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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 남서쪽 105㎞ 조그만 섬 ‘만재도’

    목포 남서쪽 105㎞ 조그만 섬 ‘만재도’

    바다는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게다. 꼭꼭 숨겨두고 자기만 바라보고 싶었던 게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05㎞ 떨어진 외로운 섬 만재도(晩才島).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작고 앙증맞은, 여자아이 같은 섬이다. #고요함 속에 아름다움이 숨쉬는 곳 만재도는 ‘먼데섬’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우리나라 섬 가운데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 섬 중 하나다. 무려 5시간여나 걸린다. 흑산도와 홍도 등을 에둘러 돌아간 쾌속선이 맨 마지막에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5.5㎞.45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변변한 밭뙈기 하나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뭍에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만큼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경운기도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어선 엔진소리를 제외하면 온통 자연의 소리뿐이다. 만재도에서 가장 먼저 외지인의 넋을 빼는 것은 ‘앞짝지’해수욕장. 앞산 밑 ‘건너짝지’, 마을 남쪽 벼랑아래 ‘달피미짝지’ 등 세 곳의 몽돌해수욕장 중 대장격이다. 둥그런 반원을 그리며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어찌나 정연한지, 반월도(半月刀)를 보는 듯 하다. 차르르∼. 몽돌사이로 빠져나가는 파도 소리가 꼭 여자아이의 웃음소리를 닮았다. 해안가에서 먹이를 잡던 흰날개해오라기가 발자국 소리에 놀라 옥빛 바다위로 줄행랑을 친다. 뭍에서 사는 잿빛의 해오라기와는 달리 하얀 날개를 가진 녀석이다. 앞짝지 해변에서 볼 때 왼쪽은 앞산, 오른쪽은 큰산, 멀리 뒤쪽은 물세이산(물살이 센 산)이다. 먼저 만만해 보이는 앞산으로 향했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바위들이 절경을 그려내고 있다. 고저장단을 맞추며 서 있는 것이, 마치 파도소리에 맞춰 춤사위를 펼치는 듯하다. 무릎까지 자라난 풀숲을 헤치고 조금 더 오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눈을 의심케 한다. 왼쪽은 현란한 자태를 뽐내는 암석해변, 오른쪽은 단순하면서도 고고한 몽돌해변으로 나뉘어지는 것. 두 개의 반월도가 시퍼런 날을 맞대고 선 형국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큰산(176m)이다. 할아버지 당산과 등대를 차례로 지나면 곧바로 까마득한 낭떠러지. 이 절벽 아래 만재도가 자랑하는 주상절리대가 있다. 직사각형의 바위를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하다. #언제나 평온한 쉼터 뭍과 유리된 탓에 믿기 어려운 얘기들도 전해져 온다. 뱃길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자유당 말기에 병역기피자들이 숨어들기도 했고, 세금받으러 간 목포세무서 직원은 두 달 가까이 갇히는 바람에 집에서 젯상받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도 전쟁이 끝난 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도 소문나 있었다. 조기가 겨울을 나고, 전갱이·다랑어·농어 등 고급어종들이 회유하는 길목이어서 연중 어로가 가능했다. 해녀들이 마을 앞 공동어장에 자맥질 한번 하면 전복 등 해산물이 광주리에 가득찼다. 재물이 가득차 있다 해서 ‘만재도(滿財島)’라 불렸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요즘도 물고기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예전만은 못하다. 최규환 이장은 “한 때 ‘돈 섬’이라 안혔소. 그란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전갱이가 몇십년 전부터 딱 끊기면서 궁벽한 섬이 되부렀지라. 요즘엔 주민 3분의2가 기초생활 수급자요.”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5월1일부터 목포에서 쾌속선이 매일 운항하면서 주민들은 관광지로서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폐교가 된 흑산초등학교 만재분교를 콘도로 리모델링하고,‘쇠끝너머(마을너머)’에는 지하수를 담수해 하루 100t가량 생산할 수 있는 취수원도 마련해 놓았다. 부녀회에서는 외지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간단한 생필품을 구비한 편의점도 열 계획이다. 여유로운 쉼이 있어 좋은 곳. 이제 뭍과의 거리는 적잖이 좁혀졌다. 주민들의 삶도 점차 나아질게다. 하지만 지금의 평온한 모습만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글 사진 만재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보복폭행 수사 종전대로 형사8부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늑장 수사 등에 대해 경찰이 28일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옴에 따라 검찰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검찰은 처음에는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었다가 수사의뢰를 받은 지 몇시간 만에 곧바로 수사 부서를 결정했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수사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그래서 당초 특수부나 마약조직범죄수사부, 공무원 범죄 전담 부서인 형사1부 중에 배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보복폭행 사건을 맡고 있는 형사 8부로 배당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검찰의 수사는 세 갈래로 나뉠 전망이다. 형사8부에서 맡고 있는 보복폭행 사건의 수사는 김 회장과 조폭과의 연계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이 구속적부심 등에서 ‘증거인멸의 우려’ 등으로 풀려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조폭을 동원하는 데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한화그룹 계열사의 A고문과 B감사 등의 소환도 예상된다. 두 번째는 경찰의 늑장 수사 부분이다. 최기문 전 청장이 경찰 수뇌부한테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 경찰의 늑장 대처가 이같은 최 전 청장의 외압 행사 의혹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 남대문경찰서 강대원 전 수사과장이 도피중인 조직폭력배 오모씨를 만나게 된 경위 등이 1차적인 수사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최 전 청장이 한화측의 요청으로 전화를 했지만, 마지못해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최 전 청장의 주도적인 외압 혐의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경찰과 한화측의 조직적인 유착 여부도 수사 대상이다. 경찰 관계자들의 진술 등에 따르면 한화측이 사건을 덮기 위한 회유 시도가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던 만큼 금품을 건넸거나, 사건이 마무리된 뒤 금품을 주기로 구두 약속했을 개연성은 있다. 한화측은 돈을 건넨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택순 경찰청장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첩보 내용을 인지했는지 여부도 관심이다. 경찰수뇌부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이 청장이 알았다는 정황이 나오면 이 청장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고, 이는 청와대의 인지 여부와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다만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번 수사가 정치공세의 화두가 될 수 있다는 점, 검·경간의 첨예한 수사권독립 논쟁과 맞물려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리한 수사를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한화 ‘보복폭행’ 수사관 매수 시도?

