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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4)낯선 땅에서

    *고소하고 쫀득한 영암 '어란' 술안주로 그만. 동섭이는 그 무렵에 생업에는 뜻을 잃고 서화를 모은다 수석을 주으러 다닌다 분재를 가꾼다 하면서 유신시대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농민회 일도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하여튼 그가 연말에 내게 작은 단지 두 개를 보내왔는데 이것이 기가막힌 전라도 특산품들이었다. 그 훈제 소시지처럼 생긴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영암 ‘어란’이었다. 영암은 예로부터 영산강이 내륙 깊숙히 들어오는 영산포를 끼고 있고 서쪽에는 너른 갯벌을 지니고 있었다.바다에서 잡히는 숭어가 아니라 갯벌에서 잡히는 숭어를 참숭어라고 따로 부르는데 영양이 풍부한 갯벌에서 잡힌 숭어는 특히 아랫배가 축 처질 정도로 큼직한 알집을 배고 있기 때문이다.거의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의 한 뼘만한 크기의 알이다.보통 숭어는 바다에서 그물로 잡지만 참숭어는 물이 들면서갯벌의 생물을 먹으러 들어오기 때문에 물때를 맞춰 미리 나가 기다리다가 낚시를 띄워 잡는다. 숭어의 알을 내어 우선 맛 좋은 간장에 하루 이틀 담가 둔다.장이배면 건져내어 한식경쯤 찬물에 담가 두었다가 다시 건져서 보름쯤 그늘에서 말린다.그것을 무거운 돌로 눌러 두었다가 다시 말린다.말리는 동안에 틈틈히 참기름을 바른다.바르고 말리고 하기를 다시 한 스무날쯤 하고나면 전라도 말로 ‘짠닥짠닥’한 진갈색의 어란이 완성된다.어란은 예전부터 궁중 진상품이었을 정도로 귀한 식품이었다.어란을 칼로 얇게 저며서 술상에 안주로 내는데 고소하고 감칠맛 있고쫀득거리는 것이 소주에도 좀처럼 속이 패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항아리에 들었던 것이 ‘토하젓’이었다.토하젓은 장성것이 옛적부터 으뜸이라 하는데 민물새우로 담근 젓이다.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을 모아둔 저수지에서 채로 떠내는데 내장이 비칠 정도로 말가서 가뭇가뭇 눈의 검은 점들로만 분간을 할 수가 있을 정도다.이것들을 소금 넣고 저리면 익힌 것처럼 이내 붉은 색으로 변한다. 요즘은 도시 사람들에게도 알려져서 토하젓이라고 유리병에 조금씩넣어 판매하고 있는데 새우의 몸집이 모조리 분해되어 뭉그러져 있다.진짜배기 토하젓은 새우의 몸체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야 싱싱한 향내가 난다.젓갈이 콤콤하겠지 같잖게 향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토하젓을 집어 씹어보면 몸이 탁탁 터지면서 향긋한 흙냄새가 난다.그래서 토하젓이다. 흙냄새가 나지않는 토하젓은 일반 새우젓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이 토하젓을 한 젓가락씩 집어다 밥에 살살 비벼 먹으면 기가 막힌데 얼른 먹어야지 비벼서 잠깐 놓아두면 이내 밥알이 삭아 버린다. 그래서 소화제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당시의 모 기관 지부에서 내게 말썽부리지 말라고 설에 보내온 것이 있었다.멸치 한 상자였다.한 포대도 아니고 라면 박스 반만한 크기의 종이함에 들어있던 것이다.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볶아 먹고 국에 넣어 먹고 했는데 식구가 하는 말이 ‘내장 따내기가 어쩐지 아깝다’는 것이었다.뭐가 아까우냐,했더니 좀 보라고 하며멸치를 내밀길래 들여다보니 모두가 똑같이 알을 배고 있었다.그것도 그냥 통통한 게 아니라 미어져 터질 듯이 알을 배고 있었다. 나중에 여기 사람들에게서 들으니 이게 바로 ‘칠산멸치’라는 것이다.목포 건어물 시장에 가서 이것을 찾으면 주인이 아주 특별한 단골이나 기관장들에게만 겨우 한 상자씩 내어다 준다고 하였다.이것을통째로 몇 마리만 넣으면 국이나 찌개 맛이 감칠맛 있게 깊어진다고하였다.대개 잡는 철이 보통 멸치와는 다른데 언제가 적기인지는 오래전 일이라 잊었다.다만 알을 낳으러 조기처럼 칠산 앞바다에 몰려올 제 잡는데 거의 모두 알을 배었지만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나중에 다시 선별을 한다는 것이다. 광주 같은 도회지에서도 한 두 집 볼 수가 있지만 읍내 장터 모퉁이의 ‘짱뚱이 탕’도 강원도와 충청도의 곰치 또는 물텀벵이 탕처럼해변에서 흔한 허드레 물고기로 끓이는 아침 해장국이다.짱뚱이는 경기도 해안 지방에서 ‘망둥이’라고 부르는 그 놈이다.망둥이는 주로 갯벌에 사는데 바닷물이 빠지면 구멍을 파고 들어가 밀물이 들어올때까지 은신한다.어떤 때에는 갯가의 부들이나 왕골 줄기에 으젓하게 올라가 바람을 쐬기도 한다.두 눈이 퉁방울처럼 솟아올라 뒤룩거리고 생명력이 강해서 내장을 다 빼고물에 담가 두어도 한나절을 아가미를 펄덕거리며 살아 있다.숭어가 뛰니까 무엇도 뛴다는 그 망둥이요 짱뚱이다.나는 고등학생 때에 어느 여름방학에 대부도에 외가가있는 친구와 함께 놀러가서 일주일 동안 질리지 않고 망둥이 낚시질을 한 적이 있었다.망둥이 낚시는 찌고 뭐고 아무 필요가 없다.그냥낚시에 갯지렁이를 아무렇게나 꿰어 무릎에 찰랑찰랑한 바닷물에 담그면 정신없이 물어댄다.낚아 올리고 떼어내어 옆구리에 찬 바구니에 넣고 또 던지고를 되풀이 한다.잠깐 오후에 나가서 사오십마리씩을낚을 수가 있었다.이 짱뚱이를 추어탕 끓이듯이 푹 고아서 거의 가루가 된 것을 체에 걸러 씰가리(우거지) 넣고 얼큰하고 구수하게 끓인게 짱뚱이 탕이다. 어디 한 두 가지 뿐이겠는가.이 고장의 웬만한 한정식 집에 가서 얼른 상 위를 한바퀴 둘러보노라면 맛깔스런 음식이 좌악 깔렸다.그중에 다른 지방에는 없는 고기 요리가 있으니 바로 ‘떡갈비’다.창평엿으로 유명한 담양 떡갈비가 맛이 좋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시장이커진 뒤의 일일 것이다.떡갈비는 효도 음식이라고도 하며 그 이유는노인들도 자시기가 좋아서라고 한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갈비살을 말끔하게 발라내어 칼로 존다.다진 것은 아니지만 조아 놓은 갈비살을 배며 갖은 양념에 재었다가 뭉쳐서 굽는데 뼈나 힘줄이 붙어있지 않아서 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가 있다. ‘죽순 백숙’은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은 영계백숙이다.삶아서 쓴맛을 우려낸 죽순을 닭의 뱃속에 찹쌀 마늘과 더불어 넣고 푹 곤 것인데 닭살과 죽순이 어우러져 구수하고 맵고 짜지 않아서 아이들 보양식으로도 좋다. 이제 젓갈 얘기나 하고 그쳐야지 이러다가는 온통 전라도 음식 자랑만 거들다가 말겠다.젓갈을 주 반찬으로한 한정식 집도 읍내마다 많을 정도니까 전라도가 가히 젓갈의 고장임을 알겠다.멸치 황새기 젓은 어디나 있는 것이고 갈치 속젓이나 돔베젓은 전라도 특유의 것이다.토하젓은 이미 나왔고 전어 밤젓은 그 고장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관 사람들도 한 젓가락 맛을 보면 우리나라 이밥 반찬의 진수를 깨닫게 된다.또한 참게장은 앞에서도 나왔지만논이나 방죽에서 잡아다가 항아리에 다진 쇠고기를 넣어 며칠간 먹인 다음에 그대로 장을 부어 담근다.참게 뚜껑 하나로 고봉 밥을 먹어 치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 도둑놈’이다.대구아가미젓은 무와 같이 담가서 아삭이는 맛이 좋고 갈치젓은 담가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멸치 젓국과 함께 김장에도 넣는다.서산 어리굴젓이 신선하게 속성으로 발효 시켜서 먹는다면 전라도 굴젓은 보다 맵고 짜게 담가서 오랫동안 발효 시킨다. 설록이니 작설이니 하는 차로부터 모과차니 유자차니 하는 것들이며,항아리에 닭고기 뼈를 넣어 두어 지네를 모은 다음에 그대로 담그는지리산 오공주며,쌀로 내린 소주에 진달래를 담가 오래 묵힌 진도 홍주며,독하지만 얼른 깬다는 영광 토주며,하는 마실 것들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황석영
  • 책장 넘어가는 소리에 마음의 양식 차곡차곡

