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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또복권 5억원 횡재/사상 최고당첨액 기록(조약돌)

    ○…21일 주택은행의 「또또복권」제16회 2차 추첨에서 국내 복권사상 최고 당첨금인 5억원의 당첨자가 탄생. 행운의 주인공은 부산에 사는 김모씨(38·회사원)로 회사앞 편의점에서 3장을 연번으로 구입한 것이 한장은 1등에,나머지 2장이 2등에 각각 당첨됐다.김씨는 당첨금 5억원중 세금을 제외한 3억9천만1천3백20원을 횡재. 5억원당첨이 나오게 된 것은 지난 14일 또또복권 제16회 1차추첨에서 1등 2장중 1장이 판매되지 않은 복권에서 나와 1등 당첨금 1억5천만원이 2차 추첨으로 이월돼 1등 당첨금이 3억원이 됐기 때문. 김씨는 1남1녀의 아버지로 평소 판매인의 인상이 좋게 느껴질 때 복권을 3∼5장씩 구입하곤 했는데 22일자 스포츠지를 보고 당첨 사실을 알게 됐다고.지금까지 복권 당첨최고액은 지난해 4월28일 또또복권 제8회 2차추첨에서 서울에 사는 김모씨(33)가 당첨된 4억2천5백만원이다.
  • 극단 오늘 「복날은 간다」 잔잔한 감동(공연화제)

    ◎삶에 지친 30대의 일상 담아/꿈과 현실 교차시켜 참자유 의미 새겨 현실의 삶에 지친 한 삼십대 남자를 통해 일상으로부터 얻는 자유의 의미를 담백하게 풀어가는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올랐다. 극단 오늘이 지난 10일부터 대학로 소극장 오늘(763­8538)에서 공연중인 「복날은 간다」(백연희 작·위성신 연출). 이 작품은 30대 초반의 보험회사 영업사원인 「안대찬」이라는 사람이 찌는듯이 더운 복날 하룻동안 꾼 6개의 꿈을 현실과 교차시킴으로써 자유의 진정한 모습을 밝혀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첫번째 꿈은 「안대찬」의 인생 파노라마.지나온 인생의 희로애락이 신나는 노래와 짧은 장면의 연속을 통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두번째 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이상형 여인과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신파극의 어조와 흑백영화 톤의 질감을 섞어 묘미를 더한다. 세번째 꿈은 복날 아침의 개꿈.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안대찬」이 왕성한 정력과 뜻밖의 횡재만을 바라다가 애견광고를 보고 당하는 황당한 사건을 다룬다. 네번째 꿈은 남성들의 영웅심리를 나타내는 장면.일상속에서 자꾸만 위축돼가는 자신의 존재와 정의에 대한 갈구,억제된 파괴본능의 분출을 통해 현대인의 이중성을 그린다. 다섯번째 꿈의 무대는 사우나탕.치열한 생존경쟁과 질서와 안정이 바탕이 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안대찬」이 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꿈에서 깨어난 후에 느끼는 남성들의 현실적 고민을 나타낸다. 마지막 여섯번째 꿈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지켜보는 「안대찬」이 자신에 대해 사후평가를 내리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통해 인생을 반추해보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결국 현대인의 공통분모로 설정한 「안대찬」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기나긴 꿈을 통해 현실과 자신과의 화해의 고리를 찾아간다는 것이 기둥줄거리.일정한 공간적 배경이나 별다른 장치의 변화없이 단순한 공간구조 속에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8월25일까지.화∼목 하오 7시30분,금∼일 하오 4시30분·7시30분.〈김재순 기자〉
  • 30대,산삼 34뿌리 캐 “횡재”(조약돌)

    ◎어머니 묘소 가다 야산중턱서 발견/1뿌리 1백만원… 3천여만원 벌어 ○…어머니 묘소를 찾아가던 30대 가장이 1뿌리에 1백만원을 호가하는 산삼을 무더기로 캐 횡재.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진동순씨(38·음식점주인)는 지난 9일 낮 어머니 묘소를 가기위해 집에서 약 3㎞쯤 떨어진 구이저수지 부근을 지나다 야산중턱 숲속에서 길이 25∼30㎝크기의 10년생 산삼 34뿌리를 캤다고. 진씨는 『모친 제삿날을 맞아 마음이 울적해 아내와 두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 묘소를 찾아가던중 인삼잎처럼 생긴 것이 눈에 띄어 이를 모두 캔 뒤 전주시내 5곳의 한약상에서 감정을 받아본 결과,모두 산삼으로 확인됐다』면서 『산삼을 팔아 불우이웃도 돕고 현재 남의 산에 모시고 있는 어머니 묘소도 집 가까운 곳으로 이장할 계획』이라며 싱글벙글.〈김제=조승진 기자〉
  • 수도스님 봉삼 횡재(조약돌)

    ○…스님이 한뿌리에 5천만원에서 1억원 가량하는 산삼중의 산삼인 봉삼 10뿌리를 캐 횡재. 경남 울산시 남구 신정동 광덕사 혜담스님(61)은 지난 4일 하오 3시 전북 김제군 무학산에서 불공을 드리던 중 15∼20㎝ 길이의 어른 중지 굵기만한 봉삼 10뿌리를 발견했다고. 혜담스님은 꿈에 백발신선이 나타나 지팡이로 기도하던 동굴옆 개울 근처를 가리켜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산삼 비슷한 것이 있었다며 한뿌리를 먹어보고 본능적으로 산삼임을 알았다고.〈울산=이용호 기자〉
  • 대우/파 문화재 고성인수 “횡재”

    ◎인수한 FSO사 소유… 처음엔 기부의사/파 정부 관리비 부담에 무기한 무료임대 대우그룹이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 성곽의 하나인 크라스틴성을 인수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중동유럽을 순방중인 이수성 총리의 이곳 행보가 관심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새롭게 확인된 내용이다. 대우가 폴란드의 국보급 문화재를 「횡재」한 과정은 이렇다. 대우는 지난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 등 세계 18개 자동차메이커와 경쟁,폴란드의 국영자동차회사 FSO를 인수했다. 대우는 수년안에 자동차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폴란드 시장을 선점한데다,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서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크게 고무됐다. 그런데 인수를 해놓고 보니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FSO가 소유하고 있던 크라스틴성과 4개의 리조텔이었다. 이 성은 문화재로서 뿐 아니라 객실 40개 규모의 호텔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대우는 그러나 처음에는 이 성을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문제가 전혀 없다」는공업부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문화부가 국보급 문화재의 외국기업 소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대우가 기부의사를 전하자 이번에는 폴란드 정부가 28명에 달하는 관리인의 임금과 보수·관리비용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결국 폴란드정부와 대우는 성의 명분상 소유자는 정부로 하되 대우에 무기한 무료임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대우의 권리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FSO는 이밖에도 9백만㎡(약 3백만여평) 규모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고스란히 대우쪽에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대우는 현재 크라스틴성을 비롯한 리조텔과 엄청난 규모의 농지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는 작업과 함께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바르샤바=서동철 기자〉
  • 월셋방 자취 노총각 4억복권 “횡재”(조약돌)

