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회고록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노르웨이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지지자들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정부조직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 연합뉴스
    2026-02-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02
  • 美 ‘북 남침 때 핵무기 사용 가능’ 입장 밝혔다

    美 ‘북 남침 때 핵무기 사용 가능’ 입장 밝혔다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이 2011년 10월 방한했을 때 한반도 유사시 한국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패네타 전 장관은 7일(현지시간) 펴낸 회고록 ‘값진 전투들’(Worthy Fights)에서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 등 한국 고위당국자들과의 면담 내용을 소개하며 “북한이 침략할 경우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하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해 한반도 안보에 대한 우리의 오랜 공약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한·미 안보협의회(SCM) 등을 통해 공약한 ‘핵우산’ 제공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2011년 10월에는 북·미 간 유해발굴회담 및 제네바 고위급회담 등이 이뤄지는 등 관계가 양호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언급은 이례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패네타 전 장관은 2010년 중앙정보국(CIA) 국장 신분으로 방한했을 때에도 월터 샤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한 침략에 따른 비상 계획을 보고하면서 “만일 북한이 남침한다면 우리의 전쟁 계획은 미군 사령관이 한국과 미국의 모든 병력에 대한 명령권을 갖고 한국을 방어하도록 돼 있으며 필요할 경우 핵무기 사용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패네타 전 장관은 또 미 본토에 미사일 공격 등 적국의 위협 시나리오를 설명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이 같은 시나리오를 감행할 잠재적 국가들이지만 북한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 양국은 SCM 때마다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확인하는 공동발표문을 냈고 회고록은 공동 발표문의 연장선상”이라면서 “핵 공격을 당하면 핵으로 반격한다는 것이 핵무기 운용의 기본”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대학 후배 찾은 김우중 前회장 “제2 창업 세대 돼 주길”

    대학 후배 찾은 김우중 前회장 “제2 창업 세대 돼 주길”

    대우그룹 해체 이후 은둔 생활을 하다가 최근 회고록 출간과 함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 모교인 연세대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제2의 창업 세대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김 전 회장은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대우관에서 열린 연세대 상경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 초청 특강에 참석해 ‘자신만만하게 세계를 품자’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1983년 출간된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연상시키는 주제다. 대우관은 경제학과 56학번인 김 전 회장이 상경대 동문회장 시절 자신과 동문들의 기부금을 모아 1996년 완공한 건물이다. 김 전 회장은 원주캠퍼스 부지를 기증하는 등 모교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모교에서 후배들을 상대로 공개 강연을 한 것은 처음이다. 초청 특강에는 최근 김 전 회장 회고록 격인 ‘김우중과의 대화’를 출간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도 연사로 참석했다. 강당은 학생들을 비롯해 400여명의 청중으로 가득 찼다. 이들은 1967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과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해 30여년 만에 자산총액 76조원을 웃도는 4대 그룹으로 성장시킨 ‘대우 신화’ 주인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 전 회장은 “후배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선진 한국’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선배 세대로서 이 점을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나는 ‘세계 경영’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대신 여러분이 해외로 눈을 돌려 더 큰 꿈을 완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전 회장은 전·현직 대우 임직원들이 참여하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글로벌 YBM(청년사업가)’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학생들과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의 경영 현장을 다니며 멘토링을 해 줄 계획이라는 구상도 밝혔다.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는 ‘제조업 육성’과 ‘통일’을 꼽았다. 그는 “통일이 되면 내수시장이 확대돼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대우그룹 해체 비화나 해체에 따른 국민경제 손실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람 냄새 나는 고향같은 도시 다문화 꽃피는 공동체 만들어야”

    “사람 냄새 나는 고향같은 도시 다문화 꽃피는 공동체 만들어야”