    열 권이 넘는 문학잡지 가을호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알찬 내용의 기획특집물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먼저 ‘문예중앙’(편집위원 김정란 한기 박상우 하응백)의 ‘통일문학’ 특집이 눈길을 끈다.김윤식의 서설 ‘문학사 흐름에서 본 통일시대의 민족문학’에 이어 90년대의 북한문학(신형기)과 통일후 독일문학(김용민)이 실려 있다.‘21세기문학’(편집인 김준성 편집위원 김윤식 이청준 김성곤)도 기획특집 ‘북한 문학의 실상’을 실었다. 상당기간 북한에 체류했던 소설가 황석영의 북한문학의 어제와 오늘에 관한 대담 인터뷰와 함께 북한문학 연구에 대한 제언(서경석) 최근의 북한소설(김재용) 최근의 북한시(홍용희) 월북작가들의 작품세계(조남현) 등을 모았다. 편집위원(이재우 방현석 김인숙 권성우 유성호 박형준)의 젊음이 돋보이는 ‘작가’는 최근 우리 문학이 급격한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해석학적인 대응만이 빈번해 원로 및 중견들이 던지는 중후한 제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면서 ‘이 시대 문학에 던지는 목소리’를 특집으로 마련하고있다.이선영(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넘어서기) 구중서(오늘 문예비평은 무엇인가) 현기영(인간긍정의 문학) 강은교(이 시대의 문학,무엇이 문제인가) 등이 생각을 풀어놨다.특히 이계간지는 다른 문학지에서 보기 어려운 ‘이 작품을 비판한다’ 난을 개설해 놓고 있다. 민음사가 발행하는 ‘세계의 문학’(편집주간 박상순 편집위원 박성창 조형준 김미현)은 ‘문명의 히스테리와 공격성’을 기획테마로 잡았다.젊은 필진들이 멋진 신세계의 즐거운 악몽(김성기) 영화에 나타난 공격성과 히스테리 양상(심영섭) 병리학의 소설사(손정수) 무의식과 문명의 억압(최애영) 등을 썼다.자크 데리다의 ‘문학의 수난과열정’ 및 게리 스나이더의 글을 번역 소개하고 있다.‘실천문학’(주간 김남일 편집위원 김재용 서강목 양진오 이선옥)은 특집 ‘박완서 문학과 여성주의’와 함께 영어 공용화와 관련한 기획 ‘지구촌의 언어전쟁’을 실었다. ‘작가세계’(편집위원 장경렬 박철화 권명아)는 소설가 구효서를집중 조명하고 있으며 테마기획으로 중·고등학교의문학교육과 대학의 문학및 창작교육을 짚어보는 ‘제도로서의 문학교육’을 마련했다.‘동서문학’(편집인 전숙희 주간 김원일)은 중앙대 김근식 교수의러시아 새 문학 소개를 40여 쪽에 걸쳐 실었다. ‘창작과 비평’(편집인 백낙청 주간 최원식)은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특집이 돋보인다.100여 쪽에 걸쳐 강만길 김경원 홍윤기백낙청의 발제·좌담과 함께 교류·협력시대에 되돌아본 남북한 도시화(장세훈) 통일운동과 여성주의(정현백)의 글을 실었다.‘문학동네’(편집위원 남진우 류보선 서영채 신수정 황종연 주간 이문재)는 신작발간을 계기로 중견작가 황석영 이문구 김주영의 문학세계를 폭넓게 조명하고 있다.이어 ‘비판적 지성의 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문학및 시사비평가인 도정일 인터뷰를 크게 실었다. ‘문학과 사회’는 젊은 비평가들로 편집 동인(김동식 김태환 박혜경 우찬제 이광호 최성실)이 바뀌면서 혁신호란 이름으로 가을호를냈다.특집 ‘21세기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준비했는데 문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등 4건의 글들을 모두 편집동인들이 쓰고 있다. 한편 이번 가을호에서 대부분의 문학지들이 황석영의 신작 ‘오래된 정원’을 심도있게 분석·평가해 눈길을 모은다. 김재영기자 kjykjy@
  • ‘저서 100권 출간’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 국문과)가 최근 현장비평서 ‘초록빛 거짓말,우리 소설의 정체’를 펴내 100권째 저서출간이라는 의미깊은 기록을 세웠다.번역,편저,감수 저서까지 합하면 130권이 넘는 김교수를 찾아 책쓰기,문학작품 읽기,그리고 문학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언제부터 100권 째 책저술을 의식하게 되셨나요. 내가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고 홋데이란 일본 서지학자가 리스트를 만들어 알려줬어요.이미 90권이 넘어섰을 때였습니다.책 숫자가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았던 탓입니다.왜 시간이 많았던가.사람은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 일만 하는,자기 일에만 몰두하는,‘고약한’ 유형이며,두번 째는 자기 일은 내팽개치고 남의 일,사회에 온갖 열정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으로 이도고약한 유형입니다.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유형의 중간을 적당히 걷고 있는데 나는 첫번 째 고약한 타입으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시간이많았고 그 시간을 책보는 데 쏟았던 것입니다. ◆책에다 남달리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인상입니다만. 그렇습니다.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야겠군요.‘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학자나 비평가 ‘종자’들을 공동묘지에서 시체나 지키는 신세로 꼬집고 있습니다.책은 관이고 도서관은 공동묘지로 남이 쓴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체지기에불과하다는 것이죠.현실을 모르고,시체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공부나 하고 있는,인간 축에도 못드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꼽니다. 사르트르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스로 여기서 뛰어나오려고 이렇게 책과 관련된 것을 비하하면서 참여문학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입니다.사르트르의 말에 나를 비쳐볼 때꼼짝없이 들어맞는다는 생각,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것입니다. ◆그래도 책을 쓴다는 건 대사회적인,적극적인 어떤 태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간접적으로 뛰어나온다고나 할까.극도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나도 알고보면 ‘문제있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문학 연구가 출발점입니다.1930년대의 카프 활동은 우리의 진정한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73년에 나온 본격적인 첫 책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는데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 절대우위의 유신 시절이었습니다.금기시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으니 판금도 당하고 보안사에서 내 책을 죄 가져갔습니다.그런데 그때 나한테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이건 착각이었습니다.이론이나 학문은 어떻든 회색의 세계입니다.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생명의 황금 나무는 녹색’이라고 말할 때의 녹색과 대비되는 회색입니다.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회색에다 회색을더해봐야 회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나 책을 내는 건 아닙니다.자신의 책에 대해 더 말한다면. 내가 쓴 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비평사 연구 같은 학술적인 것,창작품에 대한 현장비평 즉 평론,그리고 학술 예술 문학 방면의 기행 등입니다.나는 본래 어려서 작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국문과에 가야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와 대학 국문과에 갔습니다.그러나 대학은 학문,과학하는 곳이었습니다.잘못 온 것이죠.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때려치우고 연구의 길로 나섰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창작은 못하고 중간적인 비평을 하게 됐고,창작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많은 기행문을 썼습니다.나름대로 유려한 문장을 실컷 쓰고자 했습니다. ◆책을 많이 썼다는 사실보다 남의 글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면.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본업이죠.지난 25년간 소설을 주로 해서 새로발표되는 작품은 거의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어왔습니다.왜 이렇게 열심히 읽어왔나,꼭 직업 상의 이유 뿐일까.아까 말했듯 시간이 많아 투자를 많이 한 것이 한 이유가 되고 또 하나는 문학 창작 작품에는 뭔가,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작가는 평범한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 결코 비범하다거나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는어떤 의도가 있는데 신기한 것은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처음 의도한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작가도 모르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문학작품이 인간과 세계를 읽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며이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매료당해 소설을 끊임없이 읽었다고할 수 있습니다.작가는 보통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가치가 있고 나아가 인류의 유산이 됩니다.작품 속에 내가필요로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내 스승인 것입니다. ◆거기서 찾은 의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통속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문학은,우리 문학은 ‘인간은 벌레가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인간의 기품,인간성,인간다움을 강조하는 것인데 우리 역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벌레 취급을 받아오곤 했습니다.이데올로기 분단 계급 문제의 와중에서 싸우고 죽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온 예가 수두룩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 문학은 위대합니다.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지키는데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반공 이데올로기,기관원 시대나 유례없는 경제발전 속에 숱한 노동자가 벌레같이 희생되어 온 노사문제의 시대에 벌레가아니다라는 명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왔습니다.황석영의 ‘객지’가 그렇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동구가 붕괴되고 역사의 종말이 운위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 문학도 달라져야만 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94년에 나온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에서 뚜렷해지는데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가 아니라 이제 ‘인간은 벌레다’가 됩니다.여기서 벌레는 인간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제한했던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확장의 개념입니다.인간은 이제 연어고 철새고 메뚜기고 게놈인 것입니다.세계문학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우리 문학의 이런 조류를 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비평을 학문의 일분야라고 할 때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말한 ‘학문은 예술과 달리 언제가 뒷사람에게 추격당한다’는 말만큼 시사적인 것은 없습니다.누구 작품은 어떻고 저떻고 하고수많은 현장비평을 했던 나로서 비평은 ‘남을 창찬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고 정의내립니다.이 말에 대들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땅처럼 굳건합니다. 김재영기자 kjykjy@. *약력. 김윤식교수는 1936년 경남 진영에서 출생해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71년과 80년 일본에서 연구했다.62년 ‘문학방법론서설’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 신인상(73년) 대한민국 문학상 문학평론상(87년) 등을 수상했다.평론가 김현과 ‘한국문학사’를 공동집필한 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와 ‘근대한국문학연구’를 냈으며 80년대에는 평전쓰기를 주력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동인 연구’ ‘이상 연구’ 등을 냈다.‘우리 소설과의 만남’ ‘현대소설과의 대화’ ‘한국소설의 표정’ 등 현장비평서 외에 ‘한국현대문학사상론’ 등 문학사상사서도 저술했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3)낯선 땅에서

