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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공부 잘하는 방법, 동기부여를 하라

    영어공부 잘하는 방법, 동기부여를 하라

    다양한 영어학습법이 시중에 판을 치고 있다. 학습지에서부터 영어학원, 전화영어, 인터넷강의 등 수많은 학습방법을 다 거쳤는데도 제대로 영어공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방법에 문제가 없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 좋다. 공부를 잘하려면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을 잘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동기부여, 목적의식이 없으면 학습의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쉬운 예로 기말고사에서 평균 90점 이상을 받아오면 OO을 사주겠다는 등의 부모님 약속은 아이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영어공부에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이 동기부여는 성취 가능한 범위 안에 설정하여 자주 갱신해야 학생이 지치지 않는다. 처음부터 토익 900점을 설정할 것이 아니라 토익 600점에서, 700점대, 800점대로 점차 목표 설정을 높게 하는 것이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학생, 어학연수를 갈 여지가 없는 직장인, 취업 대비 스펙용 토익스피킹, 오픽을 준비하는 대학생 등 영어회화 공부가 필요하다면 영어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자. 특히 전화영어나 화상영어교육은 교육전용 화상솔루션(전자칠판)과 인터넷 전화서비스를 이용하여 영어회화를 배우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제대로 된 목표설정과 성취감 고취를 통해 실제 어학연수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전화영어교육 전문 띠영어의 길병대 대표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무술의 색깔 띠 시스템에서 착안하여 beginner, intermediate와 같은 기존의 회화 등급명칭 대신 흰띠, 노란띠, 검은띠를 도입했다”며 “기존 화상영어 회화에서는 어느 정도 하다 실력이 늘지 않고 그만두는 학생들의 동기 부여에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등학교 영어가 마지막 영어였던 직장인, 대학생 및 성인들을 위해 단기 영어 말문트기 집중과정인 ‘고.마.영(고등학교영어가 마지막 영어)’을 내년 1월 출시 예정에 있다. 이 과정은 복잡한 문법보다 영어 회화를 위한 원어민들의 말하기 패턴과 전치사의 이해를 집중적으로 학습하며 영어 말하기 능력과 감각을 빠르게 키울 수 있는 과정이다. 길대표는 “유학원 연계 할인 혜택이 준비되어 있어 어학연수 준비생들에게 더욱 효율적인 교육”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어머니가’ 펴낸 박청수 원불교 교무 “어머니 가르침으로 세계인의 엄마 됐죠”

    ‘어머니가’ 펴낸 박청수 원불교 교무 “어머니 가르침으로 세계인의 엄마 됐죠”

    “시집, 그까짓 시집 무엇하러 갈 것이냐? 다른 길이 있는 줄을 모르면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을 안 갈 도리가 없지만, 더 좋은 길이 있는데 무엇하러 시집을 갈 것이냐? 너는 커서 꼭 교무(원불교 교역자)가 되어라. 기왕이면 한평생 많은 사람을 위해 살고 큰 살림을 해라.” ●“침묵·명상속 마침표 잘 찍을 것” 원불교 박청수(74) 교무가 위와 같은 가르침을 남긴 어머니에 대한 책 ‘어머니가 가르쳐준 길’(한길사 펴냄)을 내고 28일 기자들과 만났다. 책에는 그에게 “나는 외손주를 등에 업고 싶지 않다. 사위 절도 받고 싶지 않다.”며 큰일을 하라고 등 떠민 어머니(김창원, 2008년 작고)와 50여년간 55개국을 돌며 무지, 빈곤, 질병 퇴치에 힘쓴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처럼 조근조근 담겨 있다. 박 교무는 “컴퓨터를 할 줄 몰라 직접 쓴 원고 내용이 토씨 한 자도 바뀌면 안 된다고 출판사에 강조했다.”며 “독자는 책 한 권을 설렁설렁 보는 수도 있지만 (올 1월 작고한) 박완서 선생이 말씀하셨듯 필자는 다 피로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서울 원불교 강남교당을 은퇴하고 경기 용인시 사암리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 혼자 머무는 그는 “이번이 마지막 책이다. 앞으로는 침묵과 명상 속에서 인생 마침표를 잘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무의 봉사활동이 빛나는 것은 종교와 정치, 국적 등 모든 경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20여년간 봉사와 모금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법정 스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또 천주교 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에서 31년간 나환자를 도왔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따지지 않고 많은 종교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종교 협력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노벨상 후보 오른 ‘한국의 테레사’ 캄보디아와 히말라야에 병원을 세우고 탈북청소년을 위해 학교를 만들 때도 원불교의 교리를 알리기보다는 그저 “엄마 같은 마음으로” 달려가서 도왔다. 언제부턴가 이름 앞에 ‘한국의 마더 테레사’란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지난해에는 노벨위원회의 유일한 아시아인 선임자문관인 한영우 박사가 스웨덴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좋은 소식이 있다. 한국인 수상 가능 대상자가 한 명 있다.”며 박 교무가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음을 알려줬다. 박 교무의 어머니는 27살에 홀로 되어 자매를 모두 원불교의 정녀(貞女)로 길러냈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딸들이 ‘세계인의 엄마’가 되도록 가르친 여성이었다. 박 교무는 “난 세계적인 사람”이라며 “20년간 ‘민병철 생활영어’ 테이프로 공부해 비록 쓰지는 못하지만 영어로 자유로운 회화와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50년을 하루같이 봉사를 일로 삼고 했더니 작은 것이 커지고 숨은 게 드러났다.”는 게 박 교무의 얘기다. 책에는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박완서 작가 등 그의 봉사를 도운 여러 고마운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원어민 교사보다 한국인 교사 선호”

