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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聯政구상 있다면 떳떳이 밝혀라

    정치권에서 ‘합당론’에 이어 ‘연립정부론’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여권이 민주당 인사에게 입각을 타진한 배경을 해명하면서 “(연정은)전 세계가 다하는 지극히 당연한 정치행위”,“선진국 정치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연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오해를 살 만한 언급이었다. 헌정사에서 집권쪽의 정계개편 시도가 욕을 먹었던 까닭은 선거 표심을 왜곡하는 것과 함께 돈·권력에 의한 회유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지역분할 구도를 심화시키는 후진적 이합집산도 비난의 원인이 됐다. 청와대 브리핑이 밝혔듯이 이념·정책에 따른 합당, 연정, 정책연합은 언제라도 추진할 수 있다. 과거보다 공작적 요소가 덜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고 있는 합당·연정론 역시 의도가 투명하지 않다.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호남표 결집을 의식했거나, 열린우리당의 과반이 깨지는 것을 보충하려는 정치 술수로 비친다. 합당·연정 추진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여권내의 혼란스러운 양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합당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 브리핑’은 딴소리를 하는 듯하고, 일부 열린우리당 인사들은 합당의 필요성을 계속 개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개혁파까지 뭉치는 ‘큰 그림’이 운위되고 있다. 새해 들어 실용주의가 국가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대통령 지지도가 오르고 있다. 정계개편론으로 국력을 낭비해선 안 된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이중플레이를 한다는 의혹을 불식시켜야 한다. 합당·연정 의사가 없다면 억측을 부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국회에서 안정과반 유지가 꼭 필요하다면 그 배경을 국민들에게 떳떳이 설명하고 당 대 당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도 아니고 인재를 널리 구하는 차원이라면 준(準)거국내각의 틀을 걸고 야당과 공식 협의해도 된다. 경제살리기라는 대의명분이 있지 않은가.
  • 경찰고용직공무원 해직여성 한 달째 시위 사연

    경찰고용직공무원 해직여성 한 달째 시위 사연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정문 앞. 거의 한 달째 매일 오전 50여명의 여성들이 ‘경찰고용직공무원 직권면직 철폐를 위한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감축 대상이었던 고용직공무원 가운데 의원면직을 거부해 직권면직된 경찰고용직공무원들이다.“하루아침에 부당하게 면직됐다.”는 해직자들과 “할 일이 없어져 어쩔 수 없다.”는 경찰. 고용직공무원은 무엇이며 논란의 쟁점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김은미(28)씨는 한달 전까지 엄연한 공무원이었다. 천식을 앓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떠맡았던 그는 고3이던 1994년 10월 강원도 원주의 파출소에서 고용직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박봉이었지만 신분이 보장된다고 믿었기에 다른 직장을 구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김씨는 문서 수발에서 빨래와 청소 등 허드렛일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5년 뒤 원주경찰서로 옮긴 뒤에는 범죄분석시스템 자료 분석, 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 입력 등의 업무를 맡으며 “나도 당당한 경찰의 일원”이라는 생각에 보람도 컸다고 한다. ●청소 등 허드렛일부터 경리업무까지 그러나 꼭 10년 만인 지난해 12월31일 직권면직 통보를 받았다. 경찰이 2004년 면직하기로 결정한 고용직 584명 가운데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던 87명과 함께였다. 김씨는 “면직 이유를 묻자 ‘1989년 폐지된 직제’라고 했다.”면서 “그렇다면 직제가 폐지된 뒤 나를 채용한 것은 국가가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고용직은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전화교환, 교통사고 기록 입력, 비서, 경리 등을 맡았다.1989년 공무원 직제 개편으로 고용직이 폐지되면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기능직으로 전환됐고, 자연감소하는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소멸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이후에도 2002년까지 모두 551명을 신규채용했다고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은 밝혔다.2003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구조조정안 제출을 요구하자 경찰은 뒤늦게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고용직을 없애는 대신 수사 등 핵심인력을 증원하는 방안으로 승인을 받은 것.2003년에 496명,2004년에 584명이 면직됐다. 고용직들은 지난해 7월 노조설립신고서를 냈지만, 신분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반려됐다. 현재는 법외노조 상태로 지난달 16일부터는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제한경쟁특채’ 방안 고심 해직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경찰은 남겨놓은 89명의 자리를 공개경쟁으로 선발하겠다는 ‘제한경쟁특채’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해직자들은 “말도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어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연맹 이상훈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고용직공무원은 공무원임용령에 따라 기능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면서 “지방자치단체에 남아 있던 2400여명의 고용직도 지난해 11월 모두 기능직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해직자들은 현재 부당한 면직 사유, 직제폐지 이후 채용의 문제점, 면직 과정의 부당한 압력 행사 등을 이유로 ‘면직처분 취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고용직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와 최근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쟁점이 됐다. 지난 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허준영 신임 청장은 “경찰청 내에도 취약계층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제도적 구제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변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도 “인력 충원이나 재배치에 대한 고심보다 무계획하게 고용직을 줄여서 행자부에서 정해놓은 정원에 맞추려는 식의 응급처방은 위험하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효용 홍희경기자 utility@seoul.co.kr ■ 해직 고용직공무원의 항변 “필요하다고 채용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가라니, 안이한 행정으로 진 빚을 약자에게 떠넘기는 꼴입니다.”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문정영(34) 부위원장은 “폐지된 직제에 14년동안이나 신규 채용을 해온 경찰이 부당한 직권면직을 강행하고 있다.”면서 “전원이 기능직으로 전환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청이 직권면직을 단행하며 제시한 이유는 ▲고용직공무원의 직제가 이미 폐지됐고 ▲예산이 부족하며 ▲업무적 기능이 상실됐다는 것. 하지만 문씨는 “1989년 직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경찰이 새로 채용을 하면서 스스로 모순을 키웠고, 올해 경찰 예산은 지난해보다 6.8%나 증액됐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예산 증액분은 수당 확대와 온라인 외국어 교육 등에 사용한다는 방침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급직원의 살권리는 빼앗으면서 복지 증진에 사용될 예산은 있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그는 “고용직의 빈자리에 지금도 일용직을 채용하는 등 기능을 상실했다는 이유도 설득력이 없다.”고 성토했다. 문씨는 특히 “경찰은 직권면직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미행과 감시는 물론 가족에게까지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다.”면서 “경찰을 가족으로 둔 조합원에게는 가족의 승진에 지장을 줄 것이라며 면직을 종용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경찰청 입장 “고용직공무원이 맡던 업무는 이제 시대가 요구하지 않습니다.” 경찰청은 정부 차원에서 강도 높게 공무원 정원 억제책을 실시하는 상황에서 고용직 해직자들의 주장을 들어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경무기획국 인사과 관계자는 “경찰 업무가 전산화되고 2000년 3교대 체제가 도입된 이후 고용직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직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고용직을 계속 채용한 이유를 묻자 “3교대 체제가 자리잡는 데 시간이 걸렸고, 관할서별로 충원하다 보니 일관된 정책을 펴지 못했다.”고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경찰청은 다른 공무원 조직과 마찬가지로 경찰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단순업무를 일용직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단순업무에 수사경찰을 배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고용직 해직자들의 시위가 장기화되자 경찰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제한경쟁특채를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은 전형과정에서 특혜를 주겠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세부 계획은 구상 단계라며 확답을 피했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고용직의 처리는 전적으로 경찰의 몫”이라면서도 “지방자치단체의 고용직은 주차단속이나 방범 등 특수한 업무영역이 있어 기능직 전환이 가능했던 만큼 경찰고용직이 지자체고용직과 자신들을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사람들은 왜 기를 쓰고 ‘고급 어종’만 찾을까. 고급 어종만이 고급화한 스스로의 미각을 만족시킨다고 믿는 것일까. 평범 속에 진리가 있듯, 흔하디 흔한 물고기들이 외려 우리의 미각에 들어맞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구한 세월, 그 맛의 유전자가 혀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동해에서 겨울철 진미를 찾아 나섰다. 동해안 겨울 진미는 단연 명태다. 그러나 이곳 명태잡이는 ‘사형선고’를 받은지 오래다.‘북양태’와 ‘일본산’이 득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만만치 않은 어획량을 유지하면서 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선 ‘도루묵’과 ‘양미리’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런데 정작 도루묵과 양미리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 수준은 의외로 낮다. ●미끈한 생김새에 비린내도 없는 ‘도루묵’ ‘실컷 일을 해놨더니 망조가 들어 그르치는 상황’을 일컬어 ‘말짱 도루묵’이라고들 한다. 도루묵이 오죽 하찮게 보였으면 속담에서조차 이렇게 허투루 비교되고 비하될까. 일설에는 전쟁통에 피란가던 임금이 이걸 먹고는 너무 맛이 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후 전쟁이 끝나 환궁해서 그 맛을 다시 보려고 이걸 청해 먹었는데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루 물리라.”고 한 데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임금이 선조라는데,‘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말짱 도루묵’은 없다. 값이 비싸져 ‘도루묵이나 먹자.’는 말도 쉽게 할 수 없다.‘도루묵을 먹다니….’정도로 바뀌어야 격에 맞게 됐다. 도루묵은 깔끔한 신사 같다. 비린내가 거의 없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외출에 나선 미끈한 멋쟁이 같은 생김새다. 맛도 외모를 닮았다. 비린내를 풍기면서 뭉기적거리는 생선이 아니라선지 일본인들은 이 도루묵을 보면 군침을 삼키며 달려든다. 더군다나 알 밴 도루묵은 금값이다.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도루묵은 상당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도루묵 값이 비싼 것은 바로 일본 수출 때문이다. 정의철 동해수산연구관은 “우리 수산물 값은 일본으로의 수출 여부가 좌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 후 일본 수출길이 막히자 값도 눅어졌다.2년 전쯤의 일이다. 도루묵은 일본 시마네현 쪽에서도 많이 잡힌다. 우리 바다의 도루묵이 산란한 뒤 일본쪽으로 회유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생태 조건을 가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호도가 높은 만큼 일본 학자들의 도루묵에 대한 관심은 높다. 점착성 침성란을 가진 도루묵은 연안 저층성 어종으로 보통 수심 200∼300m 사이에서 서식한다.2003년 연간 생산량은 1900t이었다. 지난 70년대 초반만 해도 해마다 2만 5000t까지 잡혔으나 요즘은 1500∼5000t 정도가 고작이다. ●서해안 전통어법 동해안에서도 행해져 도루묵은 산란기가 가까워지면서 딱딱해진 알을 듬북 같은 해초에 잔뜩 산란해 놓는다. 바람이라도 불 양이면 파도에 밀려온 도루묵알이 거품일 듯 해변을 뒤덮는다. 알을 주워다 파는 일은 불과 얼마전까지 흔했던 해변 풍습. 아예 유리상자로 물 속을 들여다 보며 작업하는 ‘창경바리’로 해초에 붙은 알을 채취해 내다팔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조업 반경은 고성으로부터 속초, 양양, 강릉 등 강원 북부다. 물고기마다 제 집과 고향이 있듯 강원 북부가 도루묵의 원적지쯤 된다. 그 밑에서도 잡히기야 하지만 양도 적고, 맛도 덜하다. 속초항에서 만난 어부 노만선(52)씨는 “예전에는 개도 안 물어갔다.”고 회고한다.‘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은 그만큼 흔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으리라. 도루묵은 유자망(흘림그물)이나 기선저인망으로 잡는다. 그런데 강릉 사천진의 김덕중 어촌계장이 재미있는 증언을 했다.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 놈들을 ‘주벅’으로 잡았단다. 고문헌에 ‘주박(柱泊)’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전통 정치망이 동해에서 확인되는 순간이다. 굵은 말뚝을 박고, 그물을 걸쳐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전통적인 서해안 어법이 동해안에서도 행해졌다는 새로운 발견. 사천진에서는 ‘물밑 주벅’이라고 하여 닻을 물밑에 고정시켜 그물을 놓았다. 대략 35년 전까지 행해지다 사라진 어법이니, 잊혀지기 전에 이를 기록해 둔다. 주벅으로 잡던 시절에는 부둣가에 가마니를 깔고 잡힌 도루묵을 산처럼 쌓아 뒀다. 오늘날은 기선저인망으로 100m가 넘는 바다 밑을 샅샅이 훑고 다니니 어족고갈은 불보듯 뻔하다. 도루묵 조리법은 의외로 다양하다. 찌개와 구이, 찜은 익히 알려져 있고, 살짝 말려서 볶기, 그리고 뼈째로 토막낸 도루묵회도 별미다. 도루묵회는 도시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먹어보니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석쇠에 올려놓고 노릇노릇 구워 ‘톡톡’ 알터지는 소리를 음미하며 먹는 미각이야말로 겨울철에 동해를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까. 예전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획 어종인 도루묵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 없으니, 이른바 ‘고급 어종’이라는 무식한 선별 기준의 비객관성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흔해서 대접 못 받는 ‘양미리’ 이곳의 또 다른 별미 양미리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속초 청초호변의 ‘삼숙이 생선구이집’을 찾았다. 주인장 이름이 삼숙이란다. 생선 장사 수십년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을 쓴 간판을 내걸었다. 그녀의 생선장사 스케줄을 보면 동해 어종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월 초에 시작한 산오징어 장사가 추석 전까지 이어진다. 추석이 지나면서는 양미리 장사를 하고, 이어 11월20일을 전후해 양미리 성어기가 되면 서서히 도루묵이 잡히기 시작한다. 도루묵 장사는 양미리보다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난다. 도루묵 장사는 11월에 시작해 12월 중순이면 대충 끝나며 그 이후에 파는 것들은 모두 냉동 도루묵이다. 양미리 장사도 12월이면 ‘종을 치며’ 그 후로는 냉동 양미리를 말려서 시장에 낸다. 양미리가 제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양미리는 동해안 전역에 세력을 펼친다. 그렇게 흔해선지 사람들은 양미리의 진가를 제대로 모른다. 말려서 볶거나 구워먹기도 하며, 날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양미리를 추어탕처럼 곱게 갈아서 탕으로 끓여먹는 조리법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수입 미꾸라지탕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 처지에 동해에서 지천으로 잡히는 100% 국내산 양미리탕에 아무도 관심을 돌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필자가 음식 장사라면 반드시 염두에 둘 건강식 메뉴다. 확실히 우리는 우리 해산물에 관한 활용도와 이해도가 실망스러울 만큼 저급할 뿐더러 보수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식해도 만들어 먹는다. 가자미식해처럼 좁쌀을 사용해 시원하게 담가 먹는다. 해산물 요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이제는 깨끗이 버릴 일이다.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아 동해안 수산연구 전문가인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용수 박사는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까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다. 양미리는 동해안에서 붙인 이름일 뿐이다. 양미리가 까나리라면 그 누구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우리라. 까나리답게 양미리는 여름잠을 잔다. 모래밭에 기어 들어가 시원한 여름잠을 즐기는 별난 족속이다. 이 즈음에는 먹이를 먹으려고 잠시 외출했다가 잡히곤 한다.‘발치기’라고 해서 해저의 모래바닥에 그물을 깐 뒤 잠수부가 들어가 발로 모래밭을 밟으면 양미리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데 이걸 잡아들인다. 산란 전까지는 계속 모래 속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가까워 ‘외출’이 시작되면 이 때부터는 ‘누인 그물’이 아니라 ‘세운 그물’로 잡아들인다. 물고기의 삶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교묘한 머리싸움이 이처럼 어법까지 발달시켰으리라. 그 양미리 값은 얼마나 될까.20마리 1두름에 2000∼2500원 선이다.1마리에 200원꼴이니 이보다 값이 눅은 생선이 있을까. 전국에서 양미리가 가장 많이 건조되는 주문진의 덕장을 찾아가니 줄에 엮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두름당 인건비가 고작 300원이란다. 손이 날랜 이가 200두름, 즉 하루에 4000여마리를 엮고서 6만원 정도를 받는다. 평균은 이보다 못해 고작 100여두름을 엮어 일당 3만원 정도를 번다.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봐야 100만원 벌이도 안된다. 낮은 양미리 가격이 이처럼 어촌의 저임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미리는 명태를 비롯한 각종 낚시미끼로 팔려 나간다. 양식장에서는 광어 등을 시장에 내기 전에 보신용으로 양미리를 먹인다.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먹을거리로서도 종합적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이다. ●도루묵·양미리에서 평범 속의 진리 깨달아 한가한 ‘생선타령’이나 하려고 양미리와 도루묵에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고급 어종’ 운운하며 그릇된 상식으로 해산물에 관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 밥상문화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짱 도루묵’은 더 이상 없다. 마리당 불과 200원에 지나지 않는 양미리, 아니 동해까나리의 전방위적 품격과 용도에서 평범 속의 진리를 깨닫는다. 겨울 별미를 찾아 떠난 동해 여행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을 살폈으니, 그 새로운 재발견의 기쁨을 어찌 홀로만 즐길 수 있으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거늘, 관해의 즐거움 중에는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하찮은 먹을거리 하나도 제대로 알고 먹을 일이다.
  • [인사]