    한화그룹 측이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 남대문경찰서의 수사 실무 책임자를 매수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화 측은 “법적 대응을 하겠다.”면서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남대문경찰서는 이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다가 최근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 조직폭력배 오모씨와 만난 사실이 들통나 지난 22일 대기발령된 강대원 경정이 한화 측으로부터 ‘검은 유혹’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한 사실을 24일 ‘보도예상 보고서’를 통해 경찰청에 보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 경정은 “수사 당시 한화 법무팀장이 ‘평생을 보장해줄 테니 수사 결과를 협상하자.’는 제의를 해왔으나 단호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강 경정은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화 법무팀 소속 변호사가 ‘평생을 먹여 살려 줄 테니 사건을 묻어달라.’고 회유를 시도했는데 안 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화그룹 측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강 경정이 주장한 지난달 30일 강 경정과 통화한 법무팀 변호사는 없으며, 변호사가 그런 말을 수사관에게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강 경정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등 법적인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들의 확인 전화를 내내 받지 않던 강 경정은 이날 오후 2시쯤 남대문서에 나타나 “어차피 나갈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억울하다.”며 고성을 지르는 등 극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매수 의혹이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혹을 받은 차원에서…. 프라이버시라…. 안 하려 했는데….” 등 횡설수설하다가 오후 3시쯤 경찰서를 떠났다.●강 경정,“경찰 고위층 압력 실태 폭로하겠다” 강 경정은 또 오씨와의 만남에 대해 “오씨와 만날 때는 오씨가 사건에 개입되어 있는 줄 몰랐다. 수사 단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씨를 만나 정보를 입수했으며 신뢰를 주기 위해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사건의 첩보를 처음 입수했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모 경위가 사건이 이첩된 뒤에도 홀로 수사하며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 경정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경찰 고위층 ‘압력’의 실체를 7월 발간될 회고록에서 밝히겠다.”는 주장도 했다. 특히 지난 23일 밤에는 사이버경찰청 게시판에 “오씨와의 만남을 보도한 한 방송사가 본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여 30년 공직생활 중 수사만 하던 본인을 일순간에 무참히 짓밟고 명예를 훼손했다. 정면 대응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글을 통해 “지난해 1월 용산초교 엽기살인 사건을 해결한 뒤 이 방송사 기자와 갈등을 겪어 승진도 못하고 좌천됐다.”고 주장했다.●“경찰 수뇌부까지 감찰 대상”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번 사건의 첩보를 처음 입수했으나 3월말 서울경찰청 고위층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남대문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강 경정으로부터 이런 진술을 확보하고 진위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감사관실 관계자는 “감찰이 진행중인 사항에 대해 말하기 어렵지만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으면 경찰청장이든 서울청장이든 예외없이 대상으로 삼아 수사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경찰청과 별도로 강 경정이 오씨와 만나 뇌물 제공, 회유, 청탁 등을 받았는지 여부 등을 파악한 뒤 조만간 강 경정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울산고래축제 17~20일

    울산고래축제 17~20일

    ‘고래와 놀자.’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고래축제가 고래도시 울산에서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신비스럽기만 한 고래의 세계를 이해하고 고래도시 울산의 역사·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3회째. 울산 남구가 주최하고 울산고래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해 남구 장생포해양공원과 시가지 일원에서 고래를 테마로 보고 즐기고 체험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푸른 울산, 오감체험 고래여행 속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야제를 시작으로 공식·공연·특별연계·참여체험·부대 행사 등으로 구분해 4일동안 계속된다. 전야제 행사로 선사시대 고래 그림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현장에서 17일 오후 5시 고유제를 지낸 뒤 오후 8시부터 울산시가지에서 1800여명이 참가하는 화려한 거리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진다. 18일에는 장생포 해양공원에서 개막식·식전·식후행사 등 공식행사가 열린다. 공연행사로는 고래잡이재현과 고래가요제, 일본·중국·러시아의 해외공연단 초청공연, 퓨전 콘서트 등이 마련됐다. 극경회유해면 탐사·고래학술 심포지엄·고래영화 상영·해군 함정 및 해경소방정 승선·고래마라톤·고래웅변대회·울산말(사투리) 경연대회 등이 특별행사로 열린다. 극경회유해면(천연기념물 제126호)탐사는 미리 신청받은 300여명을 대상으로 18∼20일 하루 한차례 100여명씩 나누어 울산해경 방재선을 타고 귀신고래 회유경로인 울산항∼울기등대∼간절곶 해상을 돌아보는 행사다. 이밖에 고래퀴즈대회·고래골든벨·고래고함지르기·고래얼음조각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참여·체험·전시 행사도 개최된다.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래잡이 항구였던 장생포에는 국내 유일한 고래박물관(2005년 5월 개관)이 있으며 장생포항 주변과 시내 여러곳에는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된 고래(혼획고래)고기를 파는 고래음식점이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제주은갈치 6월 조업금지

    “6월 한달간은 갈치를 잡지 않기로 했습니다.” 옥돔과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인기 어종인 ‘은갈치’보호를 위해 제주 지역 갈치잡이 어민들이 발벗고 나섰다. 제주도어선주협의회는 10일 제주 근해와 일본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 해역에서 연중 휴어기없이 주낙(여러 개의 낚시를 동시에 드리워 낚아올리는 어구 어법)으로 갈치를 잡아왔던 도내 170여척의 연승어선들이 올해 처음으로 6월 한달동안 갈치잡이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주 연승어선 선주들의 이같은 결정은 연중 조업에 따른 자원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1년에 가까운 고민 끝에 내린 것이다. 조업을 하지 않는 시기를 6월로 정한 것은 이 시기에 5월부터 산란한 어미갈치가 새끼와 함께 회유해 연승어구에 걸려드는 갈치 어획량의 40% 정도를 어린고기가 차지해 상품성이 떨어지고 어자원 보호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평균 10㎏들이 상자당 40∼50마리가 들어가는 어린갈치의 위판가격은 4만∼5만원선으로, 상자당 33마리까지 들어가는 어미갈치 가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선주협의회 관계자는 “어선마다 7∼8명에 이르는 선원 관리와 갈치 수급 등의 문제가 있어 고심했다.”면서 “선원들에게는 갈치 판매가격이 높아지면 실질임금이 오를 것이라며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 지역 어민들은 주로 외줄낚시(채낚기)로 갈치를 잡았으나 1990년대 초부터 주낙을 이용한 연승어업 방식이 개발돼 전체 어획량의 70% 정도를 연승어업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 제주지역 갈치어획량은 2만3000여t, 어획고는 1600여억원이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청계산서 김회장에 맞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의혹 사건 피해자들은 8일 “청계산에서 김 회장에게 직접 맞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날 경찰조사를 받은 한화그룹 김모(51) 부속실장은 “북창동 S클럽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데려가 폭행한 사실은 있지만 김 회장과 아들은 현장에 없었다.”고 엇갈린 진술을 했다. 윤모씨 등 술집종업원 5명과 S클럽 조모 사장 등 6명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 청계산에 갔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그러는데 당연히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버지(김 회장)인 것 아니냐.”면서 “청계산 공사장에서는 아버지에게만 맞았고,S클럽에서는 아들에게 주먹과 발로 맞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 오모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 측으로부터 협박이나 회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건 직후 다 피해 있어 (한화 측과)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것을 믿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오전 경찰에 자진 출두해 1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은 김 실장은 김 회장이 청계산에 간 사실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면서도 자신이 피해자들을 청계산으로 데려가 폭행한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이 발언은 “김 회장 부자와 경호원 등 우리 측에서는 아무도 청계산에 가지 않았다.”는 그동안의 한화측 주장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김 실장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하고 오후 8시40분쯤 귀가시켰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사건 당일 현장 2곳에 있었던 범서방파 행동대장 출신 오모(54)씨가 사건 발생전 20대 청년 5∼6명에게 연락한 것을 확인하고 캐나다로 도피한 오씨에 대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소재 확인을 요청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승연회장 ‘보복폭행’ 의혹] 집·사무실 압수수색영장… 물증확보 총력

