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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열리는 전두환 재판 장면, 국민은 볼 수 없다

    내일 열리는 전두환 재판 장면, 국민은 볼 수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재판이 내일(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다. 다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 내부를 촬영할 수 없어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볼 수 없다. 재판은 사전에 방청권을 확보한 경우에만 볼 수 있다. 조비오 신부 유족과 5·18 단체 관계자 등 재판 관련자와 기자, 방청권 보유자 등 총 103명(우선 배정 38명·추첨 배정 65명)이 참관한다. 통상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출석할 때는 언론을 통해 그 모습을 공개한다. 그러나 광주지법은 담당 재판부(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의 판단에 따라 법정 내부 촬영을 불허하기로 했다. 이는 전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전·현직 대통령들은 모두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또 전씨가 신변 보호 대상으로 지정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지난 2017년 출판한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광주지법에서 재판받고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전두환 재판 위해 내일 광주행…별도 ‘경호대’도 투입

    전두환 재판 위해 내일 광주행…별도 ‘경호대’도 투입

    사자명예훼손 혐의 전두환 재판 위해 오전 자택 나서서대문경찰서 형사팀·경호대 등 투입…광주까지 동행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8) 전 대통령이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오전 자택을 나선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씨는 11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승용차를 타고 광주지법으로 출발한다. 이에 서대문경찰서 소속 2개 형사팀 10여명이 전씨와 동행할 예정이다. 형사들은 당일 오전 7시쯤 자택 앞에서 대기 한 뒤 전씨가 탄 승용차가 출발하면 승합차 2대를 타고 따라갈 계획이다. 전씨는 준비된 승용차에 부인 이순자 여사, 변호사와 함께 탑승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형사팀과 별개로 전씨의 경호를 맡은 경찰 경호대도 경호차를 타고 전씨를 따라 광주로 향한다. 평소 전씨의 경호에는 경찰관 5명이 투입됐다. 전씨가 광주로 내려가는 동안 경호 인력 충원 계획은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대는 앞서 서울에서 광주까지 동선을 점검하고, 광주지법을 미리 방문해 경호 계획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전씨의 동선에 따라 교통을 통제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재판 시간에 맞출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조처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에 도착하기 전 전씨는 모처에서 점심을 먹을 것으로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전씨는 오후 1시 30분쯤 광주지법에 도착한다. 경찰은 전씨가 법원에 도착하면 법원이 발부한 구인장을 집행할 계획이다. 단, 자진 출석과 고령을 이유로 수갑은 채우지 않는다. 11일 전씨의 자택 앞과 광주지법 앞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력이 투입된다. 당일 오전 7시 30분쯤 보수 성향 단체인 ‘자유연대’ 등은 연희동 전씨 자택 앞에서 ‘전두환 대통령 광주재판 결사반대’ 집회를 연다. 200~300명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평소 자택 경비 인원 외 별도의 경비 인력을 투입할 방침이다. 평소 전씨 자택 경비에는 의경 1개 중대(60명)가 배치됐다. 경찰의 한 경비 담당자는 “당일 상황에 따라 경비 인력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의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2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이순자 여사가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혔고, 올해 1월 7일 재판도 독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으면서 담당 재판부는 전씨에게 구인장을 발부했다. 전씨 재판은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의 재판 참석과 관련해 5월 단체들은 “사죄가 먼저”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5·18기념재단 조진태 상임이사는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광주에 오는 전 씨는 먼저 시민들과 5·18 영령들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며 “본인이 저지른 죄업을 씻고 가는 것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전 씨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전 씨의 반성 없는 태도는 일부 극우 집단들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고 있다”며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히면 최근 망언에 대한 국면을 풀어가는데 훨씬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상임이사는 그러면서도 전 씨를 겨냥해 “뻔뻔하다”고 언급했다. 조 상임이사는 아울러 “사과를 하지 않으면 방법은 (본인이 지은 죄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죄하지 않을 경우) 법원 역시 전 씨에게 개전의 정이 없는 만큼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고의 벌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전두환 前대통령, 11일 광주 재판 출석

    전두환 前대통령, 11일 광주 재판 출석

    전두환(88) 전 대통령 측이 오는 11일 광주지법에서 예정된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이번 재판에 부인 이순자씨가 동행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재판부는 이를 허가했다. 전 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7일 “그동안 출석을 피한 게 아니고 독감 등 사정으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광주지법은 “전씨가 변호인을 통해 ‘심신 미약’을 이유로 부인 이씨와 함께 재판에 나오겠다고 요청해 와 이를 허용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승용차를 이용해 서울에서 광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법은 이전 재판과 비슷한 수준인 경찰 기동대 80명을 법정과 외곽에 배치해 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다. 재판은 공개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해 입석을 허용하지 않으며 참관 인원도 총 103석(우선 배정 38석·추첨 배정 65석)으로 제한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해 5월 불구속기소 된 후 두 차례 재판 연기 신청을 했으며, 그동안 알츠하이머병과 독감 등을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담당 재판부는 지난 1월 전 전 대통령에게 구인장을 발부했다. 재판은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법, 미술을 품다(김영철 지음, 뮤진트리 펴냄) 검사를 시작으로 35년 동안 변호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교단에서의 ‘미술법’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술과 법의 관계를 탐구했다. 법이 인정한 미술의 범위, 담벼락 낙서의 예술 여부 등 미술계 종사자들이 일선에서 부딪치는 법적 문제들과 상식들을 정리했다. 324쪽. 2만원.종전의 설계자들(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메디치 펴냄) 원폭 투하와 소련의 참전, 무엇이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였을까?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저자가 미국과 소련, 일본의 방대한 문서저장고에서 태평양전쟁 종결의 배후를 캐내 일본의 항복 과정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다. 720쪽. 3만 3000원.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세계적인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저자가 말하는 잠의 이모저모. 충분한 수면은 강화된 기억력과 높은 창의력을 얻게 해 주고, 심지어 몸매를 더 날씬하게 유지시키는 한편 식욕도 줄여 주는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효능을 가진다. 512쪽. 2만원.메이드 인 강남(주원규 지음, 네오픽션 펴냄) 강남 초고층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발견된 시체 열 구. 이 참혹한 살인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찾은 국내 1위 로펌의 김민규 변호사는 상위 0.1% ‘로열패밀리’들과 연관된 사건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설계사’다. 욕망과 천민자본주의로 점철된 강남의 모습을 화려하지만 어두운 색채로 그린 장편소설. 192쪽. 1만 3000원.엘리트 제국의 몰락(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북라이프 펴냄) 정치·경제·사법·언론 등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지, 이러한 행태가 어떤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지를 다룬 저작. 30여년간 세계의 엘리트주의를 연구해 온 저자는 국가 간 비교를 통해 가진 자들의 권력과 경제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376쪽. 1만 6800원.나의 살인자에게 JUDAS(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지음, 김지원 옮김, 다산책방 펴냄) 1983년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맥주회사 하이네켄 회장 납치사건. 주범인 빌럼 홀레이더르는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셀러브리티 범죄자’가 됐다. 감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를 상대로 “오빠는 연쇄 살인범”이라며 법정 증언에 나섰던 여동생의 회고록. 536쪽. 1만 7000원.
  • [문소영 칼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세계 평화