    ■ 서울신문 (경영기획실)△총무부장 崔俊求△총무부 차장 金振國△시설관리부장 洪竣杓△시설관리부 전기팀장 張淳寬 (전산국)△전산제작부장 蔡亨秉△전산제작부 차장 尹相福△화상부장 柳基俊 (제작국)△윤전1부장 金章玉△윤전1부 차장 潘弘烈 羅龍浩 ■ 문화관광부 △감사관 成南基 ■ 행정자치부 △장관정책보좌관 李淸休 ■ 농림부 △장관정책보좌관 羅正漢 ■ 해양수산부 ◇국장 전보 △공보관 林基澤△감사관 金榮錫△해양정책국장 申平植△해운물류국장 李在均△국립해양조사원장 郭仁燮△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 李仁洙△인천항건설사무소장 李容基△2012여수세계박람회유치기획단 金德一 ◇국장 파견 △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趙宗煥△국방대학원 파견 趙學行△한국해양수산개발원 파견 禹禮鍾 ◇국장부처간교류 △건설교통부 파견 鄭有燮 ◇과장 전출 △대통령비서실 田基整 ■ 산림청 ◇서기관 승진 △국제협력담당관실 이미라△북부지방산림관리청 李明秀 ■ 국세청 ◇국장급△중앙공무원교육원 鄭祥坤△국방대학원 鄭始永 ◇과장급△세종연구소 金榮國 ■ 서울시 ◇지방부이사관 전보△동대문구 金奉鉉 ■ 대한적십자사 △기획관리국장 尹喜洙△사회봉사보건〃 鄭惠淑△감사실장 申昌雨△경기도지사 회장보좌역 金錫佑△서울남부혈액원장 閔丙大△서울동부〃 趙仁哉△혈액사업본부 헌혈홍보실장 金基貞 ■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연구소장 李珖鎬△기획처장 李吉相△장서각 관장 丁淳佑△연구처장 韓亨祚△국제한국문화홍보센터 소장 韓道鉉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혁신인프라연구실장 元東奎△차세대정보시스템연구실장 成元慶△정보마케팅실장 李命善△국가R&D시스템개발실장 崔起碩 ■ 대한광업진흥공사 ◇팀장△기획관리 朴成夏△총무관리 李連植△국내탐사 柳仁杰△국내개발 奇台錫△국내융자 吳東宇△해외총괄 鄭旼秀△해외에너지 李吉琇△해외금속 韓珍均△남북자원협력 金龍範△기술연구소장 李建九△자원정보센터실장 韓起龍△감사실 姜聖勳△홍보실 姜天求△비서실 朴先敎△비상계획실 朴鍾化 ■ 디지털타임스 △광고마케팅국장 직무대리 李揆和△광고마케팅국 광고부장 〃 鄭熙永△기획관리부장 〃 申城圭 ■ 전국지역신문협회 △총무담당부회장 오재룡△대외협력담당〃 이정찬△기획담당〃 이형연△조직담당〃 엄기철△정책담당〃 서진석△홍보담당〃 권경호△대변인 박은심△경기도협의회장 김순철△대전·충남〃 송두석△광주·전남〃 김용환△부산·경남 〃 강병주 ■ 쌍용화재해상보험 △경영지원·자산운용·영업부문 총괄 부사장 裵同植△자산운용부문 전무이사 金道源 ◇승진 △마케팅부문장 張鍾培△고객지원팀장 咸碩鉉 ◇전보△강북사업본부장 金永贊△마케팅팀장 趙源甲 ■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전보△지상파방송사업추진TF팀장 李永三△인천지회부장 金琮煥
  • 마포 자원회수시설 쓰레기 반입 강행 주민 반발… 서울시와 충돌 우려

    서울 마포구 자원회수시설을 둘러싼 시와 주민들간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은 가운데 19일부터 시운전과 준공을 위한 쓰레기 반입이 시작된다. 서울시는 18일 원활한 시설운영을 위해 주민들과 협의해 왔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해 4월 준공이 여려워질 우려가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준공하지 못하면 마포·용산·중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의 쓰레기 처리에 차질이 빚어져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마포 쓰레기 소각장 건설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김종호 위원장은 이에 대해 “소각장이 운영되면 다이옥신이 인근 주민들과 자녀들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면서 소각장 운영 반대와 쓰레기 반입 저지 입장을 거듭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시가 주민들과 개별적 접촉을 통한 회유를 시도했을 뿐 비대위와 진지한 대화에는 노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그러나 “구의회에 주민협의체 구성을 위해 전문가 추천을 의뢰했지만 확정하지 않은 데다 일부 위원의 반대 등으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비대위는 주민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해 쓰레기 반입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서울시와 쓰레기 반입을 저지하려는 주민들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2001년 11월 3기(基) 규모로 착공한 마포자원회수시설은 하루 750t 처리용량을 지녔다. 국비 512억원을 포함해 1711억 6600여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플리바게닝 국내외 사례는

    국내에서도 뇌물이나 마약·조직폭력 사건 등의 수사에서 면책이나 약한 처벌을 조건으로 증언을 얻어내는 일이 암묵적으로 있었다.‘거악’ 척결을 위해 ‘소악’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1993년의 ‘슬롯머신 사건’ 당시 홍준표 검사(현 한나라당 의원)는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로 불리던 정덕진씨 형제를 ‘처벌을 가볍게 해주겠다.’고 회유, 정치권 및 검찰 고위인사 등 비호세력의 명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검찰 수뇌부의 거부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3년 현대비자금 및 대북송금 사건 수사 때에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권노갑씨와 박지원씨를 수뢰 혐의로 기소하면서 150억원 전달자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김영완(해외체류)씨를 상대로 면책조건부 증언을 유도해 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이 사건으로는 이 전 회장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자진귀국해 수사에 협조하면 불구속 수사하겠다.’면서 김씨를 회유했다. 수사 책임자가 일종의 ‘플리바게닝’을 시인한 사례도 있다. 검찰은 지난 2000년 신구범 전 제주지사의 30억원 수뢰사건을 수사하면서 뇌물을 건넨 D산업 대표 한모(52)씨를 벌금 2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앞서 한씨는 100억원대의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수배돼 2년여간 해외를 전전하다 갑자기 귀국해 검찰에 출두한 뒤 신씨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은 수배 사유였던 횡령 등은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30억원대의 뇌물공여자가 약식기소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법원은 한씨를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당시 서울신문의 의혹 제기로 파장이 확산되자 수사 책임자는 “죄질이 나쁜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감경 조건으로 자백을 받아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미국의 경우 마피아 관련 범죄나 연쇄살인 사건 등에서 플리바게닝과 면책조건부 증언취득 제도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1992년 뉴욕 마피아의 대부 존 고티는 조직의 2인자였던 살바토레 그라바노의 법정증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라바노는 ‘5년 이하로 감형해 주겠다.’는 검사의 약속을 받아낸 뒤 고티의 살인교사 혐의를 법정에서 증언했다.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을 받는 진짜 ‘플리바게닝’은 연쇄살인 등 강력사건 재판에서 많이 활용된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발생한 여성 48명 연쇄살인사건(일명 그린리버 사건) 용의자인 게리 리언 리지웨이가 2003년 사형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범행 일체를 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환경·생명] 멸종위기 고래 “SOS”

    [환경·생명] 멸종위기 고래 “SOS”

    아득히 먼 옛날, 고래의 모습을 더듬으려면 신화의 골짜기로 내려가야 한다.2500만년 전 물고기 형태로 출현한 사실은 화석연구로 밝혀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엔 네발로 걷던 쥐나 개 정도 크기의 뭍짐승이었다고 한다. 사는 곳이 바다라는 점 말고는 자궁이 태아를 품고 새끼가 어미 젖을 빠는 등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과 모든 점에서 같은, 유일한 바다 생명체가 바로 고래다. 그 신비롭고 특이한 존재, 고래가 올해 긴박한 SOS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밍크고래등 68종 절멸위기 적색목록에 오는 5월말부터 한달여 동안 울산에서는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가 열린다.1986년부터 금지해 온 상업적 목적의 포경(捕鯨·고래잡이)을 부분적으로 허용할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여 이를 둘러싼 논란도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열린 총회에서 “상업포경을 재개하되 첫 5년간은 각국 200해리 수역 내로 한정한다.”는 의장 동의안이 상정됐지만 논란 끝에 부결됐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을 위시한 포경국가들이 “IWC 탈퇴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고래의 종류는 84종 이상으로 추정될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귀신고래·브라이드고래·밍크고래 등 68종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절멸위기종 적색 목록에 올라있다. 야생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서 모든 종류의 고래에 대한 거래를 제한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지난 19년 동안 IWC 스스로 결정한 상업포경 금지는 이런 국제사회의 압력과 고래자원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노르웨이, 러시아 등 포경국들은 과학적 조사 목적을 내세워 해마다 남극해 등지에서 수백∼수천마리씩 잡아 공공연히 유통시켜 왔으며, 이젠 ‘상업포경 허용’까지 관철시키겠다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움직임도 부산해졌다. 환경운동연합은 국제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손잡고 불법 포경 및 상업포경 재개 반대를 위한 국제적 캠페인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번 울산 총회가 고래 종(種)의 멸종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18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제종길·이미경 의원 등과 공동으로 ‘고래보호위원회’ 발족 및 심포지엄 개최를 시작으로 3월엔 그린피스의 선박 한 척이 국내로 들어와 한반도 해안에서 시위를 벌인다. 환경연합 부설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기획실장은 “그린피스 선박의 국내 시위 및 캠페인은 1984년 우리 해역에서 반핵 투어를 벌인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라면서 “그만큼 이번 울산 총회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 빼닮은 ‘우산종’… 반드시 보전을 고래의 활동과 생존 여부가 주목받아야 할 까닭은 여럿이다. 최예용 실장은 “지구역사 45억년 동안 나타난 가장 큰 동물로 장구한 세월을 생존해 온 고래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말한다. 인간 다음으로 높은 지능에다 임신 기간이 1년 안팎이고, 수명도 돌고래(25년)를 빼면 60년(향고래)∼100년(수염고래류)에 이른다. 여러 모로 인류와 빼닮았다는 점에서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호소력이 없을 리 없다. 생태계 보전 차원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울산대학교 신만균 교수(생명과학부)는 “생물보전학적으로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른바 우산종(umbrella species)이 보호되면 그 아래 종을 비롯한 생태계 전체가 건강해진다.”면서 “고래의 생존 여부는 해양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리키는 척도이기 때문에 보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업포경의 재개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고래의 회유 경로나 서식 실태 등 개체수 회복과 위기에 몰린 고래종의 복원을 위한 과학적 제반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래를 해양개척 길잡이로 삼아야 물론 반대논리도 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업포경을 재개해야 바다 생태계가 살아난다고 주장해 왔는데,“밍크고래가 남극 생태계에서 크릴 새우를 먹는 최대의 소비자로 떠오르면서 대왕고래에게 돌아갈 먹이를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밍크고래를 잡아야 남극 생태계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데, 학계에서는 대체로 고개를 가로젓는 분위기다. 신 교수는 “종이나 아종(亞種), 개체군 등 남극 고래의 자원 수에 대한 추정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인데다, 먹이에 대한 문제도 일본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만큼 확인된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고래는 어떻게 보면 위대한 모험가이자 불굴의 개척자다. 수천만년전 뭍을 떠나 바다로 향한 뒤 숱한 진화를 거치며 해양생태계의 꼭지점에 다다른 것이 그렇고, 빙하기 등 혹독한 기후변화를 이겨내며 면면히 생을 이어온 점이 이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고래를 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해양개척의 길잡이로 삼아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환경·생명] ‘한국 귀신고래’ 돌아올까

