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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BC 20주년 기념작 ‘라 바야데르’ 인도의 화려함 물씬

    이국적인 정취와 다채로운 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유니버설발레단(UBC·단장 문훈숙)의 대작 발레 ‘라 바야데르’가 8일부터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UBC 창단 20주년 첫 무대로 마련된 ‘라 바야데르(인도의 무희)’는 99년 국내 초연 당시 객석을 압도하는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던 작품.150여명의 무용수,8억원의 제작비라는 발레 공연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전 3막5장으로 구성된 ‘라 바야데르’는 인도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젊은 전사 솔로르,공주 감자티의 삼각사랑을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187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 마린스키발레단에 의해 초연됐다.인도의 화려한 색채감을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춤이 쉴 틈없이 무대위에 펼쳐지는 1막과 2막에 이어 3막에서는 32명의 발레리나가 흰색 튀튀 차림으로 선사하는 백색군무의 절정을 감상할 수 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서 기량을 닦은 강예나와 초연 무대에서 황홀한 춤사위를 선보였던 임혜경,그리고 UBC의 차세대 주역 황혜민이 세 가지 색깔의 니키아를 연기한다.남자무용수로는 엄재용 황재원 왕이가 각각 커플을 이룬다.1588-7890. 이순녀기자˝
  • [토요일 아침에] 산 아래로/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얼마전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독교 관련 국제기구의 재정담당 책임자의 방문을 받았다.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국제활동을 위한 모금 문제로 옮아갔다.그 분의 말인즉 자기의 출신국인 태국의 조류독감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그런데 태국에 없는 엄청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양계협회와 오리협회가 발표한 조류독감 감염자에 대한 20억원 보험 보상금 이야기를 꺼낸다.솔직히 말해서 모금도 잘 안되고 있는데 서울에서 닭고기를 먹고 독감에 걸려 20억원을 타면 좋겠다고 한다.그 돈이면 자기가 봉직하고 있는 기구의 재정에 커다란 공헌이 되겠다면서 껄걸 웃는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고 애틋해 보였다. 보상금 이야기가 오죽하면 세인의 관심을 끌까.조류를 먹고 사는 사람이 피해자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크게 보면 조류독감은 인간의 환경 파괴의 귀결이고 조류도 인간도 동시에 피해자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으면 좋겠다.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대자연 속의 조류에는 아직은 독감이 만연한다는 보고가 없으니 말이다.인간 세계의 책임은 환경 세계에 대한 공생적 책임을 수반한다.창조의 신비만 말할 게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에 대한 책임을 말해야 할 시점이다. 유명한 화가인 이탈리아의 라파엘은 15세기 말엽에서 16세기 초엽까지 살았다.37번째 생일날 운명했다.사망하기 3년전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신약성서에 나온 예수의 ‘산상변모’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달라는 부탁을 받아 완성하고는 생애를 마쳤다.장례식은 교황 주재로 엄숙하게 치러졌다. 산에 오른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세 제자가 보는 앞에서 밝은 빛과 흰 옷입은 사람으로 변모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성인으로 섬기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산 중턱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수제자 베드로는 산에 궁궐같은 초막을 세 채 지어 예수,모세,엘리야와 함께 영생을 누리자고 제안한다.얼마다 황홀했으면 그랬을까.그러나 예수는 산 아래에서 신음하는 군상들의 세계로 내려가자고 타이른다.산 아래에는 귀신들린 아이와 애통을 씹는 그의 아버지,입에 풀칠하며 겨우 살아가는 불쌍한 군중,하산을 기다리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산 중턱의 제자들은 상승하려 한다.꿈을 보았고 신비스러운 ‘저 높은 곳’의 실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하지만 높은 곳의 세분은 언제 하산하여 인간세계,환경세계의 구원을 어떤 방식으로 이룰지 황홀경에서 대담하고 있었다. 예수는 하산했다.군중 속에 몸을 던졌다.그리고 세상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죽음을 자초한다.하지만 부활의 몸으로 등장한다.산상의 황홀경을 ‘이 낮은 곳에서’ 실재화한 셈이다. 인간의 상승욕구는 공통적 특성이다.오늘날 부패사슬에 연루된 정치와 사회 지도층은 하산하지 못한 채 권력과 부의 황홀경에 빠져 상승욕구만 채우다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고 제집도 아닌 교도소에서 전혀 다른 하산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지도자는 산 위의 꿈을 산 아래의 백성에게 심어주고 실현시키는데 헌신할 때에야 행복할 수 있다.산 아래에서 백성과 희로애락을 몸으로 나누면서 가슴으로 껴안는 행복 말이다.인간세계와 창조세계의 구원을 선포하는 종교도 빨리 하산해야 한다.꿈과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자진하여 내려오지 않으면 결국에는 버림받은 모습으로 나락에 떨어진다.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 [김영희 이혼클리닉-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 “이젠 내가 매력없다며 남편이 외도 하는데…”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36세 가정주부입니다.남편(37)은 벤처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2년 전부터 외도를 합니다.정말 괴롭습니다.매력없는 저하곤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니….이혼해야 할까요? - 김정옥 드림 김정옥씨.옛말에 시앗을 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지요.자식들 보기도 민망하겠습니다.남편 외도를 처음 알았을 때,적극적인 대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외도하는 사람들은 갖은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늘어놓지만,간혹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그 동안 저는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자신의 외도를 눈물로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남편외도로 이혼하려는 부부가 있었습니다.남편이 저를 찾아와 있는 재산 다 주더라도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했습니다.아내가 고집이 세고 사나워서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한 후엔 한 달이 가도 말을 않고,밥도 빨래도 해주지 않으며,밤늦게 들어와선 ‘꽝’하고 방문 닫고 들어가 이불 덮어쓰고 돌아눕고,말을 걸면 소리 지르고 대드니 이젠 정나미가 떨어져 못살겠다고 했습니다.집에 가봤자 마음 붙일 곳이 없어 퇴근해도 들어가기 싫고,그러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여자를 만나게 됐고,그 여자의 따뜻한 마음씨에 마음이 가더랍니다.찬바람만 쌩쌩 부는 집,마치 전쟁터 같은 집 아버지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는 집,앉을 자리가 없는 남편은,가정이라는 둥지를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옥씨.먹기 싫은 밥은 두었다 먹을 수 있지만,싫은 사람하고는 못살고 부부도 돌아누우면 남이라는 말이 있지요.신혼 초엔 나 밖에 모르던 남편이 이제와선 매력이 없다며 “집에서 화장도 좀하지,옷은 또 그게 뭐야.에이,당신은 미장원도 안 가? 머리 꼴은 뭐야.”하면 “흥,누군 멋 낼 줄 몰라서 안 해? 애들 땜에 정신없는데 팔자 좋은 소리 하네.애교? 내가 웃음 파는 여자야.”라고 받아치고.신혼 초엔 나긋나긋 매력 넘치던 아내가 말도 아무렇게,옷차림도 아무렇게,아무데서나 훌훌 옷을 벗고….잠자리에서 짜릿한 감정은 물 건너 간 지 오래고,살아야 하니 그저 살고 있는 것뿐이라는 남편들도 많답니다. 저는 미국에서 10여년 넘게 살아온 동안,잊혀지지 않는 것중 하나가 그곳 여성들의 침실 단장입니다.어느 미국 가정에 저녁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마침 침실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방문을 여는 순간 ‘와아’ 하고 놀랐습니다.아름답게 꾸며진 침실에선 은은한 꽃냄새 향수가 코끝을 자극하고,서랍장 위 크리스털 꽃병에는 아이보리 장미꽃이 은은한 조명 아래서 더욱 예쁘고,침대 헤드보드에 장식된 순백의 레이스 하며….황홀했습니다.‘맞아! 부부 침실은 이래야 되는 거야.’ 미국에서 유명한 V속옷 전문점에는 하루종일 여성들로 붐빕니다.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보디로션과 향수들,속살이 들이비치는 섹시한 잠옷들,풀잎 향이 나는 목욕 비누들,바구니 가득가득 쌓여 있는 포플리가 내뿜는 그 현란한 향기.더 아름답고,더 섹시한 여성이 되기 위해,긴 줄을 서서 지갑을 열고 있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행복해 보였습니다.값비싼 외출복의 겉치장보다 스위트홈을 만들기 위해 집단장하고 부부만의 은밀한 곳,그곳을 여인의 향기로 꽃피우려는 노력이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리 거센 바람도,바람은 스쳐갈 뿐입니다.이혼을 결심하기 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런 노력을 해보세요.남편이 매력없어 못 살겠다니,신혼 초 매력 있었던 아내로 돌아가 보세요.예쁜 잠옷도 사고,신혼 때 뿌렸던 그 향수도 뿌려보고,립스틱도 바꿔보고,부스스한 머리에 무스도 발라주고,잠자리에선 섹시한 아내가 되시고요.삶의 질 속에는 부부의 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옥씨.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남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약주와 저녁식사를 대접하고,오락도 하고,정옥씨도 합석하다 보면 남편과 어울리게 되고,그런 자리를 당분간 자주 만들어보세요.가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구차스럽다,치사하다 생각지 마세요.최선을 다한 노력도 허사일 때는,헤어질 수밖에 없지요.남편의 외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답하기가 어렵습니다만,그동안 이혼조정과 상담을 해온 결과,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한 사람들 중 ‘그때 참을 것을…’하며 후회하는 사람도 많더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남편의 축처진 뒷모습을 보며 아내 가슴이 미어지고,아내 얼굴의 주름살을 보며 남편 가슴이 시려오는,내 진정 소중한 사람,여보 당신.그 아름다운 이름은,‘부부’라는 이름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 ‘김영희의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차 이야기]장미차

