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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원시의 삶·현대가 공존하는 파푸아섬

    원시의 삶·현대가 공존하는 파푸아섬

    남태평양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파푸아. 사라져 가는 미개척지 중 하나로,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자연과 전통을 지켜온 인간의 공존, 나체의 원시적 삶과 서구 기독교의 조화, 해양스포츠의 명소가 된 산호색 바다와 인도네시아 최고봉의 만년설 등이 그것이다. 7일부터 10일까지 매일 저녁 8시 50분, EBS ‘세계테마기행’은 ‘마지막 원시, 파푸아’를 4부작으로 방송한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최명재 소아과 전문의가 제작진과 함께 석기시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한 원주민 다니족, 센타니 호수에서 벌어지는 부활절 축제, 산홋빛이 녹아든 바다가 아름다운 환상의 섬 퍼다이도를 거쳐 인도네시아 최고봉이 있는 발리엠 밸리로 향한다. 7일에는 원시 부족의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석기시대로의 여행, 다니족’을 방영한다. 첫 여정은 파푸아의 오지, 와메나에서 시작한다. 이 지역 한복판에서는 ‘코테카’라고 불리는 성기 가리개만 걸친 다니족의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 다니족은 깊은 산 속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돼지기름에 숯을 으깨 몸에 발라서 체온을 유지하는 원시시대 삶을 유지하고 있다. 돼지잡이 축제에서는 돌을 구워 땅 속에서 채소와 돼지고기를 익히는 전통요리 ‘바라크 바투’, 독특하게 생긴 열대과일 등을 맛볼 수 있다. 2부 ‘마음의 고향, 센타니 호수’(8일)에서는 파푸아의 주도 자야푸라 근처에 있는 타블라누수 해변을 찾는다. 발아래 부서지는 산호와 돌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때문에 ‘웅는 돌’(Crying Stone)이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휴양지인 아름다운 산호초 해안은 사진작가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은다. 센타니 호수는 파푸아인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호수에는 전통 주거지인 수상가옥이 평화로이 떠 있다. 민속예술 ‘바크 페인팅’(나무껍질 회화)을 감상하고 기독교 부활절 축제 ‘파스카’를 경험한다. 새벽 3시에 횃불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돌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축제는 종교적 경건함과는 거리가 먼, 정신을 쏙 빼놓는 흥겨운 시간이다. 이어 3부 ‘천상의 바다, 퍼다이도 섬’(9일)에서는 전통춤 ‘요스판’을 즐기고,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에메랄드빛 바닷속을 누비는 시간이다. 섬사람들은 소박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지만 병을 앓아도 치료를 받기 힘들다. 섬에 있던 유일한 병원이 몇 달 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최명재 의사는 섬사람들에게 진료를 하며 짧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시간 ‘원시와 현대의 공존, 발리엠’(10일)에서는 파푸아 섬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받는 광대한 계곡, 발리엠 밸리를 찾는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추상, 순수하지 않다

    추상, 순수하지 않다

    남의 이름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라지만, 처음엔 이름 듣고 쿡쿡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얌전하고 차분해 보이는 여성 작가인데, 이름이 ‘정직성’(36)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인 블로그 이름도 ‘Honesty’다. 한국어로 바꾼 빌리 조엘의 노래 ‘Honesty’를 듣고 정했단다. 마냥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거창한 말을 쓰자면 ‘서울 하늘 아래 디아스포라 아닌 이 그 누가 있겠느냐.’는 얘기쯤 되겠다. 어디든 흘러다니는 디아스포라라 늘 경계선에 놓였기에 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니게 됐다고, 다시 한번 아니나 다를까 할 뻔했다. 유동하는 세상이 불러오는 현기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어디 기둥 같은 것을 붙들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다. 작가는 붓을 부여잡고 가만히 그려 보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런 면에서 풍부한 감수성보다는 정직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인다. “이름 듣고서는 다들 50대 남성 작가인 줄 안다.”면서도, “촌스럽지만 그 이름이 좋다.”는 말에서 10여년 전 정혜정이 왜 정직성이란 이름을 택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오피스텔들이다. 사람은 물론 어느 한 구석에도 생물의 느낌은 전혀 없다. 우울한 단색 톤으로 칠해진 작품들은 안 그래도 집적도를 한껏 높인 그 건물들을 캔버스에다 빽빽하게 채워 놨다. 마치 내가 느낀 현기증을 너도 느껴 보라는 듯.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부동산 경기의 부침에 따라 떠밀리듯, 떠다니듯 그렇게 참 많은 이사를 했다 한다. 대학 때 다큐사진 동아리 활동 때 겪었던 서울 봉천동 재개발 현장에 대한 기억도 함께 눌러 놨다. 금리에 따라 갈아타다 보니 이제는 서랍 속에서나 뒹구는 적금통장들처럼 부동산 경기는 아찔할 정도로 서울의 풍경을 다 갈아치운다. “연구 작업이었다기보다 그런 경험으로 그린 겁니다. 전 오히려 궁금했었어요. 회고조로 옛날에 한때 이랬지라는 거 말고 왜 진지하게 접근하는 작가가 없을까 한 거죠.” 작가는 그 현기증이 자신만의 경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느끼는 감정임을 확인했다. 최근 작들은 완전한 반전이다. 빽빽한 단색 톤의 그림들이 화려한 색채에 대담한 필획으로 변신했다. 재개발 공사현장 같은 풍경들을 세밀하게 추적해 쌓아 올리기보다 거대한 망치로 한 대 내려친 듯 해체해 놨다. 스스로도 “지우고 뿌리고 흔들고 섞었다.”고 했다. 인기 끌던 그림풍을 확 바꿔 버린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조화된 그림이 정치적으로 올바를까 싶었어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말도 하나 덧붙였다. “회화에서 추상도 정치적일 수 있다고 봐요. 공간의 유토피아라는 점에서요. 그리고 그 부분이 제가 앞으로 계속 도전해 봐야 할 지향점이 아닌가, 남은 작가 생활에서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상 하면 대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적극 후원한 미술운동으로 간주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만족적인, 심미적인 화풍을 떠올려 보면 된다. 작가는 그 한계를 깨보고 싶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진영과 순수미술 진영 간의 갈등 때문에 추상은 비정치적이고 순수하다는 고정관념이랄까 이분법이랄까, 그런 것이 명확하게 박혀 버렸어요. 그 부분을 한 번 건드려 보고 싶어요.” 전시는 6월 14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미술관은 매년 ‘오늘의 작가’를 선정하고 있는데 지난해 조각가 중심에서 미술 전반으로 확장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순수회화 작가로는 처음 정직성을 오늘의 작가로 선정했다. (02)3217-648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현대인 불안을 대신 ‘절규’한 값 1355억원

