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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세 차례 암 이겨낸 청년…희망과 용기의 결혼식

    [월드피플+] 세 차례 암 이겨낸 청년…희망과 용기의 결혼식

    최근 미국에서 한 남성이 세 차례나 암을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피플닷컴 등 외신은 13일(현지시간) 최근 이와 같은 사연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23세 동갑내기 신혼부부 조이와 카일리 레닛의 사연을 소개했다. 3세 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는 신랑 조이는 13세 때 아동 암환자들과 그들의 형제자매를 위해 개최하는 한 캠프에 참석했다가 지금의 신부 카일리를 처음 만났다. 당시 카일리는 암환자였던 언니 테일러와 함께 캠프에 참석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나이인 데다가 관심사도 비슷해 금세 친구가 됐고 캠프가 끝난 뒤에도 연락하며 친구로 지냈다. 이후 두 사람의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게 된 시기는 18세, 조이의 암 재발이 드러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때 카일리의 언니는 암을 극복하지 못해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실의에 빠진 카일리에게 조이는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말 상대였다. 이리하여 싹튼 두 사람의 사랑은 애절했다. 다시 투병 생활을 시작한 조이는 병원에서만 있어야 했기에 두 사람은 처음 1년 동안은 병실에서만 만났다. 이후 조이는 기적처럼 두 번째 암을 극복했고, 카일리와 약혼식을 올렸다. 또한 그는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간호사가 되고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이의 암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재발하고 말았다. 또다시 입원하게 된 조이는 꼭 완쾌해서 카일리와 결혼하는 꿈을 꿨다. 그리고 카일리 역시 조이가 암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전적으로 믿었다. 두 사람은 병실에서 카일리의 언니 테일러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함께 마지막 여행을 했던 추억의 장소인 플로리다주 시크레스트 비치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조이는 세 번째 암마저 극복해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지난달 14일 시크레스트 해변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이날 결혼식은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까지 30명 정도가 모여 간소화게 치러졌다. 조이는 “신부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마침내 결혼하게 됐다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또한 “1년 전 이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난 결혼에 골인했다”면서 “말 그대로 즐거운 날도 힘든 날도 곁에 있어 준 여성과 말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카일리는 “이날 결혼식은 (세상을 떠난) 언니 테일러도 함께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연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면서 “힘든 일이 지나간 뒤에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박기철 분당제일교회 담임목사 “종교인 되기 전에 ‘좋은 사람’ 되자”

    [인터뷰 플러스] 박기철 분당제일교회 담임목사 “종교인 되기 전에 ‘좋은 사람’ 되자”

    “우리 신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경쟁 과열, 물질 제일주의 등으로 신음하는 세상에서 ‘결국은 교회가 희망’이라고 외치는 교회가 있다. 종교인들의 잘못된 행위와 교회의 타락을 지적하는 여론 속에서 ‘종교인 이전에 올바른 사람들이 되자’고 자성하는 목사가 있다. 경기 용인 분당제일교회와 박기철 담임목사 이야기다. 분당제일교회는 해외 젊은이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교회의 본질을 찾는 데에 집중해 왔다. 박 목사는 ‘교회의 본질’을 “예수의 사랑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교와 영성, 사랑의 실천이라는 가치를 붙잡고 선한 사역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박 목사와 마주해 오늘날 교회의 회복과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열방 선교를 교회 비전 중 하나로 하고 있고, 실제로 해외 선교에 힘을 쏟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어떻게 진행하고 계십니까. -중국에서 15년 가깝게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고 최근 2~3년 사이에 필리핀과 멕시코에서도 시작했습니다. 또 동티모르에 교회를 세우고 현지 선교사에게 후원을 하고 있고요. 저희 교회가 단독적으로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좋은 분들과 뜻을 합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방향성에 맞게 ‘힐미션’이라는 선교단체를 설립하고, 11개 선교분과를 통하여 현지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키우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중국에서 오래 선교를 하셨군요. 현황이 어떻게 됩니까. -중국에서 저희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절강성에서 저희가 매년 300명 정도를 집중교육하고 있어요.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곳, 절강성에서 많이 나옵니다. 저희는 조선족이 아닌 한족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현지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집중교육을 통하여 훈련하고, 한국으로 데려와서 장신대 등에서 전문교육을 받도록 연결시킵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재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교에 나서는 이유가 특별히 있는지요. -우리가 복음을 받았으니까요. 그 빚을 갚는 겁니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우리가 사랑의 빚을 져서 일어설 수 있었던 거잖아요. 세계 곳곳에 필요한 것들,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절박하고요. 우리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니 도울 수밖에 없지요. →사실 물질적인 도움보다 기술교육이 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저희는 사람을 세우는 일에 주력합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엔 망얀족 100만명 정도 되는 사람 중에 부족에서 한 사람씩 뽑아 아이들 30여 명의 교육을 후원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원하면 대학까지 쭉 공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건 그 아이들 한 명뿐 아니라 그 마을에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공부하면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지도자를 키워나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섬기는 나눔활동 또한 중점을 두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선교와 나눔에는 아무래도 교인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교회가 함께 섬겨야 할 수 있어요. 저 또한 목회를 하면서 사람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이 기본이라는 정신을 가지고 앞장서서 실천해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런 실천에도 열심이지만 다른 부분에서 영적인 침체와 영성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 오셨습니다. 이 시대 영성을 위기라고 보신다면,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종교를 갖게 되는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기복적인 데에 치우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정신이 없으면 위기인 것이죠.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를 이용하고자 하고 예수 이름으로 복을 받는 쪽으로 가는 경향이 너무나 많아요. 