    “자네가 구청장을 마쳤을 때도 지금과 같은 재산이면 좋겠네.” 고재득(68) 전 서울 성동구청장은 처음 당선된 1995년 6월 한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최근 ‘하하 허허’라는 회고록을 펴낸 고 전 구청장은 1일 “이 당부를 평생 저버리지 않았다”며 공직자의 덕목으로 청렴을 첫손에 꼽았다. 전남대 법학과에 다니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제적돼 10년 만에 졸업장을 받은 뒤 1984년 민주헌정연구회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투신해 어렵게 지냈던 20여년 세월을 가리킨 말이다. 이후 민선 1~3기, 5기 성동구청장을 거쳤다. 15년 남짓한 시간이다. 일화도 곁들였다. 구청사 착공 때 시공사 간부가 관행이라며 수천만원의 리베이트를 제시했다. 고 전 구청장은 “솔직히 망설였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나 이튿날 “대신 한 그루에 500여만원 하는 소나무 10여 그루를 심어 달라”고 부탁해 성사시켰다. 그는 정책의 출발점을 고향에서 찾았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이 빽빽한 도시에 사람 냄새를 불어넣자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서로 모른 체하던 이웃끼리 텃밭을 가꾸며 알게 된다. 친환경 사업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것은 덤이다. 그러려면 먹는 문제가 풀려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깔았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기에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동체 구현엔 다문화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나라 광부나 간호사들이 독일에 진출했을 때를 예로 들었다. 고 전 구청장은 “당시 독일이 한국 사람들을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한 점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 지금도 한국인들이 독일 제품을 믿게 된 바탕이라는 교훈이다. 그런데 이주민 140만명 시대를 맞아 한국인들은 결혼이민자, 외국인 근로자들을 홀대해 국익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문화가 특성을 잃지 않고 어우러지는 ‘샐러드 볼’(Salad Bowl) 사회를 꾀하자는 취지다. 청계천과 중랑천 등 14.2㎞에 이르는 하천을 끼고 있으면서도 미세먼지를 줄이지 못하고 수질을 개선하지 못한 데 따른 후회도 담았다. 그는 이런 말로 끝맺었다. “재임 기간 내 아집과 오만 탓에 아팠다면 용서하기 바랍니다. 좋았던 일엔 하하 웃으며 가슴을 펴고, 나빴던 것엔 허허 자조하며 달래겠습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또 선거 참패… 동력 잃은 올랑드 경제개혁

    프랑스 집권 사회당이 지방선거,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 개혁이 연이은 선거 패배로 동력을 잃게 됐다. 28일(현지시간) 실시된 상원의원 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UMP)과 민주독립연합(UDI) 등 우파 연합이 190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우파 연합은 의석 절반보다 16석을 더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프랑스 상원은 1958년 제5공화국 설립 이래 우파가 장악해 왔으나 2011년 좌파 사회당에 다수파 자리를 넘겨줬다. 반이민, 반유럽연합(EU)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FN)은 2석을 얻으며 사상 처음으로 상원에 진출했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는 “역사적 승리”라고 환호했다. 상원의원에 당선된 국민전선의 스테판 라비에는 “엘리제궁(대통령 관저)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관문 하나만 남았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인 올랑드가 이번 선거 결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로(0) 성장, 높은 실업률, 재정적자 등 경제 위기로 가뜩이나 고전하고 있는 올랑드 대통령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의 회고록 폭로로 친서민 이미지에 타격까지 입은 터다. 2011년 상원 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자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재임 중 상원 선거에서 패배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조롱했던 올랑드 대통령은 3년 뒤 같은 굴욕을 맛보게 됐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친일파 낙인… ‘애증’의 근현대 문학 선구자

