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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영웅 사진 찢어 붙여 또 다른 신을 창조

    신·영웅 사진 찢어 붙여 또 다른 신을 창조

    전시장에 들어서면 신전 같다. 작가도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신전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사진 콜라주와 오일스틱 드로잉이다. 사진 콜라주는 동서양의 신상이나 영웅상 사진을 손으로 일일이 찢어서 해체한 뒤 다시 이어 붙여 또 하나의 신상을 만들어 냈다. 실제 동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예산 때문에 일단 포기한 상태다. 오일스틱 드로잉은 원본 사진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롭고 추상적이다. 작가는 “동상으로 만들긴 어려우니 드로잉으로 가볍게 접근했는데, 주변 반응은 더 좋다. 역시 마음을 내려놓고 작가가 하고 싶은 걸 하니 보는 사람들도 그 마음을 알아보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이들 작품 주변에는 각종 신상과 성물들이 배치됐다. 작가가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독일, 영국 등 10여개국을 떠돌아다니며 모은 것들이다. 사진도 이때 수집한 500여권의 책에서 나왔다.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가 떠오른다. 오글오글 민중들이 모여 절대권력자인 왕을 구성하고 있는 그림이다. 양쪽에서 다 욕먹었다. 왕당파는 민중을 등장시킨 것에, 공화파는 결국 결론은 왕이냐며 불편해했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특정 신앙이나 이데올로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잡탕처럼 보일 법하고,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또 하나의 신앙을 만들어 낸 게 아니냐고 물을 법하다. 29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기라(38) 작가는 그걸 일러 “조화와 공존을 말하지 않는 발전은 폭력이라는 고민의 반영”이라고 했다. 작가의 삶과도 연관이 있다. 충남 대천, 9대 종손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주류 대학을 다녔고, 그나마도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회화에서 조각으로 바꿨다. 영국 유학 때는 제3세계인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이 세상의 표준과 그것의 가치는 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작품들은 모두 이 질문 위에 서 있다. 전시 제목 ‘공동선 - 모든 산에 오르라’는 이를 압축한 말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전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이다. 다이아몬드, 금덩어리, 진주 몇 알이 테이블에 놓여 있다. 이것들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결혼을 앞둔 작가는 이 작품을 농담 삼아 ‘예물 3종 세트’라고도 부른다. (02)708-50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인 김수영 자전적 산문 발굴

    시인 김수영 자전적 산문 발굴

    시인 김수영(1921~1968)이 25~27살 무렵의 자신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1954년에 쓴 산문이 발굴됐다. 문학계간지 ‘문학의 오늘’의 주간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김수영이 ‘시인 김수영’이란 이름으로 1954년 문학잡지 ‘청춘 2월호’에 기고한 산문을 새롭게 발굴했다고 1일 밝혔다. 고서(古書)전문가 문승묵씨가 발굴한 ‘나와 가극단 여배우와의 사랑’(큰 사진)이란 산문이다. 원고지 30~40장 안팎의 짧은 글로, 예술가로 살기 어려웠던 1946~1948년 20대 청춘의 방황 등을 보여 준다. 김수영은 산문에서 ‘(중략) 벌써 지금으로부터 6, 7년 전, 지향하고 있던 문학마저 깨끗이 걷어치우고 P를 따라다니며 소위 ‘간판쟁이’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P는 일찍이 오소독시컬한 회화예술의 길을 포기하고, 자칭 ‘상업미술가’로서 백화점 선전부에 들어오는 포스터 주문을 거들어주거나 성냥 딱지에 붙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쩌다 운이 좋아야 다방의 사인보드 같은 것을 맡아서 그것으로 입에 풀칠을 하여가는 가련하고 불쌍한 친구. (중략)’라고 서술해 나간다. 김수영은 또한 ‘화가 P가 ○○가극단의 이성숙이를 사랑하듯이, 자신도 어느 댄서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장선방이라는 어깨와 허리가 고무풍선 같이 탄력이 있어 보이며, 검은 눈동자에 말할 수 없는 비애와 향수와 청춘이 교향악을 부르고 있는 열일곱에서 열아홉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꿈꾸는 내용 등을 담았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1946년 김수영은 집안 살림살이가 너무 어려워져 돈벌이가 된다면 일을 가리지 않고 할 때로, 주로 간판화 그리기와 통역 일을 했었는데, 이 산문에서 증언하는 간판쟁이 행적과 고스란히 일치한다.”면서 “화가 P는 본명이 박준경이고, 화명(畵名)이 박일영인 초현실주의 화가로, 김수영이 1960년대 중반 문학적 테마를 ‘양심’이나 ‘윤리’로 정향해 나갈 때 박일영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강동구, 저소득층 토요학습 지원

    다음 달부터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시행되면서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주말에 자녀를 돌보고 별도로 교육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 저소득층 부담은 더하다. 이에 강동구는 교육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토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크게 늘렸다고 28일 밝혔다. 우선 구는 토요체험학습을 총 7개 분야 203개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를 비롯해 도서관, 아트센터, 자치회관, 복지관 등 113개 시설에서 진행한다. 지역교육네트워크가 구성돼 있어 모든 분야를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매주 토요일 운영하는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다. 동기부여 캠프, 다중지능개발교실, 멘토스쿨 등을 운영하고, 학습 동기 부여를 위한 직업·진로체험도 기업탐방, 기업인 초청강연, 진로탐색캠프 등으로 다양화한다. 또 구는 올해 국비, 시비와 별도로 구비 1600만원을 지역아동센터에 지원해 운영 부담을 덜어준다. 이와 함께 18개 동 자치회관을 토요일에 개방하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신설한다. 신문활용교육(NIE), 수학교실, 영어회화교실, 논술교실 등 기존 학교 공부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한다. 방송댄스, 기타, 요가 등 여가 프로그램도 기다린다. 이해식 구청장은 “주 5일제 수업 전면시행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자치단체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모든 학생들이 토요일을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교육 사각지대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강동구에 거주하는 학생 6만 680명 가운데 저소득층 학생은 3417명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영어·동화 읽어주며 깊은 잠 유도 ‘스마트 베개’ 나와

    영어·동화 읽어주며 깊은 잠 유도 ‘스마트 베개’ 나와

    애플의 아이폰에서 시작된 ‘스마트 혁명’이 머리맡 베개마저 바꿔놓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앱)과 연계해 불면을 줄여주며 기상 시간을 알려주고,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영어 단어나 동화도 읽어주는 등 ‘스마트 베개’로 진화하고 있다. 수면용품 업체 라비오텍에서 내놓은 ‘해피슬립-사운드필로우’는 스마트폰을 연결해 음악이나 뉴스 등을 들을 수 있다. 뼈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골전도 방식’을 채택해 베개에 머리만 대고 있으면 이어폰이나 스피커 없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소리 또한 본인에게만 들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해피슬립’ 앱(아이폰 전용)을 내려받으면 ▲숙면 유도 ▲뒤척임·코골이 감지 ▲깨워주기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엄마가 직접 자장가나 구연동화를 녹음해 베개에 누운 아이에게 들려주거나, ‘엠씨스퀘어’ ‘유플레이어’ 등 전용 단말기를 통해 잠자리에서 영어 단어 및 회화 표현 등을 익히는 ‘수면 학습’도 할 수 있다. 가격은 10만~30만원대. 라비오텍 관계자는 “베개 전용 단말기의 뇌파 유도음은 대구대 임상실험을 통해 효과가 입증됐다.”면서 “앞으로 집중력 향상 및 치매 예방 등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기능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기기 전문기업 아이담테크의 ‘아이필로우’도 스마트폰을 연결해 숙면관리, 음악감상 등 다양한 음원을 즐길 수 있다. 이 제품도 골전도 방식을 탑재해 옆 사람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용 수면 앱을 함께 사용해 베개의 효과를 높일 수 있고, 고밀도 하이퍼 소프트폼 소재를 채택해 인체의 무게를 베개 전체로 고르게 분산해 준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10만원대부터, 인체과학 전문업체인 효원생활과학도 스마트폰과 연결이 가능한 ‘에듀올스마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숙면 베개에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음악은 물론 어학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평소 잠을 잘 이루지 못해 머리맡에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 부모님에게도 좋은 제품이라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에게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10만원대부터, 스마트폰 혹은 전용 단말기와 연계해 수면 효과를 높여주는 스마트 베개는 현재 중소 업체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아직은 초기 시장이라 가격도 다소 비싼 편. 하지만 한국3M 등 대기업들도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2분기부터는 본격적인 경쟁이 이뤄질 전망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일반인들도 공감하는 전문가급 전시 기획할 것”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일반인들도 공감하는 전문가급 전시 기획할 것”