    ◎약국서 생애 첫 구입… “집사고 결혼 할래요” ○…제13회 또또복권 제3차 추첨결과 사글세 단간방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34세의 노총각 회사원이 1등과 2등에 당첨돼 4억원의 당첨금을 받게 된 것으로 밝혀져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있다. 행운의 주인공은 전북 전주에 사는 L모씨.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전주시 달동네에 있는 보증금 1백만원 월세 10만원인 단간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L씨가 거액 당첨의 행운을 잡게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앓고 있는 병 때문이었다. L씨는 자취 생활탓에 위장병을 앓아왔는데 전북 익산시로 출장을 가다 배가 몹시 아파 약국에 들렀다가 약국에서 팔고 있는 복권이 눈에 띄어 생전 처음으로 3장을 구입했다는 것.3장 가운데 1장은 지난 25일 있었던 추첨에서 1등 3억원에,다른 1장은 2등 1억원에 당첨됐다. L씨는 당첨금으로 집을 사 부모님도 모시고 결혼도 해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 백두산 산삼(압록강 2천리:13)

    너도나도 「방산」… 사라지는 산삼/“한뿌리만 캐도 가난 벗는다”… 이젠 전설로/집안 「신개하홍삼」 한때 고려인삼과 버금/인삼값 폭락… 꽃사슴 사육으로 대체 『화승총 메고 다닌 사람티고 범 잡디않은 사람 없고,홍실 가디고 산판 헤맨 사람티고 산삼 못캔 사람 없디요.그만큼 딤승이 우글대고 삼이 많았다 이겁네다』 노인들은 산 이야기만 나오면 으레 신바람이났다.얼핏 허풍스러워 보이나 백두산 자락을 깔고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의 말에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깔려있을 것이다.왜냐하면 「장백현지」와 같은 기록에도 백두산 산삼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최근 기록을 보면 지난 1979∼85년까지 국가가 장백현에서 거두어들인 산삼은 1백9·6량(5천4백80g)으로 되어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산삼을 백초 가운데 으뜸(백초지왕)으로쳤다.그리고 만리장성 동쪽을 말하는 관동의 세가지 보물의 하나로 꼽은 명산물이 백두산 산삼이었다.질병을 없애고 노화를 방지한다는 산삼 한뿌리만 캐면 가난뱅이도 금방 부자가 되었다.청나라 연호로 함풍연간(1851∼61년)에 어떤 촌민은 산삼 여덟뿌리를 캐서 황제에게 바쳐 오품지부의 벼슬을 얻었다고 한다. ○산삼 진상… 벼슬 얻기도 산삼 캐는 일을 방산이라고 부른다.옛날에는 전적으로 삼만을 캐러다니는 직업 방산자들이 있었다.이들은 산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산삼의 생장과정까지 지켜볼 정도로 산삼에 도통한 사람들이었다.그래서 산삼이 자라는 자생지를 훤히 꿰뚫었다.산삼은 여간한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처음 산삼을 발견하면 먼저 『봉추요』라고 소리를 친다.그러면 옆에서 『뭐요?』라고 묻는다.발견자는 몇잎이라고 일러주고 즉시 홍실로 뿌리 위쪽을 묶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집안시 양수향 황차촌에 사는 송창철(36)씨는 지금 향정부에서 민족사무조리로 일하는 조선족 청년이다.그런데 부친 송병계(62)노인때부터 산삼을 캐러 다닌 터여서 한때는 방산에 나섰던 경험이 있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방산에는 삼매경같은 무아의 경지가 뒤따르는 모양이다. 『초막에서 밤새 모기에 물리는 고초를 겪지만 날이 밝아 산천을 바라보노라면 신선이 된 기분이 듭데다.시원한 실개천에 세수를 하고 그 물에 밥을 디어먹고 산을 타디요.배고픈 줄도 모르고 산을 헤매다 늦게 점심요기를 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았댔습네다.그런데 바로 맞은편에 빨간 꽃이 보이더라 이 말입네다.그거이 산삼이었디요.밥 보자기를 밀쳐놓고 봉추라는 소리를 냅다 지를 수 밖에….횡재를 만나서리 늦은 점심도 아예 굶고 정성들여 캤디요.세잎 짜리였는데,장사꾼한테 4천원을 받았습네다』 그 깊고 넓은 백두산 자락에는 산삼의 열매를 따 먹는 새가 분명히 살고 있다는 것이다.부리 아래가 빨갛고 파란털을 가진 새다.이 새를 쫓아 가면 반드시 산삼을 만난다고 해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방초새나 산삼새라고 부르는데,백두산 인근 사람들이 흉내낸 새소리는 「왕간가­이오­」다.북송때 백두산에 산삼을 캐러갔다가 굶어죽은 산동성 기수현 사람인 왕간가와 이오의 울음이라는 전설이있다. ○초막 짓고 산에서 생활 한대의 약학서인 「신농본초경」을 보면 산삼의 약효는 대단하다.그래서 백초지왕이라 했고다른 약재에 비해 값도 엄청 높아 여늬 사람들은 먹을 수가 없었다.옛날에는 장백현이나 집안현에서 산삼을 캐면 안동이나 영구 같은 도시에 내다 약재상들에게 팔았다.요즘은 사정이 달라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 단골이 되었다.그래도 값이 싸다면서 닥치는 대로 사는 바람에 판로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두산 산삼이 도라지처럼 흔한 것은 아니다.점점 희귀해지고 있다.세월이 좀 더 흘러가면 백두산 산삼은 전설로만 남아있을지 모른다. 산삼씨앗을 따서 산에 뿌린 이산삼과 또 산삼씨를 뜰에 뿌려 재배한 원삼의 대를 이어 청나라 강희원년인 1662년에 압록강유역에서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특히 집안시는 중국의 중요한 인삼재배지가 되었다. ○막차 탄 인삼농가 많아 오늘날 집안에서 가장 유명한 인삼은 「신개하홍삼」이다.그 질이나 약효가 고려인삼에 버금간다고 집안 사람들은 자랑하고 있다.광복 이듬해인 1946년 2만8천2백50장이었다가 1959년 집체화 시기에는 재배량이 11만2천1백8장으로 늘었다.그리고 1983년 개체화 시기로 넘어가면서는 더 늘어 57만1천1백12장이나 되었다.총 수확량은 74만2천2백88㎏으로 2천1백66만원어치를 생산했다. 그러나 요즘와서 인삼은 사양의 길에 접어들었다.양수향 황차촌에 사는 송명철(41)씨는 지난 19 88년부터 인삼을 재배했다.당시 1등품 인삼 1근에 37원8전을 홋가해서 인삼재배자들이 큰 돈을 벌 때였다.그래서 1만원을 대부받아 인삼재배를 시작했는데,재수 없는 사람 뒤로 넘어져도 코를 깨는 격이 되고 말았다.인삼값이 해마다 38%씩 내려가 4년동안 일만 죽도록 하고 대부금을 모두 날렸다. 『작년에 삼값이 얼마했는지 아십네까? 한근에 5원을 했으니 안망할 턱이 없디요.국가에서 안사니끼리 거간꾼들이 날도둑하듯 뜯어먹은 것입네다.개체사회에서 살라면 더 배와야디요.돈놓고 돈먹을 줄 알아야 농사도 짓는 세상이 됐지않나 합네다』 오랜 세월을 사회주의에 순치한 사람들인지라 시장경제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그저 국가가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일하고 입에 풀칠을 했던 사람들인 것이다.그런속에서도 시장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상황에따라 전업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돈을 벌고 있다.장백현 용강향 이도강촌의 김학준(60)씨는 시류를 잘 탄 농민이라 할 수 있다. 『인삼 경기가 좋다니까 너도나도 대들었디요.이러다는 인삼이 내리막질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네다.그동안 내래 인삼농사로 수만원 벌어놓은 처지고 해서 인삼농사에서 손을 떼었디요.대신 꽃사슴 두 마리를 샀지 않았갔시요』 그는 1만원을 들여 꽃사슴 2마리를 사서 지금은 12마리로 늘렸다.지난해 수놈 5마리의 뿔을 잘라 녹용으로 팔아 본전 1만원은 이미 건졌다.압록강 연안에도 시장경제체제에 의한 경쟁사회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 호태왕비(압록강 2천리:11)