    일선 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교사에 대한 만족도가 한국인 영어교사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영어 실력이 뛰어난 한국인 교사를 더 선호했다. 서울시교육청이 27일 공개한 ‘서울영어공교육강화정책 성과분석 및 발전방안 연구’에 따르면 학부모·학생·교사 모두 현행 원어민 영어보조교사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서울의 초·중·고교 1282곳의 재학생(2만 8761명)과 학부모(1만 1980명)·영어교사(2406명)·원어민 영어보조교사(595명) 등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와 인터뷰 등을 하는 방식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 학부모의 54.2%, 학생의 60%는 원어민 영어보조교사가 영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학부모들은 바람직한 영어교사의 유형으로 ‘영어회화 실력이 뛰어나고 수업을 잘하는 한국 교사’(62.2%)를 가장 많이 선택해 원어민 영어보조교사(26.9%)에 비해 월등히 선호도가 높았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인사담당자들이 말하는 고졸, 이것만 있으면 금상첨화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고졸 채용에 관심을 쏟으면서 과거보다 고교 졸업생들의 대기업 취업문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에 맞춰 실업계 고교나 마이스터고 등에서도 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등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들을 배출하는 추세다. 다만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 수준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고, 조직 생활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는 인성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무기술직의 경우 어학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조언도 하고 있다. 25일 재계 등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이 채용하는 고졸 인원은 기술직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실업계 고교나 마이스터고 출신들을 많이 뽑는다. 통신업계 역시 전통적으로 고졸 취업자들을 많이 채용하는 편이다. 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서비스의 설치 및 운용은 일일이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T는 올해 300명 정도 채용한 고객서비스직군의 대부분을 고졸 출신으로 채웠다. 이들은 고객 가정의 통신장비 설치와 수리, 통신상품 판매 등을 담당한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관리사나 PC정비사 등 해당 분야 자격증과 더불어 운전면허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다만 통신 분야의 기술발전 속도는 다른 업종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만큼, 학교 교육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KT 인사담당자는 “실업계 고교 등의 교육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적용되는 기술이나 장비 수준에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교육은 기술 변화에 후행적인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학교에서도 현실과 교육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사무기술직이나 관리직 등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사실상 초대졸이나 대졸 사원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어학 능력과 기본적인 사무직 업무 수행 능력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최근 전국에서 100명의 사무관리직 고졸 사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진행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최종 합격자를 뽑을 때 수학능력시험 성적에 상당한 비중을 둘 예정이다. 대우조선 인사담당자는 “지원자 중에서는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 국립대 진학이 가능한 수능 2~3등급이 많고,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1등급 정도의 수능 성적을 받은 학생도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사무관리직은 어학 능력도 필수적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사무직은 세계 각지의 법인이나 주재원 등으로 활동할 여지도 상당한 만큼, 고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영어 회화 등은 기본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산업부 종합 douzir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인생을 살면서 간이 안 맞으면 섬으로 간다. 그런데 향기가 그립다면 어디로 갈까. 겨울의 언덕을 넘으려는 듯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런 까닭에 쌀쌀했으나 그윽했다. 비탈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고고한 사색의 향기를 뱉어냈다. 이리저리 뒹구는 그것들이 황량하게 비어 있는 마음의 곳간을 조금씩 채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간송미술관은 간송이 33세 때 자신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1966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서화를 비롯해 자기, 불상, 전적(典籍), 와당 등 국보급 문화재 14점과 보물급 고서화 12점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간송은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평생 민족 문화재를 모으는 데 힘썼다. 또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아 오늘날까지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그런 이곳에서 지난달 겸재의 ‘어초문답’, 신윤복의 ‘미인도’ 등 조선시대의 풍속인물 그림을 내걸어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채워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으로 전시 기간 내내 장사진을 이뤄 다시 한번 국민 미술관임을 입증했다. 이렇게 우리 문화의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뭐니 뭐니 해도 최완수(69)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공력이 절대적이다. 지난 45년 동안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매년 두 차례 논문집 ‘간송문화’를 발간하고 이를 통해 ‘추사명품집’ ‘겸재명품집’ 등을 발표하며 미술사 연구의 산실(産室)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연구실에는 박사급 연구원만 수명이 있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층 연구실에서 만난 최 실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칠순인데도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여기에 있으면 세월의 시계가 거꾸로 가느냐고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그는 ‘부지노지 장지운이’(不知之 將至云爾)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에 이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나 보다.”라며 웃는다. 청년의 미소처럼 해맑다.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여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다. “그제는 (연세대) 강의 나갔고 어제는 오랜만에 겸재 만나러 북악산과 인왕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겸재를 만나러? 궁금해하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겸재는 장동팔경(壯洞八景)을 남겼습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 걸친 장동(壯洞) 일대의 경승지 8곳, 그러니까 필운대, 대은암, 청풍계, 청송당, 자하동, 독락정, 수성동, 취미대 등을 그렸지요. 겸재 동호인 몇 명과 겸재를 생각하며 그림 속을 같이 답사했지요.” 그는 겸재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1993), ‘진경시대’(1998), ‘겸재의 한양진경’(2004), ‘겸재 정선’(2009) 등을 펴내 겸재 연구의 종결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가 겸재와 인연이 된 것은 1966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곳에서 겸재의 작품들과 만나면서다. 그는 숙명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를 문화적 정체기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를 뒤집기 위해 조선 문화의 절정기인 진경시대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지요. 조선 전기에는 중국을 닮아보려고 했지만 나중에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주자 성리학을 발전시켜 조선 성리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성리학이 꽃을 피웠고 이를 토대로 진경 시문학과 진경 산수화가 나왔습니다. 겸재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차원 높은 회화미로 표현한 최고의 화가이지요.” 겸재에 대한 찬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84세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경 산수화를 창안하고 절정에 올려놓은 뒤 추상 단계에까지 한꺼번에 통달한 말 그대로 화성(畵聖)입니다. 일부에서는 화원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에는 선비가 아니면 (진경산수를) 창안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주역 등 사서삼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7서에도 아주 능통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주역의 음양조화, 중국 화가들도 감히 흉내조차 못 낸 남·북방 화법을 동시에 표현해 낸 겸재의 그림을 본 중국 사람들은 아주 환장을 합니다. 중국이 우리 문화에 미쳐버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확실한 종결편 때문이지요. 유라시아를 거쳐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온 문화들을 간단 명료하게 융합시키면서 종결 처리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림에서는 겸재, 글씨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최 실장은 “조선 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던 진경시대(1675~1800)에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 의식이 아주 높았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우리 민족은 ‘요점 정리’를 하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 실장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요점 정리의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모으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전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지난달 전시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도 그러한 자긍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전시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최 실장은 “(찾아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웃는다. “2시간 넘게 기다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짜증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무려 7번이나 본 사람도 있어요. 올 때마다 간송미술관 도록을 가지고 가서 친척들에게 나눠 주면 그분들이 다시 간송미술관을 찾고 그랬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왔는데 기다리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여긴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문화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도 했습니다. 관람객 대부분이 찬란했던 진경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즐거운 자리라고들 표현해 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매년 5월과 10월, 봄과 가을 딱 두 차례만 전시를 한다. 1971년 ‘겸재 정선 서화전시회’를 시작으로 그 원칙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특히 이를 통해 겸재와 추사에 관한 연구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의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했다. 겸재와 추사만 연구하는 이른바 ‘간송학파’(30여명)까지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 미술관은 연구 중심의 박물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대중에게 봉사하기 위해 전시하는 것이지요. 문화의 고향에 돌아오게 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전시에 중점을 두다 보면 연구가 안 되고 산만해지고, 그러면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은 ‘괜히 왔나’ 하면서 다리만 아파합니다. 우선 연구에 집중한 다음 일목요연하게 전시를 해야 관람객에게 좋은 느낌을 선사할 수 있지요. 그래서 1년에 두번만 전시하는 겁니다.” 이어 요즘 세상이 쾌속과 안락 위주로 가다 보니 문화의 기반인 의식주마저 우리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들에게 우리의 것, 우리의 고향을 찾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했다. 다음 전시에 대해 묻자 그는 “연구 중”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어떤 것을 연구하는지 물었다. “조선 왕릉에는 석상, 호석 등 조선시대의 문화를 오롯이 표현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간직한 것들이지요. 진경시대의 석인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조각한 덕에 시대적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척됐습니다. 조선 초기의 석상은 명나라와 비슷하다가 점차 조선 스스로의 문화를 표현하고 있지요. 또 거기에는 의궤가 담겨 있습니다. 현장은 물론 자료 조사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걸 발표하면 (기존의 내용들이) 뒤집어질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웃음). 바로 새롭게 쓰는 조선통사거든요.” 최 실장은 겸재에 이어 내년에는 추사의 종결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뒤이어 ‘왕릉 종결편’도 개봉하겠다는 의욕을 내보였다. 사학자로 올곧게 살아온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다음 작품이 사뭇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고교 때 백아 김창현 선생 만나 조선 사대부의 한문·문화 섭렵 ●최완수 실장은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한학과 보학(譜學)의 대가였던 백아(白牙) 김창현 선생을 만나 한학에 빠져 조선 사대부의 한문과 문화를 모두 섭렵했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동국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 오다 지금은 연세대 대학원 강의만 하고 있다. 1965~1966년 국립박물관을 거쳐 1966년부터 지금까지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추사집(1976), 금추사연구초(1976), 그림과 글씨(1978),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1993), 명찰순례 1,2,3(1994),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1998), 조선왕조 충의열전(1998),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1999), 겸재의 한양진경(2004),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2, 3(2007) 등이 있다.
  • 라이프치히화파를 만난다

    라이프치히화파를 만난다

    최근 화단에서 주목받는 라이프치히 화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UNC갤러리에서 열리는 ‘라이프치히 신드롬, 그 두 번째 이야기’전이다. 참가하는 이들은 틸로 바움가르텔(39), 마르틴 갈레(30), 토비아스 레너(37) 세 작가다. 이들은 데이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젊은 예술가 집단 ‘yBa’에 맞춰 ‘yGa’(young German artists)라 불린다.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 충격을 받았던 이들은 약간 냉소적이고 불안한 시각을 내비치지만 굉장히 절제되고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특히 정통회화로의 복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회화를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삼는다. 예술가라는 말보다 화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02)733-279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레고 브릭마스터 스타워즈(아이즐북스 펴냄) 책에 나온 이야기에 따라 8~9가지 인기 레고 모델을 조립할 수 있도록 구성된 신개념 레고북. ‘레고 브릭마스터 씨티’도 함께 나왔다. 책에 130~240개의 레고 블록이 포함돼 스타워즈, 씨티 등 레고 모델을 만들어볼 수 있다. 3만 2000원. ●수퍼맘 박현영의 말문이 빵 터지는 세 마디 영어(박현영 지음, 멘토르출판사 펴냄) 아이들이 TV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하는 광고 노래의 원리를 적용한 영어책. 3마디 내외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구성한 어린이 회화책이다. 1만 3800원. ●툴툴 마녀는 생각을 싫어해! (김정신 글, 마정원 그림, 진선아이 펴냄) 마법 세계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온 툴툴 마녀와 고양이 샤샤가 겪는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를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논술 동화. 1만 800원.
  • 송승호 작가, 22일까지 갤러리 A.P서 개인전

    송승호 작가, 22일까지 갤러리 A.P서 개인전

    송승호 작가가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A.P에서 개인전을 연다. 동양화를 전공한(세종대 동양화과) 작가답게 먹의 느낌을 잘 살린 작품을 내놓았다. 베란다에서 무심히 내다본 동네 풍경 등은 “회화의 우연적 효과는 창작에 작은 흥미를 준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02) 2269~5061.
  • 붓 대신 카메라 든 회화작가 주도양 새달 3일부터 예화랑서 개인전

