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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로 돌아와 삶을 굽어보다

    詩로 돌아와 삶을 굽어보다

    시로 출발했지만 소설, 산문으로 더 명성을 쌓아온 두 작가가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소설가 송기원(57)이 15년 만에 전작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을 펴냈고, 베스트셀러 산문집 ‘쏘주 한잔 합시다’의 유용주(46)는 10년 만에 시집 ‘은근살짝’(시와시학사)을 발표했다.“시를 잊고 지냈다”는 송 시인은 지난 두달간 꽃봉오리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44편의 꽃시를 묶었고,“잠을 잘 때도 시를 생각했다.”는 유 시인은 묵은지처럼 잘 익은 43편의 시를 모았다. 개성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깨달음으로 산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더 깊은 울림을 전달하기는 마찬가지다. ●송기원 시인 붉은 능소화 꽃 그림이 강렬하다. 생동감 넘치는 표지 이미지에 끌려 시집을 펼치면 아예 지천에 꽃그림, 꽃향기다. 바람꽃, 찔레꽃, 각시붓꽃, 배꽃, 석류꽃…. 왜 하필 꽃을 소재로 택했을까.“중학교 3학년때 유서에 ‘내 피는 더럽다’고 썼어요.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자괴감으로 문청시절에는 탐미, 퇴폐같은 어두운 에너지에 시달렸고, 그런 자신을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사라지는 나이가 되고보니 자기혐오마저 아름다운 꽃처럼 느껴지더군요.” 첫 장에 실린 서시는 “한번도 내안의 꽃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시인의 뒤늦은 한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어리석도다/내 눈이여.//삶의 굽이굽이, 오지게/흐드러진 꽃들을//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지나쳤으니.’(‘꽃이 필 때’) 송씨는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각각 당선돼 등단했다.1983년 첫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나올때’로 신동엽창작기금을 받고,1990년 옥중체험과 뒷골목 기행을 그린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을 펴냈다. 하지만 소설집 ‘인도로 간 예수’‘사람의 향기’,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또 하나의 나’등 산문이 워낙 승해 시인으로 그를 기억하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다. “이번 시집에서 즐겁게 내 자의식을 털어버려 이제 시를 그만 쓸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시인. 그래서일까. 그리움과 사랑의 표상, 황홀하게 피어오르다 순식간에 져버리는 정념의 상징, 찰나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명상적 깨달음 등 세상사를 꽃에 빗댄 모든 시편들은 하나같이 간절하고, 격정적이고, 뜨겁다. ‘어디엔가 숨어/너도 앓고 있겠지.//사방 가득 어지러운 목숨들이/밤새워 노랗게 터쳐나는데//독종의 너라도//차마 버틸 수는 없겠지.’(‘개나리’)‘그럴 줄 알았다.//단 한번의 간통으로//하르르, 황홀하게//무너져내릴 줄 알았다.//나도 없이/화냥년!’(‘모란’) 예전 시골다방에서 열리던 시화전의 추억이 그리웠다는 시인은 비록 시골다방은 아니지만 ‘소원’을 이루게 됐다. 시인의 시편과 짝을 이룬 중견화가 이인씨의 그림들이 교보문고와 문학사랑 주최로 16∼26일 교보문고 강남매장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8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유용주 시인 중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벽돌공, 출판사 직원, 술집 지배인 등 수십개의 직업을 전전하던 유용주가 시인이라는 천직을 얻은 건 1991년이다. 그해 ‘창작과비평’가을호에 ‘목수’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가장 가벼운 집’(1993년),‘크나큰 침묵’(1996년)등 시집 두 권을 냈다. 하지만 시쳇말로 그를 띄운 건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다.2000년 발표한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MBC ‘느낌표’에 선정되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했고, 지난해 가을 내놓은 두번째 산문집 ‘쏘주 한 잔 합시다’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워낙에 과작이라고 해도 내심 10년만의 시집 출간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가 먼저 “먹고 살기 힘들어 시에 소홀했다.”고 실토한다. 시집 첫머리에 “꼭 십년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는 말로 소회를 대신한 그는 “친정엄마는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해주지 않느냐. 그런 심정으로 이번 시집을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들보다 더 모질고 고된 세상을 경험한 시인의 성찰은 때론 깊은 사유로, 때론 웃음 가득한 해학으로 피어난다.‘길 위에 서는 자는 안개도 짐이 된다/길 위에 서는 자는 이슬도 짐이 된다’(‘길 위의 날들’중)거나 ‘전신을 물결에 맡기고/때리는 게 아니라 어루만지며 나가야 한다/물살을 찢는 게 아니라 기우면서 나아가야 오래 간다’(‘물 속을 읽는다’중)에서는 삶의 이치를 깨달은 자의 고요한 시선이 느껴진다. 표제작 ‘은근살짝’은 지난해 현대상선 하이웨이호를 타고 인도양 한복판을 항해하던 중 불쑥 떠오른 시다.‘…수심 5000m인도양 새벽을 건너고 있을 때 누군가 뜨끈한 이마를 쓰다듬는 차가운 손길이 있어 소스라치며 일어났더니 바다보다 더 넓게 퍼진 하늘에 떠 있던 한 떼의 별무리, 은근살짝 내려와 글썽이고 있더라’ 시집에는 가족과 가난의 기억에 대한 시들이 많다. 시인은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내 시도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시도 시지만 시집 말미에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소설가 한창훈이 입심좋게 쓴 발문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1994년 창훈이가 소설집 ‘가던 새 본다’를 낼 때 발문을 썼는데 그때의 빚을 이자 쳐서 갚은 것”이라며 웃었다.9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우리구 최고야!] 영등포

    [우리구 최고야!] 영등포

    서울에 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은백색의 축제를 기다린다. 이제는 서울의 대표적인 축제가 된 여의도 벚꽃축제는 눈송이처럼 쏟아지는 벚꽃의 향연과 눈이 부신 한강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 영등포구의 자랑이자,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의도 벚꽃축제가 이제 국제적인 문화행사로 부상하고 있다. ●여의도, 관광 명소·동북아 금융허브 재탄생 1970년대 초에 개발,‘한강의 기적’을 이끌며 정치, 금융, 언론의 심장부 역할을 맡아온 여의도가 동북아 금융허브이자, 관광명소로 거듭난다. 세계적인 금융·보험그룹인 AIG사와 다국적기업, 특급호텔 등이 입주할 ‘서울국제금융센터’ 및 70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이 건립되면 여의도 스카이라인이 달라진다. 한강시민공원과 여의도 벚꽃길 등을 연결하는 순환모노레일이 세워져 여의도·한강관광벨트가 한국의 주요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지난해 구는 총 11억원의 예산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뒷길과 서울교를 잇는 2.1㎞ 구간에 빛의 색깔을 달리할 수 있는 투광조명(Up-Light)을 설치했다. 벚꽃과 빛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리고 지금은 2006년 새봄의 축제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여의도 전체를 한번에 돌아볼 수 있는 순환보행로를 설치하려고 마포대교 남단 등 보행로가 단절되는 4개 구간에 차도를 우회하거나, 보행로를 건설해 7.9㎞에 이르는 전체 여의도를 연결할 계획이다. 또 여의교 앞 자투리공지에 수목 및 초화류를 심어 벚꽃 길과 연계한 녹지대를 형성한다. 여의도 개발 당시 식재된 왕벚나무 1440여주를 보강하기 위해 왕벚나무 129주, 관목 2만 100주를 식재하여 벚꽃터널을 조성, 축제 분위기를 한층 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즐거운 화합의 장 벚꽃축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행복한 기운이다. 해마다 꽃망울이 고개를 내밀면, 꽃보다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가족이나 연인들의 손을 잡고 여의도를 가득 메운다. 그리고 문화·예술·스포츠 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져 벚꽃 축제를 찾은 시민들은 즐거운 추억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간다. 올해에는 벚꽃 길을 따라 한강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환상의 요트공연이 펼쳐진다. 젊은층은 물론 중·장년층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시민들이 직접 준비한 행사들이 축제의 분위기를 띄운다. 이스포츠(e-sports) 등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축제의 흥을 돋워 시민들이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구는 해가 거듭될수록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벚꽃 축제의 내실을 다지려고 시민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올봄 여의도에 꽃비가 내리면 하얀빛의 장관이 600만 상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진이 문화에술팀
  • [깔깔깔]

