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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과 김일성 비교론/김학준교수,남북한단정 두주역을 말한다

    ◎끝까지 항일깃발… 사상적 뿌리 민주주의에/이승만/기독교신자서 마지막 스탈린주의자로 종말/김일성 대한민국 건국 4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새삼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 가운데 한 분으로 대한민국의 초대 국회의장과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박사를 생각하게 된다.동시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는데 앞장서 북한 공산정권의 초대 내각수상으로 북한 권력구조의 정상에 오른 뒤 무려 46년동안 1인장기집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죽은 김일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똑같은 이북 사람으로 이승만은 황해도에서,김일성은 평안남도에서 각각 태어났다.두 사람은 37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는데 그러나 차이는 연령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부분들에 걸쳐 있다. 이승만은 조선왕조의 황혼기에 태어나 고전적인 한문교육을 받다가 서울에서 배재학당을 다니며 미국 교육을 받았다.이렇게 볼때 그는 미국 교육 또는 서양 교육을 일찍받은 당대의 선진적 소수 지식인들 가운데 한사람이었다.그가 받은 교육의 내용은 서양 민주주의와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그는 상당히 자극됐으며 그리하여 독립협회 운동과 만민공동회 운동에 참여해 싸우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된 뒤 그는 기독교 청년운동에 종사하다가 도미하여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 학사를,하버드대에서 정치학및 역사학 분야의 석사를,그리고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및 국제법 분야에서의 박사를 각각 받았다.그의 학문적 배경만을 놓고 볼때 당시의 조선사람으로는 단연 정상급의 학자였다고 할 것이다. 이승만은 곧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에서 벌어진 심각한 노선투쟁은,특히 무장투쟁노선을 옹호하는 세력은 외교선전노선을 앞세우는 이승만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수도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만들고 이 기구를 중심으로 미국 정부와 국제연맹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운동에 매달리게 했다. 그의 독립운동 방식이 무장투쟁 방식의 시각에서 보면 의미가 줄어들 것이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단 한차례도 일제와 타협한 일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항일독립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은 조선왕조가 무너진 뒤 망국민의 신분으로 태어났다.이승만이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듯 김일성 역시 기독교 집안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그러나 이승만이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켰음에 반해 김일성은 곧 기독교를 버리고 반기독교적 입장에 섰다는 점이 대조된다. 이승만의 교육적 배경과 활동의 무대가 미국이었음에 비해 김일성의 그것들은 만주였다.이승만이 영어를 모국어나 다름없이 썼음에 비해 김일성이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썼다는 대조도 흥미롭다. 김일성의 교육은 그러나 중학교 퇴학으로 끝났다.그는 곧 중국공산당 당원이 됐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고 그 종착역은 소련극동군의 정보특무 대위였다. 조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승만은 만70세의 노인으로 미국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왔다.한편 김일성은 만33세의 청년으로 소련으로부터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승만의 사상적 뿌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였다.그래서 그는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국가 이데올로기,곧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소련의 영토적 팽창주의를 경계하면서 소련이 북한을 발판으로 남한까지 공산화시켜 한반도 전체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일찍부터 단정론을 들고 나왔다.되지도 않을 남북통일에 연연하다가는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위험성이 크므로.게다가 북한에서는 「소련 점령군의 앞잡이」김일성을 중심으로 소비에트 정권이 창출되고 있으므로 남한에서도 서둘러 정부를 수립해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소련점령군의 북한 소비에트화 전략을 떠받들고 북한에 공산주의 단독정권을 세워나갔다.그는 이 단독적 공산정권이 서고나면 그것을 발판삼아 남한까지 공산화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48년8월15일에는 남한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졌고,같은해 9월9일에는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두 국가는 각각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했다.부인할 뿐만아니라 상대방을자신에게 흡수통합시키기위해 무력의 사용도 주저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면적인 선제공격을 가해 온 쪽은 김일성이었다.그는 소련및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50년6월25일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동족상잔을 촉발시킨 것이다. 이승만은 다행히 미국의,그리고 국제연합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압록강까지 진격해 북진통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이 시점에서 김일성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북한 공산정권의 궤멸을 막을 수 있었다.여기서 전전 원상의 회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휴전이 성립됐고 이 휴전체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이승만은 권위주의 체제의 길을 걸었다.부산 정치파동과 3선개헌을 거치면서 민심의 이반을 낳았던 그의 통치는 결국 60년의 3·15부정선거로 귀결됐으며 4·19학생의거에 따른 4월혁명을 만나게 됐다. 대한민국의 조지워싱턴이 될 수 있었던 그는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고,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다.5년 뒤 그는 유명을 달리한 채 귀국했다. 김일성은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스탈린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자 했다.그것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그리고 피치자에 대한 억압과 세뇌였다. 이승만이 하야한 뒤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었다.헌정사에는 굴곡이 적지 않았으며 어두웠던 시절들이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쌓아올린 건국의 울타리 안에서 대한민국은 결국 민주주의와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일성의 북한은 한때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앞선 때가 있었다.그러나 1인 장기집권의 억압체제가 반세기 가깝게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활력을 잃게 됐으며 자연히 경제적 침체라는 늪속에 깊숙하게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북한 공산체제의 붕괴론마저 나오는 시점에서 김일성은 마침내 죽었다.이승만의 별세 이후 29년만의 일이다. 48년 이후 남쪽에서는 공화정이 여섯차례나 바뀌었고 최고권력자도 일곱사람이나 나왔다.그래서 대한민국은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교체를 통한 국민적 활력이 살아도 나고 지탱도 되어 선진국을 바라볼 수 있는 민주적 신흥공업국가로 커졌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최고집권자가 전혀 바뀌지 않은채 지내오다보니 세포가 죽어버려 결과적으로 빈곤의 땅이 됐다.이것은 김일성이 역사적으로 너무 오래 살았음을 의미한다.역사와 민족을 위해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권력에서 떠났어야 했다. 이제 미래가 대한민국의 편임이 확실해졌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라는 시대적 흐름을 탄 대한민국으로서 자신감을 갖되 신중하게 남북의 평화통일을 향해 착실하게 전진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김정일체제의 성격과 방향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우선은 기본적인 교류와 협력의 부문에 돌파구가 열리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년의 8·15는 해방 50주년이면서 분단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역사적 시점이다.남과 북을 통틀어 우리 겨레의 형편이 훨씬 더 개선되기를 바란다.
  • KBS「대암산용늪」·MBC「금강산가는길」/비무장지대생태계 보여준다

    ◎대암산/큰방울새난 등 희귀식물 소개/금강산/고진동계곡 어류·조류 선보여/학자·전문가 동원… 이달말 방송 40여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아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된 비무장지대의 「무공해 생태계」 모습이 이달 말 KBS와 MBC를 통해 선보인다. K­1TV의 자연다큐멘터리 「대암산 용늪」(연출 홍성익)과 M­TV 환경다큐멘터리 「금강산 가는길」(연출 김시리)이 그것. 「대암산 용늪」은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 경계에 위치한 천연보호구역 대암산의 해발 1천3백m 지점에 있는 「용늪」의 희귀식물을 주변의 신비경과 함께 특수촬영기법으로 담았다. 「용늪」은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뿐인 고층습원으로 짧은 여름동안 자란 식물이 겨울의 추위에 얼기를 반복하면서 약 4천년간 쌓여 형성된 이탄층으로 된 늪이다.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이탄층에서 나오는 유기산 때문에 물이 산성화되면서 분홍바탕에 붉은 반점이 있는 큰방울새란,잠자리를 닮은 잠자리 난초,백로가 비상하는 듯한 해오라비 난초 등 희귀한 야생란들이 자라고 있다. 뿐만아니라 주변에는 독특한 향기로 다대용으로 끓여 먹었다는 마가목,희귀종인 모시나비,금강산에서 발견됐다는 금강초롱과 금강봄맞이꽃 등이 산재해 신비감의 극치를 이룬다. 「대왕산 용늪」 촬영에는 야생화연구소장 김태정박사,나비연구가인 경희대 신유항교수,원시 시대의 생태계와 기후를 연구하는 충북대 강상준교수 등 전문가들이 동행했으며 특수촬영,미속촬영 등 특수기법을 동원해 용늪의 신비로움을 담았다. 「금강산 가는길」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MBC-TV의 연중기획 「아름다운 국토를 후손에게」의 일환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포유류,어류,파충류,양서류,조류 등의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 돼 있는 고진동계곡의 변화무쌍한 자연 생태계의 모습이 소개된다. 노루와 산양이 뛰어놀고 시간별(아침·황혼·밤·새벽)·날씨별(비·바람·운무)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철책,지뢰지대와 같은 분단을 상징하는 주변의 모습과 함께 엮어 우리 국토의 중요성을 전달해 준다.금강산으로 가는 옛 길목에 있는 고진동 계곡외에 건봉산,화진포 해안풍경,김일성과이승만 별장,남강과 금강산 전망등 쉽사리 찾을 수 없는 곳들이 소개된다. 강원대 송호복박사(어류전공),백원기박사(식물전공),변봉규박사(곤충 전공)등 30대 소장학자들이 제작팀과 함께 민통선내 거진읍에 머물면서 한달동안 촬영했다.
  • 노익장불구 10여가지 질환 추정/김일성의 건강과 회담일정