    “서울대 미술관장 시절 17~18세기 일본 미술품을 전시한 적이 있는데 좋은 교육 프로그램과 접목하니까 초등학생들도 이해하고 공감했습니다. 전문가와 일반 대중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덕수궁관 ‘근대미술’ 서울관 ‘현대미술’ 21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013년 하반기 정식 개관 예정인 서울관(UUL관) 운영 계획에 대해 이처럼 밝혔다. 전문가와 일반 대중을 분리하기보다 전문가급의 전시를 기획하되 일반인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교육과 마케팅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 관장은 우선 과천 본관은 미술관 소장품 위주로 장기 기획 전시와 연구 교육 기능 강화에 치중하고, 4월 내부 수리가 마무리되는 덕수궁관에는 근대미술을, 서울관에는 현대미술을 중점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관의 목표 관람객은 연간 200만명으로 잡았다. 또 충북 청주시로부터 무상임대받는 옛 연초제조창 부지에는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를 완공한 뒤 교육 기능을 덧붙여 확장해 나가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수집범위 건축·판화 등 확대” 특히 미술사 전공자임을 십분 살려 아카이브 구축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관장은 “지금 수장된 작품들을 파악 중이고 파악 작업이 끝나면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빠진 작가나 작품이 없는지 살펴보고 수집 계획을 세울 것”이라면서 “수집 범위도 회화, 조각에서 벗어나 사진과 건축, 판화 분야 등으로 점차 더 늘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법인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나 국회 등의 상황에 달린 것이어서 왈가왈부할 대목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법인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인 것이 확실한 만큼 미술관 운영 개선을 통해 재정 자립도를 높일 수 있도록 고심하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포의 육군교도소 잊어주세요”

    “공포의 육군교도소 잊어주세요”

    “시금치 오래 삶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비타민C가 파괴돼서 좋지 않아요.” 21일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육군교도소에서 만난 수감자 이모(38)씨는 요리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다. 2년 정도의 수감 생활 동안 한식조리사 등 자격증만 3개를 취득했고, 육군교도소가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 수감자에게 특강도 한다. 이씨는 “인터넷 교육 등을 통해 자동차 정비 기능사와 이용사, 한식조리사 자격을 모두 취득했다.”며 “내년 봄에 출소해서는 새 인생을 살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군 범죄자를 수용하는 유일한 전문 교정기관인 육군교도소를 이날 언론에 공개했다. 과거 ‘인권 사각지대’로 악명 높던 육군교도소가 설립 63년 만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변화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수감동 한쪽에서는 ‘웃음치료’가 한창이었다. 권영세(54) 웃음치료사의 지도에 따라 10명 남짓한 수감자들이 율동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활짝 웃었다. 권씨는 “수감 생활로 우울해지기 쉬운 장병을 돕고 싶어 자원봉사로 치료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육군교도소는 수감 장병의 자기 계발을 위해 다양한 교육을 도입했다. 수감자 대부분이 군 생활 부적응으로 인한 군무이탈자라는 점에 착안해 어학·공인중개사 교육과 자동차 정비 등 8개 종목 자격증 취득 강좌도 열었다. 지난해에만 134명의 수용자가 각종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다음 달부터는 교도소 내에 고시원을 열어 검정고시 응시자들의 교육을 지원하기로 했다. 수용자 1인당 하루 급식비는 6155원으로 민간 교도소(1인당 3602원)의 1.5배를 넘는다. 교도소 내에서는 매점 이용과 신문 구독, 케이블 TV 시청도 가능하다. 가족을 면회할 수 있는 기회도 대폭 늘렸다. 성규선(50) 교도소장(중령)은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재소자의 재사회화를 돕기 위한 취지로 과거 폐쇄적인 육군교도소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군교도소에는 120여명이 수용돼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실험작 한자리에… 23~25일 화랑 미술제

    실험작 한자리에… 23~25일 화랑 미술제

    ‘2012화랑미술제’가 오는 23~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D홀에서 열린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협회 소속 화랑들만 참여하는 행사다. 올해 참여 화랑 수는 지난해 66개보다 24개 늘어난 90개다. 참여작가는 모두 500여명, 내놓는 작품은 3000여점에 이른다. 장르는 회화에서부터 설치, 사진, 조각, 도예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있다. 올해의 특징은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는 데 있다. 미술시장이 어렵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처음 열리는 아트페어라 어깨가 무거워서다. 학고재갤러리는 20~30대 젊은 작가 유현경과 이영빈에다 ‘붉은 산수’로 유명한 이세현과 지난해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이용백을 내세웠다. 국제갤러리는 30~40대 작가 강임윤과 센정의 작품을 내놨다. 선화랑은 ‘오로라 작가’ 전명자의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아트사이드갤러리도 신수혁, 이승희, 변선영 3인전을 연다. 여러 작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작가 몇몇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다. 인기 작가들의 작품도 끊이지 않는다. 갤러리현대는 강익중·김덕용·김종학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가나아트갤러리도 고영훈, 두민 등 인기 작가를 내세웠다. 청작화랑은 김흥수·박돈·이두식을, PKM갤러리는 이강소·김지원·함진을 각각 내세웠다. 또 미술제 출범 30주년을 맞아 부대행사도 마련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오페라 평론가인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23, 2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전시장 내 VIP 라운지에서 유럽음악페스티벌과 세계공연 현장에 대해 특강을 한다. 온라인에서 출품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17~18일, 22~23일 나흘에 걸쳐 ‘네이버 온라인 미술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다. 작가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함께 넣어뒀다. 협회 관계자는 “직접 코엑스까지 나와보기 전까지 미리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공부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다만 네이버를 통해 볼 수 있는 작품 수는 120여개 작품에 그친다. 1만원. (02)733-370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뻔한 반복이 싫어 예술의 틀을 벗다

    뻔한 반복이 싫어 예술의 틀을 벗다

    전시를 기획한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이 한마디했다. “작가에게 미리 말씀은 안 드렸는데, 이게 일종의 회고전 성격입니다.” 보고 나면 확실히 맞다. 제3전시실에는 작가가 15살 때 그렸다는 그림에서부터 20대 때의 작품들이 줄줄이 들어차 있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적응하느라 정신없다 보니 10대 때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대학 가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10대 때 못 겪은 사춘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설명 그대로다. 회화와 드로잉 작품인데 그 충격이 대체 얼마나 컸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과 환멸이 짙게 배어 나온다. “성경 하나 달랑 들고 산에 올라간” 경험도 있다니 그 방황을 짐작해 볼 만하다. 그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선과 명상에 몰입하면서 그림들은 한결 정돈되는 모습을 보인다. 2전시실에서 뉴욕 뒷거리 콘돔과 정크푸드인 초콜릿을 응용한 작품들과 마주치면 작가가 서서히 어두운 내면에서 벗어나 외부의 현대문명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간 격리되고 소외된 것에서 벗어나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다시 마시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는 결심이 선 때”다. ●“콘셉트가 가장 중요…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매체·표현기법 결정” 전시장 분위기가 이런데다 전시타이틀까지 ‘비잉(Being) : 데비 한 1985~2011’이라 붙여 뒀으니 오도가도 못하게 딱 회고전이다. 한데, 작가 데비 한의 나이는 마흔 셋이다. 회고전 하기엔 젊다. 회고전처럼 꾸미면서 회고전이라 작가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게 슬며시 웃음을 자아낸다. 뻔한 반복은 없다. 참 다양한 작업을 했다 싶다. 회화는 물론 사진, 자개, 조각, 설치, 청자, 백자 다 섞여 있다. 대개 작가들은 꾸준히 작업해 나가다 자신만의 표현기법이나 매체를 고정시키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저에게 중요한 것은 콘셉트입니다.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거기에 가장 알맞은 매체를 고를 뿐이에요. 이번 전시는 기존의 작업을 마무리짓는다는 의미에서 한 겁니다. 이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생각인데 어떤 매체를 써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뭐라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작가는 2003년 한국에 정착한 뒤 비너스를 만들어 왔다. 비너스는 서구적 미의 전형이다. 수학적인 인체비례에 맞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인데 작가는 이를 비틀었다. 1전시실에서는 이 비틀린 비너스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가령, 동네 찜질방에서 모여 앉아 계란을 까먹는 포즈의 비너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비너스, 감정노동자처럼 공손하게 두 손 모아 인사하는 비너스 등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비너스로 재탄생했다. ●서구 미의 전형 비너스 비틀어… 문화의 차이에 대한 집중 설치작품 ‘개념의 전쟁’은 아예 비너스 상 수십개를 체스판에 배열하듯 놔뒀다. 살펴보면 얼굴들이 기묘하다. 표정이 아예 지워진 것에서부터 전형적인 서양 비너스는 물론, 아프리카 비너스, 아시아 비너스, 매부리코 비너스 등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왜 수학적 인체비례를 갖춘 서양의 비너스만 있어야 하느냐는 얘기다. 아니, 모두가 비틀린 비너스라면 대체 정상적인 비너스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저 작품들을 보고 서구적 미의식, 백인중심 문화에 대해 비판했다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비판, 도전이라기보다 어떤 느낌과 해석이 내려질지 상상해 보자는 제안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길거리에서 젊은 아가씨들이 팔짱 끼고 수다 떨면서 가는 모습으로 비너스를 표현해 뒀더니, 한국에서는 재밌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레즈비언으로 여기는 반응을 보였다. 작가의 작품은 그런 문화의 차이에 대한 집중이다. 3월 18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2관. (02)737-76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민주 공심위 상견례… 공천기준 도덕성→개혁성?