    ●남자들의 미인관 *성질 더럽고 예쁜 여자 : 예쁜 게 착한 거다. *머리 나쁜데 예쁜 여자 : 사랑은 머리로 하는 거 아니다. *무식하고 예쁜 여자 : 순진한 거다. *왕내숭에 예쁜 여자 : 가슴 떨린다. *뻣뻣하고 예쁜 여자 : 애교로 녹인다. *허영덩어리이고 예쁜 여자 : 이 한몸 다 바쳐 허영심을 충족시키는데 이바지한다. *썰렁하고 예쁜 여자 : 그건 썰렁한 게 아니다. *돈 없고 예쁜 여자 : 내가 벌면 된다. *집안 변변찮고 예쁜 여자 : 난 언제나 사람만 본다. *주위에 남자가 많고 예쁜 여자 : 내가 비록 서열상 서드일지라도 황홀하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2번째 태극전사 붉은악마 신경수 의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2번째 태극전사 붉은악마 신경수 의장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축구! 놀라운 공격 전술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수비, 네트를 가르는 승리의 골은 분명 관객들을 경악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영국의 에버딘 대학의 리처드 줄리아노티 교수는 “농구는 축구보다 빠르고, 야구는 더 지능적이지만 축구만큼 인류 역사상 지역과 계급을 막론하고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경기는 없다.”고 말한다. 또 장엄하고 황홀한 순간에 느끼는 미학적 감동에 다름아니다고 했다. ●조별예선 통과때 2002년 신화 가능 올해의 국민적 소망을 묻는다면 그 첫번째가 아마 ‘어게인(Again) 2002년’이 아닐까. 너 나 할 것 없이 오는 6월 열릴 독일 월드컵에서 2002년의 신화를 재현해보자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다들 또한번 감동과 환희에 빠져보자는 생각에 벌써부터 6월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올해의 화두는 지구촌이 그러하듯 ‘축구’인 셈이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에서 ‘가장 먼저 뛰고 가장 나중에 쉬는 선수’가 있다. 바로 12번째 태극전사,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를 두고 한 말이다.4년전 온 국민을 하나로 붉게 묶었던 ‘그들’이 새해를 맞아 꿈을 이루기 위한(For our dream)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신경수(36·회사원)씨.‘붉은악마’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붉은악마 대의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붉은악마의 ‘축구쉼터’에서 만났다. 쉼터에는 최근 새로 준비한 공식 응원 티셔츠와 2002년 환희의 흔적들, 과거 월드컵에서 사용했던 공인구, 각종 축구자료 등이 비치돼 있어 작은 축구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신씨는 자신이 내세울 것도 없고 그래서 언론 인터뷰를 가급적 피해왔다고 말했다. 먼저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어느정도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는지 물었다.“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조별 예선이 통과되고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2002년의 신화, 아니 2006년의 새로운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조별 예선은 실력을 바탕으로 각국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겠지만 그 이후에는 운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많아 우리가 예선만 통과한다면 4강 진출도 얼마든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우리가 속한 G조 예선에서 만약 프랑스가 1승2무가 된다면 정말 골치아픈 상황, 즉 복잡한 변수가 많이 작용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느때보다 응원의 힘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했다.“물론이다. 이번 월드컵은 세 경기 모두 어웨이 경기다.”면서 “스위스나 프랑스는 차를 타고 독일로 오면 되니까 엄청나게 많은 응원단이 이동할 것이다. 토고 역시 프랑스령이었고 토고 선수들 또한 프랑스에 많이 진출해 있다. 따라서 응원규모에선 우리가 훨씬 열악한 편”이라고 했다. ●독일에 응원특공대 300명 파견 하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비록 최소의 규모라도 최대의 효과를 창출해낼 생각이라고 각오를 피력했다. 이어 “지난달 8일 두명을 독일 현지에 파견했으며 현재 한명이 남아 격전지 주변에서 캠핑장 등을 물색하고 또 현지 유학생, 교민들과도 부지런히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캠핑장은 대부분 경기장에서 걸어서 30분 이내의 거리를 확보했다. 응원준비의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은 오는 14일 대의원 대회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응원석 확보와 관련,“우선 붉은악마 300여 회원이 현지에 특공대로 파견되며 이들은 N석(경기장 북쪽 골대 뒤편)에서 조직적인 응원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N석이냐고 했더니 비밀이라고 씩 웃은 뒤 “우리 대표팀에게 묘한 기운이 있다. 전반전에 약간 밀리다가 후반전에 골을 넣고 이길 경우 공격방향이 대부분 S석(경기장 남쪽)에서 N석쪽으로 이루어질 때였다.”면서 “그래서 과거 홍명보 등 우리 대표팀 주장들은 경기 직전 동전으로 지역선택을 할 때 대부분 N석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따라서 현지 교민들에게도 입장권을 예매할 때 가급적 N석쪽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것. 아울러 응원의 강약과 템포 또한 더욱 치밀하게 전개한다는 작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격당할 때면 응원템포를 확 죽이고 반면에 공격할 때면 템포를 급상승시켜 ‘대∼한민국’을 외쳐대면 젖먹던 힘까지 나오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도중 붉은악마들과 교감이 잘 되느냐고 하자 “우리 대표선수들이 경기장 안으로 입장할 때부터 눈빛으로 통한다.”면서 경기 중에는 5,6가지의 응원 템포와 함성 등으로 무언의 대화가 항상 이루어진다고 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준비 중인 응원의 형태는 크게 두가지. 즉 현지 원정대와 국내팀이다. 원정대는 일당백의 임전 각오로 교민과 함께 응원전을 펼치며 국내팀은 4년전처럼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길거리 응원을 주도한다. 이는 ‘빛의 잔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토고전(6월13일 오후 10시), 프랑스전(6월19일 오전 4시), 스위스전(6월24일 오전 4시) 등 세 경기가 늦은 밤 혹은 새벽에 열리기 때문에 ‘어둠을 밝히는 응원전’이 될 것이라는 설명. 장소는 서울광장 등 마땅한 장소를 현재 물색 중이다. ●응원구호 Reds, Go Together로 바꿔 독일 월드컵에서의 응원구호는 4년전의 ‘Be the Reds’에서 ‘Reds,Go Together’로 바꿨다. 온 국민이 진정한 12번째의 전사로 함께 가자는 뜻이 담겨 있으며 그래야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제로 ‘For our dream’으로 정했는데 이는 한국 축구의 발전, 즉 ‘축구가 문화로 정착되는 것’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티켓예매와 관련,“입장권 숫자 제한으로 독일 현지로 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라면서 “대한축구협회가 FIFA로부터 배정받은 티켓의 10분의 1수준(300장)을 확보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티켓이나 항공료, 현지 체제비는 각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경비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장 인근의 캠핑장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붉은악마 회원이 늘고 있느냐는 질문에 “30만명쯤 된다. 이 중 많은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약 1000명정도 생각하면 될 것”이라면서 이들은 K리그,K2리그, 여자축구 등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했다.“붉은악마라는 이름을 사용한 지 10년이 됐다. 회원들도 많이 늘었고 계속 늘고 있다.”면서 “우리의 정체성은 ‘국가대표 축구팀 서포터스 클럽’이며 오로지 축구만, 축구응원만을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새해의 각오에 대해서는 “뭐니뭐니 해도 이번 월드컵에서 새로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 열기가 그대로 이어져 K리그,K2리그, 여자축구 등 축구가 우리의 진정한 문화가 되는 원년이었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인천에서 출생했으며 어린 시절 강릉에서 대부분 보냈다. 고등학교때 서울로 이사왔으며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붉은악마 회원으로 가입한 것은 2002년 월드컵때. 회사 출장일로 타이완에서 한국과 포르투갈전을 관전하면서였다. 당시 한 백화점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100여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목놓아 응원했으며 귀국직후 가입했다.40대에 준비하고 50대에 돈을 벌어 보육원을 짓고 불우 아동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 ‘붉은악마’가 걸어온 길 ▲1995년 가칭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Great Hankuk Supporters Club)’으로 출발. ▲97년 공식 명칭을 ‘붉은악마’(Red Devil)로 확정.’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 대 일본전 도쿄 경기에 최초의 해외 원정 응원. ▲98년 ‘붉은악마’ CD 제작. 프랑스 월드컵 원정 응원. ▲2000년 붉은악마 운영 및 미래에 관한 공청회 개최. 한·일 정기전 도쿄 원정. ▲01년‘Be the reds!’ 캠페인 시작. 홍콩 칼스버그컵 원정 응원. ▲02년 붉은악마 두번째 응원 앨범(CD) ‘WITH YOU‘ 제작 발매. 한·일 월드컵 응원. ▲03년 붉은악마 축구쉼터 개관. 동아시아 연맹컵 축구 선수권 원정.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원정. ▲04년 아테네 올림픽 원정,2004 아시안컵 원정. 아시아 여자 청소년 축구대회 원정. ▲05년 현 신경수 의장 취임.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쿠웨이트·우즈벡전 원정. ▲06년 1월 독일 현지 조사단 파견 응원계획 수립 중 We팀장 k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눈덮인 겨울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이 있고, 한적한 득량만 포구의 갈매기 날갯짓이 정겹게 다가온다. 태백 산맥의 무대인 벌교에 가면 소설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녹차·해수탕에서 겨울 포구의 정취를 느끼며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으며, 제철 만난 벌교의 특산물 ‘벌교 꼬막’이 겨울 입맛을 돋운다.‘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내년 3월까지 계속돼 해가 진 뒤 녹차밭에는 화려한 불꽃이 반긴다. # 눈덮인 녹차밭의 낭만 속으로 하얀 눈꽃이 소복이 내려앉은 차밭의 풍경은 장시간의 여행 피로를 한순간에 풀어준다.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에 6시간 남짓한 여행길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먼저 들른 곳은 각종 영화, 드라마,CF의 단골 촬영지인 대한다업(061-852-2593).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700여m 길이의 터널같은 삼나무 숲길이 반긴다. 하늘을 향해 촘촘하게 이어진 뾰족한 삼나무 길은 마치 설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삼나무 꽃말은 연인들에게 길의 의미를 더해 준다. 미끄러운 나무 계단을 오르자 흰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차밭이 등고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물결친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차밭 위에 사뿐히 내려 앉은 눈꽃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보성 차밭은 1940년 경작되기 시작, 연간 5000여t의 차를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5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맑고 고온다습한 날씨와 토양덕에 품질 또한 으뜸으로 친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차밭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 낭만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으로 졸업여행을 온 안양여중 학생들이 “눈쌓인 차밭이 환상적”이라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노해나(16·안양여중 3년)양은 “멋진 차밭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헤어질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녹차 시음장에 들르면 따뜻한 녹차 한잔으로 추위를 녹일 수 있다. 시음료 1000원만 내면 향기로운 녹차를 마음껏 시음할 수 있다. 녹차는 등급에 따라 우전, 곡우, 세작, 중작, 대작, 엽차 등으로 나뉘는 데 곡우를 전후해 따 수제로 만든 최고급 녹차인 우전 100g에 5만 5000원이며, 대작은 1만원이다. 여기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10여분쯤 내려가면 나오는 봇재다원(061-853-1117)에서는 영천저수지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계단식 차밭의 풍광을 만난다. 도로변에 있는 다향각에 오르면 힘들이지 않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 곳은 지난 15일부터 ‘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시작된 곳으로 내년 3월까지 녹차밭을 따라 만들어진 멋진 조명을 볼 수 있다. 멀리 활성산 자락의 녹차밭에 높이 120m, 폭 130m 크기의 대형 트리 조명을 설치해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축제는 내년 3월까지 계속되며, 조명은 해가 진 뒤 새벽 3시까지 불을 밝힌다. # 녹차 해수탕에서 피로를 씻고 아침 일찍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면 남해 바다로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겨울 바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위로는 한 쌍의 갈매기가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 오른다. 한적한 겨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묻어난다. 바닷가와 인접한 보성군 직영 ‘율포 해수·녹차탕’(061-853-4566)에서는 바닷가 통유리를 통해 목욕을 즐기며 겨울 바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하 120m 암반에서 끌어올린 해수탕과 보성 녹차를 원료로 한 녹차 해수탕은 피부를 통해 녹차 성분이 흡수돼 피부탄력을 유지하고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다. 입욕료는 5000원. 아울러 보성은 남도 정서를 애절한 소리로 승화시킨 서편제의 고장. 대원군에게 총애를 받은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의 창법이 정응민에게 이어지고 정응민은 독특한 보성의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이 때문에 보성은 삼보향(三寶鄕)으로 불리는데 차의 본고향인 다향(茶鄕), 소리의 고향 예향(藝鄕), 충의열사가 많은 의향(義鄕)이 합쳐진 별칭이다. #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벌교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벌교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도시로 벌교라는 이름은 지금 홍교(보물 제304호)가 있던 자리에 ‘뗏목 다리’가 있어 그 이름을 딴 것이다. 벌교 읍내 전체는 태백산맥 유적지로 가득하다. 첫번째 답사 코스는 ‘철다리’. 빨치산 대장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던 땅벌을 제압하고자 스스로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가 올 때까지 오래 버티는 담력 결투를 벌였던 곳이다. 지금도 목포∼부산을 운행하는 서부 경전선이 운행한다. 인근에 있는 중도방죽은 일본인 나카시마(中島)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간척사업을 해 만든 곳으로 지금은 방죽위에 황톳길을 깔아 산책로로 이용된다. 홍교는 세 칸짜리 무지개 다리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홍교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벌교천 하류를 따라 내려가면 소화다리에 이르는데 원래는 부용교였으며, 소설 속에서 좌·우익 서로간에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로 밀물때면 여기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온통 피바다였다는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벌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남도여관은 소설 속에 등장한 여관으로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 소설속 무대로 김범우의 집, 벌교역, 회정리교회, 현부자집, 진트재 등이 있으며, 태백산맥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조정래 작가(www.jojungrae.com), 벌교 사랑회(www.beolgyosarang.com) 등이 있다. # 제철 만난 벌교 꼬막의 맛 보성에는 녹차 성분이 함유된 녹차 수제비와 녹차떡국, 녹돈, 녹우 등 녹차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겨울 먹거리는 역시 벌교 꼬막. 예로부터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으며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풍미가 일품이다. 꼬막은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식품으로 소화 흡수가 잘돼 어린 아이에게도 좋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장암리와 대포리가 대표적인 생산지 인데 이 곳의 개펄은 모래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참펄로 다른 곳의 꼬막과는 달리 짭짤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물이 빠지면 어부들이 널빤지에 갈고리가 달린 펄배를 타고 나가서 꼬막을 캐온다. 연간 2000t 정도가 생산되는데 재래시장 등에서 20㎏짜리 1깡(그물망)에 6만∼6만 5000원에 판매한다. 벌교 꼬막은 삶아서 까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삶는 방법도 다른 곳과 다르다. 우선 80∼90도(중불)에 꼬막을 넣은 뒤 한쪽 방향으로 돌려 삶는다. 이때 꼬막의 껍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살짝 데친다. 꼬막이 물에서 검붉은 물을 쏟아낼때 꺼내 껍질을 손으로 벗겨낼 수 있으면 다 삶아진 것이다. 꼬막 전문식당으로는 홍도회관(061-857-8088)이 있다. 꼬막정식 1인분에 1만 2000원인데 삶은 꼬막과 꼬막전, 꼬막회무침, 양념꼬막, 꼬막된장국 등 각종 꼬막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여행길에 동행했던 문화유산해설사 김영희씨가 선물이라며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들려줬다. 부용산은 벌교 인근에 있는 산으로 박기동 시인이 꽃다운 16살의 나이로 폐병으로 죽은 여동생을 산에 묻고 돌아오며 지은 시에 이 지역 음악교사였던 안성현 선생이 곡을 붙인 애절한 노래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었구나/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여행정보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화순·능주를 거쳐 40분쯤 달리면 보성군이다. 서울에서 5시간30분쯤 걸린다. 기차는 서울역에서 보성역까지 무궁화호가 하루 한차례 운행하며, 버스는 서울 강남터미널 호남선에서 고속버스가 오전 8시20분과 오후 3시20분 2회 운행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백제의 고찰 대원사와 티베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티베트박물관, 세계 최대규모의 공룡알 집단산란지인 비봉공룡알 화석지, 보성소리 전수관, 정응민 예적지 등이 있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 850-5223, www.boseong.go.kr 글·사진 보성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파랑주의보’로 스크린 데뷔 송혜교

    ‘파랑주의보’로 스크린 데뷔 송혜교

    영화 ‘파랑주의보’(제작 아이필름)의 시사회장을 나서며 기자는 송혜교(23)에 대한 몇가지 편견을 버렸다.‘순풍 산부인과’(TV시트콤)시절의 젖살을 좀체 가셔내지 못할 만년 소녀, 청년과 성년의 중간지점에서 결정적 도약의 뒷심이 달릴 듯한 청춘스타.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22일 개봉하는 전윤수 감독의 청춘멜로 ‘파랑주의보’는 온전히 송혜교의 영화였다. 이루지 못해 가슴 저린 첫사랑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스크린 데뷔작에서 그녀는 교복 입은 여고생이 됐다. 출세작 ‘가을동화’(2000년)의 정서를 재탕하지 않겠냐던 충무로의 입방아를 잠재워버렸다.‘가을동화’의 감수성을 빌려오긴 했으되 영화에는 새로운 송혜교가 보였다. 미성숙의 풋내를 털어 여인의 향기를 피웠고, 첫나들이한 스크린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여유가 빛났다. 지난 14일 오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얼굴부기가 덜 빠진 아침 인터뷰를 여배우들이 싫어하는데…”라는 기자의 인사말을 털털한 웃음으로 받아쳤다.“부어도 그냥 (인터뷰)해요. 나중에 사진 보고서 또 후회하겠지만.” 그런 그녀라서 현장스태프들은 ‘톱스타 티를 내지 않는 스타’라 좋게 말하는 모양이다. #‘송혜교답게’ 스크린 착륙 연예계 데뷔 10년만에야 첫 영화를 찍었다.TV드라마 한편만 띄우면 총알같이 스크린으로 달려나오는 연예계 생리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가을동화’ 이후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어요. 더러 대작도 있었고요. 하지만 제 스스로가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어설픈 출발은 안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극중 ‘수은’은 여고 2년생. 같은 반 남자친구(차태현)와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죽음을 앞두고 최루성 순애보를 엮는 영화를 송혜교는 “안전 카드”라는 솔직한 표현을 썼다.“‘또 저런 모습이야?’라는 소리도 듣겠지만, 첫 영화로 모험하긴 싫었다.”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가장 송혜교다운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멋몰라서 즐거웠던 스크린 나들이 ‘파랑주의보’는 즐거운 경험이었다.“카메라 앞에 서면 즐기자는 생각만 했어요. 태현 오빠랑 신나게 놀면서 찍으면 된다, 그렇게 최면을 걸었죠.” 청춘멜로에 있어선 ‘경지’에 오른 차태현을 상대배우로 만난 건 행운이라고 했다.“당대 최고인 여배우와 작업하긴 진짜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딜가나 나를 치켜세우며 이끌어주는 태현 오빠가 정말 고마웠다.”는 요지의 말을 몇번쯤 보탰다. 그녀의 안티팬 중에는 이런 삐딱한 시선이 있을지 모른다.‘가을동화’ 한편으로 한류스타에 등극했으니 인기거품이 적지 않다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같다고 에둘러 물었다.“그렇게 비춰질 뿐, 상처받은 적이 많았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순풍 산부인과’에서 ‘가을동화’로 넘어갈 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시트콤에서 갑자기 정극의 주인공에 캐스팅됐으니 주위에서 얼마나 수군댔겠어요? 두고보자 싶었죠. 근데 마음만큼 쉽진 않더라고요.‘가을동화’ 4,5회분 찍을 때까진 감독님(윤석호 PD)한테서 캐스팅을 바꾸고 싶다는 절망적인 말까지 들었으니까.” “이를 앙다물었고,10회 촬영분에서야 감독한테 ‘됐다. 이제 혜교가 안 보이고 은서(주인공)가 보인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연기생활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또박또박 되짚었다.“윤 감독님께 첫 영화를 꼭 보여주고 싶어 시사회 초청 문자를 날렸다.”는 그녀에겐 확실히 성숙의 여유가 넘쳐났다. #“이제 연기가 보이네요.” “감정연기를 할 땐 밥도 굶고 코디네이터조차 옆에 못 오게 할 정도로 여전히 예민하다.”면서도 “연기 탄력을 받고 있는 것같다.”는 자신에 찬 말을 했다. 가속이 붙을 때 영화 두세편쯤 연달아 찍겠다는 생각이다. 연기자로서의 오지랖이 부쩍부쩍 넓어지는 걸 스스로도 느낀단다. “‘올인’때까진 촬영장에서 한마디도 못했어요. 뭐가 뭔지 모르고 연기한 거죠.‘햇빛 쏟아지다’‘풀하우스’때 비로소 대본이 제대로 보였고요. 이번 영화에선 시나리오에 제 의견이 반영되기도 했어요.” 남자친구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수호야, 수호야…” 이름 부르기를 반복하는 쓸쓸한 장면은 그녀의 아이디어이다. 요즘은 와인 마시는 재미에 푹 빠졌다.“‘가을동화’찍을 때는 술을 입에도 못댔는데, 이젠 와인 맛을 즐길 줄 안다.”는 그녀는 “후속작을 결정하진 못했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일 거란 장담은 할 수 있다.”고 했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이별이 머무는 곳 안면도

