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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시작하라” 英 남성, 1만 5000㎞ 도보 대장정 중 꽃피운 사랑과 나눔

    “일단 시작하라” 英 남성, 1만 5000㎞ 도보 대장정 중 꽃피운 사랑과 나눔

    영국에서 베트남까지 약 1만5000㎞를 걸어가는 한 영국 남성의 여정이 사랑과 연대의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다. 2일 베트남 현지 매체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영국 출신 루크 디킨(32)은 2023년 베트남 다낭 여행 중 “영국에서 베트남까지 걸어오겠다”는 다짐을 세웠고, 이를 지키기 위해 2024년 9월 영국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전체 일정의 절반가량인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상태다. 처음에는 혼자 떠난 여정이었지만, 길 위에서 삶의 방향은 달라졌다. 디킨은 2022년 하노이에서 친구로 알게 된 소피와 터키 구간에서 재회했고, 한 달 동행을 계기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는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지아에서는 또 다른 인연이 더해졌다. 여행 도중 따라오던 유기견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디킨과 소피는 여행을 멈추고 치료에 힘썼다. ‘벨’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개는 일곱 차례의 수술 끝에 회복됐고, 두 사람은 정식 입양 절차를 마쳐 현재 함께 도보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여정은 험난했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상점 바닥을 빌려 잠을 청해야 했고, 터키에서는 불곰의 흔적을 발견해 곰 스프레이와 호루라기에 의지해 이동했다. 장기간 도보 이동 탓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같은 옷을 수주간 입는 날도 이어졌다. 지난 12월 초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베트남 중부 지역 수해 소식을 접한 뒤 현지로 이동해 구호 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그는 약 6만 달러(약 8600만원)의 성금을 모아 600여 가구에 전달하며 수해 복구를 도왔다. 디킨은 “영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깨끗한 물과 안전, 교육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구호 활동을 마치고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디킨은 이제 가장 험난한 구간을 앞두고 있다. 통신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오지를 며칠씩 걸어야 하기에, 그는 쇼핑 카트를 개조해 70ℓ의 물을 실을 수 있는 수레를 직접 제작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영국 대사관에도 비상 연락을 취해둔 상태다. 디킨은 올해 말이나 내년 중반쯤 최종 목적지인 베트남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강함이란 매일 스스로 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며, 망설이는 이들을 향해 “일단 시작하라”(Just start)는 메시지를 전했다.
  • “일단 시작하라” 英 남성, 1만 5000㎞ 도보 대장정 중 꽃피운 사랑과 나눔 [여기는 동남아]

    “일단 시작하라” 英 남성, 1만 5000㎞ 도보 대장정 중 꽃피운 사랑과 나눔 [여기는 동남아]

    영국에서 베트남까지 약 1만5000㎞를 걸어가는 한 영국 남성의 여정이 사랑과 연대의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다. 2일 베트남 현지 매체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영국 출신 루크 디킨(32)은 2023년 베트남 다낭 여행 중 “영국에서 베트남까지 걸어오겠다”는 다짐을 세웠고, 이를 지키기 위해 2024년 9월 영국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전체 일정의 절반가량인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상태다. 처음에는 혼자 떠난 여정이었지만, 길 위에서 삶의 방향은 달라졌다. 디킨은 2022년 하노이에서 친구로 알게 된 소피와 터키 구간에서 재회했고, 한 달 동행을 계기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는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지아에서는 또 다른 인연이 더해졌다. 여행 도중 따라오던 유기견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디킨과 소피는 여행을 멈추고 치료에 힘썼다. ‘벨’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개는 일곱 차례의 수술 끝에 회복됐고, 두 사람은 정식 입양 절차를 마쳐 현재 함께 도보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여정은 험난했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 상점 바닥을 빌려 잠을 청해야 했고, 터키에서는 불곰의 흔적을 발견해 곰 스프레이와 호루라기에 의지해 이동했다. 장기간 도보 이동 탓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같은 옷을 수주간 입는 날도 이어졌다. 지난 12월 초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베트남 중부 지역 수해 소식을 접한 뒤 현지로 이동해 구호 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그는 약 6만 달러(약 8600만원)의 성금을 모아 600여 가구에 전달하며 수해 복구를 도왔다. 디킨은 “영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깨끗한 물과 안전, 교육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구호 활동을 마치고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디킨은 이제 가장 험난한 구간을 앞두고 있다. 통신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오지를 며칠씩 걸어야 하기에, 그는 쇼핑 카트를 개조해 70ℓ의 물을 실을 수 있는 수레를 직접 제작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영국 대사관에도 비상 연락을 취해둔 상태다. 디킨은 올해 말이나 내년 중반쯤 최종 목적지인 베트남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강함이란 매일 스스로 강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며, 망설이는 이들을 향해 “일단 시작하라”(Just start)는 메시지를 전했다.
  • “100만원 줄테니 한번 할까?” 원장 쪽지에… 13년 일한 병원 그만둔 여성

    “100만원 줄테니 한번 할까?” 원장 쪽지에… 13년 일한 병원 그만둔 여성

    강원 춘천의 한 개인병원에서 13년간 일해온 여성이 원장으로부터 성희롱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달 30일 춘천MBC 보도에 따르면 60대 여성 A씨는 지난 11월 병원 원장으로부터 쪽지 하나를 받았다. 해당 쪽지에는 손 글씨로 ‘100만원 줄게. 한 번 할까?’라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A씨는 춘천MBC와 인터뷰에서 “(쪽지를) 받는 순간에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원장님을 얼굴이 벌게지면서 쳐다봤다”며 “‘제가 그만둬야 하는 게 맞는 거죠’라고 말씀드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원장은 이후 A씨에게 ‘사실 너 좋아한 것도 아닌데 한번 해 본 소리라고 생각하라’며 갑자기 무릎 꿇고 사과하는가 하면 A씨의 남편에겐 ‘100만원 보낼 테니 없는 걸로 하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실제로 100만원을 입금하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100만원을 고스란히 원장에게 돌려보냈다. A씨는 사건 발생 18일 후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원장을 직장 내 성희롱과 모욕 혐의 등으로 신고했다. 원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고, 병원은 공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원장의 법률대리인은 “법적이나 사회적으로 이 정도로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사안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며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뿐인데”…‘스타트업 창업’ 성공한 中남성 ‘화제’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뿐인데”…‘스타트업 창업’ 성공한 中남성 ‘화제’

