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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과 원자력의 올바른 이해/신재인(서울광장)

    서울에서 떨어져 나와 대전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큰 혜택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그 중에서도 4월은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어서 겨우내 황량했던 들판에 노오란 개나리의 물감이 채색되기 시작하면서 분홍빛,앳된 초록빛 그리고 화려한 흰색의 벚꽃들이 어우러지면 그 황홀함은 극치에 달하게 된다.이것이 화려한 4월의 등장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4월에 금년에는 머리아픈 일들이 많이 끼여들고 있다.솔직히 말해서 그 자세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라운드 문제들(우루과이 라운드,그린라운드,테크놀로지 라운드,블루 라운드)이 그것이고 여기에 덧붙어서 북한 핵문제가 전쟁의 공포까지 유발하면서 우리의 생활을 긴박하게 만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4월에 들어와서는 원자력과 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외국의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를 국내에 초청해서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와 원전건설반대를 외치겠다고 하고,이에 맞서 원자력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4월을 원자력사업진흥의 달로 정하고 앞으로 원자력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아무 전문지식이 없는 국민들로서는 더욱 머리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진리는 항상 간단하고 우리 옆에 있는 법이다.원자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가 냉정함만 잃지 않는다면 그 판단은 크게 어려운 사안이 아니다. 우선 편의상 원자력을 핵과 원자력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 원자력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어서 그 평화적 이용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파괴적인 군사목적의 추한 면이 또한 있다.그래서 핵은 핵폭탄을 중심으로 한 어둠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면 원자력은 발전과 의료치료·산업에 이용하는 원자력의 밝음을 대표하는 말로 구분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핵문제는 국제간의 힘겨루기와 다툼을 나누는데 깊이 관여하고 있다.이미 핵기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5대 강국들은 그 기득권을 충분히 활용하려 하고 뒤늦게 핵강국으로 진입하려는 국가들을 세계평화유지 차원에서 그러하지 못하도록 묶어 놓으려 하고 있다.그것이 국제간에 맺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이고 이 조약은 내년 5월이면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그래서 자연히 이 조약의 연장문제를 놓고 미국과 같은 기득권 보유국과 불평등 대우를 받고 있는 특히 일본같은 나라 사이에는 상호평등한 지위 확보를 위한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싸움의 탐색전에 북한의 핵이 들어와 있고 상대적인 당사자로 핵기술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우리나라까지 거기에 발이 빠져있는 셈이다.우리나라는 군사적인 핵기술의 개발에는 여전히 황무지나 다름이 없어서 이러한 국제적인 힘겨루기에 주도적으로 나설 형편은 되지 못한다.그래서 북한의 핵문제가 간단히 보면 남북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과 일본,중국의 문제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북한의 핵폭탄개발 문제는 그동안 발표된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크게 위협을 줄 정도의 엄청난 능력은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므로 핵에 관련된 문제는 전문가들이 개입해서 외교적인 문제나 통일문제로 접근하도록 하고 우리의 복잡한 머리는 좀 쉬도록 하는 것이 좋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특히 원자력발전에 관해서는 더욱 상식적인 수준으로 개념을 낮추어야 한다.이것은 일반 산업시설과 하등 다름이 없고 안전성 문제도 거대 화학공장이나 자동차공장보다 오히려 더 안전할 정도이지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원전에서의 단순고장은 일반 산업시설에도 흔히 있는 일이고 원자력발전소에도 마찬가지로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그 외에도 암치료나 정밀산업등 첨단산업에 적용되고 있는 원자력의 많은 밝은면은 환경오염을 방지해주는 원자력발전의 이점과 함께 우리의 생활을 넉넉하게 해주는 일어서 두려워할 것은 못된다. 이렇게 보면 원자력에 대한 우리의 오해는 핵과 원자력,밝음과 어둠을 함께 합쳐 생각함으로써 유발되고 있고 이것이 반핵단체가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단순 이분법만 크게 활용할 수 있다면 원자력의 찬·반이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4월에는 느긋한 심정으로 그 진실성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현명함을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알수 있다.
  • 틈새기/손정박 한국스포츠 TV감사(굄돌)

    요즘도 시골집에는 뒤꼍으로 여닫이 창살문이 많이 남아 있다.가을 밤 교교한 달빛 등에 이고 베짱이가 긴 더듬이 움직이며 그림자 지우는 걸 망연히 감상하노라면 소슬한 바람에 문풍지 푸르르 떨게 하는 문틈새는 여유를 느끼게 한다. 위장병에 효험이 좋다는 홍천 내면의 어느 약수터.별로 크지 않은 바위 가운데로 길게 틈새기가 나 있고,검붉은 철광석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나온 약수가 몇 만년동안 옮겨놓은 철분이 밑바닥을 불그레 수놓았다.그 틈새는 대자연의 땀구멍 같아 친근감 갖게 한다. 바닷가 갯바위 작은 게(해)들락거리는 틈새엔 물살에 몸 내맡겨 흔들거리는 해초며 말미잘이 정답기만 하다.얼마나 긴 세월을 파도와 실랑이를 했는가,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섬 저 밑에 돌돔,다금바리가 궁전처럼 터 잡은 바위 틈을 상상하면 황홀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얼마전 중3짜리 작은 딸에게 행여 근검 절약을 인식시켜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지난날 어렵던 시절 얘기를 들려주었다.양말 헤어지면 꿰매고 또 꿰매고 종내에는 밑바닥통째로 덧대어 신었다고.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새것 사신지 그랬어』캄캄한 밤길 공동묘지 지나칠 때 도깨비불에 놀라 뛰어 도망가다가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져 울지도 못하고 허우적대며 눈 캄캄하던 기억을 떠올리곤 똑 같은 기분이 되는 걸 느꼈다.37년이란 세월의 틈이 만들어 낸 인식의 틈새기,그러나 상황설명을 몇 단계로 나누어 하면 접점은 나올 게다. 그런데 50년을 제 갈길로만 치달아 옹가네 된장독마냥 뚜껑 닫고 따로 지낸 남과 북은 어떤 틈새를 만들었을까.그러나 그 틈이 아무리 넓고 그 틈새가 아무리 깊어도 인간에 대한 신뢰만 버리지 않는다면,갖가지 다른 형태의 마음 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확신한다면 그 틈새기 메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게다. 조물주는 여러가지 다른 마음의 틈새기 메워 훌쩍 커진 마음,새로워진 마음으로 다음의 역사 만들어가는 능력을 우리들에게 줄테니까.
  • 동북아 번영·평화의 새토대 구축/김 대통령 방일­방중결산

    ◎북핵 해법 「한·중·일 삼각공조」 도출 성과/“같이 사는 상생시대” 강조… 경협길 넓혀 김영삼대통령은 북경대학 연설에서 「상생」이란 말을 썼다.「같이 살자」는 중국식 표현.이말에 김대통령의 일본·중국방문의 기대와 의미가 망라 돼 있음이 느껴진다. 김대통령은 한반도가 동북아 안정의 기초라는 전제아래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을 열심히 이야기 했다.「세일즈 외교」라는 당초의 기획은 북한 핵문제협의로 포커스가 바뀌었다.그대신 김대통령은 6박7일동안 열심히 공동번영을 팔고,안정과 평화를 사들였다. 말로써 사들인 평화가 얼마나 구조화될지는 이 시점에 이야기하기 어렵다.다만 긴장이 점증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에 새로운 분위기,북한핵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며 그 바탕위에서 공동번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력한 공감대의 구축에 성공한 의미는 높이 평가되어야 할 일이다.이러한 공감대는 장기적으로 동북아의 신질서 구축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낳게 한다. 김대통령은 일본에서 한일양국 현대사의 무덤으로 역할했던,과거사를 과단성 있게 정리함으로써 신협력의 토대를 만들어 냈다.그런 토대위에서 양국정상은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와 동북아의 공동번영이 시대의 과제임을 분명히 확인했다. 일본에 대한 과감한 과거사정리는 따라서 일본만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일본과 중국을 함께 엮어 지역공동번영체의 틀을 만들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목적을 가진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이를테면 중국방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정지조치로서의 성격도 갖는 것이었다. 김대통령은 일본서 발아된 공동번영과 이를 위한 북한핵해결의 당위성을 특별기에 태워 북경으로 온셈이다.김대통령의 북경대학에서의 「상생」연설에 대해 북경대학 학생들은 20여차례의 박수를 통해 열렬히 호응했다.김대통령의 중국방문 메시지이자 이 지역의 시대정신에 대해 중국사회의 기반이라 할 북경대학생들이 깊은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김대통령과 강택민주석은 한반도의 안정이 공동번영을 위해 긴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두정상은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조하기로 약속했다.긴밀한 협조는 중국측에서 핵과 관련해 보낸 최초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핵해결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강주석은 우리측에 대화의 틀을 벗어나지 말도록 강조했고,이것이 협조의 한계선일 수도 있다.또한 북한핵 문제가 한중관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듣기에 따라서는 두나라의 협력과 북한핵을 연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수도 있는 것이다.중국측이 경제협력에 주관심이 있는 것도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의 중국방문은 공동번영을 위해 북한핵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의미있는 방문이었다.강주석이 현재의 경협관계를 『황홀하다』고 표현할 만큼 한중관계는 무르익어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방중 마지막날인 29일 방일·방중이 성공이었다고 자평하고 미국·일본·중국과의 3각외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해 중국이 우리외교의 기본축에 포함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또한 북한핵에 대해 『대화가 중요한 방법』이라면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이 커진 것이라고 말해 중국의 역할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정종욱외교안보수석은 북한핵과 관련한 성과를 『양국과 긴밀한 협의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그는 한·일·중이 북한핵 해결에 공동협의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중,한­일간의 협의체제가 구축된 것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설명했다.김대통령의 발언과 정수석의 평가를 종합하면 정부의 북핵 대응방침이 방일 직전의 강경대응에서 미·일·중과의 협의를 통한 대화 우선으로 선회했음을 읽을 수 있다. 핵문제가 관념적인 단계의 발전인데 비해 경제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과 중국이 정부레벨로 구체분야별 협력체제를 출범시킨 것은 한중관계의 새로운 도약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일본과의 경제관계에 대해 『경제는 외교나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를 통해 당당하게 이겨야한다』면서 『한·일관계는 경제적인 측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고 이야기했다.동북아 경제·안보에서의 새로운 질서와 공동번영을 모색한 「번영과 평화의 여로」였다.
  • 경주 동악미술관에 「구면천정천문도」·「혼상」복원 전시