본질에 충실해야 해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기도와 말씀, 본질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지적되는 점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실제 종교별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가 가장 낮다는 게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그건 사실이죠.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결과가 이상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좋은데 믿는 사람이 싫다’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바르게 지도하려는 마음으로 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종교인이기 전에 사람이 되어라.’ 종교인이라면 더욱 정신적으로 바른 사람이어야지요. 인격 형성이 잘못된 사람들은 신앙을 가져도 자신의 잘못된 틀로 신앙생활을 해요. 물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그것이 개인의 인격수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려운 현실의 문제 속에서 기독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세속적인 가치관을 벗어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세상에서 넓은 길, 편하고 쉬운 길로 가려는 시대에 휩쓸리지 말고 흐름에 거슬러 거꾸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자 몸부림쳐야 합니다. 교회는 결국 세상에 속해 있되, 희망을 노래하고 비전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해요. ‘역시 교회는 다르구나’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세상과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하는 삶을 살되 의미 있고, 세상에 변화를 주고, 소망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결국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목사가 아무리 많아도 목사 한 사람이 사고를 칠 수도 있는 거고, 반대로 한 명의 목사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르게 행해서 건강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대의 사명감과 책임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부족한 ‘한 사람’을 비난하고 탓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교회를 보는 눈이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누굴 욕하면서 자기만 아닌 척하는 것 또한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선한 영향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 받지 않도록 몸부림칠 뿐입니다. →목사님께서 처음 목회자의 길을 가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6대를 이어 온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조부와 부친이 모두 장로님이신데 부친께서 저를 하나님 앞에 목회자로 키우겠다는 기도를 하셨어요. 서원기도라고 하는데 그만큼 열망이 있으셨던 거죠. 그런데 저는 그 길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목회자가 되는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생각해서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깨달았고, 뜨거운 소명감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들어갔죠. 44년 전 일입니다. →신학대에 들어간 이후로는 고민이 없으셨나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하였기에, 내게 주어진 사명 하나 가지고, 뭘 하든지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신대를 들어간 다음 해인 1974년에 저는 ‘내가 목회자로 살아갈 사람이니까 목회자로서 무엇을 할까’라고 묵상했을 때 ‘가장 어려운 이들을 섬기자’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계천 판자촌 빈민촌을 들어가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들을 찾아갔죠. 교육 못 받고, 병이 들고, 자녀들 문제와 수많은 아픔을 가진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평생 이분들 섬기며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지역이 1975년 말에 철거된 뒤에 그게 성남시가 되고 잠실이 됐지요.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아마 그분들과 일생을 같이하는 목사가 됐을 겁니다. →선교와 나눔 외에 또 어떤 활동에 힘을 쓰고 계십니까. -사람을 세우는 일에 관심이 많은 만큼 젊은이들, 청년들을 리더로 키워내는 일을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리더십학교라는 기관에 청년들을 보내서, 앞으로 한국의 크리스천 리더들로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20년 뒤, 30년 뒤 통일한국 시대의 일꾼을 키우는 겁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토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간 40명을 뽑아서 교육하는데, 거기에서 우리 교회 청년들을 비롯해 인재를 키우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총회훈련원 원장을 2년 임기로 맡았다가, 다시 2년 임기를 더 받아서 이제 3년차가 됐습니다. 총회훈련원은 우리 교단 내 목회자들과 장로들, 선교사들 등을 재교육하는 기관입니다. 목사와 장로와 선교사가 바르게 살면 엄청난 영향력이 있을 겁니다. 저희 교단에서 이제까지 이러한 재교육 역할을 제대로 못했어요. 그 운동에 뜻 있는 분들과 함께 헌신하고 있는 겁니다. →총회훈련원 이수를 하면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목사 안수 받은 뒤 7년차가 지나면 의무적으로 계속교육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사항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와서 피동적이던 사람이, ‘받고 보니까 좋구나’라는 얘기를 하죠,” 바라기는 목사·장로 계속교육을 확대함으로 개인의 변화는 물론 교단과 한국교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시고, 총회훈련원 원장까지 연임을 하시면 분당제일교회에는 시간을 많이 쓰시지 못하시는 것 아닙니까. -대외활동을 하는 부분도 목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하는 것들이 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제는 교인들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활동을 하는 사이에 교인들에게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에 3시30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요.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뛰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지역을 섬기는 분당제일교회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분당제일교회를 개척해서 이제 32년 됐습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가 ‘꿈·사랑·영성’이에요. 꿈이라는 건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생명을 구원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건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 속에서 녹여내고 실천하여 예수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영성이라는 건 기독교인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예수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는 영성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영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1993년부터 영성훈련 프로그램인 ‘사랑의동산’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평신도 약 5만 명, 목회자 약 6000명이 훈련을 받았어요. 이런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려 합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박기철 목사는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졸업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목회상담 전공) 장신대 목회전문대학원 졸업(목회신학박사) 現 분당제일교회 위임목사 現 총회훈련원 원장 現 장로회신학대학교 법인이사 現 사랑의동산 운영국장 前 총회 회록서기 前 한국장로교출판사 이사장 前 장신대총동문회 회장
  • [이사람 e향기] “공무원은 대민 봉사가 제일… 이념 따르려면 정당으로 가라”