    이별이 머무는 곳 안면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이맘때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석양을 찾아 떠난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풍요로운 새해를 맞이하고픈 소망 때문이다. 일몰은 새해맞이에 앞서 이뤄지는 마무리 의식과도 같은 것. 연말이면 으레 떠오르는 여행 테마이기도 하다. 묵은 것들을 떠나보낸다고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은 없다. 우리의 삶은 다가오는 새해가 있어 여전히 가슴 벅차다. 서해안 일대에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충남 태안군 안면도를 찾았다. 글 사진 안면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개펄 위의 황토빛 장관 하얀 눈꽃이 날리던 날. 검붉은 겨울 바다 위로 떨어지는 황홀한 낙조를 보기 위해 안면도로 향했다. 일대에 내린 폭설로 가는 길이 온통 새하얗다.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IC를 빠져나와 안면도로 가는 서산 A·B방조제 길은 하얀 눈길. 조금 미끄럽지만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겨울 철새가 쉬었다 가는 천수만을 지나 A방조제를 넘어서자 저 멀리 간월암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과는 달리 흰눈에 덮인 간월암은 고즈넉한 모습이다.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됐다가 물이 차면 섬이 되는 간월암은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그렇게 고요히 서 있다. 77번 국도에 접어들어 10여분쯤 더 달리자 안면대교를 건너 안면도로 접어들었다. 안면도에는 초입의 백사장 해수욕장에서 바람아래 해수욕장까지 모두 12개의 해수욕장을 가진 아름다운 섬. 여름철 해수욕 인파로 북적이던 해수욕장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오후 4시. 서둘러 방포항과 꽃지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꽃다리로 향했다. 안면도를 대표하는 낙조인 할미·할아비 바위의 낙조를 보기 위해서다. 매년 12월 31일 태안반도 청년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저녁놀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황홀한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다. 올해는 오후 3∼7시 풍물놀이와 소원기원 소지 쓰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일찌감치 할미·할아비 바위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꽃다리에 자리를 잡았다. 꽃다리는 일몰 무렵이면 사진 작가와 사진 애호가 등이 다리 난간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최고의 낙조 포인트다. 해가 수평선으로 기울어 갈수록 붉은 빛이 할미·할아비 바위를 진홍빛으로 물들인다. 넓게 펼쳐진 개펄 사이로 난 조그만 물길 사이에는 붉은 빛으로 커다란 불기둥이 생겨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을 준다. ‘와∼.’탄성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아름다운 낙조의 모습에 주위가 술렁인다. 다리 위에서는 연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진다. 그것도 잠시, 붉은 노을의 장관을 연출하던 해는 진한 여운을 남기며 곧바로 서해 바다속으로 떨어진다. 60대 중반의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는 “연말이 되면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 중간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일품”이라면서 “구름이 낀 날은 구름이 낀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아름다움이 있다.”며 여운을 떨치지 못했다. 안면도 최고의 일몰 포인트로는 꽃지 해수욕장을 꼽지만 한적한 일몰을 감상하고 싶다면 방포해수욕장이나 두여·삼봉·안면·샛별·장삼·바람아래 해수욕장 등도 좋다. 꽃지에 비해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다. 노천탕에 몸을 담근채 낭만적인 일몰을 즐기고 싶다면 오션캐슬(041-671-7060)의 노천 선셋스파를 찾으면 된다. 꽃지 바다에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수 있다. 유황해수 바데풀과 지압탕, 홍송탕, 폭포탕, 녹차탕 등이 마련돼 있어 피로를 풀기에 적합하다. 이 곳의 사우나는 지하 420m 암반에서 솟아난 온천수를 이용하는데 다른 온천수와 달리 바닷가라서 소금기가 있어 짭짤하다. 사우나는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이며 사우나와 노천 선셋스파는 4시간에 어른 2만원, 어린이 1만 4000원이다.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싱싱한 해산물로 해수욕장 주변에 횟집들이 즐비하다. 방포해수욕장에 있는 바닷가회타운(041-673-9907)에서는 일몰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눈덮인 숲속마을에서의 하룻밤 안면도 겨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안면도 자연휴양림(www.anmyonhuyang.go.kr·041-674-5019). 아침 일찍 눈꽃이 아름답게 핀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주차료는 승용차 3000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눈꽃 속에 폭 파묻혀 예쁘게 빛나는 빨간 ‘피라칸사스’가 반겼다. 그 위에는 이 지역 출신 시인인 채광석(1948∼1987)의 시비 ‘기다림’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이름모를 산새들이 떼지어 날고/계곡의 물소리 감미롭게 적셔오는/여기 이 외진 산골에서/맺힌 사연들을 새기고/구겨진 뜻을 다리면서/기다림을 익히리라…” 휴양림 속으로 들어섰다. 솔가지마다 눈꽃을 담고 서 있는 소나무 숲은 지난 2001년 제 2회 아름다운 숲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됐을 만큼 아름답다. ‘숲속의 집’으로 불리는 휴양림은 5∼19평형 통나무 집과 15∼18평형 한옥집 등 17동이 있어 한적한 겨울 휴가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격은 통나무 집 5평형(3명)이 2만원,19평형(10명)이 7만원, 한옥(8∼9명) 7만원이다. 연인이나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라면 한적한 휴양림에서의 겨울 밤도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듯싶다. 휴양림에는 15∼60분 정도 걸리는 5개의 산책로가 있으며, 휴양림 맞은 편에는 예쁜 수목원이 반긴다. 수목원에는 금강초롱과 관목, 교목 등 1012종이 전시돼 있다.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산책로는 2.1㎞로 40분 정도 걸린다. 안면도 닷컴(www.anmyondo.com)에는 교통, 숙박, 음식, 주변관광 등에 대한 정보가 망라돼 있다.(041)673-4052. ■ 일몰 일출 여기서 한번쯤… ‘해는 지고, 해는 뜨고’ 을유년(2005년) 일몰은 31일 오후 5시25분 강화도를 시작으로 충청 당진(5시26분)을 거쳐 전남 해남 땅끝마을(5시33분)에서 끝을 맺는다. 개의 해인 병술년(2006년)의 일출은 1일 오전 7시26분 우리나라 최동단 독도를 시작으로 부산 태종대(7시31분)와 포항 호미곶(7시32분), 강릉 정동진(7시39분), 제주 성산 일출봉(7시36분)을 서서히 밝힌 뒤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에서 막을 내린다. ●일몰은 여기에서 서해안에서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의 작은 포구인 왜목마을. 석문산(79m)에 오르면 해넘이와 해돋이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 충남 서천군 마량리 마량포구에서도 31일 일몰 감상과 달집태우기행사에 이어 새해 1일에는 화려한 불꽃쇼와 함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은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에서 동막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포인트다. 마니산(470m)에 올라 일몰을 보는 것도 좋다. 남해에서는 완도의 화흥포항에서의 일몰을 볼 수 있다. 다도해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일출은 여기에서 동해안 등 일출명소에서는 가족, 연인, 친구 등을 위한 다양한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떠오른다는 포항의 호미곶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야제로 화려한 불꽃놀이와 콘서트가 열린다. 강원도 강릉시의 정동진에서는 12월31일 밤부터 1월1일 아침까지 해돋이 축제가 열린다. 모래시계 회전식과 신년 카운트다운, 불꽃놀이 등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대 해맞이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면서 금강산 관광 길목에 있어 통일을 기원하는 실향민들의 단골 해맞이 명소로 통일기원 범종 타종식이 열린다.
  •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느 인생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느 인생

    『저의 소원은 빨리 완전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성을 가지고 살기 위해 안간힘 쓰는 임(林)양(?)의 말이다. 남자와 함께 있을 때 스스로 여자임을 확인할 수가 있어서 그나마도 한 가닥의 행복을 맛본다는 기이한 성의 미아(迷兒)가 임군(?)이다. 어느 날 동침하던 미군이 2중 성기 가졌다고 진술 이 존재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임(林)양으로 부르기로 한다. 21세의 여인이다. 서울시내 이태원동에 산다. 직업은 위안부. 생업에 충실하려면 어디까지나 여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이 일대에서 그녀를 여성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임양이 4월 10일 밤 위안부가 된 지 처음으로 하룻밤 경찰의 신세를 졌다. 호객(呼客)행위를 지나치게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용산의 모「바」에서「미첼·W·하림」상병이라는 젊은 미군과 어울렸다. 함께 임양의 하숙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사건이 터졌다.「하림」상병은 임양이 2중 성기를 가진 것에 화가 나서 임양을 마구 때리고 방안에 걸려 있는 임양의「원·피스」와「브래저」등 20여 점(싯가 3만원)을 닥치는 대로 갖고 달아나다 순찰 경찰에 붙잡혔다.「하림」상병이 경찰 진술에서 주장한 임양의 2중 성기설에 제일 놀란 사람이 하숙집 주인 김모(36)씨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우리집에 하숙한지 3개월이 되지만 전혀 몰랐습니다. 가령 사흘에 한 사람 꼴로 양손님을 받았다고 쳐도 3개월이면 30명 아닙니까. 그 사나이들이 거쳐 가면서도 말썽 하나 없었는데요』 그 말투는「하림」상병이 난처해져서 마구 되는대로 지껄였다는 기색이다. 『저는 사건이 있은 다음날, 임양의 젖가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물론「브래저」아래쪽을 말입니다. 그럼요, 여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여자가 좋아, 서커스단서도 소녀역만 임양은 전남의 항구도시에서 막벌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은 돌아간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중1, 국3인 두 동생을 부양, 매달 생활비를 고향에 꼬박꼬박 보내고 있다. 어릴 때는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서울시내에서도 이따금「텐트」를 치고 흥행을 한 일이 있는 동춘「서커스」단에 속해서 또 전국을 흘러 다녔다. 어릴 때부터 그를 남자취급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도 여자가 더 좋았다. 남성이 이성인 여자에 대하는 그러한 류의 그리움이 아니다. 여자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 이러한 엉뚱한 욕망이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본인도 분명히는 모른다. 「서커스」단에 뛰어든 것도 빵문제가 컸겠지만 여자역을 시켜준다는 유혹에 이끌린 탓이었다. 무대에서는 여배우 김지미로 분장해서 노래를 불렀다.「트럭」에「텐트」를 싣고 지방도시의 공지를 찾아 헤매는 정처없는「집시」생활도 그녀에게는 즐겁기만 했다. 5색의 조명이 자기 둘레에서 회전한다… 김지미가『검은 장갑』의 노래를 끝낸다…「서커스」구경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요란한 갈채를 보낸다… 이 순간에 임양은 최고의 황홀을 느꼈다. 나는 여자이다, 나는 여자이다 하는 짜릿한 도취감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때마다 그녀는 정신적인「오르가즘」을 맛보았다. 줄타기 연습을 하다가 떨어져서 왼팔을 부러뜨리는 고역도 치렀지만 이 도취감 하나로 버텨왔다. 밴드·맨에 반해 동거생활, 성전환수술도 바로 그때 이윽고「서커스」의「밴드·맨」과의 애정생활에 들어갔다. 성전환수술을 한 것도 이때였다. 남자이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완전한 여성으로 탈바꿈하려는 대담한 시도였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다면 그의 두터운 가슴팍 속에서 스스로의 성을 개방시킴으로써 애정을 승화시킨다. 남자인 임양의 경우는 성전환수술이 이것에 해당했다. 동거생활이 2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부부(夫夫)」도 아니고「부부(夫婦)」도 아닌 결혼생활은 어떠한 범주에 들어가는지가 의문이다. 그녀의 성전환수술이 성공을 했다면 온전한 부부(夫婦) 한 쌍이 탄생했을 것이었다. 그녀의 불완전한「섹스」에 불만을 품었는지「밴드·맨」애인이 도망을 치고 말았다. 먹고 살기 위해 여장을 하고 술집에 나갔지만 몇 주일 못 가서 위장이 탄로났다. 그때마다 번번이 쫓겨나왔다. 1년 전.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복막염을 앓아 입원을 했다. 어린 동생들은 서울에서 좋은 집에 시집간(그녀는 이렇게 속여가면서 돈을 보내주었다) 누나로부터 치료비가 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이태원으로 찾아간 것은 이 까닭이다. 1년 가까이 여기서 살아왔지만「베드」에서도 그녀의 불완전성을 눈치챈 G.I.는 없었다. 하루 수입은, 많을 때는 20「달러」(약 5천 5백원), 적을 때는 1~2천원이고 공을 치는 날도 있다. 고향의 어머니는 성전환한 딸이 부잣집에 시집간 줄로만 알고 있고 동생들은 누나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그 나머지 돈은 모두 저금통장에 들어간다. 집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고 더 좋은 옷을 사 입기 위해서도 아니다. 성전환수술을 다시 한번 받아서 언젠가는 자기 앞에 나타날 남자애인을 만족시켜주는 완전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진짜 애인을 만날 때까지 머리 안자르고 기를 생각 남자로 되돌아 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태원에 들어온 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있다. 『진짜 애인이 나와 줄 날까지 안자르고 기르겠어요』 임양은 2중 성기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더 자세한 질문에 대해서도 굵은 담배연기를 내뿜을 뿐 말이 없다. 눈을 살며시 내려 감고 웃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으스스 춥거나 색다른 흥분을 느끼게 하는 미태(美態)다. 달의 표면 같은 새까만 적막강산 속, 성의 미로를 표류하는 웃음이다. 이태원 일대에서는 막연히 중성의 여성으로 통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이러한 중성의 여성이 7~8명 있다는 것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4/20 제2권 16호 통권 제30호 ]
  • [5만원의 행복] 단풍구경 못한 당신 달래며 은행나뭇잎 비가 내리네