    현대인 불안을 대신 ‘절규’한 값 1355억원

    ‘치유의 화가’인 노르웨이 표현주의 예술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대표작 ‘절규’(1895년)가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불안과 고독을 가득 품고도 마음껏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현대인들 대신 ‘절규’한 대가다. ‘절규’는 2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0만 달러(약 1355억원)에 낙찰됐다. 7명이 입찰에 참여했으며 전화 입찰자가 12분 만에 그림의 새 주인으로 낙찰됐다. 2010년 5월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던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의 가격(1억 650만 달러)을 뛰어넘었다. 판매작은 절규의 주요 네 가지 버전 중 유일하게 민간인이 소장한 작품으로 파스텔로 그렸다. 최종 낙찰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카타르 왕족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는 설이 있다. 뭉크는 생전에 늘 불안했다. 순탄치 않은 삶 탓이다. 끊임없이 죽음과 마주쳤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9년 뒤 사랑하는 누나도 결핵으로 잃었다. 어린 누이는 정신질환에 시달렸고 남동생마저 젊은 날 죽었다. 뭉크는 “공포·슬픔·죽음의 천사가 태어날 때부터 내 옆에 있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뭉크는 작품에 두려움을 끊임없이 표출했다. 아버지까지 숨진 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그는 내면의 불안과 공포, 질투, 성적 욕망 따위를 화폭에 옮겼다. ‘절규’가 대표적이다. 핏빛 노을을 등지고 몸과 얼굴이 ‘S’자로 비틀어진 한 인물이 입을 크게 열고 소리친다. 지옥을 배경으로 그린 자화상이나 여성을 흡혈귀로 묘사한 회화 등 작품 대부분에 공포가 드리워져 있다. 미술·심리 전문가들은 뭉크의 작품 활동은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삶과 비교하면 치료 효과가 분명해진다. 분당 차병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김선현 교수는 “뭉크와 고흐는 같은 정신 질환을 앓았다.”면서도 “(심리적 불안·공포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뭉크는 81세까지 작품활동을 이어갔지만 (외부와의 교류에 소극적이었던) 고흐는 37세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불행했던 뭉크, 자기 치유 위해 작품활동 현대인들이 ‘절규’에 열광하는 이유도 작품에서 얻는 치유의 효과 때문일지 모른다. 많은 대중이 뭉크가 느낀 상실의 아픔에 공감한다. ‘절규’에서 공포에 찬 주인공을 뒤쫓듯 묘사된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이거나 연인일 수 있고, 취업·결혼 등 억압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사람들은 함성 을 지르는 군중 속에 섞였을 때 쾌감을 만끽한다. ‘절규’를 볼 때의 느낌도 비슷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매 수익금으로 뭉크박물관·미술관 세우기로 ‘절규’는 작품이 겪은 온갖 수난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뭉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노르웨이 사업가 토마스 올슨은 2차 대전이 발발해 독일군이 자국을 점령하자 나치 정권으로부터 미술품을 지키기 위해 소장하고 있던 ‘절규’ 등 뭉크의 작품을 이웃의 헛간에 숨기고 영국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또 ‘절규’ 연작 가운데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소장 작품은 1994년 도난당했다가 몇 개월 뒤에, 뭉크미술관 소장 작품은 2004년 도난당했다가 2년 뒤 각각 되찾았다. 아버지로부터 작품을 물려받은 소장자 페테르 올센은 경매 수익금으로 노르웨이에 새 뭉크 박물관과 미술관, 호텔 등을 건립하는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커버스토리] ‘놀토 유감’ 주5일 수업제 두 달… 그 불편한 진실

    [커버스토리] ‘놀토 유감’ 주5일 수업제 두 달… 그 불편한 진실

    #서울 강남 A초등학교 4학년 박모(11)군은 3월 새 학기 시작 이후 매주 토요일 학교 토요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매주 바뀌는 프로그램 탓에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군은 지난주 토요일부터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고 있다. 박군의 어머니 최모(44)씨는 “토요일마다 문화센터에서 계속 배우던 게 있어 당장 집에서 애를 돌보기는 힘들고, 남편은 토요모임이 많아서”라면서 “토요일은 가급적 가족과 함께하려고 궁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 구미 B초등학교 3학년 장모(10)군은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친구들과 함께 마술이나 만들기 등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배우고 틈틈이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 수도 있어서다. 장군은 “이번 주에는 어떤 주제일지 기대된다.”면서 “학교 다니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주5일 수업제 전면 실시가 28일로 두 달을 맞는다. 그러나 ‘학생들이 각자의 적성과 소질을 살리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수업을 줄이고, 학교에만 의존하던 교육적 책임을 가정과 지역사회로 확대하기 위해서’라는 당초 도입 취지는 여전히 공허하다. 제도적 실효를 위해 학교·가정·지역사회의 협력구조, 즉 교육시스템의 혁신이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변화는 그다지 없다. 무엇보다 일선 교사들의 불만이 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토요프로그램 참여율 조사나 현황 파악과 같은 잡무가 늘었다는 현장 의견이 많다.”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주5일 수업제의 가장 큰 원칙인데 오히려 학교에 요구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두 달가량 지나면서 당초 잡아놨던 프로그램 아이템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수업 이외에 새로운 내용을 고민해야 하고 토요일마다 당번교사가 학교에 나와 많은 학생들을 챙겨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학교폭력이 심각한 상황인데 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학교인 만큼 토요일이 감시나 계도의 사각시간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학교 토요프로그램 참여율이 20~30% 수준인 상황에서 나머지 학생들이 토요일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주5일 수업제 자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윤선생영어교실이 학부모 6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5일 수업제 시행으로 심적 부담감을 안고 있다’는 응답이 40.3%에 달했다. 심적 부담의 이유로 36.2%는 ‘사교육비 증가’를 꼽았고 28.0%는 ‘TV·게임 등으로 자녀의 시간 허비’를, 17.9%는 ‘토요일 내내 자녀를 돌봐야 하기 때문’을 꼽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와 관련, 지방자치단체 등과 연계한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지역별로 여건이 다른 만큼 정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동작구도 원어민 영어 인강 도입

    동작구는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정형편 때문에 학원 수강을 하지 못하는 학생을 배려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원어민 영어 화상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23일 밝혔다. 구는 앞서 지난해 12월 노원구의 영어화상학습 시스템을 상호 공동 이용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자치구 사이의 중복 투자를 피하고 예산을 절감하려는 것이다. 구는 오는 30일까지 관내 거주 초등학교 3학년과 중 3생 300명을 대상으로 참여자를 모집한다. 수강료는 2개월 과정 6만 4000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와 한부모가정 자녀에게는 교재비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방과 후 학습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이 시스템은 8단계로 구성돼 있다. 단계별 2개월 과정이다. 원어민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실시간으로 1회에 30분씩 주 4회, 또는 45분씩 주 2회 영어대화를 나눌 수 있다. ㈜YBM 시사주니어의 필리핀 법인이 위탁 운영해 수업의 질은 물론 철저한 강사 관리와 화상학습콜센터 운영으로 수강생들의 출결관리 및 반별 수업 호응도와 수업태도를 점검하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수강등록을 한 학생이 동작구 원어민영어화상학습 사이트(www.nise.kr/dongjak)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원어민 영어 화상학습을 이용한다. 문충실 구청장은 “관내 학생들의 영어회화 능력 향상을 위해 원어민 영어 화상학습 시스템을 구축했다.”면서 “사교육비 절감과 지역계층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우리 구의 교육경쟁력 강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선] “동서양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작가 양성을”

    [한국만화 명작 100선] “동서양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작가 양성을”