    *우연히 맛 본 '홍탁' 오감 뒤흔든 맛의 혁명.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속담이 퍼지게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유래가 있다.생물학적으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되,현지 사람들 말에 의하면 홍어는 ‘되다만 물고기’라고 한다.즉 물고기와 파충류의 중간치기라는 것이다.오래 전에 홍도에 갔을 때 섬 주위를 배를 타고 돌아보다가 물 밑 저 아래로 지나가는 거대한 물고기를 본 적이 있었다.그것은 거의 돗자리 한 장만한 크기였는데 유유히 물 밑으로 헤엄쳐 지나갔다.아마도 가오리일 거라고 뱃사람이 말했다.하여튼 가오리와 홍어는 얼핏 보아 구분이 잘 안간다.아마도 바닷 속 생물중에서는 한통속일 거라고 생각한다.홍어는 대개 방석 한 장만한 크기가 제일 맛있다.다시 ‘홍어 거시기’ 이야기로 돌아가서 홍어를잡으면 암놈과 수놈은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난다. 수놈 홍어는 암놈에 비하면 헐값이고 쳐주지도 않는다.실제로 찜해 놓은 것을 먹어보면 암놈은 지느러미 부근이나 속뼈가 흐물거리고오돌오돌 씹히건만 수놈의 것은 뻣뻣하고 딱딱해서 발라내야만 한다. 그리고 살 맛도 부드럽고 쫄깃하지 못하고 어딘가 퍽퍽한 느낌이다. 사가는 사람이야 겉모양만 보아서는 어느게 암놈이고 수놈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이 때에는 생선을 뒤집어 배 아래쪽을 보면 된다.물론암수의 성기가 다르기 때문이다.아니,물고기에 성기라니.홍어는 다른물고기들처럼 난생이 아니라 태생이다.따라서 다른 물고기들처럼 암놈이 알을 낳으면 그 주위에 정액을 뿌려서 수정 시키는 게 아니라직접 교미를 통하여 수태하고 새끼를 낳는다.어부들이야 그러지 않겠지만 중간상인들은 홍어가 들어오면 배를 뒤집어 살피고나서 수놈 홍어의 ‘거시기’부터 얼른 떼어낸다.암놈과 같은 가격을 받아내려는속셈에서다.그래서‘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되어 버렸다.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의 맛 중에 ‘목포 홍탁’을 제일로 친다.칠십년대 초반엔가 우연히 ‘홍탁’을 맛보고 진저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무슨 날고깃점 같은 것을 두툼하게 썰어 내오고,그와 크기가 비슷하게 돼지고기 삶은 것 몇점이 곁들여졌는데,묵은 김치가 찢어 먹기 좋도록 썰지도 않은 채로 한접시 따라 나왔다. 술은 주전자에 넘칠 듯 가득 들어있는 탁주 막걸리였다.상대방의 하는 짓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 우선 날고기 비스무레한 것에 돼지 삼겹살을 겹쳐서 손으로 찢은 김치에 둥글게 싸서는 입 안에 넣었다.한 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 올라오는 듯한 개스가 입 안에 폭발할 것처럼 가득찼다가 코를 역류하여 푹 터져 나온다.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같다.그러고는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쭈욱 들이켠다.잠깐 숨을 돌리고나면 어쩐지 속이 후련해진다.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말 그대로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이들 홍어,돼지 삼겹살,묵은김치를 전라도 사람들은 ‘삼합’이라고 부른다.‘홍탁 삼합’을 처음 먹는 사람들은 어찌나 독한지 입천정이 홀라당 벗겨져 버리기도한다. 이 지독한 별미는 홍어를 발효 시켰기 때문이란다.싱싱한 홍어를 사다가 그대로 뒤란 두엄더미속에 던져 둔다.다른 생선이나 육류 같으면 대번에 썩어 문드러질텐데 두엄 더미 속에서 사나흘 삭으면 홍어는 적당히 발효가 된다.살은 아직도 먹음직한 선홍색이다.이것을 두툼하게 썰어서 자연 그대로 먹기도 하고 얇게 저며서 고춧가루 섞은소금에 찍어 먹기도 한다.그뿐 아니라 찜을 하여도 맛이 독특하다.발효시킨 홍어찜은 날 것 보다는 덜해도 개스는 여전해서 코를 탁 쏘는 맛은 여전하다.삭힌 홍어를 갖은 양념하여 다른 물고기 찜을 하듯이 뭉근하게 쪄서 내는데 살과 뼈를 모두 함께 먹을 수가 있다.잔뼈가많이 들어있는 지느러미께는 마치 중국요리의 샥스핀처럼 부드럽고아작거리는 맛이 그만이다. 그냥 가자미처럼 잘게 썰어서 갖은 양념과 채썬 무에 미나리 등속과 버무린 홍어무침은 흔히 경조사의 주요 음식으로 나온다.충청도에서도 홍어찜을 쳐주는데 발효 시킨 것은 아니다.도회지 사람들, 특히서울 사람들은 거의가 삭힌 홍어를 처음 먹을 때에는 ‘다시는 먹지않겠노라’고 혼자서 속으로 은근히 결심을 하지만,십중 팔구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슬슬 조심하면서 먹게되고 한번 맛을 들이면 아예요즈음 말로 ‘마니아’가 되어 버린다.제법 맛을 아는 고참이 되면홍어찜을 먹다가 더욱 냄새가 고약한 홍어애를 서로 먹겠다고 다투게된다. 옛날에도 홍어는 가짜가 많았다.흔히 조기를 말린 굴비가 그렇듯,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굴비를 영광 법성포에서 말린 것이 영광 굴비이듯이 홍어도 흑산도에서 잡은 것이 진짜 노릇을 하는 셈이다.흑산 홍어는 지느러미에 부드러운 가시가 있고 몸빛이 조금 더 진하고 검붉은 기가 도는데 살이 단단하고 차지다고 한다.뾰족하게 솟아난 코를둥글게 구부려 보면 다른 홍어는 쉽게 부러지지만 흑산 홍어는 유연하게 구부러질뿐 부러지지 않는다. 요즈음에는 흑산도는 물론이고 인근 서해에서 홍어가 잘 잡히지 않으니 진짜배기 흑산 홍어는 부르는게 값이라고 한다.그래서인지 저 남반구의 반대편쪽에서 잡힌 칠레산 홍어가 흑산 홍어로 둔갑을 하게끔 되었다.외국산 홍어는 날개살의 뼈를 씹어보면 딱딱하고 거세어 대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그래서 부드럽게 하려고 온갖 조리법에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회는 살만 저며내니 그렇다치고 통째 찜으로 낼때에도 잘 삭히고 오래 쪄내면 구별이 안되기도 한다. 요즈음 진짜 홍어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주는 시정의 뒷말이 있다.모모 당의 원로 되시는 이가 진짜 흑산 홍어를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어느 음식점에서 홍어를 먹어 보고는 자신있게 ‘이건 진짜’라고 점수를 매겼다.그는 한 고장 출신으로 홍어를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자랑하려고 포장해달라며 다시 한 접시를 주문했더라고 한다.사정을 알게된 주방장이 급해졌는지 달려나와 속내를 털어놓는데 진실을 밝히자면 ‘이건 가짜’라는 것이다.즉 아무리 높은 어른도 구해먹기가 어려워졌다는 농담일 것이다. 내가 해남 가서 처음으로 후배를 사귀어 선물을 받은 것 두 가지가있으니 그중 첫 번째가 ‘어란’이다.작은 항아리에 무슨 훈제 소시지 같은 것이 채곡채곡 들어 있었다.큰 아이가 아직도 해남 토박이인 그를 부를 때면 동섭이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살구 아저씨’라고 부르는 연유가 있다.해남 내려가서 자리를 잡았던 집 안에 수백년묵은 느티나무와 동백나무가 있었다는 얘기는 나왔는데 백 오십여평남짓한 마당 안에 또한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가지가휘도록 살구가 열려서 초여름만 되면 내 아이들이바구니 가득 따고는 했다.동섭이는 병원 집 장남인데 도시에 나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뜻을 잃고 낙향해서 집안 일을 거들던 청년이었다. 그가 집에 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내 살구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아서 농담 치고는 좀 괴이쩍게 생각했더니 한참 뒤에 내가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성님이야 유명한 사람이고 나는 촌 구석 사람인디 금방이사가뿔면 저놈들이 내를 알것소.내가 이렇게 해둬야 낭중에 날 기억하지 않것소,하는 것이 그럴듯한 그의 대답이었다. 황석영. @
  • 南北 방송교류 “방송사간 한건주의 경계해야”

    남북 방송교류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방송사간의 지나친 경쟁에 따른 한건주의식 제작 태도인 것으로 지적됐다.또 앞으로 방송프로그램의 교류는 물론 방송기술의 호환성과 디지털TV방식 등에 대해서둘러 논의돼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24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개최한 ‘남북화해시대 통일을 위한 방송의 역할’이라는 토론회에서 하종원 선문대교수와 정길화 MBC PD는 공동으로 ‘남북 방송제작의 바람직한 모델연구’라는 논문을 내놓고 이같이 주장했다.이 논문은 방송교류 현황과 문제점,향후 과제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했다.이 토론회는 남북이서로 선입견을 해소하고 본격적인 교류 때 발생할 사회문화적 충격을완화하는 데 TV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마련됐다. 우선 하 교수 등은 북한 관련물의 제작환경은 정상회담을 기점으로크게 나아졌다고 평가했다.KBS1이 기획하고 조선중앙TV가 촬영한 ‘북녘땅 고향은 지금’(15∼18일 방송),MBC 제작진이 직접 북한에 들어가 촬영한 ‘현미 남보원의 이산가족 상봉’(14일 방송) 등이 단적인 사례라는 것.KBS1은 다음달 12일 추석을 맞아 백두산∼한라산∼서울을 잇는 삼원 생방송을 준비 중이다. 특히 역사 문화 풍속 자연 등을 소재로 한 다큐에 있어 북한은 새로운 보고(寶庫)로 떠오르고 있다.이산가족에 관한 휴먼다큐,여자 마라톤 선수 정성옥과 유도선수 계순희를 다룬 북한판 ‘성공시대’ 등이 가능한 기획으로 제시됐다.하 교수 등은 “다큐는 지상파방송이 아닌 독립 프로덕션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로 꼽혔다.지난 22일 북한조선국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의 합동공연처럼 공연을 하고 그 실황을 방송프로로 제작하는 방식은 인적·기술적 교류를 동시에 가능케 한다는 것.드라마 분야에서는 박경리의 ‘토지’,황석영의 ‘장길산’ 등이 공동제작에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거론됐다.애니메이션에서는 현대아산이 북한 아동영화창작소와 장편 애니메이션 ‘구름을벗어난 달처럼’을 진행하고 있는 등 협력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남북방송교류에서 한건주의,실적주의 또는 상업주의에 의한추진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지난해 12월 MBC와 SBS가 열흘 차이로북한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연 대중음악공연은 대표적인 한건주의사례라는 것이다. 아울러 과다한 제작비용,법규 등도 걸림돌이라고 이들은 말했다.현재 방송교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국가보안법,특수자료취급지침 등에 따라 자유로운 접촉이 크게 제한돼 있다.우리측 뿐만 아니라북측의 개정도 필요한 사안이다. 프로그램에 관한 이같은 논의와 함께 프로를 만드는 하드웨어에도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특히 곧 시작될 지상파방송의디지털TV방식에 대한 논의는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방송교류는 북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방송교류는 남북한 동질성 회복이라는 대의를 지니고 있는 데다,다채널 시대에 대비한 콘텐츠 개발과 제작비 절감 등을 통한 남북한 영상산업의 발전 등에 긴요한 만큼,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추진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이날 토론회에서는 ▲북한관련 보도의 반성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주창윤 방송진흥원 책임연구원·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동서독 통일방송 10주년이 주는 교훈-통일 이후 사회통합과 방송의 역할(김광호 서울산업대교수·이우승 한국방송진흥원 책임연구원)등의 논문도 발표됐다. 전경하기자 lark3@
  • 황석영씨, 동국대서 명예졸업장

    동국대는 오는 25일 열리는 후기 졸업식에서 소설가 황석영(黃晳暎·57·본명 黃秀英)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황씨는 지난 70년 이 학교 철학과 3학년을 다니다 중퇴했으며,장편‘어둠의 자식들’ ‘장길산’ ‘무기의 그늘’ 단편 ‘삼포가는 길’ ‘한씨연대기’ 등을 발표하며 30년간 활발한 문단 활동을 펼쳐왔다. 김경운기자 kkwoon@
  • 남북이산상봉/ 北방문단 삼원가든 만찬 표정

    서울 방문 이틀째인 16일 밤 북한 방문단은 남측 이산가족들과 함께서울 신사동 삼원가든에서 가진 합동만찬에서 한 잔씩 권한 술에 거나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들썩이며50년 만의 상봉을 자축했다. 이산가족들은 시장함을 잊어버린 듯 서로에게 음식을 떠먹여주며 가족애를 과시했다.식사 도중 못만난 가족들의 소식을 접하자 목이 메어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주최로 열린 만찬에는 오후 6시20분쯤 남측 가족들에 이어 오후 7시쯤 북한 방문단이 입장했다.만찬 음식으로는 양념갈비와 냉면,식혜,과일 등이 준비됐고 백세주와 맥주,콜라,사이다등 술과 음료가 곁들여졌다. ■북에서 온 김옥배씨(62)의 어머니 홍길순씨(87)는 “네가 어릴 적에 새우를 좋아했는데 많이 먹이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하자 김씨는 “엄마 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새우튀김을 먹어보고 싶다”며울먹였다. ■인민배우 박섭씨(74)는 만찬장 좌석에 앉자마자 “시설이 참 좋다. 음식 맛도 좋은가”라며 동생 박병련씨(63)에게 물었다.이에 동생 박씨는 “이 집이 서울에서 가장 큰 갈비집”이라면서 “서울이 원래불고기로 유명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원산병원 내과과장 홍삼중씨와 원산진료소장 이봉순씨 등 북에서온 방문단 7명은 “우리는 모두 원산 출신”이라며 “북에 돌아가더라도 서로 연락하고 의지해서 한 형제처럼 살자”며 즉석에서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반세기 만에 동생 문병칠씨를 맞은 누나 정선씨는 “자주 만나는것은 좋으나 바깥 음식만 대접하다 보니 입맛에 제대로 맞을는지 모르겠다”면서 “다음에는 편하게 집에서 대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좋겠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의 영웅시인 오영재씨는 “북쪽 작가동맹 소속 작가들이 ‘남조선에 다녀오면 소주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면서 소주를 주문한뒤 ‘50년 만에 만난 동생들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동생들과 건배했다.오씨는 “황석영씨가 방북했을 때 술을 마시며 친해졌다”고 소개했다. 특별취재단 **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2)낯선 땅에서