    [5만원의 행복] 단풍구경 못한 당신 달래며 은행나뭇잎 비가 내리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서울 근교에도 훌륭한 여행지가 많다. 특히 경기도 양평 주변에는 넉넉한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운길산 수종사, 아이들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서울종합촬영소, 우리의 영 원한 학자인 다산 정약용 생가, 물고기 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경기도 민물고기연구소와 각종 갤러리 등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가을 끝자락을 붙잡는 수종사·여유당 ●일찍 일어나야 더 멋진 여행을∼ 일단 양평일대는 차량 정체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당일 여행의 경우 무조건 아침 일찍 출발해야한다. 그래야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동네에서 파는 1000원짜리 김밥이라도 좋다. 김밥 6줄과 음료수, 과자 등을 사서 출발, 차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시간을 절약함과 동시에 돈도 아낄 수 있다. 북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제일 먼저 들를 곳이 다산 정약용생가. ●학자의 숨결을 느끼며 아침 9시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없고 한적해서 좋았다.“아빠, 이게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썼던 거중기예요.”라는 아이. 역시 어젯밤에 여행을 위한 사전공부의 효과가 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자리잡은 다산 생가는 정약용이 태어나 유년시절과 말년을 보낸 곳이다. 생가로 가는 길가에선 목민심서 글귀를 새긴 나무기둥과 수원화성 축조에 쓰인 거중기와 녹로의 모형을 볼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다산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이 눈에 들어온다.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과 선이 아름다운 여유당의 어울림은 은은한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홍수에 떠내려갔던 여유당을 1975년 복원했다. 낮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생가는 ㅁ자의 전통 한옥으로 고풍스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40여평 규모의 다산전시관에는 목민심서·흠흠신서 등 다산의 저서와 서화, 수원화성을 쌓을 때 이용한 거중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다산 생가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의자에 앉아 따뜻한 캔커피를 한잔 하며 여행의 여유를 즐겨도 좋다. 주차장·입장료 무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월요일 휴무.(031)576-9300. 30∼40분 정도 돌아보고 떠나자. 정약용의 묘역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동방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사찰 수종사로. ●동방의 아름다운 사찰 다산 생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운길산 수종사가 있다. 입구부터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아이들과 걸어 간다면 1시간은 더 걸린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일반 승용차로 갈 수는 있지만 순탄치않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하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길에 차를 세워놓아 운전하기도 쉽지않다. 하지만 차로 오르다 보면 길가에 주차할 만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 어린 아이를 업고 올라가느라 힘들지 않으려면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올라가야한다. 오전 10시쯤 차를 중턱에 세워놓고 5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걸었다. 정말 이젠 가을의 끝이다. 파란 하늘과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걸었다.10분을 걷자 “아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업고 가.”라며 아이가 주저앉는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업었다.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생각보다 힘들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을 따라 걸으니 수종사 입구가 나온다. 단풍이 좋다는 산이나 사찰에 많이 가보았지만 이렇게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다. 옅은 파스텔처럼 번지는 단풍의 아름다움, 저 멀리 보이는 북한강, 고즈넉한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사찰 역시 조선의 문호 서거정이 ‘동방에서 제일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칭송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조선시대 세조가 북한강 뱃길로 한양으로 향하다가 맑고 은은히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운길산을 뒤졌으나 절은 안 보이고 작은 암굴에 모셔진 16나한을 발견한다. 그때 세조가 들은 종소리는 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소리의 울림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절을 지을 것을 명하니 바로 수종사(水鐘寺)다. 이런 전설을 가진 수종사에는 유명한 것이 두개 있다. 첫번째가 물(水)이다. 입구에 있는 석간수 샘은 이래저래 수종사 최고의 보물이다. 물 맛을 알아본 다산 정약용이 시인묵객들을 모아 수종사에 머무르며 석간수로 우린 차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의 찻물로 이름이 높다. 대웅전 마당에 있는 다실‘삼정헌’에서는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차를 나누어준다. 북한강의 장쾌한 경치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맛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수종사 쌍은행나무다. 세조가 절을 짓고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는 525년 되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위세가 당당하며 긴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다 겪었지만 아직도 위태로운 벼랑끝에 꼿꼿하게 버티고 서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과 남한강을 지키고 있다. 바람이 불자 은행나무 비가 내린다. 황홀감이 느껴졌다. 파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가지 밑에는 노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수많은 은행잎이 떨어져 만든 그림이다. 은행을 찾아 줍는 이,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이, 디카를 꺼내 연신 연인의 표정을 담는 사람들…. 오르기가 힘들어 중간에 포기했으면 정말 아쉬웠겠다.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서둘러 하산한다. 내려오는 길은 편하다. 서 있어도 자동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비탈이기 때문이다. ●양수리의 맛집 오전 10시에 수종사에 올라갔다 오니 12시가 지났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의 ‘죽여주는 동치미국수’로 갔다. 얼음이 버적버적 얼큰한 동치미 국물에 쫄깃한 국수를 말아준다. 별로 맵지 않아 초등학생 정도면 먹는 데 지장이 없다. 함께 나오는 동치미 국물에 씻은 배추김치 같은 김치도 맛이 그만이다. 어른 둘, 아이 둘이면 국수 셋에 녹두전 하나면 OK. 국수 5000원, 녹두전 1만원.(031)576-4070. 빨리 먹고 오후 1시까지 서울종합촬영소로 가자.‘월컴투동막골’을 무료로 볼 수 있다. ■ 내친김에 들러보는 서울종합촬영소·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 ●신난다, 재미있다 10분 거리에 한국영화의 메카인 서울종합촬영소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모두 1만원.(031)579-0605.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오후 1시쯤 도착했다면 바로 매표소 옆에 있는 시네극장으로 가자. 오후 1시부터 영화가 무료로 상영된다.11월은 ‘웰컴투 동막골´이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1시·3시 두번, 평일에는 오후 1시30분에 한번 상영한다. 영화를 보았으면 무조건 영상지원관 2층으로 가자. 제일 재미있는 곳이 영상체험관. 유료시설로 입장료와 별도로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아이들이 좋아한다. 엘리베이터와 영상 시뮬레이터를 이용하여 고층 빌딩 안 영화제작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스튜디오X-prees’부터 청색스크린 앞에서 촬영한 후 암벽이나 다리 같은 배경화면을 합성하는 ‘매직박스’, 타임터널 등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매시 15분마다 입장할 수 있다. 그다음 미니어처 체험전시관으로 가자. 무료. 매시 정각과 30분에 입체영화를 상영한다.‘원더풀데이즈’라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어 특수안경을 쓰고 본다.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영상에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허공을 휘젓는다. 스케일은 작지만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보는 것과 같다. 이제는 오후 4시면 야외 세트장이나 1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내친김에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로 가자. ●팔뚝만한 잉어를 맨손으로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031-772-3480)는 무료이며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다. 서울종합촬영소에서 빨리 움직여야한다. 학습관 1층 수족관에 들어 있는 황쏘가리, 어름치 등의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쉬리와 각시붕어 등 우리나라 토종물고기들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공짜’라는데…. 살아 있는 물고기들로 가득찬 1층 전시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첨단 전자장비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시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물고기를 판박이 할 수 있는 ‘내가 만든 물고기’, 박제 물고기에 낚싯바늘을 대면 물고기 이름이 나오는 ‘낚시체험’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야외에서는 좁은 수로의 야외수족관에 잉어, 붕어, 피라미 등을 풀어 놓아 누구나 잡을 수 있게 만든 ‘터치 풀’이 인기.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팔을 걷어 붙이지만 피라미나 붕어 등 작은 물고기는 도저히 잡을 수 없고 가장 큰 잉어를 노렸다. 족히 60㎝이상 될 크기의 잉어들의 몸놀림도 예사롭지않다. 결국 아빠들 몇 명이 마음을 합했다. 두 사람은 물고기를 몰고 한 사람은 구석에서 기다렸다. 몇 번을 허탕 친 끝에 간신히 잡았다.“우와∼.”아이들의 탄성에 아빠들도 힘이 난다. 가을이 아쉬워 떠난 여행, 이렇게 하루가 아쉽게, 그러나 재미있게 지나갔다.
  • 경북 영주 고치재, 오솔길

    경북 영주 고치재, 오솔길

    무작정 걷고 싶다. 아니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고 싶다. 햇살이 색바랜 나무에 닿아 하얗게 부서지고 노랗고 붉은 낙엽이 바람에 춤추는 그런 곳으로…. 굽이치며 끝없이 흘러가다 파란 하늘에 맞닿을 것 같은 산속의 오솔길 끝에 있는 가을을 찾아 헤맸다. 소백산 끝자락에서 경북 영주와 충남 단양을 잇는 고치재 길은 가을의 달콤함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강하진 않지만 은은한 동양화 색깔처럼 노랗게 변해버린 이깔나무, 강렬한 빨강으로 온 산에 생기를 불어넣는 단풍나무와 가을에도 변하지 않는 푸른 침엽수들이 고치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글 사진 영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북 영주 좌석리에서 시작되는 고치재에 첫모습은 어린시절 외딴 외가집을 찾아가는 그런 시골길 같다. 순흥면에서 좌석리·마락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해 오르면 옥대리. 길 오른쪽으로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차례로 나타난다.700년 이상 살아오며 고치재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무들이다. 단산저수지를 지나 5㎞ 남짓 오르면 삼거리. 상좌석, 연화동 그리고 미락리로 갈라지는 좌석리의 중심이다. 좌석리에서 위좌석으로 오르다 보면 사과밭이 즐비하다. 연분홍빛의 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가지가 도로까지 손을 내밀며 낯선 이방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정겨운 동네다. 사과밭에 앉은 집채만 한 바위가 보인다. 이름하여 앉은바위.‘좌석리’라는 마을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올리는 바위다. 삼거리에서 고치재 쪽으로 좀더 오르면 갈림길. 왼쪽이 연화동, 곧장 가면 고치재다. 연화동에는 두개의 예쁜 폭포가 있다. 마을 구경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고치재로 향한다. 연화동 갈림길부터 울창한 숲길을 따라 고치재로 오른다. 거의 정상부근까지 포장이 되어 승용차도 쉽게 오르는 길이다. 차창을 열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길이 너무 좁아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길 옆으로 흐르는 풍경에 넋을 잃고 빠져든다.‘아차’하면 사고가 나겠다 싶어 아예 차를 한편에 세워놓고 내렸다. 길섶에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몸을 흔든다. 나무 끝에 매달린 파란 하늘까지. 정말 아름답다. 굽이치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나도 한 마리 다람쥐인 양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저 밑에 두고온 ‘자동차’생각이 났다. 오늘처럼 차가 귀찮게 느껴질 때는 없었다. 되돌아 내려와 다시 차를 몰고 천천히 고치재를 올랐다. 비포장도로를 한 10여분 달렸을까. 껑충한 장승들이 반겨주는 널따란 광장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해발 760m의 고치재 정상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으로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하는 곳이다. 그런 연유로 여기엔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함께 모셨다는 ‘국사서낭당’이란 조그만 당집이 있다. 당집 안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산신은 단종 임금과 금성대군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돼 영월에 유배됐을 때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은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금성대군의 밀사들은 단종 복위를 꿈꾸며 영주와 영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인 고치재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관노의 밀고로 복위운동은 물거품이 되고 단종은 영월,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복위운동의 근거지였던 순흥도호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꿈을 품고 이 험한 길을 다녔던 단종의 밀사들도 고치재에서 이마의 땀을 식혔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고치재의 단풍에서는 서글픈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고개를 넘어 마락리로 향한다. 말이 떨어져 죽을 정도로 계곡이 깊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려가는 길은 흙길이다. 차를 세웠다. 노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갖가지 노란색으로 물든 잎갈나무의 아름다움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소백산을 넘는 지름길로 방물장수나 봇짐을 짊어진 보부상들이 다녔지만 이제는 찾는 이가 없다. 가끔씩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들를 뿐. 마락 청소년야영장이 나타났다. 여기는 1991년까지 옥대국민학교 마락분교였다. 폐교가 되면서 청소년야영장으로 바뀌었다.1964년 개교한 미락분교는 1991년까지 27년 동안 14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경상북도 경계’표지석을 지나면 의풍리에 이른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속하는 마을이다. 여기서 우회전해 남대리를 지나 마구재를 넘으면 부석사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의풍1리 삼거리에서 오른쪽 비포장길로 10여분을 가면 영월 김삿갓마을이 나온다. 삼거리 왼쪽 길은 배틀재 넘어 단양으로 가는 길인데 무척 험하다. 의풍리에서 도계까지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까지가 고치재 여행의 종점.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역사의 아픔이 아직도 오롯이 묻어 있는 고치재 길의 늦가을 풍경은 남달랐다. 경북 영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석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손꼽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사찰로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다.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길을 10여분 걸어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에 이르렀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법’이란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가운데가 볼록한 기둥의 아름다운 선으로 유명하다. 여인의 치맛자락을 살짝 올린 듯한 지붕 끝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석사는 늦은 오후가 제격이다. 소백산을 넘어 온 노을이 은행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와 아늑한 절집에 내려앉으면 세상 시름도 잠시 잊게 된다. 운좋게 황금빛 노을을 무량수전 앞에서 본다면 금상첨화. 첩첩이 허리를 포개고 늘어선 백두대간의 황홀함에 빠지게 된다. 입장료 1000원, 주차료 3000원. 영주의 선비촌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민속놀이와 다도, 붓글씨 등 선비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막걸리와 파전을 먹을 수 있는 토속음식점과 대장간, 한지, 도예품 등을 만드는 공방 등도 만날 수 있다. 입장료는 3000원, 주차료는 무료. 혹시 하루를 영주에서 묵고 갈 요량이라면 선비촌에서 머물 수 있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문살 창호지를 간지럽히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2인 기준 2만원부터.(054)638-7114,www.sunbitown.com 영주에는 소문난 먹을거리가 별로 없지만 순흥묵집은 한 번쯤 찾을 만하다. 따뜻한 육수에 신 김치를 썰어 넣고 쫄깃쫄깃한 묵을 말아준다. 값은 4000원. 이밖에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다가 육수와 묵을 넣어먹는 ‘태평초’도 맛있다.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마음에 들 듯.1만 5000원.(054)632-2028. ■ 찾아가는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풍기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나오자마자 우회전해 첫번째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부석사 가는 931번 지방도. 부석사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단산면 옥대리 삼거리에서 좌석리·마락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고치령 길이다. 좌석리 소백산 매표소를 지나면 고치령 옛길이 시작된다. 좌석리에서 고치령 정상까지는 약 5㎞, 정상을 넘어 마락리까지는 4㎞ 정도.
  • 커피 한잔, 내겐…친구

