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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혼불’ 7년 2개월 월간지 최장 연재총 10권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작가 “조상의 삶이 수놓여진 글” 생이 끝날 때까지 집필에만 몰두 어릴 때 지낸 전주에 문학관 건립호남 노래·풍속 등 생생하게 풀어힘든 서민의 생활 아름답게 표현“글 속 문장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밤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 최명희 ‘혼불’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최명희길을 걷다 중앙초등학교 옆의 작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 홀리듯 앞으로 향하면 부채문화관이 나온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최명희 문학관’이 나타난다. 예스러운 기와집이야 한옥마을 전체가 다 그러하니 크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 앞에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치게 된다. 문학관의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데 아마도 그 자리가 옆집에서 부쳐 온 부채의 바람이 드나드는 바람목이지 싶다. 바람을 따라 찾아온 누군가의 혼백 아니 도깨비불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길목이어서인지 그곳은 늘 생과 사가 공존하고, 먼저 간 사람의 마음까지도 매만져 볼 수 있는 자리다. 부채의 바람결에 실려 있는 최명희의 문장들 덕분이다. 남원의 혼불 문학관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 문학관을 찾은 것은 바로 그 ‘바람’과 ‘푸른 불’ 때문이었다. 문학관이 표방한 ‘작가가 다시 살러 온 집’은 그리하여 누구라도 계속 머물 것만 같고, 떠났던 이가 돌아와 여장을 풀며 몸과 마음을 바람에 말리는 장소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신의 음성, 차마 못다 한 말들이 부채가 일으킨 공명을 타고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눈 밝은 이들이 찾아드는 것이다.‘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봤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서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종발만 한데, 빛살 없는 푸른색이며,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중략) 이것이 미신이냐 실화냐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최명희 ‘나는 왜 ‘혼불’을 쓰는가’ 소설가 최명희는 1947년 전북 전주시 화원동에서 출생했다.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사범병설중학교, 기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전주 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중, 보성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 제1부가 당선됐다. 교직을 그만두고 혼불 창작에만 매진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부터 5부까지 연재했다. 이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만 7년 2개월)다. 1990년에 혼불 제1부와 2부를 발간했으며 1996년에 혼불 제1부부터 5부까지 총 10권(한길사)을 발간했다. 이는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이다.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혼불’ 작가 후기 최명희의 주요 작품으로는 ‘몌별’, ‘만종’, ‘정옥이’, ‘주소’와 마지막으로 ‘혼불’이 있다. 혼불은 10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미완성된 작품이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기 직전까지 혼불의 제5부를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가 된 이후 생이 끝날 때까지 ‘혼불’을 구상하고 집필에 몰두했던 최명희는 1998년에 난소암의 발병으로 51세에 사망했다. ‘혼불’ 제5부 완간 4개월을 앞두고 암이 발병했지만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하다 1996년 12월에 혼불의 마지막 부분을 썼다. 그가 죽었으니 제5부가 마지막일 뿐, 그가 살아 있었다면 혼불은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책이 출간되자 일부에서는 ‘완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은 아직 완간이 아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해방 공간 이후 6.25, 4.19, 5.16 등 가까운 현대사까지 이어져 한국사의 격동기를 그리게 될 것”이라 말했다. 우리의 풍속을 잃지 않으면서도 격변하는 사회상과 민중의 삶을 잘 그려 냈다는 평에 대하여 작가는 생전에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글은 제가 쓴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아득한 개국의 시원에 웅녀 할머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이 땅의 조상들의 말 없는 한숨, 괴로움, 아픔, 그들이 나서 살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저절로 와서 한 자씩 수놓아져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소설은 이미 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거대한 강물로 저를 붙잡고 있어서 작중의 인물들이 토해 내는 많은 이야기를 주워 담는 것만이 제 역할이었어요.”(‘필’ 1997년 1월호)라고 소회를 밝혔다. 만 17년을 한 작품에 쏟는 열정, 그 때문에 그가 일찍 혼불이 돼 날아갔을까.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장례는 전주시 사회장으로 5일 동안 치러졌다. 전주시청 앞에서 영결식이 열렸고, 고인의 생가와 모교인 기전여고를 거친 시가지 운구 행렬에 이어 전북대에서 노제를 지냈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앞으로 써야 할 글감이 130여개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저쪽에서도 끊임없이 쓰고 있을까. ‘혼불’을 일컬어 ‘한국 혼 일깨우는 이 땅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라고들 한다. 소설 속에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잘 버무리며 생의 질곡과 역사의 너울을 한없이 순정하고도 곡진한 우리말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사, 풍속사, 의례와 속신들을 유장하게 풀어낸 소설의 문장들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라 일컬어진다.또한 ‘혼불’은 호남지방의 관혼상제, 노래, 음식, 세시풍속 등을 생생하게 표현해 내서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름답게’가 아닐까. 최명희는 그 유장하고 지리멸렬했던 한국사와 생활사 그리고 사람살이를 어떻게든 ‘아름답게’ 표현해 내려 평생을 바쳤던 작가다. 단재상과 세종문화상, 전북 예향대상과 여성동아대상, 호암상 예술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육관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1997년에 독자들이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혼불기념사업회가 발족됐고, 이듬해부터 혼불문학제가 개최됐다. ‘혼불’의 배경 지역인 남원시는 2004년 10월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혼불 문학관을 개관했다. 전주시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완산구 풍남동에 최명희 문학관을 세웠다. 최명희 문학관은 2006년 4월에 전주한옥마을에 터를 잡았다. 작가 최명희의 녹록지 않았던 삶과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친필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들, 생전 인터뷰와 문학 강연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여러 작품에서 추려 낸 글이 새겨진 각종 패널들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전시관인 독락재가 있고 지하는 문학강연장 및 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로 꾸며졌다. 한옥마을의 최명희길이 끝나 가는 즈음에 생가터가 있다. 자신의 고향, 생가터에 관하여 최명희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동네입니다. (중략) 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마음에 꽃밭 하나, 활활 타오르는 문장의 불 하나를 지니고 살았던 사람. 그리하여 그 불꽃과 화원을 함께 하늘로 태워 보낸 사람. 우리 곁에는 언제나 ‘푸른 불꽃’으로 남은 사람의 마지막 거처, 최명희 문학관이다. 부채의 바람을 탄 문장들이 이끄는 자리로 오늘의 당신을 초대한다. 바람이 푸른 불꽃을 당신의 거처에까지 가져가 준다면, 그대여 그 뒤를 따라오시라. 소설가 이은선
  • 제주서 盧 회상하다 울컥한 尹… 광주 민심 겨냥 ‘7대 공약’

    제주서 盧 회상하다 울컥한 尹… 광주 민심 겨냥 ‘7대 공약’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주말 동안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 데 이어 광주 5·18민주묘지를 석 달 만에 다시 찾는 등 외연 확장 행보에 집중했다. 윤 후보는 지난 5일 노 전 대통령이 집권 당시 거센 반대 여론에도 제주해군기지 건립을 결정했던 강정마을을 찾았다. 윤 후보는 제주 강정해오름노을길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2007년 노 전 대통령께서 주변의 많은 반대에도 고뇌에 찬 결단을 하셨다. 저는 노 전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팬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이 목이 멘 배경을 묻자 윤 후보는 “노 전 대통령께서는 순수한 열정, 원칙 있는 국정운영을 해 오신 분인데, 본인을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서 극구 반대하는 것을 국익이라는 한 가지 원칙에 따라서 해군기지 건설 결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독한 결정이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니 잠시 제가 노 전 대통령의 당시 입장을 좀 생각하게 됐었다”고 설명했다. 윤 후보는 6일에도 광주를 방문하며 외연 확장에 주력했다. 그는 이날 광주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5월 정신이 자유민주주의와 국민통합 정신이라 생각한다”며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킨 5월 정신을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모두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오월어머니회 소속 일부 유족들과 광주 시민단체들의 반대 시위에 막혀 추모탑까지 가지 못하고 추모탑 약 30m 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춰 분향 대신 묵념으로 대신한 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윤 후보는 지난해 11월 10일에도 시위에 가로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참배했다. 윤 후보는 이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선거대책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서 “광주는 제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며 “광주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국민의힘도 함께 변화시키고 바꾸겠다”고 말했다. 또 광주 민심을 겨냥해 국가 AI데이터센터 구축, 도심 광주공항 이전 등 ‘7대 공약’도 발표했다. 광주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을 방문해서는 “어디 후진국이나 미개한 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유족을 위로했다.
  • [여기는 중국] “잘 가거라” 바리바리 싸주신 반찬 트렁크 한가득…고향 부모의 마음