    *농군집서 맛본 해남 별미 보리.매생이국엔 흙내음이. 해남은 공기는 물론 햇빛과 바람부터가 달랐다.아무리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볼에 닿으면 살랑대며 어루만져 주는 듯했고 햇빛은 마치석양이 그렇듯이 약간 비껴서 내리 쪼이는 것 같았는데 풀과 나무와꽃이며 땅이 제 색깔을 제대로 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 온 뒤의 풍광은 더욱 투명해서 느끼한 유화가 아니라 묽게 채색된수채화로 아슴프레하게 그린 듯했다. 밤이면 댓잎이 서걱대고 댓가지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왔고 비가 오나 하여 내다보면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미리 작정하고 찾아 내려간 터이라 나는 슬슬 농민들과 접촉을 시작했는데 이들이 힘을 얻으려면 읍내 중간층들의 두터운 후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읍내에서 내가 사귈 사람은 일단 관리들과나이 든 사람은 빼고 학교 선생이나 의사 약사 아니면 대학을 나와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향하여 자영업을 하는 삼십대의 사람들을 정하였다.촌에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언제나 술 한 잔이 매개였는데 그래서 벼라별 것을 다 먹어 보았다. 농민들과의 접촉은 주로 장날에 이루어졌다.읍내에 장이 서면 주위의면과 리에서 농민들이 장을 보러 나오고 그들은 우리 집을 방문해서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도 빌려 보곤 했다. 나중에 시인 김남주나 전국 농민회 의장을 지내게 된 정광훈 형이며 동화작가 윤기현이 내 서재를 사랑방 농민학교로 만들어 장날마다 학습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집에서 대충 점심을 나누어 때우곤 하였는데 점점 많아지는 회원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방문자는 먹을 거리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정이 돈독해졌다. 내가 기현이를 알게된 것은 우연히 우슬재 넘어 어느 개척교회를 방문했을 때였다.어느 젊은 농민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처음에는 뒷전에서 무심코 듣고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자리가 끝난 뒤에 그에게 어디서 그런 동화를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되물었다.‘동화가 뭣이다요?’ 하여튼그가 책에서 읽은 건 아니고 그냥 농사짓는 틈틈이 ‘아그들에게보탬이 되는 이야그를 머릿속으로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나는 그에게 그런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일렀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그에게 맞춤법이며 원고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얼마 안가서 그는 어느 잡지의 동화 현상공모에 당선 되었다.그의 첫 번째 동화 ‘개똥이’는 나중에 노래쟁이 김민기가 노래극으로 재구성해서 유명해졌지만.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전혀 낯설지만 대단히 맛갈스러운 것을 먹게되었다.서울에서 반도의 서쪽 끝자락인 전라도까지 천릿길이라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보리국이다.보리국이라면 무슨 보리 곡식으로 국을 끓이는가 할테지만,천만의 말씀이다.보리는 다 알다시피 전 해 가을에 벼를 베고 추수를하고나서 다시 갈아 엎은 뒤에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추위와 눈보라에 시달리며 싹을 틔운다.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올 보리 농사 풍년 들것네!’하고 얘기한다. 새 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밭두렁에는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싹이 고개를 봉긋 내민다.바로 이 때에 보리를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먼저 쌀뜨물을받아 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 ‘애’라고 부르는 홍어의 내장을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보리는 된장에 무쳐서 맛이 배게두었다가 넣고 끓인다.아마도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있을 보리와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내음이배인 것 같았다. 국거리를 따진다면야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들 모두가 해장감으로도맞춤한데 그중에 매생이국이 있다. 매생이는 아주 여리고 부드러운해초다.톳이나 파래는 나물로 무쳐 먹고 그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감태는 장을 만들고 김도 장을 만든다.이들 모두가 해초인데 거의 김처럼 여린 매생이는 향기와 감칠 맛이 그만이다.조금이라도 더럽혀진바다에서는 자랄 수가 없으니 매생이는 남해의 맑은 연안에서 조금씩나온단다. 매생이국은 다시물을 내어 마늘과 무를 넣고 푹 끓여서 밭여내어 맑은 국에다 매생이를 넣고 살짝 끓여 낸다.너무 끓이면 아예녹아서 연약한 매생이가 물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거의 죽처럼 부드럽게 된 것이 제대로 된 것인데 입안에 호물딱 넣으면 저절로 녹아국이 되는 느낌이다. 장날에 읍내의 시장 모퉁이로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이른바 ‘세발낙자’를 함지에 산채로 담아 팔고 있다.세발낙자라고 하여 무슨 다리가 셋이 달린 낙지인 줄 알기가 십상인데 발이 가늘고 몸통이 작은어린 낙지를 말한다.어리고 작기는 하여도 방금 갯벌에서 꼬챙이에패어져 나온 것들이라 흡판의 힘 세기가 보통이 아니다.여기 사람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에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전에 언제나 잘못먹으면 죽는다는 엄포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는 ‘요 얼마 전에’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숨이 막혀서’ 죽는 광경을 목격했노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세발낙자를 먹을 때에는 우선 대가리를 잡고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로 낙지의 발가락들을 죽죽 훑어내린다.그러고나서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서 두 손으로는 연신 낙지 발을 훑어내리면서 씹어먹는다.씹는 동안에도 흡판들이 간지럽게 볼따구니 안쪽과 혀에 간질간질 들러붙는다.도회지에서야 칼로 잘게 썰어놓은 산낙지 회를 먹는것만도 무용담꺼리가 되지만 세발낙자 먹기는 그야말로 엽기적으로보인다. 올림픽 때던가 국제 펜 클럽 모임 때에 수감된 문인들 석방시켜 보려고 해외 문인들과 몇 차례 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누군가 짖궂게도 어찌하나 보려고 산낙지 회를 시켰다.그들이 소스라치던 얼굴이 생각나서 지금도 웃음이 난다.미국 회장이던 수잔 손탁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먹어 보고는 연신 맛있다고 했다.수년 뒤에 뉴욕에서 만났을 때에도 다시 그때의 낙지 얘기를 꺼낼 정도로 기억에 선명했던 모양이다. 이 세발낙자를 국으로 끓인 것이 목포의 저 유명한 연포탕이다.연포탕은 무와 양파와 마늘을 넣고 푹 끓이다가 맑은 국물에 어린 낙지를넣고 살짝 끓여 낸다. 파를 쳐서 먹는데 시원한 국물 맛이며 발갛게익은 어린 낙지의 살이 오돌오돌 씹히는 것이 술국으로도 그만이다. 낙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와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 홍어를 빼놓을수가 없다.아니,홍어는 전라도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으뜸의 먹을 거리이다.경조사에서 홍어는 고기붙이 보다도 더욱 중요한품목이 된다.누군가 잔치에라도 갔다가 상에 홍어가 보이지 않으면그 집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투덜대고 홍어가 빠지지 않았으면 ‘잔치가 걸다고’ 만족해 한다.전라도 속담에 ‘만만하기는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욱박지름을 당하면 항의조로나오는 게 이 말이다. 황석영.
  • 황석영씨 이산가족 교환상봉 즈음 책 2권 출간

    “얄궂게도,태어나서 지금까지 격변의 현장에 꼭 있게 되는 팔자였다”고 말하는 황석영씨(57)가 책 두권을 새로 시중 서가에 꽂았다.그의 북한방문기인 가자 북으로,오라 남으로(이룸 펴냄)와,‘황석영의세상살이 이야기’라 부제를 붙인 아들을 위하여(이룸 펴냄).‘가자…’는 그가 투옥돼 있던 94년 석방대책위원회에서 펴냈다가 그의 요구로 절판된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다시 간추린 것이고,‘아들을…’은 98년 3월 석방후 2년여 동안 신문 잡지 등에 실어온글과 대담들을 모은 것이다. 워낙 이야기를 몰고다니는 사람이라 별명이 ‘황 구라’라고,그를 아는 문사들이 농반진반 던져온 얘기는 영 허튼소리가 아니었던 듯싶다(소설가의 원형이 ‘이야기꾼’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불쾌해하지 않는 별명이란다).전쟁후 두번째 극적으로 이뤄지는 남북이산가족 교환상봉에 즈음해,그로서는 뭐라 한마디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점이다. 분단상황으로 말미암아 꼼짝없이 10여년의 ‘사회봉사’(89년 평양방문과 이후 망명,수감생활 등을 그는 이렇게 부른다)를 해야 했던작가가 아니었나. “국면전환 시점이라 그런지 내 방북기를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답디다.그래,졸고를 새삼 끄집어낸 겁니다.투옥돼 있는 동안 나왔던 책이 오탈자가 너무 많기도 하고 해서 출판을 중단시켰었거든요.그동안 이렇다할 방북기가 따로 나왔던 것도 아니고 해서요”10여년전에 쓰여진 글들(‘오라 남으로…’)은 그러나 신통하게도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특별히 원고를 손볼 이유가 작가에겐 없었다.“통일시각이 조금은 달라져 있지만,당시에 내가 여러 자료와사람들을 접하며 읽어낸 북한사회의 삶과 꿈은 지금도 여전히 변치않고 있기 때문”이라고,그는 앞질러 소회를 밝힌다. “남과 북을 다 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작가의 방북기는 내용얼개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1부에서는 89년 3월18일 방북을 위해중화인민공화국 민항기에 몸을 싣던 순간부터 북녘현장을 돌아본 순간의 절절한 사연과 나아가 작가의 통일소망을 담은 글들을 정리했고,2부에서는 방북 이후 해외체류 시절의 심경을 그대로 풀어내놓았다.이 책이 현재진행형 르포 형식으로 입담좋은 소설가적 면모를 보여준다면,‘아들을 위하여’는 다분히 사변적이다.한 주제 아래 작심하고 기승전결을 다듬어간 게 아닌,사면후 순간순간 자유에 환희하며 여기저기 선보인 조각글들은 속살같은 작가의 내면을 훨씬 더 깊이 엿볼 수 있어 반갑다.작가적 현실인식을 위해 종횡무진 활강하는 폭넓은 관점이 책 한권속에 통째로 포획된 것같다. 어둡고 치열했던 80년대를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그는 그 지점을 흘러간 옛노래처럼 흘려넘기는 아들세대들이 안타까웠다.“젊은 친구들에게 정치적으로 정당했던 그 시절 친구들의 입장을 전달해주고 싶었던 거지요”대담글을 빌려 그는 자신이 소설과 인연을 맺은 계기나 개인사적 이력들을 새삼 소개한다.그의 개인사가 그대로 현대사 인식의 한 부표가 될 수 있다는,대단한 자신감의 발로임에 틀림없다.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을 거쳐 서울 영등포에서 유년을 보내고 베트남전을 참전한 후 돌아와 부대낀 유신독재와 광주항쟁.그러고 보면 62년 문단데뷔 이후 그는 현대사의 맨앞줄에서 한발짝도 물러날 수 없었던 작가였다.‘객지’,‘장길산’,올 봄의 ‘오래된 정원’에 이르기까지 저작 이면의 후일담같은 사연들도 들려준다.북에 친정을 두고 일찍 홀로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기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애절한 어머니,범어사 행자승이 되기도 했던 청년기고뇌의 흔적들을 그의 육성고백으로 듣는 일은 그닥 흔치가 않다. 80년대의 잃어버린 이름표를 달아주는 작업을 그는 직설화법으로 하지는 않았다.젊은 날의 고뇌를 함께 나눴던 시인 김남주,독일체류기간 동안 누구보다 가까이서 다독여준 윤이상,문익환 목사 등 지금은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편지글을 빌려 나지막히 불러볼 뿐이다(감옥에서 보낸 세통의 편지). 지금,양각으로 도드라지게 들리는 대목은 아무래도 그가 편견없이 제시하는 남북문화교류 방안이나 통일관쪽이다.“(남북문화교류는)남한의 상업적 유행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민족적’이어야 하고,품위와격조에서 남한사회를 대표하는 ‘예술성’이 있어야 하며,나아가 문화교류가 길게는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의식성’이 담겨야 할 것이다”실제 격앙됐을 때 툭툭 던지는 그의 말투처럼,격문같이 입바른 소리도 빼놓지 않았다.“우리가 한때 인생을 바쳐 사랑했다던 ‘민중’은 오늘 놀랍도록 성장했건만 우리는 자신이 꿈꾸었던 진정한 개혁의주체를 이루는데 실패했다.가난했지만 뜨거웠던 벗들이여,우리 다시한번 그날로 돌아가자”라고. 충남 예산의 덕산온천 가까이에 작정하고 틀어박힌 그에겐 요즘 시간을 쪼개 달려들고픈 ‘잡일’들도 많다.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젊은 문학도들과 입씨름 해보고 싶은 것도 잡다한 소망 가운데 하나다. 인터뷰 말미에 “이제 시간 좀 그만 뺐어줬음 고맙겠다”며 농삼아다그치는 그가 목하 넋을 빼고 써대는 글은,‘오래된 정원’에 밀려마무리되지 못했던 장편소설 ‘손님’.우리 굿 열두거리 형식의 전개양식을 빌린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올 안에 만날 수 있을 것같다. 황수정기자 sjh@
  • 이산문학상에 황석영씨 ‘오래된 정원’ 선정