    커피 한잔, 내겐…친구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 탈레랑의 <커피 예찬> - 아침에 한껏 여유를 부리며 진한 커피 한 잔을, 억새가 춤을 추는 드넓은 자연 속에서 바람을 벗삼아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줄리 런던의 노래 ‘패시네이션(Fascination)’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폭신한 소파에 앉아 향이 좋은 커피 한 잔을…. 또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 맑은 정신을 위한 커피믹스 한 잔, 점심 식사 후 입가심으로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가열차게 일을 하다가 머리를 식히며 자판기 커피 한잔….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커피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일상의 여유다. ●커피콩이 뭔데 원두를 보통 커피콩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원두라기보다는 나무 열매에 가깝다. 생산지와 가공방식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식용 커피의 품종은 16종, 이중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품종은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종’, 콩고가 원산지인 ‘로브스타종’, 라이베리아가 원산지인 ‘라이베리아종’ 등이다. 아라비카종은 해발 500∼1000m, 기온 15∼25℃에서 자란다. 병충해에는 약하지만 맛과 향이 우수하다. 고급 원두의 대부분은 동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아라비카이다. 로브스타에 비해 카페인이 적고, 가공방식에 따라 다양하고 섬세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로브스타종은 평지∼해발 600m 사이에서 재배된다. 향이 거의 없고 맛이 쓴 편인 데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어 주로 인스턴트 커피에 쓰인다. 라이베리아종은 재배가 쉬운 편이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사라져가는 추세다. 초록에서 진홍색으로 변하는 탓에 ‘체리’라는 별칭을 가진 커피열매의 껍질을 벗기고 건조시켜 원두를 만든다. ●커피맛의 결정체,로스팅 커피의 맛은 원두뿐 아니라 가공에 따라서도 달라진다.220∼230℃ 온도에서 볶아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약하게 볶으면 연한 갈색을 띠면서 강한 신맛을 낸다. 오래 볶으면 볶을수록 색상은 점점 갈색이 짙어져 검정색에 가까워지고, 쓴맛이 난다. 로스팅 강도에 따라 아메리칸 로스트→미디엄 로스트→프렌치 로스트 등으로 구분되는 것은 보통 미국·영국에서는 신맛이 강한 연한 커피를 선호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중남미에서는 진하고 쓴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 커피의 신맛과 쓴맛, 연한 맛과 진한 맛을 조화시키는 배합 과정을 거쳐 원하는 커피 맛을 만들어 낸다. ●커피가 있어 행복하다 음악가 베토벤은 커피를 ‘조반상의 벗’이라고 부르며 “커피를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좋을 수가 없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여가지의 좋은 아이디어를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빚진 많은 돈 대신 커피를 달라.”고 했고,18세기 철학자 제임스 매킨토시 경은 “인간의 정신력은 그가 마시는 커피 양과 비례한다.”고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맛을 그리며 커피를 예찬할까. 어떤 커피전문가는 “역시 커피는 핸드드립이 최고”라고 하고, 어떤 전문가는 “인스턴트커피는 커피도 아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커피를 두고 그렇게 배타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커피는 내 입맛에 맞는 게 최고다. 원두를 직접 갈아야 할 필요도 없고, 비쌀 필요도 없다. 남들이 맛있다고 칭찬한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물론 전문 바리스타에게는 기쁨이겠지만), 몸에 좋지 않다고 애써 거부할 것도 없다. 한순간이라도 그 맛과 향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제공:월간 커피(www.coffeero.com) ■ 유명 바리스타 손맛이 깃든 커피숍 와인에 소믈리에가 있다면 커피에는 바리스타가 있다. 특히 같은 원두라도 바리스타가 누구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유명한 바리스타들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도 멋스러운 일이다. ●신세대 커피 천국 압구정에 있는 비오니(02-3445-6676)는 커피 맛으로 유명한 집이다. 다름 아닌 바리스타 임종명(27)씨의 솜씨 때문이다. 현란한 실내장식과 원색의 의자들이 눈을 끄는 비오니에서 에스프레소 콘판나를 주문했다. 자그마한 예쁜 잔에 넘칠 듯 커피가 나온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우유거품의 부드러움, 달콤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입안 전체를 감싼다. 카푸치노의 유우거품 위에 하트, 나뭇잎 등 그림을 그리는 라테 아트까지. 커피값도 싸다. 에스프레소 3000원, 카푸치노 4500원. 점심에는 샌드위치, 샐러드와 커피를 5500원에 팔기도 한다. 비오니는 압구정 밀리오레 건너편 골목에 있다. ●커피의 선구자를 만나러 우리나라 커피의 산증인을 꼽으라면 허영만(55)씨를 빼놓을 수 없다. 커피와 함께한 세월이 24년, 커피 맛에 젊음을 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커피회사를 그만두고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신현대아파트 상가 1층에 허영만의 커피집(02-511-5078)을 열었다. 가게는 8평 정도로 테이블 3개가 고작이다. 하지만 커피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매일 아침에 커피를 뽑는 것은 기본이고 불량 원두를 일일이 손으로 골라낸 후 커피를 블렌딩할 때도 원두를 섞지 않고 커피를 내려 섞는 등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귀찮은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허영만씨의 커피집에서는 기계로 뽑지 않고 손으로 만드는 핸드 드립 커피를 마셔보자. 압구정브랜드 커피는 맑고 은은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뒷맛이 씁쓸하지 않고 신맛이 돈다. 허씨는 커피스쿨도 운영한다. 매주 수요일 두차례씩 커피를 마시는 요령과 맛과 향을 구분하는 방법 등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준다. 실습비는 없다. 초·중급반은 자신의 커피값만 내면 된다. 원두를 갈아서 팔기도 한다. 브랜디커피 4000원, 아이스카페라테 4000원. 이밖에 이대 후문 달마이어(02-313-2214)는 한국대표로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대회에 진출한 이종훈씨의 솜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달마이어는 무엇보다도 신선한 커피의 맛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주문과 동시에 원두를 갈고 커피를 만들어 준다. 또한 커피잔 한 개의 가격이 17만원을 호가한다는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를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북촌 정독도서관 옆에 있는 발코니에 모카향기(02-737-9058)는 모카 커피가 일품인 곳. 핸드 드립으로 만드는 부드럽고 달콤한 모카 이르가체프, 모카 사나니 등이 주메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서울 카페쇼’ 10일부터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2005 서울 카페쇼’가 10∼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본관 3층 대서양홀에서 열린다.㈜아이비라인,㈜엑스포럼 주최로 열리는 카페쇼의 주요행사는 ‘한국 바리스타챔피언십’. 올해로 3회를 맞는 이 경연에는 지역예선전을 통해 선발된 바리스타 20명이 출전해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 또 매일 ‘라테아트 실전 세미나’‘세계 커피시장의 새로운 변화’ ‘티카페의 전망과 창업에 관한 지식’ 등 다양한 세미나도 진행된다. 수강료는 강좌에 따라 4000∼1만 5000원. 이밖에 커피 마니아를 위한 커피추출대회, 커피물로 그린 그림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문의 (02)388-5061. ■ 인스턴트인 줄 아무도 모를 걸? 인스턴트 커피와 프림, 설탕 두 스푼씩 넣어 만든 평범한 커피가 지겹다고 느껴진다면, 손님맞이에 뭔가 독특한 후식을 내겠다고 무스케이크를 만들다가 고생한 적이 있다면 새로움에 도전해 보자. 그리 어렵지도 않다. 인스턴트 커피 3작은술과 물 30㎖면 원두로 뽑는 에스프레소와 비슷한 진한 맛의 눈과 입이 즐거운 커피를 만들 수 있다. 할리스 신세계강남점의 신지훈 점장을 따라 인스턴트 커피를 멋지게 변신시켜 보자. (1) 이탈리아의 디저트 ‘아포가토´ (1) 진한 커피를 만든다. (2)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접시에 알맞게 떠놓고 (1)을 위에 붓는다. (3) 초콜릿 가루, 아몬드 조각 등 원하는 재료로 장식해 예쁜 모양으로 내도 좋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집에서 후식으로 내놓았을 때 효과는 최고. (2) 고소한 ‘고구마 마키아토´ 고구마 중간 것 2개를 삶아 으깬 뒤 같은 양의 우유와 절반 양의 휘핑크림(원액)을 잘 섞는다. 이렇게 만든 것이 고구마라테. 여기에 진한 맛의 커피를 넣어 섞고, 위에 아몬드 조각으로 장식하면 완성. 단것을 좋아하면 고구마라테에 설탕을 조금 넣어도 된다. 커피를 진하게 만들지 않으면 고구마향에 가려 커피향이 나지 않는다. (3) 새콤한 ‘카페 로마노´ 신맛이 특징인 카페로마노는 레몬 조각을 넣어 흉내낼 수 있다. 진한 커피를 머그컵에 넣고 절반 정도 물을 더 붓는다. 위에 레몬을 올린 뒤 따뜻하게 데운 우유(30㎖정도)를 레몬 위에 부으면 커피 완성. 식사 후 개운한 맛을 주는 데 좋다. ■ ‘별다방 커피’ 집에서 만든다 스타벅스에서 올해의 바리스타로 뽑힌 커피 앰배서더 이동엽씨와 함께 스타벅스 커피를 만들어보자. 준비물은 에스프레소기계, 초코시럽, 우유, 생크림 등. 고가의 에스프레소기계가 부담스럽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카포트를 이용해도 좋다. 남대문시장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일반원두로 커피를 맛있게 만들려면 원칙을 지키자. 차갑고 신선한 물을 이용하고,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끈다. 이 온도가 약 90∼96도. 커피를 뽑는 기계에 따라 원두를 알맞게 간다. 물 180㎖에 10g의 커피가 적당하다. 커피는 밀폐된 용기에 넣어 신선하고 통풍이 잘 되는 상온에서 보관한다. (1) 커피의 기본기 ‘카페라테’ 에스프레소기에서 커피를 뽑아내 컵에 담고, 뜨거운 우유를 붓는다. 비율은 에스프레소 1대 우유 7 정도. 여기에 바닐라 시럽을 넣으면 바닐라 라떼가 되고 뜨거운 물과 같은 비율의 모카파우더를 섞어 초코시럽을 만들어 넣으면 카페모카가 된다. (2) 달콤한 ‘카라멜마키아토’ 바닐라시럽과 뜨겁게 데운 우유를 컵에 넣고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는다. 걸죽한 시럽인 카라멜연유(드리즐)를 넣어 달콤함을 배가시킨다. (3) 부드러운 ‘화이트초콜릿모카’ 컵에 밀크 초콜릿 맛을 내는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넣은 뒤 신선한 에스프레소를 우유와 함께 넣는다. 뜨거운 우유 위에 생크림을 올린다. 크림과 커피를 미리 섞어버리지 말고, 커피와 함께 부드럽게 입술에 닿는 크림의 느낌을 즐겨보자. (4) 에스프레소 뽑기 (1) 에스프레소 기계, 스테인레스 컵, 커피 잔을 준비한다. (2) 포터필터에 곱게 간 커피가루를 넣고 탬퍼로 꾹꾹 눌러 기계에 끼운다. (3) 에스프레소를 담을 컵(데미타세)을 놓고 추출한다.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땅심 먹은 유기농 커피점 ‘오가닉’ 일반 커피농가에서는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만 유기농 커피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유기농 커피는 반경 10마일 이내 화학비료를 뿌리는 곳이 없는 지역에서,3년 이상 천연퇴비만 사용해 땅심을 키운 뒤 재배한다. 일반 커피와는 탄생부터 다른 것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카페 ‘오가닉(Organic)’에 가면 이런 유기농 커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카페 ‘오가닉’은 국내 첫 본격 유기농 커피 전문점이다. 이 곳에서는 고산지대와 열대 다우림 지역에서 생산되는 아라비카 유기농 커피 원두만 사용한다. 커피의 2대 원종 가운데 하나인 ‘코페아 아라비카’의 열매가 바로 아라비카. 전세계 커피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아라비카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로 해발 800∼2000m 고지대에서만 자란다. 유기농 커피는 열매를 일일이 손으로 따는 등 보통 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공이 많이 든다. 유기농 커피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볶으면 고품질의 맛과 향을 유지할 수 없다. 때문에 한번에 10㎏ 정도만 볶아낸다. “그동안 세계의 유명 커피농장과 커피 굽는 곳은 안 가본 데가 없다.”는 ‘오가닉’ 대표 박현(36)씨는 “까다로운 국제유기농기구(IFOAM)와 한국의 식약청에서 인증한 무공해 유기농 커피를 국내에 선보이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면 맛은 어떨까.‘오가닉’ 단골손님인 작곡가 김영동(54·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씨는 “이 곳의 커피는 산도가 낮아 위에 부담이 없고 향이 깊고 부드러운 게 특징”이라며 “하루에 스무 잔까지 마셔도 속이 쓰리는 일이 없다.”고 평한다. 유기농 커피는 한 잔에 4000∼5800원 선으로 리필도 가능하다. 이 곳에서 파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콘판나, 카푸치노 등.100% 멕시코산 커피인 ‘마얀(Mayan) 블렌드’를 비롯해 ‘하우스 블렌드’‘시그너처(Signature) 블렌드’등 볶은 커피는 주머니에 넣어 별도로 팔기도 한다. 값은 227g 한 봉지에 2만 3000∼2만 5000원. 실내에 놓아 두면 구수한 커피 향내가 배어 나와 방향제로도 쓸 수 있다.(02)3445-0618. 글 사진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본사 ‘가을밤 콘서트’ 성황

    6일 서울신문 주최로 열린 ‘2005 가을밤 콘서트’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로 넘쳐났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열린 이날 공연은 분위기 있는 클래식 음악으로 청중에게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남겼다. 수준 높으면서도 편안한 클래식 음악으로 무대위의 연주자와 관람객이 하나가 되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평이다. 스위스 출신의 지휘자 보리스 페레누가가 이끄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린과 루드밀라’서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막이 올려진 1부는 오페라 아리아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무대가 됐다. 러시아에서 공부한 신예 소프라노 채윤지는 ‘루슬란과 루드밀라’에 나오는 루드밀라의 아리아와 푸치니의 ‘자니스키키’를 부르며 풍부한 성량과 매력적인 음색을 자랑했다. 이어 유럽무대에서 샛별로 등장한 테너 이병삼과 바리톤 우주호는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오페라 아리아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열띤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루소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영웅적 고음의 한국 테너’로 찬사를 받은 이병삼은 푸치니의 ‘토스카’ 중에서 ‘오묘한 조화’등을 불렀다.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칠레라 국제콩쿠르에 입상, 국내 바리톤의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은 우주호는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중에서 ‘프로벤자 네 고향으로’ 등을 들려 줬다.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으로 막이 오른 2부에서는 홍콩 등에서 활동하는 첼리스트 박시원과 바이올리니스트 호홍잉이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어 최근 뜨거운 화제를 몰고 다니는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이 무대에 오르자 분위기는 한 순간에 환상의 음악세계로 빠져 들었다.‘사랑이 사랑을 버린다’ 등을 부르며 그는 가을 감성을 한껏 부추겼다. 특히 영화 ‘미션’에 나오는 오보에 곡을 영화음악 작곡가 엔리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환상속에서’는 대중의 귀에 익숙한 곡이어서 관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편안한 클래식 음악회로 자리잡은 ‘가을밤 콘서트’는 올해 6번째 공연으로 해마다 관객들로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이번 공연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날 공연에는 채수삼 서울신문 사장을 비롯,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참석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어느 여자의 일