    민주 공심위 상견례… 공천기준 도덕성→개혁성?

    4·11 총선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놓고 불거진 민주통합당 내 불협화음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공천 기준을 놓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통합당이 당내 공심위원에서 일제히 배제된 것을 계기로 공천 기준이 도덕성에서 개혁성으로 이동하는 등 통합 갈등을 매듭짓는 게 첫 번째 과제로 급부상한 모양새다. 한명숙 대표는 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 및 외부 공심위원들과 2시간 15분가량 상견례를 갖고 본격적인 공천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6일에는 첫 공심위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공천 기준들을 정해갈 계획이다. 강 위원장은 “국민에게 줄 메시지, 공천의 독립성, 가치성에 대해 고심하겠다.”고 밝혔다고 신경민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공심위원들의 관심은 지난 3일 공심위원 명단을 확정하는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트위터에 “공천심사위 구성에서 통합의 정신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하며 공심위원 전면 재구성을 주장한 문성근 최고위원에게 쏠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문 최고위원이) 대의를 따르겠다고 했고, 소통의 문제가 있었지만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공심위원 전면 재구성은 어렵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홍영표 대표비서실장을 보내 문 최고위원에게 실무상 착오 등에 대해 신속히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최고위원 등 시민통합당 출신 진영도 일단 공심위원 구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재구성 요구를 관철시키기가 쉽지 않은 데다 내부 갈등이 증폭되는 모습이 서로에게 도움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시민통합당 출신 측이 “통합의 정신이 온전히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힘을 합쳐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흐름은 언뜻 갈등 봉합으로 보인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더 치열한 공천 줄다리기를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일 문 최고위원이 트위터에 “앞으로 공정한 경선을 위한 시·도당의 인적 구성, 비례대표 후보 공심위 및 총선기획단 구성 등에서 훼손된 통합 정신이 반드시 바로잡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 단적인 예다. 문 최고위원 측은 “공심위원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통합의 정신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추후 인선에서 또다시 시민사회 세력이 배제된다면 언제든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외부 공심위원들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회화 과정을 보겠다.”(김호기·조은 교수)고 말했다. 신 대변인은 예비 후보 경선 방식이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시민사회계의 의구심을 감안해 “여론조사 전문가가 있는 만큼 엄정하게 여론조사를 디자인하고 해석하는 기준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고위원들은 시민사회계 출신 오종식 전 대변인을 총선기획단에 추가 인선키로 결정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21일까지 최병진 ‘문 없는 방’展…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현대인

    21일까지 최병진 ‘문 없는 방’展…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현대인

    “최첨단에서 너무 먼 과거로 돌아간 거 아닌가요.” “결국 사람을 대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만 쌓아 올리기보다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옷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피에로 같은 복장이다. 기하학적 도형에다 화려한 원색들을 얹었다. 단조로운 무늬와 화려한 색깔의 대비를 통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은 틀에 갇혀 있지만 생동하는 열망만큼은 강렬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작품 이름도 딱히 없다. 1번, 2번, 3번 하는 식이다. 그런데 색깔만 쏙 빼면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기 위해 쌓아올린 굳센 옹벽같다. 그 위에 얹혀진 표정들은 묘하다. 굳센 옹벽 위에서 이제는 안심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도 아니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희미한 무표정이다.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 ‘문 없는 방’ 전시에 나온 최병진(37) 작가의 작품들이다. 작가는 원래 로봇을 그렸다. 거대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유머스럽게 표현해보고 싶어서 유아용 캐릭터 상품 같은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내놨다. 작가는 세상 살아가는 일을 진지하고 엄숙하기보다 ‘놀이’처럼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는 너무 꾸미는 데 치중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기본으로 되돌아가자.”고 결심했다. 기본이란 것은, 없는 뭔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모두 주변 사람들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1층에 굳센 옹벽으로 쌓아올린 인물들을 그린 작품들이 있다면, 2층에는 그 인물들의 내면으로 초대하는 평면회화작품들이 있다. ‘자화상’은 물론, ‘부모’, 아내를 그린 ‘희정’, 그리고 딸을 등장시킨 ‘중얼거리는 가족’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2층 ‘에라스무스와 루터’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종교개혁가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루터를 기억하지만, 동시대 사람으로 에라스무스도 있었다. 작가는 에라스무스를 주인공으로, 루터를 배경으로 처리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단칼에 치고 나가는 것보다 때론 좌고우면도 하면서 더듬어 더듬어 나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배치한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픈 현대인의 모습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런 회색지대 안에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사각형 1번, 2번, 3번 같은 작품들을 이리저리 배치해 봤다면 어떨까. “그렇게 해보라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배치된 것보다는 허공에 매달린 듯한 느낌이 더 좋아서 벽에 걸자고 했습니다.” 옹벽을 쌓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은 그렇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02)730-781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임진왜란 담은 병풍, 임진년인 올해 전시

    임진왜란 담은 병풍, 임진년인 올해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이 임진왜란 마지막 해인 1598년 순천왜성 전투와 노량해전 등의 전쟁 장면이 그려진 병풍을 영국의 한 딜러에게 샀다고 1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임진 7갑자(임진왜란 420년)를 기념해 이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원복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날 “이 병풍은 임란에 참전한 명나라 군대의 종군화가가 그렸다고 하는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를 모사해 종이에 그린 채색화”라며 “1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6폭 병풍 2점이 세트인데 이번에 구입한 것은 병풍의 후반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학예연구실장은 또 “전반부는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올해 임진왜란 420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위해 나머지 하나를 빌려올 예정”이라며 “한국은 8폭 병풍이 일반적이고 6폭 병풍은 일본풍이라 화가가 일본인이 아닌가 하지만, 현재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왜기공도란 왜를 정벌한 공을 기념해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을 다룬 회화적 자료가 매우 드문 실정에서 한·중·일 삼국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이 실장은 말했다. 이 병풍은 임진왜란의 연장인 정유재란 마지막 해(1598) 9~10월에 벌어진 순천왜성 전투에서 명 제독 유정(劉綎) 휘하의 육상군,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 명 수군제독 진린(陳璘)의 연합군 합동작전 등 일련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과 지리적 배열에 따라 구성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그림은 평양성탈환도, 조선군진도병, 부산진순절도, 동래부순절도 등이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수덕여관 옆 고암체험관 만든다

    근현대 회화계의 거장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이 작품활동을 했던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여관 옆에 ‘고암체험관’이 들어선다. 31일 예산군에 따르면 불교 조계종 사찰인 수덕사가 최근 도 지정기념물 제103호 수덕여관(이 화백 사적지) 옆에 숙박시설을 갖춘 고암체험관을 건립하기 위해 충남도에 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수덕사는 도 허가가 나오면 올해 말까지 3억 6000만원을 들여 체험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체험관은 방 6개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1층에 총건평 138.24㎡ 규모의 너와집으로 지어진다. 사찰 측은 관람객이 이곳에 머물면서 고암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수덕여관은 고암이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개축 당시 이 화백의 습작 50여점이 발견됐다. 이 작품은 인근에 지어진 ‘선 미술관’ 내 고암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소병희 예산군 문화재계장은 “수덕여관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숙박기능을 하지 못해 체험관을 짓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1악장 1악절… 비워낸 하루의 시작