    고 김광섭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제12회 이산(怡山)문학상 수상작으로 소설가 황석영씨의 ‘오래된 정원’이 선정됐다. 지난 4월 출간된 이 작품은 80년대 이후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한국사회와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근간으로 해 세계사적 변화를 배경으로 젊은 두 남녀의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석영씨는 “수상 통보를 받았을 때 마침 수백개에 이르는 각종 문학상에대해 뭔가 한마디 하려던 바로 그날이었는데,수상을 순순히 수락하고 뭔가따뜻한 느낌이 가슴에 번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는 소감을 밝혔다.도서출판 문학과지성사가 제정한 이 상의 시상식은 오는 10월 20일 열리고 상금은 500만원이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1)낯선 땅에서

    내가 전라도에 내려가서 십 년이나 살았으니 이사 다니기를 동네 마실 다니듯 하던 나로서는 꽤나 오래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청소년 시절에 전라도의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씩 도시가 답답해지면휘익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곳이 전라도였다. 칠십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전라도의 시골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데가 많았다.정답고 포근해 뵈는 초가집이며 토담과 돌담으로 이어지는 고샅길이며 왕대숲과 남도에서만 자라는 동백,석류,수선화,무화과,오죽,시누대,배롱나무들이 탱자울 넘어 작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그리고 수려한 가지를 늘어뜨린 붉은 소나무들이 늘어선 곳에 이끼 얹은 기와를 올린 옛집이 한 두 채씩 있었다. 대전 논산을 지나 도계를 넘어 벌써 전주에만 가도 이런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아무데나 이를테면 버스 차부 모퉁이에 있는 작은 주막엘 가보아도 서화가 걸려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런 집 뒷간엘 가도 작은 산수화나 사군자가 걸려 있었다.주전자로 막걸리를 파는 장터 앞의 선술집에서도 따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곁들이 안주로 꼬막무침에 생선토막에 나물에 묵에 술국에다 나중에는 수박 두어 쪽까지 나온다.그러니 남은 안주가 아까워서 한 주전자 더 시키고 그러면 안주가 다시 나온다.꼭 한 잔씩만 하자고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안주 맛에 이끌려 지지벌겋게 거의 만취가 되어서 술집을 나서게만든다. 비빔밥이니 콩나물국밥이니 하는 것들이 진작에 어느 도시에서나 흔해졌지만 옛날 전주 콩나물 해장국은 조금 달랐다.나는 어떻게 된 것이 글쟁이 보다는 그림쟁이들과 잘 어울려 다니던 편이었는데 그들은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고 술 또한 잘먹는다.그래서 걸핏하면 술잔이 나르고 주먹이 올라가는 자리가 되기 일쑤이건만 술자리 하나는 언제나 질펀하다. 콩나물 해장국은 왕멸치로 국물을 내어 통통하고 실하게 자란 콩나물을 넣어 간을 따로하지 않고 맑은 채로 끓이는데 내오기 직전에 달걀 흰자위를 풀어 넣어 준다.노른 자위가 섞인 채로 덩어리가 된 채로 그릇의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요즈음 식은 텁텁해서 맛이 없다.뚝배기에 한 그릇씩 끓인 국이 상에 올라와도 아직 보글보글 끓고 있다.끼끗한 육젓 새우젓이 하얗게 따라 나오는데 이것을 조금 넣고 국물도 넣어 간한다.반찬은 김치와 깍두기인데 어떤 이들은 깍두기 국물을 국에 넣기도 한다.나는 그냥 맑은채로 먹는다.속풀이 한다고 식물성으로만 말갛게 먹기에는 아무래도 슴슴한지 장포를 찢어 내놓는다.요즈음 시중에서 장조림을 성의껏 내는 집도 있지만 장포라야 맞는다.쇠고기 홍두깨살이나 대접살을 삶아 포를 떠서 굽는다.양념장을 고루 발라서 다시 한번 굽고 두들기고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양념이 속까지 배도록 약한 불에 구워서 잘게 찢은 다음에 잣가루나 깻가루를 뿌린다.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때에 또 한 가지 곁들여야 할 것이 있다.바로 해장술인데 진하게 걸른 막걸리에 흑설탕을 넣어 한소끔 끓여서 뜨거운 채로 사발에 내다 준다.국밥을 먹는 사이 사이로 이 해장술을 마시면 온몸이 후끈해지고 땀이 나면서간밤의 숙취로 무둑하던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진다. 전북 전주 남원 지방의 음식이 다양하고 맛깔스런 것들이 많아서어느 것부터 얘기를 해야할지 모를 정도다.고들빼기나 무소박이 더덕김치 같은 것들은 여러 문인들의 입담에 오르내리거니와 추어탕이며 오리탕이며 용봉탕이며하는 것도 있고,특히 상이 모자라서 겹쳐 놓고 비워지는 순서대로 다시 늘어 놓아야 하는 한정식은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어떻게 장사를 할까 싶을 만큼그 맛과 인심이 남도다웁다. 어떤 이는 곳곳의 서화와 한정식의 풍요로움이 지주 문화의 잔재라고 약간의 비아냥을 섞어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일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 치레에 치중하는 것은 역시 중인의 것이다.감영이 있던 데나 군영이 있던 곳,또는 상단이 있던 고장에는 먹을만한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서울에서도 오래된 전통 여관에서는 아침에 숙박비에 포함된 밥상을 차려 주는 데가 더러 있었다.내가 남도 쪽을 돌아다니던 시절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시골 읍내의 여관에서는 아침 밥상을 들여주었다.대개 책상반에다 국과 밥,그리고 조치라고 하는 찌개 한 가지에 생선이나 고기반찬에 마른반찬,나물,간장,고추장,젓갈 등속을 정갈한 사기 그릇이나 유기에 담아 내왔다.정겨운 것 한 가지가 있으니 작은 접시에 날달걀 한 개를 담아내오는 것이다.밥을 반쯤 먹고나서 남은 밥에 달걀을 깨어 넣고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다. 그야말로 집에서 먹던 가정식 백반인 셈이다. 상차림에도 격식이 있어서 칠첩반상이 기본이었다.밥과 국에 김치 한 두가지 찌개나 찜이 나오고 첩에 들지 않는 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등이 있고 숙채,생채,조림,구이,전유어,회,마른반찬의 일곱가지가 칠첩이다.구첩반상은 위에다 나물,구이,조림 등의 숫자를 늘린 것이며,교자상은 여러 사람이 연회를할 적에 먹는 겸상이다.한정식 집에서 내던 상이 바로 이것이었으니 그야말로 상 다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가짓수가 많았다.구절판과 신선로와 소 닭 돼지 고기와 해물 어패류가 함께 한다.낮것상이라고 하여 점심에 원반에다 간단히 차리는 독상도 있다.그런가 하면 술과 각색 안주를 차려 놓는 주안상이 있다.구절판에 산적에,편육,회,냉채,찜,신선로,전유어,마른 안주 등속이 올랐다. 내가 칠십년대 중반에 어딘가 농촌 지방으로 가야겠다고는 진작에 작심을 하였으나,전라도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데에는 그 해 여름의 여행길 때문이었다.우연히 스케치를 하러 가는 화가 친구들을 따라 나섰다가 처음으로 강진이라는 곳에 이르렀다.물론 정약용의 유배지 만덕산 다산 초당에도 청자 가마터에도 가보고 너른 갯벌과 탐진강 줄기도 바라보았다.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옛날 읍내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대숲을 스치는 바람이 소슬하였다. 그래서 당장에 갯가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맞춤한 집을 찾다가 그만두고 옆고을인 해남으로 가서야 사정에 맞는 집을 구하여 꿩 대신 닭이라고 그 고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아니 해남이 닭이라니,말도 안되는 소리였다.비록 읍내에서 바다가 멀기는 하여도 아늑하고 풍광 좋기로는 해남이 더욱 옛고을다웠다. 식솔들을 버스로 보내고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 앞자리에 앉아 먼지나는비포장 길을 달려서 우슬재를 넘는데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저 아랫편에 업드린 해남 읍내와 들판이 보였다.내가 찾아낸 집은 고래등 같은 고가의 마당안에 무슨 더부살이 집처럼 따로 낮은 돌담을 두른 남도식의 일자집이었는데 어른 셋이서 팔을 둘러야 겨우 닿을 만큼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가 마당 귀퉁이에 서있었고 역시 사람들 말로 삼백년 묵었다는 동백나무가 있었다.동백나무는 전에 살던 이가 너무 잎이 무성하여 잘랐다는데 그 아래 둥치에서 새 순이 돋아나 오히려 분재나무처럼 둥글고 탐스럽게 자라났다.느티나무와 동백은 무슨 부부처럼 사이 좋게 아래 위로 서있었다.
  •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심사평 공개 기명제로