    ◎1천6백년전 대륙 호령하던 고구려 위엄이…/청나라 관명산이 발견… 최근 비문탁본 떠 횡재/일서 통째로 반출기도… 지난 82년 새 비각세워 오늘날 집안시는 청나라 연호로 광서 28년(1902년)부터 1965년까지는 집안현이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압록강 중류의 오른쪽 대안을 통틀어 통구라고도 한고 더 옛날에는 비류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기원전 2년부터 서기 427년가지 고구려의 도읍지 국내성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국내성 시대의 굵직굵직한 고구려유적이 많지만 그 으듬은 호태왕비일 것이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서기 414년 부왕의 공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거대한 비석의 새김글씨 금석문 내용은 당시 고구려 역사이자 주변 동아시아역사다. 왕의 묘호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마지막 세 글자를 따서 호태왕비로 부르는 이 거대한 사면비는 어른 세 사람의 키를 포갠 것보다 높다. ○굵직한 고구려 유적 많아 집안시에는 태왕향이라는 구역이 있다. 향 구역내에 호태왕비(광개토왕비)와 태왕릉,장군총,통구의 옛 무덤떼가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 분명했다. 압록강 건너 북한당 만포시로 가는 국제열차가 발차의 기적을 울리는 집안역도 태왕향에 속해있다. 집안해관(세관)을 비롯,변경검사장(국경검문소),대외무역운수회사,집안판사처,집안검역소 및 동식물검역소 등의 국가 주재기관이 모두 태왕향에 밀집되었다. 그리고 집안시내를 다녀보면 「태왕식당」이나 「태왕상점」이 눈에 띄고 「태왕가라오케」까지 생겼다. 1천6백여년전 대륙을 호령하던 대왕의 이름이 시장경제시대의 간판에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호태왕비로부터 얼마 멀지않은 태왕릉과 마주한 자리에 태왕조선족소학교가 있어서 한결 마음이 흐뭇했다. 조선족 어린이가 대왕의 품에 안겨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긍심마저 들었다. 청나라는 백두산을 자신들의 성조발상지로 보고 1677년에 봉금지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2백1년동안 집안은 인적이 없는 불모지에 불과했다. 1877년에 접어들어 청나라는 통화현과 회인현(환인현)을 설치했다. 그 회인현 설치위원이었던 장월이라는 사람 밑에 관월산이라는 서사가 있었다. 본디 석공출신인 관월산이 바로 무인지경에 외로이 서있는 호태왕비를 찾아낸 장본인이다. 관월산은 장월의 허락을 받아 호태왕비 인근에 초가를 짓고 어렵게 사는 초천부를 고용했다. 산동성 문등현 사람은 초천부는 어린 아들 초균덕을 데리고 살았는데 비석에 덕지덕지 긴 이끼를 벗기는 일을 맡았다. 초천부는 사다리를 놓고 매일 비석에 달라붙어 일을 했으나 이끼가 너무 두꺼워 다 벗기기가 부지하 세월이었다.그래서 쇠똥을 잔뜩 발라놓고 불을 질렀다. 그래도 시원치 않아 나중에는 기름을 부어 태워버렸다. 이때에 애석하게 비석에 금이 가고 터져 어떤 글시는 알아볼수 없게 되었다. 현재 애매모호한 글씨로 남은 1백22자가 불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어떻든 비문이 나타나자 성경(심양)등지에서 곡학자와 금석문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초천부가 명을 받아 탁본을 떴다. 현아문과 학자들에 바치고 더러는 성경과 안동(단동) 사람들에게 팔아 초천부가 돈을 챙겼다. 초천부한테 사간 탁본은 외국인들에게 되팔려 나가기도 했다. ○탁본 외국학자에 인기 1902년 집안현이 생기면서 현은 초천부에게 탁본업 허가증을 내주고 일정한 수량만 바치고 나머지는 사사로이 팔도록 했다. 30여년전 호태왕비에 매달려 살던 초천부가 세상을 뜨자 아들 초균덕이 탁본업을 이어받았다. 빨리는 하루에 1장,늦으면 사흘에 1장식을 찍어내어 민국연간돈으로 1장에 10∼12원씩 받았다. 탁본으로 이름이 나서 그를 초대비로 불렀다고 한다. 그는 70살에 탁분일을 놓고 청석진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1946년에 세상을 떠났다. 1907년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 육군 제57연대장 소택덜평이 압록강을 건너와 호태왕비를 둘러보았다. 고구려와 왜구간의 전쟁기록이 있는 것을 보고 당시 행정책임자인 집안임지현 오광국을 만나 호태왕비를 팔라고 졸랐다. 진사출신으로 해박한 학식을 갖추었던 오광국은 고구려 역사의 진실을 담은 국보를 판다는 것은 천주에 용서받지 못할 죄악임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국보는 팔 수 없다” 거절 그 때에 오광국과 소택덕평과의 대화내용을 사료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비석은 대단히 무거워 일본까지 운반할 수가 없습니다.』 『그거야 쉽지요. 우리 병선이 이 비석보다 훨씬 더 무겁지 않습니까? 병선으로 옮기려 합니다.』 『이 비석은 비록 지방에 있지만 국보입니다. 나는 지방에 있는 보잘것 없는 관리인데 내 어찌 국보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교양이 깊으신 분이니 나의 고충을 이해하시리라 믿겠습니다.』 『저는 사실 문물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값은 부르는대로 드릴테니 양도해 주시지요.』 『그처럼 흥미가 있으시면 내가 가진 탁본 몇 점을 선물로 드리지요.』 소택덕평은 그냥 돌아갔다. 만주사변 이후 동북을 강점한 일제가 어이하여 호태왕비를 그대로 두었는지가 의심스럽다. 만주지역은 물론 아시아가 저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 탓이었을까. 그런 와중에 호태왕비는 제자리에 지금 남아있다. 밑부분 너비 1.34∼1.97m,윗 부분 너비 1∼1.6m,높이 6.39m나 되는 거대한 비석은 비각에 안치되었다. 비각은 당초 집안임지현 유천성이 1925년 모금을 해서 지었는데 너무 낡아 1982년 집안현 문물관리소가 다시 지었다. 중국사회과락원 부원장겸 고고연구소 소장 하내가 「호태왕비」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다.
  • 횡재가 횡재 될줄을 왜 몰랐던고(박갑천 칼럼)