    1악장 1악절… 비워낸 하루의 시작

    고즈넉하다, 그윽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비어 있는 듯한 풍경 속으로 사르르 녹아들어갈 것 같다. 오는 3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는 ‘고요한 아침’(Tranquil Morning)전이다.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59)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찍은 아침 풍경 52점을 내걸었다. # 아날로그 기법… 여백과 정적 풍기는 고즈넉함 완성 아침 풍경이라 해서 해가 뜨거나 붉은 햇살이 들이치거나 하는 도식적인 장면은 없다. 한겨울 눈밭 같은 풍경들이어서 저 멀리서 날아오는 빛줄기는 고작 눈이나 안개 속에 약하게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풍경도 뭔가 거창하고 우뚝한 것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라 넓고 얇게 펼쳐진 광경이다. 해서 아침 풍경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딱히 아침이구나 할 만한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침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정적과 여백이다. 모든 요소를 지워버린 채 여백의 미를 고스란히 살려내다 보니 수묵화 같은 정갈한 느낌이 강하다. 어릴 적 신학자를 꿈꾸었다는 작가의 이력, 그리고 사진작가가 되기 전에 그림 공부를 하다 보니 사진에 회화성을 많이 불어넣는다는 평이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작가는 “물러가는 밤이 다가오는 낮으로 바뀌어 가기 전의, 차가운 아침 공기 속의 정적을 사랑한다.”면서 “일종의 오아시스, 휴식의 장소, 숨 쉴 수 있는 시간, 차분해질 수 있고 심지어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내 작품에서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작가는 디지털 시대임에도 여전히 아날로그 기법을 지킨다. 한 장소가 정해지면 여러 해에 걸쳐 여러 번 방문하면서 풍경 그 자체가 친밀하게 와닿을 때 작품을 남긴다. 장시간 노출을 통해 시간의 옷을 한 장의 프린트 위에 덧입힌다. 한국 풍경도 빠질 수 없다. 매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 풍경을 촬영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내고 싶은 것은 ‘코리아’(KOREA) 시리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 맞춰 강원 평창에 집중하고 있다. 기획전 형태로 이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미 중국 곳곳의 풍경을 찍어 황산 시리즈를 선보였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 평창올림픽 맞춰 ‘코리아 시리즈’도 준비중 케나는 사실 한국과도 친숙하다. 2007년 강원 삼척 월천리 솔섬 사진을 찍었다. 지나치다 우연히 찍은 이 사진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케나의 촬영 이후 프로건 아마추어건 우리나라에서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치고 솔섬을 찍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인근에 LNG기지가 들어서면서 솔섬 보존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 오면 주로 지방 촬영에 시간을 다 보내는 작가지만 이번엔 서울 일정도 마련했다. 오는 2월 10일 오후 3시 갤러리에서 작가 강연회가 열린다. 세계 각국의 아침 풍경에 대한 얘기, 한·중·일 3개국 아침 풍경의 차이점 등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놓는다. 참가비 10만원. 이튿날인 11일 오전 10시부터는 전시장에서 사진첩 출간기념 사인회도 연다. 사진에다 작가가 좋아하는 철학자의 글귀까지 함께 넣었다. 법정스님의 잠언집에 그의 사진이 쓰일 정도였으니 꽤 어울리는 궁합이다. 전시회 입장료는 3000원. (02)738-777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히틀러와 입학시험/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열린세상] 히틀러와 입학시험/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한 청년이 화가의 꿈을 안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흘러들었다. 1907년 가을, 빈 조형예술아카데미 소속 일반화가 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 18세의 그 청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등 실기시험에는 합격했으나, 2차 면접에서 실패하고 만다. 풍경화나 건축화에는 뛰어났지만, 초상화에는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은 화가가 될 자질이 없다고 면접관들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최근 동유럽 여행 때,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의 서로 다른 현지 가이드들이 히틀러에 대해 들려준 공통된 내용이다. 히틀러는 입학시험에 불합격하고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3류 화가 노릇을 하면서 빈에서 외로움과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군대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이를 거부하다 군사재판에 출두하게 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독일 군대에 자원입대를 하는데, 이것이 파시스트 히틀러 행로의 시작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예술아카데미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면? 나치당의 운명과 독일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 및 폴란드 침공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발발, 프랑스 점령, 덴마크 장악, 러시아 진격과 패배 등 전 세계가 전쟁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휩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大) 독일의 야망 아래 자행된 유대인 대량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의 연쇄적 영향에 의해 우리는 전혀 다른 21세기를 맞고 있을 것이다. 히틀러가 화가가 되었다면 예술의 지형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체션(분리파)의 중심에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과 에곤 실레 등과의 교우관계를 통해 히틀러는 표현주의 화가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여행객들은 폴란드의 오슈비엥침 수용소(‘아우슈비츠’라는 표현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난 후 독일식 발음으로 바꾼 것이다)가 아니라 히틀러 미술관으로 즐거운 발길을 옮기게 됐을지도 모른다. 화가 히틀러의 인생살이와 예술을 다룬 책이나 영화 ‘페인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독일에 대한 저항으로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 애창되던 에델바이스를 트랩 대령의 입을 통해 부르게 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히틀러가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역사가 다른 길로 흐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각 대학들에서 입학시험이 진행되고 있어서이다. 얼굴을 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히틀러를 예술 밖으로 내친 면접관들이 실수를 한 것인지, 히틀러에게 진정한 예술혼이 없음을 알아챈 그들의 선견지명을 놀라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히틀러가 입학시험에 불합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상화 때문이라는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풍경화 속에 건축물과 배경만 있을 뿐 사람이 그려지지 않아서 “면접관들은 회화과 대신 건축과 입학을 추천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수인 과정을 당시 히틀러는 중학교를 중퇴했기에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초상화는 현지인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오슈비엥침 수용소 관람 후,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폴란드의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이야기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틀어주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독일 장교와 오이지 통조림 앞에서 절체절명의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 곡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폴란드 현지 한국인 가이드에게 낯선 나라에 정착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대학입학시험 때 자신이 획득한 점수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를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학입학시험이 한 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형도를 바꾼다는 것을 히틀러뿐만 아니라 평범한 가이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시철이다. 인간과 세계의 미래를 향한 지극히 중대한 기획이 진행되고 있다.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많은 선택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들을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보게 될 것이다.
  • [Weekend inside] 이국철·디도스 이어 한예진도 ‘실세’ 못 밝히고 이사장만 기소… 왜?

    [Weekend inside] 이국철·디도스 이어 한예진도 ‘실세’ 못 밝히고 이사장만 기소… 왜?

    20일 구속기소된 김학인(49) 한국예술종합진흥원(한예진) 이사장의 300억원대 교비 횡령 사건, 이국철(49) SLS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사건. 세 사건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먼저 검찰의 최정예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첨단범죄수사부, 금융조세조사부가 맡은 사건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의혹의 주범은 기업인, 정보기술(IT) 관계자, 법인 이사장 등으로 다르지만 한결같이 정치권 실세와의 연계 의혹이 불거졌고, 마지막으로 수사에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윗선’이 전혀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건들은 모두 현 정권의 실세와 연계된 의혹이 제기된 만큼 검찰의 수사 결과가 정치권 전반에 대형 쓰나미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검찰의 결론은 “윗선은 없다.”는 것이었다. “변죽만 울리다 말았다.”거나 “몸통은커녕 꼬리도 못 찾은 수사”라는 혹평이 잇따른 이유다. 때문에 검찰 수사의 한계, 아니면 범죄의 지능화라는 지적이 부각됐다. 검찰의 창인 수사력이 노회화된 정치인들과 변호사들로 구성된 방패를 뚫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윤희식)는 이날 310억여원의 교비를 횡령하고 공사비를 허위로 꾸며 54억원을 포탈한 한예진 김 이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김 이사장은 수강생들의 수업료를 개인 명의 계좌로 받아 빼돌리고, 공사비를 과다책정해 매출을 줄인 반면 비용을 늘려 법인세를 탈루했다. 또 26억원 상당의 허위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EBS 이사 선임과 관련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책보좌역이던 정용욱(48)씨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정씨가 해외에 체류 중인 탓에 조사조차 못했다. 김 이사장의 개인 비리로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다. 10·26 재·보선 디도스 사건의 경우, 검찰은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전 비서 공모(27)씨와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모(30)씨 등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에 가담한 6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의원실 운전사와 고교 동창 간의 공명심에서 일으킨 범죄”로 규정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그룹을 살리기 위해 검찰과 청와대 등에 전방위 로비를 한 내용을 담은 비망록 폭로에서 시작된 SLS그룹 사건도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전 보좌관 박배수씨 등 6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검찰은 이 회장의 폭로를 ‘사실상 실패한 로비’로 결론지었다. 검찰은 정치권과 연관된 사건에 유독 수사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검찰도 할 말은 많다. 과거 사건을 재조합해야 하는 수사의 특성상 현금만 오갔거나 당사자의 진술이 없을 경우 진실을 밝히기 어렵고, 법원은 물증이 없을 경우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배후가 있다면 그걸 밝히는 건 ‘신의 영역’일 것”이라는 검찰 측의 발언에서 수사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기술은 갈수록 지능화되는데 수사 방식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고 털어놓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 중요무형 문화재 홍창원 단청장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 중요무형 문화재 홍창원 단청장

