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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L기 활주로 이탈/김포 착륙중/빗길 미끄러져… 인명피해 없어

    23일 하오 3시50분쯤 폭우속에 김포공항에 착륙하던 포항발 대한항공 548편 MD­82 여객기가 활주로를 15m가량 이탈,잔디밭에 멈춰서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비행기에는 승무원 5명과 승객 1백68명이 타고 있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날 사고는 비행기가 김포공항 신활주로 끝부분에서 멈춰서지 못한채 방향을 틀다 빗물이 고여있던 활주로에서 30m가량 미끄러지면서 일어 났다. 이날 사고로 활주로 이용이 하오 늦게까지 통제돼 항공기 이착륙이 지연됐다.
  • 러,「95 에어쇼」 개막/항공기·우주선 1백16종 전시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가 개최하는 최대규모의 우주항공기술 전시회인 「마크스 95」가 22일부터 7일간의 일정으로 모스크바 근교 주코프 공군기지에서 개최된다. 올해 러시아 에어쇼에는 투폴레프,일류신,야코블레프,수호이,먀시셰프,카모프,에네르기아사등 러시아의 주요 우주항공업체가 대부분 참가해 1백16개 모델의 각종 항공기와 우주선 등을 선보이게 된다. 또 이번 행사에서는 톰슨,롤스 로이스,사브,BMW,제너럴 모터스(GM)등 19개국의 91개 업체도 각종 항공기와 헬리콥터 등을 내놓는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목적은 러시아 항공기술을 내외에 과시해 외국업체에 합작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대회조직 위원회는 행사기간중 쥬코프 기지내 2만3천㎢ 규모의 전시장에 설치된 5.5㎞ 길이의 활주로위에 각종 항공기와 우주선 등을 전시한다.
  • 수영비행장 35만평/부산시에 매각 결정/국방부

    ◎시,“종합전시장·정보단지 조성” 국방부는 18일 부산시 해운대구 육군 수영비행장 부지 35만5천여평을 부산시에 매각하고 현재의 비행활주로등 군시설등은 2000년까지 연차적으로 김해등지로 이전키로 결정했다. 국방부의 이같은 결정은 수영비행장 이웃 23개동 1천1백70여만평이 군용항공기지법에 따라 고도제한등에 묶여 주민 민원이 잦은데다 활주로 외곽이 컨테이너 하치장으로 전용되면서 비행장 본래의 기능이 저하된데 따른 것이다.국방부는 이에 따라 내년 6월까지 김해공군기지 이웃 6만평 부지에 활주로 1개를 신설하고 부산 강서구와 송정구에 1백30여만평의 부지를 조성,현재 수영비행장에 있는 향토사단등 6개부대등을 옮기기로 했다. 수영비행장은 길이 2㎞·폭 45m의 활주로 1개를 갖추고 있으며 땅값은 평당 1백30여만원선으로 전체 매각대금은 4천5백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부산시는 수영비행장 지역에 국제종합전시장 및 정보업무 복합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 KAL기 기체이상/착륙지연·회항사태/제주·김해공항서

    【제주·부산=김영주·이기철 기자】 대한항공 여객기가 부산 김해공항과 제주공항에서 기체 이상으로 회항하거나 착륙이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2일 하오 5시쯤 승객과 승무원 등 2백67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이륙,1시간만인 하오 6시쯤 제주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237편 DC­10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 직전,계기판에 기체 이상 징후가 나타나 제주상공을 선회했다. 이 항공기는 제주상공에서 1시간 40분동안 연료를 소모하며 하오 7시45분쯤 2차 착륙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이륙 3시간만인 하오 8시2분쯤 활주로에 내렸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 승객 2백32명을 태우고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일본 후쿠오카로 향하던 대한항공 KE732편 DC­10기가 엔진결함으로 이륙 30분 뒤인 하오 1시3분쯤 김해공항으로 되돌아왔다.
  • 일 새국제공항 건설 수도권 등 2곳 검토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국내 항공망이 거의 완성됐다고 보고 향후 5년간 수도권에 제3국제공항,중부지방에 새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한편 간사이국제공항 제2기 공사를 중점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신문은 운수성과 항공심의회(운수성 자문기관)가 검토하고 있는 제7차 공항정비5개년계획(96∼2000년)골격이 밝혀졌다면서 이 기간중에는 지방공항보다는 국제거점공항정비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아시아의 거점공항으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나 턱없이 비싼 공항사용료 경감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과제는 남아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이 계획은 간사이국제공항의 경우 활주로를 현재 1개에서 3개로 늘린다는 방침 아래 2기공사에 착수하며 중부 새 공항은 도쿄와 오사카에 준하는 중부경제권 국제공항으로 나고야 근처에 건설토록 되어 있다. 계획은 또 2015년경이면 수도권도 나리타와 하네다공항으로는 수용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제3국제공항을 건설하되 간사이공항과 같이 바다를 매립해 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토록 했다. 운수성은 이같은 계획을 추진하는 데 약 3조5천억(30조)∼4조엔(34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울진에 신공항 건설/기성면일대 2천년까지/98년 착공

    ◎목포공항 수준으로 건설교통부는 22일 총 사업비 6백17억원을 들여 경북 울진군 기성면 봉산·구산 일원 50만㎡의 부지에 오는 2000년까지 공항을 건설키로 했다.97년까지 기본조사 및 실시설계와 용지매입을 마치고 98년 착공키로 했다. 시설 규모는 B737­400기의 이·착륙이 가능하게끔 폭 30m,길이 1천5백m의 활주로 한 개와 연면적 1천㎡의 계류장,여객터미널,주차장 등을 갖출 계획이다.현 목포공항 수준이다. 건교부는 이 지역의 항공수요는 공항이 완공되는 오는 2000년에 연간 24만4천명이며 2010년에는 41만9천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 깊어가는 중·소 불신(모스크바 새 증언:22)

