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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난 자초한 이슬람 성직자, “집단성폭행은 피해자 탓”

    비난 자초한 이슬람 성직자, “집단성폭행은 피해자 탓”

    한 이슬람 종교인이 지난해 독일 쾰른에서 있었던 성폭력 사태의 책임이 피해 여성들에게 있다는 의견을 밝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쾰른 도심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이 남성들에게 집단으로 성추행 및 성폭력을 당하는 대규모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검찰은 이 사건에 관련된 신고가 800건 이상 접수 됐으며 이 중 성폭행 3건을 비롯한 521건이 성범죄 피해 신고였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 대부분은 당시 북아프리카 및 아랍계로 추정되는 무수한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신체 중요 부위에 대한 강도 높은 추행이나 개인 소지품 절도, 폭행 등의 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더 나아가 쾰른뿐 아니라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지의 도시에서도 이와 동일한 형태의 범행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이슬람 난민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쾰른에 위치한 ‘알 타우히드’ 모스크의 이맘(이슬람교 종교 지도자)인 사미 아부-유수프가 한 러시아 방송에 출연해 “당일의 사건은 반라에 가까운 차림에 향수를 뿌리고 나온 여성들 자신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부-유수프는 “당시 남자들이 여성들을 공격하고 싶어 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며 “(그런 옷차림을 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등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부-유수프의 알 타우히드 모스크는 이슬람 원리주의인 ‘살라피즘’(Salafism)을 추종하고 있다. 살라피즘은 7세기 이전 초기 이슬람 시대의 질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니파 극단주의로, 알카에다와 같은 무장단체가 신봉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이 모스크는 그간 지속적으로 독일 정보부의 조사를 받아왔으며 2004년에는 실제로 무자헤딘과의 비밀 접촉 사실이 드러나 경찰의 단속을 받기도 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이슬람 성직자, “쾰른 집단 성폭행은 피해자들 잘못”

    이슬람 성직자, “쾰른 집단 성폭행은 피해자들 잘못”

    한 이슬람 종교인이 지난해 독일 쾰른에서 있었던 성폭력 사태의 책임이 피해 여성들에게 있다는 의견을 밝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쾰른 도심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이 남성들에게 집단으로 성추행 및 성폭력을 당하는 대규모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검찰은 이 사건에 관련된 신고가 800건 이상 접수 됐으며 이 중 성폭행 3건을 비롯한 521건이 성범죄 피해 신고였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 대부분은 당시 북아프리카 및 아랍계로 추정되는 무수한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신체 중요 부위에 대한 강도 높은 추행이나 개인 소지품 절도, 폭행 등의 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더 나아가 쾰른뿐 아니라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지의 도시에서도 이와 동일한 형태의 범행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이슬람 난민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쾰른에 위치한 ‘알 타우히드’ 모스크의 이맘(이슬람교 종교 지도자)인 사미 아부-유수프가 한 러시아 방송에 출연해 “당일의 사건은 반라에 가까운 차림에 향수를 뿌리고 나온 여성들 자신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부-유수프는 “당시 남자들이 여성들을 공격하고 싶어 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며 “(그런 옷차림을 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등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부-유수프의 알 타우히드 모스크는 이슬람 원리주의인 ‘살라피즘’(Salafism)을 추종하고 있다. 살라피즘은 7세기 이전 초기 이슬람 시대의 질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니파 극단주의로, 알카에다와 같은 무장단체가 신봉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이 모스크는 그간 지속적으로 독일 정보부의 조사를 받아왔으며 2004년에는 실제로 무자헤딘과의 비밀 접촉 사실이 드러나 경찰의 단속을 받기도 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물보다 싼 기름’ 저유가의 공포 ‘세븐 시스터스’ 시대 다시 오나

    ‘물보다 싼 기름’ 저유가의 공포 ‘세븐 시스터스’ 시대 다시 오나

    ‘물보다 싼 기름’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끝없이 추락하는 국제 유가의 실질 가격이 1980년대 중반부터 20년 가까이 지속된 장기 저유가시대 수준까지 내려앉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세븐 시스터스’(7 sisters·7대 메이저 석유회사)가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했던 1920~70년대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븐 시스터스는 세계 7대 메이저 석유회사를 일컫는 말이다. 극단적인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국내 금융시장은 ‘오일 머니’ 철수에 따른 충격이 불가피하고 석유류 가격 하락 등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14일 ‘오일의 공포’ 공동 저자 손지우 SK증권 연구위원의 도움으로 명목유가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연도별 실질유가를 분석한 결과 최근 국제 유가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지속된 장기 저유가 시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1985년 배럴당 60.6달러(이하 실질유가)였던 국제 유가는 이듬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증산 탓에 31.2달러로 반 토막 났다. 이후 국제 유가는 2005년 브릭스(BRICS·브라질 등 신흥 경제 5개국)의 소비량 급증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전까지 대부분 20달러 후반에서 30달러 초반의 실질 가격을 형성했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0.48달러로 거래를 마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비슷한 수준이다. JP모건과 스탠다드차타드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최근 국제 유가가 10달러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석유 파동이 오기 전까지 50년간 지속된 ‘세븐 시스터스 시대’의 실질유가 수준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석유왕’ 록펠러의 후예인 스탠더드오일뉴저지(현 엑손모빌) 등 세븐 시스터스는 1928년 현상유지협정을 통해 카르텔을 형성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부상하기 전까지 국제 유가를 결정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1928년 16.2달러였던 실질유가는 1973년까지 꾸준히 10~20달러를 유지하며 거의 변동하지 않았다. 국제 유가가 2~3년 전처럼 100달러를 웃도는 현상은 이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투자 자문 기관 ‘오펜하이머앤드컴퍼니’의 애널리스트 퍼델 가이트는 국제 유가의 새로운 기준(new-normal)이 배럴당 65~75달러라고 분석했다. 손 연구위원은 “유가가 어디까지 떨어질지보다는 저유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과거 사례를 참조하면 1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국민이 주체 되어 대내외 악재 헤쳐 가야

    새해를 맞았지만 누구도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마음을 다잡고 뛰어가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적폐(積弊)에 발목이 단단히 잡혀 있다. 그런데 남북 관계와 국제정세마저 우리 편을 들지 않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있다. 물론 그렇다고 비관만 할 이유는 없다. 위기를 헤쳐 나갈 잠재력이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처럼 상황을 제대로 읽고 대처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호환(虎患)이나 다름없는 위기가 이미 닥쳤다는 사실을 사회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위기 상황을 강조한 것도 국민과 함께 지혜를 모아 타개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를 지탱하는 안보와 경제의 두 축(軸)이 동시에 위기를 맞은 비상 상황”이라면서 “국민이 앞장서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 담화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핵실험은 중대한 도발이자 민족의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망동(妄動)이다. 경제 위기 또한 단기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지속 가능한 삶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안보 위기와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현실은 안보와 경제 위기 모두 극복의 주체가 돼야 할 사회 구성원들은 손을 놓은 채 정부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 경제가 숱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정부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4대 개혁을 추진해 경제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노력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무디스 같은 국제신용평가사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개혁 조치는 국회의 문턱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노동계가 4대 개혁의 핵심인 노동개혁을 부정하고 나선 것은 더욱 안타깝다. 구직자와 구직 포기자까지 합치면 100만명의 젊은이가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채 노동시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대통령의 호소 이전에 이런 현실을 개선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여긴다면 노동 개혁을 개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내부 개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게걸음만 하고 있는 우리를 경쟁국들이 기다려 줄 리 만무하다. 더구나 세계 경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견줄 수 있는 초대형 위기의 전조 증상으로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런데도 최대 69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서비스발전기본법이 4년 넘게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정부는 3000명의 고용을 늘리고자 기아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며 892만 6000㎡의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세금을 깎아 주기도 했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과할 것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중앙회조차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고 있는 이 법안을 대기업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 우리 야당의 현실이다. 개혁은 국민이 추진 주체로 나섰을 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부는 이해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을 때까지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교와 안보, 민생과 경제가 다르지 않다. 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언제나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설득의 격(格)을 좀 더 높일 필요는 없는지 고민하기 바란다. 하지만 민생 현안에서 보듯 정부나 대통령의 설득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위기 상황의 돌파구를 찾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국민”이라고 했다. 국회가 정상 궤도로 회귀할 수 있도록 국민이 개혁의 주체가 돼 달라는 뜻이다. 이제 정치권이 화답해야 한다. 이번에도 쇠귀에 경 읽기로 일관한다면 국민의 응징은 불가피하다.
  • [北 4차 핵실험 이후] 긴장의 동북아… ‘남방 3각 vs 북방 3각’ 냉전시대 회귀하나

    [北 4차 핵실험 이후] 긴장의 동북아… ‘남방 3각 vs 북방 3각’ 냉전시대 회귀하나

    지난 6일 강행된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을 위해 13일부터 6자회담 당사국 간 연쇄 회담,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등 숨 가쁜 외교 일정이 이어진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국제 공조를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 일정이 이른바 한·미·일 ‘남방 3각’ 중심으로 중·러에 협조를 촉구하는 모양새라 4차 북핵 실험 이후 동북아 정세가 ‘남방 3각 대 북방 3각’ 구도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우선 6자회담 한·미·일 수석대표는 13일 서울에서 만나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이어 우리 측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평화교섭본부장은 다음날 바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황 본부장은 한·미·일 간 협의를 바탕으로 중국 측에 대북 추가 제재에 대한 ‘건설적 역할’을 집중적으로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핵실험 직후 ‘북핵 불용’에 목소리를 높인 중국이 최근 ‘대화’를 강조하며 제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3국의 우려도 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일은 이어 16일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를 연다. 여기서는 한 차례 더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끌어낼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북핵 공조 외에 동북아 협의 방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러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가 열린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9월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하는 등 한·중 협력 강화에 공을 들이며 전통적인 남방 3각 대 북방 3각 구도를 흔들고 외교 공간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소극적 자세를 보이면서 결국 남방 3각이 다시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달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남방 3국 간 공조는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이 같은 구도가 심화되면 미·중 간 균형을 유지하려는 우리 외교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SK회장 ‘이혼’ 증권가 시선… 매수기회 - 관망 엇갈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생활 문제가 ‘오너 리스크’로 부각된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그룹 지배구조를 흔드는 ‘위험한 이혼’이라는 지적과 기업 가치에 영향이 없는 가십성 재료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주가는 최태원 회장이 개인사를 고백한 지난달 30일 3.99% 급락해 24만 500원에 거래를 마친 뒤 이날까지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0일 이후 4거래일 동안 등락을 반복했지만 이날도 24만 500원으로 마감하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은 30일 이후 이날까지 각각 3%와 5% 넘게 하락했다.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 가능성이 여전히 SK그룹 전체의 경영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로 남아 있는 것이 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향후 SK그룹 향방이 어디로 갈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부담스런 리스크”라면서 “단기적으로는 실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만 장기적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SK 23.4%, SK케미칼 0.05%, SK케미칼우 3.11% 등 4조 2000여억원어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다. 통상 혼인 기간이 20년을 넘길 경우 결혼 후 형성된 재산은 반씩 분할된다. 최 회장의 지분 일부가 분할된다면 그룹 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이혼 관련 불확실성은 승계·상속 관점에서 보면 가십성 시나리오에 가깝다”며 “본래 기업 가치로의 회귀는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이어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오너 사생활 관련 불확실성을 비롯해 비(非)유관 사업 인수합병 우려 등은 잦아들고 합병법인 출범 시 내걸었던 5대 성장 사업은 본격화될 것”이라며 SK 주식 매수 의견을 냈다. 이번 주가 하락이 오히려 매수 기회라는 것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부고] 美 최고 북핵 전문가 보즈워스 별세