    중국의 한 남성이 온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손가락 하나와 발가락 하나만으로 스마트팜 시스템을 개발하고 스타트업까지 창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활하는 그는 어머니에게 ‘슈퍼 기술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며 현재 농장을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남서부 충칭시에 사는 리샤(36)는 손가락 하나와 발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 스마트팜 제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리샤는 5살 때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 근육이 점차 약해지고 위축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지만, 이후 독학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그가 가장 흥미를 느낀 분야는 물리학과 컴퓨터 과학이었다. 25살이 되자 온라인 포럼을 통해 프로그래밍 학습을 시작했다.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여동생이 집에 가져온 교과서였어요. 그 책의 모든 개념이 제 관심을 끌었죠.” 리샤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었어요. 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여동생이 어떤 새로운 컴퓨터 책을 가져올지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증상은 악화됐다. 먼저 걷는 능력을 잃었고, 이어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됐다. 결국 음식을 먹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최근 몇 년간은 손가락 하나와 발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됐다. 2020년, 리샤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들은 기관절개술을 시행했고, 가족들에게 그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21년 리샤는 수경재배 개념을 접하고 대담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현대 농업을 결합해 자신의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손가락 하나와 발가락 하나만으로 가상 키보드를 조작하며, 리샤는 농장 전체를 제어하는 완전한 스마트 시스템을 개발했다. 회로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머니 우디메이는 리샤를 돌보면서 ‘슈퍼 기술자’가 됐다. 아들의 부탁에 따라 제어 보드 납땜, 네트워크 배선 설치, 회로 연결, 농기구 유지보수를 배웠다. 최근에는 직접 원격 조종 무인 차량을 조립해 택배를 수거했다. “우리 엄마는 이제 모든 걸 할 수 있어요.” 리샤가 말했다. “이론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선을 어떻게 연결하고 모든 걸 어떻게 설치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죠.” 현재 리샤의 농장은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으며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방울토마토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새로운 재배 기술을 실험해 농장의 품목을 더욱 다양화할 계획이다. 중국 국영 방송 CCTV가 보도한 그의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고, 응원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손가락 하나와 발가락 하나만으로 성공한 창업가가 되다니, 그는 행동으로 인생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 “장모님이 방송 보고 추천”…거절만 당하던 22기 영식, 결혼 소식

    “장모님이 방송 보고 추천”…거절만 당하던 22기 영식, 결혼 소식

    연애 예능 ‘나는 솔로’ 22기 출연자 영식이 예비 신부와의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지난 30일 유튜브 채널 ‘촌장엔터테인먼트 TV’에는 ‘솔로나라뉴스, 방송 이후에 예비신부를 만나게 된 사연’, ‘22기 영식 단독 인터뷰’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영식은 “나는 솔로‘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재혼 소식을 전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22기 방송에서도 잘 되지 않았고, ‘나솔사계(프로그램)’에서도 진심을 다했지만 거절을 당하거나 혼이 나는 등 많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런 모습의 나를 좋게 봐주는 분이 있었다”며, “오늘은 순수한 마음으로 인사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영식은 예비 신부와의 인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예비 장모님이 ‘나는 솔로’의 팬이셔서 아내보다 장모님이 먼저 나를 만나보라고 추천해 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예비 신부는 “연락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며 “평소에는 먼저 연락하는 편이 아닌데, 남자에게 먼저 연락한 건 영식이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영상에서는 두 사람이 최근 촬영한 둘째 초음파 사진도 공개됐는데, 영식은 “둘째라서 감흥이 덜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첫째 딸이 충격을 받을까 봐 임신 사실을 한동안 숨겼다고 전했고, 예비 신부는 “이젠 첫째가 만날 때마다 언제 태어나냐며 빨리 보고 싶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영식은 “고맙다고 무릎까지 꿇었다”며 당시의 벅찬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 노엘 “父 장제원에게 미안했던 건…” 부친상 9개월 만의 고백

    노엘 “父 장제원에게 미안했던 건…” 부친상 9개월 만의 고백

    래퍼 노엘(본명 장용준)이 부모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최근 유튜브 채널 ‘SPNS TV’에는 ‘노엘과 슈즈오프 EP.86 | 학교 다녀온 고등래퍼’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고등래퍼’ 출신 노엘이 출연해 성장 과정과 가족 이야기를 전했다. 노엘은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건, 저는 많이 예쁨받고 남들보다 여행도 많이 다니며 잘 컸다는 점”이라며 유복했던 가정 환경을 언급했다. 이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가정에 대한 피해망상을 갖게 됐다. 열아홉 살까지 부모님과 담을 쌓고 지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래퍼 이센스의 곡 ‘독’을 언급하며 “그 음악을 듣고부터 왜곡된 시선이 생겼던 것 같다. 부모님이 잘해주신 기억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고 고백했다. 전환점은 첫 수입이었다. 노엘은 “열아홉 살에 처음 큰돈을 벌고 아버지에게 ‘남자가 돈 버는 게 이렇게 외로운 거구나. 미안했다’고 말했다”며 “그때부터 아버지와 사람다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기숙학교 생활에 대한 속내도 전했다. 노엘은 “중학교 때부터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이 유별나게 키우려 했던 것 같다”면서도 “제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많이 억압하는 환경이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한편 노엘은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이다. 이번 발언은 부친상 이후 약 9개월 만에 공개된 고백으로 관심을 모았다.
  • “유재석, 말없이 먼저 진흙탕 뛰어드는 사람” 김동완 응원 메시지

    “유재석, 말없이 먼저 진흙탕 뛰어드는 사람” 김동완 응원 메시지

    그룹 ‘신화’ 멤버 겸 배우 김동완이 MC 유재석을 향한 응원을 전했다. 김동완은 30일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과거 예능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유재석의 진행 방식과 태도를 소개했다. 김동완은 “런닝맨이었나. 꽤 추운 날이었다”며 “오프닝을 하자마자 진흙탕에서 씨름을 하자는 상황이 나왔다”고 했다. 새벽부터 헤어·메이크업을 받고 꾸미고 온 터라 출연진 사이에 “이게 맞나 싶은 공기가 흘렀다”고 회상했다. 그 순간 유재석이 말없이 먼저 진흙탕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김동완은 “철푸덕”이라는 의성어로 당시 장면을 전하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최대한 세게 뛰어드는 걸 보니 결국 모두가 함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동완은 “재석 형은 늘 그렇게 촬영장의 뻣뻣함을 깨기 위해 스스로를 던져 판을 여는 촉진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누군가 주저하면 밀어주고, 누군가의 드립을 자연스럽게 받아 이른바 살려주는 사람. 그 포지션이 사라지면 판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되지 않고 그저 지저분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동완은 “여러 사람과 어우러져 판을 관장해야 하지만,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 있어야 하는 사람. 나는 그 자리에 유재석이라는 이름이 오래도록 함께 하길 응원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김동완은 1998년 그룹 ‘신화’로 데뷔해 ‘퍼펙트 맨(Perfect Man)’ ‘브랜드 뉴(Brand New)’ 등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다. 배우로도 활동하며 드라마 ‘힘내요 미스터 김’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 등에 출연했다. 유재석은 ‘런닝맨’ ‘놀면 뭐하니’ 등 예능에서 활약 중이며, 지난 29일 ‘2025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으로 MBC 대상은 개인 통산 9번째, 통산 대상은 21번째다.
  • “변요한·정유미 투샷 못 본다”…끝내 제작 무산된 ‘한국 영화’