    ◎「중국군 무기지원」 싸고 모·스탈린 반일/스탈린­북경측 잇단 고문단 파견 요청 등 계속 거절·김일성에 전문… 모에 대한 불편한 심기 토조 51년 7월 10일을 기해 개성에서 휴전협상이 시작되자 전쟁은 막바지 소모전 양상을 띠고 전개됐다.미군의 공습이 기세를 수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군사고문단 파견과 추가 무기원조를 거듭 요구했다.모택동은 9월20일자로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고문단 파견 외에 무기 추가인도를 거듭 촉구했다.(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4110) 『우리는 현재 새로운 군조직개편안에 따라 구성된 10개 사단의 훈련계획을 세워 51년 8월부터 시행하고 있음.따라서 이전에 스탈린동지께서 약속한 10개 사단용 탄약,장비의 지급계획은 차질없이 이행해 주기 바람.10개 사단 훈련은 52년 3월까지 끝내고 그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이들을 조선에 투입하겠음.특히 포탄,대전차포,탄약등 추가무기를 가능한한 빨리 조선전선으로 보내주기 바람』이와함께 모택동은 필요한 장문의 무기목록을 전문에 첨부했다. ○탄약지원 재차 요구 그러나 스탈린은 이번에도 모의 지원요청을 대부분 거절했다.9월26일 모에게 보낸 답전을 통해 이 크렘린의 주인은 『조선에 파견된 중국의용군 총사령부에 10월 초순까지 5명의 군사고문관을 파견할 용의는 있다.하지만 모택동동지가 요청한 군단위까지 고문단을 파견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밝혔다.(전문번호 N5542.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 그러나 모택동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모는 10월5일 스탈린 앞으로 전문을 보내 고문단건에 대해서는 일단 그의 입장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하지만 추가 무기,탄약지원은 자신이 요구한대로 반드시 이행해 줄 것을 재차 요구했다.(전문번호 N24547) 『대공포,포탄,대전차 수류탄 추가공급이 절실함.또한 60개 사단 무장계획을 연기시키지 말기 바람.당초 이 무장계획은 54년 상반기중 완료하기로 한 것인데 이제와서 54년말까지 하겠다고 미루는 것은 곤란함.51년 6월 고강이 모스크바에서 서명한대로 8년 상환 군사차관으로 지급키로 한 위의 지원무기는 당초 약속대로 인도해주기 바람』 그러나 스탈린은 이 요구에 대해 매우 언짢은 심기를 내보였다.10월 7일 모앞으로 보낸 전문에서 스탈린은 그의 요구가 당초 약속에 없는 무리한 것이라고 공박했다.(전문번호 N2332) 『모택동동지앞.10월4일자로 보낸 전문에서 동지는 당초 약속에 없던 차량장비를 군사차관에 포함시키자고 요구했음.…중략…그리고 동지가 제시한 차관 상환방법은 이전에 양국간 합의한 내용과 서로 상반되는 것임.우리의 재정,군사기관들은 이전에 중국과 체결한 협정문안에 명시된 모든 조건들을 수정하는 데 반대함』 모택동은 지지 않고 추가 3개 여단으로 구성되는 1개 대공포사단의 파견과 3개 제트전투기 사단,3개 항공기술대대의 추가파견등을 요청했다.다음은 10월24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관련전문.(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N25187) 『1.현재 적공군기의 주목표는 아군 통신망을 파괴하는 데 있음.로보프장군이 지휘하는 항공부대와 중국공군부대는 공중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고 소련,중국군의 대공포 부대 또한 통신망 보호에 큰 공헌을 하고 있음.하지만 아군의 전력규모는 보급품수송을 확고히 지켜줄 만큼 충분치 못함.따라서 3개 여단으로 구성되는 1개 소련군 대공포사단을 추가로 조선에 파견해 안수지역의 활주로와 철도보급로 공중방어를 강화해주기 바람. 2.중국동북부에서 전투훈련을 마친 중국비행부대가 조선으로 투입되기 위해 대기중임.이들이 조선에 투입될 경우 중국내 방공수단이 부족해짐.특히 51년 11∼12월 사이 4백63명의 조종사들이 중국항공학교에서 야크­11기 훈련코스를 마칠 예정임. 스탈린동지께서 이전에 명령한 계획에 따라 3개의 미그­9 전투기사단,TU­2 폭격기사단 1개,IL­10 공격사단,LA­11 첩보여단,LA­9전투여단,LI­2수송여단,LI­2수송여단등을 창설키로 결정했음. 현재 우리 공군력 수준으로는 자력으로 위에 열거한 사단,여단 창설 뒤 조종사들의 훈련을 감당할수 없음.따라서 본인은 소련정부에 다음 사항의 원조를 부탁함. (a)중국에 3개 제트기사단과 3개 항공기술대대를 파견해 줄 것.이 항공기술대대는 3개의 중국전투기사단과 6개의 미그­9 항공기술단을 훈련시킬 장비를 갖춤.이들은 북경,상해,광동지역의 대공방어를 강화하는 데 투입됨. (b)2개의 중국 첩보여단과 2개의 LA­11 항공기술단을 훈련시킬 장비를 갖춘 항공기술 대대 1개와 1개 여단(장비 없이)인원을 중국에 보내줄 것』 이 전문에는 이밖에도 크고작은 지원요청이 여럿 들어있었다. ○모태도에 못마땅 거듭되는 지원요청에 스탈린은 매우 못마땅했다.51년 11월 13일 김일성에게 전문을 보내 모택동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전문번호 N102522) 『김일성 동지앞.본인은 오래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있음.3개 조선사단의 무기지원요청에 대한 본인의 답이 늦은 것은 이 때문임.모스크바 회담에서 우리는 30개 중국군사단에 무기를 공급키로 합의했음.중국동지들은 이 무기 중에서 3개 사단분을 조선군에 공급키로 돼있음.후에 중국동지들은 30개 사단이 아니라 60개 사단용의 무기공급을 요청해 왔음.따라서 이 무기중 조선군 3개 사단에 무기를 공급할 가능성은 더 커졌음. 만약 중국동지들이 어떤구실을 달아 귀하의 요청을 거절한다면 본인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주기 바람』 이 전문을 받은 김일성은 서둘러 모택동에게 전문을 보내 스탈린의 심기를 전하고 3개 사단분 무기인도를 요청했다.51년 11월 14일 북한 주둔 소련군사고문단장은 스탈린에게 다음과같이 보고했다.(전문번호N503396sh) 『본인과 가진 개별면담에서 김일성은 중국동지들에게 소련으로부터 받은 무기중 일부를 조선군 3개사단 몫으로 인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음.오늘 김일성은 3개 사단 몫 무기를 인도할 것을 요구하는 전문을 모택동에게 보냈음』 이 보고를 접한 후에야 스탈린은 비로소 모택동에게 연락을 취했다.스탈린은 10월24일자로 모택동이 무기,고문단의 추가지원을 요청한 전문에 대해 그때까지 아무 응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다음은 11월 14일 스탈린이 중국 주둔 소련군사고문단장 크라소프스키장군을 경유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전문번호N6618) 『모택동동지앞.귀하가 보낸 10월24일자 전문은 받아보았음.본인이 모스크바에서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답이 늦었음. 1.북조선의 통신망 방어는 공격비행단이 맡아야함.따라서 활주로건설에 박차를 가해줄 것을 강력히 주문함.대공포부대는 주요시설물 방어만 전담할 것.현재 소련군 2개 대공사단도 그렇게 하고있음.이 대공방어망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국군은 소련이 제공한 180정의 각종 포,및 각종 대공 자동화기를 조선에 제공할 것.이미 약속한대로 12월중 120정의 대공포(85㎜캘리버)등을 중국에 제공하겠음. 2.소련군 제트전폭기 3개 사단을 조종사와 함께 보내고 3개 항공기술대대를 중국에 보내라는 요청은 들어줄수 없음.미그­9기는 더 이상 지원할수없음.만약 미그­9기 조종사 훈련을 위해 소련 조종사들이 필요하다면 지금 중국에 파견돼 있는 소련전투기 사단내의 교관을 3개월동안 이용할 것.현재 중국군 미그­9조종사 훈련을 위해 중국에 일시 체류중인 이들 소련교관들은 반드시 예정기한내에 본국으로 귀환할수 있도록 조치할 것』 ○모 발언권 크게 강화 매우 엄하고도 딱딱한 내용의 전문이었다.스탈린은 특히 이 전문을 크라소프스키 중국 주둔 소련군사고문단장을 통해 모택동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감추려하지 않았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로 짐작할수 있듯이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한국전쟁을 둘러싸고 모택동의 발언권이 전쟁초기보다 상당히 강화됐음을 알수 있다.스탈린이 발을 빼는 기미를 보이면서 모택동이 전쟁 마무리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모­스탈린 서로 노골적 비난·반박/「중·소 분쟁」 비밀 풀어줄 중요 자료 스탈린은 전쟁을 동의,결정해놓고도 모택동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기지원을 주저하거나 거절하고 있었다는 점이 상세하게 밝혀져 있다.그는 소련군 고문단의 파견도 요구대로 들어주지 않았다.이는 모택동으로 하여금 스탈린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키워주었음에 틀림없다.그들은 요구­거절­재요구­재거절 등의 악순환을 반복하는가 하면 아예 은유적 표현속에 감추어진 상대방에 대한 적의까지 읽을 수 있는 상호 반박과 비난의 내용까지 들어있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전쟁은 물론 스탈린과 모택동,소련과 중국의 관계를 연구한 저서들에서도 밝혀진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들이다.모택동과 스탈린은 사실상 또다른 내부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는 한국전쟁은 물론 앞으로 20세기 냉전사 연구에 하나의 중대한 전환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는 사실들이 아닐 수 없다.20세기 세계사에서 풀리지 않는 중요한 비밀중의 하나가 중소분쟁이었고,그중에는 그것의 구체적인 역사적 계기가 언제부터였느냐는 점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번자료는 그 비밀을 풀어줄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회에는 또한 스탈린이 자신의 모택동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김일성에게까지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모택동이 김일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이를 자신에게 이야기하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이는 스탈린의 모택동에 대한 불신과 감정의 정도를 읽을 수 있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사실상 모택동과 김일성을 중간에서 조정하고 있다는 점까지 시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번 자료를 통해 전쟁의 결정과 시작,그리고 초전 승세기 동안어렵게 유지되던 스탈린과 모택동의 관계는 전세 역전과 중국군참전을 계기로 상당히 어려워지기 시작하였고,휴전협상의 시작과 함께 거의 적대적일만큼까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이 자료의 공개를 계기로 스탈린­모택동 관계를 비롯한 세계 냉전사는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해외건설 대량수주 잇단 개가

