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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훈클럽 2015년도 하반기 언론인 저술·번역 출판 지원 대상자 10명 선정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이사장 김창기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은 28일 2015년도 하반기 언론인 저술·번역 출판 지원 대상자 10명을 선정했다. 10명의 지원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김정은, 카메라 앞에 서다” ”이미숙(문화일보 국제부장)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국대사 회고록 <번역>” ”김태완(조선뉴스프레스 월간조선부 차장대우) 광복 70년만의 조우-日刊 藝術通信 자료집김규원(한겨레 경제부 부장대우) 세종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세종시의 어제와 오늘, 내일” ”한상용(연합뉴스 카이로특파원) IS 거꾸로 보기, 중동 특파원 보고서” ”박미현(강원도민일보 경영기획본부 기획위원) 근대 강원의 항구와 정어리 바다” ”김숙현(전 코리아헤럴드 해외부장) 한국전통문화이야기 : 글·이미지·노래로 풀다” ”김주혁(전 서울신문 편집국 선임기자) 삶 속 양성평등 이야기, 여존남존(女尊男尊) 김철웅(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노래가 위로다” ”홍원기(대한언론인회 명예회장) 한국신문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 이센스, 옥중 앨범 발표 ‘디 애넥도트’ 사이먼디 SNS에 올린 글 보니..

    이센스, 옥중 앨범 발표 ‘디 애넥도트’ 사이먼디 SNS에 올린 글 보니..

    이센스, 옥중 앨범 발표 ‘디 애넥도트’ 사이먼디 SNS에 올린 글 보니.. 가수 이센스가 옥중에서 첫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이센스의 첫 정규앨범 ‘디 애넥도트(The Anecdote)’의 음원이 공개된 가운데 전 슈프림팀 멤버 사이먼디가 응원에 나서며 의리를 과시했다. 26일 쌈디는 이날 자신의 SNS에 이센스 ‘애넥도트’ 앨범 커버와 이센스의 사진을 게재하며 “ANECDOTE TONIGHT(애넥도트 오늘밤) 1위”라는 글을 올렸다. 이센스의 ‘애넥도트’는 작년 9월에 발매한 싱글 ‘백 인 타임(Back In Time)’을 포함해 총 10곡이 담겼다. 이센스는 옥중에서 발매한 앨범 ‘애넥도트’에 대해 “나의 삶에 대한 짧은 회고록”이라 표현했다. 이센스는 지난달 22일 대마초 흡연 혐의로 열린 최종공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선고를 받았다. 최근 무료공개곡 ‘비행’을 발표, 힙합 팬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센스 ‘애넥도트’는 공개 전 발매한 한정판 1만6천장이 모두 매진될 정도로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끝까지 재기 꿈꾼 비운의 황태자

    끝까지 재기 꿈꾼 비운의 황태자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에게는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삼성을 이끌 운명을 타고났지만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해 동생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후계가 정해지면서 세속을 등진 채 살다가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때 부사장 직함만 17개 ‘젊은 부총수’ 이 전 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창업주와 고 박두을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고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의 딸인 손복남(CJ그룹 고문)씨와 결혼했다.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1962년 안국화재(삼성화재의 전신) 업무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했다. 1968년 삼성의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의 대표이사에 올랐고 삼성물산, 삼성전자 부사장 등 직함이 무려 17개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그의 호칭은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그가 그룹 후계자로 낙점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6년 ‘한국비료(현 삼성정밀화학)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세계 최대 비료 공장을 만들려 했던 이 창업주가 이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장남으로서 아버지 대신 실질적으로 그룹을 맡았으나 그의 경영 행보는 얼마 가지 못했다. ●부친 대신 그룹 맡았다가 6개월 만에 팽당해 이 창업주는 ‘호암자전’에서 이 전 회장에게 그룹 경영을 맡겼더니 “6개월 만에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며 이 전 회장이 자진해 물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 전 회장은 자신의 회고록 ‘회상록-묻어둔 이야기’에서 “6개월이 아니라 7년간 일했다”며 아버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사카린 밀수 사건에 이 창업주가 관여했다”는 내용의 청와대 투서 사건이 1969년 터졌고 이 창업주는 이 전 회장이 투서의 주범이라고 여겨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것으로 전한다. 이 창업주는 삼남 이건희 회장을 1976년 9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고 이 전 회장의 입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10여년간 해외 각지를 떠돌며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괄괄한 성격… 스스로 왈패·사냥꾼 고백 이 전 회장은 신중한 이건희 회장과 달리 괄괄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서전에 자신이 40대에 간호사와 바람을 피운 이야기,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왈패짓을 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았다. 또 아버지에게 내쳐진 뒤에는 근신하는 대신 정면으로 반항해 사냥을 하러 다녔다고 고백한 대목에서도 그의 성격이 느껴진다. 다만 항간의 이야기와 달리 술은 즐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책에서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신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술을 잘 마시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창희(이 창업주의 차남)나 건희도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성격 탓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2년부터 2년여간 이건희 회장과 유산 관련 소송전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장남 이재현 건강 악화… 빈소 상주 어려울 듯 한편 와병 중인 이 전 회장의 장남 이재현 회장은 14일 부친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침통해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13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말초신경과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샤르코마리투스(CMT)병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CJ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상주는 장남인 이재현 회장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빈소에 상주하며 조문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매년 국치일엔 굶으며 치욕 곱씹어”

    “매년 국치일엔 굶으며 치욕 곱씹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8월 29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1920~1930년대 만주에 살던 우리 동포들은 매년 이날이 되면 하루 종일 굶으며 그날의 치욕을 곱씹었다.”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1888~1957) 장군의 막내딸인 지복영(1919~2007)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14일 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 여사가 노년에 쓴 공책 세 권 분량의 회고록과 언론 기고문, 편지, 한시 등 육필 원고를 모아 한 권의 회고록으로 묶었다. 지 여사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중국 각지에서 생활했다. 19세부터 한국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후에는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지 여사는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며 2012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지 여사의 회고록에는 만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겪은 ‘조선인 동포 사회’의 풍경이 상세히 기술됐다. 