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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검투사/박홍기 논설위원

    로마 제국은 피의 향연을 즐겼다. 검투사들의 목숨을 건 싸움에 로마인들은 환호했다. 가장 자극적인 오락거리였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엔 검투사들의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검투사, 즉 글래디에이터(gladiator)는 검투 경기장에서 검을 들고 싸우는 사람이다. 라틴어로 검을 의미하는 글라디우스(gladius)에서 나왔다. 로마 보병이 쓰던 검의 총칭이다. 검 길이는 70~75㎝ 정도다. 로마군은 잘 짜여진 규칙에 따라 전투를 벌인 만큼 긴 검보다 짧은 검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 당시 가장 큰 노예 반란을 다룬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년)와 제국의 황혼기를 그린 글래디에이터(2000년)는 검투사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했지만 자유라는 씨앗을 틔웠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군 출신 검투사 막시무스를 통해 로마의 쇠퇴를 보여줬다. 검투사는 대부분 자유를 빼앗긴 전쟁포로나 노예, 범죄자 출신들이다. 생명도, 가족도, 보수도 아무런 보장을 받을 수 없었다. “기꺼이 채찍에 맞고, 불에 태워지고, 칼에 찔려 죽겠다.”라는 맹세만 있었다. 결투에서 진 검투사의 운명은 군중이 쥐고 있었다. 황제가 관중의 뜻에 따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 자비를 주고, 아래로 내리면 죽음을 당해야 했다. 살기 위해 싸우고 이겨야 했던 것이다. 기원전 105년 콜로세움 완공을 기념하는 100일간의 축제에서는 검투사 2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투시합은 404년쯤 황제의 칙령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검투사로 불린다. 승부사 근성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협상 스타일 때문이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울 협상 때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가 “전생에 어떤 일을 했기에 통상협상처럼 힘든 걸 해야 하나.”라고 하자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 본부장이 “우리는 전생에 검투사였다.”라고 말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김 본부장이 그제 국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한·유럽연합(EU) FTA 협정문 한글본에서 무려 207건의 오류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책임을 모면하거나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사과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협정문 오류는 세계적 망신”이라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 “대통령과 상의하겠다.”고 했다. 결국 검투사 김 본부장의 존망은 인사권자의 엄지손가락에 달린 셈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송재호·윤소정 “갈 길 머잖은 노년의 사랑 더 순수”

    송재호·윤소정 “갈 길 머잖은 노년의 사랑 더 순수”

    요즘 극장가에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사’)이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스크린을 장악하더니 마침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1일 현재 누적관객은 103만여명. 미국 아카데미 수상작과 블록버스터 공세 속에서도 주말 박스오피스 4위를 지키고 있다. 뒷심의 원동력은 입소문. ‘돌풍의 주역’인 송재호(72)와 윤소정(67)을 만나 ‘그대사 신드롬’과 ‘노년의 사랑’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눠 봤다. ●그레이 로맨스 할리우드 공세 막아 →‘그대사’는 김만석(이순재·76), 송이뿐(윤소정), 장군봉(송재호), 조순이(김수미·60) 네명의 황혼 순애보를 그린 영화다. 주연배우 네명의 평균 나이가 68.8세다. 젊은 톱스타나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같은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지만 원작자인 강풀의 만화 가운데 영화로 성공한 작품이 별로 없어 크게 흥행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강풀 징크스’를 깨고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윤소정(이하 윤) 일단 영화가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다. 솔직히 요즘 너무 난폭하고, 자극적이고, 악만 남은 영화가 많지 않았나. ‘그대사’는 보고 나면 여운이 남고 좋은 기분을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영화다. 험한 영화를 보면 꿈자리가 사나운데, ‘그대사’는 꿈까지 행복하게 꾸게 만든다. 송재호(이하 송) ‘그대사’의 ‘까도옹’(까칠하고 도도한 할아버지) 순재 형님이 ‘만추’의 현빈을 눌렀다는 얘기를 듣고 희망을 가졌다.(웃음) 생각만큼 홍보를 많이 못해 아쉬웠는데 관객들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후폭풍을 타면 롱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출연한 영화 ‘해운대’, ‘살인의 추억’ 등의 관객수를 모두 맞혔는데 ‘그대사’는 650만명을 예상했다. →우유를 배달하는 까칠한 할아버지 만석과 폐품을 수집하지만 따뜻한 미소가 아름다운 할머니 이뿐. 치매에 걸렸어도 남편의 사랑만은 잊지 않는 할머니 순이와 그런 아내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로맨티스트’ 군봉. 이 두 커플이 보여주는 노년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사랑처럼 감각적이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더 큰 설렘과 울림을 준다. 윤 사랑이란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이 찾아와 설레고 아무 조건 없이 서로 좋아하는 것인데, 요즘엔 사랑이라는 포장에 계산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 거품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들이 사랑하면서 그런 조건을 따지겠나. 그러니까 더욱 순수하게 느껴지는 거다. 송 노년의 사랑은 생김새나 재력, 사회적 지위를 다 떠나서 인간 본성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그게 진짜 사랑인 거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의 속박을 받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강요하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 →오롯이 실버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상업영화는 ‘그대사’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송 맞다. 그동안 노인들이 영화 주변부에 놓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주인공 삼은 영화는 처음인 듯싶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가 더 잘됐으면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의 사랑은 분명 젊은이들과는 다르다. 노인들의 사랑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가슴 아프고 멋지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윤 영화에 만석 할아버지가 이뿐 할머니의 리어카에 우유팩을 얹어주고 신나하는 장면이 나온다. 별 장면 아닌데 찍으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장면이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노년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군봉과 순이 커플이 보여주는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랑, 만석과 이뿐 커플의 죽음 앞에서 절제하는 사랑. 이 두 사랑은 관객에게 진정한 사랑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데. 송 사랑은 서로에 대한 희생과 봉사라고 생각한다. 배우자는 인생의 반려자라고 하지 않나. 군봉의 입장에서는 전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자 한 거다. 윤 늘그막에 어렵게 찾아온 사랑을 두고 뒷걸음질치는 이뿐을 답답하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젊은 애들처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꼭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론 절제하고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도 필요하다. 이뿐은 평생 소외되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아 온 이다. 만석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면서도 발에 안 맞는 꽃신처럼 그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결혼생활 40~50년… 현실 속 사랑은? →실제 삶에서 두분의 사랑은. 송 아내가 첫사랑이다. 결혼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군봉의 사랑에 더 공감한 까닭도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집사람이 젊었을 때 고생한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해서 지금도 토크쇼에 일절 나가지 않는다. 배우 생활 하면서 본의 아니게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50년째 누구보다 견고하고 튼튼한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윤 지난달 28일이 결혼 43주년 기념일이었다(윤소정의 남편은 배우 오현경이다). 그런데 그런 날만 되면 꼭 싸우게 되더라고.(웃음) 사랑은 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에 대한 약속이다. 이 나이 되면 신뢰와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대사’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는 사람이 많지만 영화는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연기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윤 남편(오현경)이 이 영화를 두번 봤는데, 실제 윤소정의 모습이 영화에 나온다고 하더라. (서구적인) 외모 때문에 번역극에 많이 출연했고, 그로 인해 카리스마가 많이 부각됐지만 실제 윤소정은 영화 속 이뿐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여자다. 집에서 바느질과 토속 음식을 즐기고, 사고도 아주 고지식하고.(웃음) 송 또래의 삶과 사랑이라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추창민 감독과는 처음 작업하는데, 영화의 맛을 아는 아주 똑똑한 ‘여우’다. 배우는 언제나 선택을 받는 직업이지만,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는 두 사람. 어쩌면 노년의 사랑이란 이들의 모습처럼 겸허한 삶의 자세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독서도우미 하면서 나이 잊었어요”

    “독서도우미 하면서 나이 잊었어요”