    [이사람 e향기] “공무원은 대민 봉사가 제일… 이념 따르려면 정당으로 가라”

    최문환(60) 서울시교육청 서기관은 서울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을 마지막 보직으로 이달 말 퇴직한다. 최 서기관은 1982년 서울 동작초등학교 서무과장(9급)으로 교육행정공직을 시작했다. 35년간 교육행정의 한길에 혼신의 열정을 바쳐 온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로 ‘서울시교육청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팀장)’ 시절의 ‘육영재단’을 꼽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기였던 2006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만 3년이다. 이때 그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의 이사취임취소 처분을 했다. 이 기간 그는 정수장학회·삼성이건희장학재단 업무도 함께 봤다.“공익법인 담당 사무관으로 보직 발령을 받아 가니까 육영재단 설립을 취소하려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부임하기 전에 이미 ‘청문회를 실시한다’고 언론보도를 통해 공표된 상황이었다”는 그는 “그때 육영재단 업무처리에 있어 외압이나 이념에 치우칠 경우 사회적 큰 파장이 일 수도 있기 때문에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법과 원칙을 고수하느라 고군분투한 기억이 새롭다”고 회상했다. “공무원은 대민봉사가 제일이지 않습니까.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공무원”이라며 “이념을 찾으려면 정당으로 가라”는 최 서기관. 이는 최 서기관이 공익법인 담당 사무를 수행하는 동안 겪었던 뼈저린 체험담이다. “공직자는 정치논리와 이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편익만 보고 가야 한다”는 최 서기관의 당부가 가슴에 새겨지는 이유다.다음은 일문일답. →이달 말로 교육행정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공직에 투신한 지 얼마 만인가. -서울시 지방직과 총무처가 시행한 국가고시 2곳에 응시했다. 서울시가 먼저 1981년 9월 28일 중구청 세무1과로 공직 발령을 냈다. 그리고 이듬해 총무처에서 문교부로 공직 발령을 내자, 서울시교육청이 동작초등학교 서무과장(9급)으로 발령을 냈다. 그래서 서울시 공직을 사직하고, 교육행정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돌아보니 35년이란 긴 세월이었다. →35년 교육행정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는. -내가 뭐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나름대로 열심히 많은 업무를 보았지만, 지나고 보니 ‘파편’이다. 35년 공무원 생활이란 게 일관된 업무가 아니다. 전체를 보고 아우르는 안목은 길렀을지 모르지만 전문성을 키울 수 없었다. 아쉽다.→35년 공직생활에 인생관도 여러 번 바뀌었을 법한데. -공무원으로서 어떤 인생관을 가질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또 개선해 나가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공무원이 뭐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념과 철학을 갖는다면 그건 정당에 가야 하지 않겠나.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다. 공무원은 싫은 업무도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공무원은 대민봉사가 제일이다.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공무원이다. 정직하고 신뢰받는 행정을 위해 나름 열심히 했다. →공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육영재단이다. 2006년 1월 1일자로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팀장) 보직을 받아 가보니, 육영재단 설립을 취소시키려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2월까지 육영재단 취소를 위한 청문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의 관심사가 되었다. →공익법인이면 정수장학회 업무도 봤는가.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 재력가 김지태의 재산을 강탈해 설립된 재단이라고 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부산 김지태 씨 유족도 이를 돌려 달라고 소송을 낸 터였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직접 나와 우리를 조사했다. 여러 검토가 있었지만 우리는 공무원이니까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강탈한 위법은 맞지만 시효가 지나 돌려줄 수 없다’는 판결로 마무리됐다.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빼놓을 수 없는데, 어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익법인 업무가 때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때가 있다. 아마 내가 담당할 때도 그러한 때였던 것 같다. 선거 때마다 정치적인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삼성꿈나무장학재단’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때 나는 담당 팀장이었다. 교육부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당시 기부금 처리가 이슈가 되었었는데 교육청이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부가 직접 하게 된 거다. →앞에서 노무현 정부 때 육영재단 설립취소 절차가 진행됐다고 했다. 그런데 설립 취소되지 않았는데. -공익법인법에 재단설립을 취소하려면 3단계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사전원취임 취소’를 통해 당해 법인에 정상화 기회를 부여한 후에도 정상화 되지 못할 경우 청문회 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설립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취임 취소를 먼저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청문회라는 것은 설립취소를 할 경우 억울함이 있는가 없는가를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한 것이다. →청문회가 그렇게 중요한가. 청문회는 어떻게 진행되나. -청문회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청에서 청문위원을 선임해 청문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재단 사람을 불러서 객관적으로 진행하는 거다. 그 청문회 결과 개선의 여지가 없다거나 정상화될 수 없다는 판단을 객관적으로 내렸을 때 그때 ‘취소’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공서에서 설립취소를 명했을 때 육영재단의 설립취소가 정당한가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행정절차법으로 청문회 규정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왜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의 무리수를 두려고 했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당시 국정감사의 이슈였기에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공익법인 교육행정 경험을 살려 석사학위도 취득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대민 봉사를 위해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 도리가 아닌가. 행정 경험도 중요하지만 학문적인 지식 습득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무자 시절에는 야간대학에 진학해 주경야독했고, 간부가 되어서는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했다. 논문을 제출할 즈음 마침 공익법인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관련 업무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에서 제안한 일부가 업무에 채택되어 보람이 있었다. 당시 공익법인업무는 각 지역교육청에서 처리하고 본청은 정관변경 등 일부 주요업무만 보았었다. 대민 업무인 데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라 모두 기피하는 업무다 보니 민원인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하지 못했다. 지금은 본청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민원인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로 개선되었다. →‘송은잡기’란 서적을 편찬했다는데. -별거 아니다. 소박한 책 제호다. 송은은 아버님의 자호고, 잡기는 여러 가지 기록을 의미한다. 작년 2월 아버님이 영면하실 때 영전에 바친 조그만 책자다. 아버님은 한학을 하셨다. 한시와 비문, 서예작품을 많이 남기셨다. 그대로 두기가 아까웠다. 이를 모아서 엮고, 가족사와 조상도, 족보와 제례를 담아 조그만 책으로 만들었다. 가족에게는 아버님이 주신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귀가 따갑게 들은 일반 원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업무처리’ 다. 업무처리에 있어 공성성과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지키는 덕목은 ‘신뢰’와 ‘유연함’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고 애쓰고,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과장 시절에는 직원들에게 ‘서로 스트레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했다. 공무원이 되어 자리가 올라가면 권위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민원인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자고 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리더십으로 민원을 대하자. 우리 국민이 이런 공무원들이 많이 있다고 신뢰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해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공무원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주요 프로필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1988년 국제대학교 경제학사 2007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서울특별시 장학법인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1980년 서울시에서 1년 봉직 1981년 8월 1일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 35년 봉직. 주요보직으로 서울시의회 교육협력관, 서울시교육청 예산담당관,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역임.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로연수 중
  • ‘졸혼수업’ 조민기, 아내 김선진 타투+단발 변신에 “내 몸이다”

    ‘졸혼수업’ 조민기, 아내 김선진 타투+단발 변신에 “내 몸이다”

    파격변신에 도전한 아내 김선진의 모습에 남편인 배우 조민기가 버럭한다. 21일 MBN ‘따로 또 같이 부부라이프-졸혼수업(이하 졸혼수업)’ 2회 방송에서는 조민기?김선진 부부가 각자의 욜로하우스에서 365시간의 졸혼수업을 시작한다. 조민기는 ‘총각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옥탑방을, 김선진은 ‘살림은 잠시 안녕’을 외치며 풀옵션 오피스텔행을 선택, 본격 혼자 살기에 돌입한 이들 부부의 색다른 싱글 라이프에 시청자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날 김선진은 “졸혼수업 기간 동안 화려한 변신을 꿈꾼다”면서 한껏 들뜬 모습을 보였고, 평소 망설였던 헤어스타일부터 블링블링한 네일아트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타투까지 하나씩 도전에 나선 상황. 하지만 조민기는 아내의 변신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의외로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 놀라움을 안겼다. 김선진은 “요즘 유행하는 똑단발 헤어스타일로 하고 싶은데, 남편이 별로 안 내켜 하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남편이 나한테 단발 길이는 어정쩡하다면서, 지금 이 길이가 딱 좋다고 말한다. 아주 단호하다. 그래서 ‘정말 어울릴까’란 고민도 되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 김선진은 똑단발 헤어스타일 변신에 돌입해 기대감을 안겼다. 김선진은 “그런데 생각보다 주변 반응이 좋더라”면서 “남편이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지금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냐. 이번 기회에 ‘졸혼수업’을 통해 그 동안 못 해봤던 모든 걸 해보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 부부는 뜻하지 않은 타투전쟁으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김선진은 “남편에게 종종 타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또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 타투샵을 찾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조민기의 분노가 폭발한 것. 조민기는 “타투를 한 사람을 거부하진 않는다. 그런데 몸에 한 번 새기면 지우기 어렵기 때문에 내 몸에 타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내 몸 역시 내 몸이다”라고 그 이유에 대해 밝혔다. 이에 아내 김선진은 “나이가 있는 주부라고 해서 못할 건 없는 것 같다. 예쁘게 하면 그것도 하나의 패션이자 악세서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안젤리나 졸리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 도전한다”며 팽팽히 맞섰다. 조민기는 “왜 그게 하고 싶었냐”면서 “이해불가다”라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타투와 헤나를 헷갈린 김선진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진다. 21일 오후 11시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백년손님’ 성진우, “부부싸움에 아내 선풍기 던져…” 충격