    단청(丹靑)이 없는 목조건물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궁이나 고즈넉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건축물 안팎에 그려진 단청 문양이다. 건물의 벽면이나 천장 등에도 어김없이 곱고 화려한 단청 문양으로 장식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단청은 삼국시대 벽화고분에서 나타나듯 우리나라 회화 미술사의 2000여년 궤적을 오롯이 그려오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만봉(1910~2006) 스님이 1972년에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되면서 그 연구와 명맥을 이었다. 스님은 생전 “단청이라 함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색상을 만들어 궁전, 불전 등에 다양한 문양과 인물, 산수, 화조, 산수 등으로 장엄하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 연말이면 숭례문 복원 공사가 완료된다. 현재 성곽복원이 마무리됐으며 봄부터는 문루 복원과 기와 잇기가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건축물의 화룡점정이자 마지막 화장단계인 단청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단청작업에는 내로라하는 단청 기술자 3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을 가리켜 단청화사(丹靑?師)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48호인 홍창원(57) 단청장은 바로 숭례문 단청복원의 화사(?師)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 명 화승인 예운스님의 맥을 이은 만봉스님의 수제자로 그동안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등 4대 궁궐은 물론이고 봉정사 극락전·대웅전 등 전국 각 지역의 고찰과 문화재 건축물의 단청작업을 해오고 있다. ●고려 단청은 화려… 조선은 검소한 문양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퇴촌에 위치한 한국단청연구소를 찾았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어서 그런지 그가 평소 그렸던 각종 단청 작품들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났다. 연구소 벽에 걸린 대형 ‘경복궁 근정전 천장 용그림’이 금빛 찬란하게 눈부시도록 다가온다. 용그림에 대해 궁금해하자 “1998년에 모사했으며 이런 모사 작품들을 모아 벽연회라는 이름으로 제자들과 함께 2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2009년 12월 ‘숭례문 단청문양 모사전’을 서울메트로미술관에서 가졌다고 한다. 특히 이 전시 때는 숭례문 화재 직후이기도 했지만 1800년대 후반의 숭례문 단청을 비롯해 1954년, 1963년, 1973년, 1988년 등 변화된 단청 모습을 연도별로 상세히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숭례문은 원래 중층의 다포(多包)건물로 아래·위층이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공포조작(拱包造作)에 있어서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기록으로 볼 때 1890년대 이후 광복 이전까지 재단청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국 전쟁 이후 피해 상태를 조사하고 수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1961~1963년 숭례문 문루 전체의 해체복원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73년과 1988년에 재단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듯 숭례문 단청은 19세기 말 이후 여섯 차례 단청공사가 진행되면서 각기 다른 양식의 단청으로 시공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단청을 다르게 시공할 수밖에 없었던 세부적인 상황과 내용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숭례문 단청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문양 형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19세기의 단청과 1954년의 단청은 조선 후기 단청의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1963년의 단청은 조선 초기 단청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1973년부터 1988년까지의 단청의 경우 문양 형식은 조선 초기 양식이지만 수법이나 색상은 조선 중·후기의 단청 양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숭례문 복원 조선초기 양식으로 재현해낼 것” 그는 이번 숭례문 복원공사 때 1963년의 단청, 그러니까 숭례문이 세워진 조선초기의 양식을 복원하겠다고 역설했다. 하여 조선 초기 단청이 남아 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예산 수덕사 내부단청, 안동 봉정사 대웅전, 창경궁 명정전, 그리고 1937년 임천 선생이 조사한 수덕사 단청조사 보고서에 수록된 여러 자료 등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조선 초기 당시의 단청자료에 대한 샘플링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으며 오는 5월부터 제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에 들어간다. 작업기간은 5~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화학안료를 쓰면 기간이 짧아지지만 숭례문의 경우 화학안료 대신 천연안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천연안료는 돌가루를 정제해 색깔을 낸 것으로 고운 심성으로 정성껏 입혀야 색깔이 아름답고 오래도록 남는다고 말했다. “고려시대의 단청은 화려한 반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청색과 녹색 위주의 검소한 문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1966년의 ‘남대문 수리보고서’에 수록된 복원 모사도의 컬러도판은 옛 안료색상인 삼복, 이청, 대청 등의 색상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모두 참고해 되도록 조선 초기 원래의 단청을 재현해 낼 생각입니다.” ●건물 장식뿐 아니라 목재수명 연장 기능 지녀 국보 1호 복구작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데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숭례문 단청을 멋지게 입히기 위해 틈틈이 숭례문 복원현장을 찾아 나름대로 단청의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숭례문 복구작업과 관련해 장인들 회의가 있을 때에도 매번 참석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어떻게 해야 단청을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우선 소질이 있어야 하며 그 다음 불굴의 인내력이 뒤따라야 하고 뭐니뭐니 해도 심성이 고와야 한다.”고 웃는다. 그러면서 최소 1년에서 3년 정도는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단청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음양오행설이다. 단청에 사용된 반복 문양은 화재와 잡귀를 막아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풍화나 뒤틀림을 방지하는 등 목재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역할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신촌에서 태어난 그는 불심이 깊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5살 때 중학진학을 포기하고 단청에 입문했다. 당시 집과 가까운 봉원사에서 만봉스님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만봉스님이 그리는 단청을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러다가 취미가 붙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단청을 공부하면서 점점 실력을 쌓았다. 이런 모습을 본 만봉스님은 그를 기특하게 여겨 기꺼이 제자로 삼았다. 이후 서울 보문사 일주문 단청을 시작으로 만봉스님과 함께 전국을 돌며 일했다. 1981년 만봉스님의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된 데 이어 일취월장해 1986년에는 이수자가 됐다. 이때부터 창경궁 문정전, 경복궁 경회루·강녕전·교태전,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을 도맡아 일을 하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2009년 2월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그는 30여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부인과 딸도 여기에 속해 있다. 특히 딸 홍보라씨는 아버지의 전수장학생으로 숭례문 복원 단청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수천년 이어온 겨레의 얼과 예술 명맥 이어야지” 1990년부터 한국단청연구소를 운영 중인 그는 숭례문 복구작업이 끝나면 전통 단청 보전과 후진양성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42년 동안 단청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의 단청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는 일본에서 가끔 초청을 받기도 하는데 이때마다 우리의 단청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열정을 보인다. 연구소 안에는 경복궁 근정문 적심(1850년 이전), 창덕궁 희정당 연목(1906년), 봉정사 대웅전 보머리(1604년) 등 각종 단청문양이 그려진 400여점의 고목들이 진열돼 있어 그가 평소에 얼마만큼 자료수집에 열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자료들을 모아 나중에 ‘단청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올해 말에는 ‘경회루 단청 문양 모사전’을 가질 계획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리 겨레의 삶과 예술의 혼이 담겨 있는 단청은 수천년 이전부터 사물에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를 붓끝에 담아 이어 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단청장이었던 만봉스님의 화맥을 끊임없이 전수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홍창원 단청장은… 1955년 서울 신촌에서 태어났다. 15살 때인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48호(단청) 만봉스님 문하생으로 입문했다. 1970년 동대문 탑골승방 일주문과 세검정 창의문 단청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부여 무량사(1971), 신촌 봉원사 대웅전(1972), 영화사 삼성각(1973), 부산 동래산성(1974년), 강릉 경포대(1978) 등의 단청에 참여했다. 1981년에는 만봉스님 전수장학생에 선정됐고 문화재수리 단청기술자로 등록한 데 이어 1986년 만봉스님 이수자로 선정됐다. 이후 광희문(1990), 창덕궁 구선원전(1992), 경복궁 강녕전·교태전·경성전·연생전(1994) 단청을 비롯해 덕수궁(2001), 창덕궁(2002), 경복궁 근정전(2003) 등의 단청 작업을 했다. 일본 나카지마 육각당과 일본 쇼고 무량수사 등의 단청 작업에도 참여했다. 2009년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이 밖에 동방불교대학 불교미술과 교수(1991~2005), 전통건축미술학교 단청강사(1991~1999), 불교방송국 단청강사(1997~2001) 등을 맡기도 했다. 현대미술대전 현대미술상(1993) 등 다수의 수상경력과 제1회 벽연회 단청소품전(1998) 등 10여 차례 초대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 전문계 ‘서서울생활과학고’의 기적