    붓 대신 카메라 든 회화작가 주도양 새달 3일부터 예화랑서 개인전

    “제가 하는 건 회화작업이에요.” 사진을 버젓이 옆에다 펼쳐두고도 그런다. 한마디 덧붙인다. “작품이 알려지니까 네이버에서 ‘사진작가’라 해뒀더군요. 그래서 사진이 아니라 회화하는 사람이라고 항의했더니 옆에다 ‘서양화가’라는 말만 덧붙여놨어요. 하하하. 그런데 전 서양화가도 아니고, 사진작가도 아니고 그냥 회화하는 사람입니다.” 실컷 카메라로 찍어놓고 왜 회화작업이라 고집할까. “흔히 작업도구, 표현방식 이런 것으로 어떠어떠한 작가다라고 구분하는데,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다. 카메라 작업이 완전 새로운 건가요? 시대변화에 따라 붓 대신 카메라를 들었을 뿐인 겁니다. 그 차이를 빼면 제 작업은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여전히 회화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겁니다. 덕분에 그림이나 사진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전 박쥐 같은 존재지만. 하하하.” 오는 11월 3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주도양(35) 작가의 작품들은 원근법이나 시점이 특이하다. ‘플라워’ 시리즈는 특정한 공간을 동그랗게 말아놓은 형상이다. 마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소혹성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수백장을 찍고 나서 그 사진을 말아서 이어붙인 뒤 자신이 선 자리는 따로 촬영해 가져다 이어대는 방식이다. 또 다른 작품들 ‘헥사스케이프’(Hexascape) 연작들은 깡통 같은 원형에 6개의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찍은 풍경을 한장의 평면 위에 뭉쳐놨다. 한 지점에서 그 지점을 둘러싼 360도 풍경을 하나의 화면에 녹여낸 것이다. 교묘하게 지워지고 겹쳐지면서 섞여드는 풍경이 특이하다. “옛 산수화를 생각해보세요. 진경(眞景)이라지만 실은 본 걸 그린 게 아니라 머릿속에 담은 걸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 고민한 다음, 그 관념에 따라 그리는 거거든요. 사진도 마찬가집니다. 있는 그대로 스트레이트하게 찍었다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찍은 장면은 본 장면 이후의 장면이에요. 눈을 감고 카메라를 보고 조리개가 열리고 닫히는 과정을 겪은 뒤거든요.” 작가가 세상을 한데 말아쥔 듯 동그랗게 뭉쳐서 표현해내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가 봤으나 그림이나 사진으론 생략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총체성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세상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느낌, 그러니까 그림이나 사진이 세상의 한 부분을 떼어낸다면 전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상 전체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요.” 해서 찍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것도 누구나 오가다 일상에서 늘 봐오던 것들이다. 일산 호수공원도 있고, 삼성 본관 주변, 프레스센터 풍경도 있다. 익숙했지만, 놓친 풍경이란 얘기다. 여기서 작가는 ‘세잔의 사과’ 얘기를 꺼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가장 중요한 사과로 꼽힌다. 사물을 그림으로 재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14세기 이래 시작된 서양화의 원근법을 무너뜨린 현대회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작업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헥사스케이프’ 연작은 입체파 피카소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차이점은 붓이 아닌 사진기를 도구로 썼다는 것이다. 작가는 동국대 서양화과 출신이다. 사진은 독학으로 익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엔 사진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사진을 택할 용기를 냈을까. “1990년대에 이미 회화의 죽음이 많이 얘기됐거든요. 회화기법은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고, 전통적인 회화는 종말을 맞이했다는 글들이 엄청 많이 쏟아졌어요. 설치미디어작업의 붐이었죠.” 지금은 회화의 복권이 얘기되지 않던가. 작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복권 운운은 미술 그 자체의 논리라기보다 미술시장의 논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회화가 죽어버리니 사고팔 게 마땅치 않아지니까 거래 활성화를 위해 회화의 복권이 거론되는 거지요.” 카메라나 동영상 같은 새로운 매체에 밀려 회화가 죽었다고 말할 게 아니라, 그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회화의 본질에 다시 도전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다음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그림과 사진의 경계를 다뤄봤으니, 이젠 조각과 사진 사이의 경계지요.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건 나중에 작품으로 보여드릴게요. 하하.” (02)542-5543.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新서울토박이’ 재보선 변수

    ‘新서울토박이’ 재보선 변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참여하는 20세 이상의 서울 출생자가 서울 전체 인구의 37.3%인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후반 이상의 부모 세대가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서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지역감정’이나 혈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면, 그 자식 세대는 자신을 ‘서울 토박이’라고 여기며 부모와 다른 가치관, 인식, 표심(票心) 등을 품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연령은 만 19세이지만, 이는 시사하는 게 적잖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3일 서울시가 서울시민의 날(28일)을 앞두고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세 이상 서울 토박이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외국인 제외한 955만 206명)의 37.3%인 282만 360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1980년 21.6%보다 15.7% 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서울 출생자는 전체의 46.5%이고, 경제활동이 가능한 15세 이상의 비율은 40.3%로 나타났다. 또 15세 이상 서울 출생자 중 88%가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부모와 다른 인식을 지닌 ‘젊은 서울 사람’은 몇 년 안에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정치사회화는 대개 10세 이전인 아동기에 이뤄진다.”면서 “선거에서 출생지 중시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면 고질적인 지역주의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재개발 도심 속살에 반해 파리行 포기했죠”

    “재개발 도심 속살에 반해 파리行 포기했죠”

    “이상하다 싶었을 거예요. 파리 보내준다는 데도 대답을 안 하니…. 하하하. 그런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스펙터클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포기합니까. 현장을 지키기 않으면 다 놓칠 판인데….” 한달에 400만원씩 드는 작업비용을 감당하느라 집세도 몇달째 밀려있다면서도 아쉽다거나, 후회한다는 표정은 아니다. 아직 흥이 채 가시지 않았다. 11월 27일까지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서울, 침묵의 풍경 Ⅱ’ 전시를 여는 안세권(43) 작가다. 원래 영상작업을 해왔던 작가는 2003년 7월 청계천 공사 착공에 앞서 그 일대 풍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파, 바리케이드, 교통통제, 다이아몬드커팅기까지 어우러진 풍경을 영상물로 남겼다. 몇달간 천변 부근 차 안에서 먹고 자면서, 비오는 날마다 청계고가 달리기를 반복하면서 매진했다. 그러다 공사현장 그 자체에 매료됐다. 한층 더 두터운 화장을 바르기 위해 예전의 화장을 걷어내는 순간, 근대의 이름으로 덮어뒀던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때부터 사진기를 들기 시작했다. 청계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웅장함과 거대함을 나타내는 구도와 시점을 택하면서도 세부묘사는 현미경을 들이댄 듯 세밀하다는 데 있다. 이번에 전시된 ‘청계천에서 본 서울의 빛’이 대표적이다. 사진이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다. 특히 휘어진 철근은 지금 청계천에서 뛰논다는 물고기보다 더 생생하게 퍼덕댄다. “저 철근 느낌 때문에 새벽에 그냥 공사현장에 뛰어들어가서 찍은 거예요. 박정희식 근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봤거든요. 그 때 민원 방지 차원에서 폐건축자재를 정말 빨리 치웠어요. 우연히 발견해서 바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영원히 놓쳤을 장면이죠.” 미세함을 포착하자니 품이 많이 든다. 기본은 4~5시간 노출촬영이다. 한 번에 찍으면 명암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노출 시간이 길어야 빛이 고루 스며들면서 작은 부분이 다 살아난다. 대신, 움직이는 물체가 없어야 하니 새벽시간대에만 작업한다. 촬영 뒤에는 후반 작업에만 보름 이상 매달린다. 그 결과 도시의 속살은 땀구멍 수준으로 확대된다. 그의 사진이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회화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다. 청계천프로젝트 덕분에 2005년 가나아트에서 신진작가로 뽑혔다. 들어온 제안이 프랑스 파리 레지던시 참가. 그런데 서울에선 뉴타운이 한창이었다. 비행기 티켓 대신 카메라 가방을 움켜쥐고 다시 뛰었다. 도시의 내밀한 살내음을 추적하기 위해 금호, 약수, 월곡 같은 재개발지역을 훓고 다녔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서울 뉴타운 풍경 - 월곡동의 사라지는 빛’이다. 특이하게도 2005~2007년에 걸쳐 찍었다. “보통 재개발하면 바로 밀어서 바로 짓잖아요. 그런데 저곳은 교회가 저항하면서 천천히 진행됐어요. 그래서 저렇게 연작을 뽑을 수 있었지요.” 말이 쉽지 3년 내내 다닌 셈이다. “출퇴근하듯 매주 찾아가면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 하하하.” 환한 가로등이 점차 잦아들면서 마을은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공사현장과 달리, 용역과 철거민이 맞부딪히는 재개발 현장은 위험하지 않을까. 낯선 사람이 새벽에 큰 가방 메고 이리저리 나다니는데. 월곡동에선 포크레인이 집을 부수는 순간을 찍으려는 데 주민들이 무척 반발했었어요. 집 부수는 순간은 그 찰나가 아니면 못 찍잖아요. 잽싸게 차에 가서 도록을 집어다 줬죠. 그랬더니 우리 동네도 이렇게 찍어줄거냐 하시더니 내버려두시데요.” 그래서 월곡동에서 청계천 철거민을 만났을 때 가슴 아팠다. 박정희 시대 청계천 공사 때문에 월곡동으로 밀려나간 사람이 뉴타운으로, 또 다시 시 외곽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에게도 다큐 작업이 있다. 아무래도 다큐는 스산하기 마련. 도시 재개발을 왜 삐딱하게 보느냐는 시선 때문에 잘 공개하지 않을 뿐이다. 혹시 청계천과 뉴타운 덕을 톡톡히 보신 ‘그 분’ 때문에? “으흐흐” 웃기만 하더니 다른 답을 내놓는다. “어떤 현상에 대해 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요. 그 가운데 예술로 말한다는 것은 일단 아름다워야 한다는 겁니다.” 온통 땅을 할퀴고 뒤집어놓은 사진인데도 거칠고 탁하기보다 따뜻한 온기가 도는 이유다. 3000원. (02)737-76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친구 보고 강좌 듣고 요즘 살맛 좀 나네요”

    “친구 보고 강좌 듣고 요즘 살맛 좀 나네요”

    전백송(91·강동구 천호2동) 할아버지는 최근까지 외출이나 문화 활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본인 건강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시력이 약하고 몸도 불편한 부인 김성창(91) 할머니를 한시도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8월부터 전 할아버지는 다시 바깥 활동을 시작하며 삶의 재미를 되찾았다. “데이케어센터와 노인 문화시설을 결합한 해공노인복지관이 문을 열면서 아내 돌보기와 문화활동이 동시에 가능해진 덕분”이라며 웃는다. 전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컴퓨터와 서예를 배우고 있고, 할머니도 새로 친구들을 사귀면서 밝아졌다. 전 할아버지는 “노인 둘이 집에 있으면 그저 시간만 죽이기 마련인데, 여기 오면서부터 더 많이 웃고 많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16개 강좌 진행… 하루 평균 300명 찾아 개관 100일을 맞은 구립 해공노인복지관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13일 강동구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하루 평균 300명이 이곳을 찾았다. 복지관이 자리한 천호동뿐 아니라 인근 암사·성내동 주민들까지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종합복지시설을 표방하는 해공노인복지관은 노인 건강 관리와 여가활동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총 598㎡, 지하 1층·지상 5층에 가요·라인댄스·영어 회화 등 16개 강좌가 진행되는 문화센터와 데이케어센터, 상담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전문 복지시설 표방… 건강·여가 서비스 초점 4층 데이케어센터는 노인장기요양 1~3등급을 대상으로 주·야간 구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사·목욕 등 일상 생활 서비스와 함께 물리치료, 간호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은퇴 전문가가 같은 노인을 상담하는 ‘노-노(-) 상담센터’에서는 건강·법률·세무 상담 등을 하고 있다. 강동구에는 노인복지관 2곳, 노인요양시설 24곳이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4만 500여명으로 8.17%를 차지한다. 이해식 구청장은 “어르신들은 원거리 이동이 힘들기 때문에 시설 크기를 줄이고 복지관 수를 늘리는 추세”라며 “권역별 복지관 확충과 동시에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후를 위한 정책을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JAPAN Tottori 돗토리 넌 여유롭고 만만해~