    춘원 이광수(1892~1950)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애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이광수는 한국 근대문학 운동을 이끈 선구자이자 뛰어난 작가인 동시에, 독립운동가에서 변절한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힌 인물로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라고 부르는 학자들로 적지 않다. 3·1 독립만세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2·8 독립운동 당시 이광수는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인 600여명을 이끌었다. 그는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이를 영어로 번역, 세계에 알렸다. 이후 친일로 방향을 바꾼 이광수는 민족주의와 친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거듭했다.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쓰면서 저명한 독립투사의 회고록을 윤문하기도 했는데, 이 책이 김구의 백범일지다. 실제로 백범일지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광수의 필력이 큰 힘을 보탰다는 것이 후대 학자들의 평가다. 실제 삶과는 별개로 이광수가 한국 문학계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광수는 횡보 염상섭, 육당 최남선과 함께 근대 개화기를 대표하는 3대 지식인이자 문인으로 꼽힌다. 이 중 염상섭만이 친일의 길을 걷지 않았다. ‘명량’으로 대표되는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구국영웅적 평가’ 역시 이광수와 단재 신채호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신채호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이순신전을 연재하면서 “지금 이순신전을 선택해 고통에 처한 우리나라 국민에게 양식으로 삼게 하노니…. 제2의 이순신을 기다리노라”라고 적었다. 이광수는 1931년부터 2년간 동아일보에 이순신전을 연재하며 ‘조선 500년에 처음이요 나중인 큰 사람 이순신’이라고 평가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잘 먹고 잘 사는 법-식사는 하셨어요?(SBS 일요일 오전 8시 10분) 배우 한고은이 프로그램과 함께 ‘김장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모습이 공개된다. 그녀는 김장철에 맞춰 직접 김장을 담가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전한다. 노들 텃밭에서 배추 모종 심기에 동참한 한고은은 직접 MC 이영자, 방랑 식객 임지호를 위해 새참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녀는 평소 본인이 즐겨 먹던 음식인 ‘김치 비빔국수’를 새참으로 준비해 요리 실력을 뽐낸다. 이날 방송에서는 배우 김혜수를 포함해 지금까지 출연했던 여러 게스트의 ‘김장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도 확인해 본다. ■가족끼리 왜 이래(KBS2 일요일 밤 8시 20분) 달봉(박형식)은 손 노인(이대로)에게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다. 문 회장(김용건)으로부터 회장 비서실 복귀를 지시받은 강심(김현주)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물품분류실로 돌아간다. 한편 순봉씨네 가족들은 ‘예비 사돈’ 권 원장네가 보낸 결혼 예단비를 둘러싸고 심한 갈등을 겪는다. ■삼총사(tvN 일요일 밤 9시 20분) 미령의 칼을 맞고 피를 흘리는 소현세자를 본 달향은 격분해 미령에게 칼을 겨눈다. 그러자 소현은 칼을 거두라고 명하며 오히려 미령을 보호한다. 밤늦도록 소현에게서 답이 없자 김자점은 결국 궁으로 출발한다. 연암 박지원이 자금성의 서고에서 ‘박달향 회고록’이라는 낡은 책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 [세계의 창] 美대선 링 오른 힐러리, 부시家의 젭 막을까

    [세계의 창] 美대선 링 오른 힐러리, 부시家의 젭 막을까

    “아이오와여, 내가 돌아왔어요.” 순간 수천 명의 청중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2016년 미국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떠오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난 14일 ‘대선 풍향계’로 여겨지는 아이오와주를 6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방문해 터뜨린 일성이다. 이날 이 지역구 톰 하킨 민주당 상원의원이 주최한 연례행사인 ‘스테이크 프라이’에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힐러리 전 장관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오와는 2008년 1월 관례에 따라 민주당의 첫 번째 대선 후보 경선이 열렸던 곳이다. 당시에도 유력 후보였던 힐러리 전 장관은 예상을 깨고 ‘정치 신예’로 급부상한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그에게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넘겨야만 했던 씁쓸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단상에 선 힐러리 전 장관은 아이오와에 돌아와 기쁘다고 운을 뗀 뒤 “머릿속에 몇 가지가 있다. 물론 그것(대선 출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만 오늘은 그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스테이크 때문에 왔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레디 포 힐러리’ 등 지지 팻말을 들고 모여든 사람들은 힐러리 전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를 보내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뒤 CNN 등 현지 언론이 만난 아이오와 민심은 예상과 달랐다. 민주당 티셔츠를 입고 참석한 한 노부부는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2008년 오바마 후보에 대한 열기에는 어림없다”며 “당시 오바마 후보에게 쏠린 표심이 힐러리에게 그대로 다 갈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오는 11월 4일 열리는 중간선거를 40여일 앞두고 더욱 분주해진 사람들은 다름 아닌 차기 대선 잠룡들이다. 이들 중 힐러리 전 장관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띈다. 지난 6월 10일 자신의 두 번째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을 펴낸 뒤 미 전역을 돌며 북사인회와 강연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자가 같은 달 14일 버지니아주 알링턴 코스트코에서 열린 북사인회에서 만난 힐러리 전 장관은 유권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권 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줬다. 그러나 당시 사인회에 모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제는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힐러리 전 장관이 ‘백악관을 떠날 때 빚더미였다”고 밝힌 뒤 불거진 고액 강연료 논란과 딸 첼시 역시 엄청난 수익을 올린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반감을 사게 됐기 때문이다. 또 힐러리 전 장관이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것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된 듯 힐러리 전 장관의 지지율은 여전히 선두를 달리지만 공화당 잠룡들과의 격차가 4개월 만에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줄어드는 등 예측 불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 전 장관에게 대적할 후보는 아직 없고, 공화당 잠룡들은 여러 명이 비슷한 지지율로 난립해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2008년 오바마 후보처럼 누군가 혜성처럼 등장할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멕시코계 아내를 두고 라틴계가 많은 플로리다 주지사 출신이라는 점과 개혁 성향 정책 등으로 대중의 호감을 얻고 있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힐러리 전 장관과 부시 전 주지사가 맞대결을 벌일 경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간 맞대결 이후 24년 만에 클린턴가(家)와 부시가의 리턴 매치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힐러리 전 장관과 부시 전 주지사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미국인 가운데 상당수가 이들 정치 가문에서 또 대통령이 나오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또 다른 클린턴, 또 다른 부시가 대통령이 되는 데 대해 대중의 반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부정적 여론을 불식하려는 듯 최근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의기투합해 ‘대통령 리더십 연구 프로그램’을 공식 출범시키는 등 서로 사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힐러리 대세론이 유지될지, 아니면 부시 전 주지사 등 새로운 다크호스가 부상할지가 앞으로 2년 남은 차기 미 대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엄마 강요로 1800명 남성과 성관계한 여성 사연

