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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 2000년 아침을 기다리며

    이제 50일 후면 인류는 2000년의 아침을 맞게 된다.그저 새 달력을 넘기는여느 해와는 달리 전세계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될 것인지 염려해서 각국이 Y2K문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우리나라만 해도 수조원을 투입하며 변화의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새천년 동안에 일어날 변화를 가늠하는 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의 지혜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하지만 적어도 새천년의 아침이 정보화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정보화사회는 컴퓨터기술과디지털 통신기술이 결합되어 인간의 두뇌와 두뇌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연결되는 사회를 말한다.지난 1,000년간의 인류의 역사도 인간 두뇌 속의 지식을 심화시키고,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시키는 과정이었다.새천년이 시작되면 이러한 지식형성의 속도가 수천 수만 배로 빨라진다는 의미에서 인류사회는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경제는 지식기반경제로 변화되어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두뇌와 시간을경쟁의 요체로 하게 될 것이다.모든 활동공간은 국가중심에서 세계와 가상공간으로 확대될 것이다.기업조직이나 정부조직이 개방적 시장경제체제에 맞게 달라질 것이다.또 개인의 창의가 중시되는 민주적 공동체만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이런 변화는 경제분야뿐 아니라 교육,정치,문화 모든 영역에서 일어날 것이다.때문에 지금 전세계는 변화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2000년의 아침을 기다리고,준비하고 있는 것이다.미국은 작년 7월부터 ‘과거를 존중하고,미래를 그려보며’라는 슬로건 아래 새천년의 아침을 준비하고있다.일본은 ‘새롭고 다양한 지혜의 사회’를 지향하는 중장기 비전을 가다듬고 있다. 우리는 97년 말에 당한 IMF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로 위축된 경제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키는 데 어느정도 성공했다.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경제시스템을 개방적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려는 과감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새천년에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금융과 대기업은 물론 정부와 노사관계의 기본틀을 다시 짜고 있다.이러한 개혁과정에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계층의 불만이 있게 마련이지만,만약 개혁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면 우리는 2000년의 아침을자신감과 희망보다는 불안감과 걱정 속에서 맞게 될 것이다. 새천년의 아침을 진정한 희망과 환희 속에서 맞이하기 위해 우리도 선진국사람들처럼 각자의 분야와 위치에서 변화하려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 할때다.2000년 아침을 맞는 각자의 마음속 환희와 희망의 크기는 변화의 크기와 비례할 것이기 때문이다.康奉均 재경부장관
  • [대한시론] 민주주의와 달구지 이야기

    요사이 전개되는 정가의 모습을 보노라면 새삼 민주주의가 정말 어렵다는생각을 금할 수 없다.얼마전 지방에서 개최된 학회모임에 갔다가 그 지방 중소기업인과 저녁을 함께 한 일이 있다.그분의 말이 민주주의가 뭐길래 이토록 국민을 불안하게 하느냐고 했다.그 분의 말대로 최근 정치가 돌아가는 양상을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은 극히 불안해 하고 있다. 저녁 9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찜찜한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가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을 펴본 국민의 마음은 더욱 공허해진다.어딘지 모르게 국정을책임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이 나라 살림을 위태롭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국정 전반에 걸쳐 단합된 생동감이 없으며 새로운 천년을 향한 국민적 비전도 분명치 않다.뚜렷한 희망도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이 출근해 보면 뭔가 시원스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 중소기업인의 독백이다. 지금 우리는 최초로 민주주의의 시련에 빠져 있다.김영삼 정부가 민주주의의 이행단계였다면,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에 있다.민주주의이행단계에서 국정을 운영한 김영삼 정부는 나름대로 ‘민주화의 환희’ 속에서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여기에는 막연하나마 민주화에 대한 거국적 희망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에서 국정을 책임 진 김대중 정부에 와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거의 모든 민주주의 공고화단계가 그러하듯이,민주화에기대했던 신비성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으로 나타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즉 민주화가 되면 만사가 쾌청하리라고믿었던 신비감이 깨지면서 국민적 실망이 민주주의를 불신하게 되는 상황에이른 것이다. 예일대 J.린츠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화의 이론과 사례’에서 이를 ‘민주화의 탈신비성 딜레마’라고 했다.‘국민의 정부’도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단계에 있으며 이 단계는 개혁이 동반하는 정계의 전환기적 혼돈과 갈등으로 기대보다는 실망으로 가득하다.구시대의 여당이 야당이 되고,한때의 야당이 여당이 되어 모두가 여야의 정치와역할을 공부하며 실습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성과 감성이 엇갈리고 공생적 윈윈게임을 배우면서 실수도 범하기 마련이다.이를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은 민주화라는 것이 고작 정쟁이나하는 것인가 하는 환멸을 느낄 것이나,이는 민주화가 넘어야 하는 피치 못할 고비가 되고 있다.민주주의의 신비성이 벗겨지면서 그 신비에 가려있던 갖가지 모순과 비리 및 이상과 허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우리의 민주주의는이제서야 생산적인 “비판과 반대의 정치”를 공부하면서 끌고 밀며 당기는수레바퀴를 움직이려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대명사는 지지와 성원의 정치가 아니라 반대와 불협화음의 정치라고 한다.때문에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익단체와 각종 시민단체 그리고 대칭적 정치단체를 요구하며 따라서 정당정치를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그러나이 모든 정(正)과 반(反)은 갈등과 협상과정을 거쳐 합(合)에 이르게 됨으로써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마련이다.아니 수레바퀴 보다는 차라리 달구지 이야기를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달구지를 굴러가게 해야 한다.달구지가 굴러가게 하려면 앞에서 소를 끄는 사람도 있어야 하며 뒤에서 미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짐을 가득 싣고 울퉁불퉁한 진흙길을 가고 있다.정부와 여당이 앞에서 소를 끌고 가는 동안 야당은 뒤에서 달구지를 밀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목적지를 정하고 이를 향해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여 적절한 속도로 소를 몰아야 할 것이다.야당은 뒤에서 달구지를 밀면서 이리 가라저리 가라 또는 천천히 혹은 좀더 빨리 가라는 훈수를 두게 마련이다.여기서 소를 끄는 여당과 달구지를 미는 야당이 정쟁으로 마주서면 민주화라는 달구지는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선거철을 앞둔 국민의 선택은 과연 누가 잘하고 있는가를 가려서 소를 모는사람과 달구지를 미는 사람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성원할 것이다. [金裕南 단국대교수 한국정치학회장]
  • [고시촌 산책] 실패 빨리 추스리고 初發心으로 시작을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갔다온 느낌입니다.마음잡기가 너무 힘들어요” 행정고시 2차 합격 후 축하사례로 정신이 없었던 P씨.3차 면접에서 떨어져다시금 떨떠름한 심정으로 고시촌으로 돌아오면서 한 하소연이었다.자격증시험과 달리 3차에서 몇명씩은 떨어뜨리는 공무원시험은 최후까지 마음을 놓을수 없다. 올해도 후반기에는 합격자 발표가 연이어 있다.“축하합니다…” “…명단에 없습니다” 밤 12시부터 시작되는 음성자동전화 메시지로 공식 확인도 하지만 명단이 먼저 입수되는 고시촌이나 통신망에는 합격 여부를 확인하려는수험생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환희와 눈물이 교차하는 시간들은 발표 후 한동안 지속된다.그러나 시험은어차피 떨어지는 사람이 훨씬 많은 법.다음해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넉넉지못한 게 현실이다.하루빨리 자신을 추스려야 한다. 다시 시작할 것인지,다른 길을 갈 것인지를 냉철하게 결정해야만 한다.몇개월을 더 한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은 시험 후부터 합격자 발표까지 1차에서 2개월,2차에서 4개월 걸린다.다른 시험들도 몇개월씩은 걸리니 그 기다림만으로도 지루하다.그냥 흘려보내기 쉬운 시간들이라 이왕이면 발표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시험 주관처의 배려도 필요해 보인다. 요즘은 시험을 보고나서도 고시촌을 떠나지 않고 스터디나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불안한 시험결과 때문이기도 하다.시험 직후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음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지만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음해를 설계하기에는 사실 꽤 의지가 필요하다. 얼마간은 시험을 잊고 운동이나 여행 등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시간들을 갖는 게 좋다.힘든 상황들을 잘 극복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P씨도 실의를 빨리 극복하고 패인을 분석해서 처음 시작하던 그 마음으로 되돌아가 다음해는 최종까지 합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吳善姬 고시컨설턴트 유망고시길라잡이 대표]
  • 소설가 구효서, 새 창작집 ‘도라지꽃 누님’ 펴내