    “건강이 유지되는 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나이는 많아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어르신 독서도우미 중 최고령을 자랑하는 신현자(오른쪽·81) 할머니와 이만균(왼쪽·79) 할아버지는 새로운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아직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덕분이다. 젊은 시절 교사로 일하며 한평생 아이들과 보낸 신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어린이집의 보육도우미로 제3의 인생을 시작, 지난해부터 독서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같은 노인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신 할머니는 3년간의 외국 생활에서 배운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하니 다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아이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기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가 나이를 물어올 때가 가장 싫다.”며 “내 자신이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할머니와 단짝을 지어 독서도우미로 활동하는 이만균 할아버지 역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신문사에서 일한 뒤 문학에 입문,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에 관심이 많아 ‘일하는 노인연대’ 사무국장까지 맡았다. 황혼기 일하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는 “우리들과 같은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 젊은 선생들보다 새롭고, 포용력도 넓어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면서 “친손주같이 대할 때 느껴지는 교감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열린세상] 분별의 마음과 복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분별의 마음과 복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생물체 중 가장 뛰어난 분별력을 갖고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진다. 분별이란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이분법적이나 다분법적 방법에 따라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 상대적인 대상들을 비교시켜 그 우선순위에 어떤 것을 놓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변별해 가는 일련의 사고(思考)를 말한다. 이 분별은 반드시 자기가 갖고 있는 마음에 의하여 최선의 결심을 하고 선택이라는 결과를 내놓게 된다. 마음의 선택이 밖으로 표출되면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심의 결정으로 남게 되면 훗날 어떤 사안이 제기될 때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살아 가면서 좋든 싫든 항상 분별의 마음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쌓여진 행로는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우리의 모습이요, 삶의 질곡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분별의 결과, 마음의 선택이 잘못되어 고통과 어려움이 반복되는 경우 마음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상실감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어 더욱 더 실패한 선택에 자기 애착을 갖게 되고 몰입하게 된다. 이것이 마음 상처의 부산물인 집착이요, 우리가 말하는 한(恨)이다. 분별과 마음 그리고 집착은 근본적으로 뿌리가 같은 곳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별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독교는 창세기를 통해 사람은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부터 눈이 밝아지면서 분별력이 생겼고 이때부터 불행이 시작됐다면서, 사람의 분별력이 후천적으로 생긴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 불교에서는 사람은 본래부터 부처이고 태어날 때부터 깨달음의 근본을 가지고 왔으나 육신의 욕심으로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의 분별력은 선천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필자는 최근 과학계에서 분별력을 갖고 있는 ‘쿼크’를 찾으려고 엄청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쿼크’는 우주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로 지금까지 밝혀진 원소를 구성하는 핵보다 더 작은 단위라고 한다. 만일 이와 같이 ‘쿼크’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사람은 처음부터 분별력을 가진 ‘쿼크’에 의하여 창조된 우주의 주관자라는 것이 사실로 다가오게 된다. 아마도 우리 모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어딜 가나 온통 복지 이야기다. 복지에 대하여 분별을 말하자면, 사람의 삶의 질을 높여 사람답게 살아 보자는 말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유상이냐, 무상이냐로 구분되지만 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자는 당연히 무상을 원한다. 무상은 전적으로 나라가 부담해야 하고 그 비용은 곧 우리들이 물어야 할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금이 늘어난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세금을 늘리지 않고 나라가 부담한다면 나라의 살림살이는 누적적으로 빚이 늘어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애덤 스미스의 조세 전가론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이 빚은 훗날 후손들에게 복지라는 잔치 빚으로 물려주게 된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신혼부부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도록 장려금도 주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비와 점심을 무료로 할 것인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안정적인 삶을 찾아 줄 것인지, 장년층들의 정년을 대폭 늘려줌으로써 미래의 황혼을 준비할 기회를 줄 것인지, 퇴직했으나 아직도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50~60대를 위하여 직업학교를 만들고 재교육시킨 다음 취업시켜 마지막 삶의 보람을 만들어 줄 것인지, 육신이 늙고 병들어 죽고 싶은데도 죽지 못하고 질긴 삶을 이어가는 버려진 사람들을 나라가 마지막까지 먹여주고 치료해 줄 것인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이다. 그러나 나라에 돈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선택해서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기가 아니요, 나라의 장래가 연계되어 있는 문제인 만큼 우리 모두의 분별이라는 마음의 결심, 즉 선택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고 한(恨)이 없는 희망찬 미래의 우리나라가 될 것이다.
  • 절대 빈곤 속 폐지 줍는 노인들

    절대 빈곤 속 폐지 줍는 노인들

    출퇴근 길의 지하철 혹은 동네 주택가 등에서 최근 부쩍 눈에 많이 띄는 사람들이 있다. 폐지를 줍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폐품을 줍는 사람들은 누굴까? 그들 대부분은 70~80세 고령자들이다. 22일 밤 10시 방영되는 KBS 1TV 시사기획 KBS 10 ‘황혼의 빈곤, 폐지줍는 노인들’은 최근 우리 주위에 급증하고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을 심층 취재해 70~80대 고령의 노인들이 직면한 절대 빈곤의 문제를 파헤친다. 서울 관악구의 한 지하방에 살고 있는 74살 박모 할머니는 명절이나 날씨가 아주 나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폐지 줍는 일을 하고 있다. 10년째다. 하지만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 최근 들어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노인이 급증해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이다. 박 할머니가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아 받는 돈은 고작 7000원. 폐지는 1㎏에 150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그나마 7000원을 벌려면 50㎏에 가까운 폐지를 모아야 한다. 서울의 한 지역 정책연구소가 관악구의 폐지수거 노인 127명을 조사한 결과 80%가 70세 이상의 고령자였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폐품을 주워 한달에 버는 돈은 10만원 미만이 32%, 10만원에서 20만원이 36%로 가장 많았다. 4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자는 90%로 나타났다. 제도상 문제는 없는 걸까. 관악구의 폐지 수거 노인 수는 127명이다. 이 중 대다수가 최저 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에 속해 있다.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87%에 달한다.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초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들, 딸 등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 능력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양 능력 판단 기준, 재산의 소득 환산율 문제 등으로 절대 빈곤층에 속하지만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광범히 하게 존재하고 있다. 취재진은 폐지 수거 노인 개개인에 대한 심층 면접을 실시해 이들이 살아 온 인생 이야기도 들어본다.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한국 전쟁을 겪고 경제 고도 성장기를 지내 온 이들은 젊었을 때도 소작농이나 비정규직 등에 종사하며 가난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자녀들의 형편도 좋지 않아 부양을 받기가 쉽지 않은 빈곤의 대물림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노인들에게 노후 대책은 이룰 수 없는 꿈과도 같았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브레이브’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브레이브’