    경찰이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해 이르면 1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어서 김 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김 회장 영장 청구를 위한 물증 확보를 위해 김 회장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과 중구 장교동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피해자 6명 진술 일치 서울 남대문경찰서 장희곤 서장은 30일 중간 브피핑을 통해 “피해 종업원 6명이 일관되게 김 회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함에도 피의자가 이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아들을 조사한 뒤 보강수사를 거쳐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29일 오후 4시 남대문서에 자진출석한 김 회장은 11시간20여분 동안 진행된 경찰 조사를 마치고 30일 오전 3시20분쯤 귀가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인 청계산 폭행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김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피해자와 목격자 진술이 ‘김 회장이 보복폭행 현장에 모두 있었고 직접 폭력을 휘둘렀다.’는 내용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김 회장의 폭행 가담과 현장 지휘 사실이 대부분 인정된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술집 CCTV 고장나” 경찰은 이날 오후 귀국한 김 회장의 아들을 오후 11시5분부터 불러 밤샘 조사를 했다. 김 회장이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한 상황에서 경찰로서는 차남의 진술 확보에 주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27일 이동통신사에 김 회장의 휴대전화 발신 추적을 신청한 뒤 영장을 발부받아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S클럽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는 고장나 물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청계산 폭행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에 규정된 집단 체포·감금의 경우 2년 이상 유기징역 형에 해당하는 사안이어서 김 회장의 혐의 내용 중 가장 무거운 것에 속한다. 경찰은 휴대전화 발신 추적 결과와 함께 청담동 G가라오케와 청계산, 북창동 S클럽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차남의 친구로부터 증언을 확보하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또 김 회장 집과 집무실 압수수색을 통해 김 회장 일가가 피해자에 대한 회유·협박이나 수사 무마 등을 시도했는지 등 정황을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입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발부 여부는 檢·法 손에 먼저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판단한다. 검찰은 경찰에 보강 수사를 지시할 수도 있고 김 회장을 다시 검찰로 불러 직접 조사하거나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 불구속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현재 검찰 내에서도 “납치 혐의가 사실이라면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과 “구속까지 할 사안은 아니지 않으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검찰 내 결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법원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지금까지는 목격자 증언 외에 확실한 물증이 없어 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법원은 “구속 영장 발부를 처벌의 일부로 생각하는 관행을 없애겠다.”며 검찰과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구속영장 발부에 엄격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데다 김 회장이 혐의를 끝까지 부인, 증거인멸 우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임일영 김효섭 박창규기자argus@seoul.co.kr
  • 김승연회장 이르면 오늘 영장

    김승연회장 이르면 오늘 영장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30일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서울남대문경찰서는 자신의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에게 보복 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 회장을 상대로 29일 오후 4시부터 30일 새벽까지 폭행을 직접 행사했는지 여부, 폭행을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회장은 ‘1차 폭행’ 장소로 거론되는 청계산에는 가지 않았으며, 직접 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주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재벌총수가 폭행 사건으로 일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은 이날 밤 11시10분 수사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 회장이 주요 범죄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으로 일관해 저녁 식사 이후에는 피의자와 대질신문하려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김 회장 얼굴을 보여주고 확인했는데, 때린 사람이 맞다는 확인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따라 현재까지 조사된 내용만으로도 김 회장이 보복폭행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김 회장은 출두에 앞서 경찰서 밖에 마련된 포토라인에서 “개인적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의혹을 경찰 수사에서 밝히겠다.”고 밝혔다. 청계산에 직접 갔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폭력팀 내 진술녹화실에서 변호사 입회 아래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과 강력 2팀장으로부터 사건 전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김 회장을 상대로 지난달 8∼9일에 걸쳐 서울 북창동 S클럽 종업원들을 직접 폭행했는지와 폭행을 지시했는지 여부, 전기충격기와 쇠파이프 등 흉기를 사용해 폭행했는지와 조직폭력배 동원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또 피해자들을 납치 및 감금했다는 주장과 사건 발생 뒤 회유와 협박을 했다는 진술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를 캐물었다. 경찰은 김 회장의 차남이 30일 오후 6시20분 중국서 귀국해 자진 출두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승연 한화회장 ‘보복폭행’ 이것이 궁금하다