    [부고] 美 최고 북핵 전문가 보즈워스 별세

    한국과 미국 간 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스티븐 보즈워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3일(현지시간) 밤 보스턴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한미연구소가 4일 밝혔다. 77세. 고인의 사인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수년 전 전립선암에 걸린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39년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태어나 다트머스대학을 나온 고인은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북한을 자주 방문하고 지난 20년간 북핵 문제에 관여한 미국 내 최고 북핵 전문가로 꼽힌다. 1961년 국무부에 들어온 뒤 1995년부터 2년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초대 사무총장을 맡아 경수로 협상을 이끌면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7년 11월 말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해 2001년까지 지냈다. 2009년 2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북정책 특별대표직에 임명돼 2년 8개월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실무선에서 총괄 조정했다. 고인은 과거 한·미경제연구소(KEI)가 펴낸 ‘주한 미대사 비망록’에서 대사 재임 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1998년 8월 북한의 3단계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꼽으면서 이를 계기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 세우는 등 미국의 대북 정책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 및 위안부 부인 논란에 대해 “일본이 최근 몇 년 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갔는데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한 독일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한편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보즈워스 전 대사의 별세에 깊은 조의와 애도의 뜻을 표명하며, 가족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고인께서 재임 기간 한·미동맹 발전과 북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과 기여를 해 주신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명의로 조전을 발송하기로 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설] 새 길 찾는 희망을 얘기하자

    역사는 긍정의 힘으로 나아간다. 공동체는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할 때 길을 찾는다. 2016년 새해, 대한민국 공동체는 나라 안팎으로 위기의 경보음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적 난관도 국민들이 소망을 품고 소통하며 다 함께 손을 맞잡을 때 극복될 수 있다. 대내외적으로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안으로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가운데, 가계부채는 1200조원에 이르고 있어 적신호가 켜졌다. 수출은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고 소비 절벽, 실업대란 우려 속에 저출산, 고령화로 성장의 잠재력마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바깥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둔화, 유럽·일본의 양적완화 지속 등 서로 제 살길에 바쁘다. 국내 정치 일정과 남북한 관계, 동북아 정세를 놓고 볼 때도 정치 환경의 변화가 읽힌다. 국제정치적으로도 한반도 주변 4강의 세력 판도가 미묘하게 재편될 조짐이 없지 않다. 20대 국회를 구성할 4월 총선은 여의도 정치를 진정한 대의정치의 본산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지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하반기에는 내년 11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 세력 간의 경쟁이 정국을 뒤흔들 수 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36년 만에 노동당 제7차 당 대회를 5월에 개최한다. 인민생활 개선과 장마당 같은 초기 시장경제를 확산시켜 나갈 것인지를 비롯한 노선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올 동북아 정세는 11월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변수와 함께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미·일 동맹과 중·러의 전략적 동반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 한·일 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문제 타결을 계기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기류가 조성될 수도 있다. ●가보지 않은 길도 합심하면 개척된다 이 같은 나라 안팎의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할 때 새해에는 무엇보다 경제적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의 총체적인 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한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견뎌 냈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도 극복했다. 그때마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감내했고 금 모으기 캠페인과 같은 국민적 합심이 위기 극복의 추동력이 됐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고 한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노동개혁법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관련 법이 야당의 제동으로 처리되지 못했지만, 연초에라도 제도적 정비를 갖춰야 한다. 기업이 자유롭게 채용을 하려면 성과가 나쁜 사람은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물론 사용자의 일방적인 잣대로 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완장치는 필수적이다. 업계도 ‘중국 시장은 끝났다’고 한탄하지 말자. 제조업에 문화예술을 결합하면 제3의 잡종강세 융합 상품이 나올 수 있다. 블루오션은 찾으면 있게 마련이다.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서는 북한은 무진장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바이오, 의약, 전기차 등 새로운 먹거리도 얼마든지 신성장 동력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비록 이 길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두려운 길이라 해도 경제주체들이 용기와 희망을 갖고 함께 나간다면 새 길은 반드시 개척되고야 말 것이다. ●위기 극복의 동력을 만드는 정치 되어야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위기 극복의 동력을 생산하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경제를 선심 포퓰리즘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정치가 판을 치기 쉽다. 유권자들이 여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치가 바로 서고 경제가 살려면 정책 노선이 다른 정파라 해도 서로 논쟁하면서도 결국은 타협점을 찾아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의회문화가 필수적이다.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찍느냐, 야당 후보를 찍느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에 매몰된 현 정치권의 비타협적인 의회 문화를 바로잡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4·13 총선에서 냉철한 투표권 행사를 통해 이를 교정할 수 있다. 올해는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면서 평화적 관리에 역점을 두자. ‘통일 대박’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히 준비해 나가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다. 지금은 민족공동체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더 노력하자. 남북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 ‘개성만월대유적발굴사업’ 등 민족의 뿌리를 공유하는 사업을 더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적교류 접촉은 규모가 크면 클수록, 횟수가 잦으면 잦을수록 신뢰가 더 쌓인다. 인도적 지원 사업도 한 단계 끌어올려 산림녹화 등 작은 프로젝트별 협력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남북 관계 개선에 촉진제가 된다. 동북아 외교도 과거 냉전시대의 진영 외교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한·미 동맹 관계와 한·중 전략적 동반 관계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북핵 문제를 다룰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북·미 회담 또는 6자회담과 같은 다자 테이블에서 이뤄질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종속적이 아니라 주도적인 외교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내외 여건이 어려울수록 국가 지도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소통하고 나누고 보듬고 품는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에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얘기하고 새로운 길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한 국가의 진운은 국민이 품는 희망의 총량에 따라 달라진다. 그 희망의 총량이 크면 클수록 앞길은 탄탄대로로 펼쳐진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활기찬 대한민국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
  • [2016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의 질주: -김지윤