    [여기는 중국] “잘 가거라” 바리바리 싸주신 반찬 트렁크 한가득…고향 부모의 마음

    중국의 음력 설인 춘제 연휴를 마치고 도시로 돌아가는 자녀의 자동차 뒷좌석에 직접 만든 훈제 고기를 가득 채워 넣은 모친의 따뜻한 모정에 이목이 쏠렸다. 화제가 된 사건은 지난 3일 춘제 연휴를 마치고 귀경을 앞둔 외동딸과 사위 내외의 자동차에 가득 실린 다량의 훈제 고기들이 담긴 영상이 소셜네트워크(SNS)에 공개되면서부터다. 영상 속 주인공인 남성 탕 씨는 올해 춘제 연휴 동안 아내의 고향인 중국 후난성 샹시를 찾았다가 이 같은 먹거리 선물을 받았다고 설명했다.탕 씨는 “정월 초 이튿날 점심을 먹고 떠나려고 하자 장모님이 트렁크를 열라고 했다”면서 “처음에는 장시간 이동하며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챙겨 주시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장인어른과 장모님 두 분이 트렁크 가득 훈제 고기를 넣어 놓으셔서 트렁크 문이 안 잠길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가 직접 촬영해 공개한 영상 속에는 훈제 고기 외에도 장시간 운전하며 고속도로를 이동해야 하는 딸과 사위 두 사람을 위해 먹거리를 추가로 넣으려는 장인과 장모의 모습과 이를 한사코 사양하는 탕 씨의 모습이 담겨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장인과 장모 두 사람은 “일 년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이왕이면 최대한 많이 가져가라. 외지에 가면 고향 맛을 못 볼 텐데 얼마나 그리우냐”면서 탕 씨의 자동차 안쪽 좌석까지 먹거리들을 가득 챙겨 넣는 모습이었다.영상에는 탕 씨가 장인을 향해 한사코 사양하는 사이 장모가 차량 안쪽에 먹을거리를 넣어뒀고, 그가 장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를 틈타 장인이 먹거리가 담긴 흰 자루와 봉투들을 넣어두는 장면도 그대로 실렸다. 알려진 바로는, 탕 씨와 아내 두 사람은 몇 년 전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이주한 농민공 출신의 20대 부부다. 이들은 평소 바쁜 업무 탓에 1년에 한 차례씩 춘제 연휴 기간을 활용해 고향을 방문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탕 씨는 이날 장인, 장모가 챙겨 준 훈제 고기에 대해 “두 분이 직접 키운 옥수수와 곡물을 먹여 가며 키운 돼지로 만든 고기다”면서 “우리 부부가 춘제 기간에 고향을 방문할 수 있다고 전화를 드리면, 약 두 달 전쯤부터 직접 키운 돼지고기를 잡아서 소나무 장작 위에 올려 연기로 정성껏 훈제한다고 들었다. 그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다”고 했다.그런데, 긴 연휴를 마치고 도시로 돌아가는 자녀를 위해 각종 먹거리를 두 손 가득 챙겨 준 가족들의 이야기는 탕 씨 부부만이 아니다. 지난 4일 평소 충칭시에 거주하며 직장 생활을 하는 남성 린 씨는 이번 춘제 연휴 동안 아내의 고향을 찾았다가 자동차 트렁크까지 가득 채운 먹거리를 받아 즐거운 비명을 지른 사연을 공개했다. 린 씨는 이번 춘제 연휴 동안 아내와 함께 고향을 찾았는데, 린 씨 아내의 친정 식구들과 평소 아내를 키워 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각종 먹거리를 가득 담아 귀경한 사연을 설명했다. 그의 아내와 친정 가족들은 평소 오리와 돼지 등을 직접 사육하고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을 운영 중인데, 린 씨가 도시로 돌아가기 직전 그의 차량에 각종 먹거리를 가득 채워 넣으면서 차량 문이 안 잠기게 됐다는 사연이다.린 씨는 “훈제한 오리고기와 돼지고기 등이 자동차 안쪽 좌석과 바닥, 트렁크까지 가득 찼었다”면서 “훈제 고기 한 조각에 보통 3~4㎏이 훨씬 넘는 무게인데, 그야말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두 손 가득 무거워서 행복한 비명을 지를 뻔했다”고 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현지 누리꾼들은 “탕 씨와 린 씨 두 사람에게 이렇게 좋은 장인, 장모가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럽다”면서 “아마도 두 사람의 자동차에 가득 찬 훈제 고기의 양이 돼지 반 마리의 양은 넘는 것 같다. 그 수고스러움을 고려해서라도 다음번 귀향길에는 부모님께 두툼한 용돈을 챙겨 드리는 것을 잊지 마라”는 당부를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최소 반년 이상은 넉넉히 재워두고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챙겨 준 친정 식구들의 정성은 다름 아닌 아내에게 평소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면서 “평소 아내와 갈등이 있을 적마다 이번에 두둑하게 받아 온 무거운 고기 무게를 잊지 말라. 트렁크 문이 안 닫힐 정도로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아내에게 지난해보다 몇 배 더 친절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클로이 김 “평창 금메달, 쓰레기통에서 꺼냈어요”

    클로이 김 “평창 금메달, 쓰레기통에서 꺼냈어요”

    극심한 스트레스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버린 적이 있다고 했던 ‘보드 천재’ 클로이 김(22·미국)이 “쓰레기통에 버렸던 메달은 물론 다시 꺼내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로이 김은 6일(한국시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정보 제공 사이트인 ‘마이 인포’에 실린 인터뷰에서 쓰레기통에 버린 메달에 대한 질문에 “다시 쓰레기통에서 꺼내왔다”고 답했다. 평창 대회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 클로이 김은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메달을 부모님 집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밝혔다. 클로이 김은 이날도 관련 질문을 받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이후 힘든 일이 많았다”면서 “어디서나 사람들이 알아보고, 심지어 집에 들어오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런 사생활 침해가 제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인생에서 배움의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화풀이 대상이 메달이 됐던 셈”이라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다시 꺼내서 보관 중”이라고 말한 뒤 웃었다. 클로이 김은 평창 대회 이후 프린스턴대에 진학했고, 2019년부터 잠시 선수 생활을 중단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올림픽 이후 번아웃 증상이 있었다”고 고백한 뒤 “1년 정도 학업에 전념하고 돌아왔는데 내게 커다란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10대 중반 성인무대 등장과 동시에 모든 대회의 메달을 휩쓸었던 클로이 김은 “사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유년 시절을 희생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친구들이 학교에 가고, 파티에 갈 때 나는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를 위해 연습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의 삶이 어떤지, 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면서 선수 생활을 잠시 접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클로이 김은 “오래 기다려온 올림픽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서 “국가대표로 두 번째 올림픽에 나오게 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클로이 김이 출전하는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승은 10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에서 열린다.
  • ‘서울대 합격’ 정은표 아들… ‘불수능’ 2022 정시경쟁률 어땠나