    김승연 한화회장 ‘보복폭행’ 이것이 궁금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구체적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재벌 총수가 아들의 보복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또 경찰이 첩보를 입수하고도 40일(?) 가까이 사실상 쉬쉬했다는 점도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회장이 직접 보복 폭행을 했고 총지휘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재계에서는 김 회장의 저돌적인 성격과 유별난 가족애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김 회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란 것이 주변의 반응이다. 김 회장은 세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둘째 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들들이 예일대 등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김 회장은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직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1981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26년 동안 그룹의 자산 규모를 20배 이상 키워낸 것도 그의 과감성과 추진력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993년에는 외화를 빼돌려 미국에 호화 주택을 구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재산 분배를 둘러싼 형제간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2004년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중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하루 전 미국으로 도피해 비난을 받았다. 그는 한화그룹 부회장을 사법처리하는 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된 같은 해 8월이 돼서야 돌아왔다. 경찰이 출국 금지를 요청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찰, 알아서 쉬쉬했나? 경찰이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확인돼 ‘덮어주기 수사’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9일 ‘한화그룹 회장 자녀가 폭행을 하고 있다.’는 112신고가 들어왔고, 사건 나흘 뒤인 같은 달 12일에는 한화 고문으로 올 초 영입된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화그룹 폭행사건을 조사하느냐.”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따라서 경찰의 첩보 입수 시점이 지난달 20일쯤이라는 경찰의 설명도 앞 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남대문경찰서에 내사 지시가 떨어진 것은 지난달 28일이다. 서울청 광역수사대에 입수된 첩보가 1주일이 넘어서야 남대문서로 내려온 것이다. 대형 사건을 수사해 언론 노출이 빈번한 광역수사대보다는 ‘관할’이라는 명분까지 있는 한산한(?) 일선 경찰서로 떠넘겼다는 의혹이 일기에 충분하다. 이후에도 경찰 수사는 지리멸렬하다가 지난 24일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뒤늦게 관련자 소환에 나섰다. 하지만 김 회장 부자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해외에 체류 중이어서 수사를 못했다.’고 둘러대는 어리숙함을 드러냈다. 경찰이 사건 직후 피해자 진술을 확보해 놓고도 은폐했다는 의혹도 있다. 경찰이 재벌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었거나(?) 외압에 따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 고위간부는 “초기 대응이 어리숙했다. 재벌총수가 끼었을 뿐 단순한 사건인데 시간만 보내다 경찰 이미지만 먹칠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들이 왜 피해사실을 숨길까? 경찰은 피해자들이 피해 진술을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수사팀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신속하게 피해자 진술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피해자들이 김 회장 측으로부터 금전적 회유나 협박을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종업원들이 사건 직후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다가 갑작스럽게 말을 뒤집은 점, 관련자 중 일부가 지방 등으로 잠적했던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남은 과제는? 경찰이 밝혀내야 할 핵심 의혹은 김 회장이 직접 폭력에 가담하거나 지시했는지 여부다. 김 회장이 지난달 8∼9일 청담동과 북창동에 경호원을 비롯해 체격이 건장한 남자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던 사실과 S클럽 종업원들이 다친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또 김 회장 일행에 의해 승합차에 태워져 시내 모처로 끌려간 뒤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이라면 단순 폭행이나 야간 폭력에 그치지 않고 납치 및 감금까지 저지른 것이 돼 강도 높은 사법처리가 불가피해진다. 아울러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은폐 시도나 수사 지연 등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는지도 파헤쳐야 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위압적 분위기에서 대환대출 보증

    Q결혼해 1남 1녀를 두었으나 남편이 1999년 6월 가출해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변 분의 도움을 받아 연립주택을 마련하였는데, 가출한 남편의 카드빚 독촉이 최근에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사용한 카드를 사용한 적도 본 적도 없었지만, 카드 회사 직원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빚을 갚으라고 전화하고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 찾아와서 저를 바깥으로 불러내서 남편의 카드 대금을 갚지 않아도 되니 대출금약정서에 서명해 달라면서 회유해 저는 겁도 나고 상황을 면하기 위해 승용차 안에서 서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오고 있고, 살고 있는 연립주택도 가압류 되었습니다. 돈 한 푼 받은 것 없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가게 생겼습니다. 억울합니다. -박정순(가명·52세) A남편의 카드 빚 상환을 위한 대환대출 보증을 서 주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최근 금융실무상 흔히 사용된 대환대출은 기존의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그 당시까지의 채무 원리금에 상당하는 새로운 대출을 하여, 그 대출금을 현실적으로 채무자에게 지급하지 않고 채무자의 원래 빚을 상환한 것으로 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존의 채무자가 대환대출을 받는 것은 특히 문제가 되는 사항이 없습니다. 문제는 대환대출을 실행하면서 관계 없는 제3자를 보증인으로 추가하는 경우입니다. 보증이라고 하는 것은 주채무자가 이행하지 않은 채무를 보증인이 이행하겠다고 하는 채권자와 보증인 사이의 약정입니다. 주채무자가 갚지 않아서 보증인이 이행하고 나면 보증인이 갚은 금액을 주채무자가 보증인에게 상환하게 되니 실질적으로는 주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액면가에 보증인에게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상적으로 결제되는 카드 이용대금에 관하여 대환대출을 실행한다는 것은 주채무자인 신용카드이용자가 이미 변제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주채무자가 이미 연체에 빠져 있어 그 회수가 의문인 상황이라면 주채무자에 대한 채권은 액면금액과 상관 없이 실질가치는 0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가치가 없는 채권을 액면금액에 파는 것은 결국 그 금액에 상당하는 가치를 무상으로 이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증인으로부터 카드회사로 무상의 가치 이전은 물론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증인이 주채무자를 위하여 대신 빚을 갚아 주어 새 생활을 시작하게 하기 위하여 주채무자에게 증여를 할 의도일 수도 있고, 주채무자에게 새로 돈을 빌려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보증인은 그럴 만한 자력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것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정당화 사유 내지는 대가가 없는 대환대출 보증은 일반적으로 그 정당성에 의문이 있습니다. 개인의 소유권 보호와 의사결정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약의 체결에 의한 재화, 용역의 교환을 수단으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실정법상으로도 몇 가지 사유로 대환대출보증의 효력을 다툴 수 있습니다. 첫째, 민법 제104조에 의하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현저하게 공정을 잃었다고 한다고 함은 당사자가 자신의 가치를 제공하고 받은 반대급부가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을 뜻합니다. 대환대출 보증의 실질을 위와 같이 변제가치를 잃은 채권을 보증인이 액면가에 사는 것으로 이해하면 당연히 이와 같은 불균형이 있습니다. 문제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인데, 50세까지 아이 둘 데리고 혼자서 힘들게 살아 온 주부가 집요한 빚독촉을 받아 온 상황에서라면 궁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민법 제110조 제1항에 의해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 즉 속이거나 협박을 한 것입니다. 이 사기, 강박은 경우에 따라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고 같이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의 카드 대금을 갚지 않아도 되니 서명하라고 한 것은 사기로 해석할 수도 있고 서명하지 않으면 계속 독촉을 하여 괴롭게 하겠다고 위협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에 의하면, 카드회사는 대출을 시행하면서 보증을 받아내는 사업자로서 고객인 박정순 씨에게 약관의 내용을 계약의 종류에 따라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방법으로 명시하고, 당해 약관의 사본을 교부하여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약관에 정하여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어야 합니다. 이 부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정순씨의 경우, 채무부존재확인의 소송을 제기하고 가압류에 대하여는 이의신청을 내는 방법으로 권리의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김석의 갯바위 통신] 방조제 학꽁치 낚시