    [문소영 칼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세계 평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자 언론은 ‘6·25전쟁 이후 백두혈통의 첫 남한 방문’이라고 자주 표현했다. 전쟁 중이었으니 남한에 온 사람은 김일성이겠지, 남한 땅 어디어디를 밟았을까 궁금했다. 외교안보담당 기자들에게 출처를 물었더니 이런 보도자료를 낸 부처도 출처는 모른다고 했단다. 직접 출처를 찾고자 한국전쟁을 다룬 책들을 읽기로 했다. 미국 탐사보도 기자 출신인 데이비트 핼버스탬이 쓴 1082쪽의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를 지난해 봄 샅샅이 읽은 이유다. 부제가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였는데, ‘남침에 의한 골육상잔’이라는 상투적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 외교안보 교재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맡은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이 ‘전쟁영웅’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과 벌이는 파워게임, 매카시 의원의 선동으로 시작된 반공의 광기 속에서 장제스의 중국 본토 수복을 도와야 한다는 친중 언론과 미국 국무부의 갈등 격화,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중 관계에 미친 악영향 등 미국 정계와 외교 문제 전반이 수록돼 있다. 기대했던 북한군의 전투 동선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전장은 미군이 많이 전사한 운산·장전호 전투가 중심이었다. 9월 인천상륙작전에 고무돼 오만해진 맥아더 전쟁지휘부는 겨우 2주 훈련으로 한국에 파견된 솜털 보송보송한 20대의 미군들을 여름 군복 차림으로 평안북도까지 내몰았다가 10월 말 추위와 공포 속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속절없이 전사하도록 노출시켰다. 이 20대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지낼 기대에 잔뜩 부풀었는데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국방비와 해외 파병을 10분의1 수준으로 가파르게 축소하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 발발로 그 정책을 포기해야 했으니, 미국 의회의 동의도 없이 참전을 단독으로 결정한 그에게도 한국전쟁은 뼈아픈 전쟁이었고, 대만을 도울 기회를 잃었다는 격렬한 언론의 비판에도 직면했다. 그 책에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뿐 아니라 하노이에서도 미군 유해 송환에 미국 정부가 그렇게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만한 대목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 4000명 정도다. 한국전쟁은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잊을 수도, 잊어도 안 되는 전쟁이지만, 미군이나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한 군인이나 북한을 도운 중공군조차도 영광도 명예도 없는 ‘잊힌 전쟁’에 불과했다. 남한 측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해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미국, 프랑스, 터키, 독일 등에서 참전한 젊은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지 않았다. 김일성의 남한에서의 행보 추적은 결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8년 펴낸 6·25전쟁사 4권 223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1950년 7월에 충주 수안보 인근까지 내려와 낙동강 전선을 어서 돌파하라고 독려했다’는 요지였다. 그 출처는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사´(1992) 3권 250쪽이었다. 공식 문서가 출처인 셈이다. 이것 외에도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쓴 회고록에도 ‘서울을 거쳐 충북 수안보까지 내려왔다’고 돼 있다고 했다. 북한군 사령관이던 김책은 항일 동지로, 백두혈통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발표가 있었을 때 평양공동취재단 등에서 ‘북측 최고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표현을 바꾸었다. 살짝 달라진 것이지만, ‘6·25전쟁 이후 백두혈통의 첫 방문’과 같은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유발하는 적개심과 분노, 경계심과 근심 등은 완화된 듯했다. 올봄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한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역사적 발걸음은 시작되는 것이다. 2017년 내내 한반도는 ‘제2의 한국전쟁’을 우려하며 불안에 시달렸다. 1년 2개월 뒤인 현재 하노이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 북미가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두 나라가 종전을 선언하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더 안전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노딜’이라는 주장이나 ‘한국이 빠진 종전선언은 동의할 수 없다’는 발언은 비상식적이다. 더는 반공으로 세력을 키우고 생존할 수 없다. 그런 관성으로 버텨 온 진영이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는 새로운 시대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 ‘마오쩌둥 비서’ 리루이 타계