    JAPAN Tottori 돗토리 넌 여유롭고 만만해~

    1 네코무스메 열차 2, 3 요괴 라떼를 마실 수 있는 요카이 라쿠엔 입구 JAPAN TOTTORI Tottori 돗토리 넌 여유롭고 만만해~ 돗토리의 열차는 단선 궤도를 달린다. 선이 하나이니 급행열차가 지날 때면 완행열차는 역에 서서 무작정 기다린다. 시간은 돈이고, 돈은 곧 시간이라 급행열차의 요금은 완행열차의 두 배도 넘는다. 돗토리에서 급행열차를 타는 이들은 많지 않다. 돈이 이유겠지만 한편 돈보다는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적당히 두루 갖춘 돗토리의 여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일본 여행이 처음인 지나와 정주에게도 돗토리는 여유롭고 만만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글 Travie writer 이진경 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Travie photographer 김경현 취재협조 내일여행 www.naeiltour.co.kr, 돗토리현 진행협조 인페인터글로벌 기사를 시작하기 전에 *실제 여행시기는 8월30일부터 9월2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돗토리현에서의 일정과 취재는 독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기자가 이를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번 여행의 독자는 트래비와 내일여행이 함께한 도전자유여행 이벤트에 당첨돼 다녀왔기 때문에 내일여행의 ‘금까기’ 상품 내역에 해당하는 왕복항공권 및 호텔 숙박비 등에 대한 경비부담은 제외됐다. 단, 식비 및 입장료 등 개인지출 비용은 독자가 개별적으로 부담했다. *전통 료칸 숙박이 포함된 내일여행의 ‘돗토리현 미사사온센 금까기’는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며 83만9,000원부터(세금 및 유류할증료 제외, 항공사 및 여행사 사정에 따라 변동 가능). *기사에서는 편의상 독자의 존칭을 생략했다. 도전자유여행 33탄 돗토리현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이지나 새치름한 외모와는 달리 털털한 웃음소리를 지녔다. 대박 쇼핑으로 일본을 휩쓸 것 같았는데 의외로 먹고 보는 데 열심이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쿠폰을 끊어 미용실에 가는 알뜰 처자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와 영어를 좀 한다. 장점은 착하다는 것. 이정주 첫 해외여행이다. “비행기가 뜰 때 엄청 무서웠다”고 한다. 솔직한 청년이다. 누나에게 “제발 영어를 쓰지 말라”고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말을 잘 안 한다. 다이어리에 일본어 회화를 잔뜩 써 왔음에도. 장점은 착하다는 것. 1st day 두근두근 일본 첫 나들이 인천 공항에서 돗토리의 요나고 공항을 잇는 하늘 길은 1시간20분 거리다. 짧은 시간, 기내식으로 도시락까지 챙겨 먹으니 비행기가 말 그대로 뜨자마자 내린다. 입국에서 출국 수속까지 3~4시간이 일사천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기에 돗토리만한 곳이 없다. 1 요나고 공항역으로 들어오는 네코무스메 열차. JR 사카이선에서는 하루 15회 정도 요괴 열차를 운행한다 2, 3, 4, 5, 6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게게게노 기타로>의 세상이다. 800m 거리에는 요괴 동상이 가득하고, 요괴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요괴 열차 타고 사카이미나토로 고고~ 돗토리현 서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사카이미나토. 미즈키 시게루 로드가 자리한 사카이미나토까지는 요나고 공항에서 JR 사카이선을 타고 15분 정도면 간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남매가 탄 열차는 오후 2시39분에 요나고 공항역을 출발하는 ‘네코무스메 기타로 열차鬼太郞列車’. JR 사카이선에서는 기타로, 메다마오야지, 네즈미오토코, 네코무스메 등 네 종류의 열차를 하루 15회 정도 운행한다. 기타로, 눈알 아저씨, 간사한 쥐, 고양이 소녀가 그려진 열차는 운이 좋거나 일부러 시간을 맞추면 탈 수 있다. 열차 외관은 물론 내부 천장과 의자 등에 캐릭터가 가득하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水木しげる一ド 애니메이션 <요괴인간 타요마>로 한국에 소개된 <게게게노 기타로>는 요괴의 대가라 불리는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이다. 돗토리현 출신인 그 덕분에 요괴 공항에 내려 요괴 기차를 타고 요괴 역을 지나 마침내 요괴의 고향인 미즈키 시게루 로드로 이어지는 여정은 늘 요괴와 함께한다. 사카이미나토역에서 800m 가량 뻗어 있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게게게노 기타로>에 등장하는 요괴 캐릭터 동상과 요괴 캐릭터를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거리다. 열쇠고리에서 귀이개, 장식품, 문구, 술, 심지어는 화투까지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는 캐릭터 상품은 다양하다. 하나밖에 없는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직접 나무를 깎아 캐릭터를 만드는 가게에 들르면 된다. 투박하지만 개성 넘치는 기념품을 살 수 있다. 100엔 스탬프 책자를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탬프 공간을 채우며 이 가게, 저 가게를 돌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훌쩍 지난다. 시게루 로드에서는 ‘꼭’ 선물로도 그만! 똑딱 지갑 요카이 가마구치妖怪がまぐち 비슷비슷한 기념품을 파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가게다. 가마구치란 물림쇠가 달린 돈지갑. 똑딱 하고 열리는 동전지갑을 생각하면 쉽다. 요괴 가마구치라는 가게 이름 그대로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마구치에는 <게게게노 기타로>에 나오는 요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작은 동전지갑 외에도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가마구치를 선보인다. 주소 鳥取?境港市松ヶ枝町14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120-375-639 이런 젓가락은 어때요? 유젠遊膳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끄트머리, 아케이드 근처에 자리한 젓가락 전문점이다. 몇백엔부터 몇천엔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대의 젓가락을 단아하게 선보인다. <게게게노 기타로>의 캐릭터를 단 젓가락이나 젓가락 받침 등은 기념품으로도 그만이다. 주소 鳥取?境港市本町34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859-21-8200 요괴 라떼 한잔 요카이 라쿠엔妖怪樂園 요괴 캐릭터로 꾸며진 공원과 기념품 가게가 자리한 곳으로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근처 골목으로 50m 가량 들어간 곳에 자리했다. 간단한 음료와 스낵을 파는 곳에서는 초콜릿 가루로 요괴 모양을 만들어주는 요괴 라떼를 마실 수도 있다. 네 가지 모양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350엔. 주소 鳥取?境港市?町138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6시, 계절에 따라 다름 문의 0859-44-2889 지나 신기한 요괴 조형물과 인형들과 함께 찰칵~! 작은 마을에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도 즐비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 생일 선물로 고른 ‘방아 찧는 토끼 지갑’ 득템! 정주 어떤 가게의 셔터에 내가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기가 페인팅되어 있어서 흥분되었다. 구라요시역 일대 탐방기 지나와 정주가 이틀 밤을 묵은 아크21 호텔은 JR 구라요시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했다. 1시간에 1~2대 꼴로 기차가 다니는 데다가 막차가 일찍 끊기는 돗토리의 현실을 감안, 이틀간의 저녁식사는 구라요시역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결정! 하지만 적당히 시골스러운 구라요시에는 식당과 이자카야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시끌벅적 구라요시 최고 인기 이자야카 로바타 카바?端かば 구라요시 사람들은 모두 모이는 듯한 활기찬 분위기를 자랑한다. 계절 메뉴를 비롯 고기, 해산물, 전골 등 메뉴가 다양하며, 요일별 이벤트도 많다. 따로 요구하면 한국어 메뉴를 준비해 주지만 메뉴에 사진이 있어 주문이 어렵지는 않다. 주소 鳥取?倉吉市上井町 2-10-7 영업시간 월~목, 일 오후 5시~새벽 2시 금, 토 오후 5시~새벽 3시 문의 0858-27-0100 온갖 종류의 라멘이 한자리에 토멘보東麵房 구라요시역 남쪽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라멘 전문점. 추천 메뉴는 쇼유 라멘으로 그 밖에 미소, 돈코츠, 규코츠 등 다양한 라멘과 교자를 판매한다. 체인점이지만 구라요시역 인근에서는 인기 있는 편. 주문은 자동판매기로 하면 된다. 700~1,000엔. 주소 鳥取?倉吉市山根 618-3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저녁 6시~새벽 3시 문의 0858-48-9518 일본 토종 햄버거 모스 버거Mos Burger 구라요시역 앞에서 KFC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패스트푸드점. 구라요시역 남쪽 출구 방면 179번 국도변에 자리했다. 주소 鳥取?倉吉市上井町 359-1 영업시간 | 월~토 오전 8시~새벽 2시 일 오전 8시~밤 12시 문의 0858-26-6023 390엔 라멘? 사쿠라さくら 아크21 호텔 1층에 자리한 식당.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해 이용할 만하다. 라멘이 390엔으로 저렴한 편이며, 맥주와 안주 세트 메뉴도 있다. 밥과 미소시루, 생선구이, 밑반찬 등이 나오는 조식은 700엔. 주소 鳥取?