    ◎대우­말련 2억·일성­라오스 30억달러공사 수주 대형 건설사고에도 불구하고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초대형 공사를 잇따라 따내 건설업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주)대우 건설부문은 말레이시아 국영통신공사가 발주한 초고층 인텔리전트 빌딩인 텔레콤사옥 신축공사를 2억4천만 달러에 수주했다고 13일 밝혔다.대우는 이 공사 외에도 최근 2년간 말레이시아에서 플라자라키얏 민자역사,비전시티,138플라자,세팡공항 활주로공사 등 5개 프로젝트 총 9억2천만달러를 수주,말레이시아에 진출한 해외업체 가운데 최고 수주액을 기록했다. 오는 98년 완공을 목표로 다음 달 중에 착공될 예정인 텔레콤사옥은 콸라룸푸르시 잘란 판타이바루 인근 1만평 부지에 연건평 2만5천7백평,지하4층,지상 77층 규모로 건설되며 최첨단 인텔리전트빌딩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한편 통일그룹 계열의 일반 건설업체인 일성종합건설도 이날 철도,도로,공항 등 총 30억 달러규모의 라오스 사회간접자본 건설공사를 일괄수주 방식(턴키 베이스)으로 수주하게 됐다고 발표했다.일성종합건설 이창렬 사장은 지난 12일 (현지시각)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해외투자청에서 로안 솜 부칸 라오스 경제협력위원회 부의장과 이같은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공사비 12억5천만달러 규모의 브엔티안 신국제공항을 비롯해 비엔티안­빈간 철도부설(5억달러),수력발전소(3억달러),설탕·비료·농약공장(3억달러),도로(1억2천만달러),호텔(1억달러),기능대학(8천만달러),시멘트공장(5천만달러) 등으로 모두 30억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력발전소,설탕·비료·농약공장,호텔,시멘트공장,철광산개발공사 등 12억5천만달러 규모는 일성건설이 투자비를 부담하는 대신 완공후 일정 기간 운영권을 갖고 투자비를 회수하는,이른바 BOT(건축운영 이전) 방식으로 추진한다.
  • KAL기 “위기일발”/김포공항/이륙직전 엔진고장… 아찔한회항

    【부산=이기철 기자】 승객과 승무원 등 2백39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전 엔진고장을 일으켜 운항을 중단,회항했다. 9일 하오 6시 15분쯤 서울로 가기 위해 부산 김해공항 활주로를 이륙하던 대한항공 144편(기장 김병근·A300기)이 이륙 직전 왼쪽 엔진에 고장을 일으켜 이륙을 중단하고 계류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사고로 승객들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엔진폭발음에 놀란 승객들이 긴급 대피하는 등 소동을 빚었다. 승객들에 따르면 여객기가 주활주로에 진입,속력을 내 달리던 중 갑자기 좌측엔진쪽에서 「쾅」하는 폭발음이 들린 뒤 연기가 치솟으며 이륙이 중단됐다는 것이다.
  • 막오른 휴전협상(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21)