    사랑을 전하는 꽃 장미.흔히 장미의 매력 하면 아름다운 자태와 취할 듯한 향기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장미가 눈과 코만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꽃 송이를 차로 만들어 마시면 은은하면서도 새콤한 맛에 입이 황홀하다.한 잎 마시면 입안 가득 꽃 한 송이를 머금은 듯한 느낌이 든다. 중국의 대표적 화차(花茶)가운데 하나인 장미차.식용 장미를 송이째 쪄서 만든다.향이 좋은 만큼 구취(口臭)해소에 좋고 식욕 부진에도 도움이 된다.그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답게 피부 미용에 좋다.스트레스 완화와 우울증에도 도움이 된다. 90℃ 정도 되는 뜨거운 물에 2∼3송이를 넣은 다음 여러 번 우려 마시면 된다. 나길회 기자 ■ 도움말 신성숙 차가람 대표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눈부신 서리꽃 세상/’상고대’ 한창 핀 덕유산 산행

    겨울산에 가면 두가지 꽃이 핀다.하나는 가지마다 소담스럽게 쌓인 눈꽃이고,다른 하나는 ‘상고대’로 불리는 서리꽃이 그것이다.눈꽃이야 야외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상고대는 고산지대,그것도 특별한 기후 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겨울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덕유산은 상고대가 한창이다.무주리조트 스키 슬로프 꼭대기인 설천봉에서 향적봉,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하얗게 상고대가 피었다.길 옆의 싸리숲과 철쭉 나뭇가지에도,기품있게 자란 주목과 구상나무 이파리에도,미처 푸르름을 감추지 못한 길가의 풀잎까지.그저 형상을 갖추고 있는 모든 나무와 풀엔 어김없이 상고대가 꽃을 피웠다. ●따뜻한 날엔 오전 11시이전 올라야 감상 상고대는 청명한 겨울밤에,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대기중 수증기가 나뭇가지 등에 달라붙어 얼면서 생기는 현상.그래서 나무서리,즉 수상(樹霜) 또는 수빙(樹氷)이라고도 하고,안개가 얼어붙는다는 뜻에서 무빙(霧氷)이라고도 한다. 덕유산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상고대 산행을 즐길수 있는 몇 안되는 산 중의 하나다.최고봉인 향적봉 높이가 1614m에 달하지만 산행 기점인 설천봉(1525m)까지 편안하게 관광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곤돌라 탑승료는 왕복 1만원,편도 6000원. 설천봉부터 향적봉까지는 등산로가 비교적 평탄하다.조금 가파른 곳은 나무계단까지 만들어 놓아 서너살짜리 아이들이 오르기에도 부담이 없다. 향적봉 정상은 밋밋하다.소담스러운 눈꽃과 상고대를 보며 올라와선지 나무와 풀이 없는 정상 모습은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누군가 쌓아놓은 돌탑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정상에 서니 사방이 탁 트였다.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산 뿐,산 틈새로 손바닥 만한 마을이 몇 개 보일 듯 말듯하다.남덕유산,적상산,마이산,가야산,무등산,계룡산은 물론 지리산 천왕봉까지 시야에 잡힌다.봉우리와 능선이 겹쳐지며 이어지는 준엄한 산세가 경탄을 자아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고사목 볼거리 향적봉에서 남덕유산(1507) 가는 길엔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마치 사방이 하얀 서리로 덮인냉동창고에 들어온 느낌.상고대는 기온이 영하로 유지되면 하루종일 볼 수 있지만 영상으로 올라가면 녹는다.따라서 날씨가 따뜻한 날엔 늦어도 오전 11시 이전까지 올라가야 감상할 수 있다. 능선길 주변엔 고산성 수목인 주목과 구상나무 등이 군락을 이뤄 운치를 더한다.나무 모양과 이파리 생김새는 분명 다르지만,무게와 기품이 느껴지는 건 둘이 똑같다.덕유산 주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예전에 마패(馬牌)로 쓰였다고 하는데,현재 300∼500년 수령의 주목 1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이파리는 없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주목 고사목(枯死木)도 볼거리.주목은 ‘살아서 천년,죽어서 천년’이라는 찬사가 붙어다닌다.오히려 이파리 없이 몸체와 굵은 가지만 남은 고사목이 더 멋스럽다는 이들도 있다.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속살이 더 굳어져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고사목 감상은 덕유산 산행의 또 다른 재미다. 상록교목인 구상나무는 해발 1000m 이상에 자생하는 희귀식물로,지리산,가야산,한라산 등지에 자생한다.덕유산에는 향적봉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다.특히 설천봉 곤돌라 승강장 옆 레스토랑 뒤편 산자락엔 비죽비죽 뻗은 구상나무 가지에 눈이 소복소복 쌓인 풍광이 볼 만 하다. ●‘무주 中하얼빈 빙등축제' 색다른 재미 가족 산행으로는 설천봉을 출발,향적봉,중봉을 지나 백암봉에서 돌아오는 코스가 무리가 없다.왕복 3시간쯤 잡으면 된다.아이가 없다면 구천동 계곡을 따라 백년사를 거쳐 향적봉에 오르는 길을 따라가보자.왕복 6시간 쯤 걸린다.좀 험난하긴해도 빼어난 계곡의 설경이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답다. 어떤 코스로 가든 아이젠은 꼭 착용하는게 안전하다.또 해발 1500m가 넘는 아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기온이 평지보다 10도 정도 낮고 바람도 세게 불므로 방한복과 장갑,모자 등을 단단히 갖추어야 한다. 산행후엔 무주리조트에서 개최중인 ‘무주중국하얼빈 빙등축제’ 행사장에도 들러보자.중국 빙설 예술의 역사가 깊은 하얼빈의 작가들이 제작한 다양한 빙설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직경 13m,높이 8m,길이 70m의 만리장성 등을 포함한 작품들이 8개 전시구역에 설치돼 있다.얼음속에다양한 빛깔을 내는 전등을 설치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했다.입장료 1만원. 무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가이드 ●가는 길 대전∼진주 고속도로 개통후 서울에서 무주까지 3시간이면 간다.경부고속도로 대전 회덕 분기점을 지나 조금만 더가면 나오는 무주·판암 방면 대진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한다.무주IC에서 빠져 진안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적상 삼거리에서 좌회전,사산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 치목터널과 구천동터널을 지나면 무주리조트가 나온다.구천동 계곡은 무주리조트를 지나 10분쯤 더가면 나온다. ●숙박 무주리조트(063-322-9000)내에 콘도와 호텔이 있다.주말엔 예약이 거의 불가능하다.덕유산 자연휴양림(063-322-1097)도 묵을 만 하지만 역시 예약이 만만찮다.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무주읍내 여관이나 덕유산 인근 콘도형 민박 등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인터넷 ‘아이러브무주’(www.ilovemuju.co.kr)에 들어가 보면 깨끗한 숙박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상고대 피는 명산 태백산(강원 태백·1567m)은 주목 군락지에 핀 상고대와 눈꽃이 황홀한 곳.교통이 편리하고 등반로도 완만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유일사∼주목단지∼천제단∼망경사∼당골 코스가 좋다.4시간 소요. 백덕산(강원 영월·1350m)도 눈꽃과 함께 상고대가 유명한 산.문재∼사자봉∼백덕산∼먹골재∼호헌교 코스를 따라가면 5시간쯤 걸린다.수림이 우거진 소백산(충북 단양·1440m)은 눈꽃과 상고대 지대가 넓고 정상 조망이 좋다.어의곡리∼비로봉∼삼거리∼천동골로 이어지는 코스(4시간쯤 소요)가 좋다.한국등산중앙회(02-2274-7710)에 문의하면 겨울 산행 정보를 알려준다. 식후경 무주엔 민물고기를 넣고 죽을 끓이는 어죽이 유명하다.담백하고 소화가 잘돼 예부터 선조들이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즐겨 해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무주리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무주읍 내도리의 ‘큰손식당’을 추천한다.외지인들은 잘 모르지만 어죽에 관한 한 현지인들이 최고로 인정하는 식당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무주읍내에서 내도리로 빠지는 길을 따라 내도교,후도교를 건너 뒷섬마을에 이르니 큰손식당 간판이 붙은 외딴집이 보인다.읍내에서 10여분 거리. 어죽을 시켰더니 10여분 뒤 빙어튀김을 한 접시 내놓는다.서비스란다.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음식을 시킨후 20여분이 지나서야 뚝배기에 담긴 어죽이 나온다. 어죽의 재료는 자가미다.남대천 등 무주지역의 맑은 물에서 많이 나는 민물고기다.다음은 주인이 말해주는 어죽 끓이는법. 자가미 내장을 빼고 손질해 푹 삶아서 뼈를 발라낸다.자가미 삶은 국물에 쌀을 넣고 끓이면서 고추장을 푼다.쌀이 익을 때 쯤 수제비를 떠 넣으면서 대파,다진마늘,생강 등을 넣고 기호에 따라 후춧가루를 첨가한다. 구수하고 진한 맛에서 깊이가 느껴진다.4000원.서넛이 먹을 만한 자가미탕은 2만 5000원이다.어죽만 한그릇 시켜도 빙어튀김 한 접시는 덤으로 준다.(063)322-3605.