    ◎고령·난청 고려,정시간 독대 피할듯 남북 정상들의 건강상태는 오는 25일부터 열릴 정상회담의 절차와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두 정상 가운데 김영삼대통령의 건강과 체력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타고난 건강체질인 데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조깅으로 5㎞씩 달리며 철저한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주석 김일성의 건강은 우리에게 아직 미지수다.우선 올해 82세로 고령인 데다 그동안 외신을 통해 중병설 등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비롯,테일러 미국국제전략연구소 부소장 등 최근 김주석을 만나고 온 외부인사들은 적어도 외견상 그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전하고 있다. 김주석의 지병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오른쪽 뒷머리의 혹이다.그 존재가 알려진 지 20여년 가까이 된 것을 보면 치명적인 악성종양은 아님이 분명하다.다만 북한의 외과수술 수준에 불안을 느껴 제거수술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지방종도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밖에 러시아 등 외국언론에 보도된 질환으로는 심장병·고혈압·당뇨·난청·요통·신경통·뇌일혈·인후암 등 10여가지에 이르고 있다.인후암은 지난 77년 루마니아에서 수술을 받아 일단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다른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연 연령으로라도 이미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상당히 주도면밀한 성격의 김주석도 이를 의식,몇년전부터 건강관리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호주가였던 김주석은 최근 인삼주와 과실주를 조금 마실 정도로 주량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담배는 몇년전부터 아예 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는 또 지난해부터 이른바 「현지지도」횟수를 대폭 줄였고 1년의 절반 이상을 북한의 온천지역과 명승지에 산재된 특각(별장)에서 낚시와 정양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김주석은 지난 91년 한­중 수교를 막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중국을다녀온 것을 끝으로 해외 방문외교도 일단 중단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한다면 북한측은 이번 평양 정상회담의 횟수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대좌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을 가능한한 피할 것으로 보인다.설령 김주석이 건강에 큰 이상은 없다손 치더라도 체력이나 난청 등을 감안한다면 어차피 장시간의 대화는 무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정치적 이유를 일단 떠나서라도 북측은 김주석의 「서울행」에 대해 적극성을 띠지 않을 공산이 크다.
  • 독,약탈미술품 28점 불 반환/독­불 정상회담

    ◎콜,“교환품 아닌 순수한 선물” 【뮐루즈(프랑스) AP 로이터 AFP 연합】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30일 2차대전중 히틀러군대가 프랑스에서 약탈한 미술품들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게 반환했다. 콜총리는 이날 프랑스동부의 국경도시 뮐루즈에서 이틀일정으로 열린 전후 제63차 독·불정상회담 첫날회담에서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동독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28점의 프랑스 미술품을 정당한 소유권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미테랑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콜총리는 이날 만찬석상에서 황혼녘 파리서부의 눈덮인 루베시엔느가 풍경을담고 있는 클로드 모네의 1870년대 작품 「무제」1점을 상징적으로 미테랑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콜총리는 모네의 작품을 전달하면서 이들 미술품들은 「믿을 수 없는 여행을 한 끝에」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미테랑대통령은 미술품 반환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고 반기면서 『나는 이런 귀중한 작품을 갖고 있는 어떤 나라가 이들 작품을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화답했다. 지난 89년 베를린장벽 붕괴후 동독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프랑스 미술품 28점에는 모네를 비롯,쿠르베,르누아르,들라크루아,고갱,쇠라,세잔의 회화와 코로,밀레,마네의 스케치 등이 포함돼 있다.
  • 개성… 통일한국의 서울감으로(박갑천칼럼)

    방랑시인 김삿갓(김입)이 개성에 들러 어느 집에선가 하룻밤 묵어가자고 했다.그런데 초라한 행색 때문이었을까,땔나무가 없어서 불을 못지펴 구들이 차다면서 퉁바리놓는 것이 아닌가.천재시인에게는 이 설움이 오히려 읊거리로 된다. 『읍호가 개성인데 문은 어찌 닫는것이며(읍호개성하폐문)/뒷산이름이 송악인데 어이 섶이 없다는고(산명송악기무신)/저물녘 손쫓음은 인사가 아니어니(황혼축객비인사)/동방예의지국에 그대홀로 진시황이던가(예의동방자독진)』 이 시가 말하듯 개성의 뒷산이름이 「송악」이지만 송악하면 바로 개성을 이르기도 한다.송경·송도라고도 하고.솔과 관계깊은 곳임을 알게 한다.그런 전설도 따른다.신라의 감간 팔원이 풍수에 능하였는데 부소군(부소군:개성)에 이르러 산세가 좋은데도 나무가 없음을 보고 강충에게 말한다. 『고을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솔을 심어 암석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일할 사람이 나오리다』 이말을 들은 강충이 솔을 온산에 심고 산이름을 송악이라 했으며 달리 숭산 또는 신숭이라고도 했다.그 강충이 고려태조 왕건의 5대조이다.그렇다 해도 강충과 소나무 얘기는 역시 전설일 뿐이다.그곳의 고구려때 이름이 「부소갑」인바 그건 「부스고지」이고 「부스」는 민세 안재홍에 의할때 (조선상고사감하) 「곡」에서 출발한 말이면서 신의 뜻까지 지니고 있는 솔의 옛말이기 때문이다. 풍수설로 보아 좋은 터전이 이곳.그에 대해 김관의의 「편년통록」은 당나라 숙종까지 들먹이고 있다.그가 임금이 되기전 명산을 두루 유람할때 곡영(곡영:송악)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며 말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반드시 도읍지로 될 곳이로구나』.왕건이 17살되던 해 찾아온 도선은 이곳을 「천부명허」라 표현하고 있다.그 도선의 지리도참서인 「송악명당기」는 또 송악을 만월형의 길지라고 풀이한다.북으로 송악·천마·성거의 천험이 있고 좌우로 임진·예성의 젖줄이 흐르며 강화·교동이 방파제로 되고 있어 도읍지로서의 명당이라는 것이었다. 21세기위원회의 「21세기의 한국」보고서는 통일한국의 수도로서 「개성 부근」을 제시했다고 알려진다.역사성·발전성·안전성… 등에서 적합한 곳이라면서.그래서 옛도읍지론을 떠올려보게 한다.휴전협정때 뺏겨버린 일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땅 개성.아직은 실향민 가슴만 설레는 통일한국 도읍지론이다.
  • 남북 예멘,아덴 공방전/전황혼미… 우리교민 긴급대피령

    【사나·아덴 외신 종합】 닷새째로 접어든 남북예멘 내전은 8일 남예멘의 아덴 부근에서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남북 양측이 각기 승리를 주장하고 나서는등 극도의 혼미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예멘은 이날 남예멘의 거점도시인 아덴외곽에서 전투가 전개되고 있으며 북예멘군이 아덴을 9일까지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예멘은 이날 아덴라디오를 통해 북예멘측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남부지역의 아비얀등지에서 패배한 북예멘이 패배를 감추기 위해 시선을 다른쪽으로 유도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관련,로버트 펠레트로 미국무부 중동담당차관보는 아부다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예멘군 2개 부대가 아덴을 향해 진격중이나 남예멘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있다』고 전황을 설명했다.펠레트로차관보는 『양측이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경우 전쟁은 장기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예멘군은 이날 북예멘 거점인 수도 사나에 세차례 공습을 가했으며 스커드 미사일을 다섯발 이상 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소식통들은 아덴북부 50㎞ 지점의 라히즈주 알­아나드 군사기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결과가 아덴시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며 아마도 내전 전체의 향배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유엔과 미국·러시아·영국·독일·프랑스·인도 등은 9일에도 자국 외교관과 상사원·교민들의 철수작업을 계속,현재까지 예멘을 탈출한 외국인은 미국인과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총 1천5백명에 달하고 있다. 한편 예멘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인 1백7명이 아덴을 탈출,이날 아프리카의 지부티항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 철수 등 검토 정부는 9일 남북예멘의 무력충돌이 전면전 양상으로 번짐에 따라 수도 사나에 있는 우리 공관원 가족및 교민 25명을 인근 지브티로 대피시키도록 주예멘한국대사관에 긴급 전문을 보냈다고 외무부의 장기호대변인이 밝혔다. 장대변인은 이날 『현지 공관직원과 가족을 포함한 교민 39명 가운데 공관원 가족및 교민등 25명을 1차로 프랑스 군용기를 이용해 9일 상오 지브티로 떠나도록 했다』고 전하고 『계획대로 교민들의 철수가 이루어졌는지는 현지와의 전화통화가 어려워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장대변인은 『교민들이 1차 철수한 뒤에도 조규태예멘대사등 공관원 5명과 교민등 14명은 계속 남아 업무를 보기로 했다』면서 『정부는 예멘대사관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전투가 격화될 것에 대비,2차로 현지대사관을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키로 했다』고 말했다.
  • 남북 이산가족 중국서 비밀상봉

    ◎교포가 가교역할… 장백·연길·도문 주무대/작년부터 시작… 상봉10건·서신왕래 150건 6·25 때 단신으로 월남,춘천에 살고 있는 김철웅씨(66)가 지난 91년과 93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장백시에서 40년전에 헤어져 생사조차 모르던 어머니 전희옥씨(83·양강도 혜산 거주)를 만났다.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해 가슴 태우는 실향민들에게 김씨 모자의 상봉은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고 현행법으로 볼때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실이다.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이 이처럼 제 3국,특히 중국에서 비밀 상봉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6일 밤 10시55분부터 방송된 SBS­TV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확인돼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서울,평양 그리고 연변」이라는 부제를 단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장백·도문·연길 등지를 중심으로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서신왕래,그리고 상봉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공개된 것. 남한 정부와 북한 당국의 묵인하에 철저한 비공개,민간 주도를 원칙으로 진행되는 이산가족들의 서신교환이나 상봉은 주로 중국을 통해 이루어 진다.상봉을 주선하거나 편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은 북한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이 가능한 중국 교포들이 맡고 있다. 제3국 상봉의 중심 무대는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주도(주도)인 연길시를 비롯해 북한과 접경지역인 두만강변의 도문,압록강변의 장백,신의주와 접해 있는 단동 등은 북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남한 사람들도 방문할 수 있어 만남의 장소로는 최적지다. 연길시의 공식허가를 받은 민간단체 「이산가족 소개소」가 이산가족들의 서신교환 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철웅씨의 경우 지난 80년대 중반 일본을 통해 어머니의 생존사실을 확인한뒤 길림성에 사는 사촌동생이 상봉을 주선했다. 중국을 통한 이산가족의 비밀상봉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지난 해부터.통일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현지의 이산가족 소개소 중개로 상봉이 이루어진 것은 10여건,서신왕래는 1백50건에 이른다.황혼기에 접어 든 41만(91년 통계청 집계) 이산 1세대들의 자세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증거다.
  • 요절시인 기형도 재평가작업 활발