    ‘서울대 합격’ 정은표 아들… ‘불수능’ 2022 정시경쟁률 어땠나

    아이큐 169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배우 정은표(57)의 아들 정지웅이 서울대학교에 최종 합격했다. 정은표는 3일 인스타그램에 서울대 합격증 사진을 올린 뒤 아들이 직접 작성한 글을 공개했다. 정지웅은 “기다리던 서울대 발표가 이제야 나왔다. 1년 동안 수능 공부를 하면서 참 힘들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제자리 같아서 후회도 하고 수시(모집)를 버리면 안 됐던 건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고 회상했다. 정지웅은 “수시 접수 시기에 주변 친구들이 원서를 넣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능은 하루 만에 결정되는 불확실한 전형이라 무서웠지만,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라며 “수능을 보면서 떨리지는 않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문제만 풀었다”고 말했다. 정지웅은 “내기나 게임에서 이기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 저를 믿은 일은 이겼다. 1년을 통째로 갈아 넣은 완벽한 올인이었는데 승리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챙겨서 기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불수능’에 소신 지원… 서울대 4.13대1 2022정시 서울대 최종 경쟁률(정원내 기준)은 4.13대1(모집 1037명, 지원 4285명)로 지난해 3.82대1(798명, 3049명)보다 상승했다. 올해는 ‘불수능’이라고 불릴 만큼 어려웠던 데다, 첫 통합형 수능으로 입결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위권 수험생들이 소신지원한 것으로 분석된다. 모집인원 확대가 경쟁률에 대한 부담감을 낮추면서 지원이 몰리게 한 요인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약학과 신설 등 수험생들의 합격 기대심리 상승과 자연계 학생들의 교차지원에 따른 상향지원 학생의 유입도 원인으로 분석됐다. 서울대의 계열별 경쟁률은 인문 3.87대 1, 자연 3.61대 1, 예체능 8.27대 1이다. 주요 모집단위 경쟁률은 경영 3.29대 1(전년 2.26대 ), 경제 2.58대 1(2.32대 1), 정치외교 2.88대 1(2.94대 1), 인문 2.49대 1(2.87대 1), 의예 3.13대 1(3.63대 1), 치의학 3.25대 1(7.17대 1), 약학 3.95대 1(올해 신설), 수리과학 4.22대 1(3.33대 1), 컴퓨터공학 3.40대 1(2.58대 1) 등이다. 최고 경쟁률을 보인 모집단위는 동양화과로 12.25대 1이고, 인문·자연계열 중에서는 농경제사회학부가 10.31대 1로 가장 높았다.영어 1등급 비율 ‘반토막’ 만점자 1명 올해 수능에는 44만8138명이 응시했으며, 이 가운데 재학생은 31만8693명, 졸업생과 검정고시 합격자 등은 12만9445명이었다. 최종 결시율은 12.1%였다. 국어, 영어, 수학 모두 지난해에 견줘 어렵게 출제됐다. 국어와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나란히 상승하고 영어의 1등급 비율이 전년에 견줘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6명이던 만점자는 1명에 그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2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를 보면,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149점으로 지난해 144점보다 5점 뛰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평균이 내려가면 표준점수는 올라가고, 쉬워서 평균이 올라가면 표준점수는 내려가는데 2005학년도 수능 이래 가장 어려웠다고 평가되는 2019학년도 수능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150점) 보다 겨우 1점이 낮았다. 국어 1등급 구간 점수차는 18점(최고점 149점·등급컷 131점)으로 지난해 13점에 견줘 훨씬 커졌고 수학도 10점으로 지난해 가형 7점, 나형 6점에 견줘 최상위권 변별력이 강화됐다. 절대 평가인 영어 1등급 비율은 6.25%로 지난해 12.66%의 절반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5만3053명이 1등급을 받았지만 올해는 2만7830명에 불과했다.
  • “펜 훔쳤지”… 초등생 옷 수색한 서점 주인 ‘무죄’

    “펜 훔쳤지”… 초등생 옷 수색한 서점 주인 ‘무죄’

    학용품을 훔친 것으로 오해해 초등학생의 옷을 뒤진 혐의로 기소된 30대 서점 주인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 이상오)는 신체수색 혐의로 기소된 서점 주인 A(37)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참여재판에 참여한 7명의 배심원 모두가 A씨에 대해 무죄 평결을 했다. A씨는 2020년 12월 자신의 서점에서 B(9)양이 펜을 훔친 것으로 오해해 B양의 점퍼와 조끼 주머니 등에 손을 넣어 확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다가 B양이 길쭉한 모양의 물체를 상의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고 오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B양이 상의 주머니에 넣은 물체는 막대 모양으로 포장된 사탕으로 확인됐다. 이후 B양은 자신이 녹화된 CCTV 영상을 본 뒤 패딩 안쪽에 입고 있던 조끼 주머니까지 뒤집어 A씨에게 보여주며 확인시켰다. A씨는 자신이 오해한 것에 대해 B양에게 사과했고, B양 부모에게도 전화해 상황 설명과 함께 사과를 했다. A씨는 재판에서 B양의 승낙을 받고 주머니를 뒤졌고,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주머니를 뒤진 행위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법익의 균형성, 긴급성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당시 피고인의 행위가 사회 통념상 허용될 정도를 넘어서는 위법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사건이 발생하기 전 A씨 서점에서 학생들로 인한 도난 사고가 빈발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B양의 행위를 오해한 것에는 상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 [열린세상] 지워진 목소리를 불러오다/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지워진 목소리를 불러오다/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앳된 소녀들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친구들과 포즈를 취하거나 진지하게 카메라를 보던 흑백사진 속의 그들은 1970년대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다. 그들이 중년이 돼 45년 전 일을 회상한다. 이혁래, 김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 이야기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그들은 하루 14~16시간씩 무릎 한 번 펴지 못하고 미싱을 돌리다 바늘에 찔리고 손을 다친 이야기를 한다. 밤샘 노동을 반복하며 ‘잠 한번 제대로 자 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 그들이 야근 후에도 반드시 들렀다 갈 정도로 좋아했던 곳은 바로 노동교실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을 이뤄 냈고,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그런 노동 교실을 그대로 놔둘 리 없던 야만의 시절, 이소선 어머니의 구속에 항거하기 위해 교실로 모인 이들은 하필이면 북한 정권이 출범한 9월 9일 모였다는 이유로 빨갱이 혐의를 뒤집어쓴다.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은 소녀의 생년월일까지 조작하며 구속시켰다. 1977년의 일이다. 제2의 전태일은 우리가 될 거라고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격렬히 싸우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뒤늦게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해는 박정희가 ‘100억 달러 수출 목표와 1인당 1000달러 고지’를 예상보다 4년이나 앞당겨 달성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때다. 그렇게 가시적 성과를 내보이기 위해 이 어린 소녀들의 피땀을 짜내고 죽음과도 같은 노동을 강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노동교실을 없애고 어린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둔 뒤 역사에서 지워 버렸다. 영화가 고마운 건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였던 어린 소녀들의 노동과 투쟁의 역사를 현재로 불러내 주어서다. 여기서 몇 년 전 보았던 또 다른 영화가 떠오른다. 2015년에 개봉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이다. 197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서 출발해 1978년 동일방직 오물 투척 사건, 1979년 YH 사건과 최근의 삼성반도체 사건으로 이어지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그 투쟁의 역사를 담아낸 영화다. 둘 다 다큐멘터리 형식이긴 하지만 출연자들의 목소리와 증언에 집중한 ‘미싱 타는 여자들’과는 다르게 ‘위로공단’은 미술가인 감독이 상징과 은유가 담긴 시적인 화면으로 연결해 실험적 영상으로 만들었기에 좀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기도 했으나 영화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두 작품은 지워진 목소리를 불러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이고, 언니이며, 친구였을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위로하고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일. 그것은 “예술가는 무당”이라고 한 요제프 보이스의 말과 겹친다. 여기서 ‘무당’은 굿을 하거나 현실을 조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처받은 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침묵을 강요당한 이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거나,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이를 대신함으로써 감추어지거나 사라진 목소리를 드러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무당이 되는 것이리라. 영화에서 보여 주는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로 그나마 우리는 예전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노동조합 만드는 일이 쉽지 않고, 장시간 노동에, 안전장치 없이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노동 운동의 선배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소리 없이 지워지거나 사라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영화로, 소설로, 역사로 기록하는 ‘무당’으로서의 예술가들이 있는 한, ‘인간다운 삶’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 “내 일은 호통 아닌 소통왕 되기… 내일은 배구 재미 알리기가 꿈”

    “내 일은 호통 아닌 소통왕 되기… 내일은 배구 재미 알리기가 꿈”