    ◎모,김일성에 「화·전 2중전략」 제시/공산측,회담초 위약한 공군력 보강에 안간힘/스탈린,부담 피하려 모의 「협상지휘」요청 거절 전쟁이 계속되는 내내 마찬가지였지만 휴전협상에 임하는 마당에서도 김일성은 스탈린·모택동 두 사람의 뜻에 철저히 모든 것을 맡겼다.김일성으로부터 긴급히 휴전협상 전략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모택동은 일단 두가지 기본전략을 마련해 주었다.한편으로 전투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협상제의를 해올 경우 대표를 보내 협상에 임하라는 이중전략이었다. 그리고 모택동은 이 기본전략을 즉시 스탈린에게 보고해 그의 의중을 물었다.김일성이 협상자문을 구하며 보내온 전문 등을 첨부한 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6월30일자 전문.전문번호 N21334). 『리지웨이가 제시한 협상조건이 입수되면 그 내용을 검토한 뒤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함.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스탈린동지께서 직접 나서서 우리가 난처한 입장에 빠지지 않도록 협상 전과정을 총지휘해 주시기 바람』. ○“김에 회담 직접 지시” 같은날 6월30일 리지웨이 장군이 휴전협상을 제의했다.모택동은 곧바로 스탈린에게 전문을 띄어 구체적인 협상전략을 새로 제시했다.모는 이 전문에서 협상장소·시기·구체적인 방안등을 조목별로 열거했다(전문번호 N 21340). 『리지웨이가 협상제안을 해왔음. 본인의 의견은 다음과 같음. 1.김일성동지는 7월2일 혹은 3일중에 리지웨이의 휴전제의에 응하는 답을 보낼 것.그리고 시간·장소·대표자 수를 제시할 것. 2.협상장소로 리지웨이는 원산을 제시했으나 이곳이 북조선의 군기지가 있는 곳이므로 응하지 말것.38도선 부근의 개성을 제의하는 것이 어떨지. 3.협상개시 시기는 7월15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됨. 4.시간이 촉박하고 회담의 중요성에 비추어 스탈린동지께서 직접 김일성과 연락을 취하고,회담을 직접 지시해 줄 것을 요청함.동시에 본인과도 연락을 유지해 주기 바람』. 그러나 협상 전과정을 총지휘해달라는 모택동의 이 요청을 스탈린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스탈린은 모택동에게 대신 협상의 모든 책임을 맡으라고 요구했다.그러면서도 회담 장소·시간·기본전략에 대해 스탈린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다음은 6월30일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답전(전문번호 N 3917). 『리지웨이의 휴전제의에 대해서는 이를 받아들인다는 답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즉시 내보낼 것.이 답신은 김일성과 팽덕회의 이름으로 내보낼 것.만약 중국 의용군 사령관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으면 미군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임.회담장소는 38도선 개성을 절대 고수할 것. 귀하는 전문을 통해 모스크바가 휴전협상을 지도토록 요청했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필요한 일도 아님.협상을 지도할 사람은 바로 모택동동지 당신임.우리는 기껏해야 몇가지 사안에 대해 조언이나 해줄수 있음.김일성과는 직접통신도 안됨.동지가 김일성과 직접 통신을 유지하기 바람』. 이어서 모택동은 7월2일 전선의 팽덕회·고강·김일성 3인에게 전문을 보내 협상시작 전 전선에서의 주의사항을 단단히 주지시켰다.그 주의사항은 첫째로 제1차 방어선 병력을 증강배치시키고 무기·탄약을 충분히 확보할 것.둘째,최상급 비상경계령을 발동할 것.제1차 방어선 부대들은 적의 대규모 공격과 협상을 전후해서 아군 후방에서 있을지 모를 적 공군기들의 치열한 공습에 대비할 것.셋째,서해안에 적이 상륙작전을 벌일 가능성에 대비,이를 격퇴할 준비를 갖출 것등이었다. 모택동은 이 지시문을 이튿날인 7월3일 스탈린에게 그대로 보고했다(전문번호 N 21412). 1951년7월10일 개성에서 마침내 휴전회담이 시작됐다.그러나 협상에 임하면서도 중국·북한군은 우세한 장비를 갖춘 유엔군에 대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협상 시작 뒤 군사력강화방안에 대해 모택동은 7월18일 스탈린에게 다음과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 21646). ○대공포망 강화 제의 『전선에서 적극공격을 펴지 않고 방어전략만 계속하면 적은 우리에게 군사적 압력을 넣기 위해 계속 엄청난 공습을 해댈 것임.따라서 다음 사항을 제의함. 1.대공포 망을 강화할 것.2.공중전 강화.3.공군 지휘부 강화.4.공군기 작전반경을 압록강에 국한시키지 말고 평양까지 남진시킬 것.5.잘 훈련된 폭격기 편대를 적의 후방에 침투시킬 것,적극적인 공중전을 펼 것,여러 공항·군수창고·적군 막사를 적극적으로 공습할 것. 6.지상에서도 적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국지전 성격의 공격작전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감행할 것』. 그러나 이같은 적극적인 군사작전 구상은 오히려 강화된 유엔군의 공습 때문에 큰 차질을 빚었다. 51년 8월11일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사정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호소하고 세만회를 위해 평양북쪽에 비행장 건설과 소련의 추가지원을 긴급요청했다(전문번호 N 22764). 『현재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으나 밤낮으로 계속되는 적의 공습 때문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가 없음.우리의 대공포는 8천m 상공에 있는 적 폭격기에 미치지 못함.공습을 받아 새로 보수해 놓으면 또 폭격을 받고…이런 식으로 계속 되풀이되고 있음.따라서 중국·조선군 비행단과 소련항공여단 4개 여단을 동시에 조선으로 이동시키기로 한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음.9월로 예정됐던 이들 비행단의 적전계획은 연기돼야함. 우리는 중·조선군 항공단의 조선진출 전초기지로 평양 북쪽에 비행장건설을 제안 함.이곳은 적공군 기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적 폭격기가 접근해도 쉽게 격퇴할 수 있음.소련정부에 대해 중국 안동에 주둔하고 있는 3개 대공포 여단을 조선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 함.이는 중국국경 지역 안수에 건설중인 비행장 방어를 위해서 임.동지의 지시를 기다림』. 이 요청을 받은 스탈린은 8월17일 모택동에게 답전을 띄웠다(전문번호 N 4757.대통령문서보관소).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안수지역 비행장건설을 10월20일까지 완공해 늦어도 11월 이전에 중·조 공군이 이곳으로 이동해 작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스탈린은 이를 위해 소련의 2개 대공포 여단을 안수지역으로 보내 비행장 건설을 방어케 하겠다고 약속했다.스탈린은 이 대공포 여단은 안동지역에 배치돼 있는 병력을 빼내오겠다고 밝혔다. 이 무렵 모택동은 미군의 공습에 거의 속수무책이었다.모는 이밖에도 소련군사고문단의 추가파견을 줄기차게 스탈린에게 요구했다.그러나 스탈린은 고문단파견에 동의하면서도 가능한한 숫자를 줄이려고 해 두사람간 줄다리기가 계속됐다.다음은 9월8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 23703). 『51년 7월27일자 전문에서 본인은 스탈린동지께 조선에서 싸우는 중국의용군부대에 소련군사고문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음.이 문제와 관련,소련군사고문단장 크라소프스키동지와 협의한 결과,83명의 군사고문관이 필요 함. 1.의용군사령부에 10명의 고문관이 필요.인원내역=고문단장(1)참모총장고문관(1)작전분야(1)정보분야(1)통신분야(1)후방(1)탄약(1)포(1)탱크(1)엔지니어고문(1).이밖에 5개군에 각2명씩 총10명.그리고 21개 병단에 모두 63명. 이들 고문관들은 51년9∼10월 사이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보내주면 좋겠음』. ○「고문관 파견」 실랑이 9월12일 스탈린은 모택동의 군사고문단 파견요청을 숫자를 줄여 일부만 충족시켜 주었다.6억 루블의 추가군사차관 요청은 그대로 집행해주었다.스탈린은 중국의용군 사령부에 고문관 5명만 파견하겠다고답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9월20일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5개군에 각각1명씩 모두 5명의 고문관을 보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당초에는 각2명씩 모두 10명의 고문관 파견을 요청했다.모택동은 이들을 9월말 혹은 10월초순까지 북경에 도착토록 해주면 곧바로 전선으로 투입하겠다고 말했다.군사지원을 둘러싼 두 사람간의 줄다리기는 휴전협상 내내 이런 식으로 계속됐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소 협상장소·날짜까지 지시/김일성에 명령조로 전문 보내 19회에 나간 전쟁중의 김일성의 모스크바·북경방문 사실부터의 내용은 사실상 거의 전부가 새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새로운 발견사실의 의미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검토해 나가보자.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도 김일성은 주요전략을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자문하였고 모택동은 항상 스탈린과 상의하였다.따라서 한국전쟁에서의 휴전협상은 사실상 자본주의 최고 지도부와 사회주의 최고 지도부와의 전체 대 전체식의 협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사실상의 주도자였으면서도 모택동의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였다.그는 상세한 사항까지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구체적인 협상의 과정에서 오는 책임과 부담을 지지않으려 하였던 것이다.스탈린은 또한 전쟁 진행중 모택동이 요구하는 군사고문단의 배치에 계속 신중하였다. 김일성에 대한 모택동이나 스탈린의 권고사항은 주권국가에서 제안하는 권고사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철저하고 구체적이고 명령적인 것이었다.즉 그들의 지시는 김일성이 움직이거나 변경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휴전협상의 응답 날짜,장소,개시시점까지 지시,마치 군대의 상관이 부하에게 내리는 지시와 같았다.(실제로 그들의 용어 역시 「지시」였다)이점에서 오늘에 반추컨대 미국과 유엔의 협상전략이 모스크바와 북경을 향했던 것은 틀린 전략이 아니었다.종전후 김일성이 주창한 주체사상과 제제는 사실상 이러한 극단적인 반주권성과 종속성의 역설적 반발이었다.
  • 폭탄·무기 소지 “폭파” 위협/일 여객기 납치 이모저모