    립스틱 짙게 바른 ‘학꽁치’를 아시나요? 일식집이나 초밥집에서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맛볼 수 있는 학꽁치. 일본이름으로 ‘사요리’라고도 하며 주둥이가 학의 부리처럼 길고 끝이 붉다. 꽁치와는 모양새와 맛이 확연히 다른 어종이다. 담백하고 쫄깃한 회맛이 일품인지라, 이 시기부터는 여타 어종들보다 학꽁치만 낚으면서 즐기는 생활 낚시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낚싯대를 들 힘만 있으면 간단한 채비로 어른, 아이 누구나 쉽게 낚을 수 있는 것이 학꽁치 낚시의 매력이다. 또 학꽁치들은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낱마리 조과란 있을 수 없다. 가족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오랜시간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학꽁치 낚시는 일년 내내 이루어진다. 하지만 봄철에는 씨알이 굵어지기 때문에 ‘학꽁치 한 마리가 형광등 크기만 하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한다. 학꽁치는 상층부로 떠다니는 고기라 찌낚시로 낚아낸다.6.3∼7.2m 정도의 민장대에 작은 고추찌를 달아서 낚기도 하고, 민물 릴대나 4.5∼5.3m 정도의 바다 1호대에 구멍찌와 막대찌를 이단찌로 연결하기도 한다. 민장대나 릴대의 사용에도 요령이 있다. 민장대는 거리에 한계가 있어 학꽁치가 발밑까지 다가왔을 때만 낚을 수 있다. 민장대 길이가 닿는 거리에는 씨알도 작고 입질도 미약한 작은 학꽁치만 바글거려 오히려 낚아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때는 릴대를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씨알굵은 학꽁치를 낚을 수 있다. 큰 학꽁치는 15∼20m 이상 먼 거리에서 회유하기 때문에 릴대를 사용, 찌밑수심 3∼4m를 주고 멀리 던져 살살 끌어주면 굵은 학꽁치만 골라 낚을 수 있는 것이다. 밑밥을 사용하면 달려드는 학꽁치떼가 발밑에서 빠져 나가지 않기 때문에 가지고 간 밑밥이 떨어질 때까지 낚을 수 있다. 주로 사용하는 미끼는 곤쟁이와 크릴. 연한 선홍빛보다는 붉은 색이 도는 크릴을 사용해야 보다 나은 조과를 올릴 수 있다. 학꽁치는 유독 빨간색에 더 잘 달려드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릴낚시 이단찌 채비는 입질 파악을 위한 어신찌로 소형의 둥근 스티로폼찌나 목줄찌를 달고, 이어 가벼운 어신찌를 원투하기 위해 던질찌를 함께 달아주는 형식이다. 던질찌는 아무 구멍찌나 써도 무방하다. 학꽁치가 입질하면 어신찌가 물속으로 빨려 든다. 이때 낚싯대를 가볍게 당기기만 해도 충분한 챔질이 된다. 입질이 약할 때는 어신찌가 잠기지 않고 옆으로만 가는 경우도 있다. 어신찌가 던질찌에서 멀어지는 때를 챔질 타이밍으로 보면 된다. 학꽁치는 성질이 급해 낚여 올라오면 금방 죽는다. 따라서 얼음을 담은 소형 아이스박스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또 가늘고 약한 학꽁치 비늘을 손이나 옷에 묻히기 싫다면 면장갑도 챙겨야 한다. 전남 여수시에 위치한 신월동 방조제 앞에는 지금 학꽁치 낚시가 한창이다. 약 500m 길이의 이 방조제는 차에서 내리면 곧바로 학꽁치 낚시터가 된다. 떠나자!가족과 함께 오동도의 활짝 핀 동백꽃도 보고 학꽁치회 맛도 볼 수 있는 여수로! 출조문의는 여수 포인트 낚시(24시간,011-9624-0049).
  • 어머니가 딸의 이혼 위해 38년 ‘공들인’ 사연

    “뭐라구요? 어머니가 딸을 이혼시키기 위해 38년 동안 핍박했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까.” 중국 대륙에 어머니의 끈질긴 성화를 못이겨 30년 이상을 금실 좋게 오순도순 살아온 남편이 결국 헤어지는 아픔을 맛본 60대 여성이 등장,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 진수이(金水)구에 살고 있는 한 60대 할머니는 30여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오던 남편과 이혼을 했는데,그 이유가 그녀의 어머니가 끈질긴 이혼 핍박 까닭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고 하남상보(河南商報)가 1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저우(周·62)모씨.그녀는 남편 류(柳·68)모씨 외도 등 부부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무려 38년간 이혼하라는 어머니의 간단없는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이혼하게 된 기막한 사연을 안고 있는 비운의 여성이다. 사실 저우씨의 어머니는 38년 전인 그녀가 류씨와 결혼할 때부터 집요하게 반대했다.당시 저우씨는 상하이(上海)에 살고 있는데 비해,류씨는 정저우시에 살고 있었다.딸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었던 어머니는 장래 사위될 류씨에게 상하이의 처갓집 근처에서 근무해달고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류씨는 저우씨와 결혼한 뒤 장모의 말을 일축하고 정저우에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이에 그녀의 어머니는 저우씨 부부가 집에 들릴 때마다 “상하이에서 할 일도 많고 돈도 벌기 쉬운데,왜 정저우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냐?”고 핍박했다.이에 화가 난 류씨는 장모에게 우리의 집과 회사가 모두 정저우에 있어 옮길 수 없다며 버텼다. 이에 대해 저우씨의 어머니는 그녀대로 화가 났다.사위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서운한 감정이 시나브로 쌓여갔다.저우씨도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자꾸 핍박하는데 대해 불쾌해진 탓에,자연히 친정 가는 것을 꺼리게 됐다. 그러던중 얼마전 저우씨가 정년 퇴직을 한 뒤 늙어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주 상하이의 친청 나들이를 시작했다.연로하신 어머니(93)가 또다시 이혼을 하고 이곳에 와 함께 살자고 권유하자,다소 연민의 마음도 깊어졌다. 게다가 저우씨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큰 아들은 정저우에서 근무하는 까닭에 별 문제가 없지만,상하이에서 근무하는 둘째 아들이 상하이 후커우(戶口·주민등록)을 얻을 수 없었다. 이에 저우씨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너가 만일 류씨와 이혼하고 이곳에 오면 내가 너의 둘째 아들이 후커우를 얻도록 해주는 것은 물론 둘째 아들에게 나의 집 등을 유산으로 물려주겠다.”고 은근히 회유했다. 저우씨는 이 얘기를 듣고 마음이 흔들렸지만 지난 38년간 오순도순 잘 살아왔는데,남편과 도저히 헤어질 수는 없었다.특히 남편 류씨가 뇌졸중을 일으켜 반신불수로 거동이 불편해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더욱 이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류씨의 생각은 달랐다.류씨는 “어머니의 나이가 93살이어서 얼마를 더 살겠느냐.”며 “어머니의 소원대로 우리가 이혼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다신 재혼하면 되지 않느냐?”며 저우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이들 부부는 안타깝게도 금실 좋게 살아오던 38년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는 이혼 재판을 받고 남남으로 돌아섰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지역명품의 재발견] 제주 추자굴비