    “변요한·정유미 투샷 못 본다”…끝내 제작 무산된 ‘한국 영화’

    배우 변요한, 정유미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초희 감독의 차기작 ‘숨 가쁜 연애’가 투자 결렬로 인해 제작이 무산됐다. 지난 29일 김초희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숨 가쁜 연애’, 결국 빛을 보지 못한 내 영화의 제목”이라며 제작 무산 소식을 직접 전했다. ‘숨 가쁜 연애’는 독립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산나물 처녀’ 등으로 시상식을 휩쓸며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김 감독의 상업 영화 데뷔작으로 주목받아 왔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배우 변요한과 정유미의 출연 소식이 알려지며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제작은 스튜디오앤뉴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끝내 제작이 무산됐다. 김 감독은 “2020년 7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개봉이 마무리될 때쯤 ‘오리지널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제안을 준 사람도 마음에 들고, 제작사도 믿을 만하고, 무엇보다 내 오리지널 각본이라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어 냅다 계약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어떻게든 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상업 영화 한 편을 만들어보자’, ‘홍상수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사는 감독이 되자’는 두 가지 마음으로 지난 5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그러나 경험 부족과 시행착오, 무엇보다 시장 상황이 너무 나빠져 결국 투자가 결렬되고 말았다”며 “소위 말해 영화가 엎어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신기하게도 이렇게 끝난 게 별로 마음이 힘들지 않다. 되려 홀가분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이 과정을 함께 지켜본 관계자분들이 발을 동동 굴렀고, 영화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려준 배우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라며 “하지만 이제는 진짜 끝났다. 결과는 완전히 실패다. 상업 영화 데뷔는 수포가 되었고, 그동안 나는 다섯살이나 더 먹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함께 노력한 관계자, 배우, 스태프 모두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고맙고 미안하다”며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을 얻었다. 그러니 실패했어도 괜찮다”라고 털어놨다. 제작 무산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변요한과 정유미의 조합을 정말 기다렸는데 너무 아쉽다”, “감독이 가장 허탈하겠지”, “좋은 대본이라면 다른 기회로 꼭 제작되길 바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 김수용 살린 김숙, 매니저와 번갈아 심폐소생술…“지옥 맛 봤다”

    김수용 살린 김숙, 매니저와 번갈아 심폐소생술…“지옥 맛 봤다”

    방송인 김숙이 김수용의 심정지 순간에 대해 전했다. 29일 유튜브 채널 ‘김숙티비’에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 김수용, 그날의 이야기(ft. 임형준, 가평소방서 구급대원분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최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김수용과 심폐소생을 도왔던 임형준이 출연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숙은 “오늘 좀 귀한 손님이 온다. 못 볼 뻔한 사람을 다시 보게 돼 너무 설렌다. 그분은 저승을 다녀왔다면 저는 지옥을 맛봤다”고 운을 뗐다. 김숙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진짜 아무 소리 안 냈고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 꿇고 바로 뒤로 쓰러졌다. 오빠(김수용)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지 않는다. 장난이 아닌 게 딱 느껴지더라”고 했다. 김숙은 “쓰러지자마자 바로 심폐소생술을 했다. 매니저와 번갈아 가며 심폐소생술을 했고, 손이 너무 하얘져서 손을 계속 주무르라고 했다”고 했다. 임형준은 “숙이가 모든 걸 다 정리정돈해 줬다. 거의 감독같았다”고 했다. 임형준은 “내가 (목걸이에 있는) 약을 풀어서 입에 넣었는데 형이 약을 뱉어내더라. 숙이가 약을 다시 주웠다”고 했다. 김숙은 “(김수용이) 입을 앙 다물고 있길래 힘으로 벌렸다”고 설명했다. 임형준이 “턱뼈는 괜찮냐”고 묻자 김수용은 “약간 아프던데 너구나. 턱뼈 빠진 것 같은데”라고 했다. 김숙은 “다시 여기로 돌아와줘서 너무 고맙다. 형준 오빠와 구급차를 따라가면서도 계속 이야기했는데, 오빠에게 혹시라도 잘못된 일이 생기면 당분간 방송을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형준 오빠와 나는 오빠 얼굴을 끝까지 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이어 “구급차가 오기까지 약 9분 정도 걸렸는데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 김종민 “옥상서 추락 후 3일 만에 깨어나”…아찔했던 사고

    김종민 “옥상서 추락 후 3일 만에 깨어나”…아찔했던 사고

    그룹 ‘코요태’ 김종민이 어린 시절 옥상에서 떨어졌던 일화를 전했다. 29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에는 문세윤, 김종민, 딘딘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딘딘은 “제가 되게 예민한 성격이다. 그래서 ‘1박2일’ 촬영할 때도 뜻대로 안 풀리면 되게 예민해지는데 종민이 형은 늘 그냥 ‘어 그래? 뭐 어때’ 이렇게 사는 거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날 궁금해서 종민이 형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풍선이라고 생각하면 돼. 넌 가만히 있고 사람들이 하는 대로 떠다니면 된다. 네가 뭘 억지로 하려고 하지마’라고 조언하더라”고 회상했다. 문세윤도 “종민이 형이 맨날 조언을 해준다. ‘고민하지마. 그냥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 그냥 넌 열심히만 하면 해’ 이런 식의 조언을 많이 해주는데 생각해 보면 그냥 특별하게 해줄 조언이 없는 거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딘딘은 “그 조언을 듣고 가만히 종민이 형을 보면 진짜 가만히 있는다”며 “음식점을 가서 먹어도 ‘진짜 맛있다’ 그러고 보면 종민이 형 사진이 걸려 있다. 자기가 온 걸 기억을 못 한다”고 말했다. 이에 신동엽은 문세윤에게 “김동현과 김종민 중 누가 더 재미있냐”고 물었다. 문세윤은 “김동현과 1년을 먼저 촬영했었다. 1년 후에 ‘1박 2일’ 촬영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김동현이 더 바보 같았다. 근데 쭉 지내보니까 종민이 형이 훨씬 모자라다”고 폭로해 웃음을 더했다. 문세윤은 “어느 날 김종민에게 ‘왜 이렇게 어버버가 됐냐’라고 물어 봤었다. 그때 형이 뭐라고 했냐면 ‘옥상에서 떨어졌었다’고 했다”고 설명했고, 김종민은 “초등학교 때 옥상에서 떨어졌었다”고 부연했다. 문세윤은 “며칠 동안 기절해 있다가 3일 만에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엄마가 포경수술을 시켰다는 루머가 돌았고 그게 진짜야라고 물어보다가 이게 사실인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당황한 김종민이 “그때 ‘병원에 입원한 김에 해’라고 해서 그때 했다”고 해명하자 딘딘은 “애가 기절해 있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김종민은 “깨어난 다음에 했다”고 정정했고, 신동엽은 “설마 기절해 있는데 했겠냐”고 말해 현장을 폭소케 했다.
  • 조세호 떠난 ‘유퀴즈’ 허경환이 채운다…“유재석 새 애착인형”

