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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작곡가겸 대금연주자 김영동 씨

    [이사람] 작곡가겸 대금연주자 김영동 씨

    “풍각쟁이로구먼!” 1973년 어느 날 선술집에서 시인 김지하는 연극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대금연주자 김영동을 소개받자 대뜸 이렇게 일갈했다. 김영동은 선배인 김지하가 조심스러워 속으로만 대꾸했다고 한다.“글쟁이로구먼!” 선술집에는 우리 식의 마당극을 염두에 두고 판소리에 빠져 있던 임진택과 탈춤운동에 한창이던 채희완도 앉아 있었다. 글쟁이와 탈놀이패, 광대가 한데 어울린 자리에서 풍각쟁이란 당시 민중문화운동에 뛰어든 ‘먹물’ 예술인들에게는 자부심이자 존칭인 셈이었다. ●70년대 김지하·임진택과 문화운동 하지만 김지하를 중심으로 한 동아리에서 김영동의 존재는 조금 특별했을 것이다. 축제 기획가로 활동하는 임진택이나 부산대 교수 채희완 등이 책에서 읽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해가며 기능을 익혀나갔다면, 김영동은 처음부터 전문연주자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여년, 인사동의 밥집에서 만난 김영동(54)씨는 ‘이론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명함에는 ‘세계생명문화포럼 경기 2005 조직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다. 그는 9월에 열리는 포럼의 취지를 “문화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환경파괴와 전쟁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에 발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나간 몇년 동안 “우리 음악정신의 원류를 찾고, 음악과 음악이론을 연결하는 구체적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생명문화포럼도 민족 정통사상을 구체적으로 공부하여 세계적 보편성을 띨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내자는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음악감독 맡아 그는 성공한 음악가다. 그가 작곡가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서울대 국악과 2학년 시절인 1971년. 오태석이 연출한 전무송의 모노 드라마 ‘이식수술’의 음악을 맡았다. 이듬해부터 ‘초분’,‘태’로 잇따라 무대음악가로 존재를 부각시켜 나갔다. 1974년 허규 연출의 ‘한네의 승천’은 출세작이라고 할 만하다.‘한네의 이별’처럼 귀에 잘 들어오는 노래들이 이때부터 쏟아져 나왔다.1978년에는 ‘개구리 소리’와 ‘누나의 얼굴’ 같은 국악동요를 발표했는데, 대중적이면서도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작곡가라는 이미지를 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땡볕’ ‘태’ ‘어둠의 자식들’ ‘씨받이’ ‘아다다’ 같은 영화음악으로 이름을 날린다.‘어둠의 자식들’에 나오는 ‘어디로 갈거나’와 TV드라마의 주제음악으로 만든 대금연주곡 ‘삼포가는 길’은 지금도 음반시장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히트곡’들이다. ●음악계 질시 비웃듯 대한민국 작곡상 수상 대중적 성공은 ‘작곡을 제대로 공부하기는 했느냐.’는 음악계의 질시를 낳기도 했다. 그는 대편성 국악관현악을 위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출발점은 다름아닌 ‘오기’였다고 한다. 황석영의 ‘장산곶 매’를 소재로 한 표제음악 ‘매굿’은 그에게 1981년 대한민국 작곡상을 안겨주었다. 김씨가 처음부터 음악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피란지였던 충남 홍성 광천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용산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 입시에서 낙방한 그에게 당숙은 재동주유소 자리에 있던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를 소개했다. 그는 실기시험이 없는 국악사양성소에 필기시험만으로 합격했다.2학년에 올라가면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고,3학년이 되자 전공으로 대금을 선택했다. 인간문화재 김범수 선생의 대금 정악 소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김병호 선생으로부터 가야금과 아쟁도 배웠다. 대금 산조의 명인 한범수 선생의 아현동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김씨는 “산조를 배운 적이 없으니 흉내만 좀 냈더니 선생이 쌍골죽 대금을 내놓더라.”면서 웃었다.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정악과 민속악의 중간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라고 말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83년 독일 유학 “정말 재미없었다” 국립국악원에서 일하던 그는 1983년 독일로 건너간다.“음악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죄다 독일로 가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팅겐대학에 머무는 4년 동안 공부한 비교음악학은 “내 공부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동양음악을 대신 연구해주는 것이었다.”면서 “정말 재미없었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김씨는 ‘귀소’ ‘산행’ ‘화(和)’ 등을 펴내면서 명상음악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한 ‘화’에는 특별한 애착이 있다. 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재직하며 많은 곡을 쓰고, 또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서양악보인 오선보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데 짜증이 났다고 한다.‘화’는 오선보에 대한 반동인 셈이다. 연장선상에서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예술가의 자기중심 찾기’다. 그는 동양음악은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수(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동안 취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필생의 작업은 주역(周易)을 음악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음악이 동양철학과 협력하여 우리 식의 작곡법을 체계화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당장은 ‘쉬운 음악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악가요나 동요, 명상음악 등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구상이 있는 듯 “결과는 빨리 나올 수도,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올 가을 관현악·명상음악·동요 섞어 음악제 올 가을에는 3∼4일에 걸쳐 ‘김영동 음악제’를 열 생각이다. 그동안 만든 작품이 소품까지 100여곡. 관현악·명상음악·대중음악·동요 등을 하루씩, 혹은 묶어서 연주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할 일 많은 그에게 음악가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지 물었다. 김씨는 대답 대신 “그동안 서양음악에 손님대접을 잘 해주었으니 이제 우리 것 좀 대접해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에 우리가 찍소리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그렇지만 세상이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예술가가 흔들리겠느냐.”면서 “앞으로도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나의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엄동설한(嚴冬雪寒), 그야말로 깊은 한겨울이다. 겨우살이 짐승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채 더 이상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한껏 몸피를 움츠릴 터이며, 벌거벗은 나목들도 더 이상 수액을 얼리지 않기 위하여 한껏 중심을 뿌리에 내릴 터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으로 혹독한 추위에 맞서고 있을 때, 어디 사람이라고 다르랴. 더군다나 혹독한 추위가 비단 수은주만은 아닌, 사람살이의 여러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라면 더욱 몸피를 움츠리고 차라리 주검이듯 뿌리 밑바닥으로 잦아들 터이다. ●한겨울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여주 8경 추위며 사람살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혹독하다면, 그대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 소중한 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자.‘소풍농월(嘯風弄月)’이라는 멋스러운 말이 있다. 바람에 휘파람을 불고 달을 희롱하며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를 이른다. 어떤가, 차라리 저 바람이며 달만은 아닌 엄동설한과도 어울려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보는 것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여주에는 뜻밖에도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풍광들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여주팔경’ 혹은 ‘금사팔경’이라 하여 여주의 빼어난 풍광 8가지로, 여주 일대의 남한강을 일컫는 여강에 내려앉는 기러기, 청심루에서 바라보는 달빛,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마을의 저녁연기,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 떠있는 고깃배들의 등불, 영릉의 푸른 신록, 팔대수의 청청한 숲을 꼽았다. 과연 어느 곳에나 드맑게 고답한 기운이 서려 있어, 소풍농월의 그대를 금방이라도 감싸 안을 풍광이다. ‘여주팔경’ 중에서도 나로서는 신륵사 종소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가 없다.1980년대에 신륵사에는 원경(圓鏡)스님이 주지로 주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사흘이 멀다 하고 신륵사를 찾았다. 물론 원경 스님을 찾아서이다. 모르기는 해도 나는 자신이 지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시절이었을 터이다. 어느 때는 스님을 따라 나 또한 머리를 깎고서 단식을 하거나 혹은 한 달 넘어 머물면서 새벽이나 저녁이면 예불 대신에 신륵사의 종을 치기도 하였는데, 아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여 마침내 온누리로 퍼져가던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이라니! 처음에는 속된 중생의 손에 의하여 울리는 종소리가 혹여 삼십삼천의 뭇생명들을 잘못 인도할까 두려워 심장마저 벌벌 떨려났으나, 차츰 내 손으로 울리는 서른세 번의 종소리가 뭇생명들을 깨우고 또한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원력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다 보면 또 알랴, 어느 날 새벽에 저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어떤 무지함에도 번쩍 눈뜨게 될지. 원경 스님을 처음 대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스님은 역시 여주에 있는 흥왕사라는 절에서 주재하고 있었는데, 신륵사와는 달리 달랑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참으로 빈한한 절이었다. 절 식구 또한 빈한한 절답게 원경 스님과 벌써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 이렇게 달랑 둘이었다. 