    오늘날 세계제일의 부자는 브루나이의 볼키아국왕이라고 알려진다.그가 가진 3백70억달러는 우리돈으로 치면 대충 29조원.미국 월튼가의 2백36억달러쯤 저리 가라다.그는 30년 가까이 그나라를 통치해온다. 그렇다면 인류가 생긴 이래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는 누구일까.그건 유대의 다윗왕이라고들 말한다.다른것 젖혀두고 그는 황금 10만3천탈렌트(금 1탈렌트는 49㎏),은 1백만7천탈렌트(은 1탈렌트는 62㎏)를 가지고 있었다.이걸 현대의 돈으로 바꾸면 약1천2백억달러라니 우리 돈으로는 96조원에 이른다.이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그아들이 「솔로몬의 영화」를 누린다. 이런 돈에 비기자면 몇천억원쯤 「새발의 피」같다할지 모른다.하지만 한두푼에 울고웃는 서민으로서는 숨막히는 액수.「왕」도 아닌 대통령이 그 돈을 손짭손치듯 뺑줄쳤다.아들뿐 아니라 대대손손에게 솔로몬의 영화를 물려줄 셈이었던지.끝까지 오리발 내밀며 앙버티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야 가면을 벗은 「세계에서 가장 잘 참는 사람」.아직도 숨기는데 참을성을 보이는 것만 같다. 도둑질·속임질등 몹쓸짓으로 얻는 재화에는 마귀가 붙는 법이다.그래서 동티가 난다.재물의 그런 속성을 두고 전통사회에서 어린이들이 배운 「명심보감」(성심편)은 이렇게 경고한다.『…지난해 부질없이 동녘 이웃에서 가져온 재물이 오늘은 다시 북녘집으로 가버렸네.의롭지 못한 돈과 재물은 끓는 물에 눈이 녹는 것과 같고 뜻밖에 생긴 땅뙈기는 물살에 밀리는 모래와 같느니.만약 간사한 꾀로 사는 방법을 세울양이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과 같으리라』 이런 삶의 이치를 안 옛사람들은 땀 안묻은 재물을 물리칠줄 알았다.배움없는 시정의 아낙네까지도.두아들을 데리고 저녁 끓일것 걱정하며 사는 과부가 어느날 남새밭에서 은이 든 독을 발견했으면서 도로 묻어버렸다는 「청구야담」 얘기도 그것이다.이 비슷한 얘기는 「일사유사」에도 보이지만 쉽게 얻은 재물로 해서 두자식이 빙퉁그러질까 걱정한 때문이었다.한데,5년동안 나라를 다스린 대통령이 그같은 아녀자 슬기만도 못했던 것인가.스스로는 전임자와 그 친인척의 독직을 서릊으면서 뒷구멍으로는 그전철을 되밟았던 맷가마리.횡재는 횡재임을 정말 몰랐던 걸태질인가. 재물의 정체를 바로보아야 한다.재물이란 바른 방법으로 땀흘려 벌어야 제구실을 해주는 법.크게 어리석었던(태우)행적이 한번더 그 진리를 깨우쳐준다.
  • 고구려 도입지 집안(압록강 2천리:10)

    ◎천년 잠든 무덤 7천8백기/뒤는 노령산맥… 앞은 압록강 물줄기/찬란했던 고구려 명당엔 잡초만 무성/유리왕이 도읍 창건… 조선족 1만5천여명 거주 장백진을 떠나 집안까지 가는데 장장 15시간이 걸렸다.아침7시에 떠났는데 밤이 늦은 10시에 도착했다.장백에서 무송까지는 버스를 타고 무송에서 기차로 갈아탔다.곧바로 집안을 들어간 것이 아니고 반드시 통화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지도를 들여다 보면 압록강을 따라 금세 쪼르르 내려갈 것만 같은 거리가 그리도 멀었다. 길림성 최남단에 있는 집안시는 아온대이거니와 대륙성 계절풍습윤기후대에 속한다.노령산맥이 병풍을 두르고 압록강이 물길을 열어놓은 집안은 햇볕이 넉넉하고 강우량도 많다.그래서 범증이라는 서도가가 집안을 「작은 강남」(소강남)이라 이름하고 이를 돌에 새겨 토구령에 세웠다.고구려가 도읍지로 정한 까닭은 풍수지리가가 아니더라도 명당임을 단박에 알차릴 수 있다. ○길림성 최남단 위치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집안시의 인구는 21만명이다.이 가운데 1만5백여명이 조선족이다.시 소재지인 집안진에는 조선족이 정확히 1천6백13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내가 간밤에 끼어들었으니 조선족 유동인구가 더 늘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어떻든 허술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서 압록강가로 나갔다.험준한 산악 사이로 비좁게 촘촘이 들어앉은 북한의 자강도 만포시가 시야로 들어왔다. 집안과 만포 사이로 흘러가는 압록강 물살이 만고의 역사를 안고 달려가는데,무심히 지나던 기차가 기적을 길게 뽑았다.여객과 짐을 한꺼번에 실은 열차가 국경의 철교를 막 건너는 참이었다.레일을 굴러가는 쇠바퀴의 굉음이 가슴을 쿵쿵 쳤다.그 찰나에 조용남의 시 「실종된 민족」의 몇 귀절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창창한 이끼를/용포로 두르고/통구의 언덕에 외로이 서서/천백년 풍우의 긴 세월」 그 시인의 시처럼 「천백년 풍우의 긴 세월」을 버티어 온 호태왕비가 집안에 있다.그리고 당시를 살았던 고구려인들이 뼈를 깎는 아픔을 들여 쌓아 올린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자리한 땅이기도 하다.찬란한동아시아의 문화를 창조하고 천년을 두고 잠든 고구려인들의 무덤이 바둑판에 올린 바둑알들 보다 더 밀집한 대묘역이 아직도 잔존했다. 고구려가 졸본에서 집안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유리왕 22년의 일이니까 서기 3년에 해당한다.그 천도에 따른 뒷 이야기로 민속과 밀접한 전설이 남아있다.고구려 사람들은 단오와 추석에 조상을 위해 제사를 올렸다.유리왕도 재위 18년이 되는 해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그런데 제사상에 올린 돼지가 달아나 버려 탁리와 사비가 붙잡아 뒷다리를 끌고 왔다.변고는 여기서 생겼다.돼지가 상처 입은 것을 본 왕이 붙잡아 온 사람들을 생매장시켰던 것이다. 그 뒤에 왕은 병환에 들어 시름시름 앓아 누었다.용하다는 무당이 와서 모두가 생매장 당한 두 사람의 장난이니 제를 지내라고 했다.그래서 제를 지내기로 하고 돼지를 붙잡아 왔으나 또 달아나고 말았다.이 소식을 들은 사물택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돼지를 가져와 바치고 고구려에 귀속되기를 간청했다.유리왕은 이에 응하고 사물택이 자리했던 집안으로 도읍을 옮기고 도읍지 이름을 국내성으로 불렀다. ○단오·추석때 제사지내 고구려는 유리왕의 뒤를 이은 동천왕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삼국이 정립하는 기회를 타서 위나라 변경을 쳐 승리를 거듭했다.그러자 위나라 진수요동의 대장군 모구검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이 때에 고구려 충신 뉴유가 투항하는 척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칼로 찔렀다.적은 혼란에 빠졌다.고구려군은 곧바로 적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뉴유의 공적을 기린 비석은 청나라 연호로 광서30년(1904년)도로공사 때 발견되어 현재 요녕성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고구려는 국내성에 자리를 잡으면서 수성을 쌓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한 그 해에 환도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본디 이름은 위나엄성이다.자연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이 산성은 한사람의 군사가 만인을 당해낼 수 있는 지세였다.청태가 퍼렇게 낀 성벽을 기어올라 산성에 당도했다.천군만마의 발굽소리가 요란했을 산성에는 인마의 그림자조차 없고 잡초만 우거졌다. 그 천군만마가 마셔도 끄덕없었다는 음마만도 물이 말랐다.당시 80㎡의 못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물 한방울도 볼 수 없다.음마만에는 연꽃이 자라고 물고기가 노닐었다니 당시는 대단히 큰 연못이었을 것이다.대수신왕 11년(서기 28년)요동태수가 황제 몰래 고구려를 쳤을 때 이 연못에서 잡아온 잉어가 적을 퇴각시켰다는 사연이 있다.을두지가 묘책을 내어 잉어를 연잎에 싸가지고 성밖의 병졸들을 대접했더니,적이 성안에 먹을 것이 많은 줄로 착각한 나머지 퇴각했다는 이야기다. 환도산성에서 내려와 고구려 사람들이 묻힌 묘역을 찾았다.집안시에는 현재 7천8백여기의 무덤들이 널려있다고 한다.국내성시대를 살았던 역대 임금들의 무덤이 있는가 하면 고관대작을 포함한 귀족들과 평민들의 무덤이 공존하고 있다.고구려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이들 무덤은 더러 전쟁에 파괴되고 심한 도굴을 당했다.집안시 마선향의 서천왕릉은 2만명 군사를 이끌고 온 연의 모용간이 파헤쳤으니 파괴의 역사는 참으로 길었다. ○광복 이후 도굴 극심 1945년 광복 이전의 도굴은 특히 심각했다.이 무렵의 도굴에서 우연히 횡재를 만난 한씨라는 가난한 농부의 에피소드가 있다.그는 통화시 기차역 뒤쪽에서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느날 아침 집 부근에서 버들 광주리를 진 당나귀 2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풀로 덮은 광주리를 헤쳐본 그는 깜짝 놀랐다.그속에는 온갖 골동품이 가득했다. 순박하기 짝이 없는 농부는 임자가 나타나길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농부는 하는 수 없이 물건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그래서 광복이 되기 이전까지는 1백㏊의 땅에 1백간짜리 집과 머슴 20명을 두고 살았다.그 골동품은 산동땅에서 집안으로 이사와 살던 전씨 형제의 도굴품이었다.전씨 형제는 도굴품을 당나귀에 싣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이를 알고 뒤쫓아 온 집안의 건달왕개에게 통화 왕바령에서 덜미를 잡혔다.왕개는 전씨 형제에게 맞아 죽었으나 골동품을 실은 3마리 당나귀 가운데 2마리가 달아나 한씨 집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 주식 재증여 논란/재벌들 잇단 「세 회피」 수단 활용