    전문계 ‘서서울생활과학고’의 기적

    서울 구로구 궁동에 위치한 전문계고 서서울생활과학고가 5년째 7~9명의 학생을 미국 주립대에 입학시키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 학교는 2008년 7명, 2009년 8명, 2010년 9명, 지난해 8명 등 이미 32명의 미국 유학생을 배출했다. 올해에도 미국의 중상위권 주립대에 8명을 합격시켰다. 이강준(유타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유대곤(서던뉴햄프셔대)·권오현(미네소타주립대)·정승민(아이다호주립대)·김원영(캔자스주립대)군과 서영주(뉴욕주립대)·조효진(센트럴미주리대)·손예린(아이다호주립대)양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 2일 미국으로 떠났다. 주립대에 입학하려면 일정 수준의 토플 점수를 확보해야 한다. 때문에 주립대 입학은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 최소한 일반고 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72년 설립된 이 학교는 국제정보학과·국제관광과·시각디자인과·만화영상과 등으로 특성화한 전문계 고교다. 전문계 고교에서 해마다 미국 대학 합격생을 배출한 비결은 독특한 ‘유학반’ 제도에 있다. “전문계고 학생이 미국 유학을 꿈이라고 꿀 수나 있나.”라는 주변의 편견을 깨고 싶었던 황정숙 교장은 2006년 9월 유학반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영어만 익숙해지면 실용학과 학생들이 유학 가는 데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겠다고 결심한 학생 40여명을 모았다. 집중적인 어학 능력 향상을 위해 아예 원어민 강사를 채용했다. 학생 개인별로 노트북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오후 5시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스파르타식 강의가 시작됐다. 교사들은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토플시험이나 회화 시험을 쳤다. 학생들의 피로도를 감안해 강의가 끝나면 1시간은 꼭 자율학습을 하면서 상담을 받도록 했다. 2008년 9월에는 영어 전용 학습관 등을 갖춘 ‘국제교육관’을 세웠다. 유학반 교사 김경희씨는 “만약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조건 통과할 때까지 상담과 교육을 병행했다.”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포기하고 싶고 힘들어질 수 있지만 그때마다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려고 했고, 학생들과 가족처럼 3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격증과 탄탄한 전공과목으로 무장한 학생들은 잇따라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자 자방자치단체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로구는 진학 취업 프로그램, 자율학습실 설치 등에 2008년부터 최근까지 5억 6000만원을 지원했다. 미국으로 먼저 떠난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의 멘토가 됐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기숙사 생활은 물론 입학 정보, 체류비 등 각종 상식과 정보를 아낌없이 전달하고 공유했다. 손예린양은 “처음 유학반에 발을 들였을 때 ‘중학교 때 기본적인 영어 문법도 몰랐던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과 상담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면서 “공부를 하는 데 재미를 느끼게 해준 선생님과 학교가 합격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녀석이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녀석은 밀크셰이크처럼 어감이 달콤한 밀크스네이크 종이다. 먹이 줄 것과 따뜻하게 해 줄 것, 간단한 러시아 단어로 적어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이반이 출항하기 전 남긴 글이다. 이반은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마지막 선물처럼 케이지를 앞에 내려놓았다. 한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아, 이반은 러시아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 새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니, 나는 검정 바탕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있는 이국의 낯선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뱀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다고 생각해. 녀석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지 이반은 한국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명자, 이반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휘이휘이 휘파람 부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집안이 텅 비게 돼, 녀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종종 휘파람을 불던 내게 이반은 러시아 속담을 빗대 말했다. 나는 멀찍이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반의 익살에 웃음을 내보였었다. 이반을 만난 것은 클럽 로즈에서였다. 로즈는 P시에서 속칭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미군들이 드나들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날도 나는 로즈에서 맥주를 마시며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러시아 청년 하나가 보드카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담 장 앞에서 한국 얘기를 듣던 선원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실 때 거울을 보면 안 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며 그가 속삭였다. 흔한 작업멘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반이라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처음 출발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베리아 열차가 끝없이 달리는 드넓은 숲과 초원을 떠올렸다. 그에게 러브 오브 시베리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올려 내 얼굴을 길게 그려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푸른색 돛이 펄럭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얼굴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첫 대면을 할 때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이국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영화 속 지명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들먹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러시아말로도, 한국말로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가 턱을 괴고 조용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음악이 흘렀고, 클럽 로즈는 마치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품고 있는 대합실 같았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돛 때문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라면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좋아요, 월요일 여행은 불행하거든요, 러시아 속담이에요.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벽면에 붙은 러시아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손을 잡고 아무 손님도 잡지 못한 나타샤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만국기가 꽃잎처럼 나풀거렸고 만국기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두 블록 떨어진 내 숙소로 걸어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이반이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출 것만 같다. 시계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녀석은 원색의 몸을 감춘 채 아직 기척이 없다. 나는 열선을 펴서 케이지 크기만큼 접었다. 그 위에 타월을 깔고 케이지를 얹었다. 사람 옷 입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판매원이 열선 까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겨울철,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열선은 생명줄과 다름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25도의 체온으로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 수 있었다. 나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케이지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거실의 불을 낮추고 이반이 남긴 메모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주방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북향으로 나 있는 주방에서 밖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 ‘홍루’의 뒤꼍이 훤히 보였다. 홍루 뒤꼍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들었다. 쥐라도 쫓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담자락을 타고 지나간다. 지난봄,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홍루(紅樓)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홍루는 붉은 다락방이라는 뜻이지만 이곳에 사는 화교들은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변두리 사거리의 허름한 중국집 이름 홍루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빛이 꺼져 가고 휑하니 바람만 몰아 불었다. 멀리 텍사스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넘겨 자주색 민소매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목선이 등 뒤로 깊게 파인 드레스였다. 이반을 만났을 때 이 드레스를 입었다. 이반이 긴 허리를 굽히고 마른 등에 입술을 댈 때면 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간지러움을 참아내곤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빨강 립스틱을 덧바르고 귓불 뒤에 향수를 뿌렸다. 구제를 구입해 수선한 밍크를 꺼내 걸치고 자투리로 만든 밍크 모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얹었다.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장갑을 꼈다. 은색 스팽글이 촘촘하게 박힌 카우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텍사스촌에 접어들자 겨울 내내 공중에 걸려 있던 해진 만국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아래, 술에 취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이 러시아 혁명가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지나갔다. 나는 시애틀 노래주점을 지나고 캄차카 노래방을 지나 클럽 로즈로 걸음을 옮겼다. 로즈에는 러시아 민요인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르고 있었다. 낮고 고혹적인 중년 여가수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흐린 불빛에 섞여 들었다. 손님이라고는 한국 선원 두 명과 러시아 선원 두 명이 전부였다. 마담 장이 표정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었다. 한국 선원과 함께 있던 나타샤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언니, 마셔? 라고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러시아 닭 꼬치인 샤실릭을 시켰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로즈 안을 둘러보았다. 마담 장이 무료하게 하품을 해댔다. 필리핀에서 온 구잘은 러시아 선원과 섞여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나타샤가 보드카와 샤실릭을 내왔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보드카를 한 잔 따랐다.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목까지 치닿았다. 이반은 보드카를 마시는 순간이면 고향을 떠났다는 것도, 추운 바다 위를 떠돈다는 것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나는 열기가 되뿜어져 나오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실릭 꼬치에서 닭 가슴살 한 점을 빼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거리의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짐을 꾸려서 떠났다. 고작 러시아 선원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담 장도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여자였다. 나는 미군 대신 러시아 선원을, 맥주 대신 보드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몸에 익혔다. 이 거리에 나타샤와 구잘이 찾아들었다. 나타샤는 러시아에서 발레리나였고 구잘은 필리핀에서 가수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꿈을 찾아 이곳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텍사스촌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은 좀체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마담 장이 러시아 민요 대신 빠른 행진곡으로 음악을 바꾸었다. 선원들이 경쾌한 해군의 노래에 맞춰 무릎과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드카 병이 순식간에 비어 갔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넘겼다. 한국 선원이 나타샤의 뺨을 비비며 등줄기를 훑었다. 선원 하나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그녀가 마담 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 장이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아가씨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자였다. 계산을 마친 그들이 클럽 안을 빠져 나갔다. 손님은 이제 러시아 선원만 남았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살집이 많은 러시아 선원 하나가 보드카를 마시며 계속 나를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선원은 보드카 병을 쥐고 일행을 벗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틀거리는 선원보다 구잘이 먼저 내 테이블 앞에 와 선다. 러시아 선원이 들으라는 듯 러시아말로 이번에도 손님을 채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원이 멈칫거리는 사이 구잘이 밖으로 나갔다. 선원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잔에 보드카를 따르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이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이 이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슬쩍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해군의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 혁명가가 시작되었다. 구잘이 필리핀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구잘의 친구가 러시아 선원의 팔을 꿰찼다. 멍청이! 저 언니 나이 많아, 주름 많아, 구잘이 선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구잘의 말에 선원이 내 앞에 앉은 선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동료가 만류하는 손짓을 무시하듯 선원이 지갑을 꺼내 보드카와 샤실릭 값의 두 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켜보고 있던 구잘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니 년 나빠! 그녀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선원이 성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의 돈을 챙겨 일행 쪽으로 가버렸다. 망할 년! 어린 년이! 마담 장이 구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니 년, 나빠! 구잘이 악다구니 끝에 손을 풀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샤실릭 꼬치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러시아 혁명가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러시아 년들을 한국 놈들에게 붙이고 필리핀 년들은 러시아 놈에게 붙이고, 이렇게 갈보 년들 불러대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그녀가 보드카를 마시며 넋두리를 해댔다. 쿨럭쿨럭, 천식 때문인지 잔기침이 뒤따랐다. “그래도 옛날에 이 바닥에서 명자, 하면 알아줬는데,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먹물 튄 년이 드문 때였으니…….”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릿한 불빛을 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거에 혹해서 사내놈들이 많이 찝쩍댔지…… 그때 한 놈 잡아 떠나지, 무슨 미련이 있다구…….”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홀로 앉은 재즈가수의 독백처럼 한없이 낮았다. “너나 나나, 진즉에 이 바닥을 떴어야 하는데……, 사나운 팔자는 이래도 저래도 막히니…….” 그녀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코트를 걸쳤다. 카우치 백을 열어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로즈를 나왔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홍루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모자를 반듯하게 썼다. 보드카 때문인지 속에서 열이 올랐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2층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은 아직도 톱밥 속에 파묻혀 있다. 녀석에게 다가가 케이지 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따뜻했다. 월요일에 길을 떠나면 여행이 불행하게 된다고 했던 이반은 정작 월요일에 떠났다.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월요일에 떠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에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이반이 명자, 라고 이름을 부른 뒤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이면 나는 러시아 회화 책을 뒤지듯 그가 허공에 그려낸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이반은 종종 그렇게 자신이 탈 배가 지나갈 곳을 손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반의 손목에 새긴 푸른 돛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깡마른 몸에 샤워기의 물을 뿌렸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문득 녀석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케이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톱밥 위를 보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은 줄곧 톱밥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나는 케이지 안을 살폈다. 