    ‘마오쩌둥 비서’ 리루이 타계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를 맡았으면서도 그의 정책을 비판했고,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의 권력 집중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던 리루이(李銳) 중국 전 중앙조직부 부부장이 16일 베이징에서 101세로 타계했다. 1937년 옌안의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1958년 수리전력부 부부장(차관) 및 마오쩌둥의 개인 비서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3000만명 이상을 숨지게 한 대약진운동을 비판한 뒤 모든 지위에서 겨났다. 이후 강제노동을 하다가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혼란기에는 8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문혁 이후 복권돼 국가에너지위원회 부주임 등을 거쳤다. 그가 펴낸 마오쩌둥에 대한 책 5권은 해외에서는 출판됐지만 중국에서는 금지됐다. 그는 “마오 스스로가 자신을 진시황과 마르크스를 합친 인물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2013년)에서 중국 일당 체제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당 지도부에 서방식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中 국민당 도움받아 충칭 정착…中 공산당, 조선의용대 탈영 부추겨 팔로군 편입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中 국민당 도움받아 충칭 정착…中 공산당, 조선의용대 탈영 부추겨 팔로군 편입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출범해 1945년 해방 때까지 중국에서 활동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뒤 일본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옮겼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각지를 떠돌았다. 임정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서남부 쓰촨성의 작은 도시 충칭이었다. 임정은 1945년 11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5년 넘게 독립을 준비했다. ●임정, 충칭서 5년 넘게 한국 독립 준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의 최종 목적지 충칭. 1937년 11월 중국이 일본에 수도 난징을 빼앗기자 임시 수도로 정한 곳이다. 주민 수가 3100만명에 달해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자 유비와 제갈량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세력을 길렀던 촉(蜀)의 옛 땅이다. ‘안개 도시’라는 별명답게 한겨울에도 뿌연 안개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서울신문 취재에 동행한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예전에 이곳은 안개와 매연이 결합해 공기 질이 나빴다고 한다. 김구(1876~1949)의 맏아들 인(1917~1945)도 여기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임정은 중일전쟁으로 난징이 함락되자 후난성 창사로 피신했다가 1838년 7월 광둥성 광저우로 내려갔다. 국민당 정부가 충징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곳은 인구 20만명 정도의 소도시였지만 국민당 정부가 오자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주택과 학교, 도로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임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결국 중국의 도움으로 류저우(1938년 10월~1939년 3월)와 치장(1939년 3월~1940년 9월)을 거쳐 2년 뒤인 1940년 9월에야 입성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임시정부에 있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은 절대적이었다. 이 사실을 외면하고 독립운동 성과를 우리만의 노력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국뽕 사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임정의 리더십 회복과 좌우합작 성사 일본은 지상군 병력이 닿지 않는 이곳을 파괴하려고 5년여간 200여 차례에 걸쳐 공습을 감행했다. 영화로도 제작돼 잘 알려진 충칭 대폭격(1938~1943)이다.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47)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를 보면 당시의 공포가 잘 묘사돼 있다. “(공습경보를 듣고 대피소인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일본 비행기가 폭탄을 수없이 떨어뜨렸다. 석굴이 심히 흔들리며 당장 무너지는 듯했다. 동굴 안에서는 천둥·번개 치듯 불빛이 번쩍였고 천장이 내려앉는 듯 작은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폭격이 끝나고) 굴 밖으로 나왔더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있었던 집의 앞과 뒤, 오른쪽, 왼쪽이 불바다였다. 참혹한 시신도 많았다.”(1938년 12월 5일) 역설적이지만 임정은 공습에 시달리던 충칭 시기에 리더십을 회복했다. 중국이 모든 독립운동 세력을 임정 중심으로 합작해 나설 것을 촉구했고, 한인 내부에서도 일본의 패망이 머지않았다고 느껴 단결에 나섰기 때문이다. 임정은 처음으로 청사에 ‘대한민국 림시정부’ 간판도 내걸었다. 독립운동 중심체로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1940년 5월 김구의 한국국민당과 조소앙(1887~1958), 홍면희(1877~1946)가 주도한 한국독립당, 이청천(1888~1957)이 이끈 조선혁명당은 충칭에서 우파 통합정당을 만들었다. 임 정 여당인 한국국민당의 지분이 가장 컸지만 당명은 ‘한국독립당’을 계승했다. 한독당은 해방 뒤 한국에서도 민족주의 정당으로 활동했다. 임정에 비판적이던 사회주의 계열도 태도를 바꿔 1941년부터 하나둘 합류했다. 임정이 설립 20여년 만에 제대로 된 위상과 권위를 갖추게 됐다. 승려 출신의 사회주의자로 1942년 임정 내무차장이 된 김성숙(1898~1969)의 증언이다. “우리나라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권위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임시정부만한 것이 없었거든. 임정이 계속해서 일본하고 대립하고 싸웠기 때문에 ‘(진정성을 인정해) 임정을 중심으로 모여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지.”●조선의용대, 팔로군 주둔 화베이 이동 1939년 말 중국 후베이성 라오허커우. 중국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한 조선의용대의 부대장 김학무(1912~1944)가 동료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우리 손으로 적(일본군)들을 쓰러뜨려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이런 ‘가짜 항일’ 전선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럽소이다.”조선의용대는 임정이 만든 한국광복군보다 2년 앞선 1938년 10월 결성됐다. 대원 상당수가 중국 군관학교나 일본의 유명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이들은 일본군과 직접 싸우기를 원했지만 중국은 인원이 많지 않은 의용대에 전투 대신 정보 수집과 선전 공작 등 보조 업무를 맡겼다. 이들은 후방에서 선전전이나 하는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전체 대원 30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1941년 3~5월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있던 화베이 지역으로 떠났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이들이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 국내에 진격하려고 북상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충칭에서 만난 이선자(55) 전 충칭임시정부기념관 부관장은 “중국 공산당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고 전했다. 공산당이 조선의용대를 팔로군에 편입시키고자 의용대에 밀정을 심어 탈영 분위기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중국 공산당 출신 역사학자 쓰마로(100·미국 거주)가 홍콩에서 출간한 회고록(2004) 등에 수록돼 있다.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한국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이라고 놀라워했다.조선의용대 주요 전력이 화베이로 올라가자 최고 책임자였던 김원봉(1898~1958)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따르는 대원이 100명도 남지 않았다. 이 관장은 쓰마로의 회고록을 토대로 “당시 김원봉도 남은 부대와 함께 화베이로 가려고 했지만 중국 공산당 저우언라이(1898~1976)가 이를 막았다. 화베이 부대의 새 리더로 김무정(1904~1951) 등을 세운 뒤여서 더는 김원봉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갈 곳을 잃은 그는 한국광복군 합류를 고심했다. 임정과 김원봉 간 통합 협상이 길어지자 중국군사위원회가 직접 나섰다. 1942년 5월 광복군에 부사령관 직제를 신설하고 그를 임명했다.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에 편제됐다. 군사 분야에서도 좌우합작이 성사됐다. 늘 대원이 부족했던 광복군으로서는 이들이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였다. 임시정부 좌우통합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이슈가 있다. 바로 김구의 ‘백색 테러’(우익에 의한 테러) 논란이다. 그가 일본군이나 친일파를 상대로 ‘의열 투쟁’을 벌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이념이나 성향이 다른 일부 독립운동가에게도 같은 방식의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있다. 김구가 ‘대한민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어 언급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공론화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김구는 상하이 임정에서 초대 경무국장(경찰청장)을 맡아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처형을 주도했다. 1922년 2월 사회주의자 김립(1880~1922)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백범 자신이 “김립이 (소련이 준) 임시정부 공금을 사사로이 사용해 처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 등에 따르면 당시 소련은 임정이 아닌 한인 사회주의 진영에 자금을 제공했다. 김구가 주장하듯 김립이 이 돈을 사적으로 썼다는 증거도 없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립 암살 사건은 임정이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근거해 단행한 국가 폭력”이라며 “같은 독립운동가라도 정견과 조직이 다르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해 독립운동계에 큰 해를 끼쳤다”고 비판했다. 해방 뒤인 1945년 12월 말 동아일보 주필이자 한국민주당 초대 당수 송진우(1890~1945)는 김구가 살던 경교장에서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두고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벌였다. 그는 우파진영이 미국을 적으로 돌리면 공산당이 어부지리를 본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반탁을 고수하던 김구를 비판했다. 송진우는 밤샘 토론을 마치고 자택에 돌아가자마자 살해됐다. 브루스 커밍스(76)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사건의 배후를 김구로 본다. 김구는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1889~1939)과 안창호(1878~1938)의 후견인 옥관빈(1887~1933)의 암살에도 간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 군정은 친일파 출신으로 한국민주당 정치부장이던 장덕수(1894~1947)가 살해되자 김구가 개입했다고 보고 재판정에 세웠다. 좀더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 [책꽂이]