    ◎“신라의 옛 하늘을 보여 드립니다”/구면…/637년 별모습 1,319개 인조다이아로 새겨/혼상/360도 회전… 계절변화 알리는 하늘의 시계 국내 과학계와 한 독지가가 세계 최초의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을 복원,전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신라 전통과학실험의 장을 마련한 경주시에 위치한 동악미술관 천문지리실이 바로 그것. 경주시 민속공예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동악미술관(관장 석우일)은 연세대 나일성교수팀,세종대 강영훈교수팀,그리고 충북대 이용삼교수팀등 국내 천문학계의 무보수 도움을 받아 제작비 2억원을 들여 세계최초의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을 완성했다. 천면천정천문도는 조선시대 천문학자 남병길의 성경(1861년판)을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6년인 서기637년의 별자리 위치로 세차 계산한 것으로 2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미술관 2층 천장에 지름 6m의 반구를 만든뒤 1천3백19개의 별로 이루어진 2백90개의 별자리를 하나하나 새겨 놓았다. 특히 1천3백19개의 별을 6등급으로 나누어 인조 다이아몬드로 모두 장식,신라시대의 밤하늘의 별이 영롱한 모습으로 빛나 관람객의 눈길을 황홀하게 한다. 또한 지름 1m크기로 복원한 혼상은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에 따라 천구면에 표시한 것으로서 평면에 그린 천문도와는 달리 일주운동에 따라 회전하면서 별들이 지평선에 뜨고 지는 것을 보여주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하늘의 시계 역할을 한 고대의 위대한 천문기기였다. 지난 26일 열린 개관식에 참석한 성신여대 명예교수 전상운박사는 『경주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기술문화 유산의 본고장일 뿐 아니라 신라의 상징적 유물인 첨성대를 인류공유의 세계 고대 천문학의 유산으로 알릴수 있는 실험주의 방법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며 후세의 교육효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 제작을 총괄 지휘한 나일성교수는 영국·일본·중국등에서 관련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천문도와 혼상을 전시할 경주에 그들을 초청,조언을 구하는데 앞장 섰다.이 가운데는 영국 더햄대 스티븐슨교수(과학사학자),중국 북경 고관상대최석죽대장,북경 천문관 최진화관장,서안천문대 리치완박사등 10여명의 외국 학자들이 방문,의견을 내놓았다. 나교수는 『석관장과 천문학자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거의 1년이란 세월을 보냈다』며 『우리나라도 세계인을 향해 내보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전통과학실험의 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지 4백평 규모에 연건평 1백50평의 동악미술관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천문지리실에는 천장에 장치된 구면천정천문도와 바로 아래에 혼상을 설치한 이외에 5분의 1과 10분의 1로 축소한 첨성대 모형 3기가 전시돼 있다.한국과 중국의 고대 천문도 2점과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신라시대 해시계 파편을 완전히 복원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그리고 조선시대 앙부일구를 비롯해 중국의 혼천의와 적도의 축소 모형등이 전시돼 있어 한국이 전통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과학기술까지도 감상 할 수 있다. 한편 천인감응사상을 부르짖는 석관장은 중앙벽 전면에 천정천문도를 펼쳐놓은 듯한 크기인 가로 6m,세로2.5m크기에 신라의 도읍지 경주를 한눈에볼수 있는 왕경도를 사학계의 도움을 빌려 제작,「하늘에는 천문도,땅에는 왕경도」를 입체 전시하고 있다.
  • 전쟁보다 어려운 평화/최혜성(굄돌)

    냉전이라는 질서가 무너지면서 세계는 혼돈스럽게 보인다.세계가 경제적으로는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분열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통합의 추세속에서 오히려 분열하려는 움직임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정치적 갈등과 혼돈이 탈 냉전이후 격변하는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다.아마도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구축될 때까지 역사는 어둡고도 긴 터널을 지나가야 될 모양이다. 하룻밤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그리고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붕괴되었을 때 우리는 한 시대의 종말을 보면서 이제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을 고대하였다.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분명히 냉전은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풀러는 「전쟁과 반전」이라는 그의 최신저서에서 탈 냉전이후 인류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그것은 착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냉전의 종식이 바로 평화라는 등식은 「집단황홀경」에 빠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걸프전에서 본 바와 같이 강대국의 군사력은 제3의 물결을 타면서 고도로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또 다른 전쟁의 위험을 불러오고 있다고 한다.기술의 진보와 정보의 확산은 최첨단 군사기술이 평화를 교란하는 국가와 테러단체에게 넘어갈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제3의 물결권 밖에 있는 북한과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것이 그 징후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냉전종식 이후 최악의 군사적 긴장이 야기되고 있다.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하면서 남북대화를 또다시 무산시켰다.이러한 북한에 대해 힘의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우리측에서도 높아지고 있다.한반도에서 당장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그러나 동시에 한반도가 다시 군사적 대결장이 되는것도 막아야 한다.이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평화만들기는 전쟁보다 어렵다.우리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 대학가에 「뽕가리주」 공포

    ◎「소맥」에 이온음료 탄 신종 폭탄주/선배를 강권에 신입생 골탕 일쑤 새학기를 맞아 대학가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는 각종 양태의 「주법」이 난무,성인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신입생들을 골탕먹이기 일쑤이다. 심지어 새학기 들어 청주와 대구에서는 두명의 신입생이 환영회 술을 마시고 갑작스런 알코올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잃은 일까지 있어 대학가의 「만용」에 가까운 음주풍토에 일대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최근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음주풍속은 이른바 「뿅가리주」.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기존의 「소·맥」에다가 체내 흡수를 빠르게 하는 이온음료를 타 만든 칵테일의 일종으로서 선배들의 강권을 뿌리칠 수 없는 신입생들에게는 가히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맥주 5백㏄에 소주 반병,캔이온음료 하나면 술에 익숙치 못한 신입생들은 이미 「황홀지경」에 이르고 이를 한차례 더하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진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이밖에 전통적 음주풍속들도 여전히 신입생 환영회장 주변을풍미하고 있다. 구두에 술을 따라 마시는 「구두주」와 같은 지나친 행태는 사라졌지만 맥주로 재떨이를 씻은뒤 소주나 양주를 따라 마시는 「재떨이주」,「쓰레받기주」,냉면사발이나 우동그릇을 이용하는 「사발주」등이 아직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 호화의 극치 러 황실보석/파블레제의 세공작품

    ◎영 빅토리아박물관/차르일가의 350점 전시… 천재성 재조명 19세기말 제정러시아시대 차르일가에 전속으로 보석을 세공해준 파브레제라는 「황실보석가」가 있었다. 파브레제는 당시 귀족,왕가의 사치와 격식주의에 힘입어 최대한 화려하고 정교하게 보석을 다듬는 기술로 명성이 높았다.황제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 마리아 페드로브나로부터 「당대 최고의 천재」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보석을 구하기 위해 유럽 각국의 왕실로부터 주문이 쇄도하는 등 영웅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뒤 잊혀져왔던 전설속의 인물 파브레제가 최근 영국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런던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은 파브레제를 재조명하고 러시아 유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파브레제,황실의 보석세공인」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박물관은 파브레제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연구소나 개인들로부터 수집한 3백50점의 보석을 전시회에 선보이고 있다.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덴마크의 마그레드 여왕 등이 소중히 갖고 있는 보석들도 함께전시돼 파브레제 보석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부활절 선물」에 가장 많은 눈길을 보낸다. 파브레제가 부활절을 맞아 니콜라이 황제를 위해 세공한 달걀모양의 이 걸작은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광채를 낸다.이 작품은 황금 사륜마차위에 달걀형의 보석이 놓여져 있다. 신교 위그노교도의 후손인 파브레제는 184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성장해서 형과 함께 이곳에서 조그만 작업실을 마련해 보석세공일을 했다. 1894년 니콜라이가 왕위에 오르기전 약혼녀에게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된 목걸이를 그에게 구입하면서부터 파브레제는 황실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니콜라이는 목걸이의 황홀함에 넋을 잃었고 파브레제는 황실의 보석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단숨에 유명해졌다.그의 솜씨에 대한 소문은 해외로까지 퍼져 멀리 샴왕국등에서도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18년 니콜라이 황제 일가가 처형되자 그도 바로 러시아를 떠나 유랑생활을하다 2년뒤 스위스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파브레제의 눈부신 보석들도 「구시대의 폐해」로 여겨져 공산당원들에게 압수되거나 파괴됐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작업실마저 폐쇄명령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 불타는 뉴잉글랜드(뉴욕에서/임춘웅칼럼)

    뉴 잉글랜드의 가을은 참으로 황홀하다. 10월에 접어들면서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이곳의 단풍은 10월 상순에 이르러 뉴잉글랜드 일대를 모두 불태우고 하순에 오면 벌써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일대에까지 깊숙이 파고든다.뉴잉글랜드란 미국의 동북부 대서양연안에 위치한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 매사추세츠 등 6개주를 총칭하는 이름이다.1620년 메이 플라워호가 처음 닻을 내린 이래 프로테스탄트계 영국 이주민들이 식민지개척을 시작한 땅이다. 기후가 다소 건조하고 겨울이 길어 초기 식민지개척에 힘이 들었던 땅이나 이곳의 가을은 더없이 아름답다.특히 이 일대의 단풍은 색깔의 다양함이나 선명도,타는 불길의 깊이가 단연 뛰어나 세계 제일임을 아무도 의심치 않는다.캐나다의 단풍이 국기에도 등장할만큼 유명하긴 하나 단풍을 안고 있는 산야가 단조로워 색의 조화나 장엄함이 뉴잉글랜드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곳의 단풍은 힘들고 절망적이던 초기 개척시대 이주민들에게 더없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이토록 아름다운 땅」에 대한 희망이었으리라.뉴잉글랜드의 단풍나무는 아름다움을 제공해줄뿐 아니라 개척시대 이주민들의 중요한 당분원이기도 했다.본래 인디언들이 발견해내 즐겨 먹었던 메이풀시럽은 설탕이 없었던 개척시대에는 더없이 중요한 식량이었다.단풍나무에서 흘러내린 수액을 가미해 만들어 내는 메이풀시럽은 지금도 많은 미국사람들이 아침 식탁에서 팬케이크란 빵떡에 발라먹는 가장 인기있는 시럽이다. 지구상에는 단풍나무가 1백50여종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중 우리나라에 있는게 15종 정도인데 이곳에는 1백종이 넘는다.그만큼 이곳의 단풍은 종류가 다양하다.종류가 많은만큼 색깔이 다채롭고 여러 색깔이 엮어내는 조화 또한 눈부시다. 한나무에서 빨강 노랑 초록이 함께 어울리고 투명한 나뭇잎새들에는 옆자리단풍이 투영돼 또다른 빛깔을 엮어내고있다.그러나 광활한 산야에 펼쳐진 이곳 단풍의 진짜 멋은 사철나무와 이루는 조화가 아닌가 싶다.갖가지 색깔의 단풍이 진초록의 사철나무와 어울려 만들어내는 조경이란 실로경이롭다.오렌지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빛깔인지도 뉴잉글랜드의 단풍속에서 새삼 절감하게 된다. 호수가 많음도 이곳의 단풍멋을 더해주는 요소다.이맘때가 되면 뉴 잉글랜드의 호수들은 예외없이 단풍에 흥건히젖어들고 마는 것이다. 뉴 잉글랜드의 10월은 언제나 매혹적이다.그래서 이 계절이 되면 뉴 잉글랜드의 어디를 가나 조금은 들뜨고 그냥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사람들로 붐빈다.그많은 사람들 때문에 요즘 이 일대에서 호텔방을 잡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미국사람들은 뉴 잉글랜드의 가을을 단순히 단풍놀이만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뉴 잉글랜드의 찬란한 단풍속에서 되새기고 그 빛깔로 더욱 아름답게 채색하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뉴 잉글랜드는 지금 불타고 있다.
  • 허생원 웃음소리가 들리누나(박갑천칼럼)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방울소리가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갓지난」달빛아래서 허생원의 이야깃소리는 이어진다.『…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없이 하얀꽃이야…』.가산 이효석(가산리효석)의「메밀꽃 필무렵」에 나오는 60년전의 강원도 봉평땅 정경이다.들판 가득핀 메밀꽃이 달빛을 받았을 때의 황홀경이 눈에 잡히는 듯하다. 시베리아에서 인도에 이르는 지대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지는 메밀은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이미 재배했던 듯하다.고산지대 자갈밭에서 나는것이 기미가 한결 좋다는것이고 보면 강원도쪽의 척박한 자갈땅은 메밀의 산지로서 알맞았다고 할것이다. 메밀로 만들어먹는 음식으로는 메밀국수·메밀묵·메밀부침·메밀수제비…등이 있다.어림도 없는 주제에 같잖게 처첩거느리고 사는 사람을 이르면서 『메밀떡 굿에 쌍장구 치랴』고 했으니 메밀떡도 있음을 알겠다.특히 강원도 막국수는 예로부터서의 명물이다.「농가월령가」10월령에 『…꿀꺾어 단자하고 메밀앗아 국수하소…』한 것으로 미루어 본디는 찬기운 도는 철에 먹는 식품이었음을 알겠다. 메밀은 통변을 잘시키는 식품인 것으로 알려져온다.고혈압환자에게 메밀음식이 좋다고 했던 까닭은 그 통리성에 있었다.많이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도 했다.메밀껍질은 베갯속으로 쓰였다.중풍을 예방한다고 믿은 때문이었지만 『메밀이 있으면 뿌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속담에서 보듯이 메밀에는 전반적으로 척사의 힘이 있다고 믿은 우리조상들이었다. 의약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몹쓸 화류병 임질에라도 걸릴라치면 말린 메밀대가 약으로 쓰였다니 희한하다.그것을 흑소(흑소:질그릇에 넣어 뚜껑을 덮고 진흙을 바른다음 거센 불에 얹어두면 그릇안의 재료는 원형대로 탄다)한 가루를 끓는물에 풀어 거기 음경을 담갔다지 않은가.그렇게해서 효과를 적지않이본 민간요법이었다니 웃음도 난다. 다른 농산물의 경우와마찬가지로 메밀도 중국쪽 것이 들어온다고 한다.이때 『내고장의 상징인 메밀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강원도 봉평땅에서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평창군에서는 이를 뒷받쳐 해마다 메밀을 더심어 나가게 할 요량으로 가공공장 세울 예산도 짜놓고 있다.지하의 허생원이 달빛아래 만발한 메밀꽃 같은 웃음을 하얗게 웃고있는 것이리라.
  • 이정호교수가 본 모리슨