  • [열린세상] 우리에게 있는 곶감

    옛 이야기가 그리운 계절이다.바람이 문풍지 더듬는 동짓달 긴긴 밤이면 어린 손녀에게 곶감처럼 달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할머니는 먼 기억 저편으로 건너가 버렸다.사라진 것은 이야기꾼 할머니만이 아니다.바람이 흔들어 놓았던 추억의 문풍지도 없어진 지 오래다. 이제 영화가 이야기꾼 할머니를 대신하고 있다.곶감처럼 달콤하게 포장한 크리스마스 공익광고용 영화를 보았다.사랑은 도처에 있다.열심히 사랑하면 계급,국경,인종,신분을 초월할 수 있다고 영화는 속삭인다.영화의 메시지에 은근히 속아주고 싶었다.한 해의 황혼 무렵에 마주친 황홀한 사랑의 묘약이라니! 사랑으로 모든 갈등이 해결될 수만 있다면 오죽 좋을까.한 나라의 총리가 달동네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하고,백인 남성 작가는 포르투갈 출신 하녀에게 빠져든다. 사랑은 신분,언어,국경을 뛰어넘는다.아마도 사랑의 묘약이 그리운 까닭은 말 많고 탈 많았던 한 해가 지나간다는 아쉬움과 쓸쓸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2003년 한 해는 길고 지루했다.온갖 남루한 삶의 모습과갈등이 일시에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우리 사회의 모습 자체가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드라마가 무색할 지경이었다.똥 묻은 야당이 겨 묻은 여당을 특검법으로 몰아붙인다.그러면 여당은 불법 대선자금으로 치고 빠진다.이들의 연출은 협잡의 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협지를 방불케 한다.우리 나라의 정치는 사과궤짝에서 트럭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경지에 도달했다.지배계급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집단 곧 기생집단이라는 등식에 동의한다.이런 풍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뻐꾸기의 부화과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뻐꾸기는 자기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는다.뻐꾸기는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종달새,노랑할미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희한하게도 종달새는 크기가 엄청 차이나는 자기 알과 뻐꾸기 알을 아무런 의심없이 함께 품는다.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새끼 종달새나 그 알을 둥지 바깥으로 밀쳐내고 종달새 둥지를 독점한다.그것도 모른 채 종달새는 열심히 모이를 물어다가 새끼 뻐꾸기를 먹여살린다.종달새는 장구한 세월 동안 어떻게 이런 미혹을 반복하고 있을까? 새끼 뻐꾸기야말로 우리 시대 정치가들과 흡사하다.소위 말하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 국민을 대표한다고들 하는 정치가들에게 국민의 세금은 그들의 밥이다.그런 정치가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마치 종달새가 뻐꾸기에게 자기 새끼를 보호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전래 설화에 ‘해님과 달님이 된 오누이’가 있다.이 설화에서 어머니는 팔고 남은 떡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산모퉁이를 넘다가 호랑이와 마주친다.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한다.이 과정은 떡이 동날 때까지 반복된다.떡이 다 떨어지자 호랑이는 어머니의 팔과 다리를 차례차례 요구한다.이렇게 하여 팔다리를 몽땅 먹힌 어머니는 마침내 호랑이 밥이 되고 만다. 사회적 약자인 어머니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양도하다가 결국에는 자신마저 희생양이 되어버린다.호랑이가 요구하면 이라크 파병이라는 떡 하나를 넘겨준다.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양도한다.WTO에는 농민을 양보한다.생산성과 정상성이 떨어지는 장애자,성적 소수자도 양도한다.차례차례 양보한 대가로 어머니는 삶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해님과 달님의 어머니가 호랑이 밥 신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무엇보다 우선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는 ‘곶감’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에게 있는 곶감이야말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임 옥 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 전국 해넘이·해돋이 명소/지는 해 보고 한해 마무리 뜨는 해 보고 새해 설계를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해가 뜨고 지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자연의 섭리지만,연말 연시에 감상하는 일출·일몰은 보통 때와 달리 각별함을 준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지러웠던 한 해를 마무리짓고,뜨는 해를 보며 새해를 설계하는 여행을 떠나보자.동해안의 일출 명소와 서해안의 일몰 명소,일출·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 서해안 일몰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다.붉은 햇덩이가 물 위에 닿으며 황금빛 잔영을 드리우는 오메가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는 곳.해수욕장 앞바다에 정겹게 박힌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해넘이 풍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 풍광으로 꼽힌다. 방포항과 꽃박람회장 주차장 사이를 연결한 이른바 ‘꽃다리’ 위가 감상 포인트다.일몰 감상과 함께 수백년 수령의 해송 수만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선 안면도 휴양림 일대의 소나무 숲이 둘러볼 만하다.특히 눈 온 뒤의 소나무 숲은 따뜻한 겨울의 운치를 느끼기에 그만이다.태안군청 문화관광과 (041)670-2225. ●변산반도 격포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은 수려한 경치와 함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수많은 책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채석강쪽에서 위도 방향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격포해수욕장 끝에서 시작되는 해안도로도 멋진 드라이브코스. 이곳 말고도 곰소항쪽으로 가다가 모항이나 솔섬 등에서 보는 해넘이도 장관이다.인근의 내변산 산행,천년고찰 내소사 답사,변산온천 등과 연계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449. ●강화 분오리 수도권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곳.강화도 분오리∼장화도 해안에서 바라보는 해넘이가 아름답다.서쪽으로 동막리∼장화리 바닷가에 늘어선 카페에 들아가 차를 마시며 해넘이를 즐겨도 좋다.30∼40년 전 학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교육박물관,강화역사박물관 등이 인근에 있어 들러볼 만하다.강화군청 문화관광과 (032)930-3221. ■ 동해 일출 ●포항 호미곶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호미곶은 한반도를 호랑이 모습이라고 할 때 꼬리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일찍이 최남선이‘조선 최고의 일출’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름난 해돋이 명소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선 31일 밤부터 새해 첫날 아침까지 전야제 공연 및 대형 솥에 떡국을 끓여 나누어 먹는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인근 등대박물관이 들러볼 만하다.포항시청 (054)245-6114. ●동해 추암해변 강원 동해시 북평동 추암리는 우뚝 선 촛대바위 끝으로 솟는 해돋이가 유명하다.삼척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장면이 바로 이곳이다.추암해변에서도 31일 밤부터 동해시가 주관하는 해돋이 축제가 다채롭게 열린다.주변 볼거리로 설경이 아름다운 무릉계곡,천곡천연동굴 등이 있다.(033)530-2227. ■ 일몰·일출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당진 왜목마을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2리.해변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일출·일몰은 물론 월출까지 볼 수 있다.당진 화력발전소 앞 선착장에서 멀리 석문면 장고항 노적봉과 국화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해넘이는 여기서 5분 거리인 대호방조제 중간에서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여수금오산 금오산 중턱의 향일암은 예부터 일출로 유명한 곳.하지만 여기서 30분 정도 더 올라가 금오산 정상에 오르면 장엄한 일몰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광활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가막만 뒤로 펼쳐진 수많은 섬 너머로 지는 해넘이는 황홀함을 안겨준다. 해 떨어진 뒤 반대편 바다에서 쟁반 같은 달이 둥실 떠오르는 월출도 볼 만하다.향일암 종루 처마에 달린 풍경 너머 떠 있는 달 구경도 좋다. 금오산 아래 임포마을에서 정상에 올라 일몰을 감상하고 향일암을 거쳐 마을까지 내려오는 데 3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여수시 관광홍보과 (061)690-2225.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 제주 ‘섬속의 섬’ 3곳 순례/마라도·차귀도·가파도 갈매기들의 합창

    제주는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각기 색다른 외양과 생태는 물론 전설과 이야기를 담고 있어,들어가 보면 본섬에서 느끼지 못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와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차귀도,모슬포와 마라도 중간에 있는 가파도를 소개한다. ●마라도(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리) 섬 전체가 별다른 굴곡 없이 펼쳐져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종잇장이 바다에 떠 있는 듯하다.온통 풀과 천연잔디로 뒤덮이다시피 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원래 울창한 원시림이었다가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큰 불이 나 모두 타버렸다고 한다. 섬을 돌다 보면 대한민국 최남단비가 서 있고,해안가엔 가파른 절벽과 기암이 이어진다.특히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해식터널과 해식 동굴이 절경이다. 해안선의 총 길이는 4.2㎞ 정도.산책하듯 가볍게 둘러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마라도 등대,물질하는 해녀들의 안전을 비는 처녀당,마라 분교도 들러보자. 모슬포항에서 정기 여객선인 삼영호를 이용하거나 송악산 아래 산수이동 선착장에서 유람선을타면 마라도에 갈 수 있다.삼영호(064-794-3500)는 하루 1회(오전 10시)밖에 없으므로 유양해상관광(064-794-6661)이 운영하는 유람선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오전 9시30분부터 매시 30분 배를 띄운다.30분쯤 소요.마라별장(064-792-3322),최남단민박(064-792-8506) 등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에서 묵을 수도 있다. 몇년 전 이동통신 CF로 유명해진 ‘마라도 짜장면집’(064-792-8506)의 자장면을 먹어보자.일반 기름을 넣지 않고 순수 해물로만 만든 자장 소스가 담백한 맛을 자아낸다.가격은 5000원. ●차귀도(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대섬과 지실이섬,와도 등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무인도.원래 주민들이 서너 가구 살았으나 김신조 무장간첩 사건 이후 외딴섬 주민들을 이주시키면서 이곳도 인적이 끊겼다고 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섬과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부드러운 초원 등이 어우러진 풍광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섬에 들어갈 땐 낚싯대도 하나쯤 들고 가자.제주에서도 가장 입질이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주로 참돔,돌돔,흑돔,벵어돔,자바리 등의 입질이 잦은 편.특히 1∼3월,6∼12월에 조황이 좋다고 한다. 차귀도는 ‘생태계의 보물섬’으로 꼽힌다.특히 대섬엔 곰솔,돈나무,해녀콩 갯쑥부쟁이 등 62종의 희귀 식물이 서식한다.나도참빗살잎,각시헛오디풀 등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식물도 발견되어 2000년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422호로 지정됐다. 