특히 해마다 ‘국치일’(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1910년 8월 29일)이 되면 동포들이 끼니를 거르고 치욕을 곱씹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또 낮에는 조선인 학교에 모여 ‘국치의 노래’를 부르고 밤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연극을 공연했던 것으로 기술됐다. 나라를 잃었지만 개천절이면 다 함께 음식 추렴을 해 마을잔치를 열었던 일,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중국인 패잔병들이 벌인 악행, 동포들 사이에서 나타난 지역감정과 분열상 등 당시 동포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부친 지 장군의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는 일화도 소개됐다. 1924년 당시 다섯 살이던 지 여사는 어머니, 오빠와 함께 중국 지린으로 건너가 처음 아버지와 만났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기에 어린 지 여사는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고 지 장군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회고했다. 지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딸답게 일제에 적극 항거한 여성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1932년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지 장군은 한국독립군 간부들과 중국 내륙으로 이동했다. 지 여사도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갔다. 19세가 되던 1938년부터 거리에서 ‘일제 타도’란 구호를 외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긴 이후에는 한국광복군 창군 대원으로 참여했다. 지 여사는 광복군의 기관지 ‘광복’을 편집·제작하고 대일 선무방송을 진행하며 일본군으로 끌려온 한인 병사들을 광복군으로 끌어들이는 임무도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회고록을 펴낸 지 여사의 장남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후손들이 독립운동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청산리전투에선 어떤 무기를 썼을까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일기 원본과 지청천 장군의 딸이자 여성광복군 대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지복영 선생의 육필 회고록이 처음 공개된다. 전쟁기념관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독립전쟁, 그 위대한 여정’을 오는 7일부터 11월15일까지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기획전은 ‘독립전쟁의 서막’, ‘만주에서의 독립전쟁’, ‘조국의 새벽을 연 광복군’, ‘독립군의 주역들’이라는 4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전쟁기념관이 소장하는 유물은 물론 독립기념관, 육군박물관 등의 유물 110여 점도 선보인다. 청산리·봉오동전투에서 사용했던 ‘러시안 맥심 기관총’, ‘의병 화승총’, 도검류 등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비롯한 광복군 복장과 배지, 태극기, 대한군정서 사령부 일지, 청산리전투 보고서, 영친왕이 무관학교 학생과 찍은 사진 등 다양한 유물이 그래픽, 영상과 함께 전시된다. 서로군정서가 발행한 군자금 영수증, 한국광복군 대원증 등 흥미로운 유물도 선보인다. 이영계 전쟁기념관장은 “최근 영화 ‘암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모습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청소년들이 전시장을 찾아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깊이 새겨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 2층 기획전실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기획전은 무료다. 문의 02-709-308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

    [부고]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가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23일 저녁(현지시간) 별세했다. 78세. 도쿄교육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국제적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에 관여했던 고인은 자신 역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백남준의 예술적 동반자였다. 1963년 도쿄 소게쓰 회관에서 퍼포먼스를 하던 백남준을 처음 만난 그는 백남준을 따라 뉴욕으로 날아갔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한 끝에 1977년 결혼에 성공했다. 이후 도쿄와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등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포기하고 남편을 돌봤다. 백남준 사후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2010년에는 회고록 ‘나의 사랑, 백남준’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신혜정 지음, 호미 펴냄)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일반인의 뇌리에 생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 말은 그 원전 폭발 순간에 어린 자녀와 함께 숲에서 괭이밥을 뜯다가 피폭된 여인의 절규로 유명하다. 책은 그 절규를 제목으로 썼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2001년) 출신인 시인이 핵발전 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쳐 파악한 핵발전소 고발서. 어쩔 수 없이 매일매일 핵을 안고 살아가는 원전의 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삶과 원전을 둘러싼 정치, 경제, 건설, 학계 등 여러 이권 세력에 의해 은폐된 핵발전소의 실체를 낱낱이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라는 7번 국도의 핵발전소 지역을 모두 돌아봤다. 객관적인 자료 일색인 종전의 흔한 탈핵 서적들과는 사뭇 다른 책. 핵발전 현상을 직접 관찰하고 느껴 전한 기록이 생생하다. 208쪽. 1만 2000원. 누가 지도자인가(박영선 지음, 마음의숲 펴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쓴 ‘지도자들 이야기’다. 20년 기자, 10여년 정치인 활동 시절 만난 정치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박근혜·이명박·노무현·문재인·안철수·정몽준·정운찬·정동영·손학규 등 9명이 주인공. 넬슨 만델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박 의원은 책에서 말한다. “대통령이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 구별되는 무엇이 있다.” 그러면서 “대통령들에겐 모두 시대를 응축하는 ‘시대의 언어’가 녹아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 지도자에 국한하지 않고 기업 회장과 대표, 간부, 교수, 장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리더들의 지도력을 말하고 있는 게 특징. 400쪽. 1만 5000원.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바데이 라트너 지음, 황보석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1970년대 후반 캄보디아를 대량 학살로 몰아넣은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저자의 자전소설. 크메르 루주가 권력을 잡아 자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던 무렵 일곱 살 소녀 라미의 가족이 수도 프놈펜에서 쫓겨나 캄보디아를 떠날 때까지의 4년간을 어린 라미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다뤘다. 참혹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 낸다. 크메르 루주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 기존 작품들이 주로 회고록에 치중된 것과 달리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을 라미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는 문학 형식을 빌려 그려 낸 게 큰 특징이다. 공포와 절망의 나락 속에서 소름 끼치는 참상을 실감하면서도 살아남으려는 인간 정신이 도드라진다. 15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536쪽. 1만 3800원. 한글의 발명(정광 지음, 김영사 펴냄)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글 창제와 관련해 새롭게 접근했다. 기존의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없는 독창적 글자를 만드셨다’는 신화적 접근을 경계한다. 그보다는 역사적·과학적 바탕 위에서 한글의 의미와 언어학적 가치, 탁월함에 주목했다. 창제의 근본 동기부터가 새롭다. 원나라 건국에 따라 한자의 중국어 발음과 우리 발음이 크게 달라진 탓에 생긴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도 한자의 한어음을 표기하거나 우리 한자음을 수정해 백성에게 가르칠 때 필요한 발음기호로 창제했다고 본다.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운 문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한글 창제에 불가(佛家)의 학승들이 큰 도움을 준 사실도 공개된다. 508쪽. 1만 9800원.