    ◎5주기 맞아 선후배문인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발간/미 발표시 16편·기씨에 관한 소설·평론 수록/“자신의 고통을 시로 승화하는데 성공”평/허무주의 천착한 시세계,사후 젊은시인에 큰 영향 지난 89년 3월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시인 기형도. 그의 죽음은 「요절시인」이란 명제말고도 허무주의 천착으로 집약되는 시세계로 말미암아 수많은 뒷이야기를 남기며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사후 출간된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은 젊은 시인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평단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5주기를 맞아 선후배 문인들이 또다시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를 솔출판사에서 펴낸 것은 이같은 평가작업의 일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종이들아 잘있거라,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빈 집에 갇혔네』(빈집) 그의 유작 「빈집」의 첫 구절에서 따 이름을 붙인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는 그의 미발표시 16편과 함께 선후배 문인들이 그에 관해 쓴 시 소설 평론들을 담고 있다. 황동규 오규원 이문재외 김영승 임동확 이상희 조병준 나덕희시인이 그를 떠올리며 시를 실었고 원재길 신경숙이 그를 소재로 지은 소설을 담았다. 이외에도 남진우 장정일 이광호 이경호 성석제등이 시인 기형도와 그의 시세계를 되짚는 추모의 글로 동참하고 있다. 사실상 생전보다는 사후에 유작시집이 나오면서 새삼스레 주목받는 시인으로 부각됐던 기형도는 죽음에의 경도와 시 전반에 짙게 배어있는 허무주의가 독특한 여운을 남기며 관심을 모았었다. 이 문집에 실린 16편의 시들은 대부분 대학시절 남긴 것들로 이같은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흐름들이다. 『가라,어느덧 황혼이다 살아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때 구름이여,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점 노을이었다』(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중) 『두렵지 않은가.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일상의 공포 보여다오.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있는 그대여』(노을중) 이 추모문집은 그의 시경향을 파고듦과 함께 이같은 시작뒤에 서려있는 비밀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살아온 그대로의 고통스런 기록으로 평가되는 그의 시를 놓고 평론가 남진우씨는 『기형도의 시세계를 삶의 비극성과 죽음에 대한 천착이라는 시각에서 단선적으로 평가하거나 신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없다』면서 『그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힘을 빌려 자신의 고통을 띄워 승화시키기 위해 시를 썼고 또 그것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그런가하면 문학평론가 이경호씨는 『그는 앞선 세대,혹은 동시대 시인들이 보여준 시적 특징과 다른 세계에서 시쓰기의 방법론을 보여주었다』며 『80년대 전반기의 시 쓰기와 후반기,혹은 90년대의 시쓰기가 갖는 차별성을 기형도 시인의 작품세계와 연관시켜 논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신년가곡의 향연」특별출연 테너 최진호·소프라노 최재원씨(인터뷰)

    ◎“처음 서는 큰무대라 겁나요”/최진호/유학파… “이태리인 감동시킨 「청산… 」 부를것”/최재원/국내파… “깊은 서정성 지닌 「수선화」 골랐어요”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94 신년 가곡의 향연」을 알리는 포스터속에는 기라성같은 성악가들 틈새에 두 젊은이의 얼굴이 눈에 띈다.특별출연하는 테너 최진호씨(31)와 소프라노 최재원씨(29).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낯이 설지만 음악계에서는 이미 인정받는 신진들이다. 이들은 『이처럼 큰 무대에 설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기뻐하면서도 공연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처음 서보는 큰 무대라 솔직히 겁이 났었다』고 입을 모았다. 진호씨는 연세대를 졸업한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파르마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최근 귀국한 유학파.그는 『아직도 공부하는 중인데 처음부터 이런 연주를 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어진 기회이니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그에비해 재원씨는 경희대와 대학원을 졸업한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파.『마음의 부담은 있지만그래도 다양한 무대에 서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특별히 걱정되지는 않는다』면서 자신감을 피력했다. 진호씨가 이번 공연에서 부를 노래는 「청산에 살리라」와 「황혼의노래」.「청산에 살리라」는 특히 지난 90년 파르마의 한 음악회에서 불러 가사를모르는 이탈리아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박수갈채를 받은경험이 있다고 한다.재원씨는 화려한 기교를 요하는 「꽃구름 속에」와 깊은 서정성을 지닌 「수선화」를 부름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뜻인듯. 이번 공연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서는 무대이기도 하다.테너 박성원씨는 진호씨의 스승이고,바리톤 윤치호씨와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씨는 재원씨의 스승이 된다. 『오해하지 말라고 제 자신에게 다짐하곤 합니다.같은 무대에 선다고 선생님같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요』(진호씨). 『윤선생님은 그동안에도 듀엣등 함께 연주할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그에 보답할 만큼 연주를 잘해야겠지요』(재원씨) 진호씨가 평가하는 자신의 목소리는 미성으로 「토스카」등 낭만적인 오페라에 적격이라는 것.재원씨는 청중이 듣기 편한 고운 소리를 장점으로 내세웠다.이밖에 이들이 지닌 또하나의 장점은 성악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보기 좋은 체격과 호감이 가는 인상을 지녔다는 점인듯 했다. 이들은 성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앞으로 『우선 후진들에게 8년동안 이탈리아에서 배운 것을 전해주고 계속 공부를 해나가겠다』(진호씨),『오페라 레퍼토리를 늘리는등 모자라는 면을 계속 챙기는 것과 함께 기회가 닿는다면 해외에도 나가 본고장의 음악을 느껴보고 싶다』(재원씨)는 희망을 밝혔다.
  • 미 그레이엄목사 방북 계기로 본 기독교 실상(오늘의 북한)

    ◎교회 두곳에 신도 1만명… “대중화 요원”/폐쇄이미지 씻으려 80년대이후 부분 허용 북한당국이 최근 기독교 등 종교계에 유화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인 부흥사인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목사가 지난 92년에 이어 두번째로 27일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의 방북 목적은 평양에서 대규모 부흥회를 갖는 데 있는 것처럼 일부 외신이 전하고 있으나 실은 평양의 한교회에서 실내 예배를 인도하고 미국기독교계의 나진·선봉지역 교회 건립 지원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외개방 내지 교류 확대의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때문에 그의 방북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북한사회가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유사종교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레이엄목사의 재방북허용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북한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공산주의적 종교관에 따라 지난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반종교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이 종교,특히 기독교를 묵인 내지 허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이후이다.이 때부터 북한을 방문하는 외부 인사들에게 「가정교회」를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80년대 중반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바티칸 교황청에 도움을 청해 교회를 짓는 한편 88년 이후 교회와 성당·사찰 등 공인된 장소에서 제한적으로 종교의식을 허용했다. 이후 89년에 김일성대학에 종교학과를 신설하기도 했다.또 지난 92년 4월 개정된 헌법에서 종래의 「종교를 반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한편 종교건물 건축 및 종교의식을 허용하는 조항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북한의 종교는 대중화나 보편화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다.기독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자수가 현재 약 1만명 정도에 불과하고 정식 교회도 88년에 건립된 평양 봉수교회와 89년 재건축된 칠골교회 두 곳 뿐이다. 신앙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북한땅은 아직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다.기독교만 하더라도 북한전역에서 활동중인 교직자는 20여명의 목사와 전도사를 포함해 약 1백5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신자들도 대부분 5백여개가 넘는 「가정교회」에서 근근이 예배를 볼 정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유화제스처가 대내용 이기보다는 대외용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즉 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그레이엄목사를 초청함으로써 북한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속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이와함께 폐쇄사회의 이미지를 다소라도 씻어 외자유치 등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을 얻어내려는 분위기 조성 저의도 감지된다. 이와는 별도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김일성의 기독교관 자체가 다소 유화적으로 바뀌지 않았나 하는 추론도 제기되어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이는 김이 어머니인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유년기 한 때 평양의 반석교회(40년대에 없어짐)에 다녔다는 얘기에 근거를 두고있다. 반석(베드로)교회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강반석은 집사를 지낼 만큼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둔 김이 이같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해 탄압에서 방임으로 심경변화를일으켰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신년 가곡의 향연」/정상급 성악가 14인 “감동의 무대”