    2010년 8월 ‘비정시공’ 출판기념회 이후 1년 8개월 만에 만난 이현세 화백은 수척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초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이 화백은 수술 경과가 좋다며 웃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일단 끊었다. 그랬더니 친구들과 동네 술집 주인들이 모두 비상이란다. 보리밥만 먹고 집에서 화실까지 걸어 다닌다. 창작 활동에 지장은 없느냐고 했더니 “평생 살면서 이렇게 머리가 맑은 상태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술 먹을 시간에 더 그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많이 그릴 수 있다. 전혀 지장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한국 만화 명작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회화적 완성도에서 완벽한 작품도 아니고 더 좋은 작품이 많으니까…. 굳이 분석해보자면 캐릭터 설정, 갈등 구조, 중첩된 복선 등 당시로선 익숙지 않은 이야기 구조와 한국 전통 곡선에서 벗어나 직선의 미학을 사용한 점 등이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동 만화가 아닌, 남녀노소가 모두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려보려 했다. 집요한 사랑 이야기가 여심을 사로잡았다. 강한 것이 아름답다, 도전하고 승리한다는 메시지는 남성층을 만족시킨 것 같다. 통과 의례를 거치면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는 메시지는 암울한 사회에 좌절하고 번민했던 수많은 젊은이의 일성이 아니었나 싶다. →아쉬움이 많은 작품은. -‘천국의 신화’다. 우리 민족 상고사를 주제로 한 대작을 그리려고 했다. 필생의 역작으로 생각해 100권을 목표로 했다. 음란물 시비로 6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절반가량 줄여 끝내야 했다. →최근 웹툰 심의 논란이 있었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한심했다. 하지만 웹툰 작가들에게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요즘 웹툰 작가들은 상당히 개인적이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일로 한자리에 모여 뜻을 나누게 됐다. →‘천국의 신화’ 사건 뒤 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는데. -‘천국의 신화’를 하며 신명이 없어졌다. 협심증과 당뇨도 그때 생겼다. 일단 의지도, 체력도 꺾였으니 그런 평가가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현세라는 작가 개인에겐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처음으로 만화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많이 부드러워지는 등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 →한국 만화의 미래는. -출판 만화 시장이 위축된 게 문제지만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찾았다. 일본을 제외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행복한 거다. 세계적으로 자체 시장을 갖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일단 웹툰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본다.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영화, 드라마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새로 제정된 만화 진흥법은 작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해외 마케팅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만화가 한류 콘텐츠로 자리 잡으려면. -이미 일본과 유럽에 우리 작가들과 작품이 진출해 있는 상태다. 남은 게 미국 그래픽 노블 시장인데 작가를 직접 보내 현지에서 공략하는 게 어떨까 싶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를 만들어 성공을 거둔다면 소녀시대나 빅뱅을 뛰어넘는 한류 만화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다음 작품 계획은? -‘천국의 신화’가 끝나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인기 캐릭터 베스트 10에 까치와 엄지가 없더라. 까치와 엄지로 밥 먹고 살 때는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 자리를 찾으려면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10년 동안 해왔다. 내 만화를 좋아하던 독자들이 골프를 즐기고, 아이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대가 됐더라. 그래서 세계사·한국사와 ‘버디’를 그렸다. ‘창천수호위’ 등 이현세류 작품도 냈지만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이 크다. 내년이면 환갑이다. 70세 이후엔 동화를 하기로 마음먹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10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다. 눈이 보이는 한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21세기에 서양 고전풍을 고집하다… 그게 어때서?

    21세기에 서양 고전풍을 고집하다… 그게 어때서?

    젊은 작가의 작품 하면 으레 수수께끼를 기대할 법도 하다. ‘전위적’이라는 명분이 있으니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감정이 폭발하는, 아니면 감탄사가 터져나올 반어법적 요소를 숨겨놓은 작품을 선보일 것만 같다. 그런데 박민준(42) 작가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21세기 최첨단의 시대라는데 버젓하니 서양 고전풍의 그림을 그린다. 숱한 도상과 상징을 품고 있던 그 시대 그림들 말이다. 이런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령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같은 움직임의 고양이를 두 번 보는 데자뷔 현상을 통해 공간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상이나 상징에서 흔히 고양이가 활용되는 방식이다. 배낭여행, 어학연수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그림 ‘읽기’가 유행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긴 했으나 지금은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옛이야기들 같아서다. 그런데 작가는 여전히 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가령 타로카드에서 힌트를 얻어 그린 ‘7개의 삶’ 같은 작품은 ‘정의’가 ‘중용’ 카드를 내밀고 있는 광경이다. 여자가 정의고, 내밀고 있는 그림이 중용이다. 여자의 뒷 배경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각 카드마다 ‘정의’, ‘용기’, ‘절제’ 같은 덕목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용이란 뭘까. ‘영원으로 가는 길2’에 그려진, 외줄타기하는 그림이다. 그 옆에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떨어지는 이에겐 중심 잡는 이가 이상형일테고, 중심 잡는 이에겐 떨어지는 이가 긴장감을 더해줄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올림포스의 방’이라는 작품에 다시 고스란히 등장한다. 여러 작품에다 일관된 세계를 부여한 것이다. 왜 이런 스타일이 좋았을까. “어릴 적부터 21세기의 카라바조, 21세기의 렘브란트가 되겠다는 게 목표였거든요. 굉장히 이성적으로 그림 그리는 푸생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러고 보니 2006년 홍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간 곳이 일본의 동경예대 ‘재료기법학과’다. “원래는 이탈리아를 가고 싶었는데, 언어 익히는데만도 몇년이 걸릴 것 같아서 일본을 택했습니다. 재료기법학과에선 뭘 배우냐고요? 물감, 캔버스 같은 재료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워요. 회화과라기보다 화학과하고 비슷해요.” 어린 시절부터 늘 궁금했단다. 어떻게 그 옛 시절에 만든 그림이 요즘 그림보다 더 때깔이 좋을까. 그 덕에 작품 하나 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한다. 캔버스 제작에서부터 밑그림 작업에다 세밀한 마무리까지 공이 많이 들어서다. 그나마 손이 워낙 빨라 서너 달이면 한 작품이 나온다 했다. 지향점도 특이하다. ‘예술가’보다는 ‘장인’이 되고 싶다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은데, ‘예술혼’과 ‘영감’ 운운하는 ‘아티스트’가 워낙 넘쳐나다 보니 특이하게 들리기도 한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생각도 간명했다. “스타일은 옛것이라도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그게 동시대 미술이라 했다. 요즘은 약간 벗어나볼까 생각 중이다. 기법적인 부분에 너무 관심이 쏠려서다. 그러고 보니 작품 가운데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눈에 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원정대에 빗댄 것인데,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는 작가가 투영되어 있다. 그 결과는? 전시장 입구에 걸린 ‘무곡’ 연작을 보면 된다. 스타일의 변화가 슬쩍 눈에 들어온다. 전시는 22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각, 통시적이거나 공시적이거나