    1. 속도에의 욕망과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속도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내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던 근대적 속도가 낯설고 경이로웠던 시절에, 속도는 삶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여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듯했고, 그 가능성의 마력에 매혹된 도시의 길들은 질주하는 기계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인간사의 모든 매혹이 그렇듯, 익숙해진 후에는 무뎌짐과 권태가 찾아든다. 이제 빠른 것들은 도처에 흔하게 넘쳐나고 현대가 ‘속도의 시대’라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더 빠른 것’을 계속 갈구해 왔다. 급기야 ‘클릭 한 번으로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빛보다 빠른 통신망을 이루어내는 데에 이르렀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빨라진 것일까? 사실 ‘속도’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간과해 온 진실이 숨겨져 있다. 속도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현대인들은 줄곧 커다란 대가를 치러왔다. ‘움직임’을 상실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는 대신, 인간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안에 부동자세로 앉은 채, 혹은 컴퓨터 모니터나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옮겨질’ 뿐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귀청이 먹먹하게 울부짖는 바람의 저항에 맞서 속력을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아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속도를 내는 이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속도가 주는 고통과 환희의 감각을 날카롭게 느끼고 견디며, 거센 바람 소리로 현재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이동하는 ‘탈것’ 안에 안전하게 앉아서 닫힌 창문 밖으로 내다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그 일그러짐이 심하면 심할수록, 지나쳐가는 대상들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질수록,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 풍경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속도의 체험으로부터 사실상 단절된다. 결국 감각할 수 없는 풍경들은 개별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속도에 안전하게 ‘탑승’한 이들에게는 오로지 ‘빠르게 도착해야 하는 지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수많은 길목들은 소거된다. 이원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 지성사, 2007)는 바로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에서 시인은 속도와 질주에 대한 끈질기고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이 시집에서는 가장 큰 모티프로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얼핏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속도 제조기’로 느껴지는 오토바이에는 과연 다른 교통수단들과 무언가 차이를 만드는 점이 있는 것일까. 오토바이를 타는 행위 자체가 위험에 직접 노출되어 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사실 매우 모순적인 존재다. 기계의 속도를 빌려 질주하면서도 강렬한 신체적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속도를 올리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기울어져야 하는데 그때마다 탑승자는 온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또한 오토바이는 다른 ‘탈것’들과 달리 길이 아닌 데서도 달릴 수 있다. 자유롭게 길을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기도 하고 수많은 길을 넘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 시 속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1968년생인 이원 시인은 청년기에 사이버 문화를 접한 소위 ‘모니터킨트’ 1세대에 속한다. 80년대 도입되어 90년대를 풍미했던 PC통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보소통의 길을 열어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적 유년기와 디지털 청년기의 간극을 몸소 느낀 최초의 세대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은 어떤 내면적 딜레마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형성해 준 유년기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청년기 사이의 간극과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시적 언어에 어떤 정신적 흔적을 남겼을까. 오토바이의 모순성은 바로 그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겹침’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겹침의 힘으로 인해 모든 장소를 사실상 ‘무장소’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의 무감각성과 획일화에 대항하여 느낌과 의미, 그리고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이 시대의 문학이, 그중에서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르라 할 수 있을 ‘시’가 어떤 응전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광속도의 디지털문명 속에 살면서 느리게 곱씹어 읽어야 하는 빈 여백투성이인 시를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지. 이 글은 바로 그런 기대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2.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 ‘길 없음’과 찾을 수 없는 ‘나’ 일단 이 시집 제목의 ‘오토바이’ 앞에 붙어 있는 ‘가벼운’이라는 형용사에 눈길이 간다. 그냥 가벼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오토바이가 ‘가볍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튼튼하고 무겁고 길에 잘 붙어 있을수록 안전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볍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이 시집의 오토바이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바람결에 떠다니는 가랑잎만큼이나 위태롭다. 오토바이는 금방이라도 길을 벗어날 듯 불안한 주행을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길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도무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길이라면 그 위기감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이원의 시세계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 바로 전 시집인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문학과 지성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에서 ‘길’에 대한 인식이 이미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길’에 사막의 이미지가 덧입혀져 있다는 점이다. 사막이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모래의 특성상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길이 만들어질 수 없다. 사막에서 끝없이 부는 바람은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결에 움직이는 모래로 인해 사막은 끊임없이 다른 지형으로 변모한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속의 시적 화자는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하는 행위로 많은 것들을 클릭하고, ‘세계를 연속 클릭’하기까지 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그리고 수많은 클릭의 맨 끝에, 화자는 결국 ‘나를 클릭한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 검색 엔진 안에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사이트 어디에도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꼭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만 ‘클릭’을 한다.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 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부분 검색하는 과정이 무한한 하이퍼링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는 텍스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하이퍼텍스트를 참조해야만 한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는 착각처럼 나를 찾으려는 욕망은 곧 실현될 것만 같지만, 점점 더 퍼져나가 무수한 파편이 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검색어와 연관어를 따라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때로는 처음의 검색어와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한다.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사막처럼, 길이 계속 생명체처럼 모습을 바꾸며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없다는 것, 또한 원하는 목적지에 가 닿을 아무런 방법도, 지도도 없고 어떤 검색 엔진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요지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처럼 클릭함으로써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클릭할수록 나는 ‘편재’한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실체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를 결코 확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원 시인의 코기토가 디지털문명의 사유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시로 변주되고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결론이 결국 ‘부재’에서 끝났다면 이 시는 부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패러독스를 보여 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다. 모든 부재는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 사람의 존재감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므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백이 필요해진다. 주체의 자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비워져야 한다.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생기는 순간마다 제 몸을 삼키는 것이 시간이며 그러므로 매 순간 다시 삼켜야 할 제 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시간이며 그 시간의 몸이 바로 나이며”라는 시 구절은 이런 과정의 고통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존재가 ‘없음’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내적 불안을 동반하는 것처럼 이원 시에서의 ‘길’은 대부분 갑자기 끊기거나 모습을 바꾸는 등 ‘길 없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으로 그려진다.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이 존재를 찾으려는 욕망을 생성시키는 것처럼, 계속해서 변형되고 사라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임시적이고 위태로운 길은 건너가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런 길을 건너가려면 길에 매달리고 집중해야만 한다. “내 앞까지 온 길은 거울 앞에서 접촉 불량 회로처럼 끊어졌다.” “내가 일어서자 거울 밖으로 나갈 노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녹슬고 구겨진 길들” 방금 나열한 구절들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의 수록시 ‘모니터, 캔산소, 거울’에 언급된 ‘길’에 대한 부분들이다. 이원 시에서 길들은 대개 이렇게 위태위태하고 불길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길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더욱 심화된다. 이 시집 속에 나오는 길들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 지뢰밭과 같고,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사막과 같은 길에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3. 휘발되는 불빛들 사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이 시집의 많은 주인공들은 오토바이를 탄다. 그들은 폭주족, 오토바이 배달부, 퀵서비스맨이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사이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달릴 수 있다. 길이 없는 데서도 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오토바이는 다른 모든 탈것들과 차별화된다. 폭주족들이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뒤따라 달려오던 한 무리의 폭주족들은 끊어진 길 속으로 빠진다/ 끈적끈적한 괴성과 경적이 함께 묻힌다/ 봄밤이 눈물처럼 반짝이다 마른다 매몰의 시간을 잘 아는/ 길은 금방 아문다/ 시간의 만다라로 타오르며 폭주족들은/ 길을 꿀꺽꿀꺽 삼키며 달린다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이 히드라처럼 꿈틀거린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 ‘폭주족들’ 부분 그 다음 시의 제목이 ‘영웅’이고 역시 폭주족을 다루고 있듯, 폭주하는 이 오토바이족들은 ‘영웅’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지고 끊어질 듯 위태로운 길에서 불안을 딛고 달린다. 여기서 오토바이라는 소재는 빛을 발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대부분의 교통수단들에게는 도로, 철로나 항로와 같이 정해지고 계산된 길 안에서 안전하게 달릴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주어진 길을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오프로드를 달림으로써 규정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길은 자꾸만 단절되고 사라지지만, 수동적으로 길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길을 새로 만들어가며 필사적으로 계속 전진하려는 것이 폭주족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이 도약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전력을 다해 내질렀던 ‘괴성’ 같은 그의 시도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린다. ‘매몰의 시간’이다. 하지만 ‘길은 금방 아문다’. 폭주족들은 길 안에 매몰되어서 그 길을 삼켜버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길을 만들어 낳는다. 하지만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시도가 절망스럽다는 것을 표현한다. 끝없이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길은 계속 갈라지고 갈림길들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미로가 된다.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미로화되면서 결국 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텅 빈 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이 지점에서 폭주족은 ‘왜 질주하는가?’란 질문에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이 시집의 다른 시 ‘주유소의 밤’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차들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라는 이 시의 의미심장한 구절은 휘발되는 것이 ‘불빛’임을 보여 준다. 불빛은 길을 길답게 만드는 존재다. 길이 길일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따라가면 어디엔가 ‘도착’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전진하려면 길이 그쪽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막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의 물질성이 사라진 곳에서 물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빛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막에서 길을 찾는 이들은 별빛에 의지했다. 길이 사라진 데서도 별빛은 오롯이 빛나며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별빛이 만드는 방향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길이 된 것이다. 소위 ‘전자사막’인 도시의 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도 ‘불빛’이다. 신호등과 네온사인, 자동차 라이트 등이 만드는 불빛은 도시의 밤길을 길답게 만드는 필수 요소다. 그런데 시인은 이 불빛이 항구한 것이 아니라 ‘잠깐만 빛나는’, 즉 ‘휘발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 역시 휘발되는 것이다. 언젠가 깨고 마는 꿈처럼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질주의 이유가 있다. 휘발되어버릴 꿈, 비전을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하므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길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는 모든 ‘탈것’들은 그 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상당수의 폭주족들은 질주하다 ‘벽’을 만나고 결국은 ‘질주하던 몸은 날계란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폭주족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고. 시체가 불타는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이 몸을 씻으며 기도하는 성스러운 강이다. 숭고한 구도의 마음으로 이 성스럽고 절망스러운, 찰나의 불빛을 따라 길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인간은 ‘영웅’이 된다. 시 ‘영웅’에서 낡은 오토바이 위의 시적화자는 ‘무서운 속도로’ ‘철가방을 싣고’ 달린다. 이 철가방은 그의 순수한 염원과 욕망을 표상한다. 그의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이 은색’이고,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으로 상징되는 거짓되지 않은 절실한 욕망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불에 오그라든 자국’을 숨김없이 노출한다. ‘배달’은 곧 자신의 욕망이 어딘가에 도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시간 안에 달려가려고 애쓴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라는 구절은 이 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짜장면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말하자면 ‘현실원칙’인 셈이지만 중력을 이탈해버리면 아예 자유로워진다.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쪽이 중심이 된다면 짜장면이 어느 쪽으로 쏠리든 상관없다. 그래서 ‘영웅’은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라고 내뱉는다. 오토바이의 특징 중 하나는 강렬한 현장성이다. 달리는 행위 그 자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오토바이는 반드시 맨몸으로 타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즉, 그의 온몸, 전 생을 지금 이 순간에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게 되는 것이다. 지제크의 책 제목과 같이 ‘삐딱하게 보기’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지제크는 이 책에서 ‘비스듬한 왜상적 응시’로만 실제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체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상적인 응시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삐딱하게 보기를 결정하는 순간 그는 세상이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나와야 한다.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라고 시적화자는 말한다. 비정상의 영역, 삐딱한 시선의 세상은 진지한 현실원칙들을 위배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 ‘삐딱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허용하는 가치들에서 비껴나 ‘간절’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삐딱하게 보아야 볼 수 있는 저 ‘불빛’은 견고한 어둠에 가끔 생기는 균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현실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실재계’에서 오는 것이다. ‘영웅’ 폭주족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반짝이는 찰나의 불빛이 가리키는 희미한 저곳을 향해 폭주하여 달려가며, 자신을 땅에 붙들어 놓았던 현실원칙인 ‘중력’을 이탈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는 더욱 비장해진다.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 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이 지점에 이르면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의미가 없다. 도착할 수 없음이 너무 명확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질주이며 도약 그 자체이고, “무한한 진행”이다. ‘한 남자가 간다’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만 텅 빈다”라는 구절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짐을 욕망하므로 끝없는 현재로서 질주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텅 비어야 한다. 4.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원 시에서 없음, 허공의 이미지는 매우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없음’이 절실해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은 그 욕망에 자신을 전부 맡김으로써 폭주가 가능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높이다 보면, 공중의 허공으로 몸을 날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벼워진다. 속도가 줄 수 있는 쾌감은 마치 탈중력의 상태와 같은 지극한 가벼움이다. 노자는 유와 무의 관계를 통해 생명성을 강조했다. 특히 ‘무’와 ‘허’(虛)는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되곤 한다. 노자는 바퀴의 가운데를 가리켜 ‘무의 쓰임’이라고 하고 바퀴는 바퀴살이 꽂혀 있는 ‘가운데의 없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한쪽 눈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내 몸속의 신이 깔고 누워 있던/ 죽음을 엿본 죄다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은 내게서 파내졌으므로 나는 죽음을 모르므로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낯선 얼굴을 매달고 라면을 먹는다/ 낯선 얼굴도 입을 오물거린다 그 입에서도 고소한 스프 냄새가 난다/ 햇빛들이 창 속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부딪쳐 멈출 곳이 없는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얼굴이 달라붙는다’ 부분 욕망은 실현되는 순간 ‘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어야 끊임없는 추구가 가능하고, 영원히 지연되는 미완의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채워짐’은 욕망의 끝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죽음을 엿본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는 자연스럽게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오이디푸스의 눈이 파내진 것은, 삶을 계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끝나버렸음에도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는다. 도려낸 눈구멍의 빈자리를 드러낸 채 그는 광야에서 계속 걸어간다. 이 시에서도 시적화자는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다시 결핍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는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빈 곳’은 삶을 지속시키는 필수 요인이다. 그는 계속 살아가려고 라면을 먹는다. 삶이란 무한한 진행이므로, 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장소인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또한 상징적 의미에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줄지 않아야만 한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허공을 난다 울음 속에서 살을/ 쏙쏙 빼먹으며 난다 활짝 열어놓은 안이 불룩하다/ 보여주지 않는 안이 팽팽하다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위태로워 반짝인다 공기들이 비닐봉지의 천수관음으로 붙어간다/ 비닐봉지가 잉잉거린다 바람의 안쪽이 맥박처럼 터진다 천수관음이 된 비닐봉지에/ 시간의 모서리가 닳는다 사라지는 자리가 쌉싸름하다/ 그렁그렁하다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 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 둥근 것은 뜨겁다 비닐봉지가 허공을/ 오므린다 허공이 주렁주렁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비닐봉지가 난다’ 전문 비닐봉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가벼울 수 있고, ‘살을 쏙쏙 빼먹으며’ ‘맥박처럼 터진’ 등의 표현에서 보듯 생명력을 충전하며, 터질 듯 생동감 있게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는 시 ‘비닐봉지가 난다’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두 편 모두에서 비닐봉지가 등장한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에 나오는 것은 ‘검은’ 비닐봉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색이라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그런데 이 시는 바로 이어서 ‘위태로워 반짝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는 분명 위태롭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다. 그럼에도 이 비닐봉지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활짝 열어’ 놓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열림, 이 균열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불빛이 있기 때문에 이 비닐봉지에는 빛남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완전히 어둡지 않은 것이다. 이원 시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어둠의 이미지는 두 가지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눈앞을 가리는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 시 ‘길’에서 ‘어둠이 길들을 천천히 멍석처럼 말아갑니다’라고 노래했듯 길을 없애고 ‘세계를 닫는’ 어둠,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는 ‘밤’으로 묘사된 그런 어둠-이기도 하고, 어떤 근원적인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회귀하기를 꿈꾸는 자궁의 어둠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궁에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던져진 순간, 필연적으로 분열을 겪어야 한다. 일체의 분열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나, 자궁 속의 어둠을 그리워하지만 그것은 회귀 불가능한 공간이다. 이원의 다른 시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 ‘어둠’에 관한 어떤 처연한 광경을 보여 준다. 아기는 ‘제가 두고 온 어둠을 미끌미끌한 길을 빨아댄다.’ 아기는 ‘알몸으로 빠져나온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매장의 시간에 익숙한 여자의 손 안에서 아기의 머리통이 녹는다 순식간에 상한다 검어진다.’ 여기에서 ‘검어지는’ 것은 자궁의 어둠과는 다르다. 절망적이고 견고한 어둠 속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검은색’이다. 이에 반해 자궁의 어둠은 어둠이되 ‘적막하고 환한 물속의 집’으로서 어둡지만 환한 곳이다. 그런데 어둠이 환하다면 과연 완전한 어둠이라 할 수 있을까? ‘어두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때로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것이다’(‘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라는 시 구절처럼 환함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에 자궁의 어둠은 불완전해진다. 어둠이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어둠인 것이다. 자궁에는 항상 산도(産道)라는 입구가 있고 ‘열림’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언젠가 열릴 것이거나 언젠가 열렸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회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시간에 머물러 있기에 절망적이다. 자궁은 여전히 열린 틈새로 ‘환한 집’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돌아가거나 닿을 수는 없다. 다시 시 ‘비닐봉지가 난다’로 돌아가 보자. 이 검은 비닐봉지의 어둠은 어떤 어둠인가. 이 비닐봉지는, 어쩌면 아기를 밀어낸 후 텅 비어 있는 자궁과 같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보여 주지 않는 비닐봉지의 안은 ‘저 너머의’ 세상이기에 그 안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시인은 비닐봉지가 ‘천수관음’이 된다고 말한다. 천수관음의 천수천안은 모든 이의 괴로움을 천개의 눈으로 보고, 천개의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천수관음의 세상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유토피아 그 자체이며 현상적 규정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저 너머’이므로 ‘시간의 모서리가 닳’아서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수관음의 ‘천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는 표현은 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을 연상시킨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이 ‘一圓’은 가운데가 빈 허공이기도 하다. 허공을 나는 비닐봉지는 그 자체가 공(空)인 것이다. 반면에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의 비닐봉지는 비어 있지 않고 오렌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겁다. 그런데 비닐봉지를 들고 가던 여자가 순간 봉지를 놓치고 만다. 아마도 꼭꼭 묶여져 있었을 비닐봉지는 여자가 손에서 놓지 않는 현실원칙이며 생명체를 살게 하는 음식은 그 현실과 직결되는 ‘무거운 것’이다. ‘젖이 불은 유방 같은 오렌지 하나가 매트리스 앞으로 굴러간다.’ 오렌지 하나가 비닐봉지를 탈출한 것이다. 묶여져 있는 비닐봉지에서 오렌지가 나오려면, 비닐봉지는 분명 터져 버렸을 것이다. 터진 틈새로 ‘몸을 놓칠세라 그림자가 앞서간다’. 집요하게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오렌지의 그림자는 나를 현실에 붙들어놓는 ‘중력’과 같은 것이다. 오렌지는 필사적으로 굴러가지만, 그림자는 오렌지를 붙들고 여자는 터진 비닐봉지의 틈새를 알아차린다. 이 균열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봉합할 것인가. 균열을 감수한다면, ‘위태로운 반짝’임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 반짝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 그녀를 현실로부터 일탈하게 하여, 어쩌면 미치게 할 수 있을 어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도 위태로움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헤진 그림자로 온몸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멈추어 있기를 선택한다.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 시인이 직접 주석을 달아 놓은 바와 같이 매트릭스는 고어로 자궁이라는 뜻이다. 결국 매트리스로 회귀하려는 오렌지의 시도는 실패한다.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오렌지는 땅바닥을 굴러 매트리스까지 가지 못하고 ‘매트리스와 여자 사이에서 멈춰 있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의 시의 결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날아가는, 중심을 이탈한, 가벼워진 것들에는 그림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철망 같은 제 그림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광화문에서’) 있으면 결코 가벼움을 획득할 수 없다. 그림자를 떼어내어 버리고, 온전한 ‘텅 빔’이 되어서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이 되어 질주하는 것이 주체의 소망이다. 이 시집에서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시적 화자들의 질주는 영웅적이라고 간주되며, 한계를 넘어가는 위반의 극치를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는 것은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없음’은 에너지의 새로운 분출로 다시 시작하려는 근본적인 의지를 내부에 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부정함으로써 탄생한 ‘공백’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5. 흔들리면서 ‘저 너머를 향해’ 가기 자아의 안락과 현실에의 순응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이 맹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그 너머의 금지된 희열을 향한 충동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된다. 충동은 현실적인 삶이 부과한 경계 너머의 실재를 향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캉은 모든 충동을 ‘죽음충동’이라 보기도 했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죽음, ‘무’의 상태로 되돌려 공백의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창조의 의지인 것이다. 진정한 새로움은 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공백은 창조의 시작이다. 탈(脫)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았던 90년대 우리 문학은 어떤 세기말적 징후로 가득해 있었다. 방향성을 잃었다는 느낌, 어떤 ‘파국’이 도래하였다는 감각은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고지향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나타났다. 거대담론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침잠했고 일종의 자폐성을 띤 2000년대 시는 1인칭의 내면 고백으로 가득 찼다. 2007년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혼잣말 같은 메모장과 일기장 밖 현실 세상으로 나온 존재가 새로운 시작을 꾀하려 하는 모색의 지점을 보여준다. 방향이 없는 곳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저 너머로 넘어가려는 이 시집의 역동성은, 끊긴 길 앞에서 멈추어 정체되어 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게 만드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가속되는 디지털화, 인문학의 위기와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문학의 종언’이 이야기되는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더 처절하게 고민하려는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원의 2000년대 시집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원의 시편들의 이런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했던 시인의 ‘모니터킨트 1세대’라는 특징과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위 한국형 ‘X세대’의 맏형 격인 세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의 시점에서 성인으로의 전환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출생한 문학인들이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던 것은 탈냉전에 접어들며 가치의 혼란과 부재, 문학의 위기를 논하던 90년대 한국문단에 새 흐름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장정일, 유하의 경우와 같이 60년대 이후 출생 시인들은 소비사회, 매스컴과 테크놀로지 등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새롭고 첨예한 감각을 보여 주었다. 1968년생이며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하고 96년에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출간한 이원 시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유년기를 보내며 정체성을 형성해 갔던 시기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이원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과 소비사회에 대한 매우 예민한 반응 역시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난 최근의 젊은 세대처럼 태생적인 디지털문화에서 자라나지 않은 까닭 때문일지 모른다. ‘초기 X세대’들은 디지털을 ‘학습한’ 세대이면서도, 처음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기본을 만들었던 세대라는 약간 이중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세대적 특성은 이원 시에도 일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원이 전자제품과 사이버문화를 광범위하게 시의 직접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찰하는 방식은 비교적 고전적이라는 점이다. 기술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술의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자기 자신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자아의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디지털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후천적으로 익힌 것이기에, 디지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신의 몸처럼 편안히 여기는 최근 세대들에 비해 때때로 불편하고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는 디지털 문명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인식은 전망 부재의 시대에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시를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 역시 ‘길 없음’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이원의 비유를 빌리자면 ‘가벼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일이다. 의미에 도달한다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서 간신히 앞으로, 점점 전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2010년대에 도달하여 출간한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2012) 표지 뒷면에 적혀있는 시인의 말은 뼈저리다. “넘어가지 못한다 해도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너머에는, 닿아야 했다.” 시인은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시를 마치는 결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 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이원 시집에 등장하는 무수한 ‘오토바이를 탄 이들’은 바로 이 결핍 때문에 달린다. 그들의 목표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어차피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목적은 달리는 것, 그 자체이고 현재를 사는 지금 이 순간, 질주와 속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인 것이다. 불가능성 때문에 추구는 더 집요해지고, 시 ‘영웅’의 화자처럼 ‘온몸이 데는’ 것도 불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서커스에서 불타오르는 원형의 가운데를 뛰어넘는 오토바이 묘기와 같다. 이 불타는 허공으로 뛰어드는 묘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단지 통과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삶은 지속되어야만 하는 무엇이다. 그렇기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질주한다. 온몸을 걸고, 온 생이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정해진 길로 달리며 획일화된 ‘무장소’에서 체험을 상실하는 현대인들의 ‘속도’와 달리,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확실히 구분되며, 그 속성들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결핍 속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 속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해지는 삶, 그 강도 높은 삶의 기록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 도착하리라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보이지 않는 너머’에 닿고자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또 오토바이 위에서 속력을 높이는 이원 시 속 화자들처럼, 끝없이 의미에 ‘미끄러지는’ 언어들로 계속 행간에 발을 헛디디면서도 이 미끄럽고 위태위태한 길을 속도로 넘어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맴돌기만 할 뿐 영원히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달려간다면 길은 끊어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질 터이다. 어차피 삶은 여정 위에 있다.
  • “아베 총리가 자기 말로 직접 설명·호소해야”