倉吉市上井町2丁目 4-6 영업시간 오전 7~9시, 점심 오전 11시30분~오후 2시30분, 저녁 오후 5시부터 문의 0858-26-8579 지나와 정주의 선택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쇠고기 타이헤이몬大平門 아,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 곳이었다. 처음에 ‘고기! 고기!’라고 외치며 고기를 달라고 했는데, 점원이 ‘코~기?’ 하면서 전혀 알아듣지 못함을 체감. ‘스페셜 메뉴’인 듯한 그림도 없는 안내장을 보고 무턱대고 ‘okay’라고 외쳐 버린 우리. 850엔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1인분에 정말 적어 보이는 쇠고기 여섯 점…? 하지만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에 추가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 바삭한 식감의 지짐이도 Good choice! 주소 鳥取?倉吉市?谷町2丁目40 영업시간 | 월~토 오전 11시~밤 11시, 일 오전 11시~밤 10시 30분 문의 0858-26-4468 2nd day 돗토리 가이드! 버스투어 돗토리에서의 첫째 날, 버스투어 정보를 입수한 지나와 정주는 둘째 날의 일정을 일찌감치 정했다. 단돈 2,000엔으로 만만치 않은 교통비를 해결하는 건 물론 입장료, 점심식사에 후식까지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것. 버스투어는 월, 수, 토요일에만 출발하므로 투어에 참가하고 싶다면 미리 계획하는 게 좋다. 지나 2,000엔으로 드라마 <아테나>의 여러 촬영지와 코난 박물관을 돌아보고 특제 라멘, 젤라또까지 맛볼 수 있는 버스투어! 교통비가 비싼 시내에서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특히 더울 때 시원하게 먹은 복숭아 맛 젤라또의 맛은 아직까지 생각난다. 시라카베도조군 일대는 일본 전통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맛있는 과자도 맘껏 시식하고 특히 맛있던 만주도 샀다.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아 더 구경하고 싶었다. ‘비 오면 꽃무늬가 생기는 분홍 우산’을 사오지 않은 것은 아직도 가장 후회된다. 누가 대신 사다 주실 분 없나요~ 정주 버스투어로 <아테나> 촬영지인 간장공장, 절 앞의 빨간 등 거리, 인면어가 살고 있는 수로, 묘지, 백조와 오리가 있는 호수, 코난 박물관 등을 방문했는데 모두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들이었다. 점심으로 버스투어에서 제공하는 라면을 먹었는데 소 뼈로 육수를 내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후에 아이스크림도 먹었는데 특히 가이드 누나가 추천해 준 복숭아 맛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아테나> 촬영지 만끽 투어 요금 2,000엔 출발일 매주 월, 수,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출발장소 JR 구라요시역 남쪽 출구 버스 정류장 코스 구라요시역→구라요시시(시라카베도조군아카가와라)→고토우라정(규코츠 라멘 점심식사)→하나미가타 묘지(후로시키 만주)→호쿠에이정(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호조 오토 캠프장 휴게소 (‘코다’ 젤라토)→유리하마정(도고코 린카이 공원→하와이 보코로 온천)→미사사정(미사사 온천)→구라요시역 1 돗토리 고토우라정의 하나미가타 해안 묘지. 바다를 향해 2만 기 이상의 묘가 조성된 곳으로 독특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2 시라카베도조군의 다카다슈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술도가다 3 도고코 린카이 공원 4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 <명탐정 코난>의 아가사 박사가 탄 차가 기념관 마당에 전시돼 있다 5 미사사 오스나히키 자료관에 전시된 산부쓰지 나게이레도 불당의 모형. 해발 520m 절벽에 세워진 건축 방식으로 유명한 절이다 구라요시시 시라카베도조군, 아카가와라는 하얀 벽의 건물과 붉은 기와를 얹은 전통적인 건축 양식의 창고가 자리한 거리다. 대부분의 창고는 기념품 가게나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쓰임새를 바꿨지만 겉모습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옛 정취를 느껴 보자. 시라카베도조군 유일무이 양조장 다카다슈조高田酒造 1875년에 창업한 양조장이다. 일대에 자리했던 수많은 술과 간장 제조장 중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분에 다카다슈조에서는 드라마 <아테나>의 총격 장면이 촬영됐다. 버스투어의 가이드가 각종 장난감 총을 준비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다. 잘 익은 스기다마가 매달린 다카다슈조의 대표 술은 시쿤北君. 1,000엔에 구입할 수 있다. 주소 鳥取?倉吉市西仲町2663 문의 0858-23-1511 신용카드도 받아요~ 아카가와라 1호관赤瓦1?館 창고를 개조해 만든 토산품, 기념품 가게로 선보여지고 있는 아카가와라의 창고 중 유일하게 신용카드로 계산이 가능한 곳이다. 돗토리현이 자랑하는 20세기 배를 비롯해 과자, 떡 등 먹거리를 주로 판매하는데 시식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다. 주소 鳥取?倉吉市新町1丁目 영업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858-23-6666 귀여운 아기 붕어빵 린린야りんりんや 한입 크기의 귀여운 붕어빵을 판다. 팥소를 사용하는 건 물론 검은콩, 고구마, 크림 등을 넣은 붕어빵도 있다. 비에 젖으면 숨겨진 꽃 모양이 나타나는 우산도 판매한다. 주소 鳥取?倉吉市魚町2570 영업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6시 문의 0858-23-1996 고토우라정 바다와 산의 혜택을 고루 받아 식재료가 발달한 고토우라정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고르메 스트리트Gourmet Street라 불린다. 소 뼈를 우려내 육수를 만드는 규코츠 라멘과 아고카츠 카레, 해산물 덮밥인 카이센동 등 군침을 돌게 하는 먹거리가 많다. 고토우라정에 자리한 하나미가타 해안 묘지는 독특한 볼거리다. 2만 기 이상의 묘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곳으로 묘지가 왜 볼거리가 되는지는 가 보면 안다. 이곳 또한 드라마 <아테나>의 촬영지로 선보여졌다. 시원한 사골 국물 라멘 이자카야 카즈居酒屋和 버스투어가 들르는 이자카야로 JR 우라야스 역 앞에 자리했다. 규코츠 라멘을 짜지 않게 잘 끓이며, 반찬으로 나오는 깍두기도 맛있다. 620엔. 주소 鳥取?東伯郡琴浦町?万276-3 문의 0858-53-0006 돗토리현 대표 간식 후로시키 만주 ふろしきまんじゅう 143년 전통을 자랑하는 만주 가게. 일본 전통 설탕인 와삼봉과 흑설탕을 섞어 쫀득쫀득하고 달지 않은 만주를 선보인다. 방부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므로 후로시키 만주는 유통기한이 3일밖에 되지 않는다. 선물로 구입한다면 공항에서 사는 게 낫다. 주소 鳥取?東伯郡琴浦町八橋348 영업시간 오전 6시30분 ~오후 5시 문의 0858-53-2345 호쿠에이정 호쿠에이정에는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山剛昌ふるさと館’이 자리했다. 만화 <명탐정 코난>의 작가인 아오야마는 돗토리현 출신 작가. 그를 기념하기 위해 2007년에 세워진 이곳에는 아오야마의 어린 시절 자료와 물건을 비롯해 <명탐정 코난>의 번역판 등이 전시돼 있어 전세계 팬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배가된 재미를 느끼려면 퀴즈에 도전해 보자. 퀴즈의 답이 기념관 곳곳에 숨겨져 있어 전시물을 세심하게 보게 된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퀴즈를 선택해 모두 풀면 인정증도 준다. 마당에 전시된 노란색 차도 흥미롭다. <명 탐정 코난>에서 아가사 박사가 타는 차를 재현한 차로 아오야마의 아버지가 부품 하나하나를 모아 직접 제작한, 세상에 하나뿐인 차다. 주소 鳥取?東伯郡北?町由良宿1414 찾아가기 JR 유라역에서 걸어서 20분 이용요금 어른 700엔, 청소년 500엔, 초등학생 300엔 관람시간 4~10월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11~3월 오전 9시30분~오후 5시 문의 0858-37-5389 유리하마정 석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도고코에서는 드라마 <아테나>의 많은 장면이 촬영됐다. 정우성과 수애는 도고코와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린카이 공원을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고 하와이 온천의 ‘보코로望湖?, 0858-35-2221’에서 사랑을 확인했다. 보코로에서는 촬영 당시 배우와 스태프의 일정표며 정우성과 보아가 먹었던 라멘 그릇 등 사소한 것까지 전시해 놓았다. 보코로는 호수 가운데에 떠 있는 노천 온천으로 유명하다. 본 건물과 다리로 연결된 노천 온천 건물에는 노천탕과 족욕탕이 자리했다. 온천의 평균 온도가 55도인 하와이 온천에서는 달걀 표면에 예쁜 그림이나 기원을 담아 온천에 삶는 온센 타마고 체험도 가능하다. 미사사정 9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말해 주듯 미사사 온천 마을에는 옛 정취가 가득하다. 허리 굽은 백발 노인이 지키고 있는 약국이며 오래된 사진관까지 이름이 없는 가게들조차 온천 마을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남녀 구분 없이 노천 온천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가와라 노천탕은 미사사 온천의 명소 중 하나다. 족욕탕과 구분된 위태로운 칸막이 너머로는 밤낮 없이 동네 어른들이 노천욕을 즐긴다. 진쇼 축제 때 사용하는 진쇼(줄)를 전시한 오쓰나히키 자료관도 볼 만하다. 드라마 <아테나> 촬영 당시에 7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진쇼를 전시 중이다. 3rd & 4th day 한낮의 모래, 온천으로 씻다 돗토리 사구를 찾기로 한 날, 지난 밤부터 내린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그래도 ‘돗토리 하면 사구’를 외치며 지나와 정주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구라요시역에서 돗토리역까지는 1시간 가량 거리. 덜컹덜컹 단선 궤도로 기차는 열심히 달린다. 돗토리 사구鳥取砂丘 센다이강은 바람에 쪼개지고 갈라진 주고쿠산지의 화강암을 바다로 흘러 보내 해안선까지 밀어냈다. 