    [환경·생명] ‘한국 귀신고래’ 돌아올까

    ‘한국귀신고래(Korean Gray Whale·쇠고래)’를 동해안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선사시대(후기 신석기∼청동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에는 귀신고래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귀신고래가 먼 옛날부터 동해안에 출몰했다는 증거지만, 실제 자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전 세계 84종의 고래 가운데 ‘한국’이란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종으로,1914년 한 미국학자가 한반도 동·남해안을 2년여 조사한 뒤 논문에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겨울철 동해안을 따라 남하해 출산한 뒤 봄부터 북상했다고 하니 한반도 해역은 귀신고래의 고향인 셈이다.“1900년 초까지만 해도 울산 장생포 앞바다 등 동해안에 풍부했다.”(국립수산과학원 김장근 박사)는 귀신고래가 고향을 떠난 건 1960년대부터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한반도 인근까지 진출하면서 대형고래를 경쟁적으로 남획하자 회유 항로를 아예 바꿔버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울산MBC 취재팀이 러시아 추코트 앞바다에서 촬영에 성공했지만 동해안에서의 출몰이나 포획 기록은 1960년대 이후론 없는 상태다.1962년 정부가 장생포 앞바다를 ‘귀신고래 회유 해면’(천연기념물 126호)으로 지정, 부랴부랴 보존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로선 한국귀신고래가 회향하기엔 환경위해 요인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공업단지와 항만시설이 들어서고 원자력·화력발전소의 열 오염으로 인한 서식생물과 생태계 변화, 잠수함 등 선박의 탐지기 음파와 소음 등 울산주변 연근해 환경이 전반적으로 크게 달라졌다.”(울산대 신만균 교수)는 것이다. 동해에 광범위하게 깔린 어망과 불법 포획도 악조건으로 작용한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어망에 걸려 잡히거나 불법포획되는 소형고래류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평균 150마리에 이르다 2003년엔 280마리까지 올라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울산 IWC 총회를 계기로 동해에 고래가 살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환경운동연합 최예용 실장은 “고래도 살고 사람도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고래잡이에서 고래관광으로 전환한 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호주의 사례가 적극 참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데스크시각] “한국이 싫다”는 이유/손성진 사회부 차장

    잘못된 수사로 성매매범 누명을 써 체포되고, 손해배상 청구마저 기각당했다면 심정이 어떠하랴. 검찰과 법원이 왜 존재하느냐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을 피해자를 대신해서 따지고 싶다. 보도된 내용이지만, 장성한 아들을 둔 40대 후반의 가장인 김모씨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을 당한 것은 2001년 7월이었다.15세 H양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이다. 사건은 아들의 휴대전화를 자기 이름으로 해 둔 데서 비롯됐다. 아들이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그 여자친구도 친구인 H양(성매매범)의 전화기를 빌려 써 결국 김씨가 H양과 통화했다는 오해를 샀다. 검찰은 오해에 그치지 않고 윽박지르고 회유하면서 김씨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 애초부터 김씨의 전화기는 명의만 자기 것이었지 아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전후사정을 제대로 조사했어도 김씨의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사정권식’ 고문과 가혹행위는 사라졌다지만 피의자를 으르고, 꾀고, 속이는 구태의연한 수사 관행은 여전하다.H양도 검찰 조사관이 새벽 5시까지 붙잡아 두고 머리를 때리고 욕을 해 김씨와 성매매를 했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검찰도 개혁을 한다는데 이런 그릇된 수사 행태는 왜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가. 개혁이 핵심을 짚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강압적인 수사를 추방하지 않는 한 검찰 개혁은 도로아미타불이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해결해 줄 곳이 없다는 게 힘없는 시민으로서는 더 답답한 노릇이다. 법원도 답답함을 풀어주기에는 노력이 미흡했다.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김씨는 혐의를 벗긴 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에 대한 물적인 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욕하고 때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검사가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이런 법적인 논리를 앞세운 판결의 취지는 당최 납득하기 어렵다. 어째서 욕하고 때린 것이 위법한 수사가 아닌지. 수사를 하다 보면 어쩌다 때리거나 욕을 할 수도 있고 새벽까지 잠을 재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지. 검찰을 감싸기에 급급했지 시민의 찢어진 명예는 못본 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혁은 왜 하며 사법부와 검찰은 왜 있는지 묻고 싶다.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의 귀착점은 국민이다. 국민의 존재를 망각한 채 개혁을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뇌부는 개혁을 외치고 있는데도 일선 판·검사들은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잠시 앓고 지나가는 열병 정도로 흘려버려서는 곤란하다. 검찰은 수사기관이고 법원은 재판기관이다. 수사와 재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개혁은 썩은 육체에 화장하는 짓이다. 허울좋은 전시행정으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도개혁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인적개혁이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제도만 바꾼다면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격이다. 사람부터 바꾸어야 한다. 변화하지 못한다면 도태시키고 청산해서 장애물을 없애야 할 것이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싫다는 말만큼 듣기 싫은 말도 없다. 국가가 배상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받은 후 김씨는 이 나라가 싫어졌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얼토당토않은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보호막 구실을 해줄 아무런 장치도 없는 한국. 그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이 싫지 않도록 할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다. 법관과 검사들에게도 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 배신당했다는 생각에서 잠시라도 나라를 버리려고 마음먹는 사람이 새해에는 정말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성진 사회부 차장 sonsj@seoul.co.kr
  • [기고] 동계올림픽 평창유치 3가지 이유/구정모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우리 국민은 1988년 하계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잘 기억하고 있다. 과거 서울올림픽이 국위선양과 경제발전의 이정표를 제공하였고,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바 있다. 이처럼 거대 스포츠 이벤트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고 국가이미지 제고를 통한 국제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하계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또 하나의 국제 이벤트인 동계올림픽 유치에 각국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지금까지 세계 3대 스포츠대회를 개최한 국가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 5개국에 불과하며,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경쟁에 나서는 우리가 유치에 성공하면 6번째 국가대열에 오르게 된다. 강원도 평창은 지난번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경쟁을 통해 동계스포츠의 일번지로서의 위상을 유감없이 국내외에 보여준 바 있다. 처음에는 평창을 북한의 평양과 잘 구별도 못하던 외국의 동계스포츠인들도 평창을 동계스포츠의 메카로서 인식하게 됐다. 그 결과 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차 투표 1위, 결선 3표차로 치열한 접전 끝에 캐나다의 밴쿠버에 역전을 당해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최근 국제스키연맹은 평창과 2014년 대회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무주에 대해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통보해 평창의 대회 재유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방에서의 동계올림픽 개최는 지역경제 활성화 및 국가균형발전에 다양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 대회 개최에 따른 이미지 제고로 국내외에 커다란 지역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치는 국제적 관광지로서 발돋움하고 있는 강원관광을 동북아의 레저 및 겨울스포츠의 메카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특히 지역갈등에서 상대적으로 초연한 강원도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때 국민적 화합과 일체감 형성을 유도할 수 있고, 분단도(道)로서 평화올림픽을 개최한다면 남북화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국가차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세계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하계올림픽, 월드컵 및 동계올림픽을 모두 유치하게 되면 아시아에서는 일본 이외에 유일하게 3대 스포츠행사를 모두 치르게 되어 일본과 대등하게 어깨를 겨루는 공간적 차원에서의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게 된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1988년,2002년 및 2014년이라는 적정한 기간을 두고 연속적으로 3대 스포츠행사를 치르게 되면 시간적 차원에서의 국가브랜드 향상에 이바지하게 되며 경제적 파급효과의 맥을 잇게 된다. 셋째,1998 나가노동계올림픽,2002 한·일 월드컵,2008 베이징하계올림픽에 이어 2014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 10여년에 걸쳐 3대 스포츠행사가 동북아 지역에 집중되어 지역적 차원에서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지역주의가 심화되는 세계적 추세 가운데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동북아 지역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지역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뿐만 아니라 국가차원에서의 이미지 제고, 스포츠 마케팅 및 관광의 활성화, 해외시장개척, 외자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며 우리 경제 도약의 전기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다만 2010년 대회 유치경쟁 때 강원도민의 열정이 세계를 감동시켰지만,2014년 대회 유치경쟁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만이 승리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구정모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베트남전 차출 두려웠다”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64)가 월북한 이유는 당시 순찰대를 이끌 능력이 부족한 데다 베트남 전쟁에 끌려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일본에 송환된 젠킨스의 법정 증언과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그의 북한 내 생활상은 “절망과 후회, 속죄, 사랑의 이야기”였다고 13일자 최신호에서 전했다. 타임에 따르면 중학교를 중퇴한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의 젠킨스는 군 적성검사에서 ‘평균을 훨씬 밑도는’ 지능 소유자로 판정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위험한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정찰 임무를 맡았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심한 음주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부대가 전쟁 중인 베트남에 배치될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 탈영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북한을 거쳐 러시아로 간 뒤 외교적 추방을 통해 고향인 미국에 가려고 했다. 1965년 1월5일 새벽 그는 맥주 캔 10개를 마신 뒤 탈영을 감행했다. 부하들을 따돌리고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그러나 북한군에 인계됐을 때 즉각 실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미군 탈영병 3명과 함께 지낸 7년간의 생활은 배고픔과 추위, 학대, 고문의 연속이었다. 침대도 전기도 수돗물도 없었다. 하루 10시간씩 김일성 사상을 공부했고 시험에 떨어지면 16시간으로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 1972년 북한 시민권을 얻은 뒤 노동당 연락부가 운영하는 평양 군사학교에서 영어 교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젠킨스는 자신의 영어가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85년 해고됐다. 타임은 젠킨스의 거친 액센트는 미국인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법하다고 덧붙였다. 미군 탈영병들은 당초 북한의 불임 여성들하고만 사귀도록 허용됐다. 그러나 한 북한 여성이 임신한 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외국 여성들과의 결혼을 장려했다. 젠킨스도 1980년 북한에 납치된 일본 여성 소가 히토미와 만나 결혼했다. 젠킨스는 미카(21)와 브린다(19) 두 딸을 뒀으나 남파 간첩이 될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암담했다. 두 딸이 입학한 평양의 외국어학교는 사실상 정보요원 훈련소였다. 서구 스타일의 외형을 가진 혼혈들은 한국에서 간첩으로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이 활용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에게 돌파구가 된 것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 납치된 일본인 송환 문제가 핫 이슈가 됐고 북한의 회유에도 젠킨스는 두 딸을 위해 일본행을 결심했다. 그는 “생의 최대의 실수가 월북이었다면 가장 잘한 일은 딸들을 북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0)동해의 심장 왕돌초의 비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0)동해의 심장 왕돌초의 비밀

    동해는 깊다. 불과 100여m만 나가도 심해의 절벽이다. 그래서 동해 심해저는 서남해에 비해 어족 자원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울릉도나 독도의 의미가 각별하다. 더 동쪽으로 나가면 갑자기 너른 대륙붕과도 같은 대화퇴가 나타나 고기들이 바글거린다. 그러나 이런 곳 말고도 일반에게 덜 알려진 해저 비경이 또 하나 있으니 울진 후포에서 불과 23㎞ 떨어진 왕돌초(王乭礁)가 그곳이다. ‘숨어있는 진주’, 아니면 비로소 자태를 드러낸 ‘수중 금강산’이라고 명명해도 틀리지 않다. 줄도화돔 떼가 줄지어 봉우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봉우리에는 감태와 대황, 미역, 우뭇가사리 등이 자란다. 부드러운 붉은꽃 산호가 꽃밭을 이루는데 수심 40m 지점에는 돌산호도 보인다. 물고기들은 이곳에 알을 낳는다. 양식 멍게가 아닌 자연산 멍게도 곳곳에서 자태를 드러낸다. 성게, 소라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숨 넘어가도록 아름다운 절경. ●울진 후포서 23km 여의도의 10배 ‘산호꽃밭’ 울진군에서는 이곳을 아예 ‘동해의 심장’이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3개의 거대한 수중 봉우리를 거느린 채 동해의 거센 파도 속에 숨을 죽이고 있다. 남북으로 긴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은 급경사, 동측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다. 남북간 54㎞, 동서간 21㎞이며, 면적은 여의도의 10배 정도나 된다. 암반의 퇴(堆·bank)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한상복 박사는 “통상 암초를 뜻하는 초(礁)는 작은 장애물을 말하는데, 이곳은 해산(海山·Sea Mount)의 꼭대기 부분이므로 왕돌해산으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주민들은 ‘왕돌짬’이라 하는데,‘짬’은 튀어나온 돌을 지칭하는 토속어다. 일제시대나 그 이후의 어떤 수로지(水路誌)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돌초’라는 이름으로 등재됐다. 이곳도 전설의 섬 이어도처럼 동해 어민들 간에 구전되어 왔다. 선대부터 왕돌초에서 대구나 임연수를 잡아온 삼창호 선주 오정환(48)씨는 “본디 후포항 위쪽의 거일리 어민이 자망으로 왕돌초를 개척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고 증언한다.‘왕돌’이란 사람이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본격적으로는 1953년 무렵, 바다로 들어간 머구리에 의해 전모가 드러난 이래 1960년 무렵부터 출어가 시작되었다. 동력선으로는 1시간30여분이면 닿지만, 무동력선으로는 2시간 반 이상이 소요되는, 결코 가깝지 않은 곳인지라 뒤늦게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반세기전 머구리에 속살 드러내 좁은 해역임에도 불구하고 수온분포가 복잡하다. 북서쪽은 북한한류, 남동쪽은 동한난류 영향권이다. 좁은 해역에 이처럼 수온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에 한류와 난류어종이 모두 존재한다. 실제로 아열대성 어종부터 한대성 어종까지 생물생산력이 무척 높은 곳이다. 동해수산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이 인근에 출현하는 어종은 모두 40여종에 이른다. 어류는 물론 연체동물류 두족류 갑각류 극피동물류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 가운데 대표 어종은 개볼락 불볼락 임연수어 활놀래기 샛돔 부시리 인상어 자리돔 등이다. 또 미역치 자리돔 인상어 망상어 놀래기류와 쥐치 등은 연중 서식하고 있다. 아열대성 어류인 줄도화돔 파랑돔 거북복은 고수온기에만 나타나 수온에 따른 어종의 흥망성쇠를 말해 준다.2003년 8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수백마리씩 무리를 이룬 난류어종 부시리(방어류)의 회유,1월 조사에서는 한류성 어종인 임연수가 확인돼 난·한류의 계절적 추이가 첨예한 곳임을 증명하고 있다. 종다원성의 보고라는 의미다. 북쪽 봉우리는 북짬, 중간봉우리는 중간짬, 남쪽 봉우리는 남짬이라고 부른다. 북짬은 샛짬, 남짬은 맞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찬 바람인 샛바람과 더운 바람인 맞바람에서 유래했다. 기상변화 양상이 물속에도 똑같이 반영되어 샛짬, 맞짬이 이뤄진 셈이다. 샛짬은 거친 물살 때문에 해초들이 붙질 못해 맨 바위로 남아있는데, 이곳에 내린 그물이 바위에 걸려 쉽게 찢기는가 하면 어족의 종류도 다르다. 그러나 어류의 남획은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어획 강도가 높은 삼중자망과 통발, 잠수기어업 등이 연중 이뤄져 무분별한 남획으로 어족이 급감하는 추세다. ●난·한류 추이 첨예한 종다원성의 보고 울진군 자망협회 소속 어민 오정환씨는 “자망은 45년전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씨알 굵은 임연수와 불볼락이 굉장히 많이 잡혔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한 1990년도에도 임연수어, 쥐치, 방어 따위가 다량으로 잡혔고요.”라고 증언한다. 겨울 김장철만 되면 알 차고 씨알 굵은 임연수가 산란장을 찾아 수심이 제일 얕은 높은봉우리의 수심 6∼30m 지점까지 몰려들었다.1마리에 1㎏이 넘을 정도로 큰 임연수가 잡히곤 했는데 6∼7년 전부터는 높은봉우리까지 고기가 올라오질 않아 수심 30∼50여 m에서 잡아 올린다. 그만큼 어족자원이 대폭 줄었다는 증거이다. 월별 주어종을 설펴 보면,1∼4월은 대게,4월초에는 왕돌초 주변의 수심 얇은 곳에서 참가리와 한치,5∼7월까지는 임연수와 대구 및 잡어,7∼8월에는 쥐치와 방어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간혹 혹돔 능성어 등이 보이며,9∼12월까지는 임연수와 대구 조피볼락(우럭) 가자미류 등이 많이 잡힌다. 삼척에서 영덕까지는 자망 통발 채낚기 등이 이뤄지고 있는데, 특히 왕돌초 중심부에는 울진군의 기성면, 평해읍, 후포면 지선의 어민들이 진출해 조업을 한다. 심각한 문제는 분해되지 않는 합성섬유 그물이 뒤얽혀 바다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 수중 정화사업이 벌어지지만 개인이 제거하기에 역부족인 엄청난 크기의 폐그물이 왕돌초를 뒤덮기 시작했다. 폐그물은 유령고기잡이(Ghost Fishing)를 하게 마련이어서 해양생물이 얽혀들며, 얽힌 생물은 미끼가 되어 다른 생물이 또다시 걸려드는 재앙이 반복된다. 천하의 수중 절경 왕돌초에 서서히 인간이 만든 재앙의 그림자가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는 중이다. 예전 목(면사)그물을 쓰던 시절에는 폐그물이 자연 분해되었으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의 발명과 더불어 값싸고 반영구적인 그물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바다를 휘감기 시작한 것. ●인간이 만든 재앙의 그림자 한발한발 드리워 무분별한 낚시와 스쿠버 다이빙으로 인한 자연경관 및 어족 감소도 심각한 지경이다. 이곳에는 다이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인근에서 손쉽게 다이버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침 답사에 나섰을 때도 후포 연안에서 다이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업으로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과 ‘취미’로 잠수하는 다이버 간의 화해와 바다사랑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라고 주관자인 전재경 박사와 수중세계 이선명 대표는 설명했다. 다이버들이 후포 연안을 자주 찾아오는 까닭은 그만큼 바다생물이 다양하고 풍광이 수려해서이다. 그러나 ‘취미’를 위해 환경훼손이라는 반대 급부를 감당해야 하는 현상에 관해 책임있는 설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다에 관한 ‘무한대의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즐기는 만큼 책임을 지라.’고나 할까. 물론 남획에 몰두하는 어민도 연대책임에서 면죄될 수는 없으리라. 울진군이 바다목장화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많은 예산이 배정돼 바다관광화도 촉진될 전망이다. 왕돌초는 수산과학 관측지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어도해상과학기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동해를 연구·관찰함으로써 바다정보를 집중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현재는 해양수산부에서 세운 부표만이 외롭게 떠있어 장소 표시와 등대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왕돌초에의 열정으로 답사단을 안내해 온 국립수산과학관 동해수산연구소 양용수 박사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왕돌초에 과학기지가 건설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우리가 먹는 어종은 사실 제한적이다. 가령 게불도 과거에는 징그럽다며 전혀 먹지 않았다. 동해 심해저에도 이같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족자원의 보고가 숨어 있다. 양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600∼1000m의 심해저 자원을 탐색한 결과, 청자갈치 분홍꼼치 먹갈치 가시베도라치 등이 관찰되었고, 분홍새우도 다량 어획되었다. 이 가운데 분홍새우는 판매가치가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버리는 물고기’들이다. 버려야 하는 그 물고기들도 양만 많다면 하다못해 어묵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동해 심해저에서 끌어올린 다양한 생물체로 신약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해 심해저연구센터는 직원이라야 고작 2명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후손에 고스란히 물려줘야 왕돌초가 ‘동해의 심장’이니 만큼 그 심장의 박동력으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 또한 무한대다. 그런 만큼 심장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당연히 금물이다. 왕돌초는 더 이상 ‘숨어있는 진주’가 아니다. 이곳의 실태는 방송사와 다이버들의 수중촬영을 통해 전모가 공개되었다. 과학자들의 연구도 집중되고 있으며 해마다 왕돌초 관련 심포지엄도 열리고 있다. 경북도청 김병묵 해양수산과장은 “울진군이나 경북만의 심장이 아닙니다. 동해에 이런 거대한 바다속 비밀지대가 있다는 것을 전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전국민이 왕돌초를 알아야할 이유는 분명하다. 육상에 있었더라면 당연히 천연기념물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육지것’, 심지어는 날아다니는 ‘하늘것’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도 막상 바다 밑에 있는 ‘보물’은 박대하기 일쑤다. 이 아름다운 바다속 풍광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 그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어떤 ‘긴급 행동’을 취해야 할까.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7)울산 장생포 고래잡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7)울산 장생포 고래잡이