    “아베 총리가 자기 말로 직접 설명·호소해야”

    “일본 측이 일본군 위안부 지원재단에 적잖은 정부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 법적 배상을 의미하며 과거 아시아여성기금 형태보다 한 걸음 진전된 것이다. 이번 합의로 한·일 협력을 가로막던 걸림돌이 치워졌다.” ●정부 예산 출연 자체가 법적 배상 일본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국 측,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으며 합의에는 한국 측 결단이 더 컸다”면서 “국가 이익과 한·일 관계 진전을 위해 어느 정도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미래와 역사를 고려한 정치적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정부 예산 지출은 실질적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과”라며 “법적 배상을 고수하면 1965년 청구권협정을 마지노선으로 삼는 일본과는 절대 타협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총리의 자격으로 ‘책임 통감’과 ‘사죄’를 표명한 것도 의미가 있으며, 과거 도덕적 책임에서 도덕적이란 표현을 뺀 것도 해석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문하는 연립여당 공명당에 대한 배려도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일은 경제적이나 지정학적으로 협력을 통해 국익을 서로 극대화할 수 있는 ‘윈원 구조’ 속에 있는데도 역사 인식, 위안부 문제란 걸림돌에 걸려 협력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면서 “걸림돌 제거를 계기로 전방위적으로 협력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동북아 구도와 관련, “두 나라는 북한의 불투명성과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안보협력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도 아시아 회귀전략에서 3국 협력과 공조를 강화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등 한·미·일 3국 협력이 더 속도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양국 갈등 속에서 한국에서 거리를 두려고 했던 적잖은 일본인을 다시 한국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됐으며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높이고, 식어 버린 한류도 다시 점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니 적극적인 활용을 고민할 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피해자 비판 설득이 합의 성공 관건 오쿠조노 교수는 “앞으로 중요한 점은 두 나라 정부가 서로 국내와 상대방의 여론을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을 설득·납득시키면서 합의를 소중하고 신중하게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합의의 성공 열쇠는 정대협 등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 등의 비판적 입장을 어떻게 한·일 양국이 설득하고 다독거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는 아베 총리가 앞서 참의원 등 몇 차례 공적인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며 “아베 총리가 피해자들과 한국인들에게 직접 자기 말로 설명하고 호소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한반도 흔든 메르스·국정교과서… 지구촌 할퀸 IS·난민정책