당시 작가 송기숙, 작가 황석영, 시인 조태일, 작가 이문구, 시인 이시영 등의 여러 문인들이 어울려 원주의 김지하 시인 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여주를 지나는 어름에 황석영 선배가 갑자기 원경 스님 이야기를 꺼내어, 에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고 흥왕사를 찾은 것이었다. 이미 원주에서 술이 거나해진 일행은 흥왕사에 오를 때도 아랫마을에서 한 말들이 막걸리 두어 통을 들고 올라와 대웅전 앞마당에 대뜸 술판부터 차렸는데, 송기숙 선생이 원경 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신륵사 종소리 뭇생명 일깨우고… “어이, 원경, 저 부처가 내 동생인데, 그러면 자네하고 나는 촌수가 어떻게 되는 것이여?” 그러자 원경스님이 호쾌하게 껄껄, 웃어넘겼다. “부처님 촌수야 너무 어려우니까 따지지 말고, 까짓것 저하고도 그냥 형님 아우 합시다. 형님!” “좋아, 그러면 부처 대신 아우가 먼저 내 술 한 잔 받게.” “좋지요.” 원경 스님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더니 다시 송기숙 선생에게 넘겼다. 그런 원경 스님을 대경으로 우러러보는 나에게 누군가가 귓속말로 ‘저 스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이야.’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 행여 이름 모를 새라도 근방에서 귓속말을 엿들을까 싶어서였다. 시절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야 하늘이며 땅에 대놓고 무슨 말인들 못하랴. 그러나 당시로서는 박헌영이니 공산당이니 하는 말은 무슨 비상(砒霜)보다도 더 무서운 독극물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훗날 알았지만,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은 바로 원경 스님의 어머니였다. 빈한한 절, 한 사람은 스님이 되고 또 한 사람은 그 스님의 옆에서 공양주보살 노릇을 하는 박헌영 남로당 당수의 살붙이들. 역시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도 흥왕사 시절의 원경 스님만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젖어온다. 벌거벗은 나목이듯 뿌리를 밑바닥에 깊이 내리고 숫제 주검처럼 살아온 모자에게는 사람살이가 사시사철 엄동설한이 아닌 때가 없었으리라. 소풍농월의 여주에 어찌 드맑게 고답한 맛이 뒤따르지 않으랴. 신륵사 입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로 5km쯤 달려 강천면 이호나루를 지나면 바로 목아불교박물관이라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한 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수줍게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걸구쟁이네’(031-885-9875)가 있다. 그러나 걸구쟁이네에 가기에 앞서 반드시 박물관에 들러 먼저 눈을 맑게 할 일이다. ●오신채·육류·해물 없지만 진수성찬 목아불교박물관의 목아(木芽)는 박찬수 관장의 호인데, 목조각 부문의 무형문화재 제108호인 그이가 필생으로 빚어내거나 수집한 6000여 불교 관련 작품들을 2600여평의 드넓은 터에 전시해 놓은 곳이 목아불교박물관이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야외조각공원에는 연못이며 수목들 주변에 돌이며 청동 같은 재료로 정교하게 빚어낸 미륵삼존대불, 백의관음상, 비로자나불,3층석탑 등 4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삼존대불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미륵삼존대불은 제작기법이 종전의 여느 부처상과는 달리 몸체 자체의 선을 반추상 기법으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현대적인 세련미를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인도의 석굴사원을 모방했다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건물인 전시관은 외양부터 아름답지만, 안에 있는 여러 전시품을 둘러보다 보면, 박물관장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깊은 종교적 심성 또한 무슨 향기처럼 저절로 보는 이의 가슴에 드맑게 스며온다. 걸구쟁이네는 주인인 안은자씨가 태어나서 자란 ‘걸구쟁이’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바로 인근에 있는 강촌면 걸구쟁이에서 나고 자라 마흔 나이에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주인의 순진한 인상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원래 사찰음식은 오신채라 불리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멀리 하고, 육류며 해류 따위 고기를 일체 쓰지 않은 고답한 음식이다. 오신채며 고기 대신에 스님들의 수행 중에 부족한 기름기는 깨며 콩, 부각 등으로 보충하고, 계절마다 산야에서 나오는 냉이나물, 취나물, 유채나물, 곤드레, 씀바귀, 소루쟁이, 고사리, 도라지, 머위, 근대, 곰취 등 각종 싱그러운 나물들을 주로 한다. 오이며 고추, 무, 가죽나물, 깻잎, 콩잎, 더덕, 산초 같은 여러 장아찌류에 버섯구이, 호박꼬지, 박꼬지, 산초두부, 장떡, 도토리묵무침에 된장국이며 청국장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한상 떡 벌어진 진수성찬이다. 걸구쟁이네는 사찰정식(1만5000원) 이외에도 도토리 요리도 전문으로 해서, 도토리수제비(6000원), 도토리묵밥(5000원), 도토리총떡(5000원), 도토리묵(1만원)이 있고, 각각 8000원짜리인 곤드레돌솥밥, 취나물돌솥밥, 산나물돌솥밥에, 모듬버섯전이며 장떡도 있다. 어느 것이나 안주 삼아 곡차라고 부르는 동동주 몇 사발까지 거나하게 마실 수가 있다. ●12가지 한약재 사용한 별미 돼지고기 보쌈 만일 여러 이유로 목아불교박물관이며 사찰음식이 저어된다면, 역시 신륵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북내면으로 접어들 일이다. 거기에 넓은 벌을 앞마당 삼아 무슨 사대부 집안처럼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의 형태의 ‘예닮골(031-883-5979)’이 있다.‘예닮골’이란 그대로 옛날을 닮은 마을이란 뜻인데, 얼핏 둘러보아도 뜰 안의 대청마루며 물레방아에서 가옥 뒤편의 장독대며 심지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주인 되는 이순옥씨의 섬세한 손길이며 마음씨가 쉽게 묻어난다. 예닮골의 맛은 무엇보다도 예닮정식(1만 2000원)이 우선이다. 무려 12가지 한약재를 사용하여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앤 돼지보쌈에다가 묵은 김치에 시래기를 섞고, 두부며 당면, 고기를 사용하여 커다랗게 빚은 왕만두에, 뚝배기 위로 샛노란 연꽃처럼 예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고등어조림, 동치미, 망초대, 시래기무침, 표고버섯볶음, 도토리묵, 잡채, 짜배기김치,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무장아찌, 멸치조림 등 25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커다란 상이 좁아라고 가득 펼쳐진다. 게다가 이천쌀에 못잖은 여주쌀의 기름진 쌀밥이 나오고, 끝머리에는 누룽지까지 기다리고 있다. 아니, 식사를 끝내기 전에 주인이 자랑하는 예닮주를 반드시 맛볼 일이다. 전통적인 비법에 따라 빚었다는 예닮주의 누룩냄새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이며 입에 살갑게 감쳐드는 감칠맛은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았다. ■ 전통차 손수 끓여보세요 여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미진하다면 마지막으로 신륵사 앞에 있는 세계도자기엑스포의 토야도예공방에 들러보자. 내가 즐겨 찾던 80,90년대와는 달리 신륵사 앞 넓은 강변이며 들판은 어느 새 관광지가 되어 강에는 황포돛배가 떠있고, 강변에는 보트장이며, 퍼팅장, 야영장 같은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뜻한 외양의 식당이며 숙박시설들이 또한 뒤따르고 있어, 옛날의 황량한 강변이며 들판만 기억하고 있는 나의 눈을 차라리 설게 만든다. 그런 신륵사 일대에서도 먼저 돋보이는 것은 단연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건물들이다. 생활도자전시관을 비롯하여 토야도예공방 건물이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시원시원하게 들어서 있어서 보는 이의 발길을 저절로 이끈다. 토야도예공방은 이를테면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다. 직접 도자기를 빚어볼 수 있는 ‘흙체험’에서부터 도예작가가 될 수 있는 ‘도예교실’, 아이들을 위시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흙놀이’, 전통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토야다실’까지 모두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에서 ‘토야다실’(031-884-8552)은 전통차를 다룰 줄 모르는 이에게도 본인이 손수 차를 즐기게끔 찻물을 끓이는 법부터 차를 마시고 난 후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고른 도자기 찻잔으로 차를 담아 입안에 오래 맴도는 드맑은 차향을 얼마든지 즐긴 끝에, 나중에는 도자기 찻잔도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다. 차향을 즐기고 도자기 찻잔을 챙기는 값이 불과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다. 토야도예공방의 휴무인 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지 토야다실을 이용할 수 있다.
  •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10주기를 맞아 올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사업들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윤이상 평화재단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원택 황석영 이강일)는 지난 11일 대표발기인 모임을 갖고 “새달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전체 발기인대회를 열고 3월쯤 재단을 공식출범시킨 뒤 선생의 생전 업적을 재조명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본격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민감한 현안이자 역점사업은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78)씨의 한국방문. 재단측은 “선생의 생전에 이뤄지지 못한 고국방문이 10주기에 부인을 통해서라도 이뤄져야겠기에 정부의 협조를 얻어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기록한 ‘상처 입은 용’을 재발간하고 이를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다.“영화제작건은 LJ영화사와 구두합의를 마친 상태이며,3월에 제작발표회를 가질 것”이라고 재단의 관계자는 귀띔했다. 1979년 윤이상이 직접 설립한 평양 윤이상관현악단 초청공연도 올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 관현악단은 이수자 여사와 같은 시기에 방한을 목표로 실무협상 중이다. 윤이상의 대중적 복권을 위한 대표적 프로그램은 ‘평화콘서트 전국투어’. 윤이상 작품을 테마로 한 크로스오버 대중콘서트를 서울과 지방을 돌며 개최해 ‘윤이상 붐’을 일으키겠다는 복안이다.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가 수록된 평양국립교향악단 연주의 윤이상 음반 정식발매,10주기 기념 국제심포지엄, 한국·독일·일본 3국 연주자들로 구성된 기념음악회(10월 예정), 윤이상·이응노·천상병 등 3인 작품전, 친필악보와 유품전시회 등이 다채롭게 마련된다. 재단 발기인은 각계 저명인사 29명. 윤이상의 외동딸 윤정씨를 비롯해 박재규 경남대 총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종수 KBS이사장, 원택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김민 서울대 음대학장,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납치, 수형생활을 하기도 한 윤이상은 199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연주자들이 서울~평양을 오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했다.1995년 11월3일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