  • 3년만에 평가결과 ‘반전’ 또다시 ‘정치감사’ 논란

    감사원이 13일 발표한 해외 자원 개발 성과 분석에 관한 감사 결과는 우리나라가 지난 30여년 동안 추진해 온 에너지 자원 확보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보고서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추가 투자가 이뤄졌지만 이에 견줘 거둬들인 성과는 너무 미미하다고 감사원은 지적하고 있다. 감사원은 해외 자원 개발의 문제점으로 ▲무분별한 집중 투자 ▲외국 자원 시장에 대한 무지 ▲경쟁적인 외형 확장 ▲실패를 예측한 뒤에도 제어가 불가능한 점 등을 꼽았다. 즉 정부의 정책에 따라 무리하게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중에도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진행한 결과 추후 투자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는 에너지 자원의 국내 확보를 위해 1984년부터 35조 8000억원을 투자해 169개 해외 사업에 참여했으나 실제로 확보한 실적은 지나치게 적었다. 더구나 이후 48개 사업에 기존 투자액보다 더 많은 46조 6000억원의 추가 시설 투자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나 해외 투자에 나선 한국석유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측은 “자원 개발은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해명했으나 이는 세계 자원 보유국들이 자국의 자원에 대한 국외 반출을 제한하기 이전의 경우에 해당한다. 포스코 계열인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유전 개발의 경우도 획득한 석유는 미얀마 측과의 조율을 거쳐 중국에 수출한 뒤 그 수익만 대우인터 측이 챙기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비상시 자원의 국내 확보는 쉽지 않다. 비상시 자원을 교환하는 조건이 있으나 절차가 까다롭고, 3개 공사는 이 같은 조건도 빼놓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목적인 자원 확보보다 민간 기업처럼 지분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에 나섰으나 이마저 무리한 투자로 수익성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번 감사를 통해 3개 공사는 사업 진행 부서에서 위험 요인을 축소, 은폐하는 등 사업 타당성을 왜곡했지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내부 통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2007년부터 7차례에 걸쳐 자원 개발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는 자원 개발 정책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관련 비리 적발보다는 개선에 치중했다”면서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함께 개선 건의에 관한 감사 결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 정부의 실패한 정책을 겨냥한 ‘표적 감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감사 결과를 놓고 새누리당의 일부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데다 이 전 대통령도 회고록에서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 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밝힌 바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또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4월 감사에서는 석유·가스의 경우 자주개발률이 2003년 3.1%에서 2011년 13.7%로, 유연탄 등 5대 전략 광물은 2003년 18.2%에서 2011년 29.0%로 증가했다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지만 이번에는 성과가 저조하다며 평가를 바꾼 부분도 주목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지리를 보라, 국제 관계가 보인다

    지리를 보라, 국제 관계가 보인다

    왜 지금 지리학인가/하름 데 블레이 지음/유나영 옮김/사회평론/516쪽/2만원 지리학을 말하자면 지구본, 지도책을 놓고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산과 강, 나라 이름이나 국경을 외우는 학문쯤의 인식이다. 이런 지리학 방식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한다. 19~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확대하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한 곳의 일이나 상황이 그곳에만 국한하지 않는 ‘관계의 세상’이 됐다. ‘왜 지금 지리학인가’는 그 ‘관계의 세상’을 지리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봐 흥미롭다. 국제 관계를 움직이는 모든 사건은 공간적 개연성을 가져 지리적 시각으로 보지 않고선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책은 크게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됐다. 기후변화와 얽히고설킨 이슬람 분쟁, 그리고 미국과 중국 등 초강대국이 겨루는 지정학적 문제가 그것이다. 먼저 기후변화를 살펴보자. 앨 고어의 이른바 ‘불편한 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인식이 도드라진다. 이를테면 태양과 흑점의 주기, 대양 순환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연 주기가 결정적 요인으로 드러난다. 이들 중 어떤 주기가 더 우세한가에 따라 온난과 한랭의 지점이 결정되는 만큼 지구온난화 같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지구촌에 범람하는 테러의 본질을 놓고도 보통의 인식과는 다르게 진단한다. 흔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이해하는 무슬림 테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9·11 공격의 계획과 자금 지원 실행에 연루된 팔레스타인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 뿌리는 1884년 식민열강들이 베를린회의에서 아프리카 분할을 결정하면서 그은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종교선에 있다. 종교선은 이슬람전선을 형성, 국가 통합을 위협하고 테러리스트와 반군의 행동을 부추기는 분쟁지대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열강들이 종교, 인종을 무시한 직선 국경을 그어 아프리카를 분쟁지역으로 만든 것처럼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지적한다. 중동의 사스나 아프리카 에볼라, 메르스 같은 전염병과 알카에다, 헤즈볼라, 이슬람국가(IS) 등 무장단체 테러 행적을 지도로 만들면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그 방법론은 중동, 유럽, 중국의 미래 가늠에도 유효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간적 사유의 바탕에 ‘세상은 평평하지 않다’는 지론을 놓고 있다. 세계가 평평하다거나 점점 더 평평해진다는 말은 세계의 핵심에 있는 이들에게는 공감을 살지 모르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세계화의 높은 장벽에 부딪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지역, 혹은 고질적 분쟁에 시달리는 곳에서 태어났느냐와 같은 지리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로버트 맥나마라의 회고록에는 막대한 돈이 투입된 이 전쟁의 계획과 실행 과정에서 불거진 인도차이나의 자연·인문 지리에 대한 오해들이 숱하게 열거돼 있다. 군사·민간 지도자들이 베트남의 사회적 현실과 전쟁 자체가 펼쳐진 물리·정치적 무대에 대해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데 서툴렀다는 맥나마라의 일갈은 지리적 문맹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극명히 보여 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분오열된 이슬람국가인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개입하면 그들이 이 제복 입은 무장 이교도들의 군대를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과의 단절을 극명히 드러냈다. 이런 인식은 이 나라를 수렁으로 내몰았고 그 노력은 실패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지리학의 무지를 타파하자고 매듭짓는다. “지리상 발견의 시대는 끝났어도 지리학적 발견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함석헌과 간디(박홍규 지음, 들녘 펴냄) 종교에 바탕을 둔 위대한 사상가, 행동하는 비폭력 평화운동 지도자, 자연을 중시한 민주주의 인권운동가…. 인도의 간디와 한국의 함석헌에게 공통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책은 두 사람을 실천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비판적 톺아보기로 읽힌다. 두 사람은 ‘식민지’란 배경 아래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살아 낸 궤적의 유사함을 지닌다. 