    한반도 흔든 메르스·국정교과서… 지구촌 할퀸 IS·난민정책

    << 국내 뉴스 ① 메르스 초동 대응 실패… 186명 감염·38명 사망 지난 5월 중동을 다녀온 68세 남성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다. 초동 대응 실패 탓에 메르스는 전국으로 퍼졌고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숨졌다. 의료 인프라는 첨단이었으나 공공의료는 빈약했다. 보건당국은 병원명 공개를 미루는 등 파장을 줄이는 데 급급했다. 메르스 공포로 경제는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 전반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정부는 첫 환자 발생 후 218일 만인 지난 23일 메르스 상황 종료를 선언했다. ② 한국사 교과서 6년 만에 국정화… 이념의 골 깊어져 한국사 교과서가 6년 만에 국정 체제로 회귀하면서 한국 사회가 이념으로 양분됐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11월 3일 국정화 방안을 확정 고시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헌법 가치에 충실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교사와 교수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등 반대 목소리가 거셌다. 집필진 비공개도 논란을 낳았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2017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된다. ③ 간통죄 위헌 결정…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간통죄가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로써 1953년 제정 형법에 마련된 지 62년 만에 범죄로서의 간통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간통 문제는 당사자 간의 민사소송이나 위자료, 배상액 등으로 해결되고 있다. 간통죄 위헌 판결에 따라 불륜 급증 등의 우려가 컸지만 아직까지 큰 혼란은 빚어지지 않고 있다. ④ 정권 실세 8명 이름 적힌 ‘성완종 리스트’ 정국 뒤흔들어 해외 자원 개발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 9일 북한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이 돈을 줬다는 정권 실세 8명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성완종 리스트’를 남기며 정국을 뒤흔들었다. 리스트에 거론된 이완구 당시 총리는 취임 63일 만에 물러났고, 이후 관련 수사가 3개월간 진행됐다. 이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는 불구속 기소됐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 6명은 무혐의 처리됐다. ⑤ ‘巨山’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양김 시대 저물어 1993~1998년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11월 22일 88세로 영면했다. 격동의 현대 정치사를 수놓았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김(兩金) 시대도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첫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그는 금융실명제·공직자 재산공개제도 도입,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와 측근 비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등 공과가 엇갈렸다. 9선의 의원 기간 대부분을 유신독재에 항거했던 그는 ‘영원한 의회주의자’로 기록됐다. ⑥ ‘혈세 도둑’ 오명 공무원연금 개혁안 통과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챙기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시행된다. 이로써 향후 70년 동안 333조원의 재정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공무원연금은 만성적인 적자 구조다. 보전엔 올해만 혈세 3조원을 퍼부었다. 개혁안은 앞으로 연금보험료를 늘리고 지급액은 줄인다는 내용이다. 현재 7%인 기여율(매월 내는 보험료율)은 5년간 9%로 올리고, 지급률은 1.9%에서 20년간 차차 1.7%로 낮춘다. ⑦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창업’ 안철수 의원 탈당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창업주’인 안철수 의원이 지난 13일 새로운 정치 세력화를 선언하며 탈당해 총선(4월 13일)을 4개월 앞두고 야권 재편을 촉발시켰다. 지난해 3월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 통합해 새정치연합에 들어온 뒤 1년 9개월여 만이다. 안 의원은 무소속 천정배 의원 등 기존 신당 추진 세력과 별개로 독자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고 당내 비주류인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김동철, 임내현 의원 등이 “안철수 신당에 참여하겠다”며 탈당했다. ⑧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장남·차남 경영권 분쟁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7월 말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면서 재계 5위 롯데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가 드러나고 일본 기업이 아니냐는 논란 등이 불거졌다. 신 전 부회장과 롯데그룹 사이에 경영권 분쟁과 관련 소송이 벌어졌고 소송전은 새해까지 이어지게 됐다. ⑨ 한국·중국 FTA 발표… 무역 장벽 사라져 한국과 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20일 공식 발효됨에 따라 인구 13억명의 수출 시장이 활짝 열렸다. 20년 내 상품 품목 수 기준으로 우리 측 92.2%, 중국 측 90.7%의 관세가 철폐된다. 법률, 엔터테인먼트 등 유망 서비스시장 진출과 비관세 장벽 철폐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발효 10년 내 실질 국내총생산(GDP) 0.96% 추가 성장, 소비자 후생 146억 달러, 일자리 53만 8000개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⑩ 조성진 한국인 첫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10월 20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조성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콩쿠르 연주 실황 음반 발매 첫날에는 음반을 먼저 사기 위해 판매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첫 고국 무대인 내년 2월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도 예매 시작 1시간여 만에 티켓이 매진됐다. 조성진의 인기는 클래식 음악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각종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 클래식 음반과 DVD의 판매가 급증했다. 국제 뉴스 >> ①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들불처럼 번진 IS 공포 지난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이슬람국가(IS) 추종자들이 일으킨 동시다발 테러로 130명이 목숨을 잃어 전 세계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프랑스는 즉각 시리아 내 IS에 대한 공습에 나섰고, 시리아 문제를 두고 대립하던 미·러는 IS 격퇴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러시아 여객기 폭발 사고, 미국 샌버너디노 총기 사건 등이 IS를 추종하는 자생적 테러범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서방의 대테러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② 중동·아프리카 난민 100만명 유럽행… 엇갈린 수용·봉쇄 정책 전쟁, 가난 등을 피해 유럽행에 나선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이 올 한 해 100만명에 이르면서 유럽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9월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가 익사한 채 터키 해안에서 발견되면서 난민 정책은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무제한 난민 수용을 선언해 ‘난민의 엄마’로 칭송받았지만 난민의 주요 기착지인 동유럽 국가들은 국경 봉쇄로 맞섰다. ③ 세계 1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650억 유로 손실 지난 9월 미국 환경보호청은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인 독일의 폭스바겐이 검사 시에만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작동하게 하는 방식으로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했다며 해당 차량에 대한 리콜 명령을 내렸다. 이후 폭스바겐이 자사의 다른 브랜드 차량에도 조작 프로그램을 설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첨단 기술력과 정직을 자랑하던 독일의 국가 신뢰도까지 타격을 입었다. 총 1100만대 리콜 등 사태 수습에 최대 650억 유로(약 83조원)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④ 미국·쿠바 국교 단절 54년 만에 관계 정상화 미국과 쿠바가 지난 7월 20일 양국 수도에 대사관을 재개하며 54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1959년 쿠바에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2년 뒤 양국은 국교를 단절했다. 지난해 12월 양국 정상이 국교 정상화 추진을 선언한 뒤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쿠바를 제외했으며 쿠바에 대한 각종 경제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했다. 양국의 관계 개선에 힘입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쿠바에 역사적인 발걸음을 했다. ⑤ 이란 핵 협상 13년 만에 타결… 경제 정상화 시동 이란과 주요 6개국(독일, 러시아,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및 유럽연합(EU)이 지난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13년을 끌어 온 이란 핵 협상을 타결했다. 양측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군사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 개발 의심 시설에 접근하는 데 합의했다. 서방국가들은 올해 말까지 핵 개발 의심 시설을 사찰한 뒤 핵무기 개발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대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 이란은 석유 수출 재개를 모색하는 등 경제 정상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⑥ 日 집단자위권 행사 안보법안 통과… 평화헌법 무력화 나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지난 9월 19일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안보 관련 법안을 강행 통과시켰다. 전후 70년 동안의 ‘평화헌법’이 무너졌고, 일본은 ‘전쟁할 수 없는 나라’에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지지율 회복에 힘입어 우경화 행보를 가속하는 아베 총리는 내년 참의원 선거 승리를 통해 평화헌법 조항인 9조를 무력화하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 ⑦ 유엔파리기후협약 타결… 지구온도 1.5도 이하로 낮추기로 12월 12일까지 2주 동안 프랑스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196개국 대표들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약속한 ‘파리 협정’을 맺었다. 1997년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협정이다. 참가국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 폭을 2도 아래로 억제하고,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 선진국과 신흥국이 모두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세우고 5년마다 점검하기로 했다. ⑧ 美 연준 9년 반 만에 기준금리 0.25%P 인상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9년여 만에 0.25% 포인트 인상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 온 ‘제로 금리’ 시대도 막을 내렸다. 현행 0~0.25%였던 기준 금리는 0.25~0.5%로 높아졌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9개국이 금리 인상에 나선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예금금리를 추가 인하해 유럽과 미국의 서로 엇갈린 통화정책을 일컫는 ‘그레이트 다이버전스’가 현실화됐다. ⑨ 그리스 부도 위기… 추가 구제 금융 받고 긴축안 수용 난민 문제와 더불어 그리스의 재정 위기도 유럽의 분열을 부추겼다. 그리스는 2010년 시작된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빌린 채무에 대한 불이행으로 국가 부도 등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가 다시 불거지면서 EU의 근간도 흔들렸다. 하지만 지난 1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추가 구제금융 개시를 위해 결국 채권단의 강도 높은 긴축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⑩ 위안화 SDR 편입 3대 기축통화로… 중국 ‘금융 굴기’ 국제통화기금(IMF)이 11월 30일 중국 위안화를 특별인출권(SDR) 구성 통화로 채택했다. 편입 비율이 10.92%로 결정돼 위안화는 달러, 유로화에 이어 3대 국제 기축통화가 됐다. 이로써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등극한 중국이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과 힘이 증명됐다. 또한 세계 경제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 간 ‘화폐 전쟁’이 본격화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와 기업은 위안화 표시 채권을 대거 발행하며 ‘금융 굴기’(?起)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씨줄날줄] 태극기 게양대 논란/박홍기 논설위원