    ◎서울신문 주최/31일 하오7시 서울 세종회관대강당서 팡파르/박인수·엄정행씨 등 대표주자 총출동/「동심초」등 주옥같은 노래로 “화신재촉”/유망신인 테너 최진호·소프라노 최재원씨 특별출연 새봄을 재촉하는 노래의 축제 「94 신년 가곡의 향연」이 오는 31일 하오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가곡의 향연」은 해마다 얼음이 풀려가는 1월말 열려 음악시즌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역할을 해 온 대형무대.올해는 14명의 정상급 성악가가 대거 출연,어느때보다도 감동적이고 화려한 무대를 펼친다. 출연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소프라노 이규도와 김금희 정은숙,메조소프라노 백남옥 정영자,테너 박인수 엄정행 신영조 박성원,바리톤 윤치호 박수길.명실공히 한국음악계를 대표하는 이들 중량급 성악가들은 청중들에게 연주회내내 숨돌릴 틈없이 우리 노래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부를 곡은 모두 우리 음악사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주옥같은 가곡과 민요로 짜여 있다.먼저 1부에서 김금희씨(추계예대 음대교수)는 「고향의 노래」와 「동심초」,윤치호씨(명지대 음대교수)는 「명태」와 「산이여」,정영자씨(중대 음대교수)는 「달밤」과 「그리운 금강산」,박인수씨(서울대 음대교수)는 「신고산타령」(민요)과 「희망의 나라로」,정은숙씨(세종대 음대교수)는 「비목」과 「새타령」(민요),신영조씨(한대 음대교수)는 「진달래꽃」과 「초롱꽃」을 부른다.또 2부에 출연하는 박수길씨(한대 음대교수)는 「끝없는 상념」과 「까치」,강화자씨(연세대 음대교수)는 「눈」과 「저구름 흘러가는 곳」,박성원씨(연세대 음대교수)는 「농부가」(민요)와 「초혼」,백남옥씨(경희대 음대교수)는 「신아리랑」(민요)과 「님이 오시는지」,엄정행씨(경희대 음대교수)는 「보리밭」과 「박연폭포」(민요),이규도씨(이대 음대교수)는 「학」과 「그리워」를 열창하게 된다. 이번 연주회에는 또 테너 최진호씨와 소프라노 최재원씨등 두사람의 유망주가 특별출연할 예정이다.최진호씨는 연세대와 이탈리아 파르마국립음악원을 졸업한뒤 파르마와 크레모나등지의 오페라무대에서 활동한 기대주.국내에 돌아온 뒤에도 오페라「결혼」에 출연하는등 남다른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이번 연주회에서는 1부 첫번째로 나서 「황혼의 노래」와 「청산에 살리라」를 부른다.최재원씨는 경희대음대를 졸업한뒤 현재 명지대사회교육원에 출강하고 있는 신예.「코시판투테」와 「사랑의 묘약」「피가로의 결혼」「돈조바니」등의 오페라와 「메시아」「천지창조」등 오라토리오에 출연하는등 역시 활발한 활동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2부 첫번째 순서로 나서 「수선화」와 「꽃구름 속에」를 부를 예정이다. 이번 연주회의 반주는 중견피아니스트 이성균씨와 박원후씨가 나누어 맡는다.이씨는 서울대 음대와 미국 뉴욕 맨해턴 음대대학원을 거쳐 서울대 음대교수로 재직중이며 수십차례의 국내외 독주회와 협연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박씨 또한 서울대와 미국 뉴욕 맨해턴 음대를 거쳐 현재 부천시향 협연자로 활동중인 음악인으로 러시아 페트로자보프스키 교향악단 초청으로 이 악단과 협연한바 있다. 공연문의는 721­5965.
  • 불타는 단풍에 오욕을 태우고서(박갑천칼럼)

    꽃소식은 북상하는데 비해 단풍소식은 남하한다.그게 봄과 가을의 차이인가.지난여름의 저온현상으로 해서 여느해보다 일찍 시작된 단풍의 남행길이다.전국의 산과 들이 붉누런 때때옷을 걸쳐나간다. 『단풍은 연홍이요 황국은 순금이라/신도주 맛시 들고 금은어회 더 죠□라/아희야 거문고 □여라 자작자가 □리라』.요맘때의 정경을 읊은 노가재 김수장의 시조이다.자연에 묻혀 거기 동화하는 삶을 즐기는 가인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자작자가」아닌「대작대가」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가을의 단풍은 증자의 말(논어:태백편)을 떠올려보게 한다.그가 오랜병으로 누워있을 때 노나라의 세도가인 맹경자가 찾아오자 그에게 했던 말이다.『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착한말을 한다』(인지장사이 기언야선)고 한 그때의 말은 오늘에도 사람들 입입에 오르내린다. 그렇다.이윽고 땅위에질 이파리들이「착한말」과도 같이 들려주는「원색의 향연」이 단풍 아닌가.죽으려면서 펼쳐보이는 저녁노을의 화려함이다.얼마 남지않은 삶을 곱게 수놓는 자연에의귀의이다.그러기에 아름답다.고개 숙어진다.그 울긋불긋한 색상은 저 초나라의 지효노래자의 오색반란의를 연상해보게도 한다.나이 일흔에 어버이 기쁘게 해드릴양으로 입고서 어린애 재롱을 부렸다던 그옷 말이다.인생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어버이 기쁘게 했음은 자연의 황혼이 때때옷 입고 사람들 마음에 기쁨을 심는 것과 같다.인생위에 엮어지는 제상이 실상 그렇게 우습고 허무한 것 아니던가. 고려조의 문신 문진공 이장용의시「단풍」(홍수)에서도 그걸 느낀다.­『한이파리 바스락지는 밤소리(야성)에 깜짝놀라/천산의 숲들 문득 서리내린 갠아침에 상기됐네/가엾어라 푸른산기운 비춰 깨뜨림이여/알지못했네 흰머리카락 재촉할줄을/거친뜰 바라보는 가을회포는 씁쓸한데/먼산에 부딪쳐 타는 눈부신 석양이여/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바로오늘/그병풍 그림속을 거닐던 연연(외몽골에 있는 산이름)길이』(원문생략:손종섭역).나라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산「해동현인」의 착잡했던 심경이 단풍과 인생에 엇짜여 드러난다. 오늘내일 단풍구경 떠나는 이들이적지않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아름답게 감상할줄도 알아야겠다.마음속 오욕일랑 불타는 단풍에 태우고서 돌아올 일이다.
  • 매미는 맵다 우나 덧없다 우나(박갑천칼럼)

    아침부터 매미가 울어쌓는다.매미소리 속에 여름은 짙어가고 또 이울어간다.알에서 성충까지 6∼7년 걸렸으면서도 10∼20일정도 소리꾼으로 살다간다.한량같아 뵈지만 그 신세가 서러워 우는 걸까.서울에 와서는 말매미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해남쪽 사투리로는「와가리」라 했는데 몸집이 큰만큼 소리가 우렁찼다.이놈을 잡아 할아버지 담뱃대에서 훑어낸 진을 눈께에 발라 날리면 한없이 하늘로만 치솟던 것을 기억한다.고약한 장난질이었다. 『매아미 맵다하고 쓰르라미 쓰다하네/산채를 맵다더냐 박주를 쓰다더냐/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쓴줄 몰라라』.우리의 옛시조다.매미가 맵다면서 운다고 읊고있다.아이들이 매암돌기를 하면서 매미소리에 빗대어선지 『고추먹고 맴맴』하는 걸 보면 역시 매미와 매운 것은 관계가 있다는 걸까. 춘원 이광수도 울다가 생애를 마치는 매미에 무심할수가 없었다.자신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매아미」라는 시조에다 짜기워놓고 있다.『매아미 내 창밖에 아침마다 와서운다/아모리 타일러도 못깨닫는 둔한나를/깨울까깨울까 하는 임의 뜻이시로다/매아미 아뢰는말 다알지는 못하여도/보름도 못살몸이 재오재오 외치옴은/덧없다 덧없어라를 노임인가 합니다…』(춘원시가집). 호메로스는 매미가 빵을 먹는 것도 아니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도 아니며 그래서 혈액도 없으므로 신과 같다고 찬미한다. 이와 같은 찬미는 진나라시인 육운이 앞선다고 하겠다.그는 옛사람들은 닭한테 오덕이 있다고 했으나 매미한테도 그게 있다고 말한다.『머리에 반문이 있으니 그건 문이고 이슬을 마시고사니 그건 청이며 곡식을 먹지않는 것은 염이고 집짓고 살지않음은 검이며 계절을 지키는 것은 신』이라는 것이었다.(한선부서) 놀라운 수수께끼를 지닌 것이 3백년전 미국동부에서 발견된「주기매미」이다.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13년 걸리는 것과 17년 걸리는 것이 있는데 통틀어 주기매미라 한다.곤충치고는 참으로 긴세월을 땅속에서 사는 셈이다.그런데 함께 땅속으로 들어간 유충들이 17년(13년)후 첫여름의 어느날 황혼기 2∼3시간 사이에 일제히 땅위로 솟아오른다.오랜세월 땅속에 살았으면서도 땅위로 나오는 시간을 거의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대자연의 경이로 돌릴밖에 없다. 춘원을 깨우던 후손인가,매미한마리 창밖으로 쳐진 쇠그물에 날아와 앉아 세차게 울어댄다.세상살이 맵다는 것인가,인생살이 덧없다는 뜻인가,헤아리진 못한다.
  • 분장미술가 전예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3)