    소설가 구효서가 중·단편 11작품을 묶은 ‘도라지꽃 누님’(세계사)을 펴냈다.‘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이후 4년만이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는 것으로 정평이 있다.‘도라지꽃…’ 역시 이런 기대를 충족시킨다.예전 작품보다 쉽게 읽히면서 재미는 더한 것 같다. 구효서는 이 작품들을 쓰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자식이 마음대로 안되고,골프가 마음대로 안되듯’ 소설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교만과 개성 따위로 미화되던 것들이 정작은 교만과 아집에 지나지 않았다고 술회하고 있다.이전에 보여주었던 ‘소설적 실험’들이 결국 작가 자신도 편치 않았고,독자들도 편케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도라지꽃…’이 재미를 주는 진짜 이유는 그가 작가로서의본령을 비로소 자각한 뒤 썼다는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도라지꽃…’은 중·단편을 한데 모은 것이지만,읽다보면 등가적인 작품을 나열한 조곡(suite)이라기 보다는,개별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국하나의통일된 구조를 갖고 있는 교향곡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북녘 어머니와의 해후를 위해 미친 듯 옛집를 지킬 나무를 구한다는 다소무거운 주제를 다룬 ‘나무 남자의 아내’는 1악장쯤이라고 할만 하다.이 작품에선 작가를 ‘주인공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진짜 주인공’들을관찰케하고,그들의 비밀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긴다.‘소설가 소설’이라는 용어를 회자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아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남편을 거부하는 ‘그녀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가 가볍게 읽히지만 내용마저 가볍지는 않은 2악장이라면,반신불수의 아내를 위해 10년 동안 생리대를 사며 아이를 기다리는 ‘포천에는 시지프스가 산다’는 3악장의 고뇌에 해당한다. 4악장은 ‘도라지꽃 누님’이다.‘눈밭같고,소금밭같이’ 만발한 도라지꽃은 누님의 자연회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작가의 염원을 상징하기도 한다.‘도라지꽃…’을 새 창작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도 이 작품이 ‘환희의 송가’에 해당하기 때문은 아닐까. 서동철기자
  • 가볼만한 여름밤 등산코스 8選

    여름이 광기의 마지막 무더위를 토해내며 서쪽 고갯마루를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그 여름이 고갯마루를 다 넘어가기 전에 여름밤의 낭만적인 야간등산을 떠나보자.별을 벗삼아 떠나는 야간산행은 짜증나는 무더위와 현실생활에지친 고단한 삶의 피로를 씻어주는 청량제가 될 것이다. 야간등산은 그 자체로도 즐겁지만 ‘희망찾기’ 여정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밤의 어둠을 뚫고 랜턴 빛을 따라 험준한 산을 오르는 일은 그 산너머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아침해를 맞는다는 희망이 있어 더욱 신난다.인생의 어둠도 험준한 극복의 준령을 넘으면 삶의 환희로 바뀐다는 것을 야간등산에서 배운다.밤이 깊을 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자연의 섭리는 지친 영혼들에게 얼마나 값진 위로인가.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줄 야간등산은 매우 경제적이다.교통체증으로 도로에서 낭비하는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보통 밤 9∼10시 정도에 출발하기때문에 길이 막히지 않는다.야간등산은 산악회에서 등산객을 모집하여 가는경우가 대부분인데 버스안에서 자기 때문에 별도의숙박비도 필요없다. 야간등산은 여름에만 가는 것은 아니다.계절에 관계없이 야간산행을 하지만 여름밤의 산행은 피서로서의 의미도 있다.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깨끗한 계곡은 더위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밤으로의 초대를 위한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그러나 위험요소도 있다.차에서 잔다고 하지만 충분한 잠을 자지못하기 때문에 수면부족의 문제가 있고 밤에 산을 오르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여름에는 특히 국지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져 계곡물이 갑자기 난폭한 격류로 급변하는 경우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산악회에서 안내하는 야간등산은 토요일 밤에 출발하여 일요일 새벽 3∼4시쯤 산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등산장비는 일반 등산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랜턴 등 밤에 필요한 장비를 추가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추천할만한 여름밤 등산 코스를 알아본다. 오대산 노인봉·소금강 계곡(1,338m) 코스:진고개휴게소∼1243봉∼노인봉정상∼낙영폭포∼만물상∼구룡폭포∼무릉계곡(7시간). 덕유산(1,614m) 코스:삼공리 주차장∼신대휴게소∼백련사∼향적봉산장∼중봉∼덕유평전∼동엽령∼칠연폭포(7시간30분). 두타산(1,353m),청옥산(1,401m):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삼척군 하장면, 코스:상가주차장∼삼화사∼산성입구∼천봉∼두타산·박달령∼청옥산∼연칠십령∼사원터∼문간재∼무릉계곡(9시간). 민주지산(1,242m):충북 영동군 용화면,전북 무주군 설천면. 코스:물한리 종점∼황룡사∼잣나무숲길∼미나미계곡∼삼도봉∼민주지산∼속새골∼황룡사(7시간). 응봉산(998m):경북 울진군 북면,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코스:덕구온천∼용수폭포∼응봉산∼도계능선∼성진광업뒷고개(6시간). 재약산(1,189m):경남 밀양군 단장면,울산시 상북면. 코스:표충사∼흑룡폭포∼층층폭포∼미륵봉∼재약산∼사자봉∼천황사(7시간30분). 지리산 천왕봉(1,915m) 코스:백무동∼참샘∼제석봉∼천왕봉∼법계사∼칼바위∼중산리(9시간). 설악산 대청봉(1,708m) 코스:오색∼설악폭포∼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휴게소∼사자바위∼쌍룡폭포∼백담사∼용대리(12시간). 이창순기자 cslee@
  • [대한시론] 8·15와 겨레 손잡기

    올해 ‘8·15’는 민족해방의 환희와 민족분단의 비극이 동시에 교차한 저1945년 8월 15일이 의미하고 있는 ‘광복절’ 반세기이자 1900년대를 마감하는 역사적인 ‘8·15’이다. 한민족에게 있어 20세기,즉 현대사 100년은 수난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이며,이 땅의 모두가 식민지 지배,민족분단,민족대동란을 겪으면서 눈물없이는 보낼 수 없었던 고통스런 삶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이 민족의 수난사를 우리는 결코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가 역동적인 근대문명의 회오리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19세기에도 여전히 봉건문명과 절대왕정을 고집하다가 나라를 잃었고,민족 내부의 다원주의와 민주적 공존의 원리를 체득하지 못함으로써 강대국들이 좌우한 민족분단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분열과 대립의 역사가 21세기에까지 연장되어서는 안된다는 자각들이 이제 국민들 속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음은 참으로 고무적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남북 어느 쪽이나 간에 ‘무력’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되고 화해와 교류의 폭을 자꾸만 넓혀가서 마침내는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의 확산을 우리는 지난 6월의 ‘서해충돌’(필자는 이것을 ‘교전’으로 규정하는 데 반대한다) 당시 국민들의 너무나 차분한 반응에서확인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현 김대중 정부가 일시적 돌발사태에 흔들리지 않고 북쪽에 대해 포용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데 힘입은바가 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해충돌’이후 북쪽의 경계심이 증폭되고 남쪽이 ‘상호주의’를 보다 강화함으로써 남북정부간 대화는 일시적으로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여파였는지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민간인 교류도 뜸해지더니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면서 이제 민간인 방문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미묘한 시기에 남한의 200개가 넘는 민간단체들이 ‘99 민족의 화해와평화통일을 위한 겨레 손잡기 대회’ 추진본부를 결성하고 다가오는 8·15에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서울과 판문점 부근에서 ‘인간띠’를 이으면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사에는 단체들 뿐만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청소년,남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도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져 이 ‘인간 띠’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향한 한 마음을 일궈내는 계기가 되기를….그리하여 이 ‘겨레 손잡기’가 2000년대가 시작되는 내년에도 이어지고 이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남쪽사람들의 기원이 북쪽에도 전달되어 남북이 손을 맞잡을 때,우리의 평화통일은 그 어느 강대국도 저지할 수 없는 민족적 에너지로 결집되지 않을까 한다. ‘방휼지쟁(蚌鷸之爭)’이란 말이 있다.도요새가 큰 민물조개를 잡아먹으려다 조개에 물려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어부가 둘 다 잡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금보다 2,000년도 더 이전 중국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유래한 고사성어인데 내용인즉 소국들이 작은 이해다툼으로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다투다가 강대국들의 개입을 가져온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경고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과거지사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있다.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얼마전 유고연방과 코소보자치주 간의 인종적·종교적 갈등이 내전으로 치달아 국제적 개입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다국적군의 주둔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만약 또 한번 남북이 대결로 치닫는다면 한반도는 다시 국제적 각축장이 될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남북의 화해와 공존,그리고 평화통일로 나아간다면 21세기 한민족은 아시아로,세계로 지금보다 더욱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아프가니스탄이여,안녕’/오지탐험가 김병호씨 장편