    [책꽂이]

    진화한 마음(전중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의 ‘이기적’이라는 은유는 이기적 인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돼 왔다. 이처럼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매력적인 도구로 주목받은 한편으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설명하는 데 동원돼 오해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진화심리학이라는 신생 학문과 함께 성장한 저자가 진화심리학은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풀어놓는다. 432쪽. 2만 1000원.키스(김정현 지음, 황금물고기 펴냄) 300만부 기록을 세운 소설 ‘아버지’의 작가가 펴낸 새 장편소설. ‘진주귀고리 소녀’처럼 빛나고 싶은 꿈을 가진 여자 ‘수명’과 이를 묵묵히 지켜보며 지원하는 남자 ‘명수’의 삶을 그렸다. 꿈을 좇아 큐레이터가 된 수명은 화랑 대표와 부동산개발업자의 농간에 10억원대 미술작품 위작사건에 휘말리고 이에 명수가 수명 몰래 개발업자에게 찾아가 폭력을 휘두르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친다. 402쪽. 1만 5000원.마오쩌둥 1·2(필립 쇼트 지음, 양현수 옮김, 교양인 펴냄) 마르크스주의를 중국 당대 상황에 맞춰 변화시킨 이론가이자 유격전과 기동전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군사 전략가, 권력을 잡은 뒤엔 진시황의 계승자임을 자임한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마오쩌둥 최측근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마오쩌둥을 그렸다. 672쪽, 684쪽. 각 2만 9000원.어느 아이누 이야기(오가와 류키치 지음, 박상연 옮김, 모시는사람들 펴냄) 일본 소수민족의 하나인 아이누족 여성을 어머니로, 일제강점기 징용 한국인 남성을 아버지로 둔 저자의 회고록. 일본 내에서 아이누의 권리와 인간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이중의 굴레를 헤쳐나온 일생을 되짚었다. 280쪽. 1만 5000원.보통 사람들의 전쟁(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미래일자리보고서에서 “2020년, 51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신규기업 창업과 운영을 돕는 비영리기업 ‘벤처 포 아메리카’의 창업자인 저자가 기술 혁명과 노동 시장의 변화를 추적하며 ‘보통 사람들’의 대처법을 설파한다. 368쪽. 1만 6000원.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8(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민음사 펴냄) 20세기 최고 소설로 꼽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편 ‘소돔과 고모라’가 시리즈 7·8로 나뉘어 출간됐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 언급된 성적으로 타락한 두 도시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작품 속 화자 마르셀은 다양한 계기와 상황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이끌어 나간다. 448쪽, 540쪽. 각 1만 5000원, 1만 6000원.
  • [박건승 칼럼] ‘전두환 골프’ 실종 사건

    [박건승 칼럼] ‘전두환 골프’ 실종 사건

    골프는 ‘멘탈게임’이라고 한다. 그만치 심리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골프는 90% 심리 게임이다’라거나 ‘골프는 과학이다´와 같은 책이 인기를 모으고, ‘마인드 골프´나 ‘골프 심리´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회자하는 것을 보면 골프는 정신력이 강하게 지배하는 운동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서울대병원이 제공하는 ‘의학정보´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는 기억력 쇠퇴 말고도 전형적으로 인지기능 장애와 시공간 파악 능력 저하, 운동력 장애, 판단력 저하 증세를 보인다. 중증 알츠하이머와 골프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란 얘기다. ‘손혜원 투기 의혹’에 묻혀 묵과한 것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알츠하이머 골프’ 사건이다. 2013년 이후 6년째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전씨가 광주 재판을 앞두고 지난해 두 차례(8월, 12월) 부인 이순자씨 등과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전씨 측근도 부인하지 않은 데다 골프장 종사원들의 다양한 증언을 토대로 운동한 날짜까지 확인된 사안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해서 골프를 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2~3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해 하루에 열 차례씩 양치질을 한다는 사람이 멀쩡히 필드에 나가 골프를 쳤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골프 스코어를 손수 계산할 정도로 정신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세계 의학계에 기적의 사례로 보고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전씨는 2년여 전에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재판에 회부돼 있는 상황이다. 광주지법은 2017년 8월 27일 첫 재판을 열었으나 그는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불출석했으며 지난 7일에도 독감과 고열 등을 내세워 나오지 않았다. 물론 운동 삼아 골프를 칠 수는 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증세가 워낙 심해 재판에도 못 나갔다는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 라운딩했다는 사실 앞에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부질없는 소리지만 김영삼 정권이 좀더 사려가 깊었더라면 1997년 12월에 전씨를 사면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풀어 주더라도 구속집행정지 조처를 택했더라면 전씨가 이처럼 함부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사법체계를 비웃지는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지금까지도 광주 시민에게 제대로 사죄한 적이 없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다음 광주 재판은 3월 11일 열린다. 그때 가서 또 무슨 핑계를 댈지 알 수 없지만, 3월 재판은 역사가 전씨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괴이한 일들이 잇따르는 것은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유일하게 ‘전씨 골프’에 대해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아무리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은근슬쩍 전씨를 비호하는 듯한 냄새를 풍겨서는 곤란하다. 이 당은 ‘알츠하이머 골프’ 사건 직전에는 보란 듯이 극우적 성향의 인사를 ‘5·18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그 가운데는 “계엄군은 시위대를 조준 사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시위대가 군경을 위협했다”고 언죽번죽 말하는 사람도 있고 “5·18은 시민들이 선동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죽했으면 “진상조사위원에 ‘조사 대상´을 추천했다”는 말이 나올까. 이들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5·18의 진실을 균형되고 객관적으로 규명해 국민 통합에 기여할 적임자들이라는 제1 야당의 평가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부와 여당에도 책임이 없진 않다. 반역사적인 일들이 공공연히 펼쳐지고 있는데도 그때마다 논평 하나 달랑 내놓고 할 일 다했다는 식의 안일함과 무기력증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씨가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는 부인 이순자씨의 코미디 같은 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은 이런 것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젊은층의 결속력이 크게 약화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청산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기 때문이란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유모차 부대나 젊은이들이 광장에 뛰쳐나와 소리 높여 외친 것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인 찌꺼기를 걷어 내자는 요구였다. 누가 뭐래도 촛불정신은 이 시대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가치다. 역사가 전씨의 ‘놀이터’가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다.
  • “플린·틸러슨은 하찮은 인물…콘웨이·므누신 괜찮은 사람”