    종신심사위원제와 중간심사평 공개 등으로 문단 내외에 큰 물의를 빚어온조선일보의 새 동인문학상 심사제가 다소 수정될 전망이다. 어느 심사위원의 견해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심사대상 작품에 대해 ‘현실비전이 하나도 없다’는 식의 중간 심사평을 신문지상에 공개했던 조선일보측은 문단의 반발이 크자 심사평 공개는 계속하되 누구의 의견인지를 밝히는 기명제로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또 ‘종신제의 어감이 거부감을 주며탈락·잔류 등 중간심사 결과에 대한 표현을 여과없이 내보낸 것을 문인들에게 사과한다’는 해명서를 조선일보 지면에 반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인문학상 제도를 대폭 바꾼 조선일보는 지난달 14일 종신 심사위원들의 2차 독회 결과를 지면에 발표했었다.당시 작품 ‘오래된 정원’이 심사대상에 올랐던 작가 황석영은 며칠 뒤 ‘조선일보의 문학상 심사에 대한 몇가지 생각’이라는 글을 언론사와 인터넷 사이트에 띄웠다.그는 이 글에서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잣대 위에 올려놓고,공개된 신문지상에서,불공평하게도 의견을 내놓은 자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은 채,내용과 별 상관도 없는 말 몇 마디로 탈락이니 잔류니 하고 치워버리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부여한 권리인가”라면서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었다. 김재영기자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0) 낯선 땅에서

    *짜고..맵고..투박하고..'경상도 맛'은 원색적. 공양 법회에 참례하지 않고 부엌에 달린 찬방에서 보살님들과 밥을 먹으면더욱 격식없이 이것 저것 해먹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두부를 만들 때에도 삶은 콩을 맷돌에 가는 일을 도우면 따로 순두부 찌개를 해먹었고 독상을 받는 큰스님들 밥상을 준비할 제 갖가지 특식을 얻어 먹곤 했다. 내가 특히 맛있다고 기억하는 건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먹는 쌈밥들이다.상추 쌈이야 늘 먹던 것이니까 아예 말할 것도 없고 너푼너푼하게 잘 자란 곰취 잎에 된장 쌈을 해서 먹는 맛은 그 싱그러움이며 쌉쌀한 뒷맛이 그만이다.나중에 백두산 갔다가 양념장을 쳐서 싸먹던 야생 곰취의 맛은 잊을 수가없다.아예 밥을 참기름과 깨소금에 잘 버무려서 한입만큼의 주먹밥을 만들어,살짝 데친 취 잎으로 싸서 김밥처럼 한덩이씩 먹는 맛도 좋다.도토리나무잎을 데쳐서 싸먹기도 하고 깻잎을 쑥갓과 어울려서 고추장 넣어 싸먹기도한다.생 다시마를 데쳐서 향그런 쑥갓과 더불어 싸먹는다.뒤란의 호박잎을따다가 껍질을 대충 벗기고 찜통에 살짝 쪄서 풀기만 죽여서,마늘을 얇게 썰어 곁들여서 막된장을 넣어 싸먹는다.배추나 양배추 쌈은 여름날 집에서도흔히 해먹던 것이고,특이한 것은 고구마잎도 쌈밥을 해먹을 수 있다.이것은잎을 끓는 물에 아주 삶아낸다. 조금 쓴 맛이지만 머위 잎도 먹을만 하다.잎을 데쳐 내는데 쌈장과 함께 풋고추 쑹덩쑹덩 썰어낸 것과 곁들여 싸먹으면 쌉쌀하고 매운 맛이 어우러진다.근대는 적당히 자란 것은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지만 웃자란 잎들은 역시끓는 물에 슬쩍 데쳐서 싸먹어도 좋다.아욱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큰스님의 심부름으로 오래간만에 부산 시내에 나갔다.신부님이나 스님이 대개 어슷비슷한데 아마 군인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외출 나와서 세상과 만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영화 구경을 하는 일이고 자장면을 사먹는 일이 그 두 번째다.호주머니가 가벼운 탓도 있겠지만 아무도 동행한 사람이 없이 혼자라 그 두 가지 일 외에는 별로 할 일도 없는 셈이다. 내 기억으로는 ‘오케스트라의 소녀’라는 흑백 영화였는데,늙어서 일자리를 잃은 노인 악사들로 교향악단을 꾸린 소녀가 실제 인물로 출연하는 스토콥스키를 찾아가 지휘를 부탁하고 드디어 화려하게 데뷔한다는 내용이었다.영화를 보고 눈부신 극장 앞 광장으로 몰려 나오는데 인파 속에서 내 얼굴을아는 이를 만났다.큰 자형의 가까운 친구되는 이였다.그는 내 승복 차림을보고 놀라서 손을 잡으며 물었다.너 어느 절에 있느냐,느이 어머니가 지금눈물로 세월을 보내신다,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한꺼번에 묻는 것이었다.나는 부산 근방에 있다고 겨우 둘러대고는 달아나듯이 그이와 헤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한 보름 되었을까.그날도 아침을 먹고나서 법당에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를 불렀다.누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산문을 나서고 오솔길을 지나 절집 어구에 상가가 늘어선 곳까지 나가 보았다.바로 앞쪽에 기념품 상가가 있었는데 그 앞에서 이쪽을 향하고 서있는 여자가 보였다. 멀리서도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자세히 보니 모친이었다.어머니는 대뜸 내 손을 잡고 눈물바람이었다. 그렇게 되어서 산문을 나선 그 길로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산 국제시장 들러서 사복과 모자 하나를 사서 승복 벗어버리고 옷을 갈아입었다.부산역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거의 일 년만에 불고기 백반을 먹었는데 맛이 있다기 보다는 누린내 같은 고기 냄새가 역했던 것 같다.아마도그동안 풀과 푸성귀로 오감이 바뀌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어머니는 자형 친구로부터 승려가 된 나를 부산에서 보았다는 말을 듣고,부산에 당장 내려와 어느 곳에 무슨 절이 있는지 수소문하여한군데씩 찾아 다녔다고 한다.드디어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만나게 된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그이는 냉정하게 거절하더라는것이다. 이미 출가한 사람이라 아무리 모친이라 하여도 만날 수 없습니다. 저는 홀어미이고 아들이라고는 그것만 믿고 살아왔습니다.비록 제가 기독교인이지만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가엾은 일에 대하여는 다 같겠지요.제 아들을 돌려주십시오. 어머니가 그렇게 울며불며 사정을 하니 광덕 스님은 한참이나 묵묵히 앉았다가 제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만나는 보세요.아들이 어머니를 따라가면 어머니 자식이 될 것이오 만약에 절로 돌아오면 부처님 자식이니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 그랬는데 나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두 말할 것 없이 손 잡고 따라서 집으로돌아왔으니 속세의 아들로 되돌아온 셈이다.이제는 모친이나 광덕 스님이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데 나는 시방 누구의 자식인고. 나와 경상도 땅의 인연은 어려서 전쟁 시절에 대구로 피난 가서 소학교 다니던 데서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군대생활까지 보내게 되었다. 경상도의 음식을 들라면 우선 짜고 맵고 투박하며 원색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다른 지방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 부산에 갔을 적에 이른 아침에 아낙네들이 ‘재칫국 사이소!’를 외치며 창밖을 지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재첩 조개를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끓여낸 국은 개운하고 속풀이에 좋았다.요즈음 점심참에 먹기 좋지만 우뭇가사리 묵을 채썰어서 콩가루와 갖은 양념을 치고 식초 섞은 냉국을 부어서 먹는 우무냉국도 속이 씨원해진다.대구의 따로국밥은 예전에는 대구탕이라고 불러서 생선 대구탕과 혼동이 될 정도로 유명했다.연변에서 수십년만에 귀국했던 소설가 김학철 노인도 친지에게 옛날식으로 대구탕이 먹고싶다고 했다가 생선 대구탕 집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낭패를 보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부산의 고래고기 회나 포항 지방의 과메기는 술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과메기는예전에는 청어를 썼지만 요새는 청어가 드물어져서 꽁치로 대신한다.꽁치를바닷바람에 꾸득꾸득하게 말려서 그대로 찢어 먹는데 길게 찢어 돌돌 말아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전에는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그대로 바다에 버리던 생선이었는데 요즘에 와서 맛을 내게된 것 두 가지가 있으니 쥐치와 아구가 그것이다.그중에서도 아구는 아구찜이라는 독특한 마산 요리가 개발되어값 비싼 생선이 되어 버렸다.아구찜은 콩나물과 미더덕이라는 멍게 비슷한갯벌 생물과 만나야만 완성이 된다.매운 양념에 톡톡 씹히면서 터지는 미더덕과 뼈다귀채로 씹는 아구 맛이 입맛을 확 돌게한다.경상도의 막장은 찌개로 좋고 집장은 가지 무 오이 장아찌를 함께 담그기에 좋다.골짠지는 다른고장의 무말랭이 장아찌 비슷한데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검은 깨와 강엿과 갖은 양념에 매콤 달콤하게 무쳐서 항아리에 담가 두고 겨우내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늦봄에 꺼내 먹는다. 황석영.
  • 인터뷰/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

    진보성향의 언론학자로 ‘안티조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과 김동민교수가 교수·문필가 등 지식인들과 함께 ‘조선일보 기고·인터뷰거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김 교수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은 언론개혁운동의 시작”이라면서 “점차 일반독자들로까지 서명운동을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조선일보문제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개인차원에 그친 나머지,가시적인 조직화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다.최근 소설가 황석영씨의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선언’이 지식인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그러나 특정인의 ‘선언’은 자칫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고 개인적인차원 정도로 축소돼 비쳐질 수도 있다.‘안티조선운동’의 연대의 틀을 구축하자는 의도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 대상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지식인 그룹 가운데 일간지 기고 경험자나 그 수준의 필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그 가운데 기존 조선일보 기고자나 잠재적 필자를 1차대상자로 꼽고 있다. ◆그동안의 성과나 반응은? 2일 현재 100명 정도가 서명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물론 초기 서명자는 대개 대학교수들이지만 점차 대상자를 법조·언론·여성·예술·사회운동계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효과적인 서명을 위해 열성자를 중심으로 각 분야별 책임자를 정해 서명 확산작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향후 활동계획은? 1차 서명결과와 이 운동의 취지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후 2차 서명운동계획을 추가로 밝힐 예정이다.아울러 조만간 서명자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를 발족한 후 다양한 이벤트를 벌여나갈 계획이다. 김 교수 일행은 오는 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건물 2층의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정운현기자
  • 새 국면맞은 안티조선 운동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안티조선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상의 비평에 이어 오프라인에서의 서명운동과 각종 이벤트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안티조선’의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갈수록 확산추세에 있으며 일각에서는 ‘안티조선운동’이 언론개혁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지난 98년 11월 조선일보의 최장집교수 사상검증 관련보도가 단초가 됐다.문제의 기사를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를 가리켜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청부살인업자’,월간 ‘말’의정지환 기자는 ‘마조히즘적인 정신분열증상’이라고 비판했다.이후 두 사람은 이 기자측으로부터 피소된 후 재판에서 각각 700만원,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네티즌들이 이들을 돕기 위해 사이버상에서 성금모금에 나선것이 안티조선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 1월초 문을 연 안티조선운동의 사이버 활동무대인 ‘우리모두(www.urimodu.com)’는 7개월쯤 지난 2일 현재 방문자가 50만명에 이르고 있다.이 사이트는 ‘죄선(조선)일보를 말한다’ 등 조선일보와 관련된 항목이 주류를이루고 있으나 큰 틀에서는 ‘언론개혁의 공개토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한 언론학자는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라는 특정사 하나를 겨냥한 것이라기 보다는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국내 보수신문 전체에 대한 반대운동”이라고지적한 바 있다. ‘우리모두’가 역점을 둔 첫 사업은 온라인 서명운동.재불 문화비평가인홍세화씨가 이한우 기자의 글을 비판하면서 한겨레에 기고한 ‘나를 고소하라’라는 글이 발표된 후 진중권씨 등이 ‘우리모두’에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수가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우리모두 측은 지난 7월7일자 한겨레신문에 서명자 명단을 전면광고로 실었는데 이후로서명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것.특히 이 광고가 나간 후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중진작가인 박태순씨가 동참의사를 밝혀 서명운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현재까지 서명에 동참한 문인은 5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우리모두측은 이와 함께 다양한 이벤트성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우선 조선일보의 불법 판촉운동에 대한 감시강화를 비롯해 조선일보 불매운동 가두서명 및 스티커 부착,조선일보 기고자 및 광고주에 대한 항의전화,그리고 ‘나를 고소하라’의 서명자 3,000명 기념 서명자대회 등을 준비중이다.이들을모두 안티조선운동의 ‘투사’로 키운다는 생각이다. 또 안티조선운동이 ‘조선일보 취재거부’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지난 6월21일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모임은 프레스센터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조선일보 취재거부’를 행사장에 공개적으로 써붙였다.이에 앞서 5월 30일 소설가 황석영씨는 한 공개강좌 자리에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었다.이같은 ‘조선일보 취재·인터뷰거부운동’은 급기야 지식인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지난달부터 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일장신대 신방과 김동민 교수는 “현재 진보성향의 학자·문인들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있다”면서 “장차 각 분야로 대상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언론개혁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언론개혁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강준만 교수 등 비판자들로부터호된 질타를 받아온 참여연대는 지난달 27일 열린 상임집행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한 관계자는 “현재 구체적인 방침이 결정된것은 없으나 상집위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이상 정책위원회(위원장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에서 내부토론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최근 국회에서언론발전위원회 구성을 검토하고 있어 언론개혁문제는 올하반기에도 언론계내외의 핫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운현기자 jwh59@
  • “나를 고소하라” 온·오프라인 공동전선