    때아닌 태극기 게양대 논란이 심상찮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아름답다. 보는 것 자체로도 뿌듯하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우러난다. 국기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5조는 ‘모든 국민은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태극기는 곧 대한민국의 엠블럼이다. 다툼의 주체는 국가보훈처와 서울시다. 쟁점은 게양대의 위치다. 태극기를 어디에 다느냐다. 보훈처가 제시한 장소는 수도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광장이다. 2009년 8월 1일 서울의 중심 세종로를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 공간으로 바꾼 ‘한국의 대표 광장’, ‘도심 속의 광장’, ‘도시문화 광장’이다. 보훈처는 지난 6월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서울시와의 협약서(MOU)에 서명한 뒤 광화문광장에 게양대를 세우는 사업을 추진했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이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시가 관리하는 곳이다. 태극기를 광화문광장에 영구 게양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애초 게양대의 높이도 광복 70주년에 걸맞게 70m를 계획했다가 서울시가 난색을 표명하자 광복절을 의미하는 45.815m로 줄였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광화문광장 대형 태극기 상시 설치를 거부한다”는 불가 입장을 보훈처 측에 전달했다. 영구 설치는 시민들 정서에 맞지 않고 주변 경관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회의 결과를 근거로 댔다. 정부서울청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정부 시설 부지 내 설치를 대안으로 내놨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이 필요하다면 내년 3월까지라는 한시적 조건을 달았다. 회의에서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찬반 의견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서울시가 독립공화국이냐”, 다른 쪽에서는 “권위적 시대로의 회귀, 전근대적”이라며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도 보훈처를 거들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어제 “박원순 서울시장의 국가관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며 서울시의 협조를 촉구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는 항상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국기법 제8조에 의거해서다. 광화문광장을 둘러보다 보면 태극기 게양 논란의 인식 강도에 따라 “참 많구나”, “참 적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의식하면 할수록 더 눈에 잘 띈다. 컬러배스(color bath) 효과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 앞에는 대형 성조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시벨레스 광장 분수대 주변도 마찬가지다. 중국 톈안먼 광장에는 대형 오성기 게양대가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게양대의 위치나 높이는 다르다. 국가 정체성이나 자존감과는 별개다. 때문에 서울시의 입장도 일리 있다. 보훈처도 다시 심사숙고해봄 직하다. 현명할 필요가 있다. 정치 쟁점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시와 보훈처가 만나 대화하기를 바란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서울광장] 아시아인들이여, 인권을 자각하자/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시아인들이여, 인권을 자각하자/박홍환 논설위원

    독일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였던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2년 6월 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스로 유럽 각지의 유대인 500만명을 폴란드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했다고 자랑했던 그이다. 이런 악(惡)의 화신이 또 있을까 싶지만 1961년 4월 예루살렘의 재판정에 선 그는 그저 그렇게 생긴 평범한 중년의 게르만 남성에 불과했다. 그는 7개월간 계속된 재판에서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자신이 사지로 내몰았던 강제수용소 생존자들의 피 끓는 분노의 증언이 쏟아졌지만 그는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르는 ‘명령수행자’였을 뿐이라고 끝까지 항변했다. 이런 그에 대해 재판을 지켜본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생각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은 수많은 독일의 소시민들로 인해 보편적 인권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나치즘의 광기가 한 시대를 뒤덮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 히틀러의 무장친위대에 복무했던 사실을 2006년에야 고백한 독일의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 또한 “나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거짓된 것만을 아는 데 만족했다”며 자책하지 않았던가. 이 시점에 50여년 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새삼 거론하는 까닭은 단지 엊그제가 아렌트의 40주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편적 인권은 결국 대중들의 사유와 자각을 통해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다. 그라스는 “나중에 전범 재판을 보고서야 비로소 나치 범죄의 진상을 깨달았다”며 알려고 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광기의 시대가 또 올 수 있다는 경종으로도 들린다. 유럽 못지않게 아시아 역시 지난 세기 광기에 휩쓸려 반인륜적 집단범죄가 잇따랐다. 일제의 난징대학살이 대표적일 것이다. 집단말살이 서슴없이 자행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는 또 어떤가. 그럼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반성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상흔은 짙게 남아 있다. 반성은커녕 ‘후손들에게 사죄의 부담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일본이다. 이런 아베 정권에 박수를 보내는 일본의 우익은 나치즘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 대중들의 무사유를 연상시킨다. 아시아에서 또다시 인권말살의 참혹한 풍경이 재현되어선 안 된다. 범죄를 범죄로 알아보지 못하고, 왜? 하고 묻지 않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절대 안 된다. 보편적 인권 보장은 비단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시아인 전체의 책무이기도 하다. 유럽은 전후 청산과 동시에 지역 전체의 인권 보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1953년 인권조약이 발효됐고 1959년에는 유럽회의 산하에 유럽인권재판소를 창설했다. 유럽은 지금 각국의 상호 감시 및 압박을 통해 개개인의 인권까지 보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가 못 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 최근 독일을 방문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프라이부르크대학 초청 특강을 통해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의 필요성을 밝혔다.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은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 총회에서도 우리가 제안해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국가 간 정치·종교·문화·역사적 차이를 고려해 집단말살 금지, 여성 및 아동에 대한 보호 등 어느 국가도 반대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기준으로 출발해 차츰 보편적 인권 전반을 다루는 명실상부한 지역인권보장기구로 키워 나가자는 것이다. 집단의 슬기는 집단의 광기를 물리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위안부와 같은 세계사적인 여성인권 유린 행위나 제2의 난징대학살, 제2의 킬링필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아시아인들의 악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경시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시아인들이 깨어나야 한다. ‘악은 주변에 있다’는 아렌트의 경고를 허투루 흘려선 안 된다. 아시아인권재판소 창설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6명만 남았을 뿐이다. 이들이 모두 세상을 등지기 전 아시아인들이 힘을 모아 인권보장의 새 지평을 열 수 있길 소망한다. stinger@seoul.co.kr
  • [재계는 변혁 중] “산업 재편, 기업 주도적으로…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 집중을”

    [재계는 변혁 중] “산업 재편, 기업 주도적으로…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 집중을”

    국내 산업계에 강력한 구조 개편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기업들은 선제적인 인수합병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거나, 구조조정의 한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로에 서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18일부터 국내 10대 기업의 사업 재편 현황을 점검했다. 최종회로 전문가들과 함께 변혁을 도모하는 산업계의 현주소와 한계,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2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 세종대로 사옥에서 진행됐다. 위정현(51)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겸 콘텐츠경영연구소장, 박주근(43) CEO스코어 대표, 김윤경(33)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위 교수는 일본의 도요타와 한국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미래 경쟁력을 비교 연구한 ‘일본재생론’(일본어판)의 저자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 대표는 연세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LG이노텍, LG전자 전략기획·경영혁신팀을 거쳐 현재 기업의 경영 성과 등을 연구·분석하는 CEO스코어를 이끌고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업집단, 기업 다각화 분야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계가 사물인터넷(IoT)과 정보기술(IT), 제약 등의 분야에서 도약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정부가 칼을 빼들기보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구조 개편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국내 산업계의 구조 재편 과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들을 꼽는다면.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지난 50년은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왔지만, 이제는 성장이 정체된다는 전제에서 바라봐야 한다. 투자와 생산을 계속하면 성장할 것이라는 고정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생산설비 등에서 과잉 투자를 해왔던 기업들은 지금부터 다른 활로를 모색할 때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가장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삼성이다. 스마트폰 등 삼성을 이끌어왔던 사업들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 그러나 전략적인 방향 아래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중국 자본이 아가방을 인수했듯 국내 M&A시장에 중국 기업이 ‘플레이어’로 진입해오고 있다. 외국 기업들의 국내 기업 M&A 사례도 많다. 우리나라 기업이 이 같은 흐름에까지 시야를 넓히며 M&A든 사업 재편이든 서두르지 않으면 경쟁이 쉽지 않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어떤 산업에 주목해야 하나. 김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스마트 제조업’이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LG 같은 기업들이 벤처, 스타트업(창업기업)과 협력한다면 기업 생태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박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통신을 활용한 사물인터넷에서의 경쟁력은 높다. 다만 이 같은 분야는 승자 독식 구조의 플랫폼 경쟁이다. 국내 기업이 플랫폼 사업에서 우위를 점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본다. 반대로 제약, 유통, 화장품, 식음료 등을 신수종 사업으로 주목해야 한다. 최근 5년간의 주가 동향을 보면 이들 업종의 주가가 가장 크게 뛰고 있다. →정부가 최근 ‘부실기업 솎아내기’에 나섰다. 철강, 석유화학 등 4대 취약업종에는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이 같은 정부 주도의 산업구조 개편에 대한 견해는. 위 국가가 주도해 산업구조를 재편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던 시대에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지금은 유효하지 않다. 게임, 포털, 정보통신 등에서 글로벌 리더가 된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성장했다. 지금은 민간의 자생적 생태계 속에서 미래 산업이 성장하는 시대다. 정부 정책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김 국내 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시장 자체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거는 건 무리다. 민간에 최대한 기회를 준 뒤 정부가 개입할 곳을 찾아야 한다. 박 시장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될 때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지금이 그런 때인지는 의문이다. 우리 산업계는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많은 변수들에 의존하는 형태다. 최근 정부가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는 철강, 해운, 건설, 석유화학 등은 글로벌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육성하고 활로를 찾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가 칼을 휘두를 것인가. →우리나라와 가장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김 국회에 계류 중인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일본이 1999년 제정한 ‘산업활력재생법’(지난해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개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법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과잉 공급과 과잉 설비, 과잉 경쟁 문제를 해결하도록 법적 기반을 만든 것이다. 정부가 민간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위 일본 유학 시절 도쿄대의 한 교수에게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일본의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은 그 정도의 권한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은 오히려 정부가 칼을 빼들기보다 기업의 자발성에 맡기고 있다. 한국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 시점에서 어떤 규제가 산업계의 ‘퀀텀점프’를 가로막고 있는가. 박 정부가 말로는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오히려 상당히 많은 규제들을 드러냈다. 공유경제, 핀테크 등 우리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에서 규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핀테크의 경우 우리는 너무 늦게 첫발을 뗐다. 위 이종산업 간의 융합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에 심박센서 기능을 탑재하자 ‘의료기기냐 아니냐’는 논쟁에 휘말렸던 사례가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은 정부와 기업 모두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정부가 처음부터 규제에 나서선 안 되는 이유다. 김 기업은 M&A에 쓸 수 있는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많은 기관과 연구소가 국내 산업계에 M&A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M&A를 위한 제반 환경을 만들어 주면 기업이 M&A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구조 재편은 인력의 감축으로 이어진다. 사회적인 진통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 김 일본이 산업활력법을 시행한 후 오히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고용도 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자유롭게 업종을 변경하는 가운데 혁신 기업이 나와야 한다. 기업의 인력 감축 문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만큼 정부가 사회보장제도와 재취업 지원, 직업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위 우리는 고용에 대한 고민이 많이 늦었다. 결국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이슈가 될 것이다. 실업급여나 청년채용 등 단기적인 해법보다 정부는 미래에 어떤 업종과 기술이 등장할 것인지 예측하고 이에 기반한 평생 교육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박 구조조정은 위기에 처한 기업의 가장 마지막 카드가 돼야 한다. 경영자는 자신의 식구들을 목숨처럼 아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해서 평생 기업에서 일하다 퇴직한다. 퇴직 이후의 준비가 안 된 근로자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기업과 정부, 근로자 간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리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경제난·서방과 갈등·지지율 하락… 3각파도 맞은 위기의 ‘차르’

    [글로벌 인사이트] 경제난·서방과 갈등·지지율 하락… 3각파도 맞은 위기의 ‘차르’