    아프가니스탄에는 어디를 가나 진흙으로 만든 무덤 같은 집들이 숨구멍만한 공기통을 내놓은 채 드문드문 서 있다.식수가 부족해 일년에 한 번 이상 목욕을 할 수 없고,식량이 모자라 양고기와 ‘논’이라 불리는 밀가루 빵을 먹으며 삶을 꾸려간다.이제 아프가니스탄은 옛 실크로드의 영광은 간데없고 바위덩어리만 뒹구는 불모의 땅이다.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아프가니스탄처럼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그곳에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오지문화 탐험가로 잘 알려진 김병호씨의 장편 ‘아프가니스탄이여,안녕’(푸른숲)은 아프가니스탄 척토에 핀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산다는 것의 의미를일깨워주는 소설이다.작가는 모래먼지 날리는 투르키스탄 사막에 비극적인로맨스를 펼쳐 놓는다.사랑이 때로 인간을 얼마나 강건하게 만드는가,‘지금-여기’에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환희인가를 작가는 역설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운동권 출신으로 고국을 등지고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와 구호활동을 하는 민석.그는 이슬람명문 출신의 처녀 루스카와 가까워진다.오랜만에이성으로부터 아득한 연정을 느낀다.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인습과 종교의 벽에 부딪친다.“바위를 뚫고 피어나는/엉겅퀴 꽃도/열흘을 넘기지 못하고/창공을 나는/비비새도/힌두쿠시를 넘지 못해요” 루스카는 민석에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한이 서린 전통민요 한 구절을 남기고,이들의 사랑은 종말을맞는다. 민석은 루스카와의 사랑의 역사가 담긴 붉은 사인펜 자루를 아무다리요 강언덕에 묻는다.사랑은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슬픔도 때로는 힘이 되는 법. 민석은 그 절망의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고,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한 시대와 악수를 한다. 작가는 현재 태국의 치앙라이에 머물고 있다.그는 1,300년전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후예들의 이야기를 그린 ‘치앙마이’와 고구려 후예들이 중국에세운 이정기 왕국을 배경으로 한 ‘고구려를 위하여’라는 두 권의 역사소설도 냈다.김병호의 소설은 문학적 기교가 승하지 않은 만큼 담백하게 읽힌다. 김종면기자
  • [특별기고] ‘민들레’들의 눈물과 손수건

    신록의 5월이 가고 녹음 짙은 6월이다.그런데 해마다 오가는 5월과 6월이왜 아직도 우리에게는 계절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찾아오는지…. 5월 하면 61년 5·16 군사쿠데타와 80년 광주 5월 민주항쟁이 떠오른다.한국 현대사에서 5월은 우리에게 두 번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를 안겨준 달이다. 그리고 6월은 50년 6·25전쟁의 비극과 87년 ‘6월항쟁’의 환희를 교차시킴으로써 우리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현재 우리는 6월항쟁 12주년을 맞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시국선언과 기념식, 시민달리기 대회, 민주대합창 1999 등 갖가지 행사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념행사의 규모만큼이라도 우리가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젊음을 불사른 사람에 대해 기억하고 위로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유가족들은 의문사 진상규명과 고인들의 명예회복을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6개월 이상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투쟁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 ‘민들레-한많은 어버이의 삶’이최근 한 독립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돼 필자는 이 영상물을 지난 8일 민언련회원들과 함께 명동성당 구내 땅바닥에 앉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없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 이후,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즐거운 일이 있어도 웃음을 되찾을 수 없게 된 열사들의 어버이와 유족들이그 ‘잿빛 삶’도 부족하여 아직까지도 노숙하는 모습을 우리 모두 찾아가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손수건을 꺼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비로소이 땅에 진정한 민주의 꽃이 활짝 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메마른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 잇달아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과 스캔들의 바닥에는 일부 상류계층의 개인주의와 출세주의가 깔려 있다. 최근 국민들의 여론을 들끓게 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노조 파업유도’ 발언만 해도 그렇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아직도 ‘공안사건’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참으로개탄스러운 점은 그러한 ‘공작’이나 ‘탄압’을 마치 큰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고위 공직자들의사고방식이다. 설사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우리 사회는 해고에 대한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아닌가? 이 ‘공안 공작’ 의혹에 대해 김대중대통령이 국정조사권 발동에 동의한것은 환영할 일이다.그런데 국정조사가 착수되기도 전에 언론들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래서는 정말 안된다.여야 모두가 작은 절차로 티격태격하기에 앞서,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가를 저울질하기 앞서,이번에야말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한번 제대로 밝혀보자는 대승적인 합의부터 하라. 적당한 폭로와 적당한 은폐,또는 흥정,혹은 당리당략으로 국정조사가 요식행위로 끝난다면 국민들의 정치불신,국회불신은 회복불능에 빠질 것이다. 6월항쟁 12주년,지금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화운동 때문이거나 IMF 때문이거나 간에 고통의 눈물에 젖은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줄 따뜻한 손수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사회의 온갖 음습한 모순과 비리구조에 대한 진실한 원인규명과처방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成 裕 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볼트강 라트/’사랑 그 딜레마의역사’

    단테에게 사랑은 내면의 지옥을 지나 천국으로 가는 행복의 사다리였다.그러나 20세기 말의 사랑은 우연히 만난 남녀가 불타는 가슴도 없이 ‘가벼운황홀함’에 탐닉하는‘도구’로 전락했다.그들은 언젠가 헤어지리라는 것을알고 있으며 그리움 때문에 생활이 피해를 입는 일도 없다.사랑은 이처럼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시대에 맞는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오고 있다.독일 작가 볼프강 라트는 그의 저서‘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장혜경 옮김)에서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을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현대의 니체·프로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한다.그러나 단순한 사랑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사랑·결혼·성의 문제 등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를 조명한다. (끌리오 1만원) “사랑 그 자체는 고유하고 본질적이다.인생에서 만나기 힘든 ‘보석의 섬광’이다.그러나 사랑은 시대에 따라 그 개념이 다르게 해석돼 왔다.낭만적인 사랑의 역사는 겨우 250년에 지나지 않는다.18세기에 와서야 인간은사랑과 결혼을 함께 묶어 생각했고 한 사람과 일생을 함께하는 행복을 약속받았다”고 라트는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사랑의 이상은 절제의 미덕이었다.‘자신을 통제하며 주체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이 그 시대의 사랑에 대한 주제어였다.플라톤은 욕망과 절제의 동성애를 가장 이상적이고 자연스런 사랑의 형태라고 말했다.중세의사랑관은 욕망을 억압하면서 방탕을 허용했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18세기 ‘낭만주의 사랑’이라는 감상적 사랑의 시대를 거쳐 19세기에는 ‘상상의 사랑’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프랑스 작가 플로베르가 쓴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로 대표되는 이 사랑의 형태는 환상이 현실의 사랑을 대신했다.환상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 현실의 애인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20세기 초에는 고조된 분위기와 순간의 쾌락이 물결쳤다.베데킨트의 ‘봄의 깨어남’에서는 족쇄에서 풀려난 사춘기의 성이 무대위로 올랐다.고삐에서 풀려난 사랑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카뮈는 ‘이방인’에서 늙은살라모노와 그가 키우는개와의 절망적인 의존관계를 그리며 그 시대 사랑이 안고 있던 내면의 고독과 쓸쓸함을 비유했다.20세기에는 눈부신 진보가 있었으나 사랑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했다.사랑의 도취는 열매를 맺지 못했고 환희는삶을 촉진하지 못하고 너무도 빨리 식어버렸다.토마스 만,헤밍웨이,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20세기 식어버린 열정을 대변한다.“현대인들은 사랑을 하고 있어도 고독하다고 느낀다.권태와 둔감,무감각,타인과의 충동적인 섹스로감정을 회복하는 기쁨만이 만연하고 있다.섹스를 즐기고 파트너를 바꾸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유치한 신화’를 지워버릴 수 있게 됐다”고 바트는 말한다.그러나 사랑은 문화와 문명을 낳은 원동력이었다고 그는 강조한다.그러한 사랑 속에는 풀리지 않는 딜레마가 있다.“성적이든 정신적이든 사랑은 보다 많은 것을 원하며 항상 갈증에 애태운다.”이창순기자 cslee@
  • 곽재구시인 6번째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빛살 터지는/강변을 거슬러 오르며/나는 내 언어의/금속세공업자가 됩니다//밟히는/모래 한 알 한 알마다/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이라/새겨 넣을 겁니다/떨어지는 빛살 한 올 한 올마다/꼭 그렇게 새겨 넣을 것입니다//그리고 언젠가/내가 하늘의 찬란한 기술을/다 익혔을 때/당신이 벗은 발로찾아오던/그 날의 긴 설레임과 환희를/금빛의 강물 위에 새길 것입니다”(‘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 전문) 우리 시대의 삶과 사랑을 순정하게 노래해온 시인 곽재구(45).맑은 바람과 물살을 벗삼아 섬진강변 한 작은 마을에서 시를 쓰며 살고 있는 그가 새 시집을 냈다.‘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83년 데뷔 시집 ‘사평역에서’ 이후 여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을 일러 “누이 같은 강”이라고 했다.그렇다면 또 한 명의 섬진강 노래꾼 곽재구에게 섬진강은 무엇인가.그것은 바로 “설레이는 영혼”과 동의어다.아름답고 수줍고 가녀린 섬진강변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써야 할 시의 목소리를 들었다.등이 휘어지도록 삶이 버거운 것일지라도 ‘섬진강을 닮은’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이라는 것.그 믿음은 한 편의 시가 돼 우리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늦은 밤/구례구역 앞을 흐르는/섬진강변을 걸었습니다/착한 산마을들이/소울음빛 꿈을 꾸는 동안/지리산 능선을 걸어 내려온 별들이/하동으로 가는 물길 위에/제 몸을 눕혔습니다/오랫동안/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억압과 고통 또한 어두운밤길과 같아서/날이 새면 봉숭아꽃 피는 마을/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밤편지’중) 곽재구가 섬진강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그는 그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강변에는 바람이 불고 희디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요.그 꽃들을처음 보았을 때 나는 꽃의 이름 보다는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먼저생각했습니다” 눈감으면 바람결에 수북히 밀려오는 꽃향기,삽상한 바람,고운 물빛….그는 섬진강의 자연에 취해 시정(詩情)의 늪으로 사정없이 빨려들어 갔다.‘연화리 연작시’ 33편을 포함한 이 시집에는 그런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황토산 자락에 연분홍 첫사랑의 숨결을토해놓는”(‘배꽃’중) 배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강변 오두막에서 그는삐걱이는 나무계단을 밟고 찾아올 ‘당신’을 기다린다. 그런가하면 “한때사이비 혁명의 숨결을 닮았다”(‘큰눈 내리는 날’중)고 여겼던 눈을 바라보며 “삶이란 전쟁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정육면체의 얼음주머니를 굴리는일”(‘얼음주사위’중)과 같다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이 시집에는 강변의 오두막집,집 앞의 나루,낡은 나룻배 등이 자주 등장한다.시인은 가끔 그 나룻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찾아오는 이들을 태워준다.그리고 그들로부터 세상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바람,안개,비,별 등도 시인에게는 하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의 친구.그런 만큼 그의 시에는 ‘팬사이키즘’ 곧 범심론(凡心論)의 분위기가 감돈다.그는 올 연말 ‘포구기행’이란 산문집도 낼 예정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英·獨 포함 동구권 첫 무대