    ‘백년손님’ 성진우, “부부싸움에 아내 선풍기 던져…” 충격

    ‘자기야-백년손님’ 성진우의 결혼 생활이 공개된다. 22일 방송되는 SBS ‘자기야-백년손님(이하 ‘백년손님’)’은 ‘다시보고 싶은 사위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 날 스튜디오에는 히트곡 ‘포기하지 마’를 불렀던 가수 성진우가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한다. 최근에서야 결혼 사실을 공개한 성진우는 자신보다 더 터프한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에피소드 등 이 날 자신의 결혼 생활을 가감 없이 공개할 예정. 또한 이날 VCR에서는 후포리 남서방과 장인 최윤탁, 장모 이춘자, 마라도 사위 박형일과 해녀장모 박순자, 김종진과 장모 최봉옥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앞서 진행된 녹화에서 성진우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관심을 모았다. 성진우는 “결혼 초 부부싸움을 할 때 화를 못 이겨 옆에 있던 각티슈를 집어서 벽을 향해 던진 적이 있다. 순간 아내는 선풍기를 내게 던졌다”라고 말했다. 이에 패널들이 “이후에 어떻게 됐냐”며 궁금해 하자 성진우는 “날아온 선풍기에 상처 입은 발을 부여잡고 ‘너 진짜 왜 이러냐, 왜 오빠 힘들게 하냐’고 하면서 약간 울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에 패널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원조 터프가이 성진우인데... 진짜 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MC 김원희가 “성진우 씨가 장모님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다고 들었다”며 어찌된 일인지 묻자 성진우는 “아내가 장을 보라고 준 30만 원을 가지고 장을 보기 전 상갓집에 간 적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뒤이어 성진우는 “그러면 안 됐는데 고스톱 판에 앉아버렸고 이후 30만 원을 다 잃어버렸다”고 고백했다. 성진우는 “어떻게 할까 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내 성격상 크게 혼날 것 같아 상갓집 근처 처가에 들러 장모님에게 SOS를 쳤다”고 말한 뒤 “장모님에게 현금 있냐, 수중에 돈이 있냐‘고 다급히 물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장모님이 ‘없다’고 하셔서 ’그럼 카드는 있냐‘고 물었고 결국 장모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서 장을 봤다“는 성진우의 고백에 패널들은 또 한 번 웃픈 표정을 지었다. 한편 원조 터프가이 성진우의 어딘지 모르게 짠~한 결혼 생활 에피소드는 22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화제의 영상> 우는 아기 달래는 말

    <화제의 영상> 우는 아기 달래는 말

    아기를 돌보는 말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 화제에 올랐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는 유튜브 채널 카터스 클립(Caters Clips)에 올라온 ‘우는 아기 의자 밀어 흔드는 말’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 노팅엄의 한 마구간을 부모와 함께 찾은 8개월 된 아기 루비는 낯선 풍경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레드‘라고 불리는 말 한 마리가 루비가 누워 있는 의자를 밀어 흔들자, 루비는 울음을 그치고 말에 호기심을 갖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영상에는 말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루비의 모습이 담겼다. 루비의 엄마 스테이시는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 루비의 반응을 보았을 때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영상=Caters Clip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탄수화물 더 먹고 근육 몸매 된 20대女 화제

    탄수화물 더 먹고 근육 몸매 된 20대女 화제

    한 20대 여성이 운동은 물론 탄수화물 섭취를 오히려 늘리는 다이어트(식이요법)를 통해 물살이던 몸을 탄탄한 근육질 몸으로 바꾼 비결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데일리메일 호주판은 20일(현지시간) 호주 퍼스에 사는 22세 여성 이저벨 비스톤이 53㎏에서 46㎏까지 체중을 감량했었지만 탄수화물을 더 먹는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54㎏까지 체중을 늘리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학창 시절 신체 운동과 스포츠에 빠져 살았다는 비스톤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토요일 밤마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며 보냈다. 이때 체중은 53㎏으로 그리 늘지 않았지만 체형이 망가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시작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과거 내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지 비교하기 시작했다. 난 내 자신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서 “20세에 어느 정도 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건강이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었다”면서 “이후 운동에 빠져 살았고 거기서 굉장한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렇게해서 그녀는 결국 체중을 46㎏까지 감량했다. 그녀는 “빵과 설탕 같은 음식을 끊은 뒤 매일 같이 다이어트와 운동을 했기에 몸에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배가 고파지면 성미가 나빠지고 성격이 급해지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면서 “기분이 나쁘면 하루에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했고 친구들과 술집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처럼 사회 생활을 피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녀가 개인 트레이너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현재 자신의 몸 상태는 더 마른 체형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잘 단련된 복근(식스팩)과 허벅지 사이틈(싸이갭)과 같은 단순한 것에 집착하고 마른 체형에 빠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근육량과 근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꿈의 몸은 훨씬 더 현실적이었고 엉덩이를 키우려면 탄수화물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이제 그녀는 신체 기능을 적절히 돕는데 필요한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라는 영양소를 잘 섭취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녀는 하루에 먹는 탄수화물을 40g에서 370g으로 늘렸다. 그리고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을 900칼로리(㎉)에서 2500칼로리(㎉)로 늘렸다. 실제로 그녀는 “많은 밥과 떡, 고구마, 글루텐이 없는 시리얼, 그리고 과일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몸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내 식단은 여전히 매우 구체적이지만,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또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했을 때는 점심 시간이 되면 에너지가 소진됐지만, 이제 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녀는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렇지만 몸을 근육질로 바꾸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온라인에서 개인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이상적인 몸은 최적의 건강과 기능 수준에서 자기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간에 자신에게 가장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상적인 몸은 실제로 움직이고, 놀고, 일하고, 다시 놀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제 난 이전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지만 신체 능력은 10배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녀는 신체 변화를 겪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 “운동은 트레이너를 통해 제대로 배워 꾸준히 하고 균형잡힌 식단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사진=이저벨 비스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죽기 전 마지막 소원 ‘동화 같은 결혼식’ 올린 5살 소녀

    죽기 전 마지막 소원 ‘동화 같은 결혼식’ 올린 5살 소녀

    불치병에 걸린 다섯 살 여자 아이가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 1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스코틀랜드 북부 머리주 포레스에서 지난 18일 열린 에일레이드 패터슨의 감동적인 결혼식을 소개했다. 신경아세포종 4기 판정을 받은 에일레이드에게는 한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바로 가장 친한 남자친구 해리슨(6)과 동화 같은 결혼식은 올리는 것. 에일레이드는 마지막 추억을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남기고 싶었다. 마침내 그 꿈이 실현됐다. 어린이 오락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자라 그랜트(31)가 에일레이드의 버킷 리스트에 ‘꿈의 결혼식’이 있는 것을 보았고, 지역 사회와 협력해 한 달 만에 웨딩 이벤트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백파이프의 연주로 시작됐다. 에일레이드는 오빠 칼럼 옆에서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왔고 해리슨과 만나 목걸이를 교환했다. 엄마가 동화처럼 쓴 에일레이드의 전기가 낭독됐고, 언니 세리스는 “우리가 비록 떨어져있다해도 난 너와 항상 함께 할거야”라는 메시지가 담긴 시를 낭송했다. 주위에는 슈퍼영웅이나 공주 복장을 한 친구들, 가족들이 두 아이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둘은 자리를 옮겨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디즈니 히트곡, 팝송의 음악에 맞춰 파티를 즐겼다. 해리슨의 아빠 빌리(31)는 “해리슨은 결혼식에 가본 적도 없어서 이 모든 것이 새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식이 에일리이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은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했다”며 아름다웠던 결혼식을 회상했다. 에일레이드의 엄마 게일은 딸이 주말에 수혈을 받고 몹시 진이 빠져 결혼식을 즐길 수 없을까봐 우려했다. 그러나 엄마의 걱정과 달리 에일레이드는 식이 진행되는 동안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결혼식은 에일레이드의 기운을 되찾아주었고, 친구들과 아름다운 예식을 즐겼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5층 창문서 떨어진 2세 아기, 기적적 생존…어떻게?