    ◎천의얼굴 재현하는 분장의 마술사/작품 철저히 검토,배역에 꼭맞는 “인물 창출”/재료 직접제조… “생명력 깃든 화장기법” 정평/50년대부터 불모지 개척… 골상학 등 관련분야에도 조예 「배우란 한시대의 축소판이자 간결한 연대기지.죽어서 묘비명이야 어떻게 씌어지던 살아 있을 때 구설은 듣지 않는 게 상책이오」 어둠침침한 푸른 조명속에서의 햄릿의 절규는 세상의 끝은 바라보는 듯한 흐느끼는 눈빛으로 인해 더욱이나 관객을 전율케 한다.우수에 찬 눈동자엔 형용할 수 없는 번뇌와 오뇌가 꿈틀거리고 허공에 메아리지는 그의 독백은 메마른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검붉은 피와도 같다.머리카락 한올,클로디어스왕을 저주하는 손가락 마디마디에도 주인공의 참담한 절망과 갈등이 흩날린다.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운 검푸른 눈동자,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듯한 메마른 입술,증오심과 원망어린 칙칙한 잿빛 금발,허공중에 허우적거리는 야윈 손가락 등등 이를 표현해내는 것이 전예출씨의 예술영역이다. ○눈썹 한올에도 신경 그는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귀여운 여인 올렝카가 사샤를 희생적인 모성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늙고 병들어 쭈그러들 때까지,또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지」의 스칼렛 오하라가 오만방자한 얼굴을 퇴색시키고 한사람의 여성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무대위에 재현시키는 바로 천의 얼굴,수만의 표정을 그려내는 분장의 마술사다. 대본을 받으면 배우들이 대사를 외고 동작연습에 임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성격분석,작품에서의 비중과 조화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몇차례씩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 소리내어 대사를 외어보면서 그 인물이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연극속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부모와 학교친구,취미와 일상적인 일거일동을 철저히 연구하여 디자인에 들어간다.연극에 등장하지 않는 부모까지 연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대학교수」일 경우 학자집안에서 나온 교수와 장사꾼의 집안에서 나온 교수는 그 인상과 표정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분장실에서 배우를 분장시킬 때의 그의 열정은 조각가나 화가 못지않게 엄숙하고 진지하다.주름살 하나에도 배우의 피부조직을 살펴 50대의 주름살,60대의 주름살을 어느때는 곱게,어느때는 짙은 골을 파면서 역할이 살아온 성장배경,인생역정,앞으로의 변화를 선명하게 구별해나간다. 또 단순하게 인위적으로 그려진 선이 아니라 분노와 울화,기쁨과 성취,절망과 좌절의 강도에 의한 눈썹 한올에도 생동미와 처절미를 연출해낸다. 조각가가 인체해부학적 측면을 고려하듯이 그는 해부학과 골상학,세포조직과 근육분포,미술에서의 색채학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내가 구상한 비극적·희극적 인물,냉소적이며 초연한 것,모반을 꾀하거나 사색적 인물들이 붉은 조명아래서 당초 시도했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카메라 앵글에 의해 효과적인 신을 이루고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염두에 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구나 그 일에 파고들 수 없을 것이다.한낱 「분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분장의 불모지이던 50년대부터 홀로 외롭게 몸부림쳐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유별난 편이다. ○일에 강한 긍지지녀 공연작품이나 영상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분석 없이는 손댈 수 없다는 시각에서는 「분장」은 연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테크닉이 미술을 동반한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특수한 미술분야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물론 분장이 해야 하는 의상·소도구·조명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그리고 어떤 대상을 만나도 흑을 백으로,세모를 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으며 분장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극중인물로 등장할 수 없음을 투철히 믿고 있다.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30대이상의 연기자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분장에 관한 한 그는 도무지 남의 간섭을 용납치 않는다.「분장을 어둡게 하라」 「밝게 하라」는 주문을 받아들여본 적이 없다.이미 작가·연출가와 모든 의논을 끝낸 뒤 분장기법을 정리한 다음엔 배우가 만일 『여긴 강조하고 볼은 좀 죽이고 싶다』고 말하면 그는 두말없이 『네가 하라』고 붓을 던져버린다.상대방이 극구 사과해도 묵묵부답,두번다시 상대하지 않는다.주문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즉흥적인 기분과 감상을 말하지만 그로서는 한달이상 신중한 검토와 구상을 끝낸 마당이다.여러 변명이 필요없었다.전체적인 구도와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아집과 고집,자기주장이 강하다.그런 그의 고집불통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간혹 곤혹스러워할 때가 많다.그런 상충된 의견으로 인해 격돌이 오갈 때도 있다.그러나 그의 오랜 경륜과 노련미는 짧은 안목을 묵살시킨다.결국 그가 옳았고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완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모든 예술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는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편이다. 황해도 황주 중농의 아들 3형제중 막내.황주남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그는 연극반을 조직하여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했다.직접 극본을 각색하여 연출을 맡았고 목재상을 경영하는 형님(전창신씨)가게에서 나무를 얻어다가 세트를 만드는 등 연극에 열을 올렸다. ○다방면에 다재다능 일상적인 평범한 얼굴이 전혀 다른 여러개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점때문에 분장에매료됐는지도 모른다.「베니스의 상인」이 될 수도 있고 「벚꽃동산」의 트로피모프,또는 라스콜리니코프,레트 버틀러나 애슐리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에 대한 복수와 원한,「사느냐 죽느냐」를 외치는 햄릿의 광기에 번뜩이는 눈빛을 그리며 그도 언젠가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려 왔다. 6·25가 나기 1년전 그는 형의 친구가 부소장(윤묵)으로 있는 북조선촬영소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부소장은 그에게 교통성산하의 교통성극단에 소개해주었다.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후에 월남해서 영화배우로 활약한 김칠성씨. 「춘향전」으로 데뷔후 50년6월 소련 번역극을 가지고 원산공연,외금강공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함흥공연길에 올랐다가 6·25를 만나 1·4후퇴때 월남했다. 부산 피란지에서 그가 할 것이라곤 연극밖에 없었다.어렵게 극단 「아랑」을 조직하여 분장에 출연까지 겸하면서 경상도일대를 유랑했다.분장을 하다보니 자연 일어로 된 화장품제조에 관한 서적 등을 구해 읽어야 했고 문득 화장품을 만들어 팔면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들었다.립스틱공장을 차렸으나 제품보다 케이스가 조잡스러워 망해버리고 말았다.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분장에 손댈 때도 그는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곤 했다.분장에 필요한 화장품이 전무상태인데다가 외국제품들이 우리피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더구나 유럽이나 중국은 창백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우리는 깊고 그윽한 유백화장술이 무대에서 자연스러웠다.지나치게 붉은 터치인 미국 화장품은 무대에서 튀고 조명아래서 겉돌았다. 여러가지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화장품을 피부에 발라 테스트를 해본 다음 다음날 분장에 사용했다.그래서 그만의 독특한,남에게 공개되지 않는 수십여종류의 비법을 비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특수분장중 대표적인 것은 TV문학관 「등신불」 「에바다」에서의 문둥병환자의 이그러진 얼굴이다.출연자의 열굴형을 여러 각도로 본뜬 다음 이를 다시 모자이크해서 흉터를 만들고 여기에 면도거품을 발라 분장,열을 가해 거품이 녹는 것과 동시에 피부가 정상회복하는 화면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연극·오페라에 집착 거의 매일이다시피 방영되는 TV드라마외에 그가 집착하는 것은 연극·오페라 등 무대분장이다.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의 분장한 모습은 또렷한 명암과 윤곽을 드러내면서 서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그리고 광기어린 배우의 눈빛,외로운 그들의 몸부림은 그가 그려내고 싶던 무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멜방달린 바지에 베레모,아침9시면 동숭동 그의 작업실에 나와 청년같은 정열로 강의와 작업에 임한다.그에게 배우려는 제자·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가지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서다.그는 겉모습의 분장보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생명력 깃든 분장을 지도한다.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동서고금,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인간상들이 「분장을 통해서만 극중인물로 재현」되고 「탄생」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다.그가 존재하는 한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주자이며 독보적 위치지만 든든한 뒤를 잇는 후배들로 인해 이제 그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보◁ ▲1927년 황해도 황주 출생(본명 전윤신) ▲1942년 황주농업중학교졸업 ▲1945년 경성법정대 졸업 ▲1945∼48년 황주남중 교사 ▲1949∼50년 교통성극단 단원 연극 「춘향전」 데 뷔 ▲1951년 부산에서 극단 「아랑」 창단 ▲1953년 극단 「신청년」 단원 ▲1954년 극예술협의회 회원 ▲1955년 영화 「안중근」으로 분장 및 연기 ▲1956년 국립극단 단원(국립극단·드라마센터분장담당) ▲1961년 KBSTV로 입사 ▲1961∼88년 서라벌예대·한양대·동국대 출강 ▲1963년 TBC 입사 ▲1981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복귀 분장실장역임 ▲1988년이후 프리랜서 독립기념관 임정요인 33인 분장 ▲1989년 개인작업실 아트파워 개업 ▲1993년 개인작업실 동숭동이전 전예출 프로메이크업 설립 ▲현재 영화·연극·TV·CF 및 오페라공연 분장및 한양대음대 특강. 장준옥여사와 1남3녀 국립극단·드라마센터·민중극장 공연작품중 연극­「햄릿」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빌헬름텔」 「죄와 벌」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결혼중매」 「대수양」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태양을 향하여」 「산불」 「욕망」 「국물있아옵니다」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 「파우스트」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라」 「세인트 존」등 1백50여편. 오페라­김자경오페라·국립오페라·서울오페라·글로리아오페라 공연작품중 「토스카」 「라보엠」 「카르멘」 「춘희」 「나비부인」 「마적」 「돈 조반니」 「돈 카를로」 「아이다」 「사랑의 모약」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트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파우스트」 「심청」 「삼손과 데릴라」 「코지 판투테」 「라 조콘다」 「리골렛토」 「천지창조」 「운명의 힘」 「세빌리아의 이발사」 「펄리아치」등 2백여편. 영화­「황성옛터」 「대지」 「황혼열차」 「고려장」등 40여편,TV드라마(문학관등) 1천여편.
  • 국제전시구역/D­36일(대전엑스포’93:2)