    ◎신화적 요소·현실 접합… 미 사회 고통 그려 지금까지 다루지 않던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을 영상화한 소설가로서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으로 소외된 계층을 깊이 있게 다룬 작가이다. 그의 언어는 음악적이고 정확하며 환상적인 대화로 되어 있으며 그의 기법은 신화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현실과 접합시켜서 삭막하고 고통스런 미국의 한 단면을 묘사했다. 그의 첫 작품인 「가장 푸른눈」은 미국 중부의 철강도시에서 겪은 흑인의 가난을 다룬 자전적 소설로 흑인과 백인사이에서 분열된 정체성으로 자란 흑인의 삶에서 비극이 초래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소중한 사람」은 뉴욕타임스로부터 황홀하고 마술적인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오하이오주에서 남북전쟁뒤 있었던 이야기로 노예신분에서 벗어난 아름답고 자존심 강한 흑인여성 세스가 노예였던 과거가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아 은밀한 육체적 본능부터 정신적 문제까지 노예의 뿌리가 뽑혀지지 않은 현실을 심도있게 표현했다. 「타르 베이비」는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린치를 당할때 흑인에게 타르를 입히는 굴욕적인 악습을 빗댄 작품으로 Harris라는 사람이 쓴 구전동화를 모은 것.늙은 흑인하인이 주인의 백인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아 재구성한 이 작품은 교육을 받은 흑인여성이 흑인문화에는 끌리지만 결국은 그 문화를 외면하는 현실을 시사한 것으로 작가자신의 자기비판적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모리슨의 글속에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나 흑인들의 몸에서 진하게 풍기는 환상적이고 묘한 분위기가 흐르면서도 그 문체가 매우 사실적인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 모리슨의 이번 수상은 지난해 월코트의 수상과 같은 맥락에서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느냐를 풀어나가는」 탈식민지적인 문학에 한림원의 특별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음을 잘 대변해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 엑스포인기 더하는 황홀한 민속춤/각국이 펼치는 전통예술의 현장

    ◎람바다·삼바 등 정열적 가무공연/브라질/아낙 등 악기연주·의상쇼도 볼만/말연 대전 엑스포에서 참가국들이 과학기술 소개나 상품선전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국의 고유 민속전통예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각종 민속공연행사다.이 때문에 대전엑스포는 큰 돈을 들여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각국의 민속전통예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6개국 날마다 행사 1백8개 참가국중 86개국이 번갈아가며 여는 내셔널데이의 공연행사와는 별도로 브라질·뉴질랜드·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콰도르·스리랑카등 6개국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국을 소개하는 전통춤·노래등 민속공연을 펼쳐 관람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브라질관=상오11시부터 4회공연을 갖는 브라질관은 전시관내 50여명이 관람할수 있는 조그만 무대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정열적인 「리우축제」의 나라답게 우리에게 잘알려진 람바다춤을 비롯해 유럽인들의 차분하면서도 다이내믹한 율동이 가미된 가우샤춤,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등 3개국의 문화를 한데모은 라틴춤, 브라질 북부의 열정적인 프레보춤,삼바및 뮤지컬등 주로 전통춤을 소개하고 있다. ◇뉴질랜드관=뉴질랜드관의 민속공연은 원주민 마오리족의 민속춤과 노래.마오리족 남녀 8명이 나와 하오4시 공연을 시작으로 하루 4회,15∼20분동안 민속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전사춤 추고 막내려 간이무대가 열리면 마오리족 한명이 나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큰 조개껍질 모양의 콘취를 분다.곧바로 관람객들에게 환영과 평화를 노래하는 「호카마이춤」,소녀 마오리족이 공처럼 생긴 포이를 흔들며 허리춤을 추는 「오우에하춤」으로 이어진다.티티토리아란 막대기로 두들기거나 마주보고 돌려받으면서 「호에아라춤」을 춰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불의 여신을 노래하는 「에 파라춤」,환영의 노래와 춤을 곁들인 「카랑아티아라춤」등의 순으로 전개된다.이어 건장한 마오리전사들이 나와 출정전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함성을 지르며 「하카춤」을 추고 나면 공연은 막을 내린다. ◇말레이시아관=상오 11시30분부터 하루 3차례 공연을 갖는 말레이시아관은 민속공연단원 20여명이 창앙·이부·아낙등 전통악기와 플루트·아코디언 등을 들고 나와 20여개이상의 전통춤과 음악·의상쇼를 선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손님들에게 환영을 의미하는 서무를 시작으로 「사페」라는 밴조형태의 현악기를 가지고 코뿔소의 땅이라는 뜻의 「다툰 줄리드춤」,말레이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중국인들의 리본춤과 부채춤으로 엮은 「중국민속춤」등 의 전통민속춤을 선보인다. 이밖에 축제의식때 공연되는 「돈당 사양춤」,풍성한 수확을 조상들의 은공으로 돌리는 「와우불란춤」,클랑탕·아식·페락등 전통의상쇼와 전사들의 춤인 「다부스춤」등도 무대에 올린다. ◇인도네시아관=전시관내 1백여명이상의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는 객석과 무대장치를 갖춘 인도네시아관은 하오1시에 공연을 시작으로 하루 두차례 공연을 갖는다. ○한국가요도 잘 불러 무대위에서는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무용수들이 대나무로 만든 앙쿨룽이라는 전통악기에 맞춰 틀란쟁춤·즌드라와시춤·란탁춤·라툿춤등 20여가지 전통춤을 춘다.가수들은 전통민요와「사랑해」등 우리 대중가요를 한국가수 뺨치게 잘 부른다. ◇에콰도르관=중남미공동관내 에콰도르관에서는 치차수요악단및 민속공예단이 내한,상오10시 공연을 시작으로 하루 3회공연을 펼친다. 에콰도르 옵타발로 인디오족 8명으로 구성된 이 공연단은 우리나라의 피리와 같은 프라우타,퉁소의 게나,북의 봄보와 론다도르·삼포니아등 전통악기로 인간과 캥거루와의 평화를 상징하는 「캉구로 투 수이」,에콰도르의 대표적 여성인 카르렐리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카르렐리나」,백인들의 원주민 탄압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코마드로나」등의 노래를 들려준다. ○장구를 닮은 악기도 ◇스리랑카관=50여평규모의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갖고 있는 스리랑카관은 상오11시부터 공연을 한다.공연내용은 장구처럼 생긴 게트베레아­단메타마라는 전통악기연주와 코브라탈춤 등을 엮었으며,공연은 하오8시까지 계속된다. 스리랑카관은 레스토랑형태여서 관람객들은 해설을 들으며 망고로 만든 푸딩과 카레·빵등 스리랑카 음식을 곁들일수 있는 것이 특이하다.
  • 정보통신관/2천년대 일반가정생활 한눈에