하루는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1년이 됐다. 1년의 시간을 거듭하길 10만번. 10만년이라는 세월 동안 조류와 바람이 쉬지 않고 나른 모래는 해안선을 따라 16km, 육지를 향해 2km에 이르는 사구를 만들어냈다. JR 돗토리역에서 20분. 돗토리 시내를 빠져 나오기 무섭게 사구는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다. 신발을 신고 있어도 사구의 부드러운 모래 결이 느껴지는 건 딱딱한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에 익숙해진 발 때문이다. 1,000엔 택시가 지나와 정수를 내려준 건 사구의 동쪽 입구다. 저 너머 동해를 먹어 버린 해발 48m의 말의 등(제2 사구열)이 눈앞에 펼쳐진다. 모래 언덕을 오르길 15분. 말의 등에 올라타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사구의 모습을 조망한다. 사구와 맞닿은 동해는 역시 푸르다. 육지 쪽으로 눈을 돌리면 모래에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 통보리사초 군락지가 펼쳐져 동해와는 또 다른 푸르른 기운을 선사한다. 밥도 먹고, 기념품도 사고 사큐카이칸 砂丘?館 사구 동쪽 입구 맞은편에 자리한 식당과 기념품 가게로 끼니때라면 들르는 게 좋다. 돗토리 사구와 우라도메 해안 일대에는 마땅한 음식점이 없다. 자루소바 840엔, 아고카츠 카레 850엔. 주소 鳥取?鳥取市福部町湯山2164 영업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 문의 0857-22-6835 지나 택시로 사구와 우라도메 해안을 둘러보았는데 사구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정말 낙타가 있는 사막이라니! 낙타가 너무 타고 싶었지만 비가 보슬보슬 내려서 ‘낙타와의 이동’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사막을 오르느라 힘이 들긴 했지만 마치 사우디의 여인이 된 것 같아 즐거웠다. 모래도 고와 경사진 언덕을 내려올 때도 무섭기는커녕 정말 신나게 내려왔다. 점심식사 시간! 메뉴에 그림이 없어 앞의 조형물을 보고 겨우 시켰지만 카레와 야끼소바의 맛은 일품이었다. 카레가 유명하다더니 정말 Good! 점심 식사를 하고 둘러본 우라도메 해안의 경치도 멋있었다. 저녁에 노을이 질 때 와도 좋을 것 같다.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시내로 오니 3시간이 약간 지났지만 영국 신사 같았던 택시 아저씨는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친절히 데려다 주셨다. 아저씨 감사해요~ 미사사칸三朝館 지나와 정주가 돗토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은 미사사 온천의 미사사칸이다. 둘째 날, 버스투어를 통해 미사사 온천 마을은 둘러본 터. 마지막 남은 시간은 온전히 료칸에서 보내기로 한다. 미사사 온천. 물이 참 좋은 곳이다. 9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천 마을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물 덕분이다. 라듐 성분이 다량 함유된 미사사 온천은 건강에도 그만이라 미사사 온천 지대 주민들의 암 사망률은 일본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미사사 온천은 동맥경화, 천식, 당뇨병, 피부병, 부인병 등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미사사 물은 곧 미사사칸의 물이라 미사사칸에서의 온천욕 한 번에 온몸이 상쾌하다. 몸뿐만이 아니다. 미사사칸에서는 몸과 더불어 눈이 맑아진다. 로비와 대욕탕, 식당 등 미사사칸의 발길 닿는 곳곳에는 정갈한 정원이 자리했다. 우거진 숲 사이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정원이 있는가 하면, 바위를 세우고 모래를 곱게 깔아 참하게 빗어 놓은 정원도 있다. 같은 정원이라 하더라도 보는 장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지겨울 틈이 없다. 식당과 온천으로 향하는 길, 정원이 있어 마냥 행복하다. 미사사칸의 대욕탕은 아침 저녁으로 남탕과 여탕이 바뀐다. 아침 저녁, 각각 다른 멋의 온천을 즐기라는 뜻일 테다. 커다란 노천온천이 딸린 대욕탕 외에 가족이나 커플이 따로 이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작은 노천온천도 마련돼 있다. 작은 노천온천은 체크인 후에 예약해 이용하면 된다. 문의 0858-43-0311 www.misasakan.co.jp 1, 2 돗토리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돗토리 사구 3 돗토리 사구 입구에 전시된 모래 조각 4 단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미사사칸의 정원 5 미사사칸 노천온천 입구 6 미사사칸의 조식 7 미사사칸 식당으로 가는 길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지나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 다른 곳도 모두 좋았지만 마지막 피로를 풀기에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맞이한 감동의 석식! 돗토리현에서 유명하다는 게다리와 새우 맛이 특히 일품이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온천! 밤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혼자였는데 정말 선녀가 된 기분이었다.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이니 그 동안의 피로도 말끔히 풀렸다. 아침잠이 많지만 다음날에도 아침을 먹고 간단히 온천을 즐겼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아침 온천도 떠나기 싫을 정도로 감동이었다. 온천만 하기 위해서 일본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이제는 100% 공감이 간다.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는 순간에도 떠나기 싫었던 미사사칸. 정주 미사사칸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미사사칸으로 향하였다. 미사사칸에서 우리는 마지막 1박을 묵었는데, 일본 전통의상인 유카타도 입어 볼 수 있었다. 특히 아름답게 꾸며진 온천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였다. 저녁식사는 회, 대게, 샤브샤브, 튀김 등이 나왔는데 한결같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다음날 아침 정갈한 아침식사와 마지막 온천욕을 마치고 우리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요나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Travel to Tottori ▶가는 방법 인천과 요나고를 잇는 아시아나항공이 화, 금, 일요일, 주 3회 운항된다. 인천발 요나고행 항공편은 화, 일요일 오후 12시30분, 금요일 오전 9시30분에, 요나고발 인천행 항공편은 화, 일요일 오후 3시, 금요일 낮 12시에 출발한다. 요나고 공항 인, 아웃으로 3박4일 여정을 꾸린다면 화요일 출발만 가능한 것. 2박3일 등 기타 일정이라면 요일 선택이 자유롭다. ▶현지교통 이렇게 저렴한 택시가~ 돗토리시를 여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돗토리역에 자리한 관광안내소에서 이름, 숙소 등 간단한 정보만 작성하면 4명이 3시간 동안 1,000엔에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3시간을 이용한다면 시내에서 20~30분 가량 거리인 돗토리 사구와 우라도메 해안 등지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우라도메 해안 대신에 돗토리 시내를 돌아봐도 괜찮다. 1,000엔 택시 이용자는 와타나베 미술관, 간논인 정원 등의 입장료를 할인 혜택이 있는 쿠폰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30분 문의 돗토리시 국제관광객 서포트 센터(한국어) 0857-36-3767, 돗토리시 관광안내소(일본어) 0857-22-3318 웬만한 곳은 다 서요~ 공항버스 미사사 온천에서 요나고 공항으로 간다면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자. 돗토리현 여기저기를 돌고 돌아가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온천 송영버스와 기차를 몇 번 갈아타는 것보다는 편리하다. 1,500엔. 코스 미사사 온천 관광상공센터 앞→08:25 미사사 온천 입구(미사사칸 앞)→08:30 미사사 로얄 호텔 앞→08:45 구라요시역→09:00 하와이 온천→광장 10:00 가이케 온천→10:30 요나고 공항 ▶호텔 아크21 ア―ク21 일반적인 비즈니스호텔과 비교해 비교적 넓은 객실을 지녔다. 한국어로 된 호텔 설명서와 주변 안내도를 나눠주며, 한국 티브이 채널도 있다. 음료, 주류 자동판매기와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수 있으며, 6층 전망대 목욕탕이 무료다. 목욕탕은 오전 6시~오전 9시, 오후 1시~오후 5시에는 여성, 오후 6시~자정에는 남성이 이용한다. 일회용 카드 키를 사용해 이틀 이상 묵는다면 매일 새로운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며 별도의 체크아웃이 필요 없다. 문의 0858-48-1021 ▶지나의 말 8월 말, 느지막이 간 여름휴가. 동생과 함께한 첫 해외 여행이어서 어느 때보다 의미 있고 뜻 깊은 시간이었다. 처음 당첨 소식을 듣고 동생이 한 말이다. “누나는 정말 타고난 운이야~” 그런 동생에게 나 역시, “이런 누나 덕에 너도 같이 갈 수 있잖아~” 라며 웃었다. 기다림에 더 설레였던 돗토리현 여행! 평소 티격태격할 때도 있긴 하지만 사소한 고민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동생이기에 때로는 친구 같기도, 철없는 나를 다독일 때는 오빠 같기도 한 동생과 함께한 즐거운 기억이 오래 여운에 남았으면 한다.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 드린다. 돗토리현은 정말 천천히 다시 걸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도시다. 친절한 사람들과 깨끗한 거리. 그곳에서 느껴지는 여유. 한 순간, 한 순간이 영화 같았던 도시. 다음을 기약하며 소중한 추억을 되새겨본다. 1 요나고 공항 2 돗토리시에서 이용할 수 있는 1,000엔 택시 3 아크 21 비즈니스호텔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마이클 샌델 교수가 보는 월가 시위