    7000원짜리 ‘고래탕’을 시켰다. 맛은 육개장과 흡사한데 방아잎을 넣어 향내가 비할 데 없이 진하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은 고래고기를 한 점 입에 물더니 더 이상 젓가락질을 못한다. 그런데도 길 안내를 도와준 지역 인사는 “역시 고래고기가 최고야!”를 연발한다. 음식은 어릴 적부터 먹어온 취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출신지에 따라 선호도가 분명히 갈리기는 고래고기도 마찬가지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고래생회 4만원, 수육 4만원, 육회 3만원, 모듬 7만원 등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 깔아 놓은 터수라 상당히 비싼 고기다. 한 평생 고래고기만 팔아온 ‘왕고래집’의 주인장은 “비싼 게 문제가 아니라 없어서 못판다.”고 했다. 우연히 정치망에 혼획되는 밍크고래 따위가 들어올 뿐이다. 포유동물인지라 목살, 배, 대창, 갈비, 혓바닥, 대롱창 식으로 분류해 주문에 따라 따로 낸다.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잘라 파는 것에 견줄까. ●고래고기는 해방 당시까지 민중음식 해방 당시만 해도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지게에 짊어지고 멀리 대구까지 가서 팔았다. 쇠고기가 귀한 시절에 고래만한 대체육이 없었으니 ‘민중의 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보릿고개를 넘기자면 고래고기를 먹어야 했다. 겨우내 비실비실하던 개에게 고래 연골을 먹이면 금세 털빛에 윤기가 흘렀다. 그만큼 고단백에 불포화지방산이 많다는 증거. 우리 식생활사에서 고래고기 섭취는 선사시대로 소급된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장생포 고래잡이는 수천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내재적 연속성이 너무도 극명하다. 고래 문화의 장기지속성이 적어도 울산 땅에서만큼은 지금껏 입증된다.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상류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암각화가 있어 엊그제까지 살다가 방금 전에 떠난 듯한 선사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이다. 반구대에 각인된 고래는 귀신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따위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배의 밭고랑 무늬가 돋보이는 참고래, 배 타고 고래를 포획하는 선사인의 어로활동, 아기를 업고 가는 어미고래, 고래고기를 분육(分肉)한 듯한 분배 그림도 엿보인다. 캐나다 밴쿠버의 누트카,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쿠릴열도의 아이누, 태평양 알류트 등의 고래잡이와 비교되는 소중한 해양문화 유산이다. 동해안에 자주 회유해 오는 고래는 긴수염고래과(북극고래, 긴수염고래), 참고래과(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참고래, 보리고래, 돌고래, 흰긴수염고래), 향고래과(향유고래), 참돌고래과(흰옆돌고래, 돌고래, 참돌고래), 곱시기과(곱시기, 흑곱시기), 귀신고래과(귀신고래) 등이니, 대개 이들 고래가 포함된 것으로 여겨진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 선조들의 주식이 고래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암놈이 죽으면 수놈이 같이 잡히는 귀신고래 수많은 고래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고래는 역시 귀신고래이다. 우리나라 연안에는 예부터 귀신고래가 많아서 19세기 말 일본 선단에 잡힌 고래의 태반이 귀신고래였다. 세계 고래학명에서 우리 학명이 붙은 고래는 귀신고래를 뜻하는 ‘Korean Grey Whale’뿐이다. 일부일처제로 금실이 좋아 암놈이 죽으면 수놈이 곁을 지키다가 마침내 같이 잡혀 죽음을 맞는다. 새끼가 먼저 작살을 맞으면 암수 어미가 새끼 곁을 빙빙 돌다가 또한 같이 잡힌다. 동물의 정을 역이용한 인간의 야비한 사냥방식이다.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된 귀신고래의 어쩌면 인간보다도 진한 혈육의 정을 보면서 귀신고래를 멸종시킨 인간의 잔혹함에 미안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캄차카반도의 차가운 바다에서 귀신고래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간혹 관찰되고 있으니, 행여 우리나라로 돌아올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경상도에서 보편적으로 먹던 ‘민중의 음식’인 고래고기가 ‘귀족의 음식’으로 둔갑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1985년 ‘느닷없이’ 포경이 금지되면서 ‘고래 항구 장생포’도 몰락의 길을 걷는다.‘느닷없이’라고는 하였지만 국제적 반포경운동이 불러온 예정된 결과였다.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는데, 공급원이 사라지자 고래집도 거의 명맥을 잃게 되었고 고래도 ‘금값’이 되었다. 포경금지에 관한 국제협약의 파장이 장생포에도 강력하게 휘몰아쳤다. 포경선은 항구에 묶였고, 포신은 녹슬어 갔다. 이제 장생포에서 포경선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포경을 반대하는 구미 선진국은 본디 전세계적 규모로 포경을 주도해온 나라들이다. 한반도의 고래씨를 말린 나라들도 바로 이들이다. 어느 동물의 포살보다도 잔혹한 고래 포살을 보면서 동물애호가들이 전선에 나선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어제까지 세계를 주름잡던 포경국들이 반포경에 나선 것은 사실 역사의 아니러니다. 산업적 남획에 나섰던 구미열강, 그리고 후발 주자 일본 등은 고래기름과 부산물로 양초, 윤활유 및 수백가지의 공산품을 생산했다. 오로지 공산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고래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석유가 발견되어 더 이상 고래기름의 필요성이 소멸될 즈음에는 이미 고래 자체가 희귀존재가 돼버렸고, 그들에 의해 포경금지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래 멸종이 문제가 되자 상업포경은 금지하되, 본디부터 고래를 먹어온 이들의 원주민 포경은 용인한다는 결론이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도출되었다. 일본이나 노르웨이, 혹은 고래잡이를 해온 소수민족들 사이에 원주민 포경이란 이름으로 고래잡이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런 국제적 관계의 산물이다. 과연 상업포경과 원주민 포경의 구분이 본질적으로 가능할까. ●1985년 포경금지로 몰락의 길 한반도는 ‘고래의 낙원’이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파악하고 있는 한반도 연해의 서식 고래류는 대형 고래류 9종, 소형 고래류 26종, 도합 35종이다. 전 세계 5대양과 강에 80여종이 분포하는 것에 비하면 한반도 고래분포의 다양성은 꽤 높은 편이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영일만 일대는 예로부터 고래바다, 즉 경해(鯨海)로 불렸다. 1849년 무렵 한반도 연안에서 조업한 미국 포경선의 포경일지에는 ‘많은 고래들이 보인다. 수많은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가 사방팔방에서 뛰어 논다. 셀 수조차 없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포경은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간혹 해변으로 몰아서 잡거나 기력을 잃고 떠내려온 놈을 생포하는 그야말로 ‘소박한 수준’이었다. 동해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광란의 역사는 무능한 조선 정부를 무시하고 몰려든 일본과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의 포경선에서 비롯되었다. 해방 이후에 대형고래는 거의 사라지고 어쩌다 등장하는 참고래, 그리고 예전에는 포경 대상에 끼지도 못했던 소형고래인 밍크고래 따위만이 남게 되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노르웨이 등의 남획이 불러온 비참한 결과였다. 해방 이전의 포경업은 전적으로 일본인 주관이었다. 고래고기집 주인 박경열(76·여)씨의 증언.“할배가 영덕에서 철공소를 했지요. 고향이 장생포라 해방되면서 고래잡이를 하려고 돌아왔지요.70㎜ 사제 대포를 만들고 뇌관은 일본인이 남긴 것을 썼어요.” 작고한 그의 남편 양원호씨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포경포 제작자이다. 장생포에서는 해방 직후에 200여명이 공동출자해 50t급 낡은 포경선 2척으로 고래잡이를 시작했다. 장생포 앞은 구로시오난류가 흐르니 연해주 쪽에서 내려오는 한류와 만나는 길목. 그래서 고래가 많았다. 동짓달까지 영일만 일대에서 잡다가 어청도까지 이동해 조업하곤 했다. 동해 고래가 유명하지만 서해와 남해 할 것 없이 흔했다. 고래잡이만큼은 장생포 사람들이 장악했기에 유독 동해 고래가 돋보일 뿐이다. 포경선에는 높다란 망통에서 목시(目視)로 망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물색만 보아도 고래 종류를 알아맞혔다. 이제 그 때의 노련한 포수들은 거의 사망하고 없다. 남은 이들은 사실 후발주자들로, 전통적인 고래잡이를 증언할 만한 이들은 거의 없다. ●동해 ‘피바다’ 만든 외국인들이 포경금지 앞장 고래보호와 포경을 둘러싼 문제는 대단히 복잡 미묘한 국제적 사안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장인 김장근 박사는 “고래 연구는 이제 출발입니다. 일본 같은 고래 대국이 해놓은 연구와 정책적 비전을 따라잡자면 장기투자가 뒤따라야 합니다.” 내년 5월30일부터 울산시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 연례회의를 계기로 ‘솎음포경’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찍부터 반구대유적과 장생포를 중심으로 전개돼 온 고래문화의 재현과 고래축제 등을 이끌어 온 울산시는 고래박물관과 고래 연구센터도 만들어 명실공히 ‘고래도시’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고래식용 재개의 전제로 역사문화 및 사회·경제적 사유를 국제사회에 입증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돌고래같이 엄밀하게 따져서 ‘훼일(Whale)’이 아닌 ‘돌핀(Dolphin)’류에 속하는 고래 외에 바다 포유류에 관한 입장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니 이른바 ‘과학포경’은 요원한 형편이다. 김 박사는 서식지 교란, 혼획, 선박 충돌, 수중음파 교란으로 사망하는 고래를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래로 인한 어장 교란과 어구 피해, 어업자원과의 경쟁 등 고래와 인간의 마찰도 거론했다. 그의 말에서 ‘포경’과 ‘보호’라는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육지를 마다하고 바다를 택하여 살아온 특이한 포유동물.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그렸듯 ‘고래등같이 큰’ 포유동물과 인간의 교감은 매우 복잡 미묘하여 고래와 인간의 갈등과 투쟁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 전망이다.‘귀신고래가 돌아온다면 바다에도 평화가 깃들어 경해(鯨海)라는 옛 명칭이 부끄럽지않은 날이기도 할 것인즉, 행여 돌아올 수 있을는지.’하는 생각으로 장생포의 쓸쓸한 고래고기집 골목을 빠져 나오다가 다시 ‘고래도시 울산’이란 입간판과 마주쳤다.
  • [씨줄날줄] 아라파트/이기동 논설위원