두 사람을 비교 분석한 책은 종종 있었지만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분석서로는 이례적이다. 비슷한 점 못지않게 다른 점이 많은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 형성과정, 가르침, 세상과의 만남, 각 분야에 대한 관점을 샅샅이 살폈다. 저자는 간디의 사상을 발판 삼아 시민 저항에 필요한 전략적 수단으로서 비폭력주의,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권운동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함석헌의 역사관을 뛰어넘어 우리 전통·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의 고민처럼 민중의 나아갈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312쪽. 1만 4000원. 피스 메이커(임동원 지음, 창비 펴냄)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이 2008년 펴낸 회고록의 개정 증보판이다. 전체적으로 초판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첨삭했다. 영어·일어판으로도 출간된 회고록은 북핵 위기 20년 과정을 기록한 주요 사료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판은 미국 고위관리·전문가들의 회고록과 저술 내용을 보완, 2000년대 초중반 미국 속내를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다. “기존의 제네바 합의를 ‘손쉬운 제재’만으로 깨뜨려 버렸다”며 조지 부시 전 행정부의 제네바 합의 파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회고 내용이 대표적이다. 대폭 다시 쓴 제15장은 2008∼2015년 봄까지의 남북 관계 및 북핵 문제의 전개 과정과 문제점을 추가 서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남북 고위급회담 성사로 이어졌음에도 대북 전단 살포 묵인으로 유명무실해졌음을 지적한 대목은 현 정부 통일정책의 비일관성을 날카롭게 짚어 내고 있어 주목된다. 640쪽. 2만 5000원. 비이성의 세계사(정찬일 지음, 양철북 펴냄) 다수가 근거 없이 개인·집단을 공격하는 비이성적인 현상인 ‘마녀사냥’의 10가지 대표 사건을 소개했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집단 광기에 빠진 과정과 이상적 사회를 꿈꾼 이들이 살인마가 된 까닭을 추적했다. 유명 사건들을 대중과 그들의 집단적 비이성에 초점을 맞춰 흥미롭다. 마녀사냥은 공통 배경을 갖고 있다. 전쟁·자연재해 등 사회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불안 해소 방법을 찾고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집착은 더욱 커진다. 기존 질서를 유지, 혹은 전복하려 할 때 관계없는 것들을 희생양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잔인하거나 황당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스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점과 이성이 마비된 보통 사람들에게 악은 아주 평범해졌고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매카시즘에 종북몰이를 하는 정치인, 소크라테스 재판에 인터넷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식의 기시감이 도드라진다. 344쪽. 1만 3000원. 한영수 꿈결같은 시절(한영수문화재단 지음, 한스그라픽 펴냄) 국내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연구회인 ‘신선회’의 창립 멤버인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가 담은 1950∼60년대 어린이들 모습. 한영수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한영수문화재단이 지난해 선보인 ‘서울모던타임즈’에 이은 두 번째 한영수 사진집인 셈이다. 시간적 배경은 전쟁 후의 힘들고 어렵던 시절이면서 동시에 아픔을 딛고 재건이 시작되던 때. 사진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아이들을 통해 미래를 보는 시선으로 표현됐다. 전혀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포착해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는 어린이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한영수문화재단 측은 “작가가 생전 출간한 사진집에 실린 사진 설명과 작가가 직접 적은 필름 파일 귀퉁이의 조각 메모들을 퍼즐의 조각처럼 맞춰 나갔고 이는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186쪽. 4만원.
  • “북한 붕괴 안 믿어… 韓, 대북정책 희망 갖고 지켜볼 것”

    “북한 붕괴 안 믿어… 韓, 대북정책 희망 갖고 지켜볼 것”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서 지낸 31년 삶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 추격전은 없었다. 기상천외한 무기로 적을 제압하거나 적국의 미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영화 같은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보기관 요원으로서 냉전적 대결의 질서가 지배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세계와 아시아, 한반도의 평화를 갈구했고 진실을 추구했다. 도널드 그레그(88) 전 주한 미국 대사다. 최근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의 한국어판(창비)을 펴낸 그레그 전 대사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인 삶의 역정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CIA 요원으로 지내는 동안 일기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어요. 그저 기억에 의존해서 쓸 수밖에 없었고, 4년이 걸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초안부터 CIA의 검열을 거쳐야 했죠.” 여전히 행동과 발언에 제약이 있음에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북한의 붕괴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인 입장이다. 김정은은 지적이고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2002년 자신과 처음 만났던 상황을 소개하면서 “(당시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직후였는데, ‘희망으로 미래를 봐야지 후회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고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앞으로 희망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문제에 대해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반환이 지연된 것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한국은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빨리 해결되는 것이 동북아 지역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CIA 한국지국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관, 주한 미국 대사 등을 지내고 은퇴한 뒤에도 태평양세기연구소 대표를 맡으면서 북한을 6차례 방문하는 등 북·미 관계 개선 및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외교관 혹은 김대중 구명 운동에 나선 자유주의 민주주의자, 그리고 북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친북 인사로서의 이미지다. 그는 “미국 정부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좋아하지 않는 정부나 지도자를 악마화하면서 자신의 무지와 외교적 실패를 덮으려 한다는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에 북한을 악마화하는 정책을 중단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규정짓는 세간의 평가 자체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포토] 前 주한 미 대사 도널드 그레그 출판기념 간담회

    [포토] 前 주한 미 대사 도널드 그레그 출판기념 간담회