차귀도는 노을 질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수천마리의 갈매기들이 붉게 물든 포구 앞바다를 가득 메우며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구내 포구에서 섬까지는 소형 어선을 빌려 타고 가야 한다.8명이 탈 수 있는 낚싯배 임대료는 1시간에 4만원.배에는 낚시도구도 갖춰져 있다.낚시로 잡은 고기를 선착장 앞 ‘수용횟집’(064-773-2288)에 가져가면 회,튀김,매운탕으로 요리해 준다.1인당 5000원.배낚시도 안내해 준다.포구 인근 ‘섬풍경리조트’(sumresort.co.kr)는 차귀도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황홀한 낙조를 볼 수 있는 펜션.2인1실 7만원,4인1실 12만원. ●가파도(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와 마라도의 중간 지점에 있는섬.마라도보다 2.5배 정도 크다.19세기 중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지금은 600여명의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하며 산다.섬 주변 파도가 워낙 거칠어 가파도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특별히 눈길이 가는 것은 없지만 아늑한 어촌의 풍광이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포구에서부터 시작해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가슴속 푸근함이 자리잡는다. 오전 및 오후 하루 두차례 모슬포항에서 여객선 삼영호(064-794-7130)가 가파도까지 간다.이중 오후 배는 가파도를 거쳐 마라도까지 간다.뱃시간이 뜸하고,시간 변경도 잦으므로 미리 연락해 보고 가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민박안내 064-730-1371. 제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늙은 화가의 마지막 생애 예술로 불태우는 과정 그려/5년만에 소설집 미불 출간 앞둔 강석경

    “제 문학적 탐구는 예술가와 삶의 본질 찾기 두 가지예요.늙은 화가를 소재로 한 ‘미불(米佛)’은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통해 자기를 탐구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입니다.” 중편 ‘숲속의 방’으로 극단으로 치닫던 시대정신을 비판해 화제를 모은 중견작가 강석경(52)씨가 99년 ‘내 안의 깊은 계단’에 이어 5년 만에 장편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계간 ‘세계의 문학’ 겨울호로 연재를 마치고 내년 초 민음사에서 출간할 예정인 그를 7일 만났다. ‘미불’은 법명이 미불인 자유주의자 이평조 화백이 마지막 삶을 예술로 불태우는 과정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다룬 ‘예술가 소설’.그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번 작품의 농염한 표현,특히 미불이 젊은 여인 진아와 주고받는 성희를 묘사한 장면이 ‘강석경 작품인가?’라고 놀란다. “미불의 예술세계는 에로티시즘이에요.그는 성(性)을 통해 고양되고 예술의 영감을 느끼는 인물이지요.유교와 기독교문화의 영향으로 동서양에서 성(性)을 억눌렀지만 성이야말로 삶의 본질이자 기원 아니겠어요.” 그래서 작가는 ‘작정하고’ 에로틱한 장면을 깔아넣었다.‘소녀경’‘카마수트라’ 등을 탐독했고 관련 기사나 춘화도도 참고했을 정도다. 이야기 도중 작가는 작품에 얽힌 사연도 들려주었다.소설의 앞부분은 15년 전에 썼는데 주제가 너무 희미해 접어두었다.그러다 3년 전 힘든 일이 있어 허덕이다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의 고통을 넘기는 지혜를 예술가를 통해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묻어둔 원고가 생각났다.원고지 뭉치는 물론 동서양 미술을 공부한 깨알같은 메모장도 발견했다. 작품에서 ‘색’과 인도 이야기가 생생하게 숨쉰다.아마 작가의 전공(조소과)과 인도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에로티시즘과 색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수묵 중심의 기존 동양화는 인격 수양 등 정신세계에 비중을 두는 사대부문화의 그늘이 짙어요.회화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 색입니다.몸과 마음은 물론 삼라만상을 색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철학을 반영해본 것이에요.” 황홀한 원색은 작품 속에서 경주에 사는 작가의 몸의 일부가 된 황룡사,처용도,에밀레종 등으로 꽃핀다.작가는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해 미불을 빌려서 그림을 그린다.“소설 속 그림의 색깔을 내기 위해 색깔 실험도 하면서 맛을 더했습니다.” 미불에게 화가로 되살아나게 해준 인도는 강석경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89년 처음 접한 인도는 ‘획일적 사회’에 지친 그를 사로잡았고 그 감동은‘인도기행’‘세상의 별은 다,라사에 뜬다’ 등을 낳았다.작가는 곧 그 ‘정신의 자궁’속으로 갈 계획이다. “내년에 에세이집 ‘경주 산책’(가제)과 중단편집을 낸 뒤 ‘긴 휴식기’에 들어갑니다.인도 남부 공동체 마을 오로빌에 들어가려고요.자기 나름의 이상향을 찾아 나선 이들이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곳인데 짧게는 1∼2년 혹은 영원히 머물지도 모릅니다.” 이런 작가의 생각은 작품에도 스며있다.“예술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집을 벗어나려 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수기 위해 출가하려 합니다.애벌레가 고치 속에 갇혀 있는 한 결코 비상할 수 없으니까요.” 인도에서 글은 안 쓸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물론 써야죠.”라고 말했다.벌써 그의 발길은 인도로 향한 듯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장엄한 설원위 사랑·질투·살인·용서 에스키모의 원초적인 삶/12일 개봉 아타나주아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잘 살아 왔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이론을 압축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그가 저서 ‘야생의 사고’를 통해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방식과 가치체계를 비판하면서 문화와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한 목소리는 후대 이론가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12일 개봉하는 영화 ‘아타나주아(Atanajuat:The fast runner)’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는 우리 식으로 이렇게 살아왔다.’고 외치는 듯 영화는 철저히 ‘그들의 눈’에 맞췄다.그 중심엔 북극 툰드라지대에서 태어나 자란 자카리아 쿠눅 감독이 있고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에스키모 언어와 에스키모 배우들이 가세한다.자신의 고향이자 정신적 원형질을 찾으려는 감독의 열정에 힘입어 영화는 에스키모의 숨결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2시간40여분의 대서사시가 지루하지 않다. ●에스키모 고대 신화 모티브 에스키모의 고대 신화를 모티브로한 이 영화는 두 가족의 흥망사를 얼개로 진행된다.‘툴루막’은악령의 힘을 빌려 부족의 우두머리가 된 ‘사우리’에 밀려 쫓겨난다. 세월이 훌쩍 뛰어 ‘툴루막’의 두 아들 아막주아(힘센 사나이)와 아타나주아(빠른 이)가 용감한 사냥꾼으로 성장해 부족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자 ‘사우리’의 아들 ‘오키’는 이들을 시기한다.더구나 집안끼리 약혼한 사이인 ‘아투아’가 ‘아타나주아’를 사랑하자 질투는 극에 달한다.사랑을 건 결투에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의 앙금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그러다 ‘오키’의 여동생 ‘푸야’가 아타나주아의 둘째 부인이 되면서 영화는 유혈극 등으로 속도를 낸다.이런 뼈대에다 영화는 장엄한 설원을 배경으로 이글루 만드는 장면 등 이색적인 에스키모인의 의식주,회의 과정,샤머니즘 등의 살을 붙이면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거기에 사랑과 질투,사기,살인 등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선을 에스키모라는 특수한 프리즘으로 여과시킨다.밑바닥에는 ‘악’(자기를 죽이려 했던 친구나 남편과 정을 통한 시동생의 후처)을 감싸안는 ‘관용’의 미덕을 보여준다.●문화인류학적 메시지 풍부 달빛 아래 혼자 개썰매를 끌고 가는 장면 등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들이 그득하다.또 아타나주아가 오키 일당에게 쫓기며 설원 속에서 벌거벗고 달리는 장면은 비슷한 상황을 다룬 액션 영화들의 장면을 압도한다. 논리의 비약과 주술 장면 등이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할리우드에 길들여진 눈에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 전환이며 거친 편집이 거슬릴 수도 있다.하지만 에스키모라는 원초적 감성을 담는 형식으로는 제격이다.‘아타나주아’는 에스키모의 상징인 개썰매 위에 단순히 사람과 짐만 싣는 게 아니라 어떤 문화인류학적 교재보다 더 생생한 영감과 풍부한 메시지를 싣고 있다.그것은 할리우드식 인공 세팅과 가공되고 세련된 연기와는 다른,천연의 무대에서 야생의 배우들이 울리는 ‘날 소리’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말레이시아서 맞는 겨울속 여름

    |코타키나발루 이기철특파원|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와 팡코르는 에메랄드빛 바다,잔잔한 파도,축 늘어진 야자수 등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겼다.1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간간이 비가 오는 여름 날씨를 보이는 곳이다.가족끼리,연인끼리,친구끼리 누구와 함께 해도 좋은 휴양지다. ●코타키나발루 콸라룸푸르에서 남중국해를 건너 항공편으로 2시간가량 걸리는 코타키나발루.세계에서 3번째 큰 섬인 보르네오섬 북쪽에 있다.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타키나발루는 휴양형 여행지로 손꼽힌다. 코타키나발루의 마젤란수트라하버의 선착장 제티에서 보트를 20여분 타고 나간 사피섬.유리알처럼 맑은 바다 속에서 시워킹(Sea Walking)을 즐길 수 있다.사피섬 앞바다 수심 5m의 산호밭에 마련된 시워킹 코스에 들어서면 환상의 열대 바다가 열린다.입술처럼 생긴 회색 산호,벙거지 모양의 우윳빛 산호,형형색색의 산호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어른 손보다 큰 조개,앙증맞은 빨간색 불가사리,만지면 쏙 오므라드는 말미잘….준비해 온 식빵 한조각을 꺼내자 열대어 무리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황금색,빨간색,보라색 등의 크고 작은 물고기들….순식간에 식빵 한 조각이 없어졌다.몇 놈은 식빵이 부족했는지 손바닥을 간지럽히듯 깨물었다. 사피섬 해변가에서 시워킹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는 스노클링(snorkeling)도 권할 만하다.바다 표면에서 유영하는 진귀한 열대어들을 관찰할 수 있다.시워킹이나 스노클링은 간단한 안전교육만 받으면 수영을 못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낚시를 비롯해 스릴 넘치는 수상스키와 바나나보트,다이빙,윈드서핑,뗏목타기 등 듣던 대로 해양 레포츠의 천국이었다. 코타키나발루는 또한 등산과 트레킹으로 유명하다.말레이시아의 첫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키나발루산(해발 4095m)은 동남아에서 가장 높다.키나발루 국립공원에 사는 원주민 카다잔족은 이 산을 성스럽게 여긴다.죽은 자의 영혼이 키나발루에서 안식을 취한다고 믿고 있다. 키나발루 산은 초보 등산가들도 비교적 쉽게 등정할 수 있다.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3㎞ 남짓하지만 오르는 데는 17시간 정도 걸린다.방한복과 두꺼운 옷이 별도로 필요하다.정상은 바람이 거세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오를수록 산소도 부족하다.등산 장비와 복장이 갖춰지지 않으면 입산을 허락하지 않는다. 코타키나발루의 대표적인 리조트는 샹그릴라 탄중아루(www.shangri-la.com)와 마젤란수트라하버(www.suteraharbour.com).두 곳 모두 해변가에 붙어 있어 남중국해의 일몰 광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팡코르 서부해안 페락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의 팡코르에 도착하게 된다.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황홀한 섬이다.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아늑함을 주는 휴양지로 주목받고 있다.원래 팡코르섬은 말라카 해협을 항해하는 어부들이 큰 파도를 만났을 때 피신하는 곳이었다.한때는 해적들의 은신처이기도 했고 유럽의 정복자들이 통치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휴식을 원하는 여행자들을 부르고 있다. 