    조세호 떠난 ‘유퀴즈’ 허경환이 채운다…“유재석 새 애착인형”

    조세호에 이어 차기 MC 후보로 거론되는 개그맨 허경환이 ‘유퀴즈’에서 또 유재석과 만난다. 최근 유튜브 채널 ‘유 퀴즈 온 더 튜브’에서는 ‘[예고]토크에 잔뜩 물오른 허경환! 26년 동안 짱구 목소리를 연기한 박영남 성우와 2026학년도 수능 만점자들까지!#유퀴즈온더블럭’ 영상이 게시됐다. 허경환이 등장하자마자 유재석은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맛 아입니까”라며 그의 유행어를 연달아 따라 했다. “마냥 웃기고 싶은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허경환에게 유재석은 “내년이 허경환의 20주년이다. 그때 부르는 것이 맞는데 우리가 19주년에 불렀다. 급 오른 인기 또 급히 꺼질까 봐”라고 농담해 웃음을 자아냈다. 허경환은 ‘첫 데뷔’에 대해 “갓난아기 1세 때다. 엄마가 버스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드라마에 아기 좀 빌려줄 수 있냐’고 했다. 분유 두 통에 제가 드라마에 출연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또 ‘개콘 첫 무대 당시’를 회상했다. 허경환은 “‘개콘’ 무대 위에 올라갔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NG를 5~6회 내는데 땀이라는 것이 앞으로, 직진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앞으로 쭉쭉 나가는 것이었다”라고 아찔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전했다. 과거 ‘해피투게더’ 등 여러 예능에서 유재석과 호흡을 맞춘 허경환은 최근 MBC ‘놀면 뭐하니?’ SBS ‘런닝맨’ 등에서도 유재석과 다시 만나 케미를 보여주며 큰 호응을 얻었다.
  • 日 고속버스 ‘짐칸’에 갇힌 10대, 긴급 SOS…“문 ‘쾅’ 닫히더니 그대로 출발”

    日 고속버스 ‘짐칸’에 갇힌 10대, 긴급 SOS…“문 ‘쾅’ 닫히더니 그대로 출발”