    회화나 사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전시가 마련됐다. ●30~70대까지… 낙우조각회 50주년 조각전 26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는 낙우조각회 50주년 기념 조각전이 열린다. 낙우회는 서울대 미대 조소과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는 조각모임이다. 1963년 강정식·김봉구·송계상 등 6명이 결성하고 김종영 선생이 사막을 무리지어 건너는 낙타들처럼 조각에 매진하라는 뜻에서 낙우(友)회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1984년 회원을 비서울대 출신들에게 개방하면서 낙우조각회라고 이름을 바꿨다. 이들은 50년간 회원 간 교류와 단체전을 진행해왔다. 매년 작가활동을 시작한 사람 가운데 신입회원 1~2명을 뽑는 식으로 회원을 모았고, 회비는 모두 균일하게 내게 했다. 매년 열리는 전시회에 신작을 내놓지 못하면,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다. 엄정한 군기를 강조한 조직인 셈이다. 그래서 원인종·이용덕·강옥경·권석봉·김상균·노준 등 주축을 이루는 40~50대 작가는 물론, 30대 작가인 이상윤·김주환에서부터 60~70대인 신석필·전준·정현도 작가 등 참여 작가들의 층이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옛날 방식의 모던한 느낌이 강한 작품에서부터 최근 작가들의 발랄하고 재미있는 작품까지 모두 섞여있다. 최열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이 낙우회 전시를 두고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조각의 역사라 부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02)3217-6484. ●“조각은 재미”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2 낙우조각회 전시가 통시적이라면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조각페스타2012’는 공시적인 전시다. 한국조각가협회가 주최하고 120여명 작가, 700여점의 작품이 나온다. 현대 조각계의 거장 조엘 샤피로와 아르날도 포모도로 작품은 물론, 뉴질랜드, 중국, 미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까지 전시한다. 조각가들의 기대는 대단하다. 김영원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은 “지난해 첫회 때는 큰 기대가 없었음에도 판매, 관람 모두 순조로웠다.”면서 “그간 주목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작가들이 크게 기뻐했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일일이 조각가들에게 전화를 돌려 참가를 독려했지만, 올해에는 지원자가 넘쳐 심사를 거쳐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 주제도 아예 ‘조각은 재미있다.’로 정했다. 누구나 한번 들러서 만져보고 느껴보라는 것이다. 전시장 내에서 촬영 제한도 없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어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실을 공개하는 ‘더 스튜디오’ 코너도 마련했다. 1만원. (02)720-910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소방사 필기시험 D-38… 과목별 마무리 이렇게 대비하자

    소방사 필기시험 D-38… 과목별 마무리 이렇게 대비하자

    다음 달 12일 상반기 소방사 필기시험이 서울 등 13개 시·도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올 중앙소방학교 통합출제 대상 지역은 지난해(8개)보다 5개 더 늘었다. 이번 소방사 선발예정 인원은 지난 2~3월 필기시험을 치른 울산·전북을 포함, 전국 15개 시·도에 걸쳐 총 1136명이다. 서울의 선발 인원이 292명으로 가장 많고, 광주가 7명으로 가장 적다. 제주도는 상반기 채용 계획이 없다. 올 상반기 시험 전망과 과목별 마무리 대책을 알아봤다. ●작가와 작품명 연결해 공부해야 소방직 채용시험 국어는 한글 맞춤법과 어휘 관련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속담·순우리말·한자성어·한자·순화어·문화어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야 한다. 특히 한글 맞춤법 관련 문제의 출제 가능성이 높다. 김하늬 남부행정고시학원 국어 강사는 “주요 어휘는 영어 단어를 암기하듯 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자는 대부분 한자성어로 출제된다. 특히 동의·반의어를 찾는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3문제 이상 출제되므로 한자를 포기하면 합격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김 강사는 “기미독립선언서 등 비문학 지문을 공부할 때 지문들을 모두 한자로 바꿔 읽어 보면 지문을 익히면서 한자도 공부할 수 있어 좋다.”면서 “기출문제와 교과서 지문을 반복해서 읽어 보라.”고 제안했다. 최근 문학은 ‘작가론과 작품명 연결하기’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다. 작가와 관련된 주변적인 이야기들을 보기에 설명하고, 그 작가와 작품을 찾는 문제에 익숙해져야 한다. 또 작품이나 장르의 시대 순서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작가별 대표작은 반드시 읽어 둬야 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손창섭의 ‘비 오는 날’, 김춘수의 ‘꽃’ 등이 대표적이다. ●어휘문제 수준 높고 비중도 커져 영어는 영역별 출제 비중이 정해져 있다. 문법·단어·숙어·작문·회화가 2문제씩, 독해가 10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독해는 ‘주제, 요지, 제목 찾기’ 1~2문제, ‘내용 파악하기’ 2~3문제, ‘단어·어구·문장’ 채우기 3~4문제, ‘문장 논리적으로 배열하기’ 1~2문제 등으로 출제된다. 최근 소방직 영어는 지난해 서울시 시험에서 봤듯이 단어의 수준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올 전북 필기시험에도 ‘안락사’라는 뜻의 ‘euthanasia’가 출제됐다. 순위를 정해 기출 단어 중심으로 매일 조금씩 어휘력을 늘려 가는 것이 좋다. 소방직 시험에서 문법은 너무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오권영 강사는 “기본 교재 수준 이상은 출제되지 않는다. 기본 교재를 반복해서 소설처럼 편하게 읽으라.”고 말한다. 회화도 현장에서 쓸 수 있을 정도의 쉬운 문제 위주로 출제된다. 전북 시험에는 ‘일을 마치다.’라는 뜻의 ‘call it a day’가 출제됐다. 독해는 어려운 지문이나 긴 지문을 스크랩하거나 교재에 표시해 뒀다가 반복해서 읽으면서 문장 구성 원리나 문제 출제 유형을 익혀 둬야 한다. ●4대강·뉴타운 등 최신시사 출제 가능성 “행정법에서 매년 쏟아지는 판례는 무궁무진한 출제의 밑거름이며 판례가 차지하는 비중도 최근에는 80% 이상으로 매우 높다.” 고봉기 강사는 최근 행정법의 출제 경향을 이렇게 요약했다. 특히 최신 판례이면서도 논란과 함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끊이지 않고 출제되고 있다. 예컨대 국토해양부 등에서 발표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 따른 한강 살리기 사업, 곰 등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용도변경 승인신청, 뉴타운개발 사업시행자가 생활대책신청을 거부한 처분, 태안반도 유조선 기름 누출 사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도급계약 사건 등은 매우 시사적인 판례로서 반드시 익혀 둬야 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행정법에서 사례형 문제는 교수와 학생의 대화라든가, 학생들의 답변 중 옳은 것 또는 사례 1, 2를 비교해서 묻는 형식으로 자주 출제된다. 주로 판례와 부속법령을 변형해 묻기 때문에 판례의 요지와 부속법령의 지문을 확실히 파악해야 풀 수 있다. 특히 부속법령 중에서 최근 새로 제정된 개인정보법은 시사적이고 논의의 대상이 된 법령이다. ●출제범위 달라져… 소방공학론 체크를 소방학은 ‘소방공무원 채용시험 시행규칙’ 개정으로 올해부터 출제 범위가 달라졌다. 12개 대분류가 소방조직·재난관리·연소이론·화재이론·소화이론 등 5개로 바뀌었다. 수험 전문가들은 이번 시험에서 연소·화재·소화이론 등 소방공학론 분야의 출제 비중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전북 필기시험에서도 ‘화재이론’의 특수 현상인 플래시오버(flash over)와 백드래프트(backdraft)를 구분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또 환기인자, 환기부족화재 등에 대한 문제도 등장했다. ●日 독도 망언·위안부 문제 자주 출제 최근 한국사는 정치사보다 경제·문화사 분야의 출제가 늘었다. 시대사별로 보면 근·현대사의 출제 비중이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 일본군 위안부, 한반도 국제 정세, 중국의 역사 왜곡과 관련된 문제가 자주 출제되고 있다. 또 단순 암기 문제뿐 아니라 자료 해석 문제의 비중도 늘고 있다. 기본서의 사료와 지도·도표·그림 등도 꼼꼼하게 익혀 둬야 한다. 김석열 강사는 “최근 3년간 지방직과 국가직 7·9급 일반 행정직 한국사 출제 문제를 풀어 두라.”고 강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대구 범어네거리 영어문화거리로