해양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황금빛 백사장 판타이 푸테리 데위,첫 방문자도 서슴없이 환상의 섬으로 부르는팡코르라우.그 명성답게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말라카 콸라룸푸르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을 향해 버스로 2시간가량,말레이반도 남쪽끝 조흐바루에서 북쪽으로 3시간쯤 되는 곳에 있다.말레이시아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역사적인 유물이 많아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슷한 면이 많다.수마트라에서 추방된 힌두 왕자 파라매스파라가 1400년대에 정착한 곳이다.말라카란 지명은 그가 앉아 쉬었던 나무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이후 1511년 포르투갈 식민지가 된 이래 네덜란드,영국,일본,다시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57년에 독립했다. 당시 대규모 무역 시장으로 발전한 이곳은 중국·인도·아라비아 등의 선박과 상인들이 모여드는 기항지로 한동안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다.독립 이후 영국이 기항지와 투자처를 싱가포르로 바꾸는 바람에 쇠락했다. 말레이인·중국인·인도인·포르투갈 후예들이 모여 사는 말라카에는 각국의 유물들이 다 있다.서울 인사동거리와 비슷한 ‘종커(jonker)스트리트’에서 골동품과 민예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또불교·기독교·힌두교·회교 사원이 조금씩 떨어져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치열하게 싸웠던 전장 아파모사,술탄 궁전,빅토리아 여왕 분수 등이 있다.시내를 둘러보는 데는 트라이포드쇼(세발 자전거)도 괜찮다. 말라카 강을 따라 크루즈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다.강물은 흙탕물이지만 이구아나와 망둥어처럼 생긴 물고기들이 뛰는 모습도 볼 수 있다.강 양쪽으로 200∼300년 된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다.다만 국내에선 말라카 패키지 상품이 없는 게 흠이다. chuli@ 가이드 ●음식 국교인 이슬람의 주요 행사로,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금식해야 하는 라마단 기간이 지난 24일 끝남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음식으론 찐계란·오이 등을 바나나잎에 싸놓은 나시레막,가장 흔한 말레이식 볶음밥 나시고랭,볶음국수 미고랭,꼬치에 꿴 닭·쇠고기 등을 숯불에 구워 땅콩 소스에 찍어 먹는 사테 등이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향이 독특한 인도 요리도 많다. ●입국절차 입국시 비자는 필요없다.하지만 여권의 유효기간이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된다.6개월 미만일 경우 입국이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미리 체크해야 한다. ●항공편 대한항공과 말레이시아항공이 콸라룸푸르까지 매일 1편씩 주 7회 운항된다.인천∼콸라룸푸르는 6시간 40분이 걸린다.인천∼코타키나발루 직항(말레이시아 항공)편도 있다.금·토요일 주 2회 출발하며,5시간가량 소요된다.자유여행사(3455-8888),한화투어몰(311-4304),모두투어(318-6442),테마피아(391-0918) 등이 코타키나발루 패키지를 판매한다. ●기타 체항 시간은 길지만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화폐단위는 링기트(RM).미화 1달러당 3.5링기트 정도여서 1링기트는 우리 돈으로 350원쯤 된다. 현지에서만 환전이 가능하다.전기는 240볼트,50㎐로 전기에 예민한 기기는 어댑터를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전국민의 절반가량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까닭에 국제전화를 걸기 위한 공중전화 부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주의사항 열대 기후이지만 호텔·택시·버스·쇼핑센터 등은 냉방이 잘 되어 있으므로 가벼운 긴팔 옷을 하나쯤 준비하는 것이좋다.회교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어야 한다.반팔 여성들에겐 겉옷과 스카프가 제공된다.문의 말레이시아관광청(02-779-4422).
  • ‘호남의 소금강’ 순창 강천산

    ●빨갛게… 노랗게… 오색향연 절정 남녘에 단풍이 절정이다.빨갛게,노랗게 물든 산엔 능선마다 인산인해.새파란 하늘을 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는 이들의 뺨에도 발그스름하게 단풍이 피었다. 지난 주말엔 엄청난 단풍행렬 때문에,산엔 발도 못디디고 차를 돌린 사람이 꽤 있다고 하니,이번 주 단풍나들이 계획을 잡았다면 일찌감치 서둘러 집을 나서야겠다. 또 사람에 치이기 십상인 유명 산보다 숨어 있는 단풍 명소를 찾아보면 어떨까.전북 순창의 강천산을 다녀왔다.깊은 계곡과 맑은 물,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인근 내장산의 명성에 가려 그 진면목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단풍 명산이다. 강천산(剛泉山·583.7m).이름 그대로 단단한 바위와 물이 많은 산이다.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높지 않지만 주계곡인 강천계곡 양편으로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 등 10여개의 청정계곡을 품고 있고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 등 구석구석 비경을 갖췄다. 산행은 주차장부터 시작된다.계곡과 봉우리가워낙 많아 등산코스가 다양한데,대략 5개 코스가 있다.이중 짧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강천산의 비경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병풍바위∼강천사∼구름다리∼신선봉 코스(5㎞)를 택했다.좀 더 긴 산행을 원하면 신선봉에서 하산하지 말고 선녀봉과 산성을 거쳐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11㎞)를 잡으면 된다. ●구석구석 비경 품은 그림같은 바위산 매표소를 지나 강천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포장이지만 차량이 드나들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길가와 계곡은 온통 단풍 일색.불타는 듯 계곡을 물들인 애기단풍 아래로 투명한 계류가 노래하듯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매표소에서 10분쯤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있고,절벽 아래로 물줄기가 하얗게 부서지며 떨어진다.도저히 폭포가 있을 수 없는 곳인데….공원 관리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인공폭포란다.계곡물을 호스를 통해 모터로 끌어올려 암벽 꼭대기에서 물을 뿌려대는 것이라고. 폭포 아래는 자그마한 단풍나무 공원.마침 아침 햇살을 받아 일곱 색깔 무지개를 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와 어우러진 단풍이 비단처럼 곱다. 계곡을 따라 30여분쯤 더 올라가니 강천사가 나온다.강천산이란 이름을 있게한 천년 고찰.풍수지리설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한때 12개의 암자와 500여명의 수도승을 거느린 거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소실되었다가 1961년 이후 대웅전과 관음전,선방,보광전,객사 등의 건물이 복원됐다.전란 와중에도 불타지 않은 강천사 석탑만이 고찰의 흔적을 말해준다. 강천산은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고 해 원래 이름이 용천산(龍泉山)이었고,절 이름도 용천사였다고 한다.이후 조선 선조 때 학자 송익필이 절에 머물면서 ‘宿 剛泉寺’란 제목의 시를 지으면서 강천사로 불렸고,산 이름도 강천산이 되었다고 한다. ●길이 75m·높이 50m 구름다리 아찔 강천사를 지나 계곡 오른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구름다리)가 나온다.길이 75m,높이 50m의 용접 철교다.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마치 번지점프대에 선 듯 아찔하다.멀리 계곡을 따라 길게 펼쳐진 단풍숲이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현수교를 건너 전망대가 있는 신선봉꼭대기까지는 불과 500m 정도.하지만 온통 바위투성이라 발을 내디디기가 힘들다.노약자라면 30분 정도는 고생을 각오해아 할 것 같다. 신선봉(425m)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니 지금까지 올라온 계곡과 맞은편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산자락 아래,반쯤 물든 단풍숲 가운데 강천사가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다. ●강천 제2호수·금성산성도 볼 만 현수교 입구에서 아래 계곡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좀 더 시간을 내 강천제2호수와 금성산성까지 가보기로 했다.현수교 아래에서 계곡을 따라 20분쯤 가니 댐이 앞을 가로막는다.강천제2호수다.강천산 입구에 있는 강천호의 담수 조절을 위해 계곡 상류에 협곡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물이 가득 차면 저수지를 둘러싼 단풍숲이 수면에 비친 풍광이 황홀할 정도라고 한다.그러나 막상 댐에 올라서니 물이 거의 바닥을 적시는 정도다.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댐 한쪽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30분쯤 가니 금성산성이 나온다.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이 산성은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며,이후 파괴와 개축이 반복됐다.특히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이때 동헌,민가 등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순창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수도권에선 호남고속도로 정읍IC∼29번 국도∼21번 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호남·영남권에선 88고속도로 순창IC~24번 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 코스를 따라가면 된다.주차장 이용료는 2500원(산 입장료 1000원 별도).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순창행 고속버스가 하루 6회 출발하며,광주·전주·남원에서 각각 20∼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순창읍내에선 정읍행 군내버스(20분 소요)를 타거나,택시(8000원 정도)를 이용하면 된다.강천산군립공원 관리사무소(063-650-1533). ●숙박 강천산 인근에 강천각여관(063-652-9920),구룡파크장(063-652-6767) 등 여관이 10여 군데 있다.일행이 많으면 콘도형 객실을 갖춘 강천산 휴양농원(063-652-2552)이 편리하다.요금은 5만∼6만원.주말에 방이 없으면 순창읍내 여관을 이용하면 된다. ●순창고추장 마을 검붉은 색깔에 알싸한 감칠맛이 나는 순창고추장.고려 말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순창을 찾았다가 한 농가에서 낸 고추장 맛을 못잊어 조선 개국후 진상토록 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강천산을 나와 793번 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순창읍 방향으로 가다보면 ‘순창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이 나온다.마을 입구엔 관광객들을 위한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주차장 한편에 널린 메줏가루 냄새가 코를 찌른다.바둑판처럼 정리된 포장도로,지붕에 기와만 얹은 몰개성의 건물들,저마다 원조를 내세우는 간판들.서정적 전통 마을을 그렸던 기대와 달리 지나치게 상업화된 모습이 실망스럽다.고추장 마을에선 전통고추장 전시판매장(063-653-4333)을 비롯,50여개의 집에서 고추장 및 고추장을 이용해 만든 장아찌류 등을 판매한다. 식후경 강천산 주차장 아래 식당과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데,그중 충장로식당(063-652-5388)의 백반이 비교적싸면서 먹을 만하다. 취나물을 비롯한 각종 산나물 무침과 야채 겉절이,꽁치구이 등 생선구이와 조림,도토리묵 무침,각종 김치류,청국장 등 밥과 함께 나오는 반찬 가짓수만 무려 25가지.음식값은 6000원. 가짓수가 많지만 허투루 만들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산나물은 강천산 인근에서 봄에 난 것을 말린 묵나물을 쓰고 도토리묵도 마찬가지.야채 몇가지를 썰어 함께 무친 도토리묵은 새콤하면서 싱싱해 특히 젓가락이 자주 간다. 순창고추장 맛을 보고 싶으면 대접을 달라고 해 나물무침과 야채 겉절이 몇가지를 밥에 얹어 고추장으로 비벼먹으면 된다.나물과 김치,야채 겉절이 종류가 워낙 다양해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고기류를 먹고 싶으면 좀 멀지만 담양쪽으로 가보자.강천산 주차장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담양 대나무골테마공원 주변에 떡갈비 전문 음식점이 많다.