    마이클 샌델 교수가 보는 월가 시위

    “(미국) 월가 점령 시위는 금융위기 그 자체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미국 정부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분노와 좌절이 한꺼번에 표출된 것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의의 문제, 공정함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난해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 출판계를 석권한 마이클 샌델(59)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12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정의, 돈, 시장’(Justice, Money, and Market)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샌델 교수는 “시장 그 자체는 중립적이거나 순수한 것이 아님에도 너무 과신하다 보니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질을 낮췄다.”면서 “지난 30여년간 시장경제 논리가 승리를 거두면서, 단지 도구에 불과한 시장경제 논리를 사회에 침투시켜 시장사회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깨우침을 바탕으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돈은 존경받을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마무리지었다. 강연 뒤 기자회견에서도 샌델 교수는 “시장과 돈은 평등, 공동체, 사회적 결합 같은 가치와 충돌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에 대해서는 민주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에 대해서는 “금융위기를 부른 월가 투자은행들에 납세자의 돈을 구제금융으로 제공할 때 그에 대한 명백한 조건을 덧붙였어야 하는데 이게 없었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그리고 “빈부격차의 심화”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들었다. 샌델 교수는 이 문제를 다룬 ‘시장과 정의’(What Money can’t buy:The Moral Limits of Markets)를 집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장은 부를 늘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분명히 효과 있는 도구이지만 비시장적 영역에까지 시장이 침투하면 안 된다.”면서 “교육, 보건, 환경처럼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역에서 비시장적 가치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지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6)천재 화가 반 고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6)천재 화가 반 고흐

    모난 머리와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꾹 다문 입술. 얼핏 봐도 비호감의 외모를 지닌 스물 다섯의 청년 반 고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목사가 되고 싶었던 그다. 그의 부친 역시 개신교 목사였으나, 부친은 장남 반 고흐의 꿈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신에게 직접 다가가려는 그의 열망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무시”하는 듯이 격렬한 그의 행동과 신앙이 부친에겐 한없이 위험해 보였던 터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실 반 고흐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되었던 것은 목사가 지님직한 권위였다. 교구의 교사나 목사에게는 반 고흐의 옷차림이나 태도가 영 마뜩잖았다. 그러던 중, 반 고흐는 보리나주의 탄광지대에서 임시전도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거기서 그는 “거칠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허위라고는 없는” 사람들을, “허술한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는 남자들”과 “자연스럽고 겁없이 마주할 수 있는 여자들”을, “그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거기가 바로 신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 고흐는 위원회로부터 해고당하고 만다. 교구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너무 낮추고, 그들의 비참한 활동에 동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해고의 이유였다(1879년 광부 파업 당시 광부들의 편에 섰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동했겠지만). 목사가 되고 싶었던 청년 반 고흐는, 그렇게 교회와 아버지를 옭아맨 소명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1880년.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오십줄에 들어선 남자처럼 폭삭 늙어버린 이 사내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생 테오의 권유도 있었지만, 설교로 전하지 못하는 말씀을 그림으로는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어온 터였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19세기에 흔히 그려진, 화가의 시선으로 멀찌감치에서 바라본 ‘민중의 풍경’이 아니라, 가난한 시절 반 고흐 자신의 초상이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를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1885년 일기) 감자를 먹는 그 손으로 그들은 땅을 일구고, 감자를 심고, 감자를 거뒀다.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농부처럼 뿌리고, 뿌린 대로 거둘 뿐이다. 농부들의 손처럼 화가의 손이 정직할 수 있다면! 농부들의 정직한 식사만큼이나 그림 또한 정직할 수 있다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반 고흐는 1886년 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거기서도 그는 ‘아카데미’의 적이 되었다. 그의 취향, 기질, 그림의 스타일, 그 어느 하나 고상한 아카데미의 예술가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반 고흐는 주기적인 신경발작증에 시달리게 된다. ●‘노란집’, 화가공동체의 꿈 동생 테오는 형에게 프랑스 파리행을 권유한다. 당시 모든 예술은 파리로 통했다. 파리는 멋진 댄디들로 북적였고, 순간의 빛을 담은 인상주의 회화가 유행했으며, 새로 단장한 거리는 스펙터클로 넘쳐 흘렀다. 이 모든 것이 반 고흐를 사로잡을 듯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모던 시티’ 속에서 반 고흐는 기쁨보다는 환멸과 허무를 느꼈다. ‘성공한’ 파리의 인상주의자들은 반 고흐의 세련되지 못한 행동을 용납하지 못했으며, 반 고흐 또한 흥청거리는 파리를, 그곳의 가볍게 살랑거리는 그림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성공이 끔찍스럽다. 인상파 화가들이 성공해서 축제를 열 수도 있겠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축제의 다음날이다.” 1888년. 반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로 향한다. 파리에 없던 풍경이 거기 있었다. “대기가 그의 짐들을 벗겨주었고, 그래서 그는 마치 천한 가죽신 대신에 날개에 실려 다니기라도 하는 듯이 움직였다.” 그는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아를의 ‘노란집’은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화가공동체를 만들자! 반 고흐는 “사람들의 무관심은 내가 값비싼 구두를 신고 신사의 생활을 원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나막신을 신고 나갈 거니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밀레의 말을 가슴에 품어왔다.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된다면 억지로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럼 화가들이 함께 모여서 그리면 된다. 화가들이 고립되어 있으면 패배하기 마련이라고, 함께 의지하고, 함께 생계를 마련하며 살 수 있는 화가공동체를 만들면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아를로 가는 기차에서 반 고흐는 생애 가장 환한 희망을 품었다. 그 때 거기에, 그, 고갱이 왔다. 대단히 현실적이고,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했던 고갱은 매사에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물음이 많은 반 고흐를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몇 번의 말다툼과 예기치 못한 자해. 꿈으로 설레던 ‘노란 집’의 행복한 날들은 그렇게 저물었다. 생레미 요양소에서의 날들은 반 고흐의 삶에서 가장 비참했던, 동시에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반 고흐를 미치게 한 것은 그림’이라며 그를 고발했지만, 반 고흐는 ‘그래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은 그림뿐’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병원의 창문 밖으로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보며, 반 고흐는 저들처럼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림이 광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그림만이 자신의 광기를 치유해줄 거라고 믿었던 반 고흐. 병원을 나온 후 머물렀던 오베르 쉬아즈의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애호가’였던 가셰 박사 역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가셰와의 다툼 후 집을 뛰쳐나가 권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해바라기고, 햇빛이고, 길이다 가난, 외로움, 정신발작, 자살. 드라마틱하다면 드라마틱한 인생이지만, 이런 몇 가지로 반 고흐의 삶을 드라마화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 예술가의 삶을 이런 식으로 드라마화하거나 신화화하게 되면, 그의 예술이 갖는 단단함과 특이성을 놓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불멸’, ‘천재’, ‘광기’ 등의 수식어가 붙는 반 고흐의 화면에서 무턱대고 죽음을 읽으려 하고, 그의 색채와 붓질에서 광기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화화야말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박제화시켜 버리는 길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반 고흐는 해바라기였고, 아를의 햇빛이었으며, 오베르 쉬아즈의 길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바로 그것이 되기 위해 땅을 기고, 비를 맞고, 종일토록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런 그에게서 사람들은 광기를 봤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광기를 다스렸다. 중요한 건, 그의 광기 자체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광기를 돌파한 그 지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 고흐는 발작이 일어난 순간에는 붓을 들지 않았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자가 어떻게 손의 붓질을 통제한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병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병을 넘어서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서, 흔들림 없이. 바로 이것이, 예술을 예술이게 한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 해나갈 수 있겠니?”(1882) 반 고흐를 ‘드라마’로부터 구출해내고, 그의 그림을 광기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면,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이 말해주는 진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그것이 길이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채운 남산강학원 연구원 서울신문, 수유+너머 공동기획
  • 세월의 조각 맞추듯평면위에 ‘나’를 담다

    세월의 조각 맞추듯평면위에 ‘나’를 담다

    캔버스 위에 조각들을 집적시킨 듯한 릴리프 피스(Relief Piece) 연작이 눈에 띈다. 그간 현대산업사회를 소재로 강력한 이미지의 조각을 펼쳐온 대가가 이제 말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조각가 앤서니 카로(87)의 개인전이다. 카로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로 미국에서 시작된 철판 조각을 처음 유럽에 소개한 인물이다. 아이빔 같은 건축자재를 거리낌 없이 써온 작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추상과 구상의 경계는 물론, 건축이나 회화와의 경계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등 지극히 개인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작가로 꼽힌다. 전시도 그의 이런 면모를 부각시키기 때문에 어떤 작품에서는 건축적인 맛이 나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지극히 회화적인 맛이 나기도 한다. 철판을 이용한 전형적인 그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큰 작품을 즐겨 하지 않는 그가 이례적으로 규모를 키운 ‘사우스 패시지’(South Passage), ‘스타 패시지’(Star Passage)의 육중한 덩치감도 느낄 수 있다. (02)735-844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집필기준, 2006년 처음 도입… 꾸준히 ‘우파 시각’ 반영