    젊은 감독들이 즐비한 프로배구 V리그의 올 시즌 화두는 ‘올드 보이’의 귀환이다. 4대 스포츠 중 감독 세대교체가 가장 빠른 V리그는 정작 팀이 위기에 직면하면 어김없이 경험이 풍부한 노장을 찾았다. 김호철(67) IBK기업은행 감독의 프로 무대 복귀는 두 달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도 배구계에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달 25일 경기 용인시 기업은행 훈련장에서 김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철학을 들어 봤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기업은행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조송화의 무단 이탈 사태는 팀을 왈칵 뒤집었다. 조송화와 갈등을 빚던 서남원 전 감독이 경질됐고, 조송화도 구단과 법정 싸움에 돌입했다. 당연히 팀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지난 시즌 3위였던 기업은행은 김희진과 표승주, 김수지 등 화려한 국가대표 멤버를 갖고도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신생팀 페퍼저축은행과 꼴찌 싸움을 반복했다. 기업은행은 사태 수습을 위해 지난해 12월 김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감독이 처음부터 선뜻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남자부에서 통산 224승을 거뒀던 김 감독이지만 여자부는 낯선 무대였다. 그는 “나이를 떠나서 여자부에선 한 번도 감독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컸다”며 “내홍을 겪는 팀에 가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앞섰다”고 회상했다. ●배구는 배구… 꾸짖기도 농담도 해 김 감독은 바로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그는 팀 내홍에 대해 선수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는 버릇이 든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처음엔 질책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수들도 조금씩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경기력은 점차 나아져 지난달 30일 시즌 첫 연승까지 거뒀다. 김 감독은 “만약 귀국해서 바로 선수들을 만났더라면 지난 부분을 다그쳤을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10일간 격리돼 있으면서 팀을 더 자세히 보게 됐다. 내가 없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선 묻지 않고, 선수들이 나와 만나는 순간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과거 남자부를 맡으면서 ‘호통왕’이란 별명이 붙었다. 팬들은 선수들을 혼쭐내는 김 감독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끼며 환호를 보냈다. 여자부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는 부임 초 선수들을 배려하며 자신의 언행에 주의했다. 예민한 성격의 여자 선수들을 배려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똑같은 선수일 뿐인데 성별 때문에 달리 대하는 것도 생각해 보니 맞는 옷이 아니었다. 프로 선수를 어르고 달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최근 김 감독의 입에선 점차 거친 표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위축될 수도 있지만 내면엔 신뢰에 기반한 소통이 자리잡고 있어 문제 되지 않았다. 선수들도 김 감독의 스타일에 금방 적응했다. 처음에 긴장했던 선수들은 김 감독의 말투를 따라 하고 즐기기도 한다. 김 감독은 “처음엔 여자팀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품었던 것 같다”며 “지금은 선수들과 농담하면서도 연습할 땐 꾸짖기도 한다. 역시 배구는 똑같이 배구다”라고 설명했다. 경기장에서 김 감독은 항상 ‘발로 하는 배구’를 강조한다. 선수들에게 발로 뛰어 공을 받으라고 외친다. 사실 그 배경엔 김 감독의 육상선수 경력이 깔려 있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1500m와 마라톤 등 장거리 달리기가 주 종목이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김 감독은 우연히 배구를 구경하다가 재미를 느끼고 종목을 바꿨다. 배구는 ‘신의 한 수’였다. 육상으로 다져진 체력이 김 감독을 뛰어난 배구 선수로 이끌었다. 체력이 되니 기술 습득도 남들보다 빨랐다.이탈리아에서 ‘컴퓨터 세터’로 활약한 그는 1995년 선수 생활을 마치고 바로 이탈리아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순탄했던 선수 생활과는 정반대였다. 김 감독은 “선수 땐 나만 잘하면 되지만 감독은 선수단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며 “특히 선수 때 사용하는 언어와 감독의 언어가 너무 달랐다. 선수와 진솔한 대화가 필요할 때 내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60여년을 배구 선수와 감독으로 보낸 김 감독은 아직도 변화를 꾀한다. 과거엔 배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다. 선수들에게 “배구를 잘해야 너희 인생도 성공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젠 지도 방식이 바뀌었다. 배구 자체가 인생의 맹목적인 목표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배구의 즐거움을 가르치자는 게 그의 목표다. 김 감독은 “내 인생의 테두리 안에 배구를 넣고 놀아야 재미가 생기는데 오히려 배구 속에 내가 갇혀 버리면 즐거움이 없어진다”며 “너무 배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면 재미나 희열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젊은 감독들 역량 준비됐나 살펴야 이런 생각은 ‘요즘 선수’들을 접하며 느낀 영향이 크다. 김 감독은 “우리 세대는 어떻게든 배구로 성공해 인생과 부를 찾았다면 지금 세대는 다르다”며 “젊은 세대는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일하는 세대다. 즐거움을 찾아 줘야 스스로 상황에 따라 위기를 극복할 줄도 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젊은 감독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젊은 감독들이 우리 세대보단 훨씬 개방적이고 생각하는 것도 빠르다”면서도 “시대가 흘러가며 젊은 세대로 교체가 되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만큼 역량이 준비돼 있느냐는 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이어 “예전엔 감독들이 권위주의를 내세워 ‘내가 더 낫다’는 태도가 통했다면 지금은 다르다”며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식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선수들에게 전수할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선수들이 감독을 따른다”고 조언했다. 김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23~2024시즌까지다. 이제 칠십 줄이 멀지 않은 김 감독은 제2의 배구 인생을 준비 중이다. 그는 기업은행 감독 취임 전부터 강원 홍천에서 배구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배구를 쉽게 접하고 엘리트 선수들도 언제든 와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잠시 미뤄졌다. 감독을 마치면 용인에서 다시 아카데미를 차릴 계획이다. 김 감독은 “축구와 농구는 혼자서도 공을 갖고 놀 수 있지만 배구는 선수가 공을 가질 시간이 0.5초도 되지 않아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며 “재미와 놀이로 하는 배구를 가르치며 저변 확대를 꾀하고 싶다”고 밝혔다.
  • 변화하는 노장 김호철…배구계에 던진 커다란 울림