    ◎“옴교보복 일수도…” 일 열도 공포/“얼음송곳 위협” 기장 첫 타전/F15기 긴급배치… 비상 대비/아사하라 부인 납치범에 투항 호소 ○…죽음의 독가스테러 사건으로 세계를 놀라게했던 옴진리교의 공포가 21일 다시 일본열도를 강타했다. 도쿄지하철 독가스 테러사건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날 옴교 신도로 알려진 범인에 의한 전일호(ANA)여객기 납치사건이 다시 발생, 옴진리교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비난과 증오가 증폭되고 있다. ○…비행기 납치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자위대는 하코다테 공항에 화학방호부대를 긴급대기태세에 들어가도록 하고 상공에는 항공자위대의 F15 전투기와 F전투지원기를 각각 2대씩 포진시켜 긴장된 초계 태세에 들어갔다. 삿포로에 진주하고 있는 육상자위대도 화학방호부대원 약30명에 대한 출동령을 발동. ○…범인은 얼음깨는 송곳만으로 여객기를 납치했으며 항공관계자들은 범인이 어떻게 얼음송곳을 지니고 비행기를 탈수 있었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 일본 당국은 일본항공(JAL)기 요도호사건 드어을 계기로공항에 금속탐지기를 비치해 승객의 몸을 철저히 뒤지고 있기 때문에 금속성 칼이나 총기류는 유대가 사실상 불가능 하도록 되어 있다. ○…일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책을 강구해 승객들의 안전구출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으로 법질서유지를 위해 범인의 요구에는 단호한 입장으로 대처할 방침. 일정부는 특히 75년 적군파사건 당시의 비난등을 계기로 78년 후쿠다(복전)내각 당시 마련된 「항공기 공중납치에 대한 대처방침」에 입각,아사하라 쇼코(마원창황)옴교 교주의 석방요구 등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노나카 히로무 자치상(국가공안위원장)과 경찰청장관, 이가라시 고조 관방장관등을 불럴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 ○…범인이 스스로 옴 진리교 신도라며 「고바야시 사부로」라고 밝힌데 대해 ANA측은 그같은 사람이 탑승했음을 확인했으나 옴교측은 짚이는 곳이 없다며 현재 그런 신도가 있는지를 조사중이라고 발표.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주의 아내이자 옴진리교주의 대행자 역할을 하고 있는 마쓰모토 토모코는 21일 여객기 납치범들에게 투항하라고 호소. ○…밤이 깊어지자 공항에는 불안한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대치상황이 계속되면서 일부 승객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조종사가 보고.또 단체관광객 안내원으로 기내에 억류돼 있는 여행사 관계자들이 이날 휴대전화로 회사에 연락해온 내용에 따르면 승객들은 눈가리개와 마스크를 한 채 전원 자리에 앉아 있으며 손을 결박당한 상태라는 것.그러나 ANA측은 여행사 안내원들의 이같은 보고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라며 의문을 제기.납치여객기의 창문은 대부분 가려져 있고 기내 등도 일부 꺼져있으나 에어컨 작동을 위해 보조엔진은 가동. ○…일본당국은 기장을 통해 여객기 납치범과 계속 교섭하고 있으나 당국의 선 인질석방요구와 범인의 연료급유 및 도쿄 회항 요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ANA에 따르면 범인은 조종석에 들어가 기장을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며 당국 역시 기장을 통해 범인과 직접 교섭,승객 석방 및 환자 발생시 병원 후송 등을 요구했으나 범인은 이를 거부.일본정부도 연료급유를 허락할 수 없다고 거부. ○…승객 가운데는 유아 등 어린이 7명과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95명이나 포함돼있다고 ANA측이 발표.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92세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당국은 저녁시간이 되자 3백70여명분의 오니기리(주먹밥)와 음료수 등을 준비했으나 납치범이 거부. ○…납치된 여객기에 타고있는 한 여승무원은 NHK TV에 전화를 걸어 『납치범들이 폭탄과 다른 무기들을 갖고있다』고 말했다면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납치범들의 협박메세지를 전달.범인은 특히 이날밤 10시35분 6번째 전화를 NHK방송국에 걸어 얼음 송곳은 밖에서 비행기 안으로 갖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은 옴교 신도라고 말한적도,이름을 댄 사실도 없다고 강력히 부인. ◎납치기장과 교신 내용 ▲12시3분=2층 객실에서 남자가 얼음송곳으로 위협하고 있다.옴 신자인 것 같다. ▲12시30분=범인의 요구다.활주로에서 연로를 보급하라.객실 유리창의 빛 가리개를 모두 내려라. ▲12시33분=기장이 승객들에게 공중납치사건 발생을 밝혔다.승객들에게는 기내방송으로 12시40분 하코다테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12시47분=(범인으로부터) 활주로에 누구도 접근시키지 말라는 요구다. ▲12시55분=기체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 수를 확인해달라. ▲12시59분=범인은 연료보급을 빨리 하라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1시18분=(범인이) 연료보급을 하지 않으면 플라스틱 폭탄 시한장치를 풀겠다고 말하고 있다.
  • 고속도 불법주정차 7월까지 특별단속

    경찰청은 5일부터 두달동안 고속도로에서의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특별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주정차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고속도로 휴게소 및 IC 진출입로,비상활주로,갓길 등에 불법 주정차 행위를 한 위반자를 대상으로 승용차는 4만원,승합·화물차 등은 5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한다.
  • 인천상륙작전 전후(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0)