    ?맏灌茅鵝뵈? 任泰淳특파원?맙痢?나라 전통 음악인 정가·정악이 음악의 본고장 유럽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지난달 8일 체크를 시작으로 유럽 순회공연에 들어간 국립 국악원 정가·정악단은 30∼31일 베를린 공연을 끝으로 예정됐던 독일,영국,헝가리,프랑스,스페인 등 7개국 9개도시에서의 15회 공연을 모두 마쳤다. 이번 공연은 여러가지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공연단은 국립 국악원 정예 연주자 15명,스태프 2명 등 모두 17명으로 구성돼 있다.통상 정악단이 40∼50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편성되는 것에 비하면미디엄 사이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연단은 간편체제로도 정악의 묘미를 그런대로 살려내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다.비록 시조를 노래하는 정가는 언어장벽 등으로 인해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궁중음악과 무용으로 구성된 정악은 볼만 하다는 반응을 받았다.영국,헝가리에서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감동과 환희의 연속’이라는 의례적인 공치사도 받았지만 “미지의 세계로 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유럽 음악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움직임이 느린 춤은 우아하고위엄이 있었으며 동양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체크,헝가리 등 동유럽에는 정악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어서 우리 전통음악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다. 공연단은 또 공연 말미에 현지 민요를 들려 줘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영국 민요 ‘그린 슬리브즈’를 들려주자 청중들이 5분간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독일 뮌헨에서의 1차공연에서도 앙코르 세례를 받았다.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청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프로그램 중 청중들의 인기를 끈 것은 황병기씨의 가야금 산조 ‘침향무’로 유럽인들은 크레셴도에서 데 크레셴도로 이어지는 가야금 소리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조성래 단장은 “사물놀이,판소리 등 민속악의 유럽 공연은 1,000여회에 이르지만 중규모 정악단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반응이 좋아 프로그램을 다양화시키면 중규모의 정악단으로도 유럽 공연이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악이 전통문화 소개의 차원을 넘어 민속악처럼 문화상품으로 받돋음하기 위해서는 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유럽인들의 음악에 대한 정서가 기본적으로 동적이기 때문이다. 문화사절단에 대한 해외 공관의 지원도 차이를 보였다.이기주 독일대사는“구미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물놀이 팀을 왜 보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상식이하의 발언을 해 공연단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반면 영국 공연에서는 한국음악 전공교수가 20여분간 설명을 해 줘 청중들의 이해를 도왔다.
  • 저자와의 대화-‘한국의 전통춤’ 펴낸 정병호교수

    “춤은 사람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예술입니다”.춤의 예찬론을 펴는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72)는 어린이와 같은 천진한 행복에 빠진다.춤은 그에게 생명의 빛이다.춤과 함께 자란 그에게 춤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춤의 환희는 그를 춤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게 해왔다. 전남 나주의 대지주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집안 농악대의 뒤를따라다니며 춤의 세계에 빠졌다.중앙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지만 춤꾼의 길은 접었다.춤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택했다.그는 전통춤 이론의 대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60년대부터 30여년동안 사라져가는 민속과 전통춤을 발굴하기 위해전국을 누볐다.궁중춤 외에는 문헌상의 기록이 거의 없어 구전으로 내려오는 춤의 내용과 형식 등을 현장을 찾아가 채록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실체를 파악했다.그 현장기록을 바탕으로 전통춤의 이론적 체계를 정리,‘한국의 전통춤’이라는 책으로 펴냈다.(집문당 4만원).이 책은 서울시스템에서 CD롬으로도 제작됐다. 그는 전통춤을 종교의식춤·민속춤·교방춤·궁중춤 등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세분화된 전통춤의 종류는 376가지로 분류한다.“전통춤을 376가지로세분화한 것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정 교수는 말한다.그는 다양한 춤의 세계를 많은 화보와 함께 소개한다. “한국춤에는 인간적인 한과 슬픔을 풀어 환희로 전환시키는 삶의 정신이있다.일본춤에는 죽음의 미와 같은 비극미가 있지만 한국춤에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환희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그는 책에서쓰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민속춤은 그러나 마을에서 사라졌다.마을에서 민속춤이 사라지며 신바람나는 기층문화도 없어졌다.“민속춤은 민중이 스스로 흥에 겨워추는 춤이어야 합니다.그러나 기능보유자나 예술가들에 의한 보여주는 ‘공연예술’로 변질됐죠.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민속춤의 보존 정책에도 변화의 때가 왔다고 말한다.“단순히 보존에머물러서는 안됩니다.마을 사람들에게 전승시켜 마을의 축제로 만드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그는 ‘마을춤 진흥회’를 만들어 우선 농악을 중심으로 민속춤을 마을로 되돌리려는 꿈을 현실화 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전통 예술춤의 현실도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무용가는 자기춤을 춰야 합니다.그러나 대부분의 무용가는 배운대로 반복할 뿐이죠.원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춤을 창작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우리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춤이있어야 합니다”.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춤에 대한 애정과 집념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그는 신바람나는 공동체 문화가 춤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신명이나야 우리 민족은 흥한다”며 춤의 사회학적 중요성도 강조한다. 李昌淳 cslee@
  • ‘하얀 추억’ 만들자…눈꽃축제로의 초대

    환상적인 설경 아래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겨울의 낭만과 아름다운 추억을만들 수 있는 눈 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태백산눈축제’와 ‘한라산 눈꽃축제’는 올해로 각각 6회와 3회째를 맞고 있는 단골 눈축제.이들 축제는 눈조각대회,썰매타기,설산 등반,그리고 축하공연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태백산눈축제 ‘눈 사랑 그리고 환희’라는 주제 아래 23일부터 31일까지 태백산눈축제위원회(0395-550-2353) 주최로 태백산도립공원과 시내일원에서 개최된다.22일전야제 행사로 공군축하비행과 군의장대 군악대의 시가퍼레이드,불꽃놀이,중앙로 특설무대의 인기 연예인 축하공연 등이 펼쳐진다.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를 밝혀줄 성화가 축제기간인 26일 태백산 천제단에서 채화돼 외국인과 관광객이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화려한 눈축제에 앞서 눈조각경연대회가 이미 17일부터 태백산 도립공원 시민헌장비 옆에서 진행되고 있다.전국 각 미술대학생 20여개팀이 참가해 21일까지 경연을 벌인다.이밖에 23일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댄스경연대회,24일 겨울산행을 만끽하는 태백산 등반대회가 열린다.시민들이 참여해 벌이는 눈사람만들기와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성화채화를 기념하는 시민눈길달리기가 행사 중 열리고 등산객 및 관광객이 즉석 참여하는 맨발로 눈위에 오래서있기 행사도 마련된다.특히 태백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오궁썰매타기가 31일 마지막 행사를 장식한다. ▒한라산눈꽃축제 23일부터 31일까지 어리목을 중심으로 제주전역에서 펼쳐진다.제주축제문화연구원(064-744-1064)이 직접 기획해 제주의 성격을 충분히 살렸다. 어리목의 ‘동화의 나라’와 어승생의 ‘환희의나라’ 두 곳이 주 행사장.동화의 나라에는 어린이와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된다.새끼돼지몰이 마술쇼 눈길미로탈출 크레용벽화 등이 그 것이다.환희의 나라는 참가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프로그램.눈싸움 눈썰매 조랑말썰매 눈사람만들기 얼음볼링 연날리기 등이 열린다.한편 윗세오름에서는 눈조각 경연대회가 펼쳐지며 한라산 설산등반도 매일 있다.한라산 등반은 오전 9시 이전에 입산해야 한다.이밖에 중문해수욕장에선 펭귄수영대회,도립목장에선 전통대나무 스키경주와 조랑말썰매 이색썰매경주 등이 펼쳐진다.金聖昊
  • 춘천 소양호 맵싸한 겨울 낭만 물씬