    사업차 떠난 아빠가 총을 맞고 죽는다. 인디언 구역으로 피신한 악당을 체포하는 데 아무도 나서지 않자, 열네살 소녀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가 직접 복수에 나서기로 한다. 악당을 잡으려면 연방 집행관이 필요하다는 말에 매티는 루스터 코그번(제프 브리지스)에게 접근한다. 악명 높은 인물이 적역이라고 생각해서다. 처세에 능한 어린 소녀와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카우보이의 만남은 시작부터 덜컹거린다. 동행 여부, 계약금 흥정 등 문제마다 충돌했으나 마침내 100달러에 계약을 맺고 코그번은 혼자 길을 떠난다. 그런데 동일한 범인을 쫓는 텍사스 레인저 라뷔프(맷 데이먼)가 여정에 끼어들고, 매티 또한 동행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찰스 포티스가 1968년 발표한 소설 ‘트루 그릿’(얼마 전 한국에서 번역·출판됐다.)이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동명 영화가 제작되기에 이른다. 한국 관객에겐 ‘진정한 용기’로 알려진 영화는 존 웨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즈음 미국에서 주인공 코그번의 인기는 대단해서 이후 원작과 상관없는 속편이 만들어졌다. TV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적도 있다. 2010년 코언 형제가 세대를 뛰어넘는 원작을 같은 제목으로 재작업했는데, 한국에서 ‘더 브레이브’라는 멍청한 제목으로 곧 소개될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벌어지는 사건은 당연히 유사하지만, 인물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두 영화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 ‘진정한 용기’를 연출한 헨리 해서웨이는 서부영화의 장인 가운데 한명이다. 웨스턴의 장인들은 미국 역사를 ‘서부의 신화’로 해석했으며, 그들은 물론 미국 관객들에게도 ‘진정한 용기’의 주연배우인 웨인은 신화 그 자체나 다름없다. 더욱이 정통 웨스턴의 황혼기에 제작된 영화는 웨인에게 바치는 헌사로 기능했다. 극 중 웨인은 늙고 뚱뚱하며 괴팍한 집행자로 분했으면서도 결코 신화적 지위를 잃지 않는다. 원작의 결말을 지운 대신 웨인의 이미지로 엔드 크레디트를 채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웨인의 무게에서 해방된 ‘더 브레이브’는 원작에 충실하며, 제프 브리지스는 코그번을 지저분하고 때때로 볼품없기까지 한 카우보이로 연기했다. 그는 돈에 연연하고 실수로 동료의 몸에다 총을 쏘며, 내내 술에 취해 있다. ‘진정한 용기’의 클라이맥스에서 4명의 악당과 겨루는 웨인의 코그번은 당당하고 멋있지만, ‘더 브레이브’의 같은 장면에서 브리지스의 코그번은 술김에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코그번의 마지막 나날을 언급하는 ‘더 브레이브’의 결말은 미국의 영화감독 로버트 올트먼(1925~2006)이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혹은 시팅불의 역사 수업’을 왜 만들었는지 되새긴다. 코언 형제가 오랜 미국의 신화에 맞서 꿈꾼 건 미국식 우화다. 죽어서 눈 아래 누운 남자의 아늑한 풍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전작 ‘시리어스 맨’의 프롤로그를 재현하며 재차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원작에 맞춰 로스의 1인칭 시점을 종종 구사하는 ‘더 브레이브’는 선과 악이 엉겨 붙은 황야에 던져진 소녀가 다양한 인물과 함께 벌이는 한바탕 모험을 통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담은 작품이다. 코언 형제는 교훈극이 여전히 아름다운 감동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24일 개봉. 영화평론가
  • [주말 하이라이트]

    ●시크릿 가든(SBS 토요일 오후 9시 50분) 걸어가는 라임(오른쪽)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주원(왼쪽)은 뒤돌아보며 자신에게 예쁘게 손을 흔들어 주는 라임의 모습을 본다. 기억을 잃은 21살의 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뛰어나가 라임을 잡고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라임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얼른 뛰어나왔어야지.’라고 말한 뒤, 미팅이 있으니 자신이 운전하게 차 키를 달라고 한다. ●학자의 고향(KBS1 일요일 오전 7시 20분)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대유학자로 쌍벽을 이루었다. 남명에게는 당시 유학자들과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었다. 평소 ‘성성자’라는 방울과 ‘경의검’이라는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선비인 그가 칼을 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오후 10시 25분) 화려한 카니발, 정열의 삼바, 그리고 열광적인 축구응원으로 유명한 나라.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나라 브라질이다. 130여개의 다양한 민족이 사는 나라답게 다양하고, 개성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브라질 사람들. 패션의 중심지인 봉헤치로 거리에서 브라질의 유행을 창조하는 한국인들을 만나 본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산림원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잭.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이면서 그에게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 두 번째 이야기. 1942년 필리핀 마닐라. 일본은 마닐라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필리핀을 격파할 계획을 세운다. 절체절명의 순간 필리핀 유격대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주말연속극 글로리아(MBC 토요일 오후 8시 40분) 본격적으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진진. 강석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진진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건강을 챙긴다. 한편 만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동아는 병원으로 달려가고, 만석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오후 11시 10분) 메모지로만 7년을 대화한 노부부가 있다. 결혼 생활 40년을 끝으로 황혼 이혼을 한 노부부를 만나 본다. 그리고 횡성의 한 시골 마을에 꽃상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날 갑자기 이용희씨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라진 짝은 어떤 존재로 와 닿는지 그녀의 망부가도 들어 본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10시 10분) 뉴질랜드 남섬 최대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는 해안선을 따라 수십여 개의 폭포가 있다. 협곡들과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장엄한 폭포, 울창한 원시림을 마주하는 순간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삶의 오아시스가 되어 주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떠나 본다.
  • [생명의 窓] 삶의 완성은 향기이다/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생명의 窓] 삶의 완성은 향기이다/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시골 절의 법회는 소박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소박하다는 생각은 해 보았어도 초라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인생의 황혼녘에 들어선 할머니들의 그 푸근한 인상 때문일 게다. 할머니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꼭 저만큼만 늙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주름질 대로 진 얼굴에 깊이 배어나오는 미소는 언제나 내 가슴에 따뜻함을 전한다. 정직함, 달관, 그리고 무욕의 그 표정이 미소로 그려지는 것이다. 삶을 아는 사람들은 인생에 그리 욕망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애착하던 모든 것으로부터의 달관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관계가 없다. 어쩌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사신 분들이 이 진리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생애가 정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받는 삶의 유일한 보상이기도 하다.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삶은 거짓으로 조작되어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삶의 이 진실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욕망에 길들여진 삶을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는 다른 말로 하면 걸사라는 뜻이다. 그들은 밥을 빌고 법을 건넨다. 밥을 빌 때 그들은 차례로 걸식을 한다. 어느 한 집이 맛있다고 하여 그 집에서만 탁발하지 않는다. 밥을 보시하는 복을 두루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이다. 그것은 마치 벌이 꿀을 구하는 것과도 같다. 벌은 꽃을 해치지 않고 꿀을 모은다. 꽃은 벌이 왔는지도 모른 채 꿀을 내준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계속 이동하며 꿀을 모으는 벌과 비구의 탁발은 닮았다. 벌과 비구의 공통점은 소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그 행보가 욕망을 떠나 있으므로 그 관계는 상생의 관계가 된다. 뺏고 빼앗기는 약탈의 관계는 소유욕의 산물이다. 이것은 얼마나 아픈 것인가. 그런데도 우린 여전히 그런 관계 속을 휘청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법회를 마치고 할머니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밥상엔 시금치가 올라와 있었다. 남해의 시금치는 유독 달다. 시금치를 먹고 나면 입에 단맛이 도는 것이 남해의 시금치이다. 시금치를 먹고 나서 비구니 스님이 시금치는 어떻게 날이 추울수록 더 단 맛이 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답을 얻었다. 시금치는 추위가 살갗을 파고들 때마다 춥지 않아야 한다는 욕망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단맛으로 피어날 수 있었다고. 그러고 보면 시금치의 단맛은 스스로 욕망을 비운 시금치의 향기인지도 모른다. 향기는 존재의 가장 완성된 모습이다. 그래서 꽃의 완성은 개화가 아니라 향기의 발산에 있다. 꽃은 피었으되 봉오리를 다물고 향기를 발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완의 모습일 뿐이다. 존재의 진정한 완성은 이렇게 그 형상의 한계를 떠나는 데 있다. 향기는 스스로를 버리고 즐겁게 전체가 되는 무욕의 행보인 것이다. 살아가다가 어느 향기 나는 삶의 모습 앞에서 우리가 행복하게 걸음을 멈추는 것도 그 향기를 스스로 닮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삶의 향기이다.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 욕망을 싸고 살았다면 그 인생에서는 악취가 날 것이다. 그러나 무욕의 한 생애를 살았다면 그에게는 향기가 날 것이다. 가슴을 적시는 향기나는 삶을 살다가 떠나는 것이 이 세상을 찾아온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다음 생에 누군가 우리들이 남기고 간 이 향기를 맡고 미소 짓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법회를 마치고 할머니들이 손을 흔든다. 그 미소가 좋다. 구김 없는 미소가 어떤 꽃보다도 예쁘다. 나는 할머니들의 미소에서 삶의 향기를 맡는다. 정직했다. 노력했다. 큰 욕심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은 작았다. 할머니들의 미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린 듯 수줍은 향기가 내 가슴을 잔잔하게 감싼다.
  • [프리미어리그] 박지성 “10골 쏜다”