  • “군사정권과 맞선 시절이 가장 황홀”원로 인권변호사 이돈명 씨

    “요즘은 하루를 더 살면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 원로 인권변호사인 이돈명 변호사는 평생 가장 행복한 때를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박정희 정권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셈이지.내가 살아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걸 보니,사는 게 그저 즐거울 따름이야.” ●가슴 뜨거워 늘 행복했던 70∼80년대 반면 ‘가장 황홀했던 시절’은 70∼80년대라고 했다.의외였다.70년대 중반부터 시국·공안사건을 도맡으면서 갖은 고초를 겪은 그가 아닌가.오원춘 사건,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구로동맹파업사건 등 가시밭길 같은 시국을 헤쳤던 때였다.지난 86년 10월엔 수배중이던 재야인사 이부영씨(열린우리당 의원)를 숨겨줘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 않은가. 이 변호사의 ‘황홀’은 이렇다.“법정에 서서 군사정권의 잔혹함을 비판하며 겨레의 내일을 불 밝히던 시절이 아닌가.돈 한푼 못벌어도,몸은 힘들어도,가슴이 뜨거워 늘 행복했다네.”그가 걸어온 ‘황홀한 길’은 올해말 ‘이돈명 평전’에 담겨 출간될 예정이다. 전남 나주 출신인이 변호사는 1952년 정규학력을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고등고시에 합격했다.10년간 판사로 재직했다.그러나 군사독재가 갈수록 포악해지자 법관의 역할에 회의가 들었다.법복을 벗고 방황했다.빚은 늘어만 가고 식솔들은 끼니를 걱정했다.“손수레도 드나들 수 없는 골목길 단칸방에서 배고파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나더군.” ‘먹고 살려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한평 남짓한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쓰다버린 책상이 고작이었지만,돈벌이는 엄청 잘됐다.판사 월급의 20배는 족히 벌었다.빚을 모두 갚고,서울 효자동에 98평짜리 집도 샀다.아담한 정원도 꾸며 평안하게 살아가나 싶었다. ●30년 곁눈질 안한 ‘유죄변호사’ 1975년.인생을 바꿔놓은 해가 찾아왔다.김지하 시인의 필화사건이 터졌다.침묵하던 지식인들은 명동성당에 모였다.유신헌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구국선언이 발표됐다.김대중 의원,함석헌 선생,윤보선 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이 변호사도 강신옥·조준희 변호사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법률가는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인데엉터리 헌법으로 국민들을 심판해야 되니,도저히 낯이 뜨거워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 뒤늦게 뛰어든 인권변호사의 길이지만,이후 30년간 한번도 곁눈질하지 않았다.군사정권과 싸우며 얻은 별명은 ‘유죄변호사’.노동사건·학생운동사건 등 수백건의 시국사건을 맡았건만 집행유예나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다.시국사건이 변호사에겐 아쉬움으로,이 시대엔 아픔으로 남아있는 까닭이다. 이 변호사는 세상에 잘못 알려진 사건으로 김재규 사건과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꼽았다.10·26사건으로 법정에 선 김재규는 이 변호사 등에게 변론을 부탁했다.인권변호사들조차도 “박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유신을 옹호하던 김재규를 어떻게 옹호하느냐.”며 반대했다.김재규의 아내가 5여년 동안 남편이 쓴 붓글씨를 보여줬다.‘유신철폐’‘민주주의 만세’ 등 수백장이나 됐다.“김재규가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저격했다는 확신이 들더군.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김재규를 공작했다는 소문이 많았는데,사실이아니야.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민주주주의 꽃’은 마침내 피지 않았나.” 이 변호사는 해마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공동묘지에 있는 김재규의 묘소를 찾고 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불을 질러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정부는 대학생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방화를 일으켰다고 발표했다.“북한의 지령이라니 그건 터무니 없는 소리지.대학생들은 한국의 독재정치와 이를 방조하는 미국을 세계에 고발하고 싶었던 거야.” ‘쩌렁쩌렁’한 목소리나,힘주어 말할 때면 탁자를 ‘쿵쿵’ 내리치는 모습이 여든한해를 산 ‘노인’이란 사실을 의심케 했다.하지만 지난 98년에 발병한 심부전증도 여전하고,최근엔 전립선도 문제를 일으켜 투병중이라고 했다.3개월전엔 45년간 함께 했던 담배도 끊었다.35년간 살던 집도 정리,아들네로 옮겼다.서울을 떠나 요양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받지만 ‘말벗’이 그리워 서울 하늘 아래 남았다.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주는 기성세대의 희생으로 자리잡게 됐다네.젊은이들이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고맙다는 얘길 듣겠다는 게 아니라,다시는 그같은 ‘오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야.” ●“다시 태어나면 신나게 놀아야지” 이 변호사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30분에 잠들 때까지 쉼없이 책과 신문을 읽고,후배들과 토론한다.92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에서 최근엔 송두율 교수 사건도 맡았던 탓에 후배들과 함께 고민했다.지난달 24일에는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재야 원로 모임을 갖고 “전투병 파병만큼은 하지 말라.”고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고마운 사람을 물었더니 올해로 여든인 부인 얘기를 꺼냈다.“수십년간 잔소리 한번없이 묵묵히 믿어준 사람이지.고맙고,존경스럽지.”아버지가 한 길을 가도록 도와준 자녀들(3남1녀)도 꼽았다. 다시 태어나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겠느냐고 질문하자 이 변호사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무슨 소리야.다시 태어나면 신나게 먹고 놀아야지.희생은 한 세대로 족하다네.자네도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분야에서 신명나게 즐기며 살아가게나.” 정은주기자 ejung@ ▲22년 전남 나주 출생 ▲54년 대전지법 판사 ▲63년 변호사 개업 ▲73년 서울변호사회 부회장 ▲78∼88년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사무국장·회장 ▲87년 국민운동중앙본부 의장 ▲88∼91년 조선대 총장 ▲2001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고문(현) ▲2001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현) ▲2002년 상지학원 이사장(현) ▲법무법인 덕수 대표(현)
  • 386세대 형제의 ‘이중적 삶’ 시대정신과 잃어버린 자아 들춰/ 박수영 두번째 장편 ‘도취’

    생맥주를 마시는 게 왠지 미안하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정신적 사치 같던 시절이 있었다.80년 전후 대학을 다녔으면 한번쯤 겪었을 이 눌림은 ‘민중 해방’을 지향한 시대정신에서 비롯됐다.그 시대정신의 직간접적 세례자 중에 ‘386세대’가 존재한다.그들의 학생운동 투신 이유에 대해서는 순수한 영혼으로 시대적 사명에 따랐다는 따뜻한 시선이 많지만 잠재된 권력욕을 대의명분으로 치장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작가 박수영(사진·40)이 두번째 장편 ‘도취’(이룸 펴냄)에서 시도하는 ‘80년대 독법’은 독특하다.시대정신에 도취된 형과 당대의 논리에 눌려 ‘고유의 자아’를 잃고 산 동생의 삶을 통해 80년대를 그린다. 24일 만난 그는 “자기 삶을 고유한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이나 다른 거창한 시대정신에 의해 선택했기에 본래의 존재성을 상실한 이들의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설은 세 사람의 현재와 과거사를 넘나들며 나아간다.주인공 시훈은 시대정신에 도취된 인물.자신을 단련하면서 젊음을 바친 80년대를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영혼을 지녔다.중간에 운동권을 이탈했다는 자책감에 부인 신혜와의 부부관계는 ‘심장소리’가 없는 정신적 사랑에 머문다.아내를 침대에서 방치했다는 미안함에 한차례의 외도를 제안하고 신혜는 우연히 만난 남자와의 사랑에서 육체에 눈을 뜬다.시훈 곁에 또 다른 인물 동생 여훈이 있다.우상인 형의 선택이었기에 운동권 논리를 좋아했지만 미국 이민 뒤 출세지향적인 외과의사로서 다른 길을 걷는다. “시훈은 ‘시대정신을 진정 사랑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운동에 휩쓸리기 이전의 고유한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입니다.반면 여훈은 ‘새 자아’를 찾아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해보지만 그 역시 고유한 모습인가 회의하는 유형이죠.” 작가는 이런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80년대의 열정 이면에 ‘생각이 다른 타자에 대한 애정의 부족’을 들춰낸다.작가는 “이들의 방황을 통해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갈구를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82년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딱딱한 공부에 적응하지 못해84년 서울대 철학과에 재입학했다.졸업후 읽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캐릭터에의 ‘황홀한 도취’로 ‘덜컥’ 작가로 나섰다.97년 실천문학 겨울호에 ‘바람의 예감’으로 등단한 뒤 2001년 장편 ‘매혹’을 냈다. 글 이종수기자 사진 한준규기자 hihi@