    엄마 강요로 1800명 남성과 성관계한 여성 사연

    사이비종교에 빠진 어머니의 강요로 1800명이 넘는 남성과 성관계를 해야만 했던 피해 여성이 회고록을 출판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21일(현지시간)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 여성 애나벨 포레스트는 지난 2011년 자신의 어머니 재클린 말링과 사이비교주 콜린 배틀리가 체포돼 형이 확정된 뒤 비참했던 과거를 최근 책을 통해 공개했다. 애나벨은 ‘더 데빌 온 더 도어스탭’(The Devil on The Doorstep: My Escape from a Satanic Sex Cult)이란 저서를 통해 자신이 11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결국 교주의 아이를 낳은 뒤 겨우 도망쳐 나왔던 이야기를 밝히고 있다. 애나벨에 따르면 그녀는 7살 무렵 어머니가 교주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후 11살 무렵, 교주에 의해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다시 3년 뒤에는 어머니와 함께 사이비 집단의 성행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사이비교회를 위한 매춘부로 일하게 됐고 교회당 자금을 모으는 일을 도왔다. 18세가 됐을 무렵 그녀가 접한 남성은 1800명을 넘어섰다. 교주와 어머니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과의 성행위에 의해 신(神)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게 했다. 18살 때 그녀는 교주의 아이를 출산하고 야반도주했다. 포레스트는 “어머니와 교주가 내게 준 것은 상처밖에 없다”면서 “평생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포레스트는 현재 잉글랜드 북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번 저서를 출간한 것에 대해 자신의 끔찍했던 유년기가 다른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또래 소년 소녀를 위한 운동가 말랄라의 이야기