    [마광수의 섹스토리] 어느 여자의 일

    아침 일찍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어젯밤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단잠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에 무척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전화를 건 사람은 중개인 여자였는데, 무척 흥분된 목소리였다. 어떤 돈 많은 남자가 수표 몇장을 던져주며 일을 부탁했는지 그녀는 내게 온갖 아부를 다 떨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둥, 굉장히 많은 돈을 받을 거라는 둥, 정신없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오후 3시로 약속을 잡고서, 자명종을 1시에 맞춰놓고 나는 다시 긴 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늘 어쩌면 굉장히 괜찮은 날이 될 거라는 은근한 기대와 함께….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했다. 비누액을 마구마구 풀어 욕조에 부어넣고, 그 속에서 내 큰 젖가슴과 그 뭉툭한 아랫부분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누군가 내 몸에 이 비누액을 발라주고 똥그란 내 젖꼭지를 가지고 놀아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마련한 내 검정색 망사 브래지어와 팬티는 늘 내게 아름다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 오늘도 그 망사에 거의 터져나올 듯 감싸여진 내 두 가슴과, 망사 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음모는 내 아랫부분을 검은 숲에 들러싸인 신비의 샘처럼 보이게 했다. 거의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진보라색의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검정색 속옷과 함께 아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한 초록색 아이섀도를 칠하고, 남자의 성기 길이만한 귀걸이를 매달고나니 그 끝이 내 어깨를 스치는데, 마치 남성의 심벌이 내 음모를 삭삭 스쳐가는 듯해 순간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요즘 유행하는 깔깔이 천으로 만든 나풀거리는 치마와(이것은 거의 360도로 펼쳐지는데, 내가 남자 위에 올라타고 다리를 벌리고서 아주 편하고 자연스러운, 그리고 허벅지까지는 약간의 윤곽이 흐릿하게 드러나 보이는 치마이다), 젖꼭지의 위치가 정확히 드러나는 몸에 딱 들러붙는 아주 연한 금색의 민소매를 입었다. 옷을 입는 동안 나는 늘 그렇듯이 아주 발랄한 록음악을 틀어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가슴도 한번 흔들어보고, 의자에 앉아 성교의 순간을 생각하면서 몸에 리듬을 주어 움직여보기도 하고, 신음소리도 내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독한 향수를 뿌리고 나서 15㎝ 높이의 하이힐을 신으니까 외출준비는 끝났고, 나는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는 깨끗하게 생기고 부유해보이는 40대 중반의 남자 유부남이었다. 부인과 아이들이 해외여행 중이라서 말벗이라도 삼을 겸해서 불렀다는 그의 말은 나를 아주 편하게 일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내겐 그에게 아주 멋진 서비스를 제공해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목욕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그는 그의 침실로 나를 안내했다. 깨끗한 시트와 부드러운 담요, 그리고 오리털을 넣었다는 베개가 두 개 놓여 있었다. 공간도 넓고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어서 일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그에게 옷을 벗으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내게 그러면 자기 옷을 벗겨달라며 침대에 눕는 것이었다. 내가 가방을 열어 필요한 물건들을 탁자에 놓고난 뒤 침대 곁으로 옮기는 동안 그는 꿈쩍않고 내 젖가슴만 쳐다보았다. 내게 일을 부탁한 모든 남자들이 늘 내 가슴을 만지거나 그 크고 부드러운 품속에 묻히길 좋아하듯이, 그 역시 그것을 원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곧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은근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되도록 그의 몸에 살짝살짝 손이 닿도록 하여 그가 서서히 흥분하는 모습을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 옷을 벗겨낼 때 나는 가만히 내 오른손이 그의 페니스를 스쳐내려오게 했고, 마지막으로는 새끼손가락의 긴 손톱으로 그걸 긁으면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가슴 위로 다리를 벌린 채 올라앉아 그의 얼굴부터 만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넘겨주고 크림을 담뿍 발라 얼굴 근육을 만져주고 풀어주고 내 솜씨를 다하여 안마를 시작했다. 손톱, 발톱을 손질할 때는 되도록 내 가슴 가까이 가져와 젖꼭지가 발가락 사이에 끼도록 넣기도 하며 웃기도 했다. 그는 내가 시키는 대로 잘 따랐고, 나의 안마에 매우 흡족해하며 때로는 신음소리와 함께 꿈틀거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참을성이 대단했다. 내가 안달이 날 정도로 내 몸에 손을 안 대는 것이었다. 아직 아랫도리 안마를 시작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저 내 긴 머리카락만 만질 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의 오른쪽 허벅다리 안마를 시작할 즈음 그가 갑자기 내게 겉옷을 벗고 하라고 명하였다. 내심 기다렸던 바라 나는 재빠르게 그럼 옷을 벗겨달라고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내 검정색 치마를 벗기기 시작했는데, 손을 깊숙이 넣어 그곳을 한번쯤 만져줄 거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로한 채 내 옷을 간단히 벗겨버리는 것이었다.“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나는 기껏 흥분하려던 기분을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검정 망사의 브레지어와 팬티 차림으로 그의 얼굴쪽에 엉덩이를 내민 채 그의 몸 위에 걸터앉아 성기의 안마를 시작했다. 내가 남자의 페니스를 만져주는 솜씨는 유명했다. 가만히 주물러주고 만져주고 긴 손톱으로 긁어주고, 마지막엔 깔끔하게 입속에 넣고 놀아준다. 이 남자 역시 그것을 만질 때만큼은 무척이나 흥분되는 듯했다. 그는 갑자기 나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나의 아랫부분을 더듬었다. 가는 망사에 덮인 뭉툭한, 그리고 보드라운 나의 음부를 그는 아주 잘 만져주었다. 나는 몹시 흥분했고, 내 혀를 한껏 깊숙이 그의 성기에 디밀어 빨아주고 핥아주었다. 그 후 재빠른 솜씨로 안마를 마치고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작업으로 그의 성기 끝부분에 나의 망사 팬티에 덮인 부분을 가져다 대고서 나의 온몸에 율동을 주며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그의 성기 끝에 내 음부를 떼었다 붙였다 하기를 반복하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때 몹시 흥분한다. 그도 역시 미칠 듯 몸을 비틀면서 신음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내 위에 올라탔다. 순간적으로 위치가 바뀌자 당황하는 나를 바라보더니, 그는 갑자기 내 브래지어와 팬티를 벗긴 채 내 손을 이끌어 욕실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내 몸에 비누칠을 하겠다며 욕조 속에 다리를 벌린 채 누우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자노예에게 하듯 내게 명령을 하고, 내 몸을 만져주는 남자가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그는 내 몸을 부드럽게 만져주어 나를 흥분케했다. 우리는 아주 즐겁게 목욕탕에서 놀았다. 비누칠을 마치고 샤워기 밑에서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만지작거리며 마구마구 키스하고 장난치고 처음으로 그의 성기가 내 몸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옴을 느끼며 아주 긴 성교를 나누었다. 그는 내 몸에서 손을 뗄 줄 몰랐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한번 맛을 들이자 통 정신을 못차리는 것이었다. 나더러 눈을 감으라고 하고서는 서서히 내 몸을 만져주거나 그의 몸을 만져달라고 하였다. 욕실을 나오고 나서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그는 돋보기를 가져와 나의 몸 이곳저곳을 쿡쿡 찌르면서 그곳에 돋보기를 밀착시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어디서 구했는지 내 몸에 꽉 끼는 타이트 스커트를 가져와 입게 하고는, 그 속으로 자기의 오른쪽 발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발이 내 음부에 찰싹 달라붙게 하였다. 그러자 치마는 터질 듯 팽팽하게 되어버렸다. 결국 그가 발끝으로 내 음부를 톡톡 찰 즈음 해서 내 발끝이 그의 성기를 스치게 되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서로의 성기를 톡톡 찼다. 또 나는 그에게 내가 흥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그는 매우 재미있어 하며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내가 자위행위를 할 때 쓰는 방법이었는데, 내 음부의 쫑긋 솟은 부분을 손으로 긁어주면서 내 젖꼭지를 빨아주는 방식이었다. 그는 세게 또는 약하게 볼륨을 주면서 그곳을 긁어주었고, 나는 몸을 흔들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면서 아주 열정적으로 신음하였다. 그리고 흥분이 절정에 달하자 그에게 제발 성기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서 그의 페니스를 찾았고,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깊이 삽입을 하지 않고 자기의 성기 끝으로 내 음부만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다가 내가 미칠 듯 흥분하자 내 입 속에 그의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빨아주었다. 그 일이 끝나자 그는 힘차게 그의 페니스를 내 몸 속으로 밀어넣었다. 아아아…너무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의 혀가 내 젖꼭지와 입술을 오갈 때…. 그리고 그의 힘찬 몸놀림과 손놀림…. 그리고 내 엉덩이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더듬어주는 그의 손…. 나는 오르가슴을 맛보았다. <끝>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다시보는 중국-덩샤오핑과 가상대화] (중)고속성장의 빛과 그림자

    [다시보는 중국-덩샤오핑과 가상대화] (중)고속성장의 빛과 그림자

    덩샤오핑 그래 상하이를 직접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기자 예, 베이징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더군요. 마치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어설프게 동거하고 있는 곳이 베이징이라면, 상하이는 완연한 자본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징이 회색빛이라면 상하이는 번쩍번쩍 야광빛입니다. 길다란 고가 양쪽에 늘어선 빽빽한 고층 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은 현대 도시의 외관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 야경…. 푸둥(浦東)지구에서 황푸강(江)을 사이에 놓고 맞닥뜨린 푸시(浦西)지역의 휘황찬란한 빌딩과 네온사인은 황홀경 그 자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니까요. # 자본주의 색채 완연한 상하이 덩 허허, 그만하세요. 너무 그러면 이 늙은이가 주책없이 우쭐해집니다. 사실 푸둥은 저의 야심작입니다.1989년 톈안먼 사태로 궁지에 몰렸을 때 전격적으로 푸둥 개발을 천명함으로써 극적인 반전을 기할 수 있었지요. 그러니 저한테는 애착이 클 수밖에요. 상하이 사람들이 저를 가리켜 “오늘의 상하이를 만든 상하이의 아버지”라고 하는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상찬(賞讚)입니다. 기자 상하이 사람 얘기를 하셔서 말씀인데, 거리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도 베이징과는 다르더군요. 베이징의 공무원들은 관료주의 냄새가 강한 데 반해 상하이 공무원들은 표정에 자유분방함이 가득했습니다. 공무원이 아니라 벤처 기업인을 만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덩 인간은 환경에 의해 규정되기 마련이지요. 아무래도 상하이는 경제 중심 도시이니까…. 혹시 상하이에서 한창 건설중인 해상 항만과 신(新)공항을 보셨소? 그것이 완공되면 상하이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허브, 아니 세계의 허브 도시가 될 겁니다. # 거리·사람들, 베이징과는 달라 기자 예, 대단하더군요. 그 엄청난 스케일에서 상하이의 야심, 중국의 야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덩 선생, 미안하지만 정작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상하이에서 야경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간밤의 황홀경과는 사뭇 딴판이었습니다. 거리는 쓰레기 천국인 데다, 무질서한 교통문화는 베이징에 뒤지지 않더군요. 행인들 패션도 베이징보다는 세련됐지만, 초고층 건물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옷차림이 적잖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뉴욕에 버금가는 고층빌딩 숲의 한복판에서 대낮에 웃통을 벗어젖히고 자전거를 모는 꾀죄죄한 노인의 모습을…. 중국의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상하이란 도시 안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속성장에 따른 빛과 그림자라고나 할까요. 푸둥 거리를 가득 메운 마천루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기보다는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 호화가구를 잔뜩 들여놓은 벼락부자의 이미지가 연상되더군요. 덩 또 아픈 부분을 꼬집는군요. 기자 관료들도 빈부격차의 문제점을 분명 인식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푸둥은 중국의 발전을 선도하고 모범을 보인다.”고 자랑하는 푸둥 인민정부의 마슈에제 부주임에게 “푸둥과 비(非)푸둥의 격차가 심각한 것 아니냐.”고 묻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예리한 지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어느 나라든 지역 차이가 있다. 산업화에는 순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반론을 펴더군요. 덩 일리 있는 말이네요. 내가 설파한 ‘선부론(先富論)´의 핵심도 일부 계층과 지역이 먼저 잘사는 것을 허용한 다음 그 지역이 다른 낙후지역을 견인하는 메커니즘을 뜻하지요. 기자 하지만 다음과 같은 마 부주임의 해명 속에 역설적으로 푸둥의 약점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우리는 푸둥에서 번 돈의 일부와 노하우를 낙후지역에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낙후지역의 공무원들을 푸둥으로 불러 견학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국 전체의 80%가 넘는 낙후지역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대가족이 주렁주렁 딸린 성공한 장남처럼…. 덩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 같군요. 역으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미덕으로 봐줄 수는 없습니까. 기자 문제는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차이가 계속 벌어지면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이 흐려질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상하이 사람들은 보란 듯이 ‘상하이 방언’을 구사하더군요. 상하이 인민정부 공무원들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통역이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들한테서 ‘우린 다른 낙후지역과 다르다.’는 식의 차별화 욕구를 감지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경제격차따른 중국분열 없을것” 덩 자꾸 중국의 분열 가능성을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중국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상하이 사람들도 상하이가 ‘사회주의 고수’와 ‘공산당 지도’라는 2개의 ‘기본점’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나의 지론을 명심하고 있을 겁니다. 기자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만난 LG전자 상하이 지사장은 “중국 정부가 새로 추진하고 있는 서부 대개발사업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중국 정부가 이런 해외 투자자의 말을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환경 면에서 서부는 상하이에 비해 이점이 적다는 뜻이지요. 결국 중국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동서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덩 충고 고맙습니다. 하긴 최근 중국 공산당이 기존의 성장 위주 거시경제 정책을 바꿔 지역·계층간 빈부격차를 줄이는 분배정책에 시동을 걸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다음은 어디로 가시나요. 기자 칭다오입니다. 상하이를 봤으니 별로 기대는 안 합니다. 덩 과연 그럴까요?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설악·금강산등 전국방방곡곡

    설악·금강산등 전국방방곡곡

    푸른 산하에 붉은 가을 빛이 살포시 내려 앉았습니다. 상쾌한 가을 바람을 타고 단풍 향기가 시나브로 코끝을 간지릅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사람들이 무작정 단풍산에 몸을 맡기나 봅니다. 올해는 단풍이 평년보다 5∼6일 늦게 시작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설악산에서 시작된 오색단풍의 화무(火舞)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남으로 질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빠른 강원지역은 이번 주말부터 붉은 기운을 띤 뒤 이달 중·하순쯤 절정을 이루고, 충청·영·호남지역은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최고조에 이를 전망입니다. 단풍이 찾아와 행복한 가을. 올가을엔 가족들과 함께 단풍의 우아한 자태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단풍명소를 찾아 황홀하게∼ 철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산중미인’ 설악산에는 지난달 말 남한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시작됐다. 단풍은 해발 1500m 고지의 대청·중청·소청봉을 물들이고 한계령, 마등령, 대승령, 공룡능선을 거쳐 서북주능, 미시령, 흘림골로 빠르게 하산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천불동, 수렴동,12선녀탕까지 단풍이 내려온 뒤 비선대, 비룡폭포, 백담계곡, 주전골, 용소폭포, 장수대 등에서 마무리한다. 노약자들은 케이블카(sorakcablecar.co.kr·033-636-4300)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면 단풍으로 물든 설악산 절경은 감상할 수 있다. 권금성은 높이 800m로 걸어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케이블카로는 1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7000원(중학생 이상)이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636-7700. 오대산은 울창한 숲에서 나오는 은은한 가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설악산이 남성적인 웅장함을 지녔다면, 오대산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성에 비유된다. 등산코스는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원사 코스(6.2㎞·3시간)와 상원사∼비로봉∼상왕봉 코스(12.7㎞·5시간), 진고개∼노인봉∼소금강 코스(13.4㎞·6시간)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400원. 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332-6417. 한반도 최남단 국립공원인 월출산은 단풍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는 곳이다. 기암괴석들이 봉우리마다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동서남북 어느쪽에서든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천황봉쪽으로 뻗은 계곡이 단풍이 아름답다. 등산코스로는 천황사지∼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 코스가 좋다. 관리사무소(061)473-5210. 금강산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은 풍악산(楓嶽山). 이름에 단풍 풍(楓)자가 들어갈 정도로 단풍이 아름답다. 붉은 단풍이 온갖 만물형상의 바위에 물들이는 만물상 코스와 수림과 폭포가 어우러진 구룡연 코스, 호수와 해안절경으로 이루어진 해금강 삼일포 코스가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북측의 관광객 일일 600명 제한조치로 예약이 쉽지 않은 것이 흠이다. 문의 현대아산(02)3669-3000. 교통이 편리한 근교에서∼ 서울·수도권 주민들의 녹색 허파인 북한산의 단풍은 오는 18일 정상인 백운대에서 시작된다. 북한산에는 삼각산으로 불리는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등 3개의 봉우리를 포함해 20여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교통이 편리해 수도권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10여개의 등산코스가 있어 다양한 가을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이 중 우이동∼북한산장∼백운대 코스(8.1㎞)는 최고의 단풍 산행코스다. 다소 한가한 단풍코스는 정릉∼보국문∼용암샘터∼노적봉∼백운대(8.5㎞)코스가 좋다. 입장료는 어른 1600원. 국립공원관리사무소(02)909-0497. 용문산은 용문사의 1000년 넘은 은행나무가 단풍철이 되면 노랗게 물든다.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바위 사이에서 발달한 계곡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주차장에서 용문사∼상원사∼윤필암터 코스가 2시간 10분 걸린다. 관리사무소(031)773-0088. 명지산은 북한강 굽이따라 경춘국도를 달리면 만날수 있다. 명지산의 곳곳에는 너럭바위와 소가 적절하게 배치돼있어 작은 천불동계곡으로 불린다. 익근리 입구에서 승천사∼명지폭포으로 오르는 길은 단풍이 일품이다. 가평군청(031)582-0088.명성산은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나라를 잃자 망국의 슬픔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등산로 가든에서 비선폭포∼등룡폭포∼자인사로 돌아내려오는 길이 특히 추천할 만하다. 억새물결도 장관이다.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 정겨운 단풍축제와 함께∼지리산의 가을은 피아골 단풍으로 대표된다. 붉다 못해 강렬한 핏빛이다. 단풍은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의 왕복코스, 또는 연곡사∼임걸령∼노고단의 코스가 좋다. 매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기촌솔밭 일대에서 ‘피아골 단풍제’가 10월말 열리는데 남도국악공연과 등반대회를 즐길 수 있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속리산은 화양·선유·쌍곡계곡 등 이 만산홍엽과 어우려져 장관을 이룬다. 매표소에서 법주사 입구인 금강문에 이르는 숲길이 좋다. 오는 21∼23일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잔디공원 일대에서는 ‘2005 속리산 단풍축제’가 열린다. 보은군청 문화관광과 (043)540-3391 전남 장성군 백암산에 위치한 백양사에서는 10월말 ‘백양 단풍축제’가 열린다. 장성군청(061-390-7224). 또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은 산이 높지 않고 평탄해 가족 산행지로 적합하다. 관리사무소 (031)860-2065. 단풍열차타고 즐겁고 편하게∼ 단풍열차 안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져 오가는 길이 즐겁다. 한국철도공사(www.barota.com·1544-7788)는 지역별 단풍시기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단풍열차 여행지인 내장산은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으로 물든다. 불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무궁화는 14일에서 11월4일까지 매주 용산역에서 금, 토요일에,KTX는 용산역에서 20일에서 11월 6일까지 주중 1차례, 주말 2차례 운행한다.5만4900∼5만9000원. 선운산은 선운사 숲길따라 울긋불긋한 단풍이 이어진다.10월21일에서 11월13일까지 매일 아침 6시35분 용산역을 출발한다.5만9000∼6만3000원. 가야산은 산 어귀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4㎞의 홍류동 계곡은 단풍이 계곡에 비쳐 물이 붉게 보인다.14일에서 11월6일까지 매일 서울역에서 8시15분에 출발한다.7만5000∼8만2000원.
  • 섹스토리-어느 여대생의 자위행위