    [프리미어리그] 박지성 “10골 쏜다”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이 14일 시즌 개인 최다인 6호골(리그 4호)을 터트렸다. 그것도 맨유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던 아스널과 경기에서 결승골. 이 한방으로 박지성은 최근 불거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 이적설을 잠재웠고, 아스널만 만나면 펄펄 나는 유쾌한 징크스(7경기 4골)를 이어갔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이 “최근 박지성이 보여준 기량은 환상적이다.”면서 “그가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동안 7경기에서 볼 수 없게 된 점은 실망스럽다.”고 서둘러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이적설 끝장내다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내년이면 축구선수 황혼기인 30대에 접어드는 박지성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매 경기 엄청난 활동력을 앞세운 플레이를 펼쳐왔기에 체력이 떨어지면 선수로서의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이적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박지성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했다. 구단과 불화를 빚은 웨인 루니, 부상을 입은 라이언 긱스와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공백으로 위태로운 팀을 묵묵히 이끌었다. 칼링컵에서는 후배들과 팀 승리를 만들어냈고, 리그에서는 멀티골(울버햄프턴전)까지 터트렸다. 맨유가 언제든지 리그 1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놨다. 그런데도 흘러나온 세비야 이적설. 이쯤 되면 분통을 터트릴 만도 했지만, 박지성은 또 골로 답했다.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리그 17라운드 아스널전에 선발로 나온 박지성은 더 이상 체력으로 승부하는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루니나 루이스 나니처럼 화려한 플레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승골을 넣었음에도 영국 언론의 평점은 6에 그쳤다. 그러나 누군가 결정지어줘야 할 상황에서 박지성은 그 위치에 있었고, 골망을 흔들었다. 제대로 집어넣은 골도 아니었다. 전반 41분 나니가 날린 슈팅이 상대 수비의 발을 맞고 굴절됐고, 날아오는 공보다 한 걸음 앞에 서 있던 박지성은 몸의 중심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골문을 응시하고 머리를 갖다댔다. 강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말 그대로 ‘집념의 골’이었다. ●여전히 성장 중 박지성은 이 골로 또 다른 박지성을 예고했다. 그라운드 전역을 누비는 체력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를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박지성은 그 무언가로 ‘골 결정력’을 택했다. 활약에 비해 득점이 부족했던 자기 자신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경기 뒤 박지성은 “득점을 통해 팀의 승리를 이끌어 기쁘다. 내 기록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늘 하던 대로 차분하고 무뚝뚝한 말투의 ‘모범답안’ 인터뷰였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에선 종전과 달리 자신의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10골을 넣는 게 목표라고 했는데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꾸준한 모습을 유지한다면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본다.”고 했다. 아직 시즌이 절반 이상 남았고, 박지성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아빠의 이름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아빠의 이름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만년 ‘유망주’였다.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포스트 이봉주’로 기대를 모았던 마라토너 지영준(29·코오롱). 그에게는 언제부터인가 ‘국내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다. 국제대회에 유독 약했기 때문. 아시안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부산에서는 당시 금메달을 땄던 (이)봉주(40) 형과 함께 뛴 것에 만족해야 했고, 2006년 도하에서는 7위에 그쳤다. 그리고 마라토너로는 황혼인 서른을 목전에 두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이번에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국내용’ 별명 후련하게 벗어 그런데 지영준은 절박했다. 지난해 이미해씨와 결혼한 뒤 올해 첫 아들 윤호가 태어났다. 가장이 됐다. 가장의 책임은 뭐니뭐니해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 평생 마라톤밖에 모르고 살아온 지영준이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선 무조건 금메달이 필요했다. 지영준은 이를 악물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40㎞ 코스를 뛰는 등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원인 모를 국제대회 징크스 따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자신을 담금질했다. ‘여기가 한계인가.’라고 느낄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아들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걸음을 더 뛰었다. 스승인 정만화 원주 상지여고 감독과 아내도 그의 마라토너 인생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영준은 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인 27일 중국 광저우 대학성 철인3종 경기장 주변을 도는 42.195㎞ 풀코스에서 열린 결승에서 2시간 11분 10초로 금빛 월계관을 차지했다.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2002년 부산 대회까지 남자 마라톤을 4연패했던 한국은 8년 만에 다시 왕좌에 오르며 자존심을 되찾았다. ●“3일전 도착 더위 준비한 게 적중” 22.7도의 비교적 더운 날씨에 시작한 레이스에서 지영준은 시작부터 줄곧 선두권을 지키다 33㎞ 지점부터 케냐 출신인 지난 대회 우승자 무바라크 하산 샤미(30·카타르)와 치열한 1위 싸움을 벌였다. 그러다 37㎞ 코너 부근에서 치고 나와 샤미와 격차를 벌렸고 이후 결승선까지 5㎞ 가까이 독주를 펼친 끝에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샤미는 32㎞ 급수대 지점에서 지영준과 부딛히자 등을 손으로 내려치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저질렀고, 37㎞ 지점 급수대에서는 물병 대신 물을 적신 스펀지만 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서서 자원봉사자에게 항의하는 등 어이없는 행동으로 자멸했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지영준은 기다리고 있던 윤호를 끌어안고 기뻐한 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자축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생기니까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뛰어야 했다.”면서 “계속 외국에만 나가면 죽을 쑤어 이번에는 100% 철저히 준비했다. 훈련량이 많다 보니 후반에도 지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더운 것을 고려해 레이스 3일 전에 광저우에 도착해 준비한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면서 “혼자 운동할 때 도와주신 정 감독님과 아내, 그리고 가족들께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타임 선정 20세기 세상을 바꾼 25명의 여인들

    타임 선정 20세기 세상을 바꾼 25명의 여인들

    ‘철의 여인 대처, 패션 아이콘 샤넬, 섹스심벌 마돈나까지….’ 미 시사주간 타임이 19일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25명의 ‘파워우먼’을 추려 발표했다. 이들 여걸은 여성 특유의 감성을 앞세우면서도 때로는 남성을 압도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세상을 바꿨다. ●코라손 아키노·힐러리 클린턴 포함 우선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정치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여성 지도자가 눈에 띈다. 유럽 최초로 여성 국가수반이 됐던 마거릿 대처(85) 영국 전 총리와 독일 첫 여성 정상인 앙겔라 메르켈(56) 총리, 이스라엘에서 처음 여성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1898~1978년)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은 “대처가 11년간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사회적 저항에도 공기업 민영화나 저세율 정책 등을 줄기차게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었던 코라손 아키노(1933~2009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63) 미 국무장관도 포함됐다. 주요 2개국(G2)인 중국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부인이었던 장칭(江靑·1914~1991년)과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년)도 나란히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혔다. 2명 모두 ‘그림자 내조’에 그쳤던 영부인의 역할을 벗어나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황혼기의 모습은 엇갈렸다.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였던 엘리너는 남편의 정치활동을 도우면서도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고 칼럼을 쓰면서 여성문제 등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1945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유엔 주재 미국대표를 맡는 등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도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진두지휘하며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남편이 1976년 사망한 뒤 반혁명분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통적으로 ‘여풍’이 강했던 패션 및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화장품 회사 설립자인 에스티 로더(1908~2004년), 패션제국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1883~1971년) 등이 ‘세기의 여성’ 자리를 차지했다. 또 단돈 35달러를 들고 고향 미시간주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최고 팝스타’의 꿈을 이룬 마돈나(53)도 마찬가지다. ●마리 퀴리·버지니아 울프도 뽑혀 이 밖에 방사성 원소 폴로늄, 라듐 등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거머쥔 마리 퀴리(1867~1934년), 저서 ‘침묵의 봄’ 등을 통해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레이철 카슨(1907~1964년), 테레사 수녀(1910~1997년),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년) 등도 역시 ‘파워 우먼’으로 선정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점프코리아 2010-아이 낳고 싶은 나라] (2부)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를 ⑩ 전문가 대담(끝)