    ◎외출중 로봇·컴퓨터가 빨래·밥짓기 “척척”/매직아이를 스크린에 재현… 황홀한 체험 다가오는 21세기를 사람들은「정보화사회」라고 전망한다.정보화사회에서는 누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힘의 중심이 바뀐다. 따라서 대전엑스포에서 각종 하이테크기기들을 이용,정보통신사회를 미리 체험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다.엑스포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그동안 말로만 듣던 여러가지 첨단하이테크기기들을 직접 보고 작동해보며 체험도 할 수 있는 형태로 꾸며졌다. ○첨단하이테크 경험 정보통신전시관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5백억원정도를 투입,꾸며진 국내상설전시관중 최대규모이며 순수정보통신만을 주제를 담고 있는 한국통신의 정보통신관.또 컴퓨터의 작동원리및 이용방법 등을 쉽게 설명해주는 럭키금성이 마련한 테크노피아관과 컴퓨터게임을 극대화시킨 한국IBM관등도 누구나 재미있게 참여하고 정보화사회의 도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정보통신관의 컴퓨터및 정보통신기기의 작동은 대부분 필요한 정보에다 손을 갖다대면처리되는 터치 스크린방식.즉 어려운 컴퓨터명령어를 모르는 할머니까지도 새 기기와 친구를 삼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통신의 정보통신관에서 눈여겨볼 곳은 첨단통신관 2층 확산의 장에 마련된 「하나로서비스」 「정보화가정」 「미래지역생활정보」 「컴퓨터음악」등이다. 하나로서비스는 음성·데이터·문자·영상 등 여러종류의 서비스를 디지털로 변환시켜 각각 또는 한꺼번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이 코너에서는 서비스의 간략한 소개,상대편의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화상전화,하나의 전화선으로 팩스·컴퓨터·전화 등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전화·컴퓨터 동시사용 정보화가정은 2000년대의 가정생활을 미리 즐겨볼 수 있는 곳으로 가정주부가 외출하면서 그날 해야 할 빨래·밥·공기환기 등을 주컴퓨터에 입력시켜놓으면 로봇이나 컴퓨터시스템이 스스로 공기환기·빨래·밥짓기 등을 처리해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래지역생활정보는 컴퓨터통신망을 이용,지역생활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코너가 꾸며졌다.즉 여행을 갈 때 행선지를 입력하면 그곳에 대한 역사,가볼만한 문화유적지,여행기간의 기상상태,도로망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컴퓨터음악마당은 컴퓨터를 이용,작곡·편곡·편집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시,관람객들이 직접 작곡·편곡·편집 등을 해볼 수 있도록 꾸몄다. 럭키금성의 테크노피아관은 한마디로 컴퓨터의 구성요소및 처리과정,컴퓨터기술을 설명해주는 공간이다. 이해의 마당에 설치된 컴퓨터모형은 알기 쉬운 컴퓨터공부의 장.이곳은 입력된 정보가 어떻게 처리돼 저장·출력되는지의 전과정을 컴퓨터 실제크기의 수십배로 확대해 설치해 보는 것만으로 훤히 이해가 되도록 꾸며졌다. ○어린 관람객들 유혹 또 참여의 마당에는 컴퓨터의 구성요소와 작동원리를 쉽게 설명해주는 컴퓨터 수학여행,컴퓨터프로그램의 작성과 수행원리를 가르쳐주고 관람객들이 실습해볼 수 있는 척척프로그램,손가락으로 색칠을 하거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컴퓨터그림방 등의 코너가 설치돼 있다. 한국IBM관은 참가형 전시공간인 싱크파티공간을 만들어 15종의 컴퓨터게임을 전시,직접 게임을 해보도록 해 어린 관람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게임자가 컴퓨터영상에 나타나는 우리말이나 영어단어를 맞히면 영상속에서는 사람이 컴퓨터에 한방 때리고 틀리면 맞는 게임 등이 들어 있는 학습게임코너,주병진·김미화등 6명의 인기연예인의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 흥미를 끄는 갈락티파스코너도 있다. 이밖에 요즘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매직아이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매직스크린코너 등도 기다리고 있다. ◎엑스포부부 탄새/현대정공 이종성씨·아산중 교사 진용준씨 오늘 결혼 엑스포부부가 탄생한다. 주인공은 현대정공 자기부상열차 개발팀 소속 연구원 이종성씨(29)와 충남 아산중학교 국어교사 진용준씨(26). 이들은 1일 하오1시 대전엑스포장내 자기부상열차관 주역사에서 엑스포조직위와 현대정공 임직원들의 축하속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은 진씨가 가족·친구등과 함께 종점인 부역사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5백60m 떨어진 주역사까지 오는 신부입장으로 시작된다. 이어 오명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의 성혼선언과 주례가 이어진다. 결혼식은 내내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축하연주와 결혼행진곡 속에 진행된다. 이들 부부는 또 양가부모와 함께 태양전지자동차 2대를 나눠 타고 27만3천평의 엑스포장을 돌며 알찬 미래를 설계할 계획이다. 그런 후 제주도로 벅찬 가슴을 안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이날 결혼식은 자기부상열차 개발팀장 김재홍씨(41)가 세계에서 네번째로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한 기념으로 이씨에게 이같은 행사를 제의하면서 이루어졌다. 마침 결혼을 준비중이던 이씨는 지난 90년7월부터 개발에 성공한 지금까지 자기부상열차에 큰 애착을 갖고 있었다. 자기부상열차는 자기의 힘으로 공중에 뜬 채로 달리며 바퀴가 없어 고속에도 소음과 진동이 없는 첨단교통수단이다. 이씨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엑스포행사의 하나로 결혼식을 치러 더할 수 없이 기쁘다』며 『해가 갈수록 대전엑스포의 추억도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예술행사/D­14일(대전엑스포’93:5)

    ◎“전통·현대 조화” 55종목 2,300회 공연/과천서 펼치는 한밤 수상영상쇼는 현란/국제민속축제선 22국 전통혼례 보여줘 대전엑스포의 문화·예술행사는 과학기술과 접목시켜 신선한 충격과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또 우리의 전통예술과 세계각국의 고유한 민속축제가 최첨단과학기술을 응용한 하이테크예술등과 조화를 이뤄 지구촌의 축제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순수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대전엑스포. 첨단과학기술을 비디오·뮤지컬·오페라등에 접목시킨 각종 하이테크쇼가 화려하고 다채롭게 선보이게 된다. 대전엑스포의 장내외에서 펼쳐질 문화·예술행사는 무려 55종목 2천3백여회에 이른다. ○첨단과학기술 응용 관람객들을 황홀한 경지로 이끌기에 충분한 이번 행사는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영역을 제시하는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바로 생활속에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이 예술세계를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것이다. 대전엑스포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축제마당으로 조화시킬 문화·예술행사는 공식행사·문예전시·공연및 축제등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다채로운 국제문화행사도 이색적인 볼거리로 등장한다. 대전엑스포는 개관 전날인 8월6일 개회식을 신호탄으로 공식행사가 시작되면서 8월7일 상오 개장식을 갖고 테이프커팅을 하면서 93일의 대회일정에 들어간다. 오는 8월9일∼11월6일 75회의 내셔널데이와 5회의 스페셜데이,10월3일 한국의 날등 참가국 및 국제기구행사와 8월11일∼10월1일시·도의 날,9월9일∼10월29일 기업의 날,8월16일∼20일 단체의 날등 공식행사를 개최한뒤 11월7일저녁에 막을 내린다. 문예전시행사로는 하이테크미술전·국제전시·일반문예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첨단과학기술을 예술표현의 매체로 활용한 것이 테크노아트전. 대화형 설치조형물·빛의 우물·전자정원·비디오 창등의 요소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토털환경예술의 작품으로 문예전시관(9월13일∼10월3일)에서 갖게 된다. 재생조형관에서 대회기간 열리는 비디오 아트쇼는 세계적 비디오 아트의 권위자인 백남준씨의 작품.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실감나게 할 대표적인 작품으로 TV·네온·로봇등으로 제작된 거북선이 걸작이다. 그 거북선이 위용을 떨친 한산도를 배경으로 한 컴퓨터 그래픽과 살아 있는 거북을 넣어 만든 수족관이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이 작품은 관람장에 영구히 보존할 계획. 국제전시로 리사이클링 특별미전은 5만여개의 빈병으로 자원재활용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만들어진 재생조형관에서 자원재생에 대한 한국인의 전통적 지혜와 현대산업사회에서 요청되는 재활용의 의미를 예술화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일 도자기 원류전도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에 의해 발달한 일본도자기의 원류와 한국도자기의 변천을 비교한 한국도자기 비교 귀향전,한·중·일 아시아3국의 국제서예전,세계아동미술전이 문예전시관에 전시되며 예술과 과학기술의 접목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환경의 조형미술인 미래테마파크 조각전이 호수주변에서 눈길을 끈다. 한편 일반문예전시로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담은 한국의 풍속화전,시각장애인들이 손으로 더듬어 감상할 수 있는 촉각조각전이 문예전시관에서 전시되며 전통공예실에서는 우수한 우리나라 전통공예작품을 전시하는 동시에 실제로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각부분이 일반관람객은 물론 외국인과 장애인들에게도 예술 및 문화발달을 피부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공연·축제행사로는 하이테크공연·국제문화행사·대중문화행사·전통문화행사등으로 나뉘어 35종의 행사를 갖는다(별표참조). 하이테크공연은 첨단과학기술과 예술의 합작품. 개막축제로 3일동안 갑천주변에서 야간에 갖는 대형 이미지 영상쇼는 레이저·영상·음향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21세기형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걸작품으로 찬란의 극치를 이룬다. 또 서울예술단의 뮤지컬과 극단 동아 및 어린이명작극장이 연출하는 어린이뮤지컬은 「뜬쇠가 되어 돌아온다」 「피피오」등을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만든 영상을 스크린이나 멀티비전을 통해 극중에 삽입함으로써 극의 효과를 강화시키고 있다. 엑스포장앞 갑천에서 벌어지는 수상영상쇼는 대표적인 볼거리로 장관을 이루게 된다. 8월10일부터 17일까지 검푸른 호수에서 펼쳐질 영상쇼는 폭 30m에 높이 20m의 부채모양 물살위에 펼쳐지는 워터 스크린과 레이저,그리고 수많은 서치라이트와 6대의 초대형 특수영사기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광경을 밤하늘에 수놓는다. 또한 매일밤 터지는 2백50발의 폭죽과 음악에 조화를 이룬 높이 50m의 시원스러운 분수가 내뿜는 찬란한 전경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대전엑스포는 단순한 기술제전이 아니다. 다양한 국가와 민족이 하나가 되는 화합의 한마당. 이에따라 국제문화행사도 다양하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놀이가 국제민속축제다. ○2천여평 대공연장 중국·인도등 22개국 23개 공연단이 8월30일부터 2개월간 엑스포극장과 놀이마당에서 벌일 이 축제는 이색적인 각국의 전통혼례식을 실제로 연출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특이한 민속예술을 공연한다는 것. 이밖에 세계정상급에 속하는 중국의 잡기예술단이 10월9일부터 11월7일까지 엑스포극장에서 다양한 묘기를 선보인다. 이들이 벌일 공연은 외줄타기와 마술시범등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이다. 이렇듯 다채롭고 화려한 문화·예술축제가 펼쳐질 대전엑스포의 각종 공연장도 마무리공사를 끝내고 개관만을 기다리고 있다. 각종 행사의 중심이 될 대공연장은 연면적 1천9백55평에 수용인원 2천6백명 규모. 국제관 북쪽에 자리잡은 이 실내공연장은 문화예술의 공연은 물론 개·폐회식과 대중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를 갖게 된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조형미로 건축된 실내공연장이 엑스포극장. 서문을 들어서면 제일 남단에 자리잡은이 극장은 연면적 1천7백21평에 수용인원 1천2백명으로 초현대식 무대기기·조명·음향 및 영상시설을 구비했다. 또 빈병을 이용한 원뿔형 조형물인 재생조형관,다용도공간으로 지어진 문예전시관,전통공예작품을 재현할 전통공예실등이 1천만여명의 내외국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야외의 놀이터로 한빛탑 북쪽에 원형으로 꾸며진 놀이마당과 국제전시구역 중심의축제의 거리·광장·소광장·도로의 일부 또는 노천광장등이 거리공연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정부관 서쪽의 종루에 설치한 동종에서 개장을 알리는 우렁찬 굉음이 울려퍼지는 날,한마당 세계의 과학예술축제가 펼쳐져 무한한 미래의 꿈을 현실로 승화시키려는 한민족의 저력을 신바람나게 보여줄 것이다.
  • 국제전시구역/D­36일(대전엑스포’93:2)