    일본에서 10대 승객이 고속버스 짐칸에 갇힌 채 약 10분간 운행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 직원이 확인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벌어진 일로, 갇힌 승객은 휴대폰으로 부모에게 상황을 알려 구조됐다. 27일 일본 TBS 계열 RKK 구마모토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밤 10시 38분쯤 규슈산코버스가 운행하는 후쿠오카공항발 구마모토행 고속버스 ‘히노쿠니호’에서 이러한 사고가 일어났다. 피해를 당한 10대 남성은 북해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구마모토시 기타구에 위치한 무사시가오카 정류장에서 내릴 때, 짐칸 안쪽 깊숙이 있던 짐을 꺼내려다 사고를 당했다. 남성은 “직원에게 짐을 꺼내달라고 부탁했지만 좀처럼 오지 않아 조급한 마음에 직접 몸을 집어넣고 꺼내려 했다”며 “그런데 직원이 문을 닫아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문이 닫힌 직후 남성은 재빨리 문을 여러 차례 세게 두드렸다. 밖에서 알아챌 것으로 기대했지만, 버스는 그대로 출발했다. “어둡고 무서운 상황에서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심하게 흔들렸다”고 남성은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휴대폰 불빛을 켜고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렸다. 버스는 남성을 태운 채 다음 정류장인 구마모토시 히가시구 야스다쿠보 기타 교차점까지 약 10분간 달렸다. “한두 번 사과하고 ‘괜찮으셨냐’는 확인을 받은 뒤 버스가 곧바로 출발했다”고 남성은 밝혔다. 그는 이후 부모가 데리러 와서 무사히 귀가했으며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규슈산코버스는 이와사키 시아키 사장 명의로 홈페이지에 ‘중요한 공지’를 게시하고 “승객의 생명과 신체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사과했다. 회사 측은 직원이 짐칸 문을 닫을 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라고 시인했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해 서비스 매뉴얼에 ‘짐칸 문을 닫을 때 내부를 눈으로 확인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전사적인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해 신뢰 회복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 거꾸로 놓인 풍경화가 열어준 추상의 문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거꾸로 놓인 풍경화가 열어준 추상의 문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미술사에서는 20세기 미술을 구축한 세 명의 거장을 묶어 ‘현대미술의 삼각편대’라고 부른다. 형태를 해체해 세계의 구조를 새롭게 읽어낸 피카소, 색채를 해방해 감각의 기쁨을 확장한 마티스, 대상을 지워버리고 순수 추상의 문을 연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다. 흥미로운 사실은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딘스키가 30세가 될 때까지 화가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스크바대에서 법과 경제를 공부했던 그는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 정교수직까지 제안받은 지식인이었다. 매우 유능한 법학자였던 그가 어떻게 추상화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칸딘스키가 남긴 저서와 명언을 길잡이 삼아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을 따라가 보자. 첫 번째 명언 “대상은 그림을 해친다” 이 문장은 추상미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칸딘스키는 구체적 형상이 관람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영혼의 깊은 울림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먼저 찾아내곤 한다. “이건 사과네”, “저건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다. 이렇게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맞히는 데 집중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색채의 울림이나 선의 리듬 같은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칸딘스키가 “대상은 그림을 해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상을 점·선·면 등 조형 요소로 표현 그렇다면 추상이란 무엇일까. 추상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된 본질이나 핵심 특성을 뽑아내어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미술에서 추상은 현실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점·선·면·색과 같은 순수한 조형 요소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칸딘스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로 추상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물론 동시대에도 힐마 아프 클린트처럼 추상적 시도를 한 작가들이 있었다. 칸딘스키가 특별한 이유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와 같은 저술을 통해 추상미술을 체계적 이론으로 정립했다는 점이다. 오직 선과 색의 유희만으로 구성된 이 그림 ‘무제’(첫 번째 추상 수채화, 도판 1)은 최초의 순수 추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제 시계를 되돌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서른 살의 법학자가 왜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붓을 들게 되었는지 세 가지 결정적인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계기는 1889년 칸딘스키가 모스크바대 의뢰로 떠난 러시아 볼로그다 지방의 민족지학 탐사 여행 중에 일어났다. 그가 한 농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생활 공간을 가득 메운 화려한 장식과 성화(聖畵)들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향연이었다. 그는 훗날 이때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마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1896년 그의 인생을 뒤흔드는 두 번째 계기가 찾아온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미술 전시회를 방문했다가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연작 중 하나인 ‘건초더미’ 앞에 서게 된다.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에 익숙했던 그에게 빛에 따라 변하는 색채를 포착하기 위해 형태를 흐릿하게 처리한 모네의 화면은 큰 충격이었다. 윤곽선, 명암, 입체감, 고유색은 사라진 듯했지만 대신 화면을 가득 채운 색채는 엄청난 힘과 광채로 그를 압도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날의 경험을 이렇게 생생하게 적는다. “도록을 보고서야 그것이 건초더미라는 것을 알았다. 그림 속에 대상이 없다는 느낌을 막연하게 받았다. 놀라움과 당혹감 속에서도 그림은 나를 사로잡아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인장을 찍었고 언제나 눈앞에 세부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림의 필수 요소인 대상에 대한 믿음이 불신당하기 시작했다.” 칸딘스키가 모네 그림에서 받은 충격은 대상을 알아보려 애쓰는 습관이 순수한 감동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세 번째 계기는 같은 해 볼쇼이 극장에서 일어난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다가 그는 소리가 색으로 보이는 공감각적 경험을 한다. 음악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면 회화도 색과 선만으로 영혼을 울릴 수 있다는 확신, 이 연쇄적인 체험이 훗날 칸딘스키가 개척할 추상미술의 출발점이 된다. 1896년 서른 살의 칸딘스키는 마침내 결심을 생각에만 두지 않고 실행으로 옮긴다. 보장된 미래였던 대학교수직을 내려놓고 독일 뮌헨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칸딘스키는 붓을 잡자마자 곧장 추상화를 그렸을까? 아니다. 처음에는 그 역시 풍경과 인물을 그리는 구상 회화로 출발했다. 그가 뮌헨을 떠나 파리 인근 세브르에 머물 때 제작한 ‘말을 타고 가는 연인’(도판 2)은 추상화로 진입하기 직전 단계를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보석 스타일이라 불리는 시기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면 속 말을 탄 연인들은 러시아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어두운 배경 위에 흩뿌려진 원색의 점들은 훗날 그가 구축하게 될 추상화의 전주곡처럼 느껴진다. 강 건너편 도시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양파 모양의 돔들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칸딘스키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영적 고향인 모스크바의 색채와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든 화면이다. ●세상 모방이 아닌 색채와 형태의 탐구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구상화를 그리던 칸딘스키는 어떻게 추상화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그의 극적인 전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뮌헨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화실에서 겪었다는 거꾸로 놓인 그림 사건이다. 그의 회고록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해 질 녘 야외 스케치를 마치고 화실로 돌아온 칸딘스키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낯선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 화실에서 그림은 찬란한 색채들로 이루어진 듯 보였고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넋을 잃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밝은 빛 아래서 신비로운 그림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신이 그렸던 풍경화였다. 단지 거꾸로 비스듬히 놓여 있었던 것뿐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칸딘스키는 회화가 외부 세계를 모방해야 한다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색채와 형태 그 자체의 생명력을 탐구하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명언 “색채는 건반이요,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현을 가진 피아노다” 칸딘스키는 소리를 들으면 색을 보고 색을 보면 소리를 듣는 공감각 능력자였다. 그는 피아노 건반이 각각 다른 음을 내듯 색채도 각기 고유한 음색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생각을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년)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펼친다. 이 책은 그가 추상미술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핵심 저서로 색과 형태가 인간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음악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노란색이 “참을 수 없는 힘으로 마음을 교란시키며 맹목적인 광기나 격분과 같은 성질”을 지닌다고 말한다. 빨간색은 바이올린의 맑고 힘찬 울림처럼 “내면에서 끓어오르지만 억제된 강한 에너지”를 지닌 소리다. 칸딘스키에게 화가가 캔버스 위에 색을 조합하는 일은 작곡가가 악보 위에 화음을 적어 넣는 것과 똑같은 창조적 행위였다. 그의 이론을 가장 인상적으로 구현한 예가 ‘인상 III (콘서트)’(도판 3)다. 이 작품은 칸딘스키가 1911년 뮌헨에서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의 연주회를 관람한 직후의 감동을 화면에 옮긴 것이다. 음악이 강렬한 색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목격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이올린, 딥 베이스, 관악기들이 내 눈앞에서 색들을 보게 했다. 거의 미친 듯한 야생적인 선들이 내 앞에 그려졌다.” ‘인상 III’은 그가 음악을 색으로 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면 중앙의 검은 형태는 무대 위의 그랜드 피아노를 단순화한 것이다. 거대한 노란색 덩어리는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음향의 압력을 뜻한다. 칸딘스키에게 그 음악은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트럼펫 같은 노란색으로 보였다. 그는 귀로 들은 음악을 눈으로 보이는 색채의 파도로 변환하며 “색채는 건반”이라는 자신의 말을 작품으로 증명한 것이다. 세 번째 명언 “작품 창조는 세계의 창조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 캔버스 안에서 스스로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자율적 우주에 가깝다. 세계 창조의 관점은 1926년 그가 독일의 현대 조형 학교 바우하우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집필한 이론서 ‘점·선·면’에서 더욱 논리적으로 다듬어진다. 이 책에서 칸딘스키는 예술 작품이 어떻게 하나의 독립적인 우주가 되는지를 점, 선, 면이라는 최소 단위에서부터 분석했다. 칸딘스키에게 작품은 점, 선, 면이 만들어 내는 긴장과 힘이 자기만의 법칙으로 조직되어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체계였다. 그가 추상화를 통해 보여 주려 했던 것은 자연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우주적 법칙이었다. 그의 우주적 관점이 아름답게 시각화한 사례가 ‘몇 개의 원’(도판 4)이다. ●추상화가는 시인이어야 한다! 무한한 우주 공간처럼 느껴지는 어두운 심연 속에 크기와 색이 다른 원들이 별과 행성처럼 떠 있다. 크고 작은 원들의 배치는 우주의 행성들이 중력에 의해 균형을 이루며 공전하는 듯한 우주적 조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만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놀랍도록 서정적이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칸딘스키는 기본형태 가운데 원을 가장 완벽하고 영적인 형태로 여겼다. 원은 안으로 모으는 힘(구심력)과 밖으로 퍼져나가는 힘(원심력)이 한 형태 안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격한 기하학을 통해 깊은 내면의 평화와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린 영적인 우주 풍경화를 창조한 것이다. 칸딘스키는 추상 화가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모든 예술 중에서 추상화가 가장 어렵다. 추상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구성과 색채에 대해 고도로 예민한 감각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진정한 시인이어야 한다. 마지막 조건이 가장 필수적이다.” 그는 추상은 현실의 대상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더 완벽한 조형 기술과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깊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칸딘스키에게 추상은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예술이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케이윌 “뇌신경 이상으로 노래가...”대인기피증까지