    새벽 5시. 붓을 든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묵직한 고요가 찾아온다. 몇 갈래로 가슴을 후벼판다.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돌아 이내 절정에 이른다. 붓이 춤춘다. 무아지경이다. 구경꾼은 없으나 세상이 지켜본다. 불끈 솟아오른다.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한국의 색채다. 그건 원초적 본능이었다. 수십년째, 그렇게 토해낸다.3000점은 족히 된다. 개인전만 무려 46회를 열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58) 홍익대미술대학장.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 버릇이 있다. 매일 새벽 3시간 동안 붓과 내통한다. 찰나적인 테마를 떠올리기엔 새벽공기가 그만이다. 밤을 새운 적도 많다. 이런 까닭에 작업량이 가장 많다는 얘길 듣는다. 그는 1995년 이례적으로 40대에 미술협회 이사장직을 맡아 주목을 끌었다.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현재도 여전히 욕(?)먹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미술대학장 외에,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미협고문, 서울예고총동창회 회장, 홍대 총동문회 수석 부회장 등. 이달 말에는 아주 색다른, 대학배구연맹 회장직이 추가된다. 바쁜 와중에 오는 5월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2년 전에는 부인과 사별한 아픔을 겪었다. 본인의 감회도 특별하겠지만 어떤 화풍을 새삼 선보일지 주목된다. 이래저래 2005년은 제2의 그림 인생을 출발하는 이정표인 셈. 그는 “올해를 계기로 지금까지 토해냈던 분량만큼 앞으로도 3000점은 더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터뷰의 첫 말문을 열었다. 장소는 홍대 미대학장실이었다. ●배구가 좋아 대학배구연맹 회장직도 맡아 대학배구연맹 회장에 발탁된 연유부터 물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도맡아왔던 스포츠 단체장직에 미술계 인사가 발탁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키가 181㎝이다. 고등학교 때나 ROTC(학군단)시절에도 최장신이었다.”며 웃는다. 자연스럽게 배구와 친해졌다.9인제 배구팀에서 주로 중앙세터나 오른쪽 공격수를 맡았다. 홍익대에서도 배구팀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최근 홍대 배구팀이 대학배구 4강까지 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과는 달리 손재주가 아주 좋아 배구를 잘 하는 민족”이라면서 “프로연맹 출범에 맞춰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드래프트 등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림 얘기로 넘어갔다. 그동안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참으로 바빴고 고통도 많았다.”며 한숨을 내쉰다.2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을 떠올렸다. “(부인 고집으로)병원에도 잘 안 갔습니다. 우린 서로 화가생활을 하면서 부부 개인전을 한번도 못 열었지요. 올해에는 함께 열려고 했는데….” 부인은 이화여대 회화과를 나왔다. 이 학장과는 서울예고 동기동창.16살에 만나 26살에 결혼했다. 이 학장 자신이 특별한 직장이 없어 처가 쪽에서 결혼반대가 심했다. 부인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성사됐다. 장인은 4·19 당시 서울신문사장을 지낸 손도심씨였다. 부인은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화가의 길을 일찌감치 접었다. 그런, 인생의 반쪽을 위해 병바라지하고 또 먼저 보낸 아픔을 겪어내느라 공백이 길어졌다. 부인은 평소 문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소설가 박완서씨와 좀더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자주 보기 위해 박씨 자택 근처인 경기도 구리시로 집을 옮길 정도였다. 덕분에 이 학장 역시 문인들과 친분이 넓어졌다. “결혼초 먹고 살기 힘들 때 황석영씨의 소개로 현암사(출판사)에서 일감을 얻었지요. 한번은 황씨와 둘이 만리포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진 저를 황씨가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지요.” 소설가 조선작씨와는 1988년 서울신문에 연재소설의 삽화를 그리면서 인연을 맺었다. 소설가 김주영씨와도 친한 사이. 지난해 7월 화제를 모았던 ‘그림, 소설을 읽다’라는 주제로 열린 ‘소설화(小說畵)’ 전시 때 서로 짝을 지어 눈길을 끌었다. 최인호씨와도 각별하다. 가수 이장희·조영남·윤형주 등과도 가깝게 지내는 등 문화예술계에 폭넓은 친화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각계의 지인들로부터 새해 안부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부인과 死別… 아픔딛고 4년 만에 개인전 그림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원초적 본능이라는 직답이 돌아왔다. 잠자는 본능, 움직이는 본능, 울고 웃는 본능이 있듯, 그림의 본능 또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속한다는 것. 아울러 인류문명이 발전해오면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욕망,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보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그림이 그려졌다고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숨쉬는 공기처럼 온갖 일상사가 곧 그림이란다. 그렇다면 화가로서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고행의 길이란다. 춥고 배고픔 속에서도 감동을 주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즉 어느 정도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 그림이 좋아져야 성공한 화가가 될 수 있단다. 자연스럽게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회고됐다. 놀랍게도 그는 ‘수출화’(이발소그림)를 무려 7년 동안이나 그렸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양쪽 시력이 다 나빠질 정도였다. 대가급 화가로서 쉽게 토로할 수 없는 대목이어서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부친은 경북 영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부친 역시 화가가 꿈이었다. 또 중학교 때 오세영 미술선생의 적극적 권유 등으로 쉽사리 서울예고쪽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2년 때 가세가 기울어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혼 후에도 생활비가 쪼들리기는 마찬가지.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재료비는 더욱 필요했다. 결국 1973년 수출화를 그리는 회사인 ‘서울갤러리’에 들어갔다. 밀레의 ‘만종’과 같은 풍경화와 기타 인물화 등 모방과 창작, 닥치는 대로 그렸다. 하루에 6∼7점,1년에 200여점을 그릴 정도로 강노동의 연속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영화사 쪽 일도 틈틈이 했다.70년대 후반 ‘별들의 고향’과 82년 박철수 감독의 ‘들개’에서 미술 소품을 담당했다. 운이 좋아서인지 ‘들개’로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는 한편 1974년 ‘20세기 현대미술전’과 ‘제1회 서울비엔날레’ 등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닦았다.79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매년 1∼2회씩 개인전과 해외전시 등을 부지런히 열었다. 결국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었고 ‘대가’의 길로 들어섰다.47살에 미협회장을 맡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제 그림을 소장한 사람이 3000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특히 미국 쪽에는 많고요.” 요즘 1호당(우편엽서 크기) 그림가격이 얼마인지 불쑥 물었다. 그는 “죽은 후에 (가격이)비싸질지 모르니 지금은 많은 사람이 소장할 수 있도록 저렴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그래서 몇년째 호당 20만∼30만원을 넘기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피카소는 위대한 작가이고, 애정 넘치는 샤갈과 모딜니아니도 존경하는 화가”라면서 5월 전시 때에는 사뭇 달라진, 절제된 색채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장남은 미국 유학 중이고 군입대를 앞둔 차남과 함께 산다.16년째 ‘장기근속’하는 가정부 할머니가 집안 일을 맡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경북 영주 출생 ▲65년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69년 홍대 미대 회화과 졸업 ▲79년 동대학원 졸업 ▲95년 미술협회 이사장 ▲현, 홍대미대학장·동대학 회화과교수·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73년∼현재까지 단체전 및 국제전 70여회 ▲79년∼현재까지 개인전 46회 ▲주요 수상=신상전 최고상(68년), 선미술상(88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95년), 서울국제아트페어대상(2001년) km@seoul.co.kr
  • 주미대사 홍석현씨 내정 안팎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한승주 주미대사를 전격 교체하고 후임자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내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홍회장이 실제로 임명된다면 최초의 언론사 오너 출신 대사가 되는 셈이다. 홍 회장은 노 대통령의 취임 한돌을 앞둔 지난 2월14일 언론사 사장으로는 처음으로 노 대통령과 인터뷰를 가졌다. 중앙일보는 조선·중앙·동아일보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참여정부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보여줬다. 중앙일보와 참여정부의 관계에는 소설가인 황석영씨의 중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세계은행의 경제개발연구소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미국통’이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16일 밝힌 ▲미국 지식인 사회와 여론을 잘 이끌 수 있는 인물 ▲깜짝 놀랄 만한 인물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이날 출입기자들과 송년 만찬 자리에 ‘깜짝 놀랄 만한 뉴스’를 전하려고 작심하고 나온 것같다. 김 비서실장은 만찬이 끝날 무렵 최근의 개각관련 기사로 국정운영에 지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흔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어 김 비서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은 주미대사에 ‘깜짝 놀랄 만한 빅카드’를 캐치했다.”면서 “(만찬장에)나오기 전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후임 주미대사에 대해)확인했다.”고 소개했다.“(대사 내정)당사자에게 통보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사의를 표시한 한승주 주미 대사의 후임을 구상한 지 얼마되지 않는다는 점을 짐작케 하는 발언이다. 일부 수석들은 홍 회장의 주미 대사 내정 사실을 감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비서실장의 발언은 유럽순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 대통령이 자이툰 부대를 전격방문했던 것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세계적 문호 20여명 서울 온다