    ◎2세에 준 주식 값 떨어지자 취소… 다시 줘/한보·우성사료 회장 등 3명 2∼20억 절세/6개월내 신고땐 가능… 현행법 개정의견 많아 「절세인가,방치된 탈세인가」 최근 대주주들이 2세에게 주식을 증여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증여를 취소하는 방법으로 거액의 증여세를 줄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그러나 현행 법으론 이를 막을 길이 없어 결과적으로 「국고손실」만 가져오고 있다. 우성사료의 정인범 회장과 정인호·정인석 부회장은 93년 우성사료 주식 18만주를 아들등 18명에게 1만주씩 증여했다.그러다 주가가 떨어지자 지난 해 1월 증여를 취소,4일 뒤에 주식을 재증여했다.최초증여 당시 우성사료 주식은 주당 1만9천6백원이었으나 재증여 때는 1만4천원이어서 10억원 이상 증여세를 절감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도 지난 1월 아들 4형제에게 한보철강 주식 1백95만주와 상아제약 주식 27만주를 증여했다가 5개월여만인 지난달 7일 돌연 취소했다.이 기간 한보철강주는 주당 1만3천3백원에서 1만1백원으로,상아제약주는 2만4천6백원에서 1만8천5백원으로 떨어졌다.정회장이 이 주식을 재증여하면 20억원 이상 절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충남방적 이종성 회장 역시 주식 재증여방식을 활용,증여세 1억8천8백만원을 절감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반대 케이스.지난 5월 아들과 딸에게 한국자동차보험 주식 88만1천9백주를 증여했다.이에따라 31억원의 증여세를 물게 됐는데,증여 당시 6천5백원이던 주가가 최근엔 1만7천원선으로 올라 세금을 크게 절감한 셈이 됐다. 주식증여는 대주주로선 횡재와 다름없는 절세방법이 됐다.이처럼 증여­취소­재증여 사례가 빈발하는 것은 현행법상 증여후 6개월 이내에 신고하면 되고,기간내 취소가 가능하기 때문.세무당국으로서도 사적계약의 원칙상 증여취소를 금지할 수 없고,6개월이란 기간도 상속세법에 근거한 것이어서 손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94년 이전에는 증여를 했다가 취소하더라도 증여로 간주,세금을 매겼었다』며 『그러나 사적계약 원칙을 중시해 이후 관련법을 개정,6개월 이내에는 취소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6개월이지난 뒤에도 세액결정이 안되면 증여를 취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그러나 가격변동이 심한 주식의 증여를 증여후 6개월 이내에서 마음대로 취소할 수 있게 하고 증여­취소­재증여를 「무한 허용」함으로써 대주주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부를 세습시킬 수 있게 한 것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주식은 하루에도 몇%씩 값이 등락하는데다 장례나 상속인의 채무·채권파악 등 절차에 시일이 걸리는 상속과 달리 증여대상이 확실해 그만한 시일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이같은 행태는 아직은 물론 「허용된 절세행위」다.그러나 이것이 느슨한 규정 탓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손질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 「낙법­놀이·33」으로 본사제정 공초문학상 수상 홍윤숙 시인