    대구시내 범어네거리 지하상가가 영어·문화예술 거리로 변신한다. 대구시는 그동안 비어 있던 수성구 범어동 지하상가를 시민에게 유익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영어와 문화·예술 복합거리로 조성해 오는 7일 개장한다고 3일 밝혔다. 연면적 8752㎡인 이 지하상가의 명칭은 ‘범어 월드프라자’로 결정됐다. 지하상가 점포 72곳 가운데 서편 범어역 부근 점포 39곳은 임대 사업자 공모를 거쳐 영어 공용화지역(E-Street)으로 조성해 시민들이 생활 밀착형 영어학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거리 점포들은 편의점, 여행사, 푸드코트, 문구·서점, 햄버거, 커피전문점 등의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맞는다. 영어 입간판과 미국 현지를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갖추고 매장마다 1명 이상의 원어민을 배치해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회화를 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 점포마다 1단계부터 10단계에 이르는 수준별 표준대화와 필수미션을 수행하는 실용능력 평가시스템도 도입하고 고객과 원어민을 연결하는 원어민 영어멘토 매칭 시스템을 구축했다. 점포 내부 모습도 다양하다. 여행사와 유학원이 들어서는 점포는 외부를 비행기 날개모형으로 꾸미고 실내는 여객기 좌석 모형으로 배치해 마치 비행기에 탑승한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또 동편인 위브더제니스 아파트 부근의 점포 33곳에는 전시실, 문화상품 전시판매장, 예술교육 체험장 등을 시가 직접 만들어 외국문화 특화거리로 꾸몄다. 이곳에 세계 각국의 미니 문화원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 밖에 범어 지하도 전체가 스마트 거리로 구축돼 고객들이 영어체험 과정을 스마트폰을 통해 스스로 체크하고 관리할 수 있다. 범어네거리 인근 주상복합아파트인 위브더제니스의 시행사인 ㈜해피하제가 이 지하상가를 준공해 2010년 2월 시에 기부 채납했으나 임대 사업자가 나서지 않는 데다 활용 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비어 있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수술 사례 알아보니

    최종범 교수는 최근 78세의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송명근 교수가 시행한 카바수술 사례를 소개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도 78세는 수술 부담이 큰 고령이어서 부담이 적지 않았으나, 검사 결과 심한 대동맥 협착을 해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해 수술을 결정한 경우였다. 당시 송 교수는 “대동맥 판막은 기형적인 이엽성(정상은 삼엽)이었고, 그나마 석회화 정도와 협착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고 수술 소견을 밝혔다. 의료팀은 먼저, 석회화된 판막엽을 제거하고, 동관이행부의 규격을 측정한 뒤 심낭편을 이용해 정확하게 계산된 판막엽을 새로 만들어 대동맥 근부에 부착, 봉합했다. 이로써 석회화된 이엽성 판막이 정상 기능의 삼엽성 판막으로 복원됐다. 이어 동관이행부 안팎에 카바용 링을 결착시켜 늘어난 동관이행부를 적절하게 줄였다. 그래야 판막이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새로 설치한 판막엽이 정상적이고,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교련 부위(판막엽이 서로 만나는 부위)를 미세봉합사로 고정하고, 판막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수술을 마무리했다. 환자가 워낙 고령이어서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젊은 환자와 별 다름없는 예후를 보였다. 의료팀은 “수술 후 경식도 심장초음파검사를 통해 복원된 세 판막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지금까지도 환자의 건강 상태는 수술 전보다 훨씬 양호하며, 환자 본인도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비타민D 결핍땐 관상동맥 협착률 3배↑

    65세 이상의 한국인 2명 중 1명은 비타민D가 부족하며, 이 때문에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원장 정진엽) 내분비내과 장학철·임수 교수팀은 최근 성남시 일원에 거주하는 남성 441명 등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무작위 추출한 뒤 이 가운데 비타민 제제를 복용하고 있는 79명을 제외한 921명을 대상으로 비타민D의 부족 여부와 심혈관질환의 관련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 연령대의 한국인 52.3%가 비타민D 결핍에 해당하며, 비타민D가 결핍된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50% 이상의 관상동맥 협착이 생길 위험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비타민D가 결핍된 사람은 심장질환의 또 다른 위험인자인 관상동맥 내 석회화 지수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나 비타민D 결핍과 심장질환의 연관성을 뒷받침했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결과가 음주·흡연·비만·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일반적인 원인을 보정한 후 얻어진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장학철 교수는 “국내 65세 이상 한국인 중 50% 이상이 비타민D 결핍이라는 결과는 사회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면서 “이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비타민D 결핍이 심장질환 특히 관상동맥 협착과 연관이 있음을 처음으로 규명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비타민D는 인체의 여러 장기에서 생물학적 작용을 하는 필수 영양소로, 주로 골다공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비타민D가 고혈압·당뇨병은 물론 일부 암 및 심혈관 질환과의 연관성도 속속 제시되고 있다. 비타민D는 주로 햇빛에 피부가 노출될 때 체내에서 합성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D 결핍 상태에 놓여있으며, 지나친 자외선 차단제의 사용과 불균형한 식생활도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의 의학전문지 임상내분비학 & 대사저널 최근호에 게재됐다. 임수 교수는 “비타민D 결핍증은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주로 실내에서 생활한다면 비타민D가 부족할 확률이 높으므로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비타민D는 반드시 약이 아니라도 하루 15분 정도 햇빛을 쬐거나 비타민D가 함유된 음식의 섭취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Weekend inside] 꽃피는 4월… 전국 곳곳서 풍성한 축제

    [Weekend inside] 꽃피는 4월… 전국 곳곳서 풍성한 축제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너무나 찬란한 계절이어서 한갓 인간에겐 오히려 상처를 준다는 뜻이 담겼다. 겨우내 얼었던 흙에서 생명이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는가. 사실 잔인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목이 있다. 4월엔 일부러라도 거짓말을 해서 웃어 보자는 만우절(1일)을 필두로 한식(5일), 충무공 탄신일(28일) 등 기억할 만한 날이 줄지었다. 4월은 또 축제의 계절이다. 전국 지자체들은 다양한 축제로 손님을 유혹한다. 먼저 서울시는 한강공원에서 ‘여가, 문화,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1일에는 양화 월드컵분수, 반포 달빛무지개분수, 뚝섬 음악분수, 여의도 수상분수·물빛광장분수, 난지 거울분수·물놀이장분수, 뚝섬 물보라극장 등 8개 분수대가 물을 뿜기 시작한다. 여의도 벚꽃을 테마로 꾸민 ‘런치 크루즈’도 매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시 30분 운항된다. 1일 오후 2~9시 여의도 물빛무대에서는 월드DJ페스티벌 소속 인디밴드들이 ‘봄바람 파티’ 릴레이 공연을 펼친다. 매주 수요일 오후 7~8시엔 ‘재즈의 밤’을 열어 시민들을 유혹한다. 셋째 주에는 ‘어거스트 러쉬’ 등 가족 영화가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상영된다. 교각 하부 전망대로 유명한 ‘광진교 8번가’에서는 1~15일 봄의 화사함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전 ‘플러스-인’(PLUS-人)을 연다. 16~30일 열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전시회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다. 토·일요일 저녁에는 장르를 망라한 음악공연도 선보인다. 2~30일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뚝섬 전망문화 콤플렉스 ‘자벌레’에서는 ‘한강에 떠 있는 숲 밤섬’ 전시회가 이어진다. 경북 경주시 보문단지 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선 1일부터 공연·전시·입체영화·체험·숲길 등 다섯 가지 즐길거리를 선보인다. 뮤지컬 ‘플라잉’(FLYing)은 신라 화랑도를 재해석해 120회 연속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화랑이 도망친 도깨비를 붙잡으려고 현대의 학교로 넘어오면서 생긴 해프닝을 다뤘다. 인형극 ‘원화극장’은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일깨운다. ‘3D 애니메이션 월드’에서는 가족 입체영화 ‘벽루천’, ‘토우대장 차차’, ‘천마의 꿈’, ‘엄마 까투리’를 스크린에 올린다. 최대 봄꽃 축제라고 뽐내는 진해군항제는 ‘꽃·환경·글로벌’을 주제로 10일까지 펼쳐진다. 3월 31일 오후 6시 30분 중원로터리 광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엔 ‘한류스타 콘서트’가 자리를 빛낸다. 충무공 승전 행차는 군악대와 시민, 관광객을 참여시켜 ‘소통의 하모니 행사’로 꾸민다. 여좌천과 경화역에선 예비부부 웨딩포토 이벤트인 ‘4월의 신부’와 이용자 제작 콘텐츠(UCC) 콘테스트가 마련된다. 전북 완주군 소양 벚꽃축제(13~15일), 정읍 예술제 및 벚꽃길 문화공연(13~22일)도 눈길을 끈다. 귀금속 가공업체들이 밀집된 익산에서 열리는 보석대축제(13~29일)를 찾아가면 혼수품 등을 값싸게 손에 넣을 수 있다. 고창 청보리밭축제(21일~5월 13일)와 전주국제영화제(26일~5월 4일), 남원 춘향제(27일~5월 1일)도 손님맞이 채비에 한창이다. 전국종합·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공직자 재산공개] 서규용 33억… 맹형규 2억↑