    [점프코리아 2010-아이 낳고 싶은 나라] (2부)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를 ⑩ 전문가 대담(끝)

    인구 구조상 황혼기에 접어든 농촌에 한국 사회의 미래가 녹아 있다. 농촌 사회가 겪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신문이 지난 4월 연재를 시작한 ‘농촌에 아이울음 소리를’ 기획이 15일 10회로 막을 내린다. 기획 연재를 통해 농촌 지역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일자리, 보육, 교육 분야 등에서 찾아봤다. 10회에서는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용하 보건사회연구원 원장, 박성재 전 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등의 좌담을 통해 전문가에게 우리 농촌이 걸어야 할 길을 물었다. 대담 경제부 오일만 차장 →농어촌 지역의 저출산이 도시보다 두드러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나. -장태평 전 장관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970년 4.53명에서 지난해 1.15명까지 감소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저출산 분위기가 퍼진 것이다. 이에 더해 농어촌은 교육·의료·복지 여건 악화 등으로 인구가 떠나면서 저출산 현상이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청년들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김용하 원장 농어촌 지역의 출산율은 도시 지역보다 오히려 높다. 하지만 가임(可妊) 여성이 많지 않다 보니 출생아 수가 적은 것이다. 젊은 여성이 없는 것은 주변 도시지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농어촌 지역의 일자리 부족이 가임 청년층의 이농(離農)을 부추겨 저출산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장 전 장관 농어업이 고도산업으로 발전해야 지역사회에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농어업이 발전하면 이 일을 돕는 각종 지원 서비스 산업이 만들어질 것이다. 정부가 농공단지를 조성하고 식품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도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김 원장 요즘은 생산이나 제조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대신 생활중심형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컨대 40~50대 베이비붐 세대의 귀농·귀촌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생활을 돕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육성해야 한다. →청년들은 농촌의 열악한 삶의 질을 견디지 못해 도시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김 원장 삶의 질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를 종합해 봤을 때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큰 게 사실이다. 농촌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생산의 농촌’에서 ‘소비의 농촌’으로 농정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농촌의 노인인구가 40~50% 되는데 이들이 일을 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국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기는 어렵다. 결국 전 국토를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그 중심에 농어촌을 둬야 할 것으로 본다. -박성재 전부원장 현재 농어촌 정책은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농식품부와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등이 농촌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중복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었다. 올해 농식품부가 농어촌 서비스 기준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것은 바람직하다. 한 지역이 갖춰야 할 주거, 교통, 보건·의료, 문화·여가, 정보·통신 등 8개 분야의 최소 목표 수준을 정하고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책이다. 영국 등 일부 선진국이 도입한 제도를 들여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열악한 교육 환경도 학생과 학부모의 농어촌 유입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 전 장관 30~40대 이농의 주된 이유가 도시보다 열악한 농촌의 교육여건 때문이다. 농어촌 주민의 교육 만족도는 13.9%에 불과하다. 정부도 교육문제 해결을 통해 도시 학생들을 농어촌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하고 있다. 충북 단양군의 한드미마을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마을에 농어촌유학센터를 두고 1년 과정의 농어촌 유학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노력 덕분에 자녀의 생태환경 교육을 희망하는 도시민이 귀농·귀촌하는 등 효과를 보고 있다. 또 농산어촌 전원학교 육성사업을 통해 면(面) 단위에 위치한 초·중등학교 110곳을 지난해부터 3년간 지원하고 있다. -박 전 부원장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작은 노력을 통해 농어민이 느끼는 교육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 사례가 많다. 예컨대 강원도 화천군의 경우 기숙형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정규과정 외 교육을 강화해 춘천시 등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는 인구를 줄였다. →농어촌 내 출산·보육 시설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인데. -김 원장 출산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주고 교육이 연결돼야 한다고 본다. 군(郡) 단위 지역 가운데 산부인과가 없는 곳이 수십 곳에 이른다. 출산시설도 없이 아이 낳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산부인과를 지어도 수익이 남지 않는 지역에 민간이 알아서 들어오라고 하기는 어렵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군 지역에 산부인과 한곳이라도 들어설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보육시설도 마찬가지다. 도시지역은 민간 보육시설이 워낙 많아서 공공 보육시설을 만들면 민간을 밀어내게 된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농어촌 지역은 민간의 노력으로는 보육이 해결되지 않으니까 정부가 계획적으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설립해야 한다. 농어촌에는 시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 -박 전 부원장 국·공립 보육시설을 여럿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마을회관, 빈집 등을 활용한 생활밀착형 보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야간 및 전일제 보육, 휴일 보육 등 다양한 형태의 요청이 있는 만큼 획일적 보육 시스템에 변화를 줄 필요도 있다. →귀농·귀촌이 농어촌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대안이 될 것으로 보나. -장 전 장관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전년에 비해 1.8배가량 많아지는 등 농촌 이주가 활발해지고 있다. 젊은층의 귀농·귀촌은 농어촌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예컨대 아버지가 30~40년 고생해서 과수원을 일궜는데 빚만 졌다고 가정하자. 도시의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이 귀농해 과수원을 물려받으면 경험으로 쌓은 경영 노하우를 활용해 사업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산업의 유휴인력에 ‘인생 2모작’의 길을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 전 부원장 귀농을 준비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농촌에 정착해 도시의 치열하고 삭막한 경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경제적 이익도 누리고 싶어한다. 수익 창출을 위해 분명한 장치를 마련해 줘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요인이 있어야 하는데 청년을 영농지도자로 키워 나가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결혼 이주여성들이 농촌 저출산 해결에 새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인데. -장 전 장관 농림어업 종사 남성의 38.7%가 외국 여성과 결혼할 정도로 농촌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절반 이상이 연간 2000만원 미만의 가구 수익을 올리고 있어 문제다. 현장에 돌아다니면서 어떤 지원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면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농사를 지으면서 외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등 다른 일도 하고 싶어 한다. 보수도 중요하지만 결혼 이주여성들에게는 사회활동의 기회를 얻는다는 측면에서 일자리 제공은 의미가 있다. -박 전 부원장 결혼 이주여성의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농촌 사회에 자리잡은 외국인 여성은 다양한 국가에서 각각 다른 시기에 국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원하는 지원책이 모두 다르다. 수요를 고려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때가 됐다. 