톱밥의 곡선이 흐트러짐 없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반이 사 놓은 먹이를 하나 꺼냈다. 먹이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포장된 먹이를 그대로 담갔다. 재스민 차를 우려내 창가로 간다. 눈이 흩날렸다. 홍루 지붕에는 엘피 가스통 4개와 물탱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복과 면장갑, 깨진 그릇이 나뒹굴었다. 그 낡은 지붕 아래 자장면과 짬뽕 옆으로 적힌, 익숙하나 한 번도 맛을 본 적 없는 횡서 끝자락의 낯선 메뉴를 떠올린다, 어쩌면 남자가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메뉴 밑으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러시아 음식들. 흑빵과 함께 홍루의 남자는 육개장과 비슷한 쌀단까나 빈대떡과 비슷한 블린 같은 러시아 음식도 만들었다. 종종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 음식 중에 끼어 있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눈이 내려앉는 홍루 뒤꼍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등이다. 남자는 마치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양파를 깠다. 넓은 고무 대야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물에 붇고 있는 양파 껍질을 벗겨 낸다. 인조털이 달린 두툼한 점퍼에 가려진 남자의 양 옆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껍질과 뒤섞인 혼탁한 물에 한 쪽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남은 양파 알을 찾는 남자의 기울어진 어깨를 본다. 언뜻언뜻 삐져나오는 남자의 붉고 물에 불은 손. 남자는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법이 좀체 없다. 남자의 등 뒤로 살금살금 나타샤가 다가간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익살스럽게 굽히고 남자의 등 뒤에 몰래 다가섰다. 나타샤가 두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남자가 양파 껍질이 묻은 젖은 손을 차마 나타샤 손에 포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타샤가 손을 풀었다. 나는 뒤돌아보고 멋쩍어하는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찻잔을 볼에 대고 눌렀다. 나타샤가 남자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분홍색 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클럽에서와는 달리 앳돼 보였다. 남자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을 멈추었다. 나타샤가 일어서더니 뒤꿈치를 모으고 양발을 벌려 발레의 폴리에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발 앞굽을 세워 잔걸음으로 뒤꼍을 옮겨 다녔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백조의 동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타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뒤꼍을 돌아 남자 앞에 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동그랗게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는 나타샤를 보며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 던져놓은 녀석의 먹이가 녹았다. 먹이를 건져서 접시에 담고 알루미늄 포장지를 벗겨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좀 넘긴 연한 핑크색 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쥐가 녀석의 먹이라니. 처음 기지촌에 왔을 때처럼, 처음 러시아 선원을 만났을 때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게로 새끼 쥐를 집어 올려 녀석에게로 갔다. 톱밥 위는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케이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먹이를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분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휘파람을 분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집 마루에 앉아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설령 어른들의 말처럼 뱀이 나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무서움이 가셨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어서 집이 비었는지 집이 비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케이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여행자를 위한 러시아 회화 책을 폈다. 90쪽 ‘거리’에서부터 120쪽 ‘모자 가게’까지는 이반이 떠나기 전 러시아어로 읽어주었다. 151쪽 기차여행 편을 한글로 따라 읽는다. ‘그제야 마구 쎄스츠 나 보예즈제?’ 어느 기차에 타야 합니까? 홍루 뒤꼍으로 함박눈이 쌓였다. 나는 눈을 밟으며 홍루로 갔다. 홍루에는 나타샤와 한국인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주방 안으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종업원에게 이반이 즐겨 먹었던 쌀단까와 흑빵을 주문했다. 종업원 대신 나타샤가 내 쪽을 힐금거리며 주방 입구로 갔다. 그리고 주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주문을 받아 전해준다. 나는 낮은 선반 위에 펼쳐진 러시아 회화 책을 잠시 쳐다보았다. 남자도 틈틈이 회화 책을 뒤지며 러시아 말을 익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폴리에 자세로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나타샤의 뒷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고개를 돌렸다. 쌀단까와 흑빵이 나왔다. 이반은 홍루의 쌀단까 맛이 고향의 맛과 같다고 했지만 홍루의 쌀단까 맛은 육개장과 별반 다름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흑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흑빵이 입안에서 거칠게 씹혔다. 나는 반쯤 뜯어 먹은 흑빵을 남기고 홍루를 나왔다. 케이지 안에 먹이가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먼지떨이를 거꾸로 찔러 넣어 천천히 톱밥을 휘저었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원을 그은 뒤 안으로 조금씩 좁혀가며 톱밥을 감아 올렸다.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반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휘파람을 불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이 녹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부두에 배가 들어왔다. 텍사스 거리는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상인들로 붐볐다. 나는 클럽 문을 열었다. 로즈도 러시아 선원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러시아 음악 백학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더 흐려 있었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거울이 걸린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카우치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언니 머? 구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샤실릭을 주문했다. 마담 장이 새로운 선원들을 앞에 두고 예전 텍사스 거리에 몰려들었던 미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야기를 채근하듯 마담 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시절 마담 장의 사랑을 구하려는 한 미국 병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사다가 거리에 뿌렸노라고 말하자 선원들이 속았다는 듯 몸을 털며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백만 송이 장미에 얽힌,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란 것을 이내 알아챈 모양이었다. 마담 장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다.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이야기에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을 알아채자 긴장이 풀렸는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셨다. 마담 장이 의자를 돌려 몸을 반쯤 틀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달래듯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다독였다. 선원들이 다시 마담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한국인 선원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이미 취해 보였다. 한국인 선원이 길고 곧은 나타샤의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다 허리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마담 장이 재빠르게 나타샤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타샤와 한국인 선원이 계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홍루의 남자가 클럽에 들어선 것은 내가 두 번째 담배에 막 불을 붙일 때였다. 남자는 이곳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구잘에게 주문을 했다. 그의 테이블에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려졌다.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마담 장이 음악을 바꿨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의 춤은 마치 목각 인형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처럼 무릎과 팔이 절도 있게 꺾어졌다. 격렬하면서도 율동 사이사이에 강한 매듭이 있는 러시아 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춤이 격렬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선원들이 원무를 이뤄 추는 가팍을 보며 이반을 떠올렸다. 이반도 어디선가 함성을 지르며 저들처럼 가팍을 추고 있을까,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샤실릭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에 앉아서 계속 몸을 흔들고 있던 마담 장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육중한 그녀의 몸이 빠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였다. 선원들의 함성이 추임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춤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다. 구잘이 나타샤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마담 장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갔다. 가끔 이렇게 마담 장이 흥에 취해 선원들과 춤을 추면 그녀가 어김없이 해 오던 일, 러시아 아가씨를 한국 선원에게 붙이고 필리핀 아가씨를 러시아 선원에게 붙이는 일을 잊었다. 더불어 나의 존재도 잊었다. 그녀가 잊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천식처럼 오래된 이 거리의 모든 것들,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익숙한 모든 것들, 그녀의 생 모두를 잊을 것이었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면 무언가 텅 비게 되는 것처럼 그녀도 텅 비어가는 것이리라. 원무에 끼어 점점 격렬하게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가 한줌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라도 할 듯 깡마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홍루의 남자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무릎 사이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줄곧 나타샤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가 취했는지 점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처럼 녀석을 찾은 것은 소파 밑에서였다. 환전소에 가기 위해 러시아 동전을 지갑에 넣는 중이었다.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간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바랜 벽지에 노랑 빨강 검정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소파 안쪽 벽 틈에 일자로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먹이를 꺼내 따뜻한 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닦아 소파 입구에 놓았다. 집게를 들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숨을 삼켰다. 먹이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녀석이 고개를 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의 여린 혀가 재빠르게 입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녀석이 먹이 앞으로 다가가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집게로 녀석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녀석의 입에는 삼키다 만 새끼 쥐의 여린 몸이 반쯤 물려 있었다. 로즈 앞에는 며칠째 클로즈라는 안내판만 달려 있었다. 겨울이면 도지는 마담 장의 천식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타샤도 가끔씩 목욕탕이나 환전소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한국 선원을 따라 이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임신을 해서 로즈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텍사스 거리는 다 해진 만국기를 걷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나는 만국기가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반을 처음 만났던 날, 이반의 달콤한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던 순간, 나는 내 여행이 이대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만국기가 걷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표 판매소를 지나 환전소로 갔다. 마지막 남은 먹이를 녀석에게 넣어주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먹이에 다가간다. 잠시 목을 추켜세우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또 먹이를 먹지 않을 모양이었다. 온수에 목욕을 시키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수의사는 전화로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으로 탈피를 하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 케이지 옆에 놓았다. 케이지 뚜껑을 열고 널브러지듯 몸을 길게 풀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집게를 들다가 내려놓았다. 녀석의 외피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천천히 선을 그으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녀석의 입을 지나 턱쯤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녀석이 감미로운 몸동작으로 손에 감겨든다. 소름인지 전율인지 무언가 몸속으로 울려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듯 들어올려 온수에 담갔다. 녀석이 천천히 물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을 비켜나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손을 저어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녀석이 점점 생기를 찾은 듯 작은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작은 수건으로 민첩하게 손아귀를 벗어나는 녀석을 떠내 마른 수건을 깔아놓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녀석을 재빨리 수건 위에 굴린 뒤 케이지 안으로 털어 넣었다. 명자, 아주 잘했어, 이반이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홍루를 지나고 로즈를 지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파충류 먹이 있음. 간판 옆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햄스터 케이지를 열다가 내 쪽을 본다. “뭘 드릴까요? 손님.” 점원이 케이지 안에서 햄스터를 꺼내며 물었다. “밀크스네이크 종인데……먹이 좀 사려고요.” 나는 나무토막을 기어오르는 비단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뱀을 키운 지 오래되셨나 봐요. 처음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든요.” 점원이 손에 쥔 햄스터를 비단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한창 클 때는 녀석도 산 먹이를 찾아요, 그래야 탈피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무막대를 기어오르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혀를 날름거렸다. 케이지에 던져진 햄스터가 꾸물꾸물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녀석도 먹이를 견준 채 꼼짝 하지 않다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어 삼켰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점원에게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요?” 점원은 손에 묻은 햄스터 털을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냉동 쥐로 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나는 햄스터의 하얀 몸이 비단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케이지에서 꿈틀거리는 분홍색 새끼 햄스터 한 마리를 꺼냈다. “녀석들이 종종 냉동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탈피를 하려고 그럴 겁니다. 제대로 크고 있다는 증거죠.” 나는 점원에게서 새끼 햄스터를 받아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이 풀리고 있었다. 곧 부두에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문이 닫힌 로즈를 지나 홍루에 들러 쌀단까와 흑빵을 시켰다.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러시아 회화 책과 비닐도 뜯지 않은 발레 슈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흑빵을 뜯어 쌀단까에 적셔 먹었다. 맞은편 거울에 흑빵을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 거울을 보면 안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이반이 내 귓불 뒤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일 것 같았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 [프로배구] 세터 최태웅 ‘맏형의 힘’