    ◎11개관서 펼치는 “환상의 미래세계”/정부·시도관엔 발전상·팔도풍물 선봬/IBM·번영·도약관선 첨단과학 체험 대전엑스포의 핵심은 국제전시구역.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진 한마당을 연출함으로써 무한한 꿈과 희망을 심어줄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캐치프레이즈로 장관을 연출한 국제전시구역은 정부관·한빛탑·시도관·주거환경관·조폐문화관·롯데환타지월드·국제관·한국IBM관·한국후지쓰관·번영관·도약관 등 11개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도 중심축은 정부관이다. 우성이산을 등지고 갑천의 푸른 호수가 감싸안은 사통팔달의 시원스런 도로망이 동서남으로 날개를 펼친 가운데 그림처럼 건설된 엑스포현장의 중심에 정부관이 자리잡고 있다. ○한민족도약 한눈에 힘차게 뿜어 올리는 분수가 찬란한 미래의 꿈을 안겨주며 반겨맞는 정부관은 2천7백평에 일자형 지하1층 지상3층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건축됐다. 기둥없는 하이테크관으로 세워진 이 건물의 주제는 「비상을 위한 미래의 날개」. 옥내 일반전시관은 한국의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6개의 길로 구분돼 있다. 첫째 꽃길은 숲·농촌·어촌등 한국의 옛 자연풍경및 생활상,둘째 지름길은 해방이후,특히 60년대 이후에 이룬 급격한 산업발전과 과학기술,셋째 비단길은 동서문물의 교류와 한민족의 독창적 과학기술및 산업발전과정,넷째 벼랑길은 산업화시대의 공해·자연훼손·천연자원낭비 등 부정적 결과,다섯째 이음길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사색의 장,마지막 여섯째는 새길(무지개길)로 자연과학과 인간의 조화된 밝은 미래상들을 각각 전시해 한민족의 긍지와 도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곳에 설치된 대형영상시스템인 영상관의 규모는 좌석3백14석. 자연과 역경을 극복하고 산업도약및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번영된 모습,정보화와 첨단과학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인의 의지와 과학예지가 20분간 반복 상영된다. 또 6백70평의 옥외과학광장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과학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휴식공간을 갖췄다. 정부관 동쪽 광장에 우뚝솟은 한빛탑은 대전엑스포93의 상징탑. 높이 93m의 한빛탑에 들어서면 오색연기와 은은한 음향이 황홀한 경지로 이끌며 세계의 각종 탑의 모형과 그리고 과학사등을 소개하는 전시물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국화약그룹이 건축한 이 탑은 전시실외에 1·2전망대와 편의시설이 있으며 야간에는 특수조명과 특수장비로 효과를 내기도 한다. 동북쪽 산기슭에 자리한 시도관은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14개 시도가 참여해 화합과 번영을 통한 국민의 일체감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연출했다. ○로봇탈춤쇼 공연도 시도관에는 지역특성에 맞는 내용을 주제로 개성있게 꾸며 졌으며 영상관에서는 북청사자놀음·로봇탈춤쇼·영화상영·감사와 환송의 장등이 관람객등의 흥을 돋우게 된다. 한편 전통공예와 현대과학의 만남이란 주제로 전통공예실의 실기를 보여준다. 주거환경관은 새의 보금자리인 둥지와 알을 이미지화한 전시관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공생하는 이상적인 주거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동문 북쪽에 자리잡은 이곳은 우리나라 주거환경의역사적 전통과 근대화 이후의 변형된 모습을 비교해 미래 주거문화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영상관은 로봇이 등장하는 특수 무대장치로 2050년의 주거환경과 생활모습을 그리고 있다. 동문을 들어서 북쪽으로 자리잡은 동전모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정원에 조성된 둥근 코인의 조형물이 장관을 이루는 이곳이 조폐문화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로봇지휘자의 지휘로 세계24개국 민속인형들이 합창과 춤으로 돈잔치를 벌여 관람객들의 배꼽을 잡게 한다. 또 영상관에서는 조폐의 기술과 예술의 어드벤처스토리가 3차원의 특수입체영상으로 상영돼 눈요기를 제공한다. 롯데그룹이 설치한 롯데환타지월드는 돛단배를 연출한 화려하고 환상적인 시설이다. 이 건물의 주제는 「물,즐거움,활력,그리고 새로운생활」. 이에따라 물로써 이미지를 부각시켜 꾸며졌다. 입구에는 작은 호수로 둘러싸인 특설무대가 설치돼 축하쇼와 각종 이벤트공연이 벌어진다. 장내를 들어서면 환상의 워터쇼가 관객들을 공상의 세계로 이끈다. 유리로 연출된 현란한 물결과빛이 어우러져 소용돌이를 치고 있다. 장관의 물기둥,일렁이는 파도속에 꽃게와 보석의 동산,황혼의 낭만적인 바다등 변화무쌍한 물의 조화에 넋을 잃게 한다. 영구시설인 평화우정관과 임시시설인 1백2개의 모듈전시관으로 구성된 국제관에는 세계 1백12개국과 28개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다. 「보다나은 인류의 미래를 향한 지구촌의 의지와 노력」을 제시한 국제관은 A,B,C관으로 나눠져 있다. A관은 국제전시구역의 중앙에 위치해 주위에는 순환도로를 설치하고 중앙에 광장을 마련,관람객들의 집합과 분산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했고 휴식공간과 편의시설을 갖춰 놓았다. B관은 UN및 산하기구·아프리카개발은행·국제올림픽위·유럽공동체등 28개 국제기구가 사용하고 외곽은 세계각국의 특색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C관은 아프리카·남태평양·카리브연안국가및 중동·중남미 일부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된다. ○컴퓨터 속으로 여행 대전엑스포의 보고 배울거리는 역시 첨단과학과 예술. 한국IBM관과 한국후지쓰관,그리고 번영관과 도약관은관람객들에게 이같은 욕구를 아낌없이 만족시켜 줄 것이다. 「생각하는 즐거움」을 주제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를 상징하는 정방형격자와 부드러운 곡선으로 건조된 한국IBM관은 컴퓨터의 발달사와 원리를 전시하고 2인당 1대씩의 PC를 대응시켜 쌍방형 극장에서 컴퓨터내부를 여행하는 한편 퀴즈를 풀면서 컴퓨터와 친숙해지게 될 것이다. 특히 이과정에서 1∼2명이 가장 현실감있는 체험장치의 시승자로 뽑혀 환상의 첨단과학세계를 체험 한다는 것. 한국후지쓰관은 미래사회를 향한 첨단과학기술의 전시를 통해 인류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인류과학관. 인간과 곰을 컴퓨터로 조화시켜 태양빛에 의한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의 근육운동을 거친 모든 생명체의 약동과정을 컴퓨터 그래픽 입체영상으로 보여주는 최첨단 과학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 번영관은 50여개 중소기업이 참여해 각종 첨단제품과 제조과정,경제적의의를 소개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국제전시구역의 마지막으로 데이콤·동아오츠카·마마전기·금강제화·유한킴벌리·유호산업등 중견기업 6개사가 마련한 도약관은 인간의 이미지네이션을 형상화해서 유니크하고 충격적인 형태로 관람의욕을 불러 일으켜주게 될 것이다.
  • 경주 용담(한국의 종교성지:1)

    ◎천도교 최고 성지… 수운 최제우 득도한 곳 한반도는 종교의 땅.각 종파가 주장하는 신도수를 합치면 전체 인구수보다 많다.그러나 이 땅을 발상지로한 이른바 민족종교의 교세는 외래종교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민족전통신앙의 맥을 잇는 성지를 돌아보며 우리민족종교의 현주소를 조망한다. 경주 구미산 기슭에 위치한 용담성지는 포덕 134년을 맞아 민족종교 가운데 맏형격인 천도교 교주 수운 최제우대신사가 득도한 곳.20세때 출가,명산대천을 주유하며 구도의 길을 걷던 수운대신사가 나이 37세 되던해 창세개벽의 포덕원년(18 60년4월5일)을 연곳이 바로 이곳 용담정이다. 대신사는 이날 사시(상오11시경),형용키 어려운 황홀경에 들어가 문득 공중으로부터 천지를 진동하는듯한 소리를 듣는다.『두려워 말고 저어하지 말라.세상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하거늘 네 상제를 모르느냐』이로부터 대신사는 한울님과 이듬해 봄까지 1년동안 천사문답을 벌이는 신비체험에 들어가 마침내 무궁무궁의 대도를 받는다. 포덕5년 대신사의 순도후폐허화 되었던 곳을 19 74년 구미산 일대가 경주국립공원에 편입됨을 계기로 천도교 성역화사업이 추진돼 용담정을 복원하고 그 옆에 용담수도원을 건립한후 포덕문 성화문등을 세워 천도교 최고의 성지로 가꿔오고 있다.
  • 「목련터널 백리길」은 어떤가(박갑천칼럼)

    호암 문일평은 그의 「화하만필」에 『목련은 경성안에도 산정과 별장 같은데는 간혹 심는 수가 있다』고 써놓고 있다.이는 60년전 일제때의 서울 여염에서는 목련을 거의 볼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의 서울은 문호암이 살던 때와는 다르다.목련이 여염이고 어디고간에 적잖이 심어져 봄을 예찬한다.자목련이 없는건 아니지만 대체로 백목련쪽이다.그동안 날씨가 쌀쌀했던 탓인지 서울의 목련은 이제 한창때를 넘어 꽃잎이 하나둘 이울어가는 중이다.엄정행교수의 목련화 노래가 더많이 심게한 촉매 구실을 했던건 아닐는지. 선녀의 옷자락 같은 꽃잎에 취하는 것인지 천사의 가슴에서 나는듯한 향내에 취하는 것인지 모른다.목련꽃 아래 서면 그 고고한 기품에 휩싸여 황홀해진다.구원의 여인상을 그려보게도 한다. 『너/아기의 첫니 같은 그 흰빛/온겨우내 온 천지에 쌓였던/그 많던 백설의 정화냐/춤의 극치로/존재의 종막을 장식하는/저 백조의 눈빛이냐…』.운향 유영인은 이렇게 노래하며 넋을 앗긴다.옛날의 시인 매월당 김시습도 어느 산사의 목련을 보면서 무심할수 없었던 것이리라.『…바람 불면 하늘하늘 흰깃 부채 흔들리고/달 아래선 저만 유독 항아랑 함께 자네…』하고 읊는다.그 흰빛 목련에는 소복여인의 한이 서려있는 것인지 모른다.맑디맑게 살다간 어느 선비의 새하얀 심성이 숨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목련의 꽃망울은 북쪽을 향해 핀다고 했다(최영전의 백화보).그러면서 그렇게 피어나게 된 전설을 싣고 있다. ­옛날 하늘나라 왕이 사랑하는 미모의 공주가 북쪽 바다지기를 흠모하여 찾아갔으나 그에게는 아내가 있어서 비관하여 바다에 빠져죽는다.바다지기는 공주를 땅에 묻어주고 자기 아내한테도 잠자는 약을 먹여 묻은 다음 홀로 살았다.그후 하늘의 왕은 공주를 백목련으로 바다지기 아내는 자목련으로 만들었다.그래서 북쪽을 향한다는 것인데 자세히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식물학적으로는 겨울동안 북쪽은 발육이 더디고 남쪽은 생장이 빨라서 부풀게 된 현상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벚꽃과는 피는 시기도 같다.벚꽃 명소의 놀이소식에 접하면서생각해보는 목련명소이다.꽃을 두고 타박하는 뜻은 아니지만 금방 일본이 연상되는 벚꽃의 명소만 있을 일은 아니다.「목련터널 백리길」도 조성해 볼 만하잖은가.
  • 무용가 이매방씨(이세기의 인물탐구:22)