    [지구촌 책세상] 또래 소년 소녀를 위한 운동가 말랄라의 이야기

    전 세계 어떤 10대가 이 소녀만큼 유명할 수 있을까. 말랄라 유사프자이(17). 2012년 10월 9일 학교에 다녀오던 이 소녀는 파키스탄탈레반(TTP) 무장대원의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 탈레반이 말랄라를 겨냥한 것은 학교에 다니면서 탈레반을 비난하는 글을 쓰는 등 자신들에게 맞섰다는 이유였다. 당시 말랄라가 깨어날지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영국에서 수술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장기간의 치료 끝에 회복한 말랄라는 ‘소녀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유엔은 ‘말랄라데이’를 선포하며 그의 인권운동을 평가했다. 말랄라는 2013년 7월 유엔 본부에서 “총으로 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는 명연설을 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말랄라가 같은 해 10월 수상자에서 탈락하자 전 세계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까지가 전 세계 언론이 그동안 다룬 말랄라의 이야기다. 지난 2년간 말랄라의 인생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말랄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2013년 10월 말랄라가 쓴 회고록 ‘나는 말랄라입니다: 교육을 옹호했다가 탈레반의 총에 맞은 소녀’가 출간된 뒤 접한 뉴스는 이 책이 말랄라의 고국 파키스탄에서 이슬람교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당시 기자는 파키스탄 소녀들이 이 책을 읽고 교육을 더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말랄라는 최근 같은 제목이지만 소제목과 표지를 바꾼 회고록 ‘나는 말랄라입니다: 한 소녀가 어떻게 교육을 옹호했고 세상을 바꿨나’를 새롭게 펴냈다. 특이한 것은 이번에 출간된 책이 ‘10~14세 청소년용’이라는 것이다. 책을 들여다보면 말랄라가 자신보다 어린 청소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1년 전 책보다 쉽고 단순한 문체에 풍부한 사진 등 새로운 자료들이 눈에 띈다. 특히 말랄라가 10대가 되기 전 파키스탄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린 소녀들의 교육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교육에 목말랐던 자신의 경험이 피격 사건 이후 어떻게 발현돼 인권운동가가 됐는지 등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전달된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멀리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공부를 하고 싶었던 말랄라. 교육을 통해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결국 이뤄냈다. 이 책은 전 세계 청소년에게 말랄라의 기적과 희망을 전한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파리 서점에 진열된 올랑드 佛 대통령 전 동거녀 회고록 ‘이젠 감사해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의 책 “메르시 뿌르 스 모멍”(이젠 감사해요·Thanks you for this moment)이 출간되어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 서점에 진열되어 있다. 책에서 트리에르바일레는 “올랑드는 부자를 좋아하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좌파 정치인이면서도 가난한 이들을 ‘힘없는 이들’(the toothless)이라고 (희화화해) 부르고는 자신의 유머에 큰 자부심을 보였다”고 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또 노동자 계층 출신인 자신의 부모에 대해 올랑드가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신의 부모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올랑드가 “별로 좋은 분들은 아니시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파리 마치’ 기자 출신인 트리에르바일레는 2000년대 중반 올랑드를 만났으며 올랑드가 당시 동거녀와 헤어지자 결혼하지 않은 채 9년간 함께 살았다. 2012년 올랑드가 대통령이 되자 영부인 대접까지 받았으나 올해 1월 올랑드와 여배우 쥘리 가예(42)의 밀애가 공개된 뒤 올랑드와 결별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이후 올랑드에게 “당신이 나를 파멸시킨 것처럼 나도 당신을 파멸시키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트리에르바일레의 이 같은 폭로에 이미 역대 대통령 중 최저인 10%대로 떨어진 올랑드의 지지율은 추가로 하락할 공산이 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랑드는 부자 좋아하지 않는 척… 실제는 가난한 사람을 안 좋아해”

    “올랑드는 부자를 좋아하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올해 초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버림받았던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49)가 ‘한 서린’ 회고록을 통해 그의 치부를 폭로했다. 좌파 사회당 소속 올랑드가 사실은 가난한 이들을 ‘힘없는 이들’이라고 희화화해 부르는 위선자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IBT)가 트리에르바일레의 회고록 ‘이젠 감사해요’의 출간을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일부 내용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책에서 트리에르바일레는 노동자 계층 출신인 자신의 부모에 대해 올랑드가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신의 부모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올랑드가 “별로 좋은 분들은 아니시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트리에르바일레의 폭로로 가뜩이나 10%대로 떨어진 올랑드의 지지율이 더 하락할 공산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사주간지 ‘파리 마치’ 기자 출신인 트리에르바일레는 2000년대 중반 올랑드를 만났으며 올랑드가 당시 동거녀와 헤어지자 9년간 함께 살았다. 2012년 올랑드가 대통령이 되자 영부인 대접까지 받았지만 지난 1월 올랑드와 여배우 줄리 가예의 밀애가 공개된 뒤 결별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佛대통령 전 동거녀 “올랑드 외도에 자살시도”