    2세트 중반 최태웅(현대캐피탈)이 코트에 들어섰다.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순간 조용해졌다. 머리를 짧게 깎은 35살의 노장 세터는 그렇게 존재감만으로도 상대방을 위협했다. 드림식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치르는 경기였다. 선발로 나섰던 권영민 세터는 3점차로 앞서 있더니 어느 순간 2점차로 뒤지며 역전을 허용했다. 위기였다. 최태웅은 그때 투입됐다. 흔히 세터에게 ‘코트의 야전사령관’이란 별명을 붙여 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데, 최태웅은 세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후배들이 흔들릴 때는 다독이고, 잘할 때는 격려하며 팀의 분위기를 이끄는 맏형이었다. 얼마 전 문성민과 한상길이 심기일전하겠다며 삭발을 감행할 때 함께하고, 외국인 수니아스와 좀 더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짬 날 때마다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최태웅의 모습은 팀에서 고참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교과서와 같다. 그대로 2세트는 내줘야 했지만 3세트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장 주포 수니아스가 살아났다. 2세트에서 6득점, 40%의 공격 성공률에 그쳤던 수니아스는 3세트에 팀에서 가장 많은 9득점, 60%의 성공률을 올렸다. 세트 막판 듀스에 몰렸지만 드림식스의 잇따른 범실로 3세트도 가져올 수 있었다. 기회를 놓친 드림식스는 4세트 자멸했다. 28일 현대캐피탈이 3-1(25-23 23-25 27-25 25-18)로 승리를 거두고 3연승 가도를 달렸다. 9승째를 챙긴 현대캐피탈은 승점 31을 기록, KEPCO를 제치고 3위로 뛰어올랐다. 천안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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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음악 ●크라잉넛 콘서트-셀프발광 30~31일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이 뽑은 스트레스 해소 음악 1위로 선정된 ‘말달리자’로 유명한 록그룹 크라잉넛이 꾸미는 연말 콘서트. 전석 3만 3000원. (02)3141~4206. ●루시드폴 콘서트-사일런트 나이트, 나일론 나이트 2011 29~31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가요계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가수 루시드폴의 연말 콘서트. 다양한 악기와 5집 앨범 수록곡들로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6만 6000~7만 7000원. 1544-1555. 미술·전시 ●‘한국조각 다시보기-그 진폭과 진동’전 내년 2월 26일까지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 한국조각을 대표하는 강진모, 구본주, 김기철, 김종영 등 22명 작가의 22개 작품을 전시한다. 한국 조각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00~3000원. (02)425-1077. ●‘비잉 위드 유’(Being with you)전 내년 1월 26일까지 서울 청담동 갤러리비하이브. 강영민, 권순관, 낸시 랭, 문형민, 장지아 등 46명의 개인, 혹은 팀이 모인 전시로 회화에서 영상, 미디어, 설치작품 등이 마련됐다. (02)3446-3713~4. ●‘드림작가전-꿈을 그리다’전 23일까지 서울 합정동 갤러리카페 그리다 꿈. 싸이월드가 진행하는 ‘드림 캠페인’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꿈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을 업로드한 뒤 11명의 작가, 평론가가 좋은 작품으로 꼽은 70여점이 전시된다. (02)3143-7650. 연극·뮤지컬●연극 ‘러브 액츄얼리’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소극장. 100일 된 커플, 1000일 커플, 10년 커플을 통해 시간이 지나가면서 변해가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을 하다 보면 가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고, 그로 인해 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 2만 5000~10만원. (02)742-7611. ●뮤지컬 ‘바울’ 2012년 1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스타시티 SMstage 7층. 2000년 전의 인물 바울, 그가 저술한 성경은 지난 몇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읽었던 베스트셀러다. 소박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바울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하는 작품이다. 바울의 인생을 뮤지컬 장르에 맞춰 재조명했다. 4만원. (02)468-6443. 클래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제야음악회 프러포즈 2012 31일 오후 5시, 10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소프라노 신영옥, 파페라 가수 카이, 바이올리니스트 정유진, 파이프오르가니스트 박은정, 전자첼리스트 오아미,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란데 오페라 합창단 등. 3만~10만원. 1544-1555. ●2011 아람누리 제야음악회 31일 오후 10시 경기 고양시 마두동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박상현), 부천·고양시립합창단. 바리톤 양희준, 소프라노 김영미, 알토 이아경, 테너 나승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교향곡 9번 ‘합창’. 1만~5만원.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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