    ‘나를 고소하라’‘조선일보 취재·인터뷰 거부운동’ 등 안티조선운동에서명한 지식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진보성향의 지식인 그룹이 주류를 이루고있는데 선도그룹은 언론학자들이다.그 면면을 보면,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인물과 사상’(월간·계간)을 통해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운동’을 전개해온 전북대 강준만 교수를 비롯해 김동민(한일장신대)·김서중(성공회대)·임동욱(광주대)교수 등이다.원로 언론학자인 한양대 리영희 교수도 여기에동참하고 있다. 학계에선 사회학 전공자들이 주로 서명에 참여했다.강정구(동국대)·김동춘(성공회대)·조희연(성공회대)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이 소속된 진보적 학술단체인 민교협·학단협소속 교수들도 일부 서명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인들 가운데는 시인 김정란씨(상지대 교수)와 노혜경씨가 초기 멤버.소설가 황석영씨는 5월말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를 선언한데 이어 자신의 작품이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후보작에 뽑힌 것을 거부하는 글을 발표했다.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 박태순씨는 “75년 조선·동아의 기자 강제해직 당시 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회가 조선·동아에 대한 기고거부를 선언한 적이 있는데 아직 그 선언이 유효하다”는 변과 함께 동참했다.이밖에 시인 허만하·최영철·변영태씨,소설가 김곰치·전명숙씨,문학평론가구모룡·김경복씨 등이 서명했다. 언론계에선 오동명(전 중앙일보)·정지환(월간 말)기자,법조계에서는 김칠준·김형태 두 변호사가 ‘나를 고소하라’에 서명했다.언론·시민단체는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참여연대 손혁재 협동사무처장 등이,그리고 재불 문화비평가 홍세화씨,자유기고가 진중권씨가 서명에 참가했다.‘우리모두’의 한관계자는 “서명운동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진행중”이라면서 “조만간 서명자대회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네티즌 칼럼] 인터넷 ‘파이’와 지식인

    이 시대에 지식인들의 값어치는 얼마쯤 될까? 강준만 홍세화 김규항 진중권노혜경 백낙청 리영희 황석영….같은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적고 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그 이름들 옆으로는 무언가 큰 힘이 관류하고 있는 듯하다.실천하는 지식인들은 가만히 강당에 안주하거나 입과 글을 아끼는 지식인들과는 다르다.그들은 동료를 귀찮을 정도로따라 다니며 태도 표명을 요구하고 가끔씩은 은근히 양심을 찔러보기도 한다. 70·80년대에 지식인은 거리에서 독재권력과 맞부딪쳐 싸웠다.하지만 그후많은 지식인이 권력에 동승하면서 이름값을 하지 못한 채 기성사회에 안주하고 해묵은 것들에 매몰되기 일쑤였다.새 천년이 시작된 지금도 지식인 사회의 표면은 그렇게 발전적이지 못한 것 같다.대학은 여전히 밥그릇 싸움이나하고 있고,언론계도 냉전과 정치권의 이해에 걸려 제목소리 대신 이미 갖고있는 권리를 앞으로도 계속 누리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선 이미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이 땅에 새로운 지식인의 시대가 오고 있는 점이다.그동안 한국의 지식인은 고립되고흩어져 있었다.구심점이 될 하나의 수단을 가지지 못했다.학회나 협회도 이익집단으로만 기능했다.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용틀임이 일어나고 있다.예전에는 지식인이 발언하면 단순히 경청하거나 분개하는 수준에 그치던 국민이지금은 먼저 결집해서 지식인을 불러내고 있다.그것은 인터넷으로 가능하게됐다.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는 지식인들은 강당에 처박혀 있거나 이론의 정체가역력한 지식인들에게 논쟁을 하자고 말을 시킨다.인터넷으로 출발하는 논쟁은 오프라인으로 넘어가고 다시 온라인으로 되돌아온다.또 네티즌의 평가가잇따라 내려진다.이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지식인은 경쟁적으로 인터넷으로들어오고 있다.네티즌에게 호명받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네티즌에게 일방적으로(?) 도덕성과 용기를 검증받고 있다.새로운 신용이 형성되고 변방에서 새로운 힘이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지식인의 장기는 제 잘난 체이며,특기는 분열하기이고,잘하는 짓은 혼자 놀기다.그러나 새로운지식인 시대에는 지식인들은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수밖에 없게 됐다. 왜냐 하면 인터넷 파워라는 파이는 혼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예전에는 언로를 독점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권리를 본래부터 갖고 마음대로 쓰면서 사회의 진로를 제 마음대로 농락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지만 이제는 네티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것이다. ‘안티조선’운동도 바로 그 연장선 상에 있다.특정 언론의 논조가 한국 사회의 미래 비전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네티즌이 거대 권력기관이 된언론사를 매일 비판하고 있다.예전 같았으면 외면하고 말 일이었다.제풀에쓰러지겠지 하며 덮어두면 그만이었다.지식인조차 외면했다.그러나 이제는조선일보가 반응하고 지식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인터넷 인구는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2002년 후 IMT2000이 일상화되면 3,500만 인구가 24시간 인터넷 세계의 가족이 된다.파이는 거대해지고 있다.네티즌들은 도처에서 기성 지식인들을 향해 도발하고 있다.과거의 신문,잡지,방송 등을 장악했던지식인 권력은 약화하고 있다.그 대신 네티즌이 개척해가는 모럴,유행,교양이 들어차고 있다.그 대열에 함께 나선 지식인들로 인터넷은 더욱 달궈지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인다.이 태풍과도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종전의 지식권력들은 인터넷에서 함께 배우고 각성하거나 아니면 도태하고 처참하게 낙오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새로운 인터넷시대에 지식인은 곧 네티즌이기 때문이다.인터넷에 들어와서 시그널을 보내지않는 과거의 독점적 지식권력은 이제 패퇴한다.또한 과거의 목소리를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세상의 진전 앞에 무참하게 망신을 당할 것이다.이젠 네티즌으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drkim@simplexi.co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첫 가출길 절집서 먹어 본 쑥밥엔 매캐한 향내... 내가 절집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열 아홉 살 무렵이었다.어느 잡지의 신인상을 받고나서 오랜 숙원이던 고등학교 자퇴와 가출을 동시에 해냈다.나중에대학에 가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때에 유치장에서 만난 부랑 노동자와 간석지 공사장엘 찾아갔던 것은 본격적인 방랑이 되었지만. 하여튼 첫 가출은 거의 한 해가 걸렸다.동행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전여행비슷한 출발이었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오랫동안 국토를 누벼 본 적이 없었다.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는데 부둣가에 서자마자 배를 타고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겠다는 강열한 소망에 들떴다. 동행과 청주 대구 마산을 거쳐서 진주 어름의 농가에서 보리 베기를 하며 밥을 얻어 먹다가 중국집에서 -그때는 철가방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상자로 배달을 했는데- 자장면도 배달하다가 빵공장에서 빵 목판을 나르는 일도 했다. 청주에서는 아이스케키 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얼음통을 메고 거리로 나가 팔기도 했다.칠북이란 작은 면에 갔다가 야산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절집에 불목하니로 들어앉게 되었다.우연히 주지 스님과 이야기 해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산하겠다는 말이 나와 버렸던 것이다.스님은 거의 달포 가까이 나를 절에 두고 관찰해 본 다음에 일봉서신과 함께 부산으로 보내 주었다. 내가 절에서 난생 처음 먹어 본 음식이라면 쑥을 넣어 지은 밥과 엉겅퀴로끓인 된장국이다.쑥밥은 그냥 산야에 널린 쑥을 뜯어다가 콩나물밥이나 무밥처럼 넣고 지은 밥을 양념장을 쳐서 비벼 먹는다.역시 들판에 지천인 엉겅퀴를 캐다가 냉이국처럼 된장과 들깨를 넣고 한소끔 끓일 뿐인데 입안에 싱싱한 풀향기가 가득찬다.푸른 물이 든 쑥밥의 매캐한 향내도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내가 끝내 맛을 들일 수 없었던 것은 산초라는 이상야릇한 향내가 나는 열매를 가지 채로 간장에 담근 장아찌였다.열매의 알알이 약간 여물게 씹히는데 입 속에서 톡톡 으깨지면서 독특한 향내를 진동 시킨다.나중에 이 열매나 잎을 가루로 내어 미꾸라지 추어탕에 쳐서 먹던 것이 생각났다. 보살 할머니가 정성을 들여서 가죽잎을 말리던 것도 생각난다.너푼너푼한 가죽나무 잎을 따서 땡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찹쌀로 풀을 쑤어서 마른 나뭇잎에다 정성껏 바른다.앞 뒤에 찹쌀풀을 발라서 채반이나 자리에 널어 놓고 다시 말린다.이것을 저장해 두고 먹을 때에 기름에 튀겨낸다.마치 튀긴 미역이나 다시마처럼 아삭거리고 고소했다. 스님은 나를 동래 범어사에 있는 그의 도반이던 고광덕 스님에게 보냈다.광덕은 나중에 대학생불교연합의 지도법사를 거쳐서 불광이라는 잡지도 만들던분이다. 그는 당시에 범어사의 원주를 지내고 있었다.조실은 저 유명한 하동산 스님이었다.편지를 찬찬히 읽어 보고나서 그는 나를 동산 스님에게로 데려 갔다. 어린 아이처럼 곱게 늙은 노스님이 나를 힐끗 보고 나서 한마디 했다. 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고 그러는고…?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묵묵히 앉았을 뿐이었다.절하고 나오기전에 한 말씀 올렸다. 갈 데가 없으면 쭉 있을랍니다. 그것이 아마 면접에 해당이 되었던지 광덕은 나를 말없이 재우고 나서 이튿날 범어사를 방문한 스님에게 붙여서 보냈다. 그것은 아마도 울산 거의 다 가서 후미진 바닷가에 있는 작은 암자였을 것이다.바로 지척에서 바위를 때리는 세찬 파도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나를 데려간 스님은 불을 때라 밥을 해라 시키더니 저녁 밥으로 밥 한 사발씩에 고구마순 나물과 시어 터진 김치에 국 한 가지로 저녁을 먹고 나서 건너가 자랜다.단칸 오막살이인 줄 알았더니 부처님 모셔 놓은 법당 마루를 지나 왼편에 길죽하고 비좁은 변소 같은 토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방은 그대로흙을 바르고 오래 되어 꺼풀이 일어난 멍석 한 장이 깔렸다. 파도 소리에 잠을 못이루고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호통소리가 들렸다.부처님에 귀의하겠다는 놈이 예불 시간도 모르고 쳐질러 잔다고 그 꼭두새벽에 나가라는 소리였다.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을 달려 와서 걷고 또 걸어서 당도한 곳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지만 쫓아내니 가방을 달랑 들고 길을 찾아 나오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걷다가 타다가하며 겨우 제 자리로 돌아와 보니 이미 끼니 때가 넘은 저녁무렵이었다.가방을 들고 산문에 들어서니 누구 하나 아는 체 하는 이가 없었다. 마침 요사채 툇마루에 얼굴 아는 동승이 앉아 있었다.그는 내가 범어사를 찾아올 제 버스에서 내려 십여릿길을 함께 걸어오며 이야기를 나눈 아이였다. 나이는 한 열 대여섯쯤 되었을까,살결이 희고 코가 오뚝하며 눈이 맑은 미소년이었다.그는 지금쯤 한소식 하고 큰 스님이 되어 있을지.내가 마루에 가서털썩 주저앉으니 그는 내가 멀리까지 다녀온 것을 모른 모양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는 동승이 빙긋이 웃었다. 문을 세 개쯤 지나야 입산이 되어요.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그가 나에게 왜 스님이 되려느냐고 물었다.나는 표를내는 건 어려서부터 질색이었으므로 이렇게 답했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데가 없어서 여기나 들어오려구 해요. 엊그제 여기서 처음 자려고 할 적에 행자 하나 들어오더니 제법 능숙한 자세로 합장하고 나서 내게 자기를 찾으려고 왔느냐는 둥 소크라테스 같은 폼을잡길래 한마디 했다.집이 없어서찾아 왔을 뿐이라고 대답했는데 동승도 그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은 집에 갈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시험은 몇 번 더 계속 되었고 나는정말 세상에서 아무 데도 갈곳이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정처를 정하여 주었는데 거기가 참선 공부의 산실인 해운대 금강원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공양의식에 참례하기 시작했다.스님들은 모두 목기로 만든 자신의 발우를 보자기에 싸서 대중방 선반에 올려 두고 있었는데 공양 때에는 그것들을 펼쳐 두고 모두 벽을 등지고 늘어 앉는다.제일 먼저 물을 받아 그릇을 씻고 밥과 국과 찬을 자기 먹을 만큼만 덜어 내어 각기의 목기에담아 공양한다. 국은 언제나 채소 된장국이고 찬은 나물 두 가지에 김치다.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기름기 있는 전붙이나 튀김도 나온다.식사를 끝내면 남은 음식물을 모두 제 뱃속으로 버린 다음에 물을 받아서 남겨 둔 김치 쪽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밥풀이며 음식 찌끼들을 말끔히 닦아내고 그 물을 마신다.그리고 다시 맑은 물을 받아헹구고 또 마신 다음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서 보자기에 싼다. 나는 머리를 깎고 계를 받기 전까지 겉 모양은 스님과 같지만 아직은 연습중인 행자가 되었다.내가 맡은 일은 주로 절집 안팎의 청소와 허드렛일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마당과 앞 뒷뜰을 쓸고 법당에서 선원에 이르기까지 비질 걸레질을 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스님들도 빨래는 각자가 알아서 했지만 각 방에 큰 스님들 밥상을 나른다거나 잔심부름 할 일도 만만치 않았다.부엌에 들어가 밥과 반찬을 만드는 일은커녕 불을 때는 일도 내게는 차례가오지 않았다. 황석영.
  • [굄돌] 동인문학상 개편 소식을 접하며