    [공직자 재산공개] 서규용 33억… 맹형규 2억↑

    김황식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17명이 올해 신고한 평균 재산은 16억 2670만원이다. 지난해 국무위원 평균 재산보다 1억 6121만원 늘어난 것이다. 1년 새 가장 재산이 많이 늘어난 국무위원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모두 2억 5811만원이 늘었는데,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의 땅값이 13억 5092만원에서 16억 3871만원으로 2억 8778만원이나 뛰었다. 이에 대해 양평군 관계자는 “이 땅은 2010년 농림지역에서 지난해 보존관리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재산이 많이 늘어난 국무위원은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장관으로 1억 7189만원이 늘었다. 충북 청주·청원 일대 땅값만 1억 7799만원 뛰었다. 또 김황식 총리의 재산이 5932만원, 김관진 국방부 장관 재산이 1946만원 늘었다. 국무위원 가운데 으뜸 부자는 서규용 장관이다. 19억 9924만원의 토지를 비롯,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12억 7200만원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 33억 4738만원의 재산가다. 다음으로는 맹형규 장관 30억 6703만원, 권재진 법무부 장관 24억 6417만원,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 22억 3306만원,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1억 4038만원 순으로 재산이 많았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의 재산은 6억 4603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김황식 총리와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각각 800만원·350만원짜리 다이아몬드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500만원 정도 하는 동양화가 허건의 회화작품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권재진 장관·임채민 보건복지부장관·류우익 통일부 장관·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서규용장관은 각각 1억 4200만원·1억 3800만원·1억 2600만원·5000만원·3300만원 하는 골프장 회원권을 갖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GS칼텍스 도서지역대상 원어민 영어교실 개강식

    GS칼텍스가 19일 전남 여수시 남면 금오도의 여남중학교에서 여수교육지원청 관계자와 학교 관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2012학년도 원어민 영어교실 개강식’을 가졌다. GS칼텍스 원어민 영어교실은 도시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취약한 도서지역 학생들의 영어회화 능력 배양을 위해 2007년부터 6년째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내년 2월까지 매일(월~금) 도서지역 5개 섬을 순회하며 영어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수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일상 속 ‘숨은 의미’ 찾기

    일상 속 ‘숨은 의미’ 찾기

    두 가지 점이 눈길을 끈다. 일단 그림이 매우 친절하다. 글자를 큼지막하니 그려놔서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이게 뭘까, 알쏭달쏭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트에는 정직하게 ‘ART’라 써놨고, 페이크에도 정직하게 ‘FAKE’라고 써놨다. 모든 작품이 그렇다. 은유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1대1 대응 상태다. 다른 하나는 글자와 함께 그려진 도상들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글자들은 그나마 쓰이는 단어에 따라 바뀌는데 도상들은 그림마다 반복된다. 영국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71)의 개인전 ‘단어, 이미지, 욕망’이 4월 29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2007년 이후 작업한 최신작이다. 작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쪽이다. “가장 단순한 일반적인 사물, 자칫 놓쳐버릴 수 있는 일상 같은 곳에서 의미를 일깨워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마술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기교, 비밀, 눈속임 같은 것이 공개되면 마술은 시시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시 마술에 탄복합니다. 회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와 관람객은 캔버스 위 환상을 실제처럼 여긴다고 합의합니다. 그게 바로 회화의 매력이지요.” 그 합의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셈이다. 작가는 색깔, 활자, 도상 같은 것도 엄격히 제한된 범위 내의 것만 쓴다. 특히 사물 도상의 경우 일정한 규칙의 모양새를 갖춘 대량 생산품만 쓴다. 작가는 이를 언어생활에 비유했다. “사전에는 수천 단어가 있지만 우리가 실제 쓰는 단어는 몇 가지 되질 않아요. 대개는 고만고만한 단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 내지요. 제 작품이 의도하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관계성을 보라는 것이다. 마틴은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1990년대 등장한 ‘젊은 영국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yBa) 그룹을 길러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02)2287-35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독한 담금질로 평면은 입체가 되다

    지독한 담금질로 평면은 입체가 되다

    “30~40년간 우리 스스로 작업들을 잘 만들어 놓고 왜 서양의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가야 합니까.” 초빙 큐레이터로 전시 전체를 기획한 윤진섭(57) 호남대 교수. 말투가 급격하게 흥분해 버렸다. 모노크롬(Monochrome)이라는 일반적인 명칭이 있는데 왜 단색화(Dansaekhwa)라는 별도의 명칭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7일부터 5월 31일까지 과천본관에서 ‘한국의 단색화’전을 연다. 한국의 단색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작품 155점을 한데 모은 대형 기획전이다. 1970년대 이후 40여년간 축적된 작품들을 한데 모으다 보니 판이 커졌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김환기, 곽인식, 박서보, 이우환,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등 익히 이름을 들어본 17명의 작가는 전기 단색화로 분류했다. 전통적인 회화에 충실하다는 의미에서다. 이강소, 문범, 이인현, 김춘수, 노상균 등 회화를 벗어나 다양한 재료를 쓰면서 특이한 도전을 한 14명의 작가는 후기 단색화로 분류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영문 표기다. ‘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이라고 되어 있다. 모노크롬 하면 보통 하나의 색 정도로 단출하게 그린 그림을 뜻한다. 윤 교수는 그러나 한국의 모노크롬은 서양의 모노크롬과 다르다고 단언한다. “서양의 모노크롬이라는 것은 근대의 시각성이 극한에 달한 거예요. 근대 미술의 끝물이 바로 미니멀 아트이고, 그 대표적인 게 모노크롬이에요. 그래서 그들 작품은 대개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모듈의 운용 같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우리 단색화는 촉각성과 몸의 철학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달라요.” 윤 교수는 행위의 반복성을 강조했다. 지독한 반복작업을 통해 힘겹게 화면을 채워 나간다. 그 자체가 하나의 도 닦는 행위에 비견될 정도다. “서구 작가들이 그리드에 기반한 논리적 작업을 했다면 한국 작가들은 반복작업을 통해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상태를 지향한 거죠.” 해서 우리 단색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형식은 질감이다. 서구 작품들이 깔끔한 평면작업이라면 우리 단색화는 평면작업이긴 하되 입체성이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정창섭 선생님은 한(韓)지를 한(寒)지라 불렀어요. 우리 종이는 차가운 겨울날 만져야 제 맛이 난다는 거예요. 입체성을 만지고 느끼는 이 개념이 서구에는 없습니다.” 실제 이런 개념이 인정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이우환 작가의 구겐하임 전시 때 미국에서 단색화(Tansaekhwa)라는 표현을 썼어요. 왜 그런고 하니 한국의 작품들을 단순히 서양적인 의미에서 모노크롬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거였지요. 정작 서양사람들도 열심히 공부해 보니 표현 못지않게 수양과 자제를 엿볼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왜 스스로 그들 밑으로 들어가려 합니까.” ‘Dansaekhwa’를 우리의 고유 브랜드로 삼겠다는 의지다.(02)2188-60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커버스토리] 밥은 먹고 예술 하십니까 꿈만 먹고 눈물 흘립니다