    변화하는 노장 김호철…배구계에 던진 커다란 울림

    젊은 감독들이 즐비한 프로배구 V리그의 올 시즌 화두는 ‘올드 보이’의 귀환이다. 4대 스포츠 중 감독 세대교체가 가장 빠른 V리그는 정작 팀이 위기에 직면하면 어김없이 경험이 풍부한 노장을 찾았다. 김호철(67) IBK기업은행 감독의 프로 무대 복귀는 두 달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도 배구계에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달 25일 경기 용인시 기업은행 훈련장에서 김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철학을 들었다. 김호철 ‘체질개선’에 환골탈태한 기업은행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기업은행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조송화의 무단 이탈 사태는 팀을 왈칵 뒤집었다. 조송화와 갈등을 빚던 서남원 전 감독이 경질됐고, 조송화도 구단과 법정 싸움에 돌입했다. 당연히 팀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신생팀 페퍼저축은행과 꼴찌 다툼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김희진과 표승주, 김수지 등 화려한 국가대표 멤버를 갖고도 무기력한 경기를 반복했다. 기업은행은 사태 수습을 위해 지난해 12월 김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감독이 처음부터 선뜻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남자부에서 통산 224승을 거뒀던 김 감독이지만 여자부는 낯선 무대였다. 그는 “나이를 떠나서 여자부에선 한 번도 감독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컸다”며 “내홍을 겪는 팀에 가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앞섰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바로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그는 팀 내홍에 대해 선수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는 버릇이 든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처음엔 질책을 받을 거란 선수들도 조금씩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경기력은 점차 나아져 지난달 30일 시즌 첫 연승까지 거뒀다. 김 감독은 “만약 귀국해서 바로 선수들을 만났더라면 지난 부분을 다그쳤을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10일간 격리돼 있으면서 팀을 더 자세히 보게 됐다. 내가 없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선 묻지 않고, 선수들이 나와 만나는 순간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과거 남자부를 맡으면서 ‘호통왕’이란 별명이 붙었다. 팬들은 선수들을 혼쭐내는 김 감독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끼며 환호를 보냈다. 여자부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는 부임 초 선수들을 배려하며 자신의 언행에 주의했다. 예민한 성격의 여자 선수들을 배려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똑같은 선수일 뿐인데 성별 때문에 달리 대하는 것도 생각해 보니 맞는 옷이 아니었다. 프로 선수를 어르고 달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최근 김 감독의 입에선 점차 거친 표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위축될 수도 있지만 내면엔 신뢰에 기반한 소통이 자리잡고 있어 문제 되지 않았다. 선수들도 김 감독의 스타일에 금방 적응했다. 처음에 긴장했던 선수들은 김 감독의 말투를 따라 하고 즐기기도 한다. 김 감독은 “처음엔 여자팀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품었던 것 같다”며 “지금은 선수들과 농담하면서도 연습할 땐 꾸짖기도 한다. 역시 배구는 똑같이 배구다”라고 설명했다.아직도 변화하는 노장…“즐기는 배구 가르쳐야” 경기장에서 김 감독은 항상 ‘발로 하는 배구’를 강조한다. 선수들에게 발로 뛰어 공을 받으라고 외친다. 사실 그 배경엔 김 감독의 육상선수 경력이 깔려 있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1500m와 마라톤 등 장거리 달리기가 주 종목이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김 감독은 우연히 배구를 구경하다가 재미를 느끼고 종목을 바꿨다. 배구는 ‘신의 한 수’였다. 육상으로 다져진 체력이 김 감독을 뛰어난 배구 선수로 이끌었다. 체력이 되니 기술 습득도 남들보다 빨랐다. 이탈리아에서 ‘컴퓨터 세터’로 활약한 그는 1995년 선수 생활을 마치고 바로 이탈리아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순탄했던 선수 생활과는 정반대였다. 김 감독은 “선수 땐 나만 잘하면 되지만 감독은 선수단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며 “특히 선수 때 사용하는 언어와 감독의 언어가 너무 달랐다. 선수와 진솔한 대화가 필요할 때 내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60여년을 배구 선수로 보낸 김 감독은 아직도 변화를 꾀한다. 과거엔 배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다. 선수들에게 “배구를 잘해야 너희 인생도 성공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젠 지도 방식이 바뀌었다. 배구 자체가 인생의 맹목적인 목표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배구의 즐거움을 가르치자는 게 그의 목표다. 김 감독은 “내 인생의 테두리 안에 배구를 넣고 놀아야 재미가 생기는데 오히려 배구 속에 내가 갇혀 버리면 즐거움이 없어진다”며 “너무 배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면 재미나 희열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요즘 선수’들을 접하며 느낀 영향이 크다. 김 감독은 “우리 세대는 어떻게든 배구로 성공해 인생과 부를 찾았다면 지금 세대는 다르다”며 “젊은 세대는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일하는 세대다. 즐거움을 찾아 줘야 스스로 상황에 따라 위기를 극복할 줄도 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젊은 감독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젊은 감독들이 우리 세대보단 훨씬 개방적이고 생각하는 것도 빠르다”면서도 “시대가 흘러가며 젊은 세대로 교체가 되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만큼 역량이 준비돼 있느냐는 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이어 “예전엔 감독들이 권위주의를 내세워 ‘내가 더 낫다’는 태도가 통했다면 지금은 다르다”며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식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선수들에게 전수할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선수들이 감독을 따른다”고 조언했다. 김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23~2024시즌까지다. 이제 칠십 줄이 멀지 않은 김 감독은 제2의 배구 인생을 준비 중이다. 그는 기업은행 감독 취임 전부터 강원 홍천에서 배구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배구를 쉽게 접하고 엘리트 선수들도 언제든 와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잠시 미뤄졌다. 감독을 마치면 용인에서 다시 아카데미를 차릴 계획이다. 김 감독은 “축구와 농구는 혼자서도 공을 갖고 놀 수 있지만 배구는 선수가 공을 가질 시간이 0.5초도 되지 않아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며 “재미와 놀이로 하는 배구를 가르치며 저변 확대를 꾀하고 싶다”고 밝혔다.
  • 파키스탄서 첫 ‘트랜스젠더’ 의사 탄생…“높은 지위 오르는 본보기 될 것”

    파키스탄서 첫 ‘트랜스젠더’ 의사 탄생…“높은 지위 오르는 본보기 될 것”

    “저는 (트랜스젠더) 의사가 된 첫 번째 사람이지만, 마지막 의사는 아닐 겁니다.” 국교가 이슬람교인 파키스탄에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의사가 탄생했다. 3일 돈(DAWN) 등 매체에 따르면, 현지 최고 병원인 카라치의 JPMC병원은 전날 트랜스젠더 의사 사라 길(23)을 고용했다고 발표했다. 길은 지난달 의대를 졸업하고 학위를 받으면서 파키스탄 최초의 트랜스젠더 의사가 됐다. 파키스탄에서 트랜스젠더 집단은 사회분위기로 인해 수많은 차별을 받고 있는데, 길의 소식은 트랜스젠더 집단의 한줄기 희망이자 자부심이 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의사가 되기까지 그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14살에 성 정체성을 공개한 길은 집에서 쫓겨나 트랜스젠더 집단에 들어갔다. 길은 “부모님은 나를 매우 사랑해주셨지만 내가 성 정체성을 공개했을 때 지지해주지 않았다”면서 “어머니가 당시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의사가 된 후 부모님이 나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줬다”면서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부모는 자녀를 돌봐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구 2억 3000만명의 파키스탄에는 약 100만명의 트랜스젠더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녀 구분이 엄격한 파키스탄에서 트랜스젠더들의 지위는 매우 열악하다. 2009년 대법원이 공문서에 ‘제3의 성’을 인정하라고 했지만, 차별은 여전하다. 길은 “트랜스젠더들은 파키스탄의 병원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은 내가 의사가 된 또 다른 동기”라고 전했다. 이어 “트랜스젠더들이 매춘부나 거지로 여겨져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것이 참 힘들다”면서 “높은 지위에 오르길 열망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다시 한 번’ 생리대 공약 이어가는 이재명

    ‘다시 한 번’ 생리대 공약 이어가는 이재명

    이 후보, 성남 시장 시절부터 관심“비위생적인 깔창이나 휴지로 고통받지 않게”저소득층 가정 여학생들의 생리대 값 지불 부담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졌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원 의지를 다시 한 번 내비쳤다.● “깔창 생리대 부끄러운 우리 사회 모습” 이 후보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깔창 생리대’ (사건은)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모든 여성 청소년들에게 ‘보편복지’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 후보는 “성남 시장 시절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문지나 휴지를 구겨 쓰고, 신발 깔창까지 썼다는 딱한 (여학생의) 사연을 보고 먹먹했다”며 “청소년들에게 세심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성남 시장으로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취약계층 여성 청소년들부터 생리용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며 “예산을 마련하고 행정 절차를 추진하는 동안 성남 시민들로부터 자발적 기부와 모금이 이어져 복지 공백을 하루라도 더 빨리 채웠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회상한 이 시기는 2016년의 일이다. 당시 국내 생리대 판매량 1위 기업 생활용품 전문업체 유한킴벌리가 제품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알렸다. 그러자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구하기 힘들어 신발 깔창과 휴지로 대신한다는 어려운 사연들이 줄을 이뤘었다. 당시 이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도 아닌데 생리대를 못하다니…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사업 성남이 먼저 시작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 방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었다.● 한 번 더 다짐하는 ‘생리대 공약’ 이 후보는 2일 페이스북 글에서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만 11~18세의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용품 구매 비용을 지역화폐로 지원하는 ‘보편복지’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며 “2022년 기준으로 18개 시군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도서관·문화복지시설 등 경기도 내 공공시설 225곳에 ‘도민을 위한 공공 생리대’를 비치하고 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공 생리대 지도’를 공개했다”며 “누구든, 언재든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경기도 여성비전센터는 ‘도민을 위한 공공생리대’ 225곳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2020년 7월 제정된 ‘경기도 공공시설 내 여성 보건위생물품 비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 후속 조치였다. 도는 조례 제정 이후 공공시설들은 자체 사무관리비를 활용해 공공생리대 기기를 비치하고 생리대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공생리대 기기는 주로 각 시설 여자화장실에 설치됐다. 공급법은 3가지다. 레버만 돌리면 나오는 ‘자판기형’, 기기 앞에 놓인 전용 코인을 기기에 넣으면 나오는 ‘코인형’, 별도 기기 없이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전달받는 ‘담당자 요청형’이다. 시설별 구체적인 주소·공공생리대 기기 유형·담당자 연락처 등은 경기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국가는 국민 건강권 보장해야”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 “(이전에 생리대 관련해) 시행했던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청소년 생리용품 보편 지원’ 정책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한다”며 “다행히 ‘청소년 복지법 개정’으로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용품을 지원할 법적 근거는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며 “건강권은 어디에 사는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와 무관하게 지켜져야 할 기본권이다. 청소년들이 비위생적인 깔창이나 휴지로 생리용품을 대신하며 고통받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 꾸벅좌의 첫 올스타전 출전기…“너무 행복했어요”