    동인문학상 개편을 둘러싸고 우려하는 마음이 생겨 비록 작은 칼럼에 나마그 소감을 적어두려고 원고를 보낸 후,소설가 황석영씨가 그 심사위원 제도를 매우 신랄한 어조로 비판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시의성을 고려하여 부득이 몇 자 수정치 않을 수 없으나 그 뜻은 본래의 내 생각 그대로이다.東仁문학상은 본래 우리의 단편소설 형성과정에서 김동인이 이룩한 훌륭한 업적과그 문학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제정된 상이다. 그런데,이번에 개편된 동인문학상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하나는,기존에 간행된 단행본 소설집에 상을 주겠다는 것,다른 하나는 종신 심사위원제를 두겠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특정 단편에 문학상을 주고는 그것을 매개로 후보작까지 아우르는 작품집 간행,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려 했음을 평가할 수 있다.문제는 후자이다.그 취지는 좋게 보아 문학상의 운영에 안정성을부여하고 그 위상에 권위를 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그러나,그렇게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종신제는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는제도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정치적인 환경 탓이 크지만 문학에서도 종신제란 거부감 내지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제도이다.하나의 ‘권력’으로 비치기 쉽다.우리의 현실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최근 5,6년 동안 문학상이 몇몇 ‘원로’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수여되면서 개개의 문학상이 갖는 특성이나 가치는 중화 내지 무화되는 폐단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우리의 경우 이런저런 이유로 문학상은 많고 상을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많지 않다.만약,특정한 문학상에 종신 심사위원이 생긴다면,여타의 문학상은 어떻게 운영하라는 것인지?마지막으로,생각이 같지 않은 분들이 동인문학상을 함께 주관하게 될 때 賞은 바람직한 문학에 대한 논의를 떠나 일종 ‘타협’의 결과로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지금껏 많은 상이 그래왔듯이 말이다.문학에는 다른 문단인도 있고 독자도 있다. 문학상의 면모를 일신하겠다는 마음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보다 신중한 고려가 있었더라면 하는생각이다.상을 주관하는 주체나 상을 심사하는분들이나 모두. 방민호 문학평론가
  • 황석영씨 “사이비 권력놀음” 강력 비판

    소설가 황석영씨가 조선일보 주관 동인문학상의 새 심사제를 문단 편가르기와 문인 줄세우기의 ‘사이비 권력놀음’이라고 강렬히 비판,문단 내외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황석영씨는 ‘조선일보와 동인문학상 심사에 관한 몇가지 생각’이라는 제목의 이메일 성명을 지난 18일 밤 대한매일등 5개 일간지에 보내왔다.200자원고지 12장 분량의 이 성명에서 황씨는 최근 조선일보가 “몇몇 작가 평론가들을 ‘종신 심사위원’으로 선정해서 ‘공개적’으로 심사”하기로 한 동인문학상의 수상작 결정방식에 대해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통박했다.이어 그는 이같은 사이비 권력놀음을 “당장 걷어치워라”고 일갈하면서 이 상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동인문학상을 주관하는 조선일보사는 올해 상금을 5,000만원으로 올리고,심사위원을 종신제로 바꾼 뒤 몇 차례의 중간 심사독회 내용을 신문에 공개해왔다.종신 심사위원은 박완서김주영 이청준 이문열(이상 소설가) 유종호 김화영 정과리(이상 평론가) 등 7명이다.황씨는 2차 심사독회 결과를 보도한지난 14일자 조선일보를 보고 지난 5월 자신이 13년 만에 간행한 장편소설‘오래된 정원’이 심사대상에 올라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어떤 심사위원의 의견인지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독자들에 공개된 황씨 작품에 대한 심사평은 “읽힌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그러나 사실 확인에 오류가 있다.세계 비전이 하나도 없다” 등이었으며 ‘추천작 잔류’로 판정받고있다. 이와 관련,황씨는 성명에서 “심사위원들 면면을 살펴 보니 문단에 나온 지 38년이 되는 내게는 선배보다는 후배가 많았다”며 다소 사적인 유감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수정된 제도의 ’숨은 의도’와 관련해 조선일보 자체를 기탄없이 맹박하는 데 성명의 큰 부분을 할애했다.황씨는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경제·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문화면에서는‘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좀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한 뒤 “어려운 시기에는 공격과 터무니없는 폭로로써 ‘권력’을 누리고,이제는 또다른 방식으로 이를 유지해보려 하는 것인가? 죽을 때까지 심사를 한다면 그 위원들과 조선일보는 앞으로도 수십년간불변할 것인지.앞으로 수십년 동안 수많은 미래의 심사 대상자를 동시에 관리하려는 것인지”라고 의구심을 표명했다. 황석영씨는 이 성명이 일부 신문에 보도된 뒤인 20일 본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조선일보의 중간심사평 공개 행위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면서 “상금올리기,종신 심사위원 등을 합쳐볼 때 ‘줄세우기’ 의도 혐의가 짙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사이비 권력놀음” 각계 반응 황씨의 글과 관련 조선일보 관계자는 “종신제를 앞으로 수십년간 불멸할 것으로 본다든지, 한국문단의 줄세우기 의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뜻과너무 다르다”면서 “작품은 발표되는 순간 공적인 예술자산이다.수상을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후보로 거론되는것조차 거부한다고 주장하는것은 일종의 월권”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종신 심사위원의 일원인 소설가 박완서씨는 황씨가 성명에서 “나는 변변치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이상 욕을 보이지 말아 주기를 부탁”한다며 심사에 동참한 동료 문인들에게 엄중 항의한다고 밝힌데 대해 “지금 즉답할 수 없다.정리된 견해를 곧 글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또 한 심사위원으로서 황씨의 성명을 읽어보지 못했다고 밝힌 평론가 유종호씨는 “심사대상을 거부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라면서도 “이번 상 심사를줄세우기 식으로 몬다면 한국에 무슨 문학상이 남아있을 수 있겠느냐”는 말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장인 최인석씨는 “권위있는 외국의 문학상에도 종신 심사위원제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이번 심사제도가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런 뜻에서 황씨의 글도 이유가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황씨의 성명은 동인문학상의 새 심사제보다는 최근 일부에서 부상하고 있는‘안티 조선’ 분위기와 관련해 한층 주목될 것으로 관측된다.황씨는 성명에서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는 침묵과 수혜의 원죄의식으로 동참하게 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로서 막강한 언론권력을 누리고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위해서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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