    [커버스토리] 밥은 먹고 예술 하십니까 꿈만 먹고 눈물 흘립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다섯 명이 2007년 국악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깜깜했다. 연습 공간을 구하는 것부터 힘에 겨웠다. 겨우 음악학원을 빌렸다. 사용시간은 학원수업이 끝난 오후 6시부터 새벽까지로 한 달에 30만원이었다. 가끔 공연하고 받는 출연료가 수입의 전부였던 터라 이 돈마저도 빌려 내야 할 시기가 닥쳤다. 근근이 무대를 찾고,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들며 기량을 다지기를 2년. 한 공연기획자를 만났다. 프로젝트 그룹이 아니라 아예 고정 그룹을 결성했고, 자비를 털어 음반을 냈다. 조금씩 출연 제의가 늘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충무아트홀의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됐다. 지난 11일에는 이 공연장 대극장에서 연출가 박근형, 무용인 이원국과 정영두, 국악인 백경우 등 쟁쟁한 국악인들과 공연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 얘기다. 앙상블 시나위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나도….”를 목표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영화] 명문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A(32)씨가 영화판에 뛰어든 건 10년 전. 촬영감독을 꿈꾸며 2002년부터 조명부 막내로 현장에 입문했고 3년 전 촬영부로 옮겼다. 충무로 체계는 여전히 ‘도제식’이다. 보통은 촬영감독 밑에 팀장 격인 퍼스트, 그 아래 세컨드와 서드 등 4명이 한 팀을 이룬다. 퍼스트를 가장으로 둔 가족과 비슷하다. 퍼스트가 제작사와 ‘통계약’을 맺고 ‘짬밥’(경력)에 따라 스태프에게 돈을 나눠 준다. A씨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단순작업부터 시작해 지금은 세컨드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한 달에 300만원 안팎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일감이 없다는 것. 게다가 촬영 준비단계에는 테스트 촬영 몇 번이 전부여서 다른 일도 못 하고 수입도 없다. 지난해 서드급으로 영화 두 편에 참여했다. 언제 촬영이 끝날지, 언제 쉴지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서 주 60~70시간을 일하며 7개월을 보냈다. 지난해 총수입은 1600만원 남짓이다. 틈틈이 홍보영상 촬영 등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버텨 낼 재간이 없다. “야외촬영은 해가 떨어지면 끝이니까 하루 12시간만 일하면 됩니다. 그나마 행복하죠. 세트촬영은 짐작도 안 돼요. 3~4일 밤샘하면 쉬고, 장마가 겹치면 쭉 쉬는 게 휴일인 거죠. ‘통계약’이라 휴일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는 불가능하고요. 꿈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버티죠. 결혼하고 애가 있는 선배들은 생활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그래요. 나이 들어서 전직을 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뮤지컬] 요즘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계도 명암이 엇갈린다. 뮤지컬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는 회당 200만~300만원. 유명해지면 쑥쑥 오른다. 지난해 배우 조승우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며 회당 1800만원대 개런티를 받아 화제가 됐다. 한 해 공연되는 뮤지컬은 100여편에 이르지만 이런 경우는 몇 명에 불과하다. 1~3차로 나눠 받는 출연료를 1차만 받고 끝나는 사례도 많다. 주연급이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은 배우들의 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09년부터 2년간 세 개의 작품에 출연한 B(27)씨는 총출연료를 따져 보니 740만원이었다. 그나마 140만원은 아직 받지 못했다. 2년 내내 공연과 연습에 매달렸지만 연봉은 300만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래서 작품하는 틈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뮤지컬 경력 7년차 앙상블(코러스) 배우 C(31)씨는 회당 5만~7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때 기준이라 연습 기간엔 수입이 없다. 게다가 흥행이 안 돼 출연료를 아예 못 받은 일도 허다하다. “생계가 어려워 낮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빙을 한 적도 있어요. 주변 동료 중에는 밤에 대리운전하는 배우도 있죠. 무대에 선다고 생활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죠.” [무용] 무용수들은 병이 친구요, 반창고가 피붙이다. 높이 뛰어 올라 착지하는 동작이 많은 공연이면 무릎과 허리엔 반창고투성이다. 현대무용을 하는 D(35)씨는 한 시간에도 십수 번 몸을 뒤척인다. “어떤 움직임에만 익숙해져 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몸이 쑤신다. 이럴 때마다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니 자연히 ‘은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남들은 한창 일할 30대에 말이다. “현대무용 하는 사람들은 한국무용 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발레 무용수들은 또 우리를 부러워하죠. 발레는 30대 중반만 돼도 은퇴 얘기가 나오거든요. 한국무용은 일흔을 앞두고도 무대에 오르잖아요.” E(29)씨는 이따금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무대에 선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달 수입 50만원인, ‘예술하는 사회인’으로 몇 달을 버텼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무용 강사를 하고, 가끔 지인을 통해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한 달 가까이 연습하고 이틀 무대에 올라 40만원을 받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1시간 30분에 5만~10만원을 받지만, 수업과 공연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공립 무용단에 들어가면 기본급에 무대수당 등을 받아 금전적인 상황은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무용수 생명이 길지 않은 현실을 따져 보면 ‘노후대책’ 따위는 꿈일 뿐이다. “그래도 목표가 있고 내 실력을 믿으니까 버티고 있어요. 아직은 젊다는 거 하나로 밀고 나가는 거죠. 하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줄면 그 이후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미술] 미술은 단독작업이다. 스태프 같은 집단이 없다. 해서 작업은 더 어렵고 지원은 더 간절하다. 판매시장이 형성된 회화 쪽은 그나마 낫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업은 판매가 제로에 가깝다. 동시대미술이라 각광받지만 수입은 제로인 셈이다. F(47)씨도 마찬가지. 나름대로 미술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다. 그럼에도 작업에 한번 착수하려면 몇 달간 돈을 모아야 한다. F씨는 “공연 분야는 티켓 수익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록 적자라도 일정 수익이 보장되겠지만 미술 쪽은 그렇지 않다.”면서 “나 역시 작품 판매로 인한 수입은 거의 없기 때문에 평균 수입이 얼마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쭉날쭉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늘 마이너스 인생이다. 거기다 작가들은 작업실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남는 땅이나 건물 같은 것을 작업실로만 쓰게 해 줘도 한결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F씨는 그나마 자기 사정은 낫다고 했다. F씨는 “그래도 미술계에서 쌓아 온 인지도 때문에 특강, 원고 청탁, 심사위원 활동 같은 것이 있어 간간이 수입이 들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작품 경력인 포트폴리오의 단절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 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목숨과도 같은데 돈 문제에 치이다 보니 흐름이 끊겨 버립니다. 사실 미술 쪽 사람들에게 돈 문제는 생계보다 포트폴리오의 단절이라는 문제가 더 크죠.” 시인 90%가 출판 업무·학원 강의로 생계 [문학]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출신 시인 G(32)씨는 올해부터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면서 월수입이 100만원 안팎을 왔다갔다할 만큼 올랐다. ‘88만원 세대’보다 못한 무명 시인으로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서울 생활을 꾸려 왔나 돌아보면 자신이 대견하기만 하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출신은 훈장일 뿐 고봉밥을 주지는 않는다. 시인들의 원고료는 편당 계산된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대여섯 개 전통 문예 계간지는 편당 10만원을 준다. 한 번 게재될 때 3~5편이 실리니 30만원에서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날은 운수대통한 날이다. G씨는 “시문학 잡지들이 많아 시인들의 창작 횟수는 많지만, 시가 게재돼도 고료를 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두 편을 3만원에 퉁 치는 곳도 있고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을 권유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전업 시인’은 전업 소설가와 달리 거의 불가능하다. 시인의 90%가 출판사에서 일하거나 학원강사를 하는 등 시간제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최근 문예창작과가 많아지면서 논술과 창작 지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첫 시집을 내려면 대부분이 등단 5년 이상은 돼야 한다. 소설가는 시인보다는 좀 낫다. 원고지 70~120장의 원고를 쓰고 보통 100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조금 팔리는 성싶으면 두세 군데 출판사가 선계약하는 등 출판이 더 원활하고, 원고 청탁도 더 낫다고 G씨는 덧붙였다 문소영·최여경·조태성·김정은기자 symun@seoul.co.kr
  • 영화 ‘청춘그루브’ 변성현 감독 “나의 영화그루브, 이제 시작”