또 일자리를 얻거나 아이를 키우는 데 정보가 부족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김 원장 농촌 사회의 국제결혼 붐은 저출산 해결 등에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성장해 나가는 데 이들의 교육, 취업 등에 대한 대책은 준비된 것이 없다. 높은 이혼율도 큰 문제다. 다문화가정 이혼율이 국민 전체 이혼율보다 3배가량 높다. 결혼 주선 등이 건전하지 못하게 이뤄지다 보니 이혼이 이미 예정된 상태에서 혼인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이주여성을 동정적 차원에서 무작정 보호해 줘야 한다는 식의 정책을 짜서는 곤란하다. 농촌지역 가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리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길섶에서]가을 vs 희망/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신문 건강면에서 가을엔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는 뉴스를 봤다. 낮이 짧아지고 기온의 일교차가 커져 심리적 불안정을 일으키는 탓이라는 분석도 그럴싸했다. 전문가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새싹 트는 봄에 비해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는 누구나 얼마간 쓸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던 차에 지인이 보내 준 책을 뒤적이다 무릎을 쳤다. ‘내 손 안의 지식 은장도’라는 광고 카피가 붙은 그 책에서 우울함을 털어낼 수 있는 구절을 찾아냈다.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 번째 날입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명대사다. 그렇다. 생활이 팍팍하다고 해서, 혹은 육신이 늙어간다고 해서 마냥 우울해질 이유는 없을 법하다. 3류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도 인생의 황혼기에 대선에 나오면서 미국민들에게 “미국은 이제 다시 아침이다. 앞으로 뭔가를 보여드리겠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던가. 문득 ‘가장 좋은 일은 이제부터다(The best is yet to be).’라는 브라우닝의 시구가 떠오른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연극리뷰]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연극리뷰]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어슴푸레한 황혼녘이란 것 외엔 시공간에 대해 주어지는 정보가 없다. 이렇다 할 무대장치도 없다. 인물을 부각시키는 간단한 조명뿐. 인물은 단 두명, 그러니까 딜러(왼쪽·홍성춘)와 고객(오른쪽·정선철)만 등장하는데 이들이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 딜러와 고객이면 뭔가를 주고받고 거래라도 할 것 같건만 무엇을 얼마에 거래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 이렇게 텅빈 상황에서 원하는 것은 뭐든지 줄 테니 그 무엇을 얼른 얘기하라는 윽박과,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반박뿐이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기국서 연출, 76극단 제작)는 사실 한눈에 확 와닿는 작품은 아니다. 신체언어나 노래, 춤 등 다양한 요소를 무대에 끌어들인 간결한 연출이 추세인데, 이에 정면으로 반하는 작품이다. 원작은 천재라 불리는 프랑스 현대 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레스. 두 인물의 팽팽한 대화로만 극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다 배우들은 별다른 연기랄 것도 없이 현란하고 기나긴 대사만 줄줄 뱉어낸다. 어렵고 긴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소화해내는 기억력만 감탄스럽다. ‘아하, 이런 방식의 연극이구나.’ 하고 적응될 즈음에 대사들이 슬슬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살토 모탈레’(Salto Mortale·필사적 도약)가 떠오른다. 하나의 ‘제품’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환되는 그 순간을 위해 시장에서 버림받을 각오까지 하고 나서야 하는 그 필사적인 도약. 딜러의 말이 뒷받침한다. “나는 거절이라는 걸 참을 수가 없어요. 거절은 모든 장사꾼들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거절은 장사꾼들이 가지지 못한 무기이기 때문이오.”라고. 그런데 이게 어째 애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반협박투다. 이어 고객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딜러는 말한다. “나는 손님에게 쾌락을 주려는 게 아니오. 심연과도 같은 욕망을 채우고, 욕망을 일깨우고, 욕망으로 하여금 하나의 이름을 갖도록 하고, 그것을 지상으로 끌어내려는 겁니다.” 필사적 도약의 파괴성을 줄이는 방법은 욕망 창조다. 가령 ‘무슨 세대’니 ‘무슨 족’이니 하는, 광고나 패션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용어 같은 것이다. ‘너는 X세대니까 이 정도 옷은 입어 줘야지.’, ‘넌 골드미스니까 이 정도 가방은 걸쳐 줘야지.’라는 식의 욕망의 호명이다. 고객은 이런 호명을 냉정하게 잘라내 버린다. 그가 내놓는 제안은 이렇다. “두개의 둥근 제로가 됩시다. 서로에게 침투하지 않는, 잠시 같이 나란히 있지만, 각자 자기의 방향으로 굴러갈 제로 말이오. 그저 단순하고 고독하고 오만한 제로가 되도록 합시다.” 그런데 고객은 정말 이런 걸 원했을까. 그는 이런 말도 한다. “그런데 당신의 괴상한 옷차림보다 당신 눈의 광채가 나를 붙들었소.”라고. 결국 딜러에게 말을 붙이도록 허용하고, 계속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고객의 흔들리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 아니던가. 딜러의 끊임없는 제안을 단단한 논리로 물리치던 고객이 “그렇다면, 어떤 무기를?”이라고 되묻는 장면에서 작품이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 꼭 상품에만 한정지을 것도 없다. 무엇에 대한 욕망이건, 그 경계선에 흔들리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거대한 독백일는지 모른다. 7일까지 서울 대학로 혜화동1번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화려한 여배우’ 김지미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화려한 여배우’ 김지미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원로배우 김지미(70)가 ‘영화인 명예의전당’에 오른다. 영화인복지재단은 오는 20일 오후 2시30분 경기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김지미의 명예의전당 헌액식을 한다고 15일 밝혔다. 고(故) 신상옥 감독(위대한 영화인)과 고 유현목 감독(위대한 영화감독), 배우 황정순(위대한 여배우)에 이어 4번째로 명예의전당에 입성한 김지미는 ‘화려한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받는다. 명예의전당에는 김지미의 흉상이 세워지며 그가 받은 상패와 출연작 포스터, 사진 등을 비롯해 김지미가 사용한 구두, 가방, 화장품 케이스 등 각종 물품이 전시된다. 김지미는 1957년 17살에 ‘황혼열차’로 데뷔해 ‘명자 아끼꼬 쏘냐’(1992)에 이르기까지 7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배우 김지미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배우 김지미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처음에는 저보다 훌륭한 영화인이 많다고 극구 사양했는데 한국 배우로서는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하다 보니 이런 기회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의 살아 있는 여신’ 김지미(70)가 11일 부산 해운대 피프빌리지 야외공연장에서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핸드 프린팅 행사를 가졌다. 국내외 유명 영화인의 ‘손 도장’을 찍는 핸드 프린팅 행사는 1997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올해 주인공으로 김지미를 낙점한 것은 국내 영화계에 그가 남긴 큰 족적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해까지 세계 영화인 39명이 핸드 프린팅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한국 사람은 10명밖에 안 된다.”면서 “(김지미) 여사께서는 TV에 한 번도 나간 적 없이 영화에만 출연한 진정한 영화인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이처럼 대단한 분의 손 모양을 영구적으로 갖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지미는 “너무 과찬을 해 주셔서 영광이다.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을 열어준 데 이어 핸드프린팅 기회까지 줘 너무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김지미는 행사장을 찾은 나이 지긋한 팬들을 향해 “평생 사랑해주고, 잊지 않고 이 자리에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젊은 영화 팬들을 향해서는 “많이 아끼고 봐주고 격려해주며 한국 영화가 세계 곳곳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여고시절이던 1957년 고(故) 김기영 감독의 ‘황혼 열차’를 통해 은막에 데뷔한 김지미는 가장 최근작인 ‘명자 아끼꼬 소냐’(1992)에 이르까지 7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후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한편, 국내 영화계가 어려웠던 1990년대 말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맡아 한국 영화 발전에 힘을 보탰으며, 스크린쿼터 (한국영화 의무 상영일수) 지키기 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한 ‘충무로 여걸’이다. 부산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무용가 홍신자 獨교수와 황혼 결혼식