    5층 창문서 떨어진 2세 아기, 기적적 생존…어떻게?

    운이 좋은 2살 여자 아이가 5층 자신의 침실 창문에서 떨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17일(현지시간) 뉴욕데일리뉴스는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아파트에서 떨어진 오드리아나 쥬바(2)가 건물 입구에 설치된 차양으로 떨어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보도했다. 엄마 켈리 쥬바(31)에 따르면, 딸 오드리아나는 평소 자신의 침실 창문턱에 앉아 태블릿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딸아이 방 창문은 항상 잠겨 있었고, 2살짜리 아이가 스스로 창문을 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고는 지난 16일 저녁 6시 30분 경 오드리아나의 사촌 이사벨 고프(17)가 오면서 발생했다. 비가 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이사벨은 창문을 열었고, 둘은 작은 침대를 함께 공유하며 놀고 있었다. 이사벨이 피자 한 조각을 가지러 거실로 간 사이, 오드리아나는 혼자 방에 남게 됐다. 곧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우는 소리가 들렸고 당황한 이사벨은 조카의 침실로 달려갔다. 그녀는 “방에 도착했더니 오드리아나가 보이지 않아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차양 아래로 떨어진 오드리아나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오드리아나는 다행히 아파트 입구를 가리고 있던 녹색 차양(가로 2.4m, 세로6m)위에 걸렸고, 차양과 가까운 곳에 사는 2층 이웃이 창문을 열어 아이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검사를 위해 의료센터로 데려갔다. 옆 방에서 비명을 듣고 달려왔던 엄마는 “꽤 충격적이었다. 내 심장이 내려 앉아서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딸이 살아있다는게 기적”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딸아이는 오른팔에 멍만 들었을 뿐, 뼈가 부러지거나 부상을 입지도 않았다”며 신기해했다. 아빠 알렉스 쥬바(31)도 “딸이 아마 체조가 선수가 될 것”이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아픈 곳 없이 살아줘서 감사하고 기쁘다”는 안도의 말을 전했다. 한편 현지 언론은 가족들은 오드리아나가 떨어지기 바로 몇 시간 전에 창문 보호대 설치에 대한 통지를 받았으나, 이사를 온 뒤 얼마 되지 않아 보호대 설치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욕데일리뉴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월드피플+] 팔·다리 모두 잃었어도…‘딸바보’ 아빠는 강해!

    [월드피플+] 팔·다리 모두 잃었어도…‘딸바보’ 아빠는 강해!

    끔찍한 사고로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잃었지만 여전히 ‘딸바보’로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30대 남성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제임스 마인스(33)는 현지시간으로 18일 ‘아버지의 날’, 어린 쌍둥이 딸 및 아내와 함께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인스에게 지난 6개월은 지옥과도 같았다. 자신이 일하는 공사현장에서 추락하면서 3만3000볼트의 전기에 감전돼 온 몸에 불이 붙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마인스는 두 팔과 왼쪽 다리를 완전히 절단해야 했다. 그나마 남은 오른쪽 다리도 다음달 절단수술이 예정돼 있다. 축구선수로도 활약했던 그에게 두 다리를 쓸 수 없다는 현실은 참혹하기만 했다. 게다가 절단 된 두 팔 때문에 아장아장 걷는 생후 11개월 쌍둥이 딸을 안지 못한다는 생각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사고 당시의 충격도 심신의 회복을 더디게 했다. 그는 “건물에서 떨어진 뒤 온 몸에 불이 붙은 것을 느꼈다. 심장과 폐가 타오르는 것을 느꼈고 다리와 팔에서도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회상했다. 병원으로 실려 간 마인스는 10일 동안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차례로 받았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두 팔이 이미 사라진 후였고, 성대와 신장 등 여러 장기도 추락 및 화재의 여파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3개월 만인 지난 3월, 그는 다시 걷고 말할 수 있는 재활센터로 옮겨 새로운 치료를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사라져 비쩍 마른 몸이 되었지만 재활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내게서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테니스나 골프, 축구를 즐겼던 과거의 모습만 회상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면서 “아이들이 절망에 빠져 있던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두 딸은 여전히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고, 여전히 사랑스러웠다”고 전했다. 두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상황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딸들을 보며 희망을 품은 그는 현재 의수로 두 딸과 공놀이를 하고, 무릎에 앉혀 눈을 맞추며 사랑을 전하는 등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딸바보’로 다시 살고 있다. 마인스는 “내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는 쌍둥이로 자라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미우새’ 이상민 “지드래곤 성공, 내 스포츠카 탔기 때문” 웃음

    ‘미우새’ 이상민 “지드래곤 성공, 내 스포츠카 탔기 때문” 웃음

    ‘미우새’ 이상민이 지드래곤의 과거 모습을 회상했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이하 ‘미우새’)에서는 방송인 이상민이 자동차 저널리스트 신동헌의 스포츠카 운전대를 잡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상민은 “예전에 스포츠카를 처음 샀을 때 자랑할 사람이 없어서 꼬마 룰라한테 자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상민은 “당시 꼬마 룰라로 활동한 지드래곤과 리나 역할을 했던 친구를 차에 태우고는 ‘멋있지?’라며 자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신동헌이 “그 때 지드래곤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이상민은 “그 때도 지드래곤은 시크헀다. 열린 창문 쪽에 팔을 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민은 “지드래곤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건 그 차를 탔기 때문”이라며 “지드래곤에게는 그 차를 탔던 게 목표가 됐을 거다. 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차 뚜껑을 열어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SBS ‘미우새’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동국 딸 수아, 30년 전 엄마와 놀라운 싱크로율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동국 딸 수아, 30년 전 엄마와 놀라운 싱크로율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동국의 딸 수아가 30년 전 엄마의 모습을 재연했다. 18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편으로 꾸며졌다. 이날 이동국은 설아 수아 대박이(설수대)와 함께 해운대를 찾았다. 이동국은 아내와 해운대에서 데이트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너네랑 여기를 오게 될 줄은 몰랐네”라고 말했다. 이에 설아는 “그땐 우리는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고 이동국은 “아빠 뱃속에”라고 말했다. 설아는 “아니잖아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동국과 ‘설수대’는 단체사진을 찍었고 이동국은 수아에게 배를 내밀라고 주문했다. 그는 “수아야. 엄마 어렸을 때, 수아랑 똑같이 생겨서. 수영복 입고 사진 찍은 거 봤느냐”고 말했다. 수아가 배를 내밀고 찍은 사진은 30년 전 엄마 이수진이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과 똑닮아 눈길을 끌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미우새’ 이상민, 줄줄이 주차된 슈퍼카에 “다 도끼 차” 어머니들 반응은?