    佛대통령 전 동거녀 “올랑드 외도에 자살시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동거녀였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가 4일 발간된 회고록 ‘이젠 감사해요’에서 ‘비공식’ 영부인으로서의 생활과 지난 1월 올랑드의 외도 사실 폭로와 이후 결별 과정을 밝혔다고 르몽드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이 회고록을 통해 올랑드의 외도 소식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숨겨진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올랑드와 여배우 쥘리 가예가 비밀리에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연예 주간지를 통해 폭로된 날을 회상했다. ”오늘 아침의 톱뉴스다. 더는 그 뉴스를 들을 수 없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수면제가 담긴 비닐봉지를 찾았다. 올랑드가 따라와 내 손에서 봉지를 빼앗으려 해 방으로 뛰어갔다. 올랑드가 봉지를 잡고는 찢어버렸다. 수면제가 침대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것들을 여러 개 주워서 삼겼다” 지난 1월 연예 주간지 ‘클로저’는 올랑드 대통령이 몰래 대통령궁을 빠져나와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토바이를 타고 가예를 만나러 아파트에 가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 충격으로 일주일 넘게 병원에 입원했으며 올랑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18단어 분량의 짤막한 결별선언을 발표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일간지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18개의 단어는 대통령 당선 이후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한 달에 한 단어가 되는 셈”이라고 말하면서 “상처라기보다는 실망이 더욱 크다”고 술회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또 책에서 좌파인 사회당 소속의 올랑드 대통령이 사실은 가난한 사람을 싫어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좌파 정치인이면서도 가난한 이들을 ‘힘없는 이들’이라고 (희화화해) 부르고는 자신의 유머에 큰 자부심을 보였다”고 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또 노동자 계층 출신인 자신의 부모에 대해 올랑드가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신의 부모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올랑드가 “별로 좋은 분들은 아니시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파리 마치’ 기자 출신인 트리에르바일레는 2000년대 중반 올랑드를 만났으며 당시 그의 동거녀였던 세골렌 루아얄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접촉했다. 올랑드는 4명의 자녀를 두었던 루아얄을 떠났다. 2012년 올랑드가 대통령이 되자 트리에르바일레는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사실상 영부인 대접을 받았다. 이후 올랑드와 가예의 밀애가 공개되고 나서 9년간의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1월 헤어졌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이후 올랑드에게 “당신이 나를 파멸시킨 것처럼 나도 당신을 파멸시키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치 평론가들은 트리에르바일레가 회고록을 통해 올랑드 대통령에게 보복했다고 평가하면서 역대 대통령 중 최저인 10%대로 떨어진 올랑드의 지지율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예상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올랑드 전 동거녀, “올랑드는 좌파 대통령…가난한 사람 싫어해”

    좌파계열인 프랑스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60) 대통령이 사실은 가난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폭로가 나왔다. 올랑드에게 올해 초 치욕적으로 ‘버림’ 받은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49)의 입을 통해서다. 인터내셔널비지니스타임스(IBT)는 트리에르바일레의 회고록 ‘이젠 감사해요’의 출간을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일부 내용을 입수해 이 같은 폭로를 전했다. 책에서 트리에르바일레는 “올랑드는 부자를 좋아하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좌파 정치인이면서도 가난한 이들을 ‘힘없는 이들’(the toothless)이라고 (희화화해) 부르고는 자신의 유머에 큰 자부심을 보였다”고 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또 노동자 계층 출신인 자신의 부모에 대해 올랑드가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신의 부모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올랑드가 “별로 좋은 분들은 아니시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파리 마치’ 기자 출신인 트리에르바일레는 2000년대 중반 올랑드를 만났으며 올랑드가 당시 동거녀와 헤어지자 결혼하지 않은 채 9년간 함께 살았다. 2012년 올랑드가 대통령이 되자 영부인 대접까지 받았으나 올해 1월 올랑드와 여배우 쥘리 가예(42)의 밀애가 공개된 뒤 올랑드와 결별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이후 올랑드에게 “당신이 나를 파멸시킨 것처럼 나도 당신을 파멸시키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트리에르바일레의 이 같은 폭로에 이미 역대 대통령 중 최저인 10%대로 떨어진 올랑드의 지지율은 추가로 하락할 공산이 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우그룹 해체 진실 밝혀지나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의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가 오는 26일 출간된다. 대화록 형식의 책에는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과 주장, 그의 심경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18일 옛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인회에 따르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4년간 서울과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김 전 회장을 20여 차례 만나 가진 인터뷰를 토대로 회고록을 집필했다. 신 교수는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대우인회 등 재계 관계자 45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연다. 재계에서는 이 책을 통해 15년이 지난 지금도 논란이 되는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한 ‘진실’이 드러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책에는 대우자동차를 부실 덩어리로 낙인찍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헐값으로 넘긴 정부 정책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고 그 탓에 우리나라 경제가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데는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비롯한 경제관료와 대우그룹 간의 불화가 작용했다는 주장과 대우그룹에 대한 정부 측 위기 진단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그룹은 창사 30여년 만인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 7000억원에 달하는 재계 2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나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1999년 워크아웃 결정이 내려진 뒤 해체됐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2008년 사면됐으며 이후 베트남에 머물고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2014년 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화가 김정헌과 임옥상, 사학자 안병욱과 윤용이, 건축가 승효상과 조재원, 소설가 은희경 등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 7인이다. 유홍준을 필두로 길고 긴 여정을 지나온 그들은 일본 교토와 아스카, 나라, 그리고 규슈를 누비면서 찾은 ‘일본 속의 한국’을 드디어 공개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열정과 입담, 필력으로 ‘유홍준표 답사’를 만들어 온 유홍준. 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그리고 잊힌 역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을 이으려는 뜻깊은 여정을 함께한다. ■가족끼리 왜 이래(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아버지 차순봉의 뒤치다꺼리를 받으며 시작된 차씨 삼남매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다. 게다가 오늘이 아버지 순봉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자식은 하나도 없다. 한편 12년 전 물에 빠진 달봉의 목숨을 구해 준 서울은 먼 훗날 결혼하자고 손가락을 걸었던 달봉과의 장난스러운 약속만 믿고 서울로 올라온다. ■삼총사(tvN 일요일 밤 9시) 달향은 무과시험에 합격하자 첫사랑 윤서와 혼인하기 위해 한양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달향은 자신들을 ‘삼총사’라 칭하는 소현세자와 그의 호위무사 허승포, 그리고 안민서라는 범상치 않은 무술 고수들을 만난다. 연암 박지원이 자금성의 서고에서 ‘박달향 회고록’이라는 낡은 책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 힐러리 “리더십 공격 의도 없었다” 오바마에게 해명