    현대무용가 홍신자(70)씨가 독일 출신의 한국학자 베르너 삿세(69) 한양대 석좌교수와 지난 9일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서 황혼 결혼식을 올렸다. 홍씨는 27세 때인 1967년 뉴욕에서 춤에 입문, 1973년 파격적인 형식의 무용 ‘제례(祭禮)’로 주목받았다. 1993년 귀국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서 ‘웃는돌 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삿세 교수는 독일인 최초의 한국학자로 40년 넘게 한국과 인연을 맺어오다 2006년 한국으로 이주했다. 유럽한국학협회(AKSE) 회장을 지냈고, ‘월인천강지곡’을 독일어로 처음 번역하기도 했다. ‘홍신자 시집가는 날’이란 이름으로 열린 결혼식은 예식과 공연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가 됐다. 홍씨는 “제주의 열린 공간, 대자연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축제 분위기 속에서 결혼할 수 있어 정말 기분 좋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유럽의 지성에 듣는다](5) 안토니오 네그리가 본 사회변화

    [유럽의 지성에 듣는다](5) 안토니오 네그리가 본 사회변화

    “1970~80년대의 민주화나 몇 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계급이나 직업, 성별이라는 집단적 구분이 불가능한 ‘다중’이라는 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국가입니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후계자’ ‘현존하는 가장 급진적인 학자이자 투사’로 불리는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78)는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과거에 일궈낸 민주화와 현재의 시민운동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2000년대 이후 세계적 화제의 중심에 선 ‘지성인의 지성’으로 꼽히는 네그리가 한국 언론과 직접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몸짓은 정열적이었고, 표현은 거침이 없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당대의 대학자는 자신이 ‘투사’라는 사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는 듯했다. 순간순간 운동권 대학생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달 23일 ‘제국’ ‘다중’에 이은 필생의 역작 ‘제국 3부작’의 마지막편 ‘공동체’의 이탈리아어판 출간 행사를 가질 정도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그다. 네그리는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더 잘 보인다.”고 했다. “세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만들어서 씌워 놓은 안경을 벗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국 3부작’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제국이 만들어낸 안경’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바꾸자는 것이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프랑스 망명시절에 만난 지인들이 많다.”면서 “훌륭히 민주주의를 일궈내고, 제국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미래의 대안인 다중이 싹트고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아직까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는 “내년 4월 일본 방문 일정이 잡혀 있는데, 가능하다면 한국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어판 서문을 별도로 쓸 정도로 한국 정치상황에 관심이 많은데. -1980~90년대 프랑스 망명 시절에 한국인 제자들이 꽤 있었다. 상당수가 (동백림 사건 등)군사독재 아래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고초를 겪다가 망명한 사람들이라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대중들이 밑으로부터 만들어낸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기반 자체가 서구처럼 수백 년 이상 쌓이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훌륭히 해냈다. →2008년 한국에서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당시 많은 학자들이 당신의 책 ‘다중’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중은 독자적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다중 속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해관계가 합쳐지는 것이다. 대중은 시류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반면 민중은 혁명성을 가진 피지배계급의 의미가 강하지만 지금은 사회 전복과 같은 동일한 목표를 찾기 힘들다. 다중의 구성원 간에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문화, 인종, 직업 등이 모두 다르다. 심지어 직업의 유무조차도 중요치 않은 만큼 과거처럼 노동자 계급이라는 일관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어떤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중은 함께 모여 행동을 하지만 단일한 집단으로 묶는 전체주의적 환원은 없다. 한국의 촛불시위도 결국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합쳐져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그것이 바로 다중이다. →그렇다면 다중은 대체 언제 일어나는가. -파리에서 1990년대 중반 지하철 승무원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다. 그런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파리 안팎에서 동조하는 시위를 일으키고, 연대해서 뜻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들 사이에서 끝날 작은 일이지만 결국에는 다중이 모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여성들의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들의 뜻을 모을 수도 있고 동성애자 운동, 환경생태운동, 독립미디어운동 등이 모두 다중이 일어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당신과 제자인 마이클 하트 교수가 쓴 ‘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큰 논란을 제공했다. -처음 책을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미국을 나쁘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러다 2001년 9·11테러가 벌어지면서 사람들이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책에서 테러를 예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제국주의가 사라진 이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미국이 군사·경제·문화적 힘을 내세워 시도하기 시작한 ‘제국화’가 세계에 더 많은 불안요소들을 던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어떻게 나타나느냐의 문제일 뿐 구조적으로 이미 그 전에 미국이 시도하던 제국화의 결과가 표출될 시점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기는 월등한 군사력·달러·언어(영어) 등 세 가지였다. 이 셋 모두 과거처럼 절대적이지 않은데, 제국화가 계속 진행될 수 있겠나. 그런데 중국이나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벤치마킹한 제국화가 시도되고 있다. 제국화가 계속 진행되면 결국 문제가 되는 힘 자체는 변하지 않고 누가 힘을 발휘하느냐 하는 구성요소만 바뀌게 된다. 배타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다 마찬가지다. →제국화가 실질적으로 세계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식 민주주의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 현 상황을 보자. 하루에 8시간 일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일하고 있다. 당연히 가족 간의 관계나 생활의 질은 더 떨어진다. 경제위기는 점차 주기가 짧아지고, 이 때문에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뭔지 모를 수많은 두려움에 시달린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막연한 두려움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만 키워줄 뿐이다. →‘제국’에서 세계적인 현상을 분석했고 ‘다중’을 통해 대안을 찾고자 했다. 세 번째 책이자 시리즈의 마지막인 ‘공동체’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에 이탈리아어판을 출간하면서 약간 마찰이 있었다. 미국판(2009년 출간)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커뮨웰스’는 ‘공동체의 가치’, 즉 물질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탈리아어판에는 ‘공동체’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개념만 담은 ‘커뮤니’를 사용했다. 공동체는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는 컨셉트는 아니다.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셸 푸코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진정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우리의 일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 일을 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이런 공동체적 관계는 궁극적으로는 법조차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서 사회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스스로 정리를 하고 사회를 일구어 나가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이다. →당신은 사회구성원들에 대해 ‘하층민’ ‘가난하고 없는 자’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들의 힘을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고 있는데. -하층민은 분명한 힘이 있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하층민의 지혜가 세상을 바꿔왔다. 지혜는 돈이나 배터리처럼 닳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층민은 항상 사회에 반응한다. 마르크스, 무솔리니, 히틀러 등 누군가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뒤집으려 할 때마다 하층민들의 힘이 저항의 원동력이 됐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그 힘에 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하층민이 발휘하는 저항의 힘이 누르는 힘보다 약했다면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왕이 됐을 것이다. →제국 3부작에서는 당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 토머스 제퍼슨이 ‘법은 10년마다 바꾸는 것이 좋다.’라는 얘기를 했다.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사회는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궁극적인 민주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계속 변하는 것이다. →제국 3부작을 제자인 마이클 하트 미국 듀크대 교수와 함께 썼다. 사상을 연구하고 집대성하는 일을 모두 함께 했는데, 동지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하트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다. 단지 한 사람은 미국에서, 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감독인 당신의 딸 안나 네그리는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유명한 것이 너무 싫었다.’고 썼다. 넬슨 만델라나 당신처럼 투사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힘든 일이었을 텐데. -내가 망명을 하거나 투옥생활을 할 때 가족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딸 역시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나한테 항상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해 주곤 한다. 나 역시 마음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족을 언제나 잊지 않았다. 글 사진 베니스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지성인의 지성… 현존 최고의 급진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 공산당처럼 ‘당’으로 대표되는 조직보다 일반 대중의 투쟁이 사회 발전을 주도한다는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표 학자다. 현존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사상가로 꼽힌다. 193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 자율성, 자주성을 강조한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창시하고 이탈리아 비의회 좌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0년대 말 정치범으로 구속됐고, 1983년 급진당 의원으로 당선돼 사면된 뒤 프랑스로 망명했다. 미셸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교분을 쌓으며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대중의 힘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2000년 발간된 ‘제국’은 국가와 국적, 국경을 초월한 전 지구적 시스템이 과거 제국주의 대신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에는 후속작인 ‘다중’을 통해 제국에 대항하는 근원적인 힘을 제시했다. 예술과 다중, 전복적 스피노자, 혁명의 시간,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 등 5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 ‘영화의 바다’ 빠져봅시다