    케이윌 “뇌신경 이상으로 노래가...”대인기피증까지

    가수 케이윌이 은퇴 고민을 털어놨다. 케이윌은 27일 방송한 MBC TV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오래된 이야기”라며 “어느 순간 내 노래가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병원에 갔더니 성대 양쪽이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내 성대는 속도가 달랐다. 뇌신경 영향이라고 했다. 당시 말을 할 때마다 음이탈이 났고, 의사 선생님이 ‘노래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대가 거의 없어서 남들 몰래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었다. 벌써 5년이 넘었다. 팬들은 이미 알고, 공연을 보러 온 분들 중에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분들이 있었을 거다.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고 응원해준 팬들께 감사하다. ‘알잖아’ 같은 곡은 원래 진성으로 쭉 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됐다. 너무 안 되니까 어떻게든 노래하고 싶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케이윌은 “사람들은 내 상태를 모르니까 ‘노래 좋다, 한 곡 불러 달라’고 한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괜찮은 척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다”며 “어느 순간 대인기피증처럼 사람들을 피하게 되더라. 2022년쯤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가 은퇴였다. 그보다 더 안 좋은 생각도 해봤고, 완전히 바닥을 쳤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KBS 2TV ‘지코의 아티스트’에 출연했을 때 “가성에서 진성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창법으로 노래했는데, 화제가 됐다”면서 “녹화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엄청 긴장했다. 몇 년 만에 미디어에서 노래하는 자리라 불안했는데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고 ‘연습 많이 한 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해줬다. 알아봐 준 것 같아 정말 행복했다”며 울먹였다.
  • 백석예술대학교 미래융합인재학부 경찰경호학과, 경찰공무원 합격생 3명 배출

    백석예술대학교 미래융합인재학부 경찰경호학과, 경찰공무원 합격생 3명 배출

    백석예술대학교 미래융합인재학부 경찰경호학과에서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자 3명을 배출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끝까지 준비 과정을 완주한 이들은 “포기하지 않은 꾸준함과 학교의 체계적인 지원이 합격의 원동력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시험에 합격한 주인공은 최승우·정원준·이하민이다. 각자의 출발점과 준비 과정은 달랐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키워드는 ‘기초’, ‘꾸준함’, 그리고 ‘주변의 응원’이었다. “공부 방법을 몰라 막막했지만, 교수님 조언이 방향을 잡아줬다” 최승우(2019학번) 합격생은 수험 초기의 혼란을 가장 힘든 시기로 꼽았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공부 방법이나 방향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말한 그는 “교수님들의 조언과 기도 덕분에 조금씩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중간에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도 학교는 버팀목이 됐다고 말하며 “혼자 끙끙 앓기보다 학교를 찾아가 교수님들을 직접 뵀고, 그 과정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며 “그 응원이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만든 힘이었다”고 말했다. 최승우 합격생은 특히 학교에서 먼저 배운 법학 기초가 수험생활 전반에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시험 준비 전에 학교 수업을 통해 법의 기본 개념을 익힌 것이 이후 공부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후배들에게는 ‘무리하지 않는 공부’를 당부했다. 또 “빨리 합격하고 싶다는 욕심에 공부량을 지나치게 늘렸다가 슬럼프를 겪었다”라며 “하루하루 꾸준히, 슬럼프 없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필기만 보지 말고, 최종합격을 보고 준비해야” 정원준(2021학번) 합격생은 필기·체력·면접 전 과정을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그는 “단계마다 통과해야 할 과제가 있고, 하나를 넘을 때마다 부담감이 더 커졌다”며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험 전략에 대해 “필기 합격만 바라보고 준비하기보다는 최종합격을 목표로 멀리 보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와 학원 수업의 역할도 분명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뿐 아니라 수업 외에도 교수님들이 늘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확실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었다”며 “그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원 수업에 대해서는 “실제 시험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원 교수님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간 것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후배들에게는 힘 있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열심히 안 해도 된다는 말은 못하지만, 꾸준히만 하면 반드시 합격할 수 있다”며 “절대 불가능한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 한고은, 건강 적신호…“갑작스러운 하반신 마비” 고백

    한고은, 건강 적신호…“갑작스러운 하반신 마비” 고백

    배우 한고은이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찾아왔던 때를 돌아봤다. 한고은은 2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50세 갱년기 한고은 최근 건강상태 본 미국 한의사가 깜짝 놀란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당시를 회상했다. 한고은은 해당 영상에서 미국인 한의사 나비 니마 씨를 만나 건강 관련 대화를 나눴다. 특히 앞서 여러 채널에서 공개했던 하반신 마비를 겪었던 사연을 공유했다. 그는 “한 3년 전 겨울에 강아지랑 리조트 가서 놀아줬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에서 똑 소리가 나더니 주저앉는 느낌이 나더라”고 설명했다. “그 상태에서 못 움직였다. 다행히 발가락은 움직여졌다. 신경은 살아있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팔의 힘으로 몸을 버티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이어 “너무 창피해 119를 부를 수도 없었다. 이후에 남편에게 누구 좀 불러달라고 했는데 리조트가 도시랑 멀리 떨어져 있어 (119 오는 시간이) 40분 넘게 걸리는 거다. 다행히 스키장 비상 의료진이 저를 데리러 왔다. 너무 창피했다”고 덧붙였다. 한고은은 이후 병원에서 진통제를 맞았고, 근처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그는 “허리를 다치고 난 후 2일차엔 못 움직였다. 3일차에 기어 다녔다. 6일 차에 기적적으로 허리가 펴지더라.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고은은 최근 몸에 염증 수치가 올라 신우신염을 앓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고 했다. 한고은은 올해가 데뷔 30주년이다. 1995년 슈퍼 엘리트 모델 선발대회 출전 이후 시트콤 ‘LA 아리랑’으로 데뷔했다. 이후 광고에 출연했고, 1998년 영화 ‘태양은 없다’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연기자로 나섰다.
  • [한기호의 서로서로] 올해 책 시장이 말해 준 것