    ◎11개관서 펼치는 “환상의 미래세계”/정부·시도관엔 발전상·팔도풍물 선봬/IBM·번영·도약관선 첨단과학 체험 대전엑스포의 핵심은 국제전시구역.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진 한마당을 연출함으로써 무한한 꿈과 희망을 심어줄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캐치프레이즈로 장관을 연출한 국제전시구역은 정부관·한빛탑·시도관·주거환경관·조폐문화관·롯데환타지월드·국제관·한국IBM관·한국후지쓰관·번영관·도약관 등 11개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도 중심축은 정부관이다. 우성이산을 등지고 갑천의 푸른 호수가 감싸안은 사통팔달의 시원스런 도로망이 동서남으로 날개를 펼친 가운데 그림처럼 건설된 엑스포현장의 중심에 정부관이 자리잡고 있다. ○한민족도약 한눈에 힘차게 뿜어 올리는 분수가 찬란한 미래의 꿈을 안겨주며 반겨맞는 정부관은 2천7백평에 일자형 지하1층 지상3층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건축됐다. 기둥없는 하이테크관으로 세워진 이 건물의 주제는 「비상을 위한 미래의 날개」. 옥내 일반전시관은 한국의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6개의 길로 구분돼 있다. 첫째 꽃길은 숲·농촌·어촌등 한국의 옛 자연풍경및 생활상,둘째 지름길은 해방이후,특히 60년대 이후에 이룬 급격한 산업발전과 과학기술,셋째 비단길은 동서문물의 교류와 한민족의 독창적 과학기술및 산업발전과정,넷째 벼랑길은 산업화시대의 공해·자연훼손·천연자원낭비 등 부정적 결과,다섯째 이음길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사색의 장,마지막 여섯째는 새길(무지개길)로 자연과학과 인간의 조화된 밝은 미래상들을 각각 전시해 한민족의 긍지와 도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곳에 설치된 대형영상시스템인 영상관의 규모는 좌석3백14석. 자연과 역경을 극복하고 산업도약및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번영된 모습,정보화와 첨단과학시대에 대비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인의 의지와 과학예지가 20분간 반복 상영된다. 또 6백70평의 옥외과학광장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과학원리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휴식공간을 갖췄다. 정부관 동쪽 광장에 우뚝솟은 한빛탑은 대전엑스포93의 상징탑. 높이 93m의 한빛탑에 들어서면 오색연기와 은은한 음향이 황홀한 경지로 이끌며 세계의 각종 탑의 모형과 그리고 과학사등을 소개하는 전시물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국화약그룹이 건축한 이 탑은 전시실외에 1·2전망대와 편의시설이 있으며 야간에는 특수조명과 특수장비로 효과를 내기도 한다. 동북쪽 산기슭에 자리한 시도관은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14개 시도가 참여해 화합과 번영을 통한 국민의 일체감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연출했다. ○로봇탈춤쇼 공연도 시도관에는 지역특성에 맞는 내용을 주제로 개성있게 꾸며 졌으며 영상관에서는 북청사자놀음·로봇탈춤쇼·영화상영·감사와 환송의 장등이 관람객등의 흥을 돋우게 된다. 한편 전통공예와 현대과학의 만남이란 주제로 전통공예실의 실기를 보여준다. 주거환경관은 새의 보금자리인 둥지와 알을 이미지화한 전시관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공생하는 이상적인 주거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동문 북쪽에 자리잡은 이곳은 우리나라 주거환경의역사적 전통과 근대화 이후의 변형된 모습을 비교해 미래 주거문화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영상관은 로봇이 등장하는 특수 무대장치로 2050년의 주거환경과 생활모습을 그리고 있다. 동문을 들어서 북쪽으로 자리잡은 동전모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정원에 조성된 둥근 코인의 조형물이 장관을 이루는 이곳이 조폐문화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로봇지휘자의 지휘로 세계24개국 민속인형들이 합창과 춤으로 돈잔치를 벌여 관람객들의 배꼽을 잡게 한다. 또 영상관에서는 조폐의 기술과 예술의 어드벤처스토리가 3차원의 특수입체영상으로 상영돼 눈요기를 제공한다. 롯데그룹이 설치한 롯데환타지월드는 돛단배를 연출한 화려하고 환상적인 시설이다. 이 건물의 주제는 「물,즐거움,활력,그리고 새로운생활」. 이에따라 물로써 이미지를 부각시켜 꾸며졌다. 입구에는 작은 호수로 둘러싸인 특설무대가 설치돼 축하쇼와 각종 이벤트공연이 벌어진다. 장내를 들어서면 환상의 워터쇼가 관객들을 공상의 세계로 이끈다. 유리로 연출된 현란한 물결과빛이 어우러져 소용돌이를 치고 있다. 장관의 물기둥,일렁이는 파도속에 꽃게와 보석의 동산,황혼의 낭만적인 바다등 변화무쌍한 물의 조화에 넋을 잃게 한다. 영구시설인 평화우정관과 임시시설인 1백2개의 모듈전시관으로 구성된 국제관에는 세계 1백12개국과 28개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다. 「보다나은 인류의 미래를 향한 지구촌의 의지와 노력」을 제시한 국제관은 A,B,C관으로 나눠져 있다. A관은 국제전시구역의 중앙에 위치해 주위에는 순환도로를 설치하고 중앙에 광장을 마련,관람객들의 집합과 분산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했고 휴식공간과 편의시설을 갖춰 놓았다. B관은 UN및 산하기구·아프리카개발은행·국제올림픽위·유럽공동체등 28개 국제기구가 사용하고 외곽은 세계각국의 특색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C관은 아프리카·남태평양·카리브연안국가및 중동·중남미 일부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된다. ○컴퓨터 속으로 여행 대전엑스포의 보고 배울거리는 역시 첨단과학과 예술. 한국IBM관과 한국후지쓰관,그리고 번영관과 도약관은관람객들에게 이같은 욕구를 아낌없이 만족시켜 줄 것이다. 「생각하는 즐거움」을 주제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를 상징하는 정방형격자와 부드러운 곡선으로 건조된 한국IBM관은 컴퓨터의 발달사와 원리를 전시하고 2인당 1대씩의 PC를 대응시켜 쌍방형 극장에서 컴퓨터내부를 여행하는 한편 퀴즈를 풀면서 컴퓨터와 친숙해지게 될 것이다. 특히 이과정에서 1∼2명이 가장 현실감있는 체험장치의 시승자로 뽑혀 환상의 첨단과학세계를 체험 한다는 것. 한국후지쓰관은 미래사회를 향한 첨단과학기술의 전시를 통해 인류의 미래상을 그려보는 인류과학관. 인간과 곰을 컴퓨터로 조화시켜 태양빛에 의한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의 근육운동을 거친 모든 생명체의 약동과정을 컴퓨터 그래픽 입체영상으로 보여주는 최첨단 과학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 번영관은 50여개 중소기업이 참여해 각종 첨단제품과 제조과정,경제적의의를 소개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국제전시구역의 마지막으로 데이콤·동아오츠카·마마전기·금강제화·유한킴벌리·유호산업등 중견기업 6개사가 마련한 도약관은 인간의 이미지네이션을 형상화해서 유니크하고 충격적인 형태로 관람의욕을 불러 일으켜주게 될 것이다.
  • 제12회 대한민국사진전/대상에 홍창일작 「섭리」

    ◎우수상 신근호씨의 흑백작품 「선골」/서울 전시뒤 인천·대구·대전 순회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 이명복)가 주관하는 제12회 대한민국사진전람회에서 영예의 대상은 컬러사진 「섭리」를 출품한 홍창일씨(53·강남구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21동805호)에게 돌아갔다. 우수상은 흑백사진 「선골」을 출품한 신근호씨(여수)가 차지했다. 27일 심사결과가 발표된 금년도 대한민국사진전에는 역대 사진전 가운데 가장 많은 1천2점(흑백 3백15점,컬러 6백87점)이 응모돼 이가운데 대상 1점,우수상 1점,특선 10점,입선 1백24점등 총1백36점이 입상및 입선작으로 뽑혔다. 심사위원장 박규서씨는 『지난해까지는 인물과 종교사진이 대종을 이루었으나 올해는 소재가 다양해진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입상 및 입선작들은 30일부터 5월12일까지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전시된후 울산문화원(5·29∼6·3),인천시 문화회관(6·5∼9),제주문예회관전시실(6·15∼21),대구백화점전시실(7·20∼25),목포예총회관 전시실(6·24∼28),대전시민회관전시실(7·9∼13)에서 순회전시된다. ▷특선◁ 이준규 「여음」(진주),박용덕 「보리심」(마산),김기수 「덕유산의 아침」(서울),홍효숙 「불심」(경기),강명기 「야해의 환상」(김해),김도민 「내것 사세요」(군산),정원일 「황혼의 찬가」(서울),김종윤 「비경의 정」(서울),홍양원 「마지막 효」(울산),공덕화 「번뇌」(거창)
  • 노인일수록 멋있게…/이색패션쇼

    ◎「사랑의 전화」개최 노인 패션쇼 대성황/60∼70대 할아버지·할머니 모델로 출연/최신 유행곡에 맞춰 기상천외 쇼 연출/“언지 잘해” 「동생 할머니」들 응원에 웃음꽃 활짝 「노인일수록 아름답게…」 건강하고 늘씬한 젊은아가씨들이 모델로 나와 화려한 눈요기를 제공하게 마련인 패션쇼에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델로 출연,한바탕 흥겨운 이색잔치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랑의 전화」(회장 심철호)건물 지하소강당에서 개최된 「노인패션쇼」가 바로 그것. 「사랑의 전화」측이 지난 90년에 이어 두번째로 개최,코미디언 방일수씨의 사회로 시종 흥겨운 분위기속에 진행된 이날 행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관객 3백여명이 강당을 빽빽이 채우고 복도에 까지 늘어서는 성황을 이루었다. 하얀 머리카락을 봉긋이 올리고 얼굴도 곱게 화장한 할머니들이 팝송「예스터데이」와 「황혼녘」,「낭랑18세」「노란손수건」 「철이와 미애」등 최신 유행곡에 맞추어 사뿐히 걷기도 하고 랩·포크댄스등을 추면서 기상천외의패션쇼를 연출했다.이는 관중석에서 「언니 잘해」하는 「동생 할머니」들의 응원,웃음소리와 함께 아마추어 패션쇼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 이날 할머니모델들이 선보인 의상은 「사랑의 전화」측이 서울시 거주노인 7백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인 의생활 욕구조사」결과를 토대로 노인들이 가장 선호한 것으로 나타난 파랑·녹색의 푸른색과 빨강 주황등 붉은색계통의 색상을 주로 한것들로 허리선을 고무줄이나 박스스타일로 처리해 몸에 편하게 디자인한 옷. 남대문의류상가「커먼플라자」측이 직접 제작,협찬했다고 한다. 또 행사에는 건국대 의상학과 이인자교수가 모델들의 옷을 일일이 평가하고 색상에 대한 자문을 해주기도 해 참석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출연한 모델들은 최고령의 이옥진할머니(73·성북구 하월곡동)를 비롯,10명이 대부분 70세의 고령자들로 서울 노인대학에 다니거나 「사랑의 전화」를 방문한 노인들 가운데 선발된 이들. 이날 최고의 인기모델은 올해 72세의 변금순 할머니와 유일한 청일점 한상엽할아버지(69).사회자로부터「미스변」으로 불린 변할머니는 처음부터 보디랭귀지로 서투른 걸음걸이를 대신했고 한할아버지는 넥타이와 베레모를 세트로 착용,「멋쟁이 할아버지」로 불리며 할머니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무릎관절을 치료하러 왔다가 모델로 출여하게 됐다는 이옥진 할머니는 『무대에 서거나 사람들앞에서 춤을 추는 일은 난생 처음이지만 같은 노인들끼리여서인지 조금도 쑥스럽지 않다』며 『지난 4∼5일 연습하는 동안 무릎통증이 없어질 정도로 즐겁다』고 말했다. 밝은 꽃무늬의 실크원피스를 입고 가장 얌전하게 무대를 걸어다닌 강경희할머니(67·성북구 정릉동)는『이처럼 밝은 색의 옷이 나에게 맞는줄 알았다면 진작 이렇게 입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젠 노인들의 수도 많아지는 만큼 노인들의 옷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좀더 젊어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는 이런 행사가 자주 마련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해방이후 대표적연극 다시 본다