    오에 겐자부로, 장 보드리야르,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묵, 루이스 세풀베다 등 세계적 문학 지성들이 내년 5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서울에 온다. 지난 2000년 행사를 처음 주최한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14일 재단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5년 5월24∼26일 세종문화회관과 교보빌딩에서 열릴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는 해외 문호 20여명이 참석, 국내 문인들과 어울려 세계적 문학담론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행사일정을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과 공동주최하는 내년 포럼의 대주제는 ‘평화를 위한 글쓰기’. 해외 참가자들의 상당수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거나 해마다 수상 유력후보로 거론돼온 쟁쟁한 인물들이다.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미국 계관시인을 지낸 로버트 하스, 아프리카의 응구기 와 시옹오, 칠레의 루이스 세풀베다, 터키의 오르한 파묵, 쿠바의 레오나르도 파두라,‘붉은 수수밭’으로 알려진 중국의 모옌과 망명시인 베이다오, 헝가리의 티보 머레이 등이 그들. 프랑스의 세계적 지성 장 보드리야르,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출신의 소설가 겸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 프랑스 문단의 신화로 꼽히는 르 클레지오도 내한한다. ‘문학적 소통과 세계공동체’‘다원적 문화와 문학’‘환경과 문학’ 등 13개 소주제 아래 펼쳐질 포럼에 발제 및 토론자로 나설 한국 작가는 50여명. 김우창 백낙청 유종호 현기영 황석영 복거일 최윤 공선옥 등이 포럼, 강연회, 좌담회 등 다양한 행사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우창 고려대 교수는 “지구촌 전쟁의 원인을 짚어보고 세계평화를 위해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포럼의 취지를 설명했다. 포럼은 한국어, 영어, 불어의 동시통역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산문화재단은 해외참가자들의 초청강연을 희망하는 학회나 대학,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내년 2월 말까지 개별신청도 받는다.(02)725-5418.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올해의 예술상’ 문학분야 천운영씨

    ‘올해의 예술상’ 문학분야 천운영씨

    문예진흥원이 신설한 ‘2004 올해의 예술상’에 문학·미술·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독립예술 7개 분야에서 21개 작품이 최종 선정됐다. 문학 분야에선 소설가 천운영씨가 여성 내부에 존재하는 야수성을 치밀한 묘사를 통해 드러낸 작품집 ‘명랑’으로, 미술분야에선 ‘고난 속에서 피어난 추상전’을 기획한 오상길씨가 각각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 또 예술의 전당이 기획한 ‘갈매기’(연극 ), 김윤규 무용단의 ‘솟나기’(무용), 민속국악진흥회의 창극 ‘옥보고’(전통예술), 독립만화 웹진인 ‘악진’(독립예술)이 분야별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올해의 예술상’은 창작활동을 장려하고,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신설됐으며, 수상자 및 단체에는 최우수작품 5000만원, 우수작품 3000만원의 시상금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12월27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이어 29일부터 내년 1월11일까지 열리는 ‘올해의 예술축제’에서는 예술상을 수상한 7개 분야의 최우수작품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어지며, 홈페이지(www.artsaward.or.kr)를 통해 무료로 일반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 다음은 분야별 우수상 수상작 및 수상자. ●문학 황석영의 ‘심청’, 김혜순의 ‘한 잔의 붉은 거울’ ●미술 김인경의 ‘SILENT VOYAGE2004’, 박충흠의 ‘박충흠 개인전’ ●연극 극단 미추의 ‘허삼관 매혈기’, 극단 청우의 ‘웃어라 무덤아’ ●무용 댄스시어터 온의 ‘싸이프리카’, 안애순 무용단의 ‘원’ ●음악 강충모의 ‘강충모 바흐시리즈’,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바흐의 B단조 미사’ ●전통예술 유경화의 ‘비상을 꿈꾸며’,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의 ‘슬기둥 송년 콘서트’ ●독립예술 믹스라이스의 ‘네팔인 강라이씨의 음악다방’,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의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지금 출판가는 ‘삼국지 전쟁’

    거침없는 작가 장정일(42)이 10권짜리 ‘삼국지’(김영사·각권 8900원)를 냈다. 이에따라 출판가에 ‘삼국지 열풍’이 거세질 조짐이다. ●숨겨진 인물복원 ‘우리식 판본’ 5년여의 산통 끝에 나온 장정일 버전의 ‘삼국지’는 나름의 차별점을 찍고 있다. 기존의 ‘삼국지’들이 ‘나관중본’ ‘모종강본’ 등을 재해석한 번역판본이었다면 이번엔 영웅 중심에서 벗어나 숨겨진 인물들을 복원시켜 소설에 가깝게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대목에서다.“춘추사관, 춘추필법,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에서 벗어난 ‘우리 판본’”이라고 출판사측은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출판가 안팎의 시각이 환영일색만은 아니다.“돈벌이 기획출판”이라고 대놓고 비판의 화살을 꽂는 목소리도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유명 작가 몇몇의 삼국지가 국내 양대 메이저 출판사를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현실 아니냐?”며 꼬집었다.“기획출판에 순발력 있기로 소문난 김영사로서도 그런 계산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서점가를 평정한 대표 삼국지는 이문열의 ‘삼국지’(민음사·전10권)와 황석영의 ‘삼국지’(창비·전10권).1988년 출간된 이문열의 것은 지금까지 무려 1500만부를 팔아치웠다. 지난해 6월 나온 황석영의 것도 현재 100만부 판매실적을 올린 상태. 민음사 정대용 영업부장은 “IMF사태 여파로 95년 이후 판매량이 떨어지던 것이 지난해는 100만부까지 올라갔고, 올해는 60만부 판매가 가능할 것 같다.”면서 “지난해 황석영 삼국지의 가세로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돈벌이用 기획출판” 비난 목소리도 삼국지 출판시장 규모는 지난해의 경우 약 200만부. 유행에 민감한 여타 출판물들과는 달리 삼국지 시장은 끊임없이 신규독자들을 포섭해내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박종화 김구용 김홍신 이지함 조성기 등 ‘버전이 다른’ 삼국지들이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다. 시장이 혼전양상을 띠다 보니 이래저래 괴담성 뒷말도 무성하다.“어떤 책은 서문을 쓴 이가 진짜 평역자이고, 그 작가는 이름만 빌려줬다더라.”는 식의 허탈한(?)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국내 서점가의 ‘삼국지’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나관중본’‘모종강본’을 원전삼아 번역에 충실한 ‘정역’, 필요한 부분을 변형·재구성한 ‘평역’이 그것. 김구용·조성기 버전은 전자에, 이문열·황석영 버전은 후자에 들어갈 만하다. 이들 책을 요리조리 뜯어 오류를 지적하거나 설명을 붙인 해설서도 한 흐름을 이룬다. ●우리시대 대표판본 어디에 그러나 독자들의 삼국지 감상 취향은 몇몇 인기작가들의 작품 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돼 있는 게 현실이다. 삼국지를 수십년 연구했기로 유명한 김구용의 정역 삼국지를 펴낸 솔출판사 관계자는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색깔을 담아낼 수 있다면 삼국지는 얼마든지 다시 쓰여져도 좋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면 삼국지가 오락적 책읽기의 한 텍스트로 활용된 경향이 짙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 솔출판사에서 3차 개정판으로 나온 김구용의 삼국지는 한문의 고졸한 언어감각을 충실히 살린 책으로 꼽힌다. 현재는 인터넷 무료 다운으로 e북으로 볼 수 있게 해 사실상 시장판매는 포기한 상태다. 하지만 불황으로 맥빠진 출판가에 어떤 계기로든 운동이 일어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개성있는 세계관을 담아 작가의 이름값을 해주는, 명실공히 ‘우리시대 판본’으로 남을 삼국지를 또 기다려볼 일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프랑스어판 ‘손님’ 출간 파리 독자들과 만난 황석영씨