    ‘미우새’ 이상민, 줄줄이 주차된 슈퍼카에 “다 도끼 차” 어머니들 반응은?

    ‘미우새’ 이상민이 슈퍼카를 구경에 나섰다. 18일 방송된 SBS ‘미운우리새끼’에서는 박명수가 스페셜MC로 나선 가운데 토니안, 박수홍, 이상민의 일상이 전파를 탔다. 이날 이상민은 슈퍼카 전시장을 찾았다. 이 모습을 본 그의 어머니는 “이상민이 차를 진짜 좋아한다. 예전에 외제차가 9~10대였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상민은 자동차 칼럼리스트와 함께 만나 그의 슈퍼카를 타고 이동했고, 한 아파트에 주차된 슈퍼카에 감탄했다. 이상민은 “여기 줄줄이 있는 슈퍼카가 모두 한 사람의 것 같다”라며 “여기 도끼가 산다. 다 도끼 차량이다”라고 말하며 부러워했다. 이에 어머니들은 “도끼가 누구야? 도끼? 깡패?”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박수홍의 어머니는 “도끼는 차에요. 차”라고 말했고 박명수는 “도끼는 래퍼다”라고 말했다. 이상민은 “내가 1995년 모 외제차를 샀다. 국내에 총 6대 있었다. 5대가 회장님이 주문했고 1대를 내가 주문했다. 현찰로 6900만원을 주고 샀다”고 밝혔다. 또 이상민은 과거 슈퍼카를 산 뒤 꼬마 룰라였던 지드래곤에게 자랑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상민은 “그 때 내가 슈퍼카를 자랑해서 지디가 ‘저런 차를 타야 하는구나’ 하고 잘 됐을 수도 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이상민은 슈퍼카 전시장에서 비싼 차들에 시승했다. 이상민은 “자동차를 타는 태도가 중요하다”라며 신발에 비닐을 씌워 웃음을 자아냈다. 이상민은 직원에게 “진짜 사는 것처럼 계약서만 한 번 써보면 안 돼냐. 샀다라는 기분이라도 내고 싶다”라고 계약서를 쓰며 슈퍼카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사진=SBS ‘미운우리새끼’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총탄 날아드는데…아이 구하려고 목숨 건 남자 화제

    총탄 날아드는데…아이 구하려고 목숨 건 남자 화제

    한 남성이 총탄이 날아드는 사선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내는 모습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이라크 모술에서 한 구호 요원이 이슬람국가(IS) 저격수의 총에 사살된 민간인들 틈에 생존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목숨 걸고 뛰어들어가 구해냈다. 유튜브 등에 공개돼 세간의 관심을 끈 화제의 주인공은 민간단체 ‘자유 버마 유격대’(FBR)의 수장 데이비드 유뱅크(56). 전직 미군 특수부대 출신인 그는 IS가 민간인들을 학살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번 모술 탈환 작전에 참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그는 고향 미국 텍사스주(州)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얼마 전까지 아내와 세 자녀 사할리(16), 수잔(14), 피터(11)를 데리고 모술에 와 있었다. 가족은 최전방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이라크 제9사단 진료실 위층 단칸방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의 교육은 아내가 맞았다고 한다. 공개된 영상에서 그는 헬멧과 방탄조끼를 착용한 상태로 두 동료가 지원 사격하는 틈을 타 시신이 즐비한 곳으로 뛰어들어가 분홍색 리본을 매달은 소녀를 품에 안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는 “내가 여기서 죽었다고 해도 내 아내와 아이들은 날 이해해줬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난 신(God)께서 날 이곳에 보냈다고 믿고 있으며, 내 안전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지만, 항상 자신에게 자존심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사진=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탈모로 추해지는 것 아냐” 결혼식 민머리 드러낸 여성

    “탈모로 추해지는 것 아냐” 결혼식 민머리 드러낸 여성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머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다니는 한 젊은 여성의 사연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6일(현지시간) 심각한 탈모증을 앓고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 가발을 쓰지 않고 심지어 최근 자기 결혼식에서조차 민머리를 드러낸 미국의 한 20대 여성을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오크 파크에 사는 27세 여성 카일리 뱀버거는 최근 결혼식 날 하객들 앞에서 민머리를 자신 있게 드러내 주목을 받았다.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에 화려한 부케를 든 그녀는 비록 머리카락은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여느 신부 못지않게 아름다운 미모를 뽐냈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탈모를 거리낌 없이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12세 때 처음 자가면역질환인 원형 탈모증을 진단받았다는 그녀는 여러 가지 치료를 시도했지만, 탈모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이 사춘기 소녀 마음에 큰 충격이 됐고 결국 그녀는 무도회 참석을 위해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가발을 쓰고 나서부터 그녀는 “더는 내가 눈에 띄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발은 그녀를 덥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항상 비니 모자를 쓰고 있는 것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녀는 2005년 가발을 벗어 던졌다. 그녀는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고 민머리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의 모발도 완전히 성장을 멈춰 이제 면도를 하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완전 탈모가 됐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자신처럼 탈모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강연자로 활동했다. 또한 그녀는 모델로도 활동했는데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SNS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작 민머리를 드러내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난 정말 눈에 띄는 것이 즐겁고 다르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탈모로 건강이 나쁘거나 추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난 단지 더 강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45m를 날아 과녁에 꽂혔다, 국궁의 이 운치