    ◎“나이 70에 받는 복된 선물 기뻐요”/47년 등단… 인간의 아픔 보듬어 안는 자세로 시작 『나이 칠십 먹어 새롭게 상을 타려니 공연히 쑥스럽네요.하지만 제 문학 일생에 주시는 복된 선물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선정된 홍윤숙(70)시인은 마냥 기쁘기보다 옷 매무시를 가다듬게 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지난 47년 스물셋 나이로 시단에 데뷔,끊일듯 끊일듯 이어온 문학과의 인연이 어느새 50년이 다 되었다.문학과 함께 젊은 날과 중년을 보내고 문학에 기대 황혼을 맞게 된 셈.오랜 나날의 두터운 온축으로 시인은 이제 기쁨과 슬픔에도 큰 진폭으로 흔들리지 않는 무심의 영토에라도 들어선듯 하다. 『물론 상을 타면 좋기 한량없지요.하지만 우리 문학하는 사람 가운데 상받으려고 글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우리는 목소리가 우러나는 대로 그저 시집을 쌓아가는 것 뿐이고 그러다 찾아오는 상이란 뜻밖의 횡재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인의 시세계는 수굿하고 초연한 평상시의 모습과 전혀다르다.그의 시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픔을 누구보다 크게 앓으면서도 흠집난 그 삶을 결국 품어안고 마는 「치열한 사랑」의 세계다.시인의 이런 실존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기는 이번 수상작「낙법­놀이·33」도 마찬가지.사람된 삶의 아픔을 터득했기에 「돌무더기 무너지는 아슬한 석양의 벼랑에 서서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를 아름답게」 느끼는 역설이 가능한 것. 『젊을 때는 사는 일에 허덕여 나이 먹고 났을 때를 챙겨볼 여가가 없지요.그러나 막상 인생의 하류에 당도하고 보니 그때 그렇게 허둥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회한이 절로 밀려오데요.담담하게 고백하는 심정으로 시를 썼어요.인생에 자신만만한 구두점을 찍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를 포함,놀이 연작시 65편 등 78편을 수록한 시집 「낙법놀이」는 「낙화」의 아찔한 절망감과 싸워온 시인의 삶의 자취다. 이처럼 지난날을 회한속에 돌아보는 시인이지만 젊은 작가들에겐 너그러운 점수를 주고 싶단다. 『요즘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나 소설들을 나름대로 뜻있다고 생각합니다.문학이란 본디 다양성을 먹고 자라는 것 아니겠어요.하지만 마지막엔 문학의 본원적인 자리,원형으로 돌아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써온 정통시만이 유일한 원형은 아닐테지만 결국 문학도 고향을 꿈꾸니까…』 최근엔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을 재미있게 읽었다고.후배의 작품에 대해 『단순한 듯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소재와 시각이 산뜻했고 필치도 신선했다』고 촌평한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탤런트를 갖고 있고 우연한 계기로 이것이 싹트면서 삶의 길을 결정하는 것 같다』는 시인은 『지나고보니 나도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우연에 더 큰 부채를 진 것 같다』고 문학에 꿈을 품었던 스무살 무렵을 에둘러 회고했다. 『아무튼 문학이 없었으면 뭘 먹고 살았을지 막막해요.글쓰는 것 빼고는 재주라곤 없었으니….다시 태어나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겠지요』 「독실한」이라는 단서를 접고 카톨릭 신자라고 밝히는 홍시인은 『늘 회의하고 구속에 투덜거리는 「불량」신앙인이었다』면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묻고 싸웠기에 오히려 절대자에게 한발 더 다가갈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욕심이 있다면 그건 허욕일테지요.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쓸수있는 데까지 쓸 생각이에요』 무성했던 잎을 떨쳐버리고도 거칠 것 없이 곧게 선 겨울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시인의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다. ◎심사평/40여년 쓴 작품서 묵은 포도주 향기/수상작 「낙법…」뛰어난 상상력 발휘 시인 홍윤숙이 우리 시단에 등장한 것은 19 50년대 중반기로 알려져 있다.그러니까 이 시인의 시력은 줄잡아도 40년이 넘는다. 한 시인이 오랜 세월 시작활동을 했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긍정적인 각도에서 볼때 그의 시는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좋은 방향을 가질수 있다.그러나 이런 경우 끼어 들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될 수 있다.자칫 그의 시가 안이해질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그림자가 그것이다. 시인 홍윤숙은 후자와 같은 우리 생각을 문자 그대로 기우에 그치게 하는 경우다.오랜 시력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포착하는 그의 눈길은 여전히 매섭고 맵짜다.또한 그것을 도마위에 올려 요리하는 손길 역시 날래고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수상작으로 추거된 「낙법놀이」에는 한국시단이 가져야 할 좋은 시의 또하나 자격요건이 내포되어 있다.널리 알려진대로 현대에 와서 시는 서정시를 가리킨다.그런데 서정시는 그 속성이 사적인 세계를 노래하는 것과 함께 형태가 축약적인데 있다.이런 속성 때문에 서정시는 자칫 편향된 노래가 되기 쉽고 소수 호사가들의 애장품으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그런데 시인 홍윤숙은 그런 부정적 가능성을 정서의 보편성 확보로 극복했다.또한 신선한 시상제시로 그의 시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될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낙법­놀이·33」에서 시인 홍윤숙은 모과향기의 「낙하」를 우리 자신의 한계의식과 일체화시키기에 성공했다.이 기법,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번 수상을 축하한다.
  • 미술품 양도세(외언내언)

    미국 단편작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화가 못지않게 우리사회에서 지난 50∼60년대에 미술품 창작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끼니걱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같다.다른 예술가들의 처지도 좋지는 않았지만 특히 화가들은 작품의 판로가 별로 없었으므로 유달리 생계유지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당시로서는 돈을 가장 많이 벌고 튼튼한 기관인 각 은행에서 가난한 화가들의 작품을 떠맡다시피 헐값으로 사들여 널찍한 은행장실이나 객장 또는 복도 곳곳에 걸어놓곤 했었다.구입명분은 금융산업이 예술창작활동을 뒷받침해 우리 문화수준을 높인다는 것이었다.꽤나 오랜기간 은행건물벽에 버려지듯 매달려 있던 이들 그림은 70년대말쯤 해서 명작의 진가를 발휘한다. 부동산투기등으로 양산된 졸부들이 대거 미술품으로 몰려 값을 마구 올려놓으며 사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전반적인 국민소득이 급증하고 예술품감상 등의 여유시간을 즐길 정도로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된 것도 물론 그림값을 오르게 한 요인이다. 어떤 은행간부는값이 엄청나게 뛴 자기사무실의 그림을 집으로 옮겨 걸었다가 구설수로 다시 갖고 오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은행들은 보유자산이 크게 늘어나는 횡재를 한 셈.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의 오늘에 있어 이제 우리사회의 웬만한 중견화가들이라면 가난과는 거리가 멀다.그림값이 우편엽서 한장크기 정도인 호당 1억원짜리도 있다고 한다.그래서 재벌급인사들은 비싼 그림이나 조각·골동품 등을 투자대상으로 삼아 매매하거나 탈세목적의 상속·증여를 관행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실시됨에 따라 이러한 미술품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세무당국이 양도소득세를 물릴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지만 대부분이 음성거래여서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 현중 「우리 사주」 횡재 눈앞/상장되면 1주당 8만원 이익 예상

    현대중공업의 「우리사주」를 소유하고 있는 울산지역 현대계열사 직원들이 부푼 꿈에 사로잡혀 있다. 정부와 현대간의 냉랭했던 분위기가 풀리면서 수년째 연기되어온 이 주식이 조만간 상장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92년 현대자동차등 8만6천여명의 현대그룹 계열사 직원들에게 1주당 1만2천원으로 현대중공업의 전체주식 가운데 57%인 2천4백만주를 「우리사주」형식으로 분배했다. 이에따라 이들 주식이 14일 현재 장외거래 가격이 주당 6만원선인데다 상장될 경우 최소한 10만원 안팎에서 거래될 것으로 증권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 30주에서 최대 3만주까지 보유한 우리사주 8만6천여명은 3백만원에서 3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상장주식에 대한 세금과 배분가격 1만2천원을 제외하더라도 주당 8만원정도의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 고향가는 길,빠르고 즐겁게(사설)