    “나는 올리브가지와 자유투사의 총을 들고 왔다. 제발 내가 손에서 올리브가지를 놓지 않도록 도와달라.” 유엔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정치단체로 첫 인정한 1974년, 야세르 아라파트의장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이렇게 호소했다.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를 전전하던 망명객의 국제 데뷔무대였다. 그는 때로는 올리브가지를, 때로는 총을 바꿔들었다. 하지만 평생의 목표는 오직 하나, 팔레스타인 독립이었다. 그가 지금 파리의 군병원에 누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다. 올리브가지를 들 때, 그는 동족들로부터 배신자로 배척당했다. 반대로 총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과 미국, 서방은 그를 피에 굶주린 파괴자로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껏 누구도 부인 못할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그가 차지한 위치만큼, 그의 사후에 닥쳐올 미증유의 혼란을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다. 대장정때 딱딱한 나무침상만 고집한 마오쩌둥(毛澤東)처럼, 그의 군복과 27년에 걸친 망명생활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는 저항운동 초기에 무장단체 파타그룹을 창설해 PLO의 주도권을 잡았고, 이후 비행기납치, 민간인 폭탄테러 등 극렬한 무장저항과 인티파다(무장봉기)를 주도했다. 국내외에서 민주적 지도체제 도입압력이 계속됐지만, 반대파에 대한 교묘한 견제와 회유로 이를 피해갔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때 후세인 지지로 그는 최대의 실책을 기록했다. 백척간두에서 택한 도박이 바로 평화협상이었다.1993년 백악관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의 악수로 만들어낸 평화협정은 ‘용감한 자들이 만든 평화’였다. 그 용기의 대가로 라빈은 극우파의 총에 목숨을 내주었고 아라파트는 배신자로 내몰렸다. 입술과 손에서 떨림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이스라엘에서 극우파 아리엘 샤론정권이 등장했고, 그는 다시 총을 들었다. 무장봉기와 폭탄테러가 일상사가 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은 그의 집무실까지 파괴했다. 그의 사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파리방문 소식을 듣고 30세 연하의 부인 수하여사는 “그를 생매장시키려는 지도부의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권력이건 짐이건 나누어갖기 거부한 75세의 노(老)투사가 남길 중동의 그늘이 예사롭지 않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儒林(208)-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08)-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타인과의 약속을 신과의 맹세처럼 생각했던 공자가 공숙씨와의 약속을 이처럼 헌신짝처럼 버린 일은 놀라운 일이다. 단 한번도 약속을 어긴 일이 없었던 공자의 파격적인 행동은 이것이 단 한 번의 예외인 것이다. 공자가 포땅을 벗어나 단숨에 위나라로 발길을 돌리자 원칙주의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방금 공숙씨들과 절대 위나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 약속을 어겨서야 되겠습니까.”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강요에 의한 맹세는 신도 듣지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감금상태 중 일반적인 강요에 의해서 맺어진 협약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공자의 대답은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던 예수의 태도와 상극을 이룬다. 예수는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굳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로마인 총독 빌라도가 ‘나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인가. 나에게는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는 줄 모르느냐.’라고 마지막 회유를 하였을 때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공자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마다하지 않는데, 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공자는 현실의, 현실을 위한, 현실에 의한 현실주의적 사상가였던 것이다. 공자는 마침내 위나라로 다시 들어가는데 이것이 세 번째의 입국이었다. 사기에는 이때도 영공이 ‘공자가 왔다는 기별을 받고 교외까지 반갑게 마중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차츰차츰 공자에 대한 대우는 소홀해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공자가 입국했을 때에는 6만 두의 곡식을 녹봉으로 주었으나 두 번째는 영공 자신이 교외에까지 마중하고 부인인 남자도 공자를 회견했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위나라로 들어왔을 때에는 교외까지 마중은 했으나 영공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고 은근히 공자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런 행동은 공자가 포땅에서 반기를 들었던 공숙술 일당에게 곤혹을 치렀단 말을 전해 듣고 공자에게 한 행동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대가 포땅에서 공숙 일당으로부터 큰 수난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소. 어차피 공숙 일당은 반역자라 이들을 토벌하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영공의 말에 공자는 대답하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공자는 개인의 원한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 반기를 든 모반자들은 반드시 처벌하여 국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동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영공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우리 대부들은 이를 불가하다고 말하고 있소. 포는 위나라의 서쪽에 있어 동쪽으로 쳐들어오는 진나라와 초나라를 막는 요충지로 생각하고 있소. 나는 포를 치고 싶은데 말이오.” 망설이는 영공을 향해 공자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제가 본 바에 의하면 포나라 사람들은 공숙술의 편이 아닙니다. 그곳 남자들은 그곳을 다스리는 공숙씨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있고, 그곳 여자들은 그곳을 평화로이 유지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만일 전하께서 군사를 내어 정벌하신다면 금방 반역자들을 잡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숙씨를 따르는 무리들은 불과 4,5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자 자신이 직접 공숙씨의 군세를 본의 아니게 염탐까지 하였으므로 신빙성이 있었다. 이에 영공은 크게 반기며 말하였다. “좋소. 당장 군사를 동원하여 포를 치겠소.”
  • 유영철 또 법정난동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법정에서 피해자와 유족을 모욕하고 소란을 피웠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황찬현) 심리로 열린 공판에는 유족 6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교도관 15명에게 둘러싸인 유영철은 유족을 바라보며 전화방 등을 뜻하는 듯 “딸이 뭐했는지 알았느냐.”“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전화하게 시켰다. 기억하느냐.”며 아픈 기억을 상기시켰다. 유영철의 독설이 이어지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족 2∼3명이 욕설을 퍼부었다. 소란이 한동안 지속되자 유영철이 소리를 지르며 방청석으로 뛰어들려 했다. 교도관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석 의자 2개가 부서졌다. 법정이 정리된 뒤 이문동 살인사건의 증인으로 나온 청량리경찰서 소속 경찰관에게 유영철은 “내 전처에게 돈을 건네고, 내 아들을 대학까지 보낼 테니 자백하라고 회유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경찰관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증인으로 나선 유족들은 “유영철의 처벌을 원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 아버지는 “교수형 집행장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1)양양 동해신묘와 연어잡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1)양양 동해신묘와 연어잡이

    지극히 좁은 곳에서 산과 바다와 강을 두루 만나는 곳을 고르라면, 서슴없이 양양을 꼽을 만하다. 가을빛이 짙어져 설악산 정상에서부터 단풍이 하산을 시작할 무렵이면 솔냄새 자욱한 산중보배(山中寶貝) 송이가 고개를 내밀어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송이는 영물이어서 아무 산에나 나지 않는다. 단풍이 져서 남대천에 잎을 떨구면 동해에는 본격적으로 연어가 올라온다. 계절의 신호는 분명한 것이어서 한 치의 어김이 없다. 송이와 연어가 자연의 순리를 따라서 순회한다면, 남대천변의 동해신묘에는 동해신이 주석하고 있다. 서울에서 정동(正東) 방향인 정동진이 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에 급작스럽게 각광을 받았던데 비해 정작 동해의 중심인 동해신묘(東海神廟)는 아는 이조차 드물다. 역사교육 부재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해신(海神) 포세이돈 신전에는 뜨거운 감동을 표하는 한국인들이 정작 자신의 조상들이 모시던 동해신묘에는 무감각하니 그 얼마나 자괴스러운 일인가. 그렇듯 자신의 것을 챙길 줄 모르니 일본이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명명하고 전세계에 홍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동해의 문화 상징물 1호 양양 남대천변에 동해신묘의 잔흔이 있다. 건물을 복원하여 명색이나마 구비하여 놓았다. 십여년 전에는 허물어진 터전에 부서진 비석 하나만 달랑 서있던 곳이다. 강원도 양양의 동해신사(東海神祠), 황해도 풍천의 서해신사(西海神祠), 나주(지금의 영암)의 남해신사(南海神祠), 그리고 바다가 없어 해신을 모실 수 없는 북쪽에는 강신(江神)으로 함북 경원의 두만강신사, 평북 의주의 압록강사를 모셨다. 남한에는 동해묘와 남해신사 둘뿐인데, 남해신사는 장소가 불명확한 반면 동해묘는 비석이 남아 있어 터전이 확인이 되는 남한땅의 유일한 곳. 읍치 단위나 개별적으로 용신, 해신 등에 제사지내는 신사 굿당 등은 즐비하지만 국가 제사터는 매우 드물기에 이곳이 더욱 각별하다. 동해의 문화적 상징물 1호는 두 말할 것 없이 바로 양양의 동해신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길 ‘동해신사’에서 춘추로 제사 지낸다고 하였고,‘여지도서’에는 ‘동해묘’가 정전 6간에 신문 3간, 전사청 2간, 동서재 각 2간 등 대단히 큰 규모였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찍이 고려사에도 동해신사가 양주(襄州)에 있다고 하였다. 양주는 오늘날의 양양군이니 동해신묘는 최소한 고려시대의 중사(中祠)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국가에서는 강향사(降香使)를 보내 국가에서 내린 향으로 제를 올리게 하였다. 향을 사르면서 국가적인 운명을 걸고 동해 용왕에게 신탁의 말을 듣듯 장엄한 제례를 봉행하였다. 해신에게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고, 큰 격변이 있을 때마다 신의 노여움을 달랬다. 경종2년(1722)과 영조28년(1752)에 양양부사 채팽윤과 이성억에 의해 각각 중수되었으며, 정조24년(1800)에 어사 권준과 강원도관찰사 남공철의 주장으로 재차 중수되었다. 중수 당시인 1800년에 남공철이 지은 ‘동해신묘중수기사비’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비문에는 바다와 왕이 동급(海輿王公同位)이라고 하였으며,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에 물보다 더함이 없다고 하였다. 담장이 쇠락하고 민가가 제당 가까이 들어차 있어 닭과 개소리가 들리지 않게끔 하여 산천제사를 엄숙하고 공경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향과 축을 보내어 제를 모시니, 백성들은 해신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한다고도 하였다. 동해신묘에 철퇴가 가해진 것은 일제 통감부 시절인 순종2년(1908년) 12월 26일. 명을 받은 최종락 양양군수가 훼철에 나섰으니, 그가 갑자기 죽은 것은 동해신의 노여움 때문이란 전설도 전해진다. 제사(祭祀)와 건물은 사라졌으나 양양의 민중은 여전히 ‘성전터’라 부르고, 신전 일대의 소나무를 ‘동해금송란’이라 하여 일체 손대지 않았다. 국가제사의 단절과 무관하게 민중의 삶 속에서 장기지속적으로 신성성이 이어졌다는 증거이다. ●신묘 부순 군수 갑자기 숨져 훼철 당시에 동해신묘중수기사비는 동강나 개인집에 보관되어 오다가 근년에 제자리를 찾았다. 동해신묘 폐지는 당연히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기 위한 일제의 전략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동해 명칭이 문제가 되고 있는 작금의 실정에서 동해신묘는 동해를 고유명사를 사용한 국가적 신전의 역사적 증거물로 내세울 만하다. 현재의 동해신묘 앞에는 현대식 콘도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동해신묘 원형 복원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파괴되는 현실을 가슴아파 하는 고경재 양양문화원장은 지형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지금 보는 풍경은 전혀 옛모습이 아니지요. 현재 콘도가 들어찬 동해에서 신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둥글게 에워쌌습니다. 이곳은 개(바닷가)인지라 글자 그대로 모래를 쌓아서 인공으로 조성한 조산에 신전을 세우고 둘레에는 해자처럼 바닷물을 돌게 하였지요. 장관이었습니다.” 지명도 조산동이다. 규장각에 있는 옛지도에서 신묘를 둥글게 굽이도는 바닷물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양양시내까지도 바닷물이 들어 왔으니 바뀌어도 엄청 바뀌었다. 동해 바닷물이 넘실대는 신묘가 전승되었다면 동해안 최고의 명소가 되었음직하다. 말하자면 국가적 해상신전이었던 셈인데 문화재청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동해신묘에서 굽어보이는 지근거리가 남대천 하구다. 낙산대교에서 바라보면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모래톱이 푸른색과 흰색으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모래톱에서 한창 연어를 낚고 있다. 남대천에는 지금 연어떼가 올라오고 있다. 멀리 태평양을 돌고돌아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연어의 모천회귀는 너무도 많은 이들이 노래한지라 재론이 불필요할 것이다. 올해에도 10월23일부터 어김없이 연어축제가 열려 호기심을 자아낸다. 동해신묘에서 다리를 건너 연어연구의 메카인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의 연어연구센터를 찾았다. 연구센터의 주 임무는 치어방류. 양양 남대천 앞바다는 물론이고 DMZ 남강에까지 방류, 연어를 통한 통일문화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연어는 왕연어 홍연어 은연어 곱사연어 시마연어 등 종류도 다양한데, 우리나라에 회유하는 연어는 아시아 전역과 서부 베링해에 분포하는 아시아계군(Chum salmon)이다. 방류된 치어는 북해도를 거쳐 베링해와 북태평양에서 성장한 뒤 회유해 2∼5년 후에 동해안으로 되돌아와 산란한 뒤 생을 마친다. 연구센터에서는 고성의 명파천으로부터 북천 남대천 연곡천과 남해안의 남강 섬진강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어미 포획과 치어 방류사업을 펴고 있다. 이채성 연어연구센터장은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들려준다.“송어와 산천어는 동일종입니다. 하천에만 머무는 놈이 산천어이고, 바다에 나갔다 오면 시마연어가 되지요. 먼 바다를 순회하고 돌아오는 놈은 대부분 암컷인데 강으로 되돌아와서 산천어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다른 놈은 암수가 같이 바다로 나갔다 오는데 유독 시마연어만은 암컷 홀로 회유에 나선다. 이 문제는 일제시대에 수산시험장에서 15년간 어류양식의 초석을 닦은 우치다(內田惠太郞)가 가장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산천어와 연어의 논란 많은 논쟁을 종식시킬 만한 연구 성과다. 서유구의 ‘전어지’에 ‘송어는 주로 동북의 강과 바다에서 나는데, 생긴 모양이 연어와 비슷하며 살이 많고 맛도 일품’이라고 적은 기록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순간이다. ●연어는 선사인들도 즐겨 먹어 붉은 색으로 변한 하천 연어는 맛이 없다. 산란으로 기력이 쇠진한 상태이기 때문. 반면에 은빛의 바다연어는 맛이 좋아 먹을거리로 이용되는 연어는 대부분 정치망으로 잡아올린 것들이다. 수온변화 등으로 회귀량도 당연히 줄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치어방류량을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닐성 싶다. 국립수산과학관 수자원관리조성센터의 정달상 박사는 어란을 소수의 샘플에서만 채취해 치어를 만듦으로써 빚어지는 ‘연어 근친상간’의 생태적 비극을 경고한다. 돌아오는 연어의 양도 중요하지만, 부모-자식, 언니-동생 같이 같은 종의 ‘인공연어’만이 지배하고, 실제의 자연연어는 내몰려 결국 종다양성이 깨지고 마는 문제까지 예상해야 하는 문제 아니겠는가. 바다에 신이 있다면, 해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바로 이러한 종다양성까지 지켜보고 관장하는 것이 아닐까. 연어는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선호한 어류였다. 남대천변에는 이른바 오산리유적이라는 선사시대의 중요한 유적이자 생태환경의 보고인 쌍호가 있다. 이곳에서는 엄청난 선사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 커다란 낚시바늘이 눈에 띈다. 석호(潟湖,lagoon) 인근에서 살던 선사인들이 연어 등을 낚는데 쓰였으리라. 그네들은 연어를 날로 먹고, 구워 먹고, 말려서 갈무리해 두었다가 먹기도 했을 것이다. 오산리 포구를 찾아가니 선사 이후 수천년 뒤의 후예들도 해풍에 연어를 말리느라 정신들이 없다. 북미 인디언들의 연어잡이와 흡사한 삶이 한반도에서도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니, 남대천변의 해양문화적인 삶은 국제 공통문화의 또다른 사례 아닌가. 더 나아가 쌍호의 선사문화가 암시하는 석호의 해양문화적 중요성에 더해 남대천의 연어를 굽어보는 동해신묘까지 있으니, 해중보배(海中寶貝)의 땅이 바로 남대천변의 기수대가 아닐까 싶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9)안면도 백사장·홍성 남당포구의 대하축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9)안면도 백사장·홍성 남당포구의 대하축제