    힐러리 “리더십 공격 의도 없었다” 오바마에게 해명

    힐러리 클린턴(오른쪽) 전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왼쪽)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자신의 발언<서울신문 8월 12일자 10면>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힐러리 전 장관은 12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발언의 진의를 설명했다고 닉 메릴 대변인이 밝혔다. 그는 “힐러리 전 장관이 오늘 아침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해 자신의 발언이 결코 대통령이나 그의 정책, 리더십을 공격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힐러리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을 자랑스러워하며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재임한 것을 영광스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집권 1기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는 지난 10일 시사잡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시리아 정책을 거론하며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이 발호하게 된 것은 오바마 대통령 외교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워싱턴 정가에선 민주당의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힐러리 전 장관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전 장관이 13일 오후 두 차례 회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매사추세츠주 휴양지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저녁 민주당의 막후 실력자이자 전미도시연맹 회장을 지낸 버논 조던의 부인 앤의 80세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데 여기에 힐러리 전 장관도 갈 예정이다. 힐러리 전 장관은 이에 앞서 마서스 비니어드의 한 서점에서 회고록 ‘힘든 선택들’ 사인회를 연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 전 장관의 책 사인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는 휴가 때마다 두 딸을 데리고 이 서점을 찾았다”고 전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다소 불편한 관계인 오바마 & 힐러리, 내일 파티장서 만날 예정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마찰로 ‘껄끄러운’ 관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중인 동부 매사추세츠주의 유명 휴양지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만난다. 민주당의 막후 실력자이자 전미도시연맹 회장을 지낸 버논 조단의 부인 앤 조단 여사의 80세 생일 파티에서다. 생일 파티는 오후 6시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첫날부터 연이틀 골프를 친 팜 넥 골프 클럽에서 열리며, 두 사람 모두 참석할 예정이라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12일 전했다. 프랭크 토머스 전 포드재단 회장 등 다른 유명 인사들도 참석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의 이번 만남은 클린턴 전 장관이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직후 이뤄지는 것이어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갈지 더욱 주목된다. 오바마 집권 1기때 국무장관을 지낸 클린턴 전 장관은 앞서 10일 시사잡지 ‘애틀란틱’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對) 시리아 정책을 거론하며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이 발호하도록 만든 것은 오바마 대통령 외교정책의 실패”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리아 내전 초기 반군 무장화를 주장했던 입장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오바마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으나 측근들은 차기 대선을 겨냥한 의도적인 차별화 시도라고 일축했다. 생일 파티장에서의 조우와 별개로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전 장관의 북사인회에 참석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클린턴 전 장관은 생일 파티 당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마서스 비니어드의 번치 오브 그레이프 서점에서 자신의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 북사인회를 연다. 16일에도 근처 서점에서 한 차례 더 북사인회를 갖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페북 CEO 주커버그는 사무라이 폭군?