    오늘부터 귀성전쟁이 시작된다.일요일까지 알맞게 연결된 황금연휴가 토요일인 오늘부터 비롯되는 것이다.객지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설귀향은 효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기회다.고향가는 길이 무사하고 고향에서 모신 조상의 음덕으로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되어야 마땅하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 고향길에는 불행도 널려있다.더구나 올 설날씨는 많이 추우리라는 예보도 있었다.좋은 명절에 고향을 찾는 이 아름다운 명절풍속이 불행의 원천이 되지않게 하기 위해 올해만은 각별한 조심성이 따랐으면 좋겠다.모든 실패는 사람이 만드는 일이다.그러므로 노력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도 고향을 찾아야 하는 불가피한 귀성객이 아니고 행락길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그 생각을 한번 다시 검토하기 바란다.실제로 조상 계신 고향으로 설을 쇠러 떠나는 고달픈 객지살이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또한 아주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횡재처럼 다가온 연휴를 행락으로 즐기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해외로 나가는 휴가여행객이넘쳐서 진작에 항공표 예약이 완전히 끝났다는 보도가 있은지도 한참 되었다. 해외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 여행이라도 즐기려는 연휴인구가 오늘부터 고속도로와 국도를 메우는데 가세할 것이다.이런 여행은 이번만은 좀 사양했으면 좋겠다.놀기에 들떠서 함부로 차를 몰다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도 많지만 모처럼 고향길에 나선 사람들을 복잡하게 해주고 더러는 불행으로 희생시키는 원인도 제공하게 된다. 최근에 우리는 이웃나라에 생긴 재앙을 보았다.이런때에는 사람은 겸허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놀이길에 탐닉하는 일을 자제하는 것은 그 한가지 방법이다.또한 부득이 가야 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현명하다.귀성전쟁을 풀기 위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제도를 정착시키려는 국가적 노력에 부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그것이 최선이다. 꼭 차를 가지고 나설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비를 권한다.오늘날은 주먹구구로 대충대충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교통정보에서 일기예보까지알려고만 들면 섬세한 정보들이 마련되어 있다.미리 대비하면 한 만큼 위험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전문화를 성숙시키는 일이다.갓길운전,난폭운전,마구잡이 속도광적인 충동운전에 심지어 음주운전까지 서슴지않는 무모함이 교통사고 세계 제일의 부끄러운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다.그게 유난히 명절때면 심하다.이 좋은 명절을 불행이 낭자하게 얼룩진 날이 되도록 하는 데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는 노력을 제발 이번만은 효과있게 실천해보자.
  • 흑룡강 호랑이 보호에 6만불 내놔/워싱턴 이경형(특파원코너)

    ◎세계동물재단/클린턴 방러 맞춰 관심 높이기 클린턴미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에 맞춰 한국호랑이와 동종인 「흑룡강 호랑이」의 보호운동이 전개되고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있는 세계야생동물재단(World Wildlife Fund)은 러시아의 극동국경인 아무르강(흑룡강)유역에 사는 아무르 호랑이의 보호자금으로 금주중 1차로 6만달러(약5천만원)를 러시아정부당국에 보내기로 했다. 이 재단이 12일부터 시작되는 클린턴의 러시아방문기간에 이같이 「흑용호」(아무르 호랑이)보호자금을 보내기로 한것은 클린턴­옐친 미·러시아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적 희귀종으로 근년에 들어 극성맞은 밀렵꾼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아무르 호랑이는 사실상 멸종한 한국산 호랑이와 혈통이 같은 시베리아 호랑이다.이 흑룡호는 지구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호랑이로 수컷 큰것은 3백60㎏이나 되고 다른 어떤 호랑이보다 사나우며 얼굴의 흰 반점부분이 큰것이 특징이다. 이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극동러시아지역에 약 3백50마리의 아무르 호랑이가 서식하고있는데 구소련 붕괴후 러시아의 개방화에 따라 국경 출입이 자유로워지자 고가인 호랑이가죽을 노리는 밀렵꾼들이 몰려 마구잡이로 사냥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아무르강 일대는 아시아의 아한대산림이 시베리아의 침엽수림을 만나는 지점으로 북미산 참나무로부터 한국산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식물군이 형성돼있다.이에따라 이 지역엔 순록,히말라야 흑곰을 비롯한 다양한 곰류와 표범,호랑이등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있는데 세계에서 이곳만큼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 살고있는 지역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92년말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 일대에서 성행하고있는 밀렵실태를 현지르포로 보도한 적이 있다.당시 보도에 따르면 호랑이 한마리값이 러시아인들의 연간 평균수입의 20배가 넘는 1만달러(한화 8백만원)로 밀렵꾼이 한마리만 잡으면 「20년 벌이」의 횡재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덤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극동국경이 개방되면서 중국,대만,한국등에서 호피나 호골,호육의 수요가 늘어나 아무르강 유역 중심지인 테르니일대에는 밀렵시장이 번성하고있다. 세계 1백40개국에 대한 야생동물보호운동을 전개하고있는 이 재단이 아무르 호랑이보호를 위해 1차로 보낼 이 6만달러는 러시아정부 2개 밀렵단속반의 장비 지원금이다.러시아정부는 재정이 어려워 이들 단속반에 차량등의 필요 장비를 지원하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재단측은 아무르호랑이 보호기금을 마련하기위한 모금활동을 계속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 벌초중 산삼 13뿌리 캐 횡재(조약돌)

    ○…지난달 1일 선산의 성묘에 나섰던 최재호씨(48·의류상·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침산리 27)가 50∼70년생 산삼 8뿌리와 20∼30년생 7뿌리등 13뿌리의 산삼을 캐 화제. 최씨는 이날 추석을 앞두고 고향인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석문산에 있는 부친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마친 뒤 부근에서 부인 김정순씨(47)와 오미자열매를 따다가 산삼을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 변화하는 사회(통독 3년… 장벽은 아직도:4·끝)

    ◎우경화 추세속 외국인 테러 잇따라/구동독 땅 재산분쟁으로 갈등 심화 독일인들은 지금도 인종주의라는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어쩌면 히틀러 통치시절 인종주의의 쓰라린 경험을 맛본 독일인들로선 당연한 반응인지 모른다.그런 가운데 최근 독일에선 점차 세를 얻어가고 있는 「과거로의 회귀」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이른바 신나치주의가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만큼 독일에선 지금 사회전반의 우경화추세속에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달 함부르크 시의회선거는 극우정당의 세력신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지난 91년 선거에서 1.2%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공화당과 독일민족연맹 등 2개 극우정당이 이번엔 7.6%의 지지를 얻어 2년새에 6배가 넘게 신장된 세를 과시했다.함부르크 선거결과가 보여준 극우파의 세력신장및 사회의 전반적 우경화는 통일 4년째로 접어든 독일이 겪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변화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아직도 외국인 혐오에 따른 잇따른 테러사건이 갖는 문제의 심각성을 그리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것 같다.쾰른(지난해 11월)에서의 방화사건 이후 독일 전역에서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랐지만 외국인에 대한 테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독일인들이 『테러를 저지르는 자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통일 4년째로 접어든 오늘의 독일사회는 갈등과 반목으로 가득차 있다.동·서독인간의 대립,고용주와 근로자간의 갈등 등 여러 불화의 요소들은 독일사회 구석구석에서 쉽게 찾아진다.이같은 갈등은 지금 독일사회에 범죄증가와 사회불안등 많은 부작용들을 빚어내고 있다.분출구를 찾아헤매던 이같은 갈등이 통일후 찾아온 경기침체와 겹쳐 외국인들을 희생양으로 한 외국인혐오증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나치주의의 대두와 함께 지금 독일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구동독지역의 부동산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이다.1백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통일이 되자 빼앗긴 옛 재산을 되찾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지난 3년간 주택·농토·공장 등 2백60만건이 넘는 부동산소유권 반환요구소송이 제기됐는데 이 가운데 해결된 것은 겨우 22%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5년의 분단기간 10배이상 뛴 부동산가격으로 빼앗긴 옛 재산을 되찾으려는 원소유주들은 갑자기 횡재를 한 격이 됐지만 문제는 하루아침에 오랜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동독지역의 현소유주들이다.원소유주들이 부동산을 반환받거나 반환이 불가능할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데 비해(1백25억마르크의 보상기금이 조성되는 96년부터 최고 95만마르크까지 보상이 가능하다) 날벼락을 맞게 된 구동독지역의 현소유주들이 보상받을 길은 어디 한군데도 없는 것이다.이들에게 보상을 해줄 책임이 있는 구동독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이들을 도외시하고 있기는 통일독일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문제가 아니라도 구동독지역의 부동산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구동독지역에의 투자유치를 저해하는 최대장애요인으로 등장,독일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독일정부는 이같은 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20억마르크의 투자가 사라져버리거나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게다가 반환은 불가능하고 보상만 해줄 수 있는 구소련점령군에 빼앗긴 재산에 대해서도 콜정부는 구소련이 이를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고 말했으나 최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다임러 벤츠사가 1천2백만평의 토지반환소송을 내는등 구소련군에 압수된 재산의 반환소송이 줄을 잇고 있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구동독지역의 부동산소유권을 둘러싼 다툼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모든 당사자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마련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지금까지 제기된 소송들이 해결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으며 이 문제의 공정한 해결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 예탁금 하루 1천억 “끓는 증시”/실명제 7일… 주가 왜 뛰나