    섹스토리-어느 여대생의 자위행위

    마음이 답답할 때는 그저 마스터베이션과 함께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 제일이었다. 마스터베이션은 내게 황홀한 나르시시즘을 선물해주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싶어질 때면 온몸에 미열이 느껴지면서 다리가 여럿 달린 유충이 내 몸뚱아리 위를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몸안 구석구석의 작은 세포들까지 자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특히나 외로움을 더 타게 되는 토요일 오후 같은 때가 되면, 나는 벌거벗은 채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좀더 멋진 엑스터시를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발가벗은 내 몸을 검게, 붉게, 그리고 투명하게 비추어댄다. 얇은 솜이불이 주는 나른한 촉감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눈부시도록 밝은 햇살은, 내 몸 구석구석의 작은 털 하나하나까지 바싹 달라붙게 만들면서 들춰진 이불 사이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하지만 내 은밀한 그곳은 햇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축축한 습기로 젖어 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어떤 풍경 하나를 상상해보려고 애를 쓴다. 상상속의 화면에서는 한 아름다운 중년부인이 두 다리를 활짝 벌린 채 독수리의 검은 깃털로 자신의 그곳을 부채질하듯 털어내듯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자극하고 있다. 아아, 세뇨라…! 불행한 결혼을 한 여자가 그녀의 욕정을 못 이겨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세뇨라’는 내가 얼마전에 본 외국영화의 여주인공 이름이었다.) 으으으음…. 나는 세포 하나하나에서 미치도록 스멀거리는 느낌에 점차 숨이 가빠온다. 아아, 나는 간지러움을 유난히도 많이 타는 여자. 누군가 사람을 간지르는 장면만 봐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소름끼치는 흥분을 느끼게 되는…. 나의 몸은 그토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민감점(敏感點)들뿐이다. 누군가 내 손등이나 귓불을 만져줘도 어느새 나의 그곳이 축축히 젖어오면서 자지러질듯한 흥분이 온다. 만약에 기막힌 미남자의 손길이 내 가슴과 그곳을 거칠게 또 부드럽게 만져준다면…. 상상만 해도 나는 야릇한 쾌감에 저절로 눈이 감기고, 심장이 벌렁거려지고, 젖꼭지가 딴딴해져 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오른손을 가만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솜털이 감지될 정도의 가벼운 접촉을 유지하면서 내 손은 매끄러운 아랫배를 지나 허벅지 사이의 검은 수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약간의 두려운 망설임 끝에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곧게 펴서 그곳에 조금씩 조금씩 넣어본다. 어느새 내 다섯 손가락들이 내 의식과는 무관하게 가늘고 거칠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엉덩이를 치켜올린 상태로 엎드린다. 여전히 내 오른손은 불두덩이 아래의 수풀속에서 푸들푸들 살아 움직이고 있고, 나의 왼손은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 상태로 하체를 들썩거리자 침대의 탄력은 하체의 요동을 더욱 세차게 가중시킨다.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의심스럽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정녕 내 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나는 눈을 뜨고 방안을 본다. 침대 위에 붙어 있는 대형 거울이 햇볕을 가득 담은 채 내 얼굴을 비춰주고 있다. 흐리도록 졸린 눈빛. 그러나 뭔가를 애타게 갈구하는 듯한…. 문득 나는 내 전신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나는 침대 위에서 일어선다. 순간 창문이 의식된다. 누군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면 더욱 야릇한 쾌감이 생겨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결국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커튼을 치고 만다. 그러자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이 아쉽게 가려진다. 갑자기 방안이 은은하게 어두워졌다. 그 은은함에 투영되어 드러나는 내 육체. 핑크빛으로 솟아오른 가슴. 적당히 탄력있게 매끄러운 엉덩이. 그리고 그 갈라진 선을 따라 윤기있게 돋아난 털. 그 털이 무성하게 삼각형으로 모아진 그곳 위로 보이는 사슴의 목처럼 가늘고 애처로운 허리. 솜털이 촘촘하게 돋아난, 그리고 바닐라 향내가 풍겨나올 듯한 먹음직스러운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 가지런하고 좁은 발끝에서 광기어린 빛을 내뿜고 있는 발톱들. 나는 샐쭉이 웃어본다. 살짝 튀어나온 하얀 이빨이 가지런히 드러나자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못 하는 바보가 된다. 나는 역시 아름답다…. 적당히 물이 오른 내 알몸뚱이. 잔주름이 하나도 없이 부드럽고 싱싱하여,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이다. 아, 나는 귀여운 털복숭이. 탐스럽게 숱많은 머리카락과 허벅지 사이의 촘촘하게 새까만 숲. 겨드랑이의 윤기 나는 털들, 그리고 귀엽게 돋아난 솜털들. 그 솜털들로 인해 내 몸은 내가 만질 때마다 마치 솜털 스웨터를 만지는 듯한 포근한 감촉을 느끼게 해준다. 가슴에 털이 가득한 서양남자의 품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아니 또 흑인들 같이 매끈매끈한 피부는 또 어떨까. 침대 위에 꼿꼿이 선 채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내 몸 구석구석까지 살펴본 나는, 문득 내가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내 몸안의 은밀한 구석까지 살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다리 사이의 털숲으로 숨어 버린 채 귀여운 악마는 좀처럼 거울에 비춰지지 않는다.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고개를 숙여 거꾸로 가울을 봐도, 허리만 아파올 뿐 그것을 속속들이 관찰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면경(面鏡)을 가지고 그것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두꺼운 베개를 등에 깔고 두 다리를 팔처럼 벌려 든 채 나는 면경을 두 다리 사이 엉덩이 밑으로 가까이 들이대고, 고개를 빳빳이 들어 면경을 들여다본다. 아아아…, 이것이 바로 나의 귀여운 악마였군…. 내 몸뚱아리에 붙어있으면서도 마치 내 의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별개의 살아있는 짐승…. 개미지옥과도 같이 쪼글쪼글한 주름이 진 항문 위로 가지런히 나있는 털을 따라서 가는 핏줄이 선연하게 부어오른 갈색의 두 입술이 가늘게, 그러나 힘차게 팽창하여 수축하고 있다. 그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주홍빛 속살이 가늘게 떨며 촉촉한 습기를 내뿜는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떨리고 있는 빨간 불빛. 갑자기 나는 그것을 미치도록 핥고 싶어진다. 핥고 싶다, 핥고 싶다, 핥고 싶다…. 그러나 이무리 다리를 머리위로 치켜 올려 허리를 구부려봐도 내 혀가 닿는 곳은 겨우 젖가슴 언저리. 언젠가 텔레비전의 서커스 묘기시간에 본 중국 소녀의 체위가 생각난다. 두 다리 위로 머리를 빼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던 그 소녀. 그 소녀라면 스스로 아랫입술을 핥는 것이 가능할 텐데…. 나는 절망에 못 이겨 혀로 미친듯이 내 말캉한 젖가슴을 핥기 시작한다. 고개가 아플 정도로 숙인 후 한 손으로 가슴을 치켜올린 채 혀를 길게 내밀어보니까 겨우 젖꼭지에 닿는다. 이미 팽팽하게 솟아오른 젖꼭지. 아, 나는 그것을 한 입에 물고 싶다. 그리고 힘차게 빨고 싶다.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피부의 알싸한 수축감을 맛보고 싶다. 그리고 또 그것을 잘근잘근 깨물어보고도 싶다. 이럴 때 누군가가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마치 충실한 하인인 양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입술이 닿지 않는 나의 귀여운 악마, 나의 항문, 그리고 나의 젖꼭지를 누군가가 세차게 빨아주고 핥아준다면…. 타인의 신비로운 촉각에 의해 내 몸이 부서져버릴 정도로 강하게 애무될 수 있다면….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이어린 미소년이라면 더욱 더 사랑스러울 텐데. 나는 베개를 다리 사이에 넣은 채 몸을 미친듯이 비비 꼬며 들썩거려 본다. 가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는 흥분…. 갈증. 이러한 갈증을 어디에서 해소할까. 어떻게.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연다. 빈 집의 썰렁한 기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의 육체는 무인도의 윈시소녀인 양 자유롭게 거실을 떠돈다. 가슴이 탈랑거린다. 가죽소파의 감촉이 벌거숭이 맨살에 서늘한 감촉으로 느껴진다. 나는 새로운 흥분이 호기심으로 증폭되어 미칠 것만 같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서재로 갔다. 서재 가운데 위치한 탁자 위에 나는 엉덩이까지만 걸친 채 반듯이 눕는다. 머리 위로 작은 샹들리에가 가볍게 흔들린다. 손을 뻗쳐 전원을 올린다. 순간 불빛이 어지럽게 튀며 내 몸을 훤히 비추어댄다. 오랫동안 불빛을 올려다보니 눈을 감아도 분홍빛 불꽃이 튄다. 나는 왼쪽 손을 뻗어 아버지의 책상 서랍을 뒤져 가장 큰 붓을 꺼내 잡는다. 우둘우둘한 흙빛 손잡이가 묵직하게 잡혀지고 그 위로 바싹 말라 수북한 털이 보기만 해도 간지러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 붓으로 내 온몸을 가만히 문지르기 시작한다. 얼굴에서 목으로 다시 가슴으로, 다시 그곳으로…. 나는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그곳을 가만히 가만히 문지른다. 먹빛으로 바랜 털과 윤기나는 새까만 털이 서로 교차되며 뒤엉킨다. 맥박이 뛰고 다시 내 그곳의 모든 세포가 하나하나 경련하듯 떨기 시작한다. 나는 돌아누워 온몸을 탁자위에 올린 후 마치 암캐마냥 엉덩이를 치켜올리고서 엎드린다. 그리고 이제 붓끝을 항문으로 가져간다. 부드럽게, 더 부드럽게…. 내 귀여운 짐승이 헐떡거리며 촉촉하게 젖어온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붓의 방향을 돌려 묵직한 손잡이 부분을 서서히 내 항문 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한다. 그러자 내 귀여운 악마가 마치 자기에게 해달라는 듯이 더욱 빠르게 수축을 한다. 오, 나의 귀엽고 탐스러운 짐승. 우툴두툴한 붓대를 나는 더욱 세차게 움직인다. 알싸한 아픔이 묵직한 붓끝으로부터 느껴진다. 아아, 내 귀여운 악마의 두 입술이 이젠 팽팽해지다 못해 붉은 피를 토해낼 것만 같다. 나는 붓대를 항문에서 빼낸다. 엉덩이 사이에서 마치 원래 처음부터 있었던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듯한 허전한 공백감이 느껴진다. 처음엔 잔뜩 움츠려있던 엉덩이 사이가 이젠 활짝 벌려진 채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다시 붓대를 이번엔 내 작은 악마 앞으로 가져간다. 묘한 흥분 때문에 나의 악마는 진한 액체를 지르르 흘리고 만다.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붓대를 그 속에 조심스럽게 밀어넣는다. 머릿속이 정신없이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꿈나라에서 공주가 되어 있다. 그리고 건장한 흑인 노예의 남근을 기분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다른 미소년 하나가 나의 그곳을 보드랍게 핥아주고 있다. 아, 그래, 나는 역시 혀로 보드랍게 핥아주는 것을 좋아해…. 붓대도 좋지만 붓털이 더 좋아.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할 순 없는 것일까. 아아아, 으으으으음…. 누군가 내 작은 악마를 충성스럽게 핥아줬음 좋겠어….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내가 어렸을 때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코보’ 생각이 난다. 그래,‘코보’와 놀아봐야지. 코보는 무엇이든 핥는 것을 좋아하니까…. 어느새 내 입술이 열리며 나직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코보…코보…어디 있니?”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방방곡곡 팡팡축제] 진주 남강 ‘유등축제’

    [방방곡곡 팡팡축제] 진주 남강 ‘유등축제’

    진주가 화려한 ‘빛의 도시’로 거듭난다.10월1일부터 12일까지 남강 일대에서는 ‘유등 축제’가 열려 2만여개의 화려한 유등(流燈)과 풍등(風燈)이 진주를 불야성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유등축제는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이 4000여명의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3만 왜군과 대적할 때 진주성과 남강에 유등과 풍등을 띄워 작전신호를 보낸 것이 기원. 진주성의 불빛과 남강을 환하게 비추는 유등은 황홀한 야경을 연출한다. 축제의 주제는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점등식과 화려한 불꽃놀이로 시작되는 축제에서는 지난해보다 80여개 많은 398개의 등과 1만 5000개의 소망등,3000개 이상의 창작등이 제작돼 진주교와 천수교 사이 2㎞의 구간을 밝힌다. 축제에는 15개 국가에서 참가한다. 용등(중국)과 파로스 등대(이집트), 인드라 불상(네팔), 다루마등(일본), 자유의여신상(미국) 등을 만들어 선보인다. 낮의 볼거리도 적지 않다. 비봉산과 망진산 가운데로 굽이굽이 흐르는 남강을 따라 기이한 병풍 절벽이 펼쳐지며 그 절경위로 진주성과 촉석루가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인 진주대첩의 현장인 진주성은 석성으로서의 위엄있는 외관도 볼만하지만, 성내에 다양한 문화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3대 누각중 하나인 촉석루에 오르면 진주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주시청 관광진흥과(055-749-5081).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張家界 기행] 신묘한 ‘바오펑후’와 ‘황룽둥’ (끝)