    “터키는 테러 공범… 등 뒤에서 칼을 꽂았다.” 지난 25일 시리아 공습에 나선 러시아 군용기를 터키 공군이 격추시킨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푸틴 측은 이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아들이 이슬람국가(IS)와 석유 사업에 대한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정보를 흘렸다. 격앙된 모습은 푸틴의 과거 어법과 다르다. 첫 대통령 임기 직후 발간된 푸틴의 어록집을 보면, 그는 러시아인의 두뇌 유출에 대해 “두뇌 유출이 있다는 것은 러시아에 두뇌가 있다는 좋은 출발”이라거나 미국의 미사일방어계획에 대해 “계란요리를 위해 집을 태우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받아치는 여유를 보였었다. 격앙된 푸틴의 어조 이면엔 지나치게 확대된 러시아의 군사 전선, 회복 기미가 안 보이는 러시아 경제, 푸틴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청년층의 피로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1.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에 의해 격추되면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척결에 앞장선다는 긍지에 큰 상처를 입은 러시아가 터키 제재 방안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푸틴은 사망한 조종사 시신을 넘겨받았지만 내년 1월 1일부터 터키 노동자의 계약 연장 금지, 비자 면제협정 잠정 중단, 터키 상품 일부 수입금지, 터키 체류일정 포함된 여행상품 판매금지 등 강도 높은 제재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전화를 두 차례 거부한 푸틴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다시 한 번 에르도안의 대화 요청을 거절하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2. 지난해 러시아에 합병된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250만 주민의 집과 상가에 정전 1주일 만인 29일 전기가 들어왔다. 촛불로 연명하던 상점들이 정상 영업에 나섰고, 흘러내린 음식을 덜어내 텅 빈 냉장고가 다시 가동됐고, 땔감으로 겨울을 나야 할지 모르는 우려를 덜게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 결정에 따라 몇 차례 정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정전은 지난 22일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송전선을 절단하면서 일으킨 사태였다. 러시아의 크림 병합,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 등은 여전히 푸틴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이슈이다. 일련의 우크라이나 사태로 푸틴과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받고 있다. 푸틴은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던 주요 7개국(G7)에도 초청받지 못하는 ‘국제 왕따’ 신세다. #3.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터키 대사관 앞에서 분노한 러시아인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던 날 모스크바 주변을 대형 화물트럭이 에워쌌다. 지난 24일부터 간헐적인 시위에 나선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대형트럭에 대한 도로세 부과 방침에 항의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푸틴. 1998년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했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48세에 러시아 대통령이 됐다. 한때 7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며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2012년에 ‘차르’에 복귀한 그가 세 번째 대통령 임기에서 사면초가에 처할 줄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러시아 정보기관인 KGB 출신으로 자주 웃통을 벗고 근육질 상반신을 드러내며 ‘마초’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던 그였지만, ‘63세의 푸틴’에게서 위태로움을 느끼는 시선도 많다. 외교와 내치, 두 측면 모두에서다. 예컨대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레오니드 베르시드스키는 “푸틴이 너무 많은 전선에 깊숙이 들어갔다”면서 “지금 푸틴의 러시아를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국제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EU 대 러시아’, 시리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대 러시아’ 등 2개의 전선이 형성되면서 우국이 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와 터키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은 푸틴의 무리한 전선 확대 행위로 봐야 한다는게 베르시드스키의 평가이다. 모든 상황에 푸틴이 선제적으로,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다. 푸틴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 코앞의 우크라이나가 EU에 편입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으려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을 하게 됐고, 시리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바샤르 알아사드 현 정권을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양쪽 전선 모두에서 호전적인 러시아의 행보는 최악의 경우 ‘신냉전’과 같은 파국을 부를 것이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금의 푸틴에게 따라주지 않는 것은 ‘경제’이고, 야속하게 변한 것은 ‘인기’이다. ‘경제’와 ‘인기’는 또 푸틴의 군사 전략을 바꿀 추동력으로 지목된다. 1999~2008년 푸틴의 러시아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원으로 고유가에 힘입어 장기호황 국면을 맞이했다. 2008년 초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개발 및 제조업 부문 수입대체 병행 전략을 발판으로 2020년까지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저유가 국면은 러시아 경제를 할퀴었다. 2006년 7.4%, 2007년 8.1%이던 러시아의 경제성장률 추이는 2008년 5.6%로 주저앉은 뒤 2009년 -7.9%로 역성장했다. 이어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2010년 성장률은 4.3%에 그치다 2013년 1.3%로 떨어졌고 올해엔 마이너스 성장이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같은 대외 강경책은 서방의 금수조치와 같은 경제적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러시아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이다. 군사적으로 서방과 대치하지만, 경제적 부흥을 위해 서방과의 협력이 필수란 점은 푸틴이 처한 역설이다. 지난달 푸틴은 현지 투자전문회사가 주최한 투자포럼 ‘러시아가 부른다’에 참석해 “전반적으로 경제 위기가 정점에 달했다는 전문가 주장에 동의한다”면서 “2010년 2분기 이후 이어졌던 자본 유출이 멈췄고, 올해 3분기 순유입으로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이어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진 30억 달러의 차관을 갚도록 국제통화기금(IMF)이 우크라이나에 추가 차관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하라”고 재무부에 지시했다. IMF 지원이라는 서방식 처방이 긴요한 것이다. 지난해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했을 때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며 강경 발언으로 응수했지만, 이후 우크라이나에 가스공급을 재개하는 등 적절히 유화 정책을 펴는 이면에도 러시아의 경제적인 필요가 숨어 있다. 여기에 지난 25일 전투기 격추 뒤 푸틴이 선언한 터키에 대한 제재 조치가 실현될 가능성을 낮게 보는 관측 역시 러시아와 터키의 교역량이 현재 250억 달러에서 2020년 1000억 달러 규모로 급증할 것이란 낙관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2012년 3선을 위한 대선 당시 불길처럼 일어났던 부정투표 반대 시위에서부터 최근 화물기사 시위까지 시위가 극성인 러시아에서 4선을 위한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 또한 푸틴의 당면 과제다. 1990년대 개방화 시기와 2000년대 경제 호황기에 성장해 이른바 ‘푸틴 세대’로 불리는 러시아 신세대에게 푸틴은 ‘과거로의 회귀’를 뜻했다고 박상남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푸틴 세대는 민주주의를 장식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더 중시하며, 국영 미디어 대신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고 안정을 희구하기보다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려는 경향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0년대 푸틴은 옐친 집권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러시아를 재건한 지도자로 추앙받았지만, 세 번째 임기에 편법적으로 대통령이 되며 이제 권위주의 국가의 장기 집권자들 중 한 사람으로 전락했다”고 덧붙였다. 2012년 대선에서 푸틴은 자신의 반대 세력에 대해 “배후에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서방 세력이 있다”고 선거운동을 폈고, 실제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며 내부 결속을 다져 반대 세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서방 대 러시아’의 구도를 상정한다면 러시아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해 민심 이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냉전 체제를 유도하며 미국과 마주 서는 패권국으로서 러시아의 위상을 지키는 길과 러시아에 우호적이지 않은 글로벌 경제 흐름 속에서 경제적 실리를 찾는 길의 기로에 푸틴이 서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유엔 수장 세 번째 방북… ‘빈손 귀환’ 전철 밟을 수도

    유엔 수장 세 번째 방북… ‘빈손 귀환’ 전철 밟을 수도

    유엔 대변인이 18일(현지시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공식 확인함에 따라 반 총장의 방북은 시기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의 평양 방문이 성사될 경우 역대 유엔 수장으로서는 3번째다. 과거 두 명의 총장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평화협정 그리고 핵 문제 등을 논의했다. 전례에 비춰볼 때 반 총장의 방북 때도 비슷한 의전과 비슷한 형식의 회담 등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을 최초로 방문한 유엔 사무총장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쿠르트 발트하임 총장이다. 그는 1979년 5월 2~3일 평양을 방문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이어 5일엔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남북한 모두 유엔에 가입하기 전이고, 동서 냉전과 그에 따른 남북 대치가 첨예할 때였다. 당시 주석궁에서 열린 회담에서는 유엔 측 4명이 배석했고 북측에서는 허염 북한 외무상 등 10명이 자리했다. 발트하임 총장은 김 주석과의 3시간에 걸친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당사자인 한국을 제외하는 건 불가하다.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제3자로서 조력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주석도 발트하임 총장이 평양을 떠나기 전 마련된 오찬에서 “30년 이상 분단된 우리나라는 이제 조국의 통일이 한민족의 가장 큰 민족과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발트하임 총장도 한국에 와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일성이 ‘북한은 남침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유엔 옵서버 역할론’ 등 중재안은 같은 해 10월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총장은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3년 12월 24∼26일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넘어가 김 주석을 만났다. 그러나 당시는 기대만큼이나 실망도 컸다. 김 주석은 25일 부트로스갈리 총장과의 40분간 단독면담에서 “북한은 미국과 핵 문제에 관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유엔이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이 유엔과 북한 간 비정상적인 관계를 바로잡는 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하러 갔다가 ‘유엔사부터 해체하라’는 공격을 받은 셈이다. 앞서 김영남 북한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도 전날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된 부트로스갈리 총장 환영 만찬사를 통해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핵 문제 해결’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북한 측 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면서 ‘김빠진’ 방문이 됐다. 이렇듯 두 총장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 원인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태도와 직결돼 있다. 북한은 여전히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핵·미사일 문제 등은 북·미 간 해결 사안이란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반 총장도 ‘빈손 회귀’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전임자들과 달리 한국인이란 점에서 눈을 마주 보고 직접 소통한다면 핵·미사일, 인권 등 무거운 주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성 이슈들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단풍과 ‘썸’ 타다