    ◎날듯한 보법·절묘한 선… “타고난 춤꾼”/안으론 한·밖으론 허공 다스려 관객심혼 울려/「살풀이 춤」은 “미학의 극치·최고무작” 평가받아/옳지않은 일 못참고 욕설잘하는 자유분방한 성품 천명이고 만명이고 관중들의 오장을 속속들이 뒤흔들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매방,타고난 춤꾼 신들린 춤꾼인 그의 괴팍한 성격은 무용계에서는 알아주는 막무가나다.비위가 틀리면 어른이고 제자고 눈에 보이는것이 없다.주춤거리거나 남의 눈치를 본적도 없다.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건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세상의 욕이란 욕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것이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온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산천초목을 움직인다.미끌어질듯 날듯말듯 비스듬히 포개고 떼는 보법이며 무겁게 들어올렸다가 날카롭게 뿌리치는 광대한 능선,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에는 냉혹한 귀기마저 감돌아 관객은 어느순간 전률에 몸을 떤다.아름답고 눈부신 보석같은 춤만으로도 그래서 그의 허물들은 눈녹듯이 용서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않으면 신병에 걸리듯 천수북을 앞에놓고 변죽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몸을 젖혀 엎어치고 휘돌아야만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그중에서도 그의 보념승무는 염불장단과 굿거리 사이사이에 현란하게 두들겨대는 북춤이 일품이다.인간의 고통스러운 열정과 비애를 북가락에 실어 남도특유의 흥과 멋을 종횡무진으로 엇가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는 아현동에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한쪽 귀퉁이에 휘장을 치고 연탄불에다 냄비밥을 끓여먹었다. 결백증이 심해 돈이 오가는 풍조를 체질적으로 경멸하는데다가 재능이 없어보이면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이곳저곳 떠도는 방랑벽,훌쩍 떠나고 소리없이 머물면서 긴 정착을 꺼리는 성격탓에 마뜩한 거처하나 마련하지 못했었다.그의 부대끼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누이가 2년전 타계하면서 유산으로 남겨준 연구소옆 허름한 아파트가 60평생에 처음가져보는 제집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마루한가운데 왜정시대때나 볼수있었던 낡은 싱거미싱한대가 놓여있다. ○무용복 손수지어 입어 그는 옛날부터 꼼꼼한 바느질솜씨로도 유명하다.무용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춤이 훼손될것을 걱정하여 복색일체를 손수 지어입는다.화장과 도련 소매부리를 재단하고 재봉틀에 누비는 귀신같은 솜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룰 정도다. 정종 3병의 술실력,4,5년전까지 만해도 주정·주사가 극심하여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욕설을 퍼붇거나 남의 멱살을 잡기가 일쑤였다. 60년대중반 발레하는 이인범씨와 국도극장 악극단 쇼에 나간것이 말썽이 되어 무용협회가 이들을 제명처분하려던 사건은 무용계의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징계사실을 사전에 안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광란의 주란을 부린 적이 있다. 「먹고 살자는 일인데 너희들이 내게 돈을 줬느냐 쌀을 줬느냐」 게다가 누군가가 그의 춤을 ‘기방춤’으로 격하시키려하자 「궁중무를 빼고 기방춤이 아닌것이 뭐가 있느냐? 너희춤은 양춤이냐발레춤이냐? 뿌리도없는 형식춤을 어디다대고 비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막상 그의 신랄한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한말이래 변질되지않고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춤』을 정명호씨(중대교수)등 여러사람이 감싸주었다.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열린 그의 춤을 보고 원로언론인인 홍종인씨는 이례적으로 「속절없는 슬픔과 기쁨을 아로새겨 나가는가 하면 기쁨도 슬픔도 초월한 파탈의 경지로 솟구쳐오른 황홀」이라는 찬양의 글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또 여성적 미학의 극치로 칭해지는 그의 「살풀이춤」은 극도의 긴장과 절제,어둠과 밝음,괴로움과 갈등을 교차하면서 정속에 폭발을 감춘 최고의 무작으로 평가되었다. 안으로는 한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하공을 다스리는 춤.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어 슬피 끝난 일들을 차곡차곡 망각하려는 애절함을 눈물의 춤으로 승화시키자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마저 파동쳤다. 「덩닥궁 덩다꿍,어깨들고 착착쿵…」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때 보면 숨쉴틈도두지 않는다.지시하고 지적한대로 선을 만들지 못하면 냅다 달려나가 욕설을 퍼붓고 북가락을 내던진다. 변덕스럽고 삐치기도 잘해서 사근사근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하다가도 못마땅한 구석을 발견하면 살차게 뿌리치고 미련없이 돌아 앉는다.끝없는 줄담배,쪽쪽 뻗은 검지와 장지에 꼬나문 담배하며 낮으막하나 재빠른 말씨,아래로 착 내려깐 날카로운 눈매와 여성적인 걸음걸이 등등 그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는 충분치 못하다.진한 사투리의 육두문자와 구성진 입타령 일본춤 스페인춤 흉내,바느질과 다림질 솜씨,무엇보다 사람의 애간장을 뒤흔들어 놓는 살풀이춤을 보고나서야만 그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된다. 지난해 어느 사석에선가 명창 김소희씨가 매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자기예술에 혼신바쳐 『이매방동생은 남못하는 예술을 가진 사람으로써 젊어서는 정말 「개판」이었지요.누구라도 한번 걸렸다하면 밤샘 술을 마셔야하고 휘젓고 돌아다니고 욕설 잘하고,그러나 그 춤만은 현재로선 제가 아는한 전무후무한 명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그 춤만은 가히 당대의 명인이지요』 이른바 재주가 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선 한자리에서도 몇십번씩 무태를 보이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 한때는 그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의 춤을 저승으로 가져가려나 보다」고 무용계가 빈정거린 적도 있으나 그는 몇몇제자를 모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의 춤을 보존하고 전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매방은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이경율씨는 목포 양동에서 싸전과 장작장사를 하는 집안으로 그는 3남2녀중 막내,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을 두루 받았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성취향이 짙어 경대앞에 앉아 춤을 추거나 화장하는 흉내를 즐겼다.『나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세살때나 또는 일곱살때,어쨌든 그 이전에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있던 목포 권번 기생에게 춤을 배우고 권번에서 춤을 가르치던 집안의 할아버지벌인 이대조선생,화순의 박영구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승무검무 법고를 배웠다. ○매란방처럼 살고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은 큰형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 만주 대연과 북경에서 살면서 중국 경극의 대가인 매란방을 만났고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본명인 「규태」를 버리고 그때부터 매방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가졌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간간히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역마살이 뻗친듯 광주 대구 강릉 속초 부산 동래를 전전,형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69년,42세때 부산에서 무용활동을 하는 김명자씨와 뒤늦게 결혼하여 딸(현주·20)하나를 두고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있다. 부산에 머물고 있을때 그의 춤을 귀히 여기던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와 거문고 인간문화재 한갑득씨의 권유로 77년부터 서울정착을 결심하게 되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들끓는 듯한 지난날,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천 관중을 사로잡는 그의 춤에 매료되어 54년,서울 첫 정착때는 신익희선생의 따님인 정균씨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무용연구소를 차려준 적이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특히 그의 「살풀이춤」을 사랑하여 자주 별장에 불러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매일 하오4시부터 4시간씩 연습,이렇게 연습을 해두기 때문에 공연을 앞둔 총 리허설은 해본적이 없다. 해마다 명무전 명인전 전통무용의 밤과 수많은 해외고연에 참가하고 프랑스 렌느 페스티벌에 다녀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공연은 「질색」이라고 거절한다.평생을 통해 그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체면상 해본 일은 없을 것이다.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욕쟁이로 소문이 나고 성질이 괴팍하던 말던,방약무인하고 오만불손하다 하더라도 김소희씨의 말대로 「당대의 전무후무한 명인」,절묘한 선으로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춤솜씨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매방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연보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출생(본명(이규태) ▲1935∼39년 만주 대연에 거주.전남 무안출신 이대조선생 「승무」「북춤」사사,전남 화순출신 박영구선생 「승무」「법고」사사,전남 목포출신 이창조선생 「검무」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87년 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90년 지정) ▲1948년 명창 임방울선생 명인명창대회 「승무」(3고)첫 출연 ▲1953년 전북 군산 국악원주최 명인명창대회 「승무」(9고) ▲1953년 이매방 개인무용발표회(광주) ▲1954년 삼성여성국극단 창극출연 「승무」(7고) ▲1955년 개인무용발표회(문하생 발표 포함·광주) ▲1956년 개인무용발표회(부산) ▲1957년 개인무용발표회 「살풀이춤」(부산) ▲1959년 서울 을지로 원각사에서 개인무용발표회 ▲1962년 광복절 경축예술제 「살풀이춤」(국립극장)(도쿄∼오사카) ▲1968년 일본 대민단본부주최 광복절기념공연 ▲1970년 부산·시모노세키 자매결연기념공연(시모노세키·부산) ▲1975년 부산예총주최 「무용합동공연」(부산) ▲1977년 이매방 「보념승무」발표회(서울YWCA강당) ▲1979년 대한항공 민항 10주년기념공연(미 6개도시 교포위문) ▲1981년부터 제1회 대한민국 전통무용예술제참가(해마다) ▲1982년부터 국악대제전 한국 명무전 출연 ▲1984년 무용인생 50년 특별기념공연 「북소리Ⅰ」(세종문화회관) ▲1986년 미 한미문화센터주최 워싱턴 공연 「살풀이춤」 ▲1986년 아시안게임 축전공연 출연 ▲1987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Ⅱ」(문예극장 대극장) ▲1987년부터 해마다 중요무형문화재공연 출연 ▲1990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Ⅲ」(호암아트홀) ▲1988년 88서울올림픽문화예술축전 참가 ▲1989년 조선일보주최 국악대공연 출연 ▲1990년 중국·북경·연변 교민 순회공연 ▲1991년 한국·일본 무형문화재 합동공연(도쿄) ▲1992년 국악대제전 명무전 출연 예술문화대상·눌원 향토예술대상·목관문화훈장서훈 (승무) 송수남·김진홍·임이조·채향순·국수호·채상묵 (살풀이) 정명숙·유숙희·김정녀·이진주
  • 올 아카데미상 시상식 29일 개최/최우수작품상 3파전 양상

    ◎후보 5편… 「용서받지…」 등 3편 유력/주연상/여­에머 톰슨 물망 남­알파치노 등 각축/감독상/조단·앨트먼·아이보리·이스트우드 경합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은 어느 영화가 차지할까.또 최우수 주연여우상과 남우상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오는 29일 개최될 제6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보름여 앞두고 세계영화팬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미영화아카데미가 발표한 주요11개 부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하워드가의 종말」「용서받지 못한자」「센트 오브 어 우먼」「어 퓨 굿 맨」「크라잉 게임」등 5편. 이중 수상이 가장 유력시되는 영화는 감독상 여우주연상등 9개부문상 후보에 오른 「하워드가의 종말」과 주연남우상 감독상등 역시 9개부문상 후보에 오른 「용서받지 못한자」,그리고 「어 퓨 굿 맨」의 3파전이 될것으로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은 점치고 있다. 「하워드가의 종말」은 20세기초 판이한 배경과 사고를 가진 두 집안을 통해 계급갈등,인간의 탐욕,사랑과 화해를 밀도짙게 그린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용서받지 못한자」는 무법자생활을 청산한 한 총잡이가 부패보안관에 대항,다시 잔혹한 킬러로 변해가는 과정을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묘파한 리얼리즘영화로 평가받고있다. 또 「어 퓨 굿 맨」은 한 젊은 해군법무관이 군수뇌부의 회유와 압력속에서 병사의 억울한 사망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과정을 매우 예리하면서도 이지적으로 묘사한 수작이란 찬사를 받고있다. 감독상후보에는 「크라잉 게임」의 닐 조단,「하워드가의 종말」의 제임스 아이보리,「플레이어」의 로버트 앨트먼,「센트 오브 어 우먼」의 마틴 브레스트,「용서받지 못한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등이 올라있는데 이중 제임스 아이보리와 마틴 브레스트 로버트 앨트먼의 경합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영화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있는 여우주연상에는 에머 톰슨(하워드가의 종말) 수잔 서랜던(로랜조의 오일) 미셸 파이퍼(러브 필드) 패숀 피시(마리 맥도넬) 카트린느 드뇌브(인도차이나)가 경합중인데 이중 제일 유력시되는 여우는 에머 톰슨.그녀는 이미 「하워드가의 종말」을 통해 아카데미상의 지표가 되는 골든글로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데다가 경합중인 여배우들이 그녀에 필적할만한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고있어 수상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분석들이다.그러나 남우주연상은 이와는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용서받지 못한자)알 파치노(세트 오브 우먼) 덴젤 워싱턴(말콤X)이 각축을 벌일것으로 예상하고있다. 이밖에 남우조연상에는 잭 니콜슨(어 퓨 굿 맨)과 진 헤크먼(용서받지 못한자)이,여우조연상에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하워드가의 종말)와 조앤 플로라이트(황홀한 4월)의 경합으로 압축될것으로 영화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 아동문학가 어효선씨(이세기의 인물탐구:19)