    뱃길과 등산로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거기에 겨울 별미인 빙어 낚시의 독특한 체험을 곁들일 수 있는 곳.강원도 춘천 소양댐만이 갖추고 있는 겨울 풍광이다. 호반의 도시 춘천시내를 지나 동북쪽으로 12㎞를 가면 신북면 천전리의 소양강 하류를 막아 이루어진 소양강 다목적댐을 만난다.춘천 홍천 양구 인제군에 접해있어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양구 인제까지 60㎞의 긴 물길을 따라가는 관광쾌속선이 운항돼 설악산과 동해안을 이어주고 있는 물길이기도 하다. 북쪽으로 끝없이 뻗어가며 마치 한반도 지도를 연상시키는 호수의 물굽이.댐에 서면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으로 시작되는 유행가 ‘소양강 처녀’ 한소절쯤 불러보고 싶은 상념에 젖게 된다. 댐에서 선착장까지 가는 길 왼편엔 간이 음식점 20여개가 뭇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집집마다 철을 만나 수족관에 가득 채워놓은 빙어떼들이 은빛 장관을 이룬다.청평사로 바로 닿는 배와 소양호를 일주하는 관광선,그리고 양구로 이어지는 배편이 쉼없이 오가며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호수위에 떠있는 유람선 위에서 바라보는 낚시꾼들의 모습은 더욱 낭만적이다.피라미며 빙어를 잡아 올리는 낚시꾼들은 매서운 소양호의 바람 따위는아랑곳하지 않는다.소양댐에 갇힌 소양호물은 강추위에도 얼지 않는다.그래서 낚시꾼들에겐 꾸준히 사랑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청평사 오봉산은 소양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답사코스.코스가 험하지도 않으면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볼거리들이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에겐 아주 만족스런 체험을 제공한다. 소양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호수를 가르고 가면 청평사 선착장에닿는다.여기에서 오봉산 기슭에 포근히 안겨 있는 청평사까지는 25분가량이소요된다.숲 속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제일 먼저거북바위가 나타난다.그 뒤로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높이 7m의 구성폭포가 이어지고 환희령 마루의 바위 언덕에 평양공주와 상사뱀의 전설로 유명한공주탑(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청평사 바로 못미쳐 있는 고려정원은 오봉산의 모습을 한폭의 동양화로 담아내고 있다.선동교를 넘어 거북머리 모양의 석조에서 생수를 받아마시면 천년 고찰 청평사에 온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청평사까지가 답사코스라면 청평사 윗쪽의 오봉산 산행은 본격적인 등산로.모두 3개의 등산로가 형성돼 있는데 모두 화천쪽으로 통한다.기암절벽 사이에 박힌 노송의 송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오봉산은 이름 그대로 5개의 기암봉이 절묘하게 이어져 부드러운 주변산세를 압도한다.청평사에서 부드러운오솔길을 10분쯤 오르면 해탈문이란 편액이 걸린 커다란 문이 있고 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계곡으로 향한다.계곡을 따라 10분쯤 오르면 커다란 턱진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턱진 바위를 올라서면 길이 세 갈래로 갈린다.대부분 계곡으로 난 길을 택한다.여기에서 5분쯤 가면 계곡이 절벽처럼 가팔라지는데 비탈을 40분쯤 오르면 능선 잘루목에 올라설 수 있다.남쪽으로 암봉을넘으면 688봉을 지나 청평사로 갈 수 있고 북쪽으로 가파르게 솟은 암봉을택하면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소양호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능선 좌우로 까마득한 벼랑이펼쳐져있고 중간 중간 암릉도 도열해 있다.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홈통바위를 지나 10분쯤 가면 평탄한 길이 이어지며 곧이어 정상인 배후령에 닿는다. 정상에서 뒤돌아보면 발 아래 소양호가 넘실대고 오봉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암봉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모습이 절경이다.청평사에서 해탈문∼정상∼배후령∼청평사 산행코스에 걸리는 시간은 3시간30분.
  • 외환관리와 경제환경 변화(정권교체 1주년:中)

    ◎대통령 당선의 기쁨도 잠시/국가부도 위기 극복 동분서주/12월18일 자정 당선 확정하고도 평상심 유지/“IMF 난국 이기자” 팔 걷어붙이며 독려/세일즈외교에 성과… 우방지원 끌어내 1997년 12월18일 자정무렵,국민회의 金大中 대통령후보의 일산자택 앞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건국 50년만의 첫 정권 교체를 확신한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폭죽과 샴페인을 터뜨리며 “金大中 대통령”,“정권교체”를 연호했다. 저녁 내내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와 1%포인트 차이로 엎치락뒤치락했던 ‘시소게임’은 밤 10시를 기점으로 승리의 추가 金후보로 기울었다. 세계 주요 통신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도 ‘한국의 선거기적’이 숨가쁘게 전달됐다. 승자측은 “전인미답의 가시밭길을 뚫고 정권교체의 금자탑을 이뤄냈다”고 기뻐했다.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가 됐다고도 했다. ○경제살리기 행보 시작 일산자택에 모여있던 金玉斗 의원 등 측근 20여명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金의원은 아예 부엌으로 달려가 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토해냈다. 공동선거대책회의 종합상황실과 국민회의 상황실에서도 당직자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쁨을 나눴고 곳곳에서 ‘승리의 찬가’가 터져 나왔다. 자택 서재에서 李姬鎬 여사와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金후보는 이날 10시 이후 “확실히 이겼다”라는 보고를 수시로 접했지만 고개만 끄덕일 뿐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金후보는 19일 아침 8시쯤,한복으로 곱게 단장한 李여사와 함께 열광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택 현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정권교체의 첫날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의 환희도 잠시였다. 곧바로 대통령 당선자의 낮과 밤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국가부도의 위기가 너무나 크게 덮쳐왔다. 당선 당일부터 만사를 제치고 IMF난국 극복에 팔을 걷어붙였다. 金당선자는 20일 林昌烈 경제부총리로부터 공식적으로 ‘국가부도’의 상황을 보고받았다. 외채규모를 설명듣고 쇼크를 받았다. “경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단기외채 규모,외환보유고,부실여신등 금융감독 문제등을 꼼꼼히 따졌다. 金당선자의 ‘경제살리기 행보’는 이래서 시작됐다. 훗날 金당선자는 “외환위기 상황을 파악하고는 급한 불을 끄기까지 온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고 회고했다. ○美에 개혁의지 일깨워 그의 경제행보는 우방국 정상과의 전화외교로 시작됐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며 협력을 요청했다. 이어 연말까지 미셸 캉드쉬 IMF총재,제임스 울펜손 IBRD총재,사토 미쓰오 ADB총재 등에게도 전화를 걸어 대외신인도를 높이는데 힘을 쏟았다.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미국대사, 오구라 가즈오 주한 일본대사와도 만나 협력을 부탁하는등 촌음을 아껴썼다. 한편으로는 金泳三 당시 대통령과 12인‘경제비상대책위’를 구성키로 했고 자민련 朴泰俊 총재와 金龍煥 부총재,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柳鍾根 경제고문 등을 수시로 일산 자택으로 불러 대책을 숙의했다. 金당선자가 ‘충격’에서 헤쳐나와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3일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차관을 만나면서부터다. 金당선자는 립튼 차관에게 “새정부는 IMF협약을 100% 준수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한국이 세계 11번째 경제 대국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진실을 알게 됐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립튼은 “대외 신뢰회복을 위해 많은 개방과 개혁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金당선자의 개혁의지를 읽은 립튼차관은 이후 주요국을 돌며 한국지원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급한 불이 꺼졌을 때 그는 다시 개혁의 한복판에 섰다. ◎경제지표로 본 1년 비교/외환보유고 88억弗서 487억弗로/30%대 콜금리 6%로/환율 1,200원대로 안정 지난 1년간 우리경제의 변화상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돌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외환동향을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해 12월 88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외환보유고는 올해 1월부터 꾸준히 증가,1년만인 이달에는 사상최고치인 487억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1년전 금모으기 운동까지 벌이던 눈물겹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이에따라 정부는 이달에 1차로 만기가 돌아온 28억달러의IMF차입금을 상환키로 결정,대내외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외환위기로 한때 달러당 1,964원까지 상승했던 환율도 최근에는 1,200원대로 안정됐으며,오히려 너무 빨리 내려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변화에 힘입어 지난해말 일제히 곤두박질쳤던 국가신용등급(외채표시등급)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IMF직후 30%까지 치솟았던 콜금리는 올 9월 한자릿수를 회복한 뒤 이달들어 6%대까지 떨어졌다. 회사채유통수익률 역시 29%였던 것이 현재는 8%수준을 보이고 있으며,내년에 사상최저치인 6%대까지 내려갈 지가 관심이다. 은행대출금리도 올 상반기 15.6%까지 올라갔던 것이 10월 들어 13.7%까지 하락했다. 실물경제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다소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 우선 지난해말 0.78%로 최고치를 기록한 어음부도율이 올 10월에는 0.18%까지 낮아져 외환위기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실업률은 여전히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말 2.6%였던 실업률은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점차 증가,9월말 현재 7.3%에이르고 있다. 단 7월 7.6%에서 8월 7.4% 등으로 조금씩 둔화되고 있는 것은 위안이 될 만하다. ◎정권교체 주역들 무엇하나/대부분 黨·政서 개혁주체로 맹활약/朴相千 법무 司正 총지휘/李海瓚 장관 교육개혁 앞장/자민련 朴浚圭씨 국회의장 맡아 金大中 대통령을 만든 주역의 대부부은 지금도 청와대와 일선 정부 부처,국민회의,자민련 등에서 개혁주체로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대선 당시 당무를 총괄했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대선이후도 줄곧 당을 챙기고 있다. 대선기획본부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李鍾贊 부총재는 안기부장을 맡아 銃風사건 등을 총지휘하고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협상 주역이였던 韓光玉 부총재는 서울시장출마 좌절이후 민화협 상임의장을 맡았다. 북풍사건을 차단하고 李會昌 후보 아들 병역문제를 부각시켰던 千容宅 국방장관은 최근 잇따른 군사고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방송대책단장을 맡았던 朴相千 법무장관은 정치권 사정으로 의원들의 ‘저승사자’라는 말을 듣고 있다. 대선기획본부장을 맡았던 李海瓚 의원은 교육부장관에 ,정책위원장을 맡았던 金元吉 의원은 정책위의장으로 각종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鄭東泳 대변인은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에 논리까지 겸비한 대야 공격수라는 평을 받으며 대변인직 재선을 기록하고 있다. 당선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무관’을 선언했던 동교동 가신그룹들은 주로 당을 지키고 있다. 韓和甲 의원은 ‘60세에 능참봉’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도 뒤늦게 원내총무라는 요직을 맡았다. 그는 국회대책에 머물지 않는 광범위한 행동반경으로 여권 실세로 불린다. 자민련 공신중에서는 朴浚圭 국회의장이 최고직위를 차지했다. 탈당도 불사하겠다며 대선후보 단일화를 줄기차게 주장한 공로로 입법부 수장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金龍煥 수석부총재는 전면에 나섰던 일등공신이다. 명예총재인 金鍾泌 총리의 복심(腹心)을 전하는 최고 실세로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을 주도했다. 당 내각제개헌추진위원장을 맡아 내년 내각제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
  • 무용가 조광(이세기의 인물탐구:183)