    ●수염이 길고 의젓한 海老 도쿄시내 간다(神田)의 고서점거리를 누비는데 해로(海老)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한평생 바다일에 종사한 어민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 새우의 별칭이었다.길고 의젓한 새우 수염을 빗댄 말인데,새우의 품격을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다.우리는 ‘새우눈’이란 속어에서 보듯 조금은 새우를 깔보는 마음이 없지 않아 새우젓만 좋은 줄 알지 우람한 왕새우의 멋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조선시대의 고전소설 ‘메기장군고담’에도 절벽 위에서 새우가 떨어져 대대로 곱사등이가 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찬바람 불어오는 이맘때면 왕새우 살집도 토실토실 올라 밥상머리를 푸짐하게 한다.가을새우의 제맛은 역시 충청도 내포(內浦)에 있다.지난달 18일에 시작된 홍성의 남당포구 대하축제는 10월 말까지 열리며,10월로 접어들자 태안의 안면도에서도 백사장포구 대하축제가 한창이다.입추의 여지없이 차들이 들어차고 골목에는 새우굽는 냄새가 회를 동하게 한다.3만원쯤 주고 1㎏을 사면 4인 가족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잘 모르는 이들은 지근거리인 홍성과 태안에서 겹치기 축제가 열리고,허구한 날 먹을 수 있는 새우를 놔두고 구태여 축제 기간에 몰려드는가 하고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그러나 두 곳에서 비슷한 새우축제가 거의 동시에 열리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왕새우는 봄철 천수만에서 산란한다.AB지구 방조제로 막히기 전,만 깊숙이 들어와 부석면 도비산 밑에서 알을 낳고 성장한다.오늘날 서산시내 양대리의 쓰레기처리장이 있는 옛 염전터까지 새우떼가 몰려들었는데,그 까닭은 이곳이 모래가 많아서였다.여름까지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자란 새우는 추석을 전후해 부쩍 자란다.이윽고 찬바람이 불라치면 천수만을 벗어나 바깥 바다로 나간다.남당포구 어민들 입장에서는 “애써 길러 잡아먹을 만하니 모두 빠져나간다.”고 투덜댈 만하다.작을 때는 금어기여서 손도 못대다가 정작 제철에는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홍성에서 9월에 대하축제가 시작되는 것은 제철 대하가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10년 전만 해도 전량 일본에 수출 천수만을 벗어난 새우들은 안면도나 원산도 밑으로 진출하며,조금 더 자라면 격렬비열도나 남서쪽 난바다로 나간다.이즈음 남당포구에서는 멀리 흑산도까지 무려 12시간이나 걸리는 출어준비에 바쁘다.새우가 어느새 흑산도 어름까지 빠져나간 까닭이다.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면 따듯한 동중국해 쪽으로 내려갔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금 천수만으로 회유해 산란을 하게 된다. 남당포구에서 먼저 대하축제가 열리고,이어 안면도 백사장에서 다시 축제가 열리는 것은 이같은 자연의 질서에 따른 일이니 축제가 겹친다고 나무랄 일이 못된다. 남당포구에서 먹는 새우가 조금 씨알이 잔 대신 맛이 쫄깃쫄깃한 반면 20여일 뒤에 안면도 백사장에서 먹는 새우는 훨씬 크고 푸짐하다.서로들 우리 동네 새우가 맛있다고 주장하나,필자의 입으로는 한결같이 맛있고 싱싱하니 어디를 편들 수가 없다.‘제철과일’이 존재한다면 ‘제철생선’도 있다.적기적작(適期適作)의 농법이 있듯 때 맞춰 잡아들이는 어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왕새우를 이처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근래의 일.과자 가운데 최장기 히트상품이 ‘새우깡’이지만 정작 우리는 새우젓이나 찬거리용 건새우는 몰라도 큼직한 왕새우를 새우깡처럼 일상적으로 먹을 수는 없었다.그러던 것이 어느새 새우깡만큼이나 흔하게 먹을 수 있게 됐다. 남홍식(59) 안면도 백사장 대하축제준비위원장의 말.“옛날에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지요.우리가 먹을 게 어디 있었겠어요? 당시에는 10t급 대형선들이 격렬비열도에서 삼중망(일명 삼마이)으로 잡아 급랭시킨 뒤 모두 일본에 보냈어요.”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지금 우리가 먹는 새우는 거지반 ‘수출용’이었단다.지금은 국내 소비량도 부족해 수출할 물량이 없다.오히려 수입산이 증가,필리핀·베트남·중국산 등이 속속 들어온다.새우양식이 확산돼 양식새우 총량이 자연산을 앞지른 지 오래다. ●자연산·양식 맛 비슷해 굳이 안따져도 새우는 수온에 민감한 어류다.2003년 대하축제는 자연산이 흉년이라 사실상 양식새우만으로 축제를 치렀다.가격도 만만찮아 자연산 1㎏에 7만 5000원을 호가했으나 올해는 그 절반 수준.근 5년 만의 대풍어이니 제철 새우를 원없이 먹고픈 이들은 당장 달려갈 일이다. 내년에도 새우가 많이 잡힐지는 누구도 장담을 못하니 흔할 때 제철과일 먹듯 실컷 즐기시라. 양식과 자연산을 둘러싼 많은 시비에서 새우도 예외는 아니다.자연산은 전반적으로 흰빛이 도는 가운데 약간 불그레한 자갈색을 띤다.반면 양식새우는 검은빛이 강하다.크기에서는 양식과 자연산의 차이가 없다.밀식으로 양식하면 알이 잘고,밀식을 피하면 커질 뿐이다.중국산은 머리 자체가 거뭇거뭇하며,필리핀이나 베트남산은 상당히 큰 데다가 남방의 수온 때문에 살집의 탄력이 떨어져 쉽게 구분된다.그러나 불에 구우면 새우껍질이 모두 진홍색으로 변해 분간이 어렵다. 새우는 성질이 급해 그물을 끌어올리면 대부분 죽어 있다.수족관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놈은 십중팔구 양식이다.방금 배에서 내린 자연산새우를 ‘죽은 새우’라며 외면한 이들이 수족관의 양식새우를 싱싱하다며 선뜻 골라잡는 모습은 사실 촌극일 뿐이다.새우축제 현장에 가서는 오히려 ‘죽은 새우’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자연산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처지이니 양식이라도 많이 해 눅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옳다.자연산과 양식을 구태여 구별할 것도 없고,먹어보면 맛도 비슷해 구분도 쉽지 않다.다만,늘 문제가 되는 것은 맛의 차이가 아니라 양식 과정에서 혹시나 항생제를 남용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새우의 영양가는 머리에 쏠려 있다.갑각류는 게,가재 할 것 없이 체외에 알을 싣는 반면 새우만은 머리 부분에 알을 싣는다.일본인은 새우 껍질을 그대로 씹어먹는 경향인데,우리는 벗겨내서 먹는다.콜레스테롤 걱정만 하지 말고 노화방지에 ‘한 역할’ 한다는 키토산이 넘치는 껍질을 함께 씹어먹는 습관을 기를 일이다.왕새우는 삶기,튀김,매운탕,구이,생으로 먹기 등등 온갖 요리법이 가능하다.소금구이는 근래 생긴 식습으로,바닥에 붙지 않고 간이 적절하게 들도록 소금을 이용한 것이다. ●‘새우의 낙원’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자취 감춰 새우축제로 내포만이 온통 법석이지만 그 기세가 예전 같지는 않다.40여년간 남당리에서 어업을 해온 김영태(65) 남당리축제위원장은 “예전에 남당리에만 연안안강망 배가 50척이 넘었지요.천수만이 막히기 전에는 개가 물고 다닐 정도로 고기가 흔했는데,댐이 막히면서 고기들 알 낳을 장소가 송두리째 사라진 거예요.”라며 입맛을 다신다. 지금도 새우들은 남쪽에서 겨울을 보낸 뒤 4∼5월이면 어김없이 천수만을 찾는다.천수만 안쪽의 거대한 개간지가 모두 새우의 산란장이었다.그 만이 막히자 새우들은 천수만 복판의 죽도나 황도 부근의 ‘상펄’이라 부르는 모래등으로 길을 바꿨다.이곳을 찾는 새우의 종류도 많아 7∼8월에는 새끼손가락 길이에 푸른빛이 도는 고급새우 중하,중하와 비슷하지만 맛이 조금 떨어지는 6월의 독새우,빨간 꽃처럼 예쁘고 맛도 좋은 꽃새우,색깔이 거무스름하고 맛도 없어 사료용으로 쓰였던 일명 송장새우,젓국용으로 쓰는 껍질이 두툼한 됫때기새우,몸통이 작아 젓갈에 그만인 곤쟁이,그리고 철따라 잡아들이던 오젓과 육젓,추젓 등등 세기도 어렵다.천수만 간척으로 이 새우의 낙원이 사라진 것이다. ●물고기들에 ‘그들만의 땅’ 돌려줬으면 어패류는 급감한 반면 해산물 선호도는 급작스레 높아지면서 어촌 풍경도 변하고 있다.안면도 백사장이나 남당포구 같은 현대적 파시촌이 대거 등장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결과이다.불과 30여호의 한적한 어촌이었던 백사장포구는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거촌으로 변해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남당포구도 불과 50여호였으나 해변에 어패류를 파는 파라솔이 늘더니 이제는 무려 200여호가 밀집한 거촌으로 변신했다.그 옛날 작부의 노랫가락 드높던 파시촌과 달리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밀려드는 자가용 행렬 속에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21세기의 신어촌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배편이 없어 가까우면서도 먼 섬 죽도로 길을 잡았다.12개의 자잘한 섬과 여가 모여 산란장답게 오밀조밀한 곳이다.멀리 고정리화력발전소와 원산도,안면도,간월도와 천수만방조제가 보이는 천수만 복판에 떠있다.천혜의 서식장이자 황금어장인 천수만이 절반쯤 허리가 뚝 잘려 몸살을 앓은 지 오래인 그 중심에 죽도가 있다. 죽도 어민의 뼈아픈 한마디.“천수만 땅을 도시민에게 분양한다고 하는데,본디 주인인 물고기에게도 분양하면 어떨까요?” 차라리 댐을 무너뜨려 만을 복원하자는 ‘폭탄선언’인데,그 말이 ‘폭탄’으로만 느껴지지 않음은 웬일일까.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7) 오징어의 섬 울릉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7) 오징어의 섬 울릉도