    ◎「…이중생」/「산불」/「국물…」/「초분」/「새들도…」/연우무대,「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시리즈2」 공연/연극·학계 중진,시대별로 1편씩 선정/윤광진·김철리·기국서씨 등이 연출 극단 연우무대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한국 현대 연극의 재발견2­해방이후의 문제작 시리즈」가 4월부터 8월까지 넉달동안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올해로 두번째인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무대에는 연극계와 학계의 중진들의 추천을 받아 최종 선정된 각 시대를 대표할만한 작품 5편이 공연된다.이들은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각하」(1940년대·4월15∼5월9일),차범석의 「산불」(1950년대·5월13일∼6월6일),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1960년대·6월10일∼7월4일),오태석의 「초분」(1970년대·7월8일∼8월1일),황지우시·주인석 희곡「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0년대·8월5일∼29일)등이다. 지난 91년의 첫번째 무대는 1912년부터 45년사이 작품들 가운데 소개되지 않았던 조일제의 「병자삼인」,유진오의 「박첨지」,함세덕의 「동승」,송영의 「황혼」등 단막극 4편을 모아 마련한바 있다.이 공연에서는 그동안 우리 희곡사에 묻혀있던 함세덕의 「동승」이라는 보고를 발견 소개함으로써 크게 주목받았다.따라서 이번 두번째 무대에도 연극계 안팎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다. 1949년 발표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전통적인 희극적 정서로 현실을 비판한 사회극.차범석의 초기 대표작인 「산불」은 6·25전쟁을 시대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리얼리즘 희곡의 모범으로 꼽힌다.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는 너무 평범해 취직도 결혼도 못한 청년의 출세행로를 통해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의 비리와 문명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태석의 「초분」은 70년대 발표당시 실험성으로 연극계에 충격을 던진 작품으로 전통적 「굿」형식을 현대적 무대에 접목시킨 오태석연극의 원형이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황지우의 동명시집에 실린 시들을 주인석이 희곡화한 것으로 80년대의 암흑기가 잉태한 연극적 산물이다. 이번 무대는 연우출신 연출가들만이 참여했던 첫해때와는 달리 연우와 직접적인 관계여부를 떠나 윤광진 김철리 박원근 기국서 김광림등 참신한 감각과 활동력이 있는 40세 전후의 연출가 5명을 참여시키고 있다.이로써 「한국현대연극의 재발견」은 더 이상 단순한 연우무대의 행사가 아니라 범연극계의 행사로 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또 작품당 공연기간을 배이상 늘리고 출연자들도 공개오디션을 통해 뽑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이번무대가 우리연극사를 재조명하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내실을 기하고 있다. 연우무대는 한국 피자헛주식회사(사장 성신제)가 문예진흥원을 통해 후원금 5천만원을 지정 기탁해옴에 따라 예산상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덜게 됐다.더군다나 한국 피자헛측이 예산지원을 올해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나간다는 뜻을 분명히 해옴에 따라 연우무대는 보다 유리한 여건속에서 이 시리즈를 지속해나갈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4월15일부터 시작되는 첫 작품 「살아있는 이중생각하」공연에 앞서 연우무대측은 7일쯤 「2천년대를 향한 한국연극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심포지엄」도 개최할 계획이어서 이론적인 고찰도 겸하게 된다. 지난해 정한룡 극단대표와 김광림 예술감독 중심으로 새진영을 갖추고 연우무대의 거듭나기를 모색해온 이래 첫행사인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2」는 「연우무대의 재도약」선언의 가능성을 가름해보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이신우/이영희/세계패션 정상무대 “노크”

    ◎불 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 컬렉션」에 초청받아/이신우/우리 생활미 살린 90여점 선봬/이영희/현대의상에 한복이미지 접목 세계패션의 정상무대인 프랑스 파리에 우리나라 디자이너 두사람이 진출하게 됐다.「오리지날 리」디자이너 이신우씨에 이어 한복연구가 이영희씨가 오는 3월 열리는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추동컬렉션에 초청된 것.이탈리아 밀라노와 함께 세계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의 프레타포르테에 우리 디자이너가 참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지난 90년과 91년 4차례 도쿄컬렉션에 참가한바 있는 이신우씨는 국제시장에서의 감각을 익혔고 해외매스컴의 인정도 받고 있어 이번 파리진출은 이신우씨 개인은 물론,한국기성복의 세계시장진출의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점에서 미리부터 패션계의 이목을 모아온 상태. 또한 이영희씨는 지난 76년이래 염색기법등을 도입,전통한복외에 생활한복등을 창작해 88올림픽등의 각종 문화행사등에 50여차례이상 참가하면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한복전문디자이너다. 패션전문가들은 이영희씨가 국내에서 현대의상의 작품및 시장성에 대한 시험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세계의 기라성같은 기성복전문디자이너들이 모이는 파리 프레타포르테컬렉션에 참가,어떤 반향을 불러 일으킬지 미지수라는 우려와 함께 프랑스의 지아니 베르사체가 중국옷의 선을 이용,성공했듯이 한복의 독창적 선에서 나온 이씨의 작품도 인정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기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이영희씨가 오는 3월11일 작품전을 통해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제시할 작품은 한복의 선과 이미지를 살린 현대의상 70점.두껍게 가마니처럼 짠 실크와 울을 소재로 관복과 도복의 모습을 딴 코트를 비롯,색동저고리의 색배합원리를 현대색상으로 응용한 원피스등 다양하다.비녀를 꽂아놓은듯한 단추와 아얌을 연상시키는 모자및 삼국시대 왕비의 귀걸이등 한복에서 응용한 액세서리도 제시한다.이씨는 『한국의상의 선과 색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되 민속복이미지를 배제한 현대의상을 만들었다』면서 이번 쇼의 피날레 의상으로 우리의 순수민속의상 한복 20여벌도 자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3월12일 하오1시30분 파리시 가브리엘3번거리의 에스파스 가르뎅에서 열리는 이신우씨의 컬렉션에 제시될 작품은 「하나를 위한 둘」이라는 주제의 남성복 15벌을 포함한 총90여점. 옛날 할머니의 스웨터·통치마,할아버지의 바지저고리 목도리등 우리주위에서 지나치기 쉬운,그러나 우리만의 것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이미지다.양면용이나 누빔처리된 실크,전사나염·인조세무와 라이크라등 첨단소재를 이용,경제적이고 실용적으로 연출할수 있도록 만들어진 옷들이 선보인다.즉 하나의 옷으로 뒤집거나 겹쳐 입을수 있으며 치마자락을 돌려 여며 입을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들이다. 작품에 응용된 색상 포인트는 붉은 오렌지에서 포도주색및 어두운 갈색으로 연결하거나 빨강·포도주색,파랑·바다색을 조합해 「동트는 새벽하늘및 해지는 황혼녘의 하늘과 대지의 빛」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 서양화가 도문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3)