  • 전남 여수 금오산·사도/서글픈 푸른빛에 처마끝 풍경도 소리를 잊고

    전남 여수 돌산도 남단에 자리잡은 금오산(金鰲山).동쪽 바다를 향해 엎드린 금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어 이같은 이름이 붙은 이 산은 마치 거북 등껍질처럼 주름진 바위로 뒤덮여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금오산이란 이름엔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산 서쪽 중턱에 자리잡은 향일암을 말하면 ‘아 그 산’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다.대부분 향일암까지만 올라갔다가,발길을 돌려 내려와 산 자체의 진면목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향일암은 우리나라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금오산 산행길의 진수는 향일암을 지나서부터다.해발 323m로,향일암에서 정상까지 불과 30여분의 짧은 산행길이지만,완급의 조화를 이룬 바위길과 시원한 남해 풍광,정상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일몰과 월출이 산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월출이 아름다운 ‘향일암' 여수반도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 사도 또한 오동도나 향일암,거문도 등 여수의 큼직한 관광 명소들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곳.그러나 한나절쯤 시간을 쪼개면,다양한 기암괴석과 수백개의 공룡 발자국,신비의 물 갈라짐 현상 등 색다른 볼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도다.남도의 미항 여수 여행에서 빼놓기 쉬운 금오산 정상 산행과 사도 답사에 나섰다. 금오산 오르는 길은 두가지.산행 기점인 임포마을에서 새로 난 향일암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암자 못미쳐 정상으로 가는 길로 빠지거나,향일암 가는 옛길로 처음부터 올라가면 된다. 새 길을 선택했다.향일암까지는 네댓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도 될 만큼 길이 널찍하게 닦여 있다.길이 넓다보니 돌산의 아기자기함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움.새해를 맞을 때마다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이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바위산을 가르는 포장된 큰 길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향일암을 지나고,가파른 철계단과 아슬아슬한 바위길이 이어지면서부터 이같은 불만은 탄성으로 바뀐다.바위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너럭바위.이마에 흐르는 땀을 잠시 식히면서 시원한 바다 풍광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너럭바위 하나하나는 곧 바다 전망대다.동남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을 따라 펼쳐진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자태가 그림같다. 등산로변엔 군데군데 계절을 잊은 듯 바위 틈새로 자란 벚나무가 꽃을 피워 이색적인 분위기를 띄운다.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서쪽은 이미 붉은 물이 들기 시작했다.마치 광활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가막만 뒤로 펼쳐진 수많은 섬 너머로 만추의 홍시 같은 해가 진다.자그마한 한 섬 위에 걸리는 듯하던 해는 불과 2∼3분 만에 뚝 떨어지고 만다. ●일몰과 월출을 한자리서 누군가 고개를 돌려보라고 재촉한다.동쪽 바다 수평선 위로,정말 쟁반 같은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고 있다.한 자리에 앉아 일몰 감상 직후의 월출 구경이라니! 저마다 탄성을 토해낸다. 내려갈 때는 향일암에 들렀다.일출이 유명한 곳의 달구경은 어떨까 궁금했기 때문.어둠이 깔린 암자는 적막하기만 하다.사방이 어두워서인가,아니면 청정지역이어서인가.암자에서 보는 달은 푸른빛이 선연하기 그지없다.종루 처마에 달린 풍경(風磬) 너머 걸린 달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게가슴 속을 파고든다.임포마을에서 정상,정상에서 향일암을 거쳐 마을까지 내려오는 데는 3시간이면 넉넉하다. 여수 서쪽 27㎞ 지점에 위치한 사도는 증도·추도·사도·장사도·나끝·연목·중도 등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여수항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20분 정도 가야 한다. ●공룡 발자국 보며 고생대 체험도 7개의 섬에 사는 주민이라야 수십가구에 불과해서인지,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하지만 선착장은 깔끔하고 큼직하다.세계 최장의 보행렬(84m)을 포함해 400여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이후 고생태 체험학습을 위한 학생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최근 조성했다. 마침 만조 때라서 수중에 감춰진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없단다.미리 시간을 확인해보고 오지 않은 것이 영 후회스럽다.하지만 선착장에서 조금만 가면 공룡 발자국과 서식 흔적을 재현하고 설명해놓은 공원이 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사도는 물 갈라짐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음력 정월 대보름,2월 보름 등 연간 5차례 정도 이같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약 2∼3일간 물이 갈라지는 이때는 7개의 섬이 ‘ㄷ’자로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한다.이때 시간을 맞춰가면 마을사람들과 함께 바닷길에 들어가 지천으로 널린 고둥과 개불,해삼 등을 주울 수 있다. 사도엔 다양한 전설이 어린 기암이 많다.이순신 장군이 나랏일을 근심하며 앉아 있었다는 장군바위,거북 모양의 거북바위,예부터 사도의 여인들이 출산 후 젖이 부족할 때 치성을 드리면 맑은 물이 솟아났다는 젖샘바위,제주 용두암의 꼬리라는 용미바위 등이 볼 만하다. 여수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서울,수도권에서 여수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천안·논산∼호남∼남해고속도로 순천IC 코스가 가장 빠르다.순천IC에서 17번 국도를 타면 여수 돌산도까지 곧바로 갈 수 있다.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매일 5차례 김포와 여수를 왕복 운항한다.여수행 버스는 서울에서 하루 16회,광주에서 40회 있다. 금오산은 17번 국도를 타고 돌산대교를 건너 시덕리에 이른 뒤,1번 지방도를 타면 산 입구에 닿는다.여수항에서 사도로 가는 배편은 하루 두 차례 있다.1시간20분 소요.배삯은 어른 7500원,어린이 3800원.문의 여수시외버스터미널(061-652-6877),여수역(1544-1788),㈜한려수도(061-644-6255). ●숙박 호텔은 여수시내의 여수비치관광호텔(061-662-3131),오동도 인근의 노블레스관광호텔(061-691-1966)이 묵을 만하다.금오산 인근엔 종점모텔(061-644-4737),한솔모텔(061-644-5089) 등 10여개의 여관이 있다.사도에선 사도식당횟집,장석례씨집(061-665-9203) 등 몇몇 식당과 민가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해넘이 해안 드라이브 돌산도 서쪽 금천에서 항대,모장,평사에 이르는 해안길은 해넘이 드라이브 코스.오른쪽엔 산과 들녘이,왼쪽엔 수많은 섬들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이 구간엔 굴 양식장이 늘어서 있는데,굴이 주렁주렁 달린 모양이 이색적이다.아직은 좀 이르지만 11월에 들어서면 해가 넘어갈 무렵,차를 세우고 굴구이집에 들어가 고소한 굴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여수시 문화관광과(061-690-2225). 식후경 여수는 남도 먹거리 1번지로 통할 만큼 음식이다채롭다.그래서 식도락가들이 여수에 가면 특유의 한정식을 한번쯤은 맛본다. 오동도 입구의 ‘동백회관’은 맛과 다양함을 함께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 해물 한정식집.음식값은 2인상 4만원,3인 이상은 1인당 1만 5000원이다.음식은 3차례로 나뉘어 나온다.먼저 도미·우럭·전어 등 회와 함께 떡가재 찜,낙지 무침,회초밥,생 피조개 등 30여가지의 찬음식으로 상을 차려낸다.이 음식을 거반 먹을 즈음해서 복어 중심의 뜨거운 요리가 나온다.복 조림,복 튀김,복죽,송이 조림 등이 주된 요리.이 음식을 대충 비우면 그제서야 밥이 나온다.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찐 대통밥과 함께 몇가지 나물,젓갈,매운탕이 상에 오른다.이렇게 총 60여가지의 음식이 나온다. 여수 인근 바다에서 나는 재료를 쓰다보니 음식 맛도 일품 요릿집 못지않다.(061)664-1487. 사도에선 선착장 앞의 사도식당횟집에 들러보자.도미,농어 등 자연산 회가 너무 싸다.마리 단위로 회를 쳐주는데,1.5㎏짜리 감성돔 한 마리를 3만원에 먹을 수 있다.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감성돔 회맛이 일품이다.(051)666-9199.