    ◎‘천상의 희열’ 求道하는 칠순 춤꾼/숙명으로 시작한 춤인생/스페인춤에 또한번 전율/50나이에 유학… 인고의 6년/“올레아 올레” 정열과 절제 그는 영원으로 향한다… 趙洸의 스페인 춤은 조야하고 거친듯한 스페인 민속무곡인 사파테아도(三拍子系)에 맞춰 박자와 리듬, 호흡과 율동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차양이 넓은 흑색 모자에 흑색 셔츠, 흑색의 긴 바지차림으로 춤을 출때의 프로필은 조명에 드리운 그림자때문에 장면 장면이 흑백 명화의 스틸을 연상시킨다. 구둣발로 마룻바닥을 울리기 시작하면 흥취를 돋우는 ‘올레아 올레’와 감정적인 충격력(衝擊力)이 즉흥적인 선(線)과 형(形)을 강조하여 객석은 일시에 혼도되고야 만다. 그의 ‘원무(圓舞)의 초점은 가슴의 피를 토하는 울부짖음’이며 ‘태양이 정오(正午)에 멈춘듯한 열기와 정열’은 인간 한계가 파괴되는 순간이 아닐수 없다. 그가 스페인 춤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지난 73년, 한국에 왔던 안토니오 가디스의 공연을 보고 나서다. 숨막힐듯한 열기와 액티브의 향연에 빠져 스페인 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때마침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朱莉씨가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춤을 배우기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었으나 그는 평생의 소망을 실천하기위해 스페인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의 4년간은 실로 살을 깎는듯한 인고의 나날이었다. 하나의 안무를 받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춤출수 있는 장소와 기타리스트, ‘칸타(노래)’를 물색하고 한편으로는 캐스터네츠를 익히면서 ‘에르에스 무이’로 일컬어지는 남자무용과 ‘에리아에스 무이 플라멩코’로 불리는 여자무용을 배워나갔다. 한 작품을 떼는데 2개월이상이 소요되었으나 엄청난 레슨비는 그가 조직한 무용단 공연으로 충당했다. 마르틴 바르가스에게 발레 에스파뇰, 토마스데 마드리드에게 플라멩코를 사사했다. 플라멩코를 추는 방법에는 캐스터네츠 대신 손가락을 퉁겨서 소리를 내거나 손뼉을 치는 팔마다 발을 굴러서 박자를 맞추는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었고 그옛날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의 한과 정서가 춤의 곳곳에 도사려자유롭고 흥겨운 중에도 짙은 슬픔과 연민의 정이 분출되어 나왔다. 춤을 배우는 동안 발톱이 빠지고 발뒤꿈치에 상처를 입는 수난을 겪었으나 플라멩코의 대표적인 춤으로 일컬어지는 파루카·알레그리아스·솔레아레스·탱고와 세기디야등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섭렵했다. 스페인 춤을 추기 전에는 물론 한국춤을 추었다. 경성전기공업에 다니던 18세때 평화극장에서 본 조택원의 ‘가사호접(袈裟胡蝶)’과 ‘소고춤’이 처음이었고 의연하고도 정적인 춤은 숙명처럼 그의 내부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남자도 춤을 출수 있다’ ‘남자도 춤을 추면 아름답다’에 눈뜨면서 무용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불태웠으나 부친 趙秉朝씨(건축업)는 장남의 춤취미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어머니 金萬卿씨는 춤을 정신의 예술로 이해하여 정인방 한국무용연구소에 다니게 해주었고 현대적인 춤을 추기 위해 최승희의 제자로서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장추화현대무용소에 들어갔다. 송범 김진걸등이 함께 배웠다. 그때도 가슴속에 들끓는 정열은 정적인 춤보다는 동작선이 넓고 활발한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에 49년에 도일,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가인 핫토리 시마다 연구소에서 낮에는 발레, 밤에는 도쿄 사사스카고교에 다녔다. 그의 첫무대는 도일하던 해 도쿄 국제극장에서 가진 핫토리 시마다의 공연에서 솔리스트로 ‘레실피드’를 춘것이 처음이다. 이후 해마다 스승의 공연에 출연하면서 ‘방황하는 초상’과 ‘사랑은 마술사’에서 ‘기교적인 면의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6년만에 귀국해서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가진 첫 발표회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이화여대 교수로 있던 현대무용가 박외선씨가 이대 공연에 초청하여 3,000석이 넘는다는 대강당은 여대생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그가 만든 ‘대각선상의 나상’과 한국 선율에 의한 ‘환희’ ‘애련’등은 황금빛과 흰색을 조화시킨 환상적인 의상과 함께 신문에서 ‘수작’으로 호평되었다. 그의 성격은 서울양반다운 반듯함과 까다로움과 도도함을 지닌다. 춤의 교습과정에서 지켜본 것처럼 빈틈없는 완벽주의자로서 사적인 일과 무용의 일을 철저하게 구별한다. 지난 8년간 그가 경영하는 서울 서초동 카페 체루니는 낮에는 그의 연습장소이고 밤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서 알려진 얼굴들이 고루 모여든다. 한국무용을 하던 부인 韓順玉씨는 80년대 이후 그와 함께 플라멩코 듀엣을 추고 있다. 가족은 최근 결혼한 아들(재현씨)부부가 있다. 체루니의 단골멤버인 동국대 목정대교수(철학)는 조광의 춤을 보고 ‘그것은 몸전체의 율동이 아니라/ 천국(天國)에 들어가려는 사람의 전율(戰慓)/떨림/ 무서움…’이라고 노래부른다. 내년이면 춤인생 50년을 맞는 기념공연을 앞두고 그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나타나지 않을 ‘천국의 춤’‘우주의 춤’으로 도약하기 위해 나이를 멈춘채 찬연한 분수로 솟구치고 있다. ◎그의 길 1929년 서울 출생 1947­49년 정인방·장추화무용연구소 사사 1949­55년 일본 핫토리 시마다 발레스쿨 수업,핫토리 시마다 공연참가 1955년 귀국공연(서울 시공관) 1956년 개인발표회(서울 시공관) 1959·61년 이화여대초청 개인발표회(이대 대강당) 1965년 조광아카데미발레단 창단 1966년 창단기념공연(원각사) 1973­75년 스페인체류 1977­83년 스페인유학, 토마스데 마드리드(플라멩코), 마르틴 바르가스(발레 에스파뇰)사사 1979년 일시귀국 조광무용공연(서울 국립극장및 부산 시민회관대강당) 1983년 귀국공연, 조광스페인댄스페스티벌(국립극장) 1984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1994년부터 서울춤아카데미 창립공연(예술의 전당 및 국립극장) 등 1995년 서울춤아카데미 서울 및 부천공연(국립극장·부천시민회관) 1996년 일본 고야바시 유키치·마스코연구소 10주년기념공연(도쿄 마스코회관 대홀), 서울춤 아카데미공연 1998년 김문숙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국립극장대극장)특별출연 현재 한국무용협회이사, 한국 스페인무용협회 회장,스페인무용단장
  • 대한매일 재탄생은 경사/朴維徹 독립기념관 관장(특별기고)