    ‘영광굴비 물렀거라, 추자굴비 납신다.’ 제주가 추자도 청정바다에서 잡은 참조기 굴비를 명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추자도 특산품 하면 멸치젓을 꼽지만 알고 보면 추자도의 특산품은 추자 참조기다.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깊은 암반층으로 구성된 청정해역인 추자도 근해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예로부터 고급어종인 참조기가 산란, 회유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황금어장이다. 추자도 연해에서 잡히는 참조기는 연간 7500t가량으로 국내 전체 1만 1000t의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그동안 추자도에서는 굴비를 소금에 재는 염장기술, 굴비를 엮는 기술 등이 부족해 잡히는 생조기를 전남 영광군에 공급하는 역할에 만족해 왔다. 추자산 굴비는 2004년부터 국내 대형할인점과 손잡고 ‘추자도 굴비’라는 자체 브랜드로 공급을 시작했지만 영광굴비의 아성에 가려 아직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제주시는 최근 추자도 어민과 수협 등이 참가하는 ‘추자 참조기굴비 육성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자굴비 명품브랜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시는 7월까지 15억원을 들여 참조기 굴비 가공공장 현대화를 통해 위생적인 생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지역 유통업체에 대해서는 수산물이력제 등록 등을 통해 추자 참조기의 차별화에 나선다. 서울 제주향우회 등을 통해 추자 참조기 굴비 소비운동을 벌이고 TV홈쇼핑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김창선(47) 추자면장은 “추자도에는 중국 등 외국 수산물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혹시나 값싼 저질의 외국산과 섞어 파는 게 아닌가.’라는 원산지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주도의 부속섬이다. 상·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대구 ‘新에너지 도시’중심에 서다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가 태양광을 에너지로 이용하는 솔라시티로 개발된다. 혁신도시를 솔라시티로 개발하는 것은 대구가 처음이다. 대구시는 9일 시청 상황실에서 에너지관리공단과 한국토지공사 등과 함께 ‘대구신서혁신도시 솔라시티 건설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9월에 착공하는 신서혁신도시에는 공동주택 8423가구, 단독연립주택 889가구, 한국가스공사 등 이전공공기관 12곳, 학교 11곳, 공용청사 8곳, 기타 상가건물 등이 들어선다. 신서혁신도시는 2012년 완공된다. 솔라시티 건설을 위해 대구시는 혁신도시 모든 건물에 태양열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솔라시티가 건설되면 연간 2만 3292여㎿의 전기를 생산,18억 6300여만원 정도의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연간 3070여t이나 줄일 수 있다. 사업비는 모두 1850억원이 들어가며 60%는 정부에서 지원한다. 나머지 40%는 대구시와 건물주 등이 부담하는 형식이다. 이날 업무협약에서 토공은 건물을 태양광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남향으로 배치하고 건물의 동간 거리도 충분히 확보하도록 도시설계를 하기로 했다. 또 에너지공단은 기술지원은 물론 설치비 1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구시는 행정적 지원과 함께 단독연립주택에 가구당 100만원씩 설치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한편 대구시는 성서산업단지 시설안전관리사업소내 5000여평의 부지에 300억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신·재생에너지센터를 건립하기로 에너지공단과 합의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솔라시티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에너지 절약형 도시”라면서 “신서혁신도시 솔라시티 건설은 세계육상대회유치와 함께 대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朴 “내가 위기극복 적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5일 충남 천안, 공주를 방문, 지역 당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세몰이에 나섰다. 전날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충남 아산, 당진을 방문한 터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박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은 한나라당과 우리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대사”라며 “세번이나 기회를 줬는데 이번에도 (정권교체를)이루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흉탄에 잃는 등 일생을 통해 위기를 겪었다.”며 “난 누구보다도 위기에 강한 강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며 “많은 위기를 겪으며 강한 여자가 됐는데 이 위기도 겪어내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자신이 ‘위기극복의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이 전 시장이 당내 ‘줄세우기’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데 대해 박 전 대표 측 한선교 대변인은 “문제는 회유와 협박, 금권을 동원해서 강제로 줄을 세우는 것”이라며 “자발적 선택에 의한 줄서기와는 구분해야 된다.”고 말해 신경전을 펼쳤다.천안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비폭력 평화정신’ 함석헌 사상가 반열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1901∼1989)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집 ‘씨알 생명 평화(씨알사상연구회 지음, 한길사 펴냄)’가 발간됐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함석헌의 철학이 다산 정약용에 이은 20세기의 한국철학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의 독실한 개신교 장로교회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16살에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3·1운동에 가담한 연유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오산학교로 편입한다. 함석헌이 평생동안 진리의 화두로 삼았던 ‘씨알(원래 알의 ㅏ는 아래아 ㆍ다)’사상은 이때 오산학교에서 싹텄다.일본의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독창적인 민족사관을 형성하고, 이후 오산학교에서 10년간 역사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1938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탄압이 노골화되면서 학교에서 추방당한 함석헌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목 등으로 일제시대에 모두 4번 감옥을 가게 된다. 47년 공산주의자들의 회유 정책을 피해 가족을 뒤로 하고 월남한 함석헌은 이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성서 공부 모임을 계속했던 그는 56년 진보 월간지 ‘사상계’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을 발표하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해 70년 일흔살의 나이로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다. 진보적 기독교 지식인과 재야운동을 펼친 그는 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85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다.87년 암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던 중 89년 일흔여덟의 나이로 소천했다. 함석헌은 신앙과 교육을 비롯해 농사를 생의 지표로 삼았다. 씨알사상은 그가 농사꾼의 한 사람으로서 터득한 지혜 및 경험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김명수 경성대 신학대학장은 판단했다. 스스로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던 함석헌은 24∼25년 로망 롤랭의 간디전을 읽은 이후 평생 간디가 간 길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간디를 사랑하고 존경한 이유는 “조직적인 악에는 조직적인 사랑으로 대항할 것과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기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간디를 씨알 중의 씨알로 삼았던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 겉장에 “씨알은 자기 교육의 기구이자 어떤 종교, 어떤 정치 세력과도 관계가 없다.”며 “스스로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안다.”고 천명했다. 종교는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이를 평생 화두로 삼았다. 종교인이면서도 정치악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치는 나에게는 성가신 일입니다. 내가 정치를 털어버릴 수 있다면 기뻐 춤출 것입니다.”라고 간디봉사회 앞에서 연설했다. 일부 기독교는 ‘거대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의 종교 현실에서 함석헌의 겸손하고 진실을 추구했던 사상은 ‘큰 모순의 바위에 큰 쇠망치를 내린 것’과 같을 것이다.656쪽.2만원.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유치]대구 시민들 밤새 열광…폭죽…헹가래