    “플린·틸러슨은 하찮은 인물…콘웨이·므누신 괜찮은 사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 인사들이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용인술 등을 비판하고 나섰다. 역대 최장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선캠프 인수위원장 출신인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오는 29일(현지시간) 출간하는 회고록 ‘렛 미 피니시’에서 ‘백악관에는 괜찮은 인물보다 하찮은 인물이 더 많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용인술에 직격탄을 날렸다고 미 언론이 21일 전했다.크리스티 전 주지사는 회고록에서 러시아 내통 혐의로 3주 만에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러시아의 하인이자 미래의 중범죄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지난해 7월 세금 낭비 논란 등으로 사임한 스콧 프루이트 전 환경보호청장에 대해서는 “탐욕스럽고 경험이 일천하다”고 혹평했다. 또 초대 법무장관을 지냈던 제프 세션스에 대해서는 “장관직을 맡을 준비가 안 됐었다”고 비난했고,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낯선 사람’이라고 주장했다.반면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방패막 역할을 하는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트럼프 정부에 두 사람 같은 인물이 너무 없다”고 지적했다. 연방 검사 출신인 크리스티 전 주지사는 트럼프 대선캠프 인수위원장으로 활동했으나 정작 대선 승리 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위원장 자리를 내주고 부위원장으로 밀려났다. 당시 캠프 실세이자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의 권력 다툼설 등이 제기됐었다. 트럼프 대선캠프 선거전략고문 및 백악관 비서관으로 활동했던 클리프 심스도 ‘독사들의 팀’이라는 회고록에서 “최근 백악관을 떠난 존 켈리 전 비서실장이 ‘이 일(비서실장)은 지금껏 내가 해 본 것 중 가장 최악’이라며 혀를 찼었다”고 회고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트럼프, 케이블 뉴스 채널에 집착 심해”

    “트럼프, 케이블 뉴스 채널에 집착 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케이블 뉴스채널에 집착이 심하다는 백악관 전 참모의 증언이 나왔다.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서 일하고, 백악관 공보 파트에서 근무한 클리프 심스가 이달 29일 출간될 회고록 ‘독사들의 팀: 트럼프 백악관에서 보낸 유별난 500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기벽을 소개했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심스는 신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작고한 유명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추천하는 꼭 봐야 할 영화처럼 TV에 탐닉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케이블 TV 뉴스에 철저히 몰두한 탓에 TV를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참모들을 재촉해 방송 내용을 챙길 것을 지시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심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트와 그래픽, 의상 선택, 조명, 그밖의 비주얼 요소에 일일이 참견했다”고 말하고 “평론가들이 본인을 좋게 말해주거나 백악관 관리들이 외부 공격을 막아주는 것을 선호했지만 모든 것은 어떻게 보이느냐로 귀결됐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뉴스 자막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고 심스는 주장했다. 심스는 “대통령은 내게 사람들이 묵음 상태로 TV를 보고 있으니 중요한 것은 때로는 근사하거나 때로는 형편없는 자막의 단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워싱턴 D.C를 떠나거나 TV 주변에서 벗어나 있을 경우에도 뉴스 자막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은 멈추지 않았다고 심슨은 전했다. 대통령이 외부 행사에서 연설하게 동안 참모들은 방송 뉴스의 자막들을 텍스트로 인쇄해 그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즉시 전달해 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심스는 신간에서 폭스 뉴스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호 채널이지만 이 방송사의 그래픽에 대해서는 CNN과 MSNBC보다 훨씬 못 미친다고 혹평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이 백악관의 비화를 다룬 책을 낸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공보비서였던 숀 스파이서, 공보국장 앤서니 스카라마무치, 정치보좌관 오마로사 매니걸트, 선대본부장 코리 루언다우스키가 이미 책을 낸 바 있다. 회고록의 상당 부분은 참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규와 혼란을 서술하는데 할애돼 있다. 뉴욕 타임스는 심스가 이 책에서 “백악관 참모들이, 물론 나 자신도 포함해 극도의 통제 불능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꼬집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권력의 피해자들] “전향 안 한다고 찍힌거죠… 고문한 수사관도 배상책임 지게 해야”

    [공권력의 피해자들] “전향 안 한다고 찍힌거죠… 고문한 수사관도 배상책임 지게 해야”