    ‘영화의 바다’ 빠져봅시다

    ‘영화의 바다, 부산에 빠지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7일부터 9일 동안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 일대를 뜨겁게 달군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허브 축제로 거듭난 부산국제영화제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본다. 김지수·조영정·이수원·이상용·홍효숙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추천을 토대로 놓쳐서는 안될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 ●세계 최초로 만나는 기쁨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되는 전 세계 67개국 307편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월드 프리미어)이 무려 103편이다. 살 집이 없어 어린 딸과 트럭 밑에서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트럭 밑의 삶’(감독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필리핀), 베트남 최고 소설 ‘광활한 논’을 스크린에 옮긴 ‘떠도는 삶’(응우옌 판쿠앙빈·베트남 등), 아들의 동성애 연인을 이해하게 되는 어머니를 그린 ‘아들의 연인’(산조이 낙·인도), 단절된 가족의 모습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섬들’(조아나 호그·영국), 탈북 남성의 비극적인 남한 사회 순응기인 ‘무산일기’(박정범·한국), 남편과 헤어진 탈북 여성이 겪게 되는 잔혹사 ‘댄스 타운’(전규환·한국),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네 명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이혁상·한국) 등이 돋보인다. 오랫동안 가족을 버렸던 어머니가 동생을 데려가려고 하자, 이에 분노해 소년원을 탈출하는 비행 소년의 이야기 ‘휘파람을 불고 싶다’(플로린 세르반·루마니아), 생존을 위해 모정과 사랑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하는 여인을 그린 ‘모정과 사랑 사이’(아그니에슈카 우카시아크·스웨덴 등),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 중동으로 떠나는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그을린’(드니 빌뇌브·캐나다)은 월드 프리미어는 아니지만 프로그래머들의 강력 추천작이다. 앞서 세계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가족을 떠나 있던 할아버지와 여섯살배기 손자의 만남을 그린 ‘비, 두려워 마’(판당디 감독·베트남), 입대를 앞둔 청년의 인상적인 성장 영화 ‘모래성’(부준펑·싱가포르), 돈을 벌어 일본으로 떠나려는 19세 소녀와 그의 이모가 벌이는 기괴한 사업을 다룬 ‘타이거 팩토리’(우밍진·말레이시아),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전기도둑’(악탄 아림 쿠바트·키르기스스탄)은 프랑스 칸 영화제 화제작. 영감이 떨어져 5년째 일거리가 없는 영화 감독의 수난사를 그린 ‘어느 감독의 수난’(카를로 마자쿠라티·이탈리아), 파업 노동자들에게 인질로 잡힌 폭군 같은 남편을 구하러 나선 가정 주부의 이야기 ‘현모양처’(프랑수아 오종·프랑스)는 지난달 초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 다녀왔다. 탈북 소년과 조선족 소년의 우정을 그린 ‘두만강’(장률·한국 등)도 베를린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한국 영화의 여신, 김지미 회고전도 눈길 여고 시절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에게 발탁돼 ‘황혼 열차’를 통해 은막에 데뷔했다. 그리고 1992년 ‘명자, 아끼꼬, 소냐’까지 무려 700여편에 출연했다. 데뷔 당시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갈채 받으며 단숨에 톱스타가 됐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청순한 매력을, 이후 성적인 매력을 뽐내던 스타에서 1970년대 들어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 거머쥐는 등 연기력을 겸비한 스타로 거듭났다. 1980년대 들어서는 영화 제작자로, 199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쳐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영원한 영화인, 영화계의 여장부로 살아왔다. 김지미(70) 얘기다. 그의 회고전도 영화제의 백미 중 하나.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회고전에서 배우가 주인공이 된 것은 2007년 김승호에 이어 두 번째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 ‘불나비’(1965),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1966), ‘길소뜸’(1985), ‘티켓’(1986) 등 시대별 대표작 8편을 만날 수 있다. 최무룡, 신영균, 신성일, 김진규 등 당대 최고 남자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덤. 지난 5월 자살한 곽지균 감독의 회고전도 눈길을 끈다. ●해운대로 별들의 대이동 해운대에 마련된 레드 카펫을 밟을 국내외 최고 스타들의 면면도 관심거리. 올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 등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영국 여배우 제인 마치도 온다. ‘색, 계’에서의 파격적인 연기로 단숨에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한 중국의 탕웨이도 현빈과 호흡을 맞춘 ‘만추’로 찾아온다. ‘플래툰’으로 유명한 윌렘 대포와 인도 ‘발리우드’의 최고 여배우인 아이슈와리아 라이도 ‘라아반’을 들고 부산을 찾는다. 마야자키 아오이와 아오이 유우, 요시타카 유리코, 오카다 마사키 등 일본의 젊은 피도 눈에 띈다. 이란의 거장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를 비롯해 미국 할리우드의 올리버 스톤 감독, 올해 개막작인 ‘산사나무 아래’를 연출한 중국의 장이머우, 스페인 3대 명감독 가운데 한 명인 카를로스 사우라, 일본의 유키사다 아사오, 홍콩 뉴웨이브의 주역인 허안화 등 세계적인 감독들도 줄을 잇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영화리뷰] ‘레터스 투 줄리엣’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 여왕의 발견

    [영화리뷰] ‘레터스 투 줄리엣’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 여왕의 발견

    잡지사에서 일하는 작가 지망생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이탈리아 식당을 차리려는 약혼자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함께 이탈리아 베로나 여행에 나선다. 소피는 달콤한 순간을 꿈꾸지만 빅터는 개업 준비에 골몰하고, 소피는 홀로 베로나를 거닌다. 로미오가 사랑을 고백했다는 줄리엣 발코니에 이르게 된 소피. 그곳은 전 세계 여성들이 사랑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발코니 아래 벽에 붙여 놓는 유명한 관광지였다. 소피는 사연을 남긴 여성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줄리엣의 비서라는 모임을 알게 되고, 빅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일을 돕는다. 50년 전에 쓰여진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답장을 보낸 소피. 며칠 뒤 소피 앞에 편지의 주인공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타난다. 소피는 자신의 답장 때문에 용기를 내 첫사랑을 찾아나선 클레어, 할머니의 첫사랑 찾기가 못마땅한 클레어의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와 동행하게 된다. 줄리아 로버츠, 멕 라이언, 제니퍼 애니스톤 등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여왕의 계보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로 이어질 것 같다. 7일 개봉하는 ‘레터스 투 줄리엣’은 그만큼 사이프리드의 매력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2008년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로맨틱 코미디 ‘맘마미아!’로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린 뒤 올해 ‘디어 존’에 이어 ‘레터스 투 줄리엣’까지 로맨스물을 거푸 섭렵하며 상큼함을 발산하고 있다.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에서 나온다. 영화를 보는 것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로나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시에나를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사랑을 믿지 않는 관객이라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든가, 진정한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다든가 하는 판타지에 빠져들게 된다. 50년 전 부모의 반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 했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첫 사랑의 꿈을 이루게 되는 클레어의 이야기와 클레어를 돕다가 운명의 짝을 만나 새출발하는 소피의 이야기가 깔끔하게 맞물리며 즐거움을 준다. 마카로니 웨스턴 ‘장고’로 유명한 프랭크 네로가 클레어의 첫사랑 로렌조 역을 맡았다. 저명한 배우 집안 출신이며, 리암 니슨의 장모이기도 한 레드그레이브와 네로는 2006년 결혼한 부부 사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2002년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신부들의 전쟁’ 등을 연출했던 게리 위닉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5월 북미 개봉 첫 주에 대작 ‘아이언맨2’, ‘로빈 후드’에 밀려 3위를 차지했지만 나름 선전했다.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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