    단풍과 ‘썸’ 타다

    제주에도 단풍 명소가 있을까. 물론 있다. ‘육지부’ 단풍 명소들의 명성이 워낙 떠르르하다보니 그저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천왕사, 어리목 등 제주의 단풍 명소들은 대개 한라산 자락에 깃들어 있다. 그 가운데 이맘때 가장 빼어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천아계곡이다. 현지인들 조차 잘 모를 만큼 덜 알려진 곳이다. 제주 단풍은 수수하다. 시뻘겋다기보다 노란빛이거나 노란빛과 붉은빛의 중간 언저리가 대부분이다. 제주 단풍은 천천히 들고 오래간다. 비록 한라산 영실기암의 단풍은 졌지만 산 아래 단풍은 이제부터 절정이다. 이른바 ‘중산간’이라 불리는 한라산 600~800m 고지 일대에 ‘한라산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한라산을 빙 돌아가는 원형의 숲길로, 길이는 80㎞쯤 된다. 한라산 국유림 일대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로, 이른바 ‘하치카키 도로’와 임도 등을 활용해 만들었다. 그중 한 구간이 ‘천아숲길’이다. 돌오름에서 천아오름을 연결하는 10.9㎞짜리 코스다. 천아계곡은 이 ‘천아숲길’의 초입에 있다. ●물 대신 돌이 흐르는 ‘천아계곡’ 단풍 일품 ‘천아’의 옛 이름은 참나무를 뜻하는 ‘진목’이다. 참나무는 제주 사투리로 ‘처낭’ ‘처남’ 등으로 불리는데 천아란 이름은 바로 이 사투리가 변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숲은 이름에 걸맞게 참나무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단풍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들이 어우러진 모양새다. 천아계곡이라고는 하지만 물은 흐르지 않는다. 제주 특유의 ‘무수내’다. 계곡수가 흘러야 할 자리엔 무수히 많은 돌이 흐른다. ‘돌의 강’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단풍숲은 무수내 너머에 펼쳐져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그야말로 절정이다. 흰빛의 돌과 어우러지니 그 자태가 더욱 도드라진다. 내장산으로 대표되는 ‘육지부’의 단풍이 붉고 현란하다면 노란빛이 강한 제주 단풍은 시골 처녀처럼 수수하다. 천아계곡은 현지인들도 잘 모를 만큼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내비게이션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변까지 찾아가겠다고 내비게이션에 천아오름을 입력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선 천아수원지를 찾는 게 관건이다. 1100도로를 따라 어승생 삼거리까지 간 뒤 우회전해 중문 어리목 방향으로 좀 더 올라간다. 일방통행길이 끝날 무렵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이 천아수원지 입구로, 740번 버스가 서는 곳이다. 이 버스정류장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이 들머리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도로를 따라 2.2㎞ 정도 들어간다. ‘대체 얼마나 더 들어가야 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가다 보면 오래된 철문이 나오고 길이 끝난다. 철문 오른쪽 숲길을 따라 100m쯤 더 내려가면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가 천아계곡이다. 계곡에서 천아오름까지는 10.9㎞다. 원점 회귀하려면 최소 6~7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 긴 코스다. 계곡 입구 안내판에도 오후 2시 이후 입산은 금지한다고 적혀 있다. 트레킹이 아닌 단풍 감상이 목적이라면 이 일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돌의 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제주 특유의 가을 풍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왕사 풍경에 흠뻑… 석굴암도 있어요 천왕사 주변 단풍도 볼 만하다. 천아계곡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가다 충혼탑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삼나무가 짙은 숲그늘을 이룬 길을 따라 1㎞ 남짓 올라가면 천왕사다. 이 일대는 대부분 노란 단풍들이다. 삼나무 너머, 계곡 너머로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듯하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천왕사 대웅전 일대다. 수백년 묵은 고목들이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깊은 가을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이 숲에 ‘별책부록’ 같은 곳이 있다. 석굴암이다. 경주 석굴암과 견주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동명의 암자인데, 적요한 산길에서 만나는 가을 풍경만큼은 제법 운치 있다. 충혼탑 주차장에서 조붓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석굴암이다. 암자까지 왕복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왕 중산간을 찾았다면 어리목계곡까지 둘러보는 게 순리다. 천아계곡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다. 어리목 광장과 계곡 주변의 굵은 나무들이 단풍 옷으로 갈아입었다. ●‘환상 숲’ 곶자왈… 숲 해설가와 함께 산책을 곶자왈에서도 수수한 가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곶자왈은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류(熔岩流)가 분포한 지대에 형성된 숲’이다. 쉽게 말해 용암이 굳은 ‘빌레’ 위에 형성된 숲이다. 봄에야 낙엽이 진다고 할 정도로 계절의 순환이 더디게 느껴지는 곳이지만 숲에 들면 붉은 단풍과 늘 푸른 상록활엽수들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환상숲 곶자왈에선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유료로 운영되는 곳으로 대략 1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다. ‘꿀팁’ 하나. 주변 눈치 안 보고 조용하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켄싱턴 제주 호텔이다. ‘뮤지엄 호텔’을 지향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게다가 무료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느긋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유난히 긴 진입로를 지나 호텔에 들면 사진작가 배병우의 미디어아트 ‘소나무’가 객을 맞는다. 중앙 로비에 들면 입이 떡 벌어진다. 중국 도예가 주러겅(朱耕)의 도자 벽화 ‘생명’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높이가 28m에 달하는 초대형 도예 작품이다. 예술적 아름다움은 차치하고라도 그 방대한 규모가 놀랍다. 한 층 위엔 정열적인 붉은 도자벽이 전시돼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 ‘하늘과 물의 이미지’로 제주의 희망을 표현했다. 국내 대표적 달항아리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박부원의 도자기, 제주의 산천을 담은 김병국의 사진 작품, 중국 유명 작가 자하오이와 티에양의 그림도 전시돼 있다. 이처럼 호텔 로비와 복도, 갤러리마다 유명 작가들의 그림과 미디어아트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그 수가 200여 점에 이른다. 갤러리 투어(064-735-8971)도 진행한다. 시간 맞춰 가면 전문 큐레이터가 동행해 작품을 설명해 준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광장] 미·중 패권 전쟁, 남중국해의 정치·경제학/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미·중 패권 전쟁, 남중국해의 정치·경제학/오일만 논설위원

    남중국해는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의 장이 됐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해양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국가 전략이 부딪치면서 엄청난 파고가 넘실거린다. 양국은 ‘항행의 자유’니 ‘주권 침해’니 하며 국제법 조항을 들먹이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국제질서는 힘의 논리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충돌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이는 2011년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순간부터 예정돼 있다고 보면 된다. 미국은 2001년 9·11사태 이후 중동 지역에 깊숙이 발을 들여 놓았다가 깊은 수렁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미국의 패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중국은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 됐고 2010년에는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위기에 처한 미국이 아시아 패권 탈환을 위해 구상한 것이 바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다. 반면 중국의 입장은 어떤가. 힘과 덩치를 키운 중국은 전후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 질서를 불편해했다. 군사 안보적으로 시시각각 조여 오는 미국의 대중 포위망이 중국의 근본적 이익을 해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에 미군 기지를 구축했고, 중국과 바다를 맞대고 있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중심으로 군사동맹 복원을 시작했으며,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은 한·미·일 3국 군사협력 체제로 포위망을 가동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런 포위 전략을 무너뜨리기 위한 회심의 전략이 바로 남중국해 인공섬 구축이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3분의2가 지나는 길목을 막아서는 중국을 미국이 어찌 가만 두고 볼 것인가. 지난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비공식 만찬에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격한 입씨름을 벌였고 급기야 지난달 27일 군함을 보내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미국의 모든 정책의 기준은 국익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어떤가.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국이 오래전부터 기획한 국가 전략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전면에 나섰지만 정작 막후 연출자는 미국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의 재무장이 미국의 국익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종전 후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것은 새로운 미·일 동맹의 탄생을 알리는 출범식이다. 일본의 재무장 뒤에는 미국의 ‘아시아 안보질서 재편’이라는 큰 그림이 걸려 있다. 욱일승천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20년 전인 1995년 조지프 나이가 구상한 ‘나이 이니셔티브’가 토대가 됐다. 미·일 동맹의 역할을 ‘대소(對蘇) 봉쇄’에서 ‘세계의 안정 유지’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던 아베 정권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 일본의 재무장 전략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경제적으로 휘청거리는 미국은 다른 특혜를 줬다. 바로 아베노믹스다. 일본 중앙은행이 거의 무제한 엔화를 찍어 내면서 엔화 절하를 인위적으로 추진하는데도 미국은 한마디 경고도 하지 않았다. 중국의 위안화나 유럽연합(EU)의 유로화를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다르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야 재무장이 가능하고 그래야 아시아 패권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속셈이 있는 것이다. 기축 통화국 미국이 화끈하게 일본 경제를 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본의 노림수는 또 있다. 바로 군수산업의 부흥이다. 지난해 ‘무기수출 금지 3원칙’을 폐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승인 없이는 어림없는 일이다. 미쓰비시나 가와사키중공업 등 이른바 ‘전범기업’들이 세계 무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주변국들은 정교한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또 남중국해 분쟁에 ‘울며 겨자 먹기’로 끼어들게 생겼다. ‘미국의 요청’을 받아 ‘항해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미국 편에 선 것이다. 중화부흥을 꿈꾸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중국이나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 질서를 지키려는 미국과 우리의 국익은 분명 다를 것이다. 양국의 패권 다툼 과정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작금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국익은 늘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oilman@seoul.co.kr
  • [시론] 다시 시험대에 선 박근혜 외교/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시론] 다시 시험대에 선 박근혜 외교/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임기 후반 박근혜 정부의 실용외교가 정착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남북한은 8·25 합의대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을 성공리에 마쳤고, 민간 교류도 확대될 전망이다. 3년 6개월 동안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도 재개됐다. 박 대통령은 중국 경사론 우려에도 불구하고 9월 3일 열병식 참석으로 중국의 한·중·일 회담 참가 약속을 받아 냈다. 10월 16일 워싱턴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대로 냉각된 한·일 관계를 복원시켰다. 11월 1일 한·중·일 정상은 매년 3자회담 정례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북한 비핵화 촉구와 6자회담 재개라는 상당한 성과를 일구어 냈다. 박 대통령의 뛰어난 외교 행보는 동북아 지역 리더로서 이미지를 국내외에 각인시켰다. 한·일, 한·중 양자 간 회담도 성과가 적지 않았다. 한·일 정상이 3년 5개월 만에 만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위안부 해법을 포함해 한·미·일 안보협력,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와 일본인 납치 문제, 양국 청소년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제를 다루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고, 조기에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한·중 정상회담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직접 국회를 방문해 한·중 FTA 비준을 촉구했다. 한·중 경제협력을 중국 내륙,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기반시설 연결과 무역투자 확대, 제3국 시장 공동개척 등 구체적인 협력안도 나왔다. 거대한 대륙을 경제공동체로 묶어 북한 개방을 유도하는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가 만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3대 외교정책으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본격적으로 시동된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 더 늘었다. 만남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 외교의 시험대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와 관련해 중국의 해양 진출 반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북한 비핵화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담은 미·중 간 정면충돌로 공동선언문조차 내지 못했다. 남중국해 진출에 반대하는 미국·일본·필리핀과 중국·캄보디아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주요 2개국(G2) 체제에 낀 한국은 언젠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진입에 한국의 사전 동의 전제만으로 미·일 양국을 설득할 수 없다. 북한 미사일이 주일 미군 기지를 공격해 미군, 자위대, 민간인 살상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 자위대는 북한을 원점 타격할 수도 있다. 일본의 안보법제 통과 이후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한국군과 주한·주일 미군, 일본 자위대 간 공조와 역할을 확인해야 한다. 씨름판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일 간 최대 쟁점인 위안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은 일단 성과였다. 그러나 내년 선거 일정과 평균 연령이 90세인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내년 상반기까지 타결을 시도해야 한다. 한·일 양국 정상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 외교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 말고 다른 방안이 없다. 북한의 위험한 실험은 당분간 유예됐지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조만간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첩첩산중을 어떻게 헤쳐 갈 것인가. 내정과 달리 외교 면에서 국책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신중히 판단하되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지켜 나갔으면 한다. 첫째, 한국의 국력은 구한말 수준이 아니다. 중견국 한국의 위상을 가지고 자신감 넘치는 동북아 외교를 주도해야 한다. 둘째, 미·중 G2 체제에서 나 홀로 한국은 버겁고 위태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손을 잡는 것이 훨씬 낫다. 위안부 해법에 매달리지 말고 길게 봐야 한다. 셋째, 한국의 외교 입지 확대와 유연한 대응을 위해 한·중·일, 한·미·일 등 다자간 네트워크를 적극 추진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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