    [張家界 기행] 신묘한 ‘바오펑후’와 ‘황룽둥’ (끝)

    장자제 여행의 피날레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산정호수와 황룡(黃龍)이 기세등등하게 살아 숨쉬는 듯한 천연 동굴로 장식하면 된다.바오펑산(寶峰山)의 중턱에 걸려 있는 산정호수인 ‘바오펑후(寶峰湖)’와 거대한 석회암 동굴인 ‘황룽둥(黃龍洞)’이 바로 그곳이다. ‘인간세계의 선경(仙境)’이라 불리는 바오펑후는 뛰어난 수경(水景)을 등에 업고 우뚝 솟은 봉우리 사이사이에 마치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하듯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는 만큼 ‘작은 구이린(桂林)’으로 불리기도 한다. 호수 안의 작은 섬과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들어 서 있는데,기암괴석과 울창한 원시림을 배경으로 거울같이 깨끗한 물이 흘러 마치 산속에 비취 알맹이가 구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높은 협곡과 평평한 호수’가 맞닿아 있고 동서남북이 푸른 산으로 연결돼 있는 덕분에,맑고 푸른 물 한 줄기와 새파란 산의 색깔,반짝이는 물결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 호수가 자랑하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해발 430m의 바오펑산 중턱에 한가로이 자리잡고 있는 바오펑후는 남북의 길이가 2.5㎞로 아주 아담한 편이다.수심은 최고 72m.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이 모여 형성된 곳에 인공적으로 댐을 쌓아 만든 호수지만,당나라 최고의 시인 이태백(李太白)이 뱃놀이를 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산자락을 돌아서면 또다른 비경이 하나 둘 나타나는 까닭에 여행객들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바쁘기만 하다.유람선 갑판에서 주변 풍광에 취해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린다는 얘기다.바오펑 호수의 관광은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특히 유람선을 타고 수려한 자태의 호수를 감상하는 도중,오른쪽으로 작은 수상가옥을 볼 수 있다.여행객을 태운 유람선이 이곳을 지날 때 관광객중 한 사람이 노래 한자락을 뽑으면 수상가옥에서 투자주(土家族) 처녀총각들이 나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 등의 답가를 불러 나그네들의 발길을 붙들기도 한다. ‘용왕의 논이 있다.’는 황룽둥은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투자주(土家族) 주민들이 동굴 안에 누런 용이 살고 있다고 믿어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그래서 동굴 안에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했는데,우연히 투자주의 한 대학생이 들어가 이틀 만에 살아나온 이후,그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아름다운 속살’을 마음껏 드러냈다고. 황룽둥은 영국 지질탐사대가 “세계 동굴학의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동굴들 가운데서 최고”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천연 동굴이다. 수천개의 석순과 종유석으로 이뤄진 이 동굴은 상하 4개층으로 돼 있고,아래 2층에는 사계절 내내 커다른 물줄기가 시원스레 흘러 내린다.동굴 안의 높이는 160m,동굴 길이는 무려 20㎞나 된다고 한다.동굴 안에는 저수지 1개,시내 3갈래,폭포 3개,연못 4개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관광하는 동굴의 길도 무려 96갈래나 된다고 한다. 이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딩하이선전(定海神針)’으로 불리는 석순.중국의 세계 자연유산 가운데 유일하게 1억원의 보험에 들었다.꼿꼿하게 치솟은 석순의 높이가 무려 19.2m여서 금방이라도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하지만 보험사가 지질학자를 동원해 조사·분석한 결과 부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해 보험을 받아들였다. 황룽둥의 탐험에는 4층으로 걸어 올라가 배를 타고 내려오는 코스와 배를 타고 올라간 뒤 걸어 내려오는 방법 두가지가 있다.특히 동굴 안에 뱃길이 2.8㎞나 되는 것도 놀랍지만 동굴 양쪽으로 펼쳐진 갖가지 모양의 석주,종유석들이 방문객들을 황홀 경으로 인도한다.걸어 올라가면서 보이는 계단식 논이 있는데,이것을 ‘용왕의 논’이라고 부른다. ●여행 메모 장자제 여행이 끝나면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 잠깐 들러 후난성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이곳에는 (馬王堆)에서 발굴한 2100여년전 신주이(辛追) 부인의 시신이 완벽하게 보존·전시돼 있을 뿐 아니라,이 시기의 칠기류와 백서(帛書·비단에 쓴 글),관(棺),나무인형,악기류,옷감 등의 유물과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 목제품 등 진기한 여러가지 문물들이 전시돼 있다. 인터넷부
  • 한가위 놀이공원

    한가위 놀이공원

    ■ 롯데월드서 ‘옥토버 페스티벌’ 즐겨볼까 문영진(36·보다스튜디오대표)씨는 이번 추석 고향인 충남 당진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롯데월드에서 달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형님 강진(40·충북수산 대표)씨 내외, 조카들과 함께 한가위 기분도 내고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타면서. 서울 송파구 형님댁 부근의 있는 롯데월드에서는 맥주를 무제한 먹을 수 있는 ‘옥토버 페스티벌’이 한창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테마파크에서 놀고 어른들은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공짜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는 일석이조 추석즐기기. ●입장료는 이렇게 문씨 가족은 아이들은 우대쿠폰으로 1만9500원에 자유이용권을, 어른들은 자유이용권과 맥주 무제한 제공, 비어 기념컵이 포함된 3만원짜리 옥토버 패키지 티켓을 샀다. 다만 아내와 형수는 일단 무료입장 신용카드로 입장한 다음 9000원짜리 비어티켓(맥주 무제한 제공 및 컵)을 사서 이용하기로 했다. ●짜릿한 한가위 “서방님 아무리 급해도 설겆이는 끝내야죠.”“형수님 제가 갔다와서 할 테니 서두르세요. 좀 늦으면 사람이 많아 제대로 못 놀아요. 빨리 가세요.” 문씨는 부엌에 있는 형수와 아내를 채근해 롯데월드로 직행했다. “승업(성동초 5년)이가 제일 오빠니까 동생들 잘 챙겨. 알았지. 그리고 12시에 저기 보이는 시계탑 앞으로 오는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작은 아빠에게 전화해.”라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형수는 좀 불안해했지만,“다들 초등학생인데 괜찮아요.”라며 안심시키고 일단 자이로드롭으로 향했다. 꼭 한번 타보리라 마음 먹었던 놀이기구다. “애리아빠 난 못 타겠어.”하며 자이로드롭의 높이에 기가 눌린 아내가 말한다. 그래서 형과 함께 올랐다. ‘끼릭 끼릭’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간다. 손을 흔드는 형수와 아내가 콩알만해질 때쯤 아래로 떨어진다.‘우∼와’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렇게 오전에는 아트란티스, 자이로스윙 등 아이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데 시간을 보냈다. 12시에 아이들과 만나, 어드벤처 쥬라기 광장에서 하는 새끼꼬기와 송편만들기 대회에 참가했다.“아빠가 어렸을 때 많이 해봤거든. 응원 열심히 해.”라며 용감하게 새끼꼬기에 참가하는 형.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아빠 이겨라, 큰아빠 이겨라.”“큰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큰딸 애리(구지초 4년)의 지휘에 따라 합창한 우리 가족이 단연 돋보였다. 비록 순위에는 못 들었지만 열심히 소리를 지른 덕에 돌아온 것은 응원상. 곰돌이 인형은 막내인 예림(구지초1년)의 몫으로 돌아갔다.“새끼 꼬는 모습은 우리 아빠가 최고였어요.” 오후 2시 벌써 사람들이 월드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퍼레이드카와 무희들을 앞세워 등장하는 월드카니발 퍼레이드는 롯데월드의 자랑.50억원을 투자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마침내 옥토버텐트로 갔다. 입장할 때 나누어준 컵을 내밀자 가득 맥주를 따라준다.“다 드시면 또 오세요. 무제한 리필입니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펼쳐지는 손인형극에 빠져있다. 오후 5시 옥토버 페스트 퍼레이드,5시30분 저먼밴드쇼 등도 놓치면 후회한다. 아이들은 불꽃놀이와 레이저쇼를 보러 가고 어른들은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레이크뷰에서 ‘공짜’맥주를 즐겼다. 신나고 재미있는 한가위다.(02)411-2000,www.lotteworld.com ■ 에버랜드서 핼러윈축제 빠져볼까 우리나라 테마파크중에서 규모나 시설면에서 으뜸, 에버랜드는 동·식물원과 놀이기구, 각종 이벤트로 매일 잔치가 열린다. 이번 추석연휴가 너무 짧아 박찬규(37·청신학원원장)씨는 고향 전남 여수에 내려갈 엄두도 못 냈다. 그래서 부모님 모시고, 여동생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로 나들이를 갔다. ●입장료 다 내면 바보 박씨는 에버랜드 홈페이지에서 할인정보를 찾았다. 신용카드 중에서 50% 할인 되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봤다.‘나는 삼성, 아내는 비씨카드로 할인을 받으면 되겠군. 수민(7)이는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하면 1만 8000원….’ ●호박의 나라 가을 축제인 핼러윈파티가 한창인 에버랜드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설레게 하는 볼거리가 풍부하다.“아빠 저 호박 좀 봐.”하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2.5m의 호박. 정말 크다. 호박 입으로 사람이 지나다닌다. 카메라는 이럴 때 쓰는 것. 군데군데 쌓아놓은 앙증맞은 호박들이 무섭기보다는 너무 귀엽다. 호박마차, 생호박 50개로 만든 생호박화단…. 그야말로 에버랜드는 호박천지다. 낮 12시30분 에버랜드에서 야심차게 만들었다는 ‘해피핼러윈파티’퍼레이드가 시작한다. 신나는 노래를 시작으로 종이꽃가루를 하늘 높이 날리며 분위기를 돋운다.“아빠, 호박아저씨 좀 봐. 나에게 손을 흔들어.”라는 수민. 아직 제대로 말 못하는 조카 민서(2)까지 아이들이 홀딱 빠졌다. 마치 동화 속에 온 기분이다. 천천히 걸어 물개공연장 옆에서 오후 1시30분에 하는 ‘판타스틱 스윙’ 공연을 보러 갔다. 제목 그대로 판타스틱하다. 저기 산꼭대기에서 날아오는 호루조, 뿔닭 등이 신기하게 수 백미터를 날아 조련사 옆에 내려앉는다.“참 멋지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높다. 갑자기 바람이 부니 거의 뒤집어지듯 떨어지는 녀석, 머리부터 떨어지는 녀석. 뒤뚱뒤뚱거리며 빠르게 우리로 돌아가는 호루조를 보면서 공연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오후 2시의 매직퍼레이드를 본 뒤 숨가쁘게 걸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애니멀원더월드로 갔다. 오후 2시 30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연극이 있다. 어렵게 자리를 잡았다. 골프치는 침팬지, 노래하는 앵무새, 얼룩말, 사자까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동물공연이다. “나보다 골프실력이 낫네.”오랜만에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수민이는 제기차기, 팽이치기, 투호, 윷놀이, 굴렁쇠 등 5개의 전통 민속놀이를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한가위 릴레이 민속놀이’가 펼쳐지는 곳에 관심이 있는 듯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각각의 종목을 끝낸 후 스탬프를 찍는 것도 잊지 말 것.5개 종목을 모두 마치면 ‘에버랜드 해피 핼러윈 머그컵’도 받을 수 있다. 무료로 가르쳐 주는 짚신 공예와 상모 돌리기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포시즌가든을 가득 메운 국화를 보러 가자.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쿠션맘’‘실버스탠드’ 등 28종 11만 송이가 보는 이의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어둠이 내린 에버랜드는 더욱 아름답다. 조명발에 더욱 아름다운 국화, 앙증맞은 호박조명, 노래와 함께 춤추는 분수 등 그야말로 볼거리로 가득하다. 밤에 꼭 봐야 할 것이 문라이트 퍼레이드와 올림푸스 팬터지. 저녁 8시30분. 수백만 개의 전구로 치장한 퍼레이드카와 벌 나비모양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그야말로 황홀함 그 자체이다. (031)320-5000,www.everland.com. ■ 곳곳에 축제가 휘영청 과천 서울랜드에서는 한가위 축제인 ‘우리가락 우리놀이’가 17∼19일 열린다. 정겨운 사물놀이 퍼레이드가 추석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가운데 18일 낮 12시에는 선착순 50가족이 참여하는 허수아비 만들기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또 매일 오후 1시부터 세계의 광장에서는 밤, 사과, 배 등 오곡백과와 농수산물 상품권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입장객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행사도 열린다.(02)504-0011,www.seoulland.co.kr 한국민속촌에는 민속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18일 추석 당일에는 초청공연으로 ‘한가위 맞이 큰 굿 한마당’이 펼쳐진다. 가을 추수로 인해 곳간 가득히 쌓여 있는 곡식들을 보며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다. 길굿, 호방진굿 등 판굿과 상쇠놀음, 소고놀음, 장고놀음 등 개인기예공연이 조화를 이루는 신명나는 행사다. 한가위의 흥겨움을 만끽할 수 있다.(031)288-0000,www.koreanfolk.co.kr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대형 수족관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떴다. 추석 연휴 기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이버들의 특별 다이빙 쇼가 하루에 세 차례 펼쳐진다. 거북, 상어 등과 함께 물속에서도 한가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쇼다. 또한 19일까지 홈페이지에서 ‘달’과 닮은 ‘달 해파리’를 클릭하면 레고세트, 책 등 다양한 상품도 나눠준다.(02)6002-6200,www,coexaqua.co.kr 한강유람선 운영회사인 ㈜한리버랜드는 추석 당일인 18일 여의도선착장(20:40)과 양화선착장(20:10) 및 난지선착장(20:00)에서 출항하는 ‘퓨전국악 유람선’ 선상 공연을 한다. 우리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가락을 들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을 수 있다. 잠실선착장(20:40)과 뚝섬선착장(20:30)에서는 ‘민속놀이 체험 유람선’도 출항한다.(02)3271-6900,www.hanriverland.co.kr. 강원도 홍천의 비발디파크는 추석 연휴 동안 스키장 메인센터 광장에서 윷놀이와 제기차기, 굴렁쇠 놀이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 마당을 마련한다. 설악콘도는 작년에 큰 호응을 얻었던 제기차기 대회를 17,18일 이틀 동안 개최한다. 당일 현장 접수를 받은 참가자는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본관 앞 분수대에서 기량을 겨루며 우승자에게는 아쿠아월드 이용권 등 푸짐한 경품을 제공한다.(033)434-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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