    [한기호의 서로서로] 올해 책 시장이 말해 준 것

    2025년의 출판시장은 한국소설 약진과 논픽션의 부진으로 간단하게 요약된다. 불황기에 소설은 언제나 잘 팔렸다.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판타지 소설이 떴다. ‘누적 판매 1000만부’ 신화를 달성한 한국형 판타지인 ‘퇴마록’(이우혁)과 ‘드래곤라자’(이영도)가 등장한 게 1998년이다. 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엔 인터넷 소설이 붐을 이뤘다. 본격문학이 현실적 대응력을 잃고 휘청거릴 때 귀여니가 계몽성이나 교훈성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감성과 이미지를 담은 ‘그놈은 멋있었다’를 비롯한 소설들을 들고 혜성처럼 나타나자 시장판도가 크게 흔들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에는 성장소설이 시장을 휩쓸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김려령의 ‘완득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등이 흔들리는 위기의 출판시장을 선도했다. 21세기 벽두에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성장을 꿈꾸다가 그 꿈의 실현이 어려워지자 다시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소설을 찾게 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난해 12·3 계엄 이후 출판시장이 크게 침체한 가운데도 올해 소설이 약진한 것은 한강 작가가 2024년 10월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그의 소설들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해나의 ‘혼모노’, 구병모의 ‘절창’,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황석영의 ‘할매’ 등의 신작소설이 오랜만에 선방했을 뿐만 아니라 양귀자의 ‘모순’을 비롯해 20세기 말에 사랑받았던 소설들이 역주행해서 이제 기대할 것은 소설뿐이라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논픽션 침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가 3만 부 판매를 기록한 것 외에는 언급할 만한 책이 없을 정도다. 이명박 정권 이후 독자들을 위로하던 힐링 에세이마저 힘을 잃었다. 정보 관련서들의 판매는 절반 이하로 줄었고, 학술서는 죽음을 일컬을 정도로 급감했다. 한때 인기였던 유튜브셀러 역시 기억될 만한 책을 찾아볼 수가 없다. 출판기획자들은 논픽션 부진의 원인을 인공지능(AI) 플랫폼의 등장에서 찾는다. 하루가 다르게 AI가 진화하면서 출판의 미래는 불확실해졌다. 최근까지도 궁금한 것은 대부분 검색으로 해결했고, 검색이 모든 비즈니스의 원점이 되면서 포털의 첫 줄에 상품이 노출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검색을 포기하고 AI에 질문을 던진다. 만족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질문을 계속한다. 인간은 검색에서 질문으로 완전히 말을 갈아타고 있다. 점점 똑똑해지는 AI를 비서로 활용한다지만 인간은 혼자서 AI를 이겨낼 수 없다. 앞으로 인간은 서로 협력해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 생각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일은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만이 해낼 수 있다. 앞으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생존의 지혜를 찾은 이들이 세상을 주도할 것이다. 그런 노력은 학교에서부터 벌어져야만 한다. 이미 학교는 그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책의 미래는 여전하다. 다만 어떤 책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소장
  • 효연, 비밀 열애 고백… “새벽에 한강 데이트”

    효연, 비밀 열애 고백… “새벽에 한강 데이트”

    그룹 소녀시대 멤버 효연이 과거 비밀 연애 경험과 첫키스 일화를 털어놨다. 지난 23일 방송된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는 김준현, 브라이언, 효연, 손태진이 출연해 다양한 토크를 이어갔다. 효연은 연습생 시절 햄버거 하나를 먹기 위해 반성문 300자를 써야 했던 사연을 언급하며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하고 싶어지는 성격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 돈으로 내가 먹겠다는데, 안 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의 당돌했던 마음가짐을 솔직하게 전했다. 연애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효연은 더욱 거침없는 입담을 보였다. 효연은 “연애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더 하고 싶어졌다”며 “나는 안 하고 있는데 누가 연애하다가 혼나는 걸 보면 ‘아, 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출연진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효연의 비밀 열애 고백이었다. 효연은 “절대 들키면 안 되는 시기였다”며 “새벽 3시까지 기다렸다가 멤버들이 모두 잠든 새벽 4시쯤 몰래 숙소를 나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 시간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한강에서 데이트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효연은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는 한강에서 벙거지나 캡모자를 쓰고 있으면 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있었다”며 “맞은편에서 벙거지를 쓴 사람이 보이면 서로 연예인일까 봐 뒤돌아서 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래도 그 스릴이 좋았다”며 비밀 연애의 설렘을 떠올렸다.
  • “브레이크가 없다!” 영화 스피드 실사판...멈추지 않는 490㎞ ‘공포의 질주’

    “브레이크가 없다!” 영화 스피드 실사판...멈추지 않는 490㎞ ‘공포의 질주’

    “핸들을 잡은 손바닥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듯 땀이 흥건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발끝에 전해지는 것은 허공 속 솜뭉치를 짓누르는 듯한 무력함뿐이었다. 4시간 반 동안, 고속도로 위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겠다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지난 17일, 중국 G75 란하이 고속도로에서 영화 ‘스피드’를 방불케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5일 중국 환구망 보도에 따르면 운전자 마모씨가 몰던 차량의 정속 주행 장치(크루즈 컨트롤)에 돌발 결함이 생겨 해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시속 115㎞로 490㎞를 질주한 끝에 연료가 바닥나서야 차량이 멈춰 선 이번 사건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살려주세요” 경찰 호위 속에 연료 떨어질 때까지 4시간 반 사투 사고 당일 밤 마씨는 고속도로 진입 뒤 크루즈 컨트롤을 켜고 시속 115㎞ 정속 주행을 개시했다. 하지만 전방 차량 흐름이 정체되자 감속을 위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재앙이 시작됐다. 페달은 허공을 밟는 것처럼 무력했고, 수십 번 반복해서 누른 정속 주행 해제 버튼도 말을 듣지 않았다. 마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급히 자동차 수리점(4S점) 기술자에게 전화해 알려준 모든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차량 내부 역시 아수라장이었다. 동승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고, 마씨는 비상등과 경적을 동원해 주변 차량에 위험을 알렸다. 그는 추월이 불가능한 구간에서는 갓길을 이용해 가드레일과 한 뼘 차이의 아슬아슬한 질주를 이어가야 했다. 신고 접수 20분 뒤, 린타오 톨게이트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교통경찰이 합류해 본격적인 구조 작전이 펼쳐졌다. 경찰차 10여대가 마씨 차량의 앞길을 터주는 ‘인간 방패’ 역할을 했고, 도로관리 차량은 후방을 완전히 차단해 거대한 안전 방어선을 구축했다. 4시간 반의 사투 끝에 시속 115㎞로 달리던 차량은 연료가 완전히 소진된 뒤 멈춰 섰다. 마씨는 “연료 게이지가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매 초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시동이 꺼지고 차가 멈췄을 때, 온몸이 떨려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고 전했다. ●‘차량 결함’인가 ‘조작 미숙’인가… 번지는 진실 공방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사고 원인을 두고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누리꾼들은 차량 외관과 엠블럼을 근거로 해당 차량이 ‘제일자동차(FAW) 베스턴(Bestune) B70’ 모델임을 밝혀냈다. 일각에서는 과거 벤츠 크루즈 컨트롤 불능 사건을 언급하며 마씨의 주장이 ‘자작극’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2018년 3월에도 쉐모씨가 자신의 벤츠 차량을 멈출 수 없어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로 끝없이 달려야 했다고 주장한 ‘멈출 수 없는 벤츠’ 사건이 발생했지만 정밀 조사 결과 운전자의 조작 미숙으로 드러났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내연기관차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전자 제어보다 우선시되는 기계적 구조다. 브레이크 자체가 먹통이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음료수를 쏟아 장치가 고장 났다’고 주장했던 사례처럼 마씨도 크루즈 컨트롤 해제 방법을 몰랐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마씨를 옹호하는 여론도 팽팽하다. “누가 목숨을 걸고 490㎞를 질주하는 쇼를 하겠느냐”는 반박이다. 마씨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모든 수단을 다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마씨는 직접 소셜미디어(SNS)에 영상을 공개하며 “일부 매체와 네티즌의 자작극 주장은 내 목에 가시를 박는 것과 같다”며 분노를 표했다. 그는 이미 제조사로부터 차량 구매가인 13만 위안(약 2500만원)을 전액 환불받았으며, 제조사에 철저한 원인 규명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보조 주행 장치의 역설… “안전망 확보 절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 보조 주행 시스템의 안전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자 시스템이 차량을 통제하는 비중은 늘었지만, 시스템 오류 시 이를 강제로 차단할 ‘기계적 안전장치’는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중적인 보급형 차량일수록 극한 상황에서 제어권을 되찾을 수 있는 강제 탈출 매커니즘이 필수적”이라며 “기술의 진보가 기초적인 운전 제어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운전자들에게 정속 주행 장치 사용 전 해제 방법을 완전히 숙지할 것과, 비상 상황 시 브레이크 외에도 중립(N) 기어 변환, 핸드브레이크 단계적 사용 등 다각도의 대응법을 익힐 것을 당부했다.
  • “브레이크가 없다!” 영화 스피드 실사판...멈추지 않는 490㎞ ‘공포의 질주’ [여기는 중국]

