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 저널리즘’을 생각한다/전방욱 강릉대 생물학 교수
과학문화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 대부분은 방송, 신문,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과학지식을 얻는다. 과학을 직접 경험하거나 배우기보다 언론이라는 필터를 통해 과학 지식을 얻고 과학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언론은 과학자의 전문적 용어를 일반적인 용어로 풀어내는 과학의 대중화 작업을 수행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언론은 흥미롭고 중요하거나 유용하다고 간주되는 과학 기사를 발굴한다. 언론이라는 필터가 잘못 작동하면 시민은 과학을 잘못 이해하게 됨은 물론, 과학에 대해 그릇된 평가를 내리게 된다.
물론 시민들이 전적으로 과학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사회는 시민들의 의사를 바탕으로 하여 운영되기 때문에, 특히 생의학 연구나 에너지 개발의 영역에서 과학 연구는 시민들의 조사와 장기적인 사회적 결과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쉽게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현대 과학의 내용이 복잡하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과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을 등한시하고 이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과학을 쉽게 설명해 주는 과학자는 가뭄의 단비와 같이 기자가 선호하는 정보원이다. 이 정보원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서 비판적인 관점보다는 정보원에 유리한 기사만을 선택하는 기사 구조의 왜곡이 일어난다.
우리는 배아 복제가 머지않은 미래에 난치병을 치료하고,30조원에 해당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으며,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대한 일방적인 선전·선동만을 듣고 있지 않았던가?
이런 동화현상이 극대화되면 과학 자체보다는 과학자의 품성이나 일상사와 같은 인간적 관심사가 전면에 부상된다. 많은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다는 상식은 깨지고, 특정한 과학자가 영웅으로 부각되는 것이 그 좋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사건을 겪으면서 과학계뿐만 아니라 언론계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연구자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연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어 독자들을 그릇된 곳으로 이끈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양심적 내부 제보자의 제보를 받아 조사를 진행할 변변한 기구 하나 없는 상황에서 조작의 전말을 조사하고 고발하는 기대 이상의 일을 해낸 곳도 언론이다. 과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학자나 일선 과학전문기자까지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나온 것을 언론이 어떻게 검증하느냐.”라든지 “방송이 의혹을 직접 검증하겠다고 나섬으로써 과학계의 정상적인 검증 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등의 전문가주의자의 항변을 돌파해야 하기도 했다. 이번 보도가 심층조사를 본령으로 하는 PD저널리즘이나 시민이 과학을 감시해야 한다는 시민과학운동의 입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과학 저널리즘의 한계와 본령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정치나 예술 등 거의 모든 영역이 언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 과학만은 성역에 머물러 왔다. 일찍이 도로시 넬킨은 사회 속에서 과학이 지니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과학은 주의깊고 비판적인 조사 작업에 근거한 저널리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과학자나 저널리스트 모두가 과학 저널리즘의 소양과 비판적 정신을 장려한다면 과학 저널리즘은 과학적 식견을 갖춘 시민을 양성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방욱 강릉대 생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