    꾸벅좌의 첫 올스타전 출전기…“너무 행복했어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올스타전에 직접 나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큰 영광이었어요.” 한국도로공사의 세터 이윤정(25)의 목소리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윤정은 지난달 23일 V리그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했다. 신인 선수 중에는 유일하게 올스타전 코트를 밟았다. 이윤정은 ‘중고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번 시즌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업팀에서 뛰던 이윤정은 올 시즌 뒤늦게 프로에 입단했다. 주전 세터로 입지를 굳히며 도로공사의 고공행진에 날개를 달았다. 이윤정은 전문위원 추천으로 올스타 멤버에 포함됐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지 약 4개월 만에 최고의 별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이윤정은 30일 전화 인터뷰에서 “신인 선수로서는 나 밖에 출전하지 않았다고 해 너무 영광이었다”며 “좋은 경험을 해서 너무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윤정은 이날 유니폼에 ‘유교세터’란 별명을 달고 뛰었다. 서브하기 전 꾸벅 인사를 하는 루틴으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윤정도 마음에 쏙 들긴 하지만 내년 시즌에는 다른 별명으로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정은 “원래는 ‘깜찍이 세터’를 하고 싶었다”며 “팬분들이 내년에는 깜찍이 세터로 뽑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었다.이윤정은 이날 박정아와 함께 코트에서 춤 실력도 보여줬다. 신인이라면 부끄러웠을 법도 하지만 그런 모습은 없었다. 이윤정은 “(배)유나 언니가 춤을 추천해 줘서 정아 언니와 같이 준비하게 됐다”며 “올스타전 전날 10~15분정도 열심히 연습했다”고 전했다. 신인 선수가 리그 최고의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뛴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이윤정에게는 경기 전 선수들과 워밍업을 하는 것부터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이윤정은 페퍼저축은행 이현, 현대건설의 이다현과 정지윤, 흥국생명 이주아 등과도 친한 사이가 됐다. 특히 이다현은 올스타전에서 남다른 춤사위로 세리모니상을 수상했다. 이윤정은 “안 그래도 다현이가 많이 준비했다고 해서 토스를 더 올려 줬다”며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이윤정은 이날 시종일관 팬들과 눈을 맞추고 끝까지 코트에 남아있는 등 올스타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윤정은 “올스타전은 저희를 많이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팬들은 위한 축제라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때문에 가까이 있지를 못하니까 멀리서라도 더 손을 흔들어 주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이윤정은 이제 리그에서 다시 활약을 선보일 때다. 아직은 신인이라 부침이 있긴 하지만 점차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공격수들과의 호흡도 점차 맞아가고 있다. 지난 5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 이윤정의 토스에 박정아가 ‘엄지척’을 했던 장면도 팬들에게 화제가 됐다. 이윤정은 “아무래도 정아 언니가 다른 공격수들에 비해 키가 많이 커서 높은 공을 쏴 줬던 게 잘 통했다”며 “언니가 ‘나이스 토스’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워줬는데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무래도 시즌 초반 보다는 공격수들과 많이 얘기하고 연습하고 있다”며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北비핵화 실패, 미국의 전략적 자아도취 때문”…前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맥매스터의 고언

    “北비핵화 실패, 미국의 전략적 자아도취 때문”…前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맥매스터의 고언

    배틀그라운드 H.R.맥매스터 지음/우진하 옮김/교유서가/704쪽/3만 8000원 “일부에서는 제재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대북 제재는 단 한 번도 완전하게 시행된 적이 없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계획은 주요 부품이 북한에서 제조되지 않기 때문에 제재 조치를 우회해서 진행이 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두 번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는 “비핵화에 대한 갑작스러운 돌파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지금, 더 강력한 제재 조치와 인권 유린 문제 고발, 그리고 인터넷과 정보전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더욱 늘려가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기조 ‘최대한의 압박’을 주도한 그가 2020년 쓴 뒤 최근 번역본으로 출간된 ‘배틀그라운드’(교유서가)를 통해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 중동, 이란,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진단하고 특히 미국에 각성을 촉구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 지위로 올라서며 ‘전략적 자아도취’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략적 자아도취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맥매스터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현 외교부 장관)과 미국에서 만나 대북 기조를 논의한 일화부터 소개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 ‘달빛정책’과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전략한 대북 접근 방식으로 트럼프 정부의 최대한의 압박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면서다. 양국의 입장 조율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맥매스터는 기대를 걸었다. “우리는 끈끈한 우정이라고 할 만한 관계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광기의 정의에 따라 북한 문제에 접근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트럼프 정부가 수립한 최대한의 압박 전략을 문 대통령도 취임 초기 동의했지만 “우리는 이런 전략이 쉽게 먹혀들 것이라는 환상 같은 건 품지 않았다”고 맥매스터는 회상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이 커지자 북한 김정은은 돌연 자세를 낮추고 대화를 청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북미정상회담이 추진됐다. 맥매스터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조치 시행에 소홀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북미정상회담을 반대했다고도 털어놨다.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한 최대한의 압박 전략이 힘을 잃을 것을 우려했다. 그는 “김정은에게는 북한 정권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줄이고 자신의 체면도 지키면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며 “또한 미국과 한국을 끌어들여 세계 다른 지도자들에게 위상을 더 부각시킬 수도 있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아무 대가 없이 연기하기도 했다.다만 맥매스터는 여러 우려에도 정상회담이 파격적인 트럼프가 또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그의 협상 능력과 경제적 혜택이 주는 위력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갖고 김정은에게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과대평가를 했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기회를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독재자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고 회담 내용을 평가했다. 미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바라보며 지적하는 내용들도 맥을 같이 한다. 너무 낮거나 높게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해 버린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와 미국이 닮았다면서 현실 도피와 전략적 자아도취에 빠진 미국이 낙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제 미국의 환상을 깨뜨리고 현실을 직시하며 나아가는 ‘전략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한다. 34년 복무한 군 생활을 토대로 현실적이면서 냉철한 시각으로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을 들여다 본다. 우리에겐 트럼프에게 ‘트위터 해고’를 당한 당사자로 강렬하게 남아있지만,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나 존 볼턴의 ‘그 일이 일어난 방’과는 달리 맥매스터 책에 트럼프에 대한 폭로와 비난은 없다.
  • 전 부치는 명절, 지겹다고요?… ‘성평등한 설’ 위한 책 5권