    19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전 주한 미 대사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도널드 전 대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2015.5.19 박지환 popocar@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목수의 인문학(임병희 지음,비아북 펴냄) 문학도에서 신화 연구가로, 다시 목수로 변신을 거듭한 저자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의 묘미. ‘공부도 할 만큼 했다’는 목수가 지난날의 삶에서 깨친 ‘인생미정(人生未定)’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금 일들을 덤덤하게 풀어낸 이야기 묶음이다.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빗대 ‘삶의 재료’들, ‘삶을 바꾸는 공구들’, ‘삶의 찬란한 마감재들’이란 세 개의 카테고리로 묶은 에피소드들이 동·서양 고전의 어렵지 않은 덧칠로 풀어진다. ‘나도 내가 목수 될 줄 몰랐다’는 식의 덤덤하지만 앙금 있는 글 투르기가 녹록지 않은 인문학 지식과 어울린 ‘생활 속 인문학’ 읽기랄까. “삶이란 죽는 그 순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는 맺음 부분의 당부도 저자 개인의 삶과 맞물려 호소력 있는 울림으로 전해진다. 목공 일을 하면서 겪거나 부닥치는 일상의 일들이 이야기의 주 테마인 만큼 공방과 직접 만든 가구 모습으로 만나는 목공예의 풍경은 덤이다. 264쪽. 1만 4000원. 생각은 죽지 않는다(클라이브 톰슨 지음, 이경남 옮김, 알키 펴냄) “디지털 기술은 인류의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다” 2011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컬러스 카) 출간 이후 통념이 된 명제. 그 명제와 달리 ‘새 기술은 사고 패턴을 좋은 쪽으로 바꾼다’고 강조, 글쓰기·인쇄술을 포함해 기술혁신이 우려를 낳았던 해프닝들을 소개한다. 글쓰기가 그리스의 웅변술 전통을 파멸시킬 것이라 했던 소크라테스 등 염세주의자들의 불찰도 들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적으려고만 든다고 걱정했다. 저자는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됨을 소크라테스는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우려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된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디지털 기술특성을 조목조목 짚어 인간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456쪽. 1만 6800원. 네트워크의 부(요하이 벤클러 지음, 최은창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2006년 영문 초판이 발행된 직후 큰 반향을 일으킨 책. 인터넷 시대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해 많은 미래학 관련 논문·저서에 인용됐다. 제목 ‘네트워크의 부’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적 진보와 공공선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했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빗댄 표현이다. 저자는 인터넷의 출현에 따라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이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공유와 협업을 통해 비시장적으로 정보·문화·지식을 생산하는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생산인 ‘사회적 생산’이 소셜네트워크를 기본으로 한 동료생산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네트워크 정보경제에서 창출된 사회적 부가 정치·경제·문화적 자유와 성찰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초판 발행 이후 변화된 상황을 한국어판 서문에 직접 썼다. 876쪽. 2만 9000원. 이화림 회고록(장촨제외 엮음, 박경철·이선경 옮김, 차이나하우스 펴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담한 뒤 이봉창·윤봉길 거사에 협력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이화림(1905-1999). 김구 선생의 비서로 한인애국단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화림의 이야기가 ‘백범일지’에 단 한 줄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화림은 윤봉길 의사와 일본인 부부로 위장해 상하이 훙커우 공원을 정탐하는 등 의열활동의 숨은 조력자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낸 여성이다. 나라 잃은 여인으로서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조국독립과 해방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걸출한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잊혀지고 묻혀 금기시돼 왔다. 책은 그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역사 속에서 부활시켰다. 이화림의 회고를 바탕으로 중대 사건과 관련한 그의 활동을 꼼꼼하게 붙였다. 중국 내 항일구국·민족해방과 국가독립 쟁취의 역사 재현을 통해 중국 현대에서 잊혀진 빈 공간을 채운 기록이 눈길을 끈다. 388쪽.1만 5800원.
  • ‘르윈스키 폭로’ 그날 밤… 공포영화 찍은 클린턴 부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의 침대가 피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전 백악관 직원) 1998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탄핵이 추진되는 등 ‘르윈스키 스캔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무렵 클린턴 부부는 침실 난투극을 서슴지 않았다.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분노와 우울의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전 백악관 출입기자인 케이트 앤더슨 브라우어가 전날 출간한 저서 ‘더 레지던스’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브라우어는 100명이 넘는 전·현직 백악관 직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밤의 백악관’ 모습을 책에 상세히 담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피투성이 침대’ 일화다. 백악관 침실 청소 당번은 대통령 부부의 침대가 피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는 클린턴 대통령의 것으로 밝혀졌지만 공식 해명은 “밤중에 화장실로 달려가다 다쳤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브라우어는 “직원들이 ‘힐러리가 대통령의 머리를 책으로 내려친 게 틀림없다’고 말했고, 침대 주변에는 성경을 포함해 두툼한 책이 20권 넘게 있었다”고 썼다. 꽃 장식을 담당하는 직원은 복도를 지나던 중 힐러리가 남편에게 “망할 녀석”이라고 소리치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침대 옆 램프가 깨졌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클린턴 부부는 참모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지독한 저주의 말을 상대방에게 퍼부었으며 힐러리는 밤마다 축 처진 목소리로 주방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좋아하던 모카케이크를 부탁하기도 했다. 브라우어는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서너 달 동안 침대에서 자지 못하고 2층 서재의 소파에서 웅크리고 새우잠을 잤다”고 기술했다. 책에는 다른 대통령 부부의 모습도 담겼다. 백악관 가사노동자들은 리처드 닉슨 이후 가장 호감이 갔던 인물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부부를 꼽았다. 반면 린든 존슨이나 빌 클린턴 같은 전직 대통령 부부는 모시기 까다로웠던 사람들로 지목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재클린이 자리를 비우면 수영장에서 여성들과 누드파티를 즐겼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나는 누굴까 찾아가는 길 자서전 쓰기

    나는 누굴까 찾아가는 길 자서전 쓰기

    자서전/유호식 지음/민음사/304쪽/1만 9000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고, 알리려는 소통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자주 택한다. 자서전, 편지, 회고록, 일기, 자전적 소설…. ‘자기에 대한 글쓰기’는 문명과 함께 진화했고, 자서전은 가장 대표적 장르로 꼽힌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자서전의 대중 확산은 가파르게 늘고, 그 일탈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나름의 규범과 형식을 갖춘 자서전의 본질을 무시한 채 자기과시에 매몰된 궤도이탈은 대중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 진실의 서술이 아닌 허위의 자기미화가 지나칠 경우 심각한 결과를 부르기도 한다. 국내에선 드물게 ‘자서전학’에 천착해 온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작정하고 자서전의 본질을 세상에 알려 왔다. 신간 ‘자서전’을 통해서다. 서양의 고전들을 훑어 자서전의 의미와 특성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이론서이면서도 대중적인 재미가 쏠쏠한 작품으로 읽힌다. ‘한 실제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소재로 하여 개인적인 삶, 특히 개성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쓴 산문으로 된 과거 회상형의 이야기’. 