    “브레이크가 없다!” 영화 스피드 실사판...멈추지 않는 490㎞ ‘공포의 질주’ [여기는 중국]

    “핸들을 잡은 손바닥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듯 땀이 흥건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발끝에 전해지는 것은 허공 속 솜뭉치를 짓누르는 듯한 무력함뿐이었다. 4시간 반 동안, 고속도로 위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겠다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지난 17일, 중국 G75 란하이 고속도로에서 영화 ‘스피드’를 방불케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5일 중국 환구망 보도에 따르면 운전자 마모씨가 몰던 차량의 정속 주행 장치(크루즈 컨트롤)에 돌발 결함이 생겨 해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시속 115㎞로 490㎞를 질주한 끝에 연료가 바닥나서야 차량이 멈춰 선 이번 사건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살려주세요” 경찰 호위 속에 연료 떨어질 때까지 4시간 반 사투 사고 당일 밤 마씨는 고속도로 진입 뒤 크루즈 컨트롤을 켜고 시속 115㎞ 정속 주행을 개시했다. 하지만 전방 차량 흐름이 정체되자 감속을 위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재앙이 시작됐다. 페달은 허공을 밟는 것처럼 무력했고, 수십 번 반복해서 누른 정속 주행 해제 버튼도 말을 듣지 않았다. 마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급히 자동차 수리점(4S점) 기술자에게 전화해 알려준 모든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차량 내부 역시 아수라장이었다. 동승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고, 마씨는 비상등과 경적을 동원해 주변 차량에 위험을 알렸다. 그는 추월이 불가능한 구간에서는 갓길을 이용해 가드레일과 한 뼘 차이의 아슬아슬한 질주를 이어가야 했다. 신고 접수 20분 뒤, 린타오 톨게이트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교통경찰이 합류해 본격적인 구조 작전이 펼쳐졌다. 경찰차 10여대가 마씨 차량의 앞길을 터주는 ‘인간 방패’ 역할을 했고, 도로관리 차량은 후방을 완전히 차단해 거대한 안전 방어선을 구축했다. 4시간 반의 사투 끝에 시속 115㎞로 달리던 차량은 연료가 완전히 소진된 뒤 멈춰 섰다. 마씨는 “연료 게이지가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매 초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시동이 꺼지고 차가 멈췄을 때, 온몸이 떨려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고 전했다. ●‘차량 결함’인가 ‘조작 미숙’인가… 번지는 진실 공방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사고 원인을 두고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누리꾼들은 차량 외관과 엠블럼을 근거로 해당 차량이 ‘제일자동차(FAW) 베스턴(Bestune) B70’ 모델임을 밝혀냈다. 일각에서는 과거 벤츠 크루즈 컨트롤 불능 사건을 언급하며 마씨의 주장이 ‘자작극’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2018년 3월에도 쉐모씨가 자신의 벤츠 차량을 멈출 수 없어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로 끝없이 달려야 했다고 주장한 ‘멈출 수 없는 벤츠’ 사건이 발생했지만 정밀 조사 결과 운전자의 조작 미숙으로 드러났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내연기관차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전자 제어보다 우선시되는 기계적 구조다. 브레이크 자체가 먹통이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음료수를 쏟아 장치가 고장 났다’고 주장했던 사례처럼 마씨도 크루즈 컨트롤 해제 방법을 몰랐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마씨를 옹호하는 여론도 팽팽하다. “누가 목숨을 걸고 490㎞를 질주하는 쇼를 하겠느냐”는 반박이다. 마씨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모든 수단을 다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마씨는 직접 소셜미디어(SNS)에 영상을 공개하며 “일부 매체와 네티즌의 자작극 주장은 내 목에 가시를 박는 것과 같다”며 분노를 표했다. 그는 이미 제조사로부터 차량 구매가인 13만 위안(약 2500만원)을 전액 환불받았으며, 제조사에 철저한 원인 규명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보조 주행 장치의 역설… “안전망 확보 절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 보조 주행 시스템의 안전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자 시스템이 차량을 통제하는 비중은 늘었지만, 시스템 오류 시 이를 강제로 차단할 ‘기계적 안전장치’는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중적인 보급형 차량일수록 극한 상황에서 제어권을 되찾을 수 있는 강제 탈출 매커니즘이 필수적”이라며 “기술의 진보가 기초적인 운전 제어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운전자들에게 정속 주행 장치 사용 전 해제 방법을 완전히 숙지할 것과, 비상 상황 시 브레이크 외에도 중립(N) 기어 변환, 핸드브레이크 단계적 사용 등 다각도의 대응법을 익힐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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