    전 부치는 명절, 지겹다고요?… ‘성평등한 설’ 위한 책 5권

    ‘전 부치는 설’까지는 클리셰여도, 아무튼 명절은 만만하지 않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간만에 가족들과 둘러 앉았다는 기쁨도 잠시, 누워있는 남자 형제에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여자들의 모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휴식임과 동시에 부담스러운 대비한 ‘성평등한 설’을 위한 책 5권을 소개한다. 당장은 아니어도, 노력하면 도래할 그 날을 위해.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 ‘밝은 밤’ 장편 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은 최은영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여성 4대의 삶을 담았다. 서른 두 살 지연이 이혼 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찾은 곳 ‘희령’. 열 살 때 할머니 집에 방문하기 위해 잠깐 머물렀던 기억을 제외하면 낯선 곳에 가까운 그 곳에서 할머니와 이십 여년 만에 재회한다. 거기서부터 지연이 희령에서 새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현 시점의 이야기와 할머니에게 전해듣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이 이야기 형식의 특별한 점은, 과거의 이야기가 할머니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풀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지연이 재구성한 것이라는 데 있다.●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투쟁… ‘상냥한 폭력들’ ‘상냥한 폭력들’(동아시아)의 부제는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이다. 얼마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통화 내용이 공개돼 ‘미투 2차 가해’ 논란을 불렀던 걸 떠올리면, 정말로 맞아 떨어지는 부제다. ‘미투 변호’의 최전선에서 피해자를 변호해 온 이은의 변호사가 굵직한 성폭력 사건들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변호사로서 ‘법’의 역할과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한편, 유독 성폭력 재판에서 법이 객관적으로 적용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진단을 내린다. 나아가 “가해자의 행위가 범죄로 인정되고 처벌을 받는 것과,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법조계 안에 제대로 안착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128쪽)라고 말하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그 남자들은 왜?…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들’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들’(멜랑콜리아)은“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선언한 일곱 남자들을 인터뷰했다. 남성으로서의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성별을 넘어 바라본 페미니즘의 지평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한 흔적들을 담았다. 각각의 남자들은 젠더 스터디 연구자(곽승훈), 페미니즘 활동가(이한), 언론 노동자(박정훈), 시인 및 돌봄노동자(서한영교) 등 서로 다른 직업들을 갖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안티페미니즘이 터져 나오는 사이 이들은 페미니즘이야말로 성별에 관계없이 ‘상생’을 가능케 하는 주의주장이란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시스젠더 남성이 너무나 완벽하게 ‘여성성’을 수행할 수 있으면, 그건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이라는 것 자체가 반드시 여성에게만 부착되어야 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이 사람도 하고 저 사람도 할 수 있는 거면 누구만 하라고 강요할 이유가 없죠.”(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한국 사회를 뒤덮은 성역할 규정에 경종을 울리는 글이다.●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비혼, 비출산 시대, 결혼한 여자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희생자나 조력자가 아닌 삶의 주체로서의 ‘아내’ ‘엄마’ ‘며느리’는 가능할까.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민들레)결혼한 여성으로서 끊임없이 이같은 질문에 부닥쳤던 열 명의 기혼여성들이 쓴 책이다. 고립육아를 하며 답답함을 느끼는 엄마, 시가에 대해 할 말 많은 며느리, 남편보다 더 많이 벌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도맡은 직장인, 육아휴직 중인 전업주부,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결국 회사를 차린 창업가 등이다. 책에서 저자들은 견고한 가부장제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려 애쓴다. 가부장제의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잘못된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남편과 업무분담각서를 쓰는 방법에서부터 주 양육자 바꾸기, 시어머니와의 연대, 애 낳은 엄마의 ‘엄마기’ 선언, 집안에 나만의 공간 만들기, 결혼방학과 결혼졸업, 주부를 위한 월차 제도와 주 5일 근무제까지. 이번 설도 ‘성평등하기는 글렀다’는 체념에 접어든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다.●나의 감정은 사소하지 않다… ‘마이너 필링스’ ‘마이너 필링스’(마티)는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은근하게 계속되어 끝내 내면화된 차별과 구별짓기가 한 개인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들을 남기는지 파고든다.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건 네 피해의식이야”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 책을 내민다.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각종 유력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 “우리 동네에도 이런 건축물이”… 서울 자치구 눈에 띄는 공간

    “우리 동네에도 이런 건축물이”… 서울 자치구 눈에 띄는 공간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동네’에도 특별한 공간이 많다. 아무도 쓰지 않던 곳에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곳, 숲속에 있는 휴식 공간 등 평범했던 동네 풍경에 새로움을 더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공공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대외적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공간을 꼽아봤다. 서울 성북구 종암사거리 내부순환로 교각 아래 눈에 띄는 건축물이 하나 있다. 종암 박스파크다. 그늘지고 삭막했던 고가도로 아래 공간은 차량 소음으로 시끄러웠을 뿐만 아니라 도로가 맞물려 교통섬 같은 곳이었다. 성북구는 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지역 주민,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댔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자 문화예술공간인 박스파크가 지난해 들어섰다. 지상 1층 연면적 692㎡ 규모로, 다양한 종목의 체육을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소규모 공연장, 주민 휴식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박스파크는 지난해 지역의 우수하고 가치 있는 문화 공간 건축물을 선정하는 ‘한국문화공간상’의 작은문화공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특별한 공간이 생기자 지역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이 공간을 찾아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생활 체육 공간으로, 축제의 장으로, 휴식과 치유의 장소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과거 군초소를 활용해 만든 시민 휴식 공간인 종로구 ‘인왕산 숲속쉼터’도 눈에 띈다. 인왕산 중턱에 있는 옛 군초소 건물을 국방부와 공동 사용 협약을 체결한 뒤 만든 친환경 목구조 건물이다. 기존 상부 판넬 구조는 철거하고, 하부 콘크리트 구조는 살려 그 위에 목재 기둥을 세우고 지붕판을 끼워 만들었다. 산을 오가는 시민들을 위한 쉼터와 전시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숲속쉼터는 지난해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대한민국 건축가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군초소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재생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양천구가 양천공원에 세운 책쉼터는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국토교통부 주관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책쉼터와 공원, 놀이터를 연계한 설계로 독서와 이야기, 쉼과 치유를 아우르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책쉼터에는 영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어린이 도서가 구비돼 있고, 구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지난해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장관상을 수상한 노원구 불암산 전망대는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기존의 노후한 전망대를 새로 지으며, 승강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노약자, 장애인 등 보행 약자도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은 평가를 얻었다. 10m 높이의 전망대는 15인승 엘리베이터와 함께 엘리베이터 양쪽의 완만한 곡선형 계단까지 세 방향에서 오르내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꼭대기 전망층은 ‘숲 속 문화예술 놀이터’를 주제로 날갯짓하는 나비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모은다. 널찍하고 여유로운 공간과 유려한 곡선 형태의 디자인이 주변 숲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 “선거 다시하라” 고교생들 외침… 아직도 생생한 1960년 3월 17일

    “선거 다시하라” 고교생들 외침… 아직도 생생한 1960년 3월 17일

    “3·15 부정선거 다시 해라.” “100만 학도여, 총궐기하라.”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와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서 저항했던 고등학생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외쳤던 구호를 생생히 기억했다. 27일 서울 동작구 성남고 교정에서 만난 이종석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장(81)은 “성남고 학생들의 3·17의거는 부정선거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항거로 이후 4·19혁명 등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1960년 3월 15일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국회의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부정선거 계획을 짰다. 부정선거가 자행된 선거 당일 저녁 경남 마산에서는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고 1만명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이 회장이 다니던 성남고에서도 1·2학년생 400여명이 주축이 돼 부정선거 이틀 뒤인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터리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 회장은 “다 같이 출발하면 경찰에게 쉽게 붙잡히니 오전 수업을 들은 후 학교에서부터 3㎞가량 되는 집결지까지 학생들 각자 무리를 지어 가두시위를 벌이며 모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학생들은 시위 준비를 들키지 않으려 비밀리에 준비했다. 교내 동아리와 학생 임원을 중심으로 선언문과 구호 등을 준비하는 사이, 다른 학생들은 수업 시간마다 거리에 배포할 구호문(전단)을 선생님의 눈을 피해 노트에 직접 써서 여러 뭉치로 만들어 주머니에 숨겼다. 이 회장은 “17일 오후 1시에 영등포로터리에는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학생들이 모였다”며 “초등학교 학생들과 시민들도 함께 구경하고 손뼉 치며 호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경찰과 소방서에서 사방을 둘러싸고 공포탄을 쏘면서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붙잡히지 않으려 도망치다가 한 자동차 공업사에 숨었는데 그때 직원 서너 분이 경찰이 지나갈 때까지 숨겨 줘 운 좋게 끌려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경찰은 100여명에 이르는 고등학생을 연행하고 심문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3·17민주의거 기념 조례안’을 만들어 공포하며 “서울지역에서 일어난 3·17민주의거는 4·19혁명의 단초가 된 학생 의거”라고 평가했다. 61년 만에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독재 정권의 강압과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학생들이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데 모인 역사인 3·17의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1인가구 위협하는 ‘주거침입’…법무부, 형량 강화 나선다