    남들 다하는 전향서와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들 다하는 보안관찰 신고를 하지 않은 강용주(56)씨는 어떤 사람일까. ‘심지가 굳다’, ‘고집이 세다’, ‘악바리다’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강씨는 스스로를 “몸이 편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강씨는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14년을 복역했다. 강씨는 감옥에 있을 때, 특별사면으로 출소할 때, 출소하고 나서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 왔다.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두 번째로 기소된 사건에서 지난해 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자리한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강씨는 “나는 늘 싸움을 피해 다녔다”며 “보안관찰법 위반 소송도, 그전에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도 내가 건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들이 나를 재판이라는 링 위에 올리길래 싸웠을 뿐”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강씨는 2012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맡아 5·18 피해자와 유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했다. →법무부가 지난달 보안관찰처분 면제 결정을 내렸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보안관찰이랑 싸우기 시작할 때만 해도 감옥에서 산 14년보다 더 길게 싸워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출소하고 19년을 보안관찰과 싸웠네요. 국가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 우리 사회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징역 3년 이상 받거나 형법상 내란죄나 반란죄로 징역 3년 이상 받으면 보안관찰 대상이에요. 그런데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왜 아닌가요.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행위를 합법화해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까지 됐잖아요.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거야 말로 명백하게 재범의 우려가 있는 거 아닌가요. 저처럼 착실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잡아넣을 게 아니라 전두환을 보안관찰 대상에 집어넣어야죠. 저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서 ‘넘버4’로 기소됐어요. ‘넘버1’부터 ‘넘버3’까지는 모두 면제하면서 나만 보안관찰 대상인 이유는 딱 하나죠. 재범 우려는 핑계고 그냥 국가에 고분고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감옥에서부터 전향서와 준법서약서를 거부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찍힌 거죠.→남들처럼 전향서나 준법서약서에 사인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전향하면 몸은 편하겠지만 제 마음은 불편하죠. 그냥 내가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어서 전향하지 않았어요. 사건 이름이 ‘구미유학생간첩단´이고, ‘구미’(歐美)는 유럽이랑 미국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미국, 유럽은 물론 북한도 안 가 본 사람이에요. 사건이 벌어진 1985년에는 광주에서만 살던 사람이었어요. 전향할 내용이 없어요. 조작한 것에 내가 굴복할 수 없죠. 안기부에서 한 달 넘게 고문받고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거기 출연해서 안기부가 시킨 대로 주절거렸어요.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만약 전향을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강기정 정무수석이 저와 전남대 82학번 동기예요. 강 의원이 2016년 필리버스터 연설 때 ‘지금처럼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으면 폭력의원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며 울었잖아요. 저도 전두환이 저를 고문한 뒤 조작해서 사형을 구형하지 않았다면 전향을 거부하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간첩단 사건 대부분이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받았는데 왜 재심 청구를 하지 않았나요. -재심을 한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해요. 남산 안기부에서 고문당하던 순간으로요. 트라우마적 상황으로 돌아가는 거죠. 과거의 기억을 다 일깨워야 돼요. 어떻게 잡혔다가 어떻게 고문당했고 그런 일 모두를요. 트라우마를 재경험한다는 건 정말 힘들어요.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죠. 제가 광주 사람인데 서울에서 개업했잖아요. 광주에서 도망 나오고 싶어서예요. 게다가 한창 다들 재심을 신청할 때 저는 인턴, 레지던트여서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최근 들어서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기소돼서 시간적, 감정적 여력이 없었죠. 근본적으로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회복을 하는 건 개별적 구제가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어떻게 맡으셨나요. -2008년 6월 전문의를 땄는데 한국에서 과거사 진실규명 관련 재심 등이 많이 진행되던 상황이었어요. 기념관을 짓거나 기념사업회를 만드는 경우는 많은데 정작 고통당한 인간의 내면과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소홀하더라고요. 한국의 과거 청산은 물신주의적 과거청산이에요. 고통당한 피해자의 아픔이 도외시된 과거 청산이죠. 인권활동가와 인권변호사들 권유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문요한씨와 강남 봉은사에서 고문피해자치유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고문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든다고 광주시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 분야를 알거나 경험한 사람이 없으니 와 달라고요. 당시에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개인병원을 하고 있어서 못 간다고 했어요. 무엇보다도 저는 5·18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 광주에서 도망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광주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결국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의대 다니고, 전문의 따고, 개원해서 통증 전문으로 일한 것이 결국 국가폭력 피해자, 고문 피해자를 만나기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광주로 가게 됐죠. 나는 결국 광주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요. →광주트라우마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5·18을 비롯한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을 치유하는 기관이에요. 단순 치유뿐만 아니라 이분들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재활 사업도 해요. 결과적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인권옹호 활동도 하고요. 단순한 의료기관하고는 달라요. ‘전두환이 민주주의 아버지다´는 망언을 듣거나 육군사관학교 사열을 받는 걸 보면 트라우마적 상황이 다시 옵니다. 전두환이 군인을 이용해서 광주시민을 학살했는데, 군인을 양성하는 육사에서 사열을 받는 모습을 보고 ‘세상이 변하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 트라우마센터를 찾아오는 거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트라우마센터에서 응급지원팀을 꾸려서 상담을 해요.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진실규명이에요. 어떻게 죽었고, 왜 죽었냐는 거죠. 5·18도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어요. 전두환과 노태우가 5·18로 처벌받지 않았잖아요. 첫 번째가 진실규명이라면 다음으로는 가해자가 처벌받아야죠. 그래야 정의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죠. 정의가 실현된 뒤에는 피해자와 생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상이 이뤄져야 하고요. 그걸로만 끝나면 그런 일이 또 생길 수 있으니까. 국가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해요.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고문한 수사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하잖아요. 국가에서 수십억원을 배상하는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책임을 안 져요. 고문한 수사관도 공동배상해야 돼요. 나쁜 짓 해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당연히 되풀이되죠. →본인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이겨 냈나요. -트라우마는 이겨 내는 게 아니에요. 극복하는 것도 아니에요. 넘어져서 무릎 까지면 상처가 아물어도 흉이 남잖아요. 그냥 그렇게 견디며 사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바윗돌 같던 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작아지거든요. 서로 상처를 보듬고 껴안고 살아가는 거죠. 그걸 어떻게 이기고 극복하고 살 수 있겠어요. 저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 가서 다른 분들을 치유하면서 도리어 제가 치유받는 경험을 했어요. 제 상처가 둥글둥글해지더라고요. 아픔도 조금 작아지고요. 그게 저한테는 치유였던 것 같아요.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피플인 월드] 스타벅스 슐츠도 트럼프에 맞서나