    145m를 날아 과녁에 꽂혔다, 국궁의 이 운치

    두 발을 편하게 벌린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는 듯 활을 들어 올린다. 숨을 천천히 내쉬며 활을 잡은 앞손을 힘껏 밀고 시위를 잡은 뒷손으로 화살을 쥐고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는 듯 끌어당긴다. 두 팔이 파르르 떨린다. ‘툭’ 소리와 함께 시위를 떠난 화살이 인왕산 치맛자락 허공을 갈랐다. 145m 바깥에 세운 과녁 옆으로 초록 불빛이 켜졌다. 명중이다.●서울 시내 조망 황학정엔 30~90대 궁사 북적 16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황학정에선 궁사들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인왕산 아래 사직공원 단군성전 오른쪽에 자리했다. 1899년 고종황제의 어명을 받들어 지었으니 우리나라 스포츠의 첫걸음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활쏘기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본래 경희궁 회상전 북측에 세웠던 활터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경희궁 회상전이 훼손된 후 현재 장소로 옮겨졌다. 황학정 정자에 앉아 산등성이와 서울 시내가 어우러진 장관에 취해 있으면 활쏘기 시간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린다. 30대부터 90대까지 허리춤에 노란 띠를 두른 궁수들이 일렬로 자리를 잡는다. 과녁은 반대편 언덕에 있다 보니 산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화살을 보는 것도 운치를 자아낸다. 4년 넘게 활쏘기를 했다는 한 60대 회원은 “활 쏘는 이들은 다들 건강해 90세를 넘긴 회원도 있다”면서 “예로부터 국궁을 건강에 최고로 쳤다”고 자랑했다. 또 “활을 쏘려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꼿꼿해야 하니 몸이 반듯해진다”면서 “뒤로는 인왕산, 앞에는 서울 시내의 멋진 경치를 두고 활을 쏘면 정신 수양도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부터 활터를 다닌 다른 회원은 “혼자서도 가능한 운동이라 좋다”면서 “테니스처럼 게임 상대와 장소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키면 홀로 한 시간이든 하루 종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양궁은 검지와 중지로 시위에 화살 걸어 당겨 종로에 황학정이 있다면 중구에는 조선시대 민간인이 사용하던 활터인 석호정을 빼놓을 수 없다. 남산 중턱에서 물결 치는 소나무숲 위로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신비롭게 느껴진다. 석호정은 남산공원길과 맞닿아 있어 지나가는 시민들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6년 전 국궁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윤복남(50)씨는 “서민들에겐 다가서기 어려웠던 국궁이 이젠 일반 성인과 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거듭났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국궁의 재미를 알렸으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활의 역사는 수렵생활을 하던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활은 사냥감과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먼 거리에서 제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옛 활쏘기는 전투기술인 동시에 선비들의 교양필수과목이었다. 이 땅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기록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활을 잘 쏜다는 기록이다. 수천년 역사를 함께한 전통 활, 국궁은 지금도 시민들의 생활체육으로 남아 있다. 서울에 8곳을 비롯해 전국 380여곳 국궁장에서 3만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한다. 대부분의 국궁장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활을 쏘기 위해 145m 거리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궁과 양궁은 무엇보다 쏘는 방식에서 다르다. 국궁은 표적을 볼 때 비대칭이다. 양궁은 한가운데 화살을 날리지만, 국궁은 치우치게 돼 있어서 오조준을 해야 한다. 자기가 편한 표적 보는 기준을 찾아 안정적으로 화살을 보내야 한다. 화살을 잡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국궁은 엄지와 검지로 화살을 움켜쥐는 반면, 양궁은 검지와 중지로 활시위에 걸친다. 이 때문에 양궁은 깍지를 검지에 끼지만, 국궁은 엄지에 깍지를 낀다. 사극에서 흔히 보는 활쏘기 방식은 사실 국적 불명인 셈이다. 뜻밖에도 국궁장엔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직장인 권상오(27)씨는 “놀이공원 국궁 체험장에서 활쏘기를 해봤다”며 “금방 익숙해져서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 때 교양 수업으로 처음 국궁을 만났다는 정변교(26)씨는 “수업 뒤 계속하고 싶어서 활을 샀는데 집 근처에는 활터가 없어 아쉬웠다”며 “나중에 생활체육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석호정엔 習射無言 표지석… 정신수양에 좋아 석호정 이름도 활쏘기와 맞닿아 있다. 중국 한나라 문제(文帝) 때 어느 장군이 사냥터에서 큰 호랑이를 보고 활을 쏴 적중시켰다. 가까이서 보니 바위였다. 의문이 들어 다시 활을 쐈으나 이번엔 화살이 튕겨 나왔다. 장군은 매사에 신경을 써서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석호정 마당엔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손님을 반긴다. 회원들은 “활쏘기 하나에도 말을 앞세우지 말라는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아울러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게 판가름 나듯이,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과녁을 맞히기도 힘들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토네이도에 300m 날아간 견공, 기적처럼 회복

    토네이도에 300m 날아간 견공, 기적처럼 회복

    토네이도에 휩쓸려 날아가면서 크게 다쳤던 견공 한 마리가 기적처럼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어 화제다. 미국 CNN 뉴스 등 현지언론은 15일(현지시간)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데이비스 카운티를 덮친 토네이도에 휘말려 무려 300m가 넘는 거리를 날아가 땅에 떨어졌음에도 생존한 12세 견공 듀크의 사연을 공개했다. 듀크의 주인 루이스 바노이는 지역방송 WHGP와의 인터뷰에서 3주 전 마을을 덮친 토네이도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는 “갑자기 듀크가 토네이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하늘로 떠오르더니 봉제 인형처럼 날아갔다”고 회상했다. 이 사고로 듀크는 집에서 약 300m가 넘는 거리에 있는 호텔 건너편 풀밭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때문에 듀크는 앞다리 뼈가 부러지고 한쪽 눈 망막이 망가지는 등 크게 다쳤지만, 여러 차례 수술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회복 중이라는 것이다. 바노이는 “듀크는 언젠가 완벽하게 회복할 것”이라면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번 토네이도 강타로 오랜 세월 살았던 집을 잃고 말았다. 그는 “35년 동안 살았던 집이 단 35초 만에 무너져 내렸다”면서 “집과 헛간, 창고는 물론 트랙터와 잔디 깍기까지 망가지지 않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듀크와 함께 살아남았다는 점이 그에게는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집은 다시 지으면 된다”면서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방송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1년 반만에 115㎏ 감량한 여성…비결은 철인3종경기

    1년 반만에 115㎏ 감량한 여성…비결은 철인3종경기

    체중을 1년 반 만에 115㎏이나 뺀 한 여성의 사연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다. 13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 호주판은 100㎏이 넘는 체중을 감량해 최근 페이스북에서 화제를 모은 한 20대 여성을 소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호주 케언스에 사는 29세 여성 엘레나 구달. 그녀는 패스트푸드에 중독돼 체중이 184㎏까지 불어났지만, 체중을 69㎏까지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밝혔다. 한때 수영선수로 활약했다는 그녀는 언젠가부터 식사 관리를 하지 않자 체중이 급격히 불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패스트푸드를 먹던 것이 언젠가부터 두세 번으로 늘었고 자신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매일 밤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당시 자기 체중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는 탓에 일반 체중계에 오르면 에러 메시지만 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살을 빼야 할 특별한 이유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다이어트를 결심한 계기는 바로 의사의 경고 때문이다. 2015년 5월 병원을 방문한 그녀는 주치의로부터 일상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35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마침내 운동할 생각을 떠올렸다. 초고도비만이었던 그녀에게는 제2형 당뇨병뿐만 아니라 심각한 수면 무호흡증이 있어 혈중 산소 수치가 위험 수준으로 낮아 운전 중 잠들 우려가 있어 운전 면허증까지 박탈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구달은 “사실 그렇게까지 내 몸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서 “검사 결과는 놀라웠고 소름 끼쳤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바꿔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의사가 권한 위절제술은 두려움 탓에 받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녀의 체중은 점점 더 악화하기만 할 뿐 그녀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2015년 11월 위절제술을 받았다. 그녀는 “그건 내 인생을 구할 마지막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또한 그녀는 위절제술을 받았지만 운동과 식이요법을 전혀 하지 않아 다시 체중이 불어났다는 한 여성과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난 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눈 뒤 ‘안돼 난 그렇게 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철인3종 경기를 시작했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85㎏이 되자는 생각을 멈추고 철인3종 경기를 통해 탄탄하고 건강하며 강한 사람이 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자 운동한 만큼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식사량을 줄이고 직접 집밥을 준비하는 등 다이어트(식이요법) 또한 그녀의 체중 감량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1년 반 만에 체중 184㎏에서 115㎏을 감량해 69㎏이 됐다. 또한 그녀는 지난 11일 철인3종경기의 절반 수준으로 수영 2㎞, 사이클 90㎞, 달리기 21.1㎞를 해야 하는 하프 철인3종경기 ‘아이언맨 70.3 챌린지’를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난 여전히 체중 감량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놀랄만한 훈련 일정이 있다”면서 “오는 12월에는 풀타임 철인3종경기를 뛸 예정”이라고 말했다. 철인3종경기는 ‘아이언맨 70.3 챌린지’의 정확히 두 배인 수영 4㎞, 사이클 180㎞, 달리기 42.195㎞로 구성돼 있다. 또한 그녀는 “체중 감량을 너무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아 영양사는 물론 영양학자에게 직접 의견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카카오는 체리피커?