    |파리 함혜리특파원|소설가 황석영씨가 17일 저녁 파리 시내 주불 한국 문화원에서 프랑스 및 현지 한인 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그의 장편소설 ‘손님’의 프랑스어판(L‘Invite) 출간을 기념해 번역판을 낸 쥘마 출판사와 주불 한국 문화원이 마련했다. 이날 행사는 프랑스인과 현지 거주 한인 200여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우는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공동 번역자인 최미경 이화여대 교수와 프랑스 교육부의 장노엘 주테 국장도 참석했다. 현재 영국 런던대 객원 연구원으로 있는 황씨는 15일부터 파리와 지방을 돌며 독자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리고 있다. ‘손님’을 쓴 계기는. -1989년 베를린 망명 중 장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면서 장애와 장벽이 무너지고 상생하는 것이 세계사적인 대세라고 생각했다. 자루 속 같은 한반도에서 살며 보지 못했던 인류의 보편성을 생각하게 됐고 이를 동아시아적 양식으로 풀어놓을 수 없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했다. 작품을 소개하면. -세계의 보편적 문제를 전통적 형식에 담았다. 신천 학살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자들간의 충돌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소재를 황해도 지방 진지 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 틀로 삼아 전개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가해자, 피해자 어느 편도 들지 않았는데 어느 편인가. -죽은 사람들 편이다. 작가는 불행을 당한 사람들 편에 선다. 좌, 우가 어디 있나. 프랑스 독자들이 어떤 점에 관심을 보였나. -그들은 전통 굿 양식과 리얼리즘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조합시켰는지를 물었다. 또 미국의 패권주의에 관해서도 질문했다. 우리 소설의 약점은 ‘동네 이야기’라는 데 있다. 프랑스에서는 보편적인 관념에다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에 프랑스에서 ‘오래된 정원‘이 번역 소개된다. 최근 독일 유수의 DTV 출판사에서도 전집을 내기로 계약했다.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건전한 말, 무너지지 않는 탑/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1970년 황석영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인 ‘탑’(塔)에서 조그만 불탑(佛塔)을 중심으로 전쟁의 허무와 교조주의의 무모함을 생생하게 그렸다.“탑은 어느 편의 것도 아니었지만, 그것을 지키는 자들의 철저한 승리를 의미하는 상징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이런 탑을 위해 적군인 놈들과 아군인 우리는 전투를 벌인다.“가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문 상병은…가슴속에 손가락을 잘라 넣고, 바람이 좁은 구멍을 빠져나가는 듯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두어번 연약하게 기침을 했는데 그때마다 피가 입으로 솟아올랐다.”문 상병은 죽고, 하사와 소총수도 죽으며, 우리는 ‘작전명령에 따라’ 그 탑을 지켜낸다. 물론 “우리가 싸워서 지켜낸 것은 돌덩이 이상의 무엇이라는 것”을 믿는다. 다른 임무를 위해 시체와 장비를 싣고 그곳을 떠날 때 캠프와 토치카를 짓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킨 탑이 불도저에 의해 맥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을 본다. 지난해 12월 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통과시킨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자기들이 쌓아올린 탑이 온 나라를 말의 싸움질로 뒤흔들며 무너져 내렸는데도 아무런 반성이 없다. 그들은 그 탑으로 서울 중심의 편향발전이 해소되고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조적이었던 그 믿음이 위헌 결정으로 무산되었다면 우선 그 야단법석의 레토릭에 대해 고해성사나 석고대죄라도 해야 했다. 문 상병처럼 고통스러운 국민에게 고작 하는 짓이라곤 내 탓이 아닌 네 탓이라는 고질병의 되풀이다. 그 탑의 조성과 진행에서 정책보다 정략이 우선했음을 고백하는 진솔한 사과가 없다. 부서진 탑의 잔해를 정녕 보기 부끄럽다면 실사구시적인 건전한 대안을 모색해야지 원상복구나 원천무효의 당리당략, 궤변으로 상대방 죽이기에 나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다수 국민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어떤 권한도 직접 위임받지 않은 기관이 헌법을 파괴했다.’ ‘기득권과 보수의 핵심이며, 갑신칠적(甲申七賊)인 헌법재판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쪽의 궤변은 우리가 권위를 부여한 국가기관을 부정하는 저주의 레토릭이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아전인수 레토릭의 극치다.‘헌재의 판결은 서울 시민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승리다.’ ‘국가의 명운이 결딴날 뻔한 수도이전이 백지화되어 천만다행’이라는 또 다른 쪽의 궤변은 왜곡과 허위의 레토릭이며, 기회주의적 눈치보기 레토릭의 극치다. 이런 소피스트적인 레토릭에서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발전을 위한 토론과 합의는 불가능하다. 소피스트들은 말로써 사익을 얻으려고 아테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선생이라는 좋은 뜻을 가졌지만 진실한 내용보다는 번지르르한 말의 기교를 가르치고, 자기이익을 위한 레토릭을 전파했다. 당연히 폐해가 컸다. 이에 플라톤은 ‘레토릭은 말이나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건전한 사회생활을 이끌어나가게 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설득의 수단과 과정을 발견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소피스트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그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역사에 크나큰 공헌을 한 것이다. 건전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위해 정치인들은 교조적인 집단 레토릭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조적인 레토릭은 신이 인간을 지배한 중세 암흑시대의 특징이었다. 인간에 봉사하는 레토릭이 아니라 종교와 교직자를 미화하기 위한 레토릭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믿음과 다르면 이단으로 모는 레토릭은 더 이상 설득과 토론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녀사냥식 전투에 몰입할 뿐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갈등이 아니라 통합을 지향하는 레토릭을 형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소피스트적 레토릭의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 정객(politician)의 레토릭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위해 설득과 토론에 전력투구하는 정치가(statesman)의 레토릭으로 돌아와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 폐교운동장에서 가을밤 가족 콘서트

    ‘버려진 폐교 운동장이 정겨운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9일 여주 밀머리 미술학교운동장(옛 점동초 당현분교)을 시작으로 오는 24일까지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의 5개 폐교 운동장에서 차례로 진행되는 2004 찾아가는 가족콘서트 ‘가을밤,벌레우는 밤’.‘가을밤,벌레우는 밤’ 추진위원회가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마련한 음악회로,시인 김사인,개그맨 전유성,소설가 황석영,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등 교수,예술가,사업가 등 16명이 추진위에 참여하고 있다. 공연은 폐교 지역 주민들이 다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펼쳐진다.개그맨 전유성과 가수 홍순관이 차례로 사회를 맡아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로 유명한 얌모얌모콘서트앙상블,‘이등병의 편지’ 작곡가 김현성이 이끄는 혜화동푸른섬 등이 출연해 친근하고 코믹한 동요무대를 선사한다. 테너 임정현,예동어린이중창단,생활폐기물로 악기를 제작해 연주하는 팀인 ‘재활용상상놀이단 어제생긴예술’ 등이 펼치는 가곡,타악 퍼포먼스도 감상할 수 있다.각 지역 주민들이 직접 출연하는 특별무대도 마련된다.이번 공연을 위해 강원도 문막 지역 할머니들이 중창단 ‘그시절언니들’을 구성했으며,경기도 화성에서는 모자·부녀팀이 출연해 동요를 부를 예정이다. 공연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프로듀서 제리씨는 “버려진 폐교에서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 예술인들과 연계해 앞으로 매년 전국 각지의 폐교를 찾아가는 콘서트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공연은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공연 일정은 다음과 같다. ▲9일 오후 5시30분 여주 밀머리 미술학교(옛 점동초교 당현분교)▲10일 오후 5시30분 원주 극단노뜰(옛 후용초교)▲17일 오후 5시30분 화성 비봉땅 미술학교(옛 비봉초교 유포분교)▲23일 오후 5시30분 영월 영월책박물관(옛 신천초교 여촌분교)▲24일 오후 5시30분 평창 감자꽃스튜디오(옛 평창초교 노산분교).(02)730-3608.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이명박-손학규의 ‘동네사랑법’

    이명박-손학규의 ‘동네사랑법’