    [피플인 월드] 스타벅스 슐츠도 트럼프에 맞서나

    민주당, 표 분열 우려에 불편한 기색세계적인 커피 체인 스타벅스의 전 회장이자 억만장자인 하워드 슐츠(66)가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평생 ‘민주당원’을 자처해온 그가 차기 대선에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슐츠는 1987년 미 워싱턴주 시애틀의 작은 커피 전문점이던 스타벅스를 인수해 30여년 만에 세계 77개국 2만 8000여개 매장을 둔 ‘커피 제국’으로 키웠다. 지난해 4월과 6월 그가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와 회장 직에서 연이어 물러나면서 민주당 예비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등 정계 진출 가능성이 점쳐졌다. 슐츠가 무소속 출마를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진영에서는 불편한 기색이다. 공화·민주·무소속 3자 대결 구도가 될 경우 민주당 표가 분열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막는 데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워싱턴주 민주당 의장인 티나 포들로도프스키는 이날 성명을 내 “슐츠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에 대해 두 마디만 하겠다”며 “그저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슐츠는 아직까지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WP는 “그가 오는 28일부터 자신의 회고록 ‘미국의 약속을 다시 상상하다’ 출간에 맞춰 미 전역을 돌며 북투어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슐츠는 블룸버그통신 창업자로 뉴욕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77), 헤지펀드 창업자 출신으로 최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톰 스타이어(62)와 함께 비(非)정치권 내 대선 잠룡으로 꼽혀왔다. 그는 약 33억 달러(약 3조 7000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전두환 측 “골프와 법정진술은 별개” 평화당 “구속해야”

    전두환 측 “골프와 법정진술은 별개” 평화당 “구속해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8)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알츠하이머병을 이유로 첫 형사재판 출석을 거부한 가운데 같은 해 4월 골프를 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운동과 법정 진술은 다르다”며 골프장에 간 것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에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해 불구속기소됐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8월 27일 첫 재판을 열었지만 전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증세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지난 7일 두 번째 재판에도 독감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이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골프를 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골프를 친다는 건 신체 운동을 한다는 것 아닌가. 이와 달리 법정 진술은 (정신 건강이 확보된 상태에서) 정확하게 사고할 수 있고 인지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비서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알츠하이머가 누워 있는 병도 아니고 원래 신체는 건강하시니까 일상생활이나 신체 활동을 하시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순자 여사가 식사, 골프, 여행을 같이하는 친목 모임이 두세개 있는데 이 여사가 가끔 식사 초대 모임이나 골프 모임을 갈 때 (전 전 대통령도) 같이 가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두 번의 불출석 당시 모두 골프장에서 목격됐다”며 “여유 있게 골프를 쳤다니 여지 없이 법정 구속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5·18이라는 희대 살인극을 벌인 자의 이런 사법농단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며 “법정 구속해서 사법부의 엄중함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알츠하이머라더니…재판은 안 나가고 골프 친 전두환

    알츠하이머라더니…재판은 안 나가고 골프 친 전두환

    알츠하이머병을 이유로 재판에는 출석하지 않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 등과 골프를 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에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8월 첫 재판이 열렸지만 전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증세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지난 7일 두 번째 재판에도 독감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2017년 4월만 해도 전 전 대통령이 골프를 쳤고 지난달에도 부인 이순자씨와 같은 골프장에서 목격됐다고 한 언론이 보도했다. 전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비서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전 전 대통령이 골프를 쳤는지는) 모르겠다. 일상생활 일정을 알지도 못한다”면서 “알츠하이머가 누워 있는 병도 아니고 원래 신체는 건강하시니까 일상생활이나 신체 활동을 하시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이순자 여사가 식사, 골프, 여행을 같이하는 친목 모임이 두세개 있는데 이 여사가 가끔 식사 초대 모임이나 골프 모임을 갈 때 (전 전 대통령도) 같이 가시는 것 같다”며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골프장은 사장 부인이 이 여사와 모임을 같이하는 멤버라고 하고, 전에 골프 모임을 같이 했던 사이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전 전 대통령을 뵈면 조금 전에 한 이야기를 1시간 동안 열번, 스무번 되묻고 대화 진행이 안 된다. 가까운 일들을 전혀 기억을 못 하신다”며 재판 출석을 하기엔 무리가 있는 건강 상태라고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이 법정 출석을 거부했던 무렵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지자, 여야 정치권은 논평을 내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논평에서 “골프를 즐겼다는 보도를 지켜본 국민들은 큰 충격을 넘어 전 전 대통령이 진정 인간이라면 이럴 수 없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골프 치러 다닌다니 세계 의학계에 희귀사례로 보고될 케이스”라며 “이래 놓고 광주 재판에 참석할 수도 없고 5·18 진상 규명에도 협조할 수 없다니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전 세계 의학계가 놀랄 ‘세상에 이런 일’이다. 심지어 전 재산이 29만원뿐인데 골프를 치러 다니다니 국민들은 기막힐 따름”이라며 “더는 어떠한 핑계도 용납할 수 없다. 끝 모를 국민 기만과 사기극 막기 위해 법의 심판대에 조속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법 유린’ 전두환, 강제로 법정에 앉힌다

    ‘사법 유린’ 전두환, 강제로 법정에 앉힌다

    5·18 희생자 명예훼손 재판 또 불출석광주지법, 3월 11일 재판 구인장 발부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7) 전 대통령의 재판이 7일 광주에서 열렸지만 전 전 대통령은 또 출석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7일 재판에서 알츠하이머 증세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데 이어 두 번째다. 광주지법은 이에 따라 이날 구인장을 발부했다. 유효기간은 다음 공판기일인 오는 3월 11일까지이며 인치 장소와 일시는 각각 광주지법 201호 법정, 3월 11일 오후 2시 30분이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출석해야 공판 개정이 가능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부가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는 이날 오후 2시 30분 201호 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다. 전 전 대통령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이 고열로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송구하다”며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와 독감 진단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날 전 전 대통령이 또다시 출석하지 않아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공소 사실 확인 등 정식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다음 공판기일을 지정한 뒤 마무리했다. 정 변호사는 앞서 지난 4일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에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고 주장, 고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 명예훼손’ 전두환, 재판 또 불출석…이번엔 “독감 때문에”