    ◎우국지사 눈과 입 역할 의병활동 유일하게 고무/사회통합·번영·통일先導 국민사랑 받는 신문 되길 서울신문이 한말 민족언론의 정화(精華)‘대한매일신보’의 이름을 이어받아 ‘대한매일’로 새롭게 태어났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 같았던 1904년,러일전쟁의 소용돌이가 우리 강토를 휘몰아치던 그때,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언론검열을 뚫고 진실보도와 민족적 정론으로 다가오는 위기를 경고하고,국민의 애국심과 용기를 불러일으켜 국권회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앞에 참언론으로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그 신문의 총무로서 실질적인 발행인이었던 양기탁 선생과,주필로서 필봉을 휘두르던 박은식 선생이 필자의 처조부와 조부가 되는 까닭에 대한매일의 부활은 그분들의 부활을 보는 것같아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눈 감고 그분들의 환희를 생각해 본다. 그분들의 그토록 비참했던 생애와 희생이 헛됨이 아니었다는 외침을 느낀다.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시기는 일본이 러일전쟁 도발후 우리나라에 ‘한일의정서’를 강요,자국군대를우리 강토에 무단 진주시킬 때였다. 경향 각지에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운동이 일어났고,일제는 우리 민간언론을 검열,통제하기 시작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베델(裵說)을 발행인으로 했으나,실제적인 운영은 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선생 등이 맡았다. 또한 국한문,한글전용,영문의 3종류로 발행한,90년전 한문을 해독하지 못하는 백성을 고려한 ‘민중신문’이었으며 세계를 염두에 둔 ‘국제신문’이었다. 당시 신문들은 의병(義兵)을 ‘의병’이라 하지 못하고 비도(匪徒)나 폭도(暴徒)라고 하도록 강요당하였는데도 대한매일신보만은 이를 ‘의병’으로 당당히 표현하고 그 활동을 고무한 유일한 신문으로 우국지사들에게 눈과 귀와 입의 역할을 다했다. 일제 통감부는 수없는 협박과 회유를 가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았다. 참언론의 정신이 찬란히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과 더불어 서울신문시대를 끝내고 88년간 권력에 짓눌려 그 이름조차 죽어 있었던 대한매일의 부활을 보게됨은 우리 언론사의 경사일 뿐 아니라,우리 정신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찾았어야 할 자랑스러운 뿌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1998년은 양기탁선생의 해인 듯하다. 선생은 1938년 중국 강소성의 아주 낙후된 외지에서 일생을 마치셨다. 필자가 유해를 찾기 위해 그곳을 찾았을 때의 느낌은 “이분이 어떻게 이런 오지에 무슨 인연으로 오셨는가”하는 의아함이었다. 마치 말년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외로운 슬픔을 안고 찾았던 곳으로 느껴졌다. 10년 가까이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매립된 연못 속에서 유해를 찾아 금년 4월초 봉환,옛동지들이 영면하고 계신 동작동 현충원에 모셨다. 또 오늘의 대한매일 재탄생을 맞이하니 비록 저승에 계시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으시리라 믿는다. 선생께서는 다시 태어나는 대한매일이 민족적이면서 국제적이고,선도적이면서 민주적이며,어떠한 압력에도 굴함이 없이 ‘사실’과 ‘정론’으로서 사회통합과 번영,민족통일과 세계속의 한국으로의 길을 밝히는 사명을 다하는,국민의 사랑을 받는 신문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후손들도 떨리는 두 손을 모아 무한한 발전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대한매일 재탄생에 부쳐(사설)

    ◎개혁과 민족통합의 초석으로 대한매일이 오늘 다시 태어났다.이 찬란한 가을 아침에 우리는 거듭나는 생명의 환희와 기쁨 대신 자기반성의 아픔과 다시는 부끄럽지 않은 신문이 되려는 분연한 다짐으로 더없이 엄숙한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다시는 부끄럼 없이 우리는 지난 한달여에 걸친 각종특집을 통해 서울신문이 왜 대한매일로 거듭나려 하는가를 누누이 설명해왔다.서울신문이 걸어온 영욕의 53년 역사가 우리 사회에 어떤 누(累)를 끼쳤는지도 있는대로 적시하고 진심으로 참회했다.한국언론 사상 이토록 진솔한 자기반성을 한 신문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 신문 대한매일이 어떤 원칙과 어떤 각오로 신문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도 이미 국민앞에 천명했다.그러나 새출발에 맞춰 여기 다시 공익정론지 대한매일이 추구하는 목표와 우리의 길을 재다짐해 두려 한다. 지금 세계는 세기말(世紀末)의 긴장과 거대한 변화의 물결속에 휘말려 있다.그 변화의 에너지는 가위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지금까지의 사고 방식이 무너지고 과거의 시스템이 통째로흔들리고 있다.실로 격랑의 세기말이다. 개인의 일상 생활에서부터 사회공동체의 존재 양식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틀은 깨어지고 새로운 세계가 태동하고 있다.우리는 지금 그 변화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미래를 그려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변혁의 시대에 언론이 과연 무슨 일을 해내야 하는지 때로는 당혹하기까지 하다.그러나 대한매일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주시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을 제시하며,현상의 의미를 분석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미래의 신문은 단순한 보도기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기말적 격변속에 이나라에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개혁은 잘못된 과거의 광정(匡正)을 의미한다.파행적 과거의 청산과 극복을 위한 개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과제다.오늘의 개혁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의 현대사를 뒤틀어 놓았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극복하려는 일종의 혁명이다.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은 언론의 초보적 사명에 속한다.우리는 개혁을 지지하고 적극 후원할 것이다. ○갈등·불신 해소 위해 격변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정치세력간의 대립,뿌리깊은 지역주의의 골,사회변동에서 오는 계층간의 갈등,이런 모든 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에서처럼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안고있는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 있다.이러한 갈등과 사회적 불신을 줄이는 작업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절대적 명제(命題)가 아닐 수 없다.대한매일은 이러한 망국적 사회병리를 치유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바로 국민통합 작업이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것이다.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미 성취한 것으로 믿고있다.물론이다.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매우 결정적인 민주제도를 우리는 성취해 냈다.그러나 그것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볼수는 없다.우리의 의식구조,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비민주적 요소들이 산적(山積)해 있다. 대한매일은 통일을 준비하는 신문이 되려 한다.분단 극복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수 없다.통일은 남북화해와민족화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의 석학 에드가 모랭은 지구국가를 제창하고 있다.모랭의 제창이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21세기에는 기존 국민국가의 잔해는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국가화할 것이다.대한매일은 이러한 세기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대한매일은 이나라를 이끌어 가는 상층부의 생각과 움직임을 소상히 전할 것이나 소외된 곳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우리는 사시인 ‘대한매일의 다짐’에서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이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서구복지국가에 과잉 복지의 폐해가 있다고 해서 복지를 외면하려 한다면 잘못이다.이나라의 복지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대한매일은 상업지가 아님을 강조해 둔다.한국의 상당수 신문들은 지난 수년간에 걸친 과당경쟁의 결과로 천문학적인 부채더미 위에 올라 있다.살아남기 위한 자사(自社)이기주의가 언론의 본분을 뛰어넘고 있다.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신문이 이제 경영상의 압박속에 스스로 손발을 묶고있는 것이다.한국언론의 위기가 아닐수 없다. ○비상업적 공익 언론 국내 유일의 비(非)상업신문인 대한매일은 이런 척박한 언론환경 속에서 공익언론의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갈 것이다.아울러 비상업 신문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공영의 기반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대한매일은 선정주의(煽情主義)를 배격한다.선정주의는 황색신문만을 의미 하는게 아니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 미국신문들의 선정주의에서 비롯됐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한국언론의 선정주의 성향도 위험한 수위에 이르러 있다. 제호나 사명을 바꾼다고 오늘 우리의 다짐이 바로 실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서울신문의 통렬한 자기반성 위에 환골탈태(換骨奪胎)하려는 대한매일의 각성과 의지를 국민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아 주기 바란다.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편달을 거듭 거듭 당부한다.
  • 스티븐스 砲殺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7)