자서전 분야의 획기적 저서 ‘자서전의 규약’(필립 르죈·1975)이 제시한 자서전 정의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자서전은 작가와 화자, 그리고 등장인물이 동일해야 한다. 여기에서 세 가지 특징이 생겨난다. 우선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만 충실하게 고백할 것을 공개 선언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자서전 작가는 쓴 내용에 도덕적 책임을 지며, 독자는 자서전 사건을 상상이 아닌 실제경험으로 믿게 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로마에는 자서전이 없었다. 그리스에서는 현대적 자서전이 토대를 두는 개인의식보다 시민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자기 성찰은 보편 지혜에 이르는 길일 뿐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자전적 작품인 이소크라테스(변론가·BC 436-BC 338)의 ‘교환에 대하여’도 사회가 인정하는 모델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켜 기존의 가치를 찬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고대 로마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기에 대한 글쓰기는 금욕주의 태도와 관련됐다. 자신의 행위·사유를 기록하고 타인에 공개하는 행위는 정신적, 도덕적 행동을 실천하기 위한 지침서에 머물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중세 교회의 신학을 완성한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고백록은 한 인간의 개인사를 토대로 전기적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최초의 자서전’이란 평가가 따른다. 회개와 세례, 어머니 죽음까지 다룬 이 종교적 자서전은 기독교가 절대 권위를 행사하던 천년간 중세의 삶을 전형화해 보여준 모델 자리를 지켰다. 지금 통용되는 근대적 의미의 자서전은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고백록(제1부 1781년, 제2부 1788년)이 효시다. “나는 한 인간을 사실 그대로 털어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 내보일 작정이다. 이 인간은 나 자신이다” 루소 사후에 출간된 이 고백록은 평범한 개인의 사소한 일상사가 이야기 대상이 된 최초의 작품으로 작가 지위를 서민에까지 끌어내린 ‘자서전 전범’으로 통한다. 이에 앞선 프랑스 철학자 미셸 몽테뉴(1533-1592)는 자서전 작자를 평범한 사람으로 확장한 최초의 인물이지만 삶을 하나의 논리적 여정을 지닌 이야기로 만들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문학가들이나 문학 비평가들은 흔히 ‘내’가 ‘나’를 말하는 문학인 자서전에 편견을 보인다. “자아는 가증스러운 것”(파스칼), “자서전에 비해 허구가 훨씬 진실된 장르”(앙드레 지드), “자서전은 예술가 아닌 자들의 예술, 소설가 아닌 자들의 소설”(알베르 티보데)…. 이런 삐딱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궤적에서 건져 올린 자서전의 교훈은 녹록지 않다. ‘자서전 작가들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최후의 판결을 내리고자 한다’‘자신의 삶을 서술함으로써 자기 삶의 작가이자 해설자이며 심지어 비평가로 남기를 원한다’‘자서전 작가는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내는 주체로 자기 자신을 제시한다’…. 저자 역시 자기 성찰이 자기 정당화와 연결된 담론이란 측면에서 고백은 과거를 연금술적으로 변용하는 시도라고 말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무한한 변화에 직면해 있고, 스스로 제 삶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영원히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매 순간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 자서전은 새롭게 삶을 디자인할 때 시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존 레논 조강지처 신시아, 75세 나이에 암으로 별세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존 레논의 첫 부인인 신시아 레논이 암투병끝에 1일(현시시간) 스페인 마요르카 자택에서 75세 나이로 숨졌다고 가족이 밝혔다. 텔래그래프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신시아의 임종을 지켜본 아들이며 음악가인 줄리안은 “모친이 짧지만 용기있게 암과 싸우다 돌아가셨다”면서 고인의 사진을 담은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 존 레넌의 두 번째 부인인 오노 요코는 성명을 통해 신시아의 타계 소식에 “매우 슬프다”며 “위대한 분이고 훌륭한 엄마였다”고 추모했다. 오노 요코는 이어 “우리 두 여성이 ‘비틀즈 가족’을 굳건하게 지켜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는 신시아가 “사랑스러운 여성”이라며 “우리 모두는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했고 링고 스타도 트위터에 추모 글을 올렸다. 신시아는 1957년 리버풀의 음악학교에서 존 레논을 만나 비틀즈가 명성을 얻기 직전 결혼했지만 당시 10대 우상이었던 비틀즈의 이미지를 지키고자 결혼 사실을 숨겼다. 두사람은 신시아가 존 레논과 오노 요코와의 관계를 알게된 후 1968년 이혼했다. 비틀즈의 유일한 공식 전기를 집필한 헌터 데이비스는 “신시아가 존과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조용하고 침착했다”며 “존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나 그녀는 남편에게 순종했다”고 말했다. 신시아는 이혼 후 몇 차례 재혼했으며 레논과 지냈던 시절을 회고록으로 펴내기도 했다. 비틀즈가 부른 ‘헤이 주드’(Hey Jude)는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았을 신시아의 아들 줄리안을 위해 매카트니가 줄리안의 이름을 주드로 바꿔 쓴 곡이다. 신시아는 줄리안과 각별히 가깝게 지냈다. 줄리안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아빠는 내가 세살이었을때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와 나는 세상의 관심 밖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박정희와 회담 때 통역 맡아… 리셴룽과 2대째 정상 재회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생전 한국과 인연이 돈독했다. 특히 정치 지도자로서 통하는 바가 많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각별했다. 1979년 10월 시해 일주일 전 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 만났던 외국 정상이 리콴유였다. 싱가포르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리콴유는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을 둘러보면서 처음 방문한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했다. 이때 밥상머리 통역을 맡았던 이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리콴유의 아들이자 싱가포르 총리인 리셴룽(李顯龍)이 다시 양국 정상으로 만나 회담을 했으니 2대에 걸친 인연이다. 리콴유는 한국 정치사에 관심이 많았다. 2000년 출간된 회고록 ‘일류 국가의 길’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것에 “군부 지도자가 대중적 지지를 추구하는 민간 정치인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는 그릇된 메시지를 전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1996년 미국 외교 잡지 포린어페어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민주주의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리콴유가 ‘문화는 운명’이란 기고를 통해 서구를 따라잡고자 아시아 국가에서 정치적 자유를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자, 야당 지도자였던 김 전 대통령은 ‘문화가 운명인가-아시아 반민주적 가치의 신화들’이란 반박글을 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리콴유는 국정 철학에 대한 영감을 준 국가 지도자다. 현대건설 사장으로 1981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건설에 참여할 때 리콴유는 이 전 대통령을 불러 5분짜리 비디오를 보여 주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설파, 깊은 감명을 받은 이 전 대통령이 향후 국정 운영에 이를 반영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부패와의 전쟁, 전·현 정권 전쟁으로 번지나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를 놓고 전·현 정부 사이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이 총리가 지난 11일 취임 후 첫 담화에서 지목한 해외자원 개발 배임 의혹, 방위사업 비리, 대기업 비자금 조성 등이 대부분 전임 이명박 정부와 연결고리가 있는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옛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은 13일 “전임 정부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어 국정 동력을 얻으려는 의도”라며 불쾌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드러냈다. 