    카카오는 체리피커?

    예비심사 신청… 23일 결론 “우회상장 3년도 안 돼 먹튀” 코스닥, 2부 리그 전락 우려 “정보 확대 등 질적 개선 필요” 코스닥 시가총액 2위 카카오가 결국 코스피 이전 상장안을 확정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뿐 아니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본부도 나서 설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가 코스닥 시장에 우회 상장한 지 3년도 안 돼 이전을 결정하자 전형적인 ‘체리피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벤처기업의 산실이어야 할 코스닥이 코스피 상장을 위해 거쳐가는 2부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카카오는 14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코스피 이전 상장 안건이 승인됐다고 공시했다.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7조 2000억원 수준으로 셀트리온 다음으로 많다. 코스닥 시장의 정보기술(IT) 대표주로 꼽힌다. 카카오가 코스피 이전을 결정한 것은 코스피200 지수 등에 편입되면 외국인과 기관의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카오는 지난달 25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오는 23일까지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심사를 통과하면 코스닥에서는 상장이 폐지되고 이르면 이달 말부터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된다. 하지만 ‘코스피로 옮기겠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한국거래소 안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카카오의 코스닥 상장 당시 거래소 코스닥본부에서 유치 노력을 많이 했었고 카카오 쪽에서도 코스닥에 쭉 남아 있겠다고 공표했었다”면서 “(코스피로의) 이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도덕적인 문제는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코스피보다 상장 요건 등이 덜 까다로운 코스닥으로 상장해 카카오가 세금 등 온갖 혜택을 다 챙기고는 사실상 먹튀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코스피 상장을 위해서는 최근 매출액 1000억원, 최근 이익액 30억원, 3년 이익 합계 60억원 이상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카카오는 2014년 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면서 코스닥 시장에 우회 상장했다. 이후 3년도 안 돼 코스피 이전을 결정한 것이다. 결국 “코스피로 가는 길에 코스닥을 이용만 했다”는 성토가 들끓는 이유다. 카카오 측은 “주주들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비교적 상장이 쉬운 코스닥을 택했다가 이후에 갈아타는 ‘코스닥 엑소더스’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네이버(당시 NHN), LG유플러스를 비롯해 지난해 동서, 한국토지신탁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시장의 질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개인 중심, 단타매매 위주의 시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기업들은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라면서 “금융 당국은 불공정 거래 행위 처벌을 강화하고 증권사들은 코스닥 기업에 대한 정보 제공을 늘리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월드피플+] “우리도 사람”…백색증 인식 바꾸려 SNS 만든 두 소녀

    [월드피플+] “우리도 사람”…백색증 인식 바꾸려 SNS 만든 두 소녀

    백색증(알비노)을 지닌 두 소녀가 보통 사람과 다른 외모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리려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데일리메일 호주판은 13일(현지시간) 호주에 사는 두 백색증 소녀가 자신들의 질환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새미 맥컴(12)과 루시 카펜터(14)라는 이름의 두 소녀는 모두 선천적으로 눈과 피부, 그리고 모발의 색소에 이상이 생기는 ‘눈피부 백색증’(oculocutaneous albinism)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6년 전 한 캠프에서 만났고, 패션 등 관심사가 같아 절친한 친구가 됐다고 한다. 두 소녀는 지금까지 “왜 네 머리카락 색상은 너무 하얗니?”부터 “왜 네 눈동자는 계속 흔들리니?”까지 많은 질문과 시선을 견뎌야 했다. 또한 이들은 시력 문제 때문에 일부 사람으로부터 “지금 내가 손가락을 몇 개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냐?”와 같은 조롱섞인 말까지 듣기도 했다. 루시는 “난 안경잡이(four-eyes)와 유령으로 불렸으며 심지어 동물과 비교되기도 했다”면서 “그렇지만 이런 사람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 이런 말을 무시하고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또한 두 소녀는 자신들이 외모 뿐만 아니라 햇빛에 너무 민감한 신체 때문에 소외당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새미 역시 언젠가부터 해가 떠 있을 때 밖에서 걷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새미는 “가끔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면서 “햇빛에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거나 농구공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두 소녀는 이런 문제에도 자신들의 외모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루시는 “난 내가 조금 다르게 보여 다른 사람들처럼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다”면서 “이는 내가 다른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랑하는 내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미도 자신의 특별한 외모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두 소녀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계기는 얼마 전 질롱에서 열린 백색증 모임에 참석했을 때 만난 한 여성 때문이다. 이 여성은 생후 6개월 된 백색증 아기를 데리고 나왔는데 두 소녀에게 귀여운 옷과 액세서리 등을 착용한 자기 딸 사진을 보여주며 인스타그램을 권했다는 것이다. 이제 두 소녀는 자신들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포용하길 바라고 있다. 루시는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세상 모든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상태든 상관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새미는 “다르다는 점은 아름답다”면서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백색증에 관한 인식을 높이고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두 소녀는 종종 좋아하는 옷가게에 들러 드레스룸에서 옷을 입어보거나 구매한 옷을 침실에서 입고 그자리에서 사진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자신들에게 패션과 사진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의견을 받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루시는 “모든 사람이 우리를 받아들이고 격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세상 사람들은 백색증에 관심이 많으며 우리와 대화하길 즐긴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이런 반응은 항상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두 소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백색증에 대해 알릴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루시는 “우리는 백색증 환자이기 이전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바란다”면서 “백색증이라는 용어 자체는 우리에게 장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제 두 소녀는 자신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길 바라며 언젠가 패션모델이 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사진=@lucy_and_sammy / 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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