    ◎“합법적 돈세탁장” 뭉칫돈 몰려들어/활황장세 지속… 7백50선 돌파 관심 실명제 이후 일주일간의 증시는 전문가나 증권사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 넘었다. 이들은 최소한 3∼4일간 6백50선까지 폭락한 뒤 소폭의 반등과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었다.또 증시에 있던 검은돈이 실명제의 햇살을 피해 빠져나가면서 시장에너지가 급격히 소진될 것으로 봤었다. ○전문가들 예상 빗나가 그러나 이틀 폭락후 16일 반등세로 돌아선 증시는 연일 밀려드는 고객예탁금과 각종 풍문에 힘입어 무서운 기세로 달아오르며 실명제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대우·대신·럭키 등 대형 증권사의 전국 지점망을 통해 1천만∼3천만원 단위의 돈이 증권사마다 매일1천억원 이상씩 밀려들고 있다.지난 한달동안 1조원이나 빠져나갔으나 16일엔 1천2백77억원,17일 1천1백98억원 등 연일 1천억원 이상씩 폭증,뜻밖의 「돈풍년」을 맞고 있다.이같은 예탁금 증가로 증권가 일각에서는 경제상황이나 경기변동과는 상관없이 돈에 따라 장이 좌우되는 금융장세가 도래하는게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증시로 돈이 몰리는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실명제 직후 정부가 표방한 증시안정화 의지가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를 한껏 부풀게 했다.또 머리가 비상한 측에서 생산한 루머로 추정되는 화폐교환설이 13일부터 증시주변을 맴돌며 세를 더하는 것도 모험성이 강한 투자자들에게는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시세차익 비과세도 한몫 특히 3천만원이상 현금 인출시 국세청 통보라는 그물 때문에 증시에 들어온 돈은 빠져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여기에 증권감독원이 일찌감치(14일) 주식 자체를 현물로 인출하면 3천만원이 넘더라도 국세청에 통보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린것도 양도차액 과세 면제방침과 더불어 투자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금으로 사장할바에야 그래도 수익성이 있는 주식에 투자하는게 유리하며,현물인출이 액수에 상관없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산망 미비의 허점을 이용,증권사마다 구좌를 개설한 뒤 소액으로 나눠 입금시킨 뒤 현물로 인출하면 합법적으로 「돈세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최근 소액의 돈이 기존 계좌를 활용,전국의 지점망을 통해 유입되는 현상을 『정치권이 지구당에서 은밀하게 굴리던 검은자금이 세탁을 위해 소액으로 분할돼 몰려든다』는 추측까지 낳고 있다.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맞은 증권가는 요즘 향후 장세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주가가 7백50선 이상으로 치솟는 폭등은 없겠지만 거래만은 지난 5·6월의 활황장세에 못지 않을 거라는 게 공통된 전망이다. 대신증권의 이현재투자분석부장은 『차·가명계좌와 대주주의 위장분산 주식이 매물부담으로 남아있고 향후 경기가 당초 예상을 밑돌 것이라는점이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제한 뒤『그러나 새로 유입되는 자금이 기존계좌를 활용한 것으로 볼 때 주식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고객이 몰려든 만큼 7백선내외에서 박스권을 형성하며 금융장세의 양태를 띨 가능성이 짙다』고 내다봤다.
  • “비옷은 필수” 특수노린 노점상 등장

    ◎주제가 코리아나의 「그날은」 인기 모아/단체개찰구 혼잡… “고지식한 운영” 빈축 ○공연 갑자기 취소 ○…대전엑스포 개막이후 연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10일 강풍을 동반한 태풍 상륙소식이 전해지자 비옷과 우산이 박람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준비필수품목으로 등장.또 회장 남문 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5∼6명의 비옷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태풍특수(?)를 누리기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형형색색의 우산물결과 단체관람객들의 개성있는 비옷차림이 엑스포현장을 수놓았다. 10일 교회수련회차 온 2백여명의 초중학생 단체관람객들은 일행을 잃어버릴까봐 푸른색 비닐을 몸에 두르고 노끈으로 기차놀이를 하면서 입장하는가 하면 40명의 유아원 미술학원생들은 커다란 비닐로 관람객 인파와 비를 피해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해 한바탕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우중관람이 계속되자 지난8일 사고를 낸 모노레일열차가 관람객들에게 기피 1호시설로 등장.이에따라 모노레일열차는 개장첫날 2백∼3백m씩 줄을 서던 최고인기종목에서 불과 30∼40명만 찾는 비인기종목으로 급전직락.한 관계자는 『비가 내려 일시적으로 관람객이 줄어든 것』이라며 애써 자위하는 모습. 한편 이날 조직위측은 태풍대비책의 하나로 예정된 각종행사를 갑자기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다.취소된 공연은 갑천변에서 열릴 계획이던 갑천수상제와 수상영상쇼를 비롯,거리의 볼거리공연과 축제행렬등 4개. ○「일반」13곳 한산 ○…태풍의 영향으로 일반관람객보다 단체관람객이 많이 몰린 10일 각 출입구에는 「단체전용출입구」를 더욱 늘려 달라는 요구가 잇따랐으나 조직위측이 원칙만을 고수하는 바람에 큰 혼잡을 빚었다.이날 상오9시30분쯤 서문의 경우 모두 19개의 개찰구 가운데 4개의 단체전용출입구에만 인파가 몰렸을뿐 나머지 13개 출입구는 텅빈 상태로 대조를 이뤘다.강원도 양구에서 단체로 왔다는 관람객 김평목씨(41)는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해도 될것 아니냐』며 머리를 갸우뚱. ○…세계적인 인기보컬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대전엑스포주제가 「그날은」이 대히트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날은」은 박건호 작사,이호준 작곡으로 환경보호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과 우리의 미래를 조명하는 노랫말에 잔잔한 곡조의 노래. ○무료투숙 “횡재”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대덕과학문화센터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예약한 2백여명의 투숙객들은 롯데호텔측의 준비부족으로 1주일 동안 하루 8만원짜리 방에 무료로 투숙하는 횡재를 낚았다. 게스트하우스를 위탁경영하는 호텔롯데 예약과의 한 관계자는 『원래 지난7일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커피숍을 제외한 부대시설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개관일이 부득이 14일로 늦춰짐에 따라 이 기간동안 예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료로 개방하기로 했다』며 『이 기간동안 무료로 이용하는 투숙객들은 하루 평균 15개실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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