 부평을) 등 전 청와대 비서관들도 총선에 뛰어들었다. ‘MB노믹스’를 주도했던 경제 분야 인물들은 비교적 건재한 모습이다. 현 정부 들어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지낸 강만수 산업은행지주회장, 국가브랜드위원장을 거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자문교수 그룹 출신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검찰 낮술금지·매니페스토 도입… 與 공천도 개혁할까

    검찰 낮술금지·매니페스토 도입… 與 공천도 개혁할까

    31일 한나라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으로 선임된 정홍원 변호사는 약 30년간 검찰에 몸담았던 법조인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 사법시험(14회)에 합격해 검찰에 몸담았다. 김황식 국무총리와 사시 동기다. 검사 시절에는 대표적인 ‘특별수사통’으로 불렸다. 1982년 이철희·장영자 사기사건을 비롯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수서지구 택지공급 비리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안기부 배후조종 북풍사건 등 각종 권력형 비리 수사를 지휘했다. 1991년 대검 중앙수사부 3과장 시절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해커를 적발했고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으로 재직하면서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다. 대검 감찰부장으로 있을 때에는 ‘검찰 낮술 금지’를 실시하는 등 검찰 내부 개혁에도 앞장섰다. 정 위원장은 이어 2004년 10월부터 2006년 9월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로드맵을 처음 발표했고 선관위에서 농·수·축산업협회 조합장 선거와 국립대 총장 선거, 산림조합장 선거, 주민투표 등을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영역을 확대했다. 특히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매니페스토 선거운동 방식을 도입해 우리나라 선거문화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호평을 받았다. 정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 인선 때마다 ‘단골’ 후보로 거론됐다. 2007년 12월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삼성 비자금사건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 위원장은 2008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최상의 법률서비스, 최고의 법률복지 국가’라는 공단의 경영이념을 정립한 뒤 전국 무변촌(변호사가 없는 마을) 45곳에 공단 지소를 설치했고 이동법률상담차량을 가동해 법률취약계층들이 보다 쉽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9년부터 서울과 대구, 부산에 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신용불량자 및 임금체불 근로자 등에게 무료 법률지원을 시작했다. 정 위원장은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감당하기엔 무거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쓴 잔도 마시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위원장직을 수락한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공천 기준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될 사람은 개인의 영달보다 국민의 복리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돼야 하며, 내가 한가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바로 이 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또 “한나라당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국민이 비난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이 크게 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공천도 연관이 돼 있다.”고 밝혔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부고] ‘7선 의원’ 신상우 前 국회부의장

    [부고] ‘7선 의원’ 신상우 前 국회부의장

    7선 의원을 지낸 신상우 전 국회 부의장이 26일 오후 타계했다. 75세. 신 전 부의장은 2010년 말 간암이 발병해 1년 이상 입·퇴원을 반복하며 병마와 싸웠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고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끈 민주계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부산일보 정치부 기자를 거쳐 1971년 8대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부산 동래·양산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8, 9, 10, 11, 13, 14, 15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5공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한당 탄생의 산파역을 맡아 ‘제도권 야당’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12대 총선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약점이 돼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후 민주화추진협의회에 동참, 민주화 운동에 가세했고 13~15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국회에서는 보사위원장, 국방위원장, 정보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96~1997년에는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 학살’ 파문으로 낙천하자 이기택, 김윤환 전 의원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민국당)을 창당, 재기를 모색했지만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이후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활동하면서 참여정부에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정강씨와 용주(개인사업)·용석(넥슨 임원)·용민(개인사업)씨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30일 오전 9시 발인한다. (02)3410-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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