    영화 ‘청춘그루브’ 변성현 감독 “나의 영화그루브, 이제 시작”

    좀 놀았을 법한 인상이다. 옆과 뒷머리는 바짝 깎고 윗머리만 남긴 머리 모양, 가죽 재킷에 국방색 ‘야상’을 덧입은 모습은 기자의 판단에 색을 덧입혔다. 영화 ‘청춘그루브’(15일 개봉)의 잔상이 강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F워드’를 달고 사는 걸진 입담에 욱하는 성질, 여자만 보면 건드리려는 사고뭉치 래퍼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인디영화판의 재능있는 신예로 소문난 그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다. ‘청춘그루브’의 변성현(32) 감독을 지난 7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지성·김아중 주연의 ‘마이 PS파트너’를 준비 중이다. ●“힙합영화도 아니고 힙합퍼도 아니다” ‘청춘그루브’는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 램페이지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래퍼 민수와 래퍼 겸 프로듀서 창대, 보컬 아라의 꿈과 사랑, 엇갈린 운명을 그린 청춘영화다. 대형기획사에서 잘생긴 민수와 따로 계약하면서 찢어진 세 친구가 3년 만에 재회하면서 영화는 강한 비트에 따라 ‘그루브’를 탄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4억원을 지원받아 만든 영화지만 봉태규와 이영훈(‘후회하지 않아’ ‘GP506’), 곽지민(‘사마리아’) 등 제법 쏠쏠한 캐스팅을 했다. 그럼에도, 신인감독의 저예산 영화가 개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애초 예상한 개봉시기인 2010년 가을을 두 해나 넘겨서 극장에 걸리게 됐다. 그 심정이 궁금했다. 죽었던 자식이 살아돌아온 것만큼이나 지각개봉이라도 반가운 일일까. “늦게라도 개봉해 기분 좋다. 미성숙하지만 솔직한 청춘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라고 그는 말했다.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 같은 영화를 찍고 싶었던 변 감독은 다른 저예산 영화보다는 빠른 편집 호흡을 가져가고 싶었다. 기획단계에서 소설을 소재로 취했다가, 힙합을 끌어들인 것도 강렬한 비트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 아쉬움은 남는다. 가수 타블로의 최근 앨범인 ‘열꽃, Part2’ 가운데 ‘고마운 숨’에서 수준급 랩 실력을 뽐냈던 봉태규의 캐스팅은 이 영화를 주목받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그는 “코믹배우 봉태규가 아니라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1)에서의 태규 느낌이 좋았다. 엇비슷한 역할을 되풀이하면서 그가 저평가됐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내면서도 거절당할 거로 생각했는데 첫 미팅을 하고서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청춘영화를 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마케팅을 하는 분들이 힙합영화처럼 포장했는데 그건 본질이 아니다. 음악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배신감이 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알려진 것처럼 실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 출신도 아니라고 했다. “집구석에 들어앉아 비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뿐인데 심하게 와전됐다. 영화사 관계자들에게 수차례 얘기했는데 홍보자료가 안 고쳐지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숨 걸고 하지 않아… 감독은 내 직업일 뿐” 그는 ‘할리우드 키드’와는 거리가 멀다. 중·고교 때는 물론, 20대 중반까지도 ‘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는 “부모님이 대학에 가기를 원했는데, 서울예대 영화과는 수능 점수가 필요 없었다. 연출은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연기 전공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사회화가 덜된 탓에 면접에서 거침없이 대답한 걸 교수님들이 좋게 본 것 같다.”며 웃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연기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연출전공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무슨, 무슨 스키(동유럽의 유명감독 이름들) 얘기를 하는 건 어려워 보였는데, 곁에서 보니 할 만하겠더라.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도 모르던 내가 동네친구들과 함께 막무가내로 덤벼 단편 ‘REAL’(미장센영화제 출품작·KBS 독립영화관 상영)을 완성했는데, 교수님들이 ‘네가 갈 길은 연출’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워낙 귀가 엷어서 그때 혹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0년 봄 ‘청춘그루브’의 후반작업이 끝나고 나서 그는 다시 백수가 됐다. 밤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시놉시스를 끼적거렸다. 그 무렵 ‘청춘그루브’의 조감독이 권한 영화가 ‘500일의 썸머’. 그는 “원래 로맨틱코미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500일의 썸머’는 아주 좋더라. 섹스코드를 조금 입히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보다가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회사에선 싫어할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영화를 잘 ‘베끼는’ 편이다. 물론 가져다 쓰되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버무린다.”고 덧붙였다. 자기만의 세계관에 함몰된 영화광 감독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된 ‘마이 PS파트너’는 CJ문화재단의 콘텐츠 발굴프로그램 ‘CJ아지트’에 채택됐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약하던 힙합 가수가 하루아침에 대형기획사와 계약을 한 셈. 하지만 “좋긴 한데 미쳐 날뛸 만큼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작 기뻐한 건 평생 그를 걱정스럽게 지켜본 어머니였다. “명절에 CJ에서 선물세트가 오고, 감독이라고 명함도 파주니까 어머니는 내가 대기업에 입사한 줄 아시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했지만,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달라질 게 없다. “감독은 현재 나의 직업일 뿐이다. 한 번도 영화를 목숨 걸고 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들을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찍을 뿐이다.” ‘청춘그루브’에는 ‘디제이가 비트를 만들면 MC(래퍼)들은 그 비트 위에 랩을 해.’란 대사가 나온다. 어쩌면 영화란 비트에 얹힐 변성현만의 랩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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