    ◎스탈린,소 군사고문단에 “작전 실책” 추궁/“병력 이동­탱크사용 전술 결정적 과오” 격노/김일성,연합군 「38선 진격」 당황… “소 개입” 요청 한국전쟁이 스탈린의 지시와 지원하에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50년 9월 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 정치국은 평양주재 슈티코프대사와 북한주재 소련군사고문단장 마트비예프장군 앞으로 보내는 지시문 채택을 승인했다.이 지시문은 스탈린이 직접 작성해 서명한 것이었다.여기에서 스탈린은 서울을 비롯,남동부전선에서 전세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대한 작전변경을 결심했다. ○병력철수 작전 못마땅 스탈린은 작전부진의 주 책임을 소련군사고문단의 실책으로 몰아붙였다.다음은 이날 당 정치국 회의록에 기록된 지시문의 내용.(19 50년 9월7일.당 정치국회의록 N78.조선전쟁문제회의록p.1) 『최근 수일간 전선상황이 심각해졌음(서울과 동남부전선 모두).이는 전선사령부와 군단사령부,병력지휘부 특히 전술분야의 병력구성분야에서의 중대한 실책으로 야기됐음. 소련군사고문단들은 이들 실책에 보다 큰 책임이 있다.우리 고문단들은 4개 사단을 주전선에서 서울외곽으로 철수시키는데 있어 총사령관의 명령을 제때 충실하게 이행치 못했다.결정적인 시기에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그 결과 7일을 허비해 미군이 서울 이남에서 큰 전술적 이득을 획득케 했다.만약 이들 사단의 철수가 제때 이루어졌더라면 서울 이남의 전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임』 스탈린은 이와함께 탱크사용 전술이 크게 잘못됐다는데 대해 격노했다. 『탱크를 투입할 때는 사전에 박격포공격을 통해 탱크가 진격할 길을 치워야 하는데 최근 이 원칙도 지키지 않고 탱크를 투입했다.이 때문에 우리 탱크들이 쉽게 적에게 파괴됐다』 스탈린은 또 미군의 인천상륙 가능성에 크게 우려하며 군사고문단들이 이에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슈티코프대사가 미군의 상륙작전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프라우다신문 기자를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며 『이런 전략경험의 미숙,맹목성이 남부의 병력을 서울지역으로 이동시키는데 의문을 야기시켰다』고 질책했다.이와함께 스탈린은 군사고문단의 바실리예프장군에게 인민군사령부가 병력을 동남부로부터 신속하고 질서있게 이동시켜 서울 동·남·북부에 새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그는 병력이동시 작전수칙 8개항을 직접 지시했다. ○「8개 수칙」 직접지시 『①주력군 철수는 강력한 후방지원하에 시행할 것.경험많은 전투사령관들이 후방지휘를 책임질 것.대전차포부대,탱크가 후방방어를 지원할 것.②후방방어는 지뢰등을 이용한 장애물을 설치,이중삼중의 방어선을 만들 것.주력군 철수에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후방방어는 적극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돼야함.③주력사단은 분리이동이 아니라 전체가 이동해야 함.주력군 선두는 포,탱크부대를 앞세워 전투태세를 갖춘상태에서 나아가야 함.④탱크는 반드시 지상군과 함께 투입하되 사전에 포공격을 한 다음 투입할 것.⑤선두부대는 주력군이 도착하기 전 교량,교차로,주요도로 등을 점령해야 함.⑥철수시 정보수집과 부대간 통신유지에 특별히 신경을쓸 것.⑦방어선 구축시기에는 병력의 전선배치를 피할 것.공격작전 개시 전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함.⑧인민군사령부와 병력간 통신시 무선암호를 사용할 것.…중략…이미 지시한 바대로 군사고문단은 단 한명도 포로로 잡히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할 것』 9월 15일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함께 전세는 북한측에 더욱더 어렵게 전개됐다.스탈린은 김일성과 북한주재 소련군사고문단의 긴급요청을 받고 마침내 소련공군 부대를 북한에 주둔시키기로 동의했다.즉각 관련부대에 대한 명령이 소련군지도부에 내려졌다. 50년 9월 21일바실리예프스키 원수가 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전문번호 N11 72SS)『①평양방어 임무를 맡은 「야크­9」전투비행여단의 전속에 관해 보고함.이 여단의 전속배치를 위해 연해주 보로실료프시 인근에 주둔중인 147비행사단 전력에 의존할 것을 제의함.전투기의 이동배치시 안동­평양지구에서 공중전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중략… ②북조선내 비행단 정비인력이 부족함으로 인해 위에 언급한 여단의항공기술대대 1개를 안동 경유 철도를 이용,평양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음.동시에 북조선이 탄약,연료가 부족하다면 이를 평양에 공급할 것임.③북조선이 공군관제기술과 공중경보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장비를 공급해 주어야 함.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 공군기들이 활주로에서 적군기의 기습공격을 당할 우려가 높음.…』 이틀 뒤인9월 23일 바실리예프스키 원수는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을 위한 최종계획을 보고했다. 바실리예프스키 장군은 이 보고서에서 『아군 조종사들이 평양부근에서 1차 교전만 가지면 미군기들에 의해 즉각 정체가 탄로날 것임.왜냐하면 공중전에서 조종사들간 무선교신이 러시아말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임』이라며 이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써줄 것을 스탈린에게 요청했다. 소련공군기의 참전태세가 완료된 즈음,북한군의 전세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스탈린으로부터 전황파악 임무를 부여받고 전선으로 간 마트베프 장군은 9월27일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전문번호 N60 0262sh) 『서부전선(서울)과 동남전선(부산 방향)의 전황이 인민군에게 매우 불리함.미군은 인민군의 주력을 포위격멸하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음.제물포에 상륙작전을 폈고 이곳으로부터 북쪽과 대구 북서방향으로 진격중임. ○김,6개사단 창설 계획 미군은 강력한 공군력의 지원을 엎고 인민군의 후방과 전방지역에 가공할 공습을 가하고 있음.미군은 수원 동쪽과 동남쪽 25∼30㎞까지 진격했음. 9월 25일 19:00,김일성은 서울일원과 북부전선과 동남방향의 제2군에게 최선을 다해 적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음.9월 26일 소련군고문단들이 김일성을 만났음.이 면담에서 김일성은 전시 총사령관과,전쟁상 직을 자신이 모두 맡겠다고 밝혔음.김일성은 특히 남쪽으로부터 동원가능한 최대인력을 데려와 이들로 6개 보병사단을 창설하겠다고 말했음.중국철도가 조선으로 오는 군수품 때문에 크게 붐기기 때문에 이들 6개 사단창설에 필요한 무기,탄약 수송에 최우선권을 부여하는게 바람직하다고 했음.이 면담에서 우리는 김일성과 다음 사항에 합의했음.①효율적인 병력통제체제 확립.②물자,기술공급,수송,도로이용을 원활하게 할 것.③방어선 구축.북조선군은 운전병이 부족함.김일성이 중국측에 운전요원 1천5백명 보내달라고 요청할 것임.9월 29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슈티코프대사를 만나 전선상황을 브리핑했음. 슈티코프대사가 전한 바에 따르면 김은 다음과 같이 말했음. 마트베프 장군은 9월 30일자전문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를 계속했다.『슈티코프는 김일성의 이같은 요청에 대해 자기는 현재 인민군의 정확한 위치,사정을 알지 못해 충고할 수는 없으나 38도선으로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지는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함. 김일성은 본인에게 적이 38도선을 넘어 진격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음.본인은 이에 대해 그것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38도선의 방어선 구축은 서둘러야 한다고 답했음.김일성은 다시 한번 자력으로 통일을 이룩하고 싶다고 말하며 15개 사단을 창설해 전투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음.김일성은 그러나 만약 적이 38도선 넘어 진격해올 경우 새로운 사단창설은 물론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가 없다고 말했음. ○모에도 공군지원 요청 김일성은 이와 관련,스탈린동지께 서한을 보내 충고를 듣고 싶다고 말했음.본인은 이와 관련,들려줄 충고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음.김일성은 이 서한에 공군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음.최근 모택동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같은 부탁이 포함돼 있었음.본인 판단에 김일성과 박헌영은 매우 초조해 있음.당황하고 비관적이었음. 상황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음.서울이 함락됐음.38도선을 향해 신속히 진격하는 적을 상대로 효과적인 저항을 펼수있는 병력이 없음.정치상황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음』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자 김일성은 마침내 강경한 어조로 소련군의 직접개입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새로 밝혀진 사실/스탈린,9월초 “인천상륙작전 대비” 지시/「소 공군 투입계획」 중 공군 참전에 확정 9월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직접 지시문을 채택하였다는 점은 소련이 한국전쟁을 지도부 전체 수준에서 논의하였음을 보여준다.즉 그것은 이미 미국과 소련의 세계전쟁이 되어있었던 것이다.이날의 지시문에서는 작전 부재의 책임을 소련군사고문단에게 직접 묻고있다.서울부근에서 지체한 것도 소련고문단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심지어 사령부와 예하부대와의 협조 및 통신 연락미비 탱크사용전술에 있어서의 오류 등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점까지 직접 지시하고 있다.다른 한가지 새로운 점은 스탈린이 이미 9월초에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는 서울부근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라고까지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거대한 전쟁을 여러 번 치렀던 스탈린으로서는,특히 2차세계대전을 미국과 함께 치렀던 그로서는 이미 미국의 고전적인 상륙전술을 깊이 인지하고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공산진영은 미국의 인천상륙작전을 사전에 거의 알고도 당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세번째로 소련공군의 참전방침이 이미 중국군의 참전 이전인 9월에 결정되었다는 점이다.이 역시 아주 새로운 사실로서 지금까지 소련공군참전결정은 10월에 중국군의 참전교섭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통설의 부정인 것이다.또한 흥미있게도 조종사들에 의한 러시아어무선교신의 위험성을 이미 지적하고있다는 사실이다.이는 실제로 소련공군이 참전한 후 위장을 위해 중국어나 한국어를 사용하였던 점에 비추어 그러한 위장의 계획이 일찍부터 세워졌음을 알게해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 부산항 8부두/군시설 새달 민간에 개방