    두사람이 중원에서 먼길을 가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다. 이 시장은 청계천복원,뉴타운건설 등 ‘서울개조론’으로 바람을 일으키고,이에 맞서 손 지사는 외자유치 등 ‘경제살리기’에 힘을 내고 있다.인구가 밀집해 있는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대규모 토목공사가 적격이다.반면 각종 공장이 몰려 있는 경기도에서는 경제체감온도가 중요하다.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의 두 사령탑을 탐구해본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수도이전 등 공동 현안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지역간 이해관계가 얽힌 민원에 대해서는 대립각을 세운다.때로는 ‘용호상박’하다가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않는 이중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손 지사가 먼저 영어마을을 만든다고 발표하자 이 시장도 강북에 영어마을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도에서 안산 공무원 수련원을 개조해 영어마을을 조성하자 서울시도 서둘러 송파구 풍납동에 영어마을을 만들고 있다.아무튼 경기도는 영어마을을 국내 최초 운영하는 자치단체가 됐고 서울뿐 아니라 강원도·충청도 등 다른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행렬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이 영어마을을 만든 이유는 “우리의 살길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자체 자원이 거의 없는 네덜란드가 유럽의 중심국가로,국제적인 비즈니스 센터로 성장한 것은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영어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먼저 출발한 경기도는 안산 영어마을에 자극 받은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내용의 영어교육을 실시하면 우리나라 전체의 영어교육 수준과 내용이 달라진다고 말한다.경기도는 지난해부터 매년 1000억원씩을 투입해 특수목적고 설립을 지원하고 농어촌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특성화고 지원,과학 선도학교 육성 등 다양한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영어마을 조성에 나선 이 시장과 손 지사는 “교육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인프라가 된다.”는 철학을 강조한다. 이들은 2002년 당선 직후 서로 만나 환경문제 등 광역적인 관심사에 대해서는 손을 맞잡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지하철 연장운행을 비롯한 각종 사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등 이상기류가 생기는 일도 적잖다.임기 초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던 사업이 현실화된 사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수도이전 반대에는 마치 한사람처럼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들은 지난 16일 수도이전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국론분열을 가중시키는 행정수도 이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국민적 여론 수렴 없이 처리한 책임을 따진 점에서도 경쟁자이면서도 협력자라는 묘한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수원 김병철 서울 송한수기자 kbchul@@seoul.co.kr ■ 원세훈 제1부시장이 오른팔 이재오의원은 ‘원내 대리인’ 원세훈 행정1부시장을,전면으로 나선 이명박 시장의 인맥으로 첫 손에 꼽는 데 망설이는 사람은 서울시에서 별로 없다.이 시장이 취임 이후 내내 강조하는 ‘실·국 책임제’에 따라 인사담당 부시장인 그에게 거의 전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시에서 몇 안되는 ‘마당발’로 일컬어진다.이 때문에 중앙정부 부처 등 차관급들 가운데 늘 리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서울시장의 장관회의 배제 등으로 중앙정부와의 연결고리가 끊긴 공백을 메우는 몫도 크다. 또 다른 축은 정당 인맥이다.시장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이 시장이 전면에 나서기 힘든 수도이전 반대운동에 ‘대리인’ 역할을 할 정도로 깊은 관계다.이 의원은 당론이 분명히 결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주도로 시작된 ‘수도이전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에 원내에서 유일하게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시장 선거대책위원회 유세본부장을 맡은 같은 당 홍준표·비서실장 정두언 의원과 불출마를 선언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당시 대변인 오세훈 전 의원도 ‘이명박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양윤재 행정2부시장도 이 시장이 정력을 쏟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맞물려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를 이끈 학계의 대표주자라는 점에서 중요한 인맥으로 분류된다.이춘식 정무부시장은 96총선에서 이 시장이 신한국당 후보로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 강동갑에 출마하면서 포항중 선·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돼 지근(至近)의 사이가 됐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학교·운동권·교수·정치인 4개 분야에 골고루 포진 손학규지사의 인맥은 크게 2가지로 나눠볼수 있다.삶의 과정에서 함께해 왔던 인맥과 두차례의 민선도지사 선거과정을 통해 알게된 선거인맥이다. 첫번째 인맥은 다시 경기고와 서울대 등 학맥과 운동권 및 사회운동 출신 인맥,정치학 교수시설 맺었던 교수인맥,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다져온 정치인맥 등 4가지로 세분할수 있다. 우선 학교인맥 가운데 경기고 동기로는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과 구자홍 LG부회장이 있으며 김태동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서상목 전의원 등이 대학 동기생들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동기들로는 김계동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나성린 한양대 교수,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을 들수 있다. 손 지사가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시설 맺은 김지하 시인,유홍준 영남대 교수,황석영 소설가,KNCC 총무를 지낸 김동완 목사,전 CBS사장인 권호경 목사 등이 있다.학맥으로는 윤영오 국민대교수와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박호성 서강대 교수 등이 있으며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의 동생인 조중래 대한교통학회 회장 등 20여명의 교수가 자문교수 그룹으로 손 지사를 도와주고 있다.정치인으로는 같은당 전재희 의원과 김문수 의원,심재철 남경필 의원 원희룡 의원 등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이밖에 선거인맥으로 손 지사와 고교 및 대학 선배이면서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낸 송태호 경기문화재단 대표, 이수영 전 교통개발연구원장 등과 교수 시절 제자 등 20여명이 최측근으로 경기도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서울 확 바꾸기 그는 과연 ‘막 가는 불도저’인가 ‘서울 꿈의 엔진’인가? 청계천 복원공사와 뉴타운 개발,대중교통체계 개편으로 압축되는 서울시의 굵직굵직한 사업에는 숱한 비난이 뒤따르고 있다.서울을 통째로 바꾸는 대역사(大役事)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1970년대∼80년대 말 대기업 6개를 이끌며 붙은 불도저라는 별명을 아직도 듣는 이명박(63) 시장은 “오늘날 밀어붙여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한번 굳힌 결심은 끝까지 관철하려는 옹고집도 있다. 사업 시행을 앞뒤로 반대가 거세지는 가운데 발휘되는 추진력 때문에 불도저 별명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지난 7월 단행한 대중교통체계 개편 뒤 교통카드 문제 등으로 여론이 들끓자 대시민 사과문을 발표한 직후다.이 시장은 교통국 9개 과별로 하사금을 내려보냈다.통념을 완전히 깨트린 일이었다. 온갖 문제점 때문에 다른 부서의 직원들까지 버스 정거장 등 현장으로 불려나가는 덤터기를 쓴 마당에 벌집이라 할 교통국의 직원들에게 ‘당근’을 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K과장은 “수장(首長)으로서 언론을 통해 사과까지 한 터에,공직사회가 아니라 민간이라도 그러진 못할 텐데 주무부서 직원들을 문책은커녕 잘못도 추궁하지 않고 격려금을 줬다는 일만으로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이같은 행동은 “원칙에 맞으면 아무리 문제점이 나타나도 물러서거나 큰 틀을 깨지 않겠다.”는 특유의 근성 때문으로 비쳐진다.큰 틀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것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빠른 적응력을 보인다.사과문 발표 때 대책으로 내놓은 지하철 정액권 발급도 실무선에서 말렸지만 ‘그 게 아니다.’라며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이 역시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한편으로는 ‘밀어붙이기’라는 도마에 오를 여지도 아울러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서울을 개조하겠다는 뚝심이 엿보이는 장면은 취임 뒤 입버릇처럼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말한 데서도 내비친다.대학 때 이태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어렵게 지낸 경험으로 강남·북 대결구도로 짜인 서울을 뉴타운 사업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소박(?)한 꿈이 주민들의 반대에 막히자 “10년 뒤 강남에서 이사오고 싶어하는 강북으로 만들겠다.”며 설득했다. 청계천 복원사업도 마찬가지다.대한민국 수도인 서울,그것도 서울의 얼굴인 중심권역이 바뀌어야 한다며 상인들을 직접 만났다.불안해하는 상인들에게 “반드시 2년 안으로 마치겠다.”고 약속했다.이 시장 취임 전부터 ‘공약’은 있었지만 교통정체 악화,상인들을 위한 대책 등 문제점이 많아 검토만 하다 그쳐 상인들의 피해의식이 여전히 큰 때여서 “이 사람이면 하긴 하겠구나.”라는 신뢰가 움트면서 사업의 물꼬가 터졌다는 분석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경제 살리기 잰걸음 손학규 경기도지사 만큼 해외출장이 잦은 단체장도 드물다.올들어 벌써 다섯번째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반도체·LCD·자동차 등 외국의 첨단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지난 2∼7일에는 4박6일 일정으로 미국 3개 도시와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미국에서는 다섯끼를 기내식으로 때우고 한끼는 거를 정도로 일정이 빡빡했다.함께 간 공무원들은 파김치가 됐다.당시 만난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 있는 세계 제1위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델파이사 바덴버그 회장은 연봉 600억원을 받는 CEO다.그런 그가 손 지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기다렸다. 손 지사측은 당초 바덴버그 회장의 입장을 고려해 30분 정도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그쪽에서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1시간이나 할애했다. 손 지사가 외국의 CEO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출신의 민선 도지사라는 배경과 함께 뛰어난 영어구사력 등 밑천이 든든하기 때문이다.통역없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신뢰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한국의 삐뚤어진 노사문화가 외국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킨다는 점에 착안,두차례의 투자유치 활동에 한국노총 간부를 동행시킨 것도 그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기 위한 복안이었다. 일본의 한 기업인은 손 지사에게 “이런 도지사 처음 봤다.도지사가 아니라 영낙없는 세일즈 맨”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LG필립스 LCD단지를 파주에 유치한 데 이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첨단부품업체를 중심으로 모두 41건 11억 16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기업을 위해 진입로를 만들어주고 기업인 자녀를 위한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김포의 한 중소기업이 관련 규정 때문에 1억 9500만원의 상수도 설치비용을 부담해야할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알고 규정을 고쳐 2300만원만 내도록 했다.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예산 지원을 통해 신용불량자 구제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IMF보다 경제·사회적으로 더 어렵다는 요즘 상황에서 경제 도지사라는 좋은 이미지를 닦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섞인 시선에 대해 손 지사측은 ‘경기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잘라 말한다. 경기도의 큰 그림은 미국 일본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며 첨단기업유치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손 지사는 가는 곳마다 “10년후의 먹을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첨단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업무스타일 이 ‘주저함이 없다.’ 이 시장의 업무스타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명쾌함’이다.업무와 관련해 최소한 이 시장은 “한번 연구 해보자.”,“상황을 지켜 보자”는 식의 애매한 판단이나 결정은 없다. 올초 지하철 파업때나 청계천 복원사업 과정의 집단민원 대처방법 등에서 보듯 안되는 것은 절대 안된다.아무리 친한 사람이 부탁해도 듣지 않는다.이 때문에 절대 그에게 작아 보이는 민원조차 하지 않는다. 빠르고 확고한 결정은 잘못을 시인하는 데도 마찬가지다.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지난 7월1일 대중교통체계 개편 과정에서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곧바로 시민들에게 사과했다.하지만 이 시장은 이후 지금까지 매일심야회의를 주재하며 문제점을 체크하고 개선해 나갔다.과장급의 한 직원은 “업무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함을 요구해 힘들때도 많지만 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담당자의 아이디어를 존중해줘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손 지사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토론과정을 거친다.자신의 의견을 던져 놓고 난상 토론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간다.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안은 우직하게 밀어붙인다.토론대상도 가리지 않는다.6·7급 공무원들과 넥타이를 풀어놓고 토론하는가 하면 간부회의도 토론식으로 진행한다.공무원이 지사의 의견을 반박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공무원 조직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수평적 조직관계’를 중시하는 손 지사의 단면이다. 차명진 공보관은 “어느 자치단체건 임기중반이 지나면 장사 밑천이 떨어지게 마련인 데 아직도 아이디어가 넘쳐 고민”이라고 털어놨다.손 지사는 특히 학자출신임에도 선언적 사고나 선입견에 얽매이지질 않는다.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자신의 정책 결정의 중요 지침으로 삼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취할 때가 많다.예컨대 주한미군 주둔문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를 논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위상과 통일 이후 동북아 안보를 위해서 안보비용을 분담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식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단점은 무엇 이 명쾌한 업무스타일이 장점이라면 ‘자기 중심적이다.’는 것은 단점이다. 업무를 결정할 때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지만 한번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잘 바꾸려하지 않는다.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샀던 대중교통체계 개편 시기를 결정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늦출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도 “개편일 하루전에 연기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쉬워 했다. “경상도 또는 고대 출신을 신임한다.”는 인사 스타일에 대한 끊이지 않는 지적도 자기 중심적인 성격과 이어지는 듯하다. 한 6급 직원은 “전임 고건시장과 달리 이 시장은 직원들의 고충에 좀 무관심한 것 같다.”는 불만도 털어놨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손 지사에게서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한 결단’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가급적 주위의 충분한 의견 청취를 통해 결정하는 스타일인 만큼 깜짝 놀랄 만한 폭탄 발언이나 돌출행동은 삼가는 편이다. 보도자료 작성을 직원들에게 위임하지 않고 과도한 표현이 없는지 등을 꼼꼼히 챙기기도 한다. 때문에 이같은 신중한 성격은 순간적인 판단이나 신속성을 요하는 결정 과정에서 선점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정치행보에서 종종 발생해 측근들은 아쉬워한다. 한나라당 차기대선 예비주자로 꼽히고 있는 손 지사의 중앙과 지방을 넘나드는 행동반경에 대해 도민들로부터 ‘대선행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황석영씨 ‘손님’ 佛페미나상 후보에