    십 여년 전,시베리아 사하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미리 소주를 챙기면서 안주 삼아 오징어도 한축 챙겼다.문제는 현지 호텔에서 터졌다.한국 술의 참 맛을 보여준다며 소주파티를 열어 오징어구이를 내놨는데 냄새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돼버렸다.구수한 그 냄새가 ‘국제적’으로 통용 불가임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다.우리처럼 오징어를 알뜰살뜰 즐기는 민족도 흔치 않다.수산물 기호도에서 마른 오징어는 단연 수위이며,하다못해 오징어와는 별 상관도 없는 ‘오징어땅콩’ 과자가 ‘롱런’하는 나라 아닌가.가난했던 시절,아이에게 안겨주던 귀한 오징어로부터 영화관의 필수품이던 구이,맥주 안주의 기본인 오징어땅콩,등·하교길 혹은 아예 시장바구니를 들고 먹던 튀김,그리고 회·무침·국·조림·순대에 이르기까지 어찌 한민족의 생활사에서 오징어를 빼놓을 수 있으랴. 오징어의 원조를 만나려면 울릉도 저동항으로 가야한다.그야말로 진풍경이다.촛대바위 너머로 여명이 동터오면 어판장은 이내 시장판으로 바뀐다.수협 직원들이 종을 치며 입찰에 바쁘다.배에서 막 내려진 고기 상자가 칸칸이 쌓여져 입찰에 부쳐진다.중개인이 적어낸 팻말에서 최적 가격을 찍어낸다.입찰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상자를 뒤짚어 오징어를 바닥에 쏟아낸다.날카로운 비수를 들고 서성이던 ‘오징어아지매’들이 달려들어 일과인 ‘할복’을 시작한다.누렇고 흰 오징어 내장이 바닥을 가득 채울 때쯤되면 이내 대꼬챙이를 들고와 스무마리씩 꿰어 한축을 만든다.물에 씻어서 수레에 실은 뒤 덕장으로 운반하면 아지매들의 어판장 작업은 끝이다. ●‘오징어 할복’ 20마리에 500원꼴 “배 따는 데 얼마나 받습니까?”“한축에 500원이네요.” 스무마리에 500원이니 2000마리쯤 ‘할복’하면 5만원 벌이다.말이 2000마리지 쪼그리고 앉아 거대한 오징어 산(山)을 해치우는 일이 쉬울 턱이 없다.이 일꾼 아지매들이 없다면,울릉도 건오징어는 꿈도 못꿀 일이다.남정네들이 채낚기로 씨름하다가 돌아오면 여자들은 다시 한번 칼을 들고 역할을 바꿔 ‘할복’을 시작한다. 대충 말리면 되는 줄 알지만,한 마리의 건오징어가 탄생하려면 복잡다단한 과정과 비용을 치른다.할복,대나무 꿰기,씻기,덕장 운반과 널기,젖혀진 귀 뒤집기,뭉친 오징어다리 떼어 보기 좋게 만들기,‘탱’이라 부르는 대나무로 심을 박아 맵시잡기,스무마리씩 축엮기,냉장실 입고,배에 싣고 내리기,차에 싣고 내리기 등등,거칠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 비로소 소비자의 손에 들린다.이 과정마다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렇게 하여 오징어 가격이 결정된다. 요새는 만나는 어민들마다 기름값 타령이다.도회에서야 기름값이 오르면 전철로 출·퇴근할 수도 있지만,어민들은 배가 없으면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고,출어비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섬의 특성상 산물을 육지로 내다 팔려면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 이중부담까지 껴안아야 한다. 일명 ‘울릉도지킴이’로 섬의 속사정을 꿰뚫고 있는 홍광진(53)씨의 말.“백화점 같은 대형 매장 뚫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은데,문제는 중소 상인들이지요.건조가 끝나도 판로가 없으니 창고에 쌓아두게 되는데 창고비는 물론이고 빚내서 출어한 이자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니 모두들 주저앉기 직전이라고 봐야 합니다.게다가 심각한 것은 아지매들이에요.평생 쭈그리고 앉아 배를 따고 있으니 직업병을 피해갈 재간이 있겠어요?” ●‘짝퉁 울릉도 오징어’에 섬사람들 속앓이 육지 오징어를 울릉도산이라고 속여 파는 일도 심각하다.전국의 울릉도 오징어 시장 점유율은 10% 안팎.지난해 기준으로 육지 것과의 가격 차이가 1축에 3000∼4000원 정도다.그러니 너나없이 ‘울릉도 짝퉁 오징어’를 시장에 밀어넣는다. 오징어는 다 같은 줄 알았는데,현지에서 먹어 보니 결코 같지 않다.습도와 기후,바람 때문이다.잘게 찢으니 실같이 가늘게 갈라진다.30여시간 바짝 말린 오징어나 12시간 정도 살짝 말린 ‘피데기’나 할 것 없이 살이 도톰하여 씹는 맛부터 다르다.소비자들은 이제 오징어에서조차 ‘원조’와 ‘짝퉁’의 구별에 신경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판장에서 만난 정건웅(65) 수협조합장의 말.“뻣뻣하게 바짝 말린 놈은 맛이 덜해요.수분이 살짝 남아있는 놈을 굽지 않고 그대로 먹어야 제맛이지요.”개인별 식성에 따라 다르겠지만,표면에 허연 분가루처럼 타우린이 묻어나는 오징어를 ‘진짜’로 아는 일반 상식도 실인 즉 오해다.밝으면서도 붉은빛 도는 선명한 색깔에다 도톰하게 살집이 씹히는 오징어가 상품이다.보기좋은 게 먹기도 좋다고 오징어도 잘 생긴 놈을 고를 일이다. 날씨가 좋으면 오징어값이 되레 비싸진다.좋은 날씨에는 비용이 거의 안드는 자연건조를 하지만 궂은 날에는 인공건조를 해야 하기 때문.그러나 완벽한 자연건조는 드물다.자연건조로 물이 60∼70%쯤 빠지면 공장으로 옮겨 인공건조 과정을 거쳐 상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물론 추석 이후의 가을에는 햇볕에 말리는 자연건조가 주종을 이룬다.옛날에는 연탄불로도 건조시켰으며,가스불로 건조시킨 오징어에서는 ‘싸한’ 가스맛이 배어나곤 했다.울릉도 오징어 중에서도 해변 몽돌밭에 빨래처럼 널어서 태양 반사열로 말리는 ‘태하동오징어’가 압권인데,진품 만나기가 쉽지 않아 필자도 먹어 보지 못했다. ●오징어 흉년이면 섬 전체가 보릿고개 늦여름부터 가을을 넘길 동안 저녁마다 강렬한 불빛으로 바다의 축제를 여는 오징어잡이 풍경은 동해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 모습이지만,울릉도는 원산지답게 오징어를 빼면 삶 자체가 아예 설명이 되지 않는다.오징어 흉년이면 섬 전체가 보릿고개고,오징어 풍년이면 섬 전체가 흥청거린다.제 철이면 오징어잡이 배가 저동항 바로 앞의 죽도에서 독도 방향으로 까마득히 늘어서 ‘바다의 도시’를 보는 듯하다.오징어는 대화퇴에서 내려오는 회유성으로 독도 근해가 주산지다.육지와 제일 가까운 대풍령 앞바다에서 두지봉 위까지 가서 잡다가 비잉∼ 돌아서 가두봉까지 오면 떨어져 나간다.육지 내륙으로 빠지면서 멀리 부산 기장 쪽으로 내려가 대마도 근해로 나가기도 한다.울릉도를 빠져나간 오징어는 점차 맛이 없어지다가 일년생답게 종내는 살이 없는 ‘거풀오징어’가 되고 만다. 오징어잡이 역사는 100년 안팎으로 그리 오래지 않다.오래 전에도 오징어를 잡았겠지만 상업성을 갖춘 오징어잡이 역사는 한 세기를 넘지 못한다.30여년 전,오징어가 지천일 때는 대나무에 낚시를 매달아 찍어올리는 이른바 ‘찍낚시’로 아예 오징어를 퍼담았다.이런 때는 바다가 눈밭처럼 희게 빛났다.믿기지 않겠지만 심지어는 낚시가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적도 있다고 나이 든 어민들은 추억한다. 뗏목처럼 생긴 ‘테우’에서 잡다가 2∼3인이 타는 ‘강꼬’배를 거쳐,나중에 채낚기배로 귀착되었다.처음에는 나무물레를 돌리는 물레치기로 잡았으나 지금은 자동조절기가 등장했다.20여명분의 일을 기계가 하게 되면서 노동력 감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어로기술 명칭에 일본어가 많은 것은 이들 어법이 일본영향권에 있음을 방증한다.가장 보편적이었던 ‘돔보어법’도 오키제도에서 들여왔다.독도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는 오키 어민들은 일제시대에 울릉도에 집단촌을 형성해 살았으니,‘게다’짝을 따닥거리며 저동항을 오갔던 바로 그들이다. ●오징어는 다리가 없다? 오징어는 불빛을 좋아하는 추향성,동시에 전진과 후퇴만 아는 직진성 어류다.그래서 오징어 채낚에는 미끼가 필요없다.불만 보면 미끼인 줄 알고 직진해 달려든다. ‘살아있는 로켓’인지라 빨아들인 물을 뿜어내면서 그 추진력으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한다.집어등은 애초에 석유호롱불을 쓰다가 카바이드,휘발유 등을, 요즘에는 전깃불로 변모를 거듭했다.배에서 모터를 돌려 발광하는 오징어 집어등 불빛은 화상을 입힐 만큼 고온이다.그래서 밀짚모자를 쓰고 어로작업을 하는 등 차광장치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중개인으로 일해온 성학주(73)씨에게 ‘오징어론’을 청했다.대개 잘못 아는 상식 중의 하나가 부위별 명칭이다.오징어는 팔다리가 머리에 달려있는 두족류다.오징어에 다리는 없으며,엄밀하게 팔다리가 맞다.팔다리 10개 중에서 유달리 긴 2개는 먹이를 잡거나 교미할 때,나머지 8개는 먹이를 먹을 때 쓰인다.머리라고 부르는 삼각형 부위는 지느러미다.흔히 ‘오징어 불알’이라 부르는 부위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주둥이며,사람처럼 한쌍의 눈알도 갖고 있다. 오징어는 난류성이지만 바닷물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사라진다.오징어가 대거 이동해 서해안 태안반도 안흥항이 파시처럼 오징어판이 되기도 했는데,취재에 동행한 수산과학원 이윤 연구관(해양생물학)의 생각은 조심스럽다.“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계통이 다소 다른 오징어로 볼 수 있지요.같은 황인종이라도 일본인,한국인,중국인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울릉도 오징어요리 세계화했으면 울릉도 주민들은 역경의 삶을 헤쳐나가면서 우리가 즐겨 먹는 오징어살보다는 그 부산물인 내장을 더 품격있는 요리로 개발해 냈다.흰창자로 끓인 내장탕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소금에 절여서 배추시래기와 함께 끓여내는 노란창자찌개는 8월의 ‘울릉도 오징어축제’ 때 최고 인기음식이다. 여기에 감자와 옥수수밥을 올리면 전형적인 울릉도식 접대 방식이 된다.10월이 넘어 찬바람이 돌면 기름진 노란창자를 된장에 졸여 쌈장도 만든다.오징어내장과 먹물로 만든 순대는 서울식과 전혀 다르다.이렇듯 오징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오징어 먹물요리를 가지고 세계적인 건강식으로 키워낸 이탈리아 사람들의 역량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데,왜 우리는 아직도 울릉도 사람들의 이 뛰어난 요리를 세계인의 식탁으로 이끌어내지 못할까!
  • 서해에서 부는 가을 맛바람