    페북 CEO 주커버그는 사무라이 폭군?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세계 최고의 갑부 대열에 있는 마크 주커버그(30) CEO가 페이스북이 급성장할 당시 일본 사무라이 검을 가지고 다니면서 직원들을 위협하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7일(현시 시간)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언론 매체 보도에 의하면, 2005는 당시 서른 번째로 페이스북에 입사한 전직 프로그램 매니저였던 노아 케이건은 자신이 페이스북에 근무할 당시에 관한 회고록을 전자책 형태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급성장할 2007년, 당시 23세였던 주커버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약 한 달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만들 프로젝트를 보고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기랄(s**t)”을 연발하며 갑자기 해당 직원 컴퓨터에 물을 쏟아 부어 온 직원들이 놀라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케이건은 또한, 주커버그는 당시 일본 사무라이 검을 회사 내에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농담조로 “잘못하면 당신 목을 자를 수도 있다”고 직원들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론 농담으로 위협한 것이지만, 당시 주커버그의 나이가 성숙하지 못한 젊은 혈기의 23세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며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케이건은 결국 페이스북을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바람에 그가 페이스북에 계속 근무했으면 받을 수 있었던 스톡옵션 주식 가치인 1억 달러(1,000억원) 상당의 수입도 날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케이건은 영국의 일간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며 “결국, 내가 받은 경험상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이곳이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 직원의 주장에 관해 아직 페이스북 측은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진=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주춤한 힐러리 뜨는 워런

    주춤한 힐러리 뜨는 워런

    ‘힐러리의 적은 내부에 있다?’ 미국 민주당의 차기 대권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위) 전 국무장관의 인기가 ‘부자 논란’으로 주춤하고 있는 사이 같은 당 내 진보의 상징인 엘리자베스 워런(아래) 상원의원에 대한 출마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이 전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최근 두 번째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을 펴낸 뒤 인터뷰 등을 통해 홍보에 나섰다가 강연료로 20만 달러(약 2억원) 안팎을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나 반감을 사고 있다. 이는 회고록의 저조한 판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관측된다. 그의 딸 첼시도 고액의 강연료를 챙겨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워런 의원의 지지 세력은 그를 대선 후보로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워런 의원의 지지자들은 지난 18일 디트로이트에서 진보단체 ‘풀뿌리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그가 연설자로 나서자 “출마하라, 출마하라”고 외쳤다. 지난해 말부터 거론된 워런 의원의 ‘힐러리 대항마’ 가능성은 지난 4월 그가 회고록 ‘성공에의 가능성’(A Fighting Chance)을 펴내 호평을 받았을 때도 제기된 바 있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인 워런 의원은 2012년 정계에 입문한 직후부터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날 연설에서도 대형 투자은행 등 미 월가 금융권의 탐욕스러운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워런 의원은 “대형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평범한 가족들과 미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고도 구제금융까지 받았다”며 “이제 그들은 금융위기로 파산위기에 몰렸던 2008년 때보다 더욱 배를 불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워런 의원의 이 같은 분명한 입장은 클린턴 전 장관과 달리 미국 내 최대 현안인 소득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면서 서민층 등에서 지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워런 의원은 출마 권유를 고사하고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잊힌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의 삶

    잊힌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의 삶

    한 혁명가의 회고록/빅토르 세르주 지음/정병선 옮김/오월의봄/760쪽/2만 7000원 혁명가들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대가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잊힌 혁명가들도 많다. 빅토르 세르주(1890~1947)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생전에 소설가, 시인, 정치평론가, 저널리스트, 아나키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혁명가’였다. 죽는 날까지 투사로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간 ‘한 혁명가의 회고록’은 그 까닭을 ‘국가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 망명자였다. 그의 부모는 차르 독재에 반대하다가 러시아를 탈출한 망명자였고, 그 와중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르주를 낳았다. 유년기를 브뤼셀에서 보낸 세르주는 그 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를 전전했고 멕시코에서 궁핍한 말년을 보내다가 사망했다. 그는 이들 나라를 거치면서 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때문에 일생의 많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또한 머무르는 나라에서 추방되는 일도 많았다. 다시 말해 국적 없는 혁명가의 신세로 지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항상 글을 썼다. 소설 7권, 시집 2권, 단편집, 일기, 회고록, 평전 등 30여권의 책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툴라예프 사건’, ‘세기의 한밤중’, ‘감옥에 갇힌 사람들’, ‘정복당한 도시’, ‘우리 권력의 탄생’ 등이 있다. 이 책들이 최근 다시 빛을 보면서 잊힌 혁명가의 삶에 세상이 새삼 주목하고 있는 것. 책은 히틀러가 지배하는 유럽을 벗어나 멕시코로 건너온 뒤 쓴 세르주의 자서전이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독일 등을 전전하며 혁명을 일으키려고 애쓴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그가 살았던 세계에 대해 낱낱이 증언한다. 레닌, 트로츠키, 그람시, 루카치 등 저자가 가까이서 접했던 당대의 혁명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 걸출한 혁명가들의 삶을 특유의 소설가적인 시선으로 증언한 덕분에 책읽기의 묘미가 더해졌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