    |파리 함혜리특파원|한국전 초기의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을 다룬 황석영씨의 장편소설 ‘손님’이 프랑스의 유명 문학상인 페미나상의 외국어소설 부문 수상 후보로 선정됐다. 페미나상 심사위원단은 최근 1차 후보작 선정에서 쥘마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된 ‘손님’을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수상 후보로 뽑았다.최종 결과는 11월3일 발표될 예정이다. 페미나상은 여류 문인들이 남성 위주의 문학상에 반발하며 1904년 제정한 상으로 공쿠르상과는 달리 외국문학 부문의 수상작을 선정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lotus@seoul.co.kr
  • 쉬어가기˙˙˙

    소설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 영화화된다.MBC 프로덕션은 7일 “8월 말 황석영씨와 ‘오래된 정원’의 영화 판권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황석영씨가 1988년 ‘무기의 그늘’ 이후 12년 만인 2000년에 발표한 ‘오래된 정원’은 광주항쟁을 전후한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변혁을 꿈꾸고 투쟁했던 사람들의 삶과 세월을 뛰어넘는 남녀의 애절하고 순수한 사랑을 담았다.
  • 25년전 빚 갚은 송승환

    ‘난타’의 제작자 송승환 PMC 대표가 25년 전 빚진 뮤지컬 안무비를 잊지 않고 갚아 공연가에 작은 화제가 되고 있다.상대방은 작가 황석영씨의 부인인 재미 무용가 김명수씨. 두 사람의 인연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신촌에 설립된 극단 76단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하던 송 대표는 머레이쉬스갈의 희곡을 뮤지컬로 바꾼 ‘루브’(LUV)를 제작했고,외대 연극반의 ‘판타스틱스’ 공연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씨에게 안무를 부탁했다. 송 대표에 따르면 당시 공연은 소극장 뮤지컬 치고는 큰 성공을 거뒀으나,수금을 맡은 단원이 돈을 챙겨 도망가는 바람에 안무비를 지급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난타’가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공연되면서 뉴욕에 거주하던 김씨와 송 대표가 다시 만났고,송 대표는 김씨에게 안무비를 빚진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갚겠다.”고 밝혔다.김씨는 “25년만에 받은 안무비는 뉴욕에서의 전통춤 공연에 필요한 장신구와 의상 구입비로 쓰겠다.”고 말했다. 연합˝
  •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소설

    박완서 최인호 황석영 이청준 김주영의 소설이 그림으로 되살아난다.문화를 사랑하는 모임(대표 김주영)은 14일부터 ‘그림,소설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5명의 화가가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 100점을 소개한다.장소는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 문화이벤트홀.박항률­박완서전(14∼20일),김점선­최인호전(21∼27일),민정기­황석영전(28일∼7월4일),김선두­이청준전(7월5∼11일),이두식­김주영전(7월12∼18일)이 차례로 열린다.문학작품이 문자 중심의 책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재창조되고 이를 통해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 첫 연작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낸 유재현씨

    유재현(42)의 첫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창비사 펴냄)는 우리 문단에선 드물게 캄보디아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배경뿐만 아니라 작품 속 등장인물이 대부분 현지인이어서 작가가 한국인이란 점 말고는 ‘한국 작품’이란 수식어가 낯설 정도다. “최근 ‘동북아시대’ 운운하면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먼 이웃’입니다.오히려 멀리 떨어진 미국은 이웃처럼 느끼지요.아시아에 대한 굴절된 시선을 바로잡고 그들의 상황 속에서 우리 문제를 볼 요량으로 소설에 담았습니다.” 20∼30대를 학생·노동운동으로 보낸 작가는 90년대 초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등 급변하는 현실에서 방황하다가 92년 중편 ‘구르는 돌’로 등단했다.12년 만에 첫 소설집을 냈으니 과작인 셈이다. “등단한 뒤 1년 동안 작품을 거의 못썼습니다.능력도 능력이지만 제게 맞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죠.그래서 10년 가까이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했습니다.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모두 다 접고 90년대말 훌쩍 동남아시아로 떠났습니다.”. 태국,베트남 등지를 떠돌다가 아예 작품을 써볼 작정으로 99년 캄보디아를 찾았다.“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동소설에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정지한 ‘후일담 소설’에 갇히기는 더 싫었다.”는 그는 ‘바깥’을 선택했다.‘밖(아시아)’으로부터 들여다봄을 통해 ‘안(한국)’에서 잃어버린 전망을 찾으려는 희망으로 소설 ‘시하눅빌‘는 시작됐다. “한때 ‘대안의 땅’을 찾아 부모님이 사시는 미국을 비롯 멕시코를 전전했지만 ‘이곳은 아니다.’ 싶더군요.식민지·전쟁 등 우리와 역사적 경험이 비슷한 동남아시아에 눈길이 갔습니다. 특히 97년 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캄보디아는 우리와 역사적 배경이 비슷해 시사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연작으로 써내려간 6편의 작품은 해안가 작은 도시 시하눅빌의 비루한 일상을 담았다.작가의 경험을 녹여 냉철한 국외자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캄보디아의 표정은 우울하고,어둡고,참혹하기까지 하다. 도박과 마약,매춘이 횡행하는 풍경 속에서 돈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거나 생존을 위해 마약상이 되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솜산과 뚜이안’‘대마는 자란다’)과 시장 개방과정에서 “명분도 없이 오직 돈만을 위해 벌어지는 아귀다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이 겹친다. 그러나 작가는 이 지옥 같은 현실에 무릎을 꿇지 않고 희망을 길어 올린다.지뢰사고로 남편을 잃은 찬나가 딸과 합동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을 다룬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는 훈훈하게 다가온다. 언제까지 시선이 캄보디아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고 물었더니 치밀한 ‘소설 전략’을 들려주었다. “지금은 가는 단계이지만 언젠가 한반도로 돌아올 계획입니다.곧 발표할 장편에 한국인을 등장시켜 왜 캄보디아가 한국인의 의식이며 존재와 무관하지 않은가를 파헤치겠습니다.궁극적으로 전후 세대의 눈으로 한국전쟁의 의미를 찾아낼 계획입니다.” 황석영이 ‘심청’으로 씨앗을 뿌린 우리 문학의 ‘동아시아적 상상력’에다 늦깎이 작가인 유재현이 그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물을 주고 가꿔서 활짝 꽃피울지 기다려진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시론] 위기의 소설, 아직 기회는 있다/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저자 서울대 강사