앞서 4대강 감사·자원외교 국정조사, 이 전 대통령 회고록 발간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친이·친박(친박근혜)계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친이계 핵심이었던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이 총리 본인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뜬금없이 나온 담화의 시점이나 의도를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방산비리, 비자금 조성 등은 명분이 있다 쳐도 정책적 측면이 짙고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자원외교마저 비리 여지가 큰 것처럼 부각시킨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옛 친이계 내부에선 분위기가 매우 격앙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친이계 의원은 “자원외교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였나. (현 정부 실세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다”면서 “레임덕이 두려운데 야당의 ‘공안정국’ 반발은 부담이 크니 전임 정부를 향해 사정의 칼날을 겨누는 것 아니겠나”라며 못마땅해했다. 이명박 정부 출신인 전직 장관은 “현 정부가 친정인 전임 정부에 칼을 겨눠 얻을 실익이 아무것도 없는데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담화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는 등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김무성 대표는 자원외교 수사와 관련해 “국회에서 진행하는 것은 국정조사고 정부에서 하는 것은 수사”라면서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의 조사와 수사를 따로 진행할 수 있다”고만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총리가 왜 이 시점에 그런 발표를 했는지 전혀 내막을 모른다”면서 “자원외교는 지금 국조가 한창 진행 중인데 무슨 배경인지 모르겠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의 이중적 삶

    리투아니아 출신의 프랑스 외교관, 영화감독, 비행사이자 작가인 로맹 가리(1914~1980)는 현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다. 하지만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프랑스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의 사후 밝혀지게 된 믿기지 않는 사실 때문이었다. 살아 있을 당시 로맹 가리 자신과 경쟁 상대이기도 했던 신인 작가 에밀 아자르가 그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로맹 가리로 1956년, 에밀 아자르로는 1975년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공쿠르문학상을 받았기에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공쿠르문학상은 원래 한 작가에게 한 번만 주어진다. 이미 1980년 프랑스 사회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 사건으로 충격에 빠져 있던 터라 불과 한 달 뒤 터진 로맹 가리의 자살 소식에 더 큰 혼란에 빠진 것이다. 또한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이라는 걸작을 통해 비평가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기에 그의 정체가 실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의 이중적인 삶에 대해 그 뒤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지만 정확한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1914년 로만 카슈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14살 때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 니스에 정착했고, 1934년 파리 법과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했으며 이듬해 프랑스로 귀화했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 뒤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레지스탕스 단체인 자유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했다. 프랑스 공군의 로렌 비행중대 대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로맹 가리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 시기다. 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무공훈장을 비롯해 많은 훈장을 받았다. 종전 직후에는 불가리아와 스위스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52년에는 미국 뉴욕에 있는 국제연합(유엔) 프랑스 대표단에서 일했고, 1956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총영사로 부임했다. 공쿠르문학상을 2회 수상한 유일한 작가인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쓴 작품을 포함해 30권이 넘는 소설, 수필, 회고록을 남겼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한미동맹의 큰 별’이 지다...전쟁고아의 아버지를 기리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한미동맹의 큰 별’이 지다...전쟁고아의 아버지를 기리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최측근 인사이자 ‘세준 아빠’로 알려질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마크 W. 리퍼트(Mark William Lippert) 주한 미국대사가 불의의 테러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된 뒤 미국 시민들은 우방국 수도 한복판에서 자국 대사가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미국인들의 충격과 착잡한 심경은 핵심 군사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대낮에 자국 대사를 향한 테러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더불어 사건 발생 불과 이틀 전 대한민국을 위해 반평생을 헌신했던 전쟁영웅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오하이오 주 데이톤 시의 자택에서 향년 98세로 별세한 딘 헤스(Dean Elmer Hess) 미 공군 예비역 대령. 그는 한국공군 전투기 부대의 산파이자 1,000여 전쟁고아들의 아버지였으며, 무공과 더불어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던 참군인이었다. ▲한국공군의 산파(産婆)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벌어질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육·해·공군과 해병대라는 군대는 가지고 있었지만, 그 수준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공군은 제대로 된 전투기 한 대 없이 훈련기와 경비행기 몇 대만을 연락기 겸 정찰기로 가지고 있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운용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공군은 밀려 내려오는 북한군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다. 2인승 훈련기를 타고 적진 상공까지 다가가서 창문을 열고 박격포탄과 수류탄을 던져 폭격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시 한국공군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투기를 제공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 공군을 공군답게 만들어주기 위한 군사고문단, 이른바 제6146부대가 창설됐다. 제6146부대장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P-47 전투기를 몰며 독일공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던 조종사가 임명됐다. 그가 바로 딘 헤스 소령이었다. 일명 ‘한판 승부(Bout one)'라고 명명된 한국공군 강화 프로그램은 간단했다. 대대급 부대인 제6146부대가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서 한국공군 파일럿과 정비사를 교육시킨 뒤 전투기를 한국에 인계하는 것이었다. 사실 미 공군은 ‘바우트 원’대대에 별 기대가 없었다. 한국에 전투기를 제공해 주는 생색만 낼 수 있으면 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부대에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전황이 악화되면서 전투기 한 대가 아쉬워지자 바우트 원 대대를 해체시키고 배속 전투기를 전량 제7공군으로 보내 전투 임무에 투입시키려고 했다. 