    집필기준, 2006년 처음 도입… 꾸준히 ‘우파 시각’ 반영

    역사교과서 저자들이 교과서 내용을 기술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이 있다. 집필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검정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역사적 사실 선택이나 해석에 있어 집필자의 과도한 편향성을 막기 위해 2006년 도입된 ‘2007 개정 교육과정’ 때 처음 마련됐다. 집필 기준은 개정 교육과정을 구체화한 것이다. 때문에 지난달 고시된 역사 교과서 내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일괄 변경하는 내용의 ‘2009 개정 역사 교육과정’은 집필 기준에 반영되고, 이는 다시 역사교과서를 통해 구체화된다.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보면 이른바 ‘우파의 시각’이 꾸준히 반영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항목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 전쟁, 경제개발과 자본주의 발달 등을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경우 2009년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는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국가임을 설명한다.”는 내용이 보강됐다. 6·25 전쟁과 관련한 내용은 ‘6·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명확히 서술’하도록 했다. 2000년 국사교육 준거안에는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킨 과정을 설명한다.”고 되어 있었다. 또 2000년 준거안에 들어 있던 “제주도 4·3사건 및 여수·순천 10·19사건에 대해 설명한다.”는 부분은 빠졌다. 이승만 정부에 대해서도 반민법·농지개혁법 제정 등 주요 정책과 성격을 설명한다는 2000년 국사교육 준거안은 “대한민국은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또 2000년에는 경제성장과 사회화,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른 사회문제의 실상을 서술한다고 되어 있던 것이 2009년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는 “대한민국이 성취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상관관계가 있음도 서술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2013년부터 적용될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은 10월에 마련된다. 최근 개정 역사교육과정에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일괄 변경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커지면서 용어 변경을 주도한 한국현대사학회는 용어 변경에 반대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다음 달 공동 학술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이 확정되기 전에 학술적인 논란을 걸러 내자는 것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국내 최대 미술장터 KIAF 외화내빈 속앓이

    [문화계 블로그] 국내 최대 미술장터 KIAF 외화내빈 속앓이

    한국화랑협회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1층에서 연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가 26일 막을 내렸다. 출범 10년째를 맞은 키아프는 한국 미술계의 간판 아트페어로 꼽힌다. 17개국 192개 화랑이 5000여점을 내놓은 규모가 이를 말해 준다. 하지만 화려한 외양 못지않게 비판도 늘 달고 다닌다. ‘허약체질’이라는 것이다. 국내 컬렉터들이 한국 작품보다 외국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데다, 해외 작가나 컬렉터들도 최근의 중국 미술 열풍 때문에 2008년 시작한 홍콩아트페어에 더 관심을 보이는 데서 비롯된 비판이다. 표미선 화랑협회장이 “점당 5만 달러 이상 작품이 팔릴 정도가 되어야 구매력 있는 시장으로 평가받는데 키아프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자인하는 이유다. 때문에 키아프 측도 올해 변화를 가미했다.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키네틱 작품들을 모은 ‘아트 플래시’를 마련했다. 전통 회화나 조각에 치중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현대미술까지 한데 묶은 것이다. ‘키즈 인 키아프’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부모들이 키아프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아이들을 따로 맡아 주면서 이들에게 간단한 미술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미래의 수요자를 창출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노력은 일정 정도 통했다. 지난해 7만 2000명에 이어 올해 관람객 수는 8만명을 기록했다. 10% 증가한 수치다. 특히 20대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키아프 관계자는 “20대 관람객이 3만명 수준에서 5만명으로 크게 늘었다.”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새로운 매체들을 적극 활용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참가 화랑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전체 작품 판매액은 130억원으로 지난해 125억원에 비해 소폭 증가에 그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랑에 수익을 줄 수 있는 고액 작품 거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중저가 작품들만 주로 거래됐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에다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큰손’들의 타격이 겹친 탓으로 분석된다. 화랑들의 속앓이가 깊어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하루 관람객 수가 1만명을 넘나드는 장터이니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실속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발벗고 나서기도 힘든 노릇이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좋은 작가와 작품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트페어를 단순히 손익계산서만 보고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도 “판매가 지지부진하니 김이 새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플러스]

    27일부터 ‘공공미술&디자인’展 용산구(구청장 성장현) 27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이태원동 용산아트홀 전시장에서 ‘공공미술&디자인 전시회’를 개최한다. 숙명여대 미대 5개 학과의 교수, 학생들이 제작한 회화, 공예, 디자인 작품을 전시한다. 도시디자인과 2199-7543. 부가가치세 7억여원 환급받아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 최근 국세청에 초과 납부했던 부가가치세 7억 9872만원을 환급받았다. 유혜경 구의원의 지적으로 구성한 태스크포스(TF)팀이 경정청구 업무를 추진, 최종 자문검토만 회계법인에 맡기도록 한 결과다. 재무과 2127-4532.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5) ‘만세전’의 작가 염상섭

    염상섭(1897~1963)은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다. 염상섭이 ‘국민작가’인 것은 물론 그의 걸출한 문학작품 덕분이지만, 그의 삶이 근대 이후 한국사의 중요한 맥락들과 궤를 같이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철들 무렵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그는 한일병탄 2년째인 1912년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1930년대에는 만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38선을 간신히 통과해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종군작가로 한국전쟁을 체험한다. 이처럼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 해방과 한국전쟁을 마주했던 염상섭의 삶의 국면들은 100편이 훨씬 넘는 그의 장·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히 문제적 시대를 살아낸 문제적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대가 문제적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적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한국문학사에서 염상섭을 일컬어 ‘리얼리즘의 최고봉’이라 하는데, 이 찬사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는 평가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염상섭이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선망과 자괴 사이에서 일본 유학생 시절, 그는 식민지인이라는 피해자의 입장과 제국 일본을 선망하는 학습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른바 ‘친밀한 적’을 마주해야하는 고통, 즉 일본을 본받고 따라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자책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일본에 유학한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염상섭의 경우는 좀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그의 유학이 일본군 육군 중위였던 맏형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염창섭은 대한제국 시절, 영친왕이 유학이라는 명분 아래 일본으로 인질처럼 끌려갈 때 그 시종으로 따라갔다. 이후 염창섭은 대한제국의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는 일본군대로 편입하는 길을 선택한다. 곡절 많은 내력이지만, 현실에서 일본군 장교라는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형 덕분에 염상섭도 사립학교나 학원가를 전전하던 조선유학생들과는 달리 정규 일본 명문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후 염상섭은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일본특파원)를 비롯해서 시대일보, 조선일보, 심지어 총독부기관지였던 매일신보, 만주국의 홍보지 역할을 했던 만선일보에서까지 두루두루 일한다. 할 일 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는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게다가 염상섭만큼 일본어와 일본문학에 정통한 문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염상섭에게는 ‘군복자락 콤플렉스’, ‘현해탄 콤플렉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일본군 장교인 형은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부끄러운 존재였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을 오가는 것처럼 일본을 선망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식민지인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사카 독립선언서 사건이다. 염상섭은 2·8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오사카에서 단독으로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거사를 꾀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미결수 생활을 겪는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오사카 한국 노동자 일동 대표 염상섭’이라고 쓰여 있다. 그 전해에 병으로 대학을 자퇴했고, 작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가 노동자 대표라기엔 다소 억지스럽다. 게다가 정규 일본 명문 중학을 졸업하고, 귀족자제들이 다니던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했던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생뚱맞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동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그의 깊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염상섭의 내면에는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 안온한 일본유학생이라는 자괴감이 늘 존재했고, 그 반작용의 심리로 자신을 노동자대표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군복자락으로부터 야차의 길로 식민지 상황에 대해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체념했다. 또 어떤 이는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투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괴로움으로 현실을 등지거나 스스로 자기 파멸로 내몰아가기도 했다. 물론 자기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염상섭은 자기 삶을 글쓰기로 옮겨놓음으로써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세전’(1924)은 자전적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일본 유학생 ‘이인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인화’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맹렬하게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면서도 딱히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변명과 자기연민, 자조가 뒤범벅인 소설 속 인물.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일, 바로 글쓰기를 통해 염상섭은 새로운 길을 만난다. 그는 1923년 첫 창작집 ‘견우화’를 발간하면서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이란 것이 인생과 그 종속적 제상을 묘사하는 것인 이상 인간이 어떻게 고민하는가를 그리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연극적·음악적·회화적·조각적 요소를 어떻게 약배하며 약동하도록 그리겠느냐는 문제이지만, 기초적 조건은 역시 사람은 어찌하여, 어떻게, 얼마나 고민하는가, 또는 그 고민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묘사함에 있다. (중략) 이러한 의미로 나의 처음 발간하는 단편집에 대하여 야차(夜叉)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는 표제를 택하였거니와…….” (‘견우화’의 서문)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하면 첫 단편집을 “야차의 마음을 가진 보살을 의미하는 ‘견우화’”라고 이름 붙였다고 스스로 해명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 야차(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야차되기를 선택함으로써 그는 군복자락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일본 육군장교의 동생이자 독립선언을 하는 식민지 조선인, 총독부 기관지의 정치부장이자 조선인 소설가. 이러한 극단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물론 두 눈으로 세계를 똑똑히 본다고 해서 쉽게 해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염상섭의 작가적 두 눈은 해답보다는 일상적 삶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삶의 미세한 진실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는 아무도 순결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박쥐 같은 양면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들조차도 핏줄보다는 돈(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등. 1930년대 ‘삼대’가 그려낸 풍경은 그러한 삶의 이면에 대한 해부였다. 그래서 염상섭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마치 외눈박이처럼 하나로만 바라보는 것을 온전히 다 보여준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적 현장이나 전쟁 상황에서도 염상섭의 이러한 자세는 계속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서 1·4후퇴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 ‘취우’(1953)는 전쟁의 극한상황이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노골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왜 염상섭이 국민작가로 회자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삶을 대면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단면적인 세계, 양가적인 판단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그의 글쓰기는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삶의 응시가 그로 하여금 글쓰기로 나아가게 했고, 그것이 국민작가 염상섭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일 터이다. 김연숙 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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