    고려대 최장집 교수,강금실 법무장관,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모두 소설 읽는 사람들이(었)다.보르헤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했다는 최장집 교수는 정치적인 문제를 정치학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섬세함으로 통찰하게 해주기에 소설을 읽는다 했다.오랜 문학소녀였다는 강금실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이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게 하고,결국 베스트셀러가 되게 한 숨은 공로자다.뛰어난 촌철살인으로 국민을 사로잡은 노회찬 총장의 내공도 독서에서 나온 것인데,그는 황석영 소설을 좋아했고 일간지에 실리던 소설 월평까지 챙겨서 읽었다고 한다. 정치적 리더들이자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기도 한 이들이 소설 독자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한국 소설이 서서히 여위어가고 키가 줄더니 급기야 비실비실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20세기를 통틀어 소설은 대중적 독서문화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며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정치적 양식이었다.그러나 ‘위대한 시대’는 1980년대와 함께 끝이 나고 소설은 문화의 중심부로부터 밀려났다.좋다고 칭찬받는 소설도 채 5000부를 팔기가 어렵고 젊은 작가들은 연수(年收) 300만∼500만원의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다. 이렇게 초라해진 원인에는 매체환경의 변화가 가장 크겠지만 문단 스스로의 잘못도 많다.1990년대 이후 문단은 1980년대 소설이 지닌 정치성을 교정한답시고 교각살우하는 우를 범하여 스스로 자리를 포기했다.문단은 ‘탈이념·탈정치의 시대’가 왔다는 현상적 징후에 과잉 적응했다.사회와 정치를 잃고 작아졌다.그러자 교양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은 사사화된 소설을 버리고 다른 읽을거리와 영화를 보러 떠나버렸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많다.한국 소설의 독자는 층이 두껍기 때문이다.실지를 회복하고 새 시대에 봉사하기 위한 길이 있다.하나,사회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교양의 양식이 될 수 있어야겠다.스토리는 ‘나’에서 다시 사회나 정치로 나아가야 하고 역사와 논픽션의 요소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둘,인터넷과 영화에 눈이 팔린 신세대를 위해 더 잘 짜여진(웰-메이드) 이야기와 더 새롭고 날랜 언어 감각이 필요하다.셋,출판인과 비평가들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더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문학계 공동의 이익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오늘날 한국문단에 좋은 소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영상매체의 시대에도 소설은 인간 존재의 문제를 가장 깊고 섬세하게,가장 정밀한 매체인 언어로 드러내는 양식임에 틀림없다.또한 영화나 TV가 언제나 ‘돈’의 논리로 만들어지지만 소설은 아직도 가장 독립적인 예술이다.그래서 좋은 소설은 당장 쓰일 현금은 아니라도,정신의 튼실한 밑돈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양가 많고 재미도 있는 소설 몇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1980년대의 대중문화와 함께 자라난 세대나 코믹한 것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정통적인 소설을 지지하고 미문 취향이 있는 20∼30대 남녀들에게는 김연수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권한다.영·정조대의 조선사에 관심이 있고 추리물을 좋아하는 30∼40대라면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이 흥미로울 것이다.교양있는 중장년 남성에게는 역시 김훈 소설이 딱이다.탄핵으로 유배자 신세가 된 노무현대통령은 다 읽었다던 ‘칼의 노래’를 왜 또 꺼냈을까.과연 그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칼’의 미학을 생각했을까.궁금하지 않으신지? 앗,벌써 읽었다고요? 그러면 ‘2004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화장’이 좋겠다.이 소설은 바로 여러분들처럼 부쩍 오줌줄기가 약해진 중년남성의 성적 자의식을 소재로 했다.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저자 서울대 강사˝
  • 이시영 아홉번째 시집 ‘바다호수’

    “시가 무슨 보복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나는 그것을 밤새워 성실하게 받아 적었다.” 중견 시인 이시영(55)의 아홉번째 시집 ‘바다 호수’(문학동네 펴냄)는 이제 시인에게 시가 삶 혹은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빛 호각’을 낸 지 1년이 채 안돼 세상에 내놓은 시집에서 시인은 샘물처럼 솟아난 다양한 시상을 ‘바다’ 혹은 ‘바다의 호수’에 그윽하게 담고 있다.형식 면에서도 이전의 이야기시와 압축된 형태 모두를 자유자재로 구사,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깊고 넓은 ‘기억의 바다’에서 시인은 지난 날의 추억이라는 배에 몸을 실은 채,그동안 만났던 다양한 사람과 사연을 길어올린다.밤새 단편을 쓰다 새벽녘에 머리식히려 나와 호랑이 발자국을 봤다는 입심 강한 황석영,휘파람을 잘 분 송영,‘부용산’을 잘 불렀던 방영웅,면전에서 아무리 험한 소리를 해대도 “소줏잔을 들고 빙그레 웃기만 하던” 평론가 고(故)김현,언제나 진지하기만 한 소설을 쓰던 박태순과 송기원의 해프닝 등 많은 문인들의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넉넉한 웃음을 안긴다. 그래서 시집의 주된 정조는 난로 곁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처럼 훈훈하고 아늑하다.낮에 조태일 시인과 만나 “술 취한 해가 비틀거리며 서산 허리를 꼴깍 넘어서야 끝나던”(‘낮술’) 장면,연말 정종 한 병으로 새 날을 다짐하던 송년 풍경 등 가난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던 시절의 삽화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이 모든 사람과 풍경을 노래하는 이유를 “(…)이제는 모두 지나간 옛일/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않는다.”(‘청진동에서’)고 아쉬움을 담아 토로한다. 그렇지만 그 음조는 회한이나 탄식에만 젖어 있지 않다.대신 시인이 온몸으로 헤쳐온 높고 가파른 ‘시대의 격랑’이 고스란히 들어있다.안기부나 문공부의 검열을 받아 생살같던 책이 사라지거나 반독재·민주투쟁의 선봉에 섰던 시인들이 투옥되는 풍경이 아련하게 되살아온다. 김지하의 시집 ‘타는 목마름’의 지형과 시집 1만권이 분쇄되고 말못할 수모를 당하는 장면(‘타는 목마름으로’),‘자유실천문인협의회 1백1인 선언’결의문을 읽다 잡혀가는 장면이 그 대목.시인은 이를 해학적으로 노래하는 여유마저 보인다. 또 시집 곳곳에선 선비처럼 꼿꼿하게 살아온 삶이 스며있다.“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베스트 시인을 위하여’)고 경계할 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매섭고,현재형으로 들린다. 그런 시인의 이미지는 변함없이 세상을 비추는 ‘호남평야의 전봇대’에 겹쳐진다.“날 저물면 호남평야의 전봇대들은 큰 키를 수그리고 달려가 우묵한 마을부터 제일 먼저 불을 켜고 나옵니다.(…)”(‘변함없는 일’)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황석영씨 부인에 5억 피소

    ‘장길산’ 작가 황석영(60)씨와 이혼소송중인 부인 김명수(50)씨가 10일 황씨와 동거중인 김모씨를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무용가인 김명수씨측은 소장에서 “호적상 여전히 내가 부인인데도 김씨가 6년 가까이 황씨와 동거하며 각종 인터뷰에서 부인인 양 행세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2002년 9월 김명수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1년 만에 1심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황씨가 감옥에 있는 동안 김명수씨가 미국에 머물며 부인으로서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황씨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김명수씨는 곧바로 항소,재판 계류중이다. 정은주기자 e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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