대대장인 딘 헤스 소령은 “대대가 해체되면 대대원 전체가 육군에 입대해서 전선에서 적을 맞아 싸우겠다”며 상부의 지시에 항명으로 맞섰다. 전시 상관에 대한 항명과 명령 불복종은 총살감이지만, 헤스 소령이 목숨을 내놓고 항명한 덕분에 한국공군은 가까스로 최초의 전투기 대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전투기가 부족하다는 상부의 압박이 들어올 때마다 교육 중인 한국군 조종사들과 함께 전투기를 타고 출격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훈련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헤스 소령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250회나 출격하며 각종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미 공군 조종사들이 100회의 출격을 달성하면 일본이나 미국 등 후방으로 전출 보내주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한국에 남았고 끝까지 대대를 지켰다.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군인으로서 부하들을 남겨두고 전선을 떠나지 않겠다는 그의 정신은 그가 탔던 전투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당시 정비사였던 최원문 일등상사(전후 대령으로 예편)에게 “By faith, I fly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기체에 그려 달라”고 부탁했고, 최 일등상사는 “신념(信念)의 조인(鳥人)”이라는 글귀를 그의 전투기에 새겨 넣었는데, 이 문장은 훗날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기상을 상징하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그가 지켜낸 전투기 대대에서 키워진 조종사와 정비사들은 훗날 한국공군의 기틀을 세운 주역들이 되었다. 말 그대로 전쟁 중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진정한 공군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준 산파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작전명 : 꼬마자동차 전쟁 중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한 헤스 중령은 당시 미 공군에서 군종목사로 임무를 수행하던 러셀 블레이즈델(Russel L. Blaisdell) 중령과 함께 각지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독일의 탁아소를 실수로 폭격한 뒤 충격을 받고 이후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것이 헤스 중령의 또 다른 직업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헤스 중령과 함께 고아들을 돌보던 블레이즈델 중령은 서울 시내에 작은 고아원을 차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시내를 돌며 고아들을 데려와 보살피기 시작했다. 미군 장교가 보살펴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아원을 찾아온 아이들은 삽시간에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보급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미군 장병들은 십시일반으로 자신들의 식량과 피복, 월급을 쪼개 고아원에 보내면서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1950년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시작됐다. 수십만 대군의 파상공세 앞에 전선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고, 중공군은 파죽지세로 서울 인근까지 당도했다. 이것이 1. 4 후퇴였다.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은 아이들을 모아 일본으로 대피할 계획을 세웠지만 문제는 이동수단이었다. 그들은 미 공군 수뇌부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지만 전황이 악화되어 단 1대의 항공기도 아쉬운 판국에 전쟁고아들을 실어 나를 비행기를 따로 편성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미 공군과 UN군 수뇌부는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상부의 허가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은 인맥을 총동원해 남는 비행기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당시 제5공군 작전참모였던 터너 로저스(Turner C. Rogers) 대령으로부터 주일미군에 여유 수송기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은 주일미군사령부와 제5공군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단 하루 사용하는 조건으로 C-47 수송기 15대를 얻어냈다. 문제는 수송기를 사용하기로 한 당일 아침 정해진 시각까지 무려 1,000여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서울에서 김포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블레이즈델 중령이 수소문 끝에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미 해병대 트럭들을 발견했고, 그 트럭들을 세워 아이들을 태울 것을 명령했지만, 곧 수송대 부대장인 미 해병대 대령이 “전시에 임무 수행중인 차량을 임의로 징발하는 것은 반역”이라며 블레이즈델 중령 일행에게 권총을 뽑아 들었다. 중령 일행은 눈물로 호소를 거듭한 끝에 12대의 트럭을 얻어냈고, 비록 2시간가량 늦긴 했지만 김포 비행장까지 아이들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헤스 중령은 적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김포 비행장을 뜨려 하던 C-54 수송기들을 붙잡아 두고 있었고, 아이들이 비행장에 도착하자 트럭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태웠다. 헤스 중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가장 마지막 차례의 아이가 수송기 안으로 들어오고 수송기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헤스 중령과 블레이즈델 중령은 ‘꼬마 자동차 작전’ 직후 명령 불복종으로 소환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위기에 처했지만, 관련 내용이 미국 전역에 대서특필되면서 전쟁영웅으로 떠올랐고, 결국 징계 대신 훈장과 표창을 받고 대령까지 진급했다.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 헤스 대령은 원래 목회자를 꿈꾸며 신학을 전공해 안수까지 받은 개신교 목사였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인 고아 소녀 한 명을 입양했다. 몸은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온 신경은 제주도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쏠려 있었고, 그 와중에 고아들이 머물고 있는 제주도 고아원 임대료를 낼 돈이 없어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려 6만 달러의 거금이 필요했지만, 전쟁 기간 내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고아들을 보살폈던 그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6. 25 전쟁 당시의 경험, 특히 고아들을 구한 ‘꼬마 자동차 작전(Operation Kiddy Car)’에 대한 이야기를 급히 책으로 써냈고, 이 책이 대박을 터트리며 벌어들인 인세 수입을 모두 제주도로 보냈다. 그가 쓴 '전송가(Battle Hymn)'는 미국 사회를 감동시키며 영화로까지 제작됐고, 헤스 대령은 책 인세 수입과 영화 로열티까지 벌어들인 모든 돈을 고아들에게 쏟아 부었다. 그가 돌본 고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자신들을 돌보아 준 헤스 대령에게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고,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종종 그를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임종 직전까지 그의 곁은 입양해 온 한국인 딸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구한 고아들 가운데 미국에 정착해 종종 인사를 오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에게 종종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며 살았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헤스 대령의 별세 소식과 한국 사랑으로 채워진 그의 삶을 보도한지 불과 이틀 후에 ‘친한파’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 소식이 미국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헤스 대령과 8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블레이즈델 대령은 천국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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