    1인가구 위협하는 ‘주거침입’…법무부, 형량 강화 나선다

    혼자 사는 여성을 몰래 쫓아가 집에 따라 들어가려 한 이른바 ‘신림동 주거침입미수 사건‘처럼 1인가구를 위협하는 주거침임 범죄를 엄단하기 위해 법무부가 형량 강화에 나섰다. 27일 법무부는 서울고검에서 열린 ‘사공일가(사회적 공존을 위한 1인가구)’ 태스크포스(TF)의 마무리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으로 형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사공일가TF는 ▲유대 ▲상속 ▲친족 ▲주거 ▲보호라는 키워드를 중점으로 5차례 정규 회의와 상시 비대면 토의를 통해 1인가구 관련 법안을 발굴, 논의해왔다. 이번 주거침입죄 형량 강화 의견은 TF의 5번째 정책 제안이다. TF는 우리 사회에서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로 인식됐던 주거침입죄의 위험성을 법제도에도 반영하게 됐다고 논의 배경을 밝혔다. 실제 TF가 밝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기준 15.5%에 불과했던 1인가구의 비율은 2020년 기준 31.7%를 돌파해 20년 만에 2배 이상 치솟았다. 특히 TF가 인용한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가구가 가장 두려워하는 범죄는 주거침입(12.8%)으로, 절도(10.9%)나 폭행(10.7%), 사기(10.3%) 등 다른 범죄보다도 그 위험성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주거침입죄의 징역형 형량은 1953년 제정된 이후 5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도 ‘3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돼있다. 이는 절도죄(6년 이하의 징역)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그친다. 벌금형 형량도 1995년 ‘500만원 이하’로 규정된 이후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이는 과거 마을 공동체 안에서 서로 자유롭게 집을 왕래하던 시절을 전제로 한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함부로 내밀한 영역인 집에 드나드는 것은 대부분 범죄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법무부는 이처럼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해 해외 입법례와 여러 전문 기관 논의 등을 거쳐 구체적인 주거침입죄의 형량 강화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앞으로도 법무부는 1인가구의 사회적 공존을 위한 법안들이 국회에 통과돼 입법화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미래 관련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 61년만에 민주화운동 인정…이승만 부정선거 맞선 고등학생들의 저항

    61년만에 민주화운동 인정…이승만 부정선거 맞선 고등학생들의 저항

    ‘3·15 부정선거’ 맞선 성남고교생들 의거“서울 지역 첫 항거로 민주화운동 도화선”“3·15 부정선거 다시 해라”, “100만 학도여, 총궐기하라”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와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서 저항했던 고등학생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외쳤던 구호를 생생히 기억했다. 지난 27일 서울 동작구 성남고 교정에서 만난 이종석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장(사진·81)은 “성남고 학생들의 3·17 의거는 부정선거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항거로 이후 4·19 혁명 등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1960년 3월 15일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국회의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부정선거 계획을 짰다. 부정선거가 자행된 선거 당일 저녁 경남 마산에서는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고 1만명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이 회장이 다니던 성남고에서도 1·2학년생 400여명이 주축이 돼 부정선거 이튿날인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터리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 회장은 “다 같이 출발하면 경찰에게 쉽게 붙잡히니 오전 수업을 들은 후 학교에서부터 3㎞가량 되는 집결지까지 학생들 각자 무리를 지어 가두시위를 벌이며 모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학생들은 시위 준비를 들키지 않으려 비밀리에 준비했다. 교내 동아리와 학생 임원을 중심으로 선언문과 구호 등을 준비하는 사이, 다른 학생들은 수업 시간마다 거리에 배포할 구호문(전단)을 선생님의 눈을 피해 노트에 직접 써서 여러 뭉치로 만들어 주머니에 숨겼다. 이 회장은 “17일 오후 1시에 영등포로터리에는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학생들이 모였다”며 “초등학교 학생들과 시민들도 함께 구경하고 손뼉 치며 호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경찰과 소방서에서 사방을 둘러싸고 공포탄을 쏘면서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붙잡히지 않으려 도망치다가 한 자동차 공업사에 숨었는데 그때 직원 서너 분이 경찰이 지나갈 때까지 숨겨 줘 운 좋게 끌려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경찰은 100여명에 이르는 고등학생을 연행하고 심문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3·17민주의거 기념 조례안’을 만들어 공포하며 “서울지역에서 일어난 3·17민주의거는 4·19혁명의 단초가 된 학생 의거”라고 평가했다. 61년 만에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독재 정권의 강압과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학생들이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데 모인 역사인 3·17 의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영상] 반려견은 죽기 전 주인에게 ‘마지막 인사’ 전하려 애썼다

    [영상] 반려견은 죽기 전 주인에게 ‘마지막 인사’ 전하려 애썼다

    죽기 전 주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 애쓰는 반려견의 안타까운 모습이 공개됐다. 중국 허쉰왕 등에 따르면, 산시성 진중에 사는 쉬 씨는 지난 22일 웨이보에 죽어가는 반려견이 자신을 향해 앞발을 흔들다가 힘에 부치는지 몸을 돌려 눕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유했다.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려 애를 쓰는 듯한 개의 모습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타이쯔’(太子)라는 이름의 여섯 살 된 반려견은 알래스카 말라뮤트로, 큰병이 발견된지 일주일여 만인 지난 20일 숨졌다. 쉬 씨는 인터뷰에서 “2015년 12월 6일 한 동물병원 앞에서 타이쯔를 주웠다. 이미 개와 고양이를 몇 마리 키우고 있어서 더는 기를 여력이 없어 보호소로 데려갔는데 타이쯔가 내게 찰싹 달라붙어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몇 년 뒤 다른 모든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서 쉬 씨는 타이쯔와 단둘이 지냈다. 얼마 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게 됐고 개를 홀로 놔둘 수 없어 승합차를 구해 함께 데리고 다니며 생활했다. 차에는 여전히 개가 앉아있던 이부자리가 남아 있다. 쉬 씨는 타이쯔 덕에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지만 지난 9일부터 개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혈액 검사를 하고 염증 주사를 놔줬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며칠 뒤 쉬 씨는 타이쯔가 간암에 걸렸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종양이 퍼져 있었다. 17일쯤부터는 배가 불룩해지기 시작했다. 수의사는 장기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지만, 간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 수술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주부터는 타이쯔가 너무 아파해 연신 진통제 주사에만 의지해왔다.이에 쉬 씨는 “수의사가 타이쯔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다. 내 여동생은 타이쯔의 마지막을 보러 오겠다고 했지만, 타이쯔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영상을 남겼다”면서 “결국 타이쯔는 여동생이 도착하기 전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 [월드피플+] 바늘구멍에 속…초소형 조각 만드는 英 자폐 예술가

    [월드피플+] 바늘구멍에 속…초소형 조각 만드는 英 자폐 예술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정교한 조각을 만들어 유명해진 영국인 예술가가 방송에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했다. 버밍엄에 사는 윌러드 위건은 26일(현지시간) 영국 itv에 출연해 어떻게 초미니 조각품을 만들어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공개했다. 위건은 조각품을 만들 때 현미경을 사용한다. 작품이 바늘구멍에 들어가야 하니 자세히 봐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재료 역시 곰 인형의 실밥이나 거미줄 또는 먼지와 같이 평범하지 않은 것을 쓰기 때문이다. 도구 역시 자신이 직접 만든 매우 작은 도구를 쓴다. 그리고 채색할 때는 붓 대신 죽은 파리의 털이나 속눈썹 가닥 등을 이용한다. 이때 위건은 작품을 망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심장이 박동하는 찰나의 순간에 칠을 한다.최근 위건이 만든 작품 중에는 영국의 전설적인 음악 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미국의 역대 주요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산 등이 있다. 그가 만든 작품은 너무 작아 사진으로 찍는 것조차 어렵다. 위건은 이날 온실이 딸린 작은 집과 바이올린을 켜는 여성 모습이 담긴 조각품도 선보였다.이날 위건은 자신이 매일 16~17시간씩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석 달 이상 작업에 몰두해야 하나의 조각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폐증을 앓는 위건은 “자폐증에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극단적인 능력이 있다”면서 “덕분에 난 때때로 잠들지 않고 작업에 매진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의 얼굴을 보면 그 형상이 내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가 바늘구멍에 조각해 넣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자폐증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책을 잃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위건은 어머니가 생전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우연히 개미를 보고 개미집을 만들 생각을 떠올린 위건은 나무 조각을 붙여 2㎝ 정도의 작은 오두막을 만들었다. 작품을 본 어머니는 “작품이 작을수록 네 이름은 더 커질 것”이라며 말했다. 위건은 “어머니는 내게 항상 ‘더 복잡한 작품을 만들어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처음에 위건은 이쑤시개를 조각해 지름 2~5㎜ 정도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자신감을 얻어 점점 작은 조각을 만들기 시작해 쌀알이나 모래알에 조각했다. 결국 위건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0.005㎜의 조각품을 완성했다. 실제로 그가 2013년 만든 오토바이 조각품은 무려 0.003㎜로 그 크기는 인체의 혈액 세포만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처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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