    “대구 만세….” 대구가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이어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 큰일을 해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6800억원을 들여 추진한 밀라노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감을 잃었던 대구시민들이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대구시는 27일 밤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로 확정되는 순간 대구 시민들은 TV를 통해 2011년과 2013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 결정 현장 중계를 지켜봤다. 아파트 등 대규모 주거단지에서는 대구가 개최지로 확정된 순간 환호와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최지 결정 2시간 전인 오후 7시부터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거리응원을 펼친 2000여명의 시민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대구가 해냈다.”“대구 만세”를 외쳤다.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거리응원을 나온 성종현(35·대구시 중구 동인동)씨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는 대구시민의 염원이었다.”며 “2011년 대회를 계기로 대구가 보다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응원전에 참여한 서명수(54·건축업)씨는 “대구 시민으로서 이렇게 큰 국제 대회를 유치하게 돼 너무 자랑스럽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장재숙(45·여·상업)씨는 “막상 여기서 개최 소식을 들으니 시민들의 환호성에 마음이 설렌다.”며 “개최를 기념해 헹가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청 마라톤클럽 회원 100여명은 대회유치 홍보 깃발을 들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주변을 돌면서 유치를 자축했다. 대구시청 직원 장은경(40·여)씨는 “주 경기장으로 사용될 대구월드컵경기장이 트랙, 조명, 전기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었고 이미 8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서명했다.”면서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점식(54)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단장도 “월드컵과 하계 올림픽, 육상선수권대회 등 ‘3대 대회’를 모두 유치한 국가가 됐다는 점에서 특히 자랑스럽다.”며 “지금까지 3대 대회를 모두 치른 국가는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선진 6개국에 불과해 의의가 더 크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조만간 대회조직위를 구성한 뒤 대회 관련 시설을 개보수하고 선수촌 및 미디어촌을 건립하는 등 대회 준비에 들어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불법 트롤어선 남해 ‘싹쓸이’