    ◎동심에 「사랑심기」 한평생/간결·치밀한 문체로 127권을 펴낸 “노소년”/「꽃밭에서」·「과꽃」 등 대표작 “동요의 고전”으로/특유의 문장력갖춘 수필·문인화도 상당한 경지 『이 눈매좀봐,부처님처럼 웃으시는군』 『모나리자의 미소는 유가 아냐』 『이렇게 부드럽고 깨끗하시고야.인품이 곧 예술이야.이러니까 위대한 예술을 낳으시지』 이는 원당 김정희의 흑백 초상 사진한장을 놓고 난정 어효선씨가 감탄해 마지않는 장면이다.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번은 난정의 고서화취미를 알고있는 후배작가 이상현이 그의 집에 있던 원당의 글씨 한점을 가져다 보이겠노라고 했다. 「뭐라고 적혀있나」 「글씨체는 어떤가」 「호는 무엇으로 쓰셨던가」꼬치꼬치 캐묻고는 글씨때문에 그날밤 잠을 설쳤고 다음날도 일이 손에 잡히지않아 대문만 바라봤다는 얘기다.드디어 글씨를 대하는 순간의 감동을 그는 「□서일기」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비단으로 꾸몄다.무자가 둥근 무늬위에 적혀있다.진회색 둥근 무늬가 일곱개,그 무늬위에 한자씩 또박또박 적혀있다.무쌍채필산호가,만향로인에 원당도장을 찍었다」고. 「노과」니 「노원」 「노홍루」며 「칠십이구당」등 완당의 여러 호를 알고있었지만 「만향로인」은 처음이어서 그는 도무지 흥분을 감출수 없었다.그날 이 글씨를 사진 찍어두고는 완당을 애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완당의 예서를 뵈온날,그 위대앞에서 황홀했다기보다 사뭇 혼도직전에 있었다」고 극구 자랑삼았다. 『중국학자들과 문교계실때 쓰신 노필이지.가로 그은 획이 중간에서 멈칫했다가 다시 힘을 주었어.만향노인,불교의 성화인 만다라화의 향기라는 뜻일게요』그는 진필을 대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사진이라도 찍어둔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사진이 되면 한장씩 드리지』했다. ○어릴땐 춘원·육당에 매료 이처럼 깨끗한 선비의 인품과 천진한 동심을 지닌 이가 아동문학가 어효선씨다. 「늘 현재생활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살만한가」,사는 일을 심각하게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똑바른 심성이 그 숱한 주옥편의 동화 동시를 쓸수 있었으리라는생각이다. 어릴때는 춘원과 육당 위당 정인보선생의 글과 글씨가 실린 잡지를 오려서 문집을 만들고 표지에다 「어효선 저」라 쓰고는 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장래 그와 같은 인물이 될것을 그는 꿈꿨다. 그리고 그당시 쌀알위에다 「깨알보다 더 작은 글씨」를 써서 유명해진 부친 어재환씨보다 이웃에 살고있던 소석 김태희씨댁에 드나들면서 한문과 붓글씨를 배웠다. 소석은 기독교신자였으나 자택에서 예배를 보고 복음신보를 만들던 이른바 무교회주의자였다.아직 10대의 나이에 고서화를 감정하고 감상하는 노객들 틈에 끼여들어 그는 「노소년」이란 별명을 들으며 추사의 세계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동요를 짓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었다.매동국민학교 교사시절 학생들이 졸업할때와 학생들이 스승을 생각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하는 윤재천교장의 권유에 따라 「졸업축하의 노래」와 「선생님의 은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보다는 52년 피란지 대구에서 쓴 「꽃밭에서」가 단연 대표작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습니다.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6·25의 배경이 실린 이 동요는 권길상의 곡이 붙여져 전국으로 파급되었고 다음해 쓴 연작동요 「과꽃」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사랑을 받게되었다. 「올해도 과꽃은 피었습니다.꽃밭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살았었지요」 그러나 이때 스승처럼 모시던 강소천씨가 『당신은 왜 그렇게 슬픈 노래만 쓰느냐?』고 타박했다. 특히 「꽃밭에서」의 2절중 「아빠가 생각나서 꽃을 딴다」,「아빠는 꽃처럼 살라고 했다」는 구절은 동요가 아니니 바꿔쓰라고까지 꼬집었다. 선비적 소극성을 미덕으로 알던 난정으로서는 소천의 이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꽂혀 한동안 헤어나올수 없는 커다란 충격이 되었다.오죽하면 61년 첫 동요집 「봄 오는 소리」를 출간할 때 그는 끝내 이 「꽃밭에서」를 빼버리고 말았다.소천은 그만큼 그에게 영향력이 큰 존재였다. ○강소천에 많은 영향받아 그의 나이 60세가 되던 85년 동화 「새처럼 훨훨로 뒤늦게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기쁜 날도 평생 처음이고 이렇게 부끄러운 날도 평생 처음』이라는 착잡한 소감으로 지난날을 되새겼다.존경하던 소천의 상을 받는 일은 기쁘나 환갑이 되어서야 이를 수상하게 된것이 새삼 쑥쓰럽다는 뜻이었다. 난정은 14대째 집안이 서울서만 살아온 서울토박이다. 종로구 인사동에서 태어나 낙원동 골목에서만 33년,불광동으로 이사한 후에도 노부모를 모시고 아들가족과 4대가 한집안에서 사는등 옛스러운 풍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했다. 「유리창에 비친 달보다 완자창에 비친 달빛,아스파라거스보다 난초나 수선화,이동백의 창과 거문고,다홍색 댕기에 비취잠,연옥색 모시치마를 입은 여인」의 우아미를 운치의 극치로 찬양했다. 「난정」이란 호도 「난을 가꾼다」는 뜻으로 스스로 지어가진 것이다. 서재에 매화가 피면 「방안에서 맞은 이른 봄의 멋을 혼자 보기 아까워」친구들을 불러모아 다를 즐기거나 그림을 그린다.그리고 매화가 좋아서 그려본 그림을,써본 글씨를 친구들에게나눠 주기도 하지만 청한다고 해서 아무때나 선뜻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수십년 친구인 원치호씨(전 서울YMCA총무)가 그림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예가 그렇다. 그의 문인화는 「상당한 경지」로 평가되어 여러 전시회에 초청되고 올 감정원 달력그림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즐거움으로 멋으로 하는 이런 것을 값어치로 따지지도 않는다. 동요·동화뿐 아니라 향기높은 난정 수필은 원고를 청탁한 편집자들을 그때마다 감탄케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 치밀한 문체는 하나의 운문적 효과를 양성하여 「난정 특유의 문장술」을 이루고 있다. 또 동화나 수필의 배경은 언제나 종로의 좁은 한옥과 유치원,학교와 골목 안으로 한정되어 어린시절에 대한 그의 애절한 그리움을 면면히 담고있다. 등장인물도 일선에서 물러난 영락한 노인과 도심속에 버려진 외로운 동심,노년과 유년이라는 세대간의 격차를,결국 「사랑」이라는 심리적 대비로 승화시켜서 전편에 뜨거운 감동을 담는 것이 특징이다. 「자라는 아기들,귀여운 그들에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사람과 사람사이의 오고가는 정,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심어주는 일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며 그래서 그만이 할수있는 「어효선 동시 동화」를 남기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20대엔 국민학교 교사,30대부터 출판사의 여러 소년잡지,수많은 어린이 글짓기대회등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현재 근무처인 교학사에 몸담은지 벌써 20년,한평생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동안 써낸 동요·동시·동화집이 1백27권이나 된다. 이제는 시대변화에 따라 2남2녀를 모두 분가시키고 지금은 서교동에서 노부부(부인 한정애씨)가 90노모(이을남여사)를 모시고 있다. 빠르게 마시는 술,끝없는 줄담배,일요일이면 오랜 산친구인 남정 박노수 삽화를 그리는 김세종 고대 철학교수인 김충렬씨등과 북한산에 오르고 평소엔 아침 8시10분이면 회사에 출근하여 바쁜 일과 틈틈이 「붓장난」을 즐긴다. ○어린이관련 일 몰두 여전히 「웃는듯 우는듯 춤추는듯 성낸듯 세찬듯 부드러운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있는 원당을 완상하고 매란의 고결한 향취에 심취하려는 것은 언제나 깨끗한 동심에 머물러 좀더 밝고 맑은 어린이의 세계를 그려내고 싶은 바람에서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여요/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잎으로/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파아란 하늘보며 자라니까요」 소천에게 타박받은 답례로 「파란마음 하얀 마음」을 쓰고 나서야 동심에 상심을 줄 것을 우려한 소천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늘처럼 푸르고 흰눈처럼 깨끗하게」살고싶은 선비의 소박하고 간절한 기원처럼 언제부턴가 난정 그의 미소속에는 때묻지 않은 싱그러운 「예술」이 문득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연보 ▲1925년11월 서울 종로 인사동 출생,서울 중앙유치원­교동국민학교 졸업,소석 김태희 문하 서예 사사 ▲43년 서울 한영중학원졸업,청서가 자정 하소기 화첩으로 화익힘. ▲43년 일본흥아 서도 연맹주최 전국서도 전람회 동상입상 ▲44년 계명학원 출강 ▲45년 매동국민교 교사 ▲47년 서울시 초등교육검정고시합격 ▲48 「졸업축하의 노래」「선생님의 은혜」작사(박재훈작곡) 아동문학가 이원수선생교류 ▲49년 문교부주관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노래 현상모집 동요 「어린이 노래 당선」이후 「어린이」 「소년」 「새동무」 「아동구락부」에 동요·동시 발표 ▲51년 피란지 부산 토성국민교교사,윤석중 윤극영 권길상선생교류 ▲52년 대구에서 동시 「꽃밭에서」(권길상작곡)발표 ▲53년 남산국민교 교사 동시「과꽃」발표 ▲55년 「학생계」(주간 박두진) 창간호 편집 ▲56년 새싹회 창립 동인 ▲57년 동요「파란마음 하얀마음」(한동희작곡)발표 ▲57년 「소년계」편집장,서울사범학교 근무 ▲57년 고려대 국어학과 3년 수강(연구생) ▲61년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초대 편집과장 출판사,「어문각」창설 멤버 「새소년」지 창간(주간) ▲67∼73년 금란여고교사 ▲73년∼현재 교학사 주간·한국문협이사·문예교육연구회 고문 신세계백화점주최 한국문인서화전,문인여기전,한국소설가협회 유고문인돕기 문인서화가 백자도예전,기독교방송주최 선교1백주년 기념 도서화전 문예교육연구회 초대회장,대한적십자 청소년적십자 자문위원 소년동아일보편집위원 소년중앙·세종아동문학상 심사위원 KBS 방송자문위원 저서 동화 「소나기 그치고」 「달나라소동」 「집나간 바둑이」 「개나리피면」 「도깨비나온집」 「나비잡는 할아버지」 「느티나무」 「종소리」,동요 「봄오는 소리」 「우리집」 「인형아기잠」 「고조끄만 꽃씨속에」 다시본 한국전래 동요·동화(전23권),번역서외 127권,수필집 「멋과 운치」(각 학교교가 31편) 출판문화상,한정동아동문학상·서울시문화상,소천아동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KBS 동요대상
  • 국악인 양승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8)