    서해에서 부는 가을 맛바람

    가을은 서해로부터 온다.누런 들판에 선 농부의 웃음이 그렇듯,푸른 바다를 등지고 돌아오는 어부의 하얀 웃음에서도 가을은 빛난다.포구는 살아있다.강화의 민물장어,태안의 새우,서천의 전어,남녘 끝자락 무안의 낙지….주황빛 낙조를 바라보면서 맞는 서해안의 가을,거기에 맛이 있다.넉넉한 웃음과 푸짐한 인심,이맘때 서해안 바닷가에선 누구나 행복해진다. 무안·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태안·서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강화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태안반도 충남 태안반도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가을의 진미’ 대하와 전어 굽는 냄새다.코를 킁킁거리면서 백사장포구로 들어가 봤더니 그물에 걸린 새우를 털어내는 어부들의 손길이 바빴다.서해안 최대의 해산물 집산지답게 포구로 돌아온 배마다 새우와 전어로 만선이다.분주한 어부들의 표정은 밝다.태안반도 천수만 일대에는 대하잡이 배들로 가득하다.올핸 대하가 풍년이다. 포구 뒤로 쭉 늘어선 횟집거리엔 ‘갓 잡은 대하 입하’라고 쓴 간판을 내걸고 있다.수족관마다 싱싱한 새우와 전어가 퍼득거리고 낙지가 꼬물거린다.고소한 냄새가 침부터 삼키게 한다.포구 곳곳에는 노릇노릇하게 구운 새우를 뒤집어가며 까먹고 있었다.한쪽에는 칼집을 넣어 굽는 전어 냄새도 난다. 포구 곳곳에는 발에 우럭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우럭의 배를 갈라 손질하고 소금을 적당히 뿌린 다음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말리는 것이다.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태안만의 광경이다.우럭젓국은 태안의 숨은 별미이기도하다. ●맛이 담백한 대하 ‘몸통 살은 입에서 살살 녹고 바싹 구운 머리는 고소하고 씹히는 맛이 최고.’ 작년에 비해 많이 잡히지만 대하의 시세는 매일 바뀐다.얼마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 1㎏에 4만∼5만원선.보통 어른 손뼘만한 크기의 대하가 20마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10월이 되면 대하 씨알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양식과 자연산을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생사여부다.일반적으로 죽은 게 자연산이고 살아 있는 것은 양식이다.그물에 걸린 많은 대하를 배에서 일일이 손으로 떼기 때문에 살릴 수 없다고 한다.양식산은 자연산에 비해 더 검다. 대하는 회나 탕으로도 먹지만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은 소금구이다.프라이팬 위에 대하를 가지런히 깔고 하얀 소금을 끼얹고 굽는 것이다.소금의 짠맛이 살짝 배어 간장이나 고추장 없이 먹어도 간이 딱 맞고 담백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안면도 백사장포구에는 횟집이 즐비하다.그 중에서도 깨끗하면서 10여년을 한곳에서 영업을 해 온 똘순이회관(041-673-6870)이 유명하다.주인 박성식(53)씨는 안면도 토박이로 항상 서해에서 나오는 해산물만을 고집한다.회도 자연산이고 대하도 갓 잡은 녀석들만 손님들에게 낸다.대하값은 보통 1㎏에 5만원.맛있는 밑반찬과 야채 등이 따라 나온다.대하를 사오면 자리와 야채 값으로 1㎏ 1만원을 내면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서 대하를 먹을 수 있게 해준다.이밖에 온누리회타운 (041-673-8966),오뚜기횟집 (041-672-8659)도 있다. ●연포탕은 저리가라.태안 박속낙지 납신다 낙지를 넣고 끓인 전라도식 음식이 ‘연포탕’이라면 태안 쪽에는 ‘박속낙지’가 있다.맛은 연포탕과 비슷하지만 영양과 향 등은 훨씬 뛰어나다.박과 무 등을 넣고 끓인 육수에 산낙지를 넣고 익혀 먹는 음식을 박속낙지라고 한다.박의 싱그러운 풀냄새와 낙지의 담백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국물은 정말 ‘끝내준다’. 또한 낙지가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다.한동안 끓는 육수에 넣고 삶았건만 전혀 질기지 않다.역시 태안 펄낙지는 삶아도 질기지 않다고 하더니 거짓말이 아니다.낙지가 익으면 다리 세개 정도를 젓가락에 말아 간장소스에 찍어 그냥 먹는다.중간에 자르지 않아도 정말 맛있다.도심에서는 질겨서 엄두도 못낼 일이다. 이렇게 낙지를 건져 먹고는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이것이 박속낙지다.박속낙지는 다른 이름으로 밀국낙지라고도 불린다.6∼7월에 나오는 작은 낙지로 만드는 박속낙지를 일컫는 말이다. 토박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집은 정가네 박속낙지탕(041-675-8001).주인 정현규씨는 “낙지는 태안반도에서 잡은 펄낙지를 쓰고,화학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무 다시마 등을 넣고 만든 독특한 육수로 맛을 낸다.그래서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낙지 특유의 향과 맛을 즐기려면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좋다.초고추장은 향이 강해 낙지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낙지값은 시세에 따라 차이가 많다.지금은 보통 1인분에 2만원선.낙지 5마리와 칼국수 사리 포함.낙지만을 추가해서 먹을 수도 있다.우리밀로 만든 해물손칼국수는 5500원. ●입에서 살살 가을전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 다시 돌아온다.’,‘전어는 며느리 친정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가을전어가 한창이다.충남 서천등 서해안 포구에는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이맘때의 전어가 최고다.산란기를 끝내고 살이 오르며 기름이 올랐기 때문이다.국내 여러 연안에서 나지만 서천 토박이들은 ‘갯벌전어’로 이름난 서천전어를 으뜸으로 친다. 가을전어처럼 지방이 많은 생선은 초고추장이나 냉이고추(와사비)보다 쌈장에 찍어먹는 것이 더욱 맛을 느낄 수 있다.마른 김과 묵은 김치에 싸서 먹는 맛은 정말 별미다. 양파,당근,오이,깻잎 등 갖은 채소를 함께 넣어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는 회무침으로도 많이 먹는다. 하지만 9∼11월초까지 잡히는 전어는 지방이 많아 구워 먹는 것이 최고다.전어 몸통 양쪽에 각각 3∼4 군데씩 칼집을 낸 뒤 소금을 살짝 뿌려 석쇠에 얹어 굽는다.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햐,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만하군.’하는 생각이 든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전어의 꼬리와 머리를 잡고 통째로 뜯어먹는다.살과 잔뼈 채를 함께 씹는데 ‘역시 최고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부드럽다.고소하다.담백하다. 가을전어는 충남 서천군 홍원항과 안면읍 백사장포구가 유명하다.매일 가격이 틀리지만 보통 횟집에서는 1㎏에 2만 5000원 정도면 간단한 밑반찬과 야채를 포함해 회를 쳐주거나 구워먹을 수 있게 해준다.공판장에서는 1㎏에 1만 5000원 정도.보통 전어 11마리 내외가 올라간다. 포구의 횟집들은 모두 가격이 비슷하다.그중에서 해돋이횟집(041-951-9803)은 2대째 손맛을 대물림한 집으로 알려져 있다. ●국물 맛이 삼삼한 우럭젓국 태안의 주당들은 아침에 속풀이국으로 북엇국 대신 우럭젓국을 먹는다.삼삼하고 시원한 국물이 과음을 하고 난 아침에 속을 달래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따뜻한 국물은 마시면 ‘커 커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또한 추석 차례상에도 말린 우럭을 올린다고 한다.온 가족이 모인 추석 다음날 아침은 으레 우럭젓국을 먹는 것이 이곳의 풍습이란다. 말린 우럭포를 쌀뜨물에 넣고 끓이면 삼삼한 우럭젓국이 된다.젓갈이나 다른 양념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짭짤하게 말린 우럭포에서 우러나온 진국이 간과 영양을 적당히 맞추어 준다.우럭젓국으로 유명한 지형수산(041-674-5610)은 자연산 우럭을 고집해 훨씬 더 국물맛이 담백하다.4인분 기준으로 2만 5000원.밥과 밑반찬 포함.우럭포만 팔기도 한다.보통 1만원선. 또한 주문하면 대하,꽃게,어패류를 박스로 택배해 준다.가격은 시기마다 다르므로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펄펄 뛰는 오징어 태안의 신진도에는 새벽마다 밤새 잡은 오징어를 내리는 불빛이 대낮처럼 밝다.끝물이라고 하지만 요즘도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크기도 동해에서 잡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맛있다. 요즘 배에서 막 내린 오징어 20마리가 1만 5000원선.근처 횟집에서 1만원이면 3마리 정도를 회 쳐 주는데 어른 두명이 실컷 먹고도 남는다.황성횟집(041-673-0189)은 싱싱한 오징어로 유명하다.또한 전어 대하 등 가을의 진미들로 맛볼 수 있다. ●쫄깃쫄깃한 펄낙지 “목포의 모래 낙지랑 우리 펄낙지는 비교 대상이 아니지요.펄낙지는 살이 통통하고 씹는 맛이 최고며 끓여 먹어도 전혀 질기지 않아요.”‘낙지박사’ 정현규(42)씨의 태안낙지 자랑이다. 태안반도에는 이원면 앞과 정산포구에서 낙지가 많이 나온다.특히 정산포구에서 낙지는 바지락을 먹고 자라서 영양과 맛이 최고로 친다.낙지는 2∼3월부터 자라기 시작해 7월에는 소위 세발낙지만큼 커지고 지금은 어느 정도 성숙한(?) 청년의 모습이다. ■ 강화도 민물장어는 그 생태가 다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물고기다.인공부화가 안 되고,비늘이 없고,실뱀장어 전단계인 렙토세팔루스의 생활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우리나라에선 전북 고창의 풍천장어,전남 강진의 목리천장어가 유명하다.민물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강과 하천 등지에서 성장한 다음 6400㎞를 역영해 필리핀 해구의 수심 400m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알이 발견된 적이 없어 일부 학자는 새끼를 낳는다고도 주장한다. 생김새 탓에 뱀장어로도 불리는 민물장어는 정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어찌보면 남성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최근의 연구결과 불포화지방과 비타민A·B가 풍부한 것으로 나와 정력에 좋다는 말이 낭설만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장어는 한자로 鰻(만)을 쓰는데,이는 고기어(魚),날일(日),넉사(四),또우(又)로 파자할 수 있다.이를 두고 장어를 먹으면 하루(日)에 네(四)번을 해도 또(又)하고 싶어진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시중의 민물장어는 양식이거나 수입산이 대부분이다.길이 50∼80㎜의 치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잡아 키운 것이다.5∼12년간 민물에서 살다가 8∼10월 산란하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다. 이런 민물장어의 명소로 서울에서 1시간30분가량이면 도착하는 인천 강화도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강화도에서 올해 민물장어 40t이 생산됐고,맛도 기존의 양식 장어보다 훨씬 좋은 까닭이다.강화도에서 생산된 장어는 풍천장어와 같은 종류다. 길이 60∼80㎝의 장어를 고창 등지에서 사다가 강화 갯벌에서 3∼5개월 기른 것이다.동검수산 박용철 대표는 “기르는 동안 인공사료는 전혀 주지 않고 산소만 공급한다.”며 “첫 달은 장어가 비쩍 마르다가 두달째부터 통통해진다.”고 말했다.장어는 강화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한다.초지대교옆의 황산도횟집 정희옥 사장은 “처음에 갯벌장어의 배를 갈랐는데 새우와 새끼게,망둥어까지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이런 먹이활동 탓에 머리는 뾰족하나 입은 뭉뚝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맛.푸드칼럼니스트 정신우씨는 “부드러우면서 쫄깃하고 담백하면서 고소하다.”며 “자연산 장어와 맛이 거의 비슷하다.”고 평했다.양식과는 달리 껍질이 두껍고 질긴 것도 특징이다.양식과 비교하면 해감과 흙냄새가 훨씬 적다.그래서 양념구이뿐만 아니라 소금구이로도 많이 먹는다.마니아들은 회로도 즐긴다. 강화지역은 옛날엔 장어로 유명했단다.노양래 강화군 어업관리팀장은 “세계 5대 갯벌 가운데 하나인 강화갯벌은 새끼물고기와 게,수생식물 등 먹이가 풍부하고,한강·임진강·예성강이 만나 바다로 합류하는 기수(汽水)지역이어서 옛날엔 장어 생산지로 유명했다.”며 “이런 연유로 30여년 전부터 강화대교 아래쪽에 수도권에서 가장 큰 장어마을인 ‘더러미장어촌’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근래 들면서 자연산 장어는 구경조차 어려워졌고,급기야 양식 장어를 수송,장어마을 명맥을 이어가던 실정이다. 올해 처음 갯벌에서 키운 강화장어는 자연산과 비슷한 맛으로,초지대교를 중심으로 장어전문점이 한창 생겨나고 있다.강화갯벌장어는 어른 2명 분량인 1㎏에 6만원인 반면 자연산 장어는 ㎏에 12만∼15만원이다.강화도의 직매장에서 사면 ㎏에 4만원이다.다듬어 주기도 하고 비용을 조금 더 주면 양념과 함께 구워주기도 한다. 장어는 생강과 잘 어울린다.느끼한 맛을 산뜻하게 바꾸며 소화 흡수를 돕는다.부추와 같이 먹어도 좋다.반면 복숭아와는 상극이다. 강화갯벌장어는 갯장어와는 다르다.‘하모’로 불리는 갯장어는 전남 여수 등지의 남해안에서 많이 나며 ‘참장어’로 부른다.잔가시가 많으며,회나 탕으로 즐긴다.회로 즐기는 붕장어(일명 아나고)가 1m 전후인데 갯장어는 2m까지 자란다.‘꼼장어’로 많이 부르는 먹장어는 턱이 없고 입이 흡판 모양이다.양념구이로 많이 먹는다. ●장어 맛집들 강화군과 김포시 사이의 한강이 서해로 흘러드는 ‘염하’의 물줄기가 환히 보이는 초지대교를 넘어 강갯벌장어집들이 몰려 있다.갯벌장어 1번지는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있는 황산도횟집(032-937-4337)이다.상호에서 보듯 생선회가 전문이었지만 이젠 장어에 밀렸다.가장 유명한 것이 양념구이.장어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달착지근한 양념과 고소한 장어 맛이 어울려 장어 초보들이 먹기는 그만이다.장어 자체의 맛을 즐기는 이들은 소금구이를 주문한다. 어른 2명이 먹을 양인 1㎏에 6만원이다.안주인 정희옥씨는 “양념구이의 양념에는 고추장과 함께 당귀·천궁·감초 등 30여가지의 약재가 들어간다.”고 말했다.양념이든 소금구이든 다 먹고 나면 장어죽을 내온다.양식장어로는 장어죽을 끓이지 못한단다.해감과 흙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에.찹쌀을 갈아 쑨 죽은 수프와 맛이 비슷하다.15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초지숯불장어(032-937-8601),천미숯불장어(032-937-7766),등대참숯불장어(032-937-0749) 등도 갯벌장어를 취급한다. 초지대교에서 오른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15㎞ 정도 올라가면 더리미 장어마을이 나온다.장어집 10여곳이 모여 있다.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장어굽는 냄새가 미리 마중나온다.양식 장어를 쓰다가 지금은 강화갯벌장어로 바꾸고 있다.가장 대표적인 곳이 별미정숯불장어(032-932-1371)다.양식이 ㎏에 4만원인 데 비해 강화갯벌장어는 6만원이다. 주인 한종호씨는 “손님들이 못보는 초벌구이부터 장어를 숯불에 굽는다.”고 말했다.기름이 적고 담백한 맛이 이 집의 특징.소금구이·양념구이·간장구이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코스가 있다.이외에도 더리미숯불장어(032-934-0787),일미산장(032-933-8585) 등이 유명하다. ■ 무안 & 목포 ●낙지 어패류는 ‘개펄’에서 맛이 우러난다.생김새도 바다 밑바닥 여건에 따라 다르다.어류의 육질과 때깔도 차이가 난다.그래서 천혜의 개펄이 발달한 서남해안 해산물은 으뜸으로 친다. 국토의 서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무안 ‘펄낙지’가 제철을 맞았다.9∼10월엔 망운,해제,운남면 등지에서 낙지잡이가 한창이다.낙지라면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대중 음식이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산으로 무안 펄낙지와는 맛이나 향에서 비교할 수 없다.이곳 낙지는 다른 지역의 것이 붉은 빛을 띠는 데 비해 잿빛 윤기로 반들거린다.다리도 더 길고 육질은 여리고 부드러운 게 특징.동이 트기전 포구에서 도착하는 싱싱한 낙지들이 미식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전남 무안읍 성동리 하남횟집(061-453-5805)은 인근 개펄에서 갓 건져 올린 낙지 요리로 손꼽힌다.이 집의 주 메뉴는 기절낙지.기절낙지는 중간 크기의 낙지를 골라내 대소쿠리에 넣고 민물로 펄을 빨아낸다.이 과정에서 낙지가 힘이 빠지고 육질이 부드러워지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기절낙지는 낙지를 잘게 썰거나 다지지 않고,발을 잘라 그대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입안에서 깨무는 질감이 일품이다. 또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메뉴는 세발낙지.어른 한뼘 크기의 자잘한 낙지를 산 채로 먹는다.수족관에 오래 보관하지 않고 갓 잡아온 것을 나무젓가락에 말아 한입에 넣는다.양념없이 먹어도 비릿한 바다향이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이밖에 낙지 비빔밥,연포탕,낙지 볶음,회무침,전어회,오도리 등 각종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기절낙지는 한접시 3만∼5만원(3∼5명기준),세발낙지 한접시(20마리) 5만∼6만원,회무침 한접시 3만원(4명기준),오도리(새우) 1㎏ 5만원 등이다. 이 집에서 공용터미널을 끼고 100m쯤 가면 무안 뻘낙지 전문점(061-452-9988)이 있다.겉보기엔 허름하지만 낙지 전골,초무침,세발낙지 등을 잘한다.낙지 도소매도 겸하고 있다. 초무침은 3만원(4인기준) 세발낙지 1마리당 3000원,굵은 낙지 한접시(20마리)당 10만∼12만원 등이다. 이들 식당이 자리한 공용터미널 뒷골목에는 무안 낙지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소매상이 즐비하다.무안낙지는 지금부터 10월까지 가장 많이 잡혀,값도 이맘때가 가장 싸다. ●민어 민어 역시 잘 발달된 개펄에서 산란하는 어종이다.진상품으로 알려진 민어는 여름∼가을 전남 신안군 임자,암태,지도 등 연안에서 잡힌다.요즘이 제철인 셈이다.주로 4∼5㎏짜리지만 큰 것은 20㎏을 넘는다.열대성 어종이라 수온이 떨어지면 남쪽으로 이동한다.어부들은 회유 경로를 따라 민어를 잡는다.민어는 예부터 노약자나 임산부 등의 보양식으로 사용될 만큼 맛이나 영양이 뛰어나다. 전남 목포시 중앙동 삼화횟집(061-244∼1079)은 민어회로 유명하다.고급 어종인 민어를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삼화횟집은 연안에서 갓잡아 올린 민어를 먹음직스럽게 썰어 내놓는다.두껍게 썰었지만 민어살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쫄깃한 민어 부레와 아가미,껍질 등도 곁메뉴로 오른다.다시마와 마른 밴댕이,민어뼈를 고아 만든 민어탕도 식사용으로 나온다.또 굵은 소금에 절여 말린 건민어탕도 별미.말린 민어를 쌀뜨물에 넣고 푹 고아 만든다.건민어탕은 미리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주인 천안숙(49)씨는 “민어를 냉동실에 보관해 보면 일주일이 지나도 돔이나 농어 등과는 달리 신선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며 민어회의 ‘우수성’을 자랑한다.회는 한접시 4만원(3인 기준),탕은 한냄비 1만원,건민어탕 한냄비 3만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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