    ◎신선한 감각으로 원색의 미 묘사/변화에의 열정으로 새 조형방법창출 온힘/「정적질서」 보다 동적 유동세계 표출 돋보여/부친 도상봉화백 그늘벗어나 독자적 예술세계 추구 그림속의 꽃들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꽃바다를 이룬다.캔바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얼마든지 펼쳐진 채 꽃들은 꽃이 파리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뜨릴 듯 꽃마다 싱싱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화가 도문희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원근법과 사실적기법을 적절하게 원용하면서 큐비즘과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킨 새로운 조형방법에 능란하게 반응하고 있다」는게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의 말이다. 「언제나 신선한 속도감과 힘을 머금고 있는 그의 화면은 정적인 질서의 세계가 아닌 동적인 유동의 세계를 절제와 생략으로 탐구하면서 격동속에서 미의 원형을 찾아내고 있다고. 도문희씨는 과연 몸속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 넘치는 힘의 화가다. 그의 작품에서는 물론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잠시도 한군데 오래 머물지 않는다.서울에 있는가하면 뉴욕에 샌프란시스코에 콜로라도나 산타모니카 라구나 비치에서 또는 괌도나 하와이의 빅아일랜드에서 화사하고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지간에 그가 머물고 있는 곳에는 음악이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경쾌하고 격렬한 사색적인 붓놀림이 그치지 않는다.자신의 예술의지와 방법을 위해 그는 자극적인 체험을 얻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그 빛은 물체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 르노아르의 방법처럼 도문희는 꽃이면 꽃이라는 대상을 공간이동시키 듯이 생명감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화면속에 옮겨놓고 있다.그래서 그의 꽃은 어느때는 무복을 입고 회전동작을 하는 발레리너처럼 생기발랄한 율동적터치로 음악에서의 비오렌토와 알레그리시모의 리듬감을 팔팔하게 되살리기도 한다. ○생명감 화면에 담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상생활에서의 그는 될수록 그림과 연관시킨 일들 속에 참여하고 있다.그래서 공식적이거나 형식적인 행사자리보다연극이나 영화 한편 아르튀르 랭보의 「갈증의 희극」을 읽는 것이 그림에 대한 감동을 유발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없는 도문희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클래식뮤직에서 디스코나 록뮤직,흘러간 닐다이아몬드나 젤리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신들린 감흥에 물들여지기를 원한다. 아니면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한 황혼,달빛아래 사슴과 노루들이 뛰어노는 멕시코국경,크라이드강변의 성곽과 끝없이 불어오는 북풍 속에서 어디선가 「히드크리프!」를 부르는 캐서린의 목소리… 경탄과 감탄의 탄성이 절로 질러지는 눈부신 풍광을 찾아 또하나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초기에는 동양화에서의 삼원법과 같은 느낌으로 색채와 형태를 극대화시키면서 인물이나 꽃의 표현에서 몰골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극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를 승화시켜 감각화된 화면효과를 과시해 보이고 있다. 이런 심적충만을 위해 그는 시간과 정열을 아낌없이 투자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캔버스와의 오랜 대결끝에 빛이 공간속에 흐르듯 몸속에 정제돼 있던 예술에너지를 이끌어 조형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도문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에서 자랐다.나혜석의 불우하고 외로웠던 말년의 생애를 뺀다면 그의 화려함과 정열과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창조의식은 초기의 나혜석을 연상시키는 구석을 많이 지니고 있다. ○초기의 나혜석 연상 그의 부친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선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바로 도상봉화백이다. 부친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으나 화가로서의 열망·야망이 꿈틀거리는 순간 그는 그림으로 향하는 두껍고 높은 벽을 스스로 힘차게 꿰뚫었다.물론 한사람의 여성으로서의 행복이 아닌 화가로서의 대성을 목표로 정하자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는데 그는 주저가 없었던 것같다.고통없는 성취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상봉화백의 그늘은 예상외로 넓고 컸다.동경미술학교 출신인 부친은 국전창설멤버에다 대한미협위원장 한국미협이사장 예총회장 문총최고위원 예술문화윤리위원 위원장 등등 화단의 중책을 두루거친 거봉으로 도문희는 언제나 「도상봉씨의 딸」로 불리워야했다.그는 부친의 이 후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화격도 특성도 다른 작품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역시 쉽지 않았다. 혜화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발레리너를 꿈꾸면서 송범무용연구소에 넘나들다가 엄격한 부친의 반대에 부딪쳐 경기여고 때 그림을 시작했다.대학에 들어가기전에는 부친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김인승씨에게 그림을 사사,「화가지망」을 굳게 결심하고 정확한 데생,탄탄한 기본실력을 닦아 나갔다. 그때는 동아음악궁전이며 종로의 쎄시봉·르네상스음악실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 했고 클래식판 수집광에다 블라맹크와 칸딘스키 루오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본래부터 화려하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그는 무슨일에든 쉽게 좌절하거나 좌절해도 실망하지않았다.결과가 안좋을땐 「좋은 경험」으로 돌릴만큼 낙천적인 편이다. 그에게 그림그리기를 권유한 부친은 막상 그에게 붓한번 바로잡아준적이 없었다.오히려 대학재학중 국전에 출품하기위해 열심히 그려논 그림위에다 가위표를 해논적이 있을 뿐이다.도문희는 국전에 출품하고 싶었다.자신의 작가적 재능과 자질을 인정받을수 있는 미술관문이었으나 부친이 심사위원·운영위원·고문등으로 연루되어있어 작품을 자유롭게 낼수없는것이 불편했다.3학년과 4학년때 부친몰래 가명으로 출품해서 연2회 입선했을때도 주변에서 「부친의 후광」으로 아는 것이 억울해서 아예 국전출품은 포기하고 말았다. 부친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어릴때부터 아틀리에가 있는 분위기에서 아버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는 것뿐.오히려 동경여자미술학교 출신인 어머니 나상윤씨가 『나는 아버지때문에 그림을 포기했지만 너만이라도 나대신 열심히 하라』는 배려의 힘이 더 컸다고 할수있다. ○예술적 분이기서 성장 대학졸업후 대한미협과 이대출신그룹의 녹미회를 중심으로 그룹활동을 펼치면서 환상과 기억속의 사물들을 거칠고 대담한 야수파적인 축제분위기로 이끌어 화단의 주목을 한데 모았다. 그러나 기왕에 주어진 화가로서의 과정을 답습하는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차원에서 69년 첫번째 개인전을 연후 그는 미련없이 모든것을 떨쳐버리고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과 독일을 거쳐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여 그는 북구의 바다와 하늘의 변화표현에 현혹된 시기를 보냈다. 남청·담청·군청·감청·선록 보라와 옥색에 이르기까지 서로다른 수백가지 청색으로 출렁이는 바다와 천사의 날개 같은 구름의 흐름에 홀려 그는 마치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연상케하는 청색조 시기를 이곳에서 거쳤다. 「시간따라 바람따라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단 한장면도 같은 색조,같은 표정을 보인적이 없었다」는 것과 「줄이엣의 푸른얼굴,로미오의 푸른눈매」머리카락과 머리에 장식한 액세사리까지도 굵고 짙은 푸른 선묘로 보여준것이 그시기의 작품들이다. 터질듯한 원색이 분방하게 펼쳐진 그 아름다움이 독특하여 독일의 벰버그 스코틀랜드 그린옥등 지방신문들은 「푸른 잎에 매달린 빗망울처럼 투명한 기쁨이 깃든 경관등으로 크게 취급한바 있다. 그의 부친이 딸의 그림을 칭찬한것은 77년 조선화랑 초대전때다. 그때 전시오프닝에 왔던 여러 화가 평론가들이 도문희 그림의 「축제분위기」를 호평하자 단지 한마디 『마치 이 세상이 천국임을 아는것같다』고 했었다.같은해 도상봉씨는 타계했고 도문희로서는 그때 그 말이 부친에게 들은 유일한 「촌평」이 된셈이다.서울에서는 지난 30년동안 끊임없는 우정의 교분을 갖고있던 선화랑의 김창실씨(화랑협이사장)와 진화랑의 유진씨의 초대전에 응하고 있다. 누구보다 도문희의 신선한 감각과 번뜩이는 젊음의 화면을 아끼는 김창실씨는 도문희의 「장미를 곧잘 「살아있는 보석」에 비유하고 「하탄과 하화가없는 그러나 화치의 극치」의 작가라고 말한다.화단의 대선배인 천경자씨는 「그의 식을줄 모르는 정열」도 정열이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얼굴을 하고있는 화가」라는데 호감을 갖기도한다. 그는 여전히 무엇에 구애되지도 소속되지도 않는다.자신이 한일을 후회하지않는다.서울에 오면 이제는 다자란 딸과 아들과 친구처럼 어울려다닌다. 그는 화려한 치장을 즐기고 여러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지만 의외로 보수적이어서 안하는것 가리는것 투성이다.자유분망과는 상관없이 「맥주 한모금」등에는 남의 눈치를 보는 면이 있다. 뉴욕에서는 소호를 중심으로 일릭 드라곤루드 그레고리비치 조각가 스티븐 래등과 작품활동을 펼치고 그중 일릭 드라곤은 오는 5월 조선화랑 초대전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그는 지금 비로소 「화가의 길」을 걷게해준 부친께 감사하고 있다. 언제나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어보이는 그에게 누군가 『무엇이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을때 그는 오히려 『슬픔과 아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축복받은듯 활짝 핀 그의 꽃들은 아마도 남이 모를 아픔과 시련을 딛고 피어난 것이기에 보는이에게 보는것만으로도 진한 감동의 빛을 전달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이 빛의 힘은 조금도 퇴색하는 기색없이 더욱 영롱하고 선명하게 그가 좋아하는 음악과 바람의 흐름에 실려 그의 화면속에서 기쁨의 빛으로 용해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38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출생.서양화가 도상봉씨(77년 타계)와나상윤여사(87)의 1남 2녀중 막내 ▲57년 경기녀고졸업 ▲59·60년 국전입선 ▲61년 이화녀대 미대 서양화과졸업(김인승·이준·유경채·심형구사사) ▲80년 뉴욕 그래픽 버딘스 아카데미 ▲69∼72년 유럽체류(영국·옥일·스코틀랜드) 그린옥 아트갤러리·스코틀랜드 글래스코우 아트랠러리·렌프레쉬어 아트갤러리 등 개인전시 ▲73년 서울개인전(미술회관) ▲74년 아시아 련대작가전(일본 도쿄) ▲76년 세계여류미술전(인도네시아) ▲77년 서울 조선호텔 갤러리 초대개인전 ▲79년 진화랑초대 제4회 서울개인전 ▲80∼81년 미국체류(뉴욕맨해턴·버지니아 우드빌리지) 80년 비스비(Bisbe)전참가 ▲81∼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벰버그(Bemberg)풀다(Fulda)빌트프릭켄(Wildfricken)개인전 ▲87년 서울선화랑 초대「장미」개인전 ▲89년 〃 진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선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정화랑〃 〃 ▲92년 MBC후원 부산호텔 미술관·아천미술관초대전 ▲93년1월 LA 앤드루 셔(Andrew Shire)갤러리 초대전 ▲한국미협·녹미회 회원 ▲작업실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국립현대미술관 간 한국서양화대관(작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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