    ◎張仁煥·田明雲 의사 의거 추적/“국권회복 활동” 보도 한달뒤 1면톱 게재/“애국지사” 내외 알려 安重根 의사에 영향 1908년 3월23일 일본 통감부의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張仁煥·田明雲 두 애국지사의 총에 피살된다. 총격은,‘일본의 한국 보호’가 한국인의 바람인듯 공공연히 떠들어댄 그의 망언에서 비롯됐다. 대한매일은 이 사건을 끊이지 않고,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의 열악한 통신체계에도 불구하고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의거를 대한 백성이 자세히 알게됐다. 미국측에 의해 ‘단순살인’쯤으로 치부될 뻔한 사건을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의거로 자리매김,세계만방에 알린 것들은 순전히 대한매일의 공이었다.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정당함을 홍보하고 미국인의 반일감정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3월21일 기자회견을 가져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한국에 유익한 바가 많다” “한국민은 일본의 보호정치를 환영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거듭했다. 대한매일에 ‘스티븐스 포살(砲殺)사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3월25일자 뉴욕발 기사였다.‘한국 전 고문 須知分(수지분=스티븐스)씨가 일전에 桑港(상항=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는데,24일(사실은 23일)에 그 여관 앞 마차에서 내릴 때 돌연히 사격하였는데,그 사격자는 상항에 체류하는 한국인이라. 수지분씨가 이 조난 전에 신문기자를 만나 일본의 대한정책을 찬양하되,미국이 필리핀에서 하듯 같은 형태의 귀중사업을 일본이 한국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때문이라더라.’ 대한매일의 초기 보도는 전적으로 외신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짤막짤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흐름을 보면 결코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7일에는 ‘수지분이 큰 상처를 입지 않은 반면 부상한 한인(전명운)은 빈사 상태’이며 ‘저격 이유는 수지분이 휴대한 서류가 미국 대통령과 주미 일본대사에게 넘어가면 한국에 절망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28일에는 국내발로 ‘수지분이 죽어 통감부 관리 일동이 조전을 보냈다’는 부음기사를,29일과 31일에는 뉴욕발로 ‘병상의 한인은 점차 쾌유하며 수지분 사망 소식에 환희하였다’ ‘암살자(장인환)가 기소되었는데 그 변호사는 애국적 광란상태에서 무지각적으로 벌인 범죄라고 변호하였다’는 속보가 잇따랐다. 사건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외신만을 전하는 데 답답했을 대한매일은 드디어 4월17일자 1면 톱으로 상세한 내용을 보도한다. 미국에서 발행된 공동회의 호외를 긴급 입수한 것이다. ‘별보(別報)’라 이름 붙은 이 기사는 평상시와는 달리 ‘수지분 포살 상보’‘질문 수지분’‘전명운·장인환 양씨가 수지분을 포격’‘경고 첨(僉=모든)동포’ 등의 제목을 중간중간 큰 활자로 집어넣었다. 그 내용은, ‘수지분이가 23일 상오 華盛頓(화성돈=워싱턴)으로 향하려고 옥란시 정거장에 당도하며 애국지사 양씨는 뒤쫓아왔던지 일찌감치 대기중이라. 수지분이가 일본 영사와 동반하여 자동차에서 내려올 때 좌우 공격하여 연 3차 포성이 울리는 때에 수지분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니 경찰관리가 급히 모여들어 마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어진 ‘경고 첨동포’에서는 ‘우리가 양씨와 함께 죽을 지경에는 미달하였으나 그 애국열성이야 어찌 위로하지 못하리오. 한국독립도 이제 오늘부터요,한국자유도 오늘부터’라고 찬양한 뒤 ‘우리가 각각 주머니를 빌어 독립을 위하여 재판하기를 불가불 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포살 사건’ 보도는 대한매일이 거둔 또하나의 승리였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쾌거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1년7개월 후 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제는 이 보도를 대한매일 사장 배설을 고소하는 빌미로 삼았다.
  • 바그너 ‘오페라 서곡들,기타’(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7)

    ◎리하르트 바그너/서쪽으로,서북쪽으로/파시즘 선구자로 숭배 유태인 몰살의 음악/서로 흐러던 문명사조 북향시키려던 노력들/베토벤 교향곡 ‘확장’ 오페라속으로 신화화/망상의 평화 꿈꿨으나 엷기만한 희망의 흔적 1.발할라,유태인을 혐오하는 천재를 환영하다… 1883년 2월13일 베니스에서 바그너가 사망하자 신문은 그런 부고를 냈다. 발할라는 그의,4일 동안 연속 공연되는 총 16시간짜리 대작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신들의 궁전. 독일신화의 주신(主神) 보탄의 딸 발퀴레들이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전사한 영웅들을 이곳으로 데려온다. 보탄은 그들에게 날마다 주연을 베풀며 마지막 ‘악과의 전쟁’에 대비한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신들이 승리할 수는 없다. 신들과 악의 세력이 모두 멸망하고 새로운 인간의 세상이 열린다. 그래서 ‘반지’ 4부의 각 제목은 전야제 격인 ‘라인의 황금’(라인의 황금을 지하세력 난장이가 탈취하면서 세상의 질서가 뒤흔들리는 ‘사건 발단’),첫째날 ‘발퀴레’, 둘째날 ‘지그프리트’(미래의 주인인 지상의 ‘인간영웅’ 이야기)에 이어 마지막날이 ‘신들의 황혼’이다. 그렇게,그런채로 발할라가 천재­바그너를 환영한다.‘유태인 혐오’는,무슨 소린가? 식인종이었던 자들을 교육시켜 사회를 주무르는 장사꾼으로 키웠다… 유태인 종족에 대해 바그너는 그렇게 극언했다. 그리고 사망 40여년후 그는 악명높은 히틀러 파시즘의 선구자로 숭배되고 그의 음악속으로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몰살한다. 2.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문명은 태양의 동쪽에서 태동,서쪽으로 그 중심지를 옮겨갔다. 뒤늦은 문명이 앞선 문명을 보다 빠른 기간에 배우고 여력을 계승­발전에 투여한다. 그렇게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이 만개하고 로마에서 위대한 건축물을 이룬다. 문명의 주역은 그후 프랑스­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바뀌었다. 동에서 서로… 바그너는 독일문명의 세계 주도를 위해 그 흐름을,거대하게 북향(北向)시킨다. 그의 음악은 그래서 음악사상 가장 거대한 폭으로 흐른다. 물에서 태어나 가장 강렬한 욕망의 불길을 태우다가 다시,물의 평정으로,죽음으로회귀하려는 필생의,그리고 전 생애에 걸친 음악. 그러나 당대와 후대의 바그너 예찬자들은 그의 음악에 평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그너 자신은? 그는 소망했지만,소망을 성취할 수 없었다. 각 민족에게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그것들을 선진­미개의 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요는,주류 문명에 대응하는 방식. 바흐는 ‘독일속으로’ 더 흔들리면서 더 명징한 종교음악을 세웠고,독일을 종교음악의 본산지로 세웠다. 괴테는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독일문학을 이룩했고 베토벤은 자신의 불행과 독일의 열정을 음악사적인 낭만주의로 전화시켰다. 브람스 또한 북(北)독일의 우울을 음악의 보편적 심오함으로 담금질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영국과 프랑스의 학문적 업적을 독일적으로 종합,독일의 후진성을 혁명성으로 변혁시켰다. 바그너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복원을 꿈꾸면서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 형식(사랑의 금지)과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 형식(리엔치)을 기웃댔지만 처음부터 북행(北行)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서북 쪽으로. 그 결과는무엇인가? 문명의 야만을 치유하기 위한 생체실험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으나,위대한 실패로 끝난. ‘베토벤의 교향곡 세계를 오페라 세계로 심화­확대시키자’. 바그너의 음악적 꿈은 그랬다. 베토벤이 오페라를 단 한편 남겼으므로,그리고 그렇게 그의 ‘교향곡세계’가 ‘보이는 것’의 음악적 응축이었으므로,그것은 타당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북쪽의 광포하고 웅대한 신화로 꿈의 내용을 채운다. 3.웅대한 규모는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고 ‘야만의 신화’는 신화의 성스러운 야만화를,그리고 역사관의 반동화를 초래한다. 야비한 사기,불륜 행각과 과대망상의 천재 행각이 오페라 ‘속으로’ 신화화 하고 그 신화음악이 오페라 ‘밖으로’ 나와 다시 바그너의 현실세계를 미화,영웅화하는,악순환 고리가 반복 심화된다. 예찬자들은 열광하고,그러나 바그너로서는 ‘마음의 지옥’이었던 그 악순환의 고리. 그러므로,그의 음악은 그가 그 지리한,고통의 생체실험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육(肉)의 고행으로까지 밀어부치는 대목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다. 도대체 어디까지니이까.어디까지 음악의 육욕을,탐닉해야 하니이까. 저를 도와주소서…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음악의 살속’을 파고 든다. ‘끝까지’가 지리하고 심오한 반복을 낳고 ‘파고 듦’이 음악을 이제껏 가장 극단적인 반음(半音)사용으로, 사랑의 환희의,몰아의 황홀경의,그렇게 ‘사랑의 완성을 위한 죽음’의 정황으로 치닫는다. 물의 죽음에서 물의 죽음으로… 그러나 그 과정은 아름다움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극단의 불의 경지. 그것으로 물과 불의 구분 자체가 극복되는 경지이다. 4.반프리트. 망상에서 평화로운 곳. 혹은,망상으로 평화로운 곳. 바그너는 만년의 저택을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 숱한 거장들이 바그너를 ‘망상으로 평화로운 곳’으로 연주한다. 그러나,예술가는 망상에서 평화롭지 않으면 망상으로 평화로울 수 없다. 흥분은 금물. 루돌프 켐페의 음반은 한마디로 바그너 ‘반지’ 작곡 생애에 바치는 진정한 반프리트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델란드인’(1841)서곡,‘탄호이저’(1845)서곡 및 1막 일부,‘뉘른베르크의 명가수’(1867) 1막,3막 서곡 및 일부,그리고 ‘신들의 황혼’(1874) 서주­‘새벽’과 ‘지그프리트의 라인여행’등 수록곡은 켐페의 ‘독일 정통’ 연주를 통해 ‘바그너 선언’,‘정체성과 전통 발견’,그리고 ‘평정의 갈구’로 재설계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바그너의 진정한 소망의 골격을 보는 것이다.가장 중요한,이 모든 것이 종합되는 ‘지그프리트 장례행진곡’은 등장하지 않고 각 곡 도처에 흔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위대한 망상의 흔적이 (아직)아니고 상상력 풍부한 희망의 흔적이다. 바그너 사망 한달 후 마르크스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어느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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