  •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 ‘바리스타’/ 커피 좋아하세요?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프랑스 작가 탈레랑) “천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마스카드 술보다 달콤하다./커피,커피/커피는 멈출 수가 없다./나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면/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환영한다.”(바흐의 칸타타 中) 가을을 머금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커피는 그 향과 맛으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한다.커피의 매력을 한층 더하는 사람들,이들을 우리는 ‘바리스타(barista)’라고 부른다.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다.주로 술·칵테일 등을 다루는 사람을 바텐더라고 한다면,바리스타의 주력 메뉴는 커피.국내에서 바리스타라는 단어가 퍼진 것은 외국 커피브랜드가 들어오면서부터다.이 때문에 국내 바리스타 문화의 시작을 상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음카페 ‘바리스타(cafe.daum.net//baristar)’의 회원들에게서는 비록 아마추어지만,최고의 커피 전문가를 지향하는 대단한 각오가 느껴진다. 청담동 카페에서 4년째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명(26)씨는 “바리스타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미묘하게 같은 듯 다른 커피의 맛과 향을 찾아내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커피가 좋을지 고민하는 손님에게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커피를 권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정통 커피니 이것을 마셔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바리스타로서 기쁨과 자부심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서 ‘정말 맛있다.’는 진심과 표정을 엿볼 수 있을 때이지요.” 종명씨에게 또 하나의 기쁨은 자신의 커피를 손님이 5분 이상 바라보고 있을 때다.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종명씨의 커피 거품 장식은 말 그대로 예술.이 때문에 커피를 내놓은 뒤에는 곳곳에서 디지털카메라의 불빛이 번쩍이기도 한다. 압구정동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바리스타 2년차 추새싹(20)씨는 처음부터 바리스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커피가 얼마나 삶의 여유를 주고,자유를 느끼게 하는지 알게 됐어요.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커피 맛을 느끼지 못하잖아요.이렇게 좋은 커피를 더욱 맛있게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보다 깊이 배우고 있죠.맛있는 커피를 내놓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바리스타로서의 즐거움입니다.” 손님에게 시럽과 크림을 넣는지,양은 얼마나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을 신진영(26·테이크아웃점 바리스타)씨는 ‘커피에 정성을 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바리스타는 좋은 맛과 더 나은 질의 커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손님이 가장 맛있어 하는 커피를 주고,작게라도 손님이 ‘아,맛있다.’라고 할 때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죠.”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신가람(20·대학생)씨는 “이전에는 상당히 내성적이었어요.사람들이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죠.바에 들어가 손님에게 원하는 커피 스타일을 물어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면서 점점 성격도 바뀌었어요.처음 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가을에 추천하고 싶은 커피를 묻는 기자에게누구도 선뜻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채기석(27·회사원)씨는 “커피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뭐가 맛있고,뭐가 정석이고,뭐가 최고급이라고 말해봤자 마시는 사람이 수용하지 못하면 이미 그것은 맛있는 커피가 아니다.”라는 설명으로 이유를 대신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즐기는 커피가 있을 텐데….새싹씨가 좋아하는 것은 설탕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와 치즈케이크를 함께 먹는 것이다.커피의 향과 치즈케이크의 달콤함이 어우러지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든다고. 진영씨는 아이스카푸치노를 즐긴다.우유와 어우러진 커피 맛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계핏가루 향을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웹디자이너를 하다가 커피 관련 회사에 입사하면서 바리스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홍준호(27)씨는 아침식사 대신 먹는 카푸치노를 좋아한다.“어떤 사람은 밥을 먹고 난 뒤 카푸치노를 먹으면 ‘넌 밥을 또 먹냐.’라고 할 정도로 카푸치노는 식사 대용이 되기도 한다.바쁘게 출근한 뒤 마시는 카푸치노는 여유도 찾고 허기짐도 달래는 데 최고”라고 말한다.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말하는 ‘하루 식량의 전부’라는 것도 이런 뜻이었을까.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바리스타에게 부득부득 졸라 얻어낸 커피 추천작.조금은 색다르게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아침에 식사 대용으로 카푸치노를,점심 식사를 한 뒤에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그만이다.열심히 일한 오후 잠시 짬을 내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해가 뉘엿뉘엿 질 때에는 향이 좋은 모카를 마시는 것이 분위기를 더하는 데 좋다. 글 최여경기자 kid@ 사진 도준석기자 pado@ 바리스타란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로,기원은 이탈리아에 있으나 미국에서 발전해 우리나라에 유입됐다.커피의 생산에서부터 각종 커피의 향과 맛·특징 등을 익혀 어떤 원두를 어떻게 쓰고 얼마나 볶을 것인지,어떻게 커피 머신을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해 손님의 입맛에 맞는 최적의 커피를 제공한다.이와 함께 손님에게 커피에 관한 조언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소믈리에,바텐더는 일정한 과정을 수료하거나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바리스타는 그런 것이 없다.커피 마니아들의 평가가 일종의 자격증 역할을 한다.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바리스타도 오랜 경력을 갖고,커피전문가로 추앙받는 사람으로 바리스타에 따라 커피값이 달라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바리스타는 올해로 4회를 맞는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이 성황을 이룰 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다.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단어로,정식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은 상태다.10일에는 사단법인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K)가 공식 출범한다. 최여경기자 어떤 커피가 맛있을까? ●에스프레소 커피의 원액으로,커피의 심장이라 불리며 진하고 순수한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이탈리아식 커피의 진수.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독할 수 있으나 커피의 쓴맛,신맛,단맛 등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마니아들은 ‘인생과도 같은 커피’라고 한다.이 위에 미세하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살짝 얹으면 ‘에스프레소 마키아토’,산뜻하고 고소한 휘핑 크림으로 장식하면 ‘에스프레소 콘 파냐’가된다. ●카페 아메리카노 진한 농도의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물로 만든다.에스프레소보다는 연하지만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미국 스타일의 커피. ●카페 라테 에스프레소 위에 데워진 우유를 듬뿍 넣어 만든 부드러운 맛의 커피로,풍부한 우유와 커피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담없는 커피.우유에 들어 있는 유기산이나 우유 단백질 같은 성분이 위장 속에 흡수되면서 위벽을 보호해줘 위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에 식사 대용으로 마시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부드러운 우유 거품의 섬세한 첫 느낌이 매력적이다. ●카푸치노 커피의 풍부한 향과 우유거품의 호화로운 맛을 즐길 수 있는 감각적인 커피.카페 라테보다는 우유의 양은 적지만,우유거품을 풍부하게 얹어 입술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거품에는 취향에 따라 계핏가루,초코가루 등 향신료를 첨가한다.우유거품을 뒤집어쓴 모습이 이슬람 종파인 카푸치노 교도들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카페 모카 정통 에스프레소 커피에달콤한 초콜릿 시럽을 섞은 후 데운 우유를 붓고 그 위에 신선한 생크림과 초콜릿 가루를 토핑한 달콤한 커피.달콤한 초콜릿이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줄여준다.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인기 메뉴. ■ 도움말 할리스커피 이지현 주임 최여경기자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7월18일 ‘북의 최인훈’을 시작으로 일성을 터뜨린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시리즈가 25일 ‘남의 박경리’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현재를 전환기 혹은 과도기라고 합니다.낡은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완전히 낡지도 전적으로 새롭지도 않은 이 ‘지나가는 시대’는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이번 시리즈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학지성 10인이 들려준 목소리는 사회 여러 분야에 나타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패러다임이나 그 단초가 될 것입니다. 이 작업은 그 발판이 문학이기에 가능했을지 모릅니다.문학은 사회문제·철학·역사·경제·정치 등 모든 것을 끌어안기 때문입니다.무엇보다 문학은 총체적 삶에 관한 것으로서 삶의 본질을 다룹니다.그래서 늘 시대정신의 진실을 추구하고 억압과 질곡과 싸워왔습니다. 시리즈에 참가한 10명의 문학지성들은 평생동안 문학이란 넓고 깊은 사색의 바다에서 닦아온 지혜로 혼미한 시대를 헤쳐나갈 고견들을 들려주었습니다.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면다른 분야가 보인다는 말이 있듯 당대 최고의 문학지성들의 화두는 단순히 문학 그 자체에 멈추지 않고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차가운 이성만으로 무장하다 보면 자칫 딱딱하고 난해해지기 쉬운 사상이나 분석틀을 문학 특유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이해하기 쉽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의 흐름을 진단한 뒤 현실적 과제로 젊은 세대들의 자율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원로 소설가의 화두를 접했습니다(최인훈).세계의 관심이 언어와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며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로 보라는 당대 최고의 평론가의 당부도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김윤식).동서고금 사상을 넘나든 뒤 ‘붉은악마’와 ‘촛불 시위’에서 새세대의 문화적 창조의 싹을 보는 논리는 황홀했습니다(김지하). 한 우물만 파고 한 마리 토끼만 쫓으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흔든 문명비평가의 발상의 전환(이어령),시대를 초월하여 중심을 잡아야 하는 지성의 역할을 강조한 비평가의 낮지만 소중한의견(김우창),새로운 의미의 민중이 존재하기에 여전히 평등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는 시인의 충고(신경림),남북한 문제를 형과 아우로 비유하며 보듬고 가야 한다는 소설가의 진단(현기영) 등 현대의 혼란한 항해를 비추는 등불은 시리즈 어느 곳에서나 발견됐습니다. 우리가 만난 문학지성은 자신의 방법론에 바탕하여 늘 새로운 삶의 방식과 해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그것은 제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세계와 가능성의 그림을 그리는 문학의 정신이기도 했습니다.시리즈를 마치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연륜에서 묻어나는 지혜로움이 빛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바쁘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문학지성과 그들의 값진 말씀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동분서주한 방민호 교수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독자 여러분께도 그동안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씨줄날줄] 곱지 않은 단풍

    수필문학의 압권인 정비석의 ‘산정무한’에 나오는 금강산 단풍이야기다. 정비석은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단장 같다면,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라고 했다.금강산의 단풍만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설악산과 내장산의 단풍도 사람들을 붉은 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뒷동산의 단풍도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낸다.붉게 타오르는 듯한 단풍은 어디에서나 아름답다.단풍은 인간의 예술품보다 자연의 예술품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올해의 단풍은 덜 고울 것이라고 한다.기상청은 태풍 등의 영향으로 9월부터 흐린 날과 비오는 날이 많아 단풍의 색깔이 평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보했다.단풍 시작도 평균 기온이 평년에 비해 0.8도 정도 높아 2∼3일 늦어진다고 한다.금강산의 첫 단풍(20% 정도 물들을 때)은 9월25일,설악산은 9월27일,내장산은 10월21일로 예상된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단풍의 색깔이 영향을 받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인간의 피해다.태풍 ‘매미’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외국에서도 기후변화가 막대한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유럽에서는 100여년만의 살인적인 더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기후변화에는 자연적인 원인과 인위적인 원인이 있다.그런데 최근에는 오염물질,자연환경 파괴 등 인위적인 원인이 더 심각하다고 한다.인간의 자연 파괴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비용을 치를 것으로 우려된다.‘곱지 않은 단풍’이 자연의 대복수를 예방해야 한다는 경고의 붉은신호가 되길 바란다. 이창순 논설위원
  • 석가모니 삶·사상 형상화 / 日 세토우치 소설 ‘석가모니’

    소설로 그린 석가모니의 삶과 지혜. 일본의 대표적 여성작가 세토우치 자쿠초(瀨戶內寂聽)가 쓴 전기 형식의 소설 ‘석가모니’(솔)는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성인(聖人)의 설법을 소설이란 틀에다 부드럽고 재미있게 녹이고 있다. 석가의 삶과 사상에 담긴 진수를 해치지 않을까라고 우려할 수도 있다.하지만 72년 출가한 작가의 여정은 이런 염려를 단숨에 날려보낸다.또 대중작가로 다져온 탄탄한 글솜씨는 소설이 주제에 눌리지 않게 만든다. 소설의 화자는 석가 세존의 제자인 아난다.쉰한살인 아난다가 여든에 접어든 석가 세존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아난다의 눈을 빌려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풀어가면서 육욕(肉慾) 등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욕망과 싸우는 수행자의 모습을 그려나간다.나아가 석가모니도 경전 속의 인물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도는 살아 숨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학적 묘사와 설법이 황홀하게 만날 때 소설은 절묘한 빛깔을 빚는다.다음 장면처럼.“세존의 등에는 근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감돌았으나,그 등은황야에서 자라는 한 그루의 거목처럼 정결하고 쓸쓸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말고,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하물며 친구랴.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세존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설법하시던 말씀이 그 등에서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109쪽). 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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