    ◎죽파의 가야금산조 득음 “외길 인생”/혹독한 수련 견디며 「명인」 향한 일념 불태워/뉴욕 독주회땐 “동양의 신의 경지” 격찬받아/세계 명대학에 한국학과설치 위한 모금연주 등 활동 활발 가볍게 튕기고 힘차게 엮는 줄은 가락마다 깊은 시름,희비가 엇갈려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을 한없이 풀어낸다.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옥수 어느 때는 성긴 빗방울에 오동잎 스치듯,일렁이는 파도에 하늘이 소스라치듯 성난 폭우에 수면이 갈라지고 뇌성이 번뜩인다.활짝 핀 꽃송이가 삽시에 저버리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절제미,청정과 청쾌가 선명한 양승희의 가야금 산조를 듣고있노라면 문득 연전에 돌아간 죽파의 운율이 되살아난다. 명인의 길에 오르기엔 젊고 눈부신 나이,화사하고 여린 용모,그러나 무대에서의 능란하고 당당한 연주솜씨는 당대 명인을 계승한 후계자다운 풍모다. 경건함 중에도 정한의 기개가 감돌고 줄을 타는 손끝에서 처절과 애련이 여울져 스승을 잃고 홀로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양승희는 스승인 죽파 가야금산조 하나에 그의 전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산조 일인자를 꿈꾸며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스스로 감내해왔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새삼 돌이켜볼 여유는 없다.다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르다해도 미동도 지체도 할 수 없는 위치다.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길 이전에 「죽파 가야금 산조의 가문」을 이어갈 공인이며 예인의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죽파 김란초는 가야금 산조 창시자의 한사람인 김창조(1865∼1920)의 친손녀로 그는 조부의 산조에다 단몰이(세산조시)를 창작해넣어 독자적인 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성립,국내외에 1백여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있었으나 양승희를 후계자로 삼아 바로 이 산조를 계승시키고 있었다. 양승희는 스승으로서의 죽파의 삶을 전적으로 맡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죽파의 모든것,예술혼과 예술성,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신과도 같은 인연이다. ○곡해석·연주력 출중또 「뛰어난 곡해석과 연주력,끈질긴 노력과 집념,죽파가야금산조를 잇는데 최선을 다하는 지속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비범등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 국립국악원 이승렬원장의 지적이다. 스승댁에 머물면서도 새벽에 눈뜨자 연습,장고에 맞춰 다시 한번,그리고 스승과 맞춰보고 학교에 다녀와서 한바탕 연습,단 한번도 스승을 거스르거나 거역하지 않았다. 「교수」보다는 「연주가」이기를 원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국악의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황병기 나인용 백병동등 국내작곡가들의 창작곡을 받아 초연으로 기량을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시립국악관현악단·시향·KBS교향악단과의 대연주회 협연,1년에 수십차례의 해외연주 활동등은 죽파로 하여금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마음껏 자랑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85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가진 독주회 평과 사진이 실린 워싱턴 포스트지를 보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그때 미국의 저명 음악평론가인 마리온 자콥슨은 양승희의 가야금연주를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솔로를 보는 듯한 황홀감」에 비유,「55분동안의 연주는 꼼짝없이 청중을 사로잡아 마치 동양의 선의 경지를 경험케 했다」고 쓰고 있다. 89년 79세의 나이로 스승이 몸져 눕게되자 양승희는 고려병원에 모시고는 꼬박 3개월을 그의 곁을 지키면서 스승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려면 「몸이부어 손가락자국이 깊이 남는다」고 안타까워 했고 이를 지켜본 국악계의 김소희씨며 박귀희씨는 『형님은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부러워 했었다. 같은해 9월17일 임종하기 직전에 죽파는 양승희부부를 불러 유산정리와 함께 자신의 장례를 부탁했다.스승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양승희는 당연히 상주가 되어 장례기간의 상례지휘는 물론 삼우제와 사십구제,소상제와 대상제,91년에는 고인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여는등 스승과 가까웠던 국악계의 원로들을 참여시킨 무대를 마련하여 「난죽같은 사제의 정」을 변함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양승희는 본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때 정치를 하는 부친을 따라 집안이 모두 강원도 원주로 이사.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다가 한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원주여고 2학년 되던해 가야금을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서울대 김정자교수에게 가야금을 사사,처음부터 가야금의 가락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타고난듯 악기에 밀착되는 감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70년 4월 역시 김정자교수의 소개로 사직동에 있는 죽파문하에 입문,그때부터 만19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고2때 가야금 시작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스승은 한올의 음정차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혹하게 교육시켰다.하루 6시간에서 7시간,어느때는 10시간을 해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듯 했다.마음에 들지않으면 노안에 광채를 번뜩이며 가차없이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부군 노만균씨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3년후인 76년에야 뒤늦게 결혼해야 했다. 「결혼하면 가야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승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으나 「결혼후에도 가야금 계속은 물론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시댁측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안심하는 빛이었다.혈육이 없던 그는 친딸같은 양승희에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옥가락지를 물려주면서 「부디 가야금 가문의 대를 이어줄 것」을 두번 세번 당부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7년간의 혹독한 피나는 훈련과 수련에도 득음하지 못한 제자를 몹시 나무라는 눈빛에 양승희는 결혼 1년만에,낳은지 백일도 안된 아들을 시어머니(송재임여사)에게 맡기고 다시 스승의 문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는 그때 가야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어린 자식을 떼어놔야 하는 마음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부군은 고대와 프랑스유학후 국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시댁은 훌륭한 가문과 가풍으로 양승희는 얼마든지 풍족한 환경에서 아마도 안락을 누릴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파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박사과정까지 서둘러주었다. ○지난의 수련과정 겪어가야금은 악기를 다루거나 기교를 가르치는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말과 마음으로 전하는 구전심수만이 참다운 예도였다.그해 6개월 다음해 다시 6개월,80년에는 9개월간이나 스승곁에서 성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했다. 「학이 살포시 나무가지에 내려앉듯 햇빛 찬란한 해변에 잔물결 반짝이듯 용이 승천하는 힘찬 기운과 동시에 사방이 잠잠하여 침묵하듯 연주하라」는 것이 스승의 연주 지침이었다.차차 국악계의 원로들로부터 「죽파 전성기때의 소리가 난다」는 칭찬과 「매운 손끝에 만만찮은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럴수록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가야금에 매달렸다.이는 판소리에서의 폭포수같은 성음을 위한 폭포독공백일수련에 못지않은 지란의 과정이었다. 죽파의 총애와 편애로 동료들의 질시와 따돌림이 따랐으나 스승은 그때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에 띄는 법,어중간히 날면 백발백중 돌에 맞기 쉽지만 힘찬 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고 감싸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그의 나이가 다했음을 애석하게 여겼다.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간듯 어쨌든 지난 세월속의 시련은 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주었다. 그는 세계 각 유명대학에 한국학과 설치를 위한 기금모금 연주등 91년에 10여차례,지난해 20여차례,올해도 연초와 2월까지 유럽지역 순회와 터키연주등 연말까지 해외연주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물론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죽파기념관을 세우는 일,전수생들을 위한 연주무대 마련,이에 앞서 스승의 이야기를 창극으로만들기 위해 극본과 음악을 작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해놓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진양조에서 중몰이 중중몰이에서 자진몰이 휘몰이 단몰이 장단배열을 갖는 죽파산조를 한바탕 타고나면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한낱 물거품이라던 스승의 말이 불현듯 새삼스럽다.원형리정,이제 사계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산조가락의 하나하나가 그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 자신이 바로 가야금이 되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음으로 음조를 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조미의 극치에 이르고 싶은 것이 오직 절실한 그의 기원이다. □연보 ▲1948년 6월 서울출생,양주창씨(92년작고)와 박정옥여사의 2남4녀중 장녀 ▲58년 집안이 원주로 이사 ▲73년 서울대 음대 국락과졸업 ▲75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86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박사학위) ▲75년∼93년2월 서울대 국악과강사 ▲76∼80년 동덕여대·목원대·성심여사대강사,이대·중앙대출강,한국가야금연주단단장,중요무형문화재23호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이수자,준인간문화재 죽파 김란초를 비롯,이창규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사사 ▲71년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 「죽파류 가야금 산조」독주 데뷔 ▲75년 서울국립국악원주최 신인음악회협연(이성천지휘) ▲77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79년 가야금 독주회(세종문화회관)·제1회 유네스코주최 2인음악회(가야금 양승희,거문고 김선한) ▲80년 가야금 독주회(공간사랑)죽파류 55분 가야금 산조 ▲82년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지휘 발터 길레센) ▲83년 무형문화재 예술단 창단 1주년기념 특별연주 ▲85년 대한민국음악제 KBS교향악단 협연(지휘 홍연택) ▲85년 미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주,자유중국·일본 독주회 ▲86년 자유중국 NewAspect 초청 국제예술제 국제 고쟁 명가대회참가 ▲88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국악원 국악당) ▲89년 서울시향 범세대연주회(세종문화회관) ▲89년 KBS국악대상 축하공연외 해외연주8회 ▲90년 백두산 제천대회,가야금독주회(예음홀)해외연주 7회 ▲91년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 해외연주 10여회 ▲91년 고 죽파 김난초선생 추모음악회주관(국립영화제작소 영화제작)등 해외연주 20여회 ▲92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청연주 ▲92년 대한민국음악제 연변 김진교수와 남북한 가야금 비교연주등 해외연주 20여회 ▲93년 우즈베크스탄 공화국대 한국학과 설립기금모금외 유럽지역 연주 황병기 작곡 「비단길」「영목」 「밤의소리」「남도소리」 관현악곡 「7현을 위한 새봄」편곡 「Amaging Grace」나인용작곡「가야금 협주곡 도약」「용」「영상」이강덕작곡 「가야금 협주곡Ⅴ」정윤주작곡 「황병기주제에 의한 가야금 콘체르토」백병동작곡 「환명」 제1회 KBS 국락대상,중요무형문화재 예술상 공로상,KBS FM 명인 CD 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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