    ‘5·18 명예훼손’ 전두환, 재판 또 불출석…이번엔 “독감 때문에”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오는 7일 열리는 공판기일에 출석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전씨는 지난해 8월 27일로 예정됐던 공판을 하루 앞두고 재판에 출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전례가 있다. 전씨의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독감으로 열이 39도까지 올라 외출이 불가능하다. 광주까지 재판받으러 갈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전씨가) 고령인 데다가 열이 심해 밥도 못 드셔서 지난 3일 재판부와 검찰에 유선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재판기일변경 신청서를 우편으로 제출했다”면서 “독감 때문에 광주까지 갈 수 없을 뿐 재판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제가 7일 법정에 출석해 (전씨의) 독감 진단서를 제출하고 다시 사정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주장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5월 3일 불구속 기소됐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를 ‘가면 쓴 사탄’이라고 지칭했다. 그동안 전씨는 공판기일을 계속 미뤄왔다. 전씨 변호인은 지난해 5월 28일로 예정된 첫 재판을 앞두고 재판 날짜를 바꿔달라고 신청했다. 이 신청을 받아들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16일 첫 공판기일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전씨 변호인이 또 기일을 변경해달라고 신청해 첫 재판이 지난해 8월 27일로 연기됐다. 하지만 전씨는 재판을 하루 앞두고 법정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당시 전씨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씨가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면서 전씨의 현재 상태는 “회고록 출판과 관련해 소송이 제기돼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어도 잠시 뒤에는 설명을 들은 사실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번에도 전씨는 오는 7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 기일변경(연기)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전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7일 공판기일은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오후 2시 30분에 이 법원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 심리로 열린다. 전씨는 광주에서 공평한 재판을 받기 어렵다며 지난해 9월 21일 법원에 관할 이전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전씨는 즉시 항고했으나 지난해 11월 30일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 출석은 의무 사항이다. 전씨가 특별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강제구인에 대해서는 전씨의 출석 여부와 사유를 검토해보고 추후 판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5·18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 광주방문 기록물 발견돼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찾아 참모들과 진압 방식을 논의했다고 적은 기록물이 38년만에 처음으로 발견됐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은 1988년 1월 고 천금성 소설가가 펴낸 ‘10·26 12·12 광주사태 후편(다큐멘터리)’ 내용 등을 분석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4일 5·18기록관에 따르면 ‘10·26 12·12 광주사태 후편’ 220~221쪽엔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소준열 소장이 새로 부임했다. 소 전교사령관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머리를 맞댔다. 하루라도 빨리 평정을 시켜야겠다는 소 사령관의 말에 정 사령관도 동의했다. 그러나 현지로 내려온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고 적혀있다. 이어 ‘(전씨는)만약 계엄군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하면 대단한 희생이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5·18 기록관은 당시 보안사령부가 서울에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현지로 내려온’이라는 대목은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온’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씨를 직접 취재하거나 전씨의 전속 부관 등에게 관련 자료를 받았던 천금성 소설가는 1981년 전씨의 만행을 미화한 전기(전두환-황강에서 북악까지)를 펴낸 것으로 알려졌다. 5·18 기록관은 ‘전씨가 군사작전에 신중을 기하자고 말한 대목은 천금성이 의도적으로 미화했거나 전씨 또는 (천금성을 만난)취재원이 거짓 증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씨의 발언을 왜곡·미화해 기록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10·26 12·12 광주사태 후편’ 248~251쪽 등엔 ‘전씨가 1980년 5월26일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소준열 전교사령관을 보안사령부로 불러 옛 전남도청 재진압 작전(이른바 상무충정작전·5월27일)을 두 차례에 걸쳐 논의·점검한 뒤 최종 결정했다’고 기록돼 있다. 1995년~1997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전씨가 광주를 방문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진종채 2군사령관은 “1980년 5월18일에서 27일 사이 ‘전두환·노태우 등이 광주비행장에 따로따로 내려와 전교사령관, 505보안부대장을 만나고 갔다’는 사실을 2군사령부 참모부에서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백남이 전교사령부 작전참모 등 여러 군 관계자도 이와 비슷한 증언을 했다. 나의갑 5·18 기록관장은 “전씨가 회고록에서 광주 방문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이 기록물이 그의 행적을 밝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며 “출범을 앞둔 5·18진상조사위는 정권 찬탈이란 ‘못된 꿈’을 광주에 적용한 전두환을 ‘5·18 총사령관’으로 규정해 ‘5·18 연관 행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마지막도 고양이와 함께…프레디 머큐리는 애묘가였다

    마지막도 고양이와 함께…프레디 머큐리는 애묘가였다

    영국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전설적인 가수다. 그의 삶을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최근 한국에서 누적 관객수 900만 명을 돌파하며 다시 한번 높은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수많은 일화가 남아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그가 평생 고양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재조명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그는 만 45세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많은 고양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마지막 사진에서도 그가 고양이와 함께 한 모습을 볼 수 있다.프레디 머큐리의 회고록을 쓴 매니저 출신 피터 프리스톤에 따르면, 그는 투어 콘서트 등으로 고양이들을 만날 수 없을 때 종종 전화를 걸었다. 자택에 전화를 걸어, 친구나 가족에게 부탁해 고양이들을 수화기 앞에 데려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자신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이야기했다.또한 그가 첫 솔로 앨범에 수록한 ‘미스터 버드 가이’(Mr. Bad Guy)는 자신의 고양이들에게 헌정한 노래이고, ‘딜라일라’(Delilah)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고양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그런 그가 병으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곁을 지켰던 짐 해튼에 따르면, 그는 1987년부터 기르던 고양이 딜라일라를 마치 자식처럼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그와 그가 길렀던 고양이들의 모습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딜라일라 외에도 제리와 골리앗, 미코, 로메오, 릴리, 그리고 오스카 등 많은 고양이와 함께 살았으며 최대 10마리까지 키웠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광주지법, 전두환 재판 연기 신청에도 예정대로 진행

    전두환(87) 전 대통령이 오는 7일로 예정된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을 앞두고 기일 연기 신청을 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4일 광주지법에 따르면 전씨의 변호인은 이날 피고인이 신경쇠약으로 법정에 출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일변경(연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씨 측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재판은 두 번째 공판기일로, 7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 심리로 열린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를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전씨는 지난 5월 불구속기소 됐지만 재판부 이송 신청과 관할이전 신청을 잇달아 했다. 그는 건강 때문에 광주까지 갈 수 없다며 재판부 이송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두 차례의 연기신청 끝에 지난해 8월 27일 열린 첫 재판에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이후 지난해 9월 21일 공평한 재판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관할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옮겨달라고 광주고법에 신청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즉시항고 했으나 지난해 11월 30일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형사재판에서 전 전 대통령이 특별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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