    ◎국방부/극심한 화물 적체 숨통 트게/컨테이너 연25만개 처리/수영비행장 3만평도 야적장 활용 부산항 8부두의 2개 육군전용 선석이 다음달초부터,2개 미군전용 선석이 다음달말부터 각각 민간에 컨테이너하역부두로 개방된다. 국방부는 18일 부산항의 극심한 화물체증현상을 덜기 위해 부산시 남구 감만동 8부두의 군전용선석을 컨테이너하역부두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군작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안에서 다음달부터 부산 수영비행장의 활주로 일부 3만여평을 민간컨테이너야적장으로 쓸 수 있도록 하고 97년말 완공되는 진해항 군탄약부두도 수출입컨테이너항으로 민간에 개방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부산시 동구 좌전동 미군 제55보급창부지 6만8천여평 가운데 2만5천여평을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주한미군측과 협의중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이번에 부산8부두가 민간 개방되면 부산항 컨테이너물량의 약 6.5%인 연간 약25만개의 컨테이너를 추가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산8부두는 총면적 1만7천8백평에 안벽길이 6백60m로 1만∼1만5천t급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으며 그동안 원양어선에 한해 민간에 개방됐었다. 또 수영비행장 활주로 3만평이 컨테이너야적장으로 개방되면 이미 민간컨테이너야적장으로 쓰고 있는 활주로 외곽지역의 12만5천평과 함께 모두 15만평이 야적장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이 면적은 부산항 배후 컨테이너장 야적물량의 42%수준인 연간 1백25만개를 수용할 수 있다.
  • 스리랑카 공군기/반군에 피격 추락/탑승자 52명 몰사

    【콜롬보 AP AFP 로이터 연합】 스리랑카의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반군이 이틀사이 두번째로 29일 스리랑카 북부에서 스리랑카 공군기 한대를 격추,보안군과 기자 3명등 탑승자 52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군당국자들이 밝혔다. 지난 28일에는 스리랑카 공군기 한대가 반군관장지역 접경의 팔라리 기지 활주로에서 이륙한후 추락,폭발하여 38명의 군인이 사망했는데 29일 격추된 AVRO HS­748기는 같은 활주로에 착륙하려다 참변을 당했다. 공식 소식통들은 AVRO기가 열추적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면서 스리랑카에서 이 미사일이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중,첫 전술훈련기지 개설/육·해·공군 수차례 합훈

    ◎홍콩지/동남부 연안서… 첨단장비 총동원 【홍콩 연합】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복건성·절강성 등 동남부 연안지방을 관장하는 남경군구내에 다기종·다병종이 동시에 참가하는 첫 종합전술훈련기지를 건설해 최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중국의 해방군보를 인용,17일 보도했다. 당중앙군사위원회및 해방군기관지 해방군보는 이같은 기지건설후 최근 첫 실시된 공군위주의 종합전술훈련에서 10여 기종의 항공기가 지대공미사일·레이더·고사포·낙하산병 등과 조화를 이뤄 공대공·공대지·지대지 실전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중국공군은 또 육군 및 해군과 합동으로 산동성과 운남성·귀주성·화북지방 등지에서 작년과 금년초에 걸쳐 여러 차례 획기적인 「첫」 종합훈련들을 성공리에 마쳐 전력을 강화했다고 중국 관영 과기일보가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공군은 산동성 훈련에서 공군과 육군간의 야간합동작전을 처음으로 완벽히 수행했으며,화북지방 훈련에서는 항공기를 대규모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면서 지상지휘부의 지휘를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공군은 이밖에 운남성과 귀주성 훈련에서 처음으로 야전활주로를 이용,대형수송기들을 긴급출동시켜 전투를 지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과기일보는 말했다. 이 신문은 중국 공군은 이미 세계 선진수준급 신예항공기·지대공미사일·지상레이더·자동화 작전지휘체제 등을 갖추고 있으며 공군인력과 작전능력·과학기술·병참지원능력이 모두 다 개선됐다고 말했다.
  • 「유러스타」 종점 영 워털루 역사(걸작건축감상:15)