    우리나라 서·남해안 어장이 불법 조업으로 멍들고 있다. 서해안에는 중국 어선들이 몰려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으며, 남해안에는 대형 트롤어선과 중·대형 기선저인망어선들의 월경조업으로 연안 어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해경이 단속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21일 경남도에 따르면 대형 트롤어선과 중·대형 기선저인망어선이 연안을 침범, 불법 조업을 일삼고 있다. 수산업법상 대형 트롤어선과 중·대형 기선저인망어선 등은 근해어업으로 분류돼 있으며, 수산자원보호령에 규정된 동경 128도를 기준으로 동쪽 해역에서의 조업은 위법이다. 경남과 전남·부산지역 어민 1000여명은 20일 경남 사천시 수협냉동창고 앞 광장에서 ‘멸치잡이 어업인 생계대책 쟁취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 대형 트롤어선과 중·대형 기선저인망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을 촉구했다. ●고기 씨를 말리는 불법조업 대형 어선들은 주로 통영시 홍도와 남해군 세존도 부근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일삼는다. 이 해역은 넙치와 가자미등 저서어류의 서식지이며, 남해안 특산물인 멸치 산란장이다. 이 어선들은 야간이나 기상악화를 틈타 배 이름을 가린 채 코가 작은 그물로 바다 밑을 어 어린고기까지 닥치는 대로 남획하고 있다. 요즘은 산란장을 찾아 회유하는 멸치떼를 싹쓸이해 사료용이나 젓갈용으로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대 해양과학대 장충식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대형 어선의 멸치 어획량은 연간 4만 7000여t에 달한다. 이는 국내 전체 생산량 26만 5000t의 18%이다. ●“무서워서 단속못한다.” 대형 어선의 불법조업에 당국은 사실상 단속을 못하고 있다. 어업 지도선이 불법조업 현장을 적발해도 배가 워낙 큰 데다 파도가 높아 자칫 인명피해가 우려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해 애써 외면하는 실정이다. 올들어 단속실적은 해경이 3척을 적발, 입건했을 뿐 어업지도선은 단 한 척도 단속하지 못했다. 도 관계자는 “대형 어선의 불법조업을 뻔히 알면서도 단속할 수 없다.”며 “100t이 넘는 배가 단속선을 향해 돌진해 오면 피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한 트롤어선은 단속을 못하고 있다. ●예견된 불법조업 이들 대형 어선의 월경조업은 예견된 일이다. 전문가들은 “한·일어업협정으로 어장이 축소된 만큼 감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안이한 대책을 지적했다. 이들 어선의 조업구역은 제주도 남방 및 동중국해와 일본 오키군도, 센카쿠열도부근 해역이다. 한·일어업협정으로 대부분 시장을 잃었다. 게다가 정부의 감척사업조차 미흡해 결국 연안 침범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해양수산부는 감척사업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최근 용역을 발주했다. 국내에 등록된 대형트롤어선은 59척이고, 중·대형 기선저인망어선은 외끌이가 97척이며 쌍끌이는 110척에 달한다. 이들 규모는 보통 100∼130t규모이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 관계자는 이에대해 “그물에 멸치가 혼획될 뿐”이라며 “일부 어선을 제외한 나머지는 조업구역을 지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覇者)로 등장하기 전까지, 명이 상대하기에 가장 버겁고 까다롭게 여긴 대상은 예허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르하치가 하다, 호이파, 울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예허는 고립되었다. 명은 이제 예허를 다독여 누르하치의 후금을 견제하려 했고, 위기에 처한 예허도 명에 의지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흔히 누르하치를 청 태조(太祖)라고 부르지만, 그가 애초부터 명에게 도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명과 후금 사이의 현저한 국력 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과 맞서는 것을 애써 피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명, 예허와 결탁해 만주 견제 누르하치에게 복종과 배신을 거듭했던 부잔타이는 1613년 울라가 망하자 예허로 망명한다. 같은 해 9월, 누르하치는 예허에 세차례나 사자를 보내 부잔타이를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예허가 자신의 요구를 일축하자 누르하치는 4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예허 정복에 나섰다. 다급해진 예허의 국주 긴타이시(錦台什)는 명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누르하치가 예허를 정복하고 나면 랴오양(遼陽)을 쳐서 수도로 삼고 개원(開原)과 철령(鐵嶺)을 목초지로 만들 것’이라는 ‘경고’까지 곁들였다. 명은 누르하치에게 사자를 보내 예허를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한편, 병력 1000명을 예허로 파견했다. 누르하치를 견제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황제의 ‘명령’을 접한 누르하치는 명에 보내는 국서에서, 과거 예허가 주동이 된 해서(海西)연합군이 자신을 먼저 침략했던 것과 부잔타이가 배신을 거듭했던 사실을 적고 자신의 예허 공격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명이 예허만 편드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누르하치가 국서를 들고 명군 주둔지인 푸순성(撫順城)까지 직접 가서 전달했던 점이다. 당시 누르하치는 명에게 여전히 공손한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명과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려는 누르하치의 바람과는 달리 명의 견제와 압박은 갈수록 커져갔다. 1615년, 명의 광녕총병(廣寧總兵) 장승음(張承蔭)은 시하(柴河), 무안(撫安), 삼차(三 ) 등지에 대대로 살았던 만주의 농민들을 내쫓고, 수확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허투알라와 푸순 사이에 위치한 세곳은 누르하치가 공들여 경작하고 있던 땅이었다. 명은 경작과 수확을 막아 경제적 기반을 차단함으로써 누르하치의 숨통을 조이려 했던 것이다. 누르하치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사실 그는 격분할 만했다. 누르하치는 1608년 푸순 지역의 명군 지휘관들로부터 과거부터 대대로 살아온 자신의 거주영역을 존중해 준다는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당시 백마를 잡아 하늘에 맹서하고,‘만일 약속한 경계를 침범하면 침입자를 죽일 수 있고, 침입자를 그대로 두면 묵인한 사람이 재앙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누르하치는 명의 사자를 만난 자리에서 장승음이 맹서를 어겼다고 성토하고,“대국이 소국이 될 수 있고, 소국이 대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명과의 정면 대결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공격´ 주장 신료 말리며 역량 키워 1615년, 명이 일방적으로 예허의 편을 들고 경작까지 금지하는 조처를 취하자 누르하치의 신료들은 격앙됐다. 그들은 당장 명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누르하치는 신중했다. 그는 신료들에게 ‘명을 치려면 하늘이 우리를 인정하여 도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충분한 저축이 없기 때문에 명을 공격하여 약간의 승리를 얻어봤자, 백성들만 고달프게 될 뿐’이라고 공격론을 일축했다.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자 평가였다. 당시 아무리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명은 여전히 대국이자 강국이었다.‘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명의 인구는 만주보다 수백배나 많았고, 명의 대군은 만주가 갖추지 못한 화포(火砲)로 무장하고 있었다. 장승음의 ‘견제 조처’가 나온 직후의 ‘만주실록(滿洲實錄)’을 보면, 내실(內實)을 다지기 위해 애쓰는 누르하치의 모습이 부쩍 많이 나타난다. 만주의 각 니루(牛 )에서 장정 열명과 소 네 마리씩을 내게 하여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경작에 힘쓰도록 한 것, 창고를 세워 식량을 저장하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전담관원을 임명한 것, 신료들에게 쓸 만한 인재를 추천하라고 강조한 것, 백성들이 소송(訴訟)을 제기한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함을 없애라고 강조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무렵 국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누르하치가 보인 행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몽골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굳게 했던 점이다.1614년 4월부터 1615년 1월까지 10개월 남짓한 기간 만주는 몽골과 모두 다섯 차례나 혼인관계를 맺는다. 1614년에는 홍타이지를 비롯한 누르하치의 네 아들들이 몽골의 자루트( 特)와 코르친(科爾沁) 부족의 딸들을 아내로 맞았다.1615년에는 누르하치가 코르친 부족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1617년 1월, 누르하치의 장인인 코르친 부족의 밍간(明安) 국주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이 오자, 누르하치는 왕비와 모든 신료들을 대동하고 허투알라에서 100리나 떨어진 곳까지 마중을 나갔다. 밍간은 누르하치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허투알라에서 한달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이렇게 중첩된 사돈관계를 통해 우호를 유지했던 것은 만주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실제 1618년 누르하치가 명에게 선전포고하고 푸순을 공략할 때, 원정군 가운데는 그의 몽골인 사위들도 끼어 있었다. 당시 몽골은 남쪽으로 명, 동쪽으로 만주 사이에 위치한 전략 요충이었다. 누르하치가 명에 대한 섣부른 공격 대신 몽골을 회유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7대 원한´ 내걸고 명에 선전포고 누르하치는 명과의 격돌을 피하면서 내실을 다지려 했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후금(後金)의 건국을 선포하고, 칸(汗)으로 즉위했던 1616년. 명 조정은 광녕 순무(巡撫)로 이유한(李惟翰)이란 인물을 임명했다. 광녕 순무는 사실상 요동의 군사업무를 책임지는 자리이자, 누르하치 등 여진 부족들과 교섭하는 최고위급 ‘채널’이었다. 누르하치는 이유한이 새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자 신료 강구리(綱古里)와 팡기나(方吉納)를 인사차 파견했다. 그런데 이유한은 강구리를 비롯한 후금의 사절 11명을 쇠사슬로 묶어 구금해 버렸다. 이어 사자를 보내, 누르하치가 경계를 넘어온 한인(漢人)들을 죽인 것을 질책하고 ‘한인 살해’에 가담한 자들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누르하치는 과거 ‘월경한 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재앙이 자신에게 미친다.’고 비석에 새겼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사자를 설득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결국 광녕에 억류된 강구리 등을 살리기 위해 편법을 쓴다. 후금이 구금하고 있던 예허의 포로 10명을 ‘한인 살해자’로 이유한에게 넘겼던 것이다. 강구리 등은 약속대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누르하치는 명을 공격할 결심을 굳히게 된다.1618년 4월13일. 누르하치는 신료와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누르하치는 그 자리에서 명을 공격해야만 하는 ‘일곱가지 원한’, 이른바 칠대한을 제시했다.1583년, 이성량이 자신의 부조(父祖)를 살해했던 것이 첫 번째 원한이었다. 나머지 여섯 가지는 명이 예허를 편든 것, 맹서를 어기고 한인들의 월경을 방조한 것, 만주인들을 세 주거지에서 내쫓고 경작과 수확을 금지한 것 등이 골자였다. 명이 자신과 후금을 능멸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윽고 제천의식이 끝나자 기병과 보병 2만명으로 편성된 원정군이 푸순성을 향해 진격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명청교체(明淸交替)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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