    ◎아치형 유리지붕… 자연채광의 실내공원/“철도깔린 공항”… 탁트인 개찰구 인상적/최첨단 설계로 역사안팎 시각적 연결/여유롭고 안락한 분위기의 미학적 공간 연출 철도는 1백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나름대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상징물이었다.일제 식민지 경제수탈의 수단이기도 했고,대동아전쟁 때 학도병을 싣고 남방으로 떠나는 이별 장면의 무대이기도 했다.또한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흰 연기를 내뿜던 기관차와 화물차에 보따리를 이고 진 피란민들이 기를 쓰고 울라타던 그 처절한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계속 건설된 고속도로에 밀려 철도는 점차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져간다.최근 들어 꽉 막힌 고속도로를 피해 다시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다지만,아직도 철도는 시대에 뒤떨어진 교통수단으로 화물수송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영 자존심 건 걸작평가 그러나 21세기 초반 한반도에서 본격 가동될 고속전철은 철도시대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또한 우리나라 각 도시 중심부에 남아있기는 하되 그동안 그 모습이나 기능이 쇠락한 철도역사 역시 고속전철의 운행에 따라 영광스러운 중흥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새로 들어서게 될 우리의 고속전철역사,어떻게 지어야 할까? 프랑스보다 한걸음 늦게 고속전철을 도입한 영국 런던의 새로운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네 역사에 대한 궁리를 한번 해보자. 작년 11월,영불해협을 통과하는 해저터널이 개통되었고 파리와 런던을 3시간 내로 연결하는 고속전철이 운행을 시작했다.항공여행의 속도와 철도여행의 안락감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이 유로스타(Eurostar)라는 국제고속전철은 런던∼파리∼브뤼셀의 세도시를 연결하고 있는데 유럽 통합의 가장 극적인 상징물로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이 유로스타의 런던 종착역이 바로 워털루 국제고속전철역이다.이 역은 런던의 템스강 남쪽에 위치한 기존의 국내선 철도역 부지의 한쪽 구석에 자투리로 남은 길쭉한 모양의 땅에 새로 지어 넣었다.영원한 앙숙 프랑스가 개발해낸 고속전철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이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지엇다는 이 우털루역은 부지의 협소함이라는 제약조건을 멋지게 극복해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파리의 북역(GareduNord)기존 역사 한부분을 개조한 승강장에서 출발한 유로스타는 시속 2백㎞로 달려 두시간이 채 못되어 도보해협에 도착,여기에서 바다 밑으로 들어간다.잠수함을 탄듯 차창 밖으로 바닷속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우리 서울의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열차 내 불빛이 가 닿는 곳에는 그저 콘크리트벽만이 보일 뿐이다.약 20분을 달리면 다시 지상으로 나오는데 차창 밖으로 영어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는 영국땅이다.열차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아직 영국에는 고속전철용 철로를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약 한시간여를 달려 드디어 런던 워털루역에 도착한다. ○안락한 실내 분위기 열차밖으로 내려서면 높고 긴 승강장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철골 아치를 이어 만든 지붕이 약 5층 정도의 높이에서 승강장 전체길이 4백m를 덮고 있다.사실 이 지붕은 지붕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벽체로 그대로 연결된다.아치구조이기 때문에 지붕과 벽체가 하나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높고 긴 지붕 밑의 거대한 공간은 19세기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철도역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옛날 증기기관차 시절,흰 증기를 쉽게 흩뜨려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높은 층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물론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차의 전체길이 만큼 이어진 승강장 위에 지붕이 필요하기 했었다. 워털루 역의 승강장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역을 지어야 하는 터의 크기와 모양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그렇지만 이 역을 설계한 영국인 건축가 니콜러스 그림쇼의 창의력은 이러한 제약조건을 최대한으로 역이용하여 미학적으로 뛰어난 공간을 창출해내고 있다. ○안락한 실내 분위기 승강장의 곡선은 바로 위 아치지붕의 곡선과 잘 어울린다.그뿐이랴,철골 아치구조에 덧붙여진 수천개의 대형 유리패널을 통해 하늘빛이 투과되어 승강장 내부를 환히 비추어진다.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런던 하늘이 맑게 개기라도 하는 날에는 햇빛에 의해 생기는 아치구조의 그림자가 승강장에 드리워져 가뜩이나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한 이 공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밤이 되면 승강장 곳곳에 조명이 비추어지고 이 빛은 어두운 밤하늘로 뻗어나간다. 투명벽체,투명지붕의 효과는 건물밖에서 더 잘 드러난다.밖에서 워털루역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밤에는 역사밖이 어두우니 그럴 테지만 런던의 그 많은 흐린 날,안개낀 날 덕택에 역사내부는 항시 조명이 켜져 있기 때문에 낮에도 그렇다. 여행은 어쨌거나 즐거운 것.파리에서 갓 도착한 승객들의 모습이 밖에서 들여다보인다.크고 작은 트렁크를 들고 끌고 밀며 이들이 움직인다.승장장에서 한층을 내려온 대합실의 커피숍도 다 들여다보인다.푸르고 잿빛 주조의 건물내부 색상에 대비되는 빨간 의자에 앉아 있는 승객들의 여유로움이 역사밖 대도시 런던의 번잡한 도시생활에 그대로 전달된다. 워털루 고속전철역은 누군가 말한대로 철도가 깔린 공항이다.국제역사이다보니 탑승수속 카운터에 출입국심사대까지 갖추어 건물내부만 보자면 영락없는 공항건물이다.그렇지만 이 고속전철역은 여느 국제공항과는 다르다. 우선 입지조건이 공항보다 훨씬 좋다.공항은 활주로와 광활한 이착륙공간이 있어야 하고 소음이 크기 때문에 도심에 자리잡을 수가 없다.공항이용객은 별 수 없이 도심에서 공항까지 교통체증에 시달리거나 지하철(결국 철도를 이용한다)를 타야 한다.워털루역사는 고층건물이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그 유명한 트라팔가광장에서 여기까지는 걸어서도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그뿐이랴 택시에서 내리면 바로 15m 앞에 티켓 카운터가 있다. ○모든 역사 장점살려 비행기 탑승수속절차가 수화물을 체크인해야 하고 보안검색도 거쳐야 하는 등 아주 복잡한 것에 비해 워털루역의 탑승절차는 간단하다.도심에서 10분 걸려 역사에 도착,수분내로 모든 수속이 끝나고 승객은 열차 출발시간까지 좀더 자유롭고 한가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결국 워털루역사는 국제도시간 연결마디임과 동시에 도시 한복판의 실내 휴식광장의 역할을 겸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고속전철역사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고속전철은 환경순화적이다.비행기의 소음도,자동차의 매연도 없다.게다가 수천명의 승객을 한꺼번에 실어나를 수 있다.비행기는 고작 3백∼4백명,승용차는 한번에 5명이 아닌가. 워털루역은 이 모든 고속전철역사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있다.역사의 여유롭고 안락한 분위기를 살려 도시내 실내 대중공원화하기 위해서 외부의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이고 동시에 역사 안팎을 시각적으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고속전철이라는 최첨단기술이 가미된 런던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미래 고속전철역을 잠깐 생각해보자.우리의 역도 워털루역과 같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하며 시민에게 환하고 쾌적하고도 여유로운 휴식의 공간을 줄 수 있어야 한다.역건물을 지상에 놓고 건물자체는 투명한 재료를 쓰면 그렇게 할 수 있다.그런데 얼마전 대구 시민이 고속전철의 지상통과를 반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첨단기술의 상징이요,풍요롭고 쾌적한 21세기의 생활을 담는 고속전철역은 어둡고 환기가 잘 안되는 도시지하철과는 달라야 한다.이것을 지하에 가두어놓고 그 위로는 돈벌이가 될 만한 고층의 백화점·호텔을 올려놓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 대선공약 92% 완료·추진중/민자/1천2백건중 2백건 완전매듭

    민자당은 13일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92년 대통령선거 때 공약한 사업 가운데 92.7%를 이미 완료했거나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승윤정책위의장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지난해 12월말 현재 전체 대통령선거 공약사업 1천2백26건 가운데 18.1%인 2백22건이 마무리됐으며 74.6%인 9백14건이 추진중에 있다고 보고했다. 이의장은 대구시 성서 비상활주로 이전과 전남 진도공설운동장 건설등 미착수 사업은 7.3%인 90건이라고 밝히고 『이들 사업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범진 대변인은 이와 관련,『대선 공약사업 가운데 52%인 6백41건은 예산이 드는 사업이며 나머지 5백85건은 비예산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 중 첨단무인 항공기 개발/7년 연구… 수직 이착륙 가능

    중국 섬서성의 서안애생기술집단이 최근 7년간에 걸친 각고의 연구끝에 국제수준의 최첨단 무인조종항공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ASN­206형의 이 무인조종항공기는 로켓추진발사방식을 이용,수직이착륙이 가능할 뿐 아니라 비행장 활주로나 지상관제탑의 관제등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전했다.
  • 유엔특사 탑승기 피격/세계 총격 빗나가 위기 모면/사라예보 공항

    【사라예보 로이터 AFP 연합】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유엔특사를 태운 비행기가 12일 상오 사라예보 공항에 착륙하던중 기관총 공격을 받았으나 부상자는 없었다고 유엔 관계자들이 전했다. 유엔관리들은 휴전 준수를 촉구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하던 아카시 특사를 태운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던중 총격이 가해졌으며 총탄은 한 탑승객의 머리위를 지나쳐 동체를 관통했다고 전했다. 현장의 유엔 관리들은 최소한 3발의 총탄이 발사됐으며 활주로 동남쪽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보스니아 내전 발발이래 고위 유엔 관계자에게 가해진 가장 심각한 공격으로 피격직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공군기들이